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도 비조봉~운주봉~국수봉 (인천 옹진군)
2010.5.10.월요일 맑음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천안역 6:21 -수원역 7:02 ~7:04 -금정역 7:21 ~7:23 -안산역 7:47 ~8:32 -버스(1300원) - 방아머리선착장 버스정류장 9:15 -방아머리 선착장 9:23 ~9:30 -자월도 10:40 -덕적도 도우선착장 11:27 -진리 등산로 입구 11:51 ~11:53 -좌측 약수터삼거리 이정표 12:02 -망제봉,비조봉삼거리(능선) 12:13 - 비조봉 정상 12:21 ~12:33 -다시 망제봉,비조봉 삼거리 12:38 -삼각점(바위봉) 12:43 -망재 12:47 -운주봉 12:50 ~12:52 -맨발등산로 13:00 -서포리 하산로 13:06 -서포리전망대이정표 13:11 -전망대 13:13 -전파기지국 13:15 -삼거리봉(산소) 13:25 -쉼터봉 13:33 -우측하산로 13:45 -이정표(북리,전파기지국철탑 2km) 13:55 -쑥고개 14:00 ~14:18(중식) -전망대 14:30 -국수봉 14:40 ~14:42 -북2리(해경파출소) 15:10 ~15:16 -봉고차(2만냥) -자갈마당 15:20 ~15:35 -도우선착장 15:47 ~16:00 -방아머리 선착장 17:54 -버스승강장 18:01 ~18:15 -안산역 18:53 ~19:04 -금정역 19:30 ~19:34 -수원역 19:53 ~19:55(3분연착) -조치원역 20:55 -청주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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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도는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으며 신석기시대 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함에 따라 소속이 바뀌어 고려 현종9년에 수원의 속군으로 성종 17년(1486년) 인천도호부로 이속되었다가 1914년 부천군에 편입되어 면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1973년에 옹진군에 편입하여 현재 편재로 있게 되었다고 한다. 덕적도란 뜻은 큰 물섬이라는 우리말을 한자화 한 것으로 큰물이란 깊은 수심 깊은 바다에 있는 섬이란 뜻이다. 덕적도에는 3.1운동에 앞장섰던 임용우 선생의 기념비가 있고 2개의 해수욕장과 1개의 자갈해변이 있다. 경관이 뛰어난 섬 전체가 관광자원이며 섬곳곳에 원두충나무를 많이 식재하여 재배하고 있고 해수욕장 길이는 2km에 폭500m 이며 서포리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며 깨끗한 모래와 백사장 뒤로 백년 이상된 1천 그루의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으며 백사장이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유인도 8개, 무인도 34개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로 수도권과 인접한 관광개발의 적지이며 능동 자갈마당은 말 그대로 기암괴석과 주먹만한 돌맹이, 공기돌 처럼 작은 자갈까지 빽빽하게 깔려 있어 해변과는 또다른 풍경으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서해안의 낙조를 볼수 있어 더 더욱 아름다운 곳이며 1977년 3월 31일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유인도 8개는 덕적도,소야도,문갑도,굴업도,지도,백아도,울도,선미도의 8개 섬이다.
덕적4경은 백아도의 선단여, 서포리 해수욕장앞에 있는 문갑도와 백아도 사이에 떠있는 곰바위, 덕적도내 인가와 떨어져 있는 아초지대에서 조수를 타고 유영하는 우럭과 놀래미등 암근의 구멍에 숨은 물고기등을 대상으로 하는 호쾌한 낚시, 진말해안과 밧지름,소재,이개의 갯벌이 드넓은 평야 처럼 펼쳐져 있어 갈고리와 호미만 있으면 바지락을 양동이 하나 채우기 어렵지 않은 갯벌체험이다.
덕적도 비조봉(飛鳥峰/292m)
덕적도(德積島)는 본디 우리말로 ‘큰물 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덕적도의 덕(德) 이라는 한자는 흔히 베푼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선행과 복,행복을 의미 한다. 사람으로 치면 모든 이에게 가슴을 열고 사랑을 베풀어 주는 그런 큰사람이다. '적(積)‘은 곡식 등을 비축한다는 뜻을 지닌 ’쌓을 적이다. 곡식을 쌓듯 덕을 쌓는 사람이니 ‘큰사람’,‘된사람’인 셈이다.그러니 덕적도는 속이 깊은 사람처럼 ‘큰물’, 깊은 물‘, 즉 수심이 깊은 섬이란 뜻을 지닌 섬이다. 경관이 빼어난 2개의 해수욕장과 야생화와 함께 펼쳐진 아름다운 몽돌해변, 주변의 낚시 포인트인 작은 섬을 달고 있는 섬, 덕적도. 적당히 어우러진 들판과 푸른 산세 그리고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면서 이곳을 찾는 도시민들에게 드넓은 바다의 풍광과 갯벌 체험을 동시에 만끽하게 해주는 낭만의 섬, 환상의 섬이다. 덕적도는 나름대로 역사를 지닌 섬이다. 선조들이 한강 하류로 나룻배를 타고나와 인천항에서 중국 대륙을 향할 때 그 뱃길의 교두보였다. 지금도 서해안시대의 상징인 인천 앞바다의 뱃길을 열어주고 있는 섬이다. 반대로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칠 때 산둥반도에서 덕적도 항로를 타고 들어왔을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이다. 물론 지금도 동북아의 물류 요충지, 군사요충지,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다하고 있다.
덕적도에는 국수봉,비조봉,운주봉등 크고 작은 봉우리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능선으로 연결돼 있다. 바다 쪽으로 붙어 있는 비조봉(292m)은 옹진 섬 산행의 백미이다. 산행코스는 정상을 중심으로 서포리 코스, 밭지름 코스, 진리선착장 코스 등이 있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지 2시간 가량 소요 되는데 트래킹하는 기분으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비조봉은 나무가 울창해서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삼림욕도 겸할 수 있다. 둥글레나 산나리 같은 자생식물들이 지천일 만큼 손때가 덜탄 산이다. 산 속의 고요. 어찌나 적막한지 마을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왼쪽 바다 오른쪽 바다를 번갈아 감상할 수 있다. 쉬엄쉬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조망점이 곳곳에 있어 산행은 지겹지 않다. 해풍에 실려온 바다 맛인가 내 몸에 흐르는 땀의 맛인가. 짭짜름한 소금기가 입에 스며들 때쯤이면 어느덧 정상이다. 꼭지점에 서면 확트인 발아래로 펼쳐진 쪽빛바다에 눈이 시리다. 굴업도, 백아도, 소야도, 문갑도… 옹기종기 딸린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배들이 흰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달리는 모습. 발가락처럼 툭 튀어나온 섬의 굴곡을 간질이는 흰 파도… 한 폭의 수채화가 그대로 그려진다. 비조봉 산행의 압권은 해질 무렵에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놓칠 수 없는 비경이다. 검푸른 바다에 진홍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장엄한 노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숨을 멎게 한다.인천 연안부두에서 남서쪽 80㎞ 지점에 위치한 ‘덕적도’는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며 질주하는 초고속선으로 불과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경사가 완만한 30만평의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해송, 해당화가 운치있는 서포리해수욕장에 노송 숲과 얕은 수심으로 아이에게 걸맞은 밭지름해수욕장이 있다.
덕적도 운주봉 비조봉에서...
• 연안여객터미널~덕적도(인천시민50% 운임활인)
• 운주봉~비조봉-국수봉~북1리 8.5km 4시간
• 진1리 진말에서 비조봉까지0.89km 비조봉에서 운주봉까지 0.69km 약1.5km 거리, 비조봉 등산길은 수백년 된 울창한 숲속을 따라 약1시간(7km)가량 소요되는 등산로이며 최근에 등산애호가 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물론 한바퀴 휘돌아 원점 회귀를 말한다
• 비조봉을 거쳐 운주봉을 따라 기지국 철탑을 지나 북리마을 에서 서포리 해안으로 이어진 도로를 횡단하여 국수봉을 거쳐 능동으로 하산하려 하였으나 국수봉(314m) 에서 능동으로 내려서는 등산로 표시가 없다.등고선 지도가 없는 탓에 경사도를 알수가 없어 북2리에서 서포리 횡단 도로로 내려서기로 했다.북2리 명신 경로당까지 걸어갈수 밖에 없다.애초에 다시 역으로 되돌아오려 했으나 산에 널려 있는 둥글래 뿌리를 캐느라 시간이 지체하고 4시정도까지 도착 하여야 넉넉한 자연산 회를 즐길수 있을것같아 중간에 접기로 했다.
• 출발 장소에서 오늘 일정을 대략 계획을 세우고 도우 선착장을 출발하여 농협 덕적지소,덕적 우체국을 지나면서 바라보니 해안가에 심어져 있는 송림이 즐겨 맞는다.잠시 길을 따라가면 기미년 독립만세 3.1운동에 앞장섰던 임용우선생의 기념비가 있다.비 안내문에는 기미년4월9일 임용우,이재관,차경창 선생님들의 주도하에 독립만세를 불렀던 자리로 1979년4월9일 덕적 면민및 덕우회 일동이 비를 세웠다고 적혀있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떠나 비조봉1.5km라는 등산 안내판을 만난다.
• 오르는 길은 등산로 정비가 되어 있었고 송림속을 약간 거닐다 보면 아주 작은 암릉길이 나타나면서 정자가 눈에 띈다면 비조봉이다.시야가 막혀 있어 안내판과 망원경을 설치해놨지만 흐린날씨덕에 조망은 틀렸다 싶다.이곳에서 서쭉으로 보면 서파리 해수욕장을 눈앞에 두고 울도,백아도,굴업도,등 작은 섬들이 눈앞에 희미하게 보이지만 맑고 투명한 날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을텐데 아쉬움을 던져놓고 있었다.정상주 한잔 나누고 간식도 챙겨넣고 운주봉으로 향한다.12시20분 경이다.이곳에서 파주에서온 산악회 회원들을 만났다.잠시 대화후 운주봉으로 방향을 잡는다.운주봉은 비조봉에서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가 (100m정도) 동북쪽으로 0.7km정도 거리에 있다. 운주봉 가는 길은 사람이 많이 다녀갔을것 같은데 숲이 습기가 많아서인지 송림이 우거지고 수풀이 우거져 깊은 산속을 연상케한다.때묻지 않은 자연이 그곳에 있었다.아마도 근래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것 같았다.운주봉 가는 길엔 발 지압을 돕는 지압설치 구간도 있었다.송림사이로 걸어가니 마음이 그냥 좋다.담쟁이 넝쿨처럼 나무마다 기어올라 전체가 거대한 숲속을 연상케한다.운주봉에 도착한다.1시20분경이다. 먼저 부지런이 걷다보니 아직 일행이 오지 않아 쉼터 의자에 누워 하늘을 본다.찌뿌린 하늘이 점차 개이고 있었다.오후에 비가내린다더니 섬이라 일기예보가 틀리나? 서서히 지나면서보니 바닷가 해변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운주봉에서 북쪽으로 계속 가면 기지국 철탑이 나온다.기지국 철탑 가는 길에 용솔나무가 있었다.왜 용솔인지는 모르나 높이가30m 둘레가1.5m 수피는 적 흑갈색 5~6월에 황색의 꽃이 핀다고 한다.용솔나무뜻을 몰아 지식인서 찾아보니 소나무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 용솔나무라는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참고로 우리 토종 소나무는 지역 특성이나 수관, 수간, 침엽특성 등에 따라 몇 가지 품종으로 구분된다. 줄기가 갈라지는 모양에 따라 반송(盤松) · 다행송(多行松) · 쌍둥이솔, 솔잎의 색깔에 따라 백발송(白髮松) · 뱀솔(蛇松) · 범솔(虎松) · 황금송(黃金松) · 은송(銀松) · 누백송 (樓白松) · 홍금송(紅錦松), 솔잎의 모양에 따라 용솔(龍松) · 학송(鶴松) · 재솔(灰松)·원송(원송) · 가는잎솔(細葉松), 수고에 따라 난장이송(玉松) · 미송(美松)·바위솔(岩石松), 가지가 처진 정도에 따라 수양황금송(垂黃金松) · 수양뱀솔(垂蛇松) · 산호송 (珊瑚松) · 처진소나무, 줄기의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반피송 · 절고송(節高松), 수관이나 가지의 모양에 따라 수평솔 · 팔방송(八房松) · 촛대솔 · 인왕솔(仁王松) · 천구소송(天狗巢松) · 삿갓솔(枝垂松), 솔방울의 크기, 수 및 모양에 따라 남복송(男福松) · 긴방울솔 · 잔방울솔 · 여복송(女福松) · 가시솔로 나뉜다. 가꾸고 보존해야할 자연 유산이다.그냥 걷기 좋고 푹신푹신한 솔잎 길을 걸으며 둥글레뿌리를 캔다.줄기가 굵고 10~20cm정도 되어 금방 한줌이 된다.오후2시 기지국 철탑을 지난다.이곳에서 북리에서 서포리 해수욕장으로 잇는 횡단도로까지 1.87km란다.그냥 길좋고 편안한 육산을 즐기며 걷는다.오후3시 북리에서 벗개로 이어지는 횡단도로에 내려섰다.
• 이곳에서 국수봉까지1km 약200m정도 오름길이다.모두들 하산을 원한다.이곳에서 북리로 내려가 성황당 고개를 넘어 진2리 진1리를 거쳐 우리가 지나온 진3리 도우선착장까지 걸어가야하기 때문이었다.버스시간도 모르고 애초에 걸어갈 심산이었는데 횡단 도로에서 명신 경로당에 이르러 북리 쪽으로 걷다 마을에 들어서니 버스 정류장이 보이며 면내 버스가 오지 않는가? 그래 타고 가자 버스 요금은1인1000원이며 배 출항시간에 맞춰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다.버스를 타고 생각한것이 능동 자갈마당에 다녀올것 싶었다.그곳에 가면 낙조대를 비롯하여 작은 돌맹이인 조약돌인 지천이란것을,,,이래서 많은 것을 놓치고 말았다.덕적4경이라는 4경은 하나도 보지 못한 셈이다.덕적4경이란 백아도에 선단여.서포리 해수욕장앞에 있는 문갑도와 백아도 사이에 떠있는 곰바위.덕적도내 인가와 떨어진 아초지대에서 조수를 타고 유영하는 우럭과 놀래미 등 암근의 구멍에 숨은 물고기 등 대상으로 하는 호쾌한 낚시. 진말해안과 밧지름,소재,이개의 갯벌이 드넓은 평야처럼 펼쳐져 있어 갈고리와 호미만 있으면 바지락 을 양동이 하나 채우기 어렵지 않은 갯벌 체험이 4경이다.늘 아쉽고 미련이 있어야 다시 올게 아닌가? 어느덧 도우 선착장에 도착하여 자연산 광어와 바다쥐고기를 회를 떠서 음식점으로 향한다.매운탕 끓여주는데1인5000원 식사까지 곁들이고 술한잔 하고 나니 부러울께 없다.
대부도의 전설
탄도의 삼형제바위
옛날 탄도에 금실 좋은 부부가 아들 삼형제를 두고 살고 있었다.어느날 부부는 삼형제를 집에 두고 갯벌로 일을 나갔다. 낙지, 조개 등을 잡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갯일을 하는데 갑자기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해무(海霧)가 끼기 시작하여 부부는 갯벌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짐작되는 방향으로 아무리 걸어도 육지는 나오지 않았고 갯벌에서 계속 헤매는 동안 바닷물이 들어와 부부는 결국 죽어 두 개의 바위로 변하였다.한편 집에서 부모를 기더리던 삼형제는 부모가 돌아오지 않자 산으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며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부모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친 삼형제도 그곳에서 죽어 바위로 변하였다.지금도 탄도에는 삼형제 바위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며, 바다에는 부부 바위가 삼형제 바위를 애절하게 바라보고 서 있다.
풍도의 왕신(王神)독갑이
옛날부터 풍도에는 사업 번창을 돕는 신으로 왕신이 있었는데,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섬기는 이 신의 존재는 막강하였다.그런데 이 신은 장난이 매우 심하였다. 달 밝은 밤이면 마을에 나타나 서당 문에 그림자를 지게 하는 등 장난을 치다가 서당 훈장이 호통을 치면 사라지기도 하였고, 외딴집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솥 안에 집어넣는 묘기도 부렸다. 뿐만 아니라 힘에 부치는 큰 나무들을 이집 저집으로 옮겨 놓기가 일쑤였고, 배에서 쓸 큰 참나무를 뽑아다 주는 신통력도 부렸다.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이집 저집을 전전하면서 심술을 부렸고, 제사를 지내는 집엔 꼭 나타나 제사음식까지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신을 왕신(王神)이라고 불렀다 한다.섬 사람들은 흔히 무속을 숭상하는 예가 많았다. 고사를 지내고 굿을 하는가 하면 경 읽기도 자주 하였다. 특히 중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경쟁이를 불러 며칠씩 주야로 독경을 하며 천신(天神)·지신(地神)·오방제신 등을 불러 쾌유를 빌었으며, 마지막 날에는 대를 잡고 신장을 내려 막신(병나게 한 신)을 찾아내 결박해 단지에 가두고 백지로 봉하여 땅을 묻기도 하였다.그러나 왕신 독갑이는 당할 수가 없었다. 제 마음대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짓굿은 일을 서슴지 않아 마을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어떤 때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물로 장만한 고기를 어린애가 먼저 맛보았다고 하여 그 어린애를 물 속으로 던지기도 하였다 한다.그러나 독갑이는 좋은 일도 많이 하였다. 고기잡이를 하다가 배 바닥에 구멍이 생겨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독갑이가 쥐를 잡아다 물 구멍을 막아 주어 변을 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말하자면 독갑이는 풍도 사람들고 애환을 같이하는 신이었던 것이다
선감도 나룻배 사공
선감도 북단과 마주하고 있는 대부도의 갯골은 물살이 세고 간만의 차가 심해서 나룻배를 이용해야 했다.옛날부터 나룻배 사공이 많았지만 이 이야기는 박신태 뱃사공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박신태 사공은 그날그날 대부도와 선감도에서 잡은 어물이라든가 곡물 등을 실어다 주며 비교적 넉넉하게 살았다.나룻배 삯으로 현물을 많이 받던 때라 집의 찬거리도 넉넉했고, 특히 그는 술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쉬는 때에는 거나하게 취하기 일쑤였다. 맛을 잡은 아낙네는 맛을 주고, 굴을 따는 아주머니는 생굴을 나룻배 삯으로 주었는데 절반은 절이고도 남아 술 안주로 족했다.박 사공은 물살이 셀 때는 노젓기가 힘들어 고생을 많이 했으나 워낙 몸이 튼튼해 이를 잘 견디었고 곧잘 흥겹게 노래를 부렀다. 그러나 그는 가진 것 없는 노총각 사공이었고, 또 돌림병인 마마(천연두)로 얼굴이 얽었으며 왼손잡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곰보사공이라 불렀다.곰보사공은 고향이 영흥도라고 했다. 그곳에서 소년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대부도로 옮겨와 방아머리에서 날품을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입이 일정치 않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선감도로 옮겨와 초가집을 짓고 정착했다고 한다.대부도 사람들은 육지로 드나들 때마다 곰보사공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다. 곰보사공은 사시사철 나룻배를 저어 생활하였는데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사리 때는 힘이 더 들었다. 또한 겨울이면 왕래하는 사람들 이 거의 없어 초가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야 했다.그는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불렀는데 특히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뱃노래와 청춘가 노랫가락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날 곱게길러서 요런 고생을 왜시키시나요.""날 데려가세요 날대려가거라 정든 내사랑아 날 데려가세요.""사람마다 벼슬하면은 어부될 사람 어디 있고 의사마다 병 고친다면 북망산천이 왜 생겼나.""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요만하면 만족할까."
이러한 노랫말을 곰보사공의 철학이요 인생관이었다. 원망과 한탄, 그러나 현실에 만족하는 생활관은 몸소 겪어온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었다.일본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섬에까지 일제의 압력이 밀고 들어오는 1940년대 초, 일제는 한국 사람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창씨개명이란 예컴대 박(朴)씨는 '기무라', 이(李)씨는 '구니모도'라고 부르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는 조치였다.그 당시 대부면장은 김완수 씨였는데, 이 같은 행정조치를 윤기은이란 사람에게 주지시키는 것을 곰보사공은 덤덤하게 듣고만 있었다.그들은 곰보영감 집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셔 감정이 솟구칠 대로 솟구쳐 있었다. 그런데 윤기은이 박신태 사공에게 물었다."자네,창씨개명을 하면 좋겠나?""창씨개명이 무엇이유?""자네 이름과 성을 일본놈 식으로 고친다는 것일세."박신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아무려면 어때유. 밥 많이 먹고 술만 있으면 족하지요."윤기은은 주멱을 불끈 쥐었다."에이, 이 개만도 못한놈!""내가 개라구요? 천만에, 천만에 말씀을......."윤기은은 선감도 도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민족심이 강했다. 항일운동을로 고생한 선친의 영향도 받았지만 그보다도 자신의 인생관과 사명감이 투철한 청년이었다. 그러니까 무식하고 가정이 없는 박신태와는 대조적이었다.윤기은 도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신태, 자네 술 취했나?""아뇨, 저 멀쩡해요.""멀쩡한 사람이 일본놈도 좋고 창씨개명도 괜찮단 말인가?""사람은 다 매한가지라구요. 고생뿐인 인생인데 잘살기만 하면......"
윤 도수는 벌떡 일어나 박신태의 뺨을 내리쳤다. 이는 김완수 면장을 때려 주고 싶은 충동이 엉뚱한 곳으로 분출된 것이었다.박신태도 주멱을 불끈 쥐고 일어서 윤 도수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김완수 면장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은 일단 수그러졌다.사실 박신태는 세상일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풍족하게 먹고 살기를 바랄뿐 창씨개명에 따른 민족적 수치심이라든가 우국충정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만큼 박신태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김완수 면장이 적당히 얼버무려 사태는 수습되었으나 윤기은 도수로부터 뺨을 맞은 박신태는 언젠가는 앙갚음을 하리라 마음먹었다.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따라 매우 바람이 세었고 물때가 나빴으나 윤기은 도수가 나룻배를 불렀다. 윤 도수는 대부면장 김완수의 부름을 받고 가는길이었다.술에 취한 박신태는 배 손님이 유독 한 사람뿐이라 잠시 지체하였다. 그때 윤 도수가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빨리 좀 가야겠네!"박신태는 아무 대꾸도 않고 뒤를 보러 갔다."저 놈이 사람을 때려. 나두 어엿한 젊은이인데......" 그는 윤기은에 대한 묵은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그러나 뒤를 보고 오면서 생각해보니 나라 일을 모르고 일본놈이 돼도 좋다는 자신의 말이 망발임을 깨닫게 되었다.박신태는 천천히 나룻배를 저어 나갔다. 그런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 힘껏 저어 가던 노가 빠지면서 배가 딴 곳으로 흘렀다. 박신태는 술이 과했고 ,배 또한 걷잡을 수가 없게 되자 윤도수는 당황하여 두루마기를 벗고 덤벼들었다. 그런데 배는 여전히 다른곳으로 쏜살같이 흘러갔다.박신태가 소리쳤다."윤 도수 양반 저리 비켜요! 내가 누군데요. 이래뵈도 십여년 이짓을 했다구요!""신태 이 사람, 정신차려!"윤 도수는 겁에 질린 모습으로 노를 바로잡아 주었다.이런 경우 사람들이 많으면 별 탈 없이 닻을 내리거나 힘을 모아 견딜 수가 있다. 그러나 단 둘 뿐이고 당황한 탓으로 한참만에야 물에 댈 수가 있었다. 겨울 철이지만 박신태도 윤도수도 땀에 젖었다."신태, 오늘은 술이 과했어.""그래요. 술, 술 때문이예요.......""이 사람아, 술도 음식이니 알아서 해.""네, 알았어유. 어서 다녀오세유."박신태는 윤도수의 창씨개명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으나 순간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해 뒤를 흐렸다.그때 윤기은 도수가 말을 이었다."여보개 신태, 자네 창씨 성은 기무랄세.""뭐요, 기무라요? 그게 무슨 날벼락이유!""아니 이 사람, 일본놈도 좋고 창씨개명도 좋다질 않았나?""저 그때 술이 그랬어요. 그리고 김면장 꼴 좀 보자고 그랬던 거예요. 저도 비록 사공이지만 조상도 있고 나라도 있어유?"윤도수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역시 박신태가 면장보단 낫구나.'그는 면사무소로 향하면서 중얼거렸다.그날 밤 박신태는 술에 흠뻑 취하였다.박신태는 그후 장가도 들고 자식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현재는 선감도의 나룻배는 없어지고 제방이 쌓여 육로로 변했다
까치섬
대부도 까치섬은 소나무를 비롯해 참나무. 아카시아나무. 찔레나무 등이 무성한 섬이었다. 특히 찔레꽃이 만발하는 유월에는 벌과 나비가 넘쳐나는 경관 통은 섬이었다. 또한 까치밥이라고 말하는 열매가 많아 까치들이 몰려 살았다는 추측도 가능한데, 이 까치밥이란 찔레꽃의 열매를 말한다.어느 무더운 여름날의 일이었다. 농사에 지친 어떤 농부가 논일을 하다 지쳐 소나무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숲에 내려온 큰 구렁이가 그 농부를 휘감아 숲속으로 끌고 갔다. 농부는 지친 몸에 정신이 몽롱해져 의식을 잃었다.그런데 그 섬에 모여 살던 까치들이 이 모든 상황을 낱낱이 지켜보고는 기진한 농부를 깨우고 머루. 다래 등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 결국 농부는 기운을 차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농부에게 있어서 까치소리는 구원의 소리였다. 옛날 사람들은 물론 오늘날 사람도 까치소리가 아침에 들리면 반가운 손님이나 기쁜 소식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까치섬 농부의 경우는 이에 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농부는 그후 틈만 나면 까치섬으로 건너가 까치에게 은혜를 갚았다. 추수한 곡식도 갖다 주었고, 그곳에서 나는 열매들을 거두지 않고 까치들의 먹이로 남겨 두었다. 그리하여 점차 이웃 마을, 이웃 섬의 까치들까지 이 섬으로 모여들어 이 섬은 이름 그대로 까치섬이 되었다고 전한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많던 까치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소나무. 참나무 등 나무들을 마구 베어 버렸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여기저기 쓰레기가 나뒹굴어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다행히 까치밥을 만드는 찔레꽃 덩굴만은 그 옛날을 말해 주듯 푸르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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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역 7:47 ~8:32
천안에서 6:21분 서울로 가는 누리호 열차를 타기 위하여 집에서 2:50분 나와서 조치원역에서 3:25분 열차를 타고 천안에서 내려 2시간을 기다린 후 시간을 맞추어 나온 적막과 둘이서 누리호를 타고 수원역에서 내려 전동열차로 갈아 탄후 안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하여 금정역에서 열차를 갈아 타고 안산역으로 간다. 수리산을 돌아 가는 열차는 고잔을 지나고 몇 개의 역을 더 지나 안산역에 도착을 한다.
방아머리 선착장 9:23 ~9:30
안산역에 도착을 하여 자료에서 본대로 2번 출구로 나가니 지하도는 없다. 구름다리를 건너고 넓직한 주차장을 지나 큰도로변에 나가 구두를 수선하시는 님에게 물어 보니 대부도롤 가는 버스는 이곳이 아니고 반대편으로 가야 한단다. 다시 역으로 올라가 출구 번호를 보니 분명 2번출구로 나간것은 맞다. 역에서 나오면 우측방향 즉 북쪽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1번 출구다. 우측으로 나가면 계단을 내려가 우측으로 지하도가 있다. 지하도를 건너 다시 우측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버스 승강장이다. 많은 버스들이 왔다가 간다. 버스타는 곳이 두곳이다. 도로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우리가 타고갈 123번을 보니 바깥쪽 승강장에서 타야 한다. 버스는 8:32분 도착을 한다. 시흥관광호텔을 지나고 몇 개의 아파트를 지나 시화공단지역을 지나면 오이도 입구 전에 옥구공원을 지난다. 공원 뒤편의 조그만 바위 동산위에는 팔각정도 설치되어 있다. 옥구공원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오이도 입구다. 오이도 입구에서 좌회전을 하면 버스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화호의 방조제로 진입을 한다. 중간에 조력발전소 공사가 한창이고 북쪽으로 마천루가 쭉쭉 들어선 곳은 인천의 송도 신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인천이 아주 가까이 있다. 시화방조제로 들어선 버스는 시속 120km를 넘게 달린다. 그간 교통체증으로 길이 막혀 늦은 시간을 이곳에서 단축을 하는 갑다. 10여분을 달린 끝에 방조제 끝에 있는 방아머리선착장으로 들어가는 버스 승강장에 도착을 한다. 방아머리 선착장은 버스 승강장에서 빨리 걸어도 7~8분은 걸린다. 방조제 끝에 둑을 만들어 만든 선착장은 매표소 건물 외엔 다른 시설은 없다. 좀 썰렁한 분위기다.
*오이도
오이도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서쪽 바닷가 지역으로 오이도는 섬의 모양이 마치 까마귀의 귀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인근의 옥구도와 함께 옥귀섬(玉貴島)이라고도 부른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모양이며 전체가 해발 72.9m를 넘지 않는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섬의 북동쪽은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염전으로 사용하였던 갯벌이고, 북서쪽과 남동쪽은 경사가 급한 암반으로 되어 있다. 예전에는 안말을 중심으로 가운데살막, 신포동, 배다리, 소래벌, 칠호, 뒤살막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시화지구개발 등으로 1988~2000년 사이에 모두 폐동되었고 현재 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오이도 서쪽 해안을 매립하여 조성한 이주단지로 옮겨 갔다.
조선 초기에는 군사상 요지여서 봉화대를 설치하였으며, 섬 전체에 서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석기 새대의 패총이 분포한다. 또한 계절별로 철새가 찾아오며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넓은 갯벌이 있어서 훌륭한 생태문화 탐방지로 각광받고 있다. 주변 명소로는 오이도패총, 시화방조제,옥구공원 등이 있고 갯벌체험, 승선체험, 바다낚시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시화방조제
경기 시흥시 정왕동(正往洞)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동(大阜洞) 방아머리를 있는 방조제로 길이 11.2km 이며 농어촌진흥공사가 대단위 간척종합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987년 6월부터 1994년 2월까지 6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완공했다. 시화지구 간척사업은 여의도 면적의 60배에 달하는 간척지만 1만 7300ha와, 배후지 개발 7130ha 등 총 2만 4430ha를 1996년 개발함으로써 1,포화상테에 있는 수도권의 공업용지 1300ha를 공급하여 공장이전을 촉진하고, 2,우르과이 라운드에 대비한 우랑농지 조성및 도시근교 첨단복합 영농단지등을 개발하여 경쟁력 있는 농업을 육성하며, 3,수도권과 농어촌의 휴식공간 제공을 목적으로 조성된것이다. 시화방조제에는 홍수시 초당 약 4000톤의 홍수량을 배제할수 있는 배수갑문 2개소를 비롯해 길이 20km, 폭 8m의 진입도로, 어도 1개소, 통선문 1개소, 선착장 5개소, 제염암거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 방조제의 건설로 국토확장은 물론, 1억 8000톤의 수자원이 확보되어 주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게 되며, 방조제 공사에 따른 해안선의 직선화로 98km의 해안선이 단축되었다. 또 한 연간 355억 원에 달하는 소득증대 및 780여 만 명에 달하는 고용증대 효과와 쾌적한 도시근교 관광휴양단지의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공사는 최대조차로 알려져 있는 10.3m 의 조차를 극복한 난공사로 평가되고 있다.
덕적도 도우 선착장 11:27
방아머리 선착장 안쪽으로 방아머리 마을의 여러 건물들이 보인다. 9:30분 배가 출발하고 배뒤편으로 갈매기가 뒤를 따른다. 오늘 비가 온다는 날씨 이건만 아침부터 상쾌하니 청명한 날씨가 좋다. 방아머리를 출발한 배는 대부도를 거슬러 올라간다. 멀리 영흥도로 건너가는 영흥대교가 보인다. 대부도를 거쳐 선재도 영흥도 까지 다리를 놓아 섬아닌 섬이 된곳이다. 영흥대교는 2001년 11월 15일 준공이 되었으며, 영흥도에는 수도권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화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섬의 끝으로 풍력발전기도 몇 대 돌아 간다.
영흥도를 지나며 선실로 들어가 한숨을 자고 나니 이제 자월도다. 대부도를 출발하여 40분만이다. 자월도를 지나며 또 한숨을 더 자려니 2층 선실에 타고 있는 출사 나가는 아줌씨 부대로 인하여 더 이상 잠을 청할 수가 없다. 갈매기에 먹이를 주며 사진촬영에 열중인 아줌씨 바다 구경하는 아줌씨 등등 요란스럽다. 서서히 배는 덕적도로 접어 들고 덕적도 전에 소야도 앞으로 작은 섬에 있는 성모마리아상의 바위가 눈에 들어 온다. 배는 점점 소야도와 덕적도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들어가 도우 선착장에 정박을 한다. 예정시간보다 20여분 늦은 시간이다.
비조봉 등산로 입구 11:51 ~11:53
도우선착장에는 작은 봉고 농어촌 버스가 한 대 서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덕적바다역을 지나고 그앞에 있는 대형어선 지질하치배와 어부상을 구경한후 고개를 넘어 진리로 들어가니 길이 두갈래다. 서포해변으로 가는길과 능동자갈마당으로 가는길이다. 우리는 우측의 능동자갈마당길로 가다가 다시 방향을 좌로 바꾸어 면사무소 앞을 지나 덕적초중고교가 있는 솔밭앞으로 간다. 처음부터 서포해변길쪽으로 왔으면 조금은 가까웟을 것이다. 이곳에서 솔밭과 학교뒤로 긴 해변이 있다. 솔밭안 삼일운동비가 있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난 농로를 따르면 농협뒤편 산행초입으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연결이 된다. 산행초입엔 이정표가 있다. 비조봉까지 1.2km다.
비조봉 정상 12:21 ~12:33
등산로로 접어 들면 초입에 밭사이로 난길을 따라 오르면 길옆으로 둥글레와 머위가 눈에 띈다. 작은 밭들을 지나면 산으로 오르는 초입에 몇 개의 표식기가 붙어 있다. 10여분 후 좌측으로 약수터로 가는 길이 있다. 약수터 까지는 100m의 거리다. 약수터 삼거리를 지나며 다소 경사도가 급하고 다시 좌측으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완만한 등산로를 따르면 약수터 삼거리에서 10여분 후 주능선에 닿게 된다. 이곳엔 이정표가 있으며 좌측으로는 비조봉,우측으로는 망제산이라 적혀 있다. 좌측 비조봉으로 오르면 얼마 후 바위지대가 나오며 양쪽으로 조망이 펼쳐진다. 바위지대를 지나 위쪽 정상으로는 팔각정이 있다. 팔각정에 오르니 바닷가 쪽으로 정상석이 있다. 이곳으로 오르는 길은 세코스로 진리코스, 밭지름해변코스,서포리 코스다. 이중 서포리쪽에서 오르는 코스가 암릉으로 이뻐 보인다. 비조봉의 조망은 참 좋다. 도우선착장 앞의 소야도에서 이어지는 소이작도 대이작도 승봉도로 점점이 펼쳐지는 군도의 모습이 보기 좋고 앞쪽으로 문갑도 지도 울도 백아도 선단여 굴업도로 이어지는 작은 섬들이 보기 좋다. 굴업도는 어느 대기업에서 많은 땅을 사들여 해양관광단지를 개발중이라고 한다. 백야도에는 선단여라는 삼형제바위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늙은 부부와 남매가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 가시자 외딴섬에서 외롭게 살고 있던 마귀 할멈이 여동생을 납치한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오빠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중 풍랑을 만나 이름 모를 섬에 흘러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 여인은 십수년 전에 헤어진 자신의 여동생이 었다. 이들의 사랑을 안타깝게 여긴 하늘은 션녀를 보내 둘의 관계를 설명하나 남매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고집을 부린다. 이들에게 노한 하늘은 오빠와 여동생 마귀할멈에게 번개를 쳐 죽게 한다. 그후 이곳에는 3개의 절벽이 솟아나게 되었고, 이를 애통해 하던 선녀가 붉은 눈물을 흘리며 승천하엿다. 해서 “선단여”라 불린다. 이 3개의 돌기둥은 오빠,동생,마귀할멈바라라 부른다고 한다.
운주봉 12:50 ~12:52
비조봉에서 내려서면 조금 전 올라온 삼거리에 닿게 되고 이곳에서 다시 운주봉 쪽으로 오르면 바위봉에 삼각점이 있다. 삼각점이 있는 바위지대를 내려서면 망재에 닿게 된다. 망재는 진리와 서포리를 오고 가는 고개이다. 망재에서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3분후 사각나무판에 새겨 놓은 운주봉 정상에 오르게 된다. 별 특이한 것은 없으며 북쪽으로 이개 마을 앞쪽으로 목섬이 보인다.
전파기지국 13:15
운주봉에서 부터는 등산로가 거의 평탄선에 가깝다. 등산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둥글레와 나리꽃나무가 자라고 있다. 8분여를 내려서니 맨발등산로가 안부에 있다. 다시 6분을 더가면 좌측으로 서포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5분을 더가면 이정표가 있다. 좌측은 서포리 전망대, 우측은 진리 이개마을로 가는 길, 그앞쪽으로 이정표가 하나 있다. 보이지는 않치만 이개마을과 전파기지국으로 가는 길이 표시 되었을 것이다. 능선을 타고 조금 오르니 앞이 휜히 트인 서포리 전망대다. 다시 2분을 더 가면 높다란 송신탑이 있는 전파기지국앞 이정표다. 이곳의 이정표엔 용솔나무 700m가 있는데 우리가 온쪽이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나무를 못 보았나 모르겠다. 다시 돌아 갈수는 없는 일이다. 이곳의 이정표엔 진2리 이개마을 1.3 km, 회룡동1.1km, 북리 2.4km라 적혀 있다.
쑥고개 14:00 ~14:18 (중식)
전파기지국에서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 산소가 있는 지점으로 산소 앞으로 난 우회길과 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 지점의 봉에 오르니 우측으로 길이 하나 있다.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나뭇가지로 막아 놓았다. 좀더 들어 가보니 길은 거의 끊기고 희미한 자욱만이 있다. 이곳에서 하산하는 길은 없는 듯하다. 삼거리봉을 지나며 살포시 내려서는 길이지만 거의 평탄선에 가깝다. 쉼터가 있는 봉을 넘고 이제 좀 길게 간다.12분을 소리 없이 가니 우측으로 하산로가 하나 나온다. 북1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인듯하다. 고사리가 많은 지역이다. 둘이서 고사리를 한움큼씩 꺽느라 시간을 좀 소비하고 이제 내려서는 길 쪽으로 향하니 이정표가 있다. 북리, 전파기지국(철탑) 2km라 쓰여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등산로 입구, 북리 1.4km라 쓴 이정표를 지나 쑥고개로 내려선다. 쑥고개는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이곳에는 등산안내도가 있으며 이정표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도로를 건너 국수봉쪽 입구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국수봉 14:40 ~14:42
쑥고개에서 점심을 마치고 국수봉으로 향하니 이정표가 하나 있다. 비조봉 3.6km,국수봉 1.0km다. 서서히 오르니 바위지대가 나오고 여기를 오르니 이제 벗개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를 지나며 앞에 있는 긴 뱀 때문에 다소 지체를 한다. 우리 일행중 오늘 빠진 님이 있었으면 무사하지 못하였을 건대 다행히 오늘은 그님이 빠져 긴나무로 도망가도록 한후 지나간다. 이뱀은 거의 노란색에 가까운 약 1m 정도의 뱀으로 비단뱀처럼 생겼다. 난 구렁이라고 하였지만 정확하진 않다. 전망대에서 10분을 가니 이제 앞쪽으로 이정표가 있다. 비조봉 4.61km,바깥수로봉 4.45km다. 바로 위쪽으로는 국수봉 정상의 해군기지 송신탑이 보인다. 이곳에서 더 이상은 오를수가 없고 정상을 우회하여 바깥수로봉까지 등산로가 이어진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의 전진은 그만두고 능동자갈마당으로 가기 위하여 하산한다.
북2리 (해경덕적출장소) 15:10 ~15:16
국수봉에서 능동 자갈마당으로 가기 위하여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있는 동네사람들이 다닌길쪽으로 내려서니 조금 내려가 더덕이 몇 개 있다. 더덕을 캐고 내려서니 능선에서 더 이상 갈곳이 없고 이제 계곡 쪽으로 내려선다. 계곡으로 내려서니 길이 몇 번 끊긴다. 다시 길을 찾고 얼마를 더 내려가니 마을이 나온다. 북2리 해경 덕적출장소가 있는 마을이다. 여기서 자갈마당까지는 2km의 거리다. 걸어서 다녀오긴 먼거리다. 이곳의 넓은 공터 한쪽으로 보니 택시가 있다. 자료에서 찾아서 적어간 그번호다. 전화를 하니 기사님은 다른 곳에 나와 있어 안되고 봉고차를 보내준단다. 능동 자갈마당 구경하고 도우 선착장까지 가는데 2만냥이란다. 알았다고 차나 보내 달라고 하고 옆쪽에 있는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좀 기다리니 봉고가 온다. 차를 타고 능동자갈마당 쪽으로 조그만 고개를 하나 넘고 또 하나의 낮은 고개를 넘으니 좌측으로 해군부대 가는 길이 있고 우측으로 자갈마당 가는 길이다. 해군부대 위쪽으로 지그재그로 하여 국수봉까지 길이 있다. 국수봉까지는 해군부대 때문에 갈수 있는 길이 없단다. 우리가 내려온 쪽으로 등산로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른 봄에 오면 달래가 많다고 한다. 이윽고 자갈마당에 도착을 하니 자갈마당 한가운데 해당화나무 나무가 한그루 자료에서 본대로 있다. 예전에 이곳이 관광지로 될지를 모르고 많은 자갈들을 싫어서 보냈다고 한다. 지금서 후회한들 한번 망가진 자연은 그대로 돌아 오지 않는 법, 지금이라도 보존에 신경을 써야 할듯하다. 오늘도 몇 분이서 돌을 채취하는 것을 볼수가 있다. 한 개의 돌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할것이다. 자갈마당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작은 몽돌이 해변에 펼쳐져 있고 양쪽으로 아름다운 바위가 있어 잠시 들러 보기 좋은 곳이다.
도우선착장 15:47 ~16:00
능동 자갈마당에서 15분간 구경을 하고 도우 선착장으로 향하니 몇 개의 고개를 넘는다. 이윽고 도우 선착장에 도착을 하니 13분 전이다. 수고하신 기사님에게 2만냥을 건네주고 우리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여 배로 향한다.
오늘 덕적도 짧은 시간이지만 참으로 알차게 소중한 시간이 었다. 산행 잘하고 능동 자갈마당까지 계획했던 대로 무사히 구경잘하고 간다. 조망이 좋고 깨끗한 바닷물과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신록이 우거져 가는 비조봉~국수봉까지 구간 산행 좋았다.
산행시간 : 3:50(도우선착장 ~ 북2리)
산행거리 ; 약 8.9km (선착장~산행초입 1.6, 산행초입~비조봉 1.2,비조봉~국수봉4.6,국수 봉~북2리 1.5)
안산역 ~방아머리 선착장 버스비 ; 1300원 (126번, 1시간 간격, 안산역 8:30분경)
방아머리선착장 ~덕적도 도우선착장 ; 9000원씩 (왕복 18000원)
북2리 ~자갈마당 ~도우선착장 봉고비 :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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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덕적도 비조봉~운주봉~국수봉
조치원 6:27 -천안 6:52 -수원 7:29 ~7:37 -금정 7:57 천안 6:21 ~수원 7:02
금정 ~안산 ; 27분 소요
금정-산본-수리산-대야미-반월-상록수-한대앞-중앙-고잔-공단-안산(신길온천-정왕-오이도)
용산역~동인천역 1시간소요
동인천역 ~연안여객선터미널 택시: 15분 소요 5000~6000원
인천방향
동인천역 하차 12.24번 이용 20~30분 소요 (동인천역 맞은편 대림서림옆 버스승강장)
인천역 하차 28번 시내버스 이용
제물포역 하차 33번 시내버스 이용 3~40분 소요
부평역 하차 14번 시내버스 이용
광역버스노선 1600번 요금 2500원 2~30분대 첫차 6:00~막차01:00
연안부두 - 라이프아파트) - 용현동(인하대병원) - 제물포역(국철1호선) - 주안동(구)시민회관 - 석바위 - 금호APT - 인천시청후문(인1호선) - 구월종합상가 - 만수동 - 경인로 - 서울양평1 - 합정역(2·6호선) - 홍대입구(2호선) - 신촌현대백화점 - 신촌역(2호선) - 이대입구(2호선) - 충정로 - 서울역(종점) 1시간 소요
삼화고속 02-599-1003 032-579-3566 032-888-8088
인천연안여객선 터미널 ~덕적도
스마트 인천 9:30 ~덕적도 11:00(1:10분 소요)
시프렌드 인천 14:30~ 덕적도 16:00(1:10분 소요)
대부고속훼리5호 인천 8:00~덕적도 10:50 (2:50분 소요)
요금
고려고속훼리호 1577-2891
출항21900원 입항 20400원
대부해운 032-887-6669
출항12100원 입항11000원
안산방향
신도림역 7:20 -금정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 -안산역 8:20 ~8:30(123번 시내버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9:15 ~9:30 (대부고속훼리2호) -덕적도 진리선착장 11:10 ~비조봉등산15:30 -덕적도진리선착장 16:00 -방아머리 선착장 17:40 ~18:00(123번 버스) -안산역 18:50 (금정역에서 환승) -신도림역 20:00
대중교통(2009년 6월 자료)
ㅇ안산역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태화상운 (031-494 -9126)
-4호선 안산역 1번출구 지하도 건너 123번 시내버스타고 대부도선착장(방아머리) 하차
-배차(1시간), 요금 1500원
6:30~7:15, 7:30~8:15, 8:30~9:15 ~~~
* 안산역에서 방아다리선착장까지 택시(23,000원)
ㅇ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덕적도 진리선착장 * 대부해운(☎032-886-7813~4) - 대부고속훼리2호: 소요(1시간40분), 요금(9,000/편도) - 운항시간: 09:30분(1일1회) -덕적도 11:10ㅇ덕적도 진리선착장-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 * 대부해운(☎032-886-7813~4) - 대부고속훼리2호: 소요(1시간40분), 요금(9,000/편도) - 운항시간: 16:00분(1일1회) -대부도 17:40
ㅇ 덕적도 내 교통문제
배 운항시간에 맞춰 마을버스 운행, 민박집 봉고차량 수시 운행
*덕적도 개인택시 010-2055-5855
산행코스 : 운주봉~비조봉~국수봉~북1리 8.5km 산행시간 : 4시간 소요
산행코스 : 빗고개~국수봉(326m) ~ 기지국철탑 ~운주봉(231m)~밤재(237m) ~비조봉(231m)~ 진리선착장 산행시간 ; 3~4시간
5월3일 달래많았음
장소 : 인천 웅진군 덕적도 비조봉 (292m) 국수봉 (314m)
산행경로 : 덕적 도우선천잗-면사무소-진말-비조봉-운주봉-기지국철탑-국수봉입구-국수봉-국수봉입구-도우선착장
산행시간 : 11시 21분 ~ 15시 7분
도우선착장11시21분 - 면사무소11시33분 -진말11시36분-비조봉12시9분 - 운주봉12시38분 -기지국철탑 12시58분 -국수봉입구13시58분 -국수14시30분 -국수봉입구 15시 7분 -(덕적도우선착장줄발 16시) (대부방아머리선착장 17시 56분) (사당역 19시 33분)
진리(도우)선착장 -비조봉 -운주봉(밭지름에서운주봉으로 산행시작) -지압보도(운주봉0.4km, 전파기지국 철탑0.7km) -전파기지국철탑(진행방향 북리 2.4km,우측 진2리 1.3km,좌측 회룡동1.1km,용솔나무0.7km) -철탑에서 2km 지점에서 우측으로 북리 하산로 - 이정표(등산로 입구, 북리 1.4km) 에서 등산로 입구로 -북리~벗개사이의 일주도로(밭지름에서 3:15분 소요) (국수봉 1.0km,비조봉-국수봉3.6km확실치 않음) -국수봉(정상은 못감 군시설물) (밭지름에서 4시간소요) -서포2리 벗개마을 (밭지름에서 5시간소요)
국수봉~비조봉 ;4.61km, 국수봉~바갓수로봉 ;4.45km
운주봉~비조봉~국수봉~북1리 ; 8.5km 4시간소요
능동자갈마당 ~ 국수봉,운주봉 중간임도(쑥고개) ;3.5km
선착장 ~능동자갈마당 ; 7.0km
선착장 ~덕적우체국뒤 산행초입 ;1.6km
선착장 ~밭지름해수욕장 ;4.7km
개인택시 010-2055-5855 북리능동 자갈마당 1만원, 서포리 해수욕장 1만원, 콜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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