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용아장성 백담사~수렴동~봉정암
2008.10.3~4 금~토 무박산행
참석인원; 6명 덕준 진용 홍재 흥기 홍민 나
서청주 인터체인지 3일 22:00 -문막휴게소 11:20 ~11:30 -홍천인터체인지 4일 00:03 - 인제 00:42 -내설악광장휴게소 00:50 ~00:57 -용대리 01:10 ~01:25 -백담사 02:30 ~02:40 -영시암 03:35~03:45 -수렴동대피소 04:00 -옥녀봉아래 안부 04:55 ~05:55 (조식) - 바위봉 06:00 -뜀바위 06:20 ~06:25 -개구멍바위 07:00 -개구멍바위 지나 첫봉 07:23 - 2봉 07:40 ~07:55 -3봉 08:23 - 4봉 08:40 ~08:45 -5봉 8:58 -하강완료 9:23 -6 봉 (우회) -7봉 9:51 -8봉 (칼날능선) 10:11 -9봉 10:30 -10봉(우회) -긴바위 슬랩 -11봉(바위고개) 11:00 -12번째 봉(20m 수직벽) 11:20 -13번째 봉 11:38 - 봉정암 11:48 ~12:10 - 사자바위 이정표(해발 1180m 대청봉 2.5k, 봉정암 0.2, 백담사 10.6k) 12:15 - 쌍용폭포 12:50 ~13:05 -백운동입구 13:32 - 수렴동 14:02 - 오세암 삼거리 14:17 -귀때기골입구 15:15 -흑선동입구 15:15 ~15:45 -백담사 16:00 ~17:24 - 용대리 17:38 ~ 18:00 - 속초덕흥식당 18:30 ~19:17 -강능휴게소 20:15 ~20:55 -평창휴게소 21:20 ~21:40 -음성휴게소 23:35 ~23:45 -서청주 인터체인지 00:15분 도착 완료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3번째로 높은 설악산은 주봉인 대청봉(1,708m)을 비롯하여 700여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설악산을 설산, 설봉산, 설화산으로 적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가위에 내리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서야 사라지기 때문에 설악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설악산은 외설악, 내설악, 남설악으로 나뉘는데 한계령과 미시령을 경계선으로 동해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이라한다. 외설악은 설악산 주봉인 대청봉, 관모산, 천불동 계곡, 울산바위, 권금성, 금강굴, 비룡폭포, 토왕성폭포 등 기암절벽과 큰 폭포들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고 내설악은 백담계곡, 수렴동계곡, 백운동계곡, 가야동계곡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봄의 철쭉, 여름의 깊은 녹음과 시린 계곡물, 가을 단풍, 눈덮인 겨울 설경 등 설악산은 사계절 모두 절경을 이며, 특히 가을이면 대청봉으로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의 물결이 장관이다.
“용아장성”은 '용의 어금니가 긴 성벽을 둘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용아장성은 ‘날카로운 암릉을 오르내리며 내설악의 절경을 한껏 맛볼 수 있는 최상의 리지등반 코스’다. 좌우에 가야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을 끼고 오르내리는 긴 능선의 장쾌함은 처음에는 클라이머들만이 만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덜이 즐기고 있다. 하지만 심심찮게 실족사와 조난이 발생하여 언제부터인지 입산금지 구역이 되어 있다.
※ 용아장성은 계절에 관계없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서 항상 출입금지구역입니다 그러나 국립공원 설악산 관리공단에 허
가를 받으면 가능함니다. 허가없이 입산시 적발이 되면 처벌을 받습니다 (과태료 약 70만원)♣ 용아장성이란 '용의 이(齒)
로 위에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성처럼 길게 둘려쳐있다는 뜻이다. 용아장성의 험하고 날카로운 산세는 숙련된 클라이머
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저 험난한 기암들을 다 타고 넘어야 했는데, 지금은 우회로가 제법 나 있는 상
태라 휴가철이나 연휴철, 일반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단풍이 붉은 물결을 이룬 가야동계곡과 구곡담계곡 위로
뻗은 능선의 장쾌함은 쉽사리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용아릉은 71년 여름 요델, 한국산악회 KCC, 어센트산악회 3개 팀이
무려 일주일에 걸쳐 개척등반을 했다. 당시에는 암봉을 전혀 우회하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까다로운
루트로 알려졌다. 지금도 우회로를 따르지 않고 온전히 암봉을 등반한다면 하루산행으로는 어림도 없다.지금의 용아릉에는
전문 등반가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 대학산악부에서 저학년 훈련등반을 목적으로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반 산행인들이
많이 찾는다. 80년대 후반 안내산행팀들이 들이닥치면서 어려운 곳에는 암봉을 돌아가도록 우회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겐 식상한 코스가 돼버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까다로운 곳이 몇군데 있다. 또한 산행 중
에 물을 구할 수가 없어 물을 가지고 가야 하며 어느 곳으로 올라도 산에서 1박을 해야하므로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다. 안
내산행팀들은 새벽 2시에 오색에서 대청을 올라 용아릉산행을 하고 백담사로 하산하지만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
른다. 용아릉 등반에서 위험구간은 옥녀봉에서 용아릉 1봉 오름길에 많이 있다. 뜀바위. 3m 턱바위와 가로지르기, 개구멍
바위, 2m 크랙 등은 쉽게 오를 수 없는 곳들로 리더가 보조자일을 설치해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4봉부터 봉정암 가기 전의
9봉까지는 대부분 우회로가 나 있다. 자신의 실력에 비추어 무리하게 암봉을 넘어가려 하지 말고 어렵다고 판단되면 우회
해야 한다. 이미 많이 올라 갔다 하더라도 어렵다 싶으면 되돌아 우회하는 것이 좋다. 3봉에서 4봉 가는 길의 5m 하강, 9봉
넘는 길의 30m 하강지점에는 줄이 매어져 있다.암벽등반 경험이 풍부한 리더와 함께 팀을 이루어 산행을 한다면 내설악의
아름다운 풍광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용아장성의 험한 산세는 종종 실족사와 조난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암벽등반 전문가의 조언을 받거나, 등산에 필요한 장비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수렴동 대피소 출입문 바로
옆, 경사진 흙 길을 10여 분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이는 암부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산행이 기다리고
있다. 대청을 향해 뻗은 용아장성의 암릉을 쉼 없이 오르내려 봉정암에 도착하기 직전, 20여미터에 이르는 절벽이 나타난
다. 로프를 이용해 절벽의 난관을 극복하면 용아장성 종주의 막이 내린다. 봉정암에서 대청으로 오르거나 구곡담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8 - 9시간이 소요된다. 원칙상 용아장성은 아쉽게도 비정규등산로로 지
정되어 산행할수 없다. 공단직원이 철저히 출입을 막고 있다. 적발시 과태료를 부과받습니다.(용아장성은 항상 출입금지구
역입니다 그러나 설악 관리공단에 허가를 받으면 가능함니다만 10월1일부터10월31까지는 불허가 기간으로 갈수가 없습니
다. 적발이 되면 처벌을 받습니다. 일인당 70만원)용아장성산행시 보조자일은 필수. 많은 암봉을 넘어야 하는데.비록 지금
은 우회로가 곳곳에 나 있다고해도.보조자일을 써야할 곳이 많다. 식수도 넉넉히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코스라면 수렴동대피소부터 올라서 봉정암까지로 산행을 한다. 전문적인 암봉등반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도 우
회로를 이용해서 워킹등반을 할수있다.일명 개구멍바위근처와 봉정암직전 25m 하강지점이 주의를 요하는 곳입니다. 수렴
동에서 봉정암까지 대략 5km암릉으로 8~9시간(워킹)정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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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산행전 항상 걱정이 되지만 설악산 용아장성 산행은 많은 부담과 걱정이 된다.
10월 20일경 가려던 것을 서로간에 일정이 잘맞는 첫째주로 당겨 실시 하기로 한다.
천안에서 21시 출발하여 서청주 인터체인지에서 22:00출발
용대리 01:10 ~01:25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호법을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이어지니 연휴라 그런지 차량이 좀 있다.
문막휴게소에 들어가니 많은 차량과 사람으로 붐빈다.
잠시 휴게소에서 쉰다음 출발하여 다시 중앙고속도로 접어 들으니 차량이 간혹 다닐뿐 거의 도로가 텅비어 있다.
홍천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인제 원통쪽으로 국도를 따라 가니 여러대의 차량행렬이 이어진다. 몇 대의 관광버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하며 인제를 지나 속초,양양으로 가는 삼거리의 내설악휴게소에 들르니 여러대의 관광버스와 수많은 차량이 몰려 있고 휴게소 안과 밖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역시나 3일 연휴라 설악이 미어 터지겟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용아에도 많은 무리가 모일까봐 미리 걱정이 앞선다.
많은 인원이 몰릴 경우 개구멍 통과시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휴게소를 떠나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조용하니 인적은 없고 주차장에 전년엔 몇 대의 차량많이 있엇는대 오늘은 거의 꽉차있다.
미리 올라가 잠을 자고 있다는 애기 인데 ~
백담사 입구 02:30 ~02:40
오늘 용아장성 산행중 홍재랑 둘은 3번째 산행이지만 나머지 4명은 처음가는것이 많은 걱정과 기대감이 크리라!!
용대리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완료하고 01:25분 출발
주위엔 인적이란 하나 없고 개도 짖지를 않는 이른시간이다.
달도 기울어 깜깜한 밤
분연히 어두운 산속길을 더듬어 가는이 어디를 가는것인가?
몇일을 두고 밤잠을 못이뤗다는 흥기
그간 많은 번빈을 수없이 반복햇는 이과장 ㅎㅎㅎ
내두 걱정은 똑같이 많은 것이라우~~
후레쉬 비추고 바삐 올라가는 이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들까?
난 그저 입구만 무사히 통과 햇으면 하고 간다우~
전에는 이정표도 몇 개 보이더만 이정표도 안보인다.
어느덧 가다보니 이정표가 하나 있고 남은 거리는 3.5km 올라온거리가 3km라고 적혀 있다.
다시 조그만 속삼임으로 지루함을 달래며 걷다 보니 첫 번째 다리를 건너고 다시 부리나케 걸으니 또하나의 다리를 건넌다.
이제 백담사가 얼마 남지 안앗다는 것을 안다. 이길로 밤길을 걸어 오르길 네 번째니 말이다.
얼마 안되어 일주문을 지나고 백담사 입구에 도착을 하니 1시간 05분이 걸렸다. 이곳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한후 ~~
영시암 03:35 ~03:45
백담사를 출발하여 이제 길이 더어두워 진다.
지금까지는 버스가 지나는 정도의 길이 었지만 이제부터는 완전히 등산로 접어 드는 것이다.
백담산장을 지날 때 까지는 그런대로 길이 좋으나 이곳을 지나며 부터는 좁다란 길과 나무다리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길골입구의 다리를 건너고 또 걷는다.
다시 곰골로 이어지는 문앞에 설치한 입산금지 간판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고 한시간여를 걸어 오르니 막막한 산속에서 연기내음과 향내음이 콧속으로 들어 온다. 영시암이 얼마남지 안은듯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10여분은 올랏을까 앞에서 후레쉬불을 비추며 내려서는 이가 있으니 영시암에서 하룻밤을 기거하는 산객이 해우소를 찾아 가는 길이다. 드디어 영시암에 도착하여 시원한 물한모금씩을 마시며 조용히 한다고 했으나 너무 고요한 밤이라 그소리도 컷던 모양이다.
스님이 나오셔서 한바퀴 행하니 돌아 보시고 들어 가신다.
잠이 없는 산객 한분많이 일찍이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한다.
어제 오색서 올라 이곳까지 왓다고 한다.
올해도 영시암의 김장배추가 무럭무럭 잘자라고 있다.
수렴동 대피소 04:00
영시암을 떠나 오르막을 올라서면 오세암과 수렴동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여기서 살짝내려서 다리를 건너 냇가로 계속 올라서면 수렴동으로 가는길이다.
영시암에서 15분 거리니 이제부터 조심해야 한다.
어느덧 철다리를 건넌다. 에구 누구여 철판소리가 너무 크다.
대피소는 조용하다.
대피소앞을 무사히 통과 하여 몇m 앞에 있는 담을 홍재가 먼저 넘고 내가 넘어 서려는 순간 노오란 불빛이 비치며 “나오시오” 한다.
에구머니 깜짝이야 알았수 ~ 에이 대청봉이나 올라 가자 ~
무리에게 이르고 수렴동계곡을 따라 오른다.
뒤에 있는 홍재를 앞에 보내며 샛길을 찾아 보라이르고 얼마를 가니 금시 샛길을 찾는다. 이곳에서 잠시 후레쉬불까지 끄고 근황을 살피니 쫒아 오지는 안는다.
능선안부 04:55 ~05:55 (아침식사)
침투 작전을 펼쳐 20여분을 올라서니 본길과 만난다.
능선길을 따라 가다 바위지점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멧지만 금시 길을 찾아 올라 간다.
어두운 밤에 침투작전으로 본길을 접어두고 온탓에 잠시 길이 헷갈렷다.
5m 정도의 수직벽을 오르고 암릉길을 걷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 선다.
무사히 능선안부까지 내려서니 한시간이 걸렷구려~
(작년에 기거하던 곳인지는 확실치 안치만 시간적으로 맞는듯하다.)
능선에 우리 6명이 안을 만한 아늑하고 바람이 안치는 따스한 지점에 자리를 잡고 이과장님이 준비해온 도야지고기 찌개거리와 올해 버섯도 별로 나지 안앗는대 어렵게 딴 버섯을 준비한 진용님과 합작품인 도야지버섯찌게를 맛있게 귾여 (주방장은 홍재님) 입맛이 없는 아침식사에 휼륭한 식단을 제공햇다.
뜀바위 6:20 ~6:25
한시간에 걸친 식사시간이 지나고 다시 좀더 기다리니 이제 후레쉬 없어 길을 분간할 만하다.
이제 본격적인 용아장성길에 접어 든다.
날이 밝았으나 주위 짙게낀 안개로 인하여 한치앞도 분간이 안간다.
바로 앞 오세암쪽의 망경대가 안보인다.
5분여를 걸으니 바위봉에 닿고 다시 20여분을 더가니 첫 번째 관문인 뜀바위다. 오늘 산행은 여성분이 안낀 관계로 뜀바위는 어려움 없어 모두 쉽게 건너뛴다.
참고로 오세암의 전설로~~
...<한 스님이 5살 먹은 어린 소년과 이 곳 암자에 머물고 계셨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스님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속초로 길을 떠나셨다. 이 때 암자에는 5일 분의 식량이 남아 있었으며, 스님께서는 “내가 만일 눈길에 막혀 5일만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식량을 아껴 먹으면서 꼭 기다리라고” 소년에게 말씀하셨다. 많은 눈이 내린 탓에 암자 주위의 동물들도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암자를 찾았다. 소년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식량을 동물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소년은 굶주림에 지친 상태에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였다. 한 달 만에야 눈길은 뚫렸고 스님이 도착하셨다. 스님이 암자 문을 여니 “스님 이제 오셨어요?” 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미 소년은 숨진 상태였으며 생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세암의 전설 : 부처가 된 5세 동자>
(조선 인조21년(AD1643)에는 설정대사(雪淨大師)가 다시 관음현신을 목격하고 중창불사를 편 후 절의 이름을 오세암이라 고쳤다. 이 과정에 너무나 유명한 오세동자의 전설이 생겨났다.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다. 대사는 어느 해 초 겨울날 월동준비를 하기 위해 마등령 넘어 양양의 물치장터로 가게 되었다. 어린 조카를 혼자 두고 가기가 마음에 걸려 며칠분의 밥을 지어 두고 법당안의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며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라고 신신 당부를 한 후 무거운 발길을 옮겨 양양으로 떠났다.
설정대사가 양양에서 장을 본 후 외설악 신흥사(新興寺)에 왔을 때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 산길이 막히고 말았다. 대사는 조카가 걱정이 되어 조바심을 태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흥사에서 그해 겨울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이른 봄 설정대사는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암자로 달려왔다. 그런데 경내에 다달았을 때 뜻밖에도 법당안에서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대사는 황급히 법당 문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굶어 죽은줄만 알았던 어린 조카가 목탁을 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있었고, 방안에는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대사는 어린 조카를 와락 끌어안고 어떻게 지냈느냐고 다그쳐 물었더니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며 "저 어머니가 와서 밥도 먹여주고 잠도 함께 자고 놀아도 주었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 때 홀연히 한 백의의 젊은 여인(白衣女人)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부처가 되었다(成佛)는 기별을 주고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다.
설정대사는 그 순간 관세음보살의 가피(加被)에 감격하고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살아나게 된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절을 중건하고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
이런 전설이 있는데 어느것이 맞는지~~~
<오도송(悟道頌) - 만해 한용운>
"1917년 12월 3일. 설악의 깊은 밤.
오세암에서 좌선을 하던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무엇인가를 떨구고 가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갑자기 풀렸다. 이에 시 한 수를 짓는다."
男兒到處是故鄕(남아도처시고향) 사나이 가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幾人長在客愁中(기인장재객수중) 몇 사람이나 오래도록 나그네로 지냈는가
一聲喝破三千界(일성갈파삼천계) 한 소리로 온 우주를 갈파하니
雪裏桃花片片紅(설리도화편편홍) 눈 속에 복숭아꽃 하늘하늘 붉어라.
개구멍 바위 07:00
뜀바위를 건너뛰면 앞에 어느님의 추모비가 있는 바위봉 전에 이곳에 암벽을 타는 님덜이 기억이 난다.
다시 무서움이 느껴지는 암벽지대 첫머리에 로프가 매어 있어 잡고 오르고 좀더 진행을 하여 간신히 바위 위로 올라서며 개구멍바위로 접어 든다.
홍재가 먼저 건너가고 다음 내가 건너가 카메라를 건네주고 폼을 잡고 한방 흔적을 남겨 본다. 이어서 덕준 흥기 진용 악당이 무사히 잘 건넌다.
이곳이 상당히 어려운곳이나 어렵지 않게 쉽게 건넛다.
개구멍 지나 첫 번째 봉 7:23
개구멍 바위를 지나 양옆으로 아늑히 떨어지는 단애가 무서움이 느껴진다.
좁다랗게 이어지는 암릉의 오른편으로 올라 키높이의 바위를 로프를 잡고 올라선다. 다시 바위지대를 더거쳐 올라선다.
개구멍 바위를 지나 첫 번째 봉 난 이곳을 삼각봉이라 칭햇엇다.
이곳에 올라서면 비로소 지금과의 경치가 확바뀌며 비로서 중청봉의 둥그런 탱크가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오른편의 귀때기골과 암릉, 공룡의 듬직한 모습,오세암쪽의 망경대와 암봉의 모습이 보기 좋으나 오늘은 안개로 인하여 아직껏 주위의 경관을 볼수가 없어 아쉽다.
두 번째 봉 7:40 ~7:45
칼날 같은 암릉길을 따라 걷는다.
걸을땐 모르지만 뒤돌아 보면 섬뜩할 정도로 오른편이 수백m의 수직단애 지역이다
세 번째봉 8:23
이곳도 칼날같은 바윗길을 따라 걸어 오른다.
이제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주위의 경관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모습을 드러낸 내설악의 그모습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고 신비로움이 느껴 진다. 아 설악의 이모습이 난 좋다.
네 번째봉 8:40~8:45
세 번째봉의 위험한 급경사 바위길을 내려서고 다시 급경가 바위길을 올라셔야 한다. 전봉에서 암릉을 따라 오다 보면 3개의 봉으로 보인다. 그래서 난 이곳을 삼형제봉이라 칭하여 부른다.
삼형제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한다.
주위에 보이는 바위 군상덜의 모습이 좋다.
봉정암쪽으로 보이는 수십개의 암봉덜 서북능선 끝청 아래 펼쳐지는 여러개의 암봉 오세암쪽 공룡의 아래쪽에 펼쳐진 암봉의 모습이 마치 키재기를 하며 내가 제일이라 자랑 하는듯하다.
다벗째봉 8:58
바위를 올라 하강을 해야 한다.
첫 번째는 하강을 했고 두 번째는 우회를 햇지만 오늘은 올라서 하강을 한다.
둘러 놓은 슬링이 많이 낡고 끊어 질려고 하는 곳이 많다.
우리 슬링줄을 하나더 걸고 조그만 줄이 하나 매달려 있으나 불안하여 30m짜리 보조 자일을 내리니 길이가 딱맞다.
내가 먼저 조심스레 내려 오고 이어서 홍재가 내려와 중간지점에서 확보를 하여 모두 안전하게 내려 오는데 성공하엿다.
6봉 우회를 하고
7봉 9:51
6봉을 우회하여 내려서고 다시 틈새로 바위를 잡고 올라선다.
이후 앞에 보이는 좁다란 암릉이 8봉으로 오른쪽으로 붙어서 바위를 잡고 오른후 바위 암릉을 올라야 한다.
여기부터 다음 9봉까지 이어지는 암릉에 모습이 보기 좋다
우뚝히 솟은 촛대바위가 있고 되돌아 본 용아의 험상굳은 얼굴이 섬뜩 하다.
양쪽으로는 수직 단애 조심스레 올라야 한다.
8봉 칼날능선 10:11
참으로 험한곳이다.
바위도 단단하지를 않아 함부로 잡고 넘기가 겁난다.
오르는 곳곳이 칼날같아 내가 붙인 이름이다.
9봉 10:30
앞에 봉정암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 우뚝이 솟은 몇 개의 봉이 보이고 끝청 자락에 매어 있는 암봉의 모습
봉정암 뒤편에 있는 여러개의 암봉에 모습
이모든것이 설악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10봉 우회
11봉 11:00
길고 좁다란 바위 슬랩지대를 통과 하는 곳으로 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앞에 우회한 뾰족한 바위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몇 개의 뾰족한 바위봉의 군상과 봉정암 뒤편의 여러개의 바위봉과 오세암쪽으로 가는 길머리의 이쁘게 생긴바위가 잘보이는 곳이다.
조그만 바위문을 통과하여 바위고개를 넘기전 모퉁이를 돌아 내리는 곳이 어렵다.
12봉 11:20
바위고개를 넘어 쓰러진 나무를 부여잡고 내려서면 이어지는 길은 바위사면을 타고 넘는 길로 어려운구간이다.
1m정도의 바위를 내려서고 다시 옆으로 이동 또 이동을 하면 좀 넓직한 바위가 있고 이곳에서 보는 3개로 이루어진 바위고개를 넘던 쪽의 암봉이 이쁘게 조망된다. 다시 로프를 잡고 바위를 올라서면 20m 수직벽으로 두곳으로 내려설수 있도록 줄이 메어 있으나 왼편의 한줄은 잡고 내려서기가 좀 어렵고 2줄이 메어있는 쪽은 한결 발딛기도 쉽고하여 내려서기 좋다.
봉정암 11:48
직벽을 내려서 2~3분 진행을 하면 이제 오늘의 마지막 올라서는 코스로 물기가 많아 조심을 해야하는 구간이나 오늘은 그간의 가뭄으로 인하여 미끄럽지 않아 좋다.
이곳을 올라서면 이제 봉정암쪽으로 내려서며 용아장성이 막을 고하는 곳으로 조심조심 눈치를 봐가며 내가 척후병으로 나서서 가니 지킴이는 없고 등산객많이 무수히 지나친다.
이렇게 하여 무사히 봉정암에 안착을 하여 점심식사를 받아드니 에고 이게 뭣이여 미역국에 밥한숟가락이다.
내보다 뒤에 온님덜은 불행히도 그것도 못 탓으니 꼼짝없이 밥을 굶고 말았다. 간단히 초코렛과자로 점심을 때우고 가쟈니 오늘 밥굶은 두분 엄청 열받을기요 ㅎㅎㅎㅎ
쌍용폭포 12:50 ~13:05
봉정암에서 내려서는 길에 붉은 단풍이 좋다.
사자바위라는 곳에 이정표가 있고 대청봉까지 2.5km, 백담사가 10.4km이니 잰걸음으로 내려 가야 하겟다.
앞서가는 노인분덜이 많아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된다.
이리저리 헤쳐 나간다. 한시간을 걸어 내려 오니 양쪽으로 길게 두 개의 폭포로 이루어진 쌍용폭포다.
쌍폭골쪽으로 올라서자니 길이 없다. 간신히 비좁고 첫 번째 단까지 올라서서 폭포를 감상하니 경치한번 좋구나~
더 이상의 진행은 포기하고 먼저 그냥 내려간님덜을 쫒아 가니 홍민이많이 기다리고 있다. 쌍용폭포 전망대에서 흔적을 남기고 열심히 내려간다.
백운동 입구 13:32
몇 개의 폭포를 지나고 단풍이 이쁘게 물든 계곡길을 따라 걸으니 올라갈 때 보다 힘도 들지 않고 시원하니 기분이 좋다.
한동안 내려가니 흥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앞선님은 덕준과 진용 둘이다.
기다리지 않게 열심히 내려간다.
시원한 계곡에 모여 앉아 즐기는 님덜도 많다.
붉게 물든 단풍과 시원한바람 이보다 더좋은 경관이 어디 있겟는가. 잠시 즐기며 노는것도 좋을 것이다.
30여분을 쉼없이 내려서니 백운동입구다.
수렴동 14:02
이제 부터는 몇 번 지난 길이다.
단풍은 이제 위쪽 보다 상당히 줄어든다.
몇해전 수해로 완전히 유실된 길도 깨끗하게 복구를 하엿다.
허나 계곡에 흘러내린 잡석들은 어찌할 수가 없겟지요 ~
세월이 흘러 자연복구 되는 수밖에는 ~
이제 수렴동이 얼마남지 않은거리에서 이르니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누가 다리를 다쳐 구조요청을 하여 싣고 가는 중이란다.
이곳에 이르러 앞서간 두분과도 합류를 한다.
영시암 14:20 ~14:30
수렴동을 지나며 마지막 남은 먹거리가 있는곳 이곳도 먹거리가 떨어지면 큰일이다. 부리나케 걸어 내려가니 영문을 모르는 님이 우째 이리 빨랑가냐고 한다. 오세암삼거리를 지나고 영시암에 도착을 하니 단체온듯한 많은 무리가 모여서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떠든다. 에구 산행이나 잘할랑가!!
다행히 영시암에 도착을 하니 흰죽을 끊여 보시를 하고 있다.
점심도 쪼게 얻어 먹고 하여 배도 고프고 하여 한사발 담고 김치고 듬직히 받어 넣고 입가로 가져 가니 그맛이 꿀맛이다.
점심 굶은 아찌 ㅎㅎㅎ늦엇지만 많이많이 드시라우 ~~
흑선동계곡 15:15 ~15:45
영시암을 떠나 이제 완만해진 길을 따라 걸어 내려 온다.
별 특징이 없는 길이 오히려 지루하다.
다리를 건너 곰골 안쪽에도 진을 치고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님덜이 있고
다시 길골입구를 지나 예전에 올라 갓던 귀때기골 입구를 지나고 다시 좀더 내려 가면 장수대에서 내려온 계곡이 있다.
우리는 이계곡으로 들어가 이제 시원한 것을 넘어 금시 얼어 붙을 듯한 찬물에 세족을 하니 아 시원하고 춥고 덜덜덜 떨린다.
백담사 16:00 ~17:24
세족을 한후 다시 백담사까지 15분에 걸쳐 내려오니 백담사 뒤마당까지 길게 늘어선 줄이 에고 클랏다 싶다.
별 뾰죡한수도 없고 줄의 맨 끝에 서서 기다리니 3~4십명 뒤로 울님도 도착을 하여 뒤로 간다.
눈치가 보여 앞에 세울수도 없고 끝마무리에 이산이족이 되엇다.
한시간이면 걸어서 내려갈수 있을 거리인대 오늘 15시간의 산행후유증으로 절대로 걸어 가지 안을 것을 알고 있기에 걸어 가자고 말을 안하고 기다리니 1:20여분이 지난후 차례가 되어 승차를 하여 용대리에 도착을 한다.
뒤에 4명은 10여분후에 용대리에 도착을 하여 짐을 해체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속초의 덕흥식당을 찾아 가니 미시령터널을 2800냥을 주고 통과 하여 식당까지 찾아 가니 30분이 소요 된다.
속초에 있는 덕흥식당에서 생선찜으로 저녁식사를 마친후
19:17분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접어 들어 강릉휴게소에서 40분간 졸리움을 쫒아 내고 출발하엿으나 아 이넘의 졸음을 쫒기엔 역주족이다.
운전을 하는 악당놈 감시를 하여야 하는데 감시는커녕 내가 졸고 있으니 우짤꼬 악당아 조심조심 가거라!!!!!!
평창휴게소에 들러 다시 20분간 휴식을 취한후 출발
가는중 전광판에 새말부근 2km 정체 문막~강천까지 7km가 정체된다고 나온다. 새말부근에 이르니 정체는 없다.
다시 중앙고속도로로 갈것인가, 그냥 영동고속도로 갈것인가 고민하다.
금시 새말도 안밀리고 잘왓는대 그냥 가자 하고 가니 문막까지는 쌩쌩 잘달리던 차가 문막에 이르니 에고 정말 못가고 있다.
그렇게 7km의 거리를 거북이 걸음을 하고 호법을 통하여 음성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갖고 서청주 인터체인지에 도착을 하니 늦은 00:15분이다.
오늘 힘든산행에 오는길도 밀리고 짜증스러울텐데 군소리 하나 없이 올적갈적 운전한 악당 정말 고생햇다.
같이 산행에 동참한 우리님덜도 고생많았다우~
힘은 많이 들고 고생도 되었겟지만~ 처음 올라간 용아장성의 위용에 감탄을 하셧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우리 산하 곳곳을 열심히 다니실수 있는 곳까지 다니싶시오
어느곳이던 그나름대로에 멋이 있지요 !
오늘도 수고 많았습니다.
청주 ~ 속초 ; 약 300km
청주 ~ 용대리 ; 3:10분 소요
속초 ~ 청주 ; 6시간 소요
산행시간 ; 15:00시간
산행거리 ; 약 28.5km
경비 ; 연료비 95000원
고속도로비 7600+ 12000원 =19600원
식대 65000원
주차비 4000원
버스비 1800x 6 = 10800원
영시암 5000원
계 ; 200400원
오세동자의 오도
<설악산·오세암>
『스님, 속히 고향으로 가 보세요. 어서요.』
설정 (괴빙대?)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캄캄한 방 안엔 향내음뿐 아무도 없었다.
스님은 그제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꿈을 꾸었음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오색구름을 타고 와 자꾸 흔들어 깨우던 이는 관세음보살이었나.」
이상한 꿈이다 싶어 망설이던 설정 (괴빙대)스님은 새벽 예불을 마친 후 고향으로 향했다.
설악산에서 충청도 두메산골까지는 꼬박 사흘을 밤낮없이 걸어야 했다.
30여 년만에 찾은 고향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큰댁(가시내), 작은댁(몽년내) (거미내)등 친척들이 살던 마을은 잡초만 무성할 뿐이었다.
스님은 괴이하다 싶어 어릴 때 살던 집을 찾아갔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속명(박아무개)을 부르며 노부모님들이 쫏아 나오실 것만 같은데 인기척이 없었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에 휩싸야 집안을 둘러봤다.
그리곤 어머니(어진내), 아버지(진강), 형님(거덜)??을 불러봤으나
대꾸 대신 마루틈에서 자란 밀과 보리싹만이 보였다.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관세음보살님은 왜 고향엘 가 보라고 하셨을까?」
그때였다. 아랫마을에 산다는 노인(정구)가 나타났다.
허, 시주를 오신 모양인데 잘못 오셨소이다.
이 마을은 얼마 전 괴상한 병이 번져 모조리 떼죽음을 당하고 오직 한 사람 세 살된 (영부)라는 어린아이가 살아있을 뿐이오.』
알고 보니 그 어린아이는 설정(괴빙대) 스님의조카뻘이 되었다.
설정 스님은 (영부)를 찾아 등에 업고 설악산으로 돌아왔다.
잘 키워 가문의 대(代)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게 바로 관음보살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영부는 야무지고 영리??했다.
산짐승 소리도 무서워하지 않고 다람쥐와 장난도 하며 잘 자랐다.
스님따라 조석 예불도 하고 염불도 곧잘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기는 다섯 살이 되어 제법 상좌 구실까지 해냈다.
그 해 늦은 가을. 겨울살림 준비를 하던 설정(괴빙대) 스님은 겨우내 먹을 식량을 구하러 설악산을 넘어 양양에 가야했다.워낙 멀고 험한 길이라 조카를 업고 갈 수가 없었다.
총명하고 똑똑하지만 겨우 다섯 살밖에 안된 조카를 혼자 두고 나가자니 그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스님은 조카를 앉혀 놓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절대로 문밖에 나오지 말아라. 그리고 무섭거든 관세음보살을 외워라.』
조카영부 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목탁을 추켜들었다.
설정 (괴빙대)스님은 몇 번을 단단히 이른 후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걸음을 재촉한 스님이 숨을 몰아쉬며 양양에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
식량을 구해 돌아가려니 이미 캄캄한 밤중이 되었다.
혼자 암자를 지키고 있을 조카를 생각하여 밤길을 떠나려 했으나 동네 사람들은 한사코 만류했다.
『험한 산길에 산짐승도 많거니와 바람이 유난히 날카롭고 세차니 오늘밤은 쉬시고 내일 새벽 떠나십시오.』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양양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튿날 새벽 길을 나서려 하니 밤새도록 내린 눈이 지붕에 닿게 쌓여 있었다.
마을이 이러하니 산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적설량 많기로 유명한 설악산은 눈이 내렸다 하면열 길 스무 길이라 이듬해 봄까지 꼼짝달싹 못하는 터다.
그러나 (괴빙대)스님은 미친 듯 배낭을 짊어진 채 문을 박차고 나섰다.
『스님 아니되옵니다. 못 가십니다.』
『놓으세요. 내 어찌 다섯 살짜리를 암자에 홀로 두고 그냥 있을 수 있겠소.』
스님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 눈 속에
설악산을 넘는다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므로 마을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말렸다.
스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힌 채 멍하니 설악산을 쳐다보았다.
그토록 아름답던 대청봉, 소청봉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눈 속에 묻힌 채 배고파 울고 있을 조카를 생각하면 그만 미칠 것만 같아 몇 번이고 설악산을 향해 치달렸지만 번번이 눈 속에 쓰러지고 말았다.
설정 (괴빙대)스님은 자연의 섭리를 내다보는 없었음을 뉘우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스님은 그만 병석에 누웠다.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눕기 한 달.
신도들의 극진한 간호에 병세가 호전되면서 버릇처럼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어느덧 설악산의 산이 변해갔다.
스님은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벌떡 일어났다.
마을 장정들이 스님을 부축하여 대청봉에 올라서니 저 아래 골짜기 관음암에서 이상한 서광 한줄기가 짙게 하늘로 뻗어 있었다.
스님은 미친 듯 조카를 부르며 단숨에 산길을 달려 암자에 당도해 보니,
법당 안에서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염불소리가 낭낭하게 들렸다.
순간 웬 여자가 오색 치맛자락을 끌며 밖으로 나와 하늘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법당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스님!』
반가움에 벼락같이 달려나와 안기는 조카의 모습에 스님은 그만 뒤로 물러섰다.
아니 네가….』
『제가 왜요? 스님 오시기만 기다리며 관세음보살을 외웠더니 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돌봐주셨어요.』
설정 스님은 와락 조카를 껴안았다.
조카영부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설정 스님은 어찌나 감격했던지 그날로 암자 이름을 관음암에서 오세암으로 고쳤다.
다섯 살짜리 영부?가 지킨 암자라는 뜻뿐 아니라
동자는 그때 이미 불법을 깨쳤음을 시사하는 이름이다.
이는 고려말엽의 일이라 한다.
그 후 오세암은 수차의 중창을 거쳤으나 6·25동란 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조그만 방 한 칸이 이 전설과 함께 남아 있다.
음--믿거나 말거나...
옴마니 반메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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