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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320 남한산성 벌봉~청량산~연주봉~금암산(하남) 2008.1.24 목요일 맑음

남한산성 벌봉~청량산~연주봉~금암산(하남)

2008.1.24 목요일 맑음

참석인원 ; 6명 산붕 릴라 솔바람 악당 관우 나

 

청주 종합운동장 8:30 -서청주인터체인지 8:37 -이천휴게소 9:23 ~9:35 -서울요금소 9:55 -고골초교 10:20 ~10:25 -푸른고을 -천신굿당 -파란지붕11:00 -235봉 11:12~11:20 -바위봉(전망대)11:45 ~11:50 -벌봉암문 12:12~12:15 -동장대 12:20 ~12:40 -옥정사지터 12:58 ~13:35 (중식) -수어장대(청량산) 14:08~14:20 -연주봉옹성 14:45 -꽃밭삼거리(골프장하산길) 15:09 -참샘골삼거리 15:30 -송전탑 15:35 -금암산 15:40 -능선안부 15:55 -고골초교 16:17 ~16:25 -하남 검단골추어탕집 16:40 ~17:35 -서울요금소 17:40 -음성휴게소 18:17 ~18:26 -오창인터체인지 18:45 -체육관 19:05 -복대동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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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을 지키는 외곽에 4대 요새가 있었다.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였다. 동쪽의 광주에는 남한산성이 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 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9.05km, 높이는 7.3 m이다. 원래 2천여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백제의 시조 온조왕 때 쌓은 토성이었으나, 이를 신라 문무왕 때 다시 쌓아 '주장성'을 만들고,그 옛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번 고쳐 쌓다가, 조선조 광해군때(1621)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 한다.   석축으로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는 약8km이다.  자연석을 써 큰돌을 아래로, 작은 돌을 위로 쌓았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문과 문루, 8개의 암문을 내었으며, 동서남북 4곳에 장대가 있었다. 상 안에는 수어청을 두고 관아과 창고, 행궁을 건립했다.  유사시에 거처할 행궁은 73칸, 하궐 154칸으로 모두 227칸을 이때 지었다.  80개의 우물, 45개의 샘을 만들고 광주읍의 행정처도 산성 안으로 옮겼다. 산성이 축조되고 처음으로 시행(인조 17년, 1639)된 기동훈련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1만 2,700명이었다.그러나 지금 성곽에 남아 있는 건물은 불과 몇 안된다. 동.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문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이서 장군사당, 숭렬전, 보, 루, 돈대 등이 남아있다. 그 중 4대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산성은 사적 제57호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등산을 겸한 봄, 가을의 관광은 성남시를 거치는 남문코스가 좋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는 동문 코스가 좋다.▶사적 제 57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에 있는 조선인조때 쌓은 산성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중의 하나로 신라문무왕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에 축성하였다. 남한지의 기록에 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 서가 총융사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26년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은 주로 승려들이 맡아 하였다. 성가퀴는 1700첩이고 4문과 8암문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이러한 시설은 기본적인 것에 불과했고 인조때부터 순조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은 상궐 73간반 하궐 154간이었다. 재덕당은 1688년에 세워졌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천이 세워졌다. 그리고 사적단을 옮길 우실도 세워졌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은 1829년에 수리되었다. 관아로서는 좌승당,일장각,수어청,제승헌등이 군사기관으로서는 비장청,교련관청,기패관청등을 비롯한 20여 시설과 더불어 종각,마랑,뇌옥,백제의 시조인 온조왕묘,서낭당, 여단등이 들어서고, 승도청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당시에 나라를 지키는 성군으로서의 불도의 힘은 대단히 컸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산성의 축성에는 승려 각성의 도총성이 되어 8도의 승군을 동원하였고 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전부터 있었던 망월사,옥정사 외에 개원, 한흥,국청,장경,천주,동림,남단의 7사가 창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장경사만이 남아있다.남한산성의 수리는 처음에는 총융청에서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자 수어청이 따라 설치되었고. 여기에는 전,좌,중,우,후의 5영이 소속되었는데 전영장은 남장대에, 중영장은 북장대에, 후영장과 좌영장은 동장대에 우영장은 서장대에 진을 치고 있었다. 현재는 서장대 하나만이 남아있다. 장대는 높은 섬돌위에 2층으로 지었는데, 아래층은 정면 5간, 측면 3간이고, 위층은 정면 3간,측면2간이다. 지붕은 팔짝이며 겹처마에 위층은 판문으로 막았으나 아래층은 틔어있다. 성문은 홍예문위에 성가퀴를 두르고 단층 문루를 올려세웠는데 매우 당당하고 위엄이 있다. 수어사 이시백이 축성후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년에 1만 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어 화의를 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하였으니 뼈아픈 역사였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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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반에 집에 와서 잠시 눈을 부치고 7시반에 일어나 식사하고 나갈채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으니 악당한테 나오라고 전화가 온다.

산붕님과 릴라 솔바람님 악당 나 이렇게 5명이 출발

서청주를 통과하여 중부고속도로를 달려 관우와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이천휴게소에 들러 잠시 바람을 쐐고 커피도 한잔씩 나눈후 출발을 하여 동서울 요금소를 나와 하남에서 빠지니 검단산을 가는 님덜이 엄청 많다.

 

이곳의 지리는 산붕님께서 잘아시는 관계로 걱정을 안해도 되겟다.

검단산입구 에니메이션고등학교를 지나 주유소에서 연료를 보충한후 지하도위에서 턴을 하여 검단산입구 반대쪽으로 들어가니 하남 시청4거리 이곳에서 직진을 하여 고골초등학교 위쪽에 차를 주차 시키니 여기가 오늘의 출발점이다.

 

고골초등학교 위쪽 미락원입구 1020~10:25

산행준비를 마치고 광주향교를 거쳐 객산으로 진입을 하려고 가다가 객산을 타는것이 큰의미가 없는것 같아 그위쪽에서 산쪽으로 접어들어 푸른고을이란 식당을 지나고 천신굿당을 지나 파란지붕에서 산으로 진입을 하여 오르니 낙엽송숲이 있고 산소를 여러기 지나 능선에 닿는다.

 

전망대(바위봉) 11:45 ~11:50

능선에 닿아서 첫 번째로 통과하는 봉이 235봉이다.

이제 부터는 크게 오르내리지 않는 산길로 걷기에 딱 좋다.

능선에 11시에 올라 첫 번째 235봉에 11:12분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고 옷을 한꺼풀 벗어 제친후 11:20분 출발을 하여 등줄기에 땀이 흠벅 벨즈음하여 전망이 좋은 바위 봉에 닿게 된다.

앞에 검단산에서 용마봉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훤히 조망이되고 앞으로 이어갈 벌봉까지의 능선길도 조망이 된다.

등산로는 아직 눈이 남아 있어 미끄러우나 크게 위험하거나 힘들지는 않다.

아직 이곳엔 많은 님덜이 오르지는 않고 간간히 앞에 오르는 님덜이 있다.

바위봉에서 각자 가슴까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겨울산의 상쾌함을 느꼇으리라~

 

벌봉암문 12:12 ~12:15

235봉을 떠나며 벌봉까지 얼마나 걸리겟냐고 묻는 산붕님께 1시간정도 소요 될것같다고 말을 해서 그런것은 아니지만 바위 전망대를 출발하며 상당한 걸음걸이로 진행을 하니 아마 뒤에서도 땀깨나 흘렷으리라 ~

가는 도중 샘터를 지나고 연자방아 버스타는 곳으로 내려서는 곳도 지난다.

이윽고 산행의 가장힘든 정상으로 치닫는 곳

하얀눈길을 헤치며 도착한 곳이 양쪽으로 성곽이 이어지는 도중에 조그만 문이 있는곳 바로 벌봉암문이다.

 

동장대 12:20 ~12:40

벌봉암문에 도착을 하니 한 노신사 분께서 웃고 계신다.

좌우지간 홍민이와 사진을 한컷씩 찍고 나서 뒤에 오는 님을 맞고 있자니 그 노신사 분께서 우리 산붕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것이 아닌가!

내래 그런줄 알앗으면 먼저 인사라고 할걸 ~

이렇게 해서 산붕님을 오랜옛지기를 만나시고 우린 그분의 안내로 수어장대 까지 오늘 일정을 같이 한다.

벌봉에서 바위 봉을 다 돌아 본후 이제 동장대로 향하니 길은 능선을 피하여 간다. 봉암성표석을 지난다. 이성은 숙종때 쌓은성으로 병자호란때 청병들이 벌봉에서 동태를 살폇기 때문에 본성의 보강차원에서 쌓앗다 한다.

다시 동장대아래 조그만 문을 통과하고 다시 본성의 암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걸죽한 막걸 리가 기다리고 있다.

몇몇분이 막걸리 한잔씩 드시는 동안 동장대까지 오르니 사방의 경치가 좋다.

 

옥정사지터 12:58 ~13:35

동장대를 뒤로 하고 이제 성곽길을 따라 가니 가는 내내 경치도 좋구 옛선조들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좋은 역사기행이 된다.

군포를 쏘기 위한 군포지가 있고 성곽의 물을 빼는 수구도 있다.

불행히도 군포는 한군대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이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성곽에서 조금안쪽에 있는 옥정사지에서 상을 차리고 간단히 라면도 한 개 준비하고 고량주도 한병준비를 햇으니 이보다 더 좋은 상차림이 없을듯하다.

수어장대(청량산) 14:08 ~14:20

식사를 끝내고 다시 성곽길로 올라서 가니 내리막길은 눈길로 살금살금 기어야 한다.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걷는 성곽길의 묘미가 상당히 재미나다.

가는길에 고골동네서 가장 근접한 북문은 보수가 완료되어 말끔히 단장이 되어 성루까지 있다.

이곳에서 조금을 더 진행을 하면 소나무가 즐비하게 있는 세맨도로길을 따라서 간다. 성곽길로 따라서 갈수도 잇으나 금시 위쪽에서 만난다.

어느정도 널따란 세멘트 도로를 따라가면 이제 연주봉으로 올라서는 길이 있으나 수어장대에서 그곳으로 갈것이므로 우리는 이길을 그냥 따라 간다.

성안쪽에 옛적에 승군이 주둔햇던 곳인지는 모르지만 절이 있고 그위쪽에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인 서문이 있다. 서문이 가장 옛것인듯하다.

다시 이곳에서 오름길을 따라 가면 가장높은 지점인 청량산 수어장대에 도착하게 된다.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성안에 남아 잇는 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 졋으며 병자호란때는 인조가 이곳에서 군사를 지휘 격려하면 45일간 항전하던 곳이다.

사당인 청량당이 있고 뒤쪽엔 우물이 2개 있고 매바위 오래된 향나무가 있다.

 

연주봉옹성 14:45

수어장대를 출발하여 막걸리집으로 가는 암문을 지나고 다시 오던길을 따라가니 산붕님이 막걸이 쏟는것을 유심히 살피고 계신다.

몇잔을 드셧으리라 ~~

이제 서문을 통과하여 조그만 봉을 올라서니 연주봉 암문에 닿는다. 이제 이문을 빠져나가 앞쪽에 길게 양쪽으로 성곽이 있는 좁다란 통로를 따라 가니 연주봉옹성에 올라선다. 예전엔 봉화대로 쓰엿던 곳인듯하다.

이곳에서 보는 조망이 참으로 좋다.

한강넘어 아차산이 있고 그위쪽에 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 노적봉이 조망되고, 도봉산 불암산 바로 앞쪽에 검단산이 조망된다.

 

금암산 14:40

연주봉 옹성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암문까지 간후 나가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나갓는지 밝히지 안겟다.

이곳에서 내려서는 급경사길을 지난후 바로 앞쪽에 조그만 봉을 지나고 다시 내려서고를 몇 번을 하면 송파구 거여동 마천동으로 내려서는 꽃밭삼거리를 지난다.

다시 오르락 내리락 어떤곳은 경사가 심하여 로프를 메어 놓은 곳도 있고~

이러는 동안 서하남 인터체인지로 빠지는 참샘삼거리를 지나고 이제 멀리서 바라보던 우뚝히 솟은 봉을 올라서면 이봉이 바로 금암산이다.

이렇다할 것도 정상석도 없는 봉이지만 지나온길을 되돌아 보고 처음에 올라서던 능선을 조망하는데는 이만한데가 없다.

 

고골초교 위쪽 미락원입구 16:17 ~16:25

이제 마지막 금암산까지 접수를 하고 하산

송전탑을 지나고 아카시아나무가 있는 조그만 봉을 넘어서고 다시 송전탑을 지나며 사거리 안부가 나온다. 이곳에서 계곡길로 하산하고 홍민이와 둘이서 능선길을 타고 내려서니 얼마를 못가 다시 만나게 된다.

이윽고 오늘의 산행을 종지부 찍는 미락원 입구에 무사히 안착하며 즐거웟던 시간들을 뒤로 한다.

 

미락원입구를 출발하여 하남시에 잇는 검단골 추어탕집에서 추어매운탕 3인분과 튀김으로 뒷마무리 베풀어 주신 관우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오늘도 같이 산행에 동참하신님덜 수고 하셧습니다.

 

청주 ~고골초교 미락원입구 : 1:50분 소요

산행소요시간 : 약 6시간

산행거리 ; 약15km

고속도로비 ; 5300원 x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