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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1069 신낙남정맥 용지봉~불모산~굴암산~보배산~봉화산~노적봉 2018.06.16.토요일 맑음

신낙남정맥 용지봉~불모산~굴암산~보배산~봉화산~노적봉

용지봉745m, 불모산801m, 화산799m, 굴암산663.1m, 보배산479.2m, 봉화산329.1m, 노적봉243.8m

 

2018.06.16.토요일 맑음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청주 집 00:10 -청주 서청주부근 차고지 00:20 -성주휴게소 02:47~03:24 -영산휴게소 04:20~04:40 -칠원요금소 04:50 -창원 성주동(창원경상대학교 병원앞) 도로 06:05 ~06:10 -유니온빌리지 정문앞 06:27 -산책로 테크길 입구(1.02km, 해발 약130m) 06:30 -마애불 06:33~06:35 -농바위(2.04km, 175m) 06:49 -평바위 이정표(2.29km, 230m) 06:53 -잠시후 샘 -상점령,용지봉 삼거리 이정표(좌측으로, 3.42km, 290m) 07:08 -계곡(3.68km, 300m) 07:12 -1분후 계류 건너고 -평상 -목교(Y계곡, 3.82km, 310m) 07:14 -산길 오르막 시작 -돌탑지대(4.32km, 400m) 07:25 -임도 이정표(4.41km, 440m) 07:28 -대암산 삼거리(직진, 4.52km, 460m) 07:31 -너덜지대(돌탑, 4.85km, 540m) 07:39 -삼거리(좌측으로) -주능선(좌측으로, 5.51km, 710m) 07:56 -용지봉(용제봉, 5.70km, 745m) 08:00 ~08:20 -장유사 삼거리(직진, 6.34km, 705m) 08:31 -용바위(6.52km, 724m) 08:34 -너덜지대(돌탑, 7.02km, 530m) 08:50 -임도(7.44km, 430m) 08:57 -상점령(7.63km, 420m) 09:00 -헬기장 -공터(7.95km, 530m) 09:10 -로프 오르막 -로프 오르막 -완경사길 -급커브길 지나고 -해발 약654(8.57km) 09:23 -평탄한길 -119구조목 헬기장 6-나지점(8.77km, 630m) 09:26 - 세멘트 임도(9.38km, 615m) 09:35 -쉼터 09:41 - 이정표 삼거리(좌측으로, 9.82km, 740m) 09:47 -불모산 정상 이정표(전망대, 9.96km, 770m) 09:50 ~09:57 -불모산 송신탑 아래 철조망(10.12km, 760m) 10:00 -불모산 진입로 세멘트 임도(10.25km, 760m) 10:05 -화산, 불모산 임도 삼거리(11.06km, 680m) 10:18 -공군부대앞임도에서 우측소로길 임도(12.0km, 715m) 10:32 -임도에서 좌측 화산 우회길로(12.40km, 675m) 10:41 -낙엽송숲길 -철판다리1.2.3 -성흥사 하산로 이정표(13.20km, 670m) 10:57 -화산 우회길 끝 능선(13.32km, 690m) 11:02 -헬기장(좌 하산로, 김해서부3-2지점, 13.58km, 675m) 11:07 -좌측 샘터 삼거리(13.75km, 365m) 11:10 -바위봉(조망, 14.11km, 667m) 11:18 -좌측 하산로(14.80km, 590m) 11:29 -좌측 신안마을 하산로 이정표(15.06km, 620m) 11:35 -우측 성흥사 하산로 봉(15.30km, 650m0 11:41 -굴암산 정상(15.49km, 663.1m) 11:45 ~12:04(점심식사) -팔각정(15.92km, 615m) 12:13 -너더리고개 삼거리 이정표 12:15 -등산로 불확실함 -안부에서 바위지대 올라 봉(16.50km, 620m) 12:28 -27번 송전탑(16.92km, 590m) 12:36 -너더리고개(18.0km, 270m) 12:53 -마봉산 삼거리(삼각점, 18.34km, 385m) 13:03 -유인경주이씨묘(18.74km, 305m) 13:11 -우측으로 방향 꺽이고 -묵묘봉(19.32km, 320m) 13:20 -두동고개(좌 하이스트CC, 19.82km, 185m) 13:28 -바위봉(조망, 20.26km, 365m) 13:46 -382(30.39km) 13:51 -급경사 바위지대 내려서고 -안부 지나 올라서서 -보배산(21.37km, 479.2m) 14:14~14:25 -36번 송전탑(21.87km, 400m) 14:36 -우꺽임봉 -405(우꺽임, 22.61km) 14:51 -묘지군 15:09 -우측 능선으로 가다 좌측으로 내려서서 임도따라 -임도 삼거리(좌측으로, 24.00km, 80m) 15:21 -솔 솔루션공장앞에서 우측으로 -장고개 큰도로(24.56km, 50m) 15:36 -횡단보도 건너 좌측으로 -삼우엠씨피 옆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도로 끝에서 좌측으로 -우측 세멘트길 따라(세멘트길 좌측 능선으로 등산로 있음) -세멘트길 고개에서 좌측 능선으로 직등(길 없음) -주능선 송전탑(국가지점번호 마라 2432 8130, 26.69km, 220m) 16:19 -봉수대 0.5km이정표(26.93km, 230m) 16:26 -임도 이정표(27.03km, 235m) 16:28 -1분후 정자 -미음개발지구 이정표 삼거리 16:30 -봉화산 정상(봉화대, 정상석, 삼각점, 27.42km, 329.1m) 16:43~16:47 -쉼터에서 테크길 계단 내려서고 -(우꺽임, 28.35km, 271m) 17:04 -(좌 꺽임, 28.78km, 260m) 17:12 -계단 내려서고 -안부 사거리이정표(29.55km, 200m) 17:18 -전망대(29.42km, 260m) 17:24~17:34 -노적봉(송신탑, 29.81km, 243.8m) 17:42 -안부 삼거리(우측으로, 125m) 17:50 -계단길 내려와 -녹산보건소 옆 버스정류장(30.90km) 18:04~18:19 - 버스 1200 -하단정류장 18:31 -하단역 18:33 ~18:35 -1500 -지하부산역 18:57 -부산역 19:03~20:00 -37600 -오송역 21:43 ~21:53 -버스1200 -청주집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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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낙남정맥>

"산경표는 산자분수령''(산이 물을 가른다는 뜻으로 물길이 산을 넘을 수 없다는 의미)의 의미대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세무사로 근무하면서 취미로 등산을 다니다 대간과 정맥 종주산행에 푹 빠져 아예 '신 산경표'라는 책을 낸 저자 박성태(71.사진)씨는 신 낙남정맥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다.지난 1994년 신 산경표를 발간하던 당시 신 낙남정맥을 책에서 주장한 그는 산자분수령이라는 산경표의 원리에서 시작해 현대지도에 맞는 산줄기 이음새를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그가 신 낙남정맥을 주장하게 된 것은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맞지 않는 산줄기 분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그의 주장으론 낙남정맥은 영남의 내륙과 해안을 나누는 경계선으로 봐야 하는 것이고 낙남정맥의 끝은 낙동강이 아닌 녹산 수문근처에서 맺어져야 한다고 했다."그가 주목한 것은 옛 산경표가 생활권을 경계로 하고 있다는 점. 이 때문에 산경표 상의 산줄기 상당수가 부···현 등 관청이 위치한 곳에서 끝나기 일쑤였다.낙남정맥도 김해부 관아가 있던 분성산에서 그 산줄기가 끝나도록 하고 있다.이에 따라 해석을 하다 보면 산경표의 가장 큰 원칙인 산자분수령이 훼손된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는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려면 모든 산줄기는 강의 끝에서 끝이 나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는 "옛 생활권의 의미가 없어진 지금은 산줄기 자체에 충실해 산자분수령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신 낙남정맥도 이런 원칙에 따를 경우 낙동강의 끝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 그러면 그가 주장하는 낙동강의 끝은 어디인가? 박성태씨는 "처음 신 낙남정맥을 주장했을 땐 김해 용지봉에서 남동쪽으로 꺾어 내려와 봉화산 아래 쪽 입바위까지였다" "하지만 매립으로 인해 환경이 많이 달라졌으므로 지금은 하천법이 낙동강의 끝으로 규정하는 녹산교에서 끝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한편 백두대간의 끝을 두고 지리산 천왕봉이 아닌 웅석봉까지란설에서 지금은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까지라는 설이 분분한데 이어 낙남정맥도 그 끝이 신어산자락인 매리에서 녹산으로 주장하는 설이 있어 특별한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선 단정 할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다만 우리도 그 궁금증을 풀어 보기위해 그 산길을 모두 걸어 보는 것이니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보기 바란다.-()

 

[장유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사찰측의 기록에 따르면 48년에 인도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長遊和尙)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씨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그 뒤 선찰(禪刹)로 일관해 오면서 많은 수도승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만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세운 장유화상사리탑은 현재에도 이 절에 남아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탑을 헐어서 부장품을 훔쳐갔으며, 그 뒤 파손된 탑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민족 항일기에 이르기까지 운파(雲坡)영담(映潭)우담(雨潭)만허(萬虛) 등이 이 절에 머물면서 중건중수하였으나 625전쟁 이후에 점차 퇴락하였다. 1980년부터 주지 화엄(華嚴)을 중심으로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현재는 규모 있는 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인법당(因法堂)과 관음전(觀音殿)칠성각(七星閣), 장유선원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응향각(凝香閣), 요사채객실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인 장유화상사리탑과 가락국장유화상기적비가 있다.

장유화상사리탑은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이며, 방형의 지대석 위에 연화대석을 놓고 그 위에 탑신을 얹었다. 장유화상기적비는 가락국의 불교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절에서 오른쪽으로 60m 아래에는 장유화상이 최초로 수도했다는 토굴이 있다. 골짜기 끝에 높이 5m, 길이 15m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대지를 마련했는데, 이 축대는 허왕후와 함께 온 아유타국 사람들이 쌓았다고 전한다.

장유사 입구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폐사가 된 왕후사지(王后寺址)가 있다. 왕후사는 질지왕이 허왕후의 공덕을 기리고 명복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願刹)로서 김수로왕과 왕후가 합환한 전설이 깃든 곳에 세운 사찰이라고 하며, 두 줄기의 계곡물이 합쳐지는 풍수지리상의 길지(吉地)라고 하여 현재는 묘소로 바뀌었다.

AD 42년에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은 6년 뒤 인도 아유타이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들인다. 기록에 의하면 허황옥은 중국 보주(寶州) 지금의 쓰촨성에서 육로, 뱃길을 거쳐 진해 용원에 도착 김해까지 온 것으로 되어있다. 쓰촨성은 1976년 대지진이 일어나 약 25만명이 사망한 곳으로 펑사오강 감독의 대지진이란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잔잔한 감동과 지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 곳이다.

북인도 아유타이국이 전쟁에서 패해 지배계급과 유민들이 중국 보주로 이동하였는데 허황옥도 이 때 중국으로 건너온다.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허황옥이 어릴 때 부르던 노래라 한다. 아유타이국에서 중국 보주로 이주할 때 불렀던 이별의 노래가 지금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고유의 노래로 자리 잡은 것은 아이러니다.

허황옥이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그의 오빠 허보옥이 같이 왔다. 그가 이 땅에 불교를 처음으로 뿌리내리게 한 사람으로 장유화상이다.

김해 장유 대청리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불모산 용지봉 아래에 작은 사찰 하나가 나타난다. ‘장유사. 김해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로 장유화상이 이곳에 암자를 지어 불교를 최초로 전파하기 시작한 곳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곳에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고 전한다.

허황옥은 김수로왕에게 시집 와 아들 열명과 딸 하나를 낳는다. 첫째 아들 장자는 수로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거등왕이고, 둘째 셋째는 허황옥의 성을 쫓아 허씨 성을 받았다. 김해김씨 김해허씨 인천이씨는 같은 뿌리다.

나머지 일곱 아들은 외삼촌을 따라 출가한다. 허보옥은 조카 일곱을 데리고 불모산 기슭에서 수행을 계속 하는데 아들이 보고 싶은 허황후가 자주 장유암에 들리니 수행에 방해받는다 하여 멀리 지리산 반야봉(하동 화개 의신골) 아래 칠불암으로 자리를 옮겨 일곱 왕자를 득불 시킨다.

 

장유화상사리탑의 모습

장유사의 연혁을 살펴보면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였던 장유화상이 AD 48년에 허왕옥과 함께 가락국으로 와서 창건했다고 되어 있다. 정유사에서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된 것을 4세기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먼저 가락국에 인도의 남방불교가 전파된 것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을 중심으로 기술된 삼국의 불교전파 역사에는 가야의 불교전파 시기가 빠져 있다. 장유화상은 한반도 최초의 승려였고 김해의 고찰인 은하사와 동림사의 창건도 장유화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우리나라의 불교전파 시기가 기원후 1세기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유사 뜰에 서서 대웅전을 본다. 그리 큰 절은 아니지만 검은 자갈이 깔린 넓은 절 마당 때문인지 절집이 넓어 보인다. 대웅전을 비롯한 세 개의 건물이 기역자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약간 높은 곳에 삼성각이 따로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현판 아래 두 개의 용머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용지봉(해발744m, 龍池峰)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걸쳐 있는 산.북쪽으로는 대암산(大岩山, 669m)과 이어지고 남쪽은 상점령(上點嶺)을 지나 불모산(佛母山, 801.7m)과 이어지는 낙남정간의 갈림길이다. 용지봉의 원래 이름은 용제봉(龍祭峰)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김해도호부 단묘에 용제봉은 김해도호부의 서쪽 불모산에 있으며, 50리이다. 기우단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로써 용제봉은 기우제(祈雨祭)와 관련하여 생성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는 용제산(龍蹄山) 또는 용제봉(龍蹄峰)으로 나온다. ()가 제()로 바뀐 배경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용제(龍祭)’ 용제(龍蹄)’는 이름처럼 상이한 기원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용제(龍祭)는 무제와 관련되고, 용제(龍蹄)는 진례면 무송리 용소의 용 승천설화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용제봉이 지금의 이름인 용지봉으로 된 것은 자음 변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용지봉은 창원·김해 지역의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산행 코스이다. 낙남정간의 줄기가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꺾여 김해로 이르고, 그 기맥은 남쪽으로 불모산-웅산(熊山, 703m)을 거쳐 해안 산지로 이어진다. 정상에는 용지봉이라고 새긴 정상석과 김해에서 세운 용제봉 유래비가 있다. 또한 정상의 동쪽 비탈에는 김해시에서 세운 용지정이란 누각이 있고, 정상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장유사가 있다.

 

 

용제봉(龍祭峯) 유래

용제봉은 장유면과 진례면 그리고 창원시 불모산등에 걸처 있는 산이며 영제봉은 한자어로 龍祭峯(용제봉),龍蹄峯(용제봉),龍池峯(용지봉)으로 여러 유래가 있다.

"龍祭峯"이란 비를 관장하는 용에게 기우제를 지내는 봉우리라고 하여 龍祭峯이라 명명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 祈雨壇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고, "龍蹄峯"은 진례 신안 무송의 龍沼에서 용이 승천하면서 잠깐 쉬었다 간 발자욱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하여 龍蹄峯으로 유래되고 있다.

"龍池峯" 龍祭峯,龍蹄峯의 자음 "용제봉" "용지봉"으로 변이된 것을 그렇게 차차 표기한 것으로 보여지며, 위의 여러 유래에서 보듯이 龍祭峯,龍蹄峯,龍池峯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고 사료되며 어떤 地名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 보다 누구나 즐겨 찾는 용제봉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상점령(장유고개)

상정령은 창원시와 김해시 경계지역이다. 조금 전에 걸어온 등로 길이 김해시 땅이며 넘어서면 창원시 땅으로 넘어간다. 우측 편으로 불모산 약사사 주지 혜담 합장 제단과 고목이 있고 그 뒤편으로 상점령에서 용지봉으로 진행하는 들머리가 있다.

 

불모산(佛母山), 불모산영산재(佛母山靈山齋)

위치 : 경남 김해시 관동동 761-1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진해구, 김해시 장유동에 걸쳐있는 산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1454)에 부을무산(夫乙無山),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에는 취무산(吹無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불모산(佛母山)이란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나온다. 창원도호부권역 지명연구(민긍기, 2000)에 따르면, 부을무산의 부을은 서쪽을 뜻하는 ’, ‘는 산을 뜻하는 의 변이 형태 를 나타낸 것이라 한다.

취무산의 ’() 또한 부을무산의 부을과 마찬가지로 서쪽을 뜻하는 , ‘ 또한 부을무산의 와 마찬가지로 산을 뜻하는 의 변이 형태 를 표기한 것이라 하였다. 불모산의  또한 취무산의 ’()나 부을무산의 부을과 마찬가지로 서쪽을 뜻하는 , ‘는 부을무산이나 취무산의 와 마찬가지로 산을 뜻하는 의 변이 형태 를 표기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불모산은 서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 있으며, 김해 지역 서쪽에 있는 산으로서 김해 지역 사람들의 방위 인식이 반영되어 그와 같이 명명되었을 것이라 하였다.

허왕후가 일곱 아들을 부처로 만들었다 하여 허왕후를 불모 스님이라고도 불렀고, 일곱 아들이 부처가 된 산이므로 사람들이 불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창원시사(1988)에 인용된 내용은 민간 어원적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불모산은 낙남정간에서 이어져 온 정병산맥에 이어진 산으로 창원분지 동쪽 산맥을 형성한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창원시 장복산·성주사계곡과 불모산계곡, 남쪽으로 진해시 시루봉과 웅천계곡 및 웅동계곡, 동쪽으로 김해시 장유계곡으로 이어진다. 불모산에서 발원한 불모산천은 남산동에서 남천으로 흘러들고, 남천은 봉암하구로 흘러든다.

 

영산재는 전통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지 49일 만에 지내는 불교의식으로, 불모산영산재는 창원 불모산 일대의 사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범패와 작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2 2 9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예능보유자인 마산 대원사의 승려 석봉(石峰)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영산재의 원류는 신라 진감국사(眞鑑國師, 774850)가 한국 특유의 범패를 성립시켜 하동 쌍계사(雙磎寺)에서 범패를 가르치기 시작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한국의 범패는 오랜 세월을 경과하면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으나 경남지역의 하동 쌍계사가 그 모태가 된다. 이러한 한국의 범패는 서울 중심소리, 전라도 중심소리, 경상도 중심소리, 충청도 중심소리, 쌍계사·화엄사 중심소리 등으로 세분되기는 하지만, 크게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윗녘소리와 경상도와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아랫녘소리의 두 줄기로 분류된다.

불모산범패는 아랫녘소리로 이루어지는 음성공양인 범패와 그 범패에 맞추어 신업공양으로 행해지는 작법(바라춤·나비춤·범고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려 능파(能坡) 덕민(德旻)의 종문(宗門)에서 출발하여 승려 해암(海庵) 혜규(慧奎)로 이어지면서 승려 인봉(仁峰, 18271903) 1899년에 승려 해암의 법제자가 되어 불모산 성주사에 주석하면서 불모산영산재를 성립시켰다. 이어 승려 우담(雨潭, 18821968)에게 전수하였는데, 승려 우담은 주로 창원 불모산 성주사와 불곡사, 김해 장유암 등에 주석하면서 후학들에게 본격적으로 영산재를 전수시켰기 때문에 이 계통의 범패를 불모산영산재 또는 불모산범패라 한다. 이후 승려 우담은 명해(溟海) 정기용, 금해(錦海) 이명우, 춘해(春海) 이만조 등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으며, 승려 명해의 제자 승려 석봉이 현재 불모산영산재를 전승하고 있다.

현재 아랫녘범패에서는 주로 다섯 가지 작법이 활용되고 있는데, 삼귀의작법, 다게작법, 운심게작법, 오공양작법, 옹호게작법 등으로 구분되고 있으나, 옹호게작법은 재현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음조직의 흐름을 보면 서울·경기권 영산재의 범패는 부분적으로 메나리토리식의 음조직을 보여주고 있는데, 불모산영산재의 범패는 같은 메나리 토리식의 음조직이지만 경상도 특유의 -로 꺾어주는 선율진행을 범패 특유의 잦은 소리와 혼합된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불모산영산재는 아랫녘소리의 대표적 불교의식으로, 현재 마산시 교방동 소재 대원사의 승려 석봉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아 그 기능을 전승하고 있다. 불모산영산재는 소박한 불가의 지역적 특성이 있으며, 200년 이상의 계보를 가진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예능의 전승실태가 양호하여 불교의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화산(花山, 해발792m)

화산은 팔판산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참고로 팔팔산은 경남 김해시 장유면 관동리, 대청리와 창원시 진해구 사이에 있는 673m 높이의산이다. 북쪽사면에서 발원한 물이 내정천을, 동쪽사면에서 발원한 물이 율하천을 이룬다. 지명과 관련해 풍수지리적으로 8명의 판서가 날 명당이 있어 그 이름이 유래 하였다는 설이 있다.

 

굴암산(屈岩山, 해발663m)

굴암산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에 있는 산이며, 창원시와 경상남도 김해시, 부산광역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북서쪽의 불모산과 화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진해구와 김해시 장유면, 부산광역시 강서구와의 경계를 이룬다.

굴암산이라는 지명은 산 정상의 큰 바위 아래 암자가 있어 '굴암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산에서 땔나무를 많이 베어 바위만 남은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굴암산은 불모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나온 산지로 신어산맥의 지맥이다. 천자봉산지와 함께 진해의 동부 지역을 구성하는 주된 산지로 화산, 굴암산, 보개산, 부인산, 망개산, 안골 반도로 이어져 진해만의 알골포에 몰입한다. 북서부는 험준하고 고도가 높은 장년 산지의 특색을 나타내는데 반해 남동부는 소기복의 완만한 노년 산지 또는 구릉 산지로 되어 있다.

창원시 진해구 웅동 1동에 있는 산으로 해발663m이다. 창원시와 김해시, 부산광역시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북서쪽의 불모산과 화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진해구와 김해시 장유면, 부산광역시 강서구와의 경계를 이룬다. 서쪽의 웅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에 위치한 팔판산(八判山,673m)과 같은 산으로 보기도 한다. 산 아래에 성흥사(聖興寺)가 있다. 해동 지도[창원]에는 성흥사의 북동쪽에 굴암(掘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뒤의 산을 가리산(伽俐山)이라 기록하고 있다. 영남 지도[창원]에는굴암과 성흥사가 묘사되어 있으나 산 지명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대동여지도에는 웅천 읍치 북쪽으로 웅산(熊山)과 웅암(熊岩)이 있고, 그 북쪽에 성흥사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 지지 자료[마산]의 웅동면에는 대장리(大壯里)의 팔팔산(八坂山)만 기록되어 있다. 산의 곳곳에는 큰 바위가 많으며 산세가 험하다. 장년 산지로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의 곰티고개를 지나 옥녀봉에 이어지고 남동쪽으로보개사과 연결된다. 진해구의 동쪽 변두리에 있는 웅동 대정리의 성흥사는 오래된 절로서 이곳 사람만이 아니라 인근에서도 즐겨 찾는 불교 도량이다. 또한 시원한 물줄기를 토하는 용추폭포는 진해구가 자랑하는 소문난 곳이다. 성흥사 뒤편에는 몇 개의 봉우리가 키 재기를 하며 동서로 길게 달리고 있는데 이 절 뒤편의 제일 높은 봉우리가 바로 굴암산[622]이다.

백두대간이 마감된 지리산 천왕봉에서 동으로 뻗어 낙동강 하구로 빠지는 길고 긴 산맥을 조선 시대 지리서인 산경표[신경준 저]에서는 낙남 정맥이라고 부르고 있다. 낙남 정맥은 창원 부근에서 이 산줄기의 한 봉우리인 불모산(佛母山)을 이루고 여기서 동쪽으로 뻗어 화산(花山)을 거쳐 굴암산으로 이어진다. 다시 동쪽의 보개산(寶蓋山)을 지나 낙동강 하구로 주저앉는다. 용추 폭포는 굴암산의 또 다른 작은 능선이 남으로 내려가는 자락의 끝부분 계곡에 있다. 부산 지역에는 굴암산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데다 교통편을 이용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여 잘 찾지 않는 편이다. 이 지방 출신이나 이곳과 연고가 있는 사람들도 이 산보다는 절이나 폭포 등을 많이 찾는 편이다.

 

성화예산봉수대(봉화산)

소재지 : 강서구 생곡동 산61번지

봉수제도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고종35(1898) 전화 개설로 폐지 될 때까지 국가 위급을 알리는 중요한 군사 통신 방법으로 사용 되었으며,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횃불을 올려 신호하였다.

고려 의종3(1149) 제도화 되면서 평상시에는 횃불(연기) 1, 적이 나타나면 2, 국경에 접근하면 3, 국경을 넘으면 4, 접전하면 5번으로 구분하여 서울의 경봉(목멱산:남산)에 연락하였다.

성화 예산 봉수대의 설립 년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세종7(1425) 전국의 국경 지역에 봉수대를 설치할 당시 세위진 것으로 추정되며, 금단곶보의 주둔 병력이 관장하였으며, 남쪽의 가덕도 봉수를 받아 북쪽 분산 봉수에 연계한 연변 봉수대였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선인들의 향토수호 의식과 국토방위정신을 기리며 계승하기 위해 1991 9월 강서구청에서 옛터에 복원하였다. -안내문에서 옮김 -

 

봉화산 봉수대

조선 전기에는 전국에 650여 개의 봉수가 있었고, 봉화는 전황에 따라 5번까지 올리는 5구분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 봉수마다 봉수대 5기가 있었다. 전국의 봉수는 경흥·동래·강계·의주·순천의 5개 봉수대 기점으로 하여 서울 목멱산(남산)의 제1봉에서 제5봉의 봉수대로 집결되었는데, 1봉의 봉수대는 함경·강원도에서 오는 봉수를 양주 아차산(서울 강동구) 봉수대로부터, 2봉 봉수대는 경상도에서 오는 봉수를 광주 천림산 봉수대로부터, 3봉 봉수대는 평안·황해도에서 오는 봉수를 무악산 동봉의 봉수대로부터, 4봉 봉수대는 평안·황해도의 해안에서 오는 봉수를 무악산 서봉의 봉수대로부터, 5봉 봉수대는 전라·충청도에서 오는 봉수를 양천(서울 양천구) 개화산 봉수대로부터 각기 받았다. 이와 같이 전국에서 올라온 봉수의 정보는 목멱산(지금 남산) 봉수대의 오원이 병조에 종합보고하면 병조에서는 매일 새벽 승정원에 알려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1894(고종31) 봉수제도가 현대적 전화통신체제로 바뀌어 폐지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봉수대는 지방기념물로 지정하여 각 도·시에서 보호하고 있다

 

녹산수문공원

녹산관문 아래 성산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성산장이 열리는 곳이다. 구전에 의하면 성산장은 보기 힘든 큰 장이었다고 한다. 부산, 김해, 진해, 마산, 거제에서까지 사람들이 찾아 왔다고 한다. 성산장의 다른 이름은 시메키리(しめきり 손톱깍기)장이다. 일본이 녹산관문을 만들면서 산줄기를 끊어 물을 녹산수문을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녹산수문이라 하지 않고 시메키리라고 불렀다. 일제시대이기에 사람들은 성산이나 녹산이 아닌 일본어인 시메키리로 자연스럽게 부르게 되었다. 이후 국도가 성산 마을에 생겨나 마을이 불안전 해지고, 부산에 편입 되면서 성산장은 점차 사그러들다 폐쇄되고 말았다. 지금도 5일장이 선다고는 하지만, 옛영광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강서구는 옛 영광을 기념하여 수문시장공원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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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0:10

이번에도 차량 편을 제공하는 지인이 요즘 물동량이 줄어 울산방향으로 못가고 마산 창원방향으로 간다고 한다. 이래서 호미기맥 2번째 구간은 다음으로 미루고 창원 용지봉에서 부산 녹산에서 하단으로 이어지는 녹산교 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요즘 신낙남정맥 또는 낙남새길이라 하여 종주를 하고 있다. 난 이 구간을 오래전 녹산교에서 시작하여 불모산 까지 진행하고, 다음애 불모산에서 용지봉까지도 진행을 한 적이 있어 실제 종주를 한 셈이지만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적막님은 이 구간을 아직 다녀오지 않아 오랜 기다림 끝에 이번 기회에 한번에 끝내려고 한다. 산행거리가 27km로 하루에 하기에는 짧지 않은 거리지만 산길은 그리 나쁘지 않아 조금 일찍 시작하면 하루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창원으로 가는 지인의 차를 이용하여 가기로 하고 적막님은 천안에서 우리 집에 22시가 좀 넘어 도착하여 기다린 후 집에서 00 10분 출발 한다.

 

창원 성주동(창원경상대학교 병원앞) 도로 06:05 ~06:10

집에서 지인의 차를 이용하여 서청주톨게이트 부근 차고지에서 창원으로 가는 화물을 싣고 가는 지인의 화물차에 적막님과 함께 탑승을 하여 잠을 청하지만 덜컹거리는 충격으로 잠이 오지를 않는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얼마를 지난 후 휴게소에 들어간다. 어딘가 보니 성주휴게소다. 청주에서 2시간 20분을 온 것이다. 성주휴게소에서 내려 라면(3500원씩)을 먹자고 하여 시키려하니 적막은 생각이 없다고 하여 둘만 시켜 먹고 나서 다시 출발한다. 비슬산, 영취산 옆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고 한동안 더 가면 칠원요금소가 나온다. 이곳으로 빠져나와 진행하면 중리 내서에서 우측으로 무학산과 광려산, 대산사이로 빠져나가 진동방향으로 가는 도로가 보이는 곳에서 좀 더 가다 동마산톨게이트로 나가 마산역 부근에서 짐을 하나 내려주고 다시 창원고등학교 부근에서 짐을 하나 더 내려주고 이제 우리를 내려주려 성주동 유니온빌리지로 향한다. 우측으로 창원 종합운동장등 체육시설이 보이는 지점을 지나고 창원시청앞 창원광장(만평로터리)을 지나 유니온 빌리지가 보이는 큰 도로옆(창원경상대학교병원앞)에서 내린다.

 

상점령,용지봉 삼거리 이정표(좌측으로, 3.42km, 290m) 07:08

지인은 짐을 내려주려 다음코스로 이동하고 우리는 잠시 산행준비를 마친 후 유니온빌리지를 보고 골목으로 들어선다. 오래전 이곳을 왔을 때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는데 집들도 잘 짓고 많이 변모한 모습이다. 잠시 후 삼정자동 외리마을 옛터 표지석이 나오고 적막님은 아직 아침식사를 안하여 옆쪽 편의점에서 김밥을 구입하여 가면서 아침식사를 한다. 이후 유니온빌리지가 가까이 보이는 도로 앞에 닿으니 앞쪽으로는 깊숙한 지하로 연결이 되는 곳이라 우측으로 돌아서 가면 잠시 후 유니온 빌리지 정문을 지나 높다란 세멘트 옹벽앞 산책로 테크길 계단입구에 닿는다. 이곳까지 대략 1km거리가 나온다. 테크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잠시 후 우측으로 마애불이 보인다.

 

삼성자동 마애불(三丁子洞 磨崖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98

이 불상은 일명 장군바위라고도 불리는 자연 암반을 돌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받침대 위에 양발을 교차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머리 쪽과 몸체에 따라 광배를 갖추고 있으나 장식은 없다. 머리에는 소라고동처럼 틀어 올린 상투가 남아 있고, 얼굴은 오른쪽이 심하게 훼손되어 전체 모습을 알기 어려우나 남았는 왼쪽으로 짐작하건데 종만하고 여유가 있다. 손 모양은 부처가 악마를 누르고 깨달음을 이루는 순간을 형상화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이 손 모양은 경주 석굴암의 보존불과 같으ㅜㄴ 형태의 가부좌를 튼 불상에서만 볼 수 있다.

어깨는 자연스럽게 굴곡을 이루고 있고, U자 모양이 개 겹으로 겹쳐서 흘러내린 옷자락이 마모가 심한 상태로 받침대까지 펼쳐져 있다. 파도 문양을 새긴 받침대는 8각형의 형태를 띠고, 가운데 받침대 3개의 기둥을 표현함으로써 입체감을 더해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안내문에서 발췌

 

잠시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다시 돌아 나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산 사면을 지나는 산책로에 닿는다. 여기에 성산구 숲속나들이길 안내도가 있다. 옆쪽으로 이정표에 대암산 6.4km, 용지봉 5.0km, 상점령 3.9km가 적혀 있다. 장유사에서 용지봉 까지는 1.1km,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대청리에서 내리면 장유사(택시13000원정도, 9시부터 일반인 차량 통행금지 한다고 함)까지 약3.6km로 이곳에서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래서 많은 신낙남정맥을 하시는 분들은 이곳 삼정자동 유니온 빌리지 앞에서 출발을 한다. 임도 길로 진행이 되는 숲길을 따라 진행하면 10여분을 좀 더 진행하여 농바위라고 하는 지점을 지나고 4분을 더 가면 널찍한 바위가 보이는 곳을 지나며 대암산 평바위 이정표가 있다. 용지봉 3.8km가 적혀있다. 잠시 후 샘터가 있는 계곡을 지나고 15분을 못가서 상점령과 용지봉으로 갈리는 임도 삼거리에 닿는다. 상점령으로 향하는 임도 길에는 차량통행을 못하도록 차단봉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 이정표에 삼정자동 2.5km, 상점령 1.4km, 용지봉 2.5km가 적혀 있다.

 

용지봉(용제봉, 5.70km, 745m) 08:00 ~08:20

상점령, 용지봉 삼거리에서 이어지는 산길도 임도 길로 이어진다. 4분여 걸으면 계곡이 나온다. 1분후 두 번째 계류를 건너고 사각형 평상이 설치된 지점을 지나면 세 번째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나온다. 이 목교를 건너면 좌, 우측계곡 사이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은 매우 좋은 편이다. 10여분을 오르면 돌탑이 세워진 지대에 닿는다. 누군가 잘 쌓은 돌탑이 군데군데 보이는 곳이다. 돌탑지대를 지나서 3분여 더 오르면 임도가 지나는 지점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삼정자동 3.5km, 상점령 1.4km, 대암산 2.9km, 용지봉 1.5km가 적혀 있다. 임도를 건너서 산길로 오르는 길은 전보다는 못해도 길은 뚜렷하다. 3분여 지나면 좌측으로 대암산으로 가는 삼거리다. 여기서 직진 길을 따라 오르면 산길은 더욱 길이 나빠지지만 길은 확연히 보인다. 이렇게 하여 오르면 10분을 못 올라서 너덜지대가 나온다. 너덜지대 좌측으로 조금 들어가 보면 여러 기의 돌탑들이 쌓여 있다. 솜씨 좋은 분이 여러 해가 걸려서 쌓은듯하다. 너덜지대를 지나서 산길은 점점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여 15분을 좀 더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산경표를 보니 용지봉은 한참 좌측으로 치우쳐 있어 여기서 좌측으로 길을 잡아 간다. 한동안 진행을 하니 능선 사면을 따라 진행을 하다가 용지봉 못 미쳐에서 능선으로 올라서서 좌측으로 200m 정도를 가면 용지봉 정상이다. 용지봉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간 흠뻑 젖신 땀을 식혀 준다. 조망도 좋아 정자아래 장유면 일대가 시야에 들어오고, 멀리 장병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불모산, 화산으로 이어지는 신낙남정맥길, 불모산에서 장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그 뒤로 진해앞바다까지 뚜렷하게 조망이 되니 우리의 산하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상점령(7.63km, 420m) 09:00

돌탑지대 못 미쳐에서 발 뒤금치가 벗겨졌다고 반창고를 부치고 온다는 적막님이 올라오지 않아 15분여를 기다리니 시원한 바람이 이제는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셀카로 사진 한 장 남기고 막 가려고 하니 적막님이 올라오며 대암산 쪽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 왔다며 도저히 못가겠다고 혼자가라고 한다. 에고 독종이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가도 탈출로는 가까운 곳은 없다. 어쨌든 상점령에서 창원으로 빠지던지 굴암산이나 너더리고개 까지 가서 좌측으로 하산을 하던지 해야 장유로 가는데 여기서는 뱅기를 타고 갈수도 없고 클랐다. 이왕 올라왔으니 용지봉 정상 인증은 하고서 상점령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다. 잠시 진행하여 성주동에서 올라온 삼거리를 지나고, 좀 더 가면 좌측으로 장유사로 빠지는 삼거리 이정표에 닿는다. 이정표에 장유사 0.4km가 적혀 있다. 성주동 유니온빌리지에서 정상적으로 올라오면 이곳으로 닿는다. 장유사 삼거리를 지나고 4분을 더 가면 용바위로 표시된 봉에 닿는다. 이봉에서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내리막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산경표에서는 길을 벗어 낫다고 하지만 발길이 많은 길을 따라 진행을 해야 한다. 가파르게 내려서는 길은 미끄럽기도 하고 잔 자갈이 많아서 엉덩방아 찧기 좋다. 용바위에서 15분 정도를 내려서면 너덜지대가 나온다. 여기 너덜지대에는 엄청 많은 돌탑이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공들여 쌓은 탑들이다. 너덜지대를 지나며 산길은 육산으로 길이 좋아 진다. 7분여 진행하니 좌측 장유 대청계곡 쪽에서 올라온 임도 길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잠시 가면 상점령 고개로 우측편 창원 성주동 방향으로 가는 임도는 차단봉과 쇠사슬로 차량 진입을 막았고, 좌측편 대청리에서 올라온 세멘트 널찍한 임도는 불모산, 화산 공군부대로 올라간다. 이곳에서 불모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우측편 능선을 따라 오른다. 이정표에 용지봉 2.0km, 불모산 2.7km, 안민고개 8.3km가 적혀 있다.

 

불모산 정상 이정표(전망대, 9.96km, 770m) 09:50 ~09:57

상점령고개에서 잠시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10분후 굵직한 나무가 있는 공터가 나온다. 공터를 지나고 곧바로 로프가 매여진 오르막길이 시작이 된다. 두 번째 짧막한 로프지대 오르막을 지나서 우측으로 급격히 구비를 지며 오르는 지점을 지나서 평탄한 길을 따라가면 의자가 놓여진 봉에 닿는다. 해발 약654봉으로 여기부터 평탄한 길을 따라 진행하면 119구조목에 헬기장 6-나 지점이라 적힌 곳에 닿는다. 여기서도 이어지는 산길은 평탄한길을 따라 진행이 되어 10여분 후 상점령에서 불모산, 화산으로 오르는 널찍한 세멘트 임도 길에 닿는다. 임도길 옆 잘 익은 산딸기 몇 개 따먹고 다시 우측편 능선으로 올라서서 진행을 하면 가파르게 올라서서 6분후 쉼터에 닿는다. 다시 6분을 더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불모산 저수지에서 올라온 등산로와 합류하는 지점으로 이정표에 용지봉 4.4km, 불모산 주차장 3.8km, 불모산 0.3km가 적혀 있다. 여기부터는 산길이 완경사 길을 따라 진행이 되어 3분여 오르면 불모산 정상이라 적혀 있는 지점에 닿는다. 우측으로 조망이 좋은 널찍한 바위가 있는 곳으로 장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내려다보이고 우측으로 창원공단지대, 좌측으로 진해시가지와 진해앞바다가 시원스럽게 보이는 곳이다. 높다란 송전탑이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지점으로 송신탑이 있는 불모산 정상은 진입 할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을 정상이라 한 것 같다. 여기 이정표에 용지봉 4.7km, 불모산 주차장 4.1km, 안민고개 5.6km, 장복산 10km가 적혀 있다.

 

화산 우회길 끝 능선(13.32km, 690m) 11:02

불모산 정상 이정표에서 좌측편 소로 길을 따라 올라서서 다시 내려오니 내내 안민고개로 가는 길에 닿는다. 이 길은 송신탑 좌측편 아래쪽으로 이어져서 간다. 잠시 송신탑 쪽으로 오르는 길도 있지만 결국 철조망에 가로 막혀 다시 내려서서 우회 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송신탑 바로 아래 표지기가 무수히 많이 걸린 지점을 지나고 1분여 지나서 좌측으로 내려서는 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4분여 지나서 불모산 송신탑 쪽으로 오르는 널찍한 임도 길에 닿는다. 여기 임도길 옆으로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으며 이정표에 노을 전망대 0.1km, 안민고개 5.5km, 불모산 주차장 4.4km등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널찍한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좌측편 소로 길을 따라 들어가니 헬기장에서 길이 끝난다. 여기서 다기 돌아 나오기는 그렇고 해서 직등으로 내려서니 곧 임도 길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2~3분을 따라 나오면 상점령에서 올라온 길이 볼모산 송신탑과 화산 공군부대로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편 화산 공군부대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한다. 길옆 산딸기도 따먹으며 뒤따라오는 적막님을 동태를 살피니 그냥 하산할 생각을 없는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 온다. 오늘 날씨가 바람이 불고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뙤얕볕 아래 세멘트임도 길을 가는 것은 고욕이다. 대략 1km, 15분 정도를 가면 공군부대에서 설치한 마이크가 있는 지점에 닿는다. 등산로가 아니니 되돌아가라는 내용의 방송을 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우측 소로 길을 따라 들어가면 10여분을 들어가서 좌측 편으로 이어지는 화산 우회길이 나온다. 공군부대에서 설치한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는 우회 길에는 지뢰지대표시와 우거진 낙엽송 숲이 있고 철판다리가 3개가 있다. 마지막 철판다리를 지나서 수북히 자란 풀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게 되면 성흥사 2.8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진해 웅동에서 들어온 곳으로 김해 진례에서 진해 웅동경제자유구역으로 빠지는 톨게이트 부근이다. 여기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5분여 오르면 화산 공군부대 끝 철조망에 설치한 마이크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되돌아가라는 방송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굴암산 정상(15.49km, 663.1m) 11:45 ~12:04(점심식사)

화산 우회길 끝 철조망에서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은 바위 길로 걷기에는 좋지를 않다. 잠시 진행하니 정상적인 길로 올라간 적막님이 능선을 따라 이쪽으로 오다가 나를 만나 다시 되돌아서 진행을 하여 김해 서부 3-2지점 헬기장으로 우측편 장유 신안마을로 하산하는 길이 있는 지점을 지나 내리막 평탄한길을 따라 3분후 좌측 편으로 샘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이제 올망졸망한 능선 길을 따라 10분을 좀 못 가서 조망이 매우 좋은 바위봉에 닿는다. 지나온 불모산에서 화산을 거쳐 이곳까지 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진해 뒷산인 천자봉에서 웅산으로 가는 능선이 보이고 좌측으로 진해앞바다와 장유에서 굴암터널을 지나 진해 웅동자유경제지구로 이어지는 도로의 요금소 및 터널이 보이고 더 좌측으로 가면 부산 신항만 뒤편으로 가덕도가 보인다. 이제 바위봉 전망대를 뒤로 하고 가면 10여분 후 좌측편 신안마을 쪽으로 하산하는 지점을 지나고 커다란 바위들이 능선으로 즐비하게 보이며 두 번째 신안마을로 하산하는 지점 이정표에 신안마을 1.8km, 굴암산 0.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3분 정도를 더 가면 좀 전의 바위봉 전망대에서 보던 조망과 거의 같은 조망이 그림처럼 보이는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남해고속도로 남해지선 요금소가 더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이후 3분을 더 가면 우측으로 작은 바위봉이 있어 올라서니 이정표가 있다. 우측으로 성흥사 2.1km, 굴암산 0.2km가 적혀 있다. 성흥사 하산로 삼거리 바위봉에서 마지막 0.2km 4분을 더 가서야 굴암산 정상에 닿는다. 굴암산 정상에는 막대형 정상석이 있고, 삼각점이 있으며 이정표에 신안마을 2.3km, 화산방향, 전망쉼터 0.4km가 적혀 있다. 조망은 진행방향 보배산(보개산)과 가덕도가 보인뿐 다른 방향은 나무에 가려 볼 수가 없다. 이곳에서 점심식사 후 출발 한다.

 

너더리고개(18.0km, 270m) 12:53

굴암산에서 능선을 따라 10여분을 가면 높다란 육각정(망해정)이 있으며 아래쪽으로 사각정자로 지은 쉼터가 있다. 앞쪽 이정표에 굴암산 정상 0.4km, 신안마을 2.3km, 약사암, 옥녀봉이 적혀 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육각정자에는 올라가지 않고 그냥 통과를 하니 잠시 후 이정표에 곰티고개 3.75km, 옥녀봉 5.08km가 적혀 있으며 우리가 갈 방향으로 너더리고개 2km가 적혀 있다. 여기 삼거리 이정표에서 너더리고개로 향하면 지금까지 좋았던 등산로는 저리가고 이제는 잡목 숲으로 걸치적거리는 산길을 따라 간다. 얼마를 지났는데 산경표에서 길이 벗어 낫다고 하여 보니 에고 좌측편 능선으로 길도 없는 곳을 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 사면으로 가시덩쿨이 없는 훤히 트여진 곳이라 나무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 우측편 능선에 붙어 적막님을 부르니 답이 없다. 잠시 후 바위지대로 오르는 곳에서 뒤돌아보니 바로 뒤에 붙어서 오고 있다. 바위지대를 올라서서 해발 약620봉에 올라서 이제 내리막길을 따라 진행하면 10분을 못가서 27번 송전탑이 나온다. 송전탑을 지나며 능선 우측 편으로 송전탑 건설 때 사용하던 길로 보이는 조금은 널찍한 길을 따라 진행하면 힘들이지 않고 20여분을 조금 못가서 너더리고개 우측편 바로 아래편에 닿는다. 이곳에서 잠시 올라서면 좁다란 고갯길로 돌무더기가 있는 너더리고개에 닿는다. 너더리고개에서 좌측으로 빠지면 부산 과학일반산업단지가 있는 강서구 지사동에 닿고, 우측으로 빠지면 진해 웅동에 닿는다. 교통편은 좌측으로 빠지는 것이 낫다. 부산 하단역까지 운행하는 일반버스가 다닌다.

 

두동고개(좌 하이스트CC, 19.82km, 185m) 13:28

너더리고개에서 잡목지대를 지나서 오르면 10분이 지나서 해발 약385봉에 닿는다. 흰색 표지판이 붙어 있으며 삼각점이 있는 봉이다. 산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여서 진행이 되고, 우측 편으로 마봉산이 가까이 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마봉산을 잠시 다녀왔었지만 오늘은 시간이 빠듯하여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한동안 잡목 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유인경주이씨묘가 있는 지점을 지나서 산길은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어 잡목길 가끔은 망과나무 넝쿨이 옷을 잡아 당겨 흠집이 나기도 하며 진행을 하여 풀이 수북히 자란 묵묘가 있는 봉에 닿는다. 묵묘봉을 지나서 8분여 내려서면 잡목과 수북한 풀로 범벅이 된 두동고개에 닿는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신낙남정맥 두동고개 185m"가 적혀 있는 아스테지판이 나무기둥에 걸려 있다. 좌측으로는 하이스트CC골프장이 있고, 고개 아래로는 부산자유경제구역에서 두동경제자유구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인 보배터널이 지나고 있으며 이 고개를 좌측편 동네이름(지사동)을 따서 지사고개라고도 한다.

 

보배산(21.37km, 479.2m) 14:14~14:25

두동고개에서 보배산 정상까지는 고도 300m를 올라야 한다. 첫머리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모처럼 숨소리 높여가며 오르기 시작하여 20여분을 올라서니 가덕도 방향으로 조망이 좋은 바위봉에 닿는다. 바위봉을 지나고 5분을 더 가면 해발 약382봉으로 표지판이 붙어 있는 곳이다. 보배산까지 힘들이지 않고 쉽게 가지 못하도록 이곳에서 바위지대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선다. 내려서는 바위지대 좌측 편으로 부산과학산업단지의 모습과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우측으로 하얀바위들이 드러난 풍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급경사 지대를 내려서고 안부를 지나 다시 숨 가쁘게 올라서면 15분 이상을 더 올라서야 보배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는 반쯤 부러진 한문으로 적혀 있는 보개산 정상석이 있고 나뭇가지에는 보배산이라 적힌 흰색표지판이 붙어 있으며 삼각형으로 된 철주가 설치되어 있다. 부러진 정상석 앞쪽으로 삼각점이 있다. 잠시 이곳에서 쉬어 간다.

 

장고개 큰도로(24.56km, 50m) 15:36

보배산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진행을 한다. 내려서는 길은 그래도 평탄한 육산 길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러 갈래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이 돌아가며 우측으로 신호산업단지 쪽으로 낙동강 건너편 다대포 일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서서히 내려서는 능선 길과 평탄한 능선 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잠시 올라서면 36번 송전탑이 있고 다시 한동안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능선이 우측으로 방향이 꺽이며 그 끝에서 해발 405봉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내려서기 시작하면 급격히 내려서는 길을 따라 15분 이상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여러기의 비석이 세워진 묘지군이 보인다. 이곳부터 묘지로 들어오는 널찍한 임도가 연결이 되어 있으나 산길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잠시 진행하다가 산길은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서서히 내려오면 결국 묘지군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임도에 닿는다. 묘지군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것이 좋겠다. 이제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가끔씩 잘 익은 산딸기도 있어 몇 개씩 따먹으며 진행을 하여 임도가 좌측과 우측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우측으로 진행하여 도로를 한동안 따라 우회하여 지나야 하지만 난 오면서 보이던 장고개 부근 도로 공사 현장 가운데 길을 따라 진행하기로 맘먹고 가까운 방향으로 가고자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솔솔루션공장앞 도로에 닿은 후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오면 장고개 큰 도로에 닿는다.

 

봉화산 정상(봉화대, 정상석, 삼각점, 27.42km, 329.1m) 16:43~16:47

장고개 큰 도로에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차량이 많아서 양쪽으로 차량이 뜸한 틈을 이용하여 건너서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공사현장으로 들어가는 철문옆 쪽문은 열러 있어 들어가려니 앞쪽으로 덤프트럭, 포크레인등 많은 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공사 현장으로 매우 복잡하다. 적막님이 폭파를 할지도 모르지 우회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이동하여 삼우엠시피 공장옆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공단지역 길을 따라 들어가면 HAMAI코리아 공장이 있는 끝 지점 삼거리에서 좌측편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커브지점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는 세멘트 길이 있어 따라 들어가니 이 길은 공단 지역 뒤편을 따라 우측으로 이어진다. 중간지점 높다란 고개부근에서 좌측으로 직등을 하기로 한다. 분명지도에는 옛길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잡목으로 우거진 산속을 헤집고 올라서니 좌측 편으로 송신탑이 보인다. 분명 송신탑에서는 길이 있을 것 같아 좌측으로 이동을 하니 길 흔적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니 결국 해발 약262봉과 송전탑 사이 능선 길에 닿는다. 능선에 닿은 후 좌측으로 진행하면 잠시 후 국가지점번호가 적혀 있는 송전탑이 나오고 7분여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봉수대 0.5km가 적혀 있는 막대형 이정표가 있고, 2분을 더 가면 우측에서 올라온 임도가 있는 지점의 이정표에 닿는다. 봉수대 0.4km, 성고개 1.8km, 우측으로 산양마을 0.9km가 적혀있다. 잠시 올라서면 팔각정자가 있고 여러 개의 운동기구와 여러개의 평상이 있는 지점을 지나면 곧 이정표가 나온다. 봉수대 0.3km, 산양마을 1km, 좌측으로 미움개발지구 0.9km가 적혀 있다. 이 길을 찾으려고 장고개에서 좌측으로 우회 한것인데 결국 찾지 못하고 지저분한 잡목을 헤치고 올라온 것이다. 이 길은 우리가 들어온 세멘트길 좌측편 능선으로 있으니 세멘트 길에서 들어와 민가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다. 아니면 세멘트길 첫머리에서 좌측으로 올라서서 길을 찾으면 될 것 같다. 또한 장고개 부근의 공사가 많이 진척이 되었으니 가까운 시일 내로 장고개 횡단보도를 건너서 앞쪽으로 쭈욱 들어가 뒤편에서 우측으로 능선 길을 내던지 하면 될 것 같다. 이제 널찍한 임도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봉화대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거리는 300m라고 하지만 시간은 다소 많이 걸려 13분이 지나서야 헬기장을 지나 높다란 성화예산봉수대가 복원된 봉화산 정상에 닿는다. 봉화대 우측으로 대리석으로 된 정상석이 있으며 좌측으로 삼각점이 있다. 정상석에 표시된 높이가 잘못 적혀 흰색 페인트로 누군가 수정을 했지만 역시나 277m를 앞 자만 3자로 고쳐서 377m로 보인다. 봉화산의 높이는 329.1m로 표시되어 있다. 조망은 사방으로 트여서 좋다. 특히나 낙동강 하구 다대포 일대를 조망하는 가장 좋은 포인트가 이곳이 아닐까 싶다.

 

전망대(29.42km, 260m) 17:24~17:34

봉화산 정상에서 마지막 하산 길을 재촉한다. 서서히 내려서는 길을 따라 진행하면 의자가 여러개 설치된 쉼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내려서는 곳에는 널찍한 테크길 계단으로 지그재그로 이어져서 내려선다.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올라서는 길이 숨이 차다. 한참을 올라서면 능선길이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는 해발 약271봉으로 바위가 있는 봉이다. 이봉을 내려서고 다시 오르는 길도 숨이 차게 올라선다. 한동안 헉헉대며 올라서면 능선이 좌측으로 방향이 꺽이며 계단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이다. 6분여 내려서면 널찍한 안부고개로 좌측으로 평상이 보이고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생곡마을 1km, 우측으로 대성암 0.4km, 지나온 봉수대 1.6km, 전방에 있는 전망대가 0.3km라고 적혀있다. 안부사거리에서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제초작업이 말끔하게 된 널찍한 길을 따라 오른다. 6분여 오르면 봉 정상에 여러 개의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우측으로 널찍한 전망대가 설치된 해발 약260봉이다. 여기 전망대에 설치된 조망도에는 몰운대, 신호대교, 화전산업단지, 가덕도등이 표시되어 있어 조망도를 보며 주변지형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좌측으로 백양산 일대와 정면으로 다대포등 낙동강 하구의 모습 우측으로 가덕도 등을 볼 수 있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간다.

 

녹산보건소 옆 버스정류장(30.90km) 18:04~18:19

전망대에서 제초작업이 말끔하게 된 능선 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6분정도가 지나 우측 노적봉과 좌측 송전탑이 있는 고개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 송신탑이 있는 노적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들렸다 가기로 한다. 잠시 올라서면 송신탑 우측으로 바위봉에 노적봉 흰색표지판이 붙어 있다. 마지막으로 인증사진 한 장씩 남기고 하산을 시작한다. 고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가파르게 내려서서 중간지점의 전망대를 지나고 다시 더 내려서면 안부고개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봉수대, 체력단련장, 우측으로 녹산보건소가 적혀 있으며 봉화산 등산안내도가 이정표 옆으로 있다. 이제 이곳에서 우측편 녹산 보건소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계단 길을 따라 내려서면 마지막 지점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며 좌, 우측으로 빠지는 골목길 중 우측 편으로 빠지니 1분도 못되어 큰길에 닿는데 아깝게도 하단으로 가는 버스가 녹산대교앞 신호등에서 대기 중이다. 버스정류장은 좌측편 녹산보건소 옆쪽으로 보인다. 잠시 후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버스정류장에서 15분을 기다려 하단역 까지 가는 221번 버스를 타고 을숙도를 지나고 하단역까지 12분이 소요되었고, 하단역에서 부산역까지 지하철로 22분이 소요되어 부산역 까지는 녹산보건소 앞에서 총 45분 정도가 되었으나 아깝게도 내가 타려는 무궁화호는 이미 출발해 버려 새마을호 보다는 7000냥을 더 주고 고속열차를 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고속 열차로 오송역에 내리니 대략 1시간 45분이 소요되어 10여분 버스를 기다려 청주 집에 돌아오니 22 15분이다.

 

오늘 산행 거리가 생각보다 길었고 시간도 다소 많이 걸렸다. 산행초반부에 발 부상으로 힘겹게 산행을 하느라 고생한 적막님 무진 고생하였습니다. 담 번부터는 고놈 신발은 가까운곳 갈 때나 신고 발이 편한 것으로 바꿔 신고 오세요 ㅎㅎㅎㅎ

고생 많았습니다. 독종이 아니면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것인데 정말 독종이데 ~~~

난 어디서 끝을 맺을까 고심 많이 했다우~~

부상 없는 산행을 위하여 편안한 신발 착용바람

 

산행시간 11시간 55분 소요

산행거리 30.91km

 

청주 ~창원 성주동 ; 지인차 이용

녹산보건소앞 ~하단역 버스비 : 1300

하단역 ~부산역 전철비 ; 1500(환승이라 정확한 요금 모름)

부산역 ~오송역 고속열차비 : 37600

오송역 ~청주 버스비 : 1200

성주휴게소 라면 : 7000

부산역 포장마차 떡라면외 :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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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낙남정맥 자료

대청리-3.2-장유사-1.1-용지봉(745m)-1.9-상점령-2.5-불모산(802m)-5.8-굴암산(663m)-2.3-너더리고개-1.8-두동고개-1.6-보배산- 3.1-장고개-4.6- 봉화산- 3.2-녹산보건소

 

창원 성주동 유니온빌리지-삼정자동마애불(돌아나와) -2.5km-상점령삼거리()-2.5km-용지봉(접속1시간30)

 

갈때

조치원역 18:18 -창원중앙역 22:11 불모산저수지 약8km)

창원중앙역 ~창원 성주동 유니온빌리지, 성주프리빌리지2(대순진리회)(택시 10000) 7km

조치원 ~구포 : 23:23~02:53 19200 ,

부산 서부터미널 ~진례,진영 가는 버스(장유경유함) : 6:15, 6:30등 약20분 간격 1900

장유 우체국앞(우측으로 길건너 110m)~창원 가는 59번 타고 대청계곡(장유사)에 하차 하면 됨(40)

 

올때

녹산배수지~하단역 : 강서구9-1(성산) 1070 30, 220,221번좌석(성산농협) 1700, 55(성산농협) 1200, 58(성산다리) 1200 27

하단역 ~부산역(11개역) : 33분 소요 1500

부산~조치원 : 14:10~17:58, 15:40~19:25, 18:25~22:12, 19:01~22:45 20200 19:40~23:02 30100

부산~오송:19:00~20:48,20:00~21:43,20:30~22:23,21:00~22:54 42200, 20:45~22:59(구포경유) 34900

 

매일 정기 버스정류장 -하단역 버스정류장 버스비 1200

하단역 ~부산역 : 환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