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2019.08.11.일요일 맑음
참석인원 : 충북뫼벗산악회 53명
집 06:30 -청주 체육관 06:45~07:00 -청천 07:56 ~08:08 -문경읍 가은읍 완장리 운강 기념관(해발 약200m) 08:50 ~08:55 -선유동천 나들길 표지석 08:56 -개울 건너고 - 도로 굴다리 통과 09:01 -도로변(0.510km, 약210m) 09:03 -칠우대 09:06 - 망화담 09:06 -칠우폭포 09:08 -교량 아래 통과(선유동 정토연수원 진입로, 1.27km) 09:12 -징검다리 09:16 -와룡담 09:17 -홍류천 09:19 -칠리계 09:23 -옥화대(1.77km, 약230m) 09:23 -영사석 09:24 -돌탑(목교, 리조트,팬션) 09:27 -세심대(2.23km, 약240m) 09:30 -구은대유적비(개울 건너고) 09:32 -관란담(2.37km) 09:33 -탁청대 09:34 -영귀암 09:36 -난생뢰(2.70km, 약250m) 09:38~09:43 -옥석대(2.81km) 09:45 -상가 -다리건너고 -학천정(2.92km, 약260m) 09:50 -휴양림도로(3.78km, 약270m) 10:03 -용추폭포(4.75km, 약320m) 10:23 -Y계곡(계류건너고, 4.87km) 10:25 -월영대(5.83km, 약400m) 10:43 ~11:03 -용추폭포(6.92km) 11:23 -벌바위 가든(7.44km) 11:35 ~13:23 -0.63km -주차장 13:35 ~15:10 -청천 15:53 ~16:05 -청주 체육관 17:07 ~17:15 -청주 집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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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이강년기념관일원
정의
1858(철종 9)∼1908. 조선 말기의 의병장.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寅), 호는 운강(雲崗). 경상북도 문경 출신. 효령대군(孝寧大君)이보(李礻+甫)의 18대손이다.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남복영(南福永)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을 체포해 농암(籠巖) 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하였다.
이어 제천으로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유인석의 문인이 되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평천·조령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이 해 4월에 장기렴(張基濂)이 거느린 관군과 제천에서 싸워 패해 유인석이 요동으로 가자, 이강년도 의병을 해산하고 유인석을 따라갔다. 그 곳에서 3년 동안 지내고 돌아와 단양금채동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1907년 일본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하여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로 선위하고 정미칠조약으로 한국군대가 해산당하자 영춘(永春)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때마침 원주진위대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閔肯鎬) 부대와 합세해 충주를 공격하였다.
1907년 7월 7일 제천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해 9월 16일에는 싸릿재[杻峙], 9월 27일에는 죽령, 10월 5일에는 고리평(故里平), 10월 23일에는 백자동(柏子洞)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이 해 12월에 전국의 의병들이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각도 의병장을 따라 양주에 집결해 13도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자,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이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이 연합의병부대의 서울진격작전이 미수에 그치자, 다음 해인 1908년 봄부터 휘하장병들을 독려하여 2월 17일의 용소동전투(龍沼洞戰鬪)를 비롯해 2월 26일의 갈기동전투(葛其洞戰鬪), 3월 12일의 백담사전투(百潭寺戰鬪), 4월의 안동서벽전투(安東西壁戰鬪)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강년의 의병활동 지역은 주로 강원도·충청도·경상북도 일대에 걸쳤다. 그 밑에서 활약한 김상태(金尙台)·이만원(李萬源)·백남규(白南奎)·하한서(河漢瑞)·권용일(權用佾)·윤기영(尹基榮)과 그 밖의 장졸들은 모두 이 지방출신자들이다.
이들은 이 지역의 지리에 밝고 또 엄격한 군율로 의병부대의 기강이 서 있어서 지방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이 가장 두려워한 의병세력이었다. 그러나 1908년 6월 4일 청풍(淸風)·작성(鵲城)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결전에서 발목에 총알을 맞고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수원의 일본수비대에 구류되었다가 같은 해 7월 8일에 서울의 일본군헌병사령부로 압송되었다. 이곳에서 다시 평리원으로 옮겨져 9월 22일에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시신은 유언에 따라 두 아들 이승재(李承宰)·이긍재(李兢宰)와 부하인 도선봉장 권용일에게 인계되어 과천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묘 아래 장례하였다. 나중에 제천으로 옮기고 다시 상주군 화북면장암(壯岩) 뒷산으로 이장하였다.
저서로는 『운강문집』이 있고, 또 그 제자와 의병시절의 부하들에 의해 엮어진 『운강선생창의일록』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강년 [李康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문경 선유동천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선유동천 나들길’의 총 연장은 8.4km. 선유동촌을 중심으로 한 구간이 1코스(4km), 용추계곡 일원은 2코스(4.4km)다. 백미 구간은 선유구곡이며, 용추계곡의 용추폭포도 하트(♥) 모양의 소(沼)로 유명하다. 구간마다 차량 접근도 쉬운 편이다.
산만큼 완벽한 미학과 안정감을 구현한 건축이 다시 있을까. 조물주의 전공은 디자인. 산을 지어놓고 보기에 좋아 한판 거하게 놀았을 거다. 바위들아 모여라, 새들아 오라, 당실당실 흘러가는 구름아, 너도 멈추어라. 그렇게 불러 모아 축연을 펼쳤으리라. 비경이 아롱졌으리라. 불세출의 디자이너는 향연을 마치고 우주의 기슭으로 떠났다. 풍경만 남았다. 문경 땅에 있다. 조물주의 솜씨가 아니고선 이룰 수 없는 절경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앗, 탄복하며 이곳을 선유동천(仙遊洞川)이라고, 즉 신선이 노니는 계곡이라 불렀다.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명산에, 명승에, 명경지수에 동화되면 신선이다. 산의 밝음과 물의 맑음을 마음에 담으면, 잠깐이나마 신선 흉내를 낼 수 있다. 그대여, 선유동천에 오라. 이곳에서 시름과 노여움을 씻어 완전한 자유를 맛보라. 선경(仙境)이란 순수를 되찾게 하는 선경(善境)이기도 하지 않던가.
경관을 가늠하는 사람들의 눈썰미는 비슷한 모양이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지난해, 산림청이 전국의 숲길 이용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했다. 사랑스러워 담뿍 정들기 마련인 게 이 나라 산천이다. 정겨운 풍치만 빼어나던가? 선조들은 흔히 산을 경전(經典)으로 읽었다. 산의 음성과 뜻에 귀 기울여 화두를 얻었다. 어떤 이들의 한 생애는 통째 산을 닮으려는 노력이었다. 산림의 기질, 야생의 지성, 어쩌면 우리 안에는 그런 게 흐른다. 살수록 증폭되는 혼돈이 그걸 파먹어대지만.
초록 숲 사이로 이어지는 조붓한 길을 걷는다. 그러나 발길은 번번이 계곡 안통으로 이끌린다. 첩첩히 겹치거나 길길이 일어서거나 어깨를 겯거나, 동맹을 맺은 장한(壯漢)들처럼 도도한 바위들이 제전을 펼치는 계곡이지 아니한가. 살갗은 희고 매끄럽다. 물살과 바람과 시간에 마모된 굴곡은 유려하기 그지없다. 미와 기세를 다투는 수석(水石)들의 경연장이다. 이런! 경연이라니? 바위들은 겨루지 않는다. 미동조차 없이 천년만년 고요하니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이미 초월한 것을. 저 움푹 팬 바위 틈서리에 누우면 긴 꿈에 빠져 바위를 닮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사람의 생은 하루살이처럼 짧다. 게다가 형극이기조차 하다. 무슨 해탈한 정신으로 바위는 유유히 겁(劫)을 사는가. 어쩌면 바위가 불멸하는 신선이다. 그래서 선유동이다.
너럭바위에 걸터앉고 보니 저만치에 폭포가 있다. 귀를 때리는 물소리가 통쾌하나 독재처럼 오만하다. 하지만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수평의 바다로 가는 물이다. 사람은 모자라 수평과 평등에 서툴다. 그래서 세상은 악다구니로 시끄러운 난장이다. 어이, 귀나 씻으며 놀다 가소! 바위가 들려주는 말이 그렇다.
폭포수는 흘러 물웅덩이를 이룬다. 밑바닥이 빤히 비치는 연초록빛 깨끗한 소(沼). 수면엔 나무 그림자 일렁거린다. 물속에서 노니는 버들치들의 태평한 행렬이 숫제 선율이다. 순간적으로 뇌리에 새겨진다. 크리스털 세공(細工)처럼 투명한 놈들의 몸 안엔 어떤 꿈과 욕망이 서려 있을까? 내장까지 비칠 듯 해맑은 몸뚱이란, 시달릴 탐욕이라는 게 없다는 웅변인가? 그렇다면 버들치도 신선이다. 그래서 선유동이다.
아홉 군데 뛰어난 경승에 각각 이름을 붙여 선유구곡(仙遊九曲)이라고도 부른다. 으뜸가기로는 제9곡 옥석대(玉舃臺)다. 천하 절경이니 여기에 정자가 없을 리 없지. 학천정(鶴泉亭),물가 둔덕에 들어앉아 풍경을 내려다보는 별서(別墅) 건물이다. 선유동에서 후학을 가르친 조선의 문신 도암 이재(李縡, 1680~1746)의 덕망을 기려 후학들이 세웠다. 일찍부터 많은 인걸들이 선유동을 유람했다.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도 이 골짜기를 순례했다 전해온다.
외로운 구름, 고운(孤雲). 이는 어쩌면 최치원의 생애를 상징하는 완벽한 메타포다. 순항과 표류를 거듭했던 선장. 날지 못한 이카로스. 고운은 시대와의 길항(拮抗), 그 끝자락에서 마침내 청산으로 스며들었다. 혹자는 산에서 우화(羽化), 신선이 됐다고 봤다. 그러나 입산 이후 고운의 종적은 사실상 미궁이다. 선유동에 서렸다는 고운의 족적 역시 전설의 가필일 수 있겠지. 그저 고운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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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06:30
오늘은 충북뫼벗산악회에서 문경 가은 대야산 부근의 선유동천 나들길을 돌아보고 야유회를 하기로 하는 날이다. 인제 점봉산 아래 곰배령을 다녀온 후 조금은 시간이 지났지만 후배님들의 모습을 보고자 참여하고자 한다.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은 총 연장은 8.4km. 선유동촌을 중심으로 한 구간이 1코스(4km), 용추계곡 일원은 2코스(4.4km)다. 문경 가은읍 완장리 운강 이강년 기념관에서 시작하여 대야산 피아골과 다래골이 갈리는 삼거리의 월영대까지 진행한 후 다시 돌아와서 상가 지역에서 야유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오늘 체육관에서 07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집에서 06시 30분 나선다.
문경읍 가은읍 완장리 운강 기념관(해발 약200m) 08:50 ~08:55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체육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산악회 버스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06시 45분이다. 오늘은 모처럼 산행인원이 많아서 버스와 승용차로 출발한다고 한다. 07시경 회원들이 버스에 승차를 하고 출발을 한다. 버스는 모충동, 방서사거리를 지나 미원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달려 1시간 후 청천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 후 다시 달리면 화양동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서 송면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달리면 상관평, 버리미기재를 넘어서 대야산 주차장입구를 지나 좀 더 내려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가은읍 완장리 운강 이강년 기념관이다.
와룡담 09:17
오늘 트레킹코스는 간단하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는 나들 길을 따라 곧장 가면 된다. 운강 기념관을 대충 돌아 보고 단체 사진 찍고 걷기 시작한다. 도로 아래 선유동천 나들길 커다란 표지석에서 좌측으로 냇가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가 나온다. 돌다리를 건넌다. 우측으로 장성봉에서 애기암봉, 원통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인다. 오래전 몇 번쯤은 다녀온 곳이지만 요 몇 해는 이쪽 방향으로는 통 오지를 않았다. 냇가를 건너 꽃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좌측으로 민가가 한 채 있고 잠시 후 도로아래를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 하면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나들 길을 따라 진행하면 얼마안가 도로와 결별을 하고 나들 길은 좌측편 개울을 따라 진행을 하게 된다. 첫머리 “칠우칠절” 안내문이 나온다. 대한제국 말엽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등 국가 혼란기 지역 유림 7인이 보인계라는 모임을 결성하여(1916년) 완장천 계곡 일곱 구비의 절경을 이름 짓고 아름다움을 함께 완상하였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칠절”로는 완심대 : 마음을 씻는곳
백석탄 : 흰돌이 아름다운 여울
홍류천 : 붉은 꽃잎으로 물드는 계류
칠리계 : 완장천계곡의 시점
망화담 : 꽃잎이 담기는 연못
와룡담 : 용이 쉬는 연못
월파대 : 달빛이 파도치는 곳 이란 뜻으로 일곱군데의 절경을 가르 킨다.
이어서 제1곡 완심대에 닿는다.
‘마음을 씻는 곳’으로 송나라 양기파의 선승 보각선사(대혜종고)의 어록 중 ⌜완심구탁 해심집착⌟에서 온 말로 마음의 때를 씻어 버리고 마음의 집착을 풀어 버린다는 의미이다.
잠시후 좌측으로 높다란 바위절벽이 나온다. ‘칠우대’로 일곱분 칠우의 이름이 적혀 있다.
칠우대를 지나면 제2곡인 망화담이다. 꽃잎이 담기는 연못이란 뜻이다.
널따란 바위 옆에 세워진 돌에 ‘망화담’이란 아름다운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물에 떠 있는 꽃들이 많아서 그 물질할 수 있는 못이란 의미의 망화담은 봄이면 칠우칠곡 각 굽이의 꽃잎들이 떠 내려와 이곳에 이르러 맴돌아 꽃 연못을 이룬다고 한다.
잠시 후 나들길 좌측으로 작은 칠우폭포를 지나고, 제3곡인 백석탄이다.
제3곡인 백석탄(白石灘)은 주위에는 나무가 없고 다만 흰 바위들 사이로 맑은 시냇물만 흘러가고 있다. 흰 돌들 사이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바위로 인하여 여울을 만들며 흘러가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 옛날 칠우들은 이 굽이에 이르러 망국으로 인하여 가졌던 울분을 삭이지 않았나 여겨진다.
현재 교량이 지나는 위치로 보인다. 교량아래를 지나 반대편으로 건너서 잠시 가면 징검다리가 나온다. 징검다리 건너편으로 널찍한 암반지대가 와룡담이다.
백석탄에서 300m 정도 물길을 따라서 거슬러 오르면 넓은 바위를 만나는데 이 굽이가 선유칠곡 제4곡은 와룡담 (臥龍潭)이다. 바위 위에 새겨진 ‘와룡담 ’ 글씨는 해서와 초서를 배분하고 조합하여 절묘한 느낌을 준다. 위로부터 흘러내려오던 시냇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못을 이루면서 넘실거려 마치 용이 누워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굽이의 이름을 용이 누워 있는 못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칠리계 09:23
와룡담에서 2분여 지나면 홍류천이란 곳이다.
제5곡은 홍류천(紅流川) 이다. 홍류(紅流)는 붉은 물을 의미하며 실제로 물이 붉을 수는 없으나 이것은 물위에 붉은 꽃이 떨어져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 곳은 물살이 천천히 흐르고 있어 붉은 꽃잎들이 물을 가득 메우고 흘러가기에 이 굽이의 이름을 홍류천 이라 하였다.
홍류천에서 잠시 오르면 널찍한 암반지대로 시원한 물이 흐르는 월파대가 나온다.
제6곡은 월파대(月波臺)이다. 이 굽이는 선유칠곡의 다른 굽이와 달리 바위가 넓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시내가 흘러가 대(臺)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비스듬히 자리하는 바위 때문에 이 굽이를 흐르는 시냇물이 완만히 흐르고 있었는데 달이 뜬 밤이면 달빛이 이 물살 위에 비치면서 하얀 물결을 이루고 흘러가기 때문에 월파대라고 하였다.
이제 칠우 칠곡의 마지막 7곡인 칠리계다. 널찍한 암반지대에 작은 폭포가 있는 곳이다.
제7곡인 칠리계(七里 溪)는 여울이 7리에 걸쳐 있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이 굽이는 널따란 바위가 약간의 격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유구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가니 7리를 걸쳐 흐르는 여울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선유구곡에 이른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서 내려오다 이곳에 이르러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선유 칠곡은 마무리 하고 이어지는 길은 선유 구곡으로 향한다.
학천정(2.92km, 약260m) 09:50
칠리계를 지나면 곧바로 선유구곡의 제1곡인 옥하대가 나온다.
선유구곡 제1곡 옥화대
선유구곡 원림의 제1곡은 옥하대(玉霞臺)이다. ‘아름다운 안개가 드리우는 누대’라는 의미이다. 이 신비한 공간에 들어가는 입구고 바로 제1곡이다.
옥하대에서 1분여 더 가면 제2곡인 영사석이다. 안내도가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넓직한 암반지대로 되어 있으며 계곡 건너편으로 고사목이 보이는 곳이다.
제2곡 영사석
선유구곡 원림의 제2곡은 영사석(靈槎石) 이다.제1곡에서 물이 흘러오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앞으로 야트막한 산이 자리한다. 이 산은 선유구곡의 시내를 굽어 돌게 하여 한 굽이를 만든다.영 은 ‘신령하다’라는 뜻이고 사는 ‘뗏목’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영사석은 ‘신령한 뗏목 모양의 바위’ 라는 뜻이다.
학천정 1400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테크길 계단을 오르는 곳 우측으로 목교가 보인다. 이지점이 활청담으로 보이지만 안내도는 보이지 않는다.
제3곡 활청담
선유구곡 원림의 제3곡은 활청담(活淸潭)이다. 제4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이곳에 이르러 활청담을 만들고 힘차게 제2곡을 향하여 흘러간다. 바위 위를 흘러온 물이 모여 만든 못이라 그 맑기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목교를 건너지 않고 직진으로 가면 리조트, 팬션인 커다란 건물이 나온다.
이후 계곡을 따라 오르면 선유구곡 제4곡 세심대 안내도가 보인다.
제4곡 세심대
선유구곡 원림의 제4곡은 세심대(洗心臺)이다. 이 바위 앞으로 움푹 들어간 못이 나타나는데 이 못은 제3 곡의 활청담 보다 규모가 큰 못이다. 바위 자체가 움푹 들어가 만들어진 못인지라 물빛이 맑고 파란빛을 띠고 있다.세 심대는 ‘마음을 씻는 대’라는 의미이다. 세심대는 유자(游者)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공간으로 과거 선유구곡을 오르던 이들은 이 공간에서 더럽혀진 몸을 씻듯이 더럽혀진 마음도 씻었다고 한다
세심대를 지나면 학천정 500m가 적혀 있는 이정표 앞쪽으로 구은대(九隱臺)유적비가 있고 여기서 계곡을 건너서 오르면 제5곡인 관람대가 좌측으로 보인다.
제5곡 관람대
선유구곡 원림의 제5곡은 관란담(觀瀾潭)이다. 이곳에는 ‘관란담’이라는 글씨 외에 ‘굿은 대’라는 글씨가 있다. 이 ‘굿은 대’라는 글씨 옆에는 아홉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관란담의 ‘觀瀾’은 단순히 ‘물결을 보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란의 ‘란(瀾)’은 물결의 의미보다 여울목의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관란은 ‘여울목을 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구곡원림에서 제5곡은 가장 중심이 되는 굽이이다.
관람대에서 2분여 오르면 제6곡인 탁청대가 나온다. 여기부터는 피서객들이 많이 보인다.
제6곡 탁청대
선유구곡 원림의 제6곡은 탁청대 (濯淸臺)이다.제5곡에서 100m 정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내 왼쪽에 표지판같이 생긴 바위가 나타난다. 이 바위 위를 유심히 살펴보면 돌이끼 속에서 '탁청대'라는 글씨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2분여 오르면 좌측 계곡으로 제7곡인 영귀암이다. 계곡 건너편 널찍한 암반위에 피서객들이 한가히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제7곡 영귀암
선유구곡 원림의 제7곡은 영귀암 (詠歸巖)이다. 제6곡에서 100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시내 오른쪽 큰 바위 위에 영귀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서(箭書)로 새겨진 글씨가 너무 아름다워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바위 왼쪽으로는 반석이 자리하는데 그 위로 시냇물이 흘러 폭포를 형성하여 그 소리가 요란하다.
영귀암에서 암반지대를 따라 다시 2분여 오르면 널찍한 암반지대로 가운데 좁다란 물길이 있는 난생뢰라고 하는 곳이다. 여기는 많은 피서객들로 붐빈다.
제8곡 난생뢰
선유구곡 원림의 제7곡은 영귀암 (詠歸巖)이다. 제6곡에서 100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시내 오른쪽 큰 바위 위에 영귀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서(箭書)로 새겨진 글씨가 너무 아름다워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바위 왼쪽으로는 반석이 자리하는데 그 위로 시냇물이 흘러 폭포를 형성하여 그 소리가 요란하다.
난생뢰 아래 암반지대에서 잠시 휴식후 진행하면 옥석대로 거의 이 두 지점은 붙어 있다.
제9곡 옥석대
옥석대(玉舃臺)는 제8곡에서 6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한다.옥석(玉潟) 은 ‘옥으로 만든 신발’이다. 옥석이라는 말은 ‘득도자(得道者)가 남긴 유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제9곡은 선유구곡의 극처이다. 극처는 선인들이 지향했던 도(道)가 존재하는 공간을 의미한다.이 공간에 이르러 선인(先人)들은 득도 자가 남겨 놓은 유물, 즉 옥석대를 만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를 만나고 도를 얻다고 한다.
옥석대에서 위로 오르면 학천정가든등 상가지역이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면 학천정 정자가 나온다.
학천정
경상북도 문경시(聞慶市) 가은읍(加恩邑) 완장리(完章里)의 선유동 계곡에 있는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도암 이재(陶庵 李縡)가 후학을 가르치던 자리에 지역 유림(儒林)들이 그의 덕망을 기려 세웠다
월영대(5.83km, 약400m) 10:43 ~11:03
학천정을 구경하고 뒤쪽으로 돌아서 가면 좌측 계곡을 끼고 산길이 이어진다. 15분을 못가서 대야산 휴양림으로 가는 도로를 건너서 계곡 길을 따라 가면 우측으로 대야산 입구 상가지역이 보이고 무당소를 지나 테크길을 계단을 따라 오르고 다시 널찍한 임도를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 용소폭포가 보인다.
무당소
최고 수심이 3m쯤 되는 무당소는 100여 년 전 물동이 를 지고 가다 빠져 죽은 새댁을 위해 굿하던 무당이 다시 빠져 죽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용추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용트림하다 남긴 용비늘의 흔적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후 2분여 더 오르면 임도 길은 좌측편 댓골산장 방향으로 이어지고 작은 계류를 건너 용추골 계곡을 따라 오르면 계곡건너편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것이 보인다. 계곡 좌측편 길을 따라 오르면 군데군데 널찍한 바위들이 보이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면 오늘의 마지막 지점인 월영대에 닿는다.
월영대
용추에서 오솔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월영대가 반긴다. 달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월영대(月影臺)라고 한다
벌바위 가든(7.44km) 11:35 ~13:23
월영대에서 좌측으로는 밀재를 거쳐 대야산 정상으로 향하게 되고, 우측으로는 촛대봉 방향을 거쳐 대야산 정상으로 향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20여분 시원한 물이 흐르는 암반위에서 회원님들이 준비해온 과일등을 시식하며 휴식 후 다시 산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오늘 더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대야산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많아서 산길이 매우 혼잡하다.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피서를 즐기는 분들도 계곡을 메우고 있으며 오늘 대야산이 많은 인원으로 북적인다. 20여분 후 용추폭포에 닿고 다시 10여분을 더 내려오면 상가지역에 닿는다. 우리는 오늘 이곳 상가지역 벌바위가든에 터를 잡고 야유회를 하기로 하여 평상 여러개를 임대하여 먼저온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임원들이 준비한 빈대떡, 미리 준비한 오리탕, 염소탕등으로 배불리 먹고 나서 후식으로 수박까지 먹고 나니 이제 더 이상 들어 갈 때가 없다.
주차장 13:35 ~15:10
배불리 먹고 나서 졸음이 와서 더 이상 앉아 있기 어려워 친구와 둘이서 먼저 자리를 뜬다. 입구 쪽으로 나가서 대형주차장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서 주차장에 도착하니 거리가 약 0.63KM가 나온다. 주차장 한쪽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잡고 한숨을 자고 나니 우리 뫼벗가족들도 짐을 챙겨 주차장에 도착하였다고 연락이 온다.
오는 길 청천에서 잠시 정차 후 청주에 도착하니 모처럼 이른 시각인 17시 07분 체육관에 도착하여 집에 도착하니 17시 30분이다.
오늘 더운 날씨에 야유회 준비하느라 운영진 여러분 고생이 많았습니다.
부족함 없이 시원한 계곡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애써주신 회장님이하 운영진님들께 다시 한번 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문경 선유동천 나들길 트레킹 시간 : 2시간 40분
거리 : 7.4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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