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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1071 울진 십이령길1구간 금강소나무길 두천1리~소광2리 2018.06.21. 목요일 맑음

울진 십이령길1구간 금강소나무길 두천1~소광2

2018.06.21. 목요일 맑음

참석인원 : 청주 천봉산악회 23

 

청주체육관 05:00 -죽천교 05:20 -청주톨게이트 05:30 -청송휴게소 07:02~07:10 -영덕톨게이트 07:32 -울진 08:15 -두천1리 십이령길 입구(숲해설사 장수봉님, 해발 약110m) 08:39~08:50 -성황당 08:54~08:59 -고개(0.677km, 210m) 09:10 -산소(1.29km, 240m) 09:24 -바릿재(1.52km, 310m) 09:32 -임도길(우측으로, 1.74km, 290m)09:35 -잠시후 발현동 마을 민가 -성황당고개(숲해설사 김동헌님, 차단기, 2.10km, 300m) 09:42 ~09:47 -잠시 내려서서 계곡길 따라 -쉼터(Y계곡, 우측으로, 2.98km, 220m) 10:00~10:10 -임도길 따라서(산양서식지 300~400) -세멘트포장길 -비포장 -계곡지나며 세멘트임도길 오르고 -내려서서 조금 지나면 비포장 -임도에서 좌측 계곡 징검다리 건너고(4.72km, 270m) 10:35 -계곡좌측 숲길 따라 -3분후 징검다리 건너 계곡 우측길 -1분후 징검다리 건너 계곡 좌측길 -징검다리 건너 계곡 우측길 10:41 -1분후 징검다리 건너 계곡 좌측길 -계곡 좌측 쉼터(굵직한 금강송, 5.22km, 290m) 10:43~10:55 -징검다리 건너 우측길(5.96km, 330m) 11:08 -1분후 징검다리 건너 계곡 좌측길 -황장봉산동계표석 안내문(6.28km, 360m) 11:14~11:18 -좌 지곡 건너고 11:20 -찬물내기 쉼터 점심식사장(숲해설사 김종연님, 6.53km, 380m) 11:23~12:00(중식) -교량옆 계곡길 따라 -옹달샘(7.21km, 470m) 12:16 -세멘트임도 건너고(7.28km, 500m) 12:19 -할아버지, 할머니소나무(7.44km, 550m) 12:25 -안전로프지대 -샛재(성황당, 좌 안일왕산, 아구산, 우 응봉산, 7.65km, 590m) 12:32 ~12:38 -좌 대왕송 삼거리 쉼터(8.43km, 520m) 13:00~13:03 -계곡 건너고(8.77km) 13:10 -계곡 건너고 13:16 -계곡건너고 -계곡 건너고 13:24 -계곡건너고( ) 13:26 -대광천초소(개울건너 미인송 가는 도로, 9.82km, 450m) 13:28 ~13:35 -마지막 숲해설사 구민정님 - 소광천 계곡 좌측길 따라 -소광천 계곡 건너 미인송 가는 도로(너삼밭공터, 10.39km, 435m) 13:46 -도로 따라 좌측으로 -도로에서 우측 산길로(10.71km, 430m) 13:50 -너삼밭재(11.06km, 490m) 13:59 -민가터(디딜방아, 11.44km, 450m) 14:08 -저진터 14:23 -저진터재(우 백병산, 12.35km, 590m) 14:31 -세멘트길(13.0km, 510m) 14:46 -마을 삼거리(좌측으로, 13.32km, 470m) 14:50 -소광2리 주차장(13.51km, 450m) 14:53 ~15:38 -대촌2교 삼거리 15:44 -불영사길 삼거리(좌측으로) 15:52 -잠시후 높다란 고가도로 위로 올라가 봉화 방향으로(편도 1차선) -현동 16:11 -영주(교량) 16:48 -풍기만남의 광장(정면에 풍기톨게이트) 16:57~17:04 -풍기톨게이트 17:05 -남제천분기점 17:32 -금왕휴게소 18:06~18:13 -음성분기점 18:20 -서청주톨게이트 18:45 -죽천교 19:01 -청주 집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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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소나무길

1구간(13.5 km) 3구간(16.3 km))은 철저하게 예약탐방가이드제로 운영 됩니다.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시작되는 금강소나무숲길의 본래 이름은 십이령길이다. 1980년대 초 불영사계곡을 지나는 36번 국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낙동정맥을 사이에 둔 울진과 봉화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십이령길이 산림청에 의해 트레킹 코스로 복원되면서 금강소나무숲길이란 멋스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옛날에는 보부상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보부상이 퇴조한 뒤에는 선질꾼(바지게꾼)들이 걸어서 넘었던 십이령길은 울진 북면에서 시작해 쇠치재~세고개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저진터재~새넓재~큰넓재~고채비재~맷재~배나들이재~노릇재를 지나 봉화 소천까지 이어지는 길로, 모두 12개의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선질꾼은 서서 지게를 지고 쉴 때도 서서 쉬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바지게는 산 속에서 나무에 걸리지 않고 쉽게 이동하기 위해 지게의 뿔을 제거한 지게를 일컫는다. 선질꾼들은 울진에서 생산되는 소금, 미역, 각종 어물 등을 바지게에 묶어서 지고 34일 정도를 걸어서 봉화에 도착한 다음 가져간 물건을 대마, 담배, 콩 등으로 바꾸어 돌아왔다. 보부상들과 선질꾼들의 고단했던 삶의 애환이 깃든 십이령길이 이제는 자연을 벗삼아 걷는 트레킹 코스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 것이다.

2010년 여름에 처음 열린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은 울진군 북면 두천 1리에서 시작해 하천경관길, 내성행상불망비, 바릿재, 찬물내기, 샛재, 성황당, 너삼밭재, 저진터재, 너불한재를 지나 울진군 서면 소광2리 금강송펜션에 이르는 13.5km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산비탈을 따라 좁게 이어지면서 고개를 오르고 내리는 걸음이 반복되는 산길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크게 힘들지는 않다. 평균적인 경사도는 5.6, 경사가 가장 심한 곳은 30도 정도로 걷는데 대략 7시간 정도 소요된다.

 

숲에서 갖는 힐링 타임,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

아침9시 출발장소인 북면 두천리 도착하면 숲길에 대한 내용과 숲길에서의 주의점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받게 된다. 이후 몸을 푸는 간단한 체조가 있은 후, 숲해설가의 인솔 하에 숲길로 들어선다.

하천을 따라 난 작은 오솔길을 지나 돌다리를 건너면 작은 정자각과 마주하게 된다. 정자각 안에는 철로 만들어진 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 문화재자료 제310) 2기가 모셔져 있다. 내성행상불망비는 1890년 이 길을 왕래하면서 물물교환을 통해 상행위를 하던 행상들이 세운 불망비로, 당시 행상들이 최고 지도자격인 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비로 앞면에 각각 내성행상접장정한조불망비 내성행상반수권재만불망비란 한자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철을 강제로 빼앗아 갈 때, 뺏기지 않기 위해 땅에 묻었다가 해방 후 비각을 만들어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내성행상불망비 옆에 선 2개의 장승인 십이령대장군과 보부상여장군에 대한 설명까지 들은 후 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오솔길 한 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조그마한 효자각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 후 처음 만나는 고개는 바릿재다. 바릿재란 이름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인솔하는 숲해설가는 이 길을 걸으며 옛 보부상들이 불렀다는 노래를 들려준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가는 고개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가는 고개

반 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 구나

서울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크고 작은 나무와 풀들로 무성한 숲길을 걸으며 무거운 등짐을 지고 이 길을 셀 수도 없이 걸었을 보부상들과 선질꾼들을 잠깐 생각했다. 세월은 고단함과 땀으로 얼룩진 행상의 길을 몸의 건강을 위해 걷는 여가의 길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지금 여가의 길로 이 흙을 밟고 있는 행복한 세대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누군가에게 꼭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몰려왔다.

이마에 맺히는 땀과 숲길에 적응이 될 즈음 오솔길이 끝나면서 승용차가 교차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걷고 있는데, 숲해설가가 주변의 산들을 가리키며 얘기한다. 저쪽은 멸종위기종인 산양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고, 이쪽에서는 하얀 멧돼지가 출몰했었다고. 이 얘기를 들으며 불현듯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은 아니 모든 숲은 동물이 주인이고 사람은 잠시 지나는 손님에 불과할 뿐이다. 주인이 자기의 영역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사람이 잠깐 나타나 그들을 본 것이란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임도 변에 있는 찬물내기 쉼터는 점심식사를 하며 쉬는 곳이다. 도시락을 준비해온 사람들도 간혹 있으나, 대부분은 마을에서 실어오는 음식으로 식사를 한다. 울진숲길에서 여행하는 곳의 원주민들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공정여행을 지향한다면서, 마을에서 준비하는 식사를 이용하도록 적극 권장하기 때문이다. 1인당 6천원인데, 가격 대비 음식의 질은 아주 훌륭한 편이다.

식사 후 산길로 다시 접어들면서 만나는 고개는 샛재(조령). 샛재에서는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에서 가장 멋스런 금강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샛재 너머에는 1819년 보부상과 지역주민이 만들어 제를 지냈다는 샛재성황당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주막터가 있다. 옛날엔 봉놋방이 있는 큰 주막이었으나 1968년 울진삼척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화전민마을과 함께 철거되어 폐허가 되었다. 바위에 뚫고 세운 석비와 마귀할멈에 대한 전설을 간직한 말무덤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해오는 구조물이 가장 많은 곳이 샛재다.

샛재를 지나면 맑은 물이 흐르는 소광천과 마주한다. 소광천에 이를 즈음이면 다리에 힘도 빠지고, 발바닥도 아프기 시작한다. 먼 길을 걸은 탓에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지만 숲의 기운을 듬뿍 담은 마음은 여전히 가볍다.

소광천을 따라난 임도를 잠시 걷다가 다시 산길로 올라 너삼밭재, 저진터재와 너불한재를 넘으면 종점인 서면 소광2리 금강송펜션에 도착한다. 시계를 보니 오후4, 13.5km의 긴 여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금강소나무숲길 탐방 방법

금강소나무숲길은 현재 위에서 소개한 1구간 외에 16.3km 길이의 3구간 등 모두 2개의 구간이 운영되고 있다. 사전에 ()울진숲길(www.uljintrail.or.kr, 054-781-7118)을 통해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출입이 가능하며 1구간은 하루 80, 3구간은 100명까지 신청을 받는다.

1구간의 출발장소는 울진군 북면 두천1 232번지로, 신청한 날 아침 9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개인적인 출발은 허용하지 않으며, 그날 신청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숲해설가의 인솔 하에 단체로 이동한다. 점심식사를 예약하면 마을에서 만든 음식을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장소로 배달해 준다. 금액은 1인분 6,000원으로 식사장소에서 현금(카드 불가)으로 결제하면 된다. 민박은 1인당 1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소광리 금강송숲을 둘러볼 수 있는 3구간의 출발장소는 울진군 서면 소광2 657번지 금강송펜션으로 역시 신청한 날 아침 9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3구간도 개인적인 출발은 허용하지 않으며, 이용방법은 1구간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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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체육관 05:00

이번 주는 청주 천봉산악회에서 울진 불영계곡 부근의 십이령길을 간다고 하여 신청하였다. 울진은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으로 큰 맘 먹지 않으며 가기 어려운 곳이라 전부터 가보려 맘먹고 있던 차에 잘되었다 싶어 호미지맥 가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 적막님과 함께 신청하여 적막님은 이른 새벽 천안에서 승용차로 청주에 도착하여 집에서 죽천교로 나가 체육관에서 05시 출발하는 버스에 5 20분경 승차를 한다.

 

두천1리 십이령길 입구(숲해설사 장수봉님, 해발 약110m) 08:39~08:50

버스에 승차하여 도중에 한번정차를 한 후 청주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고속로를 따라 진행하여 남이분기점에서 상주로 가는 고속도로에 접어들며 대부분 잠을 청하여 달리니 청주를 떠난지 대략 2시간 후 청송휴게소에 닿는다. 10여분 휴식 후 다시 달리며 아침식사로 김밥 한 줄씩을 나누어 주어 김밥을 먹으며 가면 잠시 후 길 다란 터널을 지난다. 2개의 터널로 이어지는 황장재아래 터널을 지나면 우측으로 주왕산의 주능선인 낙동정맥 대둔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후 몇 분을 더 가면 영덕톨게이틑 빠져나가 북쪽을 향해 달린다. 간간히 동해선 철길공사 현장이 보이고 영해를 지나고 바닷가 길을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 후포가 보이고 평해를 지나 계속 오르면 성류굴 이정표가 보이고 잠시 후 영양 수비면에서 먼 거리를 흘러흘러 내려온 왕피천과 불영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만나는 교량을 지나서 울진을 통과하여 남대천을 따라 가는 길을 가면 몇 분후 두천1리 십이령길이 시작되는 보부상 주막촌에 닿는다. 몇 채의 초가집을 마련하였고, 등짐을 지고 가는 보부상과 등에 얹혀진 짐을 싣고 나르는 소 모형이 있으며 장승 2개가 서 있는 곳이다.

 

성황당고개(숲해설사 김동헌님, 차단기, 2.10km, 300m) 09:42 ~09:47

울진 십이령 길은 경북 울진에서도 오지 중에 오지인 산골에 있는 까닭에 실제로 울진 주민 가운데도 십리령길 가까이에 살거나 향토사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드물정도라고 한다.

십이령길은 두천2리에서 봉화에 이르기까지 열두 개의 고갯마루를 넘는 길을 말한다. 150리에 이르는 산길에 어찌 고개가 열둘 뿐 일까만 하도 많다보니 열두고개라고 이름 지었 다. 따라서 십이령길에는 십리령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가 없다. 십이령은 특정 고갯마루가 아니라 열두 고개의 통칭인 것이다.

십이령 길은 경북 울진의 흥부장(현 구부리)에서 경북 봉화장을 오가던 행상(行商), 등짐장수들 즉 보부상들이 낸 길이다. 귀중품이나 장신구, 잡화 따위를 보따리에 꾸려 다니던 봇짐장수(補商)와 소금이나 곡물, 해산물 따위를 지고 다니던 등짐장수(負商)를 싸잡아 이르는 보부상이란 말은 이 지역 사람들의 호칭이 아니다. 울진 사람들에게 이들은 바지게꾼으로 불렸으며 선질꾼이라고도 일컬어졌다.

여기서 바지게라 함은 지게 위에 얹는 바소거리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동해안 일대의 등짐장수들이 쓰던 다리 없는 지게를 가리키는 것이다. 무거운 해산물을 지고 좁은 산길을 날렵하게 다니기 위해 지게 다리를 없애고 쉴 때조차도 서서 쉬었다 하여 선질꾼이아로 했다. 그 바지게꾼이 흥부장에서 소금이나 해산물을 지고 봉화장으로 향하던 하루거리에 있는 마을이 바로 두천2(바깥말래). 당연히 주막이 열렸을 것이고 바지게꾼들과 말래 사람들의 삶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여기서 하루 자고 이삼일씩 걸려서 춘양, 봉화장으로 갔다. 자연스레 이곳 사람들이 등짐을 져 나르는 일을 하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이후, 6.25전쟁이 끝나고 무장공비 때문에 장사꾼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외따로 사는 독가촌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살도록 하여 인적이 끊겼다. 무장공비가 아니어도 그 무렵부터는 바지게꾼의 구실은 없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잊혀졌던 길을 산림청에서 새로이 개방하니, 도시민들의 옛 고향에 대한 정취와 오지탐방 욕구를 만족시켜줄 좋은 트래킹코스로 각광 받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이곳은 금강송 군락지가 있어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사전탐방허가를 얻어야만 입장 할 수 있다.

주막촌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설사님의 간단한 인사와 주의사항을 듣고 몸풀기 운동을 한 후 출발을 한다.

하천을 따라 난 작은 오솔길을 지나 돌다리를 건너면 작은 정자각과 마주하게 된다. 정자각 안에는 철로 만들어진 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 문화재자료 제310) 2기가 모셔져 있다. 내성행상불망비는 1890년 이 길을 왕래하면서 물물교환을 통해 상행위를 하던 행상들이 세운 불망비로, 당시 행상들이 최고 지도자격인 접장 정한조와 반수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비로 앞면에 각각 내성행상접장정한조불망비 내성행상반수권재만불망비란 한자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철을 강제로 빼앗아 갈 때, 뺏기지 않기 위해 땅에 묻었다가 해방 후 비각을 만들어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내성행상불망비 옆에 선 2개의 장승인 십이령대장군과 보부상여장군에 대한 설명까지 들은 후 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오솔길 한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조그마한 효자각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 후 나지막한 고개를 지나고 숲해설사의 할아버지 묘소라고 하는 데서 옛날 술 마시고 잠이 들어 잡아먹으려는 호랑이 거기를 차고 다니던 장도로 잘라서 해치우고 동네사람 넷을 보내지고 오게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애기를 듣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처음 만나는 고개가 바릿재다. 바릿재란 이름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바릿재에서 편안한길을 따라 3분여 내려서면 두천1리 마을에서 올라온 임도와 만난다. 세멘트포장로 된 널찍한 임도길이다. 조금 가면 우측으로 민가가 한 채 있는데 이곳이 발현동마을이라고 한다. 이후 임도를 따라 천천히 오르면 좌측으로 오래된 성황당이 보이며 차단기가 설치된 성황당고개에 닿는다. 이곳에서 첫 번째 숲해설사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두 번째 숲해설사인 나이 지긋한 김동헌님과 함께 한다.

 

찬물내기 쉼터 점심식사장(숲해설사 김종연님, 6.53km, 380m) 11:23~12:00(중식)

성황고개 차단기 앞에서 교체한 숲해설사님은 이 일대를 장평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부터는 산림청이 지정한 산림자원보호구역으로 입산금지간판과 바리케이트가 있다. 이곳을 지나 구불구불한 평지임도 길을 따라 내려간다. 임도길에서 다시 좌측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작은 계류지만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른다. 잠시 내려서면 산양서식지라는 그림표지 안내판이 있고 길 아래 양쪽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에 닿는다. 이 물은 바위틈 계곡을 흘러서 두천리 마을을 지나 남대천 물이 된다. 우리는 이곳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잠시 후 출발하면 산양서식지 조용히 하라는 표시와 두천리-3.1km-산양서식지 -10.4km -소광2리 거리가 적혀 있는 안내판을 지나 널찍한 임도를 따라 진행한다. 여기 산속에는 300~400두 정도의 산양이 산다고 하며 만약에 산양을 보는 날은 큰 행운을 얻은 날이라 숲해설사님은 말한다. 세멘트포장 길을 따라서 진행하고다시 비포장길로 이어지다가 계곡을 지나며 세멘트임도길을 따라 오르면 언덕에서 잠시 내려서다가 다시 비포장임도길이다. Y계곡 쉼터에서 25분을 임도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이제는 좌측으로 내려서서 징검다리를 건너 계곡 좌측 편으로 난 시원한 숲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3분후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계곡 우측숲길, 1분후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또다시 우측으로 다시 1분 우측 길을 따라 2분여 오르면 굵직한 금강송이 여러 그루 있는 쉼터에 닿는다.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 간다. 여기서 숲해설사님은 오래전 경복궁 보수공사 때인지 숭례문 화재때인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금강송 한그루당 7000만원씩 나갔다고 하며, 숭례문 화재로 인해 복원할 때 쓴 금강송은 여기서는 굵기가 나오지 않아 삼척 미로면 준경묘 앞에 있는 소나무로 한그루당 1억씩 나갔다고 하며 그때 이나무를 뒤로 빼돌린 대목장이 얼마나 탐이 낫는지를 말한다. 이렇토록 금강송은 목재로 사용할 때 1000년을 간다고 한다.

쉼터에서 휴식 후 출발을 하면 다시한번 징검다리를 건너 우측길을 걷고 1분후 징검다리를 건너 좌측길을 걸어서 가면 5분후 황장봉산 동계표석 안내문이 있는 지점에 닿는다. 계곡 건너 임도옆 바위면에 세겨진 글씨로 황장봉산의 동쪽 경계는 조성으로부터 서쪽으로 이십리란 것으로 조성은 안일왕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황장봉산 제도는 양질의 소나무인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산림보호 정책으로 우리나라의 최고 오지인 소광리 일대가 조선숙종때부터 황장봉계로 관리되어 온 것은 울진 금강소나무의 우수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다른지역은 주로 황장금표가 발견되었지만, 울진 소광리는 황장봉표가 발견된 점은 조선왕조의 특별한 관리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지역에 이렇게 두 개의 황장봉표가 발견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이다. 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황장봉산 동계표석안내문에서 출발하면 잠시 후 좌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하나 건너고 잠시 올라서서 임도길 쉼터에 닿는다. 이곳이 찬물내기 쉼터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정자와 탁자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동네주민이 차로 공수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일인당 6000원으로 괜찮은 편이다.

 

샛재(성황당, 좌 안일왕산, 아구산, 우 응봉산, 7.65km, 590m) 12:32 ~12:38

찬물내기 쉼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우측편 교량이 있는 곳부터 오르기 시작한다. 이곳부터는 세 번째 숲해설사님으로 김종연님이 맞는다. 계곡을 따라 잠시 올라서서 우측으로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15분 정도를 오르면 시원한 물이 맛있는 찬물내기 샘터를 지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세멘트길 임도가 나온다. 이 임도는 낙동정맥길에서 응봉산 쪽으로 이어지는 아구지맥 능선으로 오르는 임도 길로 샛재 길은 임도를 건너 숲속으로 오른다. 7~8분을 오르면 오랜 수령을 지닌 굵직한 400년생 금강송 2그루가 보인다. 할아버지소나무와 할머니 소나무라고 한다. 여기서 안전로프가 쳐져 있는 지점을 지나고 5분여를 더 오르면 샛재라고 하는 고개로 좌측은 안일왕산, 아구산으로 가는 능선이고, 우측은 낙동정매 길에서 이어져 온 응봉산 방향이다. 샛재에는 성황당이 있다.

이곳 성황사(성황당)에는 보부상과 이곳 일대 마을주민들이 신변의 안전과 원활한 행상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성황당이고 이내부에 당시 기증한 1천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황사 맞은 편에 우뚝 솟아 있는 여러 그루의 굵은 금강송은 이곳에서 부터 아래까지 총19ha에 걸쳐 4137그루에 걸쳐 번호가 매겨져 문화재용 목재 생산림으로 사용될 목적으로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대광천초소(개울건너 미인송 가는 도로, 9.82km, 450m) 13:28 ~13:35

샛재에서 내려서는 길은 쭉쭉 뻗은 낙엽송(일본잎깔나무)과 금강송등 우거진 숲길로 시원하고 경치도 좋다. 성황사를 출발 후 평탄한길을 따라 10여분이 지나 보부상이 묵었던 주막촌 자취가 있던 곳에 도착한다. 주막이 서게 된 배경과 1968년 무장공비 사건으로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모두 아랫마을 소광리로 내려가서 지금은 볼 수 있는 것처럼 허름한 무쇠솥이나 구들장의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또 다른 현령불망비, ‘이공전영세불망비는 무관이 었던 당시 현령 이광전이 1842(조선 현종 4)의 역사기록을 이야기 해준다. 성황당과 현령불망비가 서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 이 일대 십이령고개길이 마치 문경새재길과 같이 이 곳 울진에서 봉화, 춘양고개마루를 거쳐 영주 죽령으로 넘어가는 중심 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대왕송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지점이다. 이후 내려서면 7분후 계곡을 건너고 널찍한 오솔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또다시 계곡을 건넌다. 이후 3번에 걸쳐서 계곡을 건너서 가면 대광천 초소에 닿는다. 앞쪽으로 미인송 부근에서 흐르는 대광천이 있고 도로가 있다.

 

소광2리 주차장(13.51km, 450m) 14:53 ~15:38

대광천 안내초소부터 마지막 숲해설사가 담당을 한다. 여성분으로 구민정님이시다.

여기부터 내려서는 구간은 3구간과 겹쳐 내려가는 길로 안내초소에서 대광천 좌측편 오솔길을 따라 내려서면 10여분 후 대광천 징검다리를 건너 미인송까지 오르는 도로에 닿는다. 이곳이 너삼밭공터라고 한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잠시 내려오다가 우측편 오솔길을 따라 들어간다. 가면서 숲해설사님은 꽃에 대한 애기와 참다래와 개다래의 구별법을 알려주며 설명을 한다. 개다래는 꽃이 잎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벌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잎이 꽃이 핀 것처럼 하얗다고 한다. 10여분 후 너삼밭재라고 하는 작은 고개를 넘고 다시 10여분을 더 가면 옛 민가터가 나온다. 디딜방아 흔적이 남아 있고 민가터가 남아 있는 곳이다. 민가터를 지나 15분 정도를 가면 시원바람이 느껴지는 습지대가 나온다. 저진터라고 한다. 이곳은 항시 땅이 저져 있어 지은 이름이라 한다. 저진터에서 속세를 떠난다는 속세풀이 있는 길을 따라 이제 가파르게 오르면 8분 정도를 올라서 오늘의 마지막 고개인 저진터재에 닿는다.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가면 낙동정맥길 백병산에 닿는 고개다. 여기서 소광2리 주차장 까지는 0.7km가 적혀 있다. 내려오는 길 첫머리는 마사토 길이라 미끄럽지만 잠시 내려서면 길은 점점 넓어지며 좋아진다. 길옆으로 철조망도 쳐져 있고, 산소도 보이기 시작하며 세멘트임도길이 나오며 4분 정도를 더 가면 마을안길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마을길을 따라 잠시 가면 광회리로 나가는 도로변 소광2리 팬션단지 주차장에 닿는다.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화장실등이 있으나 더운 날씨에 세면이나 발을 씻을 마땅한 곳이 없어서 흠이었다. 길옆 작은 개울이 있으나 공사로 인하여 흙탕물이 내려와서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곳에서 2구간 길은 도로를 따라 약초가공공장이라 쓴 건물이 보이는 곳을 따라 가면 한나무재를 넘어 봉화로 가게 된다.

오늘도 이렇게 하여 무사히 숲길 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

함께한 천봉산악회원님들께 감사함을 표한다.

 

산행시간 : 06:03

산행거리 : 13.5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