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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1134 원주,충주 갈미봉~국사봉~빌미산 2019.004.18.목요일 맑음

원주,충주 갈미봉~국사봉~빌미산

갈미봉602m, 국사봉503m, 빌미산 352.2m

 

2019.004.18.목요일 맑음

참석인원 : 나홀로

 

청주 집 05:55 -삼화전기앞 버스정류장 06:05 ~06:16 -버스비 1200 -청주역 06:27 ~06:47 -열차비 4500 -충주역 07:42~07:45 -도보 -충주공용버스 터미널 07:55 ~08:00 -버스비 3700 -귀래면(해발 약130m) 08:37 -531번도로따라 운남저수지 방향으로 -19번 도로 교각아래 지나고 -삼거리에서 우측 소로길따라 -소로길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수로아래 산소진입로(1.34km, 175m) 08:54 -잠시 들어가면 산소 여러기 있음 -산소 좌측 끝에서 능선으로 진입(은행나무골 좌측능선) -계속 오르막길(능선으로 옛길) -자작나무 숲(2.07km, 380m) 09:23 -급경사오르막 -해발 약500(2.48km) 09:41 -갈미봉 정상(2.97km, 602m) 09:57~10:00 -우측 능선으로 -묵묘(3.16km, 540m) 10:04 -능선 우측으로 잣나무 조림지 -좌꺽임봉(3.89km, 565m) 10:20 -우꺽임봉(4.87km, 415m) 10:36 -(4.97km, 420m) 10:39 -외촌이고개(좌 엄정 원곡리, 우 귀래 외촌, 5.22km, 355m) 10:43 -급경사 오르막 -512.7(삼각점, 5.67km) 11:05 -우측 능선(직진으로 끝까지 가야함, 좌측으로 빠져 가시밭길에서 고생함) -한옥마을앞 도로(7.15km, 265m) 11:47 -소태재(7.41km, 273m) 11:51 -좌측 송신탑 옆으로 -급경사 -능선삼거리 봉(8.0km, 480m) 12:17 -좌측으로 -국사봉(8.47km, 503m) 12:27 ~12:48 -바위 전망대 12:58 -430(8.90km) 13:00 -좌측 능선으로 하산 -구룡저수지 아래 물댄동산 철문(9.96km, 170m) 13:23 -구룡교차로 굴다리(10.56km, 170m) 13:33 -세멘트길 따라 -구룡마을 위쪽 부근 임도 13:35 -가시밭 능선따라 직등 -능선길(12.89km, 440m) 15:02 -(13.13km, 480m) 15:08 -삼각점봉(좌측으로, 13.42km, 475m) 15:16 -능선 삼거리(좌측으로, 14.14km, 400m) 15:30 -잠시 내려오다 삼거리(좌측으로) -만영고개(아스팔트고개, 좌 엄정 옥성, 우 논강, 15.88km, 210m) 15:48 -빌미산(삼각점, 산불감시초소, 15.90km, 352.2m) 16:08 ~16:17 -중원사 도로(아스팔트길, 16.97km, 210m) 16:28 -엄정 버스정류장(19.97km) 17:00 ~17:05 -버스비 1300 -충주 터미널 정류장 17:30 -도보 -충주역 17:41 ~17:43 -열차비 4500 -청주역 18:42 ~18:47 -버스비 1200 -청주 삼화전기앞 버스정류장 19:04 -청주 집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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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미산352.2m

천불좌상으로 유명한 사찰 백운암을 품고 있는 산

빌미산 백운암은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223번지에 위치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이다. 조선 후기 왕실의 무녀인 진령군 여대감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1886년 진령군의 인법당을 지은 이후 법당과 요사를 함께 사용하다가, 1977년 요사를 두어 법당과 요사를 분리하고 법당을 대웅전으로 편액하였다. 1991년에는 삼성각을 짓고 요사를 수리하여 현재의 가람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99년 주지 진송이 국비를 지원받아 대웅전을 재건하였고, 2002년 축대 보수를 물론 도로공사를 통해 비포장길이었던 사찰의 진입로를 보수 하였다.

백운암에는 철제불상이 본존불로 안치되어 있는데, 단호사 철불좌상 및 대원사 철불좌상과 함께 충주의 뛰어난 철불좌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철불상은 지금까지도 개금불사하여(황금색으로 표면을 칠한 것) 철불상 본래의 모습은 볼수 없으나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춘 훌륭산 불상이다.

또한 철불상은 충주시 대원사와 단호사에 있는 철불상과는 그 형체나 조각수법을 전혀 달리하고 있다. 철불상의 모양을 살펴보면 나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가 있고 상호는 원만하여 위엄과 자비가 넘친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가슴속으로부터 무릅에 이르기까지 평행 원호를 그리면서 흘렀고 양 무릅을 자연스럽게 덮고 있으며, 두손을 자연스럽게 양쪽 무릎에 놓았다. 고려시대 12세기경의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앉은 높이 90cm, 어깨폭 40cm, 가슴폭 70cm이다. 이 암자에는 또한 반자가 있으니 <바라>라고 불려지는 징 같이 생긴 종의 일종이다. 직경 43cm, 두께 폭 10cm인데 장식으로는 5개의 연과를 가진 자방이 있고 그 주변에 12판의 연화문을 돌렸으며 그 밖으로 3줄기의 돌기선을 그었다.

 

백운암 철불상에 얽힌 전설

철불좌상에는 설화가 전해온다. 고종 19(1882)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왕후가 충주지방으로 피신을 왔을 때 한 무당이 곧 환궁하게 될 것을 예언했는데 예언대로 곧 환궁하게 되자 무당을 서울로 불러 진령군여대감의 벼슬을 내렸다. 하루는 이 여대감의 꿈에 백의 철불이 나타나 지금 이 사지에 안치해 달라고 하므로 그 자리에 절을 건립하여 백운암이라 하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이 절이 중창되었는데 법당은 1977년에 완공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였으며 주존불로 안치된 불상이 쇠로 된 철불좌상으로 전면에 금칠을 하고 있다.

백운암 찾아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 IC로 진입하면 된다.

감곡에서 백운암을 찾는 길은 감곡IC에서 왼쪽 38번 국도를 따라 문촌방면으로 가다가 599번 제천방면 국도로 진입한다. 충주의 유명한 탄산온천인 앙성온천단지를 지나 목계대교를 지나면 19번 원주엄정행 국도가 보이며, 율릉교를 거쳐 오른쪽으로 진입하면 백운암이 속한 엄정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엄정면 입구에는 엄정면의 문화재 간판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어 백운암을 손쉽게 찾을 수 있으나, "백운암"보다는 "중원철불좌상"이라는 입간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4 정도 추평저수지 방면으로 들어가면 탑평마을 못미처 백운암이 나타나며, 입간판에서 700m 정도 산길을 올라가면 산 중턱에 조그마한 암자가 나타난다. 승용차로는 암자까지 갈 수 있고 5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나, 대형버스는 인근 마을에 주차해야 한다

여행정보에 옮김

 

충주 경종대왕태실을 찾아서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빌미산(352.2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지능선에 좌청룡 우백호(左靑龍右白虎)를 갖춘 안산(案山)이 낮으막하게 솟아 있다. 이름하여 태봉(胎峰)이다. 엄정면 괴동리 태봉에는 조선왕조 제20대 왕 경종대왕태실(景宗大王胎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6)이 있다. 억정사지대지국사탑비(忠州億政寺址大智國師塔碑, 보물 제16)가 있는 괴동리 비석마을에서 북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이다.

예로부터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했다. 태를 보관하는 방법도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달랐다. 왕실에 아이가 태어나면 관상감(觀象監)에서는 태를 묻을 길지(吉地)와 길일(吉日)을 정하고, 선공감(繕工監)에서는 태의 호송과 태실(胎室)의 조성을 담당했다. 태를 호송하는 안태사(安胎使)는 당상관으로 임명하고, 배태관(陪胎官)으로 하여금 호위하게 했다. 전향관(傳香官)과 주시관(奏時官)은 안태사와 배태관을 보좌하였다. 별도로 임명한 감동관(監董官)은 태실 공사 일체를 감독하고, 공사가 끝나면 상토관(相土官)을 파견하여 태실이 길지인지를 확인하도록 했다.

태실 조성이 마무리되면 토지신에게 태를 안장했음을 고하고 보호를 기원하는 고후토제(告后土祭), 태신을 위로하는 태신안위제(胎神安慰祭), 토지신에게 감사하는 사후토제(謝后土祭)를 올렸다. 또 태봉에는 금표(禁標)를 세워 태실 주변의 벌목이나 채석 등 일체의 훼손 행위를 금지시켰다. 금표의 범위는 왕 300(540m), 대군 200(360m), 왕자와 공주 100(180m)였다. 관할구역의 수령은 봄, 가을로 태실을 순찰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 했으며, 벌목이나 채석 등으로 태실을 훼손하면 국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졌다.

태의 주인공이 왕위에 오르면 태실은 태봉(胎峰)으로 가봉(加封)되는데 이를 태봉(胎封)이라고 한다. 태봉으로 봉해지면 여러 가지 석물을 추가하여 태실을 위엄 있게 장식했다. 가봉 후에는 유공자에게 상을 내리고, 태봉이 들어선 고을의 격을 높여 주었다.

 

 

 

갈미봉 598m 충북 충주시 엄정면 강원 원주시 귀래면

촉새봉(십자봉,985m)에서 남쪽으로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며 뻗어 내린 능선이 옥녀봉에 이르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진다. 옥녀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시루봉(734m), 비지재, 강승갱이재를 지나 오청산(655m)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상의 최고봉이 갈미봉이다. 갈미봉에서 남서쪽으로 능선이 휘어지며 세가닥으로 능선이 갈라져, 목계의 제내편봉(288m), 오량리의 묵봉산(490m)과 청계봉(390m)을 일으키고 그 여맥을 남한강 물속으로 잠긴다. 갈미봉 정상은 약 20여평의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십자봉과 천등산을 이어주는 천등지맥에 빚어진 숨은 등산로, 제천·충주·원주 시루봉·옥녀봉·갈미봉

강원도 원주시 남단을 에워싸고 있는 백운지맥은 남대봉(1,187m·일명 시명봉)~가리파재(치악재)~벼락바위봉(937.6m)을 지나간다.

벼락바위봉에서 계속 서진하는 백운지맥은 백운산(1,085.7m)을 지나 934m봉에서 세 갈래로 나뉜다.

한 가닥은 북으로 뻗어 대()양안치~덕고산~명봉산으로 이어지고, 백운지맥은 934m봉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가 약 500m 거리인 967m(일명 가십자봉)을 거쳐 동막봉(595m)~작은 양안치~미륵산(696m)으로 이어진다.

가십자봉에서 백운지맥과 갈라져 남진하는 능선이 천등지맥이다.

이 지맥이 약 1.5km 남진해서 빚어 놓은 산이 십자봉(982m)이다.

십자봉을 뒤로하는 천등지맥은 약 0.7km 거리인 966m봉에 이르면 남동쪽으로 삼봉산(909.1m)을 분가시키고, 계속 남진하는 천등지맥은 배재에서 숨을 고른 후 옥녀봉(714.4m)을 들어올린 다음 일단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 천등지맥이 불과 0.8km 거리에 이르러 빚어 놓은 산이 시루봉(734m)이다.

시루봉에서 계속 동진(東進)하는 천등지맥은 오청산(656.9m)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구력재~천등산(807m)~인등산(667m)~지등산(585m)~부대산(626m)~고봉(459m)에 이른 후 여맥들을 충주호에다 가라앉힌다.

갈미봉(602.1m)은 옥녀봉에서 천등지맥을 벗어나 서쪽으로 가지 친 능선이다.

갈미봉을 솟구친 능선은 남서쪽 목계의 제내편봉(289m), 오량리의 향로봉(340m), 응봉(333m) 등을 빚어 놓고 여맥들을 남한강에 가라앉힌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와 충주시 엄정면 유봉리·가춘리 경계를 이루는 시루봉에는 전해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아주 먼 옛날 이 산 남쪽 엄정 방면에 아들을 못 낳는 아낙네가 산꼭대기에서 시루떡을 놓고 고사를 지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 따라 시루떡을 놓고 고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고사를 지내는 중 갑자기 세찬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한나절이 지난 뒤 비가 그치자 정신을 차린 아낙네 눈앞에는 시루떡을 놓았던 바위꼭대기만 남고 그 나머지 세상은 온통 물바다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배재 방면에서 배 한 척이 둥둥 떠 고개를 넘어오고 있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얘기다.

이 전설에 의해서 시루봉이라는 산 이름과 배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시루봉과 관련해 왜정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사악한 일본은 우리나라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전국에 산재한 명산마다 혈자리에다 혈맥을 끊는 쇠나 구리로 만든 침봉(鍼棒)을 박았다.

이때 일본인들은 시루봉 정상에도 침봉을 박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산을 오를 때마다 고만고만한 봉우리 여러 개가 이어진 산세 때문에 정확한 혈자리를 찾지 못하고 침봉을 박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루봉의 혈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엄정면에서는 장군과 명인 및 걸출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시루봉 북쪽 백운면 화당리 방면에도 시루와 관련된 설이 전해진다.

화당리는 서~~동으로 배재~십자봉~삼봉산, 남으로 시루봉 능선에 에워싸인 첩첩 산골이다.

옛날 이 화당리 분지에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이 많았다고 한다.

호식총은 호식장(虎食葬) 무덤으로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남긴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준 무덤을 일컫는다.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을 때에는 대부분이 머리만 남겨두었다.

이때 머리를 마을사람들이 찾게 되면 머리만이라도 묻고 돌무덤을 쌓았다.

그리고 무덤 위에 시루를 엎어 놓고 시루 바닥 구멍에다 부엌칼을 꽂아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사람의 혼(귀신)이 나오지 못하게 했다.

아무튼 호식총마다 반드시 장식되었던 시루에서 이 산 이름이 생겼다는 설도 전해진다.

시루봉 남쪽 들목인 괴동리와 추평리 일원에는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억정사 대지국사비(보물 제16),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제1527), 경종 태실(충북유형문화재 제6), 신흥사 석조나한상(충북문화재 제50), 삼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제225) 등 볼거리가 많다.

따라서 시루봉 일원은 가족단위로 역사, 불교문화와 만날 수 있는 장소로도 높은 가치가 있다.

 

배재 - 옛날 물바다가 되었을 때 배가 넘었다는 전설의 고개

신라 경순왕, 조선 단종이 울고 넘었다는 기록도 있어

배재는 앞글에서 지적했듯이 엄정 방면 아낙네가 시루봉에서 고사를 지내다가 억수로 비를 맞고 난 후 귀래 방면 고개가 물에 잠겼는데 이 고개 위로 배가 넘어오고 있었다는 전설에서 배재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신라 경순왕(935)이 옛날 제천방면에서 원주로 넘어가는 길목인 이 고개를 넘으면서 망국(亡國)의 왕으로 천년사직과 백성에게 속죄의 배례(拜禮)를 올렸다 해서 배령(拜嶺)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더 믿음이 간다.

배재고개 길은 조선조 때 단종(端宗)이 한양에서부터 영월 유배길에 넘어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단종은 부왕인 문종이 일찍 죽어 12세에 임금이 되었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강탈당하고 강제로 영월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른다.

557년 전인 1457(세조 3), 그해 무더위 속 음력 6 22일 한양 창덕궁을 출발한 단종은 영월로 향하는 도보 길에 오른다.

광나루에 이르러 배편으로 원주 흥원창까지 간 다음, 이후 걸어서 단강리(현 원주시 부론면 최남단)~귀래~이동부락 (운남리)~ 다리골 마을을 지난 다음, 험준한 배재(해발 460m)를 넘어 시루봉과 삼봉산 사이 산간 마을 화당리로 내려섰다.

화당리 화당천 계류를 따라 내려간 단종 일행은 화당천이 원서천과 합수되는 꽃댕이에서 원서천을 건너간 다음, 북쪽 원서천을 거슬러 덕동리~운학리를 지난 구학산 북단 산허리인 구력재(해발 530m)를 넘는다.

구력재를 넘은 단종은 신림~싸리치(천삼산 북릉)~주천~배일치~소나기재를 넘어 7일 만인 6 28일 영월 청령포에 이르러 17세 나이로 비극적인 유배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단종은 장마철 홍수 때문에 영월 읍내 관풍헌으로 옮겨 머물던 중 그해 세조의 명으로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가지고 온 사약과 공생(貢生) 복득(福得)의 교살에 의해 10 24일 생을 마감했다.

귀래에서 배재로 향하는 길가에는 종종 단종 유배길이라 쓰인 노란색 표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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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5:55

이번산행은 오랫동안 미루던 산행으로 아직은 인적이 드물어 산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오지의 산중 하나다. 백운지맥에서 갈라진 천등지맥 길의 옥녀봉에서 갈라진 능선으로 녹재를 지나 우뚝 솟은 산이 갈미봉이다. 이후 소태재를 지나 국사봉에 이른 후 다시 되돌아와 능선을 따라 남하하여 빌미산 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대략 20km 정도에 이르는 산행코스로 갈미봉에서 국사봉 줄기는 산행을 하신 분들이 더러 있지만 중간에 삼각점봉인 512.7봉에서 빌미산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아직은 답사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오늘 산행은 당초에 계획했던 엄정 빌미산에서 시작하여 국사봉, 갈미봉으로 진행하려던 것을 역으로 귀래에서 시작해서 갈미봉, 국사봉, 빌미산으로 진행하려 한다. 오늘 청주역에서 충주로 가는 06 47분 열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05 55분 나선다.

 

귀래면(해발 약130m) 08:37

집을 출발하여 삼화전기앞 버스정류장에서 10여분을 기다려 청주역 방향으로 가는 첫차를 타고 청주역에 도착하니 06 27분이다. 충주역까지 4500원을 주고 열차표를 끊고 잠시 기다려 정시로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1시간 후 충주역에 내린다. 충주역에서 시외터미널 까지 대략 1.1km 거리인데 오늘 따라 열차에서 내리니 마주 오는 화물열차가 있어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고 3분여 기다린 후 건널목을 건너 광장으로 나가 부리나케 걸어서 터미널로 향하니 아침부터 숨이 차다. 10여분 만에 충주 터미널에 도착하여 08시 원주로 가는 직행버스로 귀래 까지 3700원을 주고 표를 끊고 버스에 승차하니 2분여 남는다. 잠시 후 버스가 출발하여 엄정에 정차하여 학생들이 내리고 이후 버스는 목도, 야동을 거쳐 귀래면에 도착하니 08 37분이다.

 

갈미봉 정상(2.97km, 602m) 09:57~10:00

버스에서 내리기 전 신발 끈도 묵고 잠바도 벗어서 배낭에 넣고 준비를 한 후 곧장 걷기 시작한다. 갈미봉은 귀래면에서 동쪽편으로 높다랗게 보이는 산이다. 귀래에서 운남저수지를 지나 제천 백운면으로 향하는 도로인 531번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5~6분후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19번 도로 교각아래를 지나 잠시 후 531번 도로에서 우측으로 소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편 소로 길을 따라 진행하면 원주 굽이길 표지기가 걸려 있다. 이길을 따라 진행하여 좌, 우측이 갈리는 곳에서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 수로 쪽으로 올라가면 소로 길에서 우측으로 산소로 진입하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산소 까지 진행한 후 산소 좌측으로 올라서 능선에 닿는다. 은행나무골 좌측 능선으로 이능선길이 오래전 갈미봉으로 마을 사람들이 오르던 산길이다. 이 능선을 따라 오르면 길 찾는데는 어려움 없이 능선만 따라 끝까지 가면 갈미봉이다. 첫머리는 서서히 순탄하게 오르지만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부터는 능선이 급경사로 올라서 해발 약500봉에 닿는다. 좌측으로 운남리, 운남저수지가 이쯤에서 내려다보인다. 이후 서서히 내려선 후 다시한번 바위 길을 따라 올라서면 갈미봉 정상이다. 귀래면에서 이곳 까지 1 20분이 소요되었다. 갈미봉으로 진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산행을 계획하며 많은 고심을 했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 산세를 살피니 어렵지 않게 갈미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을 찾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녹재까지 진입한 후 녹재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하면 쉽기를 할 것이다. 갈미봉은 정상석이 있으며 조망은 나무에 가려 좋지는 않다.

 

외촌이고개(좌 엄정 원곡리, 우 귀래 외촌, 5.22km, 355m) 10:43

갈미봉에서 내려서는 곳이 낙엽이 쌓여 미끄럽다. 경사지를 내려서며 좌측으로 녹재 아래 엄정면 유봉리 소림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이후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봉분이 다 없어진 묵묘가 나오고 잠시 후 능선 우측으로 굵직한 잣나무가 꽉 들어찬 조림지가 펼쳐진다. 조림지로 귀래 새말소류지에서 올라온 길이 있을 것 같다. 이제 조금씩 오르내리며 진행을 하면 조금 가파르게 올라서서 능선이 좌측으로 꺽이는 해발 약565봉을 좌측으로 살짝 돌아서 간다. 잠시 후 굵직한 신갈나무가 있는 평평한 지형을 지나며 잣나무 숲길을 따라 간다. 좌측으로 유봉리의 전답이 보이는 곳이다. 잣나무 숲길을 지나고 우측으로 귀래면의 외촌마을위 19번도로 교각위 도로가 지나는 것이 보이고 해발 약415봉의 우꺽임봉을 지나고 잠시 후 해발 약420봉을 지나서 서서히 내려서면 좌측으로 엄정면 원곡리와 우측 귀래면 외촌마을을 잇는 고갯길인 외촌이고개에 닿는다. 현재는 다닌 흔적이 없는 고개다.

 

소태재(7.41km, 273m) 11:51

산길은 여기부터 급경사로 오르게 된다. 앞쪽에 보이는 높다란 봉을 향해 오르면 중간쯤에서 능선 우측으로 돌아올라 굵직한 신갈나무가 부러져 쓰러져 있는 지점을 지나 정면의 깍아지른 바위를 향해 오르면 우측으로 돌아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능선에 닿은 후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삼각점이 있는 해발 약512.7봉이다. 이봉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빌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국사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우측으로 가야 한다. 이제 우측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보이는 벌목지 능선을 바라보며 내려선다. 한동안 내려서면 어느 능선으로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벌목지 능선 중간에서 빠져나가니 이곳도 가시덤불 길로 진행하기가 만만치 않다. 가시덤불길 을 지나 소태재 방향으로 임도길이 나 있는데 임도를 따르자니 길이 너무 멀어서 직등으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내려서서 계곡길에 닿는다. 이제 촉이 터나오는 드릅나무가 가시덤불 길과 계곡 길에 다수 보인다. 닷새정도만 늦게 왔으면 드릅 꽤나 따는 것인데 너무 이르게 왔다. 이 능선을 따라 내려오며보니 능선 길은 우측 소나무가 즐비한 능선으로 내려섰어야 했다. 삼각점봉에서 중간으로 빠지지 말고 곧장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한다. 도중에 내려오며 딸가말까 하던 드릅을 따기 위해선 다시 이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 이 길을 따라 다시 올라갈 수는 없겠다. 여기서 다시 산행 길을 수정해서 국사봉에 이른 후 구룡마을로 내려와 그곳에서 산 능선을 치고 올라서 중간지점 삼각점봉으로 오르기로 맘먹는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한옥마을이 있고 잠시후 한옥마을 앞 도로에 닿는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충주에서 원주로 가는 구 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소태재에 닿는다. 해발 273m가 적혀 있는 표지판이 있다.

 

국사봉(8.47km, 503m) 12:27 ~12:48

소태재에서 좌측편 송신탑 있는 곳으로 들어가 송신탑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산길이 열린다. 능선을 따라 서서 오르는 길에는 여기도 낙엽이 많이 쌓여 미끄럽다. 중간지점을 지나며 부터는 산길이 가파라져 오늘 따라 숨도 더 차고 힘이 부친다. 가시밭길에서 너무 힘을 뺀 것 같다. 이렇게 오르면 소태재에서 25분 쯤 올라서서 능선 삼거리봉에 닿는다. 여기서 좌측으로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여기도 군데군데 드릅나무가 보이지만 드릅을 따라 일부러 올라올 정도는 아니다. 정상에 닿기 전 능선 우측으로 굵직한 드릅나무도 여러그루 보이고 잠시 마지막으로 국사봉 정상에 올아서니 삼각점이 있고, 흰 표지판은 글씨가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가지고 다니는 볼펜으로 대충 국사봉 503m’를 써 넣었다. 국사봉에서는 우측 미륵산 방향으로 주포리, 주치리 쪽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일뿐 조망은 좋지 않다. 잠시 이곳에서 휴식겸 점심식사를 하고 간다.

 

구룡교차로 굴다리(10.56km, 170m) 13:33

국사봉에서 점심식사가 끝나고 묵봉산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한동안 진행하면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에 닿는다. 좌측으로 구룡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앞쪽으로 채석장과 빌미산과 국사봉, 갈미봉이 갈리는 삼각점봉이 가까이 보이며 빌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마주 하는 곳이다. 우측으로는 주치리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편으로 저번에 다녀온 청계산이 마주하고, 좌측 편으로 아주 멀리 높다랗게 보이는 산이 감곡에 있는 오갑산이다. 바위에서 좀 더 진행하여 앞쪽으로 묵봉산 사이에 있는 구룡고개로 하산하기 전봉인 해발 약430봉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구룡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 능선으로는 오래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다녔던 길인데 현재는 길이 흔적도 없다. 소나무 가지를 적히고 한동안 내려서면 산길 흔적이 나오며 소나무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좌측으로 구룡저수지가 있고, 우측으로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건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서려다가 개가 마주 짖어 대서 그냥 능선 길을 따라 내려서니 구룡저수지 아래 소로 길에서 건물로 들어가는 철문에 닿는다. 다행이 철문을 잠겨 있지 않아서 살며시 열고 밖으로 나가니 물댄동산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후 저수지 둑아래 길을 따라 나가서 인삼밭 위로 올라서면 소태재로 오르는 구 길에 닿는다. 이길을 따라 우측으로 좀 더 가면 구룡교차로 굴다리에 닿는다.

 

삼각점봉(좌측으로, 13.42km, 475m) 15:16

구룡교차로 굴다리를 지나면 뒤편으로 세멘트 소로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작은 농막이 있는 곳을 지나 좌측으로 임도길이 나 있다. 이후 임도를 따라 오르면 끝에서 좌측 산으로 오른 길이 있어 오르니 그물망이 쳐져 있으며 혹여 길이 이어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산위에서 주인장이 일을 하다가 무엇을 훔치러 온 것인 줄 알고 소리를 친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데 무엇을 심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귀한 것인가 보다. 다시 그물망을 넘어서 우측으로 이동하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위쪽에서 길이 끊긴다. 다시 우측으로 이동하면 다시 오래전 다니던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또 임도길이 끊기고 한다. 이렇게 하여 능선이 보이는 곳 까지 올라니 가시덤불 골짜기다. 골짜기에는 드릅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으나 아직은 때가 이르다. 뾰족이 순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직 드릅을 딸 때가 아닌 것 같다. 가시밭길 잔나무를 헤치로 빠져나가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된다. 휴식 시간을 빼고 대략 1시간 30분은 걸려서 능선에 닿는다. 능선으로는 길이 그런대로 괜찮다. 우측으로 6분여 이동하니 이곳에서는 가장 높다란 해발 약480봉에 닿고 다시 8분을 더 진행하니 삼각점이 나온다.

 

빌미산(삼각점, 산불감시초소, 15.90km, 352.2m) 16:08 ~16:17

삼각점봉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서서히 내려서기 시작한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능선 길을 따라 내려서면 대략 15분 후 쯤에서 능선이 양쪽으로 갈리는 지점에 닿는다. 여기서도 좌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우측길이 더 좋지만 이 길은 야동 동막리 방향으로 향한다.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서다 한번 더 능선이 양쪽으로 갈리는 곳에서도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이윽고 민가가 보인다. 지금 막 도자기 굽는 화로를 설치하고 있는 중이다. 이 집앞을 지나서 나오면 좌측 엄정 옥성과 우측 논강을 잇는 만영고개에 닿는다. 만영고개를 넘어 앞쪽의 사과나무 과수원집을 지나 과수원 꼭대기 까지 오르면 끝에서 산길이 보인다. 이후 산길은 좋아지며 서서히 올라서서 송전탑이 있는 곳에 닿는다. 송전탑 주변으로 정지작업을 하고 망을 덮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포크레인두 2개다 올라와 공사 중이다. 송전탑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산불감시탑이 설치된 곳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앞쪽으로 삼각점이 있다. 오늘 마지막 봉인 빌미산 정상이다. 산불 감시초소에 올라서 주변 조망을 살피니 사방이 두루 보이는 것이 좋다. 산행을 처음 시작한 갈미봉이 보이고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가면 빌미산과 국사봉이 갈리는 삼각점이 보이며 그 안쪽으로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천등지맥 길의 옥녀봉에서 천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남쪽으로 엄정면소재지앞 물줄기까지 조망이 된다.

 

엄정 버스정류장(19.97km) 17:00 ~17:05

빌미산에서 능선이 양쪽으로 갈린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경종대왕 태실과 대지국사탑비를 구경하고 가려 했는데 이제는 빨리 엄정으로 가려한다. 빌미산 까지는 임도길이 능선 가운데 계곡을 따라 잘 나 있다. 포크레인도 이 길을 따라 올라왔다.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길이 좋아서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10분을 좀 더 내려서니 좌측 편에 보이는 중원사로 향하는 아스팔트길에 닿는다. 이제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오면 마을 지나고 19번도로 교각을 지나 향림마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길을 따라가면 언덕을 넘고 세멘트길을 따라 내려서면 엄정면소재지로 엄정초등학교, 교회가 보이며 좌측으로 도서관, 우측으로 면사무소가 있는 도로에 닿은 후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사거리 좌측으로 용산교 옆쪽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정확히 17시 도착을 한다.

 

잠시후 도착한 충주행 360번 버스를 타고 충주공용버스터미널 정류장에 도착하여 열심히 걸어서 충주역에 도착하니 열차시간이 2분 남는다. 얼마나 빨리 왔는지 이마에서는 땀이 연신 흐른다. 열차표를 끊고 승차 홈으로 나가니 잠시 후 열차가 들어온다.

오늘 산행을 계획했던 대로 갈미봉, 국사봉, 빌미산 삼거리봉까지 돌아와 능선을 따라 내려왔으면 1시간 30분가량은 더 걸렸을 것이다.

구룡교차로로 내려와 능선을 따라 직등으로 능선으로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산행도 오르고 내리는 산길이 험하여 산행하기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나니 기분은 좋다.

 

산행시간 : 8시간 23분 소요

산행거리 : 19.97km

 

청주 ~청주역 버스비 : 1200

청주역 ~충주역 열차비 : 4500

충주 ~귀래 버스비 : 3700

엄정 ~충주 버스비 : 1300

충주역 ~청주역 열차비 : 4500

청주역 ~청주 버스비 :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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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엄정 빌미산~갈미봉~구룡산

청주역 ~충주역 :06:47 ~07:42, 07:37~08:32 4500

충주터미널 ~귀래면 : 8:00, 8:35, 8:50, 9:20, 10:10 30분 소요 3700

귀래면 ~운남2리 회관 : 2km, 귀래면 ~녹재 : 5.8km

 

엄정 ~충추터미널 : 360.361.344.343.354 15:30~15:54, 16:33~16:57, 17:05~17:29, 18:08~18:32

충주역 ~청주역 : 15:36~16:32, 17:43~18:39, 18:14~19:10, 19:19~20:1518:45~20:29(6700), 21:42

 

예상 산행코스

엄정면 ~억정사 대지국사비 ~경종대왕태실 -백운암 -빌미산 -512.7 -외촌이고개-568.3 -국사봉 - 되돌아서

568.3 - 갈미봉-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