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용유담~선녀굴~노장대(함양독바위)~ 안락문~오뚜기바위~공개바위~가현교
2011.12.17.토요일 맑음
참석인원 : 청주 산사랑산악회(40명) 따라서 (악당,산성,산아름,나)
청주체육관 7:04 -금산휴게소 7:55 ~8:15 -함양톨게이트 9:10 -문수사입구(문하마을) 9:30 ~9:49 -용유담 9:55 -견불사 10:25~10:28 -송대마을 10:33 -선녀굴 11:18 -노장대(함양독바위) 11:45 ~11:55 -안락문 11:59 -오뚜기바위 12:15 ~13:00(중식) -베틀재13:35 -공개바위 삼거리 13:54 -공개바위 14:00 ~14:05 -임도삼거리 14:15 -세멘트포장임도(산양삼농장앞) 14:35 ~14:45 -가현교 15:08 ~16:53 - 함양분기점 17:30 -덕유산휴게소 17:56 ~18:08 -금산휴게소 18:36 -서청주톨게이트 19:16 -체육관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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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공개바위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와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와의 지리산 경계 능선상에 위치하며해발 755m이고 군계 능선에서 산청군 쪽으로 약 30m 아래에 있다.
탑의 규모는 높이 12.7m 둘레의 길이 12.4m이며 무게 약 30톤 규모의 바위 다섯 개가 일직선으로 포개져 있으며 약 60도 정도 경사진 산 비탈에 우람하게 서 있는 모습이 신비를 자아낸다.
SBS 인기 프로그램중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에 방영 되기 전 지질 전문가, 역사학자, 풍수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사람이 인위적으로 쌓아 놓은 것 같으나 풍화작용에 의한 자연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지만 공개바위의 존재가 인공물이냐 자연물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기울어진 정도가 다른데 많이 기울어진 방향에서 보면 거의 30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수만년동안 그 상태로 지속되어 온 것이으로 보이며, 한국판 피사의 사탑이라고 할수 있다.
5층 돌 탑중 아래를 기준으로 3번째와 맨위 5번째 바위가 가장 크며 바위의 가장 아랫 부분엔 또 다른 큰 바위가 받쳐 주고 있어 오랜 세월동안 잘 견뎌 냈다. (공개바위)란 이름은 어린이들이 즐겨 하는 5개 공기돌 놀이의 경상도 방언으로 골개놀이라 하는 것에서 유래가 된 것이다.
예부터 공개바위 주변은 인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는데, 바로 땔감나무를 하는 장소, 고사리나 취나물등 산채를 채취하는 장소, 6.25동란때는 빨치산과 국군의 치열한 교젼 장소이기도 했으며 인근엔 화전민들이 참 많이 살던곳이다.
공개바위에 대해서 인근 사람들에게 전해져 오는 전설은 마고 할미와 관련이 되어 있다.
마고할미는 삼베구만필을 해입을 정도로 거인이었으며, 마고할미가 하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땐 함양 쪽에서 흉년이 들었으며 함양쪽으로 보고 있으면 하동쪽에서 흉년이 들 정도로 거인이었다고 한다. 식물이 광합성작용을 하여 열매를 맺게 하거나 뿌리에 영양소를 저장하여 사람들에게 양식을 제공하여 주게 되는데 바로 마고할미가 햇빛을 가려 버려서 흉년이 들게 하였다고 전해내려오는 전설이다.
이 마고할미가 지리산에서 공기놀이를 하다가 지금의 그 위치에 5개 공기돌을 포개 놓았다는 이야기다.
마고할미의 체구가 어마어마한 거인이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 마고할미와 관련되 전설은 공개바위 뿐아니고 제주도 창세신화,거제도, 강화도등에서도 마고할미가 등장을 하는 것으로 봐서 우리네 선조들의 의식속에서 신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던것같다.
공개바위에서 직선 거리로 약 700m 아래엔 6.25동란 이전까지 약 20여호의 마을이 있었는데 바로 모래골이라 하는 마을이었다. 지금은 집터의 흔적만 있을 뿐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곳이다. 주변엔 뒷골이라 해서(함양군 휴천면 동강 마을 뒷산의 뒷골, 산청군 금서면 방곡 마을의 뒷산 뒷골) 수 가구가 70년대 초까지 살았지만 정부의 독가촌 이주정책에 따라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아랫마을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이후에 나무를 하는 사람이나, 산채를 채취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렸으나 보일러의 등장과 젊은 사람들의 이농현상, 정부의 산림보호를 목적으로 한 입산금지 정책에 따라 근 30년 동안 그주변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자연히 그 주변은 울창한 숲이 형성되어 잡목들이 자라게 되었고, 최근에 그 부근을 찾은 등산객들에게조차 숲속에 꼭꼭 숨어 있는 공개바위의 존재가 발견되지 않았다.
2006년 3월부터 세인들에게 알려지자, 전국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비의 존재물로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산청군에서는 문화재등록을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산청군에서 안내판을 세곳에 세워 쉽게 찾아 갈수 있다.
아울러 주변과 관련된 코스로는 500년전 김종직선생이 지리산 등정을 하면서 기록으로 남긴 유 두류록 코스인 함양군 휴천면 운암 ~노장대 ~지장사터 ~환히대~선열암터 ~신열암터~고열암터~유술이굴~선녀굴~부처바위~함양독바위~안락문~산청,함양 군경계능선~베틀재 ~마당재~공개바위~휴천동강리코스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코스이기도 하다. 공개바위에서 빤히 왕산이 보이기도 하며 오봉계곡에서 공개바위코스와 연계하기도 한다.
김용규님글에서 옮김
♣ 함양 독바위(노장대)(1120m) 소개
지리산에는 현재 독바위라 이름 불리는 바위가 최소한 3개가 있다. 동부능선 쑥밭재 북쪽에 있는 바위가 산청(진주) 독바위이며 그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함양쪽 독바위가 함양 독바위다. 그리고 삼신봉 부근 지능선 상의 바위는 특별한 이름 없이 독바위라 불리고 있다.
바위가 위치한 곳은 함양군 휴천면이다. 지리산 동부능선의 주릉이 산청 독바위를 지나 1315봉에서 웅석봉으로 동진하기 직전에 북쪽으로 가지를 쳐놓은 지릉의 한 마루금에 솟아 있다.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고 또 길도 험해 각별한 관심을 가진 산꾼들 외에는 찾아본 사람이 많지 않은 아직은 신비감에 쌓여있는 바위다. (부산일보 산&산에서)
노장대 빨치산 루트는 산죽비트를 비롯한 굴 비트 바위비트등 빨치산들의 은신처가 곳곳에 숨어 있다.
마지막 빨치산으로 활약하다 체포된 정순덕의 이야기도 시대가 만들어낸 가슴아픈사연이 웬지 서글픔에 빠지게 하는 역사의 현실에 가슴이 저밀어 온다.
오르다 보면 환희바위라고 명명되어 있는데 이곳 주민들은 배바위라 일컫는 바위위에 올라서니 휴천문정골이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잠시 조망하고 다시 오르는 급경사길낙옆속에 숨어 있는 잔설이 남아 얼음이 되어 잠시 한눈팔면 미끄러져 자빠지기 십상이다.
함양독바위라 불리는 전설이 있는데 한 여인이 바위 사이에다 돌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도를 닦아 하늘로 올라갔다는데서 유례되어 홀로독 바위암 (獨巖) 독바위라 불리우고 있다는 함양독바위정상을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오를수가 없다
예전에는 사다리도 놓여져 있었고 밧줄도 매여 있었다 하는데 환경단체에서 모두 철거를 해전문산꾼이 아니면 엄두도 낼수 없다.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44> 경남 함양군 휴천면 운서마을
빨치산 비밀공간 많은 ‘좁디좁은 땅’
두어 달 전쯤 ‘망실공비 3인부대’로 불렸던 정순덕, 이홍이, 이은조가 군경의 추격을 피해 1962년까지 숨어 지낸 송대마을 선녀굴을 잠시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곳과 그리 멀지 않은 운서마을 역시 산죽비트, 굴비트, 망바위, 배바위 등 빨치산의 비밀 아지트가 많았던 곳이다.
빨치산 루트의 중심에 선 노장대는 과거 엄천사에 딸린 암자지만 일부에선 지리산의 다른 독바위들과 구별하기 위해 함양독바위(약 1200m)라고도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노장대(동)는 1970년대까지 민가가 있던 마을터이고, 독바위는 다섯 개의 바위군을 일컫는 이름으로 각각 그 위치가 다르다.1472년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한 여인이 바위 사이에다 돌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도를 닦아 하늘로 올라갔다.’고 독녀암을 소개하고 있는데, 산꾼들은 그 독녀암을 지금의 독바위로 보고 있다.
마을에서 산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김종직이 이 일대를 지난 것을 기념한 유두류록 탐방코스 안내판이 두어 개 세워져 있다.
●산 길목엔 김종직 지난 것 기념한 탐방 안내판이…
2000년에 펴낸 ‘휴천면지’에 의하면 운서마을은 송전리와 동강리 사이에 낀데다 면내의 오지중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좁은 땅’에 불과 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요즘의 운서는 오히려 전보다 가구 수가 제법 증가한 상태다. 약 30호 중 3분의 1은 귀농인으로 굳이 인구로 따지자면 자식들을 객지로 떠나보낸 원주민 노인보다 어린 자녀를 둔 귀농자가 조금 더 많다.
운서리는 자잘하게 운암(가리점), 장동, 소연동, 노장동 등으로 다시 나뉘는데 현재 인가가 밀집된 지역은 지형이 제비집을 닮았다는 소연동뿐이다. 콘크리트 소로가 끝나는 곳이 운암이고, 소연동을 벗어나 드문드문 민가가 들어서 있다. 함양독바위와 선녀굴 연계산행이나 독바위 주변의 폐사지를 찾는 산행객들이 꾸준히 모여 드는 곳이기도 하다.
“몇 해 전만 해도 관리가 안 되는 빈집 다섯 채를 군 지원 하에 철거했는데 요즘은 어떻게들 알고 귀농문의를 해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6년째 마을 대소사를 맡고 있는 김인천(52) 이장 또한 18년차 귀농인이다. 한봉 첫해 25통의 벌집을 80통까지 늘리는 대성공을 거둔 덕에 여태 남아 있다고, 그때 실패했으면 미련없이 상경했을 것이라 너스레인 그이는 정착자금까지 받아 놓고도 결국 적응하지 못해 떠나는 이들을 보면 이만저만 가슴이 아픈게 아니란다.
●8년간 귀농인 몰려----전체 30가구 중 33%차지
그렇게 정착한 사람들 덕분에 논농사 밭농사가 전부였던 운서마을도 약초, 토종꿀, 곶감 등을 수확하며 활기를 띠고 있다. 군내 250개 마을 중 단 세 곳을 뽑아 지원하는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에도 최고 점소로 선정돼 작년과 올해 마을 곳곳에 무려 2500그루의 살구나무를 심었다. 꽃이 지면 그만인 벚꽃과는 달리 꽃도 보고 열매도 얻을 수 있는 살구나△여 했다니 10년 후쯤이면 살구꽃으로 뒤덮일 우서를 볼 수 있을 터이다.
김이장의 임기는 이제 한 달 남았다. 낙후된 마을을 위해 상수도와 찻길 공사 등을 주도 했지만 외지인 출신 이장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았다. 지리산 자락 300km를 잇는 도보 트레킹의 다음 코스가 운서를 거칠 예정인데 그때도 마을 홍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일 김 이장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아니면 번잡한 일을 모두 내려두고 오롯이 벌치는 이리에만 몰두하게 될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가는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부산과 대구 등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 나들목에서 산내~마천~휴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생초나들목으로 나서 화계방향으로 이동 한다. 24번 국도에서 오도재를 넘어 마천~휴천 방면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마천 쪽에서 갈 때는 송문교나 한남교를, 생초에서 갈 때는 엄천교를 건넌다. 마을 입구에 노장대 이정표가 있다.
글 황소영 자유기고가
함양독바위(독녀암)와 신열암
1.신열암의 열쇠가 되어준 독녀암
<김종직>선생은 선열암(先涅庵)을 돌아본 뒤 착아간 신열암과 독녀암에 대한 정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신열암(新涅庵)을 찾아가 보니 중은 없고, 그 암자 역시 높은 절벽을 등지고 있었다. 암자의 동북쪽에는 독녀암(獨女巖)이라는 바위가 있어 다섯 가닥이 나란히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천여척이나 되었다.
법종이 말하기를,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기거하면서 도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올라 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 하였는데, 그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잣나무가 바위중턱에 나 있는데 그 바위를 오르려는 자는 나무를 건너질러 타고 가서 그 잣나무를 끌어 잡고 바위틈을 돌면서 등과 배가 위 아래로 마찰한 다음에야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은 올라갈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종리(從吏) 옥곤(玉崑)과 용산(聳山)은 능란히 올라가 발로 뛰면서 손을 휘저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山陰)을 왕래 하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과 다투어 나와서 마치 하늘을 괴고 있는 듯했는데 지금에 내 몸이 직접 이 땅을 밟아보니 모골(毛骨)이 송연하여 정신이 멍해져서 내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본분에서 지칭한 독녀암은 상세한 서술과 뚜렷한 형상 덕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함양 독바위 임을 쉽게 풀 수 있게 되었으며, 이렇게 밝혀진 독녀암은 신열암을 추정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2. 제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할 신열암
탐구팀이 추정하는 신열암은 독녀암 지척에 있는 폐사지이다.
신열암 암자 터는 정확히 독바위에서 서쪽으로 2분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큰 바위를 등진 곳에 암자의 필수 조건인 샘이 있고 축대의 흔적과 구들장동, 기와조각과 옹기 및 자기파편이 주변에 널려있고 묻혀 있다.
옛날 고승들은 절터를 잡을 때 먼저 그곳의 물맛을 보고 잡았다 하더니만, 바위틈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석간수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고, 물맛은 흔히 말하는 감로수 수준이다. 앞서 지나온 수십 길 벼랑 위에 터 잡은 선렬암이 고행승의 수도처 같았다면, 이 곳 신열암은 암자 터가 편안하고 아늑해서 학승의 공부도량 같은 곳이다. 구름처럼 떠도는 운수납자를 주저앉게 하는 죽진한 그런 곳이다.
한편 산 아래 사람들은 이 곳을 독바우 금강대 라고 부른다.
지금 현존하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지만 금강대와 주지승에 관한 얘기들을 선대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동란 직후까지 신열암터에는 거의 원형의 기왓장이 많았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편력으로 보아서는 신열암은 암자 이름이 어느 때인가 금강대로 바뀌면서 거의 19세기 초까지는 존재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3. 함양독바위인 독녀암 독녀암 즉 함양 독바위는 기행록에 쓰여진 대로 정확하게 신열암의 동북방향에 위치해 있다. 비상하는 황새의 모습을 닮아 황새날등 이라 불리는 날등의 최 상단 부분에 있는 함양 독바위는 500년 전 <김종직>선생이 본 모습 그대로 이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바위 덩어리 이지만 다가가서 보면 다섯 개의 거대한 바위가 서로 맛 대어 서 있다 이를 두고 선생은 “모두가 높이는 천 여척으로 다섯 가닥이 나란히 서 있다” 고 했다. 500년 세월 동안 부침도 없었던지 아직도 다섯 개의 바위는 건재하며 기록물에서 언급한 바위 사이에 돌을 쌓은 흔적도 남아있어 “한 부인이 도를 연마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는 독녀암의 전설은 듣고 흘려버릴 야사가 아닌 실체의 역사로 다가온다. 그 당시에는 바위중턱에 있는 잣나무를 끌어 잡고 바위틈을 돌아 등과 배가 위아래로 마찰한 다음에야 올랐다는 독녀암에 지금은 잡고 오르는 금속재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500년 전 그 때 그 나무인지 아닌지 바위중턱에는 지금도 옹이진 잣나무들이 있다.
4. 함양 독바위의 별칭 독녀암을 두고 산 아래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각각이다. 산청 쪽의 유림 사람들은 상투를 닮았다고 상투바우라 하고, 함양의 휴천사람들은 독아지를 닮았다고 장독바우라 부른다. 또 한 마천 쪽 사람들은 筆鋒이라 부르기도 하기에 마천의 60번 도로 위에서 확인해 보니 붓끝을 닮기도 했으나 가장 두드러진 형상은 유림 쪽에서 본 상투 모양의 독바위 모습이다. 일반적인 상용어는 동부능선상의 진주 독바위와 구분을 위해 함양 독바위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 함양군에서 운암마을에서 노장동을 거쳐 이곳 독녀암 까지를 빨치산 탐방루트로 지정을 해서 함양 독바위를 노장대라고 하고 있으나 이것은 오류인 것 같다. 한국동란까지 노장동에서 5대를 살았다는 <손종만>씨 외 여러 지역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장대는 토착민들이 부르는 노장동 마을의 별칭이며 함양독바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더욱 실색할 일은 휴천 면사무소에서 발간한 휴천면지에 실려 있는 노장대 사진이다. 선녀굴 우측에 있는 입석바위를 찍어서 그 곳을 노장대 라고 소개해 놓았다. “이 땅의 역사와 문화 왜곡은 관청사람들이 다 저지른다” 고한 어떤 입담 좋은 역사가가 쓴 글 대목이 생각난다. 보기 없는 퀴즈문제를 푸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유두류록] 지명탐구에서 <김종직>선행이 명백하게 뚜렷한 함양 독바위를 거쳐가며 설명해 놓았기에 신열암과 다음 코스인 고열암을 추정하는데 결정적인 하나의 힌트가 되어주었다
지리산 아흔아홉골 홈( http://jiri99.com/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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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입구(문하마을) 9:30 ~9:49
모처럼 청주의 어느 산악회에서 지리산 한켠에 있는 공개바위를 가는 곳이 있어서 예약을 하고 아침에 산아름님의 차를 타고 청주체육관에 도착을 하니 엄청 많은 버스들이 체육관과 종합운동장 주위에 몰려 있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먼저 왔을 홍민이에게 전화를 걸어 버스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하니 버스 안은 거의 산악회원들로 가득 차 있다. 몇몇 아직 도착하지 않은 회원들을 기다려 7:04분 출발하여 서청주 톨게이트를 거쳐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가다 금산랜드 휴게소에서 2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출발을 한다. 금산랜드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육십령을 넘고 함양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88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1분후 함양톨게이트로 빠져나가 시골길을 따라 20분을 달리니 견불사, 문수사 입간판이 있는 문하마을앞에 닿는다. 도로변에 작은 학교가 있으나 폐교가 된듯하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강을 건넌다. 다리 이름이 송문교다. 다리 옆으로 와룡대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문헌동 계곡에 큰바위가 있어 모양이 용이 서린 것 같다 하여 고종 광무 10년(1906년)에 강신영이 와룡대라 명명하고 친구 7인이 해마다 계모임을 가졌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엄천강을 건너 반대편으로 가니 문수사 3km,안내도가 있다. 이쯤에서 산악회를 이끄는 대장님이 잘못 왔다고하여 내려올 곳을 향하고 있는 버스를 되돌려 와 다시 버스를 타고 용유담으로 향한다.
견불사 10:25 ~10:28
문하마을입구를 출발한 버스는 5분여를 이동하여 용유담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의 지형은 엄천강 바닥에서 상당히 높은 지형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용유교가 나온다. 용유교 앞쪽으로 보이는 마을의 전경이 아늑하니 조용하다. 다리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높다란 돌 축대위에 지은 모전마을 회관이 있고, 좀 더 진행한 후 견불사 쪽으로 우측방향 시멘트길을 따라 계속 오르게 된다. 20여분 가까이 오르면 우측으로 “천연와불성지 견불사 실상선원”라고 쓴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개울건너에 실상선원 건물이 보인다. 그리 크지 않은 절로 앞쪽이 훤히 트인 지점에 세워진 아담한 절이다.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3~4분후 견불사가 나온다. 견불사 앞쪽으로 코끼리 상이 보이고, 길옆으로 관세음보살상이 서있다. 위쪽으로 올라가보니 견불사는 보통의 절의 양식이 아닌 일본식 집의 형식과 비슷한 모양이다. 견불사도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절이다.
선녀굴 11:18
견불사에서 다시 나와 좌측 시멘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5분후 송대 마을에 닿는다. 몇 가구 안되는 마을로 마을 우측으로 빨치산 루트 안내소가 있다. 선녀굴로 향하는 길은 안내소 좌측편으로 직진을 하면 계속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첫머리에 이정표가 있었으나 누군가 없앤 듯하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서 조금 가면 길은 능선으로 붙는다. 능선을 따라 오르다. 우측 사면으로 길이 이어지며 계속을 한번 건너고 다시 한번 더 건너 좌측편 능선쪽 사면으로 계속 따라 오른다. 오래전 마을 터가 있던 곳으로 여겨지는 축대가 군데군데 쌓여 있는 지점을 지나고 벽송능선에 우뚝하게 솟은 부처바위가 보이기도 하는 지점을 지나 차츰 가파르게 오르면 마을에서 45분후 선녀굴에 도착을 한다. 선녀굴은 깊숙이 들어간 굴이라기 보다는 바위틈으로 봐야 옮을듯하다. 이곳에는 샘이 있어 예전에 빨치산들이 은거지로 삼았을 법도 하다.
노장대(함양독바위) 11:45 ~11:55
선녀굴에서 아래쪽 좌측 편으로 하여 능선으로 붙여서 올라가야 하지만 선두가 이미 우측 편으로 길을 잡아 올라가므로 그 뒤를 따라 오른다. 이곳도 몇몇이 지나간 흔적이 있어 표지기도 붙어 있긴 하다. 15분여를 오르니 능선에 닿는다. 능선으로는 커다란 바위들이 줄줄이 서있고 더러는 멋진 소나무도 보인다. 잠시 나무 원둥치가 없는 앉기 좋은 소나무에서 사진 한장씩을 담은 후 조금을 더 가면 조각난 선바위 틈사이로 빠져 나가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엄천강쪽의 조망이 좋다. 잠시 후 올라갈 함양독바위가 정면으로 잘 보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안락문이 있는 바위봉을 좌측으로 우회를 하여 5~6분을 더 가면 노장대 즉 함양독바위에 닿는다. 함양독바위는 여러개의 바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바위로 뒤편으로 돌아가니 좌,우로 올라갈 수 있는 바위지만 지금은 바위가 얼어 매우 미끄러워 한번 시도를 해본 후 접기로 했다. 좌측 작은 바위는 낡은 줄이 있고, 우측 높은 큰 바위쪽으로는 볼트를 박아 놓아 밟고 오르도록 되어 있으나 쉽지는 않다. 예전에는 이곳에 로프가 매여 있었던 곳이다.
오뚜기 바위 12:15 ~ 13:00 (중식)
함양독바위 쪽으로 음지이고 바람이 몰아 치는 부분이여서 10여분 있는 동안 몸이 바싹 얼어붙는다. 함양독바위를 빠져나와 오르는 길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조금을 오르니 통락문이라는 이름표가 보이며 좁다란 바위틈으로 빠져나가는 길이다. 입구에 안락문(安樂門)이라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좁다란 바위틈을 빠져 나가면 위쪽으로도 안락문이란 글씨가 아래쪽과 똑같이 써 있다. 안락문을 빠져 나가면 우측사면을 타고 가는 조릿대길로 15분여를 더 가면 군경계능선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쪽으로 조금을 더 가면 오뚜기바위가 나온다. 이곳이 이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조망도 좋은 곳이다. 좋은 이름하나 지어 주었으면 하는 맘이다. 앞쪽으로 새봉을 거쳐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며 왕산과 필봉이 계곡너머에 야트막히 솟아 있으며 새봉에서 우측으로 하봉을 거쳐 높이 보이는 것이 천왕봉으로 보인다. 벽송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상내봉(부처바위)이 있다. 이곳은 네곳으로 갈리는 주요한 포인트다. 오뚜기 바위가 있으니 오뚜기봉으로 명명하면 어떨까?
오뚜기 바위에서 군경계능선을 따라 조금 들어가다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 후 출발 한다.
배틀재 13:35
오뚜기 바위 좀 지나서 점심식사를 한 후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조릿대길로 눈이 덮여 미끄럽고 어럽다. 더러는 급경사길에 바위도 있어 내려오는데 신경이 많이 쓰인다. 내려오면 좌측으로 장군봉에서 이어져 내려간 능선이 보이고, 앞쪽으로 꽃봉산으로 이어지는 군경계능선이 이어져 간다. 오뚜기 바위 정상에서 35분여를 내려오니 베틀재에 닿는다. 베틀재에는 처음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우측길은 오봉리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공개바위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온 쪽으로 조개골이라 적혀 있다.
공개바위 14:00 ~14:05
베틀재에서 부터의 길은 걷기에 아주 좋다. 20여분을 걸으니 공개바위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의 이정표에는 우리가 온 쪽으로 베틀재, 우측으로 공개바위, 진행방향으로 운서 동강으로 표기 되어 있다. 조금 위쪽 봉으로 올라가니 앞쪽 꽃봉산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정비가 되어 있어 걷기에 좋겠다. 주로 방곡리에서 공개바위를 본 후 꽃봉산을 거쳐 하산하는 짧은 코스를 많이 이용하는 탓 일게다. 작은 봉에서 다시 내려와 공개바위로 향하니 내려가는 길이 가팔라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공개바위까지는 5분여 내려가며 공개바위 주변으로는 잡목을 제거 하고 정비를 하여 공개바위 만 우뚝하니 서있다. 공개바위는 전설에 의하면 마고할머니가 공기돌 놀이를 하다가 세워 놓은 돌이라고 한다. 산기슭쪽으로 휘어져 있으며 금시 넘어 갈듯하지만 넘어가지 않는다 하여 한국판 피사의 사탑이라 일컫는다.
이곳에서 잠시 공개바위를 두고 양쪽에서 사진을 남긴다.
방곡리 가현교 15:08 ~16:53
공개바위에서 내려오면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계곡에 닿아 조금을 더가면 임도가 나온다. 이곳에서 임도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어느 쪽이건 내려가는 길이지만 지도에 나온 길은 우측 길이므로 우측길고 내려온다. 이곳에서 내려오기 전에 주렁주렁 달린 감을 따먹어 보려 돌도 던지고 나무도 주워 던져 보고 하지만 감은 떨어지지 않는다. 옆에 뉘여진 대나무를 주워서 감나무를 두드리니 에고 감이 떨어지긴 하는데 풍지박살이 난다. 이리하여 눈요기만 하고는 임도 우측 길을 따라 내려오니 잠시 고개를 넘어 또 감나무가 많다. 이곳에서 잠시 떨어져 박살이 난 감을 주워 맛을 보니 시원하니 홍시 맛이 최고다. 다시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니 사람들이 다니질 않아서 걸리는 것이 많다. 계곡 끝지점을 지나니 앞쪽으로 깨끗한 임도길 둘레로 철조망이 쳐져 있어 넘어 갈수가 없다. 계곡으로 내려와 세멘포장 임도에 닿은 후 산양삼 농장 앞쪽에 있는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에서 감을 따 먹느라 10여분 이상을 소요한 후 임도를 따라 23분을 내려가니 버스가 정차 해 있는 방곡리 가현교다. 가현교에서 좌측 위쪽 마을이 가현마을이고, 우측 사립재쪽 마을이 오봉리이다. 가현교에 내려온지 1시간 후 뒤따라 한팀이 내려 오고 차차 마지막 까지 내려오는 데는 1시간 반정도가 소요된듯하다. 이곳에서 잠시 오뎅을 넣고 끊인 따끈한 오뎅국과 막걸리 소주로 뒤풀이 간단히 하고 집으로 향한다.
오늘 모처럼 따라 온 산악회 산행 다리가 무척 아파서 오지 않으려 했지만 나 말고도 3명이나 있고 하여 약속을 지키고자 참석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산행 마치고 나니 다리는 더 아파오지만 기분 많은 좋다. 같이 한 3명외 산사랑산악회원님과 산악대장님께 감사 인사 드린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산행시간 ; 5시간 13분 소요
산행거리 ; 약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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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공개바위~함양독바위(1120m)
청주종합운동장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방곡마을회관(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171.2km
(함양톨게이트 -휴천면 -방곡리)
청주종합운동장 ~함양 마천군 용유교 : 175.16km
산행코스 : 법전암(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35분 -공개바위 -30분 -베틀재 -1:15 -1211봉(갈림길) -15분-안락문(통락문) -10분 -함양독바위 -20분 -고열암터 -25분 -오뚜기바위 -30분 -베틀재 -25분-공개바위 -15분 -법전암
산행거리 : 약 9km
산행시간 : 4시간 40분 소요
산행코스 : 함양군 휴천면 운암 ~노장대 ~지장사터 ~환히대~선열암터 ~신열암터~고열암 터~유술이굴~선녀굴~부처바위~함양독바위~안락문~산청,함양 군경계능선~베 틀재 ~마당재~공개바위~휴천동강리
산행코스 : 임천교 -운서리 -해동검도수련원 -적조암 -산죽비트 -노장대마을터 -환희대 - 환희대사거리 -선열암 -유슬이굴 -고열암터 -선열암터 -함양독바위 -안락문 - 상대봉갈림길 -베틀재 -공개바위 -외딴집 -방곡마을
산행시간 : 6시간(태극사)
산행코스 : 적조암~산죽비트~박쥐굴~지장사터~금낭굴~선열암~유슬이굴~선녀굴~고열암~ 신열암~함양독바위~공개바위~꽃봉산~환쟁이골입구
산행코스 :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가현교 들머리 -31분 -공개바위 1km전(해발755m) -암 자 -공개바위 0.5km전 (1km전에서 21분소요) -23분 -공개바위 -25분 -능선 -베틀재 -벽송사,선녀굴삼거리(능선에서 1시간소요) -25분 -안락문 -7분 -함 양독바위 -32분 -선녀굴 -30분 -송대1km전 -30분 -빨치산루트안내소 -13분 -견불사 -7분 -견불사 실상선원 -35분 -용유교
산행시간 ; 총 8시간소요
산행코스 : 운서리→적조암→산죽비트→양민거주지→ 환희대→유슬이굴 →선녀굴 →노장대 (일명 "함양독바위")→안락(통락)문 → 상대봉(갈림길)→베틀재→공개바위(한국판 피사의 사탑) → 방곡리
산행거리 / 시간 : 약 15Km / 약 5시간 20분
산행코스 ; 동강마을 팽나무쉼터 -둘레길 이정표 -능선갈림길 -꽃봉산 -공개바위 -운서쉼 터 -동강마을 식당
산행시간 ; 5시간
◆ 산행코스
서암정사→벽송사→장목구이→바위비트→상내봉(와불산)→안락문→함양 독바위(노장대)
→선녀굴→송대동 마을→용유교
● 산행거리 : 약 12km
● 산행시간 : 약 7시간 (점심, 휴식시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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