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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555 중국 운남성 쿤밍 대리 여강 옥룡설산,호도협 관광 2011.4.17~4.22일~금요일

중국 운남성 곤명 대리 여강 호도협 관광

2011.4.17(일)~4.22.금

 

참석인원: 15명 가이드 하나투어 이강우사장,장옥희 홍임표 박순녀 박경자 유복형 신연순 오원대 한경옥 이상근 한순례 한성수 이명옥 이용진 한의수

 

1일차

청주 공단육거리 집결 4월 17일 16:00출발 -화성휴게소 17:22 ~18:00 -인천공항 7:05 ~19:30

 

2일차

곤명공항 4월 18일 01:20분 도착 (서울시각 보다 1시간 빠름) -곤명가화호텔 2:55 - 7:00기상 -8:30분 출발 -구향동굴 10:30 -보트관광 11:05 ~11:17 -동굴관광 11:20 ~12:15 -곤도라 12:29 ~12:35 -구향동굴출발 12:47 -식당 12:57 ~13:50 -내고석림도착 14:25 ~16:20 -탕치마을 라텍스 매장 -곤명 보이차 매장 19:25 ~20:20 - 보이차매장 2층 식당 20:25~21:15 - 호텔 21:30

 

3일차

기상 4:00 -아침식사(도시락) 4:50~5:10 - 출발 5:30 -곤명공항 5:50 ~7:00 -대리공항 7:30 ~8:12 -이해호수 유람선관광 8:57 ~9:50 -백족삼아쇼장 9:55 ~10:10 -삼아사(삼아탑) 10:25 ~11:00 -대리고성 11:20 ~12:00 -식당 12:20 ~13:10 -창산케이블카 주차장13:30 -케이블카승차 13:41 -케이블카하차 13:57 -전망대 14:07 -제2팔각정 14:17 -되돌아서 케이블카 승차 14:32 -케이블카하차 14:47 -창산 케이블카주차장 출발 15:10 -여강 리장호텔 도착 19:45

 

4일차

기상 7시 -출발 8:22 -흑룡담공원 8:40 ~9:15 -동파만신원 9:37 ~10:00 -여강인상쇼장 10:30 ~11:50 -쇼장의 식당으로 이동 식사 12:00 ~12:40 - 옥룡설산케이블카 13:10 -케이블카 전망대 13:20 ~14:30 -케이블카주차장 14:40 -백수하 14:55 ~15:10 -속하촌관람 16:00 ~17:10 -여강맛사지 17:30 ~19:30 -식당 19:40 ~20:40 - 노래방 21:10 ~23:50 -호텔 24:00

 

5일차

기상 7시 -출발 8:30 -옥룡설산전망대 10:10 ~10:22 -도보로 건너는 다리 10:35~10:45 -호도협 주차장 11:00 ~13:00 -도보로 걷는 다리앞 식당 13:10 ~13:40 -장강전망대 14:30 ~14:40 -여강 족욕장 15:50 ~17:20 -여강고성관광 17:28 ~18:35 -고성 동경만식당 18:35 ~19:20 -고성출발 19:30 -여강공항도착 20:20 ~22:40(1:10분 연발) -곤명공항 23:50 ~01:30

 

6일차

인천공항 도착 6:10 ~6:50 -화성휴게소 8:20 ~9:10 -청주 도착 10:30

 

□ 여행국가 : 중국(곤명 ․ 석림 ․ 대리 ․ 여강)

□ 여행기간 : 2011년 4월 17일(일) ~ 4월 22일(금)

일(요일) 도시명 교통편 시 간 세 부 일 정 식 사
제 1일 청주 전용버스 16:00 집결지 집결 후 출발  
4 17 인천   19:30 인천공항 도착 후 탑승 수속  
  (일)   MU 2004 21:45 인천공항 출불(4시간 35분 소요)  
    곤명   01:20 곤명공항 도착 후 입국수속  
        02:00 ☞ 가이드 미팅 후 호텔로 이동하여  
        02:30 호텔 투숙 및 휴식 석:기내식
          HOTEL : 가화호텔(★★★★★)  
제 2일 곤명   09:00 호텔 조식 후  
  (월)   전용차량   구향동굴로 이동(약 40분소요) 조:호텔식
    구향동굴     ▶ 협곡과 폭포, 각종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구향동굴’ 관광 - 뱃놀이 / 리프트 포함  
          중식 중:현지식
          석림으로 이동(약 1시간 30분 소요)  
    석림     ▶ 웅장하게 솟아오른 기암괴석이 장관을 연출하는 ‘석림’관광 - 전동차  
          곤명으로 귀환(약 2시간 30분소용)  
    곤명     도착 후 호텔투숙 및 휴식 석:사천요리
          HOTEL : 가화호텔(★★★★★)  
제3일 곤명        
4 19   MU 5987 07:00 호텔 조식 후  
  (화) 대리   07:30 곤명 출발(30분 소요)  
          대리도착 후 가이드 미팅  
      전용차량   ▶ 사람 귀처럼 생겨서 이름 붙여진 아름다운 호수 이해호수 관광 조:도시락
          ▶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 ‘창산’리프트 등정-대리시내 조망(약 1시간~1시간30분 소요)  
          ▶ 대리국의 옛모습을 간직한 곳 대리고성관광 중:현지식
          ▶ 9세기에 만들어진 불교탑인 대리삼탑  
          ▶ 삼도차를 마시며 ‘백족민속쇼’관람  
          여강으로 이동(약 4시간소요)  
    여강     여강 도착 후 호텔투숙 및 휴식  
          HOTEL : LIJIANG SHINER HOTEL(888-310-7777)  
일(요일) 도시명 교통편 시 간 세 부 일 정 식 사
제4일 여강 전용차량   호텔 조식 후  
4 20       ▶ 명나라 누각 오봉루와 맑은 호수가 어우러진 ‘흑룡담공원’ 관광  
  (수)       ▶ 아름다운 산세가 마치 옥으로 용을 깍아놓은 듯한 ‘옥룡설산’ 만년설 조망 조:호텔식
          ▶ 옥룡설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모우평’관광-리프트포함  
          ▶ 나시족의 신성한 성지 ‘동파만신원’ 관광 중:현지식
          ▶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여강고성’관광  
          여강 인상쇼 관람  
          석식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석:현지식
          HOTEL : LIJIANG SHINER HOTEL(888-310-7777)  
제5일 여강 전용차량 전일 호텔조식 후 조:호텔식
4 21 호도협     ▶ 호도협 트레킹  
  (목)       전신안마 석식후  
    여강   18:00 공항으로 이동하여 탑승 수속 중:현지식
      MU5960 21:30 여강 출발(50분소요)  
    곤명   22:20 곤명 도착 공항대기 석:송이샤브
          HOTEL : 기내박 샤브
제6일 곤명 MU2003 01:00 곤명출발(3시간 30분 소요) 조:기내식
4 22 인천 전용차량 05:30 인천공항 도착 후 입국 수속  
  (금) 청주   09:00 청주도착  

중국

수도는 베이징[北京]이다. 동서길이는 5,000km, 남북길이는 5,500km이며, 국경선은 총길이 2만km이다. 남쪽으로는 베트남·라오스·미얀마, 남서쪽으로는 인도·부탄·네팔·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북쪽으로는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 및 러시아, 몽골과 접해 있으며, 둥베이[東北:옛 이름은 만주] 지역 남쪽으로 북한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에서부터 황해, 동중국해, 타이완[臺灣] 해협(중국과 타이완 사이의 약 160km 너비의 해협), 남중국해로 둘러싸인 해안선은 1만 4,000km에 이른다. 1949년이래 타이완의 국민당 정부는 중국 본토를 자신의 영토의 일부로, 중국은 중국대로 타이완을 자신의 영토의 일부로 주장하고 있다. 타이완 섬을 중국의 23번째 성(省)으로 보는 데에는 두 정부의 의견이 일치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전국은 중앙정부에 직속된 31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성이 22개, 소수민족 자치구가 5개(네이멍구[內蒙古]·광시좡족[廣西壯族]·닝샤후이족

[寧夏回族]·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시짱[西藏:티베트]), 직할시가 3개(베이징·상하이[上海]·톈진[天津]), 특별행정구가 1개(홍콩)이다. 당대(唐代:618~907) 이래 현재와 같은 경계를 유지해온 성은 통일국가의 가장 중요한 면모로 존재했다. 중국의 성 하나가 다른 큰 나라 또는 중간 크기의 나라와 규모 및 인구가 비슷하며, 성은 국가 다음가는 행정단위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총면적 9,572,900㎢, 인구 1,331,433,000(2009 추계).인구의 94% 이상이 한족이다. 중국정부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를 막기 위해 한족에 한해 1가구 1자녀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이런 정책의 역효과로 농촌지역에서는 호적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아이들은 흑해자(헤이하이즈) 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에도 불구 하고 2025년에는 중국 인구가 15억이 넘를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94%이상을 한족이 차지하고 있으며, 장족 회족 묘족 만주족 등 55개 의 소수민족이 나머지 6% 정도를 차지한다. 그중 우리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조선족은 약 200만명이며 아들 대부분은 연변 조선족자치구에 살고 있다.

종교는 토속 신앙과 불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도교를 주로 믿지만, 법적으로 종교 활동이 허용되지 않는다. 화폐는 인민폐를 사용하며 단위는 위안(Y)이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몇 가지 지형적 특징을 갖는다. 남서부지역에는 티베트 고원이 포함된다. 고원의 평균 해발은 4,000m 이상이고, 중심지역의 평균 고도는 5,000m가 넘는다. 이곳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며, 아시아의 주요 강들의 수원(水源)을 공급한다. 북부의 쿤룬 산맥[崑崙山脈]과 남부의 히말라야 산맥으로 이루어진 국경은 고원지대보다 높다. 중국의 북서부지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북동부의 둥베이[東北] 평원까지 뻗어 있다. 톈산 산맥[天山山脈]은 중국의 주요한 2개의 내륙 분지인 타림 분지[塔里木盆地]와 준가얼 분지[準?爾盆地]를 양분한다. 타림 분지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으며, 몽골 고원에는 고비 사막의 최남단 지역이 포함된다. 스촨 분지[四川盆地]가 포함되는 동부지역의 저지대에는 양쯔 강[揚子江]이 흐른다. 양쯔 강은 동부지역을 남북으로 가른다. 타림 강[塔里木河]은 중국의 북서 지역을 흐르는 주요한 강이다. 중국 내륙을 흐르는 또다른 강으로는 황허 강[黃河], 시장 강[西江], 쑹화 강[松花江], 주장 강 [珠江]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에서 메콩 강으로 불리는 란창 강[瀾滄江] 등이 있다. 중국의 정치형태는 단원제, 일당제, 인민공화국이다. 국가원수는 주석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1927년 저우커우덴의 동굴에서 베이징 원인[北京原人 Homo erectus pekinensis]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중국에 인간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시기가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감을 의미한다. 중국 문명은 황허 강 유역에서부터 퍼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분명한 역사적 자료가 있는 최초의 왕조는 BC 17세기 경의 은(殷:또는 商) 왕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문자체계와 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은 왕조의 지배를 받던 주왕조는 11세기 중반에 은 왕조의 지배층을 무너뜨리고 BC 3세기까지 통치했다. 도교와 유교가 이 시대에 확립되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불리는 갈등의 시대가 BC 5세기부터 BC 221년까지 지속되었다. 그후 진(秦) 왕조가 세워졌다. 차이나(China)라는 영어 이름은 진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후 진 왕조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며 중국을 통일했다.

206년에 세워진 한(漢)은 AD 220년까지 중국을 지배했다. 다시 혼란의 시기가 이어진 후에 581년에 수(隋)가 건국되었고 중국의 재통일을 이루었다. 618년에 수에 이어 당(唐)이 들어섰다. 960년에 송(宋)이 설립된 후, 북쪽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남쪽으로 옮겨야 했다. 1279년 송은 붕괴되었고 몽골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방문했다. 몽골 통치에 이어 세워진 명(明)은 1368년에서 1644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명나라는 반외세 감정이 강하여 세계 다른 나라들과 담을 쌓는 쇄국정책을 폈다. 1644년 만주족이 명나라의 중국을 침략했고, 청(淸)을 세웠다. 청은 서양과 일본으로부터 통상압력과 잦은 침략을 받았다. 이것은 19세기에 아편전쟁, 태평천국운동, 청일전쟁으로 이어졌고, 이 모든 사건들은 청을 기울게 했다. 청은 1911년에 무너졌고, 1912년에 쑨원[孫文]에 의해 공화국 정부가 선포되었다. 하지만 지역 군벌들의 권력 투쟁이 공화국을 약화시켰다. 장제스[蔣介石]는 1920년대에 어느 정도의 전국 통일을 이루었다. 그후 장제스는 공산당 세력과 갈라섰고, 이들 공산당 세력은 자신들의 정부와 군대를 조직했다. 1937년에 일본은 중국의 북부지역을 침략했고,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만주국). 중국공산당은 대장정(1934~35)을 통해 농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대장정 과정에서 마오쩌둥이 그들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이 항복하자,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격렬한 내전이 시작되었다. 1949년 이 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달아났고,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망 후 무정부 상태, 테러, 경제적 마비 상태가 나타났다. 곧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여 온건 노선을 추진했다. 덩샤오핑은 경제개혁을 단행했고 서방국가와 중국의 외교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경제는 중앙계획경제를 탈피하기 시작했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분야의 국영기업들이 국가 소유와 민간 소유를 혼합한 형태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급속도의 경제 성장과 중국 사회 변화에 진전을 이루었다. 1989년에 발생한 톈안먼 사건[天安門事件]은 1980년대 이후 차츰 안정되는 정치적 변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고, 1999년에는 마카오가 반환되었다.

 

[운남성(云南省)]

雲貴高原에 위치한 중요한 변방성으로서 동쪽으로는 廣西壯族自治區와 貴州省과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四川省, 서북쪽으로는 西藏自 治區, 서쪽 및 남쪽은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서남내륙지역의 省이다. 외국과의 국경선이 3,207Km에 달하고 8개 지역 26개 현시가 이들 국가와 인접해 있어 동남아내륙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주요교통요지이며 남부는 따뜻한 열대지방이지만 북으로는 항상 만년설이 보이는 산악지역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중국인들은 물론 전 세계 배낭족들에게는 가장 각광받는 지역 중 하나인데 촉나라 땅으로 우리와는 생소하면서도 사실 익숙한 곳이며 삼국지에도 등장하고 수많은 강호의 무림고수들을 배출한 곳이다.

394천㎢(중국총면적의 4.1%로 면적크기로는 8위)이며 동서로의 길이864.9㎞, 남북으로 990㎞의 크기다.

높은 산 깊은 계곡 등의 복잡한 지형으로 각양각색의 다양기후를 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연중기후차이는 심하지 않으나 일교차가 비교적 큰 편이다. 건조기후와 습윤기후의 차이도 많아 연간강우량은 적지 않으나 계절별, 지역별로 강우량의 차이가 많은 고원계절풍의 기후로 우기는 5월-10월 기간 중이며 동일지역에 한 대, 온대, 아열대, 열대기후를 보일정도로 기후의 수직변화가 심하여'一山有四季, 十里不同天'(한 개의 산에 계절이 있고 십리를 가면 기후가 다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연간강수량은 서남지역은2,000mm이상이나 중, 북부지역은 500-600mm정도로 다소 적은 편이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雲南省 유일의 15개 소수민족을 포함하여 26개의 소수민족(인구5,000명이상 기준)이 모여 사는 다민족 省이다. 전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데 26개의 민족들은 각기 다른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문화형태 역시 모두 다른 부분을 지니고 있어 이러한 사실들이 오늘날 곤명의 문화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었으며,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운남통지에 의하면 ‘한나라 때 구름이 흐르는 남쪽에 사신을 보내다.’라는 뜻이 운남이라 칭하는 계기라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또 다른 주장은 사해(辭海)에 ‘예로부터 구름이 머무는 산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결국 운남(雲南)이라는 지명은 구름과 남쪽이라는 지형적 원인에 의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이 채색구름이 남쪽에 보인다는 채운남현(彩云南现:차이윈난씨엔)이라는 말로 신비한 이곳을 가르쳤다.

170만 년 전 원모원인(元谋猿人:위엔머우위엔런)의 수렵활동을 시작으로 그 후 서도인(西涛人:씨타오런)/여강인(丽江人:리쨩런)/곤명인(昆明人:쿤밍런)등이 계속하여 운남성(云南省:윈난성)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역사의 화폭을 전개했다.

종교로는 漢語系佛敎. 小乘(南傳上座部)佛敎 및 藏傳(喇麻)佛敎 3대 유파로 구분되고 있는 불교, 7세기경에 전파되어 주로 漢族들이 믿고 있는 도교, 13세기말 元朝의 운남 지방정권수립과 동시에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回族들이 믿고 있는 이슬람교, 18세기를 전후하여 운남 동북지역에 전파된 천주교, 8세기말에 전파된 기독교가 있다.

철이 많이 섞여 있는 빨간색의 적토질이며, 담배나 차와 같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조건이다. 운남의 보이차와 구감차가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특히 구감차는 처음에 쓴맛을 내다가 뒤에 단맛을 내는 특이함으로 유명하다.

인류발원지 중의 하나로서 원모현이라는 곳에서는 약 170만 년 전 원시인석화가 발견되었으며 성도는 곤명시.

 

◈ 운남성(雲南省)

중국 서남쪽 변방에 위치하며 베트남,미안마,라오스 삼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운남성은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 오색찬란한 화려한 성으로 각인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직접 이곳을 방문하게되면 오히려 이곳의 순수하면서 소박한 매력에 더욱 이끌리게 된다. 운남성의 서북쪽은 드높은 기세의 험준한 협곡이 펼쳐져 있어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전심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우뚯 솟은 모습이 장관을 이루는 옥룡설산,합파설산,매리설산 등은 그 기묘하면서 험준한 봉우리로 국내외 빙산 등반가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또한, 서남쪽에 있는 서쌍판납의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한 기세의 풍경은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의 모습을 빗댄듯 하며, 동남쪽의 산간 평지에는 합니족이 대대로 경작해온 계단식 밭이 층층이 겹쳐져 있데, 매년 9월이면 노란색의 유채꽃이 산과 밭을 가득채워 마치 그 모습이 땅과 하늘을 황금색으로 가득 채운듯 하다.이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땅에는 백족, 합니족, 태족, 나시족 등 25개 소수민족들이 운남성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납시족의 동파문화, 대리의 백족문화, 태족의 패엽문화 등 그들의 다양한 신화, 가무, 그림, 음악은 운남의 독특한 민속문화를 만들어냈다. 또, 운남성은 인류 발원지 중의 하나로서 원모현이라는 곳에서는 약 170만년전 원시인 석화도 발견되었다. 성도는 곤명시로서 '춘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하여 언제나 꽃이 만발하고 산이 푸르며, 이런 자연환경에 어울려 수많은 명승고적이 자리하고 있는 중국 최고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 물의 축제-

경홍 / 서쌍판납 징홍(景洪)은 시쐉빤나(西雙版納)로 불리우는 지역의 중심도시이다. 윈난성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라오스와, 서남쪽으로는 미얀마가 접해있다. 윈난성 북부의 험준한 형과는 달리, 이곳은 태국과 같은 남국의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란창강이 유유히 흐르면서 만든 분지에 울창한 열대 우림의 수목들이 자라고 있다. 해발이 가장 낮은 지역이 447m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우림형이어서, 우기인 5-10월 중에는 1100~1900mm의 호우가 내린다. 연평균 일조시간은 1800-2200시간이라서, "여름이 길고 겨울이 없으며, 비가 오면 가을이 되는" 날씨를 나타낸다. 시쐉

빤나는 북회귀선에 걸쳐 있어서, "왕관에 박혀있는 녹보석과 같은 식물 왕국"이라고 불리운다. 4000여종의 다양한 식물군으로 인해서 독특한 자연경관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는 따이족, 지눠족, 부랑족, 하니등이 살고 있으며 징홍시를 포함하여 1개시, 2개현, 40개진이 있다. 이들의 고유명절인 포슈이지에 (潑水節)에 실컷 물벼락을 맞아보는 것도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곤명시]

곤명은 운남성의 성도로써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며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해발1,891m높이의 운귀(云貴)고원중부에 위치하였으며 베트남과 국경을 맞닿고 있다. 사계절기후변화가 크지 않고 봄처럼 따뜻하여 언제나 꽃이 만발하거나 산이 푸르러 꽃의 도시, 春城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불린다. 사시사철 온난한 기후 때문에 봄의 도시라고도 불리며 이런 자연환경에 어울려 수많은 명승고적이 자리하고 있는 중국최고의 여행지이면서 겨울철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여름에는 기온이 20도를 넘지 않아 혹서가 없고, 겨울에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혹한이 없어 사람이 살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다. 한, 회, 백, 묘, 합니족 등 20여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으며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유서 깊은 사원과 건축물들이 있으며 중국에서 6번째로 큰 330제곱km의 곤명호를 지니고 있다.

인근남쪽의 석림과 서북쪽의 대리, 서상판납, 이강과 같은 곳은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관광지로 가는 중심지이며 북경과 서안에 이어 3대 관광지로 꼽히는 도시.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인 동시에 2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와 다채로운 풍경의 미로 신비로운 멋을 간직한 여행의 도시이다.

곤명은 면적이 21,111㎢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날씨가 온화하다. 연평균 일조시간이 2400여시간으로 일년 내내 꽃이 피어있고 초목이 사계절 푸르다. 곤명의 날씨는 사계절이 봄과 같은 특색으로 봄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다. 동백꽃(茶花),백목련(玉蘭),진달래(杜鵑),보춘(報春),백합(百合),난초(蘭花),용담(龍膽), 녹계고(綠絨蒿) 등은 운남 8대명화이다.현재 곤명의 화초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동남아 지역의 주요한 화초 수출 생산지 중의 하나이다. 곤명은 관광, 역사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 역 사

곤명은 약 2,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279년 초(楚)나라의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배한 뒤 한(한)나라를 거쳐 원대(원대)에 곤명현이 설치 되었다. 이 곤명(昆明)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살고 있던 부족의 이름이다.곤명은 한때 프랑스의 조차지로서 가톨릭 대성당,수녀원,프랑스인들이 출입하는 클럽등이 있었다.

하노이에서 시작되는 협괘열차는 1895년~1904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지끔까지도 운행이 되고 있다. 프랑스가 원한 것은 이 지방의 주석,텅스텐,아편 등이었다. 이 지방은 또 목재, 고무 쌀 등이 풍부하다. 곤명은 태평양 전쟁에는 토호들의 수중에 있었으며 일본의 동남아 침략의 교두보로도 이용 되었다.

 

◐ "곤명"의 유래

곤명은 고대에 이 지역에 있던 부족의 명칭으로 이족(彝族)의 고대 언어의 음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1274년 원대에 곤명현이 생기면서 운남성의 성도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1919년 중국 지역을 공식적으로 분할 정리하면서 운남시 정부가 생기고 1922년 정식으로 곤명시라 칭해졌다.

 

◐ 기 후

곤명(昆明)은 해발 1,895m의 고도와 아열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사시사철 봄처럼 따뜻하지만 지난91년에는 눈이 조금오기도 하였다. 7월 중 최고 온도는 29도이며 1월 최저 온도는 영하 1도이다. 대개는 5월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며 이 기간의 강수량은 약 1,500m 정도이다. 동백꽃이 만발한 2월이 곤명을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 곤명의 기온

도시명 기온(℃)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昆  明
(곤명)
최고평균 23.4 25.9 29.6 32.3 33.4 32.2 31.7 31.0 29.9 27.5 25.0 22.7
최저평균 7.9 10.8 14.6 18.4 21.3 22.1 22.3 21.4 20.1 16.9 11.7 7.9
평     균 8.4 10.1 13.3 16.6 19.1 19.7 19.9 19.5 17.8 15.1 11.6 8.6
강우량mm 10.8 13.8 16.7 20.3 89.7 174.6 205.4 203.4 125.9 79.4 39.5 12.5

 

◈ 운남 따이족의 전통축제 살수제

매년 4월 보름에 운남성의 서쌍판납 따이족자치주의 경흥시에서 열리는 따이족의 전통축제로 재미있는 전설을 갖고 있다.옛날 이곳에 한 폭군이 있었는데, 동네 7명의 처녀를 강제로 아내를 삼았다. 하루는 이 7명의 아내가 담합해 그 폭군을 죽였는데, 이 폭군의 머리가 굴러가는 곳마다 불이 났다. 이 불은 여자들이 끌어 안아야 끌수가 있어서 7명이 돌아가며 1년씩 그 머리를 안고 있었다. 이를 본 동네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물을 퍼부어 핏자국을 씻어주고 마침내 그 머리가 타고 재로 남았다고 한다.축제 중에는 용주경기, 자작 로케트 쏘아올리기, 상각고춤, 공작새춤, 공원놀이, 쇼핑, 살수축복 등의 행사가 벌어지고 또 이날 미혼 남녀들이 '염낭 선물하기'를 통해 사랑을 약속하기도 한다.

 

◐ 음 식

◐ 쌀국수 궈치아오미시엔(過橋米線)

운남의 기후가 사계절 온난해서 그만큼 음식의 재료도 풍부하고 다양하며 또한 신선하다. 운남의 음식은 비교적 시고 매운데, 그 맛이 깊고 풍부하다. 유명한 요리로는 쌀국수인 미시엔(米線)이 있는데, 이것은 쌀을 발효시켜 희고 부드러우며 시원한 감촉을 주는 면발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미시엔을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궈치아오미시엔으로 운남 음식을 대표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전통음식이다. 또 이 궈치아오미시엔은 세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나오는데, 면발과 닭기름국물, 음식재료가 따로 나와서 각각 그 것들을 기호에 맞게 첨가하여 먹을 수 있다. 먹는 방법은 날로 나오는 내용물을 먼저 닭기름에 넣고 익힌 다음에 이미 익힌 면발과 다른 재료를 넣고 먹으면 된다. 가격은 내용물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보통 5원에서 100원 사이다

 

.◐ 운남의 특산, 보이차(普耳茶, 푸얼차)

각 지방마다 특유의 차가 있는데, 운남을 대표하는 차는 바로 이 보이차다.이 밖에도 세계적인 차 생산지로서 많은 종류의 차가 있는데, 보이지방에서 생산되는 이 보이차는 특수한 제조법과 약효때문에 가장 유명하다. 특유의 향과 맛 뿐만 아니라 알코올제거와 가래, 다이어트에 특히 효과가 있어서 현재 세계 5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 백족의 전통차, 삼도차(三道茶, 산다오차)

삼도차(三道茶)는 대리에 살고 있는 백족(白族)의 전통 차로 대리고성의 남문쪽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삼도차라는 이름은 녹차나 홍차처럼 맛을 내는 차의 이름이 아니라 차를 마시는 방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백족이 손님을 접대하면서 마셨던 것인데, 지금도 백족의 혼례절차에 이 습관이 남아있으며 대리를 찾는 사람들이 꼭 찾는 유명한 지방특색이 되었다. 이 차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가지 방법에 따라 세가지의 맛을 내며, 또한 이 세가지 맛은 사람의 인생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1. 첫번째 차는 쓴맛을 낸다. 운남의 녹차를 사용하는데, 인생으로 비유했을 때 소년기의 쓰라림과 고통을 뜻한다.

2. 두번째 차는 달콤한 맛을 낸다. 앞의 녹차에 치즈, 호두, 설탕 등을 넣는데, 중년기의 행복함과 인생의 즐거움을 나타낸다.

3. 세번째 차는 달콤하면서도 쓴 맛을 낸다. 녹차에 벌꿀, 들깨, 생강, 흑설탕 등을 넣는다. 추억의 차라고도 불리며 인생 말기에 지난 날의 즐거움과 고통을 회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삼도차는 그 맛 뿐만 아니라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대리를 찾는 관광객에게는 물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식욕을 증진시키는 등의 건강에도 좋아 이곳 사람들도 많이 찾는 차이다.

 

◐  관광 명소

◈ 서산(西山)

서산(西山)은 곤명시 서쪽으로 15km떨어진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연이어진 산봉우리가 무려 40여km 뻗어있고 해발이 1900m ~ 2350m 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 머물러 쉬고 있는 봉황새를 누군가가 닭으로 알고 벽계(碧鷄-청록색의 닭.)라고 한 뒤로 벽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의 형태가 엎드려 있는 부처와 같다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 부르기도 한다.서산은 삼림이 무성하고 화초가 우거진 조용하고 수려한 경치로 옛적부터 운남의 제일 가경(佳境)이라 불렸다. 멀리서 바라보면 서산은 아릿다운 미녀가 늪 양안에 엎드려 있는 듯 하다. 그녀의 머리, 가슴, 배, 다리는 생생한 듯 눈에 안겨오고 비단결같은 머리칼은 물보라속에 날리는 듯 어여쁘기 그지없어 "잠자는 미인"이라고도 불린다.공원 내에는 1000년 전 송(宋)나라 때에 세워진 화팅쓰(華亭寺)와 타이화쓰(太華寺), 링쉬꺼(凌虛閣), 롱먼(龍門)등 둘러볼 곳이 많다.

 

◐ 용문(龍門)

서산(西山)에서 가장 장관이라 할수 있는 용문은 절벽에 영웅이 마치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공중으로 비상하는듯한 기세를 느낄수 있는 달천각(達天閣 하늘에 닿는 누각)인 용문 풍경지구가 있다. 롱먼은 청대인 1840년부터 1853년까지 1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70여명의 석공들이 밧줄에 매달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돌을 파내어 갔다. 그 피와 땀으로 석실, 신상, 돌다리 등이 만들어졌다.용문에 서서 정상을 쳐다보면, 오백리정도 떨어진 전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삼청각을 지나 산을 오르다보면 별유동천(別有洞天)이라 적혀진 석문(石門)을 볼수 있는데, 이것이 나한산 절벽상에 위치한 용문풍경구이다. 돌로 만들어진 터널을 지나다보면 첫번째 석실(石室)이 나오는데, 절벽위로 새겨진 그림이나 글따위등의 조각이 실로 아름답다. 그 앞으로 십여m 가다보면 보타(普陀)관광 지구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절벽사이로 터널이 있으며, 마치 굽이져 돌아가듯 만들어져 있고, 높이는 비교적 높은편이며 절벽위로 창문 같은 것이 있고, 아래로는 깊은 연못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매우 아름답고 놀라와 관광객들의 주목을 끌만하다.다시 앞으로 30여m 정도 가다보면 두번째 석실(石室)인 자운동(慈雲洞)이 나오는데, 그 뒤로 방과 같은 홀이 있고, 이곳 벽위로 송자관음(送子觀音)이 조각되어 있으며, 앞부분의 홀에는 마치 절벽을 그 위로 걸쳐놓은듯 하며, 앞으로 굽이진 부분에 전지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앞으로 30여미터정도 가다보면, 용문이 그 앞에 높이 세워져있으며, 골목을 지나면 달천각(達天閣)이 나온다. 이 곳에는 문방(門坊), 평대(平臺), 석도(石道), 석실(石室), 신상(神像), 향로(香爐), 촉안(燭案), 공품(供品)등이 있고 모두 암석위로 조각이 되어 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하어촌(下漁村)의 석수(조각가)인 오래청(吳來淸)이 청(淸) 고종 40 ~ 60년때, 공력(共歷) 14년, 삼청각에서 자운동을 지나는 길을 완성했다.그후 도사 양여란(楊汝蘭)과 양제태(楊際泰)가 계속 수리하고, 그뒤로 72년이 지난 지금은 그 규모가 거대하고 조각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중의 하나로, 지금도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 '고원의 진주'라 불리는 곤명호(昆明湖, 쿤밍후)

곤명의 서남쪽, 남북으로 40km, 동서로는 8km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호수이다. 곤명호(昆明湖)라는 이름보다는 운남의 옛이름을 따온 전지(澱池)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면적 340㎢의 중국에서 여섯번째로 큰 담수호다. 또한 해발 1,885m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원의 진주'라고도 불린다.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8m로 그다지 깊지 않으며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즐길 수도 있고, 담수호답게 여러 양식장들이 만들어져 있다.또한 서산산림공원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주변 경치도 좋아 볼만한 명소들이 10여군데 있다.

 

◈ 도심에서 갈매기들을 볼수 있는 취호공원(翠湖公園)

쿤밍시내의 서북쪽에 있는 공원으로 14세기 중엽 원나라 때부터 개방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8개의 물비취(水翠;호수의 갯수), 4계절의 대나무비취(竹翠), 봄여름의 버드나무비취(柳翠)라 하여 '취후(翠湖)'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공원의 산책로는 십자형으로 되어 호수를 크게 4등분으로 나눈다. 남북으로 난 길은 '위엔티(院堤)'라고 하는데, 윈난 총독인 위엔웬팡(院元傍)이 수축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이 호수는 겨울에 장관을 이룬다. '붉은입 갈매기'라는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기 때문이다. 한덩어리에 1위안씩 파는 빵을 쪼개어 던져주면, 물에서, 공중에서 받아먹는다.여름에는 취후 가운데에 있는 '후신팅(湖心亭)'에서 많은 잉어떼를 만날 수 있다. 밥풀 튀긴 것을 던져주면서 모여드는 물고기와 놀기 좋다.

 

◈ 원통사(圓通寺

)위엔통쓰는 쿤밍시의 북쪽 원통가(圓通街)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원통산의 남쪽 자락에 위치한다.쿤밍에서 가장 큰 사찰로써 당나라때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부타뤄쓰(補陀羅寺)라고 했으나 원(元)나라 때인 1301 - 1319년 중건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청(淸)나라 초기에 팔각정을 세웠으며, 각종 건물들이 보수되었다. 지금은 성(省)불교협회가 자리하고 있다.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 대칭으로 건물이 지어져 있는데, 천왕전(天王殿), 원통보전(圓通寶殿), 팔각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팔각정은 원통보전 앞 연못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로 내부에 천수관음상과 옥불상이 있다. 원통보전 뒤편에는 태국의 건축양식인 동불전(銅佛殿)이 있는데 동불전안에 안치된 동불상은 태국의 국왕이 선물한 것이다.

 

◈ 대관루(大觀樓)

공원쿤밍시의 서남쪽에 '띠엔츠'와 접해있다. 타이화(太華)산 봉우리와 마주보고 있다고 하여 '진화푸(近華浦)'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따관로우는 청나라 강희21년(1682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강희29년에 이르러 통월정, 등벽당, 그리고 가장 장관인 '따관로우(大觀樓)'가 만들어졌다.1857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66년에 윈난성주 왕지웬에 의하여 재건되었다.공원을 둘러보는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출입구의 반대편에 있는 호수를 배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 금전(金殿)

금전(金殿)은 쿤밍에서 북동쪽으로 7km 떨어진 밍펭산(鳴鳳山) 꼭대기에 있으며 청나라시대때 10년간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1671년에 완공되었다.높이 6.7 m와 너비 7.8m의 사원은 250t에 이르는 동(銅)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찐디엔(金殿)으로 불리게 되었다.원내에 들어가면 태화궁(太和宫)의 대문 위에 "鹦鹉春深”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져 있는데 이곳의 일년 사계절 봄과같이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의미한다. 사원의 대문은 링링문(棂灵门)이라 칭하며 문의 양쪽 기둥에는 이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찬양하는 글과 도가 사상을 새겨 놓은 대련이 있다. 1601년 명대에 지어진 이 도교사원은 무당산에 있는 도교사원의 구리로 만든 건축물을 모방하여 지어, 기와와 기둥, 대들보, 문, 동상 등 모두가 약 200통 가량의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국가중점 보호문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국의 사대 동전(铜殿/구리로 만든 전당)중 하나로, 보존이 가장 잘된 동전(铜殿)이기도 하다.o 개방시간 : 7:00 - 19:00

 

◈ 축죽사(筑竹寺)

쿤밍시에서 서쪽으로 18km 거리에 있다.'헤이린(黑林)'으로 가다가 '옥안산(玉安山)'의 허리를 끼고 돌아 3km 정도 가면 '치옹쥬쓰'에 다다른다. 북송연간(960~1127년), 운남성이 아직 대리(大理)라는 독립국이었을 무렵, 고광(高光). 고지(高智)라는 두형제가 사냥을 하던중 한 마리의 코불소를 따라갔다가 옥안산(玉安山)에서 그행방을 놓치고 만다.문득 보니 구름속에 위엄 있는 중이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중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손에 있던 축죽(筑竹) 지팡이 뿐이었다. 형제는 영감을 받아 이곳에 절을 세우고 축죽사(筑竹寺)라고 이름을 지었다.이 사찰은 원나라 때인 1280년에 처음 설립되었는데 불교 선종이 운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가 1885-1891년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청나라 광서(光緖) 16년(1890년)에 사촌성 출신 조각가인 여광수(黎廣修)가 5명의 제자와 함께 제작한 오백나한상이다.형태가 각양각색인데, 희노애락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각 조각들은 인체묘사 뿐 아니라, 의복, 문양등도 독특하다.중국의 적지않은 사찰에 오백나한이 있지만 이곳의 조각은 그 가운데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 운남민속촌(雲南民俗村)

쿤밍시에서 남서쪽으로 8km 거리에 있다. 윈난의 26개 소수민족 중 약12개 민족의 촌락을 실제 형태로 모아놓았다. 한 자리에서 각 민족의 주거형태와 풍속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곳이 따이족(泰族) 촌이다. 일반적으로 거기서 시작하여 '백탑(白塔)'을 지나는 코스를 택한다. 민족촌을 시계방향으로 돌면 좋으며, 시간에 맞추어서 장소에 따라 소수민족의 민속 공연이 펼쳐지므로 알맞게 걸음 속도를 조절한다.태족촌은 풍치가 제일 짙고 가장 아름다운 촌 가운데의 하나이다. 열대와 아열대 식물들로 빼곡하게 가꿔진 가운데 정교하고 우아한 태족의 대나무집들로 점점이 단장되어 있다. 백족(白族)촌은 가장 호화롭다. 백족예술관은 중국에서 가장 크고 진품이 가장 많은 나비전시관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대리석 진품관내에는 기괴한 돌들이 매우 많아 눈길을 끈다.

 

◈ 쿤밍 세계원예박람원

1999년 '인간과 자연-21세기를 향한'이라는 주제로 '세계 꽃 박람회'가 열렸던 장소이다.쿤밍시내에서 북동쪽으로 8키로 정도 떨어져 있으며 금전풍경명승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산과 물, 수풀의 적절한 배합으로 훌륭한 자연환경과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세계원예박람원은 실내 전람관, 실외 전람관, 공공시설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실내 전람관은 중국관, 사람과 자연관, 대온실, 과학기술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국의 유구한 원예전통과 풍부한 원예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실외 전람관에는 수십개에 이르는 세계각국과 국제조직 및 중국각지에서 건설한 주제 전람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구, 형형색색의 꽃들, 열대에서 냉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와 지형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이 뿌리내려 있다. 모두 보려면 하루를 꼬박 걸어다녀야 한다.

 

◈ 운남성박물관(云南省博物館)

곤명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운남성 박물관은 1958년 지상 7층건물로 세워졌다. 총 40미터 높이의 3층 보탑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1층부터 3층까지가 전시홀로서 4200평방미터의 공간에 운남의 다채로운 민족문화와 운남 청동문화전,남조대리 불교문화전 등을 열면서 여행객들에게 아름다운 곤명을 알리고 있다.1층 전시실에는 초웅만가패(楚雄万家坝) 1호 묘의 발굴현장을 복원해 놓았으며 방대한 양의 청동기 복제품들을 제작해 전시해 놓았다. 2층 왼쪽의 전시실에는 남조국(南诏国)과 대리국(大理国)시기의 출토된 불교 예술품을 위주로 원명청 3대까지의 불교문물을 전시해 놓았고, 3층 전시실에는 <운남고생물공룡화석전>에서 1988년 운남성 원모현에서 발굴된 세계 유일의 라마원인 두골화석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현재 전시관에는 13만여점의 각종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민족 지방특색이 가득 담겨 있는 고대 청동기만 만점 이상이다. 그 외에도 지방 특색을 가진 고대 서화(书画)등이 있으며 전시품의 90% 이상이 운남성 박물관 소장품이다

 

◈ 안령온천(安寧溫泉)

여행시 두배이상의 관람과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자 한다면 가장 훌륭한 선택은 당연히 곤명의 서쪽으로 4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녕온천이라 할수 있다. 이 온천은 1400년이전에 이미 동한(東漢)에서 발생했다. 안녕온천은 산천이 수려하고, 환경이 그윽하고 조용하며, 광천수가 흘러나오고, 그 깊이를 뼛속 깊이 느낄수 있다.광천수의 색은 짙푸르기 때문에 마치 옥의 결정체를 보는듯 하다하여 벽옥천(碧玉泉)이라 불리워지기도 한다.안녕온천은 안녕현 접경지점의 안녕산(安寧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탕랑(사마귀)호수와 조계(曹溪)가 자살했던 격강(隔江)을 바라볼수 있다온천의 남쪽으로 10m 이상의 긴 환운암이 길의 양편으로 늘어서있고, 수목이 서로 교차하며, 동굴이 겹겹으로 위치해 있으며, 역대 운사들의 시가 세겨진 암석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명대 양승암(楊升庵)이 말하길 칠미(七美)라 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맑은 물은 거울과 같고, 돌과 연못은 하늘을 이루며, 언제나 이끼가 끼지않고, 더러운것이 근접하지 못하며, 냉온의 정도가 적합하며, 차(茶)를 타기 적합하고, 요리를 하기에도 적합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칠미이다.온천의 온도는 대략 42℃ ~ 45℃정도로 유황성분도 없고, 하루 유출량이 약 6000t정도이다. 함유성분으로는 탄산, 마그네슘, 칼륨, 라돈등이 주를 이루며, 씻고 마시기에 모두 적합하다. 또한 피부병이나 류마티스 관절염과 여러가지 현상의 장과 위병에 효과적이며, 명대초 문인이였던 양진이 말하길 천하제일탕(天下第一湯)이라 하였다. 현재는 유명한 관광 유람요양지의 하나이며, 유람객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하거나, 기타 관광을 할수 있다. 안정온천을 관광하기 위해서는, 곤명시 서역에서 전용버스를 타고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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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2011년 4월17일 일요일 오후4시 청주 출발

오후 들어 시간이 금시 지난다. 3시반을 넘어서며 서서히 움직인다. 걸어서 공단육거리부근의 모임장소로 가니 아직 몇 팀이 오지는 않았지만 오후 4시정각 처남내를 끝으로 모두가 정확히 시간을 지켜 도착 후 인천공항으로 출발을 한다.

 

화성휴게소 17:22 ~18:00

청주에서 출발하여 1시간 20여분을 달려 화성휴게소에 멈춘다. 공항에 닿기 전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저녁은 우리를 인솔할 하나투어 사장님이 내셨다. 에구 남는것이 있으려나 ㅎㅎ

 

인천공항 도착 7:05 ~19:30

화성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인천 대교를 건너 인천공항에 도착을 한다. 도착 후 사장님이 수속을 마친 후 우리는 각자의 짐을 부친 후 출국수속을 거친 후 보안검색을 거처 출국장 안으로 들어 간다. 예전에는 탑승게이트가 적어 항공기까지 차로 이동을 하였으나 31번 탑승게이트 부터는 열차로 이동을 하여 새로 신축한 탑승게이트로 이동을 한다. 신축게이트로 이동을 하여 30여분 이상을 기다린 후 우리는 드디어 도착한 곤명행 중국 동방항공의 손님이 내린 후 기내 정리를 마치고 탑승하여 19시30분 인천공항 하늘로 날아 오른다.

 

2일차

곤명공항 4월 18일 01:20분 도착 (서울시각 보다 1시간 빠름)

인천공항을 벗어난 동방항공은 얼마 후 기내식을 분배를 한다. 예전에는 장거리 여행때는 위스키도 주고 햇건만 이제는 취객의 행패가 있었나 술은 일절 금지다. 별로 먹을 것 없는 기내식을 삼킨후 하나둘 서서히 꿈나라로 빠져 든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장장 4시간 반 대략 3005km의 거리를 날아서 곤명의 하늘에 닿는다. 침착한 기장의 비행술로 큰 흔들림 없이 착지를 한 항공기는 입국 게이트로 이동을 하여 300여명이 내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 된다. 짐을 찾고 입국을 수속을 마친 후 밖에서 눈이 빠져라 기다린 여성 가이드 명월이의 동생 해월님과 조우한후 우리는 가화호텔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진다.

 

7:00기상

해월 가이드는 아침 기상시간을 7시로 하고 8시반 출발 할것을 주지 시키고는 각자의 방을 한번 시찰 한 후 행하니 집으로 돌아 갔다. 아침 7시 기상하라는 해월님의 엄명을 어기고 우리 대부분은 아침 6시전 일어나 세면하고 화장하고 분주히 움직여 아침공기를 가르며 6시 20분경 밖으로 나와 가화 호텔의 두 개의 높다란 기둥을 배경으로 사진도 담고 시내구경을 한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세면을 마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하여 호텔라운지로 모인다.

 

8시30분 출발

가화호텔에 짐은 그대로 놓고 8시반 우리는 구향동굴로 향한다. 곤명역 부근을 지나며 복잡한 교차로 아래를 통과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시외로 빠지니 곤명의 유명한 곤명호 일명 춘성호 옆을 지난다. 춘성호를 빙 돌아 고개로 오르면 다시 한번 춘성호의 모습을 볼수 있고 이어서 고개를 넘어 서며 한동안 이동을 하면 넓직한 벌판과 계단식 전답에 무르익어 가는 보리와 채소 마늘 브루콜리등 많은 농작물이 눈에 들어 온다. 중국 참으로 넓고 넓은 곳이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벌판과 산들 많은 양의 농작물 이곳은 한해 3모작 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부지런만 하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위로 각가지 모양의 돌숲이 나타난다. 이곳이 석림지역이다. 길거리 곳곳에 널려 있는 석림은 석회석이 수억년에 걸쳐 녹아서 생긴 것으로 실지로 쓸모가 없는 돌이라는것이다. 그렇치 않았으면 이렇게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향동굴 주차장 10:30

호텔을 떠난지 2시간여 많에 툭툭튀어 나온 석림지대를 거쳐 구향동굴입구에 도착을 한다. 동굴로 들어 가는 입구에는 많은 상점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동굴입구에 도착을 하면 매표소를 거쳐 첫 번째로 배를 탄다.

 

◈ 구향동굴(九鄕洞窟=구샹통쿠)구향을 보지 않고서는 운남에 왔다고 할 수 없다고 하리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곤명에서 남동쪽 90km 지점에 있으며 석림과는 20km를 사이에 두고 있다. 구향명승지는 신전(神田), 자웅폭(雌雄瀑), 혼협(魂峽), 웅사대청(雄獅大廳), 신녀궁(神女宮), 이가채(彛家寨), 지하도림석(地下倒林石), 취협(翠峽), 여유(旅游)삭도 등 9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풍경구에 들어가면 먼저 배를 타고 취협을 유람한다. 취협은 길이가 600m 정도이고, 왕복하는데 약 20분이 소요된다. 취협을 구경하고 원래 길로 되돌아와 혼협으로 들어간다. 협곡의 높이는 100m에 이르고 폭이 제일 좁은 곳은 20m가 채 안된다.웅사대청은 세계에서 유일한 지하 자연대청으로서 면적이 15,000㎡에 이른다. 웅사대청(雄獅大廳)이란 이름은 동굴 앞의 종유석이 마치 숫사자 같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곳에서는 구향동굴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구향기석(奇石)등을 볼 수 있다.웅사대청을 나와 석판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종유석으로 가득한 신녀궁을 만난다. 웅사대청 남쪽에서 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높이가 30m나 되는 자웅폭포를 만난다. 폭포대 앞으로 나가면 바로 구향에서 제일 독특한 풍경인 신전이 있다. 모양이 마치 산악지형에서 층계를 이룬 밭과 같다. 제일 큰 것의 면적은 100㎡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동굴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300개의 계단이 있고, 가마꾼들이 있어서 흥정해 이용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출구 앞에는 리프트가 있어서 스키처럼 타고 출구로 나오면 되는데, 신미한 동굴과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재미있다.전체를 다 돌아보는데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o 입장료 : 50원(元)o 리프트 : 15원(元)

 

약 2시간20여분에 걸쳐 구향동굴을 구경하고 식당으로 향한다. 구향동굴은 장가계의 황룡동굴보다 상당히 아름다운 경관으로 빼어난 종유석들이 넘쳐 난다. 멋진 동굴 관광이 었다.

 

식당 12:57 ~13:50

동굴 관광을 마치고 10여분을 이동하여 현지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내고석림도착 14:25 ~~16:20

점심식사가 끝난 후 이동을 하여 내고 석림에 도착을 한다. 석림 명승지는 두군데로 예전에 보던 곳과 새로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내고석림으로 되어 있다 한다. 우리는 둘중 아직 관광객이 많치 않은 내고석림을 관광한다.

 

◈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꼽히는 석림(石林)곤명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석림(石林)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명승지로 대자연의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 남쪽으로 400㎢나 되는 구역에 흑색 삼림과도 같은 수백개의 커다란 돌들이 놓여 있다. 홀로 놓여있는 것도 있고 가로세로 엇갈려 하나로 이어진 것도 있다. 그중 유명한 이자정석림(석림-돌숲)은 면적이 약 12㎢이고 기괴한 돌들이 천태만상을 이루어 천하 제일 기관(기이한 풍경)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은 석림호수, 대석림, 소석림, 리자원 등 몇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광 여정은 5000여m, 석림풍경구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며 돌기둥, 석벽, 돌봉우리가 온갖 자태로 기이함과 아름다움을 뽐낸다. 어떤 돌기둥은 40-50m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 이곳의 돌들은 절묘한 그림과 같이 그 특이함으로 매일 방방곡곡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모은다. 공작새가 날개를 다듬는 듯, 서우가 달을 바라보는 듯, 唐僧石, 悟空石, 八戒石, 沙僧石, 觀音石, 將軍石, 士兵石, 시를 읊는 시인 등 무수한 석상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동물석상 외에 비 내린 뒤의 죽순, 버섯, 꽃 등 식물과 흡사한 돌들도 수없이 많다. 종석(鐘石)이라 불리는 돌은 두드릴 때마다 수십가지의 다른 소리를 낸다이 자연 석림은 거대한 자연 石景예술 보물고와 같이 유람객들이 마음껏 관상하고 상상하게 한다. 꼬불꼬불한 작은 길을 따라 걷노라면 미궁 선경에 들어선 듯한 황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내고 석림관광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 된다.

 

내고 석림 관광을 마치고 곤명으로 돌아 오는 길에 춘성호를 지나 탕치라는 마을에 있는 라텍스 매장에 들러 목사라고 하는 한국인으로부터 라텍스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몇분이 배게등 물건을 구입한 다음 곤명에 있는 보이차 매장에 들른다. 보이차 거의가 가짜라고 알고 왔지만 보이차 대신 각설차를 산다. 보이차는 자연산 녹차나무의 큰잎을 따서 오래도록 숙성을 시킨 것이고, 각설차는 재배녹차의 봄에 나는 새싹을 따서 만드는 차다. 우리나라의 녹차가 대부분 후자에 속한다.

 

보이차매장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가면 식당이다. 둥그런 원탁 2개에 차려진 음식은 전통 사천요리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입맛에 맛아야 하는데 내나라 음식도 아니고 꼭 맞기를 바라겠는가!! 그래도 어떤것은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식사가 끝나도 호텔로 돌아 가려는데 에고 이게 웬일인가 나가는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근 것이다. 우왕좌왕 한동안 문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니 미안하다고 하며 문을 열어 준다. 시원한 바같 공기가 오늘따라 더욱 좋다. 호텔로 돌아 가는 사이 잠시 길거리 포장마차 꼬치집에 들러 한잔씩 하잔다. 드디어 길거리 좌판에 있는 꼬치집에 다달아 잠시 눈을 돌려 이것 저것 보는 사이 저 괴상한것이 뭔가 물어 본 순간 모두가 입맛이 싹 가시는 모양이다. 꾸불텅꾸불텅 이리저리 굽은것이 돼지 작은창자 같다. 요놈이 무엇인고 하니 개뇌란다. 에고 그옆에 비슷한놈은 또 무었일꼬~~ 그넘을 물어 볼새도 없이 하나둘 등을 돌리며 꼬치집을 떠난다. 내도 걸음아 살려라 꼬치집을 빠져 나온다. 혹여 저거 먹고 가라 잡고 늘어지면 큰일 아닌가!!

이래서 꼬치 사건은 막을 내리고 호텔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 한다.

 

3일차

기상 4:00

이제 3일차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뱅기 타고 대리로 간단다. 아침 4시 기상하여 짐 챙기고 세면하고 해월 가이드가 배달한 먹을것 별로 없는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고나니 배가 부른것인지 아픈것인지 ~~ 아직 먼동이 트기전이라 밖에 날씨가 쌀쌀하다. 어두운 곤명의 새벽을 가르며 우리는 5:30분 호텔을 출발하여 20여분이 소요 되어 공항에 도착을 한다.

 

곤명공항 5:50 ~7:00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간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그리 크지 않은 뱅기를 타고 우리는 또 다시 하늘로 날아 오른다. 에고 날씨가 우째 이런가~ 올적에 인천에서 한노인이 이번 곤명 여행기간 내내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다고 한것이 마음에 걸린다.

 

대리공항 7:30 ~8:12

뱅기는 짙은 구름을 뚫고 높이 날라 양탄자 같이 쫘악 깔린 구름위를 난다. 이경치도 장관이지만 구름아래로는 비가 온다는 애기가 아닌가. 오늘 하루를 비쫄닥 맞구 댕겨야 겠구먼 속으로 궁시렁 궁시렁 댄다. 아마 이런 곳에서 떨어 진다면 저 흰 양탄자 위에 푹신하게 살포시 내려 안겠지 하는 생각이다. 15여분 이상을 왔을까 서서히 구름이 뒤로 뒤로 밀리며 앞으로 진행하는 방향으로는 날씨가 좋다. 뱅기 아래로 땅이 보이며 군데군데 마을들도 보인다. 지나며 커다란 분지가 있고 그안에 큰 마을이 있다. 다시 10여분을 더 가니 이제는 높은 산을 넘는다. 좌측으로 긴 산능선으로 풍력발전기가 수십개여개게 길게 늘어 섰다. 뱅기 아래로는 커다란 호수가 나타나며 호수의 가장자리로는 마을의 빙둘러 있다. 뱅기는 이호수 끝까지 진행한 후 기수를 우로 돌려 잠시 후 땅에 착륙을 한다. 금시 지나온 호수가 오늘 여행을 하며 첫 번째로 들른 이해 호수다. 뱅기가 착륙한 곳은 지은지 얼마 안되는 대리 공항이다. 높은 지대에 만들어 뱅기가 착륙하는데는 도움이 많이 될듯하다. 짐찾고 밖으로 나가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

 

대리

운남의 성도인 곤명에서 서쪽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3시간 넘게 달리면 이르게 되는 “대리”는 소수민족 가운데 바이족의 자치주다. 서기 10세기경 세워져 13세기 중국 원나라에 의해 망하기 까지 운남일대를 다스린 “대리국”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김용의 소설 “천룡팔부”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같은 작가의 소설 ‘영웅문’에서는 ‘일양지’라는 무술을 펼치는 단왕야가 다스리는 곳이기도 하다. 대리를 병풍처럼 감싸안은 웅장한 산인 ‘(점)창산’은 ‘점창파’라는 유명한 무림의 한 방파의 근거지이기도하다.

무엇 보다도 대리가 우리와 역사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 지지 않았다, 과거 운남 일대를 다스린 대리국은 902년 역사속으로 사라진 남조국의 뒤를 이어 938년 ‘단사평’에 의해 세워지고 단씨가 22대동안 다스렸다. 재상이 있어 이 왕들을 보필하게 되는데 그 재상의 직을 고선지장군의 후손인 고씨일가가 수행하게 된다. 고씨일가는 운남의 ‘상운’에 정착 하여 살게 되면서 이곳의 소수민족들과 교류를 하고 대리국이 세워진 후에는 재상족이 된 것이다. 이와같이 대리는 우리 민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바이족’의 언어가운데 무작위로 수십개의 단어를 추출하면 그 가운데 30퍼센트 이상에서 우리말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무릎을 칠 정도가 된다고 한다.

 

바이족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깊은 정신세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역사적 사실하나가 있다. 서기 1253년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칸의 군대가 운남을 정벌하러 왔을때 칼과 창을 들고 무력으로 맞서는 대신 악기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원나라 대군에게 맞섰고 그 모습에 감복한 쿠빌라이칸이 땅은 복속시키되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바로 보이차를 만들고 애용해왔던 민족가운데 하나이며, 보이차속에는 그들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대리는 4가지가 유명합니다.  하관((下關, 대리의 옛 이름이기도 함)의 바람, 상관(上關)의 꽃, 창산(蒼山)의 눈 그리고 이해(Erhai (水+耳)海 얼하이)의 달을 말한다. 하관의 바람은 사계절 예측없이 칼같이 매서운 바람이 부니 여행중에 조심해야 한다. 창산의 산 봉우리엔 여름에도 눈이 내리기도 한다.

운남성의 기후가 좋고 곤명은 봄같은 날씨가 이어진다고 하여 춘성(春城)이란 이름까지 갖고 있지만,  날씨의 변화는 항상 예측을 할 수 없는 곳이 중국 여행의 한 특징이다. 중국여행에서는 어느 지역을 가든지 기후에 대하여 사전지식을 가지고 가야 안전하다. 바람막이 쟈켓과 우산은 필수품이다.

 

이해호수 유람선관광 8:57 ~9:50

대리공항에 도착하여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성 가이드와 조우를 한후 우리는 대리시내의 이해호수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얼마 안내려가 호수가 보이니 금시 뱅기서 보았던 그호수임을 알아 차린다. 호수의 왼쪽으로 돌아가니 조성된지 얼마 안되는 시내가 나온다. 1996년 커다란 지진으로 인하여 모두가 파괴 되어 새로이 건설한 것이라 한다. 이곳엔 우리민족과 같이 흰색을 좋아하는 바이족(백족)이 많다고 한다.

호수가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공항에서 45분후 이해호수 유람선선착장에 도착을 한다. 유람선 선착장 앞에는 모자, 과일류를 파는 주민들이 들어차 있다.

 

이해호수 

이해호수는 해발 1,974m 높이의 고원에 위치한 호수로 점창산을 뒤로 하고 있으며 남북 길이는 40.5km, 동서 폭은7~9km이며 최대수심은 20.7m 넓이는 250만km2나 된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은 우리가 얼마나 높은 호수 위를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 만년설을 19개의 봉우리에 이고 있는 창산의 최고봉인 마룡봉은 4,122m나 된다. 이해(洱海)호수는 중국에서 2번째로 큰 호수로 사람의 귀처럼 생겨서 이해(洱海)호수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족삼아쇼장 9:55 ~10:10

이해호수 유람선을 약 50분간에 걸쳐 즐긴 후 이곳에서 5분거리에 있는 백족 삼아쇼장으로 이동을 한다. 규모가 작은 소공연장으로 잠시 이루어진다. 쇼를 보는 도중 3잔의 차가 나온다.

 

백족(白族)들은 지금도 혼례를 3일 동안 치른다고 한다. 관람객들에게는 三道茶라는 茶를 세잔 맛보게 했는데,

첫 잔은 쓴맛 : 인생으로 비유했을 때 소년기의 쓰라림과 고통을 뜻한다.

둘째 잔은 단맛 : 중년기의 행복함과 인생의 즐거움을 나타낸다.

셋째 잔은 쓴맛과 단맛이 혼합된 맛 : 추억의 차라고도 불리며 인생 말기에 지난 날의 즐거 움과 고통을 회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의 전통의상은 하얀 옷이고, 부의 측도는 담장의 높이로 나타낸다고 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숭선사(삼아탑) 10:25 ~11:00

백족 삼아차쇼장을 나와 15분 정도를 이동하면 삼아탑이 나온다. 숭성사는 당나라 초기 대리국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사찰은 엄청난 규모로 대리 삼탑 혹은 숭성3탑으로 불려 지는 초대형 석탑으로 인해 더욱 유명한 곳이다. 또한 숭성사 삼탑은 대리는 물론 운남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 운남성 대리지역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이며 이 지역 최고봉인 창산은 해발 4122m 이다. 숭성사의 뒤로는 창산이 앞으로는 이해호수를 끼고 있다. 삼탑도영공원은 세탑의 그림자가 호수에 그림처럼 비춰지는 뜻이며, 아침햇살을 받은 하얀색의 대리석탑은 마치 황금거탑 처럼 보인단다. 대리삼탑은 숭성사 삼탑이라도 불리우는데 중국의 4대 석탑으로 꼽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1km 떨어진 삼도도영공원에서 이탑을 바라보면 맑은 날에는 공원내의 연못에 거꾸로 비친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것이 대리삼탑을 가장 아름답게 볼수 있는 방법이란다. 중국 남북조 시절, 남조의 7대 왕인 소성왕(829~859)에 의해 숭성사는 창건되었다고 한다.

남조국과 대리국(서기 713~741)의 왕가 사원으로 건축됐던 것으로 9명의 대리국 왕이 출가해 수행한 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립한 숭성사 중앙에 69.13m의 사각 13층탑을 세우고, 차례로 42m 높이의 팔각 10층탑을 두 개 더 세웠다. 이것이 당나라 이후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4대 불탑중 하나인 삼탑이다. 최근에 이3개의 탑을 복구하면서 680여건의 물건이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도 대리국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중앙의 주탑을 천신탑이라 한다. 이탑은 모래 진흔 석회를 섞어서 만든 것으로 이세가지를 섞어 쌓아 놓은 다음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조각하여 내려 오면서 만든것이라 한다. 워낙 견고하게 축조된 탓에 예부터 지진이 많았던 이 지방이지만 탑은 원형을 유지 할수 있었다. 하지만 지진의 영향으로 양쪽의 탑은 기울어져 동양의 피사의 사탑이라 불리워 진다.

 

대리고성 11:20 ~12:00

숭성사 삼탑을 관람하고 잠시 대리고성으로 이동을 하니 입구에서 행사로 인하여 더 이상 못올라 간다고 하다. 입구에서 내려 전동차를 타고 대리고성 입구에 도착을 한다.

 

대리고성

중국 운남성 대리고성은 위청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대리고성은 경치가 아름다운 창산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대리시 하관과 13km의 거리다. 대리고성은 명홍우 15년에 건설되었고, 전국에서 첫 번째로 되는 역사문화명승지중 하나다. 대리고성은 동쪽으로 이해와 인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창산과 연결되어 있다. 대리고성의 성벽 높이는 7.5m이고, 두께는 6m이며 동서남북으로 4개의 성문이 있었고, 위에는 성루가 있다.

 

대리고성을 약 20여분간에 걸쳐 관람을 마치고 입구까지 걸어 내려오는데는 5분여 정도가 소요 된다. 올라 갈때도 마찬가지 였을것인데 이번 가이드는 참으로 이상한 가이드다. 틈만 있으면 거리가 멀다 어쩐다 하며 돈을 쓰게 만든다. 전동차를 타나 걸어가나 별 차이가 없는 거리다.

 

식당 12:20 ~13:10

대리고성 관광을 마치고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점심식사를 한다.

 

창산케이블카 주차장13:30 -케이블카승차 13:41 -케이블카하차 13:57 -전망대 14:07 -제2팔각정 14:17 -되돌아서 케이블카 승차 14:32 -케이블카하차 14:47 -창산 케이블카주차장 출발 15:10

 

점심식사가 끝난 후 10여분을 이동을 하여 창산리프트 입구에 도착을 한다. 주차장에서 약 5분여 계단을 따라 위쪽으로 이동을 하여야 한다. 오르는 양쪽으로는 과일등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서있다. 창산리프트 입구에 도착을 하여 가이드는 매표소 직원과 무었이 잘못 되었는지 한동안 실강이를 한다. 무슨 말인지를 모르지만 매표소 직원의 인상이 좋지를 않다.

 

창산은 원링산맥의 남단에 있는 주봉이며 동쪽으로는 이해호 서쪽으로는 헤이후이강이 있다. 창산에는 모두 19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해발은 모두 3500m

이상이다. 최고봉은 마롱봉으로 해발 4122m 이며 이산에서 흐르는 물과 폭포등은 정자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중턱에는 세계에서 제일큰 장기판도

있다. 독특한 것은 봉우리에 걸쳐 있는 구름들인데, 정상에서 바라보면 망망대해를 바라보는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만년설을 이룬 설경도 대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며 리프트로 산을 오르면 창산 중턱에 위치한 전망대와 중화사에 이를수 있다. 일부 관광객들은 말을 타고 오르기도 한다.

 

창산은 대리고성의 배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작은 산맥으로 그 길이가 48km에 이른다.

 

최고봉은 해발 4,122m의 마룡봉으로 한 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눈으로 쌓여 있다.

 

감통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을 오르면 산 중턱에 도달하게 되는데 발아래로 커다란 장기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 아름다운 폭포 칭비시로 가는 돌계

 

단이 늘어서 있다.

 

계곡에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와 그 아래 소에 고인 푸른 물이 서로 대비를 이루는 칭비시는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강 리장호텔 도착 19:45

이렇게 하여 운남성 대리의 몇 곳의 관광지를 돌아 보고 우리는 여강으로 향한다. 대리에서 차로 이동하여 3000고지 정도를 넘어서 다시 계속 내리막 길을 간다. 가는 중 군부대 훈련장도 있고, 비행기로 지나며 보던 풍력발전기들이 산위에 늘어서 있다. 내리막 길고 긴 길가에는 급하면 버리고 가라는 작은 화장실이 군데 군데 있으며 긴하구배로 제동력을 높여 주기 위해 차량뒤에 달아 놓은 물통에 급수를 하기 위한 시설들이 있다. 시설이라야 수도에 호스를 연결하여 물통을 채우는 것이지만 ~~ 지나는 산의 비탈엔 보리밭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남해의 가천 다랭이는 그중 일부에도 속하지 못할정도다. 엄청난 규모의 보리밭과 마늘밭 가끔씩 뽕나무 밭도 보인다. 큰 산맥을 넘어서며 이제는 고속도로를 놓는 중이라나 게발 놀리듯 세월아 네월아 수작업으로 도로의 수로도 만들고 다리도 놓는다. 언제 이공사가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장 3시간 이상을 왔을까 산아래 저길이 차마고도길중 일부라고 한다. 폭포도 있으나 지나는 차창으로 잠시 보일뿐이다. 이고개를 넘어서니 또 돈을 받는 곳이다. 여강으로 들어 가는 길목을 막고 입장료를 징수 한다. 이제 곧 여강이란다. 서서히 큰 동네가 나오며 기마를 타는 동상이 나오고 로타리를 돌아 고성과 새로운 도시로 이루어진 여강에 도착을 하여 우리가 머물 호텔에 도착을 하니 무려 대리에서 4시간 35분이 소요되었다.

호텔에 도착을 하여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한후 하루밤을 또 묵는다.

 

▶ 동양의 베니스 여강(麗江,Lijiang)

⊙ 여강(麗江,Lijiang)은 1997년 유네스코(UNESCO)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동양의 베니스”로 만년설의 옥룡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동파

문화의 후예 나시족(納西族)들이 사는 유토피아로 상징되는 리장은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東巴文化)의 발원지로 1,000여 년의 화려한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 한나라(BC 202~AD 220) 이전부터 중국 내륙 지역과 인도를 연결해준 실크로드, 차마고도(茶馬古道)로 이 길을 통해 오가는 상인들로 

주한 무역의 교차점이기도 했던 리지앙은 현재 한국에서의 직항노선이 없어 윈난성의 관문인 쿤밍에서 국내선을 타고 40여 분을 더 가야 도착할 수 있다.

 

⊙ 동파문화는 나시족의 독특한 문화로 나시족은 그들만의 세계 유일한 상형문자인 동파를 사용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습성이 남아있다. 나시족은 모계사

회로 알려진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그들의 문화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국가급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백사벽화(白沙壁畵)를 비롯하여 납서동경음악(納西洞經音樂)은 동파문자와 함께 세계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진귀한 보물이다. 또한 모계사회인 나시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볼 수가 있는데, 가사일부터 사회적인 일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들과 한가롭게 시간을 때우고 있는 남자들을 쉽게 발견 할 수가

있다.

 

⊙ 윈난성의 서북부는 광활한 대지가 만들어낸 설산이 장관이다. 매리설산(梅里雪山 6,740m), 옥룡설산(玉龍雪山 5,596m), 자러쉐산(Tza Leh Xueshan

5,534m), 백망설산(白芒雪山 5,429m), 합파설산(哈巴雪山 5,396m), 가자설산(嘉子雪山 5,384m)이 우뚝 솟아 장엄함을 뽐낸다. 여기에서 흘러내린 물줄

기는 금사강, 노강, 란찬강을 이루며 거대한 물줄기를 아래로 흘려보낸다. 윈난의 샹그릴라로 알려진 리장은 그만큼 산세가 험하고 깊은 대자연의 품속에

파묻혀 있는데 우뚝 솟은 옥룡설산과 그 뒤로 흐르는 금사강(今沙江) 때문에 스위스를 연상시키게 한다.

 

⊙ 북경이나 상해는 중국의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첫 중국 여행지로 가장 많이 선택되고 있으며, 우리

에게는 너무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운남성에 위치한 여강(麗江, 리장)은 중국치고는 아직까지 낯설다. 그 동안 중국 사람들에게 조차 잃어버린 땅으로 여겨지다가 1996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 때 여강을 방문한 장쩌민 주석이 관광지로 개발하라는 말에 신공항이 건설되면서 때 묻지 않은 생활상들의 모습이 외부 세계로 드러

나기 시작했으며 중국 전역에 알려졌으며,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 중국여행의 필수 배낭여행 코스로 꼽힌다.

 

⊙ 여강의 관광명소로는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여강고성(麗江古城 리지앙구청),  나시족[納西族(납서족), Nahsi]과  3,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그들의 독특한 상형문자인 동파문자(東巴文字), 위룽쉐산(玉龍雪山)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호수공원인 헤이룽탄공원[黑龍潭公園(흑룡담

공원)], 눈과 땅이 하나인 만년설산 옥룡설산(玉龍雪山 5,596m), 그리고 세계 최고의 트레킹 코스인 호도협(虎渡峽) 등이 있다. 

 

4일차

기상 7시

오늘은 7시 기상이다. 허나 아침 6시도 안되어 기상을 하여 부지런을 떤다. 세수하고 짐정리 하고 문을 두드려 모닝콜을 한 후 호텔 밖으로 나와 시내를 한바퀴 돈다. 아침에 이곳에서 옥룡설산이 보인다고 하였는데 우째 설산이 안보이나 도로를 건너 본다. 에고 저것이 옥룡설산이구나 이미 해가 조금 떠 올라 멋진 풍경을 볼수가 없었으나 이렇게 나마 설산을 보는 것이 큰 행운이란다. 설산을 이렇게 정확하게 볼수 있는 날이 일년에 70여일 정도라니 우리는 큰 행운을 얻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내를 한바퀴 돈다음 식당에 들려 아침식사를 한 후 모임장소로 모인다.

 

흑룡담공원 8:40 ~9:15

호텔에서 8시 22분 출발하여 우리는 첫 번째 관광지로 옥룡설산의 물이 흘러 만든 흑룡담공원에 도착을 한다.

 

◈ 흑룡담(黑龍潭) 공원흑룡담풍경구는 곤명의 북부 용천산으로 곤명시와 약 17km 떨어져있으며, 북부의 오노산(五老山) 기슭에 위치해있다.이곳 사람들이 칭하는 사미(四美)가 있는데 각각 한사(漢祠), 당매(唐梅), 송백(宋柏), 명묘(明墓)가 그것으로, 한쪽 만의 벽위로 뿜어져 나오는 물은 그윽하고 맑으며 풍경의 우아함을 더해준다.아주 오래전에 10마리의 교룡이 인간세계에서 항상 악을 행했는데, 여동빈(呂洞賓 : 팔선중의 한명)이라는 자가 아홉마리의 교룡을 물리치고 진압하였는데, 나머지 남은 한마리의 흑룡이 이곳에 남았고, 따라서 흑룡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흑룡담 풍경구 내에는 두개의 오래된 건축물이 있는데, 이중 하나는 담변의 흑룡궁으로 하관(下觀)이라 불리우며, 명홍무(明洪武) 27년(1394년, 3개의 입구와 4개의 궁이 있으며, 녹색 수림이 무성하다) 건공되었다. 둘째는 고목이 무성한 곳에 위치한 용천관(龍泉觀)인데 상관(上觀)이라 불리워진다.명대에 건공되어 570년이상 되었다. 웅발(雄拔)의 아치형 패방 자극현도(紫極玄都)를 지나면, 뇌신전(雷神殿), 북극전(北極殿), 삼청전(三淸殿), 옥황전(玉皇殿), 장춘진인사(長春眞人祠)등 13개의 전각이 있다.청(淸)조 고증에 근거하여, 이곳은 일찍이 한(漢)대 흑수동(黑水洞)이 건공되었고, 연못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당, 원대 건공되기 시작하였으나 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다시 명대 삼중용천관도원(三重龍泉觀道院)이 건설되었다. 삼청전의 앞으로 5척정도 높이의 매우 큰 동향로가 있는데, 청조 25년에 주조되었으며, 화로에는 사람이 누워있는 무늬가 세겨져 있으며, 그 무늬 아래로 전서 28체가 새겨져있는데, 그 조각이 실로 아름답다.또한 유명한 삼이목이 화로를 향해 서있고, 당대 심어진 매화나무는 매년마다 꽃이 만발하다. 또한 이곳에 세워진 소나무는 약 25척에 달하며, 다섯사람이 늘어서야 둘러설수 있는 너비를 지니고 있고, 연분홍꽃이 만발한 도화나무는 높이 처마에 닿을듯하게 서있는데 역시 매우 장관을 이룬다.이 삼대 나무와 한사(漢祠)를 합하여 용천사절(龍泉四絶:4대절경)이라 부른다.흑룡담내로 명대(明代) 묘가 하나 있는데, 이것은 명조 문사인 벽이망(霹爾望)이란 사람의 것으로, 그는 명말/청초때 군대에 들어간후 청조의 쌀을 먹는 것은 치욕이다라고 하여 전 식솔들과 함께 이곳 흑룡담에 몸을 던졌으며, 후에 사람들이 그의 충성심을 기념하고자 흑룡담변에 합장묘를 만들어주었다.흑천관비정(黑泉觀碑亭)내로는 역대 진귀한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최고는 단연 철자비이다. 이 비석은 명(明) 영낙년(永樂年) 운남의 장춘진(長春眞) 사람인 유연의 책에서 따온 만물자생(萬物玆生)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그 기세가 마치 용이 하늘로 나는듯하며, 끊지않고 글자를 한번에 모두 써넣었다. 빛이 비석위로 쏟아지면 몇분후 오목한 부분에 빛이 굽이져 닿아 마치 북을 퉁퉁 치는듯한 느낌이 드는데 따라서 철자비(凸字碑)라 불리워진다. 흑룡담공원의 관광을 위해서는 시내에서 9번버스를 타면 이곳 앞까지 다다를수 있다

 

멋진 흑룡담공원에는 이른아침이면 중국의 춤을 추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한다. 오늘도 몇몇분이 추는 춤을 따라서 우리 아줌씨들도 잠시 따라 해본다.

 

이렇게 흑룡담 공원을 35분에 걸쳐 한바퀴를 돌아 본 후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한다.

 

동파만신원 9:37 ~10:00

흑룡담 공원에서 옥룡설산쪽으로 이동을 하면 20여분 후 동파만신원이란 곳에 도착을 한다.

니시족들은 동파교를 믿는다. 동파교는 모든 것을 알에서 태어난다고 믿는다. 선한것은 하얀알에서 태어나고, 악한것은 검은알에서 태어난다고 믿는다. 동파만신원은 니시족 사람들이 신앙인 동파교의 상징물들을 한데 모아 놓은 곳이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중의 하나인 ‘나시족’은 지금 30만명정도 많이 남은 소수민족이지만 한때는 티벳일대를 장악하고 한족과 끈임없이 싸움을 벌었던 티베트계의 민족인 강족의 일파였고, 이족이나 수리족같이 뿌리민족과 같은 민족이다. 모계중심의 부족으로 일처다부제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피부가 검고 뚱뚱할수록 인기가 있다. 아마도 이것은 모계 중심 부족들의 특성으로 이쁜 여성보다 다산을 위해 건강해야 하며 고산지대의 특성이나 열대지방의 특성상 밖에서 일을 많이 하면서 피부가 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시족은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로 더욱 유명하며, 현존하는 세계유일의 상형문자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되어 있다.

동파만신원을 관람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면 천천히 약 15분정도가 소요된다. 동파만신원 뒤로 보이는 옥룡설산이 멋지다.

 

여강인상쇼장 10:30 ~11:50

동파만신원에서 나와 옥룡설산쪽으로 더욱 가까이 가면 도로를 막고 또 통행료를 받는다. 인상쇼장으로 가는중 좌측으로 옥룡설산 트레킹코스로 가는 길이 보이고 약 30여분간 이동하여 인상쇼장에 도착을 한다.

 

장예모 감독의 작품으로 세계에서 제일높은산 에베르트산은 지금까지 4500명 정도가 등정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중국 운남성 여강에 있는 옥룡설산 5596m 주봉은 지금까지 아무도 정복을 못한산이라고 한다. 이유는 5200m 이상의 바위들이 푸석바위로 접근을 할수 없으며, 다음으로 나시족의 성스러운 산으로 신성시 되기 때문이다. 5000m 이상의 봉우리가 13개나 되며 36km나 뻗어 있는 옥룡설산은 신성시 여기며 사는 소수민족들의 영산이다. 장예모 감독은 주민 500여명을 한달이상 합숙시켜 이작품을 완성했으며 내용은 차마고도와 관련된 내용, 옥룡제3국이 있다고 믿는 나시족의 혼인문화, 연주가 전혀 없는 원주민들의 노래와 춤을 거쳐 북춤으로 산에 제사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배우와 관중이 함께 설산앞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인상여강쇼

인상여강쇼는 여강지역의 소수민족들의 삶의 이야기를 장예모 감독을 비롯하여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들이 기획하고 제작한 인상쇼라고 한다.

인상여강쇼는 총6부로 되어있다.

1. 마방

2. 술판

3. 천상인간

4. 타도조합(원주민의 춤)

5. 북춤의 제사

6. 기도의식(관중과 함께 소원을 옥룡설산에 기도하는 의식)

 

제1부 마방입니다.

여강(리짱,리장)은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도시다.

수천년 동안 마방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이야기 이다.

남성들의 역동적인 단체춤과 실제로 말들이 무대 위를 달리며 360도 무대를 사용하며 역동감을 더합니다. 마방은 설산을 넘어 오랜 기간의 여정이 필요하다.

남성들에게는 삶의 무게와 역동성이 느껴지며, 여인들에게는 사랑하는 남편들을 떠나보내며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들이 대사 없이도 잘 전달된다.

 

큰 바구니

언제나 일을 할 때 저 큰 바구니를 지고 삶을 이어 갔을 원주민 여인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남성들의 역동적인 춤 위험하고 힘들 삶의 무게를 역설적으로 역동적인 춤으로 승화시킨것 같다.

붉은 색의 무대 배경은 중국의 대지를 상징 하며, 붉은 색과 푸른색 그리고 옥룡설산의 자연배경 그리고 시간마다 자연이 구름으로 무대 배경을 바꾸어 주는 장엄함이 있다.

무대와 관중석을 360도 돌아가며 말을 달리며 역동성을 더하게 설계한 무대다.

무대 앞의 비탈길을 달려서 관중석 뒤로 돌아 달려 나가는 말 타는 연기가 일품이다

 

2. 술판

척박한 땅에서 힘든 삶을 이기기 위하여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견디어 왔다. 

그러면 술이 취하고 싸움도 한다. 그러다 술에 취하여 쓰러지면 남편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아내가 남편을 찾아 나선다. 술판에서 쓰러져 있는 남편을 아내가 끌고 간다.

비틀 비틀 아내 뒤를 따라가던 남편이 아내를 등에 엎고 간다.

 

3. 천상인간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은 후에 맺어주는 옥룡3국이 있다고 믿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옥룡3국으로 떠나는 남녀 그리고 그들을 배웅하는 사람들.....

 

4. 타도조합

10개의 소수민족들이 무반주로 노래를 한다.

객석 뒤에서 부터 자신의 민속의상을 입고 노래를 하면서 입장을 합니다.

타도란? 우리나라의 도라지와 같은 민요라고 한다.

 

5. 북춤의 제사

역동적인 북춤으로 지내는 제사를 표현한다. 중간에 축문을 읽는데 내용은 대충 우리는 양자강을 다 마실 수 도 있고., 옥룡설산이 우리들을 보호할 것이며..

 

6. 기도의식

관중들이 설산 앞에서 기도를 드리면 앞으로 함께 기도를 드리겠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기도의식으로 공연이 마무리 된다.

 

쇼장의 식당으로 이동 식사 12:00 ~12:40

인상쇼가 끝난 후 쇼장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식사를 한다. 식사를 그런대로 입맛에 맞는다. 식사가 끝난 후 매장에서 천연산 마 등을 구경한 후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한다.

 

룡설산케이블카 13:10 -케이블카 전망대 13:20 ~14:30 -케이블카주차장 14:40

쇼장에서 이곳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옥룡설산의 케이블카 주차장으로 이동을 한다.

 

옥룡설산

⊙ 옥룡설산(위룽쉐산 玉龍雪山, Jade Dragon Snow Mountain)은 중국 운남성(윈난성 雲南省) 나시(納西)·티베트족 자치현의 여강(리장 麗江) 서북부

쪽으로 20㎞ 떨어진 곳에 웅장하게 솟아 있는 산으로 히말라야산맥의 일부인 횡단산맥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이 35㎞, 너비 12㎞ 이며 13개 봉우리

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봉인 선자도(산쯔더우 扇子徒)는 해발 5,596m이다. 산세는 북에서 남으로 뻗어나갔고 고산지대의 경관은 해발 4,000m 이상 되는

곳에 형성되어 있다.

 

⊙ 위룽쉐산은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만년설로 덮여 있고 산에 쌓인 눈이 마치 한 마리의 은빛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

여 “옥룡설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희귀한 식물이 많아 중국의 빙하박물관 또는 식물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종자식물 3,200종, 약재 300여종이 있으며,

많은 종류의 동물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금사후, 스노우 레오파드와 애기 팬더 등은 그 중 진귀한 동물에 속한다. 서유기(西遊記)에서 손오공이 갇혀 벌

을 받았다는 산으로 전해지며 부근에 위룽쉐산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수를 이룬 관광명소인 흑룡담(헤이룽탄 黑龍潭)공원이 있다.

 

⊙ 옥룡설산 정상은 운무 속에 가려 좀처럼 그 웅장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성 안 어디에서도 잘 바라보인다. 산세가 수려할 뿐 아니라 신비로운 색

채를 지닌 신성한 산으로 나시족들은 옥룡설산을 자신들의 보호신인 “삼다”의 화신으로 여겨 신성시하고 있다. 양쯔강의 상류인 금사강(진사장강 金沙江)

을 사이에 두고 옥룡설산과 합파설산[하바쉐산 哈巴雪山 5,396m]이 솟아올라 깊은 협곡을 만들었는데 이 협곡이 바로 “호랑이가 건너뛸 만큼 좁다”

라는 뜻의 호도협(후탸오샤 虎跳峽)으로 협곡이 17㎞ 정도 이어진다.

 

⊙ 옥룡설산(玉龍雪山)의 주봉인 선자도(扇子徒·5,596m)는 아직까지 전인미답의 처녀봉으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으며, 중국과 일본등반대가 등반에

실패한 기록만 남아 있다고 한다. 옥룡설산은 해발 2,700m인 옥주경천에서 시작하여 마황패(3,400m)~전죽림(3,670m)~백설파(白雪坡3,955m)~노배파

(4,300m)~충초평(4,500m)~충초화원(4,750m)~녹설해(綠雪海 5,100m)를 거쳐 옥룡설산 서봉인 대협곡(5,200m)까지 직접 등반할 수 있다.

 

⊙ 옥룡설산 풍경구안에는 모우평(毛牛坪)과, 운삼평(雲杉坪)이 있고 골프장도 있으며, 중앙에 옥룡설산 빙천공원이 있다. 그리고 풍경구 밖에는 동파신원

과 옥수채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빙천공원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506m까지 올라가서 계단이 설치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옥룡설산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 볼 수 있는 중국 오성기가 휘날리는 해발 4,680m의 빙천공원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 빙천공원 케이블카는 해발 3,356m에서 4,506m까지 운행하고 있는데 길이가 2,968m나 된다. 6명이 탈 수 있는 케이블카가 와이어에 고정되어 와이어

를 끌어당겨 케이블카가 움직이는데 한꺼번에 최대 420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케이블카를 타고 15분 정도면 표지석(4,506m)이 있는 곳까지 올라간다. 이곳

은 등산코스인 옥주경천 반대편으로 옥룡설산 주봉의 뒷면을 볼 수가 있으며 고산증세에 대비하여 산소통을 대여해 준다.

 

⊙ 이 밖에 옥룡설산의 관광코스로는

○ 감해자(甘海子) :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곳으로 해발 3,100m 되는 곳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골프장이 있다.

이곳도 바다가 말라서 땅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바다부분이 융기하여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으로 특이한 것은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못하고 작다. 희귀한 생

태계의 보존을 위해서 함부로 다니지 못한다.

 

○ 운삼평(윈사핑 雲杉坪) : 옥룡설산의 절경 중 한곳으로 리프트를 타고 산에 올라 옥룡설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하는 인기코스 중 하나로 리프트에서

내려 고산 초원을 걸으며 삼림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데 해발 4,450m 지점에 삼나무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야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산 속 오아

시스로 잘 알려진 운삼평이다. 

금수곡이라고도 불리는 운삼평은 푸른 하늘과 옥룡설산의 만년설, 원시림이 어우러져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취를 보여준다. 이곳에서 전통 복장을 한 나

시족과 이족을 만날 수 있으며 그들의 전통놀이도 구경할 수 있다. 또 고원산림 풍모도 볼 수 있는데 희귀한 식물들이 많아 “현대의 얼음하천 박물관”, “식

물의 왕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우리가 리프트를 타고 오른 곳은 운삼평으로 잠시 옥룡설산을 아래에서 올려다본 후 내려 오는 코스다.

 

백수하 14:55 ~15:10

옥룡설산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차를 타고 잠시 내려오면 설산에서 흐르는 물이 있는 계곡으로 백수하라고 부른다.

 

백수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강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 진곳이다.

쓰촨성의 구채구를 보지 못했다면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것이 이 백수하라고 한다.

옥룡설산에서 녹아내린 눈이 바로 이 곳으로 흘러내리는 곳이다.

표를 끊으면 셔틀버스를 타고 중간 중간에 내려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옥룡설산의 석회수가 흘러내리는 길목에 원형의 작은 폭포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작은 폭포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석회질의 영향으로 옥색의 물빛이 신비

로움을 더하고 야크를 배경으로 옥룡설산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설산이 투영되어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말을 타고 백수하 위에 오

르면 특이한 복장의 납서족 아가씨들이 노래로 반긴다.

 

속하촌관람 16:00 ~17:10

옥룡설산과 설산아래 흐르는 백수하를 보고 여강으로 들어가는 중 속하촌이라고 하는 전통마을에 닿는다. 입구에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골목을 달려 속하촌에 닿는다.

 

속하촌

속하촌은 운남성 여강현 백사향에 위치하는 전통마을이다. 속하촌은 여강현성에서 북쪽으로 7km의 거리에 있다. 예전에 속하촌은 모피제조와 가죽세공으

로 유명한 곳이다. 현재는 농업을 주로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900년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속하촌은 납서족 주거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여강맛사지 17:30 ~19:30

오늘 속하촌을 보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고 4일간의 피로를 씻고자 여강시내에 있는 맛사지샆으로 이동을 하여 전신맛사지를 하고 아줌씨들은 좀 부족하다 하여 발마사지를 더하여 2시간이 소요되었다. 맛사지 하는 아가씨들은 아직은 서툴은 솜씨로 우리말도 잘 알아 듣지 못한다.

 

식당 19:40 ~20:40

맛사지가 끝나고 우리 호텔 옆에 있는 다른 호텔의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한후 우리 호텔로 이동을 한다.

 

노래방 21:10 ~23:50

호텔로 들어가 짐을 놓고는 여강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수 없다하여 일인당 15000원씩 하는 노래방으로 이동하여 즐거운 한때를 보낸 후 호텔로 돌아오니 0시다.

 

5알차

기상 7시

아침 7시 기상이다. 허나 오늘도 6시 전부터 기상하여 일찌 감찌 출타할 준비를 마치고 방마다 문을 두드려 기상을 시킨 후 밖으로 나가니 떠오르는 햇살에 빛을 받을 옥룡설산의 황금빛이 너무 아름답다. 시내를 한바퀴 돌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마친다.

 

출발 8:30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호텔에서 짐을 싸가지고 차에 싣은후 8시반 출발하여 호도협으로 이동을 한다.

 

옥룡설산전망대 10:10 ~10:22

호텔을 떠나 어제 갔던 길의 반대쪽으로 향한다. 설산의 아래쪽에 큰호수를 돌아서 서서히 높다란 산을 넘는다. 주위로 비탈밭이 펼쳐진다. 이곳은 해발이 높아서 인지 밭고랑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닐을 쒸웠다. 보리밭이 펼쳐지고 산기슭에는 연분홍 두견화가 곱게 피었다. 잎이 잔잔하고 꽃도 잔잔하지만 두견화라고 한다. 중국의 두견화 종류가 40여종 되는데 그중 한종이라 한다. 높다란 나무에 핀 연분홍꽃도 이쁘지만 무슨 나무인지는 모른다. 해발 고도 2800m에 오르니 좋은 전망대가 있다. 가이드는 이아래에 절이 있다고 한다. 올적에 잠시 세워 달라 하고 고개를 넘어 해발 1800m 지점의 호도협 까지 이동을 하여야 한다. 내려가는 길의 양쪽에도 연분홍 두견화가 지천에 깔려 있고 너무 긴 하구배라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킨 커다란 화물차가 길옆으로 쳐박힌 광경도 보인다. 어느 정도 내려 섰을까!!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주민들이 과일을 파는 곳이 있다. 이곳이 장강 전망대라고 한다. 지금 차량이 많이 서있다고 올적에 본다고 한다. 이제 차는 금사강 줄기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계속 내려간다. 멀리 산꼭대기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몇일전 부터 산불이나 지금도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것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산불로 몇일을 탓으면 주변이 시커멓게 탄 흔적이 있어야 하건만 탄흔적은 없고 구멍에 연기가 나듯이 군데군데 땅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듯 한다. 황토색 금사강 물줄기를 따라 가는 길이 도로 공사 중으로 난장판이다. 중국인들 도로 공사 하는 현장을 어디나 똑같다. 공사와 통행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능률이 오를리 없다. 하기사 장비도 투입안하고 일일이 손으로 하니 그럴만도 하다. 금사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너 어느 정도 내려가니 커다란 상점이 있다. 상점 안으로 들어가 뒷간으로 가는 중 강가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서 설산의 모습이 보인다. 하얀 설산의 모습이 좋다.

 

도보로 건너는 다리 10:35~10:45

상점 안에 있는 설산 전망대에서 10여분을 차로 이동을 하면 다리의 하중을 덜기 위하여 사람을 내려서 걸어가고 차는 빈차로 건너는 부실한 다리가 있다. 하지만 화물차는 짐을 싣고 건너니 사람무게 보다 적단 말인가. 일부러 걸어서 관광을 하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것도 좋다. 다리를 건너며 보는 전망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면 몇몇 주민들이 과일을 파느라 분주하다. 다리 건너 좌측으로 있는 식당은 올적에 우리가 점심식사를 할 곳이라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삼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중전 샹그릴라로 가는 길이다. 중전까지 125km다. 장강은 57km라 적혀 있는데 이것은 장강 전망대를 가르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호도협 주차장 11:00 ~13:00

도보로 다리는 건넌 후 차량에 탑승하여 금사강변을 따라 가면 강이 두갈래로 갈린다. 좌측에서 흘러 오는 것은 중전 쪽에서 오는 것일지라 그곳으로 가면 티벳이 가깝단다. 우리는 우측 물줄기를 따라 가니 얼마 안가 호도협 주차장에 닿는다.

 

세계 3대 트레킹코스 호도협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 페루 잉카트렉, 중국 호도협을 일컬어 세계 3대 협곡이라 한다. 호도협은 중국 서부의 가장 남단에 위치한 고산으로 해발 5596m로 길이 35km, 너비 12km다. 13개의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봉은 산쯔더우(선자두)이다. 산에 쌓인 눈이 마치 한 마리의 은빛용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옥룡설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양쯔강의 상류인 금사강을 사이에 두고 위롱쉐산과 하파설산(5396m)이 솟아 있고 두산이 강을 따라 ‘호랑이가 건너 뛸만큼 좁다’ 하여 호도협이라 한다. 후타오샤협곡 지역이 길이 16km까지 이어진다. 위룽쉐산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갇혀 벌을 받았던 곳이다. 인도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이 충돌로 야기된 지각 운동은 하나였던 산을 옥룡설산과 하파설산으로 갈라 놓았다. 그 갈라진 틈으로 장강의 원류인 진사강이 흘러 들면서 16km의 길이에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 졌다. 이길이 호도협트레킹길이며 옛차마고도의 일부이기도 하다. 협곡의 길이가 33km이며 폭이 가장좁은 곳은 20m, 가장깊은 곳은 196m나 된다. 세계 3대 협곡중의 하나이고 세계에서 높이차가 가장큰데 협곡입구 해발이 1800m이며 산정상과 계곡의 높이차가 3900m나 되는 호도협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길이며 실크로드 보다 200년이나 앞선 차와 말의 교역로 였던 푸얼~쿤밍~따리~리장~중때엔~옌징(진장공로)~마캄~라싸~시가체~인소,네팔~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고대문명길인 차마고도(서북로)의 입구이다.

 

윈난성이 품고 있는 보물 같은 트레킹 루트

하나의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얼굴을 지닌 중국. 거대한 대륙 중국의 서남쪽에 자리 잡은 윈난성은 중국을 구성하는 55개 소수부족 중 26개의 소수부족이 살고 있는 인문학적 환경과 다양한 자연환경으로 세계인을 매료시켜왔다. 그런 윈난성이 품고 있는 보물 같은 트레킹 루트가 바로 호도협(虎跳峽)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 장강(長江)이 이곳에 오면 '금사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거대한 두 산의 발치로 접어든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은 하나였던 산을 위룽쉐산(玉龍雪山, 5,596m)과 하바쉐산(哈巴雪山, 5,396m)으로 갈라놓았다. 그 갈라진 틈으로 장강(長江)이 흘러들면서 16km의 길이에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이 만들어졌다.

 

가장 험하고 아름다운 구간

이 협곡의 길은 먼 옛날부터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일부로 불려왔다.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교역로로, 중국 당나라와 티베트 토번 왕국이 차와

말을 교역하던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중국의 서남부 윈난성과 쓰촨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의 길에서 가장 험하고 아름

다운 구간이 산장빙류(三江并流) 협곡이다. 금사강(金沙江 장강의 상류), 난창강(瀾滄江 메콩강의 상류), 누강(怒江 살윈강의 상류)이 횡단산맥의 5,000m

이상의 설산 사이로 흘러간다. 협곡을 따라가는 평균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의 지형적 특이함과 세계의 동물 중 25퍼센트가 존재하는 생물학

적 다양성으로 인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윈난성에서 티베트로 향하는 차마고도는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 푸얼스(普耳市)를 지나 따리(大理), 리장(麗江), 상거리라(香格里拉)를 거쳐 라싸(拉

薩)에 이르는데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길목에 호도협이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가 건너다닌 협곡이라는 뜻의 호도협은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다.

 

세계제일의 풍경을 자랑하다

리장 버스터미널에서 치아토우(橋頭)행 버스를 타는 것으로 호도협으로 가는 여행은 시작된다. 치아토우에 내리면 마부들이 몰고 온 말들의 워낭소리가 요

란하다. 28굽이돌이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말을 타고 오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발걸음을 옮긴다. 트레킹 코스는 두 개의 길로 나뉜다. 저지대의 길과

먼 옛날부터 나시족이 이용해온 고지대의 길.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고지대의 길을 선택한다. 길은 초등학교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시작된다. 시간이 넉넉

하다면 공을 차는 아이들 틈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 들어가 축구라도 한 판 즐기고 돌아서도 좋다.

 

호도협 트레킹은 따로 지도가 필요 없다. 트레커들 사이에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로 불리는 중도객잔을 알리는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절벽길 곳곳의 바위마다, 길목의 모퉁이마다 중도객잔까지의 화살표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길을 걷는 내내 오른쪽으로는 위룽쉐산이, 왼쪽으로는 하바쉐산이 따라온다. 샹그릴라에서 려강까지 뻗어 있는 해발 5,596m의 위룽쉐산은 히말라야산맥의 일부이다. 13개의 봉우리가 한 마리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계단식 논과 점점 아득해지는 협곡의 풍경을 즐기며 두 시간 남짓 오르면 나시 객잔. 보이차로 유명한 윈난성의 차향을 즐기며 이곳에서 잠시 쉰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구간은 이 코스의 최대 난구간인 28굽이돌이다. ‘28밴드’라는 이름처럼 어지러울 만큼 긴 스물여덟 개의 굽이를 돌아야 한다. 마지막 구비의 높이는 2,670m. 가파른 길만큼이나 급하게 차오르는 숨을 헉헉거리며 고갯길의 정상에 서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바짝 다가온 위룽쉐산의 흰 이마 아래 아득한 금사강의 옥빛 물결이 굽이치며 협곡을 휘돌아나간다. 건물 뒤로 위룽쉐산이 우뚝 솟은 차마객잔을 지나면 중도객잔.  

 

중도객잔의 화장실은 세계 제일의 풍경을 자랑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늦은 밤 화장실에 들어섰다가 위룽쉐산의 이마에 올라탄 보름달빛에 홀려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창문도 없는 화장실 너머 설산의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늘어섰다. 바위 위에 칠해놓은 중도객잔 선전문구마다

따라붙던 ‘천하제일측(天下第一厠)’ 문장에 ‘과연’이라고 수긍하게 되는 순간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천 년의 워낭소리

이튿날, 대나무숲과 호두나무숲을 지나 두 시간 남짓 걸으면 티나 게스트하우스. 이곳에서 중도협을 즐기기 위해 협곡으로 내려간다. 중도협으로 가는 길

은 근처에서 객잔을 운영하는 장선생이라는 분이 1년에 걸쳐 혼자 닦았다고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다. 제법 가파른 길을 한 시간 남짓 내려가면 계곡이다.

급류에 휘말린 물보라가 거센 포말을 이루며 튀어 오른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귓전을 뒤흔드는 물소리. 세상의 온갖 시름이 물보라에 부서진다. 세

상의 온갖 소음이 물소리에 잠겨간다. 어디선가 천 년의 워낭소리가 몰려온다.

 

호도협 끝부근에는 전망대가 있으며 옛날에 호랑이가 밟고 건너 뛰었다는 호도석이 강물 중간에 박혀 있다. 호도석이 있는 곳에서 되돌아 나와 주차장에

닿은후 차량으로 온길을 따라 이동을 한다.

 

도보로 걷는 다리앞 식당 13:10 ~13:40

호도협 관광을 마치고 10여분 이동하면 다리앞 식당이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빠져 나가니 우리팀만 남는다. 생각외로 시골이라도 도시보다 우리

입맛에 잘맞는다. 쌀도 어디서 왔는가는 모르지만 지금껏 먹던 쌀보다 좋다. 이곳에서는 쌀농사가 안되고 보이는 것이 보리 마늘 딸기농사 등이다.

 

장강전망대 14:30 ~14:40

식사를 마치고 다리를 건너 차량에 승차하여 금사강변을 따라 오르다. 다리를 건너는 지점에서 뒤쪽을 보니 날씨가 맑아져 옥룡설산과 하파설산이 나란히 보인다. 다리를 건너 도로공사현장의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가면 2800고지로 오르는 첫머리 부근에 장강 전망대라고 하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 장강을 보니 붉은 황토물만이 보일뿐이다. 장강이 180도 도는 모습을 보기 위해선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에 올라야 한다고 한다. 그곳으로 이동하여 봉에 올라 장강을 굽이를 보려면 하루 일정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그저 겉만 핥는 것이 되겠다.

 

여강 족욕장 15:50 ~17:20

장강 전망대를 출발하여 산꼭기로 하염없이 오른다. 굽이굽이 돌때 마다. 연분홍 두견화가 반기고, 오르면 오를수록 멀리 옥룡설산과 하파설산의 흰산꼭대기가 보이다가 사라지고 하길 수십번이다. 드디어 아침에 올때 지나친 절이 있다는 전망대 앞이다. 가이드한테 절에 다왔네 하고 말을 하였으나 못들은척 지나친다. 아침에 올적에 잠시 내려서 보자고 했건만 그냥통과다. 괘씸하다. 일정에 없는 것이니 세워달라고 할수도 없는 일이고 ~~~절이 있는 전망대를 지나며 보는 옥룡설산과 하파설산 쪽으로 전경이 매우 좋다. 이렇게 하여 2800고지의 산을 넘어 여강에 닿으니 차가 갑자기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여강고성에 내려 놓치를 않고 발마지 한다로 어제 왔던 족욕장에 내려 놓는다. 거참 꽤심한 지고 그래서 시간 때문에 절이 있는 전망대를 못들은척 지나쳤구나 ~ 돈벌이가 되는 발마사지는 눈에 번쩍 뜨이고 말이다. 어디 자료를 찾다보니 이름이 황웅걸로 나왔다. 팀마다 이름이 바뀌나 보다, 우리 한테는 동 0 궐이라 했는데 말이다.

 

여강고성관광 17:28 ~18:35

족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여강고성으로 이동을 하여 이번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여강고성을 관광한다.

 

▶ 여강고성(麗江古城 리장구청)은?

⊙ 리장(麗江)은 중국 소수민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는 운남성 중에서도 서북부 고원지대에 있는 아름다운 소읍으

로 계림양삭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이다. 이곳 중심부에는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여강고성(麗江古城 리장구

청)이 시가지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 다엔진(大硏鎭)이라고도 부르는 여강고성은 송나라 때 지은 것으로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급 역사

문화명승지이다. 총면적은 7,420㎢이며 인구는 약 30만 명인데 그 중에서 나시(納西)족이 57.5%를 차지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형문자가 통용되는 곳

으로 알려져 있다.

 

⊙ 고성은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이 100여 채 모여 독특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성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길이 이어지는 교통 요충지인 쓰팡제(四方

街)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골목길마다 반들반들하게 다듬어진 붉은 색 역암이 깔려 있고 곳곳에 매달려 있는 홍등이 밤이 되면 불을 밝혀 더욱 아름다

운 모습으로 변한다. 

 

⊙ 고성에 들어서자마자 여행객 눈길을 끄는 것은 수로다. 어느 거리, 어느 골목이나 빠짐없이 수로가 지나고 있다. 문 앞까지 맑은 물이 흘러 마치 운하에

둘러싸인 마을 같다. 그래서 리장은 “동방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 고성을 지을 때 수로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 골목

골목을 휘감아 도는 물줄기는 인근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옥수채를 거쳐 흑룡담 공원에 모였다가 고성안으로 여러 갈래 흘러들어 충의시장 쪽으로 빠

져 나가는 깨끗한 물이다. 이 맑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들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수로를 따라 총 300여 개 돌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와 수로, 나무와 산, 거리와 집들이 어우러진다.

마을과 자연이 일체가 된 듯하다.

 

⊙ 고성은 전체를 둘러보는 데만도 3일이 넘게 걸릴 정도로 넓다. 게다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자칫하다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어딜 가나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한 곳이기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주변에는 리장을 통치했던 이곳 토호인 무스투쓰(木

氏)들의 관청인 무푸(木府)가 재현되어 있다

 

⊙ 여강고성은 또한 성벽이 없는 성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통치자가 木씨였는데 어떤 신하가 목(木)에 테두리를 두르면 곤(困)자로 변하며, 곤(困)자는

희망이 없는 뜻이어서 성을 쌓지 말 것을 권유했다고 하며 그 후 800년간 이 성은 성벽을 쌓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 리지앙 고성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사자산에 있는 만고루(万古楼)이다. 입장료가 있는 만고루는 고성 한쪽 끝에 자리한 탑으로 쓰팡제(四

方街)에서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된다. 고성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흑룡담 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서는 호수의 맑은 물에 옥룡설산과 하늘이 비쳐 완

전한 대칭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 800년 동안 본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온 고성, 그곳에는 그들만의 종교를 믿고 그들만의 언어와 문자를 사

용하며 그들만의 음악을 즐기는 매력적인 소수민족인 나시족(納西族)이 세월을 거스르며 살아가고 있는데 중국 56개 소수민족 중 운남성에만 절반에 가까

운 26개 소수민족이 모여 살고 있으며 그중 리지앙에 사는 소수민족 중 나시족이 주를 이루고 있다. 

 

⊙ 나시족 사회는 모계 중심이기 때문에 가사부터 대외적인 업무까지 모든 일을 여자가 도맡아 하고 남자들은 항상 어디선가 빈둥대고 있다. 이 때문에 양

육권과 재산권도 모두 여성에게 있다. 천당으로 가는 길마저도 여자는 7계단만 오르면 되지만 남자는 9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이들은 주

로 동ㆍ은그릇 제작, 피혁, 방직, 양조업을 위주로 하는 전통 수공업과 상업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 나시족은 독특한 상형문자 체계를 갖고 있다. 그들의 고유 종교인 동파교 경전을 기록하는 데 사용했다고 해서 “동파문자”라 불린다. 동파문자는 사물형

태를 있는 그대로 그리거나 일부 특징을 부각시켜 글자화한 것이다. 동물의 경우 말은 갈기, 돼지는 입, 호랑이는 얼룩무늬를 본떠 상형화했다. 이 때문에

언뜻 보기엔 글자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워 담과 벽을 장식하기도 하고 문양처럼 기념품에 새겨 넣기도 한다.

 

⊙ 나시족은 대나무로 만든 죽필에 천연염료를 찍어 흙과 나무, 종이 등 천연재료 위에 동파문자를 썼다. 대부분 화려한 색을 사용해 예술성이 뛰어나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만의 음악도 가지고 있다. “동파선인”이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나시족 악단이 고성 중심가 쓰팡제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시족 특유 전통음악으로 감화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요즘 젊은 나시족 중에는 이 음악을 배우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3~5년 안에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 고성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무성하고 단아한 전통가옥들이 있으며 담장은 황토색으로 덧칠되어 온통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구경하기 힘든 한 폭의 그

림 같기도 하다. 고성의 중심마당인 사방가에는 나시족 여인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고 있다. 티베트까지 교역하는 차마고도의 요충

여서 마초를 판매하였던 매초장(賣草場)과 차마고도 여행길에 사람과 짐승(말, 낙타, 물소 등)들이 이용하였다는 우물도 있다. 

 

여강고성 동경만식당 18:35 ~19:20

이렇게 하여 여강 고성관광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여강고성내에 있는 동경만이라고 하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일본인을 상대로 하던 식당으로 버섯요리가 전문인듯하다. 때는 지낫지만 송이버섯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우리 입맛에 제대로 맛는데 송이가 우리것 보다 향은 덜 하지만 송이버섯을 먹고 난다음 다른 버섯들을 샤브샤브해먹고 야채까지 데쳐 먹고 나니 그맛이 좋다. 국물은 오골계로 낸듯하다. 고추장도 우리나라 것과 똑같아 출처를 알아본봐 곤명에서 구입해 왔다고 하니 분명 한국인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 우리나라에서 수입을 해온듯하다. 야채도 풍성하니 배급을 하고 모든 것이 만족하다.

 

여강공항 20:20 ~22:40(1:10분 연발)

고성에서 식사를 끝마치고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차량에 승차하여 여강공항으로 이동을 하니 거리가 약 24km라 한다. 대리에서 들어오던 길을 따라 가면 고속도로 공사로 어수선한 도로변에 여강공항이 있다. 지은지 얼마 안되는 신설공항으로 진입로 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공항이다. 고속도로공사가 끝나고 여강공항은 국제공항으로 승격시켜 외국에서 곧바로 들어오도록 할것이라 한다. 이곳에서 좀 떨어진 티벳쪽 라사 샹그릴라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중전에 공항을 신설할 계획이란다.

공항에 도착하여 긴시간이 흐른다. 분명 21시 30분 뱅기 일텐데 시간이 가까워 와도 기척이 없으니 답답하다. 출발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이드가 와 우리가 타고갈 뱅기가 청도에서 오는 것인데 그곳을 1시간 늦게 출발했다고 알려 온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당연히 그만큼 늦어 지는 것이다. 공항대합실에는 의자가 없어 상당히 불편하다. 뒤늦게 도착하여 우리보다 뒷비행기를 타는 분들도 안으로 들어 가는 이유를 입국수속을 하고 들어가서야 알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의자도 많고 분위기도 좋다. 여강에서 곤명으로 가는 비행기는 1시간 10분이 늦게 출발한다.

 

곤명공항 23:50 ~01:30

여강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과속을 했나 40분 만에 도착을 했다고 여행사 이사장님이 말한다. 다행히 우리가 인천으로 타고 갈 비행기도 50여분 늦어서 크게 시간에 쫒기는 일은 없었다. 여강공항에서 올때는 한가 하더만 곤명에서 인천으로 가는 출국장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드디어 비행기가 도착을 했나 문이 열리며 한번 두 번 세 번에 걸려 차량으로 비행기 까지 이동을 시킨다. 한번에 100여명을 승차 시카는것 같다. 드디어 비행기는 영시가 조금 못되어 곤명공항으로 떠오른다.

 

마지막 6일차

인천공항 도착 6:10 ~6:50

곤명공항에서 비행기 하늘로 올라 안전을 되찾은뒤 기내식이 나온다. 간단한 것이니 저녁을 먹고 나서도 그냥 뱃속으로 들어간다. 맛은 별로다. 식사를 하고 음료수를 얻어 먹는 시간에 물이나 달래서 마실걸 사이다를 청했더니 이건 뭐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씌운다. 에고 사이다를 청한 내가 잘못이지 뱅기 승무원이 무신 잘못일까!! 안전부절하는 승무원에게 괜찬다고 안정을 시키고 뒤집어 쓴 사이다를 닦아 낸 후 마시는 사이다 맛이 좀 씁쓸하다.

이제 눈이 감겨 온다. 한잠을 자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온몸이 뒤틀린다. 눈을 떳다 감았다 하며 가는 사이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제 곧 인천공항에 착륙을 하게 되니 안전밸트와 전자기기의 전원을 꺼달라는 것이다.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40여분이 늦은 6시10분에 착륙을 한다. 차창 밖으로는 빗방울이 부딪치고 을씨련스런 날씨에 다시 한번 여행기간내내 좋았던 날씨에 감사를 한다.

 

화성휴게소 8:20 ~9:10

인천공항에서 짐을 찾고 빠져 나오는데 40여분이 소요 된듯하다. 우리가 타고 갈 청주에서 온 버스가 건너편 도로에 있어 사장님이 돌아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10여분이 걸려 도착한 버스에 승차하여 인천공항으로 올적 저녁식사를 먹던 화성휴게소에 들려 아침식사를 한 후 청주로 향한다.

 

청주 도착 10:30

화성휴게소에서 출발하여 1시간 20여분이 걸려 청주에 도착하여 첫 번째로 복대동 팀이 내리고 사창사거리에서 내려 각자 집으로 돌아가며 이번 여행은 막을 내린다.

출발하며 날씨가 좋기 시작하여 인천공항까지 오도록 쾌청한 날씨는 옥룡설산의 은용의 보살핌인지 아니면 동파만신원의 여러신들의 보살핌인지 어쨌든 좋은 여행할수 있도록 도와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 한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