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족두리봉~향로봉~비봉~문수봉~보현봉
2008.11.3 월요일 맑음 바람 세참
참석인원; 3명 홍재 흥기 나
천안 7:41 -서울역 8:56~9:06 -종로3가역 9:17 -불광동역 9:35 -왼쪽 현대 홈타운 -독바위길 합치 -쪽두리봉 10:30 ~10:38 -향로봉 11:40 -비봉 12:00 ~12:35 -헬기장 12:40 -사모바위 12:45 -승가봉 13:00 -문바위 13:04 -문수봉 13:45 ~13:50 -대남문 14:04 -보현봉 14:25 -보현봉하산 15;20 -평창동 철조망 16:30 -큰도로(평창동 한국은행앞) 16:50 ~16:55 -버스 -불광동역 17:04 ~17:20 -서울역 17:50 -천안역 18:56 ~18:58 - 조치원역 19:25 -청주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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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보현봉****
북한산 보현봉(普賢峰·714m)은 보현보살(普賢菩薩)에서 기인한 산이름이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여래를 협시하는 보살이다. 문수보살은 여래의 왼편에서 여러 부처님네의 대지(大智), 즉 큰 깨달음의 상징으로 지덕(智德)을 맡음에 비해 보현보살은 여래의 오른쪽에서 이(理), 정(定), 행(行)의 덕을 맡는다. 법화경과 화엄경의 우두머리 보살인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같이 모든 보살의 으뜸이 되어서 언제나 석가여래의 중생제도를 돕는다. 또 중생들의 목숨을 길게 해주는 덕을 가졌으므로 보현연명보살(普賢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전국 각지에 보현산, 보현봉이라는 산이름이 허다하게 있는데, 대부분 문수봉과 병존한다는 점이 특이한 경우라고 하겠다. 대체로 여러 산봉우리가 솟은 산에서는 정중앙에 위치한 산봉우리를 석가봉, 혹은 세존봉, 여래봉이라고 명명하고, 왼쪽에 위치한 봉을 문수봉, 그 오른쪽에 위치한 봉을 보현봉이라고 불렀던 것이 통례다. 이는 대웅전 중앙에 석가여래를 안치하고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함께 안치한 모형으로, 불교적인 천하관이 투영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 동일한 경우의 산이름이 춘천의 오봉산(옛 청평산)과 설악산, 그리고 충북 음성 진천의 가섭산에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들 산에는 모두 비로봉(또는 석가봉), 보현봉, 문수봉이 함께 연접해 있어서 불교적 정형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된 보현봉은 지리산의 보현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칠불암사적기>에 의하면 ‘김수로왕이 딸 하나와 아들 아홉을 두었는데 허황후의 청으로 둘째가 허씨 성을 따르고 나머지 7형제가 스님인 허황후 오빠의 영향으로 스님이 되었으며, 그 칠불을 기리기 위해서 지리산 보현봉 밑에 칠불암을 지은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맥은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발기하여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면서 지맥을 형성했으니, 우리 땅의 원류를 대개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말한다. 이 가운데 해동오악(海東五岳)이 있으니, 바로 백두산·금강산·묘향산·삼각산·지리산을 일컫는 것이다. 삼각산은 백운대를 정점으로 하여, 남북으로 길게 뻗어 북으로 상장봉으로 이어지고, 남으로 보현봉과 북악으로 이어졌으며, 서남으로 문수봉에서 굽이쳐져 있다.
풍수학으로 청학전상형(靑鶴展翔形)이라 하여 학이 청공(靑空)을 향해 날개를 펴는 형상을 뜻하며, 일찌기 도선국사가 삼각산을 가리켜 동국제일길지(東國第一吉地)로 표현한 곳이다. 그 중 인수봉(仁壽峰)·보현봉(普賢峰), 영봉(靈峰)이 한수(漢水) 위의 창공에 우뚝 솟았으니, 해동오악(海東五岳)의 중심은 단연 삼각산(中岳華山)이다. 서남으로 달리던 삼각산 연맥은 보현봉에 이르러 영기를 다시 모아 북악 봉우리를 형성하고, 그 아래 경복궁의 명혈(名穴)을 만들었으니 천하의 대길복지 명당처가 바로 이곳이다.
<세종실록>에는, 임금이 안숭선을 불러서 말하기를, “오늘 백악산에 올라서 오랫동안 살펴보고, 또 이양달과 최양선 등의 두 가지 말을 들으면서 여러 번 되풀이로 살펴보니, 보현봉의 산맥이 곧게 백악으로 들어왔으니 지금의 경복궁이 바로 명당이 된다”고 하였다.
또 황희, 신상, 김자지, 정인지 등에게 명하여 삼각산 보현봉에 올라가서 그 산의 내맥을 살피게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실록>에는 ‘보현봉(普賢峯)의 바른 줄기가 직접 승문원 터로 들어왔으니 바로 현무가 머리를 숙인 땅으로서 나라의 명당이 이만한 데가 없다’고 까지 기술하였으니 보현봉이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처를 품은 자궁인 셈이다.
그래서 이 산을 두고 도선국사는 ‘산형절어천하 지덕도어해동(山形絶於天下 地德渡於海東)’이라고 하였다. 즉 산의 형상을 보니 천하에 으뜸가는 산이요, 땅의 기운을 보니 조선 땅에 덕이 퍼질 곳이어서 조선의 도읍을 예언한 것이다.
이런 풍수적 예언 때문이었을까. 보현봉은 조선 초기에 한양도성의 내맥(來脈)을 살펴 보기 위하여 오르내린 봉우리다. 조선 세종 때 규표(圭表·태양관측기구)를 바로 잡기 위하여 수양대군 등이 출입한 일이 있고, 영의정 황희 등이 세종 15년(1433년)에 이 곳에 올라 도성의 내맥을 살핀 일이 있다. 단종 때에는 수양대군이 강희맹, 양성지 등 학계의 권위자들을 대동하고 보현봉에 올라 도성도(都城圖)를 최초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 북한산국립공원 산행이 가능한 법정탐방로 현황
구간 거리(km) 구간 거리(km)
통일교-보문능선-우이암능선 2.66 백화사입구-가사당암문 2.60
포대입구-도봉주능선-우이암 2.72 용암사입구-의상능선-문수봉 3.90
무수골매표소-보문대피소-우이암 2.20 산성분소-등운각 1.00
우이암매표소-원통사 2.05 범용사입구-가사당암문 1.60
육모정매표소-육모정고개 1.15 행궁지입구-남장대지-청수동암문 1.70
우이암-우이깔딱고개 6.00 북한산성계곡-대성암-대남문 1.20
백운매표소-깔닥고개 1.90 효자원-원효봉-대동사입구 2.90
백운대매표소-하루재-위문-백운대 2.00 북한산성입구-대서문-위문 4.10
용암문매표소-용암문 1.10 밤골입구-밤골계곡 0.90
소귀천매표소-대동약수 2.05 사기막골입구-백운대 3.30
백련사매표소-진달래능선-대동문 2.70 오봉능선-도봉주능선 1.10
운가사매표소-진달래능선 1.60 송추-송추남능선-오봉능선-도봉주능선 4.10
아카데미매표소-구천폭포-대동문 1.90 태고사-북한산대피소 0.80
위문-용암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 4.30 송추폭포입구-도봉주능선 2.20
냉골매표소-칼바위능선 1.25 송추-사패능선 1.80
화계동매표소-칼바위능선 1.25 사패산-사패능선-포대능선 3.20
빨래골매표소-칼바위능선-산성주능선 3.35 성불사입구-범골능선 0.60
정릉매표소-보국문 2.48 안골-사패산 3.50
청수폭포-일선사-대성문 2.69 의정부시청뒤-백인굴 1.30
북악매표소-형제봉삼거리 1.60 범골-범골능선-사패능선 2.80
형제봉매표소-형제봉-일선사 2.38 회룡골-사패능선 3.30
평창1매표소-일선사-보현봉-대남문 2.40 용학사-부왕동암문 0.90
구기분소-대남문 2.80 안말- 체력단련장 1.20
비봉매표소-비봉능선-문수봉-대남문 3.77 원도봉-체력단련장-포대능선 2.20
승가매표소-비봉능선 1.61 덕제샘-망월사-포대능선 0.80
탕춘대매표소-절터샘 1.00 원도봉-덕제샘-포대능선 2.20
구기터널입구-구기불광능선 1.80 원도봉-다락능선-포대능선 2.60
불광계곡-쪽두리봉 1.40 다락원입구-다락능선 1.30
불광계곡-비봉 2.30 독박골-구기불광능선 1.40
기독교수양관-향림당약수터위 갈림길 1.20 등운각-중성문-보국문 4.00
기자촌-향로봉 1.80 원각사입구-사패능선 2.50
진관계곡-비봉 3.62 삼천사계곡-응봉능선-사모바위 2.70
삼천사계곡-문수봉 1.50 삼천사계곡입구-사천사-부왕동암문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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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일 끝내고 분주히 움직여 미리 준비해 놓은 차시간에 간신히 맞추어 승차를 한다. 차를 타러 가는 중 흥기를 만나고 홍재가 보여야 하는대 안보인다.
승용차 격일제로 버스 타고 왓나하고 대합실로 향하니 역시나 그곳에 있다.
올 들어 도봉산은 두차례 댕겨 왓지만 북한산은 처음인듯하다.
북한산의 대부분의 주요 능선이야 다 댕겨 봣지만 가장 힘들엇던 곳중에 하나가 보현봉에서 사자능선으로 내려서는 곳이 엇던 것 같다.
여러번 그곳에 한번 가자는 홍재 땜시 오늘 또한차례 도전을 해볼참이다.
또한 처음 갓을 때 먼저 내려선분이 손짓을 하던 오른쪽 방향을 살펴볼 참으로 출발을 한다.
불광동 전철역 9;35
천안에서 7:41분 열차로 출발을 한다.
서울역에 8:56분 도착을 하여 지하 서울역으로 이동을 하여 1호선 전철로 종로3가 역까지 간다. 그곳에서 3호선으로 갈아 타니 지금 시각이 9;17분이다.
1호선 전동차가 발디딜 틈없이 복잡햇던 반면 3호선으로 갈아 타니 우리 셋이서 앉을 만큼 텅비어 있다. 몇정거장을 가 불광동역에 하차를 하여 구기터널쪽 2번 출구로 나간다.
족두리봉 10:30~ 10:38
불광동 2번 출구를 빠져 나가 구기터널쪽으로 20m를 지난후 왼편 골목으로 접어 들어 가면, 불광역에서 왼쪽으로 가다 우측으로 큰도로를 따라 온길과 만난다.
위쪽엔 현대홈타운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고 그앞으로 쓸모 없이 세워진 대문을 통과 하면 금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길은 아니지만 가장 최근거리에서 북한산으로 접어 드는 길이 아닌가 한다.
산으로 접어 들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 바위지대가 나오기 시작하며 20여분후 독바위에서 오른길과 만난다.
이곳부터 바위지대는 본격화 되며 몇 개의 슬랩지대를 통과 하고 능선에 조금 내려와 족두리봉이 바로 앞에 보이는 너럭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족두리봉의 모습이 이쁘다. 이곳에서 잠시 5분간 휴식을 갖은후 출발을 하여 5분여를 가면 족두리봉 정상으로 위험표지판이 있으며 목책을 쳐놓앗으나 중앙에 한군데 들어 갈곳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아 아주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는 갑다.
족두리봉 정상에 정상석은 없고 위험표지만 아래 족두리봉임을 알리고 있다.
정상아래 공룡알 바위라고 하던가 그곳에 올라 보니 윗부분에 조그만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향로봉과 비봉 그리고 비봉에서 이어 내려온 암릉이 너무 이쁘게 조망된다.
향로봉 (일명 삼지봉) 11:40
족두리봉에서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은 오르던 길로 다시 내려와 우회 하는 것이 정석이나 족두리봉 정상을 오른편으로 돌아 가면 바위틈으로 내려서는 지점이 나온다. 처음보다 마지막 끝처리 부분에서 좀 까다로운 면이 있으나 선등자만 잘 내려서면 그 다음 부터는 발디딜 틈을 알려 줄수 있어 어렵지 않게 내려 설수 있다.
이곳을 내려서면 하얀 슬랩 윗부분에 한가닥 철근을 박아 놓아 로프를 설치 할수 있도록 하엿으나 우린 달랑 셋이기에 그냥 하얀 슬랩을 내려서 마지막 홈통을 만들어 놓은 곳을 무사히 통과 하여 족두리봉을 하산하는데 성공 하엿다.
예전에 이곳을 내려온 경험이 있어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족두리봉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다. 향로봉 0.76km라 적혀 있다.
완만한 능선을 한동안 간후 다시 서서히 오르시작하는 지점에서 뒤를 바라보면 족두리봉의 위용이 참으로 대단하다,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하얀 암봉의 모습이 도저히 내려 설수 없을것만 같다. 서서히 오른후 향로봉 아래 릿지구간에 도착하니 에구 5~6명의 지킴이 분덜이 있으니 오늘은 그냥 아래쪽으로 통과 하는 수밖에 없겠 구려~
공연히 족두리봉을 내려 오면서 향로봉은 우회 한다고 하엿다가 말이 씨가 된듯하다. 홍재가 자일하고 안전띠가 있다고 하였으나 결정적으로 안전모가 없다고 보는 눈이 있어 안되겟다고 하여 우회길로 향한후 중간 지점에서 향로봉으로 향하여 올라 갔으니 그나마 반타작은 하것이 아닌가.
비봉 12:00~12:35
향로봉을 내려선후 작은 숨은벽 능선으로 향하는 조그만 암봉을 지나고 드디어 여러명이 대기 하고 있는 비봉 암릉구간에 이르러 홍재하고 흥기는 오른편의 크랙코스로 오르고, 난 왼편의 슬랩구간으로 올랏으나 처음 발디딤 순서가 바뀌어 다시 시도 한 끝에 올라 섰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멈추어 선 바람에 실패를 하여 홍재가 끌어 주어 올라섯다. 에구 망신살 ㅎㅎ 담엔 성공한다. ㅎㅎㅎ
비봉에 진흥왕순수비가 바뀌엇다. 예전 것은 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이곳엔 문화재청이 복제를 하여 설치 하엿다고 써 있다.
비봉 정상부를 통하면 맨위쪽에 삼각점이 있고 이바위 끝지점 까지 간후 바위를 건너 뛰어 내려서면 긴바위 하나가 흔들바위다.
혼자서 올라서서 이리저리 흔들면 쉽사리 흔들린다.
비봉 중간 지점 코뿔소바위 오른편으로 넓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른 점심식사를 한다.
오늘 퇴근후 곧바로 달려 온통에 점심식사를 홍재가 준비하여 맛있게 잘먹었다. 흥기도 덤으로 반찬을 더 준비하여 오늘이 가장 풍성한 식단이 아니엿나 한다.
앞으로 쭈욱 이런식으로 하면 점심걱정은 안해도 되겟다.~
사모바위 12:45
비봉 코뿔소 바위에 극성스런 홍재만 올라 사진한컷을 남기고 ~
비봉을 내려선후 헬기장을 지난다. 평탄한 길을 따라 10분을 이어가면 다시 커다란 헬기장이 나오며 앞에 사모관대를 닮았다는 사모바위가 나온다.
잠시 사모바위에 올라 본후 내려서 승가봉을 지난다.
문수봉 12:45~12:50
승가봉을 지나고 대문바위를 지나 20분을 진행하면 문수봉 위험코스가 나온다.
문수봉 오르는 암릉코스엔 거의 철주를 설치하여 쉽사리 오를수 있다.
철주를 설치한 중간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연습바위로 일컷는 햇불바위 (내가 부르는 이름임)로 직접 오르는 구간을 통과하여 아래쪽 바위클랙을 잡고 맨 위쪽으로 오르면 햇불바위 중간 틈에 조그만 불상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 10분 정도 구경겸 휴식을 취한후 다시 바위 길을 따라 오르면 마지막 문수봉정상에 오른다.
문수봉 정상으로 오르는 바위에도 틈을 만들어 놓아 어렵지 않게 오를수 있다.
문수봉을 내려서면 문수봉 정상이라 써있는 철주가 있고 예전에 펄럭이던 태극기는 지금은 없다.
대남문 14;04
문수봉을 내려서는 지점에 종로구와 고양시의 경계표석이 있고 이곳부터 내려서는 길을 따라 북한산성 성곽이 이어진다.
성곽아래 대남문이 있고 대남문을 나오면 오른편에 문수사가 있다.
문수사는 고려 예종 4년 대감탄연국사께서 주위의 기묘한 기암괴석과 경관, 천연동굴에 매료되어 불우를 짓고 문수암이라 칭하고 천연동굴을 문수굴이라 칭하엿다 한다. 또한 이곳은 신령한 영험도량으로 알려져 오대산 상원사, 고성 문수사와 함께 우리나라 문수보살 3대 성지로 알려져 국내 제일의 기도도량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조선조의 암행어사 박문수도 부친이 오랫동안 후사가 없어 이곳에서 기도후 얻어진 인물이고, 이승만 전대통령도 그의 자당께서 이곳에서 기도후 얻어진 인물이라 한다. 그인연으로 4.19직전 82세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올라 문수사의 사액을 남기고 사내대중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보현봉 14:25
대남문을 나와 왼편으로 줄을 넘어서면 희미한 길이 하나 있다.
이길을 따라 가면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른다.
몇 개의 바위를 넘으면 보현봉 위험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내려서는 아주 까다로운 바위를 내려서야 한다. 이곳을 내려선후 어렵지 않은 바위를 두군데 넘어서 오르면 보현봉 정상이다.
서울이 한양이던시절 주산은 백악(청와대뒷산인 북악산)이요 그 부모산은 삼각산이며 백운·만경·인수의 삼각이 천지의 기를 흠뻑 머금었다가 주능을 타고 보현봉으로 응집되고 이 보현봉이 힘차게 남쪽으로 맥을 뻗쳐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을 이룬다고 하엿다. 보현봉아래 바위를 돌아 가면 보현굴이 있는대 무학대사가 도를 딱았다하고 굴 안 벽면에는 문화재급인 산신도가 양각되어 있었고 오른편 위쪽의 바위 벽면에는 칠성도가 새김되어 있었다하나 둘 다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곳을 인체로 비기자면 한양을 배라 할때 삼각산의 세 봉우리는 정수리이고 보현봉은 콧대라는 것이며 보현굴은 정확히 몸의 인중에 해당한고 한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천도를 결심하고 한양에 새로운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았는데 도성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연결하는 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것인데 둘레가 약 17Km에 이른다 하였고 서울이라는 지명은 공사를 하면서 어디서 어디까지 성을 쌓아야 할지 고민 하는데 어느 날 큰 눈이 내려 하나의 선을 따라 선 밖에는 눈이 쌓여 있고 선 안쪽에는 눈이 없어서 태조는 필시 하늘에서 내린 뜻이라 하여 그 선을 따라 성을 쌓도록 하였다며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하여 설(雪)울이라 불렀고 설울이 서울로 발음 되면서 오늘날 서울이 유래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보현봉 하단 15:20
보현봉에서 하산은 예전에 산불감시초소 있는 곳으로 하여 계곡을 따라 내려선 경험이 있다. 그땐 계곡 중간지점 두군데에 시원찬은 줄이라도 있어 잡고 내려선듯한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
그전에 내가 이곳으로 내려 설 때 앞서간 님이 손짓으로 오른편을 가리키던 생각이 나 처음부터 오른편으로 길을 찾아 내려 섰다.
처음 구간은 크게 어려움 없이 내려 설줄 알앗으나 역시나 요령 부족인가 끝부근이 안되겟다. 보조줄을 치고 내려선후 다시 아래쪽을 살펴본 홍재가 쉽지 안은듯한 표정을 짓는다.
내려서 보니 쉽지가 않겟다. 이곳도 내려선 코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어쩔것인가. 마지막 수단으로 보조자일을 치고 내려 서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첫 번째 코스는 어렵지 안게 보조자일을 치고 내려선다.
다시 두 번째 지점 이곳은 보조 자일을 치고 내려서기도 어렵다.
완전직벽으로 보조자일만 잡고 내려서긴 어려운 구간이다.
앞서 둘이 무사히 내려서고 난 배낭이 무거운탓인지 그냥 고곳으로 내려서기가 망설여 진다. 옆으로 돌아 내리기로 하고 조심조심 보조자일을 움켜지고 바위를 잡고 아주 천천히 내려서니 시간이 걸려 그렇치 내려 설만하다.
무사히 보현봉의 어려운 구간을 내려서는대 무려 55분이 걸렷다.
기도원 공터 봉 15:24
보현봉을 내려서 암릉을 따라 내려 오면 기독교인들의 기도처인 기도원 공터가 있는 봉이 나온다. 지금도 이곳에 올라와 울부짓으며 기도하는 분이 있다.
기도터를 내려오면 능선은 두갈래로 갈린다. 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하여 평창매표소자리로 하산하는 길과 우리가 가려는 길로 갈린다.
철조망 넘어 평창동 동네길 16:30
우리는 기도터가 있는 바위봉을 내려서 아래쪽 바위봉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보는 기도터 바위봉의 모습이 기묘하니 이쁘다.
이바위봉에서 계속 암릉을 타고 내려면 길은 또 두갈래로 갈린다.
한길은 구기매표소가 있는 쪽 능선이고 한길은 평창동으로 내려서는 가장 짧은 능선이다. 우리는 가장 짧은 평창동으로 직접 내려서는 길을 따라 진행을 하니 평창동이 가까워 지며 길은 더욱 희미해지며 동네로 내려서는 지점은 길이 혼미하고 앞에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고 이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옆으로 하여 마지막 동네길로 접어 드는 지점도 원형철조망이 쳐져 있어 간신히 이곳을 넘어서 동네 길로 내려 섰다.
서울역 17:50
이동네길을 따라 20분을 내려서니 버스가 다니는 큰길로 평창동 한국은행앞 버스정류장이다.
예전에 연속극에서 부자집하면 평창동 마님부터 나오는 것을 보앗다.
오늘 이곳을 지나오면서 역시나 평창동 마님이 나올만 하다는 것을 보고 느꼇다.
평창동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을 오니 불광동 전철역이다.
이곳에서 3호선을 타고 다시 종로3가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서울역으로 오니 17시 48분이다.
불이나게 걸어 17시 50분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천안역에서 대피중인(서울역 17:45분차)차를 타고 조치원에 19:25분 도착 청주로 돌아 오니 19:50분이다.
오늘도 무사히 산행마치고 돌아온것에 감사하며 오늘 일정을 마친다.
천안~ 불광동 전철역 ; 약 2시간소요
산행시간 ; 7시간소요
산행거리 ; 약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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