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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554 천마산287m~천호산377m (계룡,논산) 2011.4.15.금요일 흐린후 맑음

천마산287m~천호산377m (계룡,논산)

2011.4.15.금요일 흐린후 맑음

참석인원 ; 홀로

 

청주 6:55 -조치원역 7:20 ~7:31 -계룡역 8:16 ~8:20 -천마사입구 8:45 - 천마사에서 우측 샛길로 -능선 이정표 9:00 -삼각점봉(248봉) 9:02 -금바위 정자 9:19 ~9:24 -안부사거리(좌 신성,우 보덕사) 9:28 - 좌 농소리 하산로(철탑) 9:33 -천마산 정상 9:36 -농소리 하산로 9:42 -산소 있는봉 9:45 -임도 사거리 9:53 - 윗대실고개 10:00 - 우 하산로 10:10 -철탑 10:11 -삼각점봉(304.8봉) 10:28 ~10:34 -안부사거리(좌 능소리, 우 개태사) 10:38 -좌 수복리,회음리 하산로 10:43 -좌 수복리 하산로 10:51 -가파르게 올라 - 우 개태사 하산로 10:58 -수복리 하산로 11:00 - 천호산 정상(좌 수복리) 11:03 ~11:39 (중식) -우 화악리 하산로 11:47 -우 양지서당 하산로 11:57 - 소나무봉 12:08 -대목재 12:16 -경찰사격장 12:29 -연산역 13:10 ~14:33 -조치원역 15:32 -청주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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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계룡의 유래

천황봉을 비롯해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으며,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이라고 불린다

계룡산을 배경으로 마을이 자리잡았으니 계룡산의 이름을 따서 계룡이라 불렀다.

 

2.계룡의 전설

금암동에 금암(암소바위)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옛날에는 연산군 두마면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금암동 천마산 중턱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큰 바위가 한 가운데를 칼로 갈라놓은 것과 같이 잘려져 있는데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이 있다.

때는 고려 중엽, 외세의 수차 침략으로 국가기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승려들까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연산 천호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은 백제 신검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고 고려를 창건함에 따라 고결의 국운을 크게 연다는 뜻의 개태사라는 절을 지어 차후 승리의 기념과 국운 융창을 빌게 하고, 산남지방 유사시 병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태사에 수천 명의 승려를 두었다. 국력은 날로 어지러워지고 개타사의 세력이 강성해져 국가의 명령에 복종치 않고 승려들이 작당하여 인근 촌가를 습격 약탈하고 부녀자까지도 겁탈하는 횡포가 날로 심하였다.

이를 보다 못해 관군이 출동하여 바로 잡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패하니 할 수 없이 이 사실을 나라에 상소하니 왕이 이를 바로 잡고자 수차 관군으로 이 절을 치게 하였으나 패하기만 하니 승려들은 더욱 강성해져 횡포가 더욱 심하였다. 개태사의 횡포로 인근 주민들이 살 수가 없게 되니 왕께서 크게 근심하여 개태사를 칠 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다. 이때 한 장수가 지원하였다. 그 장수는 최일 장군이었다. 최일 장군은 왕명을 받고 군사를 거느리고 연산 개태사에 도달하여 진영을 정비하고 개태사를 부근에 이르러보니 안개가 자욱하여 싸움을 할 수 없어 최일 장군은 하는 수 없이 퇴각하여 30여리 떨어진 노성방면에 진을 치고 부하 몇 사람을 데리고 개태사 뒷산에 올라 이 절의 동정을 살폈으나 안개로 인하여 절의 사정을 파악할 수 없어 최일 장군은 이 사실을 왕에게 상소하였다. 어느 날 최일 장군이 말을 타고 개태사를 향하여 가던 중에 있었다. 때는 산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따스한 봄날이라 논과 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금암리 앞에 이르니 한 농부가 검은 암소로 논을 갈면서 "이 놈의 미련한 소야! 최일 장군 만큼이나 미련하고 어두운 소이구나"하며 논을 갈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최일 장군은 말에서 내려 논을 가는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내가 바로 최일 장군인데 어찌해서 소를 보면 나같이 미련하다고 합니까?" 농부는 깜짝 놀라며 "아 당신이 최일 장군이십니까? 미안합니다. 장군께서는 아무리 개태사를 치려고 하나 저 천마산 중턱에 있는 암소바위가 개태사를 보호하고 있어 이 절을 치려하면 안개가 끼게 하여 절을 보호하니 암소바위를 칼로 내려 친 다음 개태사를 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농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최일 장군은 신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마음으로 감사한 후 금암리 천마산 암소바위에 올라가니 과연 집채만한 바위가 있었다. 최일 장군은 장검을 빼어 암소바위 한복판을 내려치니 바위가 갈라지면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최일 장군은 구대를 휘동하여 개태사에 이르니 거짓말처럼 연일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최일 장군은 일경에 개태사 승려들을 토벌하여 인근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였다.

이 암소바위 뒤 탕건바위 있는 곳에 하(河)씨들이 피난하였다는 바위굴도 있으며 용이 바위 뒤를 통과하여 용의 흔적도 있고 사람의 시신처럼 보인다 하여 송장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도 있다. 이와 같이 여러가지 바위들이 있다 하여「금암(金岩)」이라 부르고「금바위」라고도 부른다.

 

3.계룡의 발전상황

면적은 60.68㎢이며, 인구는 3만 1643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동, 2개 면으로 되어 있다.

교육시설은 유치원 6개, 초등학교 4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사찰 11개, 천주교성당 1개, 개신교교회 26개, 원불교교당 2개, 기타 3개가 있다

체육시설로는 골프장 2개, 국궁장 1개, 테니스장 6개, 수영장 1개, 사격장 1개가 있다

의료시설은 보건소 1개, 보건지소 1개, 병원 1개, 일반의원 15개, 한의원 7개, 치과의원 7개, 약국 19개 외에 24개의 보육시설이 있고, 계룡복지센터, 모자보호시설, 계룡청소년상담실 등 복지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계룡의 산(계룡·향적산,천마산등)

계룡산과 향적산, 천마산 등이 감싸고 있는 계룡시는 말 그대로 상록 도시이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고 유구한 세월을 동고동락한 역사의 산증인 인 계룡의 산. 이들 산에 대해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가급적 자제하고 인간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 개발이 상록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계룡시에 우선시 되고 있다. 역사의 숨결이 살아 꿈틀대는 계룡의 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잘 가꿔 후손에 물려주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일 것이다.▲계룡산 (천황봉)계룡산의 주봉이자 배달민족의 영봉인 천황봉은 해발 845.1m로 국운을 굽어 살피고 있는 듯한 자세로 산의 경관이 수려, 삼국시대부터 백제를 대표하는 영산으로 알려져 있다.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정상에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 하늘에 제를 올리는 산제단(山祭壇)이 있고 이 곳에 서면 신선이 노니는 듯한 계룡산의 전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는 계룡산이 그다지 높지 않아 운무(雲霧)가 별로 없고 주변의 산들이 상대적으로 낮아 시야를 별로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계룡시 어디에서 보아도 선뜻 이마에 닿을 듯이 솟아 있는 천황봉은 계절따라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 변화무쌍함은 대자연의 신비 자체로 웅장한 산봉우리 위에 찬란한 해가 솟아 오르면 보는 이의 가슴에 용기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해 계룡시는 매년 이 곳에서 새해 첫 날 해맞이 행사를 열고 있다.천황봉은 자태가 백성을 품안에 안고 있는 제왕의 모습이라 하여 상제봉(上帝峰)이라고도 했으며, 상봉(上峰) 혹은 제자봉(帝字峰) 이라 불리기도 했다. 제자봉은 부남리와 석계리 뒤편에 있는 산봉우리를 지칭하는데 이 봉우리를 경계로 암용추와 숫용추가 좌청룡, 우백호의 전설을 품고 있기도 하다.또 대궐터의 주봉이기도 했던 제자봉은 신도안 신흥종교가 번성했을 당시 교주들과 신도들이 가장 신성히 여겨 수시로 찾아 간바 있으며 무속 ,민속종교 등의 교인들과 등산객들의 기도장소로 인기가 높았다.하지만 현재는 이 곳 일대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출입에 제한이 있으며 예전에 이곳을 즐겨 찾던 산악인들은 지금까지 그 향수(鄕愁)를 잊지 못하고 있다.한편 천황봉 정상에는 1948년에 설치한 철탑이 우뚝 솟아 미관을 저해하고 있다. 이 철탑의 제거와 함께 일상적인 등산로의 개방은 우리가 머지않아 풀어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향적산 (국사봉)계룡산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등산코스로 유명한 국사봉은 종교연구가에게 있어 제2의 신도안이자 한국 최고의 무속촌이었다.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도읍을 정할 때 친히 올라가 국사를 논했다하여 국사봉이라 유래된 이 곳은 두마면 향한리와 도곡리 일대의 산으로 계룡산맥의 남쪽 능선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이다.해발 574m로 일명 향적산(香積山)이라고도 불리는 국사봉은 향기로운 땀이 쌓여 있는 산이자 공부와 도를 깨우치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곳으로 알려져 왔다.또 국사봉에는 일부(一夫) 김항 선생이 정역(正易) 공부를 하였다는 거북바위와 용바위가 있고 맨재소류지 위쪽으로는 국제선원 무상사가 자리잡고 있다.국사봉을 오르면 멀리 동쪽으로 대전시가 한눈에 들어오며, 가까이 눈 아래로는 계룡대와 계룡시가지가 훤히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는 연천봉 능선이, 북쪽으로는 천황봉과 머리봉이 지척이며, 남쪽으로는 연산면으로 뻗어나간 국사봉 능선이 용의 허리와 흡사한 모습으로 굽이쳐 있다.한편 국사봉 정상에는 오(五), 화(火), 취(娶), 일(一) 등 네 글자가 음각된 오행비와 함께 천지창운비라는 비석이 있는데 이 비의 크기는 2m정도로 동서남북 각 면에 천계황지(天鷄黃地), 불(佛), 남두육성(南斗六星), 북두칠성(北斗七星)이란 글씨가 각각 새겨져 있다.이는 한반도가 1000년 이상 동방예의지국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단군성조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국사봉의 맨재골 최상단에는 약수와 같은 샘물이 난다하여 약수암이 있고 이는 논산, 연산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이와 함께 계룡지역에는 지역민들이 쉽게 찾고 있는 천마산이 금암동을 아우르며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천마산 정상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수려한 천마산을 쉽게 볼 수 있고 동쪽으로는 계룡시 금암 신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며 서남쪽으로는 백제 계백장군의 충혼이 어린 황산벌이 멀리 보인다.천마산 서편 기슭으로 왕건이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개태사가 자리하고 있는 등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이처럼 어느 한 곳 민족 역사와 숨결이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게 계룡의 산이다. 계룡의 산을 제대로 보존하고 소중히 가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계룡=이영민 기자>

 

계룡산 천마산 암소바위 유래 화제

[계룡]계룡시 금암동 천마산 팔각정 옆 바위가 암소를 닮아 화제가 되고 있다.암소바위라 불리는 이 바위 옆에는 바위에 대한 전설이 입간판에 기록되어 있고 계룡시청 홈페이지에도 유래가 실려있는데 이 바위의 전설과 관련 입간판의 내용과 시청 홈페이지의 내용이 다르나 소재(암소바위)는 같은 것으로 되어 있다.입간판에 실려있는 전설의 내용은 고려시대 개태사를 점령하려던 한 장군이 구름과 안개로 앞을 가리는 늙은 도인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자 장검을 내리쳐 그때 동강난 바위가 ‘암소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이처럼 전설을 갖고 있는 암소바위에 대해 금암동에 사는 강모씨가 연구에 들어갔다.강씨는 암소바위가 실제 소의 형상과 매우 흡사 문화적 가치로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강씨는 암소바위에 대해 모은 자료를 지난 2월 문화재청과 계룡시에 제출하고 문화재로서의 가치 유무에 대한 질의를 했으나 학자가 아닌 개인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현장 조사를 펼 수 는 없으며 좀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답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강씨는 “문화재청이나 계룡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조사를 벌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영민 기자>

 

천마산

동쪽으로는 계룡시 금암동 신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서남쪽으로는 백제계백장군의 충혼이 어린 황산벌이 멀리 바라다 보인다. 또한 서편 기슭으로는 왕건이 하늘의 도움으로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개태사가 자리하고 있다. 천마산 정상에는 천마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조망이 좋다.

 

천호봉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에 걸쳐 있는 산.

• [명칭유래]

• 산이 용마루 같이 길게 6㎞ 가량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갔으므로 누르기재, 또는 황산(黃山)이라고 하였는데, 고려 태조 왕건 후백제 신검 일리천에서 크게 이기고, 계속 추격하여 이 곳에 이르러 항복을 받아 마침내 삼한을 통일하여 고려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도와주신 산이라 하여, 천호산으로 고치고 산 밑에 개태사(開泰寺)를 크게 지어 고려 왕조의 무궁함을 빌게 하였다고 한다.

• [자연환경]

• 천호봉은 높이 352m이며, 논산시 시가지로부터 동쪽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옥천층군변성사질암층에 해당하며, 주로 규암, 석영, 흑운모, 장석 및 오매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근의 지질은 복잡한 편인데 산의 북쪽과 서쪽은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은 그라노파이어 및 산성암맥류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은 남북 방향으로 천호산은 능선의 북쪽에 해당하고 있으며, 능선의 남쪽으로는 구고운재, 대목재, 횡령재, 함박봉, 깃대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의 서쪽은 연산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며 이 골짜기를 지나 함지봉이 자리잡고 있다.

• [현황]

• 천호봉 논산시 연산면과 계룡시 두마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개태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개태사는 936년(태조 19)에 고려 태조가 창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퇴락하여 폐사로 있던 것을 1930년 김광영(金光榮)이 새로 짓고 도광사(道光寺)로 이름을 고쳤다가 다시 태광사(泰光寺)라고 하였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19호인 개태사지 석불입상, 충청남도민속자료 제1호인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 의 개태사 철확(鐵鑊),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47호인 개태사 오층석탑과 제275호인 개태사 석조가 있다. 천호산의 서쪽에는 국도 1호선, 국도 4호선 호남선 철도가 남북 방향을 따라 달리고 있으며, 기타 도로들이 각 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높이는 360m이다. 원래 이름은 황산이었으나 고려 태조가 이곳에서 후백제의 신검을 무찌르고 하늘이 고려를 보호한다는 의미로 개칭하였다고 하며 누르기재라고도 한다.후백제의 견훤이 아들 신검과의 불화로 생을 마감했던 황산불사(黃山佛寺)와 고려 태조가 창건했다는 개태사(도광사), 백제 계백장군의 5천 군사가 신라의 김유신 장군 군사에 맞서 싸우던 황산벌이 있다.개태사에는 개태사지 석불입상(보물 219), 개태사 철확(충남민속자료 1), 개태사5층석탑(문화재자료 274), 개태사 석조(문화재자료 275) 등 고려 초기의 문화재가 많다.산행은 개태사를 지나 천호리에서 시작한다. 천호리 뒷산 산등성이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면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서는 논산시 공주시가 내려다보인다. 하산은 정상에서 되돌아내려와 천송암으로 내려온다. 찾아가려면 논산역이나 논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덕성여객버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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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역 8:16 ~8:20

집에서 6:55분 출발하여 조치원역에서 7:31분 열차를 타고 계룡역에 도착하니 8:16분이다.

 

천마사 입구 8:45

계룡역 앞에는 팥죽거리 유래가 적힌 비가 있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조선초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에 궁궐을 축조 할때 동원된 인부들에게 팥죽을 팔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두계리 일원이 콩,팥,녹두 재배가 잘되어 팥 두(豆), 마을촌(村)을 써서 두계(豆溪)로 이 지역 전체를 팥갈이로 부르고 있으며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에 속한다. 매년 10월 팥거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팥죽을 나누어 먹으며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계룡역 앞을 출발하여 걷다보면 6~7분후 다리가 나온다. 이다리가 팥죽다리다. 팥죽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 양정삼거리 쪽으로 15분여를 걸어가면 좌측으로 경충사와 천마사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오르면 조선초기의 충신인 이심원의 정려 현판이 있다. 이곳에서 좀더 오르면 천마사가 나온다.

 

팔각정 9:19 ~9:24

천마사가 나오면 담에서 우측으로 골목이 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오래된 이정표가 있다. 전망대 1200m, 체육시설물 880m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가면 10여m 후 길이 위로 오른다. 오르는 길가에 진달래가 곱게 피엇다. 천마사에서 10분을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양정삼거리옆 경찰 지구대에서 올라온 길과 만난다. 양정 0.39km, 천마사 0.22km, 팔각정 0.97km라 적혀 있다. 이정표에서 2분을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봉으로 248봉이라 적혀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시청에서 올라온 길이 있다. 248봉에 올라서면 양정쪽의 조망이 좋다. 그넘어에 향적산이 자리잡고 있다. 팔각정은 이곳에서 우측길로 살며시 내려서는 길로 간다. 아담한 크기의 돌 옆을 지난 후 좌측 배골과 우측 유동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좌측 작은 암릉에는 잔돌을 올려 놓았다. 이지점을 지나 오르면 체육시설이 있는 곳이다. 등산로는 상당히 넓은 것이 좋다. 평소 계룡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산책코스로 오늘도 마주치는 님들이 많다. 또한 금남정맥길로 북으로는 계룡산, 남으로는 대둔산으로 있는 중간지점으로 능선의 좌우로 조망이 그런대로 괜찬다. 체육시설에서 5분을 더 가면 팔각정이다. 팔각정 부근은 바위 지대로 북쪽편으로 계룡시가지가 훤이 보이는 곳이다. 이곳을 금바위라고 하는 가보다. 한쪽에 금바위의 유래에 대한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연산 개태사 주변에 도술이 비상한 도인이 살고 있었으나 도술을 좋은 일에 쓰지 않고 나쁜일에 써 주민들을 괴롭혔다 한다. 조정에서는 그를 잡아 들이기로 하고 군사를 풀었으나 도인은 도술을 부려 군사들 눈앞을 구름과 안개로 한치 앞도 못보게 하였다. 군사를 이끌고 온 장수는 듣던대로 도술이 비상하구나 하고 물러 났다. 치욕감을 느낀 장수는 도인을 꼭 잡겠다고 다시 전략을 세워 군사를 이끌고 언덕에 오르자 또 다시 구름과 안개가 앞을 가려 도저히 앞으로 나갈수 없었다. 장수는 이때 장검을 빼들고 안개속을 내리쳤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안개가 걷히고 앞이 훤히 트인것이다. 자세히 앞을 보니 큰바위가 두동강이 나있었다. 장군은 개태사를 점령하고 도인을 잡아 중벌을 내렸다. 그 때 동강난 바위를 암소바위라 한다.”

팔각정에서 보는 계룡시의 조망이 참좋다.

 

천마산 정상 9:36

팔각정에서 출발을 하여 4분후 좌측 신성아파트와 우측 보덕사로 하산로가 있는 안부사거리를 지나고 다시 오르면 5분후 철탑이 있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능소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능소리 하산로를 지나 다시 3분을 더 가면 천마산 정상에 닿는다. 천마산 정상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있고 돌무더기 앞에는 금남정맥에 대한 글이 있다. 금남정맥은 무주의 주화산에서 북서로 뻗어 계룡산에 이르고, 계룡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까지 약 118km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정상석은 없으며 이정표에 붉은 글씨로 쓴 정상사각판이 붙어 있다.

 

삼각점봉(304봉) 10:28 ~10:34

천마산에서 6분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농소리로 내려서는 안부를 지나고, 다시 3분여를 오르면 산소가 있는 봉을 지난다. 이제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르면 8분후 노란 개라니가 피어난 임도에 닿는다. 임도는 좌우로 넘어가게 되어 있으며, 좌측으로는 농소리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다시 살포시 올라 섯다 내려서면 농토가 보이는 고개에 닿는다. 소나무를 재배하는 밭도 있고 부서진 집이 한 채 평탄한 고개에 있으며 좌우로 계곡이 길게 보인다. 좌측으로는 윗대실마을로 가는 길이다. 우측은 화악리쯤 되겠다. 널직한 비포장길을 따라 조금 가면 좌측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오르는 길 입구의 이정표에 천마산1.2km, 천호봉 2.8km가 적혀 있다. 입구에서 오르는 길양편으로는 과수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10분쯤 오르면 우측으로 길이 하나 있고, 1분을 더 가면 철탑아래를 지난다. 다시 6분을 올라서 봉에 오르면 이제 부터는 평탄한 길로 이어진다. 평탄한길이 끝나고 조금 가파르게 올라서게 되면 잠시 쉬어가라고 의자가 놓여 있는 봉이 나온다. 이곳 의자가 있는 지점에서 봉을 좌측으로 우회를 하여 간길이 있고 봉으로 오른길이 있다. 봉으로 오르면 삼각점이 있으며 준.희님이 걸어 놓은 금남정맥 304.8m 사각판이 있다. 조망은 없다.

 

천호산 정상 11:03 ~11:39(중식)

삼각점봉에서 4분을 내려서면 안부가 나온다. 우측으로 개태사로 가는 길이 있으며 조금더가면 좌측으로 농소리로 하산하는길이 나온다. 안부에서 서서히 오르면 좌측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좌측 능선으로 수복리와 회음리로 가는 길이 있으며, 다시 8분여를 더 가면 좌측으로 수복리로 하산하는 길이 한번 더 있다. 이곳부터 길은 가파르게 올라서게 되며 올라서는 능선 끝에서 우측으로 개태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이곳부터 능선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2분여를 더 가면 수복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또 있으며 이곳부터 조금 가파르게 오르게 되면 3분후 천호산 정상에 닿는다. 천호산 정상에서도 수복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천호산 정상에도 정상석은 없으며 이정표에 붉은 글씨로 천호산이라쓴 사각판이 붙어 있다. 이정표의 꼭대기에는 낡은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으며 벌곡 쪽으로 조망이 트였으나 부연한 날씨 탓에 확연히 보이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점심식사를 한 후 출발한다.

 

대목재 12:16

천호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르면 8분 정도 후 우측으로 화악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으며 다시 10분을 더 가니 우측으로 양지서당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이후로 길은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하며 간다. 양지서당으로 내려서는 길 후로 엔돌핀길이라쓴 동그란 이정표가 있고 이후 소나무가 있는 봉에 닿은 후 8분을 내려서니 팔각정이 있는 봉 바로 아래에 대목재가 나온다. 대목재에서는 좌측으로 대목리, 우측으로 사격장으로 내려선다.

 

연산역 13:10 ~14:33

대목재에서 우측 사격장 쪽으로 내려서면 길이 그리 가파르지 않고 서서히 내려서게 되며 13분후 경찰사격장에 닿는다. 사격장 아래로 전경막사가 있으며, 다시 5분여를 내려가면 경찰초소 앞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지하통로를 빠져 나와 초소앞을 거쳐 도로를 따라 가면 연산역에 닿는다.

 

오늘 계룡역에서부터 시작 하여 연산역까지 오는 길은 평탄한 산행길로 산책하는 기분으로 몸을 푸는 정도의 산행의 길이 었다. 전에 한번 다녀온 바랑산까지 가고싶지만 오늘 오후 마나님께서 벚꽃구경을 가자고 하니 긴 산행을 할수도 없고 하여 짧막한 금남정맥길중 전에 계룡역에서부터 시작하여 향적산 계룡산으로 하여 박정자까지 돌아본 후 이곳을 지나며 눈여겨 보던 계룡산과 대둔산 중간에 있는 천마산~천호봉코스를 간단히 마치고 집으로 귀가를 한다.

 

산행시간 ; 4:50분 소요

산행거리 ; 천마사~송정검문소 ; 9km

(계룡역 ~천마사; 2km, 연산역 ~송정검문소 ; 2.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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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천호봉 계룡, 논산

조치원 7:31 -서대전 8:02 -계룡 8:16

조치원 8:22 -서대전 8:56 -계룡 9:11

조치원 8:43 -서대전 9:12 - 연산 9:39

조치원 9:11 -서대전 9:43 -계룡 9:58 -연산 10:10

 

연산 17:01 -서대전 17:28 -조치원 17:58 (연산 14:33, 14:58)

계룡 14:46 -조치원 15:32

계룡 16:26 -조치원 17:14

계룡 17:13 -조치원 17:58

계룡 17:45 -조치원 18:34

 

계룡역 ~신계룡지구대 ;2.7KM

계룡택시 042-841 -7754 ,0909

 

연산역 ~연산삼거리 : 3.43km

연산택시 ; 041 -735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