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면적 약 3,036만㎢, 인구 약 6억 8천 명(1994), 인구밀도 22.5인/㎢이다. 동쪽으로 인도양, 서쪽으로 대서양, 북쪽으로 지중해에 면한다. 대륙으로서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16·17세기 네덜란드의 항해자들이 이곳이 독립된 대륙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이다. 아프리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리비아라고 부른 지중해 남안(南岸)에서 원주민이 사용한 지명에서 비롯된다.
포에니전쟁 무렵의 로마인들은 지중해 대안(對岸)에 있었던 카르타고의 시민을 아프리라고 부르고 카르타고 정복 후에 이 지방을 아프리카주(州)라고 하였다. 아랍인들이 진출한 뒤부터 아랍어로 ‘이프리키아’ 라는 지명은 보다 넓은 지역(지금의 북서 아프리카)을 가리켰다. 이와 같이 아프리카로 불리는 지역은 역사와 함께 확대되어 왔다.
제1일차 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2019.11.19.일 18시 15분 출발
청주에서 출발하는 날
청주 공단입구에서 18시 출발 시간이 정해 졌다.
삼삼오오 출발시간이 입박해지자 도착하여 청주인원 16명중 15명이 도착하고 한분이 아직 안 오셨다. 보은에서 오시는 이경자님이 도중에 차량이 고장이 나서 조금 늦는다고 한다.
경자님은 15분이 늦은 18시 15분경 도착하여 버스는 곧장 출발한다.
천안 19:20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목천에서 국도로 나가 천안톨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4분을 태우기 위해 간다. 예정된 시간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 기다리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보문항 생선구이집 20:38~21:02
30여분이 늦게 천안에 도착하여 마지막 4분을 태우고 경부고속도로 경유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인천을 지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 보문항 생선구이 집에 들러 시원한 김치찌개로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한다.
인천공항(제1공항) 도착 21:25
보문항 식당에서 인천공항은 멀지 않아 20여분이 조금 더 지나 도착을 한다. 주변으로 많은 부대시설들이 보이고 점차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각자 짐을 챙겨 공항 안으로 들어간다.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용인 사시는 신난수 여사님을 합하여 이사장님이하 20분이 이번 아프리카 여행길에 오름니다.
이사장님 시간이 촉박한 듯 빠르게 일을 진행합니다. 일단 카타르항공 D카운트 25~34번 창구에서 일단 무거운 짐부터 부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분들은 짐무게에 연연하지 않지만 우리 4분 마지막으로 킬리만자로 갈분들은 짐무게 때문에 신경을 씁니다. 일단 이곳에서 케이프타운 까지는 1인당 30kg이 넘어도 되지만 도중에서 항공을 갈아 탈 때가 문제입니다. 국제 표준규격은 일인당 1개의 짐무게가 20kg 이기 때문에 초과하기 쉽상입니아. 플러스 1.8%인가를 해서 23kg 정도까지는 통과가 된다고 합니다.
일단 무사히 짐은 케이프타운까지 보내고, 우리는 줄을 서서 출국장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로 수속이 굉장히 빠릅니다. 여기서는 모르겠지만 각나라 다니다 보면 점차 느끼시게 될 겁니다. 금시 자동출국수속으로 출국장 빠져나가 검색대를 통과하여 면세점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적 여유가 생깁니다. 각자 면세점 구경도 하고 우리가 뱅기를 탈 D40번 게이트로 이동을 합니다. 보딩 시간은 00시 10분이기 때문에 대략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겹습니다.
2일차 11월 20일 수요일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날
인천공항 출발 00:35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뱅기를 탈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ZONE4 이기 때문에 조금 늦게 뱅기를 타게 됩니다. 예전에는 귀빈석 타고 막무가내로 탑승을 했는데 요즘은 ZONE으로 나누어 질서 정연하게 뱅기에 탑승을 합니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카타르 항공 QR859편입니다.
뱅기는 대형기는 아니지만 중형기로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으로 가는 많은 한국인 승객과 그 외 외국인들이 탑승을 합니다.
카타르 항공은 세계 4대 항공에 속할 정도로 써비스도 좋고 유명항공사라고 합니다. 한국인 승무원도 보입니다.
뱅기는 정확히 00:35분 움직이기 시작하여 활주로로 이동한 후 이륙을 준비합니다.
인천공항 이륙 00:44
활주로로 이동한 카타르 항공은 약 9분후인 00시 44분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인천에서 카타르 도하까지는 약 7200KM입니다. 먼 거리입니다. 비행시간만도 10시간 40분입니다.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 서해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 중국 텐진 부근으로 접근하여 북경 내몽골등을 거쳐 카자흐스탄 부근을 거쳐 이란상공을 지나 페르시아 만을 지나 카타르 도하에 착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카타르는 사우디아라비아 동쪽 끝 페르시아 만에 위치한 나라로 북쪽으로 이란과 마주하며 주변으로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 이라크등과 연접해 있는 페르시아만의 작은 국가입니다.
카타르
아라비아 반도의 동부 페르시아만(灣)에 돌출한 카타르 반도에 있는 국가이다. 18세기에는 오늘날 바레인의 토후(土侯) 할리파가(家)의 영토였으나 1868년 영국과 우호조약을 체결하였고 1916년 특별조약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71년 9월 1일 독립하였다.
정식명칭은 카타르국(State of Qatar)이다. 영토가 남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나머지는 페르시아만(灣)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슬람 왕족에 의해 통치되는 중동 국가로서, 면적이 적고 인구도 80만 명인 작은 나라이지만 900조㎥의 천연가스와 152억 배럴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 부국이자,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경제부국이다. 국명은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가 만든 지도에 '카타라'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행정구역은 10개주(baladiyah)로 되어 있다.
도하 착륙 05:14(한국시간 11:14, 시차 6시간)
카타르 항공을 타고 가는 중 기내식이 2번에 걸쳐 나옵니다.
메뉴판 한쪽이 한글로 작성되어 영어를 전혀 모르는 우리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 쉽게 주문을 할수 있네요~~
저녁으로 대구구이를 먹었고요, 아침으로 소고기 죽을 먹었습니다.
가끔 와인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며 장장 10시간이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카타르 도하 뱅기장에 착륙합니다.
도하 도착 05:30
착륙후 서서히 이동하여 공항으로 들어가는 트랩 앞에 비행기가 도착합니다. 10여분을 기다려 문이 열리고 공항 안으로 들어가면 카타르 공항은 환승을 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처럼 다른 비행기로 갈아 탈 분들은 쭈욱 나가다가 좌측 통로를 따라 가면 우측으로 검색대가 나옵니다. 검색대를 통과하면 곧 면세점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면세점 안으로 들어온 시각이 06시 02분입니다.
카타르 공항 보딩 07:09(한국시간 13:09)
탑승창구는 E18번 창구입니다. 우리가 타고 갈 항공편명은 QR1371편입니다.
보딩후 공항에서 운행하는 버스로 이동하여 항공기에 탑승합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피곤한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신 분들이 많습니다.
벌써 반나절을 꼼짝 않고 앉아서 왔으니 피곤하기도 하실 겁니다.
그래도 우리님들 잘 버티고 있는 것 갔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참가 하신 남창우 님 내외, 천안에서 오신 박노헌님 내외분도 점차 우리팀과 익숙해 지기 시작합니다.
도하 공항 출발 07:59(이후 현지시간만 적습니다. 시차는 6시간입니다)
도하에서 아프리카 끝에 위치한 남아공 케이프타운 까지 가는 뱅기는 예정시간보다 9분이 늦은 07시 59분 공항을 출발합니다.
도하공항 이륙 08:06
공항을 출발 뱅기는 활주로로 이동하여 잠시 후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도하 공항에서 남아공 끝 지점 케이프타운 까지는 대략 7700km가 됩니다.
인천에서 케이프 타운 까지는 총 15000km가 되는 거리입니다.
아빠찾아 삼만리보다도 먼 거리입니다. 삼만리면 약12000km이니 아구 멀기구 하다.
뱅기는 육지로 직선으로 가지 않고 페르시아만을 따라 동쪽으로 나와 아랍에미레트, 오만, 예멘등 바닷가 쪽을 따라 얼마 전 소말리아 납치범들이 우리나라 배를 납치했던 아덴만입구를 지나 바닷가를 따라 내려가다가 육지로 접어들어 잠비아, 짐바브웨를 거쳐 요하네스버스 부근을 지나 남아공 중앙을 관통하여 케이프 타운 공항으로 들어갑니다.
뱅기를 타고 약 1시간 후인 9시경 식사가 나옵니다.
계란찜, 감자, 과일, 빵등으로 식사를 합니다. 먹고자한 소고기는 떨어졌는지 요것 만 남았다고 합니다.
역시 와인, 맥주도 곁들입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15시 40분경 다시 식사가 나옵니다. 역시 기다리는 것은 밥묵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뱅기에서 따로 할 일이 없지유 먹는 것 빼고는~~
점심은 오랜만에 쌀밥과 닭고기, 파스타, 빵등이 나왔습니다.
기대하던 쌀밥 한술 뜨니 어디로 갔는지 숟가락에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쌀밥 묵는데 어렵습니다. 숟가락으로 떠지지를 않습니다.
케이프 타운 공항 착륙 17시 03분(서울 00:03 시차 7시간, 이후 현지 시간만 적습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목적지인 남아공케이크타운 공항에 도착을 합니다.
입국수속하고 짐 찾고 나오는 대 시간이 좀 걸림니다.
모든 수속 끝나고 나오니 대합실에서 얼굴 크고 힌옷 입은 젊은 한국인 가이드가 기다립니다. 케이프타운에 살고 있는 교민으로 40대 후반으로 보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1.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 이하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면적 1,219,090km2로 한반도의 다섯 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이다.(가이드 선생님은 남한의 12배라 함)
인도양과 대서양에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는 나미비아와 보츠와나, 짐바브웨, 동쪽으로는 모잠비크와 스와질란드에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영토 안에 레소토 독립국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경제가 발전했지만, 과거에 실시한 인종 차별 정책 때문에 국제적인 비난을 받아 유엔에서 쫓겨나는 등 오랫동안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에 취임한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인종 차별 정책을 폐지하면서 국제적인 지위를 되찾았다.
총인구 4,881만 명(2012년 기준, 가이드 선생은 5800만명으로 소개함) 중 79%가 흑인이고 9.6%가 백인이며 그 외에도 컬러드라 불리는 혼혈과 중국인, 인도인 등 많은 인종이 한데 섞여 있어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무지개의 나라'로 불린다.
수도는 행정 수도 프리토리아와 입법 수도 케이프타운, 사법 수도 블룸폰테인 세 곳이며 아홉 개의 자치주가 있다.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이지만 영국계 백인은 주로 성공회를, 네덜란드계 백인은 칼뱅파 기독교를 믿으며, 흑인들은 기독교 교리에 전통 신앙을 결합한 독립적인 종교를 갖고 있다.
2.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후와 지리적 특징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공의 계절은 우리나라와 정반대이다. 12월~2월이 여름이고, 6월~8월이 겨울이며 그 사이에 가을과 봄이 있다.
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인도양과 대서양의 영향을 받아 지역마다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는데, 내륙에 위치한 요하네스버그 주변 지방은 겨울이 비교적 춥고 여름이 건조한 편이다. 반면 인도양 연안의 더반 지역은 강수량이 많아 습도가 높고, 케이프타운이 있는 남서 해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국토가 넓은 만큼 지리적 특징도 다양하다. 국토 중앙에는 건조한 분지인 그레이트 카루 고원이 있고 중동부에는 아프리카 남부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드라켄스버그 산맥이 있으며, 동쪽의 인도양 연안에는 푸른 평지가, 서부에는 칼라하리 사막이 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하여 남서 해안에는 대도시 케이프타운을 중심으로 희망봉을 비롯한 많은 관광지가 있고, 전 국토에 걸쳐 수많은 국립공원과 자연 보호 구역이 있다.
3.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우리나라의 관계
남아공과 우리나라의 인연은 1950년 6·25 전쟁 때 남아공에서 9백 명이 넘는 공군을 보내 준 것에서 시작한다. 이때 전사한 39명의 공군은 한국 정부에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한국과 남아공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남아공의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이후인 1992년에 수립되었고,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1995년 우리나라를 방문하며 두 나라 간의 첫 정상 회담이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우리나라 최대의 무역국이며, 사회·문화·경제적인 모든 면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공항 출발 18:04
나오는 길에는 아름다운 테이블 마운틴의 사진과 돌모양의 조형물, 와인통 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통로를 따라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이동하는대 주룩주룩 내리는 비로 인하여 첫 번부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이러다 여행내내 비를 맞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앞서고요!!
여행은 일단 날씨가 반은 도와 주는것인 대 첫 인상이 좋지를 않군요!!
버스에 승차고 공항을 빠져 나가니 비는 서서히 그치기 시작하여 새파란 하늘이 나옵니다. 높다란 관제탑도 보이고, 공항을 좀 지나자 성냥갑처럼 생긴 빈민촌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중에 있는 빈민촌이라 남아공 당국에서도 신경이 많이 쓰이겠습니다. 어디든 빈민촌은 있는 법인데 공항근처라 너무 눈에 잘 띕니다.
식당 도착(Cattle Baron) 18: 28
공항에 도착하여 일단 저녁부터 먹으로 갑니다. 가는 길에 보는 테이블 마운틴 참으로 멋집니다. 내일이면 가겠지만 가면서 보는 경치가 구미를 당깁니다. 구름에 살짝 가린 멋스런 테이블 마운틴과 우측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사자머리(라이온스 헤드)는 그림과 갔습니다. 그 앞쪽으로 유럽인들이 원주민을 통치하기 위하여 지었다는 성곽(캐슬 오브 굿 호프, Castle of Good Hoope)도 보입니다.
야자수와 각종 조경수로 그림처럼 이쁘게 조성된 케이프타운의 시가지가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입니다. 좋은 환경과 쾌청한 날씨가 돋보입니다.
가는 도중 내일의 일정에 대해 애기합니다.
5시 30분 기상, 6시 30분 식사, 7시 출발 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라이온 헤드 등정, 와인너리, 테이블 마운틴, 와인 테스팅, 시내구경 등이라고 합니다.
공항을 출발하여 25분후 스테이크 전문점인 카텔 바론이란 식당에 도착합니다.
2층에 마련된 독립된 홀에서 우리팀만 아프리카 여행의 첫 번째 식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소고기 스테이크면 다 똑 같은 줄 알았는데 이거 참 뭣을 먹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우리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은 싫으니 바짝 익은 거 시켰습니다. 이름하야 “바짝”입니다.
"소고기 스테이크의 경우 몇 가지의 종류로 나뉘는데
어깨부분은 블레이드(blade) 스테이크, 갈비부분은 립(rib) 스테이크, 허리부분은 클럽(club), 티본(T-bone), 포터하우스(porterhouse) 스테이크,
허리 끝에서 잘라낸 것은 서로인(sirloin), 핀본서로인(pinbon sirloin) 스테이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로 석쇠 위에서 직화구이를 하거나, 프라이팬, 오븐에서 구우며 스테이크는 구워진 정도에 따라 다르게 불리기도 하는데,
살짝 익힌 것을 rare, 겉만 익으면 medium, 속까지 익으면 well-done이라고 합니다."
바짝 = well-done 요거 시켜 먹으니 피는 나지 않아 좋은 대 우리나라 소고기 등급과 틀려서 인지 너무 질깁니다. 여기는 우리나라처럼 비육소가 아닌 청정지역에서 키워낸 자연산 방목소를 잡아서 인지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소고기 기름인 마블링이 잘 나타는 것이 아닌 기름기 없는 육질이 좋은 소고기로 만든 스테이크입니다.
첫 번부터 소고기 스테이크와 와인을 곁들여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맥주도 남아공 빨간통 맥주 맛이 좋습니다. 스테이크와 빠질 수 없는 감자튀김, 야채등 소스와 곁들인 식사 맛있습니다. 감자에 꼽아 놓은 ‘Cattle Baron well’이라 적은 작고 앙증 맞은 표지기가 식사가 안 바뀌고 잘 나왔다는 표시 인 것 갔습니다.
식당 출발 19:53
1시간 30분에 걸린 식사가 끝나고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러서 내일 필요한 과일 물등으로 구입합니다.
호텔도착(Hilton Cape Town) 20:34
마트를 출발하여 테이블 마운틴과 라이온 헤드가 가까이 보이는 곳으로 올라갑니다. 대략 25분후 케이프타운 힐튼 호텔에 도착을 합니다. 밤이라 어떤지는 모르지만 힐튼호텔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호텔이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장 낮은 층인 118호를 배정 받았습니다. 각자 200대 300대 방을 받을 받아 아프리카의 첫날밤을 맞이 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아듀~~~
3일차 11월 21일 목요일
케이프 타운
인구 약350만명, 연평균 기온 20도, 가장 많이 쓰는 언어 줄루어, 시차 7시간
배후에 테이블산(1,087m)과 라이온즈헤드가 솟아 있으며 테이블만(灣)에 면하는 천연의 양항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의회의 소재지로서 행정부가 있는 프리토리아와 더불어 수도의 지위를 나누어 맡고 있다. 기후는 온대의 지중해성기후로 1월 평균기온 20.3℃, 7월 평균기온 11.6℃이며, 연강수량 526mm로 겨울인 5~8월에 비가 많다. 주민의 약 35%가 백인이며 유럽풍의 대도시 경관을 이룬다. 1652년 4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 무역의 보급기지로서 건설하여 처음에는 네덜란드어로 카프스타드(Kaapstad)라고 하였으나, 그 후 영국계 식민활동의 기점이 되었다.
1860년 창설된 독은 수에즈 운하 폐쇄 중에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남극 관측의 보급기지로서도 알려졌다. 조선·기계·냉장·농수산물 가공·제분·제과·가구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상업·금융업도 활발하다. 백인 전용으로 세운 케이프타운대학(1829), 유색인 전용으로 세운 서(西)케이프대학(1960)을 비롯하여 각종 전문학교, 박물관·미술관·도서관·식물원·동물원 등이 있다. 정비된 항만시설이 있는 외에 항공로·철도·도로 등의 기점을 이루는 교통상의 요지로 여름철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1666년에 기공한 성곽과 1699년에 기공한 네덜란드의 신교 교회 등 역사적 건축물이 많다.
기상 05시 00분
비행기에서 날아오며 하루밤을 보내고는 오늘이 첫 번째 아프리카의 밤을 보낸날입니다. 피곤하여 모두가 푹 주무셨을 줄 압니다.
그래도 여행 중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 볼 것이 있습니다.
어제 젊은 가이드 선생(이동욱)이 주변으로 우범지대이니 절대로 나가지 말라고 했는대 그래도 궁금합니다. 우범지대인지도 확인해야 하겠고~~
아침 5시경 일어나 세면하고 밖을 내다보니 옥상에 지저분한 것 만 보입니다. 테이블 마운틴하고 정반대 방향의 방입니다.
살금살금 밖으로 나갑니다. 호텔앞 사거리에 나오니 아침공기가 상쾌하니 좋습니다. 현재시간이 05시 50분 정도 됩니다. 사거리를 건너려니 신호등이 이상합니다. 파란불이 들어왔다가 금시 꺼집니다. 이거 믿다가는 절대로 길을 건너지 못하겠습니다. 차가 없을 때 빨간불임에도 재빨리 건너는 것이 상책입니다. 마침 이사장님이 호텔 앞으로 나와서 팔을 쭉 뻗고는 건너가라는 신호를 줍니다. 길을 건너 우측 도로로 접어드니 노숙자들이 보입니다. 아직 취침중이라 아랬쪽 길을 따라 테이블 마운틴 쪽으로 향하다가 우측 골목으로 올라서니 정면으로 테이블 마운틴이 잘 보이는 곳이 나옵니다. 뒤편으로 사자머리에서 사자 엉덩이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펼쳐지는 아래쪽 마을로 각종 색으로 칠한 집들이 이쁘게 보입니다. 오늘 아침 식사하고 잠시 들른다는 마을입니다. 보캅마을입니다.
골목을 따라 빙 돌아서 공원을 지나고 보캅마을 전시관 앞을 지나서 호텔로 돌아오니 식사시간과 일치 합니다.
아침식사 06:30
아침에 일어나 호텔주변을 돌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 좋았습니다. 치안이 나쁘고 우범지대니 뭐니 해도 가이드님들은 남미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책임문제로 호텔에 묵어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손님들이 돌아 댕기다가 일이 터지면 골치가 아프것지요~~ 하지만 아침에 돌아본 주변의 모습은 조용했고 주민들도 순박하니 인사도 서로 주고받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발짓으로 물어보는 것에 대하여 친절히 가르켜 주더군요~~ 어떤 분의 남아공 여행기를 보면 전기가 끊긴다고 했는데 서민들이 사는 지역은 모르지만 여기 힐튼 호텔은 고급호텔이라 그런지 전기는 끊기지 않았고 와이파이도 잘되었던 같습니다. 가이드 말로는 전력상태가 썩 좋지를 않다고는 하였지만 어제부터 지나는 길에 보던 길거리의 가로등은 낮임에도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은 크게 전력이 모자라지 않는 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면 관리를 잘못한다거나 이거겠지요~~
아침식사를 호텔 뷔페식이니 내가 먹고자 하는 것을 골라서 먹으면 됩니다.
베이컨, 햄, 소세지, 계란 후라이, 오믈라이스(올 하면 거기에 있는 전부 넣어서 잘 만들어 줍니다), 야채 과일 음료수등 부족함이 없습니다.
호텔출발 보캅 마을로 07:20
호텔출발 시간은 07시로 되어 있으나 조금 늦은 분도 있고 하여 20여분 늦게 출발을 합니다. 호텔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는 보캅마을입니다.
보캅마을은 약300년 전 네덜란드가 동남아(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에서 강제로 이주 당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BO koop Village는 유색 인종이었던 그들이 이곳에서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견디며 살다가 이후에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자,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건물을 다양한 색으로 칠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캅마을 작은 박물관에 들렀는데 크게 볼 것은 없었으며 사진자료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인들이 먼 타국땅 아프리카에서 백인들의 시중을 들며 어렵게 살았다는 아픈 역사가 남일 갔지가 않아 가슴이 아팠다.
호텔출발 라이언 헤드로 07:41
보캅 마을에서 호텔로 돌아와 버스로 라이언 헤드로 이동을 한다.
가이드는 오고가면서 남아공의 역사와 여러 가지를 설명하지만 여행초반이라 그런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에구 이제 내도 많이 기력이 상실한 것 같아유~~
라이온 헤드는 여행에 앞서 많은 실갱이를 한곳이다. 여행사 측에서는 될수있으면 빼려고 하고 우리는 끝까지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고 했다. 수정한 일정마다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왜 라이언 헤드가 빠졌냐고 끝까지 넣어 달라고 해서 넣은 곳이다.
라이온 헤드는 높이는 그리 높지 않은 곳이다. 해발 669.9m라고 한다. 테이블 마운틴이 해발 1080.6m라고 하니 반쯤 되는 높이다.
라이온 헤드 입구 도착 08:02
호텔을 출발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대략 15분 후면 좌측은 테이블 마운틴, 우측은 라이온 헤드로 가는 사거리 원형 로타리에 닿는다. 차량이 양보가 없어 여기서 기다리느라 시간이 다소 지체가 된다. 방향을 틀어서 잠시 언덕으로 오르면 5분이면 라이온 헤드 입구에 도착을 하게 된다. 여행사에서 산악가이드 2명을 고용하여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와 인사를 나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키가 크고 친절한 아저씨 한분과 보조가이드포함 두분이다. 라이온 헤드는 케이프타운 한쪽에 위치한 산으로 사자가 누워 있는 모양의 산줄기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해질녁 저녁노을이 멋지며 케이프 타운의 야경을 구경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밤에는 오를 수는 없다. 동네산도 아니고 ~~
라아온 헤드 정상 09:30 ~10:00
라이온 헤드의 아래 부분은 온통 붉은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우리 가이드한테 물어 보니 절대로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은 물어 보지 말란다. 시험문제에 안 나온다고 한다. 역사가 주로 시험문제라나 60점만 통과하면 가이드 시험에 합격이란다. 간신히 커트라인을 통과 했다나~~ 그래도 네덜란드 동인도 주식회사에서부터 독일, 영국으로 넘어 오는 남아공의 역사 설명은 잘한다. 흑인 학생 운동으로 수천명이 죽었다는 애기등 흑인들의 투쟁역사도 상당히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라이온 헤드 아래 붉은 꽃은 산악가이드와 손짓발짓으로 물어본 결과 야생 글라디올라스라고 한다. 온통 산 아래가 붉은 빛이니 보기 좋다. 또한 노랗게 핀 이쁜 꽃인 “머굴”이란 꽃으로 상당히 많이 피어서 산행을 하면서 보는 즐거움이 크다. 산 아래 인도양인지 대서양인지 넘실대는 푸른 바닷물도 보기 좋다. 아름다움의 극치다. 산은 좌측으로 빙 돌아서 한 바퀴를 돌아서 오르게 되어 있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이후로는 위쪽부근으로 뾰족한 암봉으로 직등을 하게 된다. 사다리가 놓여 있고 쇠줄도 달려 있다. 바위에 박혀 있는 쇠다리도 통과해야 한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테이블 마운틴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며 오르는 라이온 해드는 위부분에서 험난하다. 왜 이곳을 빼려했는지 이해가 간다. 우리야 항상 산행을 하니 크게 어렵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산행을 하시는 나이드신 분들은 쉽지 않은 코스다. 단체 관광객은 허락하지 않는 이유를 알만하다. 테이블 마운틴, 십이사도봉, 산 아래 핫 베이등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서서히 오르는 라이온 헤드는 그림 같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사다리가 나오는 부분부터 어려움이 있지만 이곳만 무사히 통과를 하면 위쪽의 암릉지대는 조심하여 오르면 무리 없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윗옷을 훌러덩 벗어던진 백인들, 근육질의 흑인들 우리처럼 황색인종은 우리뿐이 없다. 산행시작 후 1시간 반 만에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트여 있는 조망을 구경하면서 30분을 보낸다. 정상에는 12분이 올라가신 것으로 압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상에 표지판이 있으나 글씨가 다 지워져 그 역할은 다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표지판과 함께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올림픽 경기장, 버진 아일랜드의 작은 섬, 테이블 마운틴, 12사도봉, 핫베이, 워터 프런트등 케이타운 시가지등 멋진 조망이 일품이 었습니다.
라이언 헤드 입구 하산 완료 및 출발 11:10 ~11:31
라이온 헤드 정상에서 이제 30분이 경과하여 하산을 시작합니다. 첫머리 암릉지대를 내려서서서 우측으로 돌아서 내려갑니다. 사다리부근을 우회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래도 급경사 길이니 조심조심 내려섭니다. 다시 좌측으로 돌아서 사다리로 오르던 지점을 지나 빙 돌아서 내려갑니다. 우측으로 라이언 히프 쪽으로 내려서는 길도 있지만 길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자 궁둥이 쪽으로는 아스팔트길이 있고 옆쪽으로 산길도 있어 산책하기는 좋아 보입니다. 내일 아침 몰래 저기 사자 궁둥이를 올라 볼랍니다.
내려서는 길은 올라온 길의 역순이니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천안에서 오신 박사장님이 당이 떨어져 고생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미리 애기를 했으면 배낭에 초코릿 과자등도 있고 하여 도움이 됐을긴디 훌쩍 일찍 내려와 죄송할 뿐입니다.
내려오는 대도 천천히 걸어 내려오니 1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라이온 헤드 왕복 2시간 반 정도 잡은 것 같은 대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된듯합니다.
구르트 콘센시아(GROOT CONSTANTIA) 농장 도착 12:23
이제 포도 농장으로 점심식사 및 농장 구경 및 와인 시음을 하러 갑니다. 시내로 내려와서 성곽이 보이는 길을 따라 테이블 마운틴을 좌측으로 빙 돌아가는 길입니다. 가는 길에 케이프타운 대학도 옆으로 지나고 가는 길로 엔투고속도로라고 합니다. 테이블 마운틴은 작아 보이지만 거리가 60km에 이르는 긴 산맥에 속해 있으며, 남아공은 꼬꼬이족이 원주민이며 포루투갈, 네덜란드(동인도 회사) -영국(꼬꼬이족 추장이 영국에서 14개월 살다온 인연으로 영국으로 넘어갔다고 함)으로 이어지는 역사이야기 및 콘센시아 포도농장의 역사등을 애기 했다. 샤이먼스 레스토랑(고급 레스토랑이라고 함)에서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라 하며 와인에 대해 애기를 했습니다.
곤센시아 농장의 고급와인중 나폴레옹 와인이 있으며 와인의 종류는 화이트 와인, 레드와인, 아이스 와인(프랑스가 원조이며 포도가 나무에서 언 상태로 따서 만든다고 함), 브랜드 와인, 칠레와인(뿌리는 유럽종, 윗부분은 미국 품종으로 접목을 한 종이라 함), 이곳에는 포도 농장이 8개 가 있으나 이중에서 가장 큰 것이 구르트 콘센시아 농장이라고 함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농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멋지게 서 있는 고목과 포도밭을 지나서 약 5분을 가면 앞쪽으로 보통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이 있고, 그 뒤편으로 귀빈식당인 샤이먼스 레스토랑이 나온다. 먼저 온 중국인들이 앞쪽에서 식사를 하고 우리는 안쪽에서 식사를 한다.
점심식사 끝 13:45
식사는 Simon,s라고 하는 스테이크다. 여기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와인 농장이니 와인이 필수 였지요~~
와인 시음장 13:55 ~15:05
벼락맞은 나무등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포도농장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걸어서 10분 이면 와인 시음장에 도착을 한다. 커다란 와인 통이 반기는 시음장 안으로 들어가면 동그랑 표딱지를 팔뚝에 붙이고 첫 번부터 차례로 낮은 것부터 차례로 한잔씩 시음에 들어간다. 와인 맛은 스페인, 동유럽쪽 와인보다는 못한 것 같다. 마지막 5번째 와인 맛은 그런대로 좋았으나 마지막 나폴레옹 와인은 작은 병에 포장도 그럴싸하고 비싸 보이긴 했으나 비싼 만큼 시음량도 조금씩 따라 준다. 맛은 닮콤하니 우리 입맛은 아닌듯하다.
케이블마운티 케이블카 탑승장 도착 15:53
와인시음장에서 1시간 10여분 시음회를 마치고 왔던 길을 따라 시내로 되돌아간다. 가면서 멀리 보이는 케이프타운 항, 성곽(캐슬 오브 굿 호프, Castle of Good Hoope), 시청사, 은행등을 차창으로 구경하며 케이블 마운틴으로 향한다.
캐슬 오브 굿 호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에서 케이프타운의 역사에 관한 전시를 둘러보고 성벽 위를 걸으면서 테이블 마운틴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국립미술관
Save 남아프리카 국립미술관 to your lists남아프리카 국립미술관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와 서유럽 예술은 이 문화적인 명소의 핵심입니다. 탁월한 예술가들의 수백 년에 걸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롱 스트리트
Save 롱 스트리트 to your lists롱 스트리트
이 상징적인 거리에 있는 건물의 빅토리아 왕조 건축 양식과 서점과 박물관의 개성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케이프타운 시청
Save 케이프타운 시청 to your lists케이프타운 시청
넬슨 만델라가 발코니에서 연설을 한 후 유명해진 이 랜드마크 건물로 라이브 음악 공연등을 한다.
보 카프 박물관trover photo by The Visualante -
Save 보 카프 박물관 to your lists보 카프 박물관
시티 보울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이 지역의 역사를 엿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탁 트인 산 경치 등을 감상할수 있다.
디스트릭트 식스 박물관
Save 디스트릭트 식스 박물관 to your lists디스트릭트 식스 박물관
이 매혹적인 박물관은 격동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퇴거 당했던 옛 다문화 공동체인 디스트릭트 식스에 얽힌 이야기를 되짚어서 들려준다.
시내관광은 차를 타고 가며 대략 적인 건물을 설명하고 지나간다.
시음장을 출발하여 50여분후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탑승장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케이블카 하부 승강장 출발 16:05
테이블마운틴
200킬로미터 밖에서 알아볼 수 있는 테이블마운틴은 예로부터 아프리카의 남단을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했다. 1488년, 포르투갈 항해가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을 발견했다. 오늘날 이 산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형이 되었다. 지질학적으로 보자면 테이블마운틴은 약 4억~5억 년 전에 얕은 바다에 형성된 거대한 사암 덩어리이다. 거대한 지각운동으로 산은 지금 높이인 해발 1,086미터까지 융기되었다. '식탁'은 약 3.2킬로미터 정도로 양쪽 끝에 독특한 지형이 있다.
한쪽은 데빌스피크라는 원뿔 모양 언덕이 있고 반대쪽에는 라이언스헤드가 있다. 여름에는 정상 부근이 마치 식탁보를 덮은 것처럼 구름이 걸려 있다. 산 아래로 녹음이 싱그러운 비탈에는 야생화 무리가 흩어져 자란다. 테이블마운틴은 다양한 식물이 번성하는 곳으로 고스트프로그처럼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식물이 자생한다. 케이블카가 있어서 정상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서 케이프타운이 보이며 맑은 날이면 케이프 오브 굿 호프도 보인다.
테이블 마운틴 승강장은 해발 약 300m고도에 있으며 케이블카 운행시간은 약 5분이 소요되며 하루 방문객이 6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도착 16:10
테이블 마운틴은 4~5억년전 형성된 사암으로 된 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이라고 한다.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속하며 상단부가 평평하여 탁자를 놓은 형상이라 하여 붙인이름이다. 이런 지형은 세계에서 몇 군데있다. 남아메리카 북부 베네수엘라, 브라질, 가이아나의 국경 지대에는 정상부가 평평한 산(원주민어로 ‘테푸이’)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아마존 밀림 위로 솟아오른 테푸이를 테이블 마운틴이라고도 하는데, 그 모양이 탁자 모양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신들의 밥상이라고 하며 구름으로 덥여 있으며 신들이 식사중이라 하며 오늘처럼 구름 한점없이 볼 수 있는 날은 일년중 몇 일 되지 않는 다고 한다. 축북받은 우리들이다.
산중에는 4개의 댐이 있으나 우리들은 볼 수 없다하며 테이블 마운틴은 길이가 60km에 이르는 산맥중 일부라 한다. 산 아래로 오전에 올라갔던 사자머리가 보이고 케이프타운의 전경과 대서양을 볼 수 있다.
케이블카는 오르면서 한 바퀴 회전을 하기 때문에 좋은 자리 차지하려 할 필요가 없다. 5분후 케이블카가 상부 승강장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가면 노랑색 ‘머굴’이 반기며 망원경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테이블 마운틴 모형이 있는 곳에서 단체로 사진을 찍고는 각자 좌측으로 한바퀴 돌며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한다. 테이블 마운틴은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2개로 나뉘어져 있으며 앞쪽 보다는 뒷부분이 면적이 몇 배가 더 크다. 우리팀원들 대부분은 앞쪽 부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와 마님 박여사만 뒤쪽 부분 일부를 돌아보았다.
좌측으로 돌아가면 케이프타운 시가지가 발아래 놓여 있고 그 앞쪽으로 보이는 바다가 인도양, 우측으로 넘어가며 보이는 곳은 대서양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런 거 같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인 것 같다. 가면서 몇 군대의 바위 전망대를 지나서 반쯤 돌아가면 좌측으로 내려서는 계단길이 나온다. 이곳으로 내려서서 뒷부분의 모습을 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우측으로 12사도 봉으로 가는 길이 보이고 잠시 후 우리는 볼 수 없다던 댐이 보인다. 4개의 댐중 1개는 본 것이다. 이후 길을 따라 한동안을 진행하다가 다시 돌아와 계단을 올라 나머지 좌측으로 돌아가면 12사도봉이 아름답게 보이고 내일 가게될 드라이브 코스도 산 아래로 보인다. 잠시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며 가자니 가이드가 두눈을 크게 뜨고 기다린다. 시간이 늦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면서 사진 몇장 찍어주고 잠시후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 도착하니 먼저 오신 우리님들이 기다린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 테이블 마운틴을 전부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여행중 이런정도만 돌아본 것 만도 감사 하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도착 ~ 출발 17:27 ~17:40
1시간 15분가량 테이블 마운틴을 돌아보고 이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승강기를 타고 내려간다. 빙글 돌아가며 내려서는 승강기 밖으로 걸어서 오르다가 바위에 누워 쉬는 사람도 보이고 아름다운 야생 글라디올라스, 머굴등 야생화가 지천인 멋진 테이블 마운틴과 작별을 한다.
하부 승강장 도착 17:45
내려올때도 올라깔때와 같이 5분이 소요되어 하부승강장에 도착을 한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테이블 마운틴 주차장 출발 17:58
이제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바닷가에 있는 워터 프론트로 향한다. 오던 길을 따라 시내를 관통하여 달리면 20여분 후 바닷가 워터프론트에 도착을 한다.
워터 프론트 도착 및 출발 18:17 ~20:18
가장먼저 보이는 것은 넬슨만델라 대통령을 위시한 4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동상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좌측으로 이동을 하면 코뿔소 모형, 거리의 춤추는 원주민들, 펭궨모형, 테이블 마운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각 상자, 동물의 모형을 구경하며 진행하여 바닷가 배위에 앉은 수많은 바다새등도 눈에 띄며 우리는 점차 커다란 쇼핑몰에 자리잡은 The Greek Fisherman(그리스 어부)이라 적혀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준비한 음식을 기다리는데 바닷바람 탓인지 추워서 움추렸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앉기 전에 의자에 놓여 있던 담요의 용도를 이때서야 알았습니다. 야채, 홍합, 커다란 빵이 먼저 나오고 주 메뉴인 생선구이는 감자와 오징어가 곁들어서 나왔지요, 맛은 좋았던 갔은데 앞쪽에 최여사님이 속이 좋지 않은지 하나도 먹지 못하여 걱정도 들었습니다. 덕분에 내가 다 시식 했지만요 ~~ㅋㅋㅋ
날이 어두워지며 뒤퉁수가 따뜻해서 보니 천장에 매달린 난로에 불을 피웠더군요~~
작은 난로지만 그 따스함이 좋았습니다.
테이블 마운틴과 둥글게 돌아가는 관람차, 사자 엉덩이를 바라보며 즐기는 저녁식사는 이제와서 생각하니 정말 낭만적인 식사였던 것 갔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시켜 놓은 맥주가 남기는 했어도 멋진 식사였습니다. 누가 시킨것인지는 몰라두 감사혀유~~
식사가 끝나고 쇼핑몰을 거쳐 버스를 타러 갑니다. 도중에 화장실 다녀오시는 분들 때문에 길을 놓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버스까지 도착하였습니다.
호텔도착 20:31
2시간여의 워터 프론트의 눈요기와 식사를 마치고 15분이 못되어 호텔에 도착합니다. 두 번째 힐튼 호텔의 밤이 되겠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야밤이 되세요~~
4일차 11월 22일 금요일
기상 4:00
호텔출발 05:10
어제 보아둔 길을 따라 사자머리 반대쪽에 있는 사자 엉덩이로 향한다. 해맞이를 하기 위해서다. 가이드는 절대로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뭐 몰래 댕겨오믄 알겠는가?
사자 엉덩이 05:55 ~05:58
어제 잠시 구경을 했던 보캅마을 지나 좀 더 위쪽에 작은 공원이 나온다. 공원앞에서 좌측으로 널찍한 길을 따라 오른다. 가끔씩 일을 나가는 주민들과 굿 모닝 인사도 나누며 오르면 이쁘게 핀 종이꽃 앞을 지나고 좀 더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산 사면을 따라가는 길을 따르면 그 끝에 닿기 전에 좌측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첫 번째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몇분 후 중간쯤으로 난 산 사면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우측으로 잠시 이동하다가 다시 오르면 벌써 아침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정상에 다 오르기 전에 해맞이를 하고 다시 오르면 워터 프론트 방향에서 올라오는 능선의 임도 길에 닿는다. 여기서 오르는 길 옆으로 핀 야생화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은은한 햇살이 깃든 테이블 마운틴과 라이온 헤드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라보며 오르면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좀 더 올라서야 사자 엉덩이의 정상에 닿는다. 정상표지판의 글씨는 대부분 지워져서 알수는 없지만 주변으로 호로조와 케이프타운 시가지, 어제 다녀온 워터 프론트, 그옆으로 월드컵경기장이 발아래 가까이 보인다.
호텔도착 06:27
올라갈 때는 45분 정도가 걸렸지만 내려올 때는 30분정도가 소요된다.
호텔에 도착하니 우리 님들 아침 식사 하시러 내려와서 기다린다.
아침식사 06:30 ~07:00
아침식사는 호텔 뷔폐식이기 때문에 여기도 베이컨, 야채, 소세지종류, 치즈종류, 오믈라이스등으로 아침 식사 배불리 먹고 오늘 여행에 들어간다.
호텔출발 08:04
오늘 여행은 바닷가를 따라 가며 즐기는 날이다.
캠프 베이(Camps Bay) 8:25~8:45
호텔을 나와 어제 다녀온 워터 프론트를 지난다. 잠시후 월드컵경기장을 지나고 널찍한 길을 따라 진행하면 바닷가 산책로를 달리는 주민들이 자주 보인다. 경치가 아름다운 해안도로다. 우측으로 로빈 아일랜드섬이 가까운 지점으로 이어지는 이 도로를 영국여왕 이름을 딴 빅토리아 로드라고 했던가?
라이온 헤드가 있는 산기슭 우측으로 돌아가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 가며 가이드는 이 지역 택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서민인 흑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블랙택시, 우버 택시, 일반택시로 구분을 한다고 한다.
호텔을 떠나 20여분이 지나 켐스 베이에 도착을 한다.
라이온 헤드를 올라가며 내려다보던 바닷가다. 시원스럽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대서양의 깨끗한 물과 테이블 마운틴 기슭으로 아름답게 조성이 된 마을도 보기 좋다.
12사도봉 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즐기는 캠스 베이는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핫 베이(Hot Bay) (우드만, 나무만) 09:20
캠스 베이에서 12사도봉 아래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길은 멋진 길이다. 가이드는 저기 바닷속에 전복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채취로 전복의 개체수가 적어져서 현재는 전복을 따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되돌아서 몰래 입속에 넣으면 증거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 한다. 중국인들이 한때 전복을 대량으로 잡아 가는 바람에 당국에서는 전복채취를 금지하고 있으나 아직도 중국인들은 수입허가를 받고서 일정량을 가져 간다고 한다. 낚시도 쿼터제로 허가를 맞아야 하며 고기는 매우 많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35분후 도착한 곳은 핫 베이다. 우드만, 나무만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며 이곳에서 배를 타고 물개를 보러 간다.
물개를 보러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생선튀김은 케이프 타운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배 출발(물개섬 관광) 19:43
핫 베이항에 도착하여 잠시 화장실 다녀오고 가이드는 승선표 구입하고 20여분후 배에 승선을 한다. 핫 베이항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다. 주변으로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작은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게 있으며, 항구 선착장에는 춤을 추는 원주민들이 있다. 작은 돈이지만 깡통으로 쌓이는 달러를 벌기 위해서 춤을 추는 분들 중에는 한쪽 팔이 없는 분도 보인다. 선착장에서 먹이를 받아먹는 물개의 모습에 신기해 하기도 하며 기다리는 사이 배가 출발을 한다.
핫 베이 항 우측으로 보이는 바위 산을 빙 돌아서 15분 정도를 가면 드디어 물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물개섬(Duiker Island) 에 도착한다.
물개섬 바위에 시커멓게 움직이는 물체들은 다름 아닌 물개들이다. 서로 입크기 재는 놈들도 있고 뛰는 놈, 바다로 다이빙하는 놈 수많은 물개 서식지다. 바다에 두둥실 떠다니는 시커먼 미역줄기 같은 놈들도 물개 무리란다.
이렇게 대략 10여분을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아쉬움이 남지만 물개는 원 없이 볼수 있는 곳이다.
배 도착 10:23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핫베이 항에 도착하니 10시 23분이다.
40여분 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핫 베이 항 출발(채프만스 픽 드라이브 코스로 이동) 10:33
이제 핫 베이를 출발하여 BBC가 선정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Chapmans' Peak Drive코스를 따라 이동을 하게 된다. 대서양과 마주 하는 해안 절벽을 따라 건설된 도로로 죄수들을 데려다 7년간 공사 끝에 2005년 완공한 도로라고 한다. 몇 년전 도로가 통제되어 다니지 못하다가 현재는 대형차량은 핫 베이쪽에서만 일방으로 진행이 되며 승용차는 양쪽으로 다 다닐 수 있는 도로다. 114개의 구비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간에 'ㄷ‘자 형태의 터널등 주변으로 펼쳐지는 대서양의 푸른 물결과 조금 전 다녀온 물개섬도 볼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핫 베이를 떠나 약 5분후 채프만스 픽 드라이브 코스로 접근을 하면 주변으로 제라늄 꽃이 만발한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5분을 더 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전망대 10:49 ~11:05
이후 6분을 더 가면 조금 전 다녀온 물개섬과 마주하는 전망대에 닿는다. 잠시 이곳에서 사진도 찍고 주변 경관을 감상한 후 출발한다.
폴스 베이 도착(점심 식사) 11:37
전망대를 출발하여 폴스베이로 향하는 우측으로 대서양의 길 다란 해변이 보인다. 롱비치로 길이가 8km에 이르는 케이프 타운에서 가장 모래사장이 긴 해변이라고 한다. 그 위쪽으로 잘 조성된 마을이 보이는 대 고급주택들로 부촌이라고 한다.
롱비치가 보이는 해변을 지나고 20여분을 좀 더 가면 폴스 베이라고 하는 아담한 해변에 닿는다. 해변에는 모래로 인어상을 만드는 예술가도 보이고 대부분 가족적인 분위기로 백인들과 원주민들로 보이는 흑인들도 수영을 하며 즐기는 모습이 부럽다.
우리는 해변에 잠시 들러 사진 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상어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깃발을 잘 보아야 한다고 한다. 힌 깃발은 안전함을 표시하고, 붉은 깃발은 상어가 나타났으니 대피하라는 깃발의 신호라고 한다.
점심식사 11:50 ~13:10
폴스 베이(Faise Bay)의 서쪽 부분에 위치한 Windmaill Beach는 산호초가 많아 스노클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일년내내 방문객이 많다고 합니다. 펭귄 서식지 옆쪽이라고 한다.
우리는 스노클링은 할수 없지만 폴스 베이 해변의 Fish Hoek Gaiiey 식당에서 랍스타로 멋진 점심 식사를 한다. 랍스타는 일인당 300g을 기준으로 하며 야채 스프, 생선구이가 곁들여서 나온다. 식사가 끝나고 커피마시는 대 시간이 다소 지연이 되었지만 여기 흑인들의 특징이 크게 급한 것이 없으며 시키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며 셈이 아주 약하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를 어디서 몇 잔을 시켰는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구분을 잘하지 못한다는 애기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생략하고 나왔다.
폴스 베이 출발 13:20
멋지게 잘 지은 집들을 바라보며 달린다. 10여분 정도를 달리면 앞쪽으로 커다란 마을이 보인다. 시몬스 타운이라고 한다.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볼더스 비치는 해군기지 우측으로 들어간다.
볼더스 비치 13:32 ~14:22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펭귄 보호 지역인 볼더스 비치. 이 곳의 펭귄은 남극의 펭귄과는 다른 종으로 당나귀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카스 펭귄이라고 불리며 아프리카 펭귄이라고도 한다. 10도에서 20도 정도의 따뜻한 해류에서 서식한다. 펭귄의 수명은 대략 30년으로 키가 약 60cm 정도가 된다. 펭귄은 1부 1처제로 아주 신사적인 놈이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해군기지 옆 모래길을 따라 우측으로 들어가면 해군기지 우측으로 펭귄이 보인다. 저기는 우리가 가는 곳이 아니란다. 사진 찍는 분들 몇 분이 들어간 것이 보인다. 한참을 따라 들어가면 기념품가게가 나오고 원주민 학생들이 춤을 추려 준비중이다. 잠시 더 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면 지정된 길을 따라 들어간다. 삼거리에서 일단은 좌측으로 들어간다. 해변 모래밭에 수천마리의 펭귄이 보인다. 한창 털갈이를 할때라 그런지 모양이 이쁘지는 않지만 아장아장 뛰우뚱 뛰우뚱 걷는 모습이 귀엽다. 거의 멸종 상태의 폥귄을 보호하기 시작하며 현재는 4000여마리로 늘었다는 설명이다. 펭귄서식지는 테크길로 높다랗게 만들어 놓아 위에서 아래로 보도록 하였다. 좌측에서 잠시 구경을 하고는 다시 이동하여 우측으로 향한다. 우측에서 보는 모습도 전과 같지만 보이지 않던 좌측 바위쪽 까지 보인다. 주변으로는 화강암 바위가 놓여 있는 곳으로 펭귄 보호정책이 성공한 곳이다.
케이프 굿 호프 공원 매표소 14:38
볼더스 비치를 떠나 케이프 타운의 마지막 일정인 희망봉으로 향한다. 가이드는 연신 희망봉이 아닌 희망곶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장산곶과 같은 것이다.
서서히 산길을 따라 오르면 볼더스 비치를 출발하여 15분 가량이 지난후 케이프 굿 호프 공원 매표소에 닿는다.
희망곶 도착 15:03
케이프 굿 호프 공원 매표소를 지나며 널찍한 벌판이 양쪽으로 펼쳐지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우측으로 하얀 야생화가 만발해 있다. 거리가 멀어서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꽃이다. 남아공의 국화는 ‘킹 프로테어’라고 한다. 남아공이 원산지이며 주도 희망봉 부근에 핀다고 한다. 꽃은 대부분 핑크색이다. 프로테어는 노랑꽃으로 희망봉으로 가며 주로 보이는 꽃인 것 같다. 들어가며 원숭이도 보이고, 도로 공사하느라 일방통행으로 다소 지체가 되기도 했지만 매표소에서 약 25분후 희망곶에 도착을 한다.
희망곶 앞 "CAPE OF GOOD HOPE"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씩 기념으로 일일이 다 찍고 우리 몇은(우리 마님, 제천 선생님, 이규현님, 고갑미님, 나) 희망곶 위쪽 바위봉으로 오른다.
10여분 올라서면 위쪽으로 케이프 포인트 등대가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 작은 등대가 보인다. 앞쪽으로 대서양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참으로 감개무량함을 느낀다.
다시는 못올 곳으로 잠시나마 아프리카의 끝 희망곶에서 느끼는 감정은 많다.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아프리카하면 가장 생각이 나는 곳이 여기였다. 날개를 활짝편 고갑미님 폼도 이쁘고 잠시후 따라한 우리마님도 폼이 멋지다. 두팔을 양쪽으로 벌린 이규현님, 하늘을 향해 높이 양손을 치켜든 제천 선생님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또한 축하합니다. 이곳 희망곶의 아름다운 바위봉까지 점령하신 님들 대단하십니다.
1488년 포루투갈인 바로톨로메우 다아스가 처음으로 유럽인으로는 발견을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희망곶은 있었던 것이기에 원주민들은 알고 있었기에 침략자의 눈으로 처음 본것일게다. 우리는 희망봉이라 하지만 희망곶이 맞다고 한다. 사나운 바다 때문에 폭풍의 곶으로 불리다가 포루투갈 국왕이 “CAPE OF GOOD HOPE 희망의 곶”으로 바꿧다고 한다. 이곳으로 오면서 침략자들의 기념탑이 양쪽으로 있었다. 이름은 들었지만 기억은 못한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으로 뱅골만 한류와 아글라스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의 전초 기지 였던 곳이다.
표지판에는 남위 34도 21분 24초, 서경 18도 29분 51초라 적혀 있다.
희망곶 출발 15:40
희망곶의 바위봉도 오르고 오르지 못하신 분들은 바닷가로 이동하여 대서양의 푸른 물도 만져보고 미역줄기 아래 전복도 따셨겠지요~~
관광객이 많을 때는 사진찍기도 어렵다는 희망곳 약 40여분에 걸쳐 관람을 하고 이제 높다란 등대가 있는 케이프 포인트로 이동을 합니다.
케이프 포인트 도착 15:50
희망곶에서 오던 길을 따라 잠시 올라가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희망곶에서 10여분이 소요된다.
트램출발 16:21
화장실 다녀오고 표 끊고 차례로 트램 줄서서 기다렸다 승차하는 대 걸어가는 시간보다 더 걸리는 듯하다. 트림이 출발하여 2분이면 케이프 포인트 아래 지점에 닿는다.
케이프 포인트 도착 16:30
간단히 기념사진 찍고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5분이면 등대가 있는 케이프 포인트에 오른다. 등대 앞에는 바레인 9575m, 파리 9294km, 뉴욕 12541km등이 적혀 있다. 서울은 보이지 않는다. 에고 서울도 적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
이 등대가 잘못 세워졌다는 등대일게다. 너무 안쪽으로 세워져 이 등대를 보고 운항하던 배들이 암초에 걸려 사고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이 등대 아래쪽 바닷가에 새로 세워진 등대가 또 하나 있다. 케이프 포인트 등대앞 이정표에서 간단히 기념사진을 찍고 가이드 선생이 가라고 하는 방향을 잠시 잊어 먹어 우리는 우측으로 내려섰다. 저 바닷가 끝에 보이는 작은 등대쪽이다. 제천 선생님, 고갑미 여사, 우리마님, 나 넷이다. 가면서 시간도 조작을 한다. 우리는 분명 17시 10분으로 알아 들었다고, 실제는 16시 50분이 었을 게다.
우쨋든 우리 넷은 재미있게 케이프 포인트 끝으로 향한다. 가는 길이 평탄하니 매우 좋으며 가는 길에 멋진 야생화 다육이 식물이 정말로 멋진 길이다. 에고 여기 안 왔으면 평생 후회할뻔 했다.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여유 만만 갈수 있는 끝 지점에 닿는다. 아래쪽 등대를 배후에 넣고 사진도 찍고 멋진 케이프 포인트의 올려다 보이는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다육이 식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룰루 랄라 우리는 즐거이 케이프 포인트 아래쪽 끝 지점까지 답사를 마치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케이프 포인트에서 내려가라고 하던 좌측길을 따라 내려선다. 조금 전 다녀온 희망곶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길을 따라 서서히 내려서니 그래도 20분 까지는 늦지 않은 17분이 경과된 17시 07분 케이프 포인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이드 선생 우리보고 아주 잘했다고 칭찬한다. ㅎㅎㅎㅎ
케이프 포인트 출발 17:08
이제 남아공의 모든 일정을 마친셈이다. 이제 케이프 타운으로 돌아가 저녁식사후 잠자는 일만 남았다.
주차장을 출발하여 내려서는 길에는 킹 포론티어 꽃이 만발해 있고, 가끔은 원숭이도 나타나 지겹지는 않은 길이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진행하여 20여분 후 흰꽃이 만발한 지점을 지나 케이프 포인트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난다.
공원매표소 17:29
공원 매표소를 지나서 잠시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을 한다. 볼디스 비치에서 펭귄을 보고 올라오던 반대쪽으로 향한다. 서서히 내려서는 길에는 우측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언덕을 두 번인가 넘어서서 간다. 가면서 가이드 선생은 남아공의 흑인 학생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많은 학생들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남아공의 흑인으로는 주로 줄루족이 차지하고 만델라 대통령이 속한 코사족, 소토족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남아공의 공용어는 다섯가지로 영어, 아프리칸스어, 줄루어, 코사어, 소토어라고 한다.
남아공 백인의 절반은 아프리칸스 어를 쓴다고 한다.
남아공 땅에 영국인보다 약 150년 앞서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금욕적인 칼뱅파 기독교도가 주류였는데 네덜란드 이주민에, 프랑스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 피신해온 위그노(프랑스의 신교도 주로 칼뱅파)들이 합세하여 남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스스로를 보어(네덜란드어로 농부)인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아프리카 땅에서 태어난 보어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들을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 즉 ‘아프리카너’로 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프리칸스는 네덜란드어에 바탕을 둔 언어이지만 , 문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너들은(프랑스와 독일 출신이 많이 섞이기도 했다) 자신들은 네덜란드인이 아닌 아프리카인으로 인식하고(토착 원주민들로부터 빼앗은) 남아프리카의 땅을 아프리카너의 모국으로 인지했다고 한다. 농부의 삶이 ‘땅“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었기에 남아프리카 땅에 살던 줄루족, 코사족등 원주민과의 마찰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남아고의 인구는 약 5800만명으로 약80%눈 다양한 민족의 흑인, 10%는 백인(아프리카너 약 60%, 영국계 약40%)라고 한다. 인도 버마, 중국등 다양한 아시아 출신의 인종이 2~3%이며 나머지는 흑~백, 황~백등 다양한 혼혈로, 컬러드(Coloured)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식당 도착(성북정) 18:30
공원매표소에서 잠시 나와 우측 길을 따라 내려오면 바닷가 길옆으로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고 점차 진행을 하면 바닷가로 지나가는 철길이 보이고 커다란 산을 하나 넘어서면 산 아래로 커다란 골프장이 보이고 케이프타운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드넓은 포도밭도 보이고 가로수는 유도화가 많이 있으며 하와이안 무궁화도 보인다. 이곳이 코스이야 지역이라고 한다. 길 좌측으로 보이는 담장은 교도소 담장이라하며 죄수들이 많아서인지 일반 잡범들은 몇 개월 살면 형기를 마치기전 풀려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공원 매표소에서 한식당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한식당은 성북정이란 이름으로 되어 있으며 식당이 있는 건물을 현재 보수중이라 들어가는 조금 어수선하다. 식당안으로 들어가면 북악산 앞으로 경회루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진 액자가 걸려 있으며 둥그런 장식물이 매달려 있다.
음식은 된장국, 잡채, 돼지고기 불고기, 김치, 콩나무무침, 취나물 비슷한 나물, 생선회초무침, 갈치구이등이 나오며 소주는 한병에 25불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볼수 없는 대선소주가 참으로 특이 해보였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식당 주인장이 먼데서 온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가게를 나서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
식당출발 19:29
한식당인 성북정에서 모처럼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마무리하고 약 20여분에 걸쳐서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 도착 19:50
이렇게 하여 케이프 타운의 3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 내일 아침 일찍 나미비아로 출발하기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든다.
5일차 11월 23일 토요일
기상 05:00
오늘은 나미비아로 이동하기 위하여 케이프 타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날이다.
인천에서 케이프타운으로 올 때와 달리 짐도 20kg인지 30kg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아침 기상하여 짐부터 잘 챙긴다.
아침식사 06:00
아침식사는 간단히 조촐하게 마련되어 있는 컨티넨탈 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오기 전 호텔에서 컵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호텔출발 06:30
이제 힐튼 호텔을 뒤로 하고 공항으로 이동을 한다. 오면서 보던 빈민촌도 보이고 얼마 안가 케이프 타운 공항에 도착을 한다.
케이프 타운 공항 도착 06:50
호텔을 출발하여 20여분후 도하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땅 남아공에 첫발을 디딘 곳이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우리는 다시 오지 못할 것 같다.
케이프타운 공항 출발 10:03
케이프 타운에서 나미비아 윌비스 베이 공항으로 가는 승객은 많지 않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A6게이트 나미비아 항공을 타기 위해 09시 45분 보딩을 한 후 버스로 이동하여 SW714편으로 이동을 한다. 한쪽에 3명씩 약 16번까지 있는 작은 항공기로 승객 약 90여명이 타는 비행기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10시 10분이지만 승객이 많치를 않아 일찌 감치 출발을 한다.
케이프 타운 공항 이륙 10:14
비행기가 출발하여 약 10분후 활주로로 이동하여 곧장 하늘로 날아올라 남아공의 끝부분에 위치한 케이프 타운과 작별을 고한다.
나미비아 웰비스 베이 공항 착륙 12:05
나미비아
아프리카 남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나라이다. 일찍이 독일의 식민지가 되어 남서아프리카로 불렸고, 1915년 이후 74년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식민통치를 받아오다가 1990년 3월 아프리카에서 53번째로 독립국을 이루어 아프리카 대륙 식민지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식명칭은 나미비아 공화국(Republic of Nambia)이다. 북쪽은 앙골라, 동쪽은 보츠와나, 남쪽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동부는 잠비아와 접하며, 서쪽은 대서양에 면한다. 수도는 빈트후크이며 행정구역은 13개 구(regions)로 이루어져 있다. 영토의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지대이다. 독립이전 인접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탈로 말미암아 경제가 피폐되었으며 독립한 뒤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종속이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세계 제3위의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다.
개관
정식 명칭은 나미비아공화국(Republic of Namibia)으로, 대서양 연안의 해안선이 1489㎞에 이른다.
면적은 82만 4292㎦, 인구는 221만 2307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빈트훅(Windhoek)이다. 주민은 오밤바족 50%, 카방고족 9%, 헤레로족 8%, 기타 다마라족 등 11개 종족과 소수의 백인들(7%)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어는 영어, 공용어는 토착어인 아프리칸스(Africans)이며, 독일어, Oshiwambo어, Nama/Damara어도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90%가 기독교이고, 토착종교도 믿는다.
주요 산업은 광업·수산업 등이며, 제조업의 발달은 미약하다. 특히, 다이아몬드·금·은·구리·우라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수출의 주 종품을 이루고 있으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의 경제의존 탈피가 최대의 목표이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GDP)은 13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5,408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치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다.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26석)은 임기가 6년이고, 하원(72명)은 5년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서남아인민기구(SWAPO), 민주턴헬동맹(DTA), 연합민주전선(UDF) 등이 있다.
약사
1920년 국제연맹에 의하여 독일 식민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가, 1966년 UN의 위임 통치 철폐 결의 후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통치가 계속되자 누조마(Nujoma, Sam)를 중심으로 서남아인민기구(SWAPO)를 결성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88년 12월 미국과 소련의 중재하에 남아프리카공화국·쿠바·앙골라간 3국협약에서 나미비아의 독립일정이 확정되어 1990년 2월 신헌법을 채택하고, 그 해 3월 21일 독립을 선포하였다(윌비스베이 제외).
1990년 2월 서남아인민기구(SWAPO) 의장이었던 누조마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통치하다가 2005년 3월 포함바(Pohamba)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대외정책은 좌경중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1990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90년 3월 21일 나미비아의 독립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그 해 6월 빈트훅에 상주 공관을 개설하였다가 1994년 12월 31일 폐쇄하고 현재는 주 앙골라 대사관에서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나미비아 수출액은 678만 달러로 황산·어류·표면활성제 등이 주종이고, 수입액은 7302만 달러로 아연광·수산가공품 등이 주종을 이룬다.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우리나라는 UN나미비아기금에 23만 달러를 기여한 바 있고, 수교 후 15만 달러 상당의 현대자동차 10대를 기증하였다. 현재 SK가 현지에 진출해 있으며, 30여명의 한국민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90년 3월 22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는데,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 의장인 누조마는 과거 몇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북한도 1994년 1월 8일 공관을 폐쇄하고, 탄자니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케이프 타운에서 나미비아 웰비스 베이 공항까지는 2시간 10분으로 탑승시간이 길지는 않다. 케이프 타운을 떠오른 항공기는 푸른 남아공의 하늘을 지나 이제 나미비아로 접어든 듯 온통 모래사막 밖에 보이지 않는 지역을 통과한다. 황량한 모래사막으로 이루어진 나라 나미비아에 뭐가 볼것이 있다고 가는 것인지~~
강줄기는 보이는 데 물은 없다. 말라버린 강이다. 이름하야 스와콥강(물이 안 흐르는 말라버린 강)이다. 거친 사막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무들도 비들비들 말라버린듯하다. 사람이 사는 마을은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는 곳이다. 참으로 막막한 곳이다.
2시간여의 시간이 흐르고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웰비스 베이 공항에 착륙을 한다.
웰비스 베이공항 도착 12:10
공항에 착륙하여 5분 만에 공항 청사 앞에 도착을 한다. 트랩에서 내려 걸어서 청사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 짐은 트랙터, 차동차로 이동을 하여 청사 안으로 이동을 한다. 청사는 시골 버스정류장 만하며 황량한 모래사막에 세워진 공항에는 모래바람만 휙휙 불어댄다. 잠시후 공항 청사로 들어서니 입국수속 하는 곳이다. 컴프터가 말을 듣지 않는지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오랜 수속이 끝나고 나가니 젊은 한국인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박예찬이란 분으로 아버님이 이곳에 선교사로 온 인연으로 이곳에서 여행사를 하는 분이다. 나미비아에는 한국인 가이드는 이분 한분뿐이라고 한다.
스와콥문트 스와콥문트 호텔 도착 13:50
왈비스 베이 공항에서 스와콥문트로 가는 길은 황량한 모래사막을 가로 지르는 길이다. 길은 널찍하니 직선으로 잘 나 있으며 아직도 도로를 확장중이며 가끔씩 지나는 차량들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달린다. 좌측으로 철길도 보이고 공항에서 50여분 달리를 도중에 사람이 사는 마을은 구경 할수 없다.
젊은 가이드는 나미비아에 대해서 쭈욱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남한의 8배에 이르며 인구는 240만명으로 공식언어는 영어,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한다.
영화 메드 멘트 촬영지이며 붉은 사막인 나미부 사막은 가로 80KM, 세로 100KM에 이른다. 스와콥문트는 뱅골만의 해류 부근에 위치하여 밤에 안개가 많이 끼고 낮은 구름이 안개로 변하여 수분을 공급한다고 한다. 일년 강수량은 20~80mm로 매우 적다. 날씨는 뱅골만의 해류 영향으로 서늘한 편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스와콥강이 있으며 우라늄 생산은 세계 3번째라 한다. 1.광산업, 2.농업, 3.관광업, 4.수산업을 주로 한다고 한다. 우라늄, 다이아몬드, 금은등이 많이 나기 때문에 현재는 중국등 많은 나라가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소고기 수출이 많고, 사막, 케언등으로 관광업이 발전되어 있다. 정치 형태는 민주주의 국가형태를 택했으며 스와콥문트는 독일 식민지 였던 관계로 도시의 건물이 독일풍이다. 스와콥문트의 인구는 약 5만 명이며 독일식 건물은 대부분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호텔은 좋은 편이다. 좌측으로 식당이 있으며 중앙으로 수영장이 배치되어 있고 커다란 야자수 나무로 조경을 했으며 뒤편 건물 2층이 우리가 머물 숙소로 정해 졌다.
점심식사 13:54~14:50
호텔에 도착하여 좌측편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식사는 여기도 소고기 스테이크다. 역시 아직은 “바짝”이다. 빵과 마요네즈 같은 것이 나오고, 야채가 나온 후 한시각이 지난 후 소고기 스테이크가 나온다. 소고기는 나미비아 항공에서 제공했던 소고기 육포와 같이 상당히 질긴 편이다. 사막에서 잘 먹지 못한 소를 잡았는 갑다. 그래도 항생제 먹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 키운 소라 나미비아 육포는 알아준다고 한다.
호텔출발 15:06
식사가 끝나고 짐을 2층 방으로 옮겨 놓은 후 곧바로 호텔을 나선다. 가이드는 가면서 보이는 저 건물들이 대략 100년이 된 것이라 한다. 바닷가 쪽은 서늘한 편이며 내륙으로 들어가면 매우 덥다고 한다. 빈민층이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퀴드 바이킹 탑승장 도착 15:12
모래사막을 달리는 4륜 오토바이다. 바퀴가 넓어 모래사막을 달리기 좋게 만든 4륜 오토바이다. 오토바이 동네서도 타보지 않았는데 우째 이것을 탄다냐~~
일단 안전을 위해서 교육을 받는다. 일단 모래차를 탄다고 하니 중무장은 했다. 마스크착용하고, 수건으로 목두 감고, 색안경끼고 ~~~
일단 교육을 받고 새파란 망사 모자를 받아 쓴다. 그러고 헬멧을 쓰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다. 오토바이를 배정 받고 다시 교육을 받는다. 기아 넣는 것은 쓰지 못하도록 알려주지도 않고 핸들 우측거 당기면 나간다고 한다. 손을 위로 올려 앞으로 흔들면 빨리가라는 신호이고, 천천히 가라는 신호도 있다. 이렇게 하여 일단 교육 받고 정 오토바이를 탈 용기가 없는 몇 분은 운영요원들의 뒤에 매달려 간다. 처음에는 서툴지만 차츰 가면서 익숙해 지며 추월을 좀 하려 하니 제지를 한다. 에고 이제 막 재미가 붙는 중인디 ~~
이곳 사막을 샌드위치 하버사막이라고 했었나~ 온통 모래뿐인 사막으로 질주하는 퀴드 바이킹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조금 익숙해 지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시골에서 오토바이 많이 탄 이경자여사는 남정네들보다도 더 잘 탄다. 재미가 난단다. 언덕에 올라서 일단 기념사진 찍고 이후 달리면 모래 언덕 급경사 오르기 인데 운영요원들이 손을 마구 저으며 전 속력으로 오르라는 신호를 한다. 앞선 몇 분은 실패를 하지만 난 눈치껏 보다가 전속력으로 달려서 쉽사리 올라섰다. 이후 실패 하신 분들도 있고, 성공하신분들도 있지만 실패한 오토바이는 운영요원들이 끌어 올린다. 이렇게 하여 모래사막을 원 없이 달려 본다.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급경사 모래 언덕에 올라 이제 샌드 보드를 타기 시작한다. 남미에서 탈 때는 제대로 된 샌드보드였는데 여기는 톱밥을 압축해서 만든 합판을 잘라서 만든 것이다. 열악한 편이다. 바닥은 역시 왁스 칠을 하고 시범으로 내가 경험이 있으니 나서서 폼을 잡아본다. 시범이 끝나고 첫 번째로 이사장님이 사진 찍는다고 내려가고 두 번째로 내가 내려가는데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두발을 모래에 대고 내려가면 속도가 줄어서 괜찮았을긴디 두발을 하늘로 올리고 쌩 내려가니 속도가 너무 빨랐다. 눈으로 이사장님이 보일 때는 두 다리였다. 금새 일어난 일이라 둘다 피할 수가 없는 상태 였지만 이사장님 급히 두발을 벌리며 그래도 부상을 상당히 줄였다. 왼손 중지 인대가 크게 다쳐서 아직도 다 낳지 않은 상태이고, 우측 중지 안쪽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철철 흐른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모래 언덕을 기어올라 운영요원 제일 키가 큰 분이 물로 씻고 붕대를 감아 주어 피는 멈추었다.
이후 나는 한번 더 샌드 보드를 타고 내려갔고, 우리 아짐은 세 번째 탄다며 내려오다. 팔에 힘이 빠져 판대기가 모래에 묻히는 바람에 반 토막이 나고 곤두박질을 쳤으나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는 않아 며칠 아프다 말았다.
이렇게 샌드보드도 약간의 사고는 있었지만 다행히 여사님들은 다치지 않고 무사하였다. 이후 퀴드바이크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3시간이 소요되었다.
모래차 탑승장 도착 18:05
퀴드 바이크와 샌드 보드를 모두 마치고 탑승장으로 돌아와 장비 반납하고 후일담을 나눈다. 재미 있었다는 분, 무서웠다는 분, 힘들었다는 분 대체로 여성분들이 힘들었을 것이다.
탑승장 버스 출발 18:19
장비 반납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도착 18:40
탑승장에서 출발하여 20여분 호텔에 도착하여 약 1시간 휴식을 한 후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로 한다.
호텔 출발 19:35
스와콥 문트는 크지 않은 도시라 호텔을 출발하여 10분이 못되어 바닷가 식당에 도착을 한다.
바닷가 식당 도착 19:43 ~21:18
STRAND 호텔 1층에 있는 커다란 식당이다. 분위기 좋고 주변 경관도 매우 좋다. 높다란 야자수 나무로 조경을 했으며 바닷가에 놓여 있는 식당이라 해가 금시 넘어가며 추워진다. 먼저 여기도 빵과 야채가 나오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생선구이 주 메뉴가 나온다. 고기를 잡아서 만드나 오랜 시간 끝에 생선구이가 나왔다. 여기서도 와인과 맥주는 빠지지 않았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맛보고는 추워진 밤공기를 마시며 호텔로 복귀하였다.
호텔도착 21:23
식당과 호텔은 버스로 5분거리다. 걸어서도 10분이 안 걸릴 거리다. 내일 아침 이곳을 다시 와 보기로 하고 오늘은 남아공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여 모래차를 타고 하루 일정을 마치느라 피곤하다. 모두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기다.
제6일차 11월 24일 일요일
스와콥문트
발비스 베이는 15세기에 포르투갈 탐험대가 처음 상륙하였으나. 400여년이 지난 1878년 영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항구 조건이 좋은 이곳을 사남 아프리카의 거점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발비스 베이는 나미비아 최대의 항구로서 이 항구를 통하여 나미비아 뿐만 아니라 잠비아 콩고 모잠비크 까지 화물이 운송되고 있다.
발비스 베이에서 사막해안을 따라서 북쪽으로 30KM를 올라가면 인구 5만명의 아름다운 도시 스와콥문트가 나온다. 이 해안도시 역시 15세기 후반인 1486년에 포르투갈의 탐험가 디오고 카오가 처음 상륙한 곳이다. 그러나 약 400년이 지난 1892년에 독일 해병대와 육군이 상륙하여 이곳을 독일군의 군사 기지와 거점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스와콥문트 해안에는 독일 해병대와 육군부대의 상륙을 기념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독일 식민지 시대인 1905년에 독일 정부가 세운 것이다.
영국이 발비스베이에 거점을 만들 것에 대항하기 위해 독일은 스와콥문트를 거점으로 만들어 내륙으로 육군부대를 파견하여 나미비아 전역을 독일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오늘날 스와콥문트 주민은 거의 백인이고 그 가운데에도 독일계가 거의 전부이다. 그러므로 도시 전체가 완전히 독일 분위기이고 독일의 어느 한적한 도시에 와 있는 기분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는다. 몇 년 전에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브레드 피트가 이곳의 해안가에 있는 집에서 한달 동안 휴가를 보내고 간 적이 있다.
이 도시에는 ‘살아 있는 사막 뱀공원’과 1997년에 작은 식물원을 만들었다. 도서관, 박물관등이 이곳에 있다.
기상 05시
아침에 일어나 어제 잠시 다녀온 식당쪽인 바닷가로 향한다. 마님과 이규현님과 셋이서다.
길거리는 매우 깨끗하다. 바닷가 사막지대라고는 하지만 날씨가 선선하니 걷기에 딱 좋다.
가로수는 대부분 대추야자나무다. 주렁주렁 달린 대추야자가 볼만하다. 어제 다녀온 식당우측 바닷가에 도착하니 고운 모래사장 안쪽으로 들어가 바위에 붙어 있는 조개, 홍합 무지 많다. 미역도 따서 맛을 보고, 해변에 널려 있는 해파리도 보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잠수부의 모습도 보고는 다시 해변으로 올라와 박물관을 돌아서 전쟁을 묘사한 기념비가 있는 공원을 돌아서 시내를 잠시 나마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니 1시간쯤 지난다
아침식사 06:30
호텔로 돌아오니 우리 님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모이는 중이다. 아침식사는 뷔폐식으로 대충 입에 맞추어 간단히 먹고 오늘 하루 투어 준비를 한다.
호텔출발 07:48
호텔을 07시 48분 나선다. 오늘 가는 곳은 스와콥 문트에서 남쪽으로 있는 웰비스 베이다(가이드는 와이드 투베이라 발음을 한 것 같다.) 이곳은 물개섬 투어가 유명하며 물개섬 투어가 끝난 후 샌드위치 하버로 이동하여 4륜구동차로 모래사막을 일주하는 투어다.
호텔을 나서 아름다운 조금은 황량한 나미브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샌드위치 하버를 지나 웰비스 베이 선착장으로 이동을 한다. 가는 중 잠시 플라밍고가 노는 모습을 감상한다.
이후 남쪽으로 달리면 바닷가에 마을이 몇 군데 보인다. 대서양 해변을 따라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마을의 안쪽으로는 백인들이 살고, 모래사막이 있는 뒤편으로 대부분 흑인이 산다고 한다. 마을에 공장이 하나 보이며 출근을 서두르는 흑인들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하여 웰비스 베이 선착장 까지는 호텔에서 약 50분이 소요된다.
웰비스 베이 선착장 도착 08:25
웰비스 베이는 인구 약 30만으로 나미비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항구가 잘 발달된 곳이다. 바다에는 선적을 기다리는 많은 배들이 정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다 정거장이라고 부른단다.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며 수산업이 발전한 도시라 한다.
항구는 깨끗해 보이지는 않지만 케이프 물개(Cape Fur SEALS)와 함께 하는 돌핀 크루즈를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돌핀 크루즈 출발 08:50
화장실 여기 돈 받는다. 화장실 깨끗하지 않지만 여기 아니면 갈 때가 없으니 그래도 댕겨와야 한다. 20여분을 기다리는 사이 동그란 열매 같은 것에 모양을 넣은 노리개 같은 것을 흑인들이 팔러 다닌다. 우리야 눈에 별로 띄지 않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인데 이들에게는 큰 생계 수단인거 같다. 아릿다운 젊은 여성 영어 가이드가 나오고 우리는 멋진 요트에 올라탄다.
요트가 출발하자마자 첫 번째로 배로 올라오는 놈이 있다. 물개다. 부르럽고 따스한 촉감의 물개 길들여진듯하다. 선원이 먹이를 주면 받아먹는다. 많은 돌핀 크루즈 선들이 날마다 하는 일이니 이넘들도 먹이를 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물개가 내려가고 다시 날아온 놈들이 있다. 커다란 펠리컨이다. 이 넘들도 먹이를 받아먹는 재미로 우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준다.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애교를 부리는 것인지 포즈도 잘 취해 준다. 푸드덕 날개짓에 얼굴을 깃털로 맞았는데 상당히 따갑다. 이렇게 펠리컨들과 즐기고, 따스한 커피도 마시고 위스키도 한잔씩 마시며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맛이 좋다는 빈투훅 맥주도 곁들이며 즐거운 크루즈는 이어진다. 두둥실 떠다니는 물개를 손짓하며 대략 1시간 20분이 경과하니 물개섬에 도착을 한다.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 커다란 모래섬을 뒤덥은 시커먼 물체가 멀리서는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지만 점점 가까워지며 시커먼 물체가 물개임을 확인한다. 남아공 핫 베이 물개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 숫자가 나미비아 당국에서 그간 보호정책으로 수 만마리로 번식을 했다고 한다. 특히나 천적이 없이 현재는 개체수가 엄청나게 많아 졌다는 애기다. 물개섬에서 팁을 얼마를 줬는지 물개섬을 우측으로 돌아서 홍학이 노니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 붉은 홍학이 멀리 있더니만 차츰 바닷로 이동을 하여 가까이서 잘 볼수 있었다. 30여분 이상을 물개섬 주변에서 구경을 한 후 돌아오는 길에는 선상에 차려진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상당히 부실할것이라 했던 선상 음식은 그런대로 좋았던 같다. 남정네들은 선상 안쪽 식탁에서 인원수가 많은 여사님들은 선상 밖 식탁에서 즐거운 이야기 꽃을 피우며 식사를 했다. 식사는 빵, 특별히 주문한 생굴회, 부침 종류, 소세지 종류, 생선튀김종류가 있었으며 조국에 공수한 소주, 맥주, 와인도 한잔씩 선상에 먹는 점심식사와 와인 한잔 기분은 아주 좋다.
돌핀 크루즈 끝 12:14
이렇게 하여 크루즈는 대략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요금이 얼마인지는 알바 아니지만 물개와 페리컨, 홍학과 함께 한 시간은 영원히 추억 속에 머물 것이다.
사륜구동 샌드카 투어 출발 12:44
돌핀 크루즈가 끝나고 화장실 댕겨오고 단체로 열매로 만든 놀이개 샀다. 각자 이니셜 새겨 넣고 1달러인지 2달러인지 주고 샀다. 한사람한테 팔아주기 멋하여 인정많은 우리아짐들 찜찜해 했지만 한사람이라도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 어딘가?
30여분이 지난 후 선착장 바로 옆 샌드카 출발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4대에 나누어 타고 샌드위치하버로 이동을 한다. 정확한 샌드위치 하버는 모르지만 모래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뜻하는 것으로 안다. 도로를 달려 붉은 호수에 닿는다. 붉은 호수는 예전에 티비에서 본 것으로 염전이다. 면적이 무려 4000헥타에 이른다고 한다. 미생물의 영향으로 물이 붉게 보인다고 한다. 붉은 염전을 지나 울퉁불퉁한 갈대밭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우측으로 홍학이 노니는 작은 호수가 보인다. 호수 뒤편으로 가젤도 보인다. 이후 바닷가를 지나며 좌측으로 홀로이 걷는 놈이 있으니 사막의 여우 인지 늑대인지 모르지만 쟈칼이라고 하는 놈이다. 걷는 폼이 몹시 지친 모습이다. 이윽고 샌드카는 본격적인 길로 접어든다. 가는 모래톱을 오르내리며 긴장을 풀지 못 하도록한다.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질주를 하다가 가장 높다란 언덕빼기에 멈춰선다. 가는 모래가 연신 날림에도 불구 하구 각자 사진찍느라 분주하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없는 기회이니 한컷 잘 찍는 것도 중요하다. 하늘을 나는 펠리컨도 우리의 모습에 감동했을기다. 한동안 기념사진을 찍고는 다시 곤두박질을 치며 내리 꽂는 샌드카들 일렬로 서 있다가 차례로 곤두박질을 치는 샌드카의 행렬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대서양 바닷가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어떤 이는 이사장님의 속임수에 걸려들어 대서양 물에 빠지기도 하고 즐기는 사이 그득한 상이 차려졌다.
초코렛, 과자류, 꽈배기, 소시지, 고기류, 굴등을 안주로 소주도 보이고, 빨강통의 맥주, 와인으로 대서양의 푸른 물살과 함께 모래사장에서 즐기는 멋스럼움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추억과 낭만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람니다.
사륜구동 샌드카 투어 끝 16:20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넝쿨 가시나무에 달려 있는 수박보다는 작은 둥그런 열매를 보셨을 겁니다 “나라”라고 하는 열매로 코끼리가 매우 좋아해서 300km를 이동해서 이 열매를 먹는 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쟈칼이 보였고 가젤도 보았습니다. 붉은 염전을 지나 도로를 따라 웰비스 베이 4륜구동 투어 주차장에 도착하니 16시 20분으로 투어는 장장 3시간 35분간 이루어 졌습니다.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해준 여러분께 감사혀유~~
웰비스 베이 출발 16:34
이제 스와콥문트 호텔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사장님은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가면서 마을에 들러 생선회를 쏜다고 합니다. 쏜다고(산다고) 이해가 잘 가질 않겠지만 모두가 박수를 칩니다. 회 안 드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것도 좋은 추억 거리일것이니까요!!
길거리 회 16:40 ~17:13
버스가 출발하여 5분도 안되어 멈춰 섭니다. 길옆에서 아이 키만한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을 보고 흥정에 들어갑니다. 얼마에 샀는지 정확히는 모르겟지만 4~5만원은 준듯합니다. 민어와 비슷한 고기로 “카벨여우”라고 했던 것 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회를 먹지 않는 분들이라 회를 뜰 줄을 몰라 회 뜨는 일은 손병일님과 제천 선생님이 애를 쓰셨습니다. 큼지막하게 썬 생선회를 금시 마련한 초고추장에 푹 찍어서 한입 넣으니 살이 연하니 살살 녹습니다. 맛도 좋습니다. 회를 드시지 않으신 몇 분들은 지루하셨겠지만 여럿이 하는 일이니 어쩌겠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구요 ~~
회 뜨느라 애쓴다고 서방님들 먹여주시는 두 분 참 보기 좋았습니다.
대략 35분간의 길거리 회집을 운영하고 이제 호텔로 갑니다.
스와콥문트 호텔 도착 17:50
웰비스 베이 항에서 길거리 회를 맛있게 시식한 후 40여분이 조금 못 되어 호텔로 돌아 옵니다. 조금은 피곤 하셧을 겁니다.
저녁 식사하러 호텔 출발 18:50
오늘 우리가 가는 식당은 배의 선적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목재 다리입니다. 바다 쪽으로 길게 다리를 놓아 예전에는 이곳으로 물건을 옮겼다고 합니다. 몇 번인가 넘어져 근간에 다시 복원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방송사인지는 모르지만 몇 해전 ‘꽃보다 청춘’인가 하는 프로에서 이곳 식당을 다녀 갔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라고 합니다.
식당 도착(JETTY1905 RESTAURANT) 19:00
날씨가 몹시 춥습니다. 두꺼운 옷을 입고 올 걸 후회가 됩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바람도 불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의 빛이 약해져 추위가 엄습해 옵니다.
5~6분을 건너가면 다리 끝에 식당이 있는데 손님들로 만원입니다.
모래사막에 별로 볼 것은 없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모여 들었는지 굉장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소고기 스테이크입니다. 손님이 많아서인지 오래 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감자튀김, 소스, 야채 볶은 것등과 함께 먹음직한 소고기 스테이크가 나옵니다. 오늘 부터는 바짝 익은 것은 너무 질겨서 조금 덜 익힌 미듐으로 시켯더니 먹기 딱 좋습니다.
여기서도 와인은 빠질수 없지요~~
식당 출발 20:36
이렇게 하여 1시간 30여분 간의 저녁식사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갑니다. 붉게 물든 바닷가 석양을 바라보며 낮선 풍경과 마주하며 드는 저녁식사도 행복했고 좋았습니다.
우리 ‘꽃보다 청춘’에 나오신 할배들도 이런 좋은 추억 안고 가셨을 겁니다.
호텔 도착 20:42
이렇게 하여 나미비아 바닷가 스와콥문트와 웰비스 베이의 사막오토바이, 돌핀 크루즈, 4륜구동차 투어를 마치고 내일은 나미비아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붉은 사막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오늘밤도 편안히 휴식에 들어갑니다.
제7일차 11월 25일 월요일
기상 05:30
아침식사 06:30
호텔 출발 08:13
오늘은 장장 6시간 400km를 이동하여 나미비아 깊숙한 내륙에 있는 나미비 사막의 서쎄스 홀라이 사막이 있는 공원앞 롯지 까지 이동하는 날입니다. 장거리 버스를 타고 가는 길 힘들고 지루하지만 함께 극복하는 날입니다.
나미비아는 “거대한 광야”라는 뜻으로 나미비아사막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나미비아는 독일식민지 때인 1906년 대 학살이 있었고, 독일식민지 11년후 2차대전으로 독일이 패망하며 그 패권은 영국으로 넘아갔다고 한다. 남아공 학생시위후 그 영향으로 시위를 계속하지만 실패로 끝나다가 그후 누마조장군의 주도로 독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는 길의 표정
끝없이 이어지는 평탄한 사막지대 황량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지나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 널찍한 도로를 따라 1시간여 달리면 포장도로를 끝이나고 비포장 길의 시작이다. 앞쪽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이어지는 사막의 비포장 길은 끝이 없어 보이지만 이윽고 우측으로 바위산이 하나 보이고 또다시 이어지는 끝이 없는 사막 길은 시속 80km표지판이 보인다. 1시간 50여분이 지나서 노천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시 달린다. 가면서 마을도 없고 물도 없는 삭막한 사막, 만약 이곳에 홀로 서 있다면 생존 전략은? 도무지 살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있느니 타조가 거니는 것이 보이고, 오릭스(뿔 달린 사슴)가 보인다. 한동안 심심하던 차에 관심거리가 생긴 것이다. 동물 찾느라 눈들이 동그랗다. 아~~ 저 동물도 살아 가는대 하물며 인간이 못살아 나갈까? 가시달린 나무들은 어쨌든 동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하겠고, 저 동물들을 무슨 수단을 써서라고 잡는다면 살수 있겠다.
이제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가 오지 않아 말라버린 강줄기에도 커다란 나무는 살아 있다. 바위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면 바위산에는 키가 큰나무, 작은 나무, 잎이 푸르게 나오는 나무, 길 다란 선인장도 자란다. 얼마를 올랐을까. 좌측으로 묘하게 생긴 나무가 보인다. “쿠이버( Quiver Tree)라고 하는 알로에과의 나무라고 한다. 입구에 엉성한 휴게시설이 있는 곳이다. 잠시 들어가 기념사진 찍는다. 쿠이버는 나무 기둥이 흰색을 띄며 반들반들하다. 잎이 두껍고 하얀가루로 덥여 있다고 한다. 수분방출을 최대한 막고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바위산을 넘어서면 양쪽으로 널찍한 사막이 펼쳐지는 황량한 곳으로 도로는 반듯하니 비포장이지만 80km 도로다. 다시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평탄한 사막지대는 양쪽으로 끝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앞쪽으로 길 다란 표지판이 보인다. 남회귀선이라고 한다.
남회귀선 통과 11:55
남회귀선(Tropic of Capricorn)에서 잠시 멈춰선다. 남위 23.5도,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을 하면 산얼룩말, 오릿스 무리가 나무 그늘에 쉬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이렇게 하여 남회귀선에서 다시 50여분을 다리면 솔리데어 롯지라고 하는 곳에 닿는다.
숄리데어(SOLITAIRE) 롯지 도착(점심식사) 12:44
휴게소와 같다. 커피숍도 있고, 자동차 정비하는 곳도 보이고, 음식을 파는 커다란 식당도 있다. 높다란 바람개비는 용도가 무엇인지, 군데군데 놓여 있는 부서진 자동차들, 빨간꽃을 피우고 있는 선인장등이 보인다.
우리는 잠시 화장실을 들러 식당으로 들어간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뷔폐식으로 야채, 빵, 올리브, 브로콜리, 생선튀김등으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다. 스와콥문트에서 선선하던 기후는 이제 35도를 육박한다. 돌을 하나 집어드니 불에 데운 듯 뜨겁다.
숄리데어(SOLITAIRE) 롯지 출발 13:35
점심식사는 비교적 빨리 끝났다. 차려진 음식이라 오래지 않아 식사가 끝나고 더위를 피해 그늘에 피해 있던 님들 버스에 올라 마지막 롯지로 향한다. 가는 길에도 가젤은 많이 보인다. 좌우로 높은 바위산이 보이는 사막지대를 넘고 얼마를 지나서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면 마지막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을 하게 된다. 점심식사를 한 후 1시간이 소요되었다.
솔루베이(SOSSUSVLEI)롯지 도착 14:44
점심식사를 한 후 1시간이 걸려서 오늘의 목적지인 나미비아 세스림 국립공원앞 솔루베이 롯지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매우 덥다. 오는 대 고생했다고 물수건을 건네고 이후 시원한 쥬스를 한잔씩 돌린다. 롯지와 호텔의 차이는 롯지는 독립된 형태의 숙박시설로 건물이 대체로 주욱 늘어선 형태다. 호텔은 집약적인 형태로 몇 개의 층으로 숙박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틀리지만 롯지도 호텔에 못지않게 방은 깨끗하며 2인 1조로 방을 쓰게 되어 있다.
롯지에 도착하여 일단 방을 배정받고 짐을 방에 가져다 놓는다. 방이 멀기 때문에 룸보이를 이용한다. 팁으로 1~2달러를 지불한다. 방으로 들어가니 매우 덥다. 에어컨도 있으나 별효과가 없다. 아 정말 힘든 고행의 시작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많다던 모기는 보이지 않는다. 남아공부터 지금까지 모기는 몇 마리 보지못했던 같다. 호텔이나 롯지는 전력사정도 좋은 편이라 핸드폰이나 카메라 충전하는데는 지장을 받지 않았으며 와이파이도 잘 터지는 편이라 소통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현재 이곳 롯지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지만 방에서는 안 되고 수영장 부근에서만 터진다. 방을 배정 받고 곧바로 수영장 앞에 있는 새집으로 이동하여 오면서 찍지 못했던 새집을 확실히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 롯지에도 쿠이버나무와 키가큰 선인장, 길쭉한 선인장으로 조경을 하였다. 대부분 사막이라 지하수로 키우는 것 같다. 전기도 태양광을 이용한다.
솔루베이롯지 출발(해넘이) 17:52
롯지에서 3대의 짚차에 나누어 타고 해맞이 장소로 이동을 한다. 약 7km를 이동한다고 한다. 가면서 우측으로 가젤이 보인다. 스프린 벅이라고 한다. 잠시 더 가니 덩치가 큰놈이 나온다. 블루 로데 벳(BLUE Loilde Bet)이라고 하는 놈이 보인다. 이름이 조금 생소하지만 시커먼 흑인 운전기사님이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준 것이다. 오릭스도 보이고 요것은 키우기도 한다고 한다. 오릿스 고기 맛도 본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렇게 하여 바위산 앞 해맞이 장소에 닿는다.
해맞이 장소 도착 18시 45분
해진 시각 19:26
붉은 빛으로 물든 바위산아래 해맞이 장소에 도착하여 잠시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사이 우리 기사님들 3분은 무엇을 했는가 했더니 음식과 술을 준비하였다. 맥주, 삼페인, 음료수 안주로 건과류, 소시지, 과자류, 육포등을 한상 그득 차렸다. 흥이 난 우리 님들 이 분들과 사진도 찍고 삼페인 터트리고 맥주마시며 기분들 무지 좋아졌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며 날씨도 선선해졌고 붉은 노을이 진 하늘가, 온통 은은한 빛으로 감도는 사막과 바위산이 또한 멋스럽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갖은 포즈 취해가며 사진 찍고, 또 찍고 더러는 흥에 겨워 춤도 추시고, 야단 법석을 이런 것을 두고 한말 같다. 우쨋든 40여분이 지나서야 해는 서편으로 넘어가고 흥겹던 시간도 점차 끝마무리를 하고 이제 다시 롯지로 향할 시간이다.
해맞이 장소 출발 19:40
해가 넘어가고도 흥을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아 15분이 지나서야 바위산 아래를 출발한다. 오면서 죽은 듯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롯지로 향한다.
롯지도착 20:02
해맞이 장소에서 20분이 좀 더 지나 롯지에 도착을 한다.
벌써 해는 져서 어둠이 깔린 롯지에는 불빛만 은은하게 비춘다. 내리쬐던 햇살로 절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던 야외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저녁식사 20:05~21:20
저녁식사는 대부분 고기류다. 지글지글 불에 익혀 내는 소고기, 오릭스고기, 여러종류의 고기가 부위별로도 나왔지만 에고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소고기하고, 오릭스 고기 눈팅으로 시켜서 사라에 담이 온다. 옆쪽에서 국수가닥 넣고 각종 양념은 을 한다. 고기보다 국수가닥 넣고 요리한 음석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오릭스 고기, 소고기, 맛은 있다고 하는데 가물어서 고기도 말랐는지 무지 질기다. 첫머리에서 가져간 큼지막한 고기도 뭔지는 모르지만 질긴 편이다. 에고 너무 많이 가져 왔나 과식하겠다. 그래도 우리님들 각자 알아서 먹을 것 잘 챙겨서 드신다. 여기도 와인은 빠질 수 없고 맥주도 있으며, 울 동네서 가져온 소주도 물병에 담아 왔다. 해맞이 기분이 아직 살아지지 않아 그 여운으로 여기서 술 많이 마신 것 같다. 대략 1시간 20여분의 저녁식사시간이 끝나고도 우리 몇은 남아서 남은 술 다 비우느라 1시간은 더 보냈다. 술 다 비우고 킬리만자로 갈 고여사 우리마님, 나 셋이서 수영장 의자에 누워 밤하늘에 별을 바라보며 야그 하고 궁상 떨다가 23시 30분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사막의 밤도 좋은 밤 되셨지유
제8일차 11월 26일 화요일
기상 04:00
식사 05:00
오늘은 롯지에서 일찍 출발하는 날이라 아침식사가 빠르다. 수영장옆 식당에는 벌써 아침식사 준비가 되어 있다.
빵 한조각, 과일 등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낸다.
롯지 출발 05:56
아직 불빛도 꺼지지 않은 롯지를 출발한다. 어제처럼 3대의 짚차에 나누어 타고 간다. 운전기사님들은 어제 분들은 휴일이라 오늘은 새 멤버로 바뀌었다.
잠시후 도착한 세스림국립원입구에서 늘어선 차량 뒤에 서서 06시 공원출입문이 열리자 일제히 안으로 들어간다.
세스림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 매표소 06:00 통과
나미브 사막은 대서양을 따라 나미비아와 남아공의 국경지대인 오렌지강에서부터 북쪽으로 앙골라 남부까지 걸쳐있는 길이 1천600km의 긴 사막지대이며 폭이 가장 큰 곳은 160km나 된다. 나미비아 사막투어에서 여행객들이 찾아가는 소수스블레이(Sossusvlei)와 데드블레이(Deadvlei)는 전체 나미브 사막에서 볼 때는 극히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스블레이는 수도 빈트후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360㎞ 떨어진 아프리카 최대 규모 자연보호구역인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 안에 있다. 오래 전 오렌지강이 흐르며 만들어지던 강 주변의 늪지대들이 사라지면서 그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 소수스블레이와 데드블레이다. 현지어로 ‘소수스’는 물이고 ‘데드’는 죽은 이 라는 뜻이고 블레이는 계곡이라고 한다.
말라버린 호수의 하얀 바닥이 인상적인 ‘데드블레이’와 소수스블레이를 구경하다 보면 볼 수 있는 또 다른 경이로운 풍경이 가까이 있는 데드블레이다. 둥근 웅덩이 모양의 땅에 물이 고였다가 물 흐름이 바뀌면서 안쪽에 있던 나무들이 모두 말라 죽은 곳이 있다. 눈 앞에 보이는 데드블레이(Deadvlei)는 이름 그대로 사막가운데 드문드문 서 있는 고사목 들, 황량한 느낌이 들면서 순간 정지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말라버린 호수의 하얀 바닥과 붉은 모래언덕 그리고 그 위의 파란 하늘, 앙상한 가지의 고사목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며 추상화 속에 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진작가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며, 관광객들도 작품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오렌지색 붉은 사막 소수스블레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붉은색 모래 언덕들이 군락을 이룬 곳이다. 특히 일출과 일몰에 언덕 위 사막의 모래가 태양의 빛을 받아 제각각의 색깔로 변해갈 때의 경치는, 사람들이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표현하기 힘든 사막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 주기도 한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통과하자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을 시속 100km로 달린다. 데드블레이, 소수스 블레이가 있는 곳까지 거리가 64km가 적혀 있다. 모래언덕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듄(DUNE 45)는 입구에서 45KM 지점의 좌측에 있는 모래언덕를 뜻한다. 매표소를 통과하여 10여분을 질주하니 좌측편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잠시 차량이 멈춰선다. 멀리 하늘가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구 열기구가 떠 올랐다. 몇 분을 기다리니 붉은 동녘하늘가 높은 산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데드 블레이로 접어들어 가는 도중 해맞이를 하고 다시 달린다. 커다란 타조가 어슬렁 어슬렁 가는 모습이 보인다. 매표소에서 대략 1시간이 걸려서 듄 45라고 하는 지점에 닿는다. 벌써 모래사구로 오르는 분들이 보인다. 가장 많이 올라간다는 곳으로 모래언덕이 비교적 나지막하며 넘어서기 좋아 보인다. 듄 45 앞에서 기념사진을 잠시 찍고 다시 달린다. 아스팔트 포장길 양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붉은 모래사구의 연속이다. 남미 칠레 우주비행사가 달나라에 가기 전 예행 연습을 했다는 아따까마사막에서도 모래사막은 보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끝을 모르는 모래사구가 양쪽으로 펼쳐진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것도 붉은 모래사막이다. 듄 45의 멋진 곡선을 이루는 모래사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10여분을 더 가면 화장실이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아짐들은 화장실로 남정네들은 드넓은 야전 화장실을 이용하여 간단히 생리작용을 해결하고는 다시 달리면 이제는 비포장 모래 길로 아프리카 마사지를 받으며 이리저리 몸 가는 대로 차가 흔들리는 대로 맡기며 가다보면 샤우판강 끝 지점에 위치한 데드블레이 앞 모래사구 앞에 도착을 하게 된다. 매표소를 출발한지 1시간 40여분이 걸렸다.
샤우판 강 끝 지점 데드 블레이 입구 07:34
이제 말라버린 강도 끝 지점이다. 사방으로 둘러 쳐져 있는 모래사구 좌측 안쪽으로 데드블레이가 있다고 한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강바닥에 죽은 나무들만 군데군데 보이는 곳이다. 오늘 우리가 오르게 될 모래언덕은 데드 블레이 좌측 언덕이다. 높이 보이는 대드탑 까지는 어림잡아도 두어시간을 족히 걸릴듯하다. 내가 간다면 또 따라 오겠고 시간도 더 지체가 되겠기에 이번 모래사구투어는 가이드가 가고자 하는 모래언덕 까지만 다녀서 데브 블레이로 내려가도록하겠다. 멀리 데드 탑 높다란 곳으로 오르는 분들도 보인다. 카메라로 가까이 당겨 보니 서양들 10여명으로 하산은 역시 모래사구를 직등을 내려서고 있다.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저기 까지 다녀온다면 얼마나 좋을 까 조망도 여기보다는 훨 좋을 긴디~~
가이드 선생이 첫머리 모래사구 오르는 곳을 잘못 선택하여 작은 언덕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서 두 번째 언덕으로 오른다. 3명인가를 빼고는 모두가 모래언덕 투어에 동참을 하였다. 모래사구 날카로운 능선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푹푹 빠지며, 또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고 바람도 적어 투어 하는데 크게 보탬이 되었다. 점점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벌어지고 힘겨워 하시는 분들이 보인다. 선두는 천천히 보폭을 줄이며 쉬엄쉬엄 가지만 그래도 나이드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차이는 나기 마련이다. 데드 블레이 옆 능선을 지나 한참을 내려서니 더 이상 진행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신호가 보인다. 후미를 기다리며 모래톱에서 쉬고 있자니 여유있게 사진도 찍고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데드 블레이로 하산 08:37
여유있게 쉬고 있던 님들이 드디어 모래사면을 따라 하산을 시작하고 있다. 08시 32분이다. 모래톱으로 오른지 꼭 1시간이 지난 후다. 이후 내려서는 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5분여 내려서니 데드 블레이 갈라진 바닥에 닿는다. 흐르던 강물이 모래사구에 막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다가 물이 모두 증발되고 말라버린 호수로 1500만년 전에 형성된 호수라고 한다. 드러누운 고목과 굵직한 덩치만 남아 있는 고사목이 이호수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 쓰러져 누운 고사목에 올라 사진도 찍고 저 멀리 높다란 곳에서 조금 늦게 도착하여 마지막으로 내려서는 신ㅇㅇ님, 이 ㅇㅇ님, 김 ㅇㅇ님을 마지막으로 무사히 모래사구를 내려서서 데드 블레이를 지나서 첫머리 모래투어 시작한 곳으로 나오니 시원한 물이 준비되어 있어서 모래투어를 하며 목말라 했던 님들 그늘나무 아래서 쉬면서 땀을 식힌 후 마지막 소서스 블레이로 이동을 한다. 차량을 타려고 하니 의자가 매우 지저분하다. 기사님이 식사를 하고 치우지를 않았나 해서 기분이 별로 였는데 나중에 도착한 기사님 점심도시락을 쟈칼이 시식을 하며 흩어 놓았다고 한다. 보이지도 않던 쟈칼이 언제 급습을 했는지 약빠르기도 하다.
데드 블레이 입구 출발 09:52
데드 블레이에서 소서스 블레이 까지는 차량으로 모래 길을 따라 5분이면 닿는다. 커다란 나무들만 보이는 곳으로 주변으로는 모래언덕으로 막혀 있다. 소서스는 물이라는 뜻이라는데 이곳에도 물은 보이지 않는다. 차량으로 주변을 살피며 한 바퀴 돌아서 나간다.
소서스 블레이 출발 09:57
소서스 블레이에서 출발하여 이제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캐년으로 이동을 한다. 오던 길을 따라 진행한다. 울퉁불퉁한 모래 길을 따라 나가고 다시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나간다.
1시간을 달려 나오니 공원입구에 닿는다.
공원입구 11:07
공원입구를 나와 우리가 머물던 롯지에 닿기 전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간다. 철조망 너머에 보이는 길이 더 좋아 보이는데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트위스트를 추듯 차량이 흔들흔들 달린다.
세스림 케년 도착 11:15
공원입구를 나와 세스림 캐년으로 가는 삼거리의 이정표에 4.5km가 적혀 있으니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듯하다. 8분이 지나서 세스림 캐년 앞 표지판에 닿는다.
세스림 캐년은 길이 약 3km로 60만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깊숙한 바닥으로 계단을 따라 들어간다. 바닥에 닿으면 좌측으로 높다랗게 형성된 계곡을 따라 들어간다. 계곡 벽에는 새집이 있는 지 새소리가 연신 끊기지를 않는다. 모래바람으로 눈을 뜨지 못할 때도 있으며 몇 분간에 걸쳐 들어가면 마지막 지점에 물이 고요 있는 곳이 나온다. 물 웅덩이에는 개구리가 살고 있다. 쿠이세 산맥에서 발원하여 흐르던 강줄기가 사막에서 침식퇴적 작용을 일으켜 사막의 약한 부분이 깍여 버리고 단단한 부분만 남아 형성된 케년으로 미국의 그랜드 캐년처럼 웅장하지는 않다.
세스림 케년 출발 11:52
몹시도 더운 날씨에 오후에는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오전 일찍 투어를 시작하고 일찍 끝낸 후 오후에는 휴식시간이다.
세스림 케년을 출발하여 10여분이 좀 더 지나면 숙소에 도착을 한다.
점심은 어디서 먹었는지 모르지만 도시락으로 간단히 먹었던 것 같다.
숙소 도착 12:05
숙소에 도착하여 각자 방으로 들어가 샤워도 하고, 에어컨도 틀고 더위를 이기려 애쓰지만 그래도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낫다. 신발을 빨으니 붉은 흙이 끝도 없이 나온다. 그간 밀린 빨래도 잔뜩하여 수건 걸어 놓은 새다리에 널고 신발은 문앞 담에 널어놓으니 마르긴 잘하는데 그사이 모래가 잔뜩 날아와 앉았다. 모처럼 여유있게 낮잠도 자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기 전 어제 저녁 화롯불에 구워먹던 야외식당으로 향한다.
저녁식사 19:00
오늘 저녁 식사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쿠이버트리 나무 아래 마련된 야외식탁에 모인다. 우리는 어제 그 장소에 다시 모였다. 어제는 모자를 놓고 갔지만 오늘은 절대로 놓구 오는 물건이 없어야 겠다. 모자는 영영 찾지 못했다. 분명 청소하는 분이 아니면 없어질 일이 없는데 말이다.
오늘은 주문하는데 한결 수월하다. 어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질겼던 오릭스 고기는 사양하고 돼지고기로 좀 많이 주문한다. 소고기는 조금 주문하고 채소를 넣은 볶음 요리는 많이 한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즐기는 저녁 식사는 운치있고 즐거운 시간이 었다. 이렇게 하여 나미비아의 마지막 저녁 식사도 맛있게 먹고 오늘은 일찍 주무시러 들어간다. 내일 먼 거리 이동에 대비하여 푹 주무시 바람니다.
제9일차 11월 27일 수요일
오늘은 나미비아의 수도인 빈투훅 까지 이동하는 날이다. 이동거리가 470km라고 한다. 시간은 대략 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기나긴 여정이다.
기상 05시
아침식사 06시
아침 식사는 역시 간단히 한다. 뷔폐식으로 과일 음료수 약간의 치즈종류로 아침을 먹고 나서 어제 사진을 담지 못했던 국립공원입구로 향한다. 10여분 후 도착하여 공원 앞에서 여직원에게 손짓발짓으로 도움을 요청하여 사진 몇 장 찍고는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로 돌아오니 새집근처 모래사막에 야생들소 무리가 보인다. 10여마리가 무리지어 어슬렁어슬렁 다닌다. 새까망색의 야생들소 털이 뾰족하니 사나워 보인다.
롯지 출발 07:57
아침 식사를 하고도 휴식시간이 많다. 짐 챙겨 나와서 열쇠 반납하고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각자 기념사진도 찍고는 버스에 승차하여 빈투 훅으로 향한다. 머나먼 거리다. 길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거리에 대비하여 이동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고 한다.
큰동네(리호 보트) 휴식 11:56~12:22
나미비아 세스림 국립공원 롯지를 출발하여 이제 빈투 훅으로 향한다. 그제 해넘이를 하던 방향으로 향한다. 커다란 바위산을 바라보며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양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산을 바라보며 고개를 넘는대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후 양쪽을 널찍한 사막이 펼쳐지고 1시간 15분이 지난 후 바위산 사이로 푸른나무가 자라는 강 길을 따라 진행한다. 길 상태는 조금씩 좋아진다. 잠시 물이 흐르지 않는 강가 옆 널찍한 야전 화장실도 이용하고 달리면 길옆으로 원숭이 무리가 보이고 철조망이 쳐져 있는 사유지들이 점차 늘어난다. 대부분 백인들 소유로 농장을 경영한다. 한동안 진행하던 운전기사가 우측 산속으로 들어가 말라버린 나뭇가지를 들고 온다. 금시 불이 붙어 버릴 것처럼 바짝 말라버린 가지인데 비가 오면 곧 살아난다고 한다.
2시간이 지나며 강길 끝 지점을 지나 광활한 사막 길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먼 곳에 흰색으로 보이는 공장도 있고, 민가(10:18)가 나오며 주변으로는 가축을 키우는 목동들이 많이 보인다. 말, 염소, 소들을 사육하는 농장들이다. 가끔씩 오릭스도 보이며 달리면 이제 드디어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오래 가지 않았는데 커다란 동네가 나온다. 산위에 리호보트라고 적혀 있는 동네다. 이곳에서 차 연료도 채우고, 마트에서 모처럼 아이스크림도 사서 먹었다. 사막한가운데 있는 제법 커다란 마을로 지도에는 경찰서, 박물관, 학교, 교회, 병원, 우체국등이 표시되어 있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나미부 사막 부근의 새집은 대규모 커다란 것이 하나 아니면 2개정도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지만 빈투훅 쪽으로 오면서 새집은 작은 것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벤투 훅 도착 점심식사(Joe,s BeerHouse) 13:39 ~15:10
리호 보트 큰 동네를 출발하여 달린다. 도로는 빈투 훅이 가까워 졌는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간다. 산악지대를 넘고 큰 동네를 출발하여 30여분 후 철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철길은 도로와 나란히 간다, 열차가 가는 것은 아프리카에 와서 보지는 못했다. 좌측으로 가던 철길이 우측으로 넘어가고 먼 산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이며 우측으로 커다란 군부대가 보인다. 여기서 도로 공사 중으로 건설 중인 다리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빈투훅 시내로 접어드는 것 같다. 버스에 마이크가 안 되니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수는 없지만 대충 감으로 여기가 빈투 훅이구나 싶다. 커다란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 있는 널찍한 거리를 지나고 커다란 건물을 지나서 버스는 리호보트 큰 마을을 출발한지 1시간 20여분이 지나서 나미비아의 수도인 빈투훅에 자리 잡은 조이스 비어 하우스라고 하는 집에 도착을 한다. 나미비아 사막을 출발한지 5시간 40분이 지난후다.
조이스 비어 하우스는 유명한 집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온갖 농기구, 마차바퀴, 부서진 기계부품, 빈병, 리어카 바퀴, 동물모형등으로 빈틈없이 장식한 식당으로 여러 파트로 자리를 나누어 앉도록 칸이 나위어진 식당이다.
이곳에서 돼지갈비, 돼지고기 꼬치, 메추리고기, 소세지, 빵으로 나온 식단인대 맛이 괜찮았다. 고기도 모처럼 연하여 좋았고, 구수하게 구워낸 고기가 맛있었다.
여기서 좀 더 참지를 못하고 가이드 선생한테 한바탕 쏟아 부었는데 몇 번이고 애기한 마이크는 들리지 않지, 첫날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모래언덕에 올라 샌드보딩 할 때 분명 피를 흘리고 다친 것을 보았을텐데 한 번도 어떠냐고 물어도 보이 않았지, 투어가 끝나고 연고라도 있으면 약국에서 구입해 달라고 분명애기를 했었는데 오리무중이지 끝내는 쌓인 것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여러분께는 매우 죄송하며 면목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퍼붓기는 해야 했었다. 그래야 다음번 오시는 분들도 불편을 덜 수 있는 것이기에 ~~~
시내 관광
빈투후크
나미비아 중앙부의 건조한 고원지대에 위치하며 기후가 좋다. 예전에는 호텐토트의 중심적 취락이었으나, 1870년 그리스도교 전도의 기지가 된 이래 1890년 도시 건설이 시작되었고, 1892년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수도가 되었다. 1897년에는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 스와코프문트와의 사이에 철도건설이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군에 점령되었고, 전후 위임통치령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언덕 위에는 독일 중세풍의 성이 있고, 아름다운 공원을 비롯하여 도서관·미술관·공회당·국영병원·공영운동장 등이 있다. 또한 카라쿨 양의 모피거래 중심지를 이루며 상공업도 발달하였다. 월비스베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칼라하리 사막 방면 등에 이르는 철도가 부설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기온이 정반대로 6~7월이 평균 21도, 11~1월이 평균 30~31도가 된다.
루터 교회 15:19
나미비아의 역사의 한면을 보자 1904년~1907년 사이에 헤레로와 나마족이 빈트후크 북쪽 오카한자에서 일으킨 식민지배 투쟁 과정에서 독일이 저지른 인종말살 정책은 유명하다. 이때 학살된 나미비아인은 7만 5천명에 이른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보다 먼저 자행한 헤레로족 인종말살로 “첫번째 인종학살”이라고 불린다.
당시 독일 점령군 사령관은 “독일 영토내에 있는 모든 헤레로족은 무기소지여부와 상관없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우물에 독을 풀어 죽였고, 사막으로 쫒겨난 헤레로족은 물을 마시지 못해 죽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과 1904년 헤레로족 학살, 1915년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학살, 1925년 쿠르드족 학살, 미국의 인디언 체로키족 학살, 호주의 태즈매니아인 학살중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헤레로족 학살이라 한다.
루터교회인 크리스투스키르헤 안에도 당시 학살에 참여 했던 독일군 희생자의 명단과 이를 기리는 기념판이 있다고 한다. 독일 정복자로서 총독을 역임했던 쿠르트 본 프란코이스 구리상도 빈트후크 건설자라는 이유로 시내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옛날 동물원이 었던 주 파크에는 ‘전쟁기념비’가 있는데 헨드릭 비트부이가 주도한 나미비아 해방봉기 때 이를 진압하다 숨진 독일 병사들을 추모하는 탑이라고 한다.
이렇듯 루터교회도 독일식민지 역사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 일게다.
교회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구경하고 옆쪽에 높다란 독립박물관으로 이동을 한다.
독립기념관 박물관 15:33 ~16:39
나미비아의 독립영웅이며 초대대통령을 지낸 샘 주마의 동상이 앞쪽에 있다. 현재 나이 93세로 살아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독립기념관 건물은 북한에서 지었으며, 북한에서는 이밖에도 영웅묘지등 건설사업을 많이 한 것 같다.
북한의 ‘만수대 해외프로젝트 회사’가 건설했으며 빈트후크 시내에는 독립기념관 건물외 영웅묘지 기념탑이 있는데 평양의 대동강변에 있는 주체사상탑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건물의 박물관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구경할게 별로 없다고 한다. 승강기를 타고 위쪽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전망대에서는 사방으로 빈투후크시내를 관람할수 있다. 시내가 번성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볼 것은 없다. 한 개의 수도이지만 우리나라 중소도시 정도의 도시라고 보면 되겠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커피를 한잔씩 시켜 먹는다. 맛은 좋았다.
빈투훅 컨트리클럽 레가시 호텔 도착 17:00
빈투후크의 시내구경이 별로 할게 없는 것 같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커다란 건물(대통령궁) 앞으로 지나서 20여분을 이동을 하여 호텔에 도착을 한다.
골프장이 건물뒤편에 위치하고 호텔건물과 골프장 사이로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고급호텔이다. 카운터에서 기다리는 사이 오릭스상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잠시후 방을 배정받아 간다. 우리 방은 계단을 한단 내려서서 우측으로 있는 방이다. 좌측으로 있는 방과 우측으로 가는 방이 있는데 서로 열쇠가 맞지를 않아 왕래가 안 된다.
일단 방을 배정받고 호텔뒤편 수영장과 정원을 산책하며 사진도 찍고 한다. 아프리카 여행중 모처럼 몇 방울의 비를 맞기도 했다.
저녁식사 19:30
저녁식사를 카운터 아래쪽 커다란 식당에서 한다. 뷔폐식으로 음식은 다양하다.
빵, 야채, 처음으로 김밥도 있다. 고기류. 올리브, 오이등 절임류, 각종 소스, 나물 볶음류, 고기찌게, 흰쌀발(날아갈듯함), 생선회 종류등 음식은 다양하다.
오늘 고기는 돼지고기 선택해서 맛있게 구워주는 것 주 메뉴로 먹었다.
음식맛도 괜찮았고 호텔의 정원이 잘 꾸며져 있었으며 뒤편으로 골프장은 아직 돌아보지 못했다. 먼길 오르나 피곤한 몸 이제 꿈나라로 바이~~~
취침 21:00
*와이파이 00시부터 ~06시 까지안됨
제10일차 11월 28일 목요일
빈투후크에서 요하네스 버그공항 거쳐 넬스푸르트 공항 까지 이동하는 날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세면하고 호텔앞 정원으로 나가 한 바퀴 돌아본다. 정원뒤쪽 골프장도 구경을 하고 어제 북적이던 와인바도 올라가 구경을 하고 작은 다리를 건너 정원으로 돌아와 호텔앞으로 나와 호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는다.
아침식사 07:00
아침식사는 간단히 한다.
베어컨, 후라이 2개, 과일, 음료수 대충 먹어 둔다.
호텔출발 09:00
호텔을 출발하여 시내 반대방향으로 사막을 따라 이동한다. 길 우측으로 기찻길도 보이고, 길옆으로 원숭이가 노는 모습도 보인다.
끝없이 펼쳐지는 구릉지대 사막을 따라 군부대를 지나고, 높다란 관제탑이 보이며 호텔 출발 50여분 만에 빈투후크 공항에 도착을 한다.
빈투훅 공항 출발 12:48
공항에 도착하니 빈약하기 그지 없다. 공항청사 좌측으로 버스주차장에서 짐을 내려서 손수레에 싣고 공항으로 이동을 하여야 하는데 여기도 턱이 있고 길이 좋지를 않아 손수레가 구르지를 않는다. 간신히 손수레를 끌로 공항으로 들어가니 공항안은 그래도 깨끗하다.
우리는 이 공항에서 짐무게 27.5kg으로 벌금을 물었다. 1인 30kg의 짐을 실을 수 있다 해도 1개의 짐무게는 국제규격이 20kg으로 +1.8을 곱해서 대략 23kg을 넘지 않아야 하는 대 이해를 잘못해서 1개의 짐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 것이다. 벌과금 대략 20달러를 물고 짐은 싣었다. 요하네스버스 공항까지 만이란다. 공항에 내려서 짐을 분리해야 겠다.
공항의 규모가 크지를 않아 게이트에서 걸어 나가 사우스 아프리카 항공을 탓다.
약 120석 규모의 중형기다.
빈투훅 공항 이륙 12:52
탑승 항공은 SA 075편으로 남아공 항공이다. 우리가 탈 게이트 E7번으로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있었던 같다.
항공기는 예정보다 약13분이 늦게 출발하여 활주로로 이동을 하여 공항 항공기 이착륙 빈도가 낮아 금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영국의 점령과 그후 독일과 남아공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지 20여년밖에 안된 나라다. 독일식민지때 대량학살로 헤레로족 7만 5000명이 죽음을 당했다. 아픈역사를 안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가 일본식민지시대를 겪었던 것처럼 오랜 식민시대를 마감하고 현재는 많은 지하자원으로 세계열강들이 눈독을 들이는 나라다. 아직도 우리가 어제 구경한 루터 교회등 독일의 잔제가 여기저기 남아 있다고 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쓸모없는 나라 물을 찾아볼 수 없는 강줄기 사람이 사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 나라 국토의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의 8배가 된다지만 인구는 대구 인구 정도에 달하는 나라다.
수도 빈투후크 역시도 우리나라 중소도시만도 못한 규모이고 수도의 공항조차도 우리나라 지방공항만도 못한 나라가 나미비아다. 하지만 발전가능성은 매우 높은 나라다. 우랴늄매장량 세계3위, 다이아몬드, 금,은이 많이 나는 나라다.
북한에서 많은 투자를 했다가 현재는 북한 대사관도 철수를 하였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 북한을 3번인가 방문했을 정도로 남한보다는 북한쪽이 더 가까운 나라다.
아직도 눈에 선한 것은 웰비스의 모래언덕과 물개섬, 펠리컨이다. 또한 세스림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의 64km에 이르는 붉은 모래사구가 눈앞에 선하다.
오늘 요하네스 버그 공항까지는 1시간 45분이 소요된다.
요하네스 버스 공항착륙 14:23
빈투후크 공항을 떠난지 약 1시간 30분후 우리는 또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왔다.
남아공의 동북단에 있는 요하네스 버그로 상업도시라고 한다.
요하네스 버스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자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상공업도시이다. 가장 가까운 항구인 모잠비크의 마푸투에서 철도로 640km, 인도양 연안의 더반항(港)에서 북동쪽으로 650km 떨어진 해발고도 1,900m의 내륙고원에 위치한다. 1886년 금광이 발견되자 황야에 갑자기 건설되었으며, 금광업의 발전과 함께 급격히 팽창하여 1911년에는 유럽인만으로도 케이프타운의 4배나 되는 인구가 되었다.
현재는 금광지대 안에 초고층 빌딩과 고속 자동차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시가의 북반부는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을 비롯하여 도서관·박물관·미술관·극장 등 많은 교육·문화 시설이 있는 주택지구이며, 남반부는 제련·기계·다이아몬드 연마·의복 등 다양한 공업지구로 되어 있다. 금광이 있는 보타산(山)이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건조한 기후가 특징인 요하네스버그는 해발 1,750m의 내륙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여름철 기온은 평균 15~30도 정도로 선선한 편에 속하며 겨울철 기온은 평균 5~15도 정도로 다소 내려간다.
주로 영어와 아프리칸스를 사용한다. 공용어는 무려 12개나 된다.
인구는 대략 200만명정도로 추산한다.
호텔이 밀집된 샌튼 지역은 치안 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요하네스 공항 도착 14:33
예정보다 조금 늦게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여 짐 찾고 부지런히 짐을 다시 2개로 나누어 한 개는 붙이고 한 개는 들고 다닌다.
요하네스 버그 공항 출발 17:15
요하네스 버그 공항에서 넬스푸르트 공항까지는 50여분이 소요된다.
16시 45분 보딩하여 항공기에 오른다. 비행기가 좌측으로는 1줄, 우측으로는 2줄짜리로 약50석 밖에 안 되는 소형기다. 뱅기에 배낭은 너무커서 못가지고 올라탄다. 뱅기에 오르기 전 직원이 받아서 짐표를 붙이고 짐칸에 얹는다.
요하네스 버그에서 넬스푸르트공항까지 가는 항공은 역시 남아공 항공으로 SA8849편이다.
요하네스 버그 공항 이륙 17시 22분
요하네스 버스공항 한쪽에 있는 뱅기를 타기 위해 걸어 나가면 격납고 앞에 세워둔 작은 뱅기가 우리를 기다린다. 큰짐은 다시 직원이 화물칸에 받아 싣고 작은 짐만 가지고 들어간다. 뱅기는 약 7분후 활주로로 이동하여 하늘로 떠오른다.
넬스푸르트 공항 착륙 18:10
남아공 요하네스 공항에서 넬스푸르트로 가는 하늘아래 풍경은 푸르른 산하다. 나미비아와는 정반대다. 군데군데 호수도 보이고 바위산과 널찍한 농장들이 줄지어 있다.
뱅기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흡사 우리나라 산하와 비슷함을 느끼기도 한다.
울창한 수림과 잘 가꾸어진 농장들 물이 가득한 호수가 보이는 곳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넬스푸르트 마을이다.
넬스푸르트 공항 도착 18시 15분
넬스 푸르트
넬스푸르트는 모잠비크 해협에 인접해 아열대 기후를 보인다.
주로 스와티어와 줄루어를 사용한다.
여행최적기는 5~1월이다. 9~11월은 넬스푸르트 거리에 불꽃처럼 새빨간 프레임 릴리가 만개하는 시기다.
넬스푸르트는 흑인 인구가 92%, 백인 인구가 6.8%를 차지한다.
넬스푸르트 공항 출발 18:24
넬스푸르트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가는 대는 탑승객수가 많치를 않고 공항도 비교적 적은 공항이라 10분도 소요되지 않는다.
가이드 박광인님이 마중 나왔다. 조금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말이 비교적 빠른 분이다.
호텔도착(Protea Hotel) 18:48
공항에서 출발하여 호텔로 가는 길도 이쁘다. 초록의 아름다운 색으로 모래사막에서 온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군데군데 커다란 과수 농장을 지나고, 호수를 지나서 대략 25분을 가면 넬스푸르트 큰 도로 우측 위쪽에 자리 잡은 아담한 호텔이다.
규모가 작은 호텔로 로비건물 2층 방과 로비 뒤편 1층과 2층 방을 배정 받았다.
짐은 룸보이가 옮기고 우리는 곧 저녁 식사에 들어간다.
저녁식사는 뷔폐식으로 노랑쌀밥, 스프, 야채, 빵, 꼬치, 고기, 쏘세지 등으로 입맛에 맞추어 가져다 먹는다.
하루종일 뱅기타느라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든다.
바이바이 음 공기 좋다. ~~
제11일차 11월 29일 금요일
기상 05:00
아침식사 16:30
아침에 일어나 호텔앞을 잠시 걸어 본다. 정문을 나와 좌측으로 가면 큰 도로가 보이고 위쪽으로 커다란 쇼핑센타가 있다. 더 이상은 갈곳이 없다. 잠시후 뒤 돌아온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 바쁘게 움직인다. 우리짐 내려다 로비에 갖다놓고 하나둘 2층방에 있는 아짐들 짐 아래까지 내려다 놓는 일 한쪽 팔로 하려니 힘들다. 모래사막에서 샌드보드를 하며 다친 손이 아무래도 오래갈듯하다. 어쨌든 2층방에 있는 캐리어 무사히 로비까지 내려놓고 아침식사를 하러 간다.
오늘 아침식사는 간단히 해결한다. 베이컨, 과일 음료수등 아주 간단히 한다.
호텔출발 07:08
오늘은 어제 공항에서 타고 온 39인승 버스로 약 3시간을 이동하여 쓰리론다벨까지 이동을 하는 날이다. 쓰리론다벨은 블라이드 리버 케년의 가장 중심쪽에 위치한 바위봉으로 경치가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다. 블라이드 리버 케년은 남아공 동북쪽에 길게 뻗어 있는 드라캔스 산맥에 위치하며 드라갠스 산맥의 길이는 1300km에 이른다고 한다,
박광인 가이드는 블라이드 리버 케년으로 이동을 하며 많은 것을 설명한다. 요하네스 버그 공항의 원이름은 OR올리버 캄버 공항이라 하며 호이족은 가축을 기르는 사람, 산족은 활을 쏘고 짐승을 잡는 사람등, 쓰리론다벨이란 3개의 원주민 집이란다. 여기에 교민은 3가구 인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는 이야기등을 한다. 주로 사진관을 많이 하며 큰 부자는 없다고 한다. 아프리카는 총 56개국으로 이디오피아가 가장 잘 살고 남아공은 3번째라나 ~~
아프리카 사람들은 맨발로 축구를 할 정도로 발 건강이 좋다고 한다. 드라갠스 버그 산맥 1300km중 가장 높은 산은 레소토라고하는 나라에 있는 3800m 정도 되는 산으로 10시간이 걸리며 아프리카에서 2번째 봉이라 한다. 아프리칸스는 네덜란드 말 90%+사투리로 백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언어중 하나라 한다. 부시맨은 가족단위 생활을 하며 남아공은 9개 부족으로 일부다처체(전쟁의 영향)를 허용한다고 한다. 줄루족왕이 왕중의 왕이며 그밖에 샤카왕등이 있다고 함, 성인식은 16세에 행해지며 옥수수로 만든 백설기 형태의 “뺩”이라는 음식이 주식이며 길옆으로 보이는 재배과수원은 대부분 넛나무라고 한다. 침엽수(소나무의 일종) 조림지가 주변으로 다수 있으며 돌려가며 나무를 벌목하고 불을 놓아 태운 후 다시 조림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주변으로 고사리가 많다.
속성수로 키우는 나무중 유카리팁스 비슷한 나무가 있는데 인그람(피부보습제)은 이나무 액체를 추출하여 만든다고 한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진출하며 노예상들이 많은 원주민들을 잡아 갔으며 그 동안 오랫동안 아파르트 헤이드(인종분리정책)정책으로 차별을 받았으나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하며 인종분리정책을 폐지하며 많이 좋아 졌다는 애기를 한다.
아직도 원주민들은 경영능력이 없어서 인지 개인사업은 하지 못하며 백인들 아래 시키는 일에 열중한다고 한다.
도중 큰마을 마트 08:06 ~08:38
커다란 구릉지대 산맥을 따라 1시간 후 도착한 큰 마을에 들려 과일, 물, 인그람등을 산다.
원주민 행상들이 권하는 열매도 좀 사서 나누어 먹는다.
남아공은 남한의 12배에 이르며 인구는 5700만명이라고 소개를 한다. 탄광지역이 많으며 석탄, 우라늄 광산이 많다. 이웃나라인 보츠와나는 인구 200만으로 다이아몬드 최대 보유국이란 애기도 한다.
빅 맥폴 08:51 ~09:18
마트에서 15분을 못가서 도로 우측 아래로 있는 폭포에 들른다. 예정에는 없던 폭포다. “신의 창”이라고 하는 곳은 우측으로 들어가서 경치를 보는 것인데 시간을 들여 보기에는 조금 적절치 않다고 하여 대신 빅 맥폴이라고 하는 폭포를 관람하기로 한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를 지나서 약 10여분이면 폭포 앞에 닿는다. 높이 3~40m정도 되는 일자로 물줄기기 쏟아 내리는 폭포다. 쇠 철망을 쳐놓아서 틈 사이로 관람을 하여야 한다. 사진찍기는 썩 좋지를 않다.
그라스 콕 마을 09:36 ~09:57
널찍한 푸른 초원을 달린다. 드라갠스 산맥의 허리를 따라 가는 아름다운 길로 커다란 농장들, 조림지등이 눈에 띈다. 빅 맥폴 폭포에서 30여분을 달려 커다란 마을에 닿는다. 거리에 작은 상점들이 즐비하게 있고 작은 상점들이 늘어선 마을이다. 점심식사도 이 부근에서 할 예정이라고 한다.
잠시 이 마을에서 약국을 찾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이ㅇㅇ님 속이 좋지를 않아 약을 사야한다고 한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나미비아에서 다친 손에 바를 안티푸라민 비슷한 작은 통에 든 연고를 얻었다.
블라이드 캐년 쓰리 론다 벨 도착 10:33 ~11:20
블라이드 리버 캔년
멋진 화강암 산등성을 양쪽에 끼고 24킬로미터를 흐르는 블라이드리버캐니언은 대단층애의 북동부를 가로지르며 스완디니의 블라이드푸트 댐으로 흐른다. 먼 옛날 블라이드 강이 암석을 뚫어 800미터 깊이의 협곡을 만들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손꼽히는 협곡이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 블라이드 강의 양쪽은 울창한 온대우림과 늘 푸른 핀보스로 덮여 있다.
한쪽으로 쓰리론다벨스(혹은 쓰리시스터즈)가 거대한 우주 로켓처럼 우뚝 서 있다. 이것의 정체는 백운석으로 된 거대한 나선 형태의 기둥이다. 이 기둥의 꼭대기는 얼음으로 덮여 있는데 이곳에도 녹색 식물이 자라고 있다. 측면으로는 오렌지색의 이끼가 끼어 있다. 론다벨이라는 이름은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둥근 초가집과 비슷해서 붙여졌다. 그 외에도 숲이 울창한 깊은 계곡에는 규암 기둥이 외로이 솟아 있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나미비아의 피쉬리버 캐니언에 이은 세계 3번째로 큰 협곡이다.
그라스 콕 마을에서 지나는 경치가 좋다. 널찍한 푸른 초원에서 여유있게 풀을 뜯는 많은 방목소들, 가끔 보이는 양떼들, 원주민 마을들 여유롭고 한가로운 풍경이 좋다. 각박한 도시생활속에 찍든 사람들에게 푸근함을 주는 곳이다. 점점 블라이드 캐년의 모습이 모이며 수직의 암벽이 보이며 그라스 콕 마을에서 35분후 블라이드 캐년의 가장 아름다운 곳중 하나인 쓰리 론다벨 앞에 도착을 한다. 초가집 형태의 원주민 가옥을 한 바위가 셋이 나란히 있는 곳이다. 그 사이는 깊숙한 골짜기로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푸르른 초원이 있는 것이 미국의 그랜드캐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규모도 비교가 잘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전체를 다 돌아보지 못해서 일게다. 매표소를 지나면 캐년 옆으로 가기 전 길게 늘어선 작은 기념품가게들이 있고 잠시 들어가면 캐년옆 벼랑에 닿는다. 벼랑옆 바위에 올라 쓰리 론 다벨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다시 좌측으로 이동을 하면 커다란 호수가 내려다보이며 역시 쓰리 론 다벨이 마주한다. 평평한 바위에 올라 기념사진 찍고 하는 사이 40여분의 시간이 훌쩍 지난다.
버스키 럭 포트 홀 11:33 ~12:21
쓰리 론 다벨에서 오던 길을 따라 10여분을 오다가 좌측으로 들어가면 멋지게 생긴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버스키 럭 포트 홀이라는 곳이다. 이곳도 매표소를 통과하여 들어가면 강옆 절벽까지 5분여 걸어 내려간다. 잠시 내려서면 강줄기가 양쪽에서 합치는 곳에 닿는다. 작은 다리를 건너고 졸졸졸 흐르는 물길옆 바위에 올라서서 기념사진도 찍고 위쪽에 보이는 폭포 쪽으로 가보지만 길이 도중에서 끊긴다. 다시 내려와 일행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다시 반대편 작은 다리를 건너고 다시 위로 올라서서 기묘한 골짜기의 바위 모양을 감상하고는 다시 매표소 쪽으로 올라가면 시간은 거의 50여분이 걸린다.
경치가 좋은 곳이다. 기쁨의 강과 슬픔의 강이 만나는 지점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베를린 폭포 12:45 ~12:58
버스키 럭 포트 홀에서 오던 방향으로 이동하여 20여분을 좀 더 가면 나오는 폭포다. 이 모두가 블라이드 캐년안에 있는 것들이다. 규모는 오면서 보던 빅 맥폴 폭포보다 조금 더 높다랗게 보인다. 한줄기 물이 쏟아지는 폭포로 안쪽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폭포 앞쪽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나오는 대 10여분이 조금 더 걸린다. 여기도 기념품가게는 있다.
중식(그라콕 마을, 파노라마 레스토랑) 13:23 ~14:38
피나클바위는 점심식사를 한 후 가기로 한다. 베를린 폭포에서 25분 정도를 이동하니 오면서 약국에 들렀던 그라콕 마을이다.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잠시 들어가 좁다란 문을 통과 하여 들어가면 경치가 매우 좋은 파노라마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식당에 닿는다. 식당앞 수영장이 일품인 곳으로 수영장 끝에서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벼랑이다.
레스토랑 앞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장관이다. 블라이드 캐년의 두 골짜기가 합해지는 앞쪽에 만들어진 식당으로 수영장에서 보는 바위벼랑이 멋지다.
여기서 사진찍고 점심식사로 스테이크 시켯는대 이제는 바짝(웰던)이 아닌 중간인 미듐으로 시킨다. 바짝 보다 훨 연하고 먹기 좋다. 스테이크 맛도 분위기가 좋아서 인지 매우 좋았던 것 같다. 분위기 좋고 맛좋은 소고기 스테이크가 있으니 여기서도 와인 맥주 콜라는 빠지지 않고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 크림 배불러서 못 먹었다. 에고 아깝다. ~~
피나클 바위 14:47 ~15:03
하마, 코끼리, 기린이 달리기 시합을 하면 어떤 동물이 일등을 할까?
모두 틀렸다. 하마가 일등을 한다고 한다. 하마는 시속 50km, 기린하고 코끼리는 시속 40km로 달린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우쨋든 재미난 애기다. 더반은 오래전 홍수환선수가 권투로 이겨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름인데 요하네스버그 동쪽에 있는 항구다. 고등어가 많이 나며, 케리프 타운은 참치가 유명하다고 한다. 참치회좀 먹고 오는 건대 늦었다.
72세에 대통령이 된 만델라 대통령은 코사족으로 같은 당의 어느 분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애기와 4번인가 결혼을 했다는 애기등을 했다. 만델라 대통령 남아공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힘을 썻지만 크게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한 것 같다. 요하네스 버스에서 케이프 타운까지는 장장 1600km에 이르며 남아공은 광물외에도 수산업 농축산업이 발전하여 남부아프리카 전 지역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식사를 하고 피나클 바위까지는 10여분이면 닿는다. 계곡안에 우뚝 선 바위 하나다.
중국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실망감이 클 것이다.
이런바위들은 널려 있는 곳이 중국이다.
휴게소 17:00 ~17:20
피나클 바위를 끝으로 요하네스 버그 블라이드 리버 캐년의 일정을 마치고 이제 요하네스 버스로 이동을 하게 된다. 요하네스 버스에서 내일 보츠와나로 가는 뱅기를 타기 위함이다.
피나클 바위에서 출발하여 한동안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지대를 지나 이제는 큰 산맥을 하나 넘어간다. 큰 산맥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올라서서 산맥 고개를 넘어간다. 현재시간 15시 50분, 이후 서서히 내려서는 길 한동안 내려서면 시골 화장실 만도 못한 가옥들이 즐비한 지점을 지나서 좀 더 가면 고속도로(16:25)로 올라서는 것 같다. 이후 달리면 산 아래로 포도밭, 채소밭이 보이고 모처럼 기차가 지나는 것이 보인다. 이후 달리면 하우스안에는 무엇을 심었는지 하우스 단지들이 많이 보이고, 호두나무 가로수가 있는 지점을 지나 잠시후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작은 휴게소에 도착을 한다. 잠시 멈춰서서 휴게소 화장실을 이용한다. 앞뒤로 조금 높다란 산들이 있는 지점이다. 주변으로 붉은 꽃, 자주색꽃이 핀 우리나라 자귀나무 잎과 비슷한 나무가 많이 보인다.
ALZU 휴게소 18:40 ~18:55
이후 다시 달리면 가이드는 줄루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줄루족 왕 샤카와 그 아들 챠카에 대한 이야기다. 줄루족 왕인 샤카가 동족을 모아 백인들과 전투를 벌여 대부분 전멸을 시킬정도로 대승을 이루었으나, 몇백명 남은 백인들이 정확히 지도자가 생각나지는 않치만 지도자를 필두로 수만명의 줄루족과 대항을 하여 전투에서 승리를 하였다는 이야기다. 흑인중에서 줄루족을 가장 무서워 한다고 한다.
휴게소에서 35분 정도가 지나면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보이는 지점을 지난다. 이후 양쪽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목초지는 끝없이 이어진다. 목초지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 수많은 양떼들이 보이며 가끔은 채소를 심은 밭도 보인다. 커다란 저수지도 지나고 끝없이 펼쳐지는 목초지의 평야지대를 따라 달리면 톨게이트를 나와 대략 45분후 높다란 탑이 있는 건물의 휴게소에 닿는다. 탑앞쪽으로 ALZU글자가 선명하다.
이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휴게소 앞쪽으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노라면 동그란 작은 연못뒤로 임팔라등 동물의 무리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그 보기 어렵다는 코뿔소도 있다.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워 카메라로 당겨보니 분명 코뿔소다. 깜장소인지 물소인지로 보이는 놈도 있다. 우리는 휴게소앞 사각 테두리에 올라 지는 해를 배경으로 각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도 찍었다. 또한 코끼리 모형도 있고, 코뿔소 모형도 있어 코뿔소 코를 배경으로 별포즈를 다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난 안찍었지만 ~~
홀리데이 인 샌톤 호텔 도착 21:10
이제 휴게소의 휴식도 끝이다. 뉘엿뉘엿 서산으로 해가 지며 어둠이 찾아온다. 이후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목장지대, 농토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얼마를 진행하며 한두사람씩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창밖을 내다봐야 이제 더 이상 어둠으로 볼 수가 없다. 이렇게 하여 두어시간이 흐르자 버스는 요하네스 버스시내로 접어든다. 거리의 화려한 불빛이 보이고 고가도로를 따라 가면 좌측으로 둥그런 건물의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곳이 샌톤지역이라고 한다. 이윽고 샌톤 지역에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 앞에 버스가 도착을 한다.
경비가 삼엄하다. 짐은 몰론 사람도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밤이 늦었는지 검색대를 생략하고 호텔 로비로 들어간다.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널찍한 로비에서 각자 방을 배정받는다. 2~5층까지 다양하게 방이 배정되었다.
오늘 하루밤 묵을 곳이다. 즉 남아공케이프 타운에서 나미비아투어를 마치고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와 블라이드 리버 케년을 구경하기 위해 요하네스 버그 까지 온 것이다.
저녁식사 21:20
호텔에 도착하여 미리 가이드가 조치를 취하여 방을 금시 배정받고 짐은 룸보이가 옮기기로 하고 우리는 식당으로 향하여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여기도 주 메뉴는 소고기 스테이크다. 감자튀김이 한소쿠리 나오고, 다른 접시에는 미리 야채등 간단한 식재료를 담아다 놓았다가 함께 시식을 한다.
더러는 흰쌀밥에 생선튀김으로 시키신 분들도 있다.
우쨋든 이날은 시간이 너무 늦어 와인과 맥주를 생략한 듯~~
취침 23:00
제12일차 11월 30일 토요일
요하네스 버그에서 보츠와나로 이동하는 날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동네한바퀴를 한다. 호텔 좌측으로 돌아가니 둥그런 건물이 우리 호텔보다 훨 크다. 그 옆으로 엄청 큰 건물이 사거리 모퉁이에 있고 다시 좌측으로 돌아가니 커다란 호텔들이 보이고 그 옆으로 유명한 커피점인 스타벅스도 보인다. 더 올라서면 도로 건너편으로 커다란 호텔이 있고, 좀 더 위로 올라가니 어제 보이던 둥그런 건물이 나온다. 이제 더 이상 가지는 않고 다시 돌아온다.
식사 07:00
호텔로 돌아오니 식사시간과 맞는다. 어제 먹던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으로 음식들을 고른다. 된장콩 같은 것, 감자, 노랑 쌀밥, 모르는 볶음요리등, 찐계란도 있고, 역시 오믈라이스가 인기 있다. 올 하면 다 넣어서 해준다. 각종쥬스, 과일들, 요구르트류, 설탕절임 과일들, 먹거리가 풍부하다. 우쨋든 아침식사 잔뜩 배불리 하고 이제 또다시 오지의 나라 보츠와나로 가기 위해 준비를 마친다.
호텔출발 08:54
오늘 호텔 출발시간은 조금 늦은 편이라 느긋하다.
호텔을 나와 요하네스 버그 공항까지 이동하는데는 30분이 소요된다.
요하네스 버그 공항 도착 09:30
어제 샌톤으로 달리던 도로를 따라 다시 나온다. 어제 보이지 않던 빈민가들이 보이고, 지나온 샌톤지역으로 우리가 머문 호텔도 보인다. 가장 높다란 건물의 좌측으로 있는 건물이 우리가 머문 호텔이다.
요하네스 버그 공항 출발 12:11
우리가 타고 갈 항공편은 보츠와나 항공인 BP 212편이다. A69~70창구에서 일단 짐부터 부친다. 요기서 규현이 행님들 짐 무게초과로 돈 좀 더 냈을 기유~~
출국수속이 끝나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A30번 게이트로 이동을 한다. 이제 기다리는 시간이다. 지하에 있는 화장실도 다녀오고 긴 시간이 흐른 후 11시 59분 드디어 보딩을 실시한다. 요기도 걸어 나가서 뱅기 뒤편 문으로 탑승을 한다. 우리가 타고 갈 마운행 뱅기는 소형비행기로 양쪽으로 2열씩 19줄로 72석 짜리 소형뱅기다. 승객들이 탑승을 마치고 뱅기는 12시 20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요하네스 버그 공항 이륙 12:20
요하네스 버그 공항을 이륙하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내의 모습이 매우 크다. 도시 주변으로 펼쳐지는 마을들이 구역구역 나뉘어 질서 정연하게 도시가 계획되어 있다.
보츠와나 마운 공항 착륙 14:17
보츠와나
개관
정식 명칭은 보츠와나공화국(Republic of Botswana)으로, 영연방의 하나이다. 면적은 58만 1730㎢, 인구는 218만 2719명(2015년 현재), 수도는 가버론(Gaborone)이다.
주민은 츠와니족 95%, 부시맨족 4%, 유럽인 1%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가 공용어이며, 츠와니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토착종교와 기독교가 각각 50%를 차지한다.
북부지역은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며, 기타 지역은 온대 및 아열대기후를 보인다. 주민들은 각 부족별로 지정된 지역에서 목축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유럽인 농원의 노동자로 고용되고 있다. 매장량이 세계 3위인 다이아몬드와 적니켈 등 풍부한 광물자원의 개발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억 5800만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7,123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내각책임제를 가미한 대통령(임기 5년) 중심제의 공화제로, 의회의 다수당 대표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5년의 상원(15석)과 하원(63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민주당(BDP), 민족전선(BNF), 인민당(BPP), 연합행동당(UAP) 등이다,
약사
1885년 영국보호령이 되었다가, 1966년 9월 30일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여 헌법을 제정하였다. 1994년 10월의 총선에서 집권당인 보츠와나민주당이 의회의 과반수의석을 획득하고, 마이레 대통령이 4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66년 유엔에, 1970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8년 4월 18일 보츠와나와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8년 현재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보츠와나는 외교관계 수립 후 우리나라의 입장을 전폭 지지했으나, 1974년부터 1978년까지 한때 친북성향을 보인 바 있고, 현재는 중립을 지키려 하고 있다.
양국은 1970년 7월 의료기술협력 협정, 1986년 5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는 실질관계 증진을 위해 자동차·트럭 등 무상원조를 제공하는 한편, 연수생의 방한 초청과 의사 파견 등을 실시해 왔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보츠와나 수출액은 1124만 달러로 주종목은 인조섬유·승용차 등이며, 수입액은 2559만 달러로 주 종목은 공업용 다이아몬드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1명의 보츠니아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대우건설과 현대자동차가 진출해 있고, 144명의 한국민 교민과 의사 1명을 포함한 5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74년 12월 27일 수교하였으며, 주 탄자니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해왔다. 2014년 2월 보츠와나가 북한에 대해 단교 선언을 함으로써 보츠와나-북한의 외교관계가 단절되었다.
보츠와나는 요하네스 버그에서 가이드를 한 박광인님이 같이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 가이드를 한다.
요하네스 버그의 시내를 벗어나며 둥글게 보이는 농장들이 많이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이쁘다. 남미 갈 때는 이색적인 광경이라 저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었지만 경험이 있어 곧 농장임을 알아챈다. 물을 주는 기구가 둥글게 돌기 때문에 생기는 형태다. 긴 강유역으로 이어지는 농토가 꽤나 많다. 이윽고 기내식이 나온다. 빵과 커피, 과자가 전부다. 이제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것은 또다시 황량한 사막지대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탄한 사막지대는 앙상한 나무들만 보인다. 그 가운데로 곧게 벋은 길도 보이고 ~~
말라버린 강줄기가 보이다가 조금 푸른 빛깔이 나오더니 물웅덩이가 보이는 강이 나오며 항공기는 서서히 내려서기 시작한다. 요하네스 버그에서 2시간 10분 가량 걸린 것 같다.
마운공항 도착 13:30
보츠와나 마운공항도 시골 뱅기장으로 규모가 상당히 작다. 뱅기장 우측으로 소형항공기가 많이 보인다. 저 뱅기를 타고 오카방코 델타의 하늘을 날것이다.
보츠와나는 무비자 입국으로 여권만 소지하면 되는 곳이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는데 여기도 수작업인지 시간이 좀 걸린다.
공항출발 15:01
마운공항 앞으로 작은 선물가게가 보이고 커피점도 있다. 공항 옆으로 붉게 핀 꽃나무가 있으며 공사중인지 포장을 친 모습이 아직은 어수선하다.
공항앞 비좁은 도로에서 호텔 차에 우리 짐을 싣고 두 대로 나누어 타고 호텔로 향한다.
호텔도착(CRESTA Riley's) 15:07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6분 거리다. 길거리를 거니는 누렁소들이 있고, 잠시 후 도착한 호텔은 문지기가 문을 굳게 지키고 있다가 열어준다.
호텔에 도착하자 물수건을 돌리고 시원한 쥬스를 한잔씩 돌린다.
이후 짐을 방에 갔다 놓으려 각자 짐에 번호를 적으려니 도저히 적은 쪽지의 이름을 알수가 없다. 여기 일하시는 분들 우리처럼 영어를 잘 모른다고 한다. 우쨋든 글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래서 짐은 그대로 로비에 두기로 하고 경비행기를 타러 간다.
호텔출발 15:40
보츠와나 마운에 있는 최고급호텔이다. 경비가 삼엄하다. 호텔은 로비의 지붕이 쓰리론다 벨과 같은 형태로 우리나라 초가집 형태다. 한쪽으로 길쭉하게 지어진 형태로 방은 룸보이가 알려주지 않으면 첨에는 찾아가기 어려운 구조다.
우쨋든 일단 오카방코 델타의 하늘을 날기 위해 조금 전 내린 뱅기장으로 향한다.
마운 공항 도착 15:45
호텔에서 뱅기장은 5분거리로 금시 도착을 한다.
경비행기 탑승 16:18
공항에 도착하여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가 작은 버스를 타고 경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
몇 대의 작은 경비행기로 나누어 탄다. 우리는 마나님과 박여사 나 셋이서 탓다.
오카방코 델타
남아프리카 남부 중앙 내륙에 위치한 보츠와나의 응가밀란드에 있는 삼각주의 습지대를 가리킨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내륙 삼각주를 이루어 생태계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곳으로, 1996년 국제습지조약(람사르협약)에 따른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2014년 6월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재된 자연유산의 지정 면적은 202만 3590ha, 주변의 완충지역(Buffer zone) 면적은 228만 6630ha이다. 지정 면적에는 충적침전물로 형성된 약 60만ha의 영구 습지와 계절 따라 물에 잠기는 70만~120만ha의 초원 지대가 포함된다. 이 지역은 아프리카지구대의 일부이며, 원래 지질시대에 칼라하리사막에 존재하였다가 홀로세에 말라버린 것으로 알려진 막가딕가디호(Lake Makgadikgadi)의 일부였다. 오카방고 델타는 앙골라고원에서 발원하여 나미비아를 거쳐 보츠와나로 흘러드는 오카방고강 하류에 형성되었다. 오카방고강은 원래 칼라하리사막을 관통하여 남아프리카 중북부를 거쳐 인도양으로 흘러드는 강이었으나, 200만 년 전에 아프리카 중북부를 뒤흔든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역단층(逆斷層)이 생긴 탓에 강물이 막혀 더 이상 바다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북쪽의 단층이 강의 흐름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부채꼴 모양의 땅이 형성되었고, 남쪽의 단층은 삼각주의 가장자리를 단단히 지탱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처음에는 거대한 호수를 이루었다가 호수가 증발하여 현재의 내륙 습지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1600㎞를 흘러 이곳에 도달한 강물은 수많은 수로를 통하여 일부는 사막으로 스며들어 얕은 늪이나 웅덩이들을 만들고 대부분은 증발하여 사라진다. 습지대 남쪽은 사막과 듬성듬성 삼림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북쪽에는 모래 평원과 건조 초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북동부에 모레미 야생보호구역(Moremi Game Reserve)이 있다.
이 지역의 특징은 건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카방고강의 상류인 앙골라고원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삼각주까지 도달하는 데는 대략 5개월이 걸리는데, 우기인 1월에 상류에 내린 비가 건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6~7월에 삼각주에 도달하여 서서히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이러한 자연 조건은 건조한 칼라하리사막에서 광대한 오아시스 역할을 하여 아름다운 풍광을 빚어낼 뿐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처가 되었다. 이 지역에는 치타·흰코뿔소·검은코뿔소·들개·사자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몸집이 큰 동물을 비롯하여 포유류 130종, 남부아프르카코뿔새·볼망태두루미를 비롯한 조류 482종, 타이거피시·틸라피아를 비롯한 어류 89종, 파충류 64종, 그리고 식물 1061종 등이 서식하여 생태학적·생물학적 주요 진행 과정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경비행기를 타고 돌아본 오카방고는 그야말로 매우 넓직한 지역인대 물이 너무 없다. 말라버린 모래사막에 간간이 버티는 나무들이 애처롭게 보인다. 얼마를 날아갔는지 물이 보이는 강줄기가 나온다. 하늘에서 보는 모습이라 짐승들은 커다란 코끼리, 기린, 물속에서 놀고 있는 하마, 많은 무리로 보아 가젤등은 구분이 된다. 다른 동물들은 구분하기 어려우며 하늘에서 본 오카방고는 좀 더 일찍와서 물이 많을 때 보면 장관이겠다.
대략 50여분의 비행후 땅으로 내려않는다.
경비행기 도착 17:10
비행기가 내려 안고 잠시 후 작은 봉고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을 한다.
공항 출발 17:40
공항에 도착하여 한참을 기다려서야 마지막 팀이 도착을 한다. 밖으로 나오는 제천 선생님 낮빛이 안 좋다. 우쩐일인가 ~~
우쨋든 여기서 ㅇㅇ님 여권 때문에 클랐뻔 했다. 중국 같았으면 못 찾는건대 이분들한테는 별로 필요치 않은 대한민국 여권이다.
크레타 호텔 도착 17:44
호텔에 도착하니 요하네스 버그에서 함께온 가이드님이 짐정리를 말끔하게 하여 룸보이를 따라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호텔은 깨끗하니 괜찮다. 와이파이도 되고 ~`
저녁식사 18:30
호텔로 돌아와 잠시 슈퍼를 다녀온다. 슈퍼앞에도 소들이 걸어다니고, 매연이 심한 오래된 차들이 작은 공간의 주차장에 붐빈다.
슈퍼에서 과일, 물을 사고, 맥주는 호텔에서 같이 온 직원이 다른 곳에서 사온다.
술은 일반 슈퍼에서는 팔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슈퍼를 다녀와서 각자 나눈 봉다리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저녁 주메뉴로 소고기다. 돼지고기도 있었던 것 같고, 흰쌀밥은 날아갈듯하지만 고추장으로 비벼서 먹고, 금시 사온 맥주도 맛보고 맛있는 커피도 맛보고 각자 방으로 향한다.
제13일 차 12월 1일 일요일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호텔 안 정원을 한 바퀴 돌며 새들 찍는다고 시간을 보내고~~
아침식사 06:40
아침은 역시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어제 저녁식사를 하던 식당에서 한다.
베이컨, 감자, 소세지, 계란 후라이 2개, 과일등으로 한사라 가득 담는다.
호텔출발 08:24
물속에서 하마가 코를 킁킁거려 물 위로 물방울이 올라올 때도 있긴 하다―보츠와나 오카방고 삼각주의 뒤얽혀 있는 석호와 호수를 모코로(mokoro, 통나무를 파내 만든 카누)가 이리저리 돌아 빠져나간다. 가장 가까운 마을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전화도 없는 곳. 관광객들은 자연 속으로 내밀린다.
황량하고 바싹 말라붙은 칼라하리 사막 한가운데 15,000평방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삼각주는 계절에 따라 물의 높낮이와 함께 그 모습도 바뀌며,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아름다움을 지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황야다. 겨울에는 앙골라 고원에서 흘러온 빗물로 오카방고 강이 불어나 3월에는 삼각주를 범람한다. 대부분의 물은 사막의 모래 속으로 스며들거나 타 들어가는 열기에 증발해 버리지만 나머지는 평야와 늪으로 흘러 들어가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고, 야생동물의 안식처인 초목이 무성한 녹색 땅을 만들어 준다. 이때가 7월에서 9월 사이로 오카방고를 찾기에 가장 알맞다.
삼각주의 마른 땅은 야생동물이 우글거려 무리 지은 코끼리, 얼룩말, 임팔라, 버팔로, 기린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야생동물로 넘쳐나는 오카방고는 사자, 치타, 하이에나, 표범 같은 포식자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참으로 생소하고 잊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한 줄로 곧게 서 있는 야자나무들은 오래 전 코끼리가 싼 똥에 묻혀 있던 대추야자 씨앗이 맺은 결실이다. 야생 세이지의 향기와 평온함이 묻어나오는 이곳을 칼라하리 사막의 보석으로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일정은 오카방고 안에 있는 호수에서 모로코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걸어서 동물을 찾는 워킹 사파리를 하는 날이다.
가이드는 보츠와나가 물가가 비싼나라라고 한다. 인구는 대략 250만으로 나미비아와 비슷하다. 어제 우리가 요하네스 버스에서 올 때 내려다본 사막이 칼라하리 사막이라나 뭐 그렇다. 남아공,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웨 가운데 낀 내륙 국가다,
오카방코 델타는 제천 성생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앙골라 고원에서 발원한 물이 나미비아를 거쳐 보츠와나로 흘러와 오카방코 하류에서 지형에 막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형성된 삼각주라고 한다.
칼라하라 사막을 관통하여 남아프리카 중부를 거쳐 인도양으로 흐르는 강줄기가 200만년전에 지각변동으로 역단층이 생겨 강물이 막혀 바다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부채꼴로 여러갈래로 나뉘어져 삼각주를 형성한 것이 처음에는 거대한 호수였다가 차츰 물이 증발하고 일부는 사막으로 흘러 들어 늪과 습지를 만든 독특한 지형이 여기 오카방고 델라라고 한다.
설명 감사혀유 선생님~~
모코로 선착장 도착 10:15
3대의 짚차에 대략 7명씩 나누어 타고 호텔을 나서 10여분 아스팔트길을 따라 달리다가 좌측으로 비포장 도로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호텔직원이 가져온 도시락을 받아 들고 비포장길을 따라 아프리카 마사지를 받으며 달려간다. 간혹 보이는 커다란 개미집이 눈길을 끊다. 어느 정도 들어가니 엄청난 규모의 개미집이 나온다. 우리팀 제천선생님 내외, 손병일님 내와 우리 내외, 고여사 총 7명은 가면서 스탑을 외치며 개미집 앞에 선다. 내 키로 3배 높이의 개미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각자 찍고는 GO를 외친다.
한동안 들어가면 다시 잘생긴 개미집 앞에서 다시 STOP을 외치어 멈춰선 후 개미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단체사진 까지 찍은 후 다시 GO를 외쳐 덜커덩 덜커덩 달리면 철조망 옆으로 죽은 코끼리의 시체도 보이고, 우측으로는 여러마리의 소들이 풀을 뜯는 광경이 보이고 잠시 후 도로에 누운 소의 시체 도로 옆으로 누워 있는 여러마리의 소의 시체들을 지나 앞서가던 선도차가 서서 쓰러진 나무를 제거하는 것이 보인다. 나무를 제거하고 다시 달리면 원주민 마을을 두 번 지난다. 쓰리론다 벨의 주인공인 원주민 집들이 보이고 더러는 텐트도 보인다. 함석으로 만든 허름한 집들도 보이고, 뜨거운 날씨에 별로 할 것이 없는 주민들은 대부분 나무그늘에서 쉬거나 풀을 뜯는 소들을 돌보는 목동일이 전부인듯하다. 이곳을 지나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모코로 선착장에 도착한다.
모코로 오카방고 습지 투어 시작 10:37
모코로 선착장에 도착하여 대장인듯한 젋은 원주민 친구한테 주의 사항을 듣고 2인 1조가 되어 모코로에 승선을 한다. 모코로는 나무를 파서 만든배로 배폭이 좁아 움직이면 배가 기우둥 거려 앞만 보고 앉아서 가야 한다. 우리가 타는 모코로는 조금 신식이라 화이바로 만든 모코로다. 여기도 문명이 들어 온 것이다.
모코로는 대부분 원주민 여성들이 서서 장대(삿대)로 방향을 잡아가며 전진을 하는 방식이다. 남성 원주민 2분도 있었던 것 같다. 대략 1시간 정도 들어갔다가 워킹 사파리하고 나오는 방식이다. 사진은 배가 전복될까봐 무서워 앞뒤로는 찍지 못하고 상대방 배를 찍어 주는 방식으로 진행을 한다.
선착장을 출발하며 널찍한 습지 호수를 빠져나와 좁다란 수로를 따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마들이 낸 길이라고 한다. 이분들 호수의 물을 간간이 손으로 떠 마시며 간다. 물이 황토색으로 깨끗해 보이지 않지만 별탈은 나지 않는 것 같다. 중금속이 오염이 되지 않았으니 생각보다는 깨끗한 물일게다. 갈대숲 사이 비좁은 수로를 따라 진행할 때 가이드는 모기약, 모자, 색안경, 토시등을 꼭 착용하라고 했는데 모기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모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햇살이 따가워 모자는 써야 할 것 같다. 우리여사님들 어디서고 펼쳐들고 다니는 양산 여기서 잘 써먹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 모코로는 우측 습지 언덕에 댄다
모두 내려서서 습지 언덕을 넘어가니 하마의 사체가 보이고 앞쪽 습지 호수에 보이는 것이 하마떼다. 요놈들 덩치가 상당히 크다. 시속 50KM로 달린다는 하마 낮에는 물속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하마가 귀를 흔드는 모습이 매우 귀엽다. 속도로 빠르고 덩치에 비해 작은 귀를 탈탈탈 터는 모습이 앙증맞다. 원주민 사공들은 우리 주위에 서서 물가 가까이는 가지 못하도록 제지를 하며 안전을 도모한다. 한분이 ‘크로크 다일’ 하며 손짓을 한다. 하마가 있던 우측으로 한 마리 악어가 노니는 모습을 포착했으나 사진으로 정확히 담지는 못했다.
이렇게 하여 하마무리를 구경하고 다시 좁다란 수로를 따라 위로 오른다. 물살이 상당히 세서 여인네들이 삿대를 저으며 오르는데 힘겨워 한다.
점심식사 12:10 ~12:40
이제 뜨거운 날씨에 손수건을 뒤집어쓰고 간다. 호수에는 수련이 간간히 보이고 커다란 새가 물가에 종종 앉아 있다.
이렇게 하여 한참을 오르다가 좌측 물가에 모코로를 댔는데 선두에 지형을 살피던 원주민 대장 청년이 다시 모코로를 타라고 한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한것인 대 커다란 코끼리가 어슬렁 대는 것이다. 야생의 코끼리다.
다시 모코로를 타고 거샌 물살을 거슬러 올라 다음 정박지에서 좌측으로 시원한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다.
근대 우리는 도시락을 각자 받아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분들 한옆으로 기념품 풀어서 보자기에 펼쳐 놓으며 우리가 먹는 음식만 쳐다본다. 점심식사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사람들 인정 많기로는 세계 최고이니 각자 자기 뱃사공에게 음식 먹지않고 나누어 준다. 헌디 이 분들 먹던 것 건네준 것은 먹지만 손안댄 것은 보자기에 싸서 집으로 가져가려는 눈치다. 집에 있는 가족들 먹이려는 것이다.
백인들이 운영하는 모코로에서 한달에 몇 번 있는 일을 하며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다.
워킹 사파리 투어 12:50 ~13:50
식사가 끝나고 날씨가 뜨거워 이곳에서 쉬 실분들은 제외하고 8분인가 나섰다.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다 젊은 원주민 대장이 손짓으로 더 이상오지 말라고 제지를 한다. 숲속 안으로 버팔로가 있다고 한다. 나무 숲속으로 정확히는 보이지 않지만 검은 물체들이 보인다. 잠시후 좌측 모래사장으로 이동을 하니 코끼리 무리가 지나가고, 잠시 더 진입하여 나무위에서 주변을 살피던 대장 앞쪽에 기린이 있다고 손짓을 한다.
조금 더 접근하여 여유 있게 나뭇잎을 뜯고 있는 기린을 본다. 덩치가 동물원에서 보는 기린과는 훨씬 더 큰 놈들이다. 정말 신사다운 놈들이다. 움직임이 거의 없어보이며 간혹 고개를 돌리고 나뭇잎을 뜯고 잠시후 좌측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기린 앞에 또 한 마리 기린이 보인다. 그 기린아래 앉아 있는 기린 새끼인줄 알았는데 일어서는 것 보니 새끼기린아니다. 몇 마리의 기린까지 보며 워킹 사파리 뜨거운 날씨지만 야생의 코끼리, 기린, 버팔로는 정확히 보지 못했지만 잘하고 돌아 왔다.
식사장소 출발 14:00
워킹 사파리 까지 마치고 이제 짐을 챙겨 모코로에 승선을 한다.
모코로 선착장 도착 14:40
모코로를 타고 이제 왔던 수로를 따라 원위치를 한다. 물이 흐르는 방향이라 속도가 빠르게 간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이 붙은 듯 선두를 차지 하려는 사공들
첫 번째 점심식사를 하려고 하던 곳을 지나는데 커다란 코끼리가 보인다.
이후 수로를 따라 갈 때는 시간이 훨씬 덜 걸려서 40여분 만에 선착장에 도착을 한다.
이렇게 하여 물속에 노니는 하마도 보았고, 썩어가는 커다란 하마의 시체도 지났고, 워킹사파리를 하며 야생의 버팔로, 코끼리, 기린을 보기도 했다. 즐거운 하루였던 것 같다.
모코로 출발 14:52
모코로 선착장에 도착하여 원주민 사공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각자 타고 간 짚차에 나누어 타고 호텔로 돌아간다.
돌아오는 길에 원주민 마을에 잠시 들러서 구경을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그들이 모습을 보며 우리대한민국은 정말 잘살고 좋은 나라임을 새삼느낀다.
다시 사막길을 따라 나오다가 앞차가 서서 개미집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우리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도 잠시 내려 사진 한 장 찍고~~
호텔도착 16:50
모코로를 출발하여 2시간이 걸려 마운 공항 앞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한다.
저녁식사 18:30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이사장님이 맥주 혹은 콜라를 쏘셨다.
내일 일정에 대해 애기를 하는 자리다.
내일은 빅포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잠바부웨로 가는 날인데 직항이 없어 보츠와나의 수도인 가보로네 공항을 경유하여 보츠와나 국경도시인 카사네까지 뱅기를 타고 버스로 국경을 넘는 일정인데 도중 가보로네에서 뱅기를 바꿔타는데 시간이 30분밖에 없으니 걱정이다.
그래도 시간이 된다고 하니 신속히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이사장님은 국경을 넘을 때 입국비자 받는 방법등 여러 가지를 설명한다.
우씨 ㅎㅎㅎ
맥주 남는 거 고여사, 신여사가 전부 몰아주어 너무 마신 거 같다.
저녁식사는 이사장님의 설명이 끝나고 양고기, 닭고기, 과일등으로 각자 입맛에 맞추어 가져다 먹는다.
취침 21:30
이렇게 하여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델타의 경비행기 투어 및 모코로 투어, 워킹사파리를 모두 마치고 보츠와나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제 14일차 12월 2일 월요일
기상 04:00
아침식사 05:30
아침식사는 입맛이 없는지 과일과 음료로 간단히 마치고~~
보츠와나 마운 크레타 호텔 출발 06:00
식사를 마치고 바쁘다. 2층에 계신 여사님들 캐리어 계단 때문에 여기서도 내려오기 힘들다. 아직도 아픈 손을 뒤로 하고 한손으로 캐리어 로비까지 내려놓고 잠시 기다려 보츠와나는 떠나기 위해 호텔을 출발 한다. 아듀 아쉬운 오카방고 물이 그득한 그 곳이 그립다.
너무 척박해 보이는 오카방고는 동물의 세계에서 보는 모습과는 상이하다.
미운공항 도착 06:10
호텔에서 5분여 밖에 걸리지 않는 공항앞 좁다란 도로에 내려서서 기다린다. 공항앞 기념품가게, 부시맨, 기린, 해의 그림이 그려진 벽면이 그리울 것이다.
마운공항 출발 07:58
아직 공항직원들이 나오지 않아 공항 대합실도 텅 비어 있다. 잠시 후 차차로 들어서는 공항직원들 7시가 넘어서 큰 케리어를 부치고, 한참이 지나서 검색대를 통과하여 좁은 대합실에서 대기를 하다가 7시 40분 보딩을 하여 뱅기에 걸어서 접근한 후 역시나 뒷문으로 탑승을 한다. 우리외 다른 손님은 몇 명없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76석 짜리 소형기로 BP031편이다. 게이트는 필요없다. 공항이 작기 때문에 곧바로 뱅기를 향하여 걸어가면 된다.
마운공항 이륙 08:03
비행기가 움직이고 5분후 활주로에 도착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
가보로네공항 착륙 09:21
마운공항에서 수도인 가보로네 공항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곧 기내식이 나온다. 햄버거다. 먹는둥 마는둥하고 ~~
1시간 20여분 후 가브로네 보츠와나 수도의 상공에 닿는다.
내려다보는 모습은 마운보다는 조금 났다. 길다랗게 지어진 창고형의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사막의 나무들은 푸르게 보인다. 직선으로 쭈욱 뻗은 아스팔트길도 보인다.
가보로네 공항 도착 09:25
보츠와나의 수도 공항이라고 하나 규모가 매우 작다. 항공기가 착륙하고 청사 앞에 도착하는데 4분이 소요된다.
5분 일찍 도착하여 이제 뱅기를 갈아타는 시간은 35분이다.
가보르네 공항 출발 10:13(13분 늦음)
공항이 크지 않아 금시 이동을 한다. 짐은 이미 뱅기로 카사네 공항까지 붙였으니 몸만 움직이면 된다. 우리가 갈아탈 항공기는 역시 보츠와나 항공으로 BP 020편이다. 검색대 들어가 금시 우리가 타고 갈 5번 게이트에 도착한다. 시간이 남는다.
게이트앞에는 KASANE VIA FRANCICSTOWN이라고 적혀 있다. 프란시스타운을 거쳐 카사네까지 가는 뱅기라는 뜻인 것 같다.
9시 45분 보딩후 직원의 안내에 따라 뱅기로 접근을 한다. 역시 뱅기 날개 아래는 비켜서 가야 한다. 뱅기 아래는 지나면 안 되는 갑다.
뱅기에 탑승하니 우리 규현이 형님 자리 짱이다. 길게 딴 머리가 이쁘장한 흑인아가씨와 합석이다. ㅎㅎㅎㅎ멋져유 ~~
가보르네 공항 이륙 10:18
공항을 출발한 항공기는 5분후 활주로에 도착하여 역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공항이 작고 항공기의 이착륙이 적기 때문에 이륙은 빠르다.
중간 기착지 (FRANCICSTOWN) 11:25 ~11:59
뱅기가 이륙하고 사막의 도시 가보르네를 벗어난다.
잠시후 여기서도 기내식으로 햄버거와 초코릿 과자, 요구르트가 나온다.
여기서도 먹는둥 마는 둥~~
뱅기는 사막의 상공을 날아서 중간 기착지인 프란시스타운에 내려앉는다. 두어분이 이곳에서 내리고 한분인가 탑승을 한다.
뱅기장 앞에는 PG MATANTE INTERNNATIONAL AIRPORT라 적혀 있다.
여기서 뱅기에 연료주입하고 여기저기 정비하고, 뱅기안 빈자리 정리하고 35분가량이 지난 후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카사네 공항 착륙 13:10
프란시스 타운의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도 별반 다른 모습이 아니다. 모래사막위에 창고형으로 보이는 집들, 주변으로 다른 점은 푸른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후 1시간을 날아서 본 육지의 모습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커다란 강줄기가 보이고, 주변으로 푸른나무들이 많은 평탄한 지형들이다. 저 강이 초베강 아니면 잠베지 강일건대 확실한건 ~~
잠시 후 뱅기가 내려선다.
카사네 공항 도착 13:13
카사네 공항은 작기 때문에 착륙하여 청사 앞까지 3분이 걸린다.
잠시후 짐을 찾아 나가니 시커먼 덩치 좋은 원주민 영어 가이드가 맞이 한다. 이름(맷, MATT)은 뭐라 했는데 잘 모르겠고~~
보츠와나 공항은 수도인 가보르네 공항보다 규모도 더 커 보이고 청사도 깨끗하니 좋다.
보츠와나 북부 카사네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약 7km 거리에 위치한다. 보츠와나 북서부의 초베국립공원(Chobe National Park)으로의 관문이며 지역 관광 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항이다. 북쪽으로 나미비아 국경과 약 3km 거리로 가깝다. 짐바브웨, 잠비아 국경과도 인접하여 포코너스(Four Corners)로 불리는 접경 지점에 있어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Victoria Falls)와 나미비아 카티마물릴로(Katima Mulilo) 관광 지역의 공항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1991년 10월 21일 공식 개항했으며, 공항 코드는 BBK(IATA), FBKE(ICAO)이다.
여객 터미널은 한 동이다. 활주로는 3,000m×45m 크기로 총 1개소를 운영한다. 취항 항공사로는 보츠와나항공(Air Botswana)·에어링크(Airlink)·남아프리카항공(South African Airways)의 총 3개사가 있다. 국제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의 1개 목적지로의 정기 노선이 있다. 국내선은 가보로네(Gaborone)·마운(Maun)의 총 2개 목적지로의 노선이 운항된다. 공항에의 교통편으로는 카사네 중심지를 연결하는 A33 도로가 인접한다.
카사네 공항 출발 13:42
30여분 만에 짐 찾고 시커먼 영어 가이드 따라 공항 밖으로 짐 끌고 이동하여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하는데 까지 30여분이 소요된다.
공항에서 춤을 추며 반기는 원주민 댄스팀의 멋진 공연도 바라보며 ~
여기서 보츠와나의 오카방고와 함께 유명한 초베국립공원이 가깝다고 하는데 못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다음 케냐에서의 사파리도 있고 해서 뺀 것이다.
카사네 (Nando's) 식당 13:51 ~14:45
카사네 (Kasane)는 보츠와나의 도시로 인구는 7,638명(2001년 기준)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북서부 구에 속한다.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웨 4개국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보츠와나 우측으로 깊숙이 일자로 들어간 지형이다.
보츠와나는 전세계 코끼리의 60%가 살고 있는 동물의 왕국이라고 한다.
여기는 초베강과 잠베지강이 만나는 삼각지에 있는 도시 카사네다.
카사네 식당앞 슈퍼에 들러 물을 사려 하니 낱게로 몇 개 밖에 없다. 물을 사먹을리 없으니 가져다 놓치를 않는다. 맥주도 슈퍼에는 팔지 않는다.
잠시후 다시 식당으로 들어와 잘 익혀낸 닭다리와 감자튀김, 콜라로 입가심한다.
식당은 깨끗하니 좋다. 아름다운 색깔로 장식을 많이 했다. 천장에는 우리나라 옛날에 가용주 담글 때 쓰던 용수 같은 것을 매달아 치장했고, 천장에 등도 수공예품으로 만들어 씌운 갓이다. 색깔도 여러 가지라 예쁘다. 한켠에 손을 씻는 세면대가 있어 닭다리 뜯고 기름 묻은 손 씻기도 좋다. 화장실도 깨끗하니 좋다. 색깔이 들어간 타일로 장식한 화장실 작은 소변기, 세면대등 모두가 깨끗하다.
보츠와나 국경 15:39 ~15:53
카사네 식당에서 짐바브웨로 이동하며 잠시 커다란 술파는 집으로 들어가 맥주부터 산다. 맥주한캔 몰래 먹다. 직원인지 경비원지한테 걸려 제지를 당했다. 맥주를 여기서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에고 마시는 자유가 없는 나라다.
잠시후 물은 옆집 커다란 슈퍼에 들어가 산다. 과일도 겸해서~~
여기도 과일 싱싱하지 않고, 물도 박스로는 없어서 낱개로 일일이 세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물을 안 사먹는 나라다. 여기 물 우리가 싹쓸이 해왔다.
잠시후 삼거리에 닿는다. 좌측으로는 잠비아로 가는 길, 우측으로 가면 짐바브웨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다.
우측으로 비포장길을 따라 간다. 현재 도로 포장공사로 어수선하다.
얼마가지 않아 보츠와나 국경 출국장이다.
이사장님을 필두로 출국장으로 향한다. 여권에 도장 꽝 찍어주면 옆문으로 나오면 된다.
허술한 건물이 국경 출국장이다. 화장실도 시원찮다.
15분만에 출국심사는 끝이나고 ~~
짐바브웨 입국심사장 15:55 ~16:39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중앙부의 내륙국으로, 정식 명칭은 '짐바브웨공화국'이다. 1923년부터 영국의 자치식민지로 편입돼 식민통치를 받아오다 1980년 4월 독립했다. 1999년 이래 극심한 경제난과 인플레이션으로, 2008년에는 2억 3100만%라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역사상 최고액권인 100조 달러가 통용되기도 했다.
동쪽은 모잠비크, 남쪽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쪽은 잠비아, 서쪽은 보츠와나와 국경을 접한다. 수도는 하라레이고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한다. 주요 산업은 담배·면화·옥수수 등의 농업으로 특히 담배의 경우 세계 3대 담배 생산국에 속한다.
1923년부터 영국의 자치식민지로 편입돼 식민통치를 받아오다 1980년 4월 독립했다. 1980년 영국 감시하의 총선을 통해 총리로 취임한 로버트 무가베(2019년 9월 사망)는 1987년 12월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1990년 재선 ▷1996년 3선 ▷2002년 4선 ▷2008년에는 5선에 성공하는 등 30년 이상 짐바브웨를 통치하면서 아프리카 최장수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무가베는 집권기간 내내 부패와 사치 등으로 국가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면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짐바브웨의 극심한 경제난
짐바브웨는 전체 1,200만 명의 인구 중 0.6%에 불과한 약 7만 명이 백인인데, 백인 농민 4,000명이 전체 농지의 30%(특히 비옥한 농지의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가베 대통령은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짐바브웨 영토를 강탈한 만큼 다수의 흑인들은 무상으로 이 땅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짐바브웨 정부는 1992년 통과된 법에 따라 백인 농장을 인수하는 권한을 갖게 됐으나 이후 인수 대상이 된 농장은 100개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이마저도 보상 및 소유권과 관련한 법적 분쟁으로 추진이 어려웠다. 이에 짐바브웨 의회는 2000년 5월 백인 소유의 토지를 정부가 특별한 보상 없이 몰수하는 법안을 제정하였으며, 이후백인 소유 상업농장들을 강제 몰수하여 야당과 백인 농민들의 반발을 샀을 뿐 아니라 영국ㆍ유럽연합 등과 대립하는 원인이 됐다.
이처럼 짐바브웨 정부는 불균등한 토지개혁 정책의 강행과 장기 집권에 따른 민주화 세력 탄압 등으로 서부 유럽 원조 공여국들과 대립하면서 서방으로부터의 원조가 중단되었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금융기구들과도 갈등을 빚으면서 외환 고갈은 물론 산업 전반에 걸쳐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 또한 백인농장 환수는 대규모 상업영농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고,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는 기상이변으로 극심한 식량난까지 겹치면서 1999년 이래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는 등 독립 이래 최악의 경제난을 겪었다. 특히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물가안정 명목으로 '물가동결령(物價凍結令)'을 내리기도 하였으나, 이것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면서 2008년에는 2억 3100만%라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역사상 최고액권인 100조 달러가 통용되기도 했다. 짐바브웨는 이후 총 세 번의 화폐개혁 끝에 자국 화폐를 포기하였고, 이후 미국 달러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보츠와나 출국심사장에서 2분이면 도착을 한다.
이사장님이 나누어 준 50불과 함께 여권을 들고 대기 한다.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린다.
화장실은 굳게 열쇠로 잠가 놓아 사용 할수도 없다.
인정머리 없는 동네다.
원숭이는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드는데 하물며 사람인 우리들은 함부로 넘지 못하는 경계선이다. 여권내고 도장찍고 비자 받는데 45분여 시간이 흘러 마친다.
호텔도착(Kingdom Hotel) 17:31
짐바브웨 국경을 넘으며 아스팔트길을 질주한다. 국경을 넘으며 곧장 이어지는 도로변으로는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국립공원 좌측으로 잠베지 강이 흐른다고 하며, 이어지는 도로는 중앙선이 없는 편도 1차선 정도의 길이다. 얼마를 달리니 코끼리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선로가 여러가닥 보이는 정거장을 지나고 잠시 더 가면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서 잠시 후 킹덤 호텔에 도착을 한다.
경비원이 굳게 지키다가 연락을 미리 받은 것인지 부지런히 문들 열어준다. 부시맨 인형이 있는 정문으로 들어서면 성곽같은 건물안으로 들어간다. 오래전 현 국무총리인 이낙연총리가 머물었던 호텔이라고 한다. 호텔안에는 커다란 원주민 모형도 보이고, 혹등멧돼지 모형과 뒤편으로 의자 2개가 있으며 로비 아래쪽으로 식당이 있으며 그 뒤편으로 널찍한 정원이 마련된 고급호텔임에는 틀림없다.
여기도 호텔로 들어가기 전 원주민 댄스단이 춤을 추며 반긴다.
호텔로 입장을 하면 물수건을 건네고, 음료수 한잔씩을 건네준다.
더운데 오시느라 수고하였다는 뜻일게다.
일단은 방을 배정받고 방으로 향한다. 우리는 로비에서 계단을 내려서서 우측에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간혹 물이 새는 방도 있고 하여 방을 교체 했다는 후문이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놓고 호텔 뒤 정원으로 향한다. 이곳저곳 돌아댕기며 사진을 찍고 나오는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즐기는 3분, 울마님 귀도 밝다. 분명 “엄마”하는 소리를 들었단다. 수영장으로 닿아가니 역시 한국인 아줌씨하고 청년들 둘이 있다. 어머니하고 아들둘이 온 것이다. 아자씨는 돈벌라구 서울에 두고 6개월전에 떠났다나 유럽에서 아들하나가 여권잃어 버리고 임시여권 받아서 서울가서 다시 받아서 합류하고 또 황열병 예방접종 카드로 잃어 버렷지만 어찌해서 해결하고 6개월만에 이곳에 도착했다고 하며 남미를 거쳐 서울로 돌아 갈것이라고 한참을 마님하고 애기를 하다 헤어졌다.
저녁 식사(PARIAH STATE) 19:12 ~20:18
호텔을 출발하여 3분만에 도착한 식당이다.
2층으로 지은 사방이 확 터진 야외식당비슷하다.
우리는 2층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식사를 시키며 일일이 적는 이사장님 레어인지, 미듐인지 웰덤인지 정확히 적었지유~
오랜만에 빈투훅 맥주가 아닌 잠베지 맥주가 식탁에 올라왔다.
야채와 동그랗게 만든 감자튀김, 소고기 스테이크 역시 남미나 아프리카나 소고기는 흔하다. 우리나라는 일년에 한번도 먹기 힘든 소고기 스테이크 날이면 날마다 먹는다.
1시간이 좀 더 지나 식사는 끝이 났다. 먼 보츠와나 마운공항까지 여기까지 이동하느라 피곤하셨을테니 일찍 돌아가 쉴 차례다.
호텔 도착 취침 20:22~
식당에서 호텔까지는 3분여 소요되고 호텔로 들어가며 사진 몇장 찍고는 각자 방으로 푹쉬러 들어갑니다. 내일아침에 밝은 얼굴로 만나 뵙겠습니다.
제 15일차 12월 3일 화요일
오늘은 빅토리아 폭포를 지근 거리에서 감상하는 날이다.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세면하고 5시 40분경 방을 나선다. 호텔 뒤편 정원을 돌아댕기며 사진도 찍고 이제 밖으로 나간다. 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 아저씨들한테 굿모닝 반갑게 인사도 하고 호텔앞 여기저기를 누비며 사진도 찍고는 호텔 앞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간다.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방향이다. 시원한 물소리가 금시 들린다. 잠시 가다가 우측으로 난 샛길을 따라 가니 금시 커다란 짐승이 지나간 흔적도 보이고 호텔 뒤편 숲속에 노니는 사슴이 보인다. 이후 산길을 따라 들어가면 철길이 나온다. 철길 앞으로 보이는 곳이 아침식사후 도착한 빅토리아 폭포 매표소다. 여기서 원숭이들 노는 모습 구경하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오니 정문앞에 이현일 선생님과 용인 신란수 선생님이 아침 산책중이라 넷이서 우리 호텔 우측편에 있는 다른 호텔 정문까지 사진을 찍으며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호텔주변으로 돈(짐바브웨 달러)을 팔러다는 다수의 사람들 피하느라 신경이 쓰였다.
아침식사 07:00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식사시간과 맞는다.
아침식사는 뷔폐식이다.
과일종류도 많고, 빵종류도 다양하다. 아스크림류, 소시지종류, 각종 치즈, 불이 지펴진 따끈한 음식들, 야채류, 어디나 빠질 수 없는 담뿍장 같은 콩음식, 구워낸 토마토, 쌀밥, 돼지고기 구이, 오믈라이스도 에고 너무 많이 담아온 것 같다.
오늘 16개 전망대 댕길라믄 잘 묵어야 한다.
우쨋든 담아온 것 다 치우고 식사가 끝나고 다시한번 사진 못 찍으신분들 정원에서 사진찍고 여유부리고 ~~
호텔 출발 08:26
빅토리아 폭포
아프리카 남부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르며 해발 고도 90m고원에서 흘러내리는 잠베지강의 물이 인도양으로 흘러가는 도중 잠베지 강 중류에는 폭 1,676m, 최대 낙차 108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 폭포가 있다.
폭포 위에는 몇 개의 섬이 있어서 레인보 폭포 등 다른 이름을 가진 폭포로 갈라져 있다. 수량이 많은 11∼12월에는 1분간에 낙하하는 수량이 무려 30만m3에 달한다. 이 폭포는 아래쪽의 강폭이 50∼75m에 불과하여 반대쪽 낭떠러지 끝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뿐이며, 멀리서는 치솟는 물보라만 보이고 굉음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원주민인 콜로로족은 빅토리아 폭포를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의 ‘모시-오아-툰야’라고 불렀다. 1855년 영국 탐험가 D.리빙스턴이 발견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고 명명하였다.
1904년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짐바브웨 쪽에 역이 설치되었다. 짐바브웨에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고, 잠비아에서는 동물보호구역을 설정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1938년에는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홍수기인 2~3월에는 분당 약 5억 리터의 물이 쏟아질 뿐만 아니라 갈수기인 10~11월에도 분당 1,000만 리터의 물이 쏟아진다. 빅토리아 폭포는 중생대 1억 8,000만 년 전에 분출하여 형성된 현무암 대지의 균열에 잠베지 강물이 흘러들면서 지속적으로 지표를 깎아 내어 형성되었다. 그 형성 과정이 조금 복잡하지만 빅토리아 폭포는 현무암과 사암의 차별 침식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 하류의 현무암 협곡에서는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좌우로 꺾인다. 이는 과거에 있었던 폭포의 흔적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두부침식(頭部浸蝕)을 계속하면서 상류 쪽으로 전진하고 있는데, 지금의 빅토리아 폭포는 여덞 번째 폭포라고 한다. 빅토리아 폭포 주변 지역의 동물군들은 독자적인 종으로 진화했는데, 이는 폭포가 진화의 장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타고온 버스에 승차하여 빅토리아 폭포로 향한다. 거리는 5분 거리다.
스코들랜드인 리빙스톤이 발견했으며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붙인 폭포다.
모시-오아 -툰야라는 원주민인 콜로로족은 불렀다. 멀리서는 치솟는 물보라만 보이고 굉음밖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옛날부터 ‘천둥소리가 나는 연기’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렇듯 빅토리아 폭포는 리빙스톤이 최초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전 오래전부터 원주민들은 함께 생활을 했던 폭포다. 영국인들이 이때 이곳을 침략한 것이다.
그들이 부르는 모시-오아-툰야라는 이름을 되 찾았으면 좋겠다.
빅토리아(모시-오아-툰야)폭포 주차장 도착 08:28 ~08:35
매표소앞 "WELCOME TO MOSI-OA-TUNYA VICTORIA FALLS ZIMBABWE" 표지판에서 단체사진 찍는데 노랑옷 입은 현지인지 아짐들이 피해주지를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후 5~6분후 매표소로 진입하여 영어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는 출발을 한다. 입구에 현지 지도가 있어 사진을 찍어서 가면서 보면 참고가 많이 된다. 어짜피 말도 못 알아 들을 거 경치만 잘 보믄 된다.
제1전망대 08:58
입구에서 들어가 첫 번째 폭포가 보이는 곳이 제2전망대로 노랑옷 입은 아짐들이 진을 치고 있어 우리는 재빨리 이들과 피하기 위해 좌측 제1전망대로 향한다. 가장 좌측에서 시작하는 길 다란 폭포 위쪽에 위치한 곳이다.
제2전망대 09:06
제1전망대에서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된다. 시원한 물줄기가 좌측에서 쏟아지고 앞쪽으로 길 다란 협곡 사이로 포말을 이루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관람 할수 있는 곳이다. 차례차례 개인사진 찍고, 다음으로 이동 ~~
제3전망대 09:09
3전망대 앞 의자에서 몇 분이 걸터 앉아 쉬고 더러는 안쪽으로 들어간다. 울타리 밖으로 가시나무 쳐 놓아 접근을 막았으며 좌측 첫 번째 낙차가 길다란 폭포와 마주하는 전망대다.
제4전망대 09:15
날씨가 매우 더워 졌다. 좌측 폭포와 물살이 제법 많이 쏟아지는 폭포의 중간지점이다.
제5전망대 09:16
좌측의 길다란 폭포를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는 폭포로 폭포 아래 무지개가 뜬 것이 보인다.
제6포인트 09:18
잠시 보고 금시나오고~
제7포인트 09:20
꽃대가 쑤욱 올라와 붉은 꽃이 핀 지점을 지나 시원한 물줄기가 가장많이 쏟아지는 광경을 바로 앞에서 목격할수 있는 물보라를 맞으며 사진을 찍어야하는 가장 근접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다.
제8포인트 19:23
조금 전 전망대 바로 옆 지점으로 물보라가 심하게 몰아쳐 전망대 바닥이 축축하다. 숲이 우거져 조망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제9 전망대 09:28
8포인트에서 물보라가 치는 숲길을 따라서 간다. 우거진 숲으로 잠시 폭포가 보이는지 않는 지점을 통과하면 사진찍기 아주 좋은 전망대로 정면으로 하얀 포말을 쏟아내는 폭포가 있으며 잠비아 쪽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볼 수 있다.
제10 전망대 09:30
조금 전 9 전망대와 흡사하다. 앞쪽으로 폭포가 잘 보인다.
제11 전망대 09:34~09:40
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던 장소다. 정면 잠비아 쪽으로 목욕탕과 마주하는 곳이다. 15명 정도가 폭포끝 목욕탕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아고~~ 위험해 보인다. 혹여 떨어지믄 어쩔라고~ 우쨋든 폭포끝에서 즐기는 목욕은 신나기도 하겠지만 수량이 많을 때는 불가능할 것 같다.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한 장소다.
악마의 수영장으로 유명한 저 앞쪽의 목욕탕은 잠비아쪽 리빙스턴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 수영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수영을 못하면 못 간다고하니 우리일행은 에고 안 되겠다.
제12 전망대 09:42
조금 전 11전망 조금 옆쪽으로 위치한 곳으로 조금 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제13 전망대 09:48
앞쪽 폭포쪽으로 수량이 많을 때만 폭포의 모습을 볼수 있는 곳으로 현재는 깍아지른 절벽이 앞쪽에 보인다.
누런 잔디가 깔려 있는 길옆으로 있는 전망대로 앞쪽에 보이는 바위절벽으로는 물이 마른지 오래된 것 같다. 강바닥도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보이고 좌측으로 보이는 폭포에 무지개가 떳다.
제14 전망대 09:52
제13포인트에서 절벽위로 난 바위길을 따라 가면 나오는 전망대다. 수량이 많을때는 물보라로 미끄러워 걷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바짝 말라버린 폭포의 반대쪽이니 그럴 염려는 없다. 사진찍기는 좋다.
제15 전망대 09:57
역시 시커먼 바위절벽길을 따라가면 강줄기가 양쪽으로 갈리는 부분으로 모서리의 마지막 전망대다. 시커먼 절벽아래로 포말을 이루며 흐는 물줄기가 보인다.
제16 전망대 10:03
15전망대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마지막 전망대로 건너편으로 짐바브웨에서 잠비아로 건너는 엣지다리가 보이는 곳이다.
빅토리아 힐 주차장 10:43
전망대를 처음부터 16번째 가는 시간이 1시간 반가량 걸렸다.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은 가던 길을 따라 온다. 날씨가 더워져 물을 찾는다. 나야 물을 준비를 했지만 물 준비 못하신 분들 물 때문에 고생좀 했을 기다. 나한테 물 뺏어드신분들 1달러씩 주기로 했는대 아직도 못 받았습니다. 돌아오며 노랑옷 입으신 분들이 물을 달라고 손짓하는데 차마 주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님들도 목말라해서요~
오면서 준비해간 맥주 마시니 꿀맛이대요, 선생님 맥주는 요럴 때 제맛을 내지요 ~~
이렇게 하여 돌아오다가 제5전망대 부근에서 좌측으로 나오면 금시 주차장으로 나옵니다.
주차장으로 나와서 다시한번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
빅토리아 힐 출발 10:48
주차장에 도착하여 사진찍고 5분여가 지난 후 우리는 호텔로 귀환을 합니다.
호텔도착 10:50
5분후 호텔에 도착하여 더운시간 휴식에 들어갑니다.
호텔 휴식 10:55 ~12:30
더운 날씨에 시원한 호텔에서 쉬는 맛이 아주 좋습니다. 1시간 반가량을 휴식을 한 후 어제 저녁을 먹던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갑니다.
호텔 출발 12:36
식당 도착(PARIAH STATE) 12:40
잠시후 도착한 식당 나무그늘 속에 있다고는 하지만 양철로 된 지붕이 덥혀져 2층에 올라갔는데 매우 뜨겁다. 적당한곳이 없어 그냥 어제 그 자리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오늘 주메뉴는 생선구이다. 야채, 쌀밥, 감자튀김이 곁들여 나온 식단이다. 식사에 앞서 더운날씨에 먼저 찾은 것이 얼음물과 얼음이 든 음료수이다. 누가 주문한 오이인지는 몰라두 이경자 여사님 앞으로 전달된 오이 각자 나누어 드셨지만 정작시킨분은 이경자 여사가 아니란 후문이다(이 ㅇㅇ선생님 야그다). 우쨋든 나누어 드셨으니 됏지유~
모처럼 고추장에 쌀밥 썩썩 비벼 먹지만 쌀이 좋지를 않아서 맛은 그렇다.
식당출발 13:40
꼭 1시간의 식사 시간이 끝나고 빅토리아 폭포를 하늘에서 보기 위해 뱅기장으로 출발 ~
헬기투어장 도착 13:50
헬기장으로 들어가니 한분이 열심히 비디오를 찍는 모습이 보인다.
전에 이과수에서 보트 탈 때도 요거 찍어서 한 개만 사서 복사해서 외장하드에 넣어준적 있다. 우쨋든 우리는 간단한 수속을 마친다. 종이에 이름쓰고 싸인하고 형식적인 것 같다. 이름을 틀리게 썻는대로 그냥 통과다.
잠시후 교육장에서 간단한 교육을 한다.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을수는 있지만 밖으로 손이나 카메라, 핸드폰이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내밀었다. 떨어뜨리면 못찾을 긴디 왜 내밀구 찍남유 ~~
우쨋든 교육내용은 그렇다. 또한 자리를 이동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몇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는 5대의 헬기에 나누어 탄다.
우리앞에 1번기가 떠오르고 두 번째로 2번기에 우리팀 5명, 고여사가 부종사역을 맡고 뒤로 우리내외 이규현님 내외 5섯이다. 2번기 5명, 3번기 4명, 4번기 4명, 마지막 5번기 3명씩 나누어 탄다고 한다.
헬기탑승 14:17
평탄한 지형을 날아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풍경은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과 흡사하다. 가옥이 형태도 비슷하고, 잠시 날아가면 빅토리아 폭포 상공에 닿는다. 검은 바위절벽으로 흐르는 하얀 물줄기가 선명하다. 지그재그로 골짜기를 이루며 흘러가는 잠베지강의 물줄기가 보이고, 위쪽으로 오늘 우리가 유람선투어를 할 널찍한 물줄기도 보인다. 작은 섬들이 있는 널찍한 잠베지강 줄기다. 첫 번째 오른쪽으로 돌았다면 다음번에는 반대편인 왼쪽으로 한바퀴를 더 돈다. 이렇게 하여 대략 17분 가량을 돌아서 오는 투어다. 시간은 짤막하지만 하늘에서 돌아보는 폭포의 모습은 아름답다.
헬기 착륙 14:34
이렇게 하여 헬기 투어를 마치고 차례로 도착하는 3~5번기를 기다리는 사이 투어장에 마련된 커피도 마시고 직원이 찍어서 틀어주는 화면도 보면서 30여분을 기다려 투어가 모두 끝나고 다음 투어장으로 이동을 한다.
헬기투어장 출발 15:13
헬기투어가 끝나고 이제는 잠베지강의 선상투어다.
잠베지강 선상 투어장 도착 15:30
투어장에 도착하니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소시지나무, 수영장, 잘 꾸며진 정원, 초가집 형태의 가옥들 안쪽으로 들어가 강가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는다. 손에는 각자 맥주병이 들려 있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강변의 멋진 하우스에서 즐기는 맥주한잔 맛 좋다.
강가 언덕에서는 원주민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발놀림이 매우 빠르다. 깡충깡충 뛰기도하고, 더러는 원주민들과 흥겹게 춤사위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이다. 이규현님 춤은 역시 잘 춘다.경자 여사도 한몫하고, 또 예옥여사도 ~~
이렇게 즐기는 사이 우리가 타고 갈 유람선은 준비를 마치고 1시간이 지난후 승선을 시작한다.
유람선 승선 16:30
유람선 출발 16:34
유람선을 승선한다. 우리는 일찌감치 2층으로 올라가 앞쪽에 자리를 잡는다.
더러는 아래층에 자리를 잡기도 하고 서서히 움직이는 선상크루즈 경치좋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한잔 아니할수 있겠는가. 먼저 맥주한잔 시켜서 먹은 것이 화근이 되어 예옥여사 부지런히 1달러씩 투자하며 와인, 맥주, 위스키 할거 없이 시키니 나중에는 1달러 벌라구 서로 2층올라간다고 하여 첫 번째부터 시중든 웨이터로 끝까지 오도록했다고 한다.
잠시 잠베지강을 거슬러 가니 첫 번째로 등장한놈이 하마다. 크게 입을 벌리는 놈, 엉덩이를 흔드는 놈, 귀여운 작은 귀를 탈탈터는 놈 엄청 귀엽다. 웃고 즐기는 사이 다시 유람선이 모여든 곳은 악어가 낮잠자는 바위부근이다. 길 다랗게 누워있는 악어 이 넘은 죽은 듯 움직이지도 않는다. 다시 진행하며 마시는 술이 너무 도에 지나치는듯하다. 옆쪽에 같이 즐기던 백인젊은 여성 두분도 우리와 동하였는지 사진도 찍고 웃고 날리다. 아래층에서 이사장님 제천 선생님, 손병일님 올라와 합세를 하고 배는 서서히 좌측에 있는 섬을 돌아서 간다. 얼마를 갔는지 커다란 코끼리가 도강을 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참으로 보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한다. 코끼리는 우측 언덕으로 올라가 사라지고, 다시 뉘엿뉘엿 서편으로 지는 해가 만들어낸 저녁노을아래 하마무리가 노는 모습이 또 보인다.
이렇게 하여 잠베지강 가운데 섬을 한 바퀴 돌아오는 유람선 투어는 2시간 10분 가량이 걸린다. 여기서 기분 내다 술 너무 마셔 실수 한 것 같다.
에고 죄송혀라 ~~
유람선 투어 끝 18:48
두시간 10분간의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
선상크루즈 주차장 출발 19:08
오늘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보마식이라고 한다.
악어고기, 타조고기, 영양, 양고기, 뭐 이런 야생고기와 소고기등으로 구워내는 식단이다.
보마식 식당 도착 19:15
보마식 식당에 도착하여 처음에 거적대기(사각으로 된 천)을 두르고 입장 한것과 앞쪽의 흑인 젊은 여성들이 얼굴에 이쁘게 페인팅하는 모습등 별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우째 이런일이 ~~
우쨋든 식당에서는 춤을 추는 원주민 (더러는 백인여성도 보였음) 함께 합세를 하여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음식은 먹었는지 얼굴에 빨갛게 페인트를 칠하고 졸다나온 생각만 가끔씩 가물가물 거린다.
보마식 식당 출발 20:45
1시간 30분 정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공연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도착 20:54
호텔에 도착하여 아고 씻었는지 그냥 잤는지 눈떠보니 아침이다.
제16일차 12월 4일 수요일
짐바브웨에서 잠비라로 넘어가는 날(아프리카에서 첫 번째로 비맞은 날)
기상 06:00
아침식사 07:00
아침은 속이 좋지를 않아 우찌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우쨋든 오믈라이스등으로 간단히 아침식사하고 ~~
호텔출발 10:02
오늘은 아침식사후 시간이 많다. 식사후 방으로 들어가 짐 챙기고 시간이 남아 로비 혹등멧돼지 앞 의자에 앉아 사진도 찍고 여유가 있다.
목각시장 10:04 ~10:47
호텔에서 2분만에 목각시장에 도착한다.
단단한 나무, 돌로 만든 수공예품으로 아주 작은 것부터 사람키만한 작품까지 있다.
덩치가 큰 것은 가져 갈수 없기에 주로 소품으로 골라서 흥정을 한다.
코끼리, 기린, 얼룩말, 하마, 코뿔소, 버팔로, 그릇, 포크, 수저등 주방용품, 천으로 만든 수공예품등 많은 물건이 가게마다 독특하게 진열하여 우리들을 유혹한다.
대부분 규모가 작은 10~30달러에 해당하는 조각품을 사고 제천 선생님이 그래도 가장 큰코끼리를 산듯하다.
목각시장에서 40여분 시간을 보내고 이제 짐바브웨의 마지막 일정으로 바오밥나무를 보러 간다.
바오밥나무 10:56 ~11:15
목각시장에서 10여분을 이동하여 커다란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에 닿는다.
높이가 23m, 둘레가 18m, 나이가 1000~1500년이 됐다고 적혀 있다.
하얀 복스런 꽃이 피어 점차 주황색을 띄는 꽃잎이 땅으로 떨어지고 길죽한 꽃자루에 동그란 열매가 맺기 시작해서 럭비공처럼 길죽하고 커다란 열매로 자란다. 잎은 5~7개로 손가락모양으로 생겼다.
여기 바오밥나무는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보던 바오밥나무와는 종이 다르다. 우리가 흔히보던 바오밥나무는 마다가스카르의 그랑디디에 바오밥나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바오밥은 카리마 바오밥의 일종이다.
바오밥나무
바오밥은 바오밥속(Adansonia)에 속하는 9종의 식물을 총칭한다. 아프리카 대륙에 2종, 마다가스카르에 6종, 호주 북부에 1종이 있는데, 주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열대에서 아열대 지역의 반사막지대에 생육한다. 건기에 잎이 떨어지는 낙엽성 교목으로 줄기가 뚱뚱한 것이 특징이다. 우기에는 줄기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건기에 이를 사용하여 살아가는 적응력이 탁월한 식물이다. 속명인 아단소니아(Adansonia)는 프랑스 박물학자 아단손(Michel Adanson, 1727~1806)의 이름을 채용한 것이다. ‘생명의 나무 바오밥’에서 필자가 사용한 바오밥속에 속하는 9종의 우리말 이름, 학명과 대략적인 자생 분포지는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고산지대의 키리마바오밥, 호주바오밥,마다가스카르서부의 그랑디디에 바오밥, 북부의 수아레즈바오밥, 북부의 페리에바오밥, 남서부의 자바오밥등이 있다.
바오밥속 식물들은 모두 장수하는 큰 나무들로, 줄기가 병 모양에서 원통형으로 퉁퉁하고, 수관은 비교적 작은 것이 특징이다. 어린 나무들은 보통 줄기 아래쪽이 더 넓고 위쪽이 좁은 형태로 날씬하게 자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퉁퉁하게 변한다. 강수량이 적은 건조한 지역에 적응한 종일수록 줄기가 퉁퉁한 경향이 강하며,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 적응한 종일수록 일반 나무같이 줄기가 길게 자라는 특성이 관찰된다. 예로 마다가스카르 서남부에 적응한 종들은 북부에 적응한 종보다 줄기가 더 퉁퉁하다.
이와 같은 경향성은 같은 종 내에서도 분포지의 강수량 및 토양염도에 따라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그랑디디에바오밥의 경우 무룸베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는 뚱뚱하고 키가 작은 반면 내륙 쪽에서 자라는 나무는 보다 덜 뚱뚱하고 높이 자란다. 일반 나무에서 줄기가 퉁퉁하면 목재가 단단한 것과는 달리, 바오밥 나무는 수분을 저장하는 푸석푸석한 섬유질이 방사상으로 배열되어 있어 목재가 매우 약하다. 건기에 수분함량이 감소하면 줄기가 약간 홀쭉해지는 경향이 있고, 우기에는 물을 흡수하여 뚱뚱해진다.
바오밥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이제 국경으로 향한다.
짐바브웨 국경 11:20 ~11:30
엣지 다리 앞 짐바브웨 국경검문소다. 저 다리만 넘으면 잠비아다. 다리하나 사이에 놓고 짐바브웨와 잠비아가 있다. 잠비아 비자는 짐바브웨국경에서 받았기에 또 받을 일은 없다.
국경에서 출국심사하고 도장 찍어는대 10분이 소요된다.
국경통과(엣지다리) 11:34
어제 16개의 전망대 중 마지막 16번째 전망대 바로 앞에 있는 다리다.
잠비아 국경 11:35 ~11:49
잠비아
정식 명칭은 잠비아 공화국(Republic of Zambia)으로, 영연방의 하나이다. 9개국에 둘러싸인 내륙국으로 면적은 75만 2618㎢, 인구는 1506만 6266명(2015년 현재), 수도는 루사카(Lusaka)이다. 인구의 90% 이상이 반투족이며, 공용어는 영어인데 벰바(Bemba)·로지(Lozi)·냔자(Nyanja)·통가(Tonga) 등의 부족어도 사용된다. 종교는 기독교가 50% 이상이고,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토착종교가 신봉된다.
경제는 매장량 세계 제4위의 구리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71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722달러이다.
이 나라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158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전국민회의(Acp), 다당민주운동(MMD), 통일민주독립당(UNIP) 등이 있다.
약사
1798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진출하였고, 후에 영국 남아프리카회사가 진출하여 침략을 시작하면서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꾸준한 독립운동을 벌여 1964년 10월 2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972년 12월 신헌법을 제정하고 대외적으로 좌경중립을 표방하며 1964년에 유엔과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1990년 일당독재에 반대하는 야당, 복수정당제민주주의운동(MMD)이 탄생하여 1991년 10월 당수인 칠루바(Chiluba)가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민주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90년 9월 4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2008년 현재 주 짐바브웨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잠비아 수출액은 3,094만 달러로, 주종목은 알루미늄선, 시약, 화학제품 등이며, 수입액은 3억 4690만 달러로 주종목은 전극, 코발트, 커피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에는 43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15년 현재 (주)벨라와 Photo Bank 등이 진출해 있고, 136명의 한국민 교민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69년 4월 12일 외교관계를 가진 뒤 2006년 현재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측은 1975년 2월에 통상 협정, 1975년 12월에 경제 및 기술협조 협정, 1980년 4월에 무역 협정, 1990년 4월에 공동위창설 협정, 2007년 7월에 경제사회분야협력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잠비아 국경 출입국 심사장은 짐바브웨보다 건물이 깨끗하고 훨씬 난거 같다.
원숭이이 쳐다보며 노는 사이 입국심사 끝나고 이제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로 향한다.
짐베이지 선(Zambezi Sun)식당 11:55 ~13:30
호텔인지 식당인지 구분이 안 간다 엄청큰 규모의 정원과 수영장 여러개로 나누어진 식당, 좌측으로 행사장등으로 꾸며진 대규모 단지다.
굳게 닫힌 문을 경비원이 열어주고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슴이 반기고, 임팔라로 보이는 놈도 보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로비인 듯 조명등 식탁등 고급스런 분위기다. 여기도 원주민 춤으로 반기고, 수영장 옆 우리가 점심식사를 할 식당에 자리를 잡고 나니 앞쪽에서 얼룩말이 놀고 있다. 얼룩말 가까이 가서 사진도 찍고 하니 직원이 쫒아와 더 이상 가까이 접근을 막는다. 뒷발질에 채이면 큰 사고란다.
한 마리의 얼룩말이 두 마리, 세 마리로 늘어나고 우측 연못에는 호로조가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 아름다운 정원을 눈요기 하는 사이 식사가 나온다. 햄버거, 빵, 감자튀김, 닭고기, 양고기 꼬치등으로 푸짐하다. 이거 우리님들 다 먹을 수 없어 반은 덜어서 카운터에서 일회용 용기 얻어 잘 정리정돈하여 넣은 후 가이드, 기사님에게 전달하니 매우 좋아 한다. 저들은 집에 가져가면 1주일 먹을 분량이라고 한다.
동물구경 13:35 ~14:05
관리인의 인솔하에 식당내에 있는 정원으로 동물 구경을 간다.
간단한 주의사항을 이야기 하고 연못이 있는 쪽으로 향한다. 작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매달린 작은 새집이 보이고, 잠시 언덕을 넘어서니 커다란 기린이 보인다. 바로 앞쪽 까지 닿아가 사진을 찍는대도 기린은 포즈를 취해주고 우리를 잘 대해 준다.
또다른 기린 한놈은 우리가 싫은지 숲속으로 들어가고 수놈 한 마리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눈망울이 금시라도 울것만 같은 촉망한 눈, 솔깃한 귀, 작은 뿔이 양쪽으로 솟아 있는 키에 비에 얼굴은 매우 작은 기린이다.
이후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서 작은 악어를 보았지만 어찌나 빨리 도망가는지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다.
이렇게 하여 동물구경하는대 30여분이 소요되었다.
짐베이지 선(Zambezi Sun)식당 출발 14:29
동물구경하고 화장실 댕겨 오고 이제 빅토리아 폭포의 마지막 투어를 위하여 출발한다.
잠비아쪽 빅토리아 폭포 관광 14:15 ~15:20
식당에서 나가 빅토리아 폭포 입구에 도착하니 소나기가 세차게 내린다.
폭포를 안내할 가이드 2분이 버스에 승차하고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빗줄기가 점차 약해지자 우비를 둘러쓰고 폭포로 향한다.
안내도가 잘되어 있다. 우리가 건너던 엣지다리라고 하던 다리의 명칭이 빅토리아 힐스 브릿지로 1.3km,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Danger Point 615m가 적혀 있는 곳으로 앞쪽으로 레이보우 힐스가 마주 하는 곳이다. 도중에 작은다리는 Knife Edge Bridge 319라 적힌 부분이다.
여기도 입구에는 리빙스톤의 동상이 있고 잠시 더 들어가면 검은 바위절벽이 나오며 앞쪽으로 한줄기 세찬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가 보인다. 우측으로 파란 물이 고여있는 것이 보인다. 여기 지형이 지그재그로 깊숙이 파인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특이한 지형이다. 우리는 첫 번째 레이보우 힐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넌다. 노랑잔디가 길옆으로 있어 겨울인듯한 기분이다. 이제 비도 서서히 그쳐 우비도 벗어 던지고 희희 락락 즐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포지션까지 도착한다. 여기서 보는 빅토리아 폭포의 전경이 아름답다. 어제 우리가 걸어서 왔던 제 15포인드가 강건너편에 있고 길다란 협곡사이로 쉼없이 포말을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이렇게 하여 마지막 포인트까지 돌아보고 다시 다리를 건너 나오면서 엣지다리(빅토리아 힐스 브릿지)가 바로 마주 보이는 전망대를 지나 마지막 빅토리아 폭포의 관람을 마친다.
리빙스턴 공항 도착 15:41
빅토리아 폭포를 관람하고 이제 케냐로 가기 위해 리빙스턴 공항으로 이동을 한다.
온통 리빙스턴이다. 도시이름도 리빙스턴시다
리빙스턴시는 아프리카 잠비아의 잠베지강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 농산물과 축산물을 모아서 가공하는 곳이다. 마람바라고도 한다.
시내로 향하는 길은 편도 1차선으로 중앙선이 뚜렷하게 있으며 가로수가 잘 조성되어 있다. 주로 바오밥나무가 많고 붉은 꽃과 자주꽃이 피는 자귀나무 같은 것이 주종이다. 리빙스턴시내에서 좌측으로 접어들어가면 얼마 안가 리빙스턴 공항에 도착을 하게 된다. 공항앞 공원도 수림이 우거졌으며 잘 조성되어 있다.
리빙스턴 공항 출발 18:31
공항건물 앞에서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서는 모습이 보인다.
청사 안에는 성탄이 가까웠는지 트리가 있고, 커다란 코끼리 모형이 놓여 있다.
청사는 비교적 깨끗하며 단촐하다. 여기서 그동안 수고를 해주신 짐바브웨 가이드 맷과 기사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헤어진다.
짐을 부친다. 여기서 킬리만로팀 마지막으로 갑미여사 무게 초과로 초과 요금 얼매를 물었을기유 ~~달러두 안받구 해서 자판기에서 던 빼서 내느라 시간좀 걸렷지유~~확실히 맞는지 틀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우쨋든 요러는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이제 검색대를 통과하여 들어가면 게이트앞 대기실은 문이 잠겨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깥 의자에서 빙빙 돌기도 하고 몇 개안되는 면세점 상점을 돌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지유~~
이사장님 요기서 맥주 한잔 참 맛있었구만유 ~`
리빙스턴 공항 이륙 18:37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KQ783편 항공기가 조금 늦게 도착하여 31분이 늦은 18시 31분 출발하여 활주로로 이동을 하여 18시 37분 하늘로 날아오르며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땅과, 하늘과, 물을 두루두루 거친 투어도 마지막을 고하고 케냐도 향합니다.
나이로비 공항 착륙 22:31
공항을 이륙하여 기내식으로 빵이 나옵니다. 먹는둥 마는둥 하고, 맥주한잔 시켜서 마십니다. 비행시간은 시간으로 보면 4시간이지만 시차가 잠비아쪽은 7시간, 케냐는 6시간이라 실제 비행시간은 3시간입니다. 가는 도중 뒤편 화장실 댕겨 오다가 맥주한캔 더 달래서 마시고 오니 어느덧 나이로비 공항입니다.
나이로비 공항 도착 22:48
케냐
아프리카 대륙 동부에 있는 나라로, 1895년 영국의 동아프리카 보호령이 되었다. 1920년 6월 인도양 연안이 케냐 보호령으로, 그밖의 지역이 케냐 식민지가 되었고, 1930년대부터 시작된 독립운동 끝에 1963년 12월 12일 독립을 성취하였다
정식명칭은 케냐공화국(Republic of Kenya)이다. 적도가 중앙 부근을 지나며, 남동쪽으로 인도양, 동쪽으로 소말리아, 북쪽으로 에티오피아와 수단, 남쪽으로 탄자니아, 서쪽으로는 우간다와 접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탄자니아·우간다와 함께 1967년에 창설한 EAC(East Africa Community:동아프리카공동체, 1977년 해체 후 2000년 재출범)의 회원국이다. 인도양에 면한 지역은 저지대를 형성하지만 내륙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고원을 이룬다. 수도인 나이로비는 1,676m의 고원에 있다. 인구는 약 4700만명으로 한반도의 6배 크기다.
이런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기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코끼리·사자·기린·얼룩말 등의 세계 야생동물의 보고이다. 고원지대에는 나이로비 국립공원 등과 함께, 각지에 야생동물의 보호지구가 있으며 세계적인 자연보호구역으로 보호되고 있다. 나이로비 북쪽에 위치한 케냐 산이 최고봉이며 높이는 해발 5199m에 이른다. 행정구역은 7개주(province)와 1개 행정구(area)로 되어 있다. 케냐의 경제는 주로 농업에 의존하는데 커피와 화훼가 발달되어 있고, 원주민들은 목축에 의존하여 생활한다. 또한 원시적인 자연환경에 의존하여 관광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개관
정식 명칭은 케냐 공화국(The Republic of Kenya)으로 영연방의 하나이다. 인도양 연안 해안선의 길이는 538㎞이며, 면적은 58만 367㎢, 인구는 4592만 5301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나이로비(Nairobi)이다. 종족 구성은 키쿠유족 22%, 루야족 14%, 루오족 13%, 카렌진족 12%, 캅바족 11%, 키시족 6% 등이며, 기타 약 43개의 부족이 있다. 공용어는 영어와 스와힐리어가 사용되고, 종교는 개신교 45%, 천주교 33%, 이슬람교 10%, 토착종교 10%, 기타 5%이다.
최근 공업과 서비스 부문이 급속히 신장되고는 있으나, 커피·차·축산 등 농업 분야가 주수입원이며, 경제인구의 약 80%를 점하고 있다. 뚜렷한 광물자원이 없는 나라이나,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여 주요 외화소득을 이루고 있다.
2007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92억 9900만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845 달러이다.
정부 형태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224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렌지민주운동(ODM), 케냐-아프리카민족동맹(KANU), 케냐민주회복회의(FOROKENYA), 케냐민주당(KDP), 사회민주당(SDP) 등이 있다.
약사
1498년 이후 포르투갈인이 진출해 왔으며, 19세기에 들어와 1888년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이 지역의 무역을 독점하며 세력을 키웠고, 1895년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케냐의 독립투쟁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1963년 12월 12일 영국 식민지통치로부터 독립한 뒤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비교적 안정된 정권을 이룩하고 있다. 기본 외교정책은 우경중립으로 1963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여 비동맹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나, 미군기지 허용 등 서방제국과의 협력관계를 긴밀히 해 왔다.
또한, 아프리카에서의 정치적 비중이 커 아프리카단결기구(OAU) 등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며, 복수정당제 폐지에 반대하는 재야세력, 종족간 갈등 등의 정치적 문제와 경제성장 둔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으나 부족간 세력균형을 유지하면서 현실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자유경제체제에 입각한 경제개발정책을 함으로써 아프리카 지도국의 위치를 유지해 왔으며, 1963년에 제정한 헌법을 1992년에 개정하면서 다당제하에서 최초의 총선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2007년 12월 재선에 성공한 키바키(Kibaki) 대통령이 정부를 이끌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3년 12월 케냐가 독립한 즉시 국가로 승인하였으며, 1963년 8월에 개설한 총영사관을 1964년 2월 7일 대사관으로 승격하였다.
비동맹국가로서의 입장 때문에 분단국 불개입원칙을 유지하여왔으나, 1982년 2월 전두환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유엔·비동맹회의 등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하는 등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남남협력의 차원에서 실질적 협력관계를 증진하기 위하여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으며, 경운기·자동차 등을 무상원조하는 한편, 기술연수생 초청훈련과 전문가 파견, 태권도사범 파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양국은 1973년 9월에 의료협력 협정을, 1977년 8월에 무역 협정을, 1980년 12월에 문화 협정을, 1981년 1월에 항공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대 케냐 수출액은 2015년 현재 2억 5653만 달러로 주종목은 합성수지, 화학제품, 타이어 등이며, 수입액은 2830만 달러로 동과 커피가 주종목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03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15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대우·삼성·LG전자 등이 진출해 있고, 1,150명의 재케냐 교민이 있다.
한편, 북한은 1975년 5월 수교 합의를 발표한 바 있으나, 상주공관 설치 불허 등 공식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 2008년 9월 26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주 남아공화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양측은 1973년 10월에 무역 협정을, 1976년 5월에 경제기술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북한의 대 케냐 수출액은 2007년 현재 62만 4000 달러로 주종목은 양탄자와 모자, 가방 등이며, 수입액은 144만 2000 달러로 커피와 귀금속 등이 주종목이나 규모는 아주 미약하다.
나이로비
※ ‘엔카레 나이로비(Enkare Nairobi, 마사이어로 시원한 물)’라는 작은 연못에서 지명 유래
- 면적 : 696km2(서울 면적의 약 1.1배)
- 인구 : 약 439만 명(2018, CIA 잠정)
- 평균 해발고도 : 약 1,661m
- 연평균 기온 : 13~25℃
나이로비란 마사이어(語)로 맛있는 물, 차가운 물이라는 뜻이다. 인도양 해안의 몸바사항(港)으로부터 철도로 약 530km 떨어진, 케냐 중남부의 해발고도 1,676m의 고원에 있다. 적도에서 남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까닭에 연평균 기온은 17.9℃ 정도이며, 연강우량은 920mm 내외로 3∼5월이 우기(雨期)이다.
서쪽으로는 리프트발레(아프리카大地溝帶), 북서로는 약 4,000m의 아버데어산맥이 있는데, 시내의 서부 및 북부의 키쿠유고원은 이 아버데어산맥 남단부 남동사면의 일부로, 서쪽은 주로 유럽인, 북부는 인도인의 거주지였다. 또 키쿠유고원을 가르며 동류하는 나이로비강은 저지대를 형성하며 나이로비시의 핵심부를 이룬다. 즉, 중동부에 있는 나이로비역 서북쪽은 상업·문화지구, 북동∼동쪽은 아프리카인 거주지구, 동∼서쪽은 공업지구로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마사이족, 키쿠유족의 거주지였다. 도시로서의 나이로비의 역사는 9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인도양 연안의 몸바사에서 우간다의 빅토리아호 연안을 연결하는 철도건설을 위해 1896년 이곳에 전진기지가 설치되었다. 1899년 나이로비까지 철도부설이 완공되었고 그 후에도 기지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지방의 행정기관들도 마차코스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졌다. 기후의 쾌적함과 원활해진 교통조건 때문에 백인 입식자(入植者)들은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화이트 하일랜드’라는 광대한 지역을 형성하여, 동아프리카의 중심적 대도시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케냐의 정치 중심지이고 통신·상공 및 학술·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 도시에는 케냐 정부의 각종 건축물 외에 1967년까지는 동아프리카 공동(EACSO)의 본부가 있어서 동아프리카 지역의 경제 중심지적 지위에 있었다. 그후 동아프리카 공동 서비스기구가 동아프리카 공동체로 개편되어 지금은 동아프리카 철도공사와 동아프리카 항공공사 본사만 남아 있다. 그러나 기후가 서늘하고 상쾌한데다가 국제항공도 발달되었기 때문에 외국의 기업과 문화시설이 많고, 각종 국제회의가 열린다. 또 동아프리카대학의 일부, 코리돈박물관, 기타 국립의 각종 교육·문화·사회 시설도 있다.
교외에는 면적 114㎢의 나이로비국립공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야생동물이 보호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또 나이로비 전체가 동아프리카의 관광·탐험기지로서 알려져 있다. 시에서 동쪽으로 15km 지점에 있는 엠바카시에 있는 나이로비 국제공항에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로부터 각종 항공기가 기착하여 이 도시의 국제도시로서의 기능에 도움을 주고 있다. 철도는 남동으로 인도양 연안의 몸바사, 서쪽으로 우간다의 빅토리아호 연안, 북쪽으로 케냐산 북서산록의 나뉴키와 이어진다. 또 간선도로는 북동으로 42km의 시카, 남동으로 45km의 몸바사, 남쪽으로 80km의 카지아도, 북서로 156km의 나쿠루와 이어진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 그만큼 뱅기장이 크다는 애기지유~
나이로비 공항 출발 00:27
벵기에서 내려 통로를 따라 나갑니다. 길게 늘어선 줄 뒤편으로 섭니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앞선 이들이 빨랑빨랑 수속을 마치고 가야하는데 인원도 많고, 비자 발급까지 받아야 하니 엄청 시간이 걸립니다.
이사장님 시커먼 흑인 아저씨 만나고 악수 하고 이야기 하더니 기대를 해봅니다. 혹여 빨리 나갈수 있나~
코이카 요원으로 울나라도 댕겨갔다나 하는 직원으로 노력은 해보았지만 비자발급받는 창구가 앞쪽 밖에 없어 어찌할수 없다는 전갈을 받고는 포기 했구만요 ~~
오랜시간이 지나고 우리도 차례가 와서 여기도 50불씩 비자비 지급하고 손도장 찍는대 우짜 나는 안 찍는 갑유 ~~ 너무 착해 보이는 갑지유 ~
우쨋든 뱅기가 도착하고 1시간 반가량이 걸려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우리짐만 빙글빙글 돌아가는 짐을 찾아 각자 확인하고 나오니 케냐의 김충학이고 하시는 말씨가 고운 케냐에서 20여년을 사셨다는 분이 마주 합니다.
옆구리에 찬 무선마이크가 맘에 드는 군요 ~~
이분은 호텔로 이동하는 짧막한 시간에도 케냐에 대한 것에 대해 애기 합니다.
나이로비는 해발 약1800m의 공원에 세워진 도시이며 일찍부터 미국의 뒤편에 서서 원조도 많이 받고 그 바람에 케냐에는 국제기구의 커다란 건물이 많다는 애기며 ~~
케냐에서는 “하라카 하라카 하이나 바라카, 빨리 빨리 하면 복이없다.”는 애기를 하며 될수 있으면 천천히 하라는 애기를 넌지시 애기 합니다.
시내를 다니는 교통수단은 승용차 버스도 많치만 대부분 오토바이와 택시가 다수이며, 아프리카는 52개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국어, 문자가 있는 나라는 대부분 없으며 이디오피아가 유일한 자국 문자와 자국어를 쓰는 나라라고 한다. 역시이래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 것 같다.
1800년대 유럽 산업혁명후 영국 프랑스가 점령했으며 지하자원(다이아몬드)과 노동력(17~23세)을 탈취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애기를 하며 공항에서 30여분후 호텔에 도착을 한다.
인터콘티넨탈 호텔 도착 00:55
이렇게 하여 잠비아 리빙스턴 공항에서 나이로비까지 오는 도중 하루가 지났다.
제17일차 12월 5일 목요일
기상 07:00
아침식사 08:00
기억이 가장 잘 나지 않는 호텔이다. 한밤중에 왔다가 잠만 자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본다.
나갈 때는 호텔 현관에서 좌측 문으로 나간다. 지그재그로 가게되어 있는 철창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니 호텔앞 관공서인지 군인들이 행사준비에 바쁘다. 국립묘지라고 한다.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간단히 찍고 호텔로 들어오는 대 출입문을 굳게 지키고 있는 경비원들 커다란 세퍼트가 으르렁 댄다. 에고 공연히 나간 것이 아녀 금시 후회가 된다.
검색대로 들어서며 무섭다는 표정을 지으니 검색요원들이 웃는다.
우쨋든 살벌한 동네다.
요기에서 가까운 소말리아 반군들이 자살폭탄을 가지고 가끔 쳐 들오기 때문에 경비를 삼엄하게 한다고 한다.
아침식사는 호텔 뷔폐식으로 베이컨, 소시지, 양송이 요리, 담뿍장 같은 콩요리, 계단 후라이로 잘 먹는다.
호텔출발 10:13
아침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 짐을 분리한다. 큰짐은 호텔에 맞기고 배낭에 쓸만큼만 짐을 싸서 나이바샤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도로옆 주유소 화장실 10:51~11:02
호텔을 지나며 버스는 춤을 추며 이러저리 출렁이며 간다. 속도는 낼 수 없다. 이도로가 가장 중요한 도로하고 하는대 공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리무중의 흙과 물이 혼합된 구렁텅이를 지난다. 중국에서 도로를 건설해주고 광산등 자원을 가져간다고 한다. 북쪽 수단을 거쳐 이디오피아까지 직선으로 연결할수 있는 도로라고 한다.
가이드는 우리가 가려고 하다가 취소한 잔디바르 섬에 대해서도 잠깐 애기 한다. 옛날 노예들을 끌고 가던 섬이라고 하며 그곳에서 노예의 3/1은 죽었다고 한다.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그 모습이 처참했을 것이다.
그 당시 영국은 남아공에서부터 북쪽으로 진격을 했고, 프랑스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먹어 들어왔다고 한다. 사하라 사막의 북쪽은 아프리카지만 중동권에 속하며 아직도 소말리아, 수단, 이디오피아는 내전이 계속 된다고 한다, 수많은 지하자원을 노린 강대국들의 이권개입으로 인한 내전이다. 수단은 석유가 많이나는 나라로 지금도 내전이 종식되지 않는 나라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식민지를 겪지 않는 두 나라가 있는데 이디오피아와 나이베리아라고 한다. 이디오피아의 시바영왕과 솔로몬 사이에서 메레릭 2세가 태어 났고, 유명한 배우인 나오미 킴벨이 이디오피아인이라고 한다.
흑인들의 가닥을 딴 머리는 95%가 가발이며 가늘수록 경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는 한달에 한번 감기도 어렵다고 하니 아고 가려워서 어떻게 산대유~~
아프리카는 과일이 많이 나지 않으며 나이로비는 해발이 높은 곳이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이 20도 정도로 살기 좋다고 한다. 내륙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임에도 도로사정이 매우 열악한 편이며 지나는 길옆으로는 감자, 옥수수, 콩을 재배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며 양을 치는 목동들과 거리를 거니는 당나귀도 많이 보인다. 도로변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과일을 파는 여인들, 푸줏간도 보인다. 질컥거리는 거리에는 각종 물건과 채소류등 장터가 여기저기 보이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어느 곳이던 똑 같은 것 같다.
케냐의 상권은 주로 백인들이 쥐고 있으며 영국 식민지때 끌어다 쓰던 인도인들이 그밑에서 일을 배우다가 영국이 철수를 하며 대부분 큰 상권을 쥐고 있단다.
케냐는 남한의 6배에 크기로 일인당 국민소득이 1600불로 빈약하다고 한다.
1960년대 영국으로 독립을 했으며 스와질리어, 영어등 4개 언어를 쓰며 숫자 개념이 떨어져 셈이 느리며 중산층이 없고 빈곤층과 부유층으로 나뉜다. 농축산품은 싼편이며 공산품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케냐는 커피가 유명하며 관광산업이 발전되어 있고 한국 교민은 약1200명으로 선교사가 50%, 대기업, 공관직원, 일부 자영업을 하는 가구가 200여가구중 가발공장과 일식당을 많이 한다고 한다. 우리 가이드님처럼 여행사를 하시는 분도 있고 ~~
여행은 돈, 시간, 건강, 관심이 있는 분들이 하는 것으로 아프리카는 연 2000명 정도로 아직 한국 관광객은 적은 편이라 한다.
케냐는 1부다처제로 4번까지는 결혼이 허락되며 집은 약 10억(1에이커, 1200평)정도 한다고 한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와 케냐의 마사이마라는 한 줄기로 이어졌으며 전반기는 세렝게티, 후반기는 마사이마라가 동물을 찾기 좋다고 한다.
이런 애기를 하며 마구 흔들리는 버스에 승차하여 40여분후 주유소 화장실에 도착을 한다.
이분들 아프리카 마사지라 하며 참으라는 애기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전망대 12:23 ~12:33
화장실을 들러 가는 길에도 길거리 상점들, 양치기, 당나귀는 많이 보인다. 널찍한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당나귀, 동물의 가죽을 걸어 놓고 사가길 기다리는 사람등 길거의 모습은 살고자 하는 이들의 삶터이다. 마을의 모습은 멀리서 볼 때 우리 시골마을과 흡사하며 가옥의 형태도 비슷하다.
복잡하고 도로공사가 진행중인 곳을 지나며 도로는 폭은 좁아졌지만 상태가 좋아진다.
잠시 서서 옥수수도 사서 맛을 보고 달리면 주유소 화장실에서 20여분후 그레이트 밸리하고 하는 지구의 가장 길고 깊숙한 골짜기라고 하는 곳을 보기 위해 작은 전망대에 선다.
여기도 기념품 파는 분들이 많다. 여기서 모자 몇 개 사신 것으로 안다.
전망대 아래 화장실 잠시 들러보니 옛날 우리화장실과 흡사하다.
그레이트리프트밸리
[ Great Rift Valley]
아시아 남서부 요르단에서 아프리카 동남부 모잠비크까지 뻗은 세계 최대의 지구대. 화산작용으로 생성됐으며 동서 2열로 나뉨. 동쪽엔 사해 · 아카바 만 · 홍해 및 에티오피아 · 케냐 · 탄자니아의 수많은 호수가 있고 서쪽엔 앨버트 · 에드워드 · 키부 · 탕가니카 · 니아사 호 등 여러 큰 호수가 있음. 아프리카에선 곳곳에 고원도 형성. 중력 · 지자기의 이상이 뚜렷하고 지진이 잦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마사이마라와 나꾸루지역으로 넘어갈 때 보게 되는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2천 5백만 년 전 격렬한 지각 변동에 의하여 시리아의 남쪽에서 시작하여 홍해로부터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말라위, 짐바브웨까지에 이르는 폭35~60km에 길이 9천 6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구대로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초원지대다. 영화 ‘라이온 킹“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로 국한된다. 또한 오늘 날씨가 좋지를 않다. 갑자기 몰려든 구름대로 인하여 가까운 곳 밖에 볼수가 없어 아쉽다. 아래쪽으로 펼쳐지는 초원지대 넓고 끝이 없음을 느낄 수 있다.
레이크 나이바사 소파 리조트 (LAKE NAIVASHA SOPA RESORT) 도착 13:58
그레이트 밸리 전망대에서 서서히 내려선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지대가 너무 부럽다. 이곳이 그레이트밸리 계곡이다. 마을도 보이고, 좌측으로 커다란 호수도 보인다. 푸른하늘엔 흰구름이 떠가고, 멋진 풍경을 연출하며 한적한 시골을 달린다. 길옆으로 집채 만한 초가집처럼 생긴 선인장이 다수 나타나며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길가의 담을 이루는 길쭉한 선인장도 다수 보이고, 작은 마을을 지나며 길거리 상점도 보이고, 그레이트 밸리 전망대에서 1시간 20분을 달려 버스는 도로에서 우측으로 접어든다. 잠시후 도착한 레이크 나이바사 소파 리조트는 멋진 공원이다. 역시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면 들어간다. 긴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역시나 물수건과 오시느라 수고했다고 쥬스 한잔씩 권한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널찍한 식당이 나온다. 식당 밖 정원에는 엄청난 크기의 선인장이 즐비하고, 정원 호수가에는 기린, 임펠라, 가젤이 노는 것이 보인다. 여기도 초가집 형태의 지붕을 한 구조로 우측으로 우리가 머물 숙소 건물이 일렬로 서 있다.
인도인이 경영하는 커다란 롯지다.
중식 14:10 ~15:20
롯지에 들러 일단 밥부터 먹는다. 식사는 뷔페식으로 먹거리가 많다. 빵, 불을 지펴 놓은 음식들, 과일류, 이쁘게 만든 후식용 아스크림류, 된장콩, 밀전병 같은 널찍한 빈대떡, 잘익힌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샐러드, 각종 소스류(아주 매운것도 있다), 나물 무침, 꼬불꼬불한 요상한놈, 생선튀김류등 인도풍이 물씬풍기는 음식들이 많다. 아침 대충 먹고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밥 먼저 배불리 먹는다.
롯지 출발 15:40
식사가 끝나고 방 배정을 한다. 킹사이즈가 하나 있다고 누가 쓸것인지 고른다. 만장일치로 우리가 당첨이 됐다. 뭔 침대걸대 선택을 했을까?
우리는 12호로 초가집 2층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후히히히 침대에 원앙새 한쌍이 앉아 있다. 약간의 과일도 있고,~~남미 칠레 물개섬과 모래투어 끝내고 사막에 있던 호텔에서도 이와 똑 같은 원앙새가 있었는데 이넘이 오랜시간이 걸려 이곳으로 날아왔다. 그때 저녁 해넘이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멋진추억거리로 생생하다.
롯지 숙소로 가는 길에는 높다란 선인장들이 꽉 들어 찾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화원에서 볼수 있는 란타나 꽃이 즐비하다. 다육이 동글동글한 선인장도 꽃을 피워 아름답다.
뒷문을 열고 나가니 에고 정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호숫가에서 나뭇잎을 뜯는 기린이 3마리 보이고 앞쪽으로 가젤, 임팔라등 많은 동물들이 뛰논다. 한편에는 관리인이 망을 보는 모습도 보인다. 언제 나갔는지 천안 손병일님 카메라에 멋진 모습 담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하여 방을 받아 잠시 구경을 하고 나간다.
반달섬 선착장 도착 16:05
롯지를 나가 좌측으로 가면 길은 좋지를 않다. 울퉁불퉁 춤을 추며 간다. 좌측으로 울타리 넘어 커다란 롯지들이 보이고 하우스에는 수출용 꽃들을 키운다고 한다. 우측으로 초가집 형태의 선인장지대를 지나고 잠시 더 가면 마을 사거리를 지난다. 여기도 노점상의 옷가게, 기념품가게, 식재료를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잠시 더 가다가 좌측으로 들어가면 롯지에서 25분후 밤섬앞 선착장에 도착을 한다.
밤섬 선착장 모트 출발 16:12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촬영지라고 하며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은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며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의 빅5를 찾는 드라이브 게임이 유명하다고 하다. 현재 멸종위기에 있는 코뿔소는 보기 어렵다고 하며, 표범은 눈물자욱이 없으며, 치타는 눈물자욱이 턱밑까지 선명하게 있어 구분을 할 수 있다 한다.
우기는 3.4.5월이며, 건기는 10.11.12월로 현재는 건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선착장 주변으로 커다란 새들이 여러마리 보이는 데 펠리컨도 보이고 시커먼새는 그지새라고 한다. 뭘 훔쳐 먹었나 이름도 이상타 ~~
일단 구명복을 입구 모트를 탄다.
밤섬(Crescent, 크레센트) 도착 16:39
보트는 호수의 죽은 나무사이를 빠져 전속력으로 달린다. 호수 좌측가로 달리면 첫 번째로 맞이는 하는 것이 하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입크기 자랑한다. 한동안 하마의 조롱 떠는 것을 보고 다시 우측 앞쪽에 보이는 밤섬(크레센트)으로 달린다. 한쪽은 육지와 닿아 있는 반도처럼 생긴 땅이라 하며 백인소유로 입장료를 받고 개방을 하는 곳이다.
모트는 물살을 가르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35분후 밤섬에 닿는다.
밤섬 출발 17:16
밤섬에는 커다란 기린, 얼룩말, 누우, 톰슨가젤, 임팔라등 숫자가 많다.
누우는 말상을 하고 있으며, 뿔은 소뿔을 닮았으며 다리는 염소다리, 꼬리는 말꼬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정확히 확인하기는 멀어서 하기 어렵다. 이들 동물들은 보호를 받고 있는 동물로 군데군데 초소가 있는 것이 보인다. 커다란 비단뱀도 한 마리 있고, 널찍한 구릉지대의 푸른 초원을 누비는 야생동물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40여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저멀리 보이는 홍학인지 많은 무리 방향으로 향하다가 다시 돌아와 보트를 탄다.
밤섬 선착장 도착 17:54
보트는 우측으로 돌아간다. 호수가에는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보이고, 점점 더 돌아서 가면 밤섬에서 보던 홍학무리가 있던 곳으로 간다. 앞쪽으로 다가가니 훨훨 군무를 이루며 나른다. 더러는 꿈적도 않고 먹이를 찾기도 하며, 이 무리들은 홍학이 아닌 펠리칸이다. 커다란 부리가 선명하다. 엄청난 숫자의 펠리컨의 무리다.
잠시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앞쪽 모트를 몰던 분이 물고기를 하늘도 던진다. 이것을 받아 먹는 검은 새가 그지새로 보인다.
이제 돌아오는 길은 직선으로 달리기 때문에 갈 때 보다는 시간이 덜 걸린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 하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17시 54분이다.
롯지 도착 18:22
밤섬 선착장에 도착하여 잠시 지체하고 17시 59분 출발하여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롯지로 돌아오니 18시 22분이다.
저녁식사 19:20 ~20:30
롯지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는 역시 먹거리가 많았고, 오늘 이동하느라 힘들었겠지만 오후에 밤섬 동물구경하느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탓인지 잘 한거 같다.
취침 21:20
식사를 하고 밤이 어둡자 경비원들이 대동을 한다. 하마가 나와서 위험하다고 한다. 롯지에 도착해서 저녁먹으러 나올 때 하마에 놀라 혼쭐이 낫다는 몇 분이 있기에 간단히 주의 사항을 들은 후 숙소로 향한다. 에스코트 미(구조)를 외치면 이들이 도와준다고 한다.
우쨋든 우리 마님은 숙소로 돌아와 망고 맛있다고 해치우고 주무신다.
제18일차 12월 6일 금요일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사파리 가는 날
기상 05:30
아침에 일어나니 공기가 상쾌하니 좋다. 롯지는 경치도 좋고 방도 깨끗하니 좋았으며 화장실, 샤워시설도 좋았다. 와이파이도 잘됐던 것 같다.
특히나 침대를 둘러치는 모기장이 모기를 막아 주었지만 실제로 모기는 한두마리 정도 보였을까!! 우리나라 여름철 바글대는 모기 숫자에 비교하면 모기는 없는 편이다.
아침창문을 여니 기린이 앞 마당에 앉아 있고 여유있게 임팔라 가젤등이 노닌다.
아침식사 06:30
오늘은 이사장님 아침 일찍일어나 최여사님과 함께 정원에서 임펠라 앞에두고 사진두 찍었지유 우리는 방 베렌다에서 마님 찍었는데 ~~
밤에 하마가 문 드리고 깨운 방도 있고, 가까이 하마가 지나는 모습도 본분들이 있다고 한다. 우쨋든 동물이 우리와 가까이 있었던 맞는 거 같다.
아침식사 빵, 과일등으로 간단히 먹고나서~~
롯지 출발 07:38
오늘은 장시간을 이동하여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까지 들어가는 날이다.
4대의 짚차로 나누어 탄다. 이 차량들은 마사이마라에서 게임드라이브를 같이 할 차량들로 영어를 잘하는 기사님이 우리 이사장님하고 타고 우리는 키가 비교적 큰 기사님 차량에 탑승한다. 제천선생님, 손병일 내외분, 우리내외 6명으로 4호차다. 사랑 아프리카 여행사의 표지를 붙이고 출발한다.
기념품 판매졈 화장실 09:55 ~10:38
롯지를 출발하여 어제 밤섬가는 방향으로 아프리카 마사지를 받으며 진행한다. 이길 끝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아스팔트길로 올라서니 길이 좋다. 좌, 우로는 널찍한 초원지대로 낮은 산들이 멀리 보이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과 양떼들 한없이 넓고 푸른 초원이 참으로 부럽다. 농지는 가끔 길옆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거의 볼수 없으며 대부분 목초지로 방목을 하는 목동과 가축뿐이다. 넓고 넓은 푸른 초원지대를 어느정도 달리면 원주민들의 노점상이 있는 마을을 지나 차는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간다. 좌측으로 커다란 위성안테나가 보이는 지점으로 깊숙이 파인 골짜기도 보이고 넓은 평야지대에는 역시나 방목을 하는 소떼가 주류다. 철길이 지나는 것이 보이고 원숭이가 길을 건너는 장면을 목격하고 롯지를 출발하여 2시간 15분이 지난 후 커다란 마을앞 기념품가게에 멈춰선다. 여기에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고 한동안을 기다려 후발 차량들이 도착을 하고 쉬었다 간다. 여기 기념품가게에서 코끼리 흥정하던 우리마님은 결국 포기하고 차량에 탑승한다.
마사이 마을 12:20 ~13:05
마이족의 망토와 지팡이는 떼어놓을수 없는 소지품인가 보다. 멀리서 봐도 마사이족은 이래서 알수있다. 커 보이기 위해서 망토를 걸친 것 같고, 야생동물을 물리치기 위해서 지팡이는 필수 인 것 같다. 목동들은 혼자는 없는 것 같다. 주로 3명이상이 모여서 소떼들을 돌본다. 큰 마을 기념품 가게를 출발하여 간다. 상당히 널찍한 평야지대 조금씩 들락날락 스미스한 곡선을 이루는 구릉지대를 지난다. 또 다시 끝도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 가끔씩 마이족 마을이 보일뿐 거칠 것 없는 케냐의 평원지대를 지난다.
1시간 20여분을 이렇게 진행을 하면 포장도로는 끝이 나고 현재 도로 공사 중인 우측편, 좌측편으로 비포장길을 따라 진행하여 20여분후 마사이마을에 도착을 한다.
마사이족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 경계의 가시나무가 많은 초원에 거주하는 주민.
나일로트계(系) 흑인종이다. 평균 173 cm의 큰 키에 고수머리, 단정한 용모에 암갈색 피부가 특징이다. 남자는 송아지나 염소가죽으로 된 케이프를 걸치고, 여자는 케이프나 스커트를 착용하며, 머리는 붉은 흙으로 굳힌 독특한 모양의 헤어 스타일로 꾸민다. 주거는 반원형의 낮고 작은 진흙집으로, 우기(雨期)에는 모피(毛皮)를 지붕에 덮는다. 남자들을 중심으로 몇 가족이 작은 마을을 이루어 100∼200마리의 소 외에도 염소 ·양 ·당나귀 등을 사육한다.
농경은 하지 않으며, 소의 생혈(生血) ·젖 ·고기를 식용한다. 소는 그들의 독점물이라는 부족의 신화(神話)에 따라 부당하게 소를 소유하고 있는 다른 종족으로부터 약탈하여 오는 것을 의무로 생각한다. 토테미즘을 신앙하고, 씨족외혼(氏族外婚)을 행하며, 사회조직은 남자를 중심으로 한 연령집단으로 이루어진다. 남자는 15세 전후에 할례(割禮)를 받은 다음 연령집단에 가입하여 전사(戰士)가 된다. 전사는 소의 약탈과 다른 종족의 습격을 방어하는 것이 임무이며, 타조의 깃털로 머리를 장식하고 긴 창과 방패로 적과 용감하게 싸운다. 전사는 미혼여성에 대한 성적 자유, 우유와 쇠고기 등을 어느 가정에서나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누군가의 제안에 의하여 200불을 지불하고 잠시 들른 곳이다.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추장이 나와서 뭐라 말을 하면 이사장님이 통역을 하곤하며 진행하여 전통의상을 입은 마사이족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춤을 추고, 깡충깡충 높이 뛰기를 하며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헐벗은 아이들이 위쪽에서 구경을 하고~~
잠시후 젊은 친구가 쓰고 있던 사자탈 나에게 씌우고, 팔에 걸치고 있던 지팡이인지 뭔지 건네주니 이거 지팡이 구불텅하니 휘여서 쉽게 착용이 안 된다.
잠시후 전통 혼례를 한다고 우리팀 가장 좌상이신 남창우님이 대표하여 마사이족 아릿다운 아가씨와 혼례를 올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추장의 안내에 따라 마사이족이 사는 방을 구경하는데 작은 움막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물이 고여 간신히 피해서 들어가니 협소하기 짝이 없다. 잠자는 곳 우찌 저기서 잘까 싶고, 부엌은 구멍뚫린 솥같은 것이 하나 있고, 작은방이 하나 더 있으며 나오며 좌측으로 화장실인지 뭐 들어가보지 않아서 알수 없었고, 천장은 나무로 얼기설기 우리네 옛날 헛간 짓듯이 했는데 그을음에 시커멓게 변색이 되어 있다.
저기서 어떻게 저렇게 많은 애를 낳고 사는지 거참 신기하다.
잠시후 밖으로 나와 원주민들이 불피는 시범을 보이고 그 사용한 나무 20불에 사라고 하니 그거 뭣에 쓰려고 사남 ~~
이들은 남자는 가족을 지키는 일을 할뿐 평소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소를 돌보는 일은 한다. 맹수가 소들을 덮치면 싸워야 하니~~
여자들은 생계를 책임지며 일을 열심히 해야 하며, 일부다처제로 4명의 처를 둘수 있으며 아내는 일하는 능력에 따라 소 10마리에서 그 이상을 주고 데려 온다고 한다. 장인 되시는 분은 그 밑천으로 장가 한번 더 든다나 뭐라나~
시집온 아내는 맨 처음로 살집을 지어야 하며 그야말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남존여비 사상이 아직도 통하는 곳이 이곳이다.
마사이 마라 공원입구 도착 13:12 ~13:28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
약자로 MMNR이다. 면적은 1,510㎢이다.우리나라 제주도 면적과 비슷하다. 1974년 국립보호구로 지정되었다. 빅토리아호(湖)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보호구역이다. 탄자니아에 위치한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의 수렵금지구역 북쪽과 이어져 있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온 마사이족(族)과 마사이강(江)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2만 5000㎢에 달하는 마라-세렝게티 생태계의 북서부 지역에 해당한다. 남쪽으로 세렝게티 공원, 동·서·북쪽으로 마사이 대목장(pastoral ranch)과 맞닿아 있다. 주요 강으로 샌드강(Sand R.)·탈레크강(Talek R.)·마라강(江)이 흐르며 주로 트인 목초지로 이루어진다. 남동부는 특이하게 아카시나무 숲을 이루며, 서쪽 경계지역에는 리프트 밸리의 에소이트 올루롤로 절벽(Esoit Oloololo Escarpment)이 있고 물에 접근하기 쉬운 이 부분의 습지대에 야생동물이 집중적으로 서식한다. 나이로비에서 224km 떨어진 보호구의 동쪽 끝 지역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7~10월 동안 누(Wildebeest), 얼룩말, 톰슨가젤 무리가 남쪽의 세렝게티 초원부터 북동쪽의 대목장 부분에 있는 로이타 평원(Loita plain)까지 들어와 산다. 누, 가젤, 얼룩말, 버펄로, 나일악어, 임팔라, 코끼리 등 야생동물 600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해마다 수많은 동물이 마사이마라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를 오가는 모습은 큰 관광 자원이며 케냐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
영국 BBC 등 다양한 매체에서 세계 최고의 여행지 목록에 이름 올리는 곳이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있다. 드넓은 초원 지대이며 아카시아 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풍성하게 자라는 곳이다.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에서 열기구 체험을 할 수 있다. 열기구를 타고 40~50m 상공을 날며 웅장한 초원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바람이 세지 않는 이른 아침에만 타볼 수 있다. 자연과 함께 원시의 삶을 고집하는 마사이 원주민 마을도 둘러볼 수 있다. 마사이족 전통 환영 의식과 함께 부족장의 집을 방문한다.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는 테마파크가 아닌 말 그대로 야생이 펼쳐지는 곳으로, 사파리 차량에 내리거나 호텔의 안전 구역을 벗어나면 동물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마사이족 마을에서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우측, 좌측으로 비포장길을 따라 7분 정도를 더 가면 마사이 마라국립보호구에 도착을 하게 된다.
굳게 닿힌 문앞에서 입장권사느라 대기 하고 있는 시간에 마사이족 아짐들이 기념품사라고 접근을 한다. 우리에게는 별로 쓸모 있는 물건이 아니기에 별 흥미가 없다.
창문을 대부분 열어주지 않고 있다가.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 하나 찾아서 보여주니 매우 신기해 하며 쳐다본다. 1달러라고 하며 달라니 히히히 웃는다.
역시 문명과는 동떨어지신 분들이다.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 안 롯지(KEEKOROK Lofge) 도착 14:10
국립보호구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서도 끝없이 들어간다. 양쪽으로 널찍한 구릉지대를 지난다. 참으로 푸른 초원이 한없이 부럽다. 우리나라도 이런 공원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제주도 면적 만하다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케냐 마사이마라와 남쪽에 위치한 탄자니아의 세링게티를 합치면 얼마나 클까?
마사이마라 면적은 1,510㎢와 세렝게티 면적 1만 4763㎢을 합치면 1만 6천 300㎢ 거기에세링게티와 붙어 있다는 응고롱고까지 합하면 제주도의 12배 상상이 안가는 크기다. 이 드넓은 초원에서 이들 야생동물들이 자유로이 보호를 받고 살고 있으니 행복한 아프리카의 야생동물들이다.
이자원만 가지고도 앞으로 충분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무한한 자원과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는 케냐와 탄자니아다.
공원안 비포장 길을 따라 들어가는데 좌측으로 치타가족이 나타났다. 우리는 멀리서 볼수 있었지만 앞차는 앞에서 정확히 잘 봤다고 한다. 다시 공원으로 들어가니 아고 이것이 뭐여 커다란 코끼리 무리들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드디어 야생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코끼리 무리들이 지나는 것을 보고 더 달려 가면 잠시후 오늘 우리가 묵게 될 롯지다. 여기도 앞에서 원주민 복장을 한 커다란 분이 안내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역시 물수건과 쥬스를 주며 반긴다.
이후 방을 배정(우리방은 1209호) 받고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 14:25 ~14:55
점심식사는 군 감자, 빵, 야채류, 소스류등 다른곳에 비해 식사가 못하다.
우쨋든 식사는 30여분만에 끝나고 ~~
게임드라이브 출발 16:05
각자 원주민 복장을 한 커다란 분 뒤를 따라 방으로 향한다. 방호수가 우측으로 진행하여 차례로 된 것이 아니라 1299호가 그 중간에 끼어 있고 좀 어수선 한 것 같다. 잠시 후 도착한 우리방은 양쪽으로 나뉘어진 독립가옥인대 시설이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립공원안 시설물 치고는 형편없다. 인도인이 맡아서 운영하는 롯지라고 하는데 화장실 변기는 덜커덩거리지, 냉장고문은 열러서 닫히지를 않지, 커피는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치 아고 우리가 사용한 호텔이나 롯지중 가장 빈약한 곳이다. 나중에 들어온 젊은 관리인에게 커피 갔다가 달라고 혔는데 끝내는 가져오지 않았다.
이렇게 방을 시원찮이 해놓구도 룸보이 아자씨 팁달라고 안나가서 2불을 줬다.
게임드라이브 후 롯지 복귀 18:42
우쨋든 방을 확인하고 잠시 쉬었다가 게임드라이브 길에 오른다. 방을 나가니 수영장이 보인다. 수영장에 낙엽이 떨어져 사용은 불가하며, 차량이 출발하기 전 천안 박선생님이 하마를 보고 왔다고 하여 몇 분 남지 않은 시간을 이용하여 부리나케 테크길을 따라 웅덩이에 도착하니 역시 여러놈의 하마들이 진을 치고 놀고 있다. 낮이라 살랑살랑 귀를 흔들고, 엉덩이 춤추고, 입크기 재고 재롱을 부린다. 부리나케 뛰어서 롯지에 도착하여 차량에 탑승하고 롯지를 출발한다. 우리차가 선두로 달려간다. 간간이 내리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장의 올려진 문사이로 사방을 살피며 진행을 한다. 얼마를 가다가 무전을 받았는지 기사님이 차를 되돌려온다. 되 돌아 오는 길에 혹등 멧돼지도 보고, 저멀리 어슬렁 대는 놈은 분명 버팔로 무리다. 부지런히 달리는 기사님한테 세워 달라는 말을 못하고 잠시후 여러대의 차량이 서 있는 나무아래로 접근하니 나무에 걸터 앉은 표범(레오파드)이 낮잠을 자는지 얼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애를 태웠지만 끝내 얼굴모습을 카메라에 담지를 못했다. 방향을 바꾸어 반대편으로 가니 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표범을 보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멀리서 풀을 뜯고 있는 버팔로의 모습을 카메라 담고 쌍안경과 커다란 두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4호차 우리기사님 라이온이 앞에 있는지 빠르게 달린다. 먼저 도착한 차량의 무전을 듣고 도착한 것이다. 여러마리의 라이온(사자)이 지켜보는 아래쪽에서 그 동태를 살피며 있는 사이 우리다른 차량들도 도착하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아짐들 5달라를 연발하며 라이노를 외쳤지만 이넘은 보이지 않는다. 우쨋든 돌아나오며 다른 무리의 사자무리를 향하다가 바위에 앉아 있는 사자무리가 나와서 이넘들 보러 바위 앞까지 진출을 하고 다시 그 넘어까지 올라갔지만 이넘 코뿔소(라이노)는 보이지 않았다. 급히 무선 연락을 받고 돌아오니 사자가 내려다보고 있던 바위아래 진흙텅이에 우리 차량 1대가 빠져서 앞차 뒤에 오던 차가 합세하여 무사히 빼냈다. 기사님이 가만히 앉아서 꼼작을 안했다고 우리 님들 화가 났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 분 조치를 잘했다고 본다. 많은 사자무리가 내려다보고 있는 바위아래에서 안전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차량이 도착하고 여러명이서 힘을 합해서 무사히 차를 빼낸 것은 안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었던 같다. 으르렁 대는 사자가 안무서웠을 까 싶다.
이렇게 하여 게임드라이브는 라이노를 제외한 4개의 동물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롯지로 돌아온다. 4대의 덕을 쌓은 덕분이라고 한다. 간간이 내리던 비도 멈추었고, 뉘엿뉘엿 서편으로 지는 해가 만든 노을 바라보며 롯지로 돌아는 길은 행복했다. 그 널은 초원을 질주하며 즐린 게임드라이브의 맛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기다. ~`
저녁 식사 19:30
롯지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려 한다.
식사하기 전 재빨리 하마가 놀고 있는 웅덩이로 달려 갔다.
하마가 어슬렁 어슬렁 물밖으로 나와 언덕으로 풀을 뜯으러간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여 밝은 화면의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어도 하마의 전 모습을 볼수 있었다.
롯지로 돌아오자 날 리가 났다. 에고 두 번째 여권 분실사고다.
덜렁이 신여사가 여권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마님과 방으로 다시 가서 찾아 보았지만 없다고 한다. 오늘 타고 간 버스에 떨어졌는지 호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쨋든 오랜시간 후 도착한 차량을 수색했으나 여권과 가방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이사장님 얼굴이 굳어지며 케냐 사장한테 전화하여 이규현님 병원과 여권문제도 상의 한후 이제 완전 포기하고 식당으로 들어와 우리님들은 모두 식사끝내고 나간후 저녁식사를 한다.
때마침 토요일과 일요일이 걸려 여권도 할려면 월요일 까지 기다려야 하니 문제가 복잡하다고 한다. 일행과 같이 움직일수도 없고, 이규현님도 여권이 필요하니 킬리만자로도 갈수 없는 지경이다.
우쨋든 늦은 저녁을 가져다 상에 놓구 식사를 하려는 대 먼저 식사를 마친 이규현님이 천천히 식당으로 들어오더니 가방을 찾았다는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가방말구 여권이 있냐고 하니깐 있겠지뭐 한다. 우쨋든 여권이 든 가방은 옷을 옷걸이에 걸며 그 뒤편으로 떨어져 있더란 애기다. 한바탕의 소동이 끝나고 한숨을 쉬던 이사장님 맥주시키란다. ㅎㅎㅎㅎ
속 무지 썩었다. 금시 여권과 병원 취소하고 맥주마시며 애기하던 중 내일 일정을 1시간 당기기로 하고 케냐사장하고 통화하여 식당 기사님 문제 해결하고 카톡으로 넣으니 몇 개의 방에서 대답이 없다. 답이 없는 각자의 방을 두드려 출발시간을 1시간 당긴다는 애기를 한후 맥주 한잔 더하고 저녁식사를 끝냈다.
취침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23시는 넘었을기다. 게임드라브를 하며 기사팁 문제로 조금 말이 오갔지만 큰 문제는 아니니 오해를 푸시기를 바라며 내일을 기약한다.
제19일차 12월 7일 토요일
기상 05:00
식사 06:00
어젯밤 하마가 문을 두드려 손병일님 잠을 설쳤단다. 하마가 어슬렁어슬렁 문앞까지 온 것 같다. 대충대충 식사를 마치고 어제 그웅덩이로 향한다. 테크길 우측 개울건너로 커다란 코끼리가 어슬렁어슬렁 언덕으로 오른다. 잠시후 하마 웅덩이 앞 전망대에 도착하니 벌써 하마넘들 웅덩이에 들어가 코만 내놓고 있다. 부지런도 하지 벌써 식사를 마치고 수영을 즐기다니 살랑살랑 빠르게 흔들어대는 귀가 너무 귀엽다. 엉덩이도 씰룩씰룩 생각보다 매우 귀염둥이다. 입크기 잴 때는 경쟁이 심하다.
롯지로 돌아와 아직 준비가 덜된 기사님들 기다려~~
롯지 출발 06:50(오전 게임드라이브)
가지고 나온 짐은 모두 각자 짚차에 싣고 출발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곳은 오지 않는다.
롯지에서 조금 나가자 좌측 길 안쪽으로 한 마리 임팔라가 보이더니 좀 더 가니 삼거리 안쪽으로 여러마리의 임팔라무리가 보인다. 수놈은 뿔이 길게 나 있지만 암놈은 뿔이 없다.
차량은 우리가 공원 입구에서 들어오던 길을 따라 나간다. 역시 어제 코끼리가 보이던 장소에는 여러마리의 코끼리가 보이고 반대편 언덕으로도 코끼리 여러마리가 보인다. 이제 코끼리는 더 이상 애기 하지 말라고 하며 한동안 입구 쪽으로 나가다가 좌측편으로 차량이 넘어간다. 혹여 라이노가 나올세라 모두 기대를 잔뜩하고 천장의 열려진 문으로 사방을 살피며 덜커덩 거리는 차량에 의지해서 간다. 한동안 내려서서 소시지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던 차량이 다시 되돌아서서 위쪽 능선길로 올라서더니 잠시 속력을 내서 달려 좌측으로 내려서니 벌써 차량 몇 대가 치타를 향해 구경중이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치타는 작은 새끼3마리를 거느린 어미치타와 함께 4마리로 아쉽다. 멀리 꼬리를 바짝 올리고 무엇인가 주시하는 놈들은 분명 사자무리다. 치타는 대부분 꼬리를 축내리고 있는 밤면 사자는 올리고 있는 모습이 구분된다. 잠시후 먼저온 차량들은 이곳을 떠나고 우리차량은 무엇이 아쉬운지 기사님 가던 방향으로 천천히 내려서니 길 좌측으로 새끼 치타 3마리를 거느린 어미치타와 함께 4마리의 치타가 어슬렁 어슬렁 좌측 언덕을 통해서 숲을 향해 간다. 금시 없어진 치타는 잠시후 반대편 언덕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산아래 있던 가젤들은 꼬리를 흔들고 치타를 경계하고, 커다란 토피는 여러마리가 무리지어 있다. 토피는 영양의 일종으로 소과라고 한다. 임펠라가 아닌 토피라고 기사님은 몇 번이고 애기를 한다. 한동안 기다리고 있자니 어느새 반대편으로 올라간 치타 4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더니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여 금시 숲속에서 무엇인지 한 마리를 물고 길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 보인다. 이때 기사님도 같이 본 것이다. 전속력으로 달려 선착순 1번으로 금시 달려 바로 앞에서 벌어진 치타의 사냥감을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보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금시 우리 차량들 달려오고, 멀리서도 이광경보러 몰려든다.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한 우리는 꼼짝않고 30여분을 기다리며 촬영을 했다. 치타가 노린 것은 토피하고 섞여 있던 임팔라였다. 임팔라 한 마리가 치타의 아침 식탁에 올려진 것이다 전속력을 다하여 달려서 임팔라의 목을 물어 숨통을 끊은 어미는 숨가쁜지 소명을 다하고는 언덕에 올라 한동안을 헉헉대며 쉬다가 새끼들이 어지간이 먹이를 먹고난 후 내려와서 먹이를 먹는다. 번갈아가며 망을 보며 식사를 하는 치타들 임팔라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우리는 이곳을 떠난다.
토피(topi)
소과의 초식동물로 엉덩이에 까망 점이 있다.
몸길이 140∼160㎝, 키는 약 1m로, 다말리스쿠스라고도 한다. 비교적 대형에 속하는 영양으로, 뿔은 완만하게 구부러져 있으며, 끝은 위를 향하고, 길이는 약 60㎝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와 응고룽고로, 마사이마라 등 사바나지역에 서식하며, 큰 무리를 만들지 않는다. 단독으로 행동하며 풀을 뜯는 경우가 자주 목격되며, 다른 영양류 섞여서 함께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초지를 따라 이동하지 않고 한지역에서 머물며 풀을 뜯는다. 임신기간은 235∼241일이며, 한배에 새끼를 1마리씩 낳는다. 일반적으로 건조한 기후와 일사(日射)에 강하다. 중부와 남부 아프리카 일대에 분포한다
잠시후 우리는 공원내에 있는 다른 롯지의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다시 나와서 롯지방향으로 이동하여 언덕빼기 길을 가다가 혹등멧돼지 보고, 좀 더 가서 임펠라 여러마리 노는 곳을 지나 어제 사자보러 가던 곳으로 가면 길 아래 이상한 짐승의 무리가 나타난다. 타조가 있고 귀가 종긋하니 크고 뿔이 양쪽으로 멋지게 올라간 토피비슷한 놈인데 누렁소를 닮았으며 엉덩이에 까망 점이 없다. 기사님 이놈들은 하드빌이라고 한다. 이넘들 구경하며 여러마리의 코끼리 무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잠시 코끼리의 커다란 몸집과 어슬렁 어슬렁 무리를 지어 다니는 놈들 구경을 한다.
이렇게 하여 어제 오후와 오늘 오전에 걸친 게임드라이브는 끝이 낫다.
기린은 보지 못했지만 여러군데에서 보았으니 아쉬울 것은 없고, 단 하나 그 귀하다는 코뿔소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빅5중 4개는 보았으니 여한은 없다.
또한 케냐 마사이마라와 탄자니아 세렝게티의 국경에 있는 악어와 하마의 서식지, 6월이면 누우떼가 건너는 장관을 볼 수 있다는 마라강(Mara river)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많은 것을 볼수 있었으며 대 평원에서 짚차를 타고 누비는 것만으로 크나큰 즐거움이 었다.
경비행기장 도착 10:40
어제 들어가며 좌측으로 보이던 건물과 사자를 보러 갈 때 옆으로 지나던 건물이 경비행장이다. 코끼리를 보고 잠시 올라서니 벌써 여러대의 차량들이 몰려와 있다.
경비행기 출발 11:17
넓은 마사이마라 초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잠시 기다려 내려앉는 경비행기에서 몇분이 내리고 선두로 우리 내외와 천안 박선생님 내외 4명이 탄다. 먼저 중국인 유럽인등 포함해서 총 10여명이 탑승을 했다. 경비행기는 금시 활주로로 내려가 방향을 선회한후 경사면 위쪽으로 향해 속력을 낸 후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마사이마라 평원과 가면서 넓은 초원에 군데군데 둥그렇게 보이는 마사이족 마을, 이렇게 45분을 날아가서 나이로비 공항 좌측 경비행기장으로 내린다.
나이로비 경비행장 12:02
나이로비 공항 좌측 경비행기장 출구로 나간다. 검색대는 없으며 그냥 나가면 된다. 먼저와 기다릴 것으로 알았던 케냐사장이 보이질 않아 비행장 앞 흡연장 의자에서 기다린다. 20여분 이상이 지나서야 케냐사장이 도착을 하고 우리는 케냐사장의 안내로 검색대를 통과하여 화장실도 다녀오고 다시 20여분을 더 기다려서야 뒤에 모두 함께 타고온 일행들과 합류를 한다.
나이로비 비행장 출발 12:45
이제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다. 케냐의 한국인 식당 대장금이다.
케냐는 자바커피가 유명한데 AA등급을 사야한다고 한다. 시내를 돌며 잠시 들른다고 한다.
우리는 원래 쇼핑시간이 들어있지 않아 일부러 들러야 한다.
잠시 킬로만자로 애기를 하는데 (빛나는 언덕)이라는 뜻이란다.
눈이 없는 것은 알지요 한다. 가이드도 3번인가 가봤다고 한다.
이러는 사이 식당에 도착을 한다.
케냐 한인식당(대장금) 도착 13:20 ~14:29
한인식당은 여기 식당중에서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직원들은 전부가 원주민 흑인들이고 교육이 잘되었는지 눈치로 금시 알아듣고 가져다 준다.
본체앞쪽 길죽한 건물이다. 지붕이 있고 앞쪽이 터져 있는 건물로 정원안쪽으로 보이는 한국식으로 지은 본체가 보인다. 오늘 메뉴는 모처럼 삼겹살이다. 어제 밤 여권소동을 일으킨 신예옥 여사가 오늘 술은 쏜다고 했으니, 모처럼 소주 몇병 시키고, 맥주도 몇병 시킨다.
신여사님 술값좀 나왔지유 던이라면 뭐 문제는 없을기지만 ~~~
여기 삼겹살 어디서 구입했는지 맛 끝내준다. 상추도 풍부하고, 김치찌개 시원하고 좋다.
김치, 가지나물, 호박나물, 된장도 보이고 맛이 변하지 않았다.
잠시후 안주인이 나와서 인사하고 좀 더 지난뒤 바깥양반이 나와서 인사도 하고 멋진 남편에 미모의 안주인이다. 저번 케이프 타운에서 우리를 두고 먼저 퇴근하신 주인장은 도리가 아니었지만 인사도 깍듯히 잘한다.
식사가 끝나고 화장실가다 보니 호박덩쿨이 잘도 뻗었다.
우짜든 머나먼 타국땅이지만 꼭 성공하셔서 돈도 마니 버시길 바랍니다.
아웃오브 아프리카 촬영지(카렌 브리슨 기념관) 15:32 ~16:28
식사가 끝나고 시내구경을 하러 간다. 뭐 커다란 건물인 시청사라든지 의사당이라든지는 아니고 어느 유명인이 살던 집이라고 한다. 아웃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이라 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시드리 폴락 감독
덴마크 부호의 딸 카렌은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약혼자인 블릭센 남작과 결혼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온다. 이때만 해도 그녀는 아프리카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닥친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남편과 결혼 후, 어떻게든 커피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해보려는 카렌의 생각과는 달리 남편은 농장일에는 통 관심이 없다. 툭하면 사냥을 한답시고 며칠씩 집을 비우곤 하는데, 때문에 타지에서의 고달픈 삶은 오로지 카렌의 몫이 된다. 그러는 사이 결혼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블릭센은 카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쟁터로 떠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카렌은 남편으로부터 보급품이 필요하다는 전보를 받는다. 카렌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보급품을 가지고 남편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는데, 그때 남편으로부터 매독이라는 몹쓸 병을 옮게 된다. 카렌은 덴마크로 가서 병을 치료하지만 이 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다.
후에도 자기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해서 카렌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결국 카렌은 남편과 별거에 들어가지만 이혼만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돈 많은 여자를 만난 블릭센이 이혼을 요구하자 명목뿐인 부부 생활을 청산한다.
카렌은 사실 오래전부터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데니스이다. 남편과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 때, 데니스는 그녀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초원에 나갔다가 사자의 공격을 받을 뻔한 카렌을 데니스가 구해준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데니스는 여러모로 블릭센과는 대조적인 남자이다. 그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경비행기를 타고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을 나르며 인생과 사랑에 대해 얘기할 줄 아는 멋진 남자이다.
이런 데니스에게 카렌은 깊이 빠져든다. 남편과 이혼한 후, 카렌은 데니스와의 결혼을 원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데니스는 그런 카렌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카렌은 믿을만한 동반자를 원하지만 결코 데니스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사고 방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 한 가지 예가 바로 아프리카 원주민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이다.
카렌이 선교사를 불러들여 원주민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자 데니스가 카렌에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실감 때문에 그러냐고 묻는다. 그러자 카렌은 이들을 야만 상태에 놓아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당시는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때였다.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백인들에게 아프리카 원주민은 그들이 가르쳐야 할 ‘교화 대상’이었다. 덴마크에서 건너온 남작부인이 선교사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교화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데니스는 이런 카렌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카렌에게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문명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글로 쓰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프리카의 문화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데니스의 말을 들으며 카렌의 생각도 조금씩 변해간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수확기를 맞은 카렌의 커피 농장에 불이 났다. 그녀가 모든 것을 투자해서 일구어 놓은 커피농장과 커피가 완전히 재로 변해 버린 것이다. 실의에 빠진 카렌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때 자기를 찾아온 데니스에게 카렌은 “당신이 옳았어요, 제가 진작 배웠어야 하는 건데 너무 늦었군요.”라고 이야기한다.
데니스는 며칠 후에 다시 와서 카렌을 비행기에 태워 몸바사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오는 도중 비행기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데니스의 장례식은 기독교 식으로 치러진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카렌은 관에 흙을 뿌리는 유럽식이 아닌, 머리를 쓰다듬는 아프리카 풍습을 따른다. 데니스의 영향으로 아프리카를 그 자체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데니스는 카렌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카렌은 그것을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데니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카렌은 하인들에게 자기를 “마님”이 아닌 “카렌‘이라고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원주민에게 나누어주고 조그만 가방 하나만 가지고 아프리카를 떠난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돌아가 17년 동안의 아프리카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쓴다. 그것이 바로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이다.
여기 박물관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좌측으로 널찍한 잔디밭에는 부유층의 자제가 결혼식을 올리는지 왁자지껄한다. 잠시 건물앞에서 기다려 여서 안내자를 따라 들어가 설명을 듣는다. 안은 사진촬영이 불가 하다고 한다. 큰방이 카렌이 쓰던 방, 집기류, 주방용기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더러는 영화촬영을 하며 기부를 하며 꾸며진 공간이다. 그당시 카렌의 남편이 사냥으로 잡은 사자 가죽으로 만든 양탄자, 코끼리 다리가 엄청나다. 대충 설명을 들으며 1시간여를 보낸 후 마친다.
쇼핑몰 16:42 ~17:35
일본에서 건설중인 도로인가 보다. 앞쪽 저팬 어쩌구 저쩌구 써 놓았다. 여기도 엄청 복잡하다. 공사로 인하여 뒤범벅이 된 도로 한켠으로 간신히 질주하는 차량들 그래도 이곳이 잘사는 동네라고 한다. 카렌 박물관을 나와서 15분 정도를 가면 커다란 쇼핑몰에 닿는다. 나는 뭐 살거도 없고 하여 차안에서 기다리니 우리님들 커피등 한보따리씩 들고 온다.
전망대 18:10 ~18:18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시가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멈춘다.
의사당 건물, 커다란 공원, 좌측으로 나이로비 대학등 국제기구의 건물들이 주욱 늘어선 시가지를 가리키며 설명을 하지만 에고 뭐 그렇구나 고개만 끄덕인다.
시가지는 어두운 편이다. 화려하지 않다. 투자를 하려면 아직도 먼 것 같다.
정치인들이 가장 부자라고 하니 국제기구에서 들어오는 돈 어디다 쓰는지 알 것 같다.
인프라시설이 너무 빈약한 것 같다. 오히려 시외로 나가야 깨끗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널찍한 초원과 평야지대가 볼만한 케냐다.
호텔 도착(Safari Park Hotel) 18:42
우리나라 전낙원씨가 토지를 구입해서 만든 호텔이라고한다. 슬롯머신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파라다이스 호텔을 경영하며 한때 잘 나갔던 사람이다.
현재는 인도인이 인도해서 운영중이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원주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춤을 추며 맡이한다.
물수건과 쥬스를 내오는 것은 똑같다.
커다란 코끼리 상이 중앙 로비에 있고 천장에서 내려온 조형물이 치렁치렁하다.
한참이 지나 방을 배정 받는다. 우리는 852호 여기는 호텔의 동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앞에 숫자는 8동이란 뜻이다. 우리가 맞겨 두었던 큰 짐은 이미 가이드 선생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다시 만난 짐과 함께 8동 2층에 있는 방으로 입주를 한다.
이미 밤은 어두워 졌고, 잘 꾸며진 정원에는 은은한 조명불만 보인다. 중앙에 수영장이 있고 내일 아침식사를 한다는 식당 위쪽에 우리 숙소가 있다.
저녁식사 20:00 ~22:00
저녁은 공연을 보며 즐기는 Nyama Choma(야마초마)라고 한다.
사파리파크의 명물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현란한 몸동작의 ‘사파리 캣츠 쇼’관람을 하며 즐기는 야생고기 구이다. 보마식과 비슷한 것으로 야마(고기), 초마(구이)로 타조, 악어, 낙타, 소고기, 돼지고기등을 종업원이 어깨에 메고 다니며 한쪽 썰어 주는 것이다.
마님은 우째 몸이 좋지를 않다고 가지를 않겠다고 한다.
홀로 방을 나서니 비가 쏟아진다.
비를 맞으며 약속한 장소인 수영장 옆 식당 처마에 도착하여 울 마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이 수영장을 돌아서 위로 가니 공연장이 마련된 저녁식사장소다. 우리가 가장 중앙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우리 옆으로 중국인들이 꽤많이 보인다. 시끄럽게 떠드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우리는 천천히 악어고기, 타조고기, 소고기, 양고기를 맛보며 울마님이 나오지 않아 신여사가 여기서까지 술 쏜다.
우쨋든 먼저 들려오는 노래는 중국노래이고, 그다음에 들려오는 우리가락 얼씨구 좋다. 몇곡이 흘러나오고, 제천 선생님 가수한테 접근하여 뭣했는지 모른다.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노사연의 만남, 또 한곡이 나왔던 같다.
좌석에서 일어서 큰소리로 열창을 하는 천안 박선생님도 훌륭했다. 중국인들과 합세를 해서 춤을 추는 신여사, 규현이 행님도 얼씨구 좋다.
노래가 끝나고 21시 드디어 원주민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힘찬 몸놀림이 대단하다. 창을 들고, 커다란 가발을 머리에 쓴 여인들의 공연, 앉고 넘기고, 창과 방패의 싸움도 시작되고, 불쇼, 덤블링, 의자 쌓기등 현란하고 힘찬 공연이 50여분간 끝나고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 우리님들 차례로 올라 사진도 찍고는 비오는 밤 무사히 방까지 돌아와 케냐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제20일차 12월 8일 일요일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마지막 이동하는 날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정원을 돌아보려 했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식사 06:00
우산을 쓰고 수영장 앞 식당에 도착하여 뷔폐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간단히 가져다 놓는다.
입맛이 별로 없어서 인지 과일류로 때우고~~
호텔출발 07:18
숙소를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숙소에 마련된 우산을 쓰고 로비로 향한다.
로비에 도착했는데 마님이 안 보인다. 아직 안 보이시는 분이 3분?
잠시후 남창우님 내외는 길을 일어 간신히 찾아 왔다고 한다. 이제 한분 우리마님이다.
분명 나보다 먼저 나왔는데 어디로 사라진것인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호텔 정원을 이쪽으로 돌고, 저쪽으로 돌아도 없다. 마지막으로 가이드 선생이 찾으러 가고 우리들은 차량을 타러 가는데 우리 뒷차를 타려던 님들이 총무님이 여기 있다고 한다. 우리차도 아니고 남의 차에 먼저 홀로 올라 있으니 우찌 알았겠는가?
당연 소리가 높아졌지유 ~~
항상하는 애기가 그건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혼자의 생각으로 먼저 아무도 모르게 차에 타고 있으면 우찌 하겠는감유 ~~
우쨋든 찾으러 다니느라 20여분을 늦게 출발을 한다.
주유소 화장실 10:01 ~10:13
우리를 태우고 가는 기사님은 유쾌하니 쾌활한 성격이다. 한국말도 조금하여 가면서 간단하게 설명도 하고 간다.
오늘비가 수월찮이 왔는가보다. 허름한 다가구 주택의 베란다에 놓여 있는 빨래들~!
그 앞쪽으로 큰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물을 건너려는 소떼들, 우리차량도 물살을 헤치며 건너간다. 도로가 강이 되었다.
나이로비 도심을 빠져나가며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이 상태도 괜찮다.
오늘 국경을 거쳐 아루샤 까지는 6시간을 가야 한다.
교외로 빠지자 역시 케냐의 초원은 넓고 푸르다. 길옆으로 당나귀, 양, 소떼가 군데군데 있고 이들을 지키는 목동들 긴 망토에 장대를 들었다. 대부분 마사이족인 것이다. 케냐와 탄자니아에 주도 살고 있다는 마사이족은 뚱뚱한 사람은 없다. 길쭉하니 키도 크고 잘생겼다.
아프리카 전사의 후예로 성격이 좀 사납다고 한다.
도로변 풍경은 국립공원을 지나는 듯 깨끗하고 아름답다. 군데군데 보이는 마을은 우리나라 시골동네와 흡사하다. 지붕의 형태도 거의 비슷하고~
큰동네를 지난다. 거리 옆으로 서있는 양철때기 판자촌이 즐비하고, 다시 푸른 초원지대를 달린다. 비는 그쳣지만 하늘엔 시커먼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이렇게 하여 2시간 40여분을 달려 주유소 휴게소에 닿는다.
탄자니아 국경 10:30 ~11:25
주유소 옆 가시가 날카롭게 달린 나무가 아프리카 아카시아 나무다. 기린이 가장좋아하는 잎이라고 하는대 저 가시 때문에 어떻게 먹는지 용하다.
이제 국경까지는 20여분이면 닿는고 한다.
넓은 초원에는 역시 작은 마을들이 보이고 시원스럽게 펼쳐진 산하가 아름답다.
20여분 국경도시인 나망가에 도착한다. 나이로비에서 3시간 10여분이 걸렸다.
담이 주욱 쳐져 있는 한쪽은 케냐, 반대편은 탄자니아다. 검문소 맞은편 담장에 문이 있어 이들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한다. 우측으로 높은 바위산이 있고, 검문소 앞쪽으로 반듯하게 뻗은 아스팔트길이 탄자니아로 향한다.
우리 차량에 큰짐은 그냥 놔두고 간단한 짐과 배낭을 메고 탄자니아 출입국 관리소로 들어간다. 일단 검색대를 통과하고, 첫 번째 창구에서 여권주고 도장 받고, 다시 옆창구로 이동하여 기다렸다가 여권과 50달러를 주고 비자받고 수속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우리는 그래도 빨리 수속이 끝났지만 차량에 있는 우리 큰짐은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인지 하나하나 들어다가 검색대를 통과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중 우리 신여사님 케리어가 나오지 않아 다시 들어가 찾아오는대 시간이 더 걸린다.
인그람이 이상한 물체로 보였다나 뭐 그랬다.
이렇게 하여 국경을 통과하는대 무려 2시간이 소요되었다.
탄자니아
개관
정식 명칭은 탄자니아합중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으로, 인도양 연안 해안선의 길이는 1,424㎞에 달한다. 영연방에 속한 독립국으로, 면적 94만 7300㎢, 인구 5104만 5882명(2015년 현재), 수도는 도도마(Dodoma)이다. 종족은 수쿠마(Sukuma), 냐메우지(Nyamewzi) 등 120여 개의 부족이 혼재하고, 종교는 기독교가 30%, 이슬람교 35%, 토착종교가 35%이다. 공용어는 스와힐리어와 영어이나 잔지바르섬은 주민 대부분이 아랍어를 쓴다.
기후는, 해안지방은 고온다습하며, 중부고원지방은 건조하고 계절에 따라 기온 차가 크고, 산악지역은 온화하다. 전통 농업국가로서, 경작지가 전 국토의 13%에 불과하나 80%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농산품이 국민총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커피·면화·차 등 수출작물이 주산물이며, 식량은 수입에 의존한다. 교역은 서방측과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요 수출품은 농작물로 총수출의 70%를 차지하고, 특히 커피는 총수출의 40%에 달한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481억 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955달러이다.
이 나라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274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탄자니아혁명당(CCM), 탄자니아인민당(TPP), 연합시민전선(CUF), 연합민주당(UDP) 등이 있다.
약사
1880년대까지 잔지바르 왕국의 영향권에 있다가 1891년에 독일령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령이 되어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받고, 1946년부터 유엔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1961년 12월 9일 영국에서 독립하여 영연방에 속하는 탕가니카공화국이 되었다.
한편, 잔지바르는 1963년 12월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여 유엔에 가입하고, 이듬해 1월 혁명으로 잔지바르 공화국으로 바뀌었으며, 10월에는 탕가니카공화국과 연합하여 탄자니아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초기인 1967년 대부분의 주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여 사회주의 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하였으나 경제적 성과가 뚜렷하지 않자 1970년 말 실용주의적 노선을 일부 채택하였다. 1977년 4월 헌법을 제정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완화하고 산업의 효율화를 위한 민간경제의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과거 비동맹중립·범아프리카주의, 공산국가와의 친밀한 관계 유지, 서방측과의 관계 향상을 통한 원조 획득 등을 특징으로 한 외교정책을 전개하면서 좌경중립의 외교를 펴고 있으며, 1961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전세계적인 민주화 추세에 따라 점진적인 정치체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05년 12월에 키크웨테(Jakaya Kikwete) 대통령이 취임하여 정부를 이끌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1992년 4월 30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다.
1976년 한때 우리와의 교역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적도 있었으나, 2013년 현재 우리니라의 대 탄자니아 수출액은 1억 968만 달러로 주종목은 경유, 석유화학제품, 섬유제품 등이고, 수입액은 5,084만 달러로 주종목은 잎담배, 미정제동괴, 커피 등이다. 양국은 1998년 12월에 경제과학기술협력 협정과 투자보장 협정, 그리고 문화 협정을 체결하였고, 1999년 4월에는 이중과세방지 협정을 체결하였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6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15년 현재 대진광업 등이 진출해 있고, 480명의 한국민이 있다.
한편 북한은 1965년 1월 13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사관을 설치한 뒤, 공산권 국가 중에서도 탄자니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양측은 고위인사의 상호방문뿐만 아니라 1965년 6월에 통상 협정을 체결한 이후 1966년 7월 과학 및 문화협조 협정, 1984년 6월에 방송분야협조 협정과 체신협조 협정, 1986년 2월에 농업분야협력 협정, 1993년 6월에 공보분야협력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또한, 북한은 탄자니아에 건자재·기계류·옥수수 등을 무상으로 원조하였으며, 특수훈련교관단 등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2007년에는 3만 2000달러 상당의 기계류와 전기기기 등을 수출하기도 하였다.
커피농장(점심식사) (Arusha Coffee Lodge) 13:31 ~14:40
탄자니아쪽으로 잘 뻗은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달린다. 대부분 50km/h 속도 제한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달린다. 25분이 지나며 좌측으로 높은 산이 보인다. 산아래 작은 집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교회라고 한다. 그 뒤편으로 길다란 폭포가 보인다. 해발 고도 아무래도 3000m는 됨직한 산들이다. 탄자니아 쪽으로는 평야보다는 완만한 구릉지 많다. 높은 산들도 보이고, 산언덕에는 푸른 풀밭이 조성되어 있고, 가축을 방목한다. 넓직한 평야지대는 옥수수 벼농사도 하는 것이 보이고 대부분 농지가 많다. 가는 길 곳곳에는 흰제복을 입은 여자 교통경찰과 남자 경찰이 5~6명이 서서 차량을 주시 한다. 여기 경찰은 크게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교통경찰이 너무 많다. 몇 km사이로 수시로 보인다. 교통량은 많지를 않아 간간히 지나는 차량을 뭐 잡을 것이 있다고 저리 많은 경찰이 지키고 있는지 ~~
우리 기사님 킬리만자로는 11시 방향이라고 손으로 가리킨다. 구름에 가린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평탄지형에 서서 일단 널찍한 화장실(12:35~12:40) 한번 이용하고 다시 달린다.
간간이 비도 내렸지만 많은 양은 아니었다. 이쁘장하게 짓고 있는 집들도 보이고 잘 차려 입은 여인네들은 어디로 향하는지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떼들이 자주 보이고, 마을어귀 나무에 걸려 있는 벌통도 보고, 큰동네를 지날 때는 장이 섰는지 와글와글 물건을 사고 파는 현장이 목격되고, 커다란 농경지가 줄지어 서 있는 마을에 도착하면 이곳이 커피농장이 있는 마을이다. 이곳까지 국경을 통과하고 2시간이 지나서 도착을 했다.
커피농장에 도착하여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식사부터 한다.
양철지붕의 분홍색 건물들, 잘 꾸며진 정원, 굵직하고 커다란 정원수들이 가득하다.
수영장도 있고, 화장실 깨끗하고, 세면대 위에 수건도 비치되어 있다. 생화도 꽃병에 꽂혀 있고, ㅎㅎㅎㅎ이사장님 요사진을 지워야 할지 말지 고민중 ~~
뒷모습이니 그냥 두자~~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파라솔이 쳐져 있는 식탁이다.
모처럼 야채가 듬뿍 나왔다. 상추도 많이 나왔고 역시 탄자니아는 농사를 많이 짓는 것이 보이더니 야채가 풍부하다. 빵과 괴기 맛있는 망고도 보이고, 벌써부터 킬리만자로 맥주를 마시고 점심식사 거나하게 하였다.
커피농장 견학 및 커피구입 14:41 ~15:40
식사가 끝나고 커피농장 견학에 들어간다. 2팀으로 나누어 진행을 시작했지만 통역할분은 이사장님 뿐이라 다시 합세하고, 커피는 이디오피아가 원산지인데 백인 어느분이 커피를 어떻게 해서 어떻게 했다고 하는데 커피의 역사는 이렇다.
커피의 역사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커피에 대한 터키의 속담이야 있다. 처음 자랐던 지역 ‘Kappa’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커피의 발견
커피는 6~7세기경 에티오피아(Ethiopia)의 칼디(Kaldi)라는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염소들이 빨간 열매(berry)를 따 먹고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광경을 목격한 칼디는 자신도 이 열매를 먹어보게 되었고, 그 결과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 사실을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알렸고, 기분이 좋아지고 졸음을 방지해 주는 등 수양에 도움이 되는 신비의 열매로 알려지면서 여러 사원으로 퍼져 나갔다.
커피의 전래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는 농부들이 자생하는 커피 열매를 끓여서 죽이나 약으로 먹기도 했다. 9세기 무렵 아라비아반도로 전해져 처음 재배되었으며, 나중에는 이집트, 시리아, 터키에 전해졌다. 이곳에서는 커피 열매를 끓여 그 물을 마시거나 열매의 즙을 발효시켜 카와(kawa)라는 알코올음료를 만들어 마셨다. 이 음료는 13세기 이전까지는 성직자만 마실 수 있었으나, 그 이후부터 일반 대중들에게도 보급되었다.
이 무렵 커피는 이슬람 세력의 강력한 보호를 받았다. 커피 재배는 아라비아 지역에만 한정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커피의 종자가 나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2~13세기에 걸쳐 십자군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슬람 지역을 침입해 온 유럽 십자군이 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인들은 초기에는 커피를 이교도적 음료라 하여 배척했다. 그러나 밀무역으로 이탈리아에 들어온 뒤 교황으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음료로 공인받게 되었고, 일부 귀족들과 상인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15세기에 이르러 수요가 늘자 아라비아의 상인들은 이를 독점하기 위하여 수출항을 모카(Mocha)로 한정하고 다른 지역으로의 반출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인도에서 밀반출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17세기 말에는 네덜란드가 인도에서 커피 묘목을 들여와 유럽에 전파했다.
그 뒤 유럽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커피를 대량 재배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커피나무가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인도, 서인도제도,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바로 이웃나라인 케냐, 탄자니아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다. 커피가 점차 대중화되면서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895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황제가 처음 커피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는 독일인 손탁이 정동구락부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한 이후 1920년대부터 명동과 충무로, 종로 등지에 커피점들이 생겨나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뒤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군부대에서 원두커피와 인스턴트 커피들이 공급되어 대중들이 즐기는 기호음료로 자리잡게 되었다.
우쨋든 커피는 고산지대에서 재배하는아라비카종과 저 지대에서 재배하는 로브스타 2종류로 나뀐다고 한다. 여기 탄자니아 커피밭은 평평한 평야지대에 있는데 우째 고산지대에서 재배하는 아라비카종인가? 답은 이렇다. 이곳은 평평한 평야지대의 평균 해발이 1800m인 것이다.
“1892년 독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커피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커피 산업이 발달했고, 유럽에서는 ‘커피의 신사’, ‘영국 왕실의 커피’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에티오피아, 케냐와 더불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커피 생산국이다. 주요 재배 품종은 아라비카 75%, 로부스타 25%이다. 아라비카의 주요 산지는 킬리만자로 화산지대에 있는 모시(Moshi) 지역과 탕가니카(Tanganyika)·니아사(Nyasa) 호수 지역이며, 로부스타는 탕가(Tanga) 지역이 유명하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가지고 있다”
다음차례로 커피 로스팅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커피는 150도, 160도, 170도, 180도, 190도 다섯단계로 로스팅 과정이 이루어지는대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는 170도, 에스페로는 180도로 이온도부터 기름이 나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190도 짜리는 보통 너무 쓰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듣고 170도, 180도 짜리 로스팅한 커피를 금시 갈아서 시음을 한후 커피매장으로 들어가 각자 필요한 만큼 구입했다.
커피구입 안하시는 분들은 앞쪽으로 기념품가게도 들렀다 나오고 ~~
이렇게 하여 커피농장에서 점심식사와 커피농장 견학이 끝났다.
호텔 도착(MOUNT MERU) 16:15
커피농장에서 15시 47분 출발하여 30여분이 지난후 아루샤의 호텔에 도착을 한다.
아루샤에 도착하니 활기가 넘친다. 학교를 가는지 어린아이들이 줄지어 가고, 리어카에 실린 속옷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거리는 나이로비보다 작지만 깨끗하다.
중앙 분리대가 있는 4차선을 따라 가면 오늘 좋은 날인지 결혼식을 하고 차량으로 카퍼레드 하는 팀들이 많이 보인다. 좌측으로 높다란 산이 보이고 잠시후 우리는 우측으로 돌아 경비실 문을 통해 호텔안으로 들어간다.
호텔은 역시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 우측으로 결혼식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하는 장면등,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여기도 일요일은 행사가 많은 가보다.
잠시후 호텔로 들어가니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긴다. 잠시 기다려 각자 방을 배정받는다. 대부분 2층(우리식대로 하면 3층)으로 우리는 225호다.
방으로 들어가니 호텔방에서 뒤쪽으로 높은 산이 보이는데 비가 그친후라 무지개가 곱게 떳다. 깔끔한 구조의 방 맘에 쏙 들지만 여기도 오늘 하루밤만 보낼기다.
저녁식사 19:00
오늘 저녁 식사는 피쉬, 비프, 꼬꼬중 택하라고 했는대 뷔폐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가 식사할 장소는 아라비카홀이다.
저녁 7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님들 하나 둘 모여서 식당으로 go~~
식탁앞에 있는 뿔이길고 흰 저 짐승은 뭣이여, 행운을 가져다 주는 동물일기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마지막 함께 하는 식사다. 우쨋든 그간 정들었던 우리 팀원들인데 그새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물이 나고 헤어지기 싫다. 우짤까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저녁식사는 야채류, 쌀밥, 매콥한 고추소스, 우리가 가져온 고추장등을 넣고 모처럼 썩썩 비벼서 비빔밥으로 먹는다.
역시 우리입에는 고추허고, 고추장이 최고여 ~~
우리는 함께하는 마지막밤이 아쉬워 저녁식사가 끝나고 호텔정원을 산책했다.
특히나 우리내외야 함께 킬리만자로를 오르니 별거 아니지만 신여사, 이규현사장님은 내일이면 헤어질긴디 오늘밤이 마지막 아녀~~
둘이 손잡고 우리와 함께 밤늦도록 호텔을 누볐다.
정문앞으로 해서 들어오면서 사진도 찍고, 우측으로 돌아서 수영장의자에 앉아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도 세어보구, 다시 내려가 행사장옆 바나나 나무 아래서 이넘들 들고 찍고 입에 물고 찍고 안구 찍구 야단법석을 떨다가 다시 우측으로 옮겨가 커다란 초가집 선인장앞 그네를 밀어주고 댕겨주고 하면서 놀다가 각자 방으로 GO~
내일아침 만나요 ~바이바이~
제21일차 12월 9일 월요일
기상 05:00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짐을 분리해야 한다.
어제 도착해서 대충하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며 산에 오르기 전 맡길짐과 산에 가져갈 짐으로 구분을 해야 한다. 큰 케리어는 가벼워 졌지만 들구 댕길 짐이 더 생겼으며 무겁다. 배낭도 적절하게 넣어야 한다. 우리가 헤어지면 곧바로 마랑구로 들어가 산행에 들어가야 하니 그때는 다시 짐을 챙기기 어렵다.
아침식사 06:30
짐을 마무리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어제 저녁을 먹던 식당이 아니고, 후문쪽 좌측에 있는 식당이다. 아침식사도 뷔페식으로 따끈한 음식은 뒤로하고, 간단히 계란, 야채, 과일, 음료수, 소시지 종류 약간 아침식사 간단히 하고 나온다.
호텔출발 07:45
드디어 마지막 함께하는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겨 끌고, 양손에 들고 에고 힘들다. 승강기를 타고 로비로 내려온다.
어제 우리가 타고 온 케냐의 버스에 승차를 한다. 짐은 우쨋든 잘 분리를 해서 싣고 ~
07시 45분 탄자니아의 호텔을 떠나고 ~
중간 기착지 09:13 ~09:23
호텔을 나와 킬리만자로로 향합니다. 날씨는 구름이 많이 끼기는 했어도 상쾌하니 좋습니다. 옥수수밭, 바나나밭, 길에 늘어선 란타나 꽃들, 푸르른 초목이 한없이 펼쳐지는 평야지대를 거쳐 달리면 호텔을 출발한지 50여분후 앞쪽으로 구름에 가린 킬리만자로가 나타납니다. 잠시 좌측 도로변 언덕에 올라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대 잠시 정상의 흰눈이 쌓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진을 찍고는 금시 감추어버린 정상을 바라보며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우측으로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가는 길이라하고, 얼마를 더 가서 큰 동네가 나오며 차량은 좌측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것입니다. 더러는 옆쪽 널찍한 야전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하며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며 헤어짐을 아쉬워 합니다.
울 마님은 이때 저승사자가 잡으러 온줄 알았답니다. 그만큼 킬리만자로의 부담이 컷던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들어봤어도 저승사자는 못 들어 봤으니 잘될기라요~~
표범만 조심한다면 ~~
우쨋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등도 두르려주고 악수도 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우리는 따로 차량에 올라 마랑구로 향했습니다.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트레킹 투어 사무실(KIBO AECADE) 09:43 ~10:00
이제부터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말도 통하지 않지 어디다가 하소연할수도 없지 그저 우리 델구 가는 빨강옷 입은 대장 뒤를 따라 댕겨야만 합니다.
보조가이드는 젊은 분이고, 뒤에 두분은 쉐프라고 합니다. 쉐프도 대장과 보조가 있습니다.
앞으로 산에서의 모든 시중은 쉐프대장이 합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우리는 납치된 기분으로 20분을 달려서 KIBO AECADE라고 쓰여진 건물앞에 도착합니다. 여기 건물 안에 사무실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트레킹 투어 사무실입니다. 나중에 끝나고 올때서야 알았습니다.
여기다가 우리 커다란 케리어를 맞기고 갑니다. 까맣고 덩치크신분이 캡틴였습니다.
우째든 지금은 어안이 벙벙해서 그냥 이들이 하는대로 따라만 댕깁니다.
지금쯤 마차메 게이트로 향한 우리님들은 도착했을 긴디 우리는 아직도 헤메고 있습니다.
부디 마차메팀 잘댕겨오시소 ~
킬리만자로 마랑구 게이트 도착 11:18
킬리만자로 산
동아프리카 대지구대(大地溝帶) 남단 160㎞, 빅토리아호(湖) 동쪽에 있으며, 화산과의 동서간 거리는 약 80㎞에 달한다. 산 이름은 스와힐리어(語)로 ‘번쩍이는 산’이라는 뜻인데, 적도 부근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萬年雪)에 덮여 있어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이 현무암(玄武岩)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주봉인 키보(5,895m)를 비롯하여, 마웬시(5,149m)·시라(3,778m)의 3개의 장대한 성층(成層)·원추형 화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저(基底)에는 대규모 기생화산이 순상형태로 존재한다. 가장 최근에 형성된 눈 덮인 돔 형태의 키보 화산의 정상 분화구는 직경 1.9㎞에 달하는 칼데라를 이루고 있다. 칼데라 중심부에는 유황을 함유한 화산재로 덮인 작은 분화구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서 안부(鞍部)를 따라 동쪽으로 11㎞ 떨어져 있는 곳에는 이보다 먼저 형성된 마웬시 화산이 있다. 마웬시는 케냐산(5,199m) 다음 가는 아프리카 제3봉으로, 모든 사면이 침식작용에 의해 가파르고 험준하며, 눈이나 표토로 덮인 곳이 거의 없다. 마웬시는 비교적 낮은 고도에도 불구하고 암벽 등반이나 빙벽 등반의 전문가가 아니면 등반하기가 쉽지 않다. 동쪽과 서쪽은 바란코스 협곡이고, 남쪽과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팡가니강·차보강·지페호(湖)로 이어진다. 북서부에 있는 옛 분화구의 잔해인 시라산은 침식이 현저하여 산마루로 변했다. 또한 산허리에는 기생화산군이 방사상(放射狀)으로 분포해 있는데 분기공(噴氣孔)은 있으나 분화한 기록은 없다.
산밑에서 정상까지 다양한 식물대가 이어지는데, 고원의 관목지대, 울창한 숲, 탁 트인 황야, 지의류 군서지가 형성되어 있다. 해발고도 1,000m 이하의 산기슭은 불모지이나, 남서부 1,000∼2,000m 지대에서는 원주민이 커피·바나나 등을 재배하고 있다. 1889년 독일의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와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루드비히 푸르첼러가 키보산 정상에 최초로 등정하였다. 또한 마웬시산은 1912년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츠 클루테가 최초로 정복하였다. 등정하기에 좋은 시기는 12월∼3월, 6월∼8월이다. 남쪽 기슭에는 교역 중심지이자 등반기지 역할을 하는 모시가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으며, 수렵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
킬리만자로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으로 가는 길
눈물로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면, 욕설로도 삼켜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면, 떠나자, 검은 대륙의 흰 산을 향해.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는 것을, 견디는 힘도 힘이라는 것을 믿게 해주는 높고 큰 산으로 가는 길.
지구에서 가장 큰 휴화산
‘킬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운트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으로 지구에서 가장 큰 휴화산이다. 거대한 스텝 위 외따로 떨어져 솟구친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봉우리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자연이 건네는 위로의 힘을 믿는 이라면,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할 용기를 지닌 이라면, 한번쯤은 킬리만자로를 꿈꾸지 않을 수 없다. 검은 대륙의 적도 아래에서 만년설로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이마는 오랫동안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도전과 용기의 상징이 되어왔다
누구나 오르기 쉬운 봉우리
1889년 10월 5일, 독일 지리학자 한스 메이어(Hans Meyer)와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루드비히 푸르첼러(Ludwig Purtscheller), 지역 가이드 요나스 로우와(Jonas Louwa)에게 처음 발길을 허락한 후 킬리만자로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한동안 독일 황제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1961년, 탄자니아가 독립을 쟁취한 후에야 우후르 피크(Uhuru-자유)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후 킬리만자로는 고집스럽게 인간을 거부하기보다는 넉넉하게 인간의 발길을 품어왔다. 그래서 대륙 7대 봉우리 중 평범한 이들이 가장 오르기 쉬운 봉우리로 꼽힌다.
스와힐리어로 ‘번쩍이는 산’을 뜻하는 킬리만자로는 세 개의 분화구로 구성되어 있다. 5895미터의 키보(Kibo), 5149미터의 마웬지(Mawenzi), 4006미터의 쉬라(Shira). 정상을 향해 가는 동안 풍경은 끝없이 변한다. 열대 우림에서 시작해 황무지를 거쳐 얼음과 빙하의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정상의 아이스 돔은 한때 그 높이가 20미터에 1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크기였으나 지난 100년 사이에 85퍼센트가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지구 온난화가 계속 된다면 머지않아 킬리만자로는 눈이 없는 봉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 길
마랑구 게이트(Marangu Gate 1980미터)에서 시작되는 킬리만자로 등반은 보통 4박 5일에 걸쳐 이루어진다. 만다라 헛(Mandara Huts)까지 향하는 첫날은 짧고 편한 길이다. 울창한 열대 우림을 가로지르는 길로, 숲은 깊고 길은 붉다. 둥근이질풀을 닮은 분홍빛 작은 꽃들이 무더기 지어 피어 있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함께 계곡을 가른다. 세 시간 만에 도착한 만다라 산장은 작지만 깔끔하고, 전기도 들어온다. 포터가 가져다주는 따뜻한 물에 세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면 하루가 저문다. 둘째 날은 3720미터의 호롬보 헛(Horombo Huts)까지 5시간 동안 이어지는 길이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숲이 끝나고 잡풀이 무성한 지대로 들어선다. 선인장과 비슷한 모양의 시네시오나 로벨리아가 듬성듬성 솟아있다. 가이드 가 옆에서 계속 “뽈레, 뽈레(천천히, 천천히)”라고 외친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걷는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아프리카 대륙, 빛나는 흰 산이 주는 위로
셋째 날은 4703미터의 키보 산장까지 가는 길. 가없는 하늘 끝에 솟은 킬리만자로의 흰 이마를 마주하며 걷는다. 길은 고즈넉하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린 속도로 걷고 있다. 마지막 샘터인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를 지나 마웬지 능선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키 낮은 풀들도 자취를 감추고 사막의 풍경으로 변한다. 다섯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산장에 도착하면 이른 저녁을 먹고, 6시 무렵 잠자리에 든다.
밤 11시. 고요하던 산장이 부산스러워진다. 잠에서 깬 이들이 두려움과 용기,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짐을 챙긴다. 마침내 자정 무렵, 정상으로 향하는 등반이 시작된다.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만큼이나 밝은 랜턴 불빛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5685미터의 길만스 포인트(Gilman's point)까지 이어지는 1000미터는 전체 구간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다. 길은 가파른 모래자갈길. 한 발을 올리면 두 발쯤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바람은 살을 저미듯 달려든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나갈 듯 매서운 추위다. 어느 순간, 구토가 치민다.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정상에 오르기 전에 동사하는 건 아닐까. 육체의 한계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지친 몸을 부려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긴 꼬리를 끌며 사라지는 별똥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오르고 또 올라 길만스포인트를 넘어서니 어느덧 희미하게 여명이 밝아온다. 길은 편안한 능선으로 접어든다. 5895미터의 높이에서 붉은 해를 맞이하면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는다. 온 길을 거슬러 다음날,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하면 탄자니아 정부가 수여하는 등반 증서와 축하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삶의 고단함을 위무해주지 못할 때, 그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산다는 일에 지칠 때, 기억하자. 저 먼 대륙의 한 귀퉁이에 빛나는 흰 산의 위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코스 소개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의 북동부, 적도의 남쪽에 솟아있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마랑구 루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천 미터씩 고도를 높이며 4박 5일에 등정과 하산을 완료한다. 첫날은 국립공원 입구에서 만다라 산장(2700미터)까지 3시간 동안 열대 우림을 통과한다. 둘째 날은 호롬보 헛(3720미터)까지 5시간의 무어 랜드. 셋째 날은 키보 산장(4703미터)까지 5시간의 알파인 데저트. 키보에서 5685미터의 길만스 포인트(5685미터)까지는 5시간, 그곳에서 정상인 우후르 피크(5895미터)까지는 1시간 반이 걸린다. 킬리만자로는 대륙 최고봉 중에서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등정 성공율이 30퍼센트에 머문다. 고산병 때문이다.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전 이웃 산인 메루산(4566미터)이나 케냐 산(5199미터)을 오르며 고도 적응을 한다면 비교적 편하게 킬리만자로에 오를 수 있다.
찾아가는 길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보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가 킬리만자로 등반에 더 편리하다. 등반의 시작점이 되는 마을 모시까지 나이로비에서 차량으로 5시간이 걸린다. 케냐까지 직항은 없고, 동남아시아 또는 남아공을 경유해야 한다.
여행하기 좋은 때
킬리만자로는 1년 내내 오를 수 있지만 가장 좋은 때는 건기인 7월부터 9월, 1월부터 2월까지다.
여행 TIP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고산병이다. 두통이나 구토, 어지러움, 판단력 저하 등의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면 등산을 멈춰야 하며 상태가 악화될 경우 반드시 하산해야 한다. 또 장비를 철저히 갖춰야 한다. 겨울 산행을 위한 전문 복장을 준비해야 한다. 킬리만자로 등반은 여행사를 통해 예약해야 하며, 포터와 가이드 고용이 의무사항이다.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곳도 없기에 대부분은 요리사도 같이 고용한다. 가장 멋진 모습의 킬리만자로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케냐의 암보셀리 국립공원이다. 눈 덮인 산정을 배경으로 코끼리와 기린 떼들이 평화롭게 거니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적이다. 시간이나 체력의 문제로 킬리만자로 등반이 어렵다면 암보셀리에서 킬리만자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네이버 백과에서 옮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트레킹 투어 사무실(KIBO AECADE)에 짐을 맞기고 잠시 가다가 슈퍼에 들른다. 쉐프가 내려서서 우리가 5일간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음식거리도 마련하고 다시 달리면 시커먼 매연을 품고 달리는 차량들 틈에 끼여 한없이 달린다.
20여분을 달리니 우측으로 잘생긴 바오밥나무가 보이고 다시 15분을 더 가면 사거리에 킬리만 자로 모형이 있는 모시라고 하는 동네다. 산행을 끝마치고 우리가 쉴 호텔이 있는 동네다. 우쨋든 여기 사거리를 지나고 또 한없이 달린다. 두둥실 떠 있는 구름아래 높은 산이 보이고, 언덕을 넘어서 달리다가 큰동네앞에서 좌측으로 꺽어 들어가면 도로 주변으로는 해바라기, 바나나 농장이 많이 보인다. 역시나 이곳으로 오면 흰제복의 여자 교통경찰과 남자 경찰이 군데군데 서서 감시를 하는 모습은 자주 목격이 된다.
이렇게 하여 달리면 좁다란 골목 앞에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바나나를 사고 파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멈춰서서 쉐프가 뭔가를 더 사는 사이 창문으로 디민 카멜레온에 걸려 1달러 줬다. 요놈 손등에 얹고 사진찍었다고 1달러 달랜다.
잠시후 쉐프가 돌아오고 다시 가는 길에 오토바이에 싣고 가는 돼지 한 마리 참 구엽다. 이제 마랑구로 향하는 길임을 느낀다. 시커먼 연기를 풀풀 내품고 언덕을 향해 오른다. 20여분후 우리는 고행의 첫걸음을 뛸 킬리만자로의 시작지점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한다.
마랑구 게이트 통과 12:42
탄자니아에서 킬리만자로 우후루피크로 오르는 길은 총7개가 있다. 오늘 맛보기를 하는 우리 주 멤버들이 오르는 마차메 루트가 가장 좌측에 있고, 엄브웨루트,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음웨카루트(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다), 가장 우측에 있는 마랑구 루트(코카콜라루트) 이밖에 롱가이, 레모쇼, 시라가 있다. 우리는 가장 우측에 있는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한 것이다. 가장 코스가 길지만 가장 길이가 긴 코스로 대체로 완만하다. 성공률은 낮은 편이며 전일정 산장을 이용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요즘은 우리 주멤버들이 오르는 마차메루트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고산적응이 유리하고 풍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대자연에 가깝게 접근하여 일출과 일몰 그리고 쏟아지는 별까지 감상할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코스라고 한다. 지형난이도가 다소 어려워 위스키 루트로 불리며 마지막 구간은 다소 짧고 쉬운편이라 등정률이 70%로 높지만 전일정 캠핑루트로 진행을 하는 것이 약점이다.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하니 비가 온다. 우비를 쓰고 빨강옷을 입은 대장을 따라 입산신고를 한다. 영문으로 이름기입하고, 성별, 나이, 4박 5일이라는 기간을 기입하고 싸인을 하는 것인대 우히히히 까막눈이 뭘알갓시유!! 눈치껏 손짓발짓으로 시키는 대로 대충 적는다.
잠시후 다시 내려가서 도시락 받아가지구 먹구 싶은 것 골라서 대충 점심 때우고~~
각자 짐을 챙기는 포터들을 뒤로 하고 마랑구 게이트로 올랐는데 아뿔사 뭣이 안됐는지 다시 내려가서 해 오라구 했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어 빨강옷 입은 캡틴 가이드는 안가는 줄 알고 고여사 40불 팁준것도 뺏고 법석을 떨다가 결국은 다시 입산신고하는 곳으로 이동을 하여 다시 서류에 싸인하고 증 받아서 제출하고 마랑구 게이트를 통과하느라 여기에 도착을 해서도 1시간 반가량이 지나서 마랑구게이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찍고는 입장을 한다.
오늘 우리가 걸을 거리는 8.2km로 천천히 걸어서 4~5시간을 걸어야 한다.
큰도로 쉼터 14:25 ~14:34
이 시간쯤이믄 마차메게이트로 올라간 우리 주 멤버들은 하산을 완료했을 시간인대 우왕좌왕 하다가 이제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 주멤버님들은 해발 약 2100m까지 올랐다 내려왔다는 후문이다.
마랑구 게이트에서 오늘 오르는 님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 거의 함께 도착했던 백인 젊은 여성들과. 일본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웃옷을 거의 벗고 오르던 유럽인팀이 전부 인거 같다. 우쨋든 마랑구게이트를 통과 할때는 비가 대부분 그쳐 배낭커버만 쒸우고 출발을 한다. 여기 입구에서 포터들은 짐무게를 달고 출입증 내보이고 출발을 한다. 짐무게는 1인당 15kg을 초과 할수 없다. 우리와 함께하는 등산가이드2분은 우리와 함께 하고, 쉐프 2명, 포터 8명은 큰길로 간다. 첫 구간은 포터가 가는 길과, 등산객이 가는 길이 틀리다.
첫머리를 대부분 평탄한길로 걷기에 좋다. 잠시 가면 물이 많이 흐르는 나무교량을 건너고 5분을 더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마랑구 게이트 0.77km, 20분이 적혀 있다.
이후 오르는 길은 돌길이 대부분이며 가끔이 물이 흘러 냇가를 이루는 곳도 있다. 질컥거려서 돌아서 가기도 하며 오른다. 주변으로는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이끼들이 매달린 Bearded Lichen이라고 하는 나무들이 굵직한놈, 어떤놈은 쓰러져서 아치를 이룬놈등 각가지 형상의 나무들이 숲을 이룬 지점을 지난다. 뒤에서 오지 않던 젊은 보조가이드도 이제 합세를 하고 이렇게 하여 마랑구 게이트를 통과하여 2시간 20분을 오르면 만다라 헛 4.6km 2시간이 적혀 있는 돌에 박힌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후 우측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면 포터들이 다니는 길이 나오고 그 옆으로 의자 여러개가 마련된 쉼터다. 안쪽으로 화장실도 있고 화장실 다녀오며 관리인이 킬리만로꽃(엘레펀트, 입구이 안내도에는 Impatiens Kilimanjaro라 적혀 있다, 킬리만자로 봉선화)이라고 하여 카메라에 담았다.
쉼터에서 10여분 휴식후 다시 출발을 한다.
폭포 15:11 ~15:16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다리를 건너 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이 시간 쯤이믄 우리 본대는 킬리만로 공항을 출발할 시간인대 우리는 아직도 길바닥에서 악을 쓰며 오른다. 어느정도 올라서니 원숭이가 나무를 날아다니는 모습도 보이고 습기가 가득한 음습한 길을 천천히 오른다. 길 우측으로 개울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잠시 더 올라서니 우측 안쪽으로 길다란 폭포가 보인다. 울 나라 같으면 분명 무신폭포라 하여 이름이 붙어 있을긴디. 여기는 폭포이름이 없다. 높이는 약 15m, 폭은 4~5m 수량은 상당히 많다. 이끼가 가득한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오는 여성분 2분이 보인다. 한국인처럼 보인다. 반갑게 한국말로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는다. 이후 우리들은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말이 통하지 않다가 저녁식사후 함께 모여 주의 사항이라든지 내일 오를 산의 보행방법등 영어가이드가 말을 하면 통역을 해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폴포리다에서 오신 한국교포들로 대략 57세 되시는 분들도 산도 매우 잘 탄다.
나무 다리 15:38
폭포에서 한국인 미국교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앞서거니 뒷거니 만다라를 향해 간다. 10여분을 더 오르니 돌에 새겨진 마랑구 게이트 2시간이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고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오른다. 잠시후 다리를 건너고 넓은 돌길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에 좌측으로 만다라 1시간 우측 다리 있는 쪽으로 ADMINISYRATION AND BORTERS ONLLY라 표시된 이정표에서 만다라 1시간이 적혀 있는 좌측으로 간다. 평탄하던 길은 이제 돌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숲은 더욱 우거졌고 축축 늘어진 나무 이끼들은 더욱 많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여기 이 이끼 따다가 화원에서 판다. 나무 터널을 지나고 이제 쉼터에서 1시간을 좀 더 올라왔다. 앞쪽으로 다리가 나온다.
만다라 헛 도착 16:38
이제 비가 내리고 더러는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우리 내외는 우산을 쓰고 오른다. 오늘 신발은 버릴 것을 예상하고 아주 입구에서 간편한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우쨋든 으슥하고 음습한 돌길을 따라 오르면 40여분후 다시 다리를 건넌다. 평탄하고 좋아진 길에 닿으면 세멘트 포장도 좀 되어 있고 , 16분 정도를 더 가면 또 하나의 목교를 건넌다. 이제 만다라 산장도 얼마 안남은 지점이다. 비는 아직도 끊임없이 내리고 아직도 갈 길은 먼듯한데 첫 구간 가장 짧다는 구간도 이리 시간이 걸리는 데 다음구간은 어찌갈까? 걱정도 앞서고 그래도 우찌됐던 무사히 우리는 첫 구간인 마랑구 게이트를 출발하여 4시간여 만에 만다라 산장에 도착하였다.
웰컴 두 만다라 헛 2720m가 정확히 적혀 있는 만다라 산장앞 우리는 드디어 첫 구간을 무사히 올라왔다. 백두산 높이와 동등한 높이의 산장이다.
벌써부터 숨이 차다. 조금 빨리 움직이면 금새 숨을 할딱이고 헉헉헉~~
가이드가 방을 배정 받는 사이 우리는 사진을 여기저기 찍는다. 앞쪽으로 조망이 확 튀어 있으나 뒤편으로 산이 가로 막혔다. 길다란 이끼가 매달린 나무들이 들어찬 산이다.
식당앞 킬리만자로 내쇼날 팍 만다라 헛 2720m, 호롬보 헛 11km 5시간, 키보 헛 20km 10시간, 우흐르피크 26km 16.5시간이 적혀 있는 세워진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기쁨을 나눈후 식당 좌측으로 있는 뾰족한 롯지 하나 얻어서 들어가니 비에 젖은 우산, 판초우의, 배낭 금시 포터들이 가져온 우리짐들 처치하기 곤란하다.
일단 상량의 긴 목재에 밖아 놓은 용모를 알아채고 배낭도 걸고, 판초우의도 걸고 정리를 한후 고여사는 뾰족한 지붕아래 좁다란 자리를 차지하고(키가 가장 작아서 일가 ㅎㅎㅎ알아서 간것임), 좌측 바닥침상 규현이 행님, 우측 바닥침상 나, 안쪽 바닥침상 우리마님
남녀혼숙을 하믄 법으로 처벌을 받을긴디 여기는 괜찮은 갑다.
티 타임 18:00
우쨋든 대충 정리하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쉐프대장은 벌써 뜨거운 같다 문앞에 바치고 차 마시러 오란다. 수고 했다고 가져간 쵸코릿과자 한봉다리 줬더니 좋다고 한다.
숙소앞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가니 우리 팀외에 미국아짐팀, 일본인과 유럽인팀, 백인여자 두분있는 팀 몇팀 안된다. 따끈한 물에 피로를 풀라고 코코아, 꿀 종류와 티가 놓여 있다. 몇잔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약빠른 고여사님 식당에서 충전코드 찾아서 핸폰 충전하고 또 내두 하고 우쨋든 산장에서 충전 할수 없다고 들었는데 부지런하면 충전도 할 수 있다.
저녁식사 19:00
티타임이 끝나고 1시간후 저녁식사시간이다.
일과후 우리와 마주하는 일은 쉐프 대장이 주로 한다. 따뜻한 물챙기고, 식사챙기고, 식사때 옆에서 도와주고한다. 식사는 첫 번째 스프가 나온다. 생각보다 구수하니 좋다. 규현이 행님은 맵지않다고 딱 맞는다고 한다. 다음으로 빵, 소고기, 생선, 감자, 샐러드등을 차려 주었다.
취침 20:00
날씨가 추워 모두가 두툼한 잠바를 입고 식사를 마친후 좁다란 롯지에서 잠을 자려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위에서 부시럭 부시럭, 옆에서 부시럭부시럭 에고 문은 안에서 잠그거나 밖에서 잠가야 한다. 문이 닫히지를 않고 열리기 때문에 불편하다. 한밤중 쉬가 마려워 밖에 나가려니 에고 문을 밖에서 잠가 나갈수가 없다. 우짠댜 행님 어디간겨 빨랑 오지 않고 한동안을 기다려 쉬를 하고 다시 들어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침 동녘하늘가가 검붉다.
우리님들은 이시각 킬리만자로에서 도하로 넘어가 인천으로 갈긴디 우리는 킬리만자로의 첫밤을 보낸다.
22일차 12월 10일 수요일
날씨 아침에는 맑고, 오후에는 비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상쾌하니 날씨가 좋다. 먼동이 터오는 아직은 깜깜한 새벽이지만 금시 주변이 밝아 온다. 사진 돌아댕기며 몇장 찍고나니 쉐프님 따끈한 물 떠다놓구 대충 세면하고 밥묵으란다.
아침식사 06:00
아침 식사하고 양치하고 젖어 있는 우산 햇살에 말리고, 젖은 양말도 양철 지붕에 잠깐이지만 널고 사진도 찍고 출발에 앞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만다라 산장 출발 08:24
오늘은 3720미터의 호롬보 헛(Horombo Huts)까지 12km, 8시간을 가야 한다. 울 나라 산이라면 4시간아면 충분한 거리인데 고산지대이니 천천히(현지어로 뽈레뽈레) 가는 길이다.
오늘 컨디션은 나빠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도 무사히 호롬보 산장에 안착하기를 기대하며 출발을 한다.
초원지대 09:35
만다라 산장을 막 출발하면 제일 첫 번째로 양쪽으로 고사리밭이 나온다. 굵직한 고사리가 지금도 막나오고 있다. 고사리 밭을 지나며 다시 털 달린 나무들 군락지다. 이렇게 하여 15분을 가면 첫 번째 다리가 나온다. 만다라 320m, 호롬보 화살표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이후 7분을 더 가면 두 번째 다리 만다라만 표시된 이정표가 있고, 자주꽃, 우리나라 쑥하고 좀 비슷한 줄기에 노랑 꽃(가이드는 에니 키니샆이라고 했던거 같다.) 군락지를 지나서 서서히 오르고 이제 보이는 것은 대부분 향나무들 뿐이다. 향나무에도 터럭 같은 이끼는 주렁주렁 달려있고, 점차 올라서면 평평한 지형이 나오며 앞쪽으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이쯤에서 열심히 내려서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있으니 역시 한국인이다. 혼자 왔다고 한다. 오늘은 날이 무척 좋다는 것이다. 이 역시 오후에는 비를 맞았음이다. 부산에서 혼자 왔다는 30대 전후반으로 보이는 청년과 반갑게 잠시 이야기를 하고 출발 한다.
점심시간 12:29 ~12:45
초원지대 옆으로 빨간꽃, 민들레 비슷한 하얀꽃, 다닥다닥 피어있는 자주꽃, 나무 끝에 피어 있는 노랑꽃을 바라보며 좁다랗게 홈이 파인 길을 따라 진행한다. 젊은 보조가이드는 앞서가고, 메인가이드는 뒤에서 오순도순 걷는 길이다. 아직은 힘이 그리 들지 않는지 말수도 많은 두 아짐들, 이때쯤이면 우리 본대가 인천공항에 내렸을 시간이다.
우쨋든 우리는 열심히 두 번째 산장을 향하여 GO~~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 얼매가 남았는지 주변의 야생화만 간간히 보이고, 거칠어진 길은 점점 고도를 높여 가고 이제 노랑 선인장 같은 꽃이라 적었던 súgar bùsh(슈가 보시) 요 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래쪽에는 대부분 꽃이 졌지만 고도를 높이며 오르니 다복하게 핀 꽃들이 많다. 붉은 황톳길 좁다란 길, 돌길에 가끔은 물이 흐르는 길, 11시 20분경 드디어 앞쪽으로 구름에 가렸던 마웬지봉의 모습이 드러난다. 바위로 이루어진 킬리만자로의 두 번째 봉이다. 예전에는 저기도 올라다는데 지금은 산악사고가 자주나서 금지 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멋지게 드러나는 마웬지봉을 바라보며 걷노라면 초원지대로 들어선지 벌써 1시간 반을 올라왔다. 가늘고 길쭉한 풀이 수북히 자라있는 곳을 지나고 노랑꽃, 빨강꽃, 밋밋한 마웬지봉 아래를 지나 고도 3270M 지점 계류가 있는 다리를 건넌다. 이후 올라가는 길에 가시나무(엉겅퀴와 비슷함)에 이쁘게 핀꽃, 슈가보시는 점점 싱싱하고 많아지고, 분홍빛갈의 다복하게 핀 꽃나무, 길죽하게 툭 튀어 올라온 노랑꽃 야생화 구경하며 천천히 오르다보니 규현이 행님이 안 보인다. 기다리는 사이 길 한쪽에 자리를 잡고 고여사 한여사 나 셋이서 점심식사를 한다.
쉼터(해발 약 3440M) 13:10 ~13:30
식사를 하는 사이 규현이 행님과 가이드도 따라 붙는대 보조가이드 상태가 안 좋다고 한다. 우째 이런일이 ~~ 보조가이드가 고산증이 오기 시작했단다. ~ 올라오며 물한모금 안한 것이 탈이 난 것 같다. 천천히 오르는 보조 가이드와 뒤따라 오는 메인 가이드~~
또 다시 비는 내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잠시후 지붕과 의자 식탁이 마련된 쉼터에 닿았다. 먼저 올라온 미국 교포 아짐도 여기서 다시 만나고 간단한 이야기 하며 잠시 쉬었다 가는데 규현이 행님은 이곳에서 점심식사하고 식사도 없는지 식사를 못하는 우리 메인가이드와 보조가이드에게 우리가 먹지 않는 음식 나누어 주니 보조가이드는 먹지를 못한다.
홀롬보 산장 도착 15:33
우찌 됐든 우리는 다시 또 걷는다. 비를 맞으며 궂은 날씨에 거참 이상한 날씨다. 오전에는 쾌청하니 맑았다가 오후에는 비가 온다. 규현선생님 왈 오전에 쾌청한 날씨에 수증기가 모아졌다가 오후에는 덥혀진 기류에 의하여 하늘로 솟아 올라 구름이 형성되어 비가 오는 것이라고 한다. 정확한 이론 같다. 그럼 울 나라는 여름에 항상 비가 와야 하는디 ~~
돌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고, 산마루를 넘어서 내려서면 물이 콸콸 흐르는 계류위로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며 위로 보이는 저 키큰 선인장 나무처럼 생긴 것은 내가 적어간 트리 그라운드 셀(본명은 키네시오 킬리만자리, Senecis Kilimanjare이다.)이라고 하는 나무다. 다시 돌길을 따라 오르고, 물이 제법 맣은 계류를 건너는 다리다. 물이 제법 많아 졌다. 비가 슬슬 오는 것 같아도 널찍한 산하에서 합쳐져 내려오는 물의 량은 많다. 다리를 건너며 커다란 방망이 세워 놓은 것처럼 생긴 로벨리아라고 하는 꽃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슈가보쉬꽃은 여기저기 만발해 있고 마웬지 아래 널찍한 사면까지 곱게 핀 것이 보인다. 길인지 개울인지 분간이 안가는 돌길을 따라 물을 피해 오르면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 계곡으로도 수직의 바위절벽이 보인다. 이렇게 하여 교량을 건너고 그 후 우리는 말없이 50여분을 더 걸러서야 우리는 홀롬보 산장아래 마지막 교량을 건넌다. 교량 위쪽으로는 트리 그란운드 쉴이라는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잠시 돌길을 따라 오르면 그리도 고생고생하며 오늘 최종목적지로 정한 홈롬보 산장이다.
“HOROMBO HUT"
ELEVATION 3270M
.KIBO HUT 9KM(5HRS)
.UHURU PEAK 15KM(11 HRS) 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감개무량함을 느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늘 7시간 10분 걸었다.
홀롬보 산장에 도착하면 도착신고를 해야 한다. 이후 방을 배정받고나면 대장 쉐프가 방앞에다. 따뜻한 물을 가져다 놓고 따끈한 티를 마시러 올 때를 기다린다.
여기는 역시 고도 1000m를 더 올라와서 인지 물이 엄청 차가워서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면하고 발 닿고, 이 닦고 하는데 손두 시리구 얼굴도 시리고 춥다. 우리마님 물모자란다고 난 추운 화장실로 쫒았다.
여기도 롯지의 구조는 만다라하고 똑 같다. 뾰족한 작은 단독 롯지에 4명이서 어제와 똑 같은 방식으로 고여사는 2층 좁다란 천장 메트, 좌측은 규현이 행님, 난 안쪽, 마님은 우측 또 2틀째 혼숙이다. 옷두 입고자야지 추워서잠이 들지 않는 홀롬보 산장 밖으로 나가면 을씨년스런 날씨에 한기가 느껴진다.
간단한 티타임후 휴식을 취한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 날씨가 좋아져 마웬지봉이 가까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정상에 눈이 희끗한 킬리만자로산이 보인다. 굉장히 낮아 보인다.
산 아래로는 이제 날이 거쳐 마을들이 보이고 커다란 흰구름 기둥 옆으로 붉은 노을이 진 모습이 장관이다. 뒤편으로 보이는 킬리만자로는 온통 눈으로 덥혔다. 어제 오늘 오후에 온비가 저기는 눈으로 온 것이다. 케냐가이드가 킬리만자로 눈이 없는 아시죠!! 하던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저것은 눈이 아니고 밀가룬가,
우쨋든 난 도착하자마자 이곳 저곳을 돌아댕기며 사진으로 주변 풍경을 대부분 담았다 산장뒤편으로 트리그라운드 셀군락지와 계곡의 모습 뒤편의 마웬지등 방에서 나와 다시금 보는 모습은 달랐다. 정말경치가 좋은 곳이다. 산 아래 길게 뻗은 평평해 보이는 산사면, 노을이 진 모습, 킬리만자로의 눈쌓인 모습, 구름이 걷힌 마웬지봉 모두가 새로운 풍경이다. 미국아짐들도 나와서 사진찍고하다가 우리팀과 함께 사진도 찍고 저물어가는 홀롬보 산장위 두둥실 뜬 동근달도 보고 반짝이는 무수히 많은 별들과 마주하고는 우리들은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한후
두 번째 날을 마감한다.
여기 두 번째 산장도 식당에서 충전이 가능하다.
제23일차 12월 11일 수요일
오전에는 맑고 쾌청한 날씨, 오후에는 약간의 비,눈
오늘은 홀롬보 산장에서 키보까지 9.26KM, 8시간 걷는날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세면하고 뭐 어찌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나가지 않다가 밖으로 나가니 은은히 깃드는 햇살이 너무 좋다. 붉게 물든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나와 산 전체를 비추니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모습이 좋다. 낮게 깔린 구름바다, 어제 저녁 보이던 킬리만자로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산장 우측으로 마웬지도 아직은 구름에 가렸는지 보이지 않지만 산장 앞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어제 올라온 산길 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광경이 아름답고, 산장 뒤편으로 보이는 모습도 좋다. 미국 아짐들 일찍나와서 사진찍는 모습보이고 우리아짐도 흰 슬리퍼 신고 아장아장 나오는 모습보인다. 이후 갑미여사, 규현이 행님 모두 나와 상쾌한 아침공기 마시며 구름바다 배경으로 사진찍고 즐긴후
아침식사 07:00
대장쉐프 오늘도 아침상 차리느라 고생했다.
가장먼저 올라와 물 준비하고, 티 준비하고 식사준비하고, 오늘 아침부터는 같이 식사하도록 해야겠다.
식사가 끝나고 짐은 포터님들이 각자 나누어 지고 가고 ~~
홀롬보 출발 08:20
메인 가이드 쫒아와 기다린다.
어제 고산증을 알던 젊은 보조가이드는 저녁에 하산을 했다고 한다.
대신 나이는 좀 더 들었지만 매우 강인해 보이는 다른 가이드로 대체되어 우리와 함께 한다. 8시 출발을 하려 산장앞 이정표에서 기념사진 찍고 갈 준비 다 됐는대 마지막 한분 뒷간 가더니 함흥차사다. 우째 이런일이 ~~
식사하고 30분, 또 뒷간댕겨오는대도 30분인가 우쨋든 출발시간 20분 늦게 출발을 한다.
어제 고국으로 돌아간 우리 본대는 지금쯤은 집에 도착하여 한숨 푹 주무시고 있을긴디 ~~우린 또 떠나야 한다.
산장을 출발하는 길은 첫머리는 좋다. 날씨가 좋아져 우측으로 마웬지 봉이 그림같이 보인다. 잠시 올라서면 이정표가 나온다. 키보 헛 10.16km, ZEBRA ROCKS 3.4KM다. 제브라 록(얼룩말 바위) 대략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에 걸쳐 홀롬보 산장에서 쉬면서 잠시 다녀오는 고도 적응 구간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구간을 뺏기 때문에 하루 고도적응을 하지 않는다. 시간도 절약하고, 경비도 절약하고 일거 양득이다.
이제 널찍한 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 세멘포장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물이 줄줄줄 흐르는 길을 따라 20여분이 지나 좌측으로 트리 그라운드 셀이라고 하는 키 커다란 선인장 비슷한 나무 군락지다. 여기서 잠시 사진도 찍고 오른다.
킬리만자로의 대표적인 식물을 알아보면~~
‘키네시오 킬리만자리(Senecia Kilimanjar)'
영어권 나라에서는 자이언트 그라운 셀(Giant Groundsel)이라고도 부르는데 킬리만자로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고산 황무지에 군락을 이루며 서식하는 거인 식물이다.
잿빛의 굵은 몸에 녹색 삐죽머리를 달고 있는 모양새도 재미있고,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400여년간 살면서, 5~6m까지 자라는 식물이다.
‘자이언트 로벨리아(The Endemic Giant Lobelia)
방망이 서 있는 모습으로 잎사이에 파란 꽃이 핀다. 보통 10~50cm정도 자라는데 이것은 무려 3m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자이언트 부쉬(Giant Bosh)
이끼처럼 가느다란 잎이 수염처럼 줄기에 나는 도특한 관상목이다.
‘슈가 부쉬(Sugar BUSH)
노랑 선인장 꽃 같이 생겼다. 마웬지봉아래 군락을 이룬다.
마지막 샘터인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 10:17 ~10:27
서서히 오르는 길 우측으로는 마웬지봉이 항상 따른다. 점점더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며 가까워진다. 오늘은 모처럼 단화로 된 등산화를 신었는데 비가 오지 않아야 할텐데 조심스럽다. 이등산화 젖시면 정상 정복할 때 신을 신발이 없는대 제발 비가 오지 말아야 한텐대 킬리만자로 표범님께 부탁을 한다. 우쨋든 트리 그라운드 쉘이라고 하는 나무 위 꼭대기에 풍성하게 핀 꽃다발이 행운목 꽃다발보다도 더 큼직하고 큰 뭉치로 된 꽃다발이 자주빛이 난다고 한다. 멋진 폼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습지대를 지나면 우측 마웬지봉 아래에도 이넘이 보이고 뭉게구름이 떠 있는 마웬지봉 위쪽을 빼고는 푸른하늘이다. 돌길을 지나며 물이 흥건하다.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고, 푸른이끼가 잔뜩 낀 작은 개울이 나오고 바윗길 물이 흐르는 돌길을 따라 진행하여 이제 조금 가파르게 오른다. 한동안 올라서면 언덕빼기 돌무더기가 많은 능선에 닿는다. 뒤에 오는 님들을 기다려 다시 진행하는 길은 서서해 내려서는 길로 앞쪽으로 킬리만자로 정상이 아주 가깝게 닿아온다. 금시라도 닿을 거리다. 하지만 실제는 굉장히 먼 거리다. 흰 눈으로 덥혀 있는 킬리만자로 지도를 보았기에 중앙이 길만스 포이트이고, 좌측으로 진행하여 높다랗게 보이는 저 끝이 킬리만자로의 정상인 우흐르 피크임을 금시 알수 있겠다. 반대편으로도 능선이 거의 비슷하게 길게 이어지지만 우리는 우측 방향은 가지 않는다. 능선 언덕빼기에서 잠시 쉬었다. 뒤편 님들과 함께 우측의 마웬지봉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서서히 내려선다. 가까워 보여도 상당히 멀다. 한동안 내려서서 가면 파란 건물 2채가 보이고 그 앞쪽으로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이 쉼터이다. 파란 건물은 화장실이고, 그 앞에 마지막 샘터인 ‘라스트 워터 포인트(last water point)’표지판이 습지 안에 있다. 잠시 여기 쉼터에서 쉬어 간다.
언덕빼기 고도 4100지점 10:50 ~10:58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이제 나무는 없다. 길옆으로 작은 누렁풀들만 조금씩 보이고 마웬지 봉까지는 평탄한 자갈 마당이다. 이후 앞쪽에 보이는 봉, 저봉이 분화구라고 한다. 분화구옆으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 금시라도 갈 것 같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킬리만자로 봉은 바로 앞에 있으니 가깝고도 먼 길이 이 길이다. 화산재 길이라고 한다. 풀도 나무도 보이지 않는 그 오랜 세월 빙하가 녹아서 흐르던 자욱만 보이는 곳 가끔은 누군가 작은돌을 빙 돌려 쌓기도 했고, 커다란 돌들이 마웬지 봉아래로 보이기도 한다. 라스트 워터 포인트에서 올라서서 다시 내려서는 길 앞쪽으로 분화구 옆으로 길게 뻗은 길 붉은 흙과 작은 바위들만 보이는 화산재 지역 그 뒤편으로 작아 보이는 킬리만자로 정상부, 이제 좌측 옆으로 흰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저 길을 가야만 저산아래 어딘가에 마지막 산장인 키보가 있을텐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쉼터(화장실 건물, 위쪽에 키보산장 보이는 곳) 12:28 ~13:03
언덕빼기를 내려서서 이제 분화구 옆 화산재 지역 반듯한길로 접어든다. 날씨는 더워지고, 고도가 높아 짐에 따라 숨은 더욱 차니 헉헉 소리 절로 나고, 걸음은 자꾸느려진다. 뒤로 쳐지는 규현이 행님, 고여사도 자꾸 처진다. 분화구 앞을 반듯하게 지나 이제 분화구와 좌측 바위봉 사이로 서서히 오르는 길이다.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생각보다 금시 숨도 차고 어렵다. 우리마님 아직은 잘 쫒아온다. 오기 전 맞은 주사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오르는 길 우측 커다란 바위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하니 나와 함께 하던 새로 함께한 보조가이드 좀 더 가면 쉼터가 있다고 한다. 잠시 오르니 위쪽으로 키보산장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좌측으로 음웨카 루트에서 올라온 바라카롯지가 보인다. 가까이 보이지만 거리는 상당하며 걷는 속도도 느리니 우째 저기까지 간담 그러면 산장까지 거의 다가는 것인디~~
우쨋든 우리는 모든힘을 내서 쉼터로 향한다 .라스트 워터 포인트에서 올라 언덕빼기에서 볼 때 매우 가깝게 보이던 곳을 지나 이곳 까지 오는데 무려 1시간 반이 걸렸다.
먼저 도착한 마님과 나, 보조가이드 쉼터 의자에 앉아 점심식사를 하려 하니 보조가이드 식사를 못한다. 우리가 나누어 준 음식 배낭에 넣고 온 것 아는대 아직 캡틴 가이드가 안 왔다고 식사를 못하는 것이다. 이들 지킬 것은 제대로 지킨다. 우리보다 예의가 더 바르다. 한참이 지나서 캡틴 가이드와 고여사, 서서히 닦아오는 규현형님 우째 힘이 드는 갑지요~~
갑미여사 입술이 새파래졌고, 규현이 행님은 식사하고 30분이 안 지나서 출발을 해서 소화가 안 된다나 뭐라나 구시렁 구시렁이다. 우쨋든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며 행님은 저 앞에 보이는 산장이 키보산장이니 30분을 쉬었다도던지 맘대로 하라 하고 출발을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길은 마웬지 헛 6.27km가 적혀 있다. 우측 방향에서도 올라 오는 길이 있는 것이다.
키보 산장 13:56
손에 잡힐 것 만 같은 가까운거리인데 쉽사리 거리가 줄지를 않는다. 뒤에 오는 규현이 행님과 고여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우리는 앞을 향하여 한발한발 닿아선다.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군을 지나 오른다. 하마가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의 바위도 보이고 이제 바위지대 옆을 따라 오르면 저 앞쪽으로 먼저 올라온 포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배낭커버를 재빨리 씌우고, 우산을 꺼내들고 올라간다. 잠시 비가 오더니 눈으로 변하여 잠시 오다가 그친다. 오늘은 그래도 비가 많이 오지 않고 잠깐오다 그친다. 쉼터에서 점심식사후 금시 갈수 있을 것 같던 키보산장까지는 무려 55분이 지나서야 도착을 했다.
“KIBO HUT"
ELEVATION : 4720M
.GILMANS POINT: 4KM(5HRS)
.STELLA POINT : 4.5KM(5.30HRS)
.UHURU PEAK : 6KM(6HRS) 이 적혀 있는 이정표 앞에서 기념사진찍고 한숨을 돌리며 이곳저곳을 댕기며 사진도 찍고 좋아라 하는 우리 마님 여기까지가 한계 인줄 알았는데 정상까지 간다구 할거 같다. 여기 까지 와서 멈춰도 누가 뭐라 안 할긴대 대단한 기록인대 말이다. 해발 4720M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는 높이다.
키보 산장 주변으로는 텐트가 여러동 쳐져 있다. 대부분 포터들이 친 텐트로 보이며, 몇 명의 중국인들도 보이는데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 온 것인지는 구분이 잘 안 간다. 우리와 함께 올라온 사람들은 아니다. 여러명이서 화장실 뒤편 산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데 고도 적응을 위한것인지 일렬로 올라간다.
10여분 늦게 도착한 고여사 기념사진 찍고, 마님과 함께 좋은 경치 돌아댕기며 사진찍고 하는 사이 마지막으로 규현이 행님도 도착했는데 기념사진도 찍기 귀찮은 갑다.
우쨋든 가이드가 가져온 키로 돌담집안으로 들어가 첫 번째 방문 여니 괘 규모가 크다. 침상이 6개인대 아래위로 있으니 12자리다. 뒤에 오는 님들과 같이 쓰지 않겠나 싶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가 방을 세어 보니 6개 정도가 있으니 홀롬보에서 대략 6팀인가 있었으니 한방씩 차지하면 다른팀은 들어오지 않겠다.
한 시진이 흘러 15시 30분 경 대장쉐프 티 준비하여 마실 때를 기다리니 고단한님들 쉽사리 모여들지 않는다. 규현이 행님을 찾아 나서니 돌집끝 양지바른곳에 자리잡고 누워서 햇볕을 쪼이고 있다.
저녁식사 16:30
빨랑 오라하여 차마시고 휴식을 하고 다시 1시간후 차려진 저녁상 빵과 스프 국수가 나왔다. 스프에 고추장 풀어서 국시 말아먹고 힘을 쓸라나 우짤라나 ~~
식사가 끝나고 옆집 두 미국 교포아짐 불러 마지막 부리핑 해설 듣고 나니
오늘 밤 11시 출발해서 간다고 한다.
가이드는 한명 더 추가해서 3명이 따른다고하니 우리님들 정상 정복하다 실패할 것을 염려하여 한명을 더 추가 한듯하다.
이제 환한 가운데 잠을 자야 한다.
킬리만자로 정복을 위해, 그런대 잠이 쉬 올리는 없다. 자는둥 마는 둥하고 ~~
제24일차 12월 12일 목요일
정상 정복하는 날
기상 11일 22시
자는둥 마는둥 일찍일어나 부시럭 부시럭 마지막 준비를 하는 사이 모두 일어나 준비를 한다.
키보 출발 11일 23:00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부스스한 얼굴로 키보산장을 나선다.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후레쉬 없이도 갈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좋다.
가이드들은 후레쉬 없이 오르고 우리 넷은 후레쉬 착용하고 천천히 한발한발 오르기 시작한다. 항상 산행에 앞서 마음이 설레고 걱정이 되긴한다. 하루 40km이상 20시간씩 산행 할때도 시작하기 전에는 오늘은 할수 있을까? 내심 긴장을 하며 걱정을 하지만 막상 산행에 들어가면 차분하게 진행을 한다. 서루르지 않고 독도에 신경쓰며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가는 스타일이다. 또한 장거리 산행은 하지 않는 편이다. 50km이상 되는 산행은 ~~
오늘도 막상 정상정복에 나서니 마음은 매우 편해진다. 하늘에 밝은 달과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수놓았다. 키보산장을 나와 첫머리는 순탄하게 오른다. 처음부터 메인가이드는 고여사 배낭, 보조 가이드는 한여사 배낭, 스카우트 가이드는 규현이 행님 배낭 둘러메고 간다. 1시간여 오르면 서서히 가파라지고 처음부터 머리숙이며 쉬어가던 마님은 점점 더 심해지고, 40~50발자국 가다 머리숙이고, 수없이 하다가 좀 더 오르니 200여발자국 까지 잘 진행하다가 다시 40발자욱도 못간다. 지그재그로 오르기 시작한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평탄해보이던 산비탈이 막상 달라붙으니 급경사다. 주욱 미끄러지는 흙, 지금은 얼어 붙어 서리발이 섰다. 이제 산 아래로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보다 1시간 늦게 0시 출발하는 팀들이다. 서서히 불빛은 우리와 가까워지고, 뒤로 줄이어 오르는 불빛들 ~~
헝가리인 추모 스텐판 01:57 ~02:10
우리 한여사는 더 이상은 가면 안 될 것 같다. 고산증은 아니라고 하는대, 부정맥 때문에 심장이 멎을 것 같다고 한다. 오래전에도 그랬는대 고산에 올라오니 증세가 나타는 것이다.
모두가 이렇게 가다가는 다 같이 포기 할 수도 있으니 오르는 대 까지 올라왔다가 안 되겟으면 내려가라고 한후 3명이서 오른다. 천천히 올라도 금시 차이가 난다. 한참을 오르다. 뒤쳐다보고, 한참을 오르다, 뒤쳐다보고 거리를 좁히며 쉬엄쉬엄 오른다.
3시간이 되자 헝가리인 추모 스텐판이 있는 움푹 들어간 바위아래 쉼터에 닫는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맺혀 있는 바위아래 쉼터에서 휴식을 한 후 다시 진행!!
킬만스 포인트 04:35 ~04:45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지그재그로 오른다. 주위에 우리를 감싸 줄 방어막도 없고 흙무더기 급경사 지대다. 이제 눈이 나오기 시작한다. 미끄럽지는 않다. 눈을 밟으며 지그재그로 오르기 때문에 미끄러질 염려는 없다. 이제 고여사가 문제다. 20여발자국 가면 쉬고를 반복하며 오른다. 그래도 규현이 행님은 천천히라도 잘 올라온다. 뒤에서 오던 불빛은 이제 바로 우리와 가깝게 붙었다. 유럽인 두 젊은 여성과 가이드들이다. 역시 젊은 친구 들이라 힘이 있다. 잘 치고 올라온다. 이제 킬만스 포인트는 바로 머리 위에 있지만 거리는 좀체로 좁혀지지않는다. 바위지대로 오르기 시작한다. 점점 더 험해지는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길 누군가는 이 길에서 포기도 했고, 또 싸움에서 이기며 정상으로 향했을 것이다. 고산증에 체력저하에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정상정복에 성공한이도 있다. 공기가 희박한 고산에서 될수 있으면 천천히 움직이며 답답함을 이기는 것도 힘들다. 우쨋든 킬만스 포인트로 향하는 길에 고여사 굉장히 힘들어 보인다. 참고 인내하고, 투지와 오기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는 대한민국의 60~70에 가까운 중년들이 오늘 해내고자 한다. 끈기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추모 동판에서 2시간 반이 걸려 드디어 우리는 바위지대 위 킬만스 포인트에 도착을 한다. 어두워서 킬만스 포인트 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우쨋든 반갑다. 뒤에 오던 젊은 백인 여성들도 도착을 하고, 잠시 쉬어 간다.
"MOUNT KILIMANJARO"
CONGRATULATIONS (축하 합니다)
YOU ARE NOW AT (당신은 지금)
GILMAN'S POINT 5685M (킬만스 포인트 5685M)
TANZANIA (탄자니아)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즉 탄자니아 킬만스포인트에 올라온 것을 축하 한다는 애기 같다.
STELLA POINT 5756M 도착 05:23 ~05:30
이제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약 2KM,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산 아래에서 볼 때는 킬만스 포인트에서 우흐르 피트 정상까지 굉장히 가깝게 보였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끝이 안 보인다. 이제 바람이 제법 차다. 주변으로는 온통 백색의 세상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정상부는 양쪽으로 뻗은 능선을 중간에 주고 급경사로 이루어 졌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은 바위능선으로 커다란 바위 아래를 통과하여 진행하는데 우측으로 발을 잘못 디디면 끝없이 추락하겠다. 뒤에 오는 울마님은 내려갓것지~~
에고 성깔이 있으니 끝까지 올라올긴디, 올라오면 다시 델구 정상까지 댕겨와야 혀~~
우쨋든 마음은 되로 돌아갔길 바라며 정상으로 향한다. 보통사람들 킬리만자로 키보까지만 와도 좋은 경치 다 구경하고 성공한긴디 너무 욕심 안냈으면 좋겠다.
바위아래 굵직한 고드름 맺힌 것도 보이고 대부분 평탄하게 이어지는 눈길을 따라 진행한다. 이곳에서는 거의 쉬지 않고 그저 천천히 말없이 묵묵히 옆으로 추락하지 않으려 신경을 쓰며 걷는다. 앞쪽으로 먼 곳으로 불빛이 보이며 저기가 정상임을 직감하며 걷노라면 바라프 롯지에서 올라오는 많은 불빛들이 보이고 점점 닿아가니 드디어 바라카롯지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인 STELLA POINT다. 해발 5756M로 킬만스포인트보다 70여 미터가 높다. 스텔라 포인트 표지판 간신히 사진만 찍고 잠깐 쉬었다가 직행 ~~~
대망의 킬리만자로 정상 우흐르 픽크 정복 06:20 ~06:28
스텔라 포인트에서 부터는 바라카 롯지에서 올라온 30여명의 무리의 뒤에 서서 앞사람 가는대로 천천히 간다. 뒤로는 이제 동녘하늘가가 조금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옷깃을 여미며, 얼어붙은 마스크 고쳐 쓰며 서서히 하얀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여명이 깃드는 산하의 가장 높다란 언덕을 따라 간다.
하얀 언덕 눈길을 따라 가는 많은 사람들 저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오직 우흐르픽크 정상까지 가는 생각외에는 없을 기다.
조금은 추위가 느껴져 배낭에 들은 고어텍스 잠바 꺼내서 모자 푹뒤집어 쓰고 가고 싶지만 혹여 올라올지 모를 마님 생각에 그냥가도록 한다. 두터운 장갑도 배낭에 하나 더 있지만 아직 이 장갑으로 손이 시리지는 않는다. 천천히 가기 때문에 오리털 잠바 주머니에 넣고가고, 사진도 찍을수 없으니 장갑을 벗지 않아 손이 시리지는 않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추운 날씨는 아닌데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얼굴이 따갑다.
20여분이 지나니 주변으로 하얀 눈밭이 보이고, 좌측 산사면으로 직선으로 높다란 빙벽도 보인다. 뒤편의 하늘가에 온통 붉은 구름으로 치장을 했으며, 산 아래로는 구름이 쪼악 깔려 보기 좋다. 오늘 해맞이는 시원찮겠다. 구름이 너무 많이 끼여 있다. 여기도 서서히 구름이 몰려와 덥곤 한다. 주변의 경관은 장엄하고 위엄이 있고, 붉게 물든 동녘하늘은 보기 좋지만 즐기기에는 너무 힘들다.
6시 15분 뒤쪽으로 동그랗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앞쪽으로는 코앞에 닿아선 우흐르피크 킬리만자로의 정상이다.
정상에는 앞서서 올라온 30여명의 사람들로 법석을 떤다.
"MOUNT KILIMANJARO"
CONGRATULATIONS (축하 합니다)
YOU ARE NOW AT (당신은 지금)
UHURU PEAK TANZANIA 5895M/19341FT (탄자니아 우흐르피크 5895M)
.AFRICA'S HIGHEST POINT (아프리카 최고봉)
.WORLD'S HIGHEST FREE.STANDING MOUNTAIN(세계에서 자유롭게 가장높이 오를수 있는 산)
.ONE OF WORLD'S LARGEST VOLCANOES(세계에서 가장큰 화산중 하나)
.WORLD HERITAGE AND WONDER OF AERICA(세계 자연유산)
정상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개인으로 기념사진 찍고, 단체로 현수막 들고 사진찍고 눈보라가 얼굴을 때려 따가운데 앞서온 님들 행사가 길어진다.
우리도 간신히 정상 표지판 차지하고 사진 찍는데 난 눈보라 치는 정면에 서서 눈도 뜨지 못하고 사진 찍었다. 감격의 눈물도 흘릴새 없다. 배낭에 지금껏 이 시간을 위해서 꼭넣고 다니던 태극기를 꺼내서 양손에 치켜 들고 대망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서 하늘높이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의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규현이 행님은 셋이서 사진찍고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
고여사가 먼저 태극기 휘날리며 개인사진찍고, 이어서 나도 사진찍고~~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바람같이 하산을 시작한다.
2차 킬리만자로 정상 06:49
정상에서 눈보라 맞으며 간신히 정상 사진찍고 즐길 사이도 없이 하산을 시작하고 10여분 앞쪽에 어허 한 여사가 보인다. 잘못 본것인가!! 다시금 두눈을 치켜 뜨고 보니 금시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한여사~~
예상했던 대로 올라온 것이다. 킬만스 포인트로 오기 전 고여사가 한여사와 마찬가지로 금시 쉬고를 반복하는 사이 거의 따라 잡은 것이다. 에고 이 여편네야 여기가 뭣이라고 죽을지 모르고 오냐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배낭에서 지금 껏 입지않고 있던 고어텍스 잠바 꺼내서 입히고, 한여사 배낭속에 들어 있던 벙어리 장갑꺼내서 손에 끼우고 정상 10분이면 간다고 손잡고 오른다.
한여사 얼굴은 얼었는지 허연하게 얼룩이 졌지, 눈은 안 보인다하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같이 온 보조 가이드 무지 고생을 했겟다.
오면서 보조가이드 따스한 물도 한잔 얻어 먹이고 끝까지 오느라 수고 했다.
에구 이럴줄 알았으면 커피타가지고 온거라고 주고 올걸~~
끝까지 같이 올걸~
우쨋든 10분이 되어 우리는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라섰다.
태극기 휘날리며 킬리만자로정상 사진 찍는 폼은 그래도 한여사가 가장 폼 난다.
이렇게 하여 나는 두 번 킬리만자로 정상을 밟고 하산을 시작한다.
한참을 내려오다가 미국인 교포아짐둘과 만나 울마님 깊은 포옹을 하는대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성공을 추카 한다는 미국 아짐과 헤어지고~~
이 아짐들 키보에서 아마도 1시경에 출발한듯하다.
킬만스 포인트 07:53
앞이 안 보인다고 하니 내가 팔잡고, 앞서가는 보조가이드 뒤따른다. 조금 가다 쉬고 조금 가다 쉬고를 반복한다. 눈길에 미끄러워 잠시 서서 아이젠 채우는 대 아고 다친손 때문에 쉽지가 않다, 한동안 실갱이 끝에 간신히 아이젠 신기고 내려오니 그래도 안심이 된다. 난 배낭에 아이젠이 있지만 그냥 내려와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정도다.
이렇게 하여 35분이 지나 바라프 롯지로 하산길이 있는 삼거리 스텔라 포인트에 닿는다. 마님 부축에 오는 나를 보고 보조 가이드 내 배낭까지 달래서 둘러메고 앞서서 진행을 한다. 정상에서 스텔라 포인트까지는 서서히 내려서는 길로 좋은 편이지만 여기부터 킬만스 포인트 까지는 바위 능선 길로 이제 내려 갈때는 좌측으로 벼랑이라 조심해야 한다. 가끔은 언덕도 있고 조금씩 오르내리며 진행을 한다. 눈길이 다져지지를 않아 푹푹 빠지는 곳도 더러 있고, 바위턱을 내려서는 곳도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마님 부축하며 내려가려니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가끔씩 쉬어 가는 마님보조 맞추느라 힘이 매우 든다. 내 스타일대로 가야 하는대 남이 볼 때는 쉬며가니 힘이 들거 갔지않지만 실제 내 스타일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힘은 몇배 더 드는 것이다. 또한 이 능선은 햇살도 들지 않아 춥다.
스텔라 포인트에서 30여분이 지나서 킬만스 포인트에 도착을 한다. 정상에서 1시간이 좀 더 걸렸으니 갈때보다는 그래도 40여분이 덜걸린 시간이다.
킬만스 포인트에서 잠시 쉬고 간다. 마님 아니면 내려올 때 사진 찍을라고(실제 어두워서 사진 찍어도 안나옴) 올라갈때는 주머니에 손 쑤욱 집어넣고 갔는데 계획이 틀어져 사진도 못 찍고 내려왔다.
키보산장 09:44
킬만스 포인트를 지나며 부터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라 매우 조심조심 내려선다. 앞이 잘 안 보이는 마님은 거의 기다시피 천천히 내려서고 앞에서 길안내를 하며 앞서가는 보조가이드 따라 간다. 올라 올 때는 지그재그로 올라온 길을 내려 갈 때는 대부분 직선으로 미끄러지듯 내려선다. 땅이 녹아 신발이 흙속에 푹 묻히며 미끄러지듯 내려서는 길 시간은 절약되지만 울마님은 무척 힘들어 한다. 중간쯤에서 이 길을 버리고 지그재그로 길을 따라 내려서고, 1시간을 내려오니 커다란 바위아래 움푹들어간 쉼터가 있는 헝가리인 추모 스텐판이 있는 곳에 닿는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간다.
저 산 아래로는 많은 사람들이 내려가는 모습이 보이고 조금 아래에도 부축을 하며 내려가는 모습도 보이고 내려서며 부축을 하며 가던 가이드로 보이는 분은 그래도 빨리 내려간다.
이제 다시 천천히 내려선다. 눈길도 이제 끝이 낫고, 주변으로 보이는 바위지대 중간 빙하가 녹아 사태가 난 지역을 따라 내려선다. 주욱 미끄러지기도 하고 내려서다 쉬기도 하며 간다. 20여분을 내려서니 올라 갈 때는 보지못했던 윌리엄 포인트라 적힌 나무판이 보인다. 앞쪽으로는 살짝 구름이 스쳐가는 마웬지봉이 마주하고, 그 앞쪽으로 널찍한 화산재구간이 펼쳐지고 산 아래로는 키보산장이 점점 가까워진다. 현재의 날씨는 파란하늘에 가끔 구름이 낀 아주 맑고 상쾌한 날씨다. 정상과는 아주 판이한 날씨다.
급경사 지대 거의 내려와서 울마님 내 배낭에 마껴둔 돈에서 10달라 꺼내서 보조가이드 주란다. 우찌나 고생을 했는지 엄청 고맙단다. 뭐 내생각도 엄청 고생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거 10달러라야 만2~3천원대 고생한 대가로는 부족하지만 조그만 성의라 생각하고 건네니 무지 좋아 한다. 얼렁 주머니에 넣으라는 시늉을 하니 배낭 벗고 금시 주머니로 쏙 들어간다. 이들의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제천 선생님의 카스토리 보니 포터의 일당이 하루 2달러라고 했으니 많아봐야 5달러 내외일 것 같다.
그들에게는 큰돈일지도 모른다. 가이드는 빨리 내려가라고 해도 뒤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우리와 함께 보조를 맞춘다. 어쨌든 올라갈때는 5시간 반가량이 걸린 킬만스 포인트에서 내려올 때는 아무리 천천히 쉬엄쉬엄 내려와도 2시간이 못 걸렸다.
이렇게 하여 키보산장에 무사히 내려서니 현재 시간이 9;44분이다.
오늘 정상정복은 이렇게 하여 모두 성공을 하였다. 힘들고 험한 길이지만 묵묵히 우리를 이끈 현지 가이드 3분이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며 엄청 고생했다. 우리 같으면 얼마씩 받는지는 모르지만 이 고생은 알 할기다.
그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어제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했던 방(짐은 모두 이곳에 그대로 놓고 정상에 댕겨온다)에 다시 들어가니 먼저 내려온 고여사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안한다. 고생 꽤나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규현이 행님은 우리가 내려설 때 잠시 보이더니 금시 안보이고 우리도 짐 내 팽게 치고 잠시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키보산장 출발 11:52
잠시 휴식후 일어나 대장 쉐프가 준비한 따끈한 차를 마시려니 아무도 오지 않는다. 고여사는 침상에 죽은 듯 누워 있고, 울마님도 침상에서 말만 가끔씩 하고는 차 마실 생각을 안는다. 잠시후 규현이 행님과 나, 대장 쉐프 셋이서 차 마시고~~
이제 오늘 정상정복을 위하여 입고 갔던 두터운 옷, 마님 아이젠, 후레쉬, 스패츠, 두터운 장갑등 챙겨서 짐에 싸고 다시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하산준비를 한다.
시간이 흐르고 쉐프는 안타까운 듯 자주 방으로 드나들며 차도 준비하고 이제 늦은 아침은 굷고 이제 점심식사준비를 한다.
우리 고여사 하나 먹지 않았고, 우리마님도 못 먹겠다고 뒤로 빠지고 나와 규현이 형님하고, 쉐프대장 셋이서 대충 식사 마치고 나니 메인가이드가 가자고 들어온다.
일어나기 싫어하는 고여사 간신히 일어나고, 울 마님도 일어나 떠나기 싫은 키보산장을 나선다.
JIWE LA UKOYO(화장실 있는 쉼터) 12:19
키보 산장을 나서며 차타고 가자고 하는 고여사 금시 배낭은 메인 가이드가 메고 간다. 가다가 메인가이드 안 나오니 배낭에 돈 때문에 걱정이 되어 다시금 산장으로 잠시 다녀오고~~ 이후 우리는 마지막으로 키보산장 표지판을 배경으로 보조가이드와 함께 단체로 기념사진 찍고는 하산 길에 오른다.
밤새 올랐던 우흐르 피크의 힘들었던 추억을 뒤로 하고 ~~
또한 정상아래 눈밭에서 마나님과 재회의 기쁨으로 눈물짓던 일도 이제는 먼 추억이 될 것이다. 킬리만로여, 키보여, 굿 바이 ~~
차를 타고 가자고 외치던 고여사도, 정상에서 내려오면 고진고생을 하던 한여사도, 그래도 묵묵히 잘 정상을 다녀온 규현이 형님도 종알종알 잘 내려온다.
30분이 못되어 키보로 향할 때 점심을 먹던 화장실이 있던 쉼터에 닿는다.
바위에 이런 명패가 붙어 있다. JIWE LA UKOYO(지 웨라 우코) 12:19
여기 이정표에 키보헛 1.46KM, 홀롬보 7.8KM가 적혀 있다. 키보에서 홀롬보 9.3KM구간중 이제 막 걸을마를 뗀 것이다. 앞쪽 마웬지 봉 좌측으로 내려서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데 그 쪽 방향으로는 마웬지 헛 6.27KM가 적혀 있다. 이제 화산재지대의 지루한 구간이다. 앞쪽으로 보이는 분화구과 뒤편으로 높다랗게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마웬지봉, 뒤편으로는 우리가 밤새 올라갔다 내려온 우흐르피크 정상이 있는 킬리만자로 정상부가 있다. 서서히 내려서는 길, 마웬지 봉을 가렸다 다시 보여주기를 반복하는 흰구름들, 모두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주욱 늘어서 앞서가는 포터들 우리 쉐프대장일행은 우리가 내려가고 얼마 안되어 우리를 추월해서 열심히 내려간다. 빨리 홀롬보에 도착하여 더운물 준비하고 저녁 밥 준비해야 한다. 줄줄이 우리팀 포터들이 내려가고, 우리는 점점 쳐지며 내려간다.
LAST WATER POINT 13:36
좌측으로 분화구를 바라보며 화산재 지역 서서히 내려가는 길, 잘 가던 마님이 옆 바위에 주저앉는다. 뒤에 오는 분들과 같이 가야 한단다. 이제 서서히 올라서는 오르막길 저 앞에 보이는 바위언덕을 넘어서면 라스트 워터 포인트다. 하지만 언덕에 올라서서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마님 꼼짝을 않고 앉아서 하늘만 바라본다. 정상을 다녀오느라 기운도 빠지고 어제부터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기운이 있을리 없을기다.
한참을 기다리다 내려서서 워터 포이트에 닿는다. 우측으로 화장실 건물과 아래쪽으로 헬기장이 보이는 곳이다.
홀롬보 산장 14:34
습지에 물이 더 많은 것 같다. 좌측으로 마웬지봉에는 구름이 잔뜩 끼고 우째 서서히 구름이 몰려드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마랑구를 통과하며 매일 오후에는 비가 내렸는대 오늘도 비가 올 것 같다.
내려와서 미국아짐들 못 보고와서 서운하다고 몇 번이고 되 뇌이는 마님 와 안 오는 기유 ~~~~
우쨋든 나홀로 터덜 터덜 내려오는길
40여분을 내려오니 습지대 자이언트 그라운드 셀 군락지 위에 닿는다. 서서히 밀려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여기서 사진 몇장 찍으려 한것이대 구름에 가린 희미한 사진 한 장 씩고는 부지런히 내려간다.
여기서 내려가는 길 잔 바우 길에서 물이 흘러 이쪽저쪽으로 건너며 한동안을 내려서면 이윽고 세멘포장이 된 널찍한 나오며 홀롬보 산장이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뒤를 바짝 따라오던 백인 젊은 여성들과 앞서거리 뒷거니 하며 내려서니 마침내 오늘 밤을 묵을 산에서의 마지막 산장인 홀롬보 산장이다.
올라 갈 때도 이곳에서 하룻밤 묵었기에 지리는 익히 눈에 익다. 비가 주룩 주룩 내려서 어디 갈 곳도 없고 하여 일단 우리 일행이 내려오면 쉽게 눈에 띌 장소인 식당앞 의자에 우산을 바쳐 놓고 기다린다.
티 타임 16:00
10여분 이상이 되어 울마님 도착하고 잠시후 도착한 보조가이드 싸인하라고 하여 사무실에서 이름적고 등등 적고 싸인하고 다시 돌아와 기다리니 키 들고 온다.
우리 방은 올라갈 때 앞 동으로 식당과 더 가깝다.
키보에서 널찍한 방 쓰다가 다시 좁다란 방 쓰려니 에고 힘들다.
비는 와서 축축하지 잠시후 도착한 후발대와 함께 입주하여 못에 배낭걸려구 하는대 여기는 못두 몇 개 없다. 시설이 매우 빈약하다 거기서 거기지만 ~~
우쨋든 상량 긴 목재에 우비도 널고, 여기저기 비에 젖은 배낭 우산등 널려 놓고 있자니 역시 우리 대장쉐프 따근한 물 가져다 놓고 씻고서 티마시러 오라구 한다.
재빨리 화장실로 올라가 뒤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던 작은 세수비누 꺼내서 세수하고 발닿고 하니 손두 시리고 얼굴도 시리고 한기가 느껴진다.
세면하고 이제 옷 하나 꺼내 입고 티를 마시러 간다. 잠시 후 같이한 두 여사와 규현이 행님 상의를 해서 등산가이드 2명, 쉐프 2명, 포터 8명 모두 모여 같이 사진찍고 각자 똑같이 수고 했다고 5불씩 주자고 상의를 했다. 뭐 우리는 첨에 산행이 끝날 때 까지의 팁은 이미 계산을 하고 온것이기 때문에 지불할 의무는 없지만 그래도 그간 우리를 위해 고생한 정말 포터들도 고생하지만 항상우리곁에서 챙기는 쉐프, 정상까지 함께 했던 등산가이드 엄청 고생했다. 특히나 우리마님과 함께한 보조가이드, 고여사와 함께한 메인가이드 고생많았다.
오늘 올라온 유럽인 단체팀 21명인지 앞테이블 전체를 다 차지하고 쉐프로 4명이 왔다 갔다 한다.
저녁 식사 18:30
이렇게 하여 티타임후 막간을 이용하여 쉐프 대장한테 전달하여 모두 모이도록하여 홀롬보산장 표지판에서 사진촬영하기로 한 것인대 비가 주룩주룩 내려 식당에 있는 외국인 남성께 부탁하여 식당앞에서 기념 사진 모처럼 함께 찍었다. 그후 각자 5불씩 나누어 주고, 마지막 한분 안 받은 분 있어 누구냐고 물으니 조금 전 티 타임때 그간 수고 했다고 따로 10불 챙겨준 쉐프대장이다. 무척 좋아하던 쉐프 그때 받았다고 양심적으로 안 받는다고 우리 마님 굉장히 양심적이라 하며 다시 마지막으로 쉐프대장한테 5불 건넸다.
이렇게 아쉽지만 대충 마무리를 하고 식당으로 들어가 이야기 하는 사이 쉐프대장이 저녁 차려서 입맛은 없지만(나와 규현이 행님은 빼고) 저녁식사 하고 산장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제25일차 12월 13일 금요일
마지막 킬리만자로를 떠나는 날
기상 05:00
식사 07:00
홀롬보 롯지 출발 07:43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니 5시다. 근대 어제 밤까지 들어오던 불이 안 들어온다. 태양광을 이용하는 시설이라 서쪽편 지붕에 있는 태양열판이 오후에 오는 비로 인하여 충전이 다 되지 않은 것 같다. 어두워서 입으로만 서로 주고 받고 애기 하다가 5시 35분경 밖으로 나온다. 동녘하늘가에는 역시 붉게 물들어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둡지만 롯지주변을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며 돌아 댕기니 6시가 넘어 점차 밝아지더니 6시 10분경 해가 구름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멋지게 드리운 운해가 멋지고 은은한 빛이 금시 감돌며 주변의 경치가 멋지다. 오늘은 킬리만자로 정상은 보이지 않고, 마웬지봉에는 밤새 흰눈이 소복이 쌓였다. 그위 하늘은 푸르고 맑다. 홀롬보 산장 표지판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장관이다. 은은한 빛이 감도는 넓고 긴 산사면과 그 아래로 산하를 덥고 있는 흰구름 바다. 오늘 우리가 내려가야할 산사면으로 자욱히 낀 산안개,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다.
어제 단체로 온 21명은 일찍 아침식사하고 일찍 출발을 한다.
아침에 롯지주변을 점검하고 이제 롯지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하산이다.
마지막 킬리만자로 산을 떠나는 날이다.
오늘은 발걸음 조금 가벼워 졌으며 기분들도 훨씬 좋아진 것 같다.
산장 주변으로 올라갈 때는 없던 텐트가 몇 동 보인다.
잠시 내려서서 홀롬보산장 옆쪽 계곡으로 해서 마웬지봉으로 향하는 계곡위 목교 수량이 상당히 많아졌다. 목교를 건너고, 08시 02분 두 번째 교량을 건너고, 점차 고도를 낮추며 내려선다. 역시 야생화가 지천인 구간이다. 노랑꽃 빨강꽃, 방망이가 선 것처럼 생긴 로벨리아, 선인장 꽃같이 생긴 슈가보쉬, 이제 그라운드 쉘도 숫자가 점차 줄어들며 점점 고도가 낮아진다. 아직도 킬리마자로의 정상은 보이지 않고 밤새 흰눈이 쌓인 마웬지는 날씨가 좋아져 내려가는 내내 보인다. 양산을 받쳐들고 내려서는 우리 마님 얼굴에서도 웃음이 나오고, 규현이 행님도 웃음꽃이 피었다. 우히히히 오늘도 고여사는 힘에 부치는지 메인 가이드에게 배낭을 맞기고 꼭 붙어서 내려온다. 이렇게하여 내려서면 08시 19분 세멘트 다리를 건너고, 시원스럽게 물이 흐르는 계류의 3번째 목교를 건넌다. 역시 양산을 잘 받쳐 들고 내려오는 한여사님뒤로 고여사, 규현이 행님 두 가이드들이 따른다. 수량이 상당히 많은 4번째 목교를 08시 32분 건너고, 마웬지봉과 정면으로 보이는 5번째 목교를 건넌다. 여기도 수량이 많다. 이렇게 내려오는 곳에는 곳곳이 등산로로 물이 흘러 등산로인지 개울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곳도 많고 옆으로 잘 피해서 와야 하는 곳도 있다.
이제 언덕으로 오르며 마웬지의 봉의 끝부분만 살짝 보이더니 올라올 때 쉬었다가 화장실이 있고 지붕이 설치된 탁자와 의자가 있는 쉼터에 닿는다.
만다라 산장(2732M, 10M정도가 차이난다) 11:26 ~11:42
쉼터에서 잠깐 쉬고 내려간다.
쉼터에서 20여분후 길다란 목교를 건너고, 앞쪽으로는 평탄한 지형으로 길게 곧장 가는 길이다. 길이 좋은 곳이다. 허브나무와 비슷한 식물에 노랑꽃이 만발한 산기슭 평탄한길을 따라 가면 마웬지의 뾰족한 봉은 항시 보이고, 점차 진행을 하면 해발 약 3200M지점의 평탄한 지형 등산로 끝에서 이제 서서히 내려서고, 마웬지봉은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며 내리막길을 따라 간다. 이윽고 만다라 1.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 해발 약2870M 지점으로 3000M로 아래로 내려서며 숨쉬기가 한결 좋아진다. 여기 이정표 통과시간이 10시 46분 점차 마웬지봉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내려서는 길 양쪽으로 노랑꽃이 만발해 있고, 점차 털나무지대를 따라 내려서면 목교가 나온다. 해발 약2800M 지점으로 현재 시간 11시 10분, 2분후 목교를 지나 울창한 털나무 지대를 지나면 만다라 산장 바로 전 마지막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만다라 320M가 적혀 있다. 해발 약2762M로 현재시간 11:16분이다.
이후 양쪽으로 고사리밭이 있고 잠시후 우리는 킬리만자로 산에서 첫날밤을 보냈던 만다라 산장에 도착을 한다. 잠시 식당으로 들어가 휴식을 하고 마지막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15분 정도를 쉬고 있자니 가이드님들이 가자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는 줄 알았는대 마랑구까지 가서 먹는다고 한다.
큰길옆 휴게소(헤발 약2220M) 12:55 ~13:05
만다라 산장을 출발해서 잠시 후 목교를 건너고, 20여분이 못되어 두 번째 목교를 건너 내려간다. 천천히 내려서는 길에는 역시 털나무가 양쪽으로 음습하게 자라 있으며 습도가 높은 지형이다. 요즘 많이 내린비로 길이 많이 지저분해 졌는지 등산로를 금시 정비한 흔적이나오더니 얼마를 내려서니 여러명이서 푹푹 빠지는 산길에서 정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옆으로 살짝 피해서 내려서고, 세 번째 목교를 지나 내려서면 굵직한 나무가 아치를 그리며 서 있는 곳이며 다시 내려서면 10여분후 4번째 목교가 있는 곳으로 만다라 1시간, 마랑구 2시간이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는 지점이다. 여기 교량앞에서 우측으로 향하고, 잠시 더 내려서면 올라갈 때 사진을 찍던 폭포가 있는 곳으로 여기서 내려서는 길에 조금 몸집이 좋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분간이 잘 안가는 분과 잠보하고 인사를 나누다가 뭔가 서로 멈칫하다가 서로 갈 길을 간곳이다. 이후 내려서면 질컥거리는 길도 많고 30여분이 가까이지나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큰 길옆 휴게소가 있는 지점에서 보조가이드와 만난다. 보조가이드는 삼거리에서 내려오는 님들 기다리고 나는 큰길가 휴게소로 가서 화장실도 보고 킬리만자로 꽃이라고 하던 거 사진으로 한번 더 담고는 후미팀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같이 하산을 한다. 후미팀은 조금 전 뚱뚱한 분과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였다고 한다. 천안에 있는 선문대학교 재료공학과 교수라고 하는대 세미나 차 왔다가 40만원인가를 주고 만다라 산장까지만 댕겨온다고 했단다.
마랑구 게이트 도착 14:13
마지막 휴게소에서 내려선다. 내려오며 내 배낭옆에 끼워진 우산을 가리키며 줄수 없냐고 손으로 묻던 보조 가이드는 우리마님 정상까지 끝까지 모시구 댕겨온 고마운 사람이다. 뭐 알았다고 하며 내려오다가 울마님한테 애기하니 자기 양산은 안준다고 하며 내것 만주라고 한다. 마님것이야 배낭속에 들었으니 보이지 않아 달라구 안하지 ~~
혀튼간에 한참을 내려오다가 물을 마시며 우산을 건네주니 보조 가이드 엄청 좋아 한다. 손을 잡고 내 엄지손가락을 잡고 입으로는 하쿠나 마타나을 외치며 좋아 한다. 정상을 다녀오면 가이드 쉐프, 포터들이 모여서 축하는 의미로 “킬리길리 하쿠나 마타타 킬리만자로”를 외치며 춤판을 벌인다는데 우리는 마지막 산장인 홀롬보 산장에서 이과정이 빠졌다. 술도 없었고, 비도 주룩주룩 내리고, 지친몸을 가누질 못하니 엄두도 못냈다.
우쨋든 하쿠나 마타타를 연신 외치며 좋아하는 보조가이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잠시 더 내려가다가 물을 마시며 배낭 안 깊숙이 든 일회용우비(튼튼한 놈이다) 요것 하나 꺼내 주니 또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며 좋아한다. 메인가이드 눈에 안 띄게 얼렁 배낭에 넣으라고 하니 금시 넣고 내뒤를 졸졸 따라 내려온다. 휴게소에서 12분후 목교를 건너고 잠시후 나타나는 이정표 만다라 헛 4.6KM 2시간, 마랑구 게이트 3.4KM, 1시간이 적혀 있다. 우리마님 여기서 기념사진 한 장 찍은 사진 코가 빨간 루돌푸 사슴코다. 우쨋든 여기서 오순도순 애기 하며 내려오면 40여분을 내려와 마지막 교량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마랑구 게이트 200M, 만다라 8KM가 적혀 있다. 이제 몇 발자욱만 더 나가면 킬리만로 산행의 끝 지점인 마랑구 게이트다. 여기서 보조가이드 길을 막아서며 마지막 까지 내려오면 같이 가자는 싸인을 보낸다. 잠시 기다려 도착한 우리 일행 마랑구 게이트 나가며 두손 번쩍 들고 감격의 기념사진 찍었다.
홀롬보 산장을 떠난지 6시간 반 만이다.
우쨋든 우리는 장장 올라갈 때 35KM, 내려올 때 35KM 도합 70KM를 걸어서 5일이 걸려서 댕겨 온 것이다. 우쨋든 힘들고 숨쉬기도 어려웠던 고도 5985M의 킬리만자로 우흐르 피크에서 잠시마나지만 눈물을 흘리며 눈보라속에서 사진 한 장 간신히 남기고 내려왔지만 그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장거리 산행은 문외한인 우리 마님, 종알종알 대면서도 끝까지 댕겨온 규현이 행님, 히말라야 고산도 거뜬히 댕겨왔다고 장담하던 고여사 모두 고생하셨고요,
끝까지 완주하신 우리님들 추카 합니다.
마랑구게이트 출발 15:01
마랑구 게이트에 도착하여 기념사진 찍고, 간단한 기념품 사느라 우리여사님들 분주했고, 마지막으로 우리 메인 가이드님 입산신고소에서 정상 정복했다는 인증서 받아서 입산신고소 아래 널찍한 처소로 옮겨서 점심식사 장소로 옮겨 왔는대~
누군가 닿아와 옆 개울에서 신발 닿아주고 친절을 베풀어 2불씩 줬다고 한다.
다시 이분 뭐 이상한 손짓으로 우리에게 했는데 우리는 인증서 코팅해다준다는 애기로 4명 2불씩 좋다고 했는대 나중에 나온 것은 킬리만자로 맥주다. 다시 돌려보내고 잠시후 뭐 이상한분 닿아와 팁달라고 한다. 저는 안받았다나 뭐라나 우쨋는 홀롬보 산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보여주며 당신은 여기에 없다고 하여 쫒아보냈다. 우째 달겨드는 떨거지들이 이리 많은지 얼렁 식사하고 자리를 떠야겠다.
마지막 식사가 된다. 쉐프 가이드님 그간 수고 많았지만 말이 통해야 구구절절 인사도 하고 하는데 그냥 얼싸안고 등 두드려주며 인사한다.
마지막 식사는 역시 스프, 간을 하지 않은 라면발, 맛있는데 우리마님은 통 먹지를 않는다.
우짠댜 ~ 이렇게 하여 식사도 끝나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다 준 포터들과 쉐프와 인사를 나누고 올 때 타고 온 봉고차에 올라 호텔로 향한다.
우쨋든 키보에서 고여사가 무사히 4명다 정상정복에 성공했다고 문자는 보내서 먼저 집에 도착한 님들 소식은 알고 있겠지만 정상정복하여 태극기 들고 찍은 사진 카툭으로 전송하였다. 여기는 로밍을 해서 잘 터지고 사진도 잘 간다.
그간 함께한 친구들 고맙다. 안녕 ~~
모시 Salinero 킬리만자로 호텔 도착 16:44
이제 모시에 있는 호텔로 돌아간다. 덜컹거리는 봉고차 역시 매연이 풀풀나는 도로를 따라 달리면 우리가 내려온 킬리만자로 쪽 하늘이 새파랗고 흰구름이 떠다닌다. 오늘은 모처럼 오후에도 비가 오지 않는다. 아마 산에서 내려와서 그럴 것이다. 저 산에는 구름이 몰려가 지금도 비가 올지 모른다. 지나는 차량으로 바오밥나무 몇그루 보이고 한참을 달려 짐을 맞곁던 사무실에 도착을 한다. 여기에 닿기 전 맥주 몇병산던가 지나고 샀는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그새 ~~우쨋든 마지막 뒤풀이 한다구 맥주 사고, 파인애플도 사고 ~~
갈때는 몰랐는데 여기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트레킹 투어 사무실이다. 캡틴이냐구 하니 그렇다고 좋아 한다. 키보에서 메인가이드 고국에 있는 이사장님한테 영어로 그들은 용감하고 침착했다나 뭐라나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투어 사무실에서 짐을 싣고 이제 모시로 향한다. 갈 때 킬리만자로 모형이 사거리에 있던 마을이 모시였다.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니 부자동네인 듯 철문안으로 정원이 잘 꾸며 졌다. 그런 집 어느 경비실 문이 열리며 들어가니 여기가 호텔이라고 한다.
저녁식사 19:00 ~20:30
호텔에 들어가 카운터에서 이름적고 싸인하고 방 배정받고 일단은 여기 까지 따라온 투어사무실 사장님과 메인가이드와 함께 인증서 앞에 들고 기념사진 찍고는 뚱뚱한 직원들 뒤를 따라 가니 짐도 쪼맨한거 하나들고 4명이 따라와 1불씩 4달러 신발 닿아준다고 2불씩 우와 여기 직원들 많이 해본 솜씨다.
호텔은 정원을 잘 꾸며 놓았다. 커다란 대추야자 나무가 줄줄이 서 있고, 각종 꽃나무로 조성을 해놓아 경치가 아주 좋으며, 길다란 숙소 좌측은 우리, 우측은 아짐들이 차지 했는데 널찍한 응접실과 방이 따로 구분이 되어 있는 구조로 사용하는 널찍하니 편리한다.
혀튼 내일 뱅기에 싣고 갈 짐 내거 정리하고, 옆집으로 가서 마님 캐리어 가져다가 정리하고 시간이 좀 걸린다. 규현이 행님도 누가 해줄사람 없으니 궁시렁 궁시렁하며 짐을 정리하더니 보자기를 하나 사야 것다나 뭐라나 우쨋든 행님도 짐정리가 거의 마무리 된듯하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저녁식사시간 묻는대 직원들은 영어가 안 통하는지 디너 타임해도 모른다. 후에 뚱뚱한 아짐이 7시라고 알려주고 잠시 마님 방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시간이 되어 저녁식사장으로 향한다.
저녁식사장은 로비 앞쪽으로 쭈욱들어가서 식당이 있는데 메뉴판을 들고서 주문하라고 하는데 에고 음식을 주문해 봤어야 알지 우찌하여 고여사가 손짓발짓으로 웨이터와 우리는 식사비용이 포함되어 온 것이라고하여 웨이터 카운터에 확인하고 다시 와서 주문 받아 갔는데 시킨대로 안 나오고 소고기인지하구, 쌀밥에 뭔가 닭고기가 섞인 음식이 었던 같다.
식사를 시키고 나오는 대 시간도 많이 걸려 울마님은 반은 졸며 기다리고, 규현이 행님은 어깨두 주무르고 지루하니 기다려 1시간 정도 후에야 음식이 나와 먹구 나왔다. 방은 널찍하니 좋은 대 음석은 영이다.
그후 마지막 밤 21:00 ~~
마님들 방으로 돌아와 맥주 꺼내놓고 방에서 컵가져다가 정리하고, 또 파인애플 썰어서 깍고 상을 차려 후일담을 나누며 맥주한잔 한다.
작은 병4개에 큰 병하나 뭐 마실 것두 없다.
후일담으로 엄청 고생한 애기들이다.
정상에서 빨리 도망간 규현이 행님은 뭐 힘이 들었는지 오줌도 지려서 바지 빨아서 내려오며 말렸다며 애기하고, 고여사는 내려오다가 정신줄을 놓아서 메인가이드가 두드려 정신을 들게 한 후 간신히 내려 왔다는 애기 그래서 팁이 수월찮이 나갔다는 애기다.
마지막 내려오며 규현이 행님은 배낭 메고온 가이드한테 팁줄라고 했는대 못줬다고 애기해서 그거 고여사 줬으니 행님은 마지막으로 등산가이드들에게 10달러, 쉐프들에게 10달러 주라고 혔드니 행님 슬그머니 20달러 내놓아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깔끔하게 잘 마무리 했다.
우짯든 울마님도 올라갈 때 첫머리부터 엄청 고생하고 끝내는 정상까지 댕겨 왔지만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위험한 일이 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을 기유 ~~
장거리산행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렵다는 것을 유 ~
처음으로 도전한 장거리 산행 잘 견뎌낸 마님 그래두 훌륭했구만유 ~
혼줄을 놓았지만 끝까지 완주한 고여사두 훌륭했구유 ~
정상도전에는 그래두 잘 견뎌 준 규현이 행님 궁시렁 궁시렁 소리두 못냈지유 힘들어서~
수고 했구만유 얼마 안 있으면 칠자 붙는 춘추인대 대단하다고 아니할수 없구만유~
고생들 했시유 ~~
제26일 12월 14일 토요일
뱅기타고 인천으로 가는 날
기상 06:30
식사 7:30
호텔출발 11:12
오늘 오전은 시간이 느긋한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니 문이 잠겼다. 여기는 나갈때고 들어와서도 문을 열쇠로 꼭 잠가야 하는 구조다. 밖에 문을 잠그고 나갔으니 나갈수도 없구 답답하다. 한참을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어 창문을 검사하니 아래위로 밀어서 잠그는 구조로 되어 있어 아래위로 밀어 제끼고 열어 보니 활짝 열린다.
창문으로 넘어서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을 한다.
밖으로 나가 정원을 한바퀴 돌며 사진도 찍고 했는데 행님이 보이지 않는다. 에구 어디로 증발을 한것이여~
마님방으로 가서 마님을 불러내 다시 정원을 돌며 사진찍구 하는 사이 행님이 들어온다.
정문 밖으로 나가 도로 저편 까지 댕겨 왔단다.
이렇게 하여 산책을 끝내구 아침두 간단한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석을 몇가지 가져다 놓구 먹구나서 방으로 들어와 마지막 짐 점검하구 한없이 기다린다.
그렇다구 나가서 구경 할때두 없구 답답하다.
킬리만자로 공항 12:38
식사후 3시간 정도가 지나서 방에서 짐을 가져나오니 어제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님이 보더니 짐을 받으러 나온다. 짐 차에 싣고 다시 마님들 방으로 들어가 짐 가져다 싣고 마지막으로 호텔 로비에 열쇠반납하고 탄자니아를 떠날 준비를 마친다.
봉고차는 호텔을 나와 모시 킬리만자로 모형이 있는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가서 잠시후 햄버거 가게 앞에 선다. 어제 뚱뚱한 사장님도 잠시 보인다. 30여분이 흘러 우리가 먹을 점심인 햄버거를 싣고 이제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향한다.
모시시내를 벗어나 널찍한 벌판을 달려가면 양철지붕으로 지은 집들이 평야지대로 널려 있는 곳을 지난다. 이곳을 지날 때 도로변으로 시장이 섰는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산더미처럼 쌓인 바나나, 갖가지 농산물, 가축들, 널찍한 들판에는 유유히 풀을 뜯는 소들이 많이 보이고 점점 킬리만자로 공항이 가까운듯하다.
한동안 직선으로 가던 차량이 좌측으로 꺽어들어 잠시 더 가니 뱅기장 정원이 너른 킬리만자로 공항이다.
기사는 우리들과 점심거리 햄버거를 내려주고는 되돌아간다.
이들은 공항으로 들어 갈수 없다고 한다.
짐을 구르마에 싣고 들어가니 출입문부터 검색을 단단히 한다.
검색을 마치고 들어가 일단은 메시지가 온대로 좌측 카타르 항공 카운터로 들어가 짐부터 부친다. 2개로 나눈짐 다 부쳐도 27kg 밖에 안 되니 통과다. 배낭에두 표딱지 붙이고 이후 다시 받아서 배낭만 메고 나니 몸이 자유롭다.
메시지 내용대로 인천이란 말 몇 번이고 하니 직원몸매 좋은 아가씨 웃는다.
킬리만자로 ~도하, 도하 ~인천으로 된 2장의 표를 받아 들고 이제 우측으로 이동하여 출국신고서 작성하는대 번역기 들이대고 적자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문용어라 번역도 잘 안되고 역시 알려준대로 노랑 쪼끼입구 댕기는 사람 붙들고 써달라구 하니 꼼지락 꼼지락 써내려간다. 한 장을 썻으니 견본으로 보구 적구, 또 앞쪽에 케냐에서 왔다는 젊은 한국인아가씨와 또하나의 아가씨가 있어서 한 장쓰구 대충 쓰고 마지막으로 햄버거 먹어야 하는대 의자도 몇 개 없지 장소가 마땅치를 않다. 잠시 눈치를 보니 출국심사서 쓰는 탁상이 가장 맴에 든다. 우리저기 서서 먹자하구 햄버거, 닭고기, 과일등 먹구나서 다못해치운 것은 쓰레기 통에 넣고 출국장으로 가서 출국심사서내미니 보구 않구 도장 쾅 찍어 옆으로 밀구 금시 통과다. 여기서두 난 손가락 지문 안 혔다.
다시 검색대를 통과하여 우리는 면세점 안으로 들어갔다. 3번을 검색한다구 메시지를 보냈는대 검색대는 2번 통과했다.
킬리만자로 공항 출발 15:09
면세점안 뱅기탈 3번 게이트에서 1시간여 기다려 보딩후 걸어나가 탄자니아 수도인 다르에스 살람이라는 곳을 경유해서 가는 뱅기를 탄다. 뱅기는 QR 1357편으로 중형기다.
우리 좌석은 존넘버3 17B와 C다.
킬리만자로 공항 이륙 15:15
뱅기는 잠시후 하늘로 날아오른다. 우리는 둘이서 같은 자리에 않았고, 규현이 행님은 우측 같은줄 창문쪽이다. 규현이 행님쪽 안내양은 분명 한국인 같은대 이쪽담당이 아니라 우리는 기내식도 대충 눈치로 시키고 음료수도 황금색으로 빛나는 오랜지 쥬스만 마셨다.
뱅기는 50분후인 16시 05분경 다르에스 살람이라는 탄자니아 수도에 내려 1시간 30분 정비와 승객이 탄후 17시 32분 이륙하여 다시 날아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 지나고 6시간이 지난후 도하공항에 내린다.
도하공항 착륙 23:22
도하공항 도착 23:40
도하공항에 착륙하여 버스에 승차한후 얼마를 가는지 끝이 없이 간다. 지하도를 빠져나가고 커다란 건물을 지나고 지루하게 가더니 청사앞에 내려준다.
도하공항 출발 02:12
청사앞 계단을 따라 올라가 저번처럼 좌측으로 향하려고 하는대 고여사 앞에 보이는 직원한테 뱅기표 보이며 물으니 바로 앞쪽이 검색대다. 우리가 탈 게이트도 그분 손에 든 장비에 나온다.
금시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전광판보구 다시 한번확인하니 그 게이트번호(몇번 번호 인지는 생각안남, D9번인가 그랬다)가 맞다.
계단을 내려서고 다시 좌측으로 이동하여 면세점앞을 지나서 쭈욱가니 우리가 타고 갈 게이트 앞인데 많은 한국인들이 의자앞에서 장사진이다. 우리는 앉을 의자 없어 앞쪽편 의자에 앉아 기다리나 게이트앞 대기실로 들어가는 시간이 따로 있어 차례로 들어가는 긴 줄에 서서 입장을 하여 기다리다. 보딩후 인천으로 가는 QR 858편에 탑승했다.
우리는 서민석에 고여사는 귀빈석에 ~
도하공항 이륙 17:32
뱅기 좌석에 착석하니 이쁘장한 아가씨가 창문쪽 자리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일어서 들어가도록 하고 어디 사냐고 물으니 여기 산다고 한다. 그러면 항공사 직원이겠네요?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카타르 항공의 승무원으로 6일간 휴가를 얻어서 간다고 한다. 집은 부산으로 자기 남친도 이 회사 들어오려 준비중이라 하며 지나가는 남자 한국인 승무원에게 남친 이름대니 금시 안다. 이분은 인천까지 오는 내내 우리식사할 때 메뉴 설명하여 주문해주고, 음료수도 설명한 후 주문해주고 업무중이 아님에도 친절히 베풀어 주었다.
함께 자리에 앉아온 카타르 고은정 승무원님께 감사드린다.
도하에서 인천까지는 장장 9시간을 와야 한다. 이란 상공을 거치고 대부분 중국 상공을 지나 텐진 부근에서 중국과 한반도 사이 바다를 이용하여 인천으로 접근을 한다.
오는 내내 거의 졸며 왔으니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인천공항 착륙 16:48
인천공항 도착 16:55
도하에서 함께 자리에 앉아오며 도움을 받았던 카타르 항공 고은정님한테 고마웠다고 휴가 잘 마치고 가라고 인사를 한 후 우리는 뱅기에 내린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인천공항 도착하여 입국수속은 간단하고 빠르다. 역시 울나라는 좋은 나라다. 건강상태묻는거 써놓은 거 내고, 세관신고서 내고 짐도 찾고 대합실로 나와서 지하에 있는 한식당으로 들어가 나와 규현이 행님은 설렁탕으로, 고여사는 꼬막덫밥, 울마님은 김치찌개로 각자 시키는데 여기 입으로 시키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화면에 음석 주문서 올리믄 금시 음식이 나온다. 빠르기두 하다.
저녁식사두 마치고 13번 출입구 앞쪽 문인가로 나가면 버스표 파는 곳이다. 이곳에서 18시 30분 표 사서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니 청주가는 버스 정류장이다. 전에는 도로를 한번 건넜는데 바뀌었다.
여기서 20여분을 기다려 대원고속 버스를 탄다. 버스는 만석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장 뒷좌석이 둘이 나란히 앉았고, 고여사는 앞쪽으로, 규현이 행님은 중간쯤 앉아서 온다.
버스는 송도를 경유하는 버스로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20시 37분으로 2시간 07분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하여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마중나온 규현이 행님 마나님인 신여사차로 집으로 돌아오고, 고여사는 마중나온 가족들 차로 집으로 돌아갔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길다 할수 있는 시간이었다.
긴 시간 여행을 하고 맨 나중에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려니 힘이 더욱 들었을 것이다.
은연중 쌓인 피로로 쉽지 않은 산행이 었다.
어쨌든 오면서 너무 시간 걸리지 않게 마무리 해단식 날짜 잡아 12월 20일 바쁜일이 있는 몇분이 빠지고 15명인가 모여서 신여사가 차린 닭발, 소고기, 잡채, 또 뭐 제천선생님 가져온 가용주, 맥주, 수주 부족함없이 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아프리카 여행을 마무리 했다. 함께 했던 모든 님들 수고 많았고요~
그간 맴에 안 들고 무례함이 있었다면 다 잊으시고 담에 또 기회가 있다면 또 다시 즐거운 여행길에 함께 했으면 합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지면 또 만날 날이 있으니 옷깃이 스쳐도 인연이라고 앞으로 서로 만날 때 웃으며 좋은 모습으로 보았으면 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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