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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459 견두산~천마산~깃대봉~형제봉~천왕봉~갈미봉~깃대봉2009.12.6 일요일

견두산~천마산~깃대봉~형제봉~천왕봉~갈미봉~깃대봉

2009.12.6 일요일 맑음 (남원,구례)

참석인원 : 2명 홍재랑

 

천안23:57 -조치원 0:18 -남원역2:54 ~6:10 -택시 12000원 -밤재터널입구 6:27 ~6:30 -밤재 6:47 ~6:50 -삼거리봉 7:15 -헬기장 7:17 -자귀나무쉼터 7:25 -삼각점 7:42 -계척봉 7:45 -봉 7:58 -마애불 -견두산 8:08 ~8:12 -현천재 8:17 -좌하산로(구례 산동) 8:19 -헬기장 8:21 -우측 유천리 삼거리 8:31 -삼거리(우측으로 진행) 8:36 -죽산박공묘 8:39 -둔사재 8:40 -망루터 8:48 -상무봉 8:55 -서리내재 9:02 -두번째 서리내재 9:13 -천마산 9:20 ~9:27 -임도(둔산치) 9:47615봉 9:56 -둔사봉 10:01 -깃대봉 10:09 ~10:11 -645봉(좌측으로 진행, 길주의) -비득재 10:27 -좌측 이평삼거리 10:29 -도장봉 10:38 -우측하산로 10:43 -죽정재 10:57 - 우측 망부석있는 산소 11:07 -기동봉 11:12 -두계치 11:19 -능선에 큰 산소 11:24 - 임도 11:31 -형제봉 11:55 ~11:58 -봉 11:59 -중방재 12:02 -능선상에서 중식 12:16 ~12:35 -고을넘이봉 12:48 -고을넘이재 12:56 -천왕봉삼거리 13:00 -상용봉 13:02 -천왕봉 13:10 ~13:15 -상용봉아래 헬기장 13:22 -헬기장 13:24 -헬기장 13:27 -누룩실재(임도) 13:34 -수양봉 13:42 -계산재 13:46 -무명봉 13:54 -바위봉 14:05 ~14:07 -산수재 14:18 -갈미봉 14:37 ~14:40 - 동산재 14:50 -송전탑 14:58 -까막재 15:05 -임도(월암 2km) 15:17 -깃대봉(월암 1.3km) 15:22 ~15:24 -음수대 15:33 -월계길 등산로표지 15:36 -큰도로 15:43 -월암마을입구 15:45 -구례구역 17:53 ~16:01(7분연착) -조치원역 19:10 ~19:15 -청주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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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두지맥

지리산 변방에 위치한 구례지역의 만복대 부근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밤재를 지나 남쪽으로 반호를 그리며 이어지는 일명 견두지맥 산행입니다...그 줄기로는 견두산-천마산-깃대봉-형제봉-갈미봉-제비재-병방산을 끝으로 섬진강으로 스며들어 그 세를 다하는 코스인데...산꾼들에게서 일명 "견두 천마지맥" 또는 "백두 천마지맥" 이라 일컽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강의 지류를 가르는 어느 정도의 세를 가지고 있는 약30km 이상 100km 미만되는 산줄기를 지맥이라고 하는데 백두천마지맥은 백두대간 줄기인 만복대 부근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밤재를 지나 남쪽으로 반호를 그리며 견두산...천마산을 지나 제비재를 넘어 구례군 용방면 병방산을 끝으로 섬진강으로 그 세를 다하는 약 40km 거리의 산줄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산줄기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나누어 지는 구례군의 산줄기 중 북부권인 지리산의 변방에 속하는 지맥으로 만복대에서 분기되어 병방산으로 이어지는 서남줄기를 말한다.

백두대간의 만복대를 시작으로 하여 견두산을 지나 병방산으로 이어가는 서남줄기와 지리산의 주능선을 따르다

화개재에서 가지 내리는 불무장등.통꼭봉. 황장산 줄기의 내경에 속하는 산지를 북부권이라 하고 섬진강 남쪽에 위치한 문전면과 간전면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분기하는 호남정맥을 따라서 조계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아래에 속하여 남부권이라 부른다.

여기에서 기술하는 산줄기는 서남방향으로 흐르는 산줄기로 북쪽으로는 요천이 흐르는 남원시와 경계(전라남북도경계선)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곡성군과 경계를 이룬다.

지리산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줄기이지만 이 줄기를 따라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온 이 고장 사람들이 살아 온 과정은 너무나 치열해 지나간 우리 역사의 한페이지로 살아 움직인다.

임진왜란 때는 왜적의 침입에 항거한 의병들이 의로운 죽음이 있었고 개화기 때는 관군에 의해 학살당한 동학혁명군의 죽음. 전란 때는 빨치산의 활동무대로 시대마다 남겨놓은 아픈 역사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가지줄기 따르는 계곡마다 절경이라 수많은 기인들과 도인들의 기도터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봄직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이기에 혹자들은 어머니품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북부권과 남부권으로 나누어지는 구례는 백제시대에는 구차례(求次禮)현이라 부르다가 신라경덕왕 때 “구례현”으로 이두문화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례”의 뜻은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으며 기름진 땅을 뜻하는 “고래실”이 전라도의 사투리로 표현되어 (구레실~구레논~구렛들~구례)로 되었다.

“택리지”에서도 구례 땅은 비록 “들은 좁지만 농산물의 수확은 많고 골짜기 물이 마르지 않으니 가뭄 타는 일이 적은 곳이다” 라고 하였다.

★ 이 줄기에 대한 뚜렷한 지명은 정해지지 않은 듯하다.이미 답사를 마친 분들에 의해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나 이 줄기에서는 견두산이 맏이노릇을 하고 있으므로 "견두지맥"이라 함이 어떨까?" 하는 것은 나의 견해일 뿐이다 ★

 

서시천(西施川)

진시황의 사신으로 동방의 나라에 가 불로초를 캐 오라는 명을 받은 西施가 불로초를 찾아서 200여명의 무리를 데리고 지나간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전설이 있는 서시천은 월기천.둔기천.무은천.백련천 등을 거느리고 구례의 동부권의 경작지를 만들어 놓은 젓줄로서 병방리에서 섬진강에 합수 된다.

 

섬진강(蟾津江)

금남호남정맥 천상데미 아래 데미샘에서 발원한다.

삼국시대에는 “모래가 곱다”고하여두치강(豆恥江,豆直江)·모래가람·모래내·다사강(多沙江)·대사강(帶沙江)·사천(沙川)·기문하 등으로 불렸으나 고려 우왕11년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섬진강은 전라좌도와 우도를 나누며 문화권까지 변화시키는데 대표적으로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가 그 것이다.

 

밤재(495m)

남원시 주천면 배덕리와 구례군 산동면 계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밤나무가 많다고 하여 지명되어진 이름이다. 남원시에는 두 곳의 밤재가 있으며 앞밤재와 뒷밤재로 부른다.

남원과 산동을 넘나드는 고개를 “앞밤재”라 부르고 남원에서 전주를 이어주는 고개(춘향이고개)를 “뒷밤재”라 부른다

밤재를 지나던 2차선 도로는 1998년 편도2차선의 2개의 터널이 뚫리면서 숙성치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져 등산객과 약초나 나물꾼들만이 찾아오는 쓸쓸한 곳이 되었다.

 

견두산

밤재에서 지리산 만복대로 연결, 노고단까지 조망되고, 산행길 내내 북쪽의 남원 시가지와 남쪽의 구례 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도, 오지산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가 있다.

최고봉인 견두산은, 전에는 호두산으로 불렀다가 야생 들개들의 횡포가 극심해서, 호석을 세우고 이름을 고쳤더니 잠잠해졌다는 전설의 산이기도 한데, 곡성방면에서 바라보면 개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견두산 마애여래입상 (犬頭山 磨崖如來立像)

수지면 고평리 견두산 정상부근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 이 불상은 무릎이하부분이 결실되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연꽃을 새긴 좌대를 포함한 전체의 높이는 3.2m 에 이른다.

반원모양의 눈썹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 두툼한 코, 꽉 다문 입이 전체적으로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신체는 크고 우람하다.

특히 코와 입이 붙어있는 듯한 매우 짧은 인중, 이마에 뚜렷한 백호, 그리고 육계를 모자를 쓴 것처럼 두툼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깊이가 얕고 가느다란 선에 가까운 조각기법과 커다란 신체, 손모양, 꽉다문입, 살이 찐 얼굴 등 남원지역 마애여래불상의 특징을 담고 있으며 제작연대는 고려시대 전반~중반경으로 추정된다.(옮겨적음)

 

견두산 호석이야기

호석의 전설 호석은 현재 광한루원 완월정 뒷편(서문쪽)에 위치해 있는데 본래는 광한루원 경내에 있지 않았으나 1986년 확장 공사시 편입 되었지요. 이호석은 조선조 영조때 전라감사 이서구의 명에의해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석오와 비슷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수지면 고평리에 있는 견두산을 속칭 개머리산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이름은 호두산이였으나 이호석이 설치된 후로 견두산이라고도 한답니다. 옛날 이 호두산에는 들개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어 호두산의 개둘이 한바탕 짖어 대면 그때마다 남원부 부중에 호환이 일거나 큰 화재가 일어나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는 괴변이 일어났다 한답니다. 이러한 호환을 막기 위하여 개는 호랑이라야 진압할수 있는지라 호두산을 견두산으로 개명하고 남원부중에 호랑이를 깍아 만든어 놓았으며 호두산의 들개 짖는 소리와 호환을 막을 있다고 생각하였지요.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전라감사 이서구는 남원부사에 명하여 호석을 설치 하도록 하였는데 그후로는 호환과 재난이 씻은듯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광한루원 경내가 확장되기 전에는 이 호석은 남원시장 장터에 있었으며 호석이 있던자리는 호석거리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인가 이 호석을 강한루원 경내로 옮겼는데 또 다시 재난이 일어나 본래의 자리로 옮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으며 수지면 고평리 마을회관 앞마당에도 이와 똑같은 호석이 견두산을 향하여 놓여 있습니다. 광한루 서문쪽에 있는 호석은 규묘가 크고 머리부분에 주역이 파져 있니데, 이 주역은 3~4천년전에 청동기시대로 추정하고 있지요. 수지면에 있는 호석은 규모가 적고 꼬리 부분은 깨진상태입니다.

사람과 가장 가까이 근접해 사는 동물이 개라고 할수있고요. 먹는것도 거의 사람과 동일하게 먹으면서 살았지만 지금은 시대의 변천과정에서 개사료를 주로 이용하며, 여러 종류의 애완견이 도입되면서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개에 비유하는 말은 비아냥대는 용어나 혹은 낮게 폄하하기위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개판, 개머리, 개소리, 개 같은 경우, 개×× 등등 낮게 평가되거나 사람이 행하는 행위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에 비유하고 있지요.

 

남원시 수지면에는 견두산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개머리산이 된답니다. 형태가 개머리를 닮았으며, 풍수지리학에서는 성난 개머리가 남원시내지역을 공격하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일제가 호두산을 폄하하기 위하여 개머리산으로 고쳤다며, 호두산이란 이름을 되찾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그 이전의 여러 가지 남원부도에서도 견두산으로 표현이 되어있으며, 1700년대의 남원부도에는 대두산이란 표기되어 있어 大-犬 의 오기가 아닌가 하는 의혹도 가져볼 수 있답니다.

하여간 이석우 관찰사가 보통분은 아닌듯 하다. 많은 곳에 그 이야기나 전설 들이 전래되는 것을 보면 산수지리나 풍수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그 학문의 깊이를 엿볼 수 있지요.

전라관찰사를 두차례나 하였으며, 우리고장 남원의 구석 구석에 그 어르신의 이야기가 전래되고 견두산이란 이름을 붙여 그로인해 남원의 재앙을 없앴다고 하며, 그 흔적이 오늘에 까지 남겨져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견두산에는 들개 떼들이 많이 살고 있으면서 민폐를 입혔다고 합니다. 민가에 내려와 피해를 입히거나 그로인한 재난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이석우 전라관찰사는 이를 막기 위한 비방으로 수지와 남원에 호석을 설치하였더니 그 이후로 들개떼들에 의한 피해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래된 이야기에 의하면, 남원은 관료들의 횡포가 심하여 민심이 흉흉하자 이를 막기위해서 견두산을 개머리에 비유하고 호석을 두어 견두산을 제압하자 관료들의 횡포가 자제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명확한 근거가 없으니 모를 일이지만 모두가 그럴듯하고 이를 입증할만한 근황이 동일시대 동일인의 제작으로 보이는 두 개의 호석이나 한의 소리라고 말하는 창이 남원에서 발상되었거나 또한 춘향전의 변사또, 그리고 광한루에 웬 공적비가 그리도 많은지..... 이에 그치는가 남원은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관직에 등용하지 못한 선비들이 많았으니 이들이 할 일이 무엇인가! 모두가 조건적으로 서민이나 양민들의 고달픔만 많을 소지를 담고 있다고 볼수 있지요.

남원은 예로부터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里)라 했습니다. 「택리지(擇里志)」 생리조(生利條)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 전라도 남원(南原) 이 있다. 벼 한말을 심으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140두를 추수할 수 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남원은 “하늘이 고을을 내려 그 속에서 사람이 고루 잘 살도록 정해준 땅”임에는 틀림이 없음에도 관료들의 횡포가 심했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중앙정부로부터 여러관계상 관리가 쉽지 않았던 남원은 그러한 사례들이 많았다고 볼 수 있지요.

오늘에 이르러 어떤가! 우리시는 정치적 소외나 중앙정치에 휩쓸려 주민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 정치적 갈등과 권력의 남용, 이로인한 지역경쟁력 악화, 빈부의 격차 심화, 젊은 인재들의 수용불능, 심화된 경쟁력으로 인한 주민의 양분화 현상과 갈등, 상대적 박탈감, 등이 시민의 화합과 소통 그리고 남원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음은 아무래도 우리남원의 풍토 탓은 아닌가 하며, 이에 호석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쉽습니다.

수지면 고정리에 있는 호석은 어느 집안의 뒷마당 밭골 속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옛 이석우 전라관찰사의 비방처럼 아무래도 호석의 위치를 바로하고 잘 관리하여 인위적으로 남원의 발전이나 행복한 남원을 가꾸는 일이 안된다면 호석이라도 바로해서 남원의 미래를 기대하여 보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요!

 

 

淑夫人南原尹氏之廟(구례군에서 세운 정상석 옆 자연석에 새겨놓은 비문)

사연이 있을 것 같아 수소문 하여 아래와 같은 증언을 얻을 수 있었다

묘지의 주인은 조선조 정3품 통정대부 벼슬을 지낸 竹山朴氏 在鉉의 부인으로 숙부인의 칭호를 받았으며 남원윤씨집안의 여식이다.

남편과 합장하지 못하고 산정에 모신 사연을 아래와 같이 전해 져 온다.

견두산과 천마산 줄기는 금장지지(禁葬之地=매장을 금지하는 땅)으로 누구라도 묘를 쓸 수 없었으며 더군다나 견두산은 石山이었다.

그러나 돌들로 가득 채워진 견두산 산정에 5척단신의 한 사람만 누일 수 있는 명당의 묘지터가 있는지라 죽산박씨 집안에서 고을 사람들에게 告하기를 묘지를 쓴 후 100일 안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묘를 이장하겠다는 확약을 하고 묘지를 쓰게 되었다.

묘지를 쓰고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빗줄기가 내리니 그 당시가 가뭄이라 고을 사람들이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고 여간 기뻐하지 않아 오늘날까지 묘가 정상에 있게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농사와 관련한 비가 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여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라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가뭄을 걱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죽산박씨 종손이신 박인기님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글임)

 

몽심재(夢心齋) 중요민속자료149호

고려충신인 정몽주.이색과 더불어 "三老"로 불리다 고려가 패망하자 두문동에 은신하면서 남원군 수지면 초리가 고향인 그의 부인 김씨를

자손들과 함께 초리방에 내려보내면서 代를 잇게 한 송암(松庵)박문수의 후손이 건립한 것이다.

초리방에 거주하던 그의 12세 후손인 박시채집안에 재화가 끊이지 않자 아들 4형제와 당질을 데리고 호곡리로 이사를 와 거주하면서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그후 이 집안은 만석군이 되어 죽산박씨 연당(蓮堂)이란 분이 몽심재(사랑채)를 세우고 이 곳을 통 해 남원골로 넘나들던 과객들에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라 한다.

이러한 선심 덕택인지 풍수지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죽산박씨 가문은 도인의 배출로도 인연이 깊어 원불교 敎務(원불교에선 출가한 성직자를 “교무”라 부른다) 40여명과 박사26명, 기술사6명.법조인2명 등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몽심재 옆 죽산박씨 종가집에는 후손인 박인기씨가 거주하면서 관리하고 있다.

(견두산과 연관되는 내용이기에 기록하였음)

 

천마산

지리산 만복대에서 영재봉을 지나 밤재를 넘어 솟은 산이 견두산, 천마산이다. 천마산은 해발 600m급으로 이름은 풍수지리설에서 '천마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형국'인 천마시풍이란 명당이 산중턱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산줄기로 따져보면 천마산은 백두대간의 지맥이다.즉 백두대간 마루금인 만복대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지맥 하나가 견두산~천마산~깃대봉~형제봉~천왕봉~갈미봉을 일으키며 반원을 그리다가 섬진강으로 잦아드는 것이다.최고봉인 견두산은, 전에는 호두산으로 불렀다가 야생 들개들의 횡포가 극심해서, 호석을 세우고 이름을 고쳤더니 잠잠해졌다는 전설의 산이기도 한데, 곡성방면에서 바라보면 개머리처럼 생겼다고하는 견두산이라 한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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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역 2:54

저번달 4일 갑자기 추워지던날 우리는 여수가는 막차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내려 모처럼 버스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 작은고리봉 ~만복대~영재봉~밤재로 이어지는 첫 번째 구간을 마친후, 꼭 한달만인 오늘도 갑자기 추워지는 날을 택하여 여수가는 막차를 타고 남원역으로 향한다. 열차에 올라 타니 앞에 몇사람이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서대전을 지나고 논산을 지나며 잠이 들어 눈을 떳을땐 전주를 지나고 있다. 다시 눈을 부치고 얼마후 남원역에 도착을 하여 대합실로 향하니 오늘은 이곳에서 내리는 배낭꾼은 보이지 않는다.

 

밤재 6:47 ~6:50

남원역에 도착을 하여 대합실 의자에 기대여 2시간을 눈을 부치고 난후 이제 슬슬 산행준비에 들어 간다. 버너를 꺼내고 코펠에 물을 담아 라면에 국수를 넣어 먹는 아침식사 오랜만에 해본다. 1시간여에 걸친 아침식사 및 세면을 끝내고 6;10분 택시를 잡아 타고 밤재터널로 향한다. 나이 드신 기사분님이라 느긋하게 운전을 하여 20분이 좀 못되어 밤재터널 구례쪽 입구에 도착한다. 우리를 내려 놓고 남원으로 향하던 기사님 클랄 뻔 햇다며 후진으로 나와 구례 쪽으로 향하여 간 후 우리도 간단히 준비 마치고 밤재로 향한다. 밤재터널은 남원에서 구례로 올적엔 일방으로 올수는 있으나 돌아 갈땐 새로 뚫린 터널을 이용하여 남원으로 향하여야 한다. 터널입구에서 밤재로 향하는 길은 첫머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 꺽여지는 부분을 돌아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옆길로 들어서지 말고 직진을 한후 다음번 등산로 이정표가 있는 부분에서 우측으로 꺽여서 올라서면 얼마 후 임도에서 등산로로 올라서는 지점이 나온다. 이곳부터는 계속 등산로만 따라 가면 밤재까지 무사히 올라 갈수 있다. 밤재터널에서 밤재까지 2.2km의 거리이나 등산로가 가파르지 않아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견두산 8:08 ~8:12

밤재에 이르니 노고단 쪽으로 붉은빛이 감돈다. 이제 먼동이 서서히 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밤재에서 처음 시작 지점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며 오늘 29.8km의 나머지 견두지맥을 시작한다. 오늘 날씨가 추워지고 바람이 매섭다. 속에 입은 내피를 한꺼풀 벗어 제치고 잠바를 입고 산행을 하여도 아직 이마에 땀이 나질 않는다. 서서히 오르던 능선은 이제 양쪽으로 조망이 트이며 북쪽으로 남원시가지의 불빛이 은은히 이곳까지 닿는다.

25분이 지나며 삼거리봉이 나온다. 오른편으로 남원쪽에서 올라온 길이 있는 지점이다. 2분후 조그만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평탄선의 능선길을 따라 8분을 더가면 몇 개의 의자를 설치한 자귀나무쉼터가 나온다. 이지점에 한그루의 진달래 나무가 꽃을 만개하여 때이른 봄을 맞고 있다. 오늘 추운날씨에 꽃이 얼지 않을는지 걱정이다.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 17분을 더 가니 능선에 삼각점이 하나 있고 다시 3분을 더 가니 계척봉이다. 삼각점이 있는 지점을 지나며 노고단 넘어로 붉은 태양이 떠올라 주위의 붉은 빛이 너무 곱다. 계척봉은 밤재에서 1.8km 지점으로 특별한 특징은 없으며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 인지는 모르지만 견두지맥의 곳곳엔 여러개의 봉이 붙어 있다.

멀리 백운산쪽의 상고대가 이쁘게 조망이 된다. 그넘어로 육십령을 지나 남덕유쪽 능선과 황석산으로 내려서는 능선까지 조망이 된다. 앞쪽의 노고단이나 만복대쪽은 아직은 붉은태양으로 인하여 상고대는 보이지 않는다.

계척봉을 지나 13분후 봉을 하나 지나고 급하게 내려선 후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면 철쭉군란지 0.4km라 적힌 이정표 쪽으로 견두산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은 밑이 터진 바위 위쪽으로 희미하니 새겨져 있어 잘 살펴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고려시대 중반기의 작품이라 하니 참으로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이곳에서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능선으로 올라 마지막 오름길을 올라서면 견두산 정상이다. 지금 지나온 앞의 바위봉과 남원에서 문덕봉~고리봉~동악산으로 이어지는 긴 산줄기 안으로 펼쳐진 넓은 벌판과 그사이로 흐르는 섬진강의 물줄기가 조화를 이루어 보기에 너무 좋다. 남쪽으로는 노고단에서 만복대~영재산~밤재로 이어진 능선이 있으니 견두산은 그 중간에 놓인 이들의 아주 훌륭한 전망대 인셈이다. 견두산 정상엔 2개의 정상석이 있으며 이정표가 있고 산소가 있다.

 

천마산 9:20 ~9:27

견두산을 내려서면 5분후 현천재가 나온다. 2분후 도경계의 이정표가 있으며 견두산은 0.6km, 천마산은 5.3km의 거리이며 구례 산동까지는 4.8km다.

2분후 헬기장을 지나고 10분을 더 가면 오른편으로 유천리가는 길이 있다. 이곳에서 5분을 더 가면 능선을 내려서는 듯한 곳에 노오란 문규현씨 시그널이 걸려 있는 지점의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오른편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야 한다. 3분후 죽산박공묘를 지나고 곧 바로 둔사재가 나온다. 둔사재에서 오른편으로는 남원이라 표기 되어 있으며 왼편으로는 상무라 표기 되어 있다. 둔사재에서 8분 정도를 오르면 앞쪽에 돌로 쌓은 망루터가 있으며 계속 이어지는 능선은 상무봉을 지나고 왼편으로 둔기, 오른편으로 남원이라 표기된 서리내재를 지나고 다시 11분후 똑같은 모습의 서리내재를 또 지난다. 이곳엔 누군가 왼편으로 섬진강다리라 써놓앗다. 두 번째 서리내재에서 오르기 시작하여 7분이면 정상부근을 돌로 쌓은 천마산 정상에 오른다. 천마산 정상엔 작은 억새숲을 이루고 정상석이 있으며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엔 깃대봉 3.3km, 수월저수지 4.7km, 대산 5.7km라 적혀 있다. 오래된 스텐으로 만든 안내판은 글씨가 벗겨 지고 있으며 이제 노고단과 작은 고리봉 만복대쪽으로 하얀 상고대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오늘 지리산쪽으로 방향을 잡은 님들은 좋은 상고대의 모습을 마음껏 구경할수 있겟다.

 

깃대봉 10:09 ~10:11

천마산에서 8분여를 내려서면 등산로 양옆으로 표고버섯재배지가 나온다. 몇 개의 표고 버섯이 꽁꽁 얼어 붙어 있어 손으로 잡아 떼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것은 표면을 갈아 먹은 놈도 있고, 모습이 제대로 된놈, 너무 큰놈 가지각색이다. 10여분 쉬었다 진행을 하니 바로 앞쪽에 넓직한 임도가 있으니 이곳이 둔산치 인갑다. 이곳으로 올 때 보인던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 곳으로 지났나 아직 그지점을 못 온것인가 궁금하다.

615봉을 지나고 이어서 5분후 둔사봉을 지난다. 다시 8분을 더 오르니 깃대봉 정상이다. 깃대봉엔 정상석이 있으며 삼각점 이정표가 있다. 조망은 사방이 잘보여 좋다. 이정표엔 수월저수지 3.4km, 둔산재 2.0km, 천마산3.3km,곡성이 5.0km, 밤재에서 온 거리가 12.5km, 앞으로 갈길이 17.3km 다. 깃대봉에 올라서니 지나온 길 쪽의 표고버섯재배지가 있던 둔산치 아래로 길이 지나간 것이 보인다. 능선의 아래쪽은 터널로 연결이 된듯하다.

 

형제봉 11:55 ~11:58

깃대봉에서 7분을 진행하면 645이 나온다. 이곳에서 능선을 반듯하게 따라 가면 곡성 쪽으로 빠지는 능선이니 주의를 하여야 할곳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을 따라 가야 한다. 표식기가 그쪽으로 붙어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 가면 된다. 9분을 내려서니 비득재다. 이곳에서 오른쪽은 곡성이고,왼편으로 내려서면 둔기,이평으로 내려서는 길로 대부분의 안내 산악회에서는 이쯤에서 빠진다. 이평까지의 거리가 4.5km 이다.

비득재에서 오르막을 2분 정도 오르면 왼편으로 이평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는 이평삼거리이고 여기서 다시 9분을 더오르면 별 특징이 없는 도장봉 정상을 지난다. 5분후 오른편으로 길이 빠지는 길이 있으며 이제 부터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끝에 죽정재가 있으니 왼편으로는 죽정이고 오른편으로는 곡성 1.9km라 적혀 있다.10분후 오른편으로 망부석이 있는 산소를 지나고 5분후 가동봉을 지난다. 가동봉에서 내려서면 두계치로 밤재에서는 반을 넘어선 16.8klm를 왓고 남은 거리는 13km 다. 왼편으로는 두계로, 오른편으로는 가동으로 2.1km의 거리다. 두계치를 지나 오르면 능선에 커다란 산소가 있는 곳을 지나고 7분을 더 가면 능선의 왼쪽 편에서 올라온 임도길이 이곳 능선에서 끝난다. 임도를 지나 지루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은 24분을 더 가서야 형제봉 정상에 올라선다. 형제봉은 바로 앞쪽에 있는 봉과 나란히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듯하다. 형제봉 정상엔 조금한 바위들이 몇 개 있으며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으며 남쪽으로 노고단이 바로 앞에 있으며 곡성 쪽으로도 조망이 좋다. 깃대봉에서 형제봉에 이르는 길이 5개 정도의 600m 급 봉을 넘고 넘는 코스가 지루 하고 힘도 많이 든다 하겟다.

 

천왕봉 13:10 ~13:15

형제봉에서 1분이면 다음봉을 지나고, 3분후 중방재에 닿는다. 왼편으로 중방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여기서 0.3km 이면 고을넘이재라 표기가 되어 있어 그것을 보고 고을 넘이봉까지 가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열심히 가보았으나 300m가 왜 이리 먼지 도저히 고을넘이재까지 가는 것을 포기 하고 능선의 따뜻 한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다. 이곳까지 중방재에서 14분을 왔으니 이정표가 틀린 것인지 내가 천천히 걸은 것인지 모르겟다. 능선에서 12:16 ~12:35분 까지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출발을 한다.

출발한지 13분후 능선에 커다란 바위가 서있는 지점에 고을넘이봉이라 되어 있다. 이곳에서도 중방재는 0.3km 라 되어 있다. 고을넘이봉에서 서서히 내려서는 길을 따라 8분후 고을넘이재에 닿는다. 고을넘이재의 이정표에도 중방재까지의 거리는 역시나 0.3km다. 중방재에서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도 35분을 왔으니 2km도 넘는거리다. 여기서 왼편으로는 용정리로 3.0km의 거리이고 반대편 곡성 쪽으로는 누군가 기차마을(가정리) 1시간이라 써놓았다. 고을 넘이재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4분을 더 가면 천왕봉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천왕봉쪽 길을 따라 오른편능선으로 오르면 삼거리에 상용봉이라 되어 있으며 아래쪽에 커다란 헬기장이 보이고 천왕봉은 오른편쪽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능선을 따라 가야 한다. 우뚝 솟은 바위를 넘어 갈수도 있고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 놓은 줄을 잡고 내려서 우회 하여 갈수도 있다. 바위를 넘어 내려서면 얼마 안 되는 평탄선길을 지나 천왕봉으로 오르는 바윗길이 있다. 천왕봉엔 작은 송신탑이 있고 둥그런 삼각점이 있으며 곡성쪽 본황마을 까지는 2.7km의 거리이다. 밤재에서 이곳까지 무려 20.1km를 달려 왔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곡성쪽과 갈미봉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잘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길게 지나고 있다. 정상석엔 695.0m 구례군이라 표기되어 있다.

 

갈미봉 14:37 ~14:40

천왕봉에서 다시 되돌아 상용봉을 지나고 아래쪽 헬기장을 지나니 천왕봉을 다녀오는데 꼭 20분이 소요 되었다. 이후 2개의 헬기장을 지나고 임도로 되어 있는 누룩실재에 닿으니 남은 거리가 이제 7.8km다. 남으로는 구례읍 시동으로 3.5km, 북으로는 유곡으로 7.8km의 거리이다. 누룩실재에는 밤재에 있던 견두지맥 안내도가 있으며 지도엔 구례 쪽으로 천황봉~산성봉을 거쳐 아양까지 4.5km라 되어 있다.

누룩실재에서 이어지는 능선길은 8분후 수양봉을 지나고 4분을 더 가면 계산재에 닿는다. 계산재에서 오른편으로는 상유로 가는 길이 표기 되어 있고, 다시 8분을 더가니 무명봉이라 이름 지은 봉을 지나고 다시 11분을 진행하여 작은 바위가 있고 표식기가 많이 붙어 있는 바위봉에 도착한다. 바위봉에서 내려서면 산수재로 왼편으로 산수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고 갈미봉까지 남은 거리는 1.4km 이다. 산수재에서 20여분을 더 가야 남쪽 끝으로 시원한 섬진강이 보이는 지점의 갈미봉정상에 오른다. 삼각점이 있으며 이정표엔 월암까지 4.6km라 되어 있으니 이곳도 안내도와 틀린곳이다. 안내도엔 이곳에서 월암까지 3.8km라 되어 있다.

 

깃대봉 15:22 ~15:24

갈미봉에서 내려서는 길이 가파르다. 500m대에서 이제 200m 대로 접어 드는 구간으로 고도차가 있으니 등산로도 상당히 가파르며 뒤돌아 본 갈미봉은 아래쪽으로 흰바위지대도 있는 모습이 위쪽에서 본모습과는 다르다. 내려서는 길에서 보는 아래쪽의 구례읍과 섬진강의 모습이 참으로 이쁘다. 구례읍을 지나 반대편으로 노고단의 아직도 못다진 하얀 상고대의 모습이 이쁘게 보이며 그사이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섬진강의 모습이 낭만적이고 유유자적 하니 한가로운 모습이다. 갈미봉에서 10분후 동산재를 지난다. 왼편으로 동산,오른편으로 독전이라 표기 되어 있다. 이후 8분을 더가면 송전탑을 지나고 까막재까지는 7분이 더소요 되고 왼쪽으로 동산, 오른편으로 계산리라 되어 있다. 녹차밭까지는 1.1km라 되어 있으나 녹차밭은 임도전의 폐허가 된 녹차나무 있는 곳인듯하고 ,임도는 오른편 구례쪽에서 올라 왔으며 월암까지는 이제 2.0km가 남았다. 임도에서 5분을 더가면 리기다 소나무에 매단 오래된 깃대봉 정상판대기가 있으며 조금을 더가면 세운지 얼마 안되는 깃대봉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다.

 

구례구역 15:53

깃대봉에서 월암까지는 1.3km 내려서는 길도 이제 소나무가 많은길로 아래쪽으로 구례구역으로 가는 교량이 있으며 구례구역이 잘보인다.

마을 뒤편으로 작은 대나무숲이 시작되는 부분에 등산로 이정표가 있으며 이제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길에 음수대가 있으며 화장실도 있다. 월계리로 들어 가는 포장도로변에 등산로 이정표가 하나 더있으며 큰길까지 내려서는 지점의 오른편으로 단감밭엔 아직 다 따지 않은 감이 홍시가 되어 반은 까치밥이 되었고 반은 원형상태 그대로 남아 있어 몇 개를 따서 입안으로 넣으니 아 시원하고 좋다. 물이 마시고 싶던 차에 아주 시원한 홍시감을 먹고 나니 시장끼도 면하고 갈증도 해소가 되어 좋다. 마지막 남은 농로길을 따라 큰길로 나오니 지금시각이 15:43분 2분을 구례구역 쪽으로 가니 월암마을 간판이 있다. 이곳에서 안녕히 가십시요란 커다란 아치를 지나 섬진강다리를 건너 구례구역에 도착을 하니 15:53분이다.

용산으로 가는 열차시간이 16:01분이니 아주 적당히 도착을 하였다.

 

열차는 11분이 늦은 16:12분에 들어오고 자리가 없어 카페칸에 자리를 잡고 둘이서 두런두런 애기를 나누며 난 조치원역에서 내리고 홍재는 천안까지 돌아 가며 오늘 하루의 힘든 일정을 마무리 짓는다.

 

남원역 ~밤재터널입구 택시비 : 12000원

산행시간 ; 9:23분 소요

산행거리 ; 33.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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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고리봉~만복대~견두산~천마산~깃대봉~

형제봉~천왕봉~갈미봉~깃대봉~월암

 

천안23:57 -조치원 0:18 -구례구 3:23

 

구례구 16:01 ~ 조치원 19:09

구례구 16:27 ~ 서대전 19:03 ~천안 19:49

구례구 16:57 ~ 익산 18:36 ~19:22 ~조치원 20:36(새) 18:46~천안아산 19:38~19:50

구레구 18:11 ~ 조치원 23:32 - 천안 23:52

구례구 19:11 ~ 익산 20:42 -서대전 21:40 - 천안 22:30

서대전 22:35 -조치원 23:05

구례구 20:10 ~ 익산 21:52 -22:06 - 천안아산 23:22

 

구례구역~ 성삼재 ; 24.68km

구례구역 ~밤재 삼성농장 ; 23.17km

구례구역 ~밤재터널입구 : 약 27km , 남원역 ~밤재 삼성농장 13.84km

월암 ~구례구역 ; 1.1km

 

성삼재 3;35 -작은고리봉 4:30 -만복대 5:32-정령치 갈림길 5:46 -요강바위 6:30 -월계재 6;42 -1112봉 7:08 -다름재 7:31 -1044봉 -1050봉 7:55 -수락재 8:29 -영재봉 8:50 -솔재 9:12 -사거리안부 9:38 -숙성치 9:48 -밤재 10:16 -10:28(점심) -774.7봉 11:15 -견두산 11:43 -725봉 12:05- 640봉 12:36 - 천마산 13:02 -둔산치 13:23 - 깃대봉 13:51 -645봉 14:04 -비득재 14:12 -630봉 14:24 -두계치 15:10 -시멘트임도 15:30 -형제봉 15:45 -625봉 16:23 -고을넘어재 16:31 -천왕봉 16:42 -누룩실재 17:04 -636봉 17:28 -652봉 17:37 -갈미봉 18:16 -까막재 -깃대봉 19:17 -월암 19:47

 

도상거리 ; 약 42km 접근거리 5km, 마루금 37km

산행시간 ; 16시간 12분

 

(밤재~견두산~천마산~깃대봉~형제봉~천왕봉~갈미봉~깃대봉~월암(총29.8Km))

접근거리 2.2km, 월암~구레구역 1.2km 총 33.2km

 

밤재터널입구 -2.2km-옛밤재 -1.2km-견두산 삼거리봉 -0.8km -계척재 -1.0km-계척봉 -1.0km -견두산 -0.4km -현천재 -0.4km -현천삼거리 -0.7km -둔사재 -0.7km -망루터 - 0.6km -상무봉 -1.0km -서리내재 -0.5km -천마산 -1.3km -둔산치 -1.3km -둔사봉 - 0.9km - 깃대봉 -0.6km -비득재 -

 

형제봉(622m)~천왕봉(695m)~갈미봉(494m)~깃대봉(212m)

ㅇ 산행코스 : 구례 둔기마을-비득재-형제봉-천왕봉-갈미봉-깃대봉-월암

ㅇ 산행거리 : 21Km (09:30~18:45 (9시간15분))

 

남원 대한택시 1077호 011-682 -7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