경주 남산(금오봉~고위봉), 파도소리길
2013.9.8.일요일
참석인원 : 충북뫼벗 회원 40명과 함께
청주체육관 6:35 -칠곡휴게소 8:10 ~8:37(아침식사) -삼릉앞 서남산주차장 9:38 ~9:50 -석조여래좌상 10:01 -선각육존불 10:08 - 석불좌상 10:15 -선각여래좌상 10:21 - 상선암 10:38 -바둑바위(해발약 385m,1.37km) 10:49 ~10:53 -상서바위 10:55 -금오산정상(468m,2.6km) 11:10 ~11:20 -임도 11:24 -용장사지 삼거리(해발약415m, 3.2km) 11:30 - 용장사곡 삼층석탑(3.5km) 11:40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해발약 330m, 3.7km) 11:45 - 설잠교(해발약186m, 4.1km) 11:55 - 탐방로아님 12:00 -쌍봉1봉(352m,5.21km) 12:22 -쌍봉2봉(355m,5.37km) 12:30 -은적암위 바위(약362m, 5.82km) 12:37 ~12:47(중식) -안부(좌측 하산로, 약353m, 6.05km) 12:50 -암봉(약402m, 6.34km) -이무기 능선(약475m, 6.65km) 13:12 -헬기장 13:13 -고위봉 정상(494m, 6.8km) 13:14 ~14:02 -이무기 능선으로 하산(일명 공룡능선) -계곡 (약143m, 8.35km) 14:37 -용장리주차장(약75m, 9.5km) 14:56 ~15:13 -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 16:18 -파도소리길 따라서 - 하서항 17:10~17:20 -식당 17:25 ~ 18:02 -경주톨게이트 19:15 -속리산휴게소 21:01 ~21:14 -청주체육관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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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을 취하고 있다.
경주 남산은 불교 유물유적이 많아 석가탄신일에는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주시내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산이 금오산(471m)이고 그 남쪽에 솟은 산이 고위산(495m)인데, 남산이란 이 두개의 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와 40여 개의 계곡을 통틀어서 말한다. 남북으로 뻗은 남산의 산줄기는 약 8km, 폭은 4km. 면적 안에 불상 80여 체, 탑 60여 기, 절터 110여 개소가 있어 남산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유물유적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의 진면목을 보려면 역시 남산을 찾아 골짜기 구석구석에 있는 유물과 유적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
남산의 주요 등산로는 삼릉 - 상선암 - 금오암 - 용장사지로 이어지는 코스를 비롯해 칠불암 - 백운암 - 천룡사지 - 틈수골로 연결되는 코스, 화랑교육원 - 금오산 - 약수골 - 금오사로 하산하는 코스 등 여러 코스가 있지만, 남산의 주능선도밟고 유물유적도 많이 보려면 삼릉 - 냉골 - 상선암 - 상사바위 - 이영재 - 칠불암 - 염불사지로 내려오는 코스로 산행하는 것이 좋다.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에는 40여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신라 태동의 성지 서남산, 미륵골·탑골·부처골 등의 수많은 돌속에 묻힌 부처가 있는 동남산으로 구분된다.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나정은 신라의 첫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가 깃든 곳이며,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다.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막을 내린 비극이 서린 곳이다. 동남산에는 한국적 아름다움과 자비가 가득한 보리사 석불좌상, 9m 높이의 사면 바위에 탑과 불상 등을 새긴 불무사 부처바위, 바위에 아치형 감실을 파고 앉은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남산에는 미륵골(보리사) 석불좌상, 용장사터 삼층석탑, 칠불암 마애석불을 비롯한 12개의 보물, 포석정터, 나정과 삼릉을 비롯한 12개의 사적,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 입골석불, 약수골 마애입상을 비롯한 9개의 지방 유형문화재, 1개의 중요 민속자료가 있다.
유적뿐만 아니라 남산은 자연경관도 뛰어나다.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며, 등산객의 발길만큼이나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남산을 일등으로 꼽는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곧, 자연의 아름다움에다 신라의 오랜 역사,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서 승화된 곳이 바로 남산인 것이다.
남산을 비롯한 경주는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뛰어나 '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 Historic Areas)'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진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됨으로써 남산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한국의 산천에서 옮김
냉골-금오산-용장사-칠불암-고위산-천룡사-틈수골
남산은 그 계곡에 아름다운 조각들이 없더라도 평범한 야산은 아니었다. 군데군데 멋진 바위들, 깎아지른 단애들이 있고 계곡은 깊었으며 남북으로 뻗은 금오산-고위산 능선은 하루 등산코스로서도 손색이 없는 거리와 높이며 멋진 전망대와 암릉을 갖추고 있는 일급 등산 코스였다. 남산일대에 석불, 마애불, 선각불이 들어서서 사철 향화가 끊이지 않는 것은 원천적으로 조상, 부조, 선각을 베풀 바위가 있어야 한다. 냉골 위쪽 상사바위 부근처럼 암릉이 등걸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곳이 적지 않으며 바위가 여기저기 돌출하거나 깊은 석곡을 형성하고 돌출한 바위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어 적당한 바위를 찾아 부처를 새기기가 아주 쉬운 산이 남산이다.
용장사 삼층석탑이 있는 바위부근에서 남쪽을 조망하면 쌍봉 능선과 고위산 암릉과 반 암봉골산은 꼭 한 번 올라가보고 싶은 아기자기한 바위지대와 전망좋은 능선이었다. 고위산 백운재부근에서는 산림이 울창하여 경주가 아닌 강원도 어느 구석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경주남산에 오면 골짜기마다 산재한 천년전의 문화적인 향기를 냄새맡고 싶어짐을 어쩌지 못한다.
산행을 입구에 삼릉(아달라왕등 세왕의 무덤)이 있는 냉골에서 시작한 것은 냉골에 6가지가 넘는 불상이 있고 금오산을 거쳐 고위산으로 가는 산행코스는 능선이 꽤 길어 (10킬로를 넘는다) 산행하기에도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냉골은 그동안의 가뭄으로 골짜기 계류가 거의 말라 있었지만 소나무가 많은 화강암 계곡은 맑 은 물이 흐르기만 하면 가경이 될 것 같았다. 불상을 새길만한 암벽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계곡에 는 분향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불상이 있으면 그 앞엔 예외없이 촛불상자가 놓여 있었고 부근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으며 일대를 청소하는 빗자루 한두개가 근처에 보였다. 짐작으로는 불상 마다 임자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상 가운데는 복전함이 있는 곳도 있었기에 그런 느낌이 더 강열해졌다. 촛불상자는 촛불을 켜고 유리문을 닫으면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촛불이 꺼지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진 작지 않은 알루미늄 박스이다. 밀폐된 상자가 아니므로 불이 꺼질 염려는 없다. 풍우가 대작하는 그믐날 밤에 여기저기 불이 켜져 불상이 어둠속에서 번쩍이는 계곡을 상상해보면 이곳이 얼마나 특이한 골짜기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 골짜기에는 소나무가 많다. 송림속에서 처음 마주치는 불상은 목없는 불상이다. 의상의 정교한 돋을 새김과 안정된 좌정에서 풍겨오는 그 무엇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불상이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올라간 언덕받이에 관음상부조가 있다. 비스듬한 돌기둥에 새겨진 관음의 얼굴에 석양빛이 물들어 있다. 관음상은 부드럽고 인자하다. 관음상을 보고 내려와 다시 골짜기를 조금 올라가면 왼쪽 언덕받이에 높이 4미터 정도의 바위단애가 있고 바위앞에는 조금 넓은 공터가 있어서 바위단애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주위는 허리 꼬부라진 소나무들이 마치 바위에 새겨진 6마애불을 시립하고 있는 듯하고 바람이라도 불면 은은한 솔바람 소리가 난다. 이 여섯마애불은 이 냉골계곡의 부처상들 중 가장 예술성이 높은 불상들로 볼 수 있을 듯했다. 대부분의 부처상들이 단독불인데 비해 6불이 함께 새겨져 있는 데 모두가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물씬 풍기는 분위기가 타처의 불상과는 다른 데가 있다. 바위 표면은 매끄럽지 못하며 왼쪽 3불과 오른쪽 3불은 모서리가 있어서 한 벽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상을 새긴 손끝은 원래부터 있던 바위의 균열과 미세한 절리마저 이미지를 표현하기위한 선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음이 엿보여 주어진 재료-마뜨리에-를 이용하여 자기세계를 구현하는 안목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입체조각보다도 마애기술이 기술적 난이도에서는 얕은 수준일지는 몰라도 의미의 함축성에서는 뛰어나다는 것이 이 불상들이 준 인상이었다.
6불상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얕은 언덕받이에 석가여래 좌상이라는 불상이 하나 송림속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마애불이 아닌 완성된 조각으로서의 불상이다. 그러나 불상의 코를 갈아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을 믿어온 우리네 부녀자들의 아들선호의 전통이 이 여래상의 코도 망가뜨려 놓았다. 없어진 코를 시멘트로 엉성하게 붙여놓은 것이 불상의 인상을 결정적으로 훼손하여 아쉬움이 컸다.
이 불상에서 뒤로 돌아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여래좌상 마애불이 나타난다. 웅장한 면석에 새겨진 부처는 입술이 유난히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광배그림도 천상도를 닮은 듯 수학적인 것이어서 인상에 남는다. 이 불상앞에 왔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불상앞 공터를 정성스레 비로 쓸어내며 향불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냉골은 초입에서부터 향이 타는 냄새로 가득하여 부처가 얼마나 많은가 짐작케 한다. 이러한 상태는 상선암에 이르기까지도 계속된다. 석가여래 마애불에서 내려와 급경사 암석지대를 올라가면 냉골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산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절위로 올라가서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은 일부 암릉으로 형성되어 있고 서북쪽으로 높은 단애를 이루어 전망이 좋다. 산아래서 올려다보이는 곳 언덕받이 단애에 또하나의 마애불상이 있다. 이 불상앞은 전망대가 될 정도로 조망이 좋은 곳이어서 눈에 띄는데 금오산에서 뻗어내리는 맞은편 능선과 그 아래 냉골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서라벌 옛땅은 남산의 동서쪽에 남북으로 긴 벨트대를 이룬 채 옥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능선에 올라가면 동으로 멀리 높다란 토함산이 길게 누워있고 북동쪽 산자락 끝에서는 경주시가지도 보인다. 이런 위치라면 신라의 경주인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수 있는 손쉬운 산인데다 괴림팔괴란 말이 있듯이 기암, 괴석이 골마다 그득하기까지 하니 돌을 주무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신라인들이 남산을 불상의 천국으로 만든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암자를 내려다 보는 예의 마애석가여래좌상에서 급경사를 조금 더 올라가면 안부가 되고 거기서는 동쪽 골짜기(큰늠비골)와 늠비골 저쪽 능선위에 세워진 전망대정자가 보인다. 뒤로는 토함연봉 사이의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남으로 방향을 돌려 큰 바위아래로 난 암릉을 타면 절이 내려다보이고 조금 더 가면 큰 바위뒤쪽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게 된다. 상사바위뒤에는 아랫부분에 감실같은 홈이 패여있고 그안에 소석불이 있었다고 되어 있으나 지금은 없다. 상사바위에서 금오산 정상까 지는 밋밋한 능선으로 되어 있으나 냉골쪽은 높은 벼랑으로 형성되어 있어 전망이 아주 좋다. 금오산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매캐한 냄새였다. 산불이 난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산불은 금오산 서쪽 능선과 능선 남쪽에서 일어나 금오산 남쪽 사면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다행히 불은 골짜기하나와 능선을 태우는 정도에서 진화되었다. 남산 전체가 타고 말았다면 경주의 경주다움은 크게 손상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라도 그 주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이득원이 되지 못할 때 부주의의 마녀는 등장하기 마련이다. 금오산 정상에서 내려와 사자봉으로 향한다. 이쪽은 남산을 횡단하는 큰 길이 나 있다. 금오산에서 고위산으로 가는 코스에서 보면 사자봉은 길에서 비껴나 있지만 부석과 마애여래좌상 등 몇 가지 유물이 있는 산이라 지나칠 수 없다. 능선에서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한참 내려가면 날아가다가 바위위에 얹혔다는 전설의 바위 부석이 작은 지능선 위의 바위위에 얹혀 있고 그 아래 조그마한 골짜기가 열리는 곳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조금 내려가면 벼랑 사이로 조금 들어간 안쪽에 미완성조각불이 있다. 이 한적한 계곡의 이름없는 부처앞에도 향화는 불타오르고 있고, 낙엽이라도 불려오면 빗자루로 쓸어내는 보살님이 있다. 사자봉에서 용장사 삼층석탑과 용장사터로 가려면 이영재로 가는 큰길을 버리고 처음엔 평탄한 암릉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경사가 조금씩 급해지고 곧 시야가 트이면서 벼랑가에 서 있는 용장사 3층석탑(보물 186호)이 나타난다.
용장사 삼층석탑
탑이 하늘에 대한 동경과 기원의 상징이라면 용장사 3층석탑은 그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탑이다. 보통 탑은 평지위, 절마당에 세워져 있는데 비해 이 탑은 아름다운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벼랑끝에 세워져 있기 대때문이다. 탑의 전체높이는 4.5미터로 비교적으로 작은 규모의 탑이다. 탑이 인격체라면 용장골에서 보이는 이 탑은 분명히 벼랑가에서 계곡을 내려다보거나 고위산 자락인 쌍봉을 건너다보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이곳조망과 탑의 위치 때문에 신라인의 종교적 심성의 깊이에 대해 얼마간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탑의 기단은 남산자체인 암반이다. 상층기단이 자연석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탑이 아니더라도 용장골로 올라오는 산행이라면 이곳에서 머물며 골짜기풍경과 건너다보이는 고위산 자락의 반 슬랩지대 겸 암릉을 보며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탑 주위엔 소나무가 있어서 그런 분위기를 돋궈준다. 삼층석탑에서 바위사이 길로 내려가면 절벽아래에 암벽에 여래좌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꽉 짜인 균형미가 느껴지는 마애여래이다. 인자로운 미소가 보는 사람을 편아하게 해 주면서도 그속에 엄격함도 담고 있는 상호에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선의 흐름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높이는 1.14미터이며 8세기불상으로 감정되고 있다. 보물 913호이다.
마애불 앞에는 둥글게 조성된 삼층석탑형 대좌위에 좌불상이 안치되어 특이한 용장사터 석불좌상이있다. 이 석불은 목이 없고 몸체만 남아 있다. 결가부좌한 모습의 몸체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사실적인 형태로 조각되어있다. 몸체, 옷의 주름등 가사의 표현이 자연스럽다. 전체높이 4.56미터.
용장사터 석불좌상(보물 187호)을 보고 다시 암릉위로 올라와 넓은 도로를 통과한 뒤 이영재로 향한다. 고위산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용장사 삼층석탑 쪽을 바라보니 멀리서도 벼랑위에 서 있는 탑의 모습이 또렷하다. 이 탑의 존재가 이 용장골과 고위산 북쪽 산록 일대를 위압하고 있는 느낌이다. 냉골로 들어와 금오산에 오른 다음 사자봉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고위산 쪽으로 오면서 용장사 3층석탑을 보고 다시 올라와 고위산으로 오는데는 거리도 꽤 멀고 볼 것도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미 오후가 되어가고 있었다. 5,6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도 고위산으로 간 것은 칠불암 지대의 마애여래좌상과 칠불암 불상군을 보기 위해서였다. 고위산쪽은 사람들이 적어 호젓한 산길이었다. 송림도 빽빽하고 공기도 좋아 산행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칠불암이 가까워오자 능선경치가 확 바뀌는 기분이다. 암곡, 암릉이 많이 보이고 내려다보이는 계곡도 수려하다. 칠불암은 남산 모퉁이 가장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 사람들이 찾아오기에도 불편하여 항상 조용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봉우리를 내려서면 암벽지대가 나오는데 절벽사이로 난 길(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길이기도하다)을 따라 가면 신선암이란 큰 바위가 있고 그 아래는 아찔하게 높은 단애이다. 이 신선암 바위의 동쪽 약간 경사진 한면에 새겨진 불상이 신선암 마애보살상이다. 이 암벽과 벼랑 주위의 풍경은 조망도 좋고 바위들도 수려하여 경관이 빼어난 곳인데 여기에 마애보살상이 새겨져있어서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용장사 3층석탑이 그랬듯이.
신선암 아래 조금 기울어진 면석에 얕은 감실을 파고 불상을 부조했는데 옆에서 신선암 바위, 마애불, 절벽길, 그 아래단애, 원경과 함께 보면 멀리 암릉들이 중첩되어 보이는 시원한 조망을 가부좌한 불상이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독특한 위치와 형상이다. 대좌가 구름무늬를 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위치에서 볼 때 마치 천상에서 보는 듯한 시각을 느끼게 하기에 족하다. 자비에 넘친 상호로 기울어진 몸체를 앞으로 숙인 듯한 자세가 더욱 그렇다. 전체적으로 명상에 잠긴 근엄한 얼굴은 풍만한 편이고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은 화려하여 감실을 구획하는 선과 어울린다. 양감이 있고 세부표현이 치밀한 점은 불상의 연대를 통일신라후기 양식에 가까운 것으로 보게 한다. 이런 결정적인 장소에 위치에 걸맞는 불상을 천상의 부처처럼 양각하여 걸작을 만들게 한 안목과 의장은 절벽아래 칠불암의 사각바위 마애불을 포함, 대단한 것으로 1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공감을 자아내게 하고있다.
마애불 앞의 공간은 비좁다. 공간 옆으로는 깎아지른 단애이다. 절벽 위의 좁은 길을 조심해서 지나면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바위사이의 길이 가파르다. 칠불암에서 보면 신선암은 그 아래 석면에 마애불이 있건 없건 아름다운 암봉이다. 칠불암 부근은 노송이 무성하여 암봉과 함께 절경을 형성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경주 남산에서 이곳이 가장 짜임새 있고 옹골찬 느낌을 주는 아늑한 부처님 나라라는 느낌을 주었다. 냉골은 사실 좀 산만하여 구심점이 없고 유물도 이곳 저곳에 산재하여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던 데 반해, 칠불암은 암봉, 신선암, 칠불암 마애석불이 거의 직선상에 놓여 통일된 인상을 줄 뿐 아니라 마애불을 포함, 모든 부처상이 일정 수준 이상의 유연하면서 사실적인 표현기술을 갖춘 작품이란 점과 이들 석불들이 대체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이곳을 주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칠불암 마애석불
신선암을 지나 급경사를 내려가면 칠불암 마애석불이다. 칠불암은 윤곽이 반원형인 큰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이 병풍처럼 앞에 펼쳐져 있고 그 앞에 높이가 그 보다 낮은 사각바위 4면에 4개의 석불을 조각해 놓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장은 특이하여 바위의 자연적인 포치를 잘 이용하여 석불을 배치한 효과가 크다. 본존불이 새겨진 병풍바위의 반원형 윤곽과 4개석불이 조각된 4각바위의 윤곽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듯한데 이러한 의장의 독창성을 산다면 칠불암을 국보급이라 평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칠불암 석불 앞에서는 평면불이 주는 효과와는 전혀 다른 마치 부처들의 소우주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본존불은 세련된 솜씨를 보이는 작품이다. 좌불의 높이는 약 2.7미터. 양감이 풍부한 얼굴, 유연한 어깨 및 팔의 곡선, 법의의 흐름도 몸체의 균형을 계산한 뒤의 안정을 추구한 것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이 부처의 자비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부처상은 완전정면에서는 볼 수가 없다. 앞에 사면불상의 사각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면불암석 뒤로 일부만 보이는 본존불은 그만큼 궁금증을 자아내는 효과를 보인다. 본존불의 협시불은 본존불의 어깨높이만큼 오는 규모가 작은 입상(실제로는 본존불의 앉은 키와 같아보인다)으로 코가 좀 부서졌다. 칠불암은 보물 200호이다. 4면석불은 삼존불에 비해 규모가 작아 자연 조각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혹시 삼존불을 위한 장식효과용 마애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남산일대의 마애석불전체를 생각하면 결코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4개마애불 전체가 원형의 광배를 가지고 있어서 본존불이 새겨진 반원형 바위 아웃라인과 4각바위의 직육면체와 서로 조응하고 있다. 병풍처럼 삼존불이 있고 본존불의 상당부분을 가리면서 그 앞에 4가바위의 사면에 각각 4좌의 마애불이 안치된데서 오는 이상한(?)효과가 무엇인지 탐구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칠불암을 구경하고 다시 된비알로 올라오면서 뒤돌아보면 계곡이 범상한 계곡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능선은 암릉이며 산록의 상당부분까지 바위로 되어있다. 울창한 송림이 계곡아래를 뒤덮고 있다.
칠불암에서 능선으로 올라와 고위산을 옆으로 끼고 천룡사로 가는 길은 호젓하고 숲도 많아 산행이 즐거운 코스이지만 시간이 늦어져 마음이 급해진다. 이미 7시간 가까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는데 천룡사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였다. 천룡사는 지금은 폐사지만 남아있고 부근 동네 옆에 석탑만이 썰렁하니 서 있는 곳이다. 천룡사는 없지만 이 폐사지는 대단한 명당이었다. 고위산 능선이 완전한 암봉을 이루고 이 폐사지를 뒤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폐사지자체였다. 고위산 아래 중턱에 길이 400미터 넓이 350미터 정도의 테라스형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곳이 천룡사지 라는 것이었다. 신라전성기에 당나라인이 이곳 절에 와서 만일 이곳이 떨어지면 신라가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명당이다. 이 테라스형 분지 아래로는 급경사를 160미터 가량 내려가야 동네가 나온다. 말하자면 이 테라스는 문자그대로 테라스처럼 공중에 떠있는 셈이었다. 이곳에 서면 마치 종묘 앞뜰에 선 것처럼 하늘이 아주 가깝다. 뒤에 고위산 암봉과 암릉, 그리고 주위의 대나무밭, 평탄한 고원분지가 어울어진 이곳에 대가람이 있었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뛰었다. 폐사지에서 내려가면서 보니 테라스 언저리에 억새밭이 우거져 황갈색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버스타는 내남면 틈수골까지만도 직선거리로 2.5킬로나 되었다. 거의 10시간이 걸린 참으로 흥미있는 산행, 아니 문화기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산행으로도 전혀 손색없는 산행이면서 문화유적을 볼 수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에 안겼다
이 코스에서 보아야 할 것
1.냉골의 6좌 석불(마애불등)
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선각육존불
선각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선각마애불
2.냉골주변의 경관
3.암릉에서의 조망
4.금오산 정상
5.사자봉 아래 마애여래좌상
6.부석
7.용장사 삼층석탑과 삼륜대석불좌상
8.신선암 마애불좌상
9.칠불암 삼존불과 사면석불
10.천룡사지와 사지에서 본 고위산
▼ 경주 파도소리길(1.7km)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이어지는 편도1.7Km '파도소리길'은 다양한 모습의 주상절리가 늘어져 있다. 원래 이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의 일부였지만 주상절리가 펼쳐놓은 장관이 아름다워 이 길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주상절리란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이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되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방향으로 진행되어 기둥모양의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라 한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한탄강, 무등산 정상부, 경주해변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경주 지역의 주상절리는 주름치마, 부채꼴모양, 꽃 봉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특징으로 푸른 바다와 어울러져 보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과거에는 군부대초소들이 줄지어 있던 곳이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초소들이 철수하면서 2012년 6월13일 처음으로 개통되어 그 비경을 드러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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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체육관 6:35
그저께 화천의 매봉산~용화산~수불무산을 다녀와서 아직 여독도 풀리지 않았지만 친구 2명과 함께 뫼벗 산악회 경주 남산 금오봉~고위봉에 이르는 산행에 신청해놓아 새벽 5시 일어나 산행준비와 아침식사를 한 후 청주 체육관에 도착을 하니 한 친구는 이미 도착해 있고 다른 한명은 오는 중이므로 잠시 기다려 6시 35분 체육관 앞을 출발한다.
삼릉앞 서남산주차장 9:38 ~9:50
청주를 출발한 버스는 서청주 톨게이트 앞에서 몇 명을 더 태워 40명이 경주로 향한다. 버스는 상주 선산을 거쳐 칠곡휴게소에서 아침식사 겸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하여 경주 남산입구 서남산주차장에 9시 38분 도착을 한다.
상선암 10:38
삼릉 앞 도로를 건너 삼릉입구에 도착을 하니 공원의 이쁜 아가씨들이 남산에 대한 내력을 간단하게 설명을 마치고 쓰레기 되가져가기 행사를 겸해 사진촬영을 마치고 곧 냉골로 입장을 한다. 삼릉을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옛날 동국대학생들이 발견을 하여 이곳에 안치를 시켯다는 머리와 손이 파손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다시 5분여를 가니 등산로 우측으로 선각육존불이 나온다. 이곳에는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다시 5분을 더 올라가면 우측으로 석불좌상이 있다. 석불좌상은 보물666호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3분여를 들어가면 선각여래좌상이 나온다. 높이 10m가량 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으며 이 작품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에는 이곳에서 바위를 타고 능선으로 직접 올랐으나 오늘은 다시 돌아 나와 등산로로 오른다. 서서히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17분을 오르니 상서바위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상선암에 닿는다.
상선암은 광복이후 박배월 스님이 창건을 하였다. 그리고 그 후로 여러 스님들이 이곳에서 정진을 하였다. 그러나 이 절터에는 예전에도 사찰이 있었음이 여러 가지로 증명을 하고 있다. 길가에는 장대석 1매가 있으며 많은 와편이 아직도 출토가 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 순조 34년인 1834년에 강화 임필대가 서술한 유동도록에는 상선암에 올라보면 앞쪽의 하선암이 수석사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산에는 하선암이라는 절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선암에서 위로 올라가면 마애여래좌상을 참배할 수 있고 암자 등산로 선편에는 선각보살 입상을 친견할 수 있다. 상선암 요사 바로 옆 길가에 있는 보살입상은 아주 자세히 살펴보아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상체와 발 부분은 모두 결실되어 그 흔적조차도 살필 수가 없다 추정하기로는 이 보살입상이 넘어지면서 깨어지며 손실되지 않았나 추정을 할뿐이다. 그리고 이 보살이 여기에 있었다기 보다는 다른 곳에서 옮겨지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다.
금오산정상(468m,2.6km) 11:10 ~11:20
상선암에서 우측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얼마 후 우측으로 약사여래좌상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막아 놓았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빙 돌아 오르면 상선암에서 15분후 조망이 아주 좋은 바둑바위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는 경주시내 일원의 모든 지형을 살 필수 있는 좋은 전망대다. 이곳에는 조망도와 남산의 개략도, 남산과 망산의 유래 글이 있다.
잠시 옮겨 보면 “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 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날 두 신이 찾아 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 한 남신이었고, 또 한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두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 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산 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겁에 질려 “산 보라!” 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 라고 해야 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 신도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신은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 있는 부드럽고 푸근한 망산이 되었다고 전해져 온다.[참고문헌 : 경주시지]
바둑바위에서 조금 내려가면 약사여래좌상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으나 막혀 있다. 굳이 가지 않고도 상서바위에서 앞쪽으로 보이니 상서바위에 올라 바라본다.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상서바위를 지나면 육산길로 5분을 오르면 금오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커다란 정상석이 있다. 이정표에는 삼릉주차장2.6km, 통일전 4.2km, 포석정 4.7km, 상선암 1km가 적혀있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해발약 330m, 3.7km) 11:45
금오산 정상에서 뒤에 오는 님들을 기다린 후 다시 칠불암 쪽으로 이동을 한다. 금오산에서는 우측으로는 약수골, 좌측으로는 용장사지와 칠불암 쪽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좌측 용장사지 쪽으로 이동을 한다. 4분을 나가니 널찍한 임도가 나온다. 좌측으로는 포석정 4.7km, 우측으로는 통일전 3.8km가 적혀있다.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6분후 용장사지 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난 이곳에서 칠불암을 거쳐 고위봉으로 오르도록 악당에게 잘 일러두고는 용장사지 쪽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10분을 내려서니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나온다. 높다란 바위능선에 자리 잡고 있어 그 모습이 더욱 돋보인다. 삼층석탑에서 다시 5분을 더 내려가면 용장곡 석조여래좌상이 나온다. 이작품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이곳의 용장사지터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대의 석축이 남아 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한다고 한다.
쌍봉2봉(355m,5.37km) 12:30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에서 10분을 내려가니 설잠교다. 아치형 다리로 김시습의 법호를 따서 이름 지은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이정표가 나온다. 용장마을 1.85km, 이영재 0.95km, 용장사지 0.6km, 금오봉 1.7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5~6분 후 탐방로 아님이란 글씨가 보인다. 이곳으로 진입을 하니 길 흔적은 있으나 요즘 다니지 않은 길이다. 조릿대가 길을 덮어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좁은 골을 따라 들어가다 작은 능선을 하나 잡아 오른다. 20여분을 못가 막 쌓은 작은 돌탑이 있는 봉에 닿는다. 해발 약 360정도의 봉이다. 이봉이 쌍봉 중 첫 번째 봉이고, 살짝 내려섰다 다시 오르면 쌍봉2봉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분으로부터 이 능선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는 사진 한장도 부탁해서 찍었다. 특별한 것은 없고 앞쪽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 아래에 은적암터가 있어 이골을 은적골이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앞에 보이는 능선이 이무기 능선으로 되어 있으나 맨 위에 있는 바위가 공룡바위이기 때문에 공룡능선으로 부른다는 애기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 붙들고 이야기 해주니 매우 고마운 분이다.
고위봉 정상(494m, 6.8km) 13:14 ~14:02
쌍봉2봉에서 내려서 조금 가면 뾰족이 솟은 바위를 지나 은적암터 위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닿는다. 이곳에서 잠시 앉아 쉬면서 점심식사를 한 후 출발한다. 출발하여 10여분을 가니 헬기 한 대가 다가온다. 사고 났음을 직감한다. 좌측으로 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 암봉에 오르니 헬기가 이무기 능선 바위 쪽으로 붙는다. 잠시 후 밧줄이 내려지고는 헬기는 공중을 몇 바퀴 선회를 하다가 다시 돌아와 사고자를 싣고 떠난다. 헬기가 떠나고 고위봉으로 향하니 몇 분 안 올라 이무기 능선에 닿고, 1분후 헬기장을 지나, 마지막 고위봉에 닿으니 13시 14분이다. 칠불암 쪽에서 오는 악당에게 전화를 하니 이제 막 칠불암 삼거리를 지나고 있다고 한다. 고위봉 정상에서 올라온 분들과 이야기도 하며 사진도 찍어주며 기다리니 40여분이 되어 선두가 도착을 한다. 후미와 많이 떨어지지 않아 금시 모두 도착하여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일부 몇 명은 이무기 능선으로 하산을 하고, 대부분은 의봉능선으로 하산을 하여 열반재를 거쳐 임도를 따라 하산을 한다.
용장리주차장(약75m, 9.5km) 14:56 ~15:13
고위봉에서 하산은 이무기 능선으로 한다. 모두가 내려가고 제일 늦게 출발하여 내려가니 이무기 능선으로는 나 포함 7명이 하산을 한다. 이무기 능선으로는 지금 한창 안전시설을 하느라 분주하다. 이공사가 끝나고 나면 이곳도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겠다. 지금도 바위를 오르내리는 곳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천천히 안전하게 산행을 한다면 어려운 곳은 아니다. 이무기 능선으로 내려와 계곡에 닿기까지는 35분이 소요되었다.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니 작은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열반재를 거쳐 하산하는 님들과 만난다. 마을안길을 따라 7분여 걸어 나오면 최종목적지인 용장주차장에 닿는다.
이렇게 하여 대략 5시간에 걸친 산행을 무사히 마친다.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 16:18
경주 남산 금오봉~고위봉 산행을 마치고 이제는 경주시 감포항 남쪽에 있는 양남면 읍천항의 파도소리길로 향한다. 커다란 고개길을 넘어 1시간 5분이 소요되어 동해바다 한모퉁에 있는 읍천항에 도착한다.
하서항 17:10~17:20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이어지는 편도1.7Km '파도소리길'은 다양한 모습의 주상절리가 늘어져 있다. 원래 이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의 일부였지만 주상절리가 펼쳐놓은 장관이 아름다워 이 길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군부대초소들이 줄지어 있던 곳이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초소들이 철수하면서 2012년 6월13일 처음으로 개통되어 그 비경을 드러내게 되었다.
읍천항 어촌 벽화길을 따라 가면 읍천항 공원이 나온다. 여기부터 바닷길로 걸어도 되고 위쪽 탐방로를 따라 걸어도 된다. 바닷물이 밀려 왔다 밀려가며 만든 하얀포말이 눈부시다. 바닷가 자갈에는 미역을 따다 말리는 곳이 많이 있다. 이지역이 미역이 많이 나는 곳인가 보다. 출렁다리를 부근을 지나가면 부채꼴 주상절리가 나온다.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다음으로 위로 솟은 주상절리, 누워 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를 바닷가를 따라 가며 관람하면 대략 천천히 걸어도 50분이면 충분히 구경 할 수 있다.
파도소리길을 따라 읍천항에서 하서항 까지 돌아오니 하서항은 읍천항 처럼 분비지 않아 좋다. 기사님이 미리 잡아 놓은 한가한 식당에 도착하여 된장찌개로 저녁식사 맛있게 하고 무룡고개를 넘어 울산 호계를 거쳐 경주로 나와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속리산휴게소에서 한번 휴식한 다음 청주체육관 앞에 도착을 하니 정확히 22시다.
오늘 함께한 님들도 반가웠고 좋은 산행과 함께 파도소리길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 ~~
금오산~고위산 산행시간 : 5시간 6분 소요
산행거리 : 약 9.5km
청주체육관 ~ 삼릉앞 서남산주차장 소요시간 : 3시간 03분 소요 (240km)
경주용장주차장 ~읍천항 : 1시간 05분소요 (48.2km)
하서항 ~청주체육관 소요시간 : 4시간 소요 (276.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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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금오봉~고위봉), 파도소리길
청주체육관 ~경주 삼릉 서남산주차장 : 240km 3시간 소요
경주 용장주차장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 ; 48.2km, 1시간 15분소요
경주 하서항 ~청주체육관 ; 276.15km, 4시간 소요
충북뫼벗 394차 정기산행
경주 금오산~고위산, 파도소리길
일시 : 2013.9.8.일 일요일 6시 30분
집결장소 : 청주체육관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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