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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1151 통영 추봉도 예곡망산~대봉산, 한산도 망산 2019.06.06.목요일 맑음

통영 추봉도 예곡망산~대봉산, 한산도 망산

예곡망산 256m, 대봉산 238.8m, 망산 295.6m

 

2019.06.06.목요일 맑음

참석인원 : 청주 천봉산악회 45

 

청주종합운동장 06:00 -죽천교 06:15 -서청주 톨게이트 06:25 -덕유산휴게소 07:25 ~07:38 -통영톨게이트 09:02 -거제 어구항 09:23~09:47 -정기여겍선 -한산도 소고포항 10:02 ~10:08 -버스로 이동 -추봉도 예곡마을 10:21~10:22 -좌측으로 산행시작 -빨강지붕역 테크길 -테크길 끝에서 우측 산으로 -풀섶길 지나면 널찍한 임도길 나옴 - 좌측 사면으로 길(직진으로 올라서 삼나무숲으로 직등) -(1.39km, 225m) 10:48 -예곡망산(돌무더기, 1.66km, 256m) 10:54 -예곡마을(2.91km, 20m) 11:10 -길다란 개미목 세멘트 길 따라 -바다팬션(3.76km, 40m) 11:18 -세멘트길 삼거리(좌측으로, 3.96km, 60m) 11:20 -좌측 둘레길(한산사까지 이어짐)에서 우측으로 - 가파르게 올라 봉(4.73km, 200m) 11:40 -(5.09km, 230m) 11:47 -대봉산(자연석에 대봉산 써 있음, 5.33km, 238.8m) 11:51~12:07(중식) -추봉교(6.57km) 12:27 -다리건너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한산석유 있는 골목 -좌측 건물에서 계단 따라 오르면 한산초중학교 (7.32km, 20m) 12:37 - 등산로 입구 12:38 -계단길 -정자(5.06km, 230m) 12:56 - (우꺽임, 8.35km, 230m) 13:00 -바위 전망대(8.54km, 250m) 13:04 -계단위 봉(8.68km, 265m) 13:07 -이정표 봉(8.98km, 265m) 13:12 -정자(9.42km, 285m) 13:21 -망산 정상(9.52km, 295.6m) 13:23 ~13:32 -내리막 계단길 - 도로위 목교(10.47km, 90m) 13:47 -통나무계단 오르고 -굵직한 소나무 우측 사각 돌담(11.12km, 155m) 13:58 -소고포항 삼거리 이정표(11.73km, 185m) 14:06 -내리막 계단 -안부 -오르막 계단 -(우꺽임, 12.33km, 165m) 14:18 -내리막 계단 -제승당 1.1km 이정표(12.82km, 85m) 14:24 -좌 꺽임봉(13.42km, 95m) 14:31 -전망대(13.62km, 90m) 14:33 -아스팔트도로(13.95km, 20m) 14:39 -도로 따라 우측으로 가다 다시 되돌아서 좌측으로 -제승당 선착장(14.58km) 14:47~15:00 -버스로 이동 -소고포항 15:10 ~15:30 -버스로 이동 -제승당 선착장 15:45 ~16:10 -정기 여객선 - 통영항 16:34 ~16:43 ~통영 중앙시장앞 16:50 ~자유시간 ~ 18:05 -통영톨게이트 18:15 -덕유산 휴게소 19:42 ~19:52 -죽암휴게소 20:46 ~20:50 -서청주 톨게이트 21:04 -죽천교 21:17 -청주 집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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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개요

한산도는 한산면의 본섬으로, 면을 이루는 29개 유 ·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통영시 남동쪽에 있으며, 시에서 뱃길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한산도는 경남 통영에서 바라보았을 때 미륵도 왼쪽에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하지만 이 섬은 한산면의 주도이자 한려해상공원의 출발점이다. 즉 행정,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꽤 중시되는 섬인 것이다. 인구는 17개 마을 615가구 1,079명이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에서 궤멸시켜 한산도대첩을 이끈 역사적인 장소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휘하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했던 곳이다.

특히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산대첩은 학익진과 거북선의 위력을 바탕으로 영세한 전력을 가지고 승리를 거둔 해전이다. 한산도해전에서 왜군의 주력을 괴멸한 아군은 남해안의 제해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한산도 곳곳에는 한산도해전에서 비롯된 지명들이 남아 있다. 추봉교 입구에 있는 마을이 한산도의 중심지 진두(津頭, 陳頭)’마을이다. 오른쪽으로는 한산도에서 가장 높은 망산(293m)과 그 아래로 면사무소가 있다. 진두는 예로부터 추봉도, 용호도, 죽도를 잇는 큰 나루터였던 나리선 머리의 한자지명으로 생각된다.

임진왜란 때 우리 수군이 진을 쳤던 곳인 진두에서 변천된 지명이라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 수군이 진을 치고 경비초소를 두어 통제영과의 연락보급과 담당구역의 해상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곳(陣頭)이며, 또한 예부터 한산본도와 추봉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연결하는 나루터(津頭)의 구실을 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면소재지 진두마을

면소재지인 진두마을은 면사무소와 파출소, 우체국 등의 관공서가 자리잡고 있는 섬의 중심지다. 일주도로를 타고 가면 농협 맞은편에 광장이 나타난다. 바로 진두광장이다. 진두광장에는 해마다 겨울철이면 한산도, 용호도, 추봉도, 비진도 등의 섬에서 갯바람을 맞으며 탐스럽게 자란 시금치(일명 갯바람초)를 한산농협에서 사들이는 경매가 열린다.

여기에는 짧은 방파제 외 몇 개의 배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잔교와 행정선 등이 있을 뿐이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에서 추봉도 가는 도선을 이용했다. 추봉도에 맨 처음 닿는 곳은 봉암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추봉도의 봉암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동쪽은 용호도, 죽도가 노도와 같은 작은 섬들이 파도를 막아주고 있다.

광장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일주로를 타면 펜션이 있고 그 옆으로 버스종점이 있다. 통영교통 연락소다. 그 옆 민박집 옆으로 등산로가 있다. 통영에서 한산도에 도착하면 바로 한산도 제승당에서 산행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제승당에서 버스를 이용해서 한산섬의 반대편 진두에서 산행을 시작해 제승당으로 하산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이곳은 진두에서 시작되는 망산 등산로 입구이다. 통영 시민과 한산도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은 망산이다. ‘망산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올라 망을 보며 일본군의 동태를 살폈던 것에서 유래했다.

한산도 망산 산행코스는 3구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1구간(제승당-망산 정상-진두마을까지 5.9km) 2시간 10분 소요되고, 2구간(제승당-망산 정상-야소마을까지 3.9km) 1시간 40분 소요되며, 3구간(제승당-망산-장작지 뒷산-띠밭등-장작지마을까지 7.0km) 3시간 소요된다.

진두마을을 지나면 바로 야소(冶所)’ 마을이다. 야소는 옛날 야시(여우)가 많이 서식했었던 것에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인 야싯골’ ‘야싯개를 음차한 한자 지명으로 생각된다. 옛날 풀멧간(대장간)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임란 때 여기에 병기를 제작하고 수리하던 대장간과 군기창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설이 있다.

건양원년(1896)에 마을 이름을 매동리라 고쳤는데, 후에 동네가 번성하지 못하여 그 연유를 알아본 결과 바다 바로 건너편에 벌바우(봉암)마을이 마주 보고 있어 벌바우의 벌떼들이 매동리의 꿀을 거두어 가기에 옛 이름인 야소로 고쳐 오늘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당시 풀무간(대장간)을 설치해 쇠를 녹여 병장기를 제조하고 수리하였던 곳으로, 풀무란 뜻의 한자인 를 따서 야소라 일컫게 되었다.

마을회관에서 조금 더 가면 마을버스정류소가 있고 그 맞은편으로 야소길이 있다.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다. 입구의 큰 나무그늘에 벤치를 만들어 두었다. 이 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뒤로는 밭이 둘러싸여 있다. 여기서부터는 한동안 집은 없고 도로만 있는 단순한 해안길이다.

걸어서 10여 분 정도 가면 의암(衣岩, 옷바우)’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해안도로 옆으로 나란히 있는 집들이 전부이다. 마을에서는 2층 규모의 마을회관이 가장 큰 건물이고, 마을 앞에는 두 개의 방파제로 둘러싸인 포구가 있다.

양쪽 방파제에 접안시설이 있을 뿐, 계류장에는 3~4척의 작은 고깃배만이 세워져 있다. 갈매기 몇 마리만 방파제 위에서 쉬고 있을 뿐, 방파제 어디나 다 조용하다. 여기서 마주 보이는 섬이 용호도이다. 정면으로 호두마을과 용호마을의 중간지점에 분교가 보인다.

서쪽 방파제 입구 바로 위로 학교 가는 길이 있다. 입구에는 학교 속의 펜션이라고 되어 있다. ‘한산일주로 1044’에 들어선 학교 정문에는 주소표지판만 있을 뿐 교명은 다 뜯어낸 상태다. 폐교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산초등학교 하소분교는 지난 2010년에 한산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교문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학교로서의 용도가 폐지된 학교란다. 따라서 현재는 폐교 상태다.

그래도 문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조각상들이 있어 학교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책 읽는 소녀상과 거북선 등의 상징물이 그것이다. 제법 넓은 운동장에 길게 이어진 한 동의 교사. 상태로 보면 아주 깨끗하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의암마을인데 한산도의 최남단 지점에 위치한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동쪽은 진두, 서쪽은 하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의암에서 하포 가는 길 중간 지점에 작은 마을인 죽전마을이 있다. 죽전마을 앞에는 오른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짧은 방파제 하나만 달랑 있을 뿐 별다른 시설이 없다. 방파제 끝자락에 부잔교가 있다. 해안은 자갈밭이다.

방파제에서 조금 더 가면 해안에 삼발이들이 있다. 오른쪽으로 마을길이 있다. ‘죽전길이라는 마을길과 함께 버스정류소가 나온다. 마을은 제법 높은 지대에 형성되어 있다. 옹벽에는 그림을 그려 두었다. 여기서 마주 보이는 곳이 하포마을이다. 역시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른쪽은 산, 왼쪽은 바다를 낀 해안도로다.

 

군수물자를 관리했던 곳, 하포마을

하포(荷浦)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이곳에다 보급창을 두고 각 진영에 보급할 군수물자를 관리했던 곳이다. 그래서 왜적과 싸우는 우리 수군의 병참 지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각지에서 조달해온 군수물자를 싣고 들어온 배들과 각 진영에 보급할 물자를 실어 나르는 배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일했다 하여 멜개라 일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못개 는 하포(멜개)마을을 중심으로 남북에 솟아 있는 두 산을 잇는 잘록한 목너머에 위치한 곳으로, 임란 당시 삼도수군이 사용할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곳에다 넓고 큰 못 여러 개를 만들어 놓고 군사용 식수 및 생활용수를 저장했던 곳이다.

하포마을 포구 역시 방파제가 하나 달랑 있다. 그러나 이곳은 마을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그것이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넓게 보면 죽전마을에 있는 방파제가 동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니 굳이 별도의 방파제가 필요 없는 것이다.

여기서 방파제를 바라보니 하얀 등대가 있는데 자 지붕을 올린 특이한 형태의 등대다. 우체통처럼 보인다. 등대를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버스정류소와 함께 정자쉼터가 있고, 그 옆으로 2층 규모의 오래된 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은 물양장이다. 제법 번화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물양장에는 그물 등 다양한 어구들이 즐비하다. 자 형태의 계류장에는 몇 개의 잔교가 있고 고깃배는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잔교는 두 개를 연결한 것도 있고 하나뿐인 것도 있다.

물양장 맞은편으로 오르막길이 있다. 한산일주도로다. 일주로 좌우로 골목길이 몇 개 있다. 오르막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마을회관이 있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2층 규모의 신회관이다. 여기서 어느 정도 올라가면 다시 내리막길이 나온다. 일주로는 구불구불한 언덕을 타고 간다. 이어 어느 정도 달리면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장작지마을에 다다른다.

마을 입구에는 장작지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그 앞으로 방파제와 함께 널찍한 물양장이 자리하고 있다. 방파제 입구 쪽에 위치한 물양장은 사각형의 공간으로 시설물이 거의 없는 깨끗한 편이다. 방파제와 물양장 사이에 배들이 있고, 방파제 끝에는 빨간 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장작지의 퇴색한 붉은 등대다. 등대 앞에는 마주 보이는 두 개의 작은 무인도가 있다. ‘대혈도 소혈도라고 불린다. ‘혈도인데 크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다.

여기도 방파제는 하나뿐이지만 이와는 별도로 마을로 들어오기 전 내리막길 옆으로 작은 방파제가 있다. 돌을 쌓아 시멘트로 포장해 만든 것으로 지금은 방파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물양장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좌우로 일주로가 지난다. 그다지 큰 편이 아닌 마을은 좌우 낮은 산을 낀 계곡 중심에서 해안 쪽으로 위치해 있다. 가운데 보이는 산이 망산의 능선이다. 마을에는 중간에 동서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여기서 오르막길로 북쪽을 향하면 길은 다시 산 중턱을 가른다. 즉 바다를 볼 수 없는 영역인 셈이다. 제법 해발이 높은 지점까지 오른 다음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산길이 끝나자 바로 앞에 드넓은 논이 보인다. 이 섬의 유일한 논이 있는 신거마을이다.

두억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바다를 막아 조성된 논인가 했지만 사실은 원래부터 논이란다. 즉 바다를 매축해서 생긴 논이 아닌 천연 논이란다. 산을 등진 마을 앞에는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논두렁이 있다. 이 마을이 바로 신거마을이다. 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로 마을 뒤편으로는 신거소류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신거마을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 대촌이다. 이름답게 한산도에서는 큰 마을이다. 대촌마을을 지나 의항마을로 가다가 중간에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택하면 문어포마을 가는 길이다. 이름이 특이하나 겨우 승용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논두렁 사이의 길이다.

 

문어포의 유래

산정부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북쪽으로는 대첩비로 이어지고 왼쪽 내리막길로 가면 해안이다.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 오른편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산 정상에는 지난 1976년의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 때 세워진 웅장한 규모의 한산대첩비가 자리잡고 있다.

한산대첩 기념비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음력 7 8, 충무공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왜군 함대 59척을 침몰시킨 것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당시 충무공은 한산도 앞바다로 적을 유인해 학이 날개를 펴듯 에워싸 섬멸하는 학익진을 구사했다. 임진왜란 최초의 정규 해전에서 대승을 거둬 전라도 해상을 통한 왜군의 수륙병진 야욕을 좌절시켰다.

 

한산도 충무공 기념관

주차장에서 내려가는 길목 오른쪽으로 골목길이 하나 있다. 2층 규모의 붉은 벽돌로 된 펜션 건물 옆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왼쪽으로 바다가 확 트였다. 산정을 낀 이 골목길로 해서 계속 가면 산 정상부 아래의 밭을 낀 집들이 몇 채 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골목길을 누비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계속 가면 마을 끝자락에 이른다. 전망 좋은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약간 넓은 마당에 서 있는 나무 아래에는 의자 두 개가 있다. 여기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일종의 호사이다.

마주 보이는 곳이 통영시다. 음악당이 한눈에 보인다. 몇 년 전에 한산도 문어포와 산양읍 영운리를 연결하는 방안과 용남면 선촌과 거제 화도를 연결하는 안을 내놓은 바 있다. 여기서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문어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 개의 방파제로 이루어진 포구로 그 방파제 배치가 마치 하트모양을 연상시킨다.

세 개의 방파제 중 북쪽에 위치한 방파제가 문어포선착장이다. 예전에는 통영과 그리고 비산도와 연결하는 항로였다. 여기서 마을을 바라본다. 흰색과 파란색으로 예쁘게 지붕을 색칠한 집들이 바닷가 산자락에 층층이 들어서 있다. 문어포 버스정류소 부근에서 바라본 섬마을과 바다도 일품이다. 마을 초입의 대숲과 소나무 숲으로 난 도로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가운데 방파제로 가는 길 중간에 특이한 건물이 있다. 2층 규모의 건물로 문어포마을회관과 경로당 건물이다. ‘문어포(問語浦)’, 지명치고는 특이한 표기다. 해전에서 패한 왜적들이 빨래하던 아낙에게 도망칠 길을 물었다는 이야기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한산해전에서 대패한 후 한산만 좁은 물길로 쫓긴 왜군 패잔병들이 문어포 안에서 신선 같은 노인에게 도망갈 길을 물었다. 이곳 지형이 한산만 좁은 개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인 개목으로 깊숙이 들어간 좁은 물길이 있어 계속 넓은 바다로 뚫려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적들이 이리로 가면 넓은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거짓 대답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문어포(問語浦)’. 또 한 가지, 예전 이곳에는 문어가 많이 잡혀 문어의 항구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북방파제에서 가운데 방파제로 가는 해안길은 반원 형태다. 짧은 방파제 끝으로 가면 옆에 잔교가 있다. 잔교는 세 개가 있다. 여기서 나와 오른쪽 해안도로를 계속 가면 왼쪽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여기서 더 가면 방파제가 나온다. 문어포에서는 가장 먼 지점에 위치한 방파제다. 실제로 대기실에서 방파제까지는 아무런 시설도 없다. 방파제 끝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대첩비가 보인다.

문어포는 막다른 길이다.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문어포 가기 전 오른쪽에 위치한 마을이 의항이다. 대촌마을 가기 전 왼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가면 의항선착장에 닿는다. 이 지역은 논으로 된 지형이다. 그리고 옆으로 하천이 흐른다. 바로 두억천이다. 섬의 북서쪽으로 두억천이 흘러 한산만으로 흘러든다. 신거와 대촌마을의 논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지만, 이곳은 바다를 메웠다는 이야기다.

한산도 주민 대부분은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경지 면적은 섬 전체 면적의 19% 정도이다. 농산물로는 쌀과 보리, , 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의항(蟻項)’ 개미목으로 통한다. 선착장 입구에 마을표지석이 있고, 여기에는 마을 유래에 대한 내력이 적시되어 있다.

한산해전에서 대패한 왜군들의 잔적들이 살길을 찾아 허둥대는 것을 우리 수군들이 이곳 한산만으로 유인하여 소탕하고자 하였다. 문어포에서 도망갈 길이 트였다는 말에 속은 왜적들이 한산만제승당개으로몰려들었다.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한 왜적들이 이곳 산허리를 뚫고 도망가기 위해 개미떼처럼 엉겨 붙었다. 그러나 뒤쫓아온 아군과 앞서 상륙한 육전대에게 모조리 도륙당하고 말았다.

두억의항선착장은 한적했다. 두억개는 남해의 여느 포구와 다름이 없었다. 주변 바다는 다소 복잡한 느낌을 주지만 선착장 자체는 아주 단순했다. 주변에 수산시장 등이 있어 그런 듯싶다. 의항선착장은 아직도 여객선이 다닌다. 제승당에 들렀다가 이곳을 거쳐 통영으로 가는 것이다. 의항마을에서 나와 대촌마을을 지나면 망곡으로 이어진다.

망곡마을 앞에서 길이 갈린다. 직진하면 마을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제승당 가는 길이다. 길은 망곡에서 끝난다. 망곡을 지나면 다리가 있다. 망산교는 도로 개설로 인해 잘려나간 능선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다. 이곳을 벗어나면 바로 삼거리다. 창좌리다. 여기서 오른쪽 즉 동쪽으로는 창동마을, 왼쪽으로는 장곡마을로 이어진다.

 

제승당과 한산정

제승당 선착장은 한산도 여행의 시발점이다. 오른쪽에 선착장이 있다. 오른쪽으로 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도선장이 있다. 유람선 선착장이다. 이 주변에는 또 다른 선착장도 있는데 역시 같은 기능을 한다. 이어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사적 113호 한산도이충무공유적지’. 제승당(制勝堂) 107대 통제사 조경이 세운 건물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해군작전사령관실 같은 곳이다. ‘승리를 만든다는 뜻이다. 섬 둘레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정숙, 엄숙을 강조하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솟을삼문을 한 첫 입구, 한산문은 한산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한산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충무공의 친필이라고 한다. 오른쪽으로 들어가고 왼쪽으로 나온다. 오른쪽 매표소를 지난다. 마사토를 깐 일주로다.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두 동의 건물이 있다. 매점과 사무소 건물이다. 이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영락없는 호수다.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이 한산도의 대첩비가 있는 산 정상부다.

그 옆으로 해수욕장이 있는 통영죽도라는 작은 섬이 보인다. 물이 빠지면 바로 연결되는 상죽도와 하죽도로 나누어지는데 그 가운데 해수욕장이 있다. 임란 때 대를 심어 화살을 만들어 썼다는 곳이다.

왼쪽으로는 숲,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시원하게 이어지는 길이 1km가량 구불구불 펼쳐진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해안길을 따라 가면 비석군이 보인다. 여기서 바다는 다시 안으로 톡 들어가는 만을 형성한다.

굽은 해안이 반대로 꺾이는 지점에 이르자 화장실이 있고 그 옆에는 보호각을 한 우물이 있다. 충무공이 병사들과 함께 마셨다는 그 우물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르지 않고 있어 인상적이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데도 염분이 전혀 없는 깨끗한 샘물이 쉼 없이 솟아난다. 그 오른쪽으로 대첩문이 있는데 앞에는 두 명의 장졸들이 지키고 있다. 실제 살아있는 듯한 두 명의 수군조각상이 지키고 서 있다.

대첩문을 오르면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보도블록이다. 이 길 끝자락 왼쪽으로 계단이 있다. 마지막 계단이다. 이 계단 끝에는 충무문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뜰이 펼쳐지면서 정면으로 제승당(制勝堂)’이 보인다.

입구 오른쪽에는 세 기의 비석이 보호각 안에 있다. 그 옆에 위치한 적의 동정을 살피던 망루인 수루(戍樓) 한산도 달 밝은 밤에~”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시를 지었다는 공간이다. 이 수루에서 적 동태를 살피고 봉화, 고동, 연등 등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제승당(制勝堂, 원래 이름은 운주당)은 한산대첩을 이룩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절을 기리는 호국의 성지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한산대첩을 이룬 후 지은 것으로, 1597년까지 이곳을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아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이 여수에 위치해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일본군을 제압하기에는 너무 멀다고 판단한다. 이에 1593 7 15일 지휘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한산도에 기지를 건설하고 진을 옮겼다. 한산도는 견내량 아래 고성과 거제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당시는 무인도였다. 그리고 그전까지만 해도 한산도는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말을 기르던 국영목장지였다고 한다.

산과 들이 완만하고 섬 전체가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선은 이 섬을 목장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가한 산()’이다. ‘큰뫼(한뫼)’ 또는 말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한산 은 크다는 뜻의 한자 ()’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제승당 왼쪽 편에 문이 하나 있다. 활을 쏘던 한산정(閑山亭)으로 가는 문이다. 한산정은 제승당과 더불어 충무공이 생전에 직접 활동했던 무대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부하 무사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했다. 난중일기에는 이곳에서 활쏘기 내기를 하고, 진 편에서는 떡과 막걸리를 내어 배불리 먹었다고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사방이 확 트인 한산정 앞 난간에 기대서면 과녁 세 개가 바다 건너 맞은편 산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거리는 145미터. 이 거리는 당시 해전에서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였다고 한다. 충무공이 이곳에 활터를 만든 것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해 해전에 필요한 실전 거리의 적응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는 이순신의 건의에 의해 최초로 지방무과특별시험이 치러졌다.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무사들은 충무공이 1594년에 건의했던 무과특별시험에서 선발된 하삼도(下三道 - 경상, 전라, 충청)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전란 중에 육지로 무과시험을 치르러 가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

제승당에서 왼쪽으로 더 들어가면 홍살문이 나온다. 현판이 걸려 있지 않은 삼간문을 통해 안에 들어가면 제승당 터임을 알리는 유허비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한글로 된 비가 있다. 이 한글비는 1948년 광복을 기념해 경남도내 초중고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것으로, 위당 정인보 선생이 글을 지었다. 바로 옆 또 다른 삼문이 있다. 이곳 역시 현판은 없다.

이 문을 들어서면 앞에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忠武祀)’가 있다. 충무사에 모셔져 있는 이 영정은 1978년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으로, 종이품 통제사 관복 차림으로 그려졌다. 충무공 표준영정은 1952년 월전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으로 현충사 본전에 모셔져 있다.

제승당선착장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반원형의 해안도로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 산 아래턱에 몇 채의 집들이 있는데 이곳이 한산도휴양소다. 그 뒤로 덮을개가 있다. 그 앞에 있는 선착장이 덮을개선착장으로 망산 산행 시작점이다.

개포라고도 하는 덮을개(더풀개)는 임란 때 한산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법에 결딴났던 왜군의 패잔병들이 우왕좌왕 도망갈 길을 찾자 우리 수군들이 한산만으로 유인, 일부는 두억개에서, 일부는 이 개안에서 모조리 도륙하였다. 왜적들이 온 개안을 덮었다 하여 덮을개라 했고, 100년 전쯤 인가가 들어서서 살았으나 근년에 와서 제승당 성역화사업으로 이주시켰다.

 

거제시에서 들어오는 여객선 관문, 소고포마을

여기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가 대야포에서 오른쪽으로 꺾인다. 대부분 암석해안이고 북쪽 해안으로는 깊숙한 한산만이 형성되어 있다. 대야포에서 조금 더 가면 대고포마을에 이른다.

섬에서 만난 첫 번째 마을인 대고포 앞바다에는 아담한 갯벌이 펼쳐져 있다. 임란 때 이 충무공이 군수용 소금을 구워 공급한 염전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염포(鹽浦)라 부르다가 그 후 고포(羔浦)로 이름을 고쳤는데, 1961년도에 대고포, 소고포로 분동하였다.

소고포 도선장에서 나오면 삼거리다. 바로 소고포마을이 있는 곳이다. 오른쪽은 소고포와 대고포마을을 지나 제승당 가는 길이고, 왼쪽은 진두와 추봉도 가는 길이다. 가는 길목에 독암마을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장곡마을이 나타난다. 독암마을은 변변한 시설이 없는 마을이다.

독안바위라고도 하는 독암은 장곡마을 북편 도로변, 바다로 쑥 내민 언덕 왼쪽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뜸이다.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의 함선을 수리했던 곳이라 하기도 하고, 조선 수군에서 필요한 도간(도가니, 질 그릇)을 만들었다 해서 도간바우라 불리기도 하며, 마을 옆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바위, 즉 독암(獨岩)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 설도 있다.

장곡 숯덩이골로 통한다. 제승당에서 약 9km 떨어진 곳으로 임란 때 여러 군영에 필요한 숯과 기타 연료를 만들어 공급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곡마을 앞에 작은 무인도가 있는데 유자도라고 한다.

 

창동마을과 역졸마을

장곡마을 다음에 위치한 마을이 창좌리 창동마을이다. 제승당에서 동남쪽으로 약 9km 지점의 해변에 있는 이 마을은 글자 그대로 창고(倉庫)마을이다. 임란 당시 약 3,000석 가량의 군량미를 비축했던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창동(倉洞)이라 불리게 된 마을이다.

여기서 앞에 보이는 유자도와 오른쪽 섬인 좌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는 탓에 천혜의 항구가 따로 없다. 달랑 방파제 하나 거느린 포구에는 배도 몇 척 되지 않는다. 물양장 뒤편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창동마을에서 오르막길인 한산일주로를 타고 계속 오르면 언덕 너머 오른쪽에 학교가 있다. 한산초등학교로 망산 북동쪽 산 아래에 위치해 있다. 어른 키 정도 높이의 옹벽을 한 학교 가는 길은 계단으로 터널형식의 차양막을 쳤다. 주변에는 은행나무 잎들이 널려있다.

교문을 들어서면 단층 건물의 제법 긴교사가 보인다. 운동장이 참 넓다. 운동장에도 은행나무 잎들이 널려 있다. 학교 뒤 오른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망산이다. 망산(望山)은 산 이름도 흔하디흔한 이름이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거제에도 망산이 있고, 추봉도에 있는 산 이름도 망산이다.

대고포마을을 지나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여 달리면 여차란 곳이다. 길옆으로 보이는 바다는 작은 호수들 같다. 섬과 섬 사이, 만과 곶에 둘러싸인 둥글둥글한 작은 바다가 구슬 꿴 목걸이처럼 이어진다. 길은 제법 길다. 한참을 가야 한다.

언덕을 넘어가면 마을이 나타나는데 바로 여차마을이다. 여차마을 가는 언덕 왼쪽은 고동산이라고 한다. ‘고동산은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바닷길의 왼쪽에 위치한 해발 188m의 산이다. 임란 때 서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이 산에 올라 소라고동을 불어 신호하였다 하여 고동산이라 한다. 이 고동산 밑에 있는 마을로는 관암마을과 여차마을이 있다.

여차마을의 옛 지명은 내추리, 배를 젓는 노()를 뇌추리라 하였는데 삼도수군통제영의 각종 전선에 필요한 노를 이곳에서 제작 공급하였다. 즉 뇌추리의  의 방언이다. 여차 앞바다는 하얀 부표들로 가득하다. 굴 양식장이다.

포구 주변은 온통 굴껍질 천지다. 전국 굴의 80%를 생산한다는 통영에서도 한산도는 굴의 주요 생산지라고 한다. 마을은 제법 큰 편이다. 뒤에 산이 있어 넓지 않지만,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해안을 가진 마을이다.

해안을 따라 걸어서 계속 가면 이내 길은 막혀 버린다. 고동산 서쪽에 위치한 관암마을로 가는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관암마을은 도선으로 이동한다. 한산도에 배가 닿는 곳은 제승당을 비롯하여 의항과 관암선착장 이렇게 세 곳이다. 섬 전체가 200m 안팎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크고 작은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분포한다.

여차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호안을 따라 역졸길 로 명명된 해안도로를 달리면 역졸마을이 나타난다. 졸병들이 머물렀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이름이 참 특이하다. 입구 쪽에 굴 작업 공간이 있고, 그앞에는 굴을 파쇄하여 쌓아둔 것이 보인다. 굴을 파쇄하는 것은 화학비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란다.

양식장에서 굴을 가져오면 이곳 작업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앉아 굴을 까는 작업을 한다. 그것도 새벽부터 나와서 작업을 하는데 굴을 kg당으로 계산해서 임금을 받는다. 많이 하는 사람은 연 400만 원 가까이 받는다고 한다. 새벽 2~3시에 나와서 오후 4~5시까지 한단다.

마을 남쪽 끝에는 방파제와 함께 포구가 있다. 방파제 입구에는 마을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어서오십시오 여기는 여차3반 역졸마을입니다’. 아예 마을을 설명하고 있다. 뒷면에는 하면 된다라는 마을훈이 새겨져 있다.

방파제 끝단 왼쪽으로 부잔교와 함께 잔교가 있고, 중간에 전신주가 하나 있다. 방파제에서 마을을 둘러보면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 자리잡은 마을은 작은 편이다. 그리고 집들도 해안을 따라 일렬로 나열돼 있다.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집들이다. 단순한 구조의 마을이다.

마을 중간지점의 방파제와 선착장, 그리고 끝자락에 잔교가 있다. 이 주위만 약간 넓을 뿐 해안도로는 겨우 차량 두 대 정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마을 가운데에는 짧은 방파제가 있다. 이 방파제 사이의 계류장에 몇 개의 잔교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다. 대신 배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방파제 너머 남쪽으로 소고포선착장이 있다.

해안은 제법 길지만 해안도로를 만들면 바로 이어질 수 있는데 해안도로는 못 만들었단다. 원래 만들 계획까지 짰는데 공무원이 방해를 하는 바람에 아직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해안도로가 이어지면 소고포선착장이 바로 코앞인데 어떤 연유인지 모를 일이다. 부근 해역에서 미역과 홍합 채취, 굴 양식이 활발하다. 특히 은빛 청갈색을 띤 한산멸치가 특산물로 유명하다.

 

한산도를 떠나면서

한산도는 통영을 대표하는 섬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발점이자, 한산도대첩이 있었던 곳이다. 연중 순례 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한산도에는 사적 113호로 지정된 제승당을 비롯하여 주위에 유허비각, 충무문, 한산정, 충무사, 홍살문 등이 들어선 십팔만 평쯤의 땅은 성역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그 중 제승당은 충무공이 휘하의 장수들과 함께 전략회의를 했던 장소이다. 그리고 수루는 충무공이 수시로 올라 왜군의 동태를 살폈다는 망루인데, 이 건물이 바로 한산도가에 나오는 그 유명한 수루이다. 충무공 유적 외에 한려수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망산에도 임란 당시 사용했던 봉수터와 유적지가 남아 있다.

한산도는 임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잡았던 곳이고, 앞바다 한산해역은 세계 해전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룬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 지명치고 이 충무공과 관련이 없는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정도로 충무공의 한산도는 호국혼이 지금도 살아 숨쉬는 유서깊은 섬이다.

 

한산도의 관광명소

한산도 이충무공유적(閑山島李忠武公遺蹟, 사적 제113)

원래 여수에 있던 것을 1593(선조 26) 8월 이순신이 이곳으로 이진하였는데, 1597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곳을 떠날 때까지 3 8개월 동안 생활하였다. 1597년 원균이 칠천도 싸움에서 패하자 경상우수사 배설이 도망치면서 이곳에 불을 질러 폐허가 되었는데, 그 후 통제사 조경이 제승당을 짓고 유허비를 세웠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보존상태가 좋지 못하였는데, 1976년 이곳을 성역으로 정하고보수 확장하였다.

 

제승당(制勝堂)

1593 8,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아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했을 때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막료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는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된 이곳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1740년 유허비를 세우면서 운주당 옛터에 다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 했다. 지금 걸려 있는 제승당(制勝堂)’ 현판은 조경이 쓴 글씨이다. 1976년 지금의 제승당과 충무사, 한산정, 수루 등을 새로 짓고 경내를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망산

망산은 해발 293.1m이고 경사 15도에 산행거리는 4.25km이며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정도의 거리다.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뱃길을 이용해 20분 거리의 한산도 제승당에서 산행을 할 수 있고, 반면 제승당에서 버스를 타고 한산섬의 반대편 진두에서 산행을 시작해 제승당으로 올 수 있는 등산코스가 있다. 산의 정상마다 봉수터를 비롯, 한산대첩의 유적지가 일부 있으며 솔숲으로 형성되어 있어 푸른 소나무 향내음을 맡으며 삼림욕을 함께 할 수도 있다.

 

외항마을 소나무숲

외항마을 서쪽 바닷가의 소나무 숲은 1백여 년 전에는 마을에서부터 해변을 가로지르는 울창한 수림을 이루었다가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마을에만 남게 되었다. 마을에서 보이는 해수욕장의 전경이 이국의 경치를 느끼게 한다.

 

홍도 괭이갈매기 번식지(천연기념물 제335)

홍도괭이갈매기 번식지는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홍도) 일대를 말한다. 통영시의 최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섬 전체가 괭이갈매기 번식처로 지정되어 있는데 섬 주위는 깎아지른 암벽이고 동백나무가 자생하나 대부분 난초류로 갈매기가 번식하기에 알맞은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다. 황로, 칼새, 섬개개비, 쇠개개비 등도 같이 서식한다. 현재 무인도이며 매물도에서 낚시용 선박을 이용해서 괭이갈매기 서식지를 볼 수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閑麗海上國立公園)

공원지역은 여수시(28.9km2) · 남해군(72.7km2) · 하동군(7.6km2) · 사천시(26.7km2) · 통영시(172.2km2) · 거제시(170.5 km2)  478.62km2이다. 공원은 여수시 지구 · 노량수도 지구 · 남해군 금산 지구 · 사천시 지구 · 통영시 지구 · 거제시 지구 등으로 나뉜다.

여수시 지구에는 유명한 오동도가 있다. 해식동이 있고 온 섬에 동백나무 · 식대(海藏竹)를 비롯한 난대성 식물이 무성한 오동도는 임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선 훈련을 한 곳이다. 여수시 수정동 사이에 720m 길이의 방파제가 있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제일의 경승지이다.

노량수도 지구에는 남해도를 연륙하는 남해대교와 남해 충렬사(사적 233) · 관음포 충무공 전몰유허(사적 232)가 있다. 남해군 금산 지구에는 금산 · 상주해수욕장등이 있으며, 대장봉 · 독대봉 · 향로봉 · 일월봉 등의 기봉과, 삼불암 · 천구암 · 사자암 · 음성굴 · 가사굴 · 쌍홍문과 감로수 등 이른바 38()이 있다.

 

사천시 지구에는 백로와 왜가리의 번식지로 유명한 학섬(천연기념물 208)이 있다. 통영시 지구는 한려수도의 중심지구이기는 하나 거제도나 오동도 등에 비하면 자연경관은 훨씬 떨어진다. 충렬사 · 세병관(보물 293) 등이 있으며, 충렬사에는 팔사품(八賜品 : 보물 440)이 보관되어 있다. 세병관은 통영의 객사로 규모는 진남관보다 작다.

한산도는 이 충무공의 지휘본부였다. 이곳에 있는제승당은 이 충무공이 1593(선조 26) 8, 여수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기면서 사령부 격인 지휘소로 건축한 것이다. 기후가 온화하여 비진도의 팔손이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63) · 도선리의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231) 등이 있고, 그 밖에 통영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6) · 삼덕리 부락제당(중요민속자료 9) 등의 문화재가 있다.

 

거제시 지구에서는 해금강(명승 2)이 대표적인 경승지인데 이는 남부면 갈곶리 일대의 해식애를 가리키며 거제도 연안의 아비도래지(천연기념물 227) · 학동의 동백림 및 팔색조 번식지(천연기념물 28) 등이 있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페리가 운항하며, 한반도 연안항로로서도 가장 발달되어 있는 수역이다. 해수욕장으로는 구조라해수욕장 · 비진도해수욕장 등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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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종합운동장 06:00

이번 산행지는 통영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한산도와 추봉도에 있는 산들이다. 한산도는 제승당이 있어 유명한 섬이지만 통영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난 지금까지 가지를 않았다. 이번에 가는 산들은 오래전 계획을 세우고 교통편까지 검색하여 준비는 해두었지만 다른 곳을 다니느라 가지 않았었다. 이번에 청주 천봉 산악회에서 내가 가려던 코스와 동일 한 코스를 잡아서 함께 하기로 하였다. 통영에서 들어가는 섬들 중 욕지도, 연화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비진도, 용초도, 삼천포 쪽으로 사량도 정도는 다녀온 것 같지만 아직도 두미도 천황산이나 연대도 연대봉등이 남아 있다. 오늘 거제도 어구항에서 10시 출항하는 배를 타기 위해 청주에서 06시 출발한다.

 

거제 어구항 09:23~09:47

청주체육관에서 06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6시 출발하여 죽천교에 도착하여 잠시 기다려 버스에 승차하니 모처럼 빈 좌석이 없는 듯하다. 버스는 몇 군데를 더 정차 후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경부, 중부고속도로 대전~통영구간을 달리다가 덕유산휴게소에서 멈춰 선다. 오늘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여 그런지 날씨는 구름이 많이 낀 날씨로 흐리다. 덕유산휴게소에서 10분을 좀 더 휴식 후 다시 달려 1시간 25분이 지나 통영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고 이후 다시 달려 신거제대교를 건너고 잠시 후 우측으로 급격히 꺽어지는 도로를 따라 달리면 15분후 거제 어구항에 도착을 한다. 청주에서 3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어구항에서 한산도 소고포항으로 가는 배편은 매시 정각이며, 나올 때는 매시 30분으로 되어 있다.

 

추봉도 예곡마을 10:21~10:22

거제 어구항 뒤편으로는 산방산, 대봉산, 백암산이 있어 이곳도 한번쯤 돌아봐도 좋을 것 같다. 어구항은 규모가 큰 편은 아니라 매우 한산하다. 관광버스는 우리 한 팀이며 승용차 몇 대와 공사용 차량이 이곳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잠시 항구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쐐며 기다리니 배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배가 도착하고 승용차가 먼저 배에 올라가고 큰 차는 배가 크지를 않아 2대를 싣고 나면 끝이다. 일찍 출항 준비가 되었는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금시 출항을 한다. 09 47분 출항하여 좁다란 해역의 거미줄 같은 어구들을 피해가며 15분을 가니 한산도 소고항에 도착을 한다. 소고포항도 역시 작은 포구로 상점이 하나 있고, 콘테이너 박스로 만든 매표소가 있는 정도로 시설물도 빈약하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을 돌아볼 몇 분은 버스에서 내려 제승당 방향으로 이동을 하고 나머지는 차량으로 이동을 하여 13분후 추봉도 예곡마을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두 진영으로 나누어 추봉도 대봉산과 망상을 산행 팀과 추봉도 예곡 망산을 산행할 두 팀으로 나누어 이제 각자 산행을 시작한다.

 

예곡망산(돌무더기, 1.66km, 256m) 10:54

추봉도 예곡마을은 크지 않은 섬마을로 개미목 동쪽 편으로 마을이 형성이 되어 있다. 산행은 좌측으로 하던지 우측으로 하던지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은 같다. 우리는 마을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깨끗한 바닷물이 출렁이는 바닷가 소로 길을 따라 가면 길에 곱게 핀 아욱꽃이 반긴다. 잠시 바닷가 길을 따라 가면 끝 쪽에 빨간지붕 집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 바닷가로 놓여 있는 테크 길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잠시 빨간지붕 집으로 들어가니 좌측으로 테크 길로 내려서는 길이 곧 나온다. 테크 길을 따라 잠시 들어가면 그 끝에서 우측으로 산으로 접어든다. 처음에는 풀섶 길로 뚜렷하지 않지만 잠시 헤치고 들어가면 널찍한 임도길이 나온다. 임도 길을 따라 오르면 산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예곡망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좌측 편으로 사면을 돌아서 오르게 되어 있다. 나는 직등으로 우측 길을 따라 오르니 금시 산길이 끊기지만 위쪽으로 삼나무 조림지로 잡목이 없어서 가파르지만 천천히 올라서니 얼마 후 능선 길에 닿는다. 시간 차이는 거의 없다. 이렇게 하여 능선 길에 닿은 후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첫 번째 봉인 해발 약225봉에 닿는다. 이후 잡목을 헤치고 살짝 내려선 후 다시 한번 더 치고 오르면 바위봉에 커다란 돌무더기로 되어 있는 예곡 망산 정상이다. 북쪽으로 개미목을 지나 대봉산, 그 뒤편으로 한산도 본섬이 보이며 좌측으로 용초도가 보인다. 동쪽으로 죽도 용초도 뒤편으로 비진도의 윗부분이 조금 보인다. 예곡망산은 등산객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산길은 좋지 않은 편이다.

 

바다팬션(3.76km, 40m) 11:18

예곡망산에서 바윗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이후 산길은 서서히 내려서는 길로 내려설 만 하다. 한동안 내려서면 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나가면 예곡마을에서 곡룡포로 가는 도로에 닿은 후 다시 예곡마을로 돌아 와야 하는데 나는 이쪽 방향으로 나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우측으로 진행을 하니 임도길이 좋다. 이 길을 따라 진행하면 그 끝에서 테크 길에서 올라온 임도 길에 닿지만 그 중간쯤에서 내려서니 금시 전답이 나오지만 전답 주변으로 철조망을 쳐 놓아서 이것 문 열고 들어가고 한번은 넘기도 하며 전답 길을 빠져나와 마을에 닿는다. 마을에서 이제 위쪽으로 올라서면 개미목 능선으로 난 세멘트 길에 닿는다. 이 길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는 전답이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시퍼런 바다가 이어진다. 우측으로 전답을 지나 추원마을이 이쁘게 내려다보이고 추원마을 위쪽 추봉보건 진료소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있는 바다팬션 앞에 닿는다. 예곡마을에서 대략 10여분이 걸린다. 좌측으로 바닷가로 내려서는 테크 길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대봉산(자연석에 대봉산 써 있음, 5.33km, 238.8m) 11:51~12:07(중식)

바다팬션에서 뙤약볕을 쬐며 세멘트 길을 따라 오르니 이마에서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하여 그런지 오늘 날씨가 습도가 매우 놓고 후덥지근한 날씨다. 잠시 오르면 세멘트 길 삼거리가 나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서는 우측 길을 따라 오르도록 되어 있는 대 선두팀이 좌측 길을 따라 진행한다. 그 들 뒤를 따라 좌측 세멘트 길을 따라 오르니 세멘트 길 끝에서 비포장 길이 시작되면 좌측 바닷가로 안전팬스가 쳐져 있는 길이다. 이 길은 한산사 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로 한산사에서 부터는 도로가 추봉교까지 연결이 되니 대봉산을 오르지 않을 경우 이 길을 따라 가도 좋겠다. 선두는 모퉁이에서 우측으로 오른 것 같은데 나는 산책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우측으로 올라 붙이니 한참을 올라서 오래된 임도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능선에 붙인 후 다시 능선을 따라 오른다. 선두가 오른 흔적이 보인다. 이 능선은 점차 가파라지기 시작하여 위쪽에서는 바위지대도 지나고 조금은 순탄해진 능선을 따라 오르면 첫 번째 봉에 닿는다. 해발 약 200m정도가 나온다. 이후 완만해진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한다. 산길은 제대로 없다. 솔잎이 푹신하게 깔린 곳도 있고 나무가 쓰러져 앞을 막는 곳도 나온다. 이렇게 하여 진행하면 두 번째 봉인 해발 약230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다시 평탄한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4~5분이며 추봉도 대봉산 정상에 닿는다. 굵직한 나무에 몇 개의 표지기가 붙어 있으며 좌측 편 자연석 바위에 대봉산이라 적혀 있다. 주변이 온통 잡목으로 둘어쌓여 조망은 전혀 없다. 이곳에서 인증사진 찍고 마지막으로 함께 올라온 예곡망산 팀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한 후 출발한다.

 

한산초중학교 (7.32km, 20m) 12:37

대봉산에서 내려서는 길도 다니지를 않아서 발이 푹푹 들어간다. 잡목 길도 지나고 평탄하게 내려서는 길을 따라 진행하면 20여분을 내려서서 선두팀이 놓은 안내표지가 보인다. 좌측으로 빠지면 한산도에서 나온 길에 붙겠는데 회장님이 안내표지를 놓은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뭐 굳이 우길 것도 없고 표지 방향으로 내려서니 잡목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따라 내려서서 끝 쪽에서 도로 절개지에 닿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서는 내려오다 좌측으로 진행하여 산소가 있는 곳에서 내려서면 곧 추봉교에 닿는 것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데 현지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산길이 제대로 되어 있는 곳이 아니다. 절개지 바위를 따라 기어서 내려서니 높다란 세멘트 옹벽이다. 옹벽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살짝 내려설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진다. 이곳으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추봉교 앞이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지났던 길이 좌측으로 보이고 우리는 추봉교를 따라 한산도로 넘어간다. 한산도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한산면으로 진두라고 한다. 한산면사무소 앞쪽 포구가 진두 선착장이다. 추봉도를 건너며 앞 팀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정 코스로 진행을 하고 있다. 한산면사무소를 옆으로 돌아서 한산초중학교 쪽으로 오르고 있다. 머릿속으로 한산초중학교로 가로 질러 가기로 생각하고 있다가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서서 한산석유 건물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좌측 편 건물 쪽으로 넘어가니 역시 학교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따라 잠시 올라서서 한산초중학교 운동장에 닿는다. 운동장을 지나면 한산초중학교 정문이다.

 

망산 정상(9.52km, 295.6m) 13:23 ~13:32

한산초중학교 정문에서 잠시 오르면 망산 등산로 입구다. 이곳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등산로는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서 우측 능선에 닿는다. 이후 능선 길을 따라 오르면 대부분 계단으로 이루어진 산길을 따라 오른다. 한동안 올라서고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면 등산로 입구에서 20여분 후 조망이 좋은 사각정자에 닿는다. 정면으로 조망도에 표시된 대로 추봉도가 놓여 있고 그 뒤로 거제도 가리산과 망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우측으로 용초도가 놓여 있으며 그 앞쪽으로 죽도가 조그맣게 보이고, 장사도 대매물도와 소매물도는 오늘 날씨가 좋지를 않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 이정표에 진두 1.0km, 망산 1.5km가 적혀 있다. 이제 산길은 널찍한 능선 길을 따라 이어진다. 전반부의 추봉도 산길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곳은 마을 분들과 산악회등 제승당을 찾는 분들도 많이 오르는 곳이다. 4~5분을 지나서 해발 약 230봉에 닿고 다시 4~5분을 진행하면 바위봉 앞에 조망이 매우 좋은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앞쪽으로 보이는 조망은 산 아래 야소마을이 이쁘게 내려다보이고 추봉도 봉암마을도 이쁘게 내려다보인다. 앞쪽으로 용초도가 가깝고 죽도도 명확히 보이며 장사도 좌측으로 거제도의 끝 지점이 보이며 대매물도와 소매물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바위전망대를 지나서 3~4분을 진행하면 테크 길 계단을 올라서서 해발 약265봉을 넘어서서 진행하면 5분이 지나서 망산 0.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는 해발 약 265봉이다. 이곳에서 내려서면 좌측으로 바위전망대가 있고 여기를 내려서서 평탄해진 능선을 따라 진행하고 잠시 오르고 하여 10여분을 진행하면 세메트로 잘 지은 팔각정자가 나온다. 휴월정이라고 한다. 정자 안쪽으로 휴월정 창건기가 적혀 있다. 휴월정을 잠시 올랐다가 내려서서 약 2분을 천천히 오르면 망산 정상이다. 자연석으로 만든 잘생긴 정상석이 있으며 앞쪽으로 삼각점이 있으며 북쪽 편으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 조망도에는 광도면 소고포항 어구선착장 뒤편으로 산방산등이 그려져 있다. 남쪽으로 있는 조망도는 전과 동일하다. 여기 이정표에 진두 2.5km, 야소 2.8km, 제승당 4.7km가 짧지 않은 거리다. 우리는 이곳에서 진호님이 가져온 방울토마토로 간식을 든 후 하산을 시작한다.

 

소고포항 삼거리 이정표(11.73km, 185m) 14:06

망산에서 야소로 하산하는 길과 제승당이나 소고포항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뉜다. 우측편 길을 따라 내려서면 제승당이나 소고포항으로 가는 길이다. 내려서는 첫머리가 가파르게 내려서는 계단길이다. 한동안 내려서면 이후 산길은 평탄해지며 조금씩 오르고 내려고를 반복하며 진행을 한다. 산길은 널찍하니 매우 좋다. 특히나 가는 길 내내 나무에 매달린 나무 이름과 설명이 잘되어 있다. 양쪽으로 우거진 숲도 좋고 등산로 정비로 잘되어 있어 좋다. 망산에서 15분 정도를 내려서면 이정표가 나온다. 망산 1.2km, 진두 3.2km, 제승당 3.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도로에 닿게 되고 도로를 따라 우측 앞쪽으로 가면 소고포항으로 좌측으로 가면 문어포 한산대첩비가 있는 곳으로 가던지 섬을 한 바퀴 돌아서 야소마을 한산면소재지 진도로 향하는 섬 일주 도로다. 여기 바로 앞쪽으로 도로 위 목교가 설치되어 있다. 목교를 지나며 계단을 따라 잠시 오르고 서서히 오르는 산길을 따라 목교에서 10여분 후 굵직한 소나무들로 이루어진 사각 돌담이 쳐져 있는 곳에 닿는다. 제단인지 용도는 알 수 없다. 이후 산길은 양쪽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가 멋진 길을 따라 진행하고 계단을 오르고를 하여 소고포항과 제승당이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소고포항은 1.2km, 망산 2.4km, 제승당 2.3km가 적혀 있다.

 

제승당 선착장(14.58km) 14:47~15:00

여기 삼거리에서 다섯분은 제승당으로 향하고 마지막 한분은 소포항으로 진행을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며 다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의자 2개가 양쪽으로 놓여 있는 지점을 지나 해발 약 165봉이다. 이봉에서 산길은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계단을 따라서 내려선다. 낮아진 능선으로 제승당 1.1km 이정표가 있고 5분을 서서히 오르다 보면 마지막 봉으로 보이는 해발 약95봉에서 산길은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2분후 제승당 방향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닿는다. “한산해전의 의의” “해군작전사령부가 있던 한산도의 안내문이 있다. 여기서 테크계단 길을 따라 3분을 내려오면 한산도 역사길 제2구간 시작지점 문이 있는 전망대에 닿는다. 앞쪽으로 통영으로 가는 바닷길이 보이고 우측으로 한산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고동산이 보인다. 오늘 여기까지 다녀가려 한 것인데 도중에서 시간을 보니 갈수 없을 것 같아. 본대와 합류를 하였다. 여기 전망대에서 내려서는 길은 붉은색으로 칠한 좁다란 포장길을 따라 내려서서 좌측은 제승당 선착장, 우측은 소고포로 향하는 도로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야소 7.5km, 진두 7.2km, 망산 4.7km가 적혀 있다. 오늘 여기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를 하여 매우 혼잡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차량이 있는 곳을 잘못 이해를 하여 우측으로 향하다가 회장님이 버스가 제승당 주차장에 있다고 하여 다시 반대편 좌측으로 향하여 14 47분 버스가 주차하고 있는 선착장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산행 후

제승당 선착장 화장실에서 급하게 대충 땀을 씻고 차량으로 소고포항으로 이동을 한다. 잠시 후 도착한 소고포항에서 대형차를 싣을 수 없다고 하여 다음 배인 16 30분배 까지 기다리느니 제승당에서 출발하는 16 05분배는 우리 차량을 싣고 갈수 있다고 하여 다시 버스로 도로 포장으로 복잡한길을 따라 제승당선착장에 도착하여 배가 한척 통영으로 돌아가고 잠시 더 기다려 도착한 배에 마지막으로 우리 버스를 싣고는 16 10분 통영항으로 돌아온다. 통영항에 도착하여 버스로 통영 중앙시장 앞에 도착하여 1시간 10분 자유시간을 갖는다.

자유시간에 각자 회덥밥, 전복, 우리는 회비 1만원씩을 거출하여 중앙시장에서 6kg짜리 광어와 숭어인지 한 마리를 더 사서 회로 떠서 차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차량앞 공터에서 소주를 겸한 회를 맛있게 먹고 있자니 비는 잠시 그쳐 주어 고맙다. 이렇게 하여 자유시간을 마치고 18 05분 통영을 출발하여 덕유산 휴게소와 죽암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청주 집에 돌아오니 21 25분이다.

오늘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습도도 높아 산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다행히 산행이 끝날 때 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후덕하고 산행안내에 최선을 다하는 천봉산악회의 복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함께 한 천봉산악회님들께 감사를 표한다.

 

산행시간 : 4시간 25분 소요

산행거리 : 14.58km

 

산행회비 : 35000

자유시간 횟값 : 각자 1만원(참여자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