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0447 천주산 836m~공덕산 913m~묘봉 815m (문경) 2009.10.4. 일요일(추석)

천주산 836m~공덕산 913m~묘봉 815m (문경)

2009.10.4. 일요일(추석다음날) 맑음

참석인원 : 4명 진용 홍재 울마님 나

 

청주7:25 -이화령 휴게소 8:22 ~8:31 -천주산 천주사입구 9:22 ~9:25 -대웅전 9:36 -마애불 9:40 - 대슬랩 10:10 -천주산 정상 10:36 -공덕산 11:50 ~12:10 - (도토리 채취 약 25분 소요) -옛고개 12:45 ~13:15(중식) - 삼거리 13:25 - 815봉(묘봉) 13:45 - 청구초등학교입구 15:35 ~15:40 - 청주 18:00

 

*** 천주산입구 9:25 -대승사 9:58 ~10:02 -능선안부 10:24 -공덕산 11:00 ~12:10 -옛고개 12:45 ~13:15 -사불바위 14:20 ~14:35 -대승사 14:50 ~15:20 -청구초등학교입구 15:35 (우리 내외 산행 발자취)

~~~~~~~~~~~~~~~~~~~~~~~~~~~~~~~~~~~~~~~~~~~~~~~~~~~~~~~~~~~~~~~~~~~~~~~~~~~~~~~~~~~~~

*천주산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노은리에 자리잡고 있는 천주산은 하늘 받침대 곧 천주라는 이름을 가진 산으로 지형도에는 천주봉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이름 그대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오른 모습이 영락없는 하늘 기둥이다.

산의 높이만 을 놓고 볼때는 그저 평범한 높이의 산 이지만 하늘을향하여 표효하는 듯한 당찬 모습과 군살없이 마치 근육으로 다져진 다부진 모습은 산을 찾는 산행객에게 마치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할마냥 무언가 결의를 다지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산이다.

또한 절벽과 벼랑으로 이루어진 곳이 곳곳에 있어 산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한다.

산 남동쪽의 산행 출발점으로는 간송1리인 천주마을과 천주에서 975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1km 더 올라가면 만나는 천주사 입구가 있다. 산의 북쪽에서는 동로면 소재지에서 노래이(동로면 노은1리 지형도에는 노루이라고 표기됨)로 접근한 다음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다만 어느 코스로 오르든 암벽지대를 오르게 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천주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려면 이 마을 포장도로길을 따라 올라가면 "천산정"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물을 준비해야 한다.

계곡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능선으로 이어진 길이 나타나는데 이 능선길로 접어들면 된다. 능선길을 따라 40분정도 오르면 큼직한 돌로 형성된 너덜지대를 지나게 되고 이곳에서는 천주마을과 지나온 길을 모두 돌아볼 수 있어 전망이 좋다이 너덜지대를 지나면 절벽이 나타나서 길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자세히 찾아보면 절벽사이로 난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정상이 보이고 다시 오른쪽으로 틀면 노송이 한 그루 나타난다.

 

* 공덕산

공덕산(功德山·912.9m)은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와 동로면 노은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공덕산 이름은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天降石造四佛像·일명 사불암)과 관련지어 사불산(四佛山)으로 부른다.

공덕산의 주인공은 사불암 아래에 자리한 1400여 년 된 고찰 대승사(大乘寺)다. 대승사 일주문 현판에 ‘사불산 대승사’로 쓰여 있다.

공덕산은 대승사 사불암 외에 나옹화상이 거처했다는 묘적암과 안장바위, 탑돌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윤필암, 그리고 묘봉의 부부바위, 사불암 아래 유무유바위, 윤필암 아래 나도야바위 등 볼거리가 많은 산이다.

등산로는 대승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대부분이다.

[출처] 문경 공덕산 대승사,문필암,묘적암|작성자 옹달샘

 

대승사

대승사(大乘寺)는 신라에 불법이 전해진 법흥왕 15년(528년) 59년 후인 진평왕 9년(587년) 당시 무명의 불도였던 망명비구(亡名比丘)가 창건했다. 조선 초기에는 득통 기화(得通 己和)가 이 절에서 반야경을 연구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선조 37년(1604년)부터 숙종 27년(1701년) 사이에 법당을 비롯해 승당 동상실(東上室), 관음전, 조전, 미륵전, 중실(中室), 시왕전(十王殿), 향로전, 천왕문, 만세루, 침계당, 금당, 영자전(影子殿), 향적전, 음향전, 나한전, 청심전(淸心殿) 등이 건립됐다.

영조 원년(1725년) 의학(義學)대사가 삼존불상을 개금했는데, 이 때 아미타불의 복장에서 사리 1과와 성덕왕 4년(705년) 개명의 금자화엄경 7권이 나왔다. 1956년 실화로 극락전 명부전 산신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들이 전소된 것을 1978년에 대부분 복구했다.

산내 암자로는 윤필암(潤筆庵), 묘적암(妙寂庵), 보현암(普賢庵)이 있다.

문화재로는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불탱각(보물 제575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991호), 마애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239호), 윤필암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유형문화재 제300호), 윤필암 후불탱화(문화재자료 제348호) 등이 있다

[출처] 문경 공덕산 대승사,문필암,묘적암|작성자 옹달샘

 

사불암

사불암(四佛岩)은 삼면이 수직절벽인 너럭바위 위에 높이 2.5m에 각 면이 1.5m 안팎이 되는 사면체 기둥바위다.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는 4면에 모두 돋을새김된 불상이 있다. 모두 여래상으로 동서면은 좌상이고, 남북면은 입상이다.

사불암에 대해서는 ‘진편왕 9년(587년) 하늘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반듯한 사면체 바위가 붉은 비단에 싸여 이곳에 내려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이곳까지 찾아와 예배하고 이 바위 옆에 대승사를 지었다’, ‘그리고 연경을 외우는 비구 망명에게 청하여 주지로 삼아 받침돌인 공석(供石)을 깨끗이 씻은 위에 향화(香火)를 끊이지 않게 하고, 이 산 이름을 역덕산, 또는 사불산이라 했다’, ‘그 뒤 비구가 죽어 장사를 지내자 그 무덤 위에 연꽃이 피어났다’는 내용 등이 삼국유사 권3에 전해진다.

사불암은 1,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에 노출되어 왔기에 다소 초라해 보인다. 그만큼 마모가 심해 윤곽이나 겨우 알아볼 정도다. 이 사불암과 관련해서 대승사 경내에서는 ‘하늘에서 사면불이 내려오고, 땅에서 쌍련이 솟아났다’는 뜻인 천강사불 지용쌍련(天降四佛 地湧雙蓮) 현판을 볼 수 있다

[출처] 문경 공덕산 대승사,문필암,묘적암|작성자 옹달샘

 

묘적암과 윤필암

묘적암(妙寂庵)은 823m봉 남서릉 동쪽 사면, 사불암이 마주보이는 곳에 앉은 암자다. 이 암자는 선덕여왕 15년(646년) 부운(浮雲)거사가 창건했다. 고려 말 나옹(懶翁)화상(1320-1376)이 머리를 깎고 출가, 이후 이곳에서 득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묘적암 뒤 안장바위 전설은 나옹의 도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암이다. 날이면 날마다 안장바위 위에는 항상 남들이 볼 때 게으르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나옹이 앉아 있었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고된 농사일을 하던 산 아래 마을 농부들이 이 바위에서 놀고만 지내는 나옹이 보기 싫어 안장바위를 깨뜨려버렸다. 그러자 그로부터 수년 간 가뭄과 흉년이 계속됐다. 그래서 농부들은 나옹이 범상치 않은 스님임을 알고 안장바위를 다시 이어 놓고서야 가뭄과 흉년이 끝났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나옹은 이 암자에서 보내면서 득도한 다음 의정부 회암사를 거쳐 원나라에 가서 지공(指空)화상에게 사사(師事)했다가 귀국해서는 오대산 상두암, 전주 송광사, 여주 신륵사 등지에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 나옹은 은사 지공의 임종소식을 듣고는 ‘태어남이란 한 조각 바람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못에 비친 달그림자일 뿐이다. 죽고 살고 가고 옴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라고 삶과 죽음을 평했다.

윤필암(潤筆庵)은 묘적암 아래 골짜기에 위치해 심산유곡에 든 기분이 나는 암자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각관(覺寬)비구가 초창한 비구선원(禪院)으로 유명하다. 여승들만 사는 절이라 경내의 모든 것이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청정도량이다. 이 절 서쪽 축대 위 건물이 사불전(四佛殿)으로, 계곡 건너 암릉 상의 사불암이 마주보인다. 윤필암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인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을 가운데 두고 탑돌이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 않다.

윤필암과 묘적암 사이에 있는, 고려시대 작품으로는 새김이 매우 뚜렷한 마애여래좌상(높이 6m 폭 3m)도 볼거리다.

 

나도야바위

윤필암 갈림길에서 일주문으로 오르다가 오른쪽(남쪽) 협곡 아래 약 100m 거리에 마치 고깔을 닮은 기암이 있다.

이 기암은 본래 평지의 너럭바위 위에 놓여 있는 바위로만 보였었다.

그런데 92년 수해 때 계곡쪽으로 토사가 십수m 깊이로 쓸려내리면서 너럭바위 삼면에 숨겨져 있던 오버행(천정바위) 절벽이 드러나면서 절벽 위에 얹힌 바위로 변한 것이다.

나도야바위는 도로에서 보면 대승사 방면으로 뱃머리처럼 돌출된 절벽 위 너럭바위 바닥과 얹혀있는 기암 밑바닥 사이가 대부분 벌어져 있다. 마치 볼록렌즈를 측면에서 보는 듯 공간을 이룬 바위 사이로는 건너편 수림지대가 휑하니 보인다.

높이와 폭이 각각 약 4m에 직삼각형인 이 기암은 보는 이들 느낌에 따라 앉아 있는 부엉이, 또는 앉아 있는 짐승 같이 보이기도 한다.

옛날 중국에서 비단보자기에 싸여 이곳으로 날아왔다는 황당한 전설이 전해진다.

[출처] 문경 공덕산 대승사,문필암,묘적암|작성자 옹달샘

 

 

*. 윤필암(閏筆庵)에 얽힌 사불산(四佛山= 공덕산)의 유래

출처: 불교신문 이지누 그림

경북 문경 공덕산에 있는 윤필암은 (閏筆庵)은 고려 우왕6년 (1380년) 각관(覺寬)이 창건하였다는 암자다. 꽃보다 고운 절로 알려져 오다가 지금은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으로 우리나라 근대 3대 비구니 선원의 하나이다.

공덕산(功德山)을 옛날에는 사불산(四佛山)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이 윤필암 암자 뒤에 있는 사불암(四佛岩)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그 내력이 일연(一然)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사불산조'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죽령의 동쪽 100리쯤 되는 곳에 높이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에 홀연히 사면방장(四面方丈)의 한 큰 골에 사방여래(四方如來)를 새기고 붉은 비단으로 싼 돌이 하늘에서 그 산꼭대기에 떨어졌다. 왕이 듣고 거기에 가서 쳐다보고 경건한 예를 갖춘 후 그 곳에 절을 창건하여 절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고 연경(蓮經)을 외는 중(이름 전하지 않음)을 청하여 이 절을 맡게 하여 깨끗이 쓸고 돌을 공양하며 향불을 꺼뜨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 功德山)이라 하고 사불산(四佛山) 이라고도 한다. 중이 열반하여 장사를 지냈더니 그 무덤 위에서 연(蓮)이 났었다.

그 윤필암은 가보지 못하였지만 문헌을 찾아보니 연못이 있고, 암자 뒤 200여 m 위 바위 위에 사불암(四佛岩)이 있었다.

우리는 무심결에 '대승사, 사불산 입구'라는 안내판을 지나쳤지만 그 옆에 있는 '알림'을 통하여 1,400여 년에 걸쳐 수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이 절의 자부심을 보고 경배하는데에 시간을 할애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사불산 일대는 대승사 경내로 부처님 성지입니다. 경내 대승선원 사불선원은 용맹정진하는 참선수행 도량이며 성보(聖寶) 도난 방지 및 마을 주민의 상수원인 관계로 등산객 및 행략객들의 출입을 통제하오며, 참배객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참배하시고 짧은 치마, 소매없는옷, 반바지 차림을 삼가해 주십시요 -대승사 주지, 선원장 백

묘적암은 사불암이 마주 보이는 곳에 있는 암자로 고려 말의 고승 나옹 화상(懶翁禪師,320∼1376)이 요연선사를 찾아가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나옹화상(懶翁禪師)은 다음 시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스님이었다.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청산는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惜兮(료무애이무석혜):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추석명절 다음날로 교통이 혼잡할 것 같아 지리산쪽으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명절때도 한가한 문경쪽으로 산행을 잡다 보니 작년 추석다음날 우리두 내외가 호적하게 다녀온 천주산~공덕산코스를 가기로 한다. 한번 다녀 와 본 곳이라 산행코스라던지 방법은 알고 있는 지라 이곳이 처음인 홍재와 진용만 천주산~공덕산 코스를 타기로 하고 우리는 두사람을 천주사 입구에 내려주고 대승사로 향한다.

천주사에서 38분이 소요 되어 대승사에 도착을 한후 우리 내외도 공덕산으로 향한다.

대승사에서 공덕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도 작녁과 좀 바뀌어 등산로 오른편으로 이고장 영농조합에서 버섯, 더덕,도라지,산나물,등을 재배한다로 들어 가지 못하도록 하였고 등산로를 따라 조금을 올라가자 작년에는 없던 임도까지 반야봉 쪽으로 나있다.

임도에 닿아 위쪽으로 200m정도를 올라서면 옛등산로로 오르는 곳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등산로를 따라 조금을 올라서면 능선사거리에 닿는다.

능선에 닿아 공덕산으로 오르는 능선에도 왼편으로도 영농조합에서 울타리를 치려고 철주등을 갖다 놓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이곳도 호젖하게 산행을 하기는 어려울듯하다.

대승사에서 산행시작 1시간여가 되어 공덕산 정상에 닿는다. 거리는 2km다.

공덕산 정상은 삼각점이 있으며 조망이 없는 것이 커다란 흠이다.

앞쪽의 천주산과 주변의 경치가 확트여 보인다면 정사으로서의 면모가 한결 나아질것인데~

공덕산정상에서 조금을 더가 삼거리봉에서 이제 천주산에서 이곳으로 올 두분을 기다리느라 이리 저리 기웃거려도 두님은 올기미가 보이질 안는다.

과일을 깍아 먹고 가져간 육전과 송편을 먹으며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도토리나 줍자고 시작을 하니 두어댓밧을 줍고나니 홍재가 먼저 이곳에 도착을 한다.

홍재까지 합류하여 진용이 도착할 때 까지 도토리를 줍고~

옛고개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그곳으로 향하는 중 길섶에서 넷이서 25분여 도토리를 주우니 거녀 한말은 되겟구나 ~~

역시나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하는 것이 낫고 둘보다는 넷이 훨 낫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하루 다.

옛고개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30분에 걸쳐 맛있게 먹고 난후 둘은 먼저 보내고 우리는 도토리를 주우며 천천히 오르니 삼거리를 지나고 묘봉쪽으로 향하는 중 다시 사불암쪽으로 하산로를 잡아 사불바위에 도착을 하니 14:20분이다.

이곳에서 앞능선에 보여야할 두사람을 목을 놓아 불러도 아래쪽 윤필암에서는 사람덜이 쳐다보지만 앞쪽 능선에서는 소식이 영 없구나 ~

한동안 사불바위에서 기다리니 안장바위 위쪽 묘봉꼭대기에서 두사람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보인다. 이제 신원이 확인되었으니 대승사로 차를 갖고 윤필암으로 가고자 하산을 시작한다. 5분정도를 급경사길을 내려서면 삼거리로 윤필암 400m, 대승사 600m라 적혀 있으며 대승사쪽으로 샘터가 있다. 물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

대승사에 도착을 하여 절 구경을 한후 우리마님 점심 급하게 먹더니 체했나 고생이 심하다. 등두드리고 손가락 따고 열심히 한후 윤필암입구에 도착을 하여 전화를 하니 에구 이님들 길을 잘못들은듯하다. 차를 몰고 이골짜기의 끝동네인 호암리로 향하니 청구초등학교가 막보이는 시점에서 홍재한테 전화가 온다. 차있는 곳까지 가냐고 에구 이아자씨야 그곳에 있으라우 앞에 보이는 차가 나여 ~~

다행히 하산할 지점을 정확히 잡아 그곳에 도착을 하니 앞쪽에서 전화를 하는 모습이 보여 크게 헤메지 않고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다.

돌아 오는 길에 마지막 동네에서 갈평쪽으로 넘는 길을 갈수 있나 그쪽으로 가보았으나 확장공사 중으로 아직도 먼날에나 그곳으로 넘을수가 있겟다.

오늘 한가하고 평화로운 산행 맘에 들었는지 모르겟구려 두분 ~~

다음산행에 봄세나 ~

이곳은 작년에 산행을 한곳이므로 대략 적으로 적어 본다.

 

청주 ~ 문경동로 천주사 ; 2시간소요

 

산행소요 시간 ; 6:10 (우리는 4:50분 널널 도토리 줍기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