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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373 덕숭산(예산)~해미읍성~개심사~마애삼존불~보원사지2008.10.26 일요일

덕숭산(예산)~해미읍성~개심사~마애삼존불~보원사지

2008.10.26 일요일 맑음

마눌,소연 나랑 셋에서 ~

 

청주 8;40 -신창휴게소 9:43 ~9:55 -수덕사주차장 10:30 ~10:37 -주능선길(저수지위 임도에서 올라온길과 만남) 11:10 -대문바위 11:12 -너럭바위 11:30 ~11:37 -의자바위 11:55 -철조망(출입금지) 12:02 -정상 12:07 ~12:20 -정혜사 -만공탑 12:47 -향운각 12:57 -소림초당 -수덕사 13:10 ~14:05 -서울식당 14:18 ~14:48 -수덕사주차장 14:53 -해미읍성 15:18 ~16:05 -개심사 16:15 ~16:50 -마애삼존불 17:09 ~17:28 -보원사지 17:33 ~17:47 -집 20:20

 

 

****덕숭산****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산.

금북정맥이 서해로 달려가다가 마지막쯤에 기운을 모아 힘껏 솟구친 산이 덕숭산(德崇山)이다. 해발 495m로 작고 아담하지만 두리뭉실한 인근 산과는 달리 힘찬 산세를 지니고 있다. 울창한 숲 뒤로 사람 두개골이나 노적가리, 사나운 짐승의 입 벌린 형상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정상에 오르면 안면도와 서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한 눈에 쏘옥 들어온다. 이렇듯 경관이 빼어나 예로부터 호서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이 산의 자랑거리는 산의 남쪽에 자리잡은 수덕사이다. 1308년(고려 충렬왕 34년)에 창건된 사찰로, 경내의 대웅전(국보 49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손꼽힌다. 마치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과 불룩한 배흘림기둥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절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정혜사와 견성암 등의 암자를 만나는데, 옛날 경허와 만공 등 고승들이 수도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덕을 숭상한다는 산의 의미가 느껴진다.

산의 북쪽 능선은 가야산(678m)으로 이어진다. 두 산은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과 아름다운 경치를 담고 있어 1973년 3월 6일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산온천과 윤봉길 의사 사당 충의사, 천주교인들의 성지 해미읍성, 추사 김정희 고택 등이 가까이 자리하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미읍성*****

사적 제116호. 1963년 지정. 1491년(성종 22)에 축조된 것으로, 둘레 1,800 m, 성 높이 5 m, 성 안의 넓이 6만 4350 m2이다.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의 임무를 담당하던 곳이며, 폐성된 지 오래되어 성곽이 일부 허물어지고, 성 안의 건물이 철거되어 그 자리에 해미초등학교와 우체국 ·민가 등이 들어서는 등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나, 1973년부터 읍성의 복원사업을 실시, 민가 및 관공서가 철거되었다.

본래의 규모는 동 ·서 ·남의 3대문이 있었고, 옹성(甕城)이 2개소, 객사(客舍) 2동, 포루(砲樓) 2동, 동헌(東軒) 1동, 총안(銃眼) 380개소, 수상각(水上閣) 1개소, 신당원(神堂院) 1개소 등 매우 큰 규모였다고 한다. 현재 복원된 것은 3대문과 객사 2동, 동헌 1동, 망루 1개소뿐이다. 1418년(태종 18)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설치되었다.

 

******개심사****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 대웅전 은 보물제 143호 개심사영산회괘불탱 보물 제1264호

절의 기록에 의하면 개심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진덕여왕 5년(651)과 의자왕 14년(654)은 다른 해에 해당한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654)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1941년 대웅전 해체 수리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건물은 고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개심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이 건물은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이 조선 전기의 대표적 주심포양식 건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과 대비가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화면 중앙에 서 있으며 둥근 얼굴, 비대한 어깨, 유난히 길고 굵은 팔, 짧은 하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옷에는 둥글고 변형된 덩굴무늬가 빽빽하게 장식되어 있고, 석가모니불 뒤의 광배에는 모란 줄기와 연꽃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석가의 머리 주변엔 7구의 화불이 둥글게 앉아 있으며, 옆으로는 2구의 비로사나불과 노사나불이 석가를 협시하고 앉아 있다. 석가의 몸통 주변에는 8구의 화불이 좌우로 앉아 있으며 맨 아래 부근에는 2구의 제석천과 범천이 손을 모은 자세로 석가를 향해 서 있다.

조선 영조 48년(1772)에 그려진 이 그림은 임금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주로 붉은색과 녹색을 사용하였고 아름답고 복잡한 문양에서 매우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현실적인 신체비례와 복잡한 문양에서 18세기 후기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애삼존불********

종목 : 국보 제84호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

시대 : 백제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보원사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雲山面) 용현리(龍賢里) 상왕산(象王山) 북쪽에 있던 절터.

신라 말∼고려 초에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雲山面) 용현리(龍賢里) 상왕산(象王山) 북쪽에 있던 절터이다. 이곳에 있던 절을 강당사(講堂寺)라고도 하였다.

현재 건물은 없고 아주 넓은 절터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石槽:보물 102)·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103)·5층석탑(石塔:보물 104)·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보물 105)·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106) 등과 그 밖에 쇠로 만든 불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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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천 각흘산~명성산~여우봉~사향산을 다녀와 죽은듯히 곤히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쾌청하니 좋다.

오늘 산행계획에 관광코스는 미리 잡아 놓앗기에 아침식사하고 준비하여 집을 떠나는대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진 안았다.

천안을 거쳐 신창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다시 예산 덕산을 거쳐 수덕사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주차장안이 차량으로 가득하다. 일찍도 오셧구려 덜~

 

정상 12:07

주차장에서 아래쪽으로 저수지위쪽으로 임도길이 보인다.

그길로 올라서면 쉽겟으나 거기까지 가기가 싫어진다.

가까운곳으로 개울을 건너 능선을 잡아 가니 희미한 길이 있다.

이길을 따라 오르니 공기돌 같이 생긴 동그란 바위를 지나 주능선길에 도착을 한다. 이길이 저수지 위쪽 임도길을 타고 온길이다.

이제 서쪽으로 조망이 트이며  커다란 대문바위를 지나고 다시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아래쪽에 수덕사와 주차장 앞쪽의 용봉산이 조망이된다.

간단히 이곳에서 사과한개를 깍아 나누어 먹은후~

의자 같이 생긴바위를 지나며 오른편에서 떠드는 소리가 난다.

이제 수덕사에서 올라온길과 가까운거리에서 만나겟다.

철조망을 옆으로 돌아 넘어서니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고 수덕사에서 올라온길과 만난다.

이곳에서 서서히 올라서니 5분후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덕숭산 정상이다.

능선길로 돌아 올라왔어도 1:30분 정도 밖에 안걸렷다.

정상에서 보는 조망이 좋다.

서쪽으로 해미로 넘어 가는 터널이 보이고 그옆으로 가야산의 모습이 보인다. 동으로는 용봉산이 있고 그앞으로 덕산 동네가 속내를 드러낸다.

멀리 삽교천의 물결이 보일 듯 말듯하다.

 

수덕사 13:10~ 14:05

하산은 동쪽능선을 따라 가면 조그마하고 깨끗이 단장을한 암자를 지나고 길을 내려서면 두갈래길이 있다. 여기서 다시 오른편길을 따라 가면 정상에 서 오른편으로 내려선길과 만난다.

배추밭을 지나고 다시 좀더 가면 수덕사와 함께 599년 지명법사가 창건했다는 정혜사가 나온다. 이곳은 고승들이 용맹정진하던 도량으로 1930년 만공선사가 중수,가람을 재정비하엿다고한다.

애석하게도 오늘은 문이 굳게 닫혀 참배를 할수 없다.

다시 좀더 내려서면 정혜사아래쪽에 바위문이 있고 그위쪽으로 만공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탑인 만공탑이 있다.

탑에는 세계일화등의 문귀가 새겨져 있다.

 

만공탑에서 다시 5분여를 내려서면 향운각이 나온다.

수덕사의 부속암자로 만공스님이 조성한 관세음보살입상이 있다.

만공스님은 전북 태인에서 태어나 8.15해방 다음해인 1946년 이곳 수덕사로 입적햇다. 14세때인 1885년 계룡산 동학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시다가 서산 천장사에서 경허를 계사로 사미계를 받앗다.

덕숭산 자락 수덕사는 멸종되어 가던 조선시대의 선맥을 끝까지 지켜온 당대의 선승 경허와 만공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스승경허는 일본제국주의 시절 공주시내에서 지팡이에 돼지고기를 매달고 대로변을 무애자재로 활보하고 다녓다는 기골이 장대한 거침없는 선승이었고 그의 제자 만공은 이곳 수덕사에서 조선의 선맥을 끝까지 지켜온 선승이다.

관세음보살입상은 모든중생의 8가지 고통을 덜어 주는 감로수병을 손에 드시고 머리에는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어머니의 상호를 모시고 계신다.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만공스님이 1920년대에 손수 세운 초당이 90년전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소림초당을 내려서면 수덕사 본당으로 국보 49호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고 기도를 하면 모든소원이 성취된다는 관음바위, 보물로 만공스님이 남원 귀정사에서 이운해 온 삼존불(석가,아미타,약사)이 봉안되어 있고, 보물1263호로 지정된 현종14년 4월에 조성된 괘불, 만공스님이 세운 관음상, 1978년 전통범종 주조기법에 따라 경내에 직접 주조공장을 만들어 제작한 무게6500근의 청동제 대종이 있다.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 창건되었으며 현존하는 유일의 백제 사찰이다. 대한불교 제7교구로 현재 충남일대 60여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또한 견성암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선방으로 1930년 만공스님의 뜻에 따라 도흡스님이 창건하엿다. 현재 비구니 백여명이 수행정진하고 있다.

우리 마님도 이날 청동기와 한 장을 불사 했다.

이밖에 김일엽스님이 열반한 환희대, 김응로 선생의 수덕여관등 볼거리가 있다.

 

서울식당 14;18 ~14:48

수덕사 관람을 모두 마치고 매표소로 나오니 입장료가 2000원이라 되어 있다. 매표소에서 나와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식당가의 가장자리쪽에 자리잡은 서울식당에 들어가 산채정식을 시키니 반찬이 20여가지에 먹을거리가 많고 맛도 좋다. 식대는 일인당 1만원이다.

 

해미읍성 15:18~16:05

수덕사 주차장을 나와 덕숭산에서 보이던 해미쪽으로 넘어가는 터널을 지나 25분을 가니 해미읍 중앙에 해미읍성이 나온다.

이곳은 조선시대 해안지방에 출몰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혀온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석성으로 당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이곳 해미로 이설하여 230년간 종2품 병마절도사가 두둔하게 된다.

또한 조선후기 천주교인들이 대량으로 처형당한 순교 성지이다.

정조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병인양요와 1869년 오페르트 도굴사건으로 극심해져 이지역의 교도들을 잡아 들여 처형했는대 그수가 무려 1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 끌려온 신도들은 회화나무에 철사줄로 매달려 고문을 받고, 서문 밖 돌다리 위에서 자리개질을 쳐서 죽기도 하엿다. 많은 인원을 한줄로 엮어 생매장 시키거나, 물에 빠뜨려 수장시키기도 하엿다고 한다.

 

개심사 16:15~16:50

해미읍성을 떠나 10여분을 가면 운산면에 위치한 개심사가 나온다.

개심사는 충남 4대사찰중의 하나로 백제시대 혜감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대웅전의 기단이 백제때의 것이고 현존건물은 이조시대인 1475년(현종6년)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현종 15년에 중건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개심사 주차장에서 세멘포장길을 따라 5분여를 오르고 다시 선심동계곡을 따라 5분여를 오르면 절아래 조그만 연못이 있는 개심사 절이다.

언뜻보아도 오래된 사찰임을 알수 있으며 봄에 왕벗꽃이 필 때 그경치가 이쁘다고 한다.

 

마애삼존불 17:09 ~17:28

개심사를 떠나 운산가기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산고개를 넘어 터널을 지난후 다시 고풍저수지를 끼고 한참을 간후 우측길로 접어 들어 용현계곡으로 5분여를 들어가면 마애삼존불이 있다.

길에서 다리를 건너 5분여를 올라서면 불이문을 지나 조각난 바위군 아래쪽에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마애삼존불이 있다.

국보제 84호로 우리나라 마애불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백제의 미소로 명명되어 있다.

 

보원사지 17:33~17:47

마애불에서 5분여를 용현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발굴작업중인 보원사지가 나온다. 유물로는  보물로 지정된 5층석탑과 보승탑 당간지주등이 있다.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와 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주변에 100여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엇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오늘 덕숭산 산행과 더불어 수덕사 해미읍성 개심사 마애불 보원사지를 끝으로 가야산을 한바퀴 도는 일정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 무사히 귀가 하엿다.

 

청주 ~ 수덕사 주차장 ; 약 2시간 소요

산행시간 ; 2:30분(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