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0611 익산 미륵산429.6m -용리산307m -용화산342m 2012.2.14.화요일 흐린후 맑음

익산 미륵산429.6m -용리산307m -용화산342m

2012.2.14.화요일 흐린후 맑음

참석인원 : 적막과 함께

 

 23:40 -조치원역 0:00~0:13 -여수역 3:49~5:10 -익산역 7:00 ~7:40(아침식사) -버스정류장7:45 ~8:12(41 1200) -황등 -삼기 -미륵사지 8:45~9:40(미륵사지관람) - 과학고위 등산로 초입 9:45 -능선삼거리의 이정표 10:03 -사자암 10:15 ~10:25 -1등산로 합치점 10:33 - 1분후 전망대 -삼각점있는 바위 10:43 -미륵산 정상 장군봉 10:52 ~11:00 -우재봉 11:05 -수구문 11:30 ~12:05(휴식 및 점심 대용식) -아리랑고개(다듬재) 12:15 -우측 길 12:18 -용화산 2-2 우측길 12:23 -좌측길(0.98km 지점) 12:31 -용리산,용화산 삼거리 12:47 -선인봉,용리산 갈림길 12:50 -선인봉쪽 군부대 표식 있는 봉 12:55 ~13:05 - 다시 선인봉,용리산 갈림길 (3-11선인봉쪽,4-11용리산쪽) 13:09 -용리산(갈림길에서 약 300m) 13:15 -다시 선인봉,용리산 갈림길 13:21-용화산,아리랑고개 삼거리 13:22(용리산 약 400m) -1-16 3.2km 지점 봉(군부대 경고문) 13:32 -용화산 정상 13:43 -13:55 -세멘포장길(산소) 14:17 - 도천리버스정류장 14:29 -구룡마을 14:46 -금마,사자암 미륵사지 삼거리 버스정류장(종평삼거리) 14:57 ~14:59 -익산역앞 버스정류장 15:40 ~15:55 -익산역 16:00 -익산역 16:21 -조치원역 17:55 -청주 18:20

~~~~~~~~~~~~~~~~~~~~~~~~~~~~~~~~~~~~~~~~~~~~~~~~~~~~~~~~~~~~~~~~~~~~~~~~~~~~~~~~~~~~~~~~~

미륵산 430m

고대유적 품고 있는 익산시 명산

철도산행 취재를 떠나기 3일 전 서울에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다. 기습적으로 눈 폭탄을 맞은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인도에서도 러셀을 하며 길을 뚫어야 하여야 한다. 요 며칠간 서울은 그야말로 마감기간 기자의 어지러운 책상과 같았다.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을 하며 플랫폼으로 내려가는데 마침 광주행 KTX가 매끈하게 돌진해 들어오며 잡다한 상념을 ''하고 걷어차 버린다. 열차에 오르니 한국철도산악구조대 김윤수 대장과 이효기, 오병건 부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어이, 윤 기자. 잘 지냈어? 눈 많이 와서 고생했지? 걱정 하지마! 오늘은 따듯한 남쪽 나라로 갈 거니까."

눈 때문에 고생한 것은 자신이었을 텐데도 오히려 밝은 표정이니 나도 그 기운에 전염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 덮인 시골풍경이 차창 밖을 가득 채운다. 객실 바깥 설경이 도시의 그것과는 달리 시원스럽다. 철도여행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체했던 속이 풀리듯 몸이 가뿐해진다.

서울을 출발한 지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아 익산역에 도착한다. 들머리인 다듬재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일행이 5명인지라 기사와 흥정을 해야 했다. 결국 2만원에 오케이! 짐짝처럼 몸을 구겨 넣고 들머리 다듬재로 이동한다.

전북 익산의 미륵산은 430미터의 낮은 산이다. 봉우리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봉 이라고도 불린다. 익산평야를 내려다보며 당당한 자태로 솟았다. 익산 시내에서 가까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으며 유명한 미륵사지가 있어 익산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이다. 또한 용화산, 천호산과 이어지며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실질적인 금남정맥'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아이고, 익산도 눈 많이 온겨!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내린 적 없었당께요!"

택시기사가 과장이 섞인 듯한 말투로 엄살을 떤다. 서울처럼 많이 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웬만큼 쌓인 것을 보니 여기도 폭설의 영향을 받았나 보다. 다듬재로 향하면서 공수부대의 훈련장 옆을 지난다. 검은베레의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금세 뛰쳐나올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눈 덮인 금마저수지는 너무 평화스럽고 예쁘다.

익산역을 출발한지 20분 만에 다듬재에 도착한다. 특별히 볼 것 없는 야트막한 고개다. 미륵산 등산로 정비계획을 알리는 표지판 옆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왼쪽은 군부대 훈련장인 듯 철조망이 쳐져 있다. 눈은 벌써 많이 녹아 바닥에만 얇게 깔려 있다. 더러는 녹다가 다시 얼어 미끄럽기도 하다. 눈꽃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눈이 많이 쌓인 것도 아닌 싱거운 길을 20분정도 오르니 미륵산성이 나온다.

고조선의 왕 기준이 성을 쌓았다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불린다는데 복원한 지 얼마 안 된 듯, 산성을 이루는 돌들이 하얗게 반짝인다.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미륵산 정상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제봉이다. 갈림길에서는 성벽의 두툼한 선이 미륵산 정상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행은 오른쪽 우제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성 위로 오르면 건너편 용화산과 산북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상큼한 겨울공기가 와락 안겨든다.

   "에이, 이거 뭐야! 서울에 눈 많이 와서 단단히 준비하고 왔는데 날씨까지 따뜻하잖아!"

   "그러게요. 겨울 철도산행 하면서 이렇게 포근하기는 처음이네요"

   "아이고, 덥다 더워!"

서울보다 남쪽이라 그런지 확실히 날이 따듯하다. 일행은 각자 한 마디씩 던지며 두꺼운 옷을 한 꺼풀 벗어버린다. 10분쯤 더 올라 무덤이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쉰다. 위로 우제봉과 미륵산 정상이 보인다. 뒤쪽으로 낭산리 채석장과 용화산 너머 천호산까지 잘 보인다.

우제봉에 오르니 11 30. 들머리에서 50분쯤 걸렸다.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주릉은 오른쪽 통신탑을 거쳐 심곡사 방향으로 이어진다. 남서쪽을 바라보니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가 경상도 부분만 가린 채 모습을 드러낸다.

미륵산을 소개하던 택시기사의 말대로 '잠깐 올라가기에는 운동이 되는 산'이다. 산행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숨이 차다. 취재진은 우제봉에서의 조망이 부족했던 모양인지 바로 옆에 솟아있는 미륵산 정상을 향해 쉬지도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길이 여기저기로 갈리지만 곧 다시 만난다. 10분 오르니 미륵산 정상이다. 넓은 평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서남북 막힌 곳이 없어 넓은 정상 이쪽저쪽을 오가며 주변 조망하기에 바쁘다. 서쪽으로 익산시의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평야 위로 덮인 엷은 안개 속에서 함라산 줄기가 솟아올라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동남 방향에서는 뚜렷한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정상에서 지휘를 하며 한반도 모양 만들기 공사를 한 것처럼 지도와 꼭 닮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동네가 이렇게 평화로우니 먹을 것이 풍족한 거야. 그러다 보면 인심도 좋아지는 거지."

김 대장을 시작으로 일행들은 각 지역별 음식얘기부터 풍습, 지형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충북 괴산이 고향인 김윤수 대장, 경남 합천의 이효기 부대장, 경기도 용인 출신의 오병건 부대장. 셋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이기도 하지만 출신지역이 달라서인지 이야기는 쌓이고 쌓여 산이라도 이룰 것 같다. 낭산면, 금마면, 심기면에 걸쳐 쌓이고 쌓인 미륵산 처럼...

하산하는 길이 미끄럽다. 벌러덩 넘어질 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조심조심 5분쯤 가니 전망대다. 멀리 익산시까지 내려다보인다. 중간에 사자사도 들른다. 절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그냥 내려가려는 사람들을 붙잡아 자연스럽게 사자사로 안내한다. 절 이름이 호랑이를 닮은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와 연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무관. 미륵사 창건의 계기가 된 곳이라고 하니 괜히 혼자서 얼굴 붉어진다.

   "미륵사지로 가려면 어느 쪽이 더 빠릅니까?"

   "약수터 방향으로 가나 과학고 방향으로 가나 비슷한디요. 오늘 길이 미끄러우니 계단 많은 과학고 방향으로 내려가쇼잉~."

내려가는 능선 오른쪽으로 미륵사지와 동탑, 보수 중인 서탑이 보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옛 절지답게 그 터가 축구장만 하다. 미륵사지의 창건 설화와 연관된 '서동요'를 빠뜨릴 수 없다. 미모의 공주를 아내로 삼기 위해 지었던 노래. 그 이야기가 비록 서탑의 출토 유물로 진실성에 금이 갔지만 어여쁜 여인에게 프러포즈 하는 방법이 참으로 기발하지 않은가?

   "윤 기자, 노래는 잘해? 그 거라도 잘 해야 장가를 잘 가지!"

   길이 미끄러워 엉금엉금 30분쯤 내려가니 널찍한 임도다. 그 길을 따라 10분 더 가면 연수원과 미륵사지로 가는 갈림길이다. 곧바로 직진해 미륵사지유물 전시관 방향으로 내려간다.

   

*산행길잡이

다듬재-(20)-미륵산성-(30)-우제봉-(10)-미륵산 정상-(20)-사자암-(30)-삼거리-(10)-미륵사지 유물전시관

 

다듬재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미륵산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금마면쪽에서 고개 정상을 오르면 왼쪽으로 초입이 보인다. 미륵산 등산로 정비계획을 알리는 표지판 왼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완만한 등산로 왼쪽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20분 정도 올라가면 미륵산성이다.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미륵산 정상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제봉 방향이다. 성벽 위로 올라가 걸으면 조망이 제법 좋다. 미륵산성에서 우제봉까지는 30분 거리. 우제봉에서 다듬재 방향으로 등지고 왼쪽으로 미륵산 정상이 보인다. 오른쪽 통신사 송신탑을 거쳐 심곡사로 이어진다. 여기서 미륵산 정상까지는 10. 가는 도중 길이 여러 갈래로 갈리지만 어느 쪽으로 가든지 정상과 만난다. 하산하는 길도 여러 코스가 있지만 대부분 전북과학고나 냉정약수터 방향으로 하산한다.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지만 눈이 내려 미끄럽다면 나무계단이 많은 과학고 쪽이 좋다. 정상에서 50분 정도 내려가면 과학고와 미륵사지 방향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오른쪽 미륵사지를 따라 하산한다. 미륵산 산행은 2~3시간 걸린다.

   *교통

용산에서 출발, 익산역까지 가는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자주(05:20~23:10) 있으며 KTX 2시간 걸린다.

동서울종합터미널(ARS 1688-5979)에서 익산까지는 군산행 직행버스가 매시(07:30~18:30) 있다. 요금 12,400. 3시간 걸린다.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는 익산까지 1시간(06:30~20:30) 간격으로 출발한다. 요금 11,000.

익산역 앞에서 다듬재까지는 60-2번을 타고 금마터미널 지나 산북리 가기 전 고개에서 내리면 된다. 요금 1,200. 30분 걸린다.

익산역에서 다듬재까지 택시요금은 20,000원 안팎이다. 20분 걸린다.

승용차로는 호남고속국도 익산나들목으로 나와 720번 지방도를 따라 금마방향으로 간다. 금마저수지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첫 고갯마루가 다듬재다.

   *잘 데와 먹을 데

금마면 동고도리에 여관과 모텔이 많다. 미륵사지 앞에도 모텔이 있다. 드라마모텔(063-831-1313), 미륵파크(831-2260), 미륵여관(836-6772), 마한여관(836-7272).

 미륵사지 유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앞에 순두부로 유명한 식당이 모여 있다. 마순두부찌개로 유명한 미륵산순두부(835-7400), 내고향순두부(836-7660)는 양배추 겉절이와 두부 한 모가 3,000원이다. 익산시내에는 막걸리집이 많다. 막걸리 3병에 18,000. 안주가 무료인데 매운탕부터 석화구이, 빙어튀김 등이 풍성하다.

   *볼거리

미륵사지와 유물전시관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현재 이곳에는 석탑의 동탑과 당간지주가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데, 국보 제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서탑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던 뒤쪽면의 보수를 위해 해체, 복원작업 중이다.

현재 미륵사지에는 탑을 완전 해체 후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해체 복원작업은 2014년까지 계속된다. 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매주 월요일과 11일은 휴관한다. 063-290-6799. http://www.mireuksaji.org 미륵사지유물전시관.

 

보석박물관 왕궁보석 테마관광지 안에 위치하며 2002 5월 개관했다. 세계적 수준의 보석박물관으로서 진귀한 보석과 원석 1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우리나라 왕조별 복제유물,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보석의 정의와 역사, 관련된 과학 이론과 산업 등 각 주제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별관에는 화석전시관이 있어 공룡모형과 화석 등을 볼 수 있다. 관람시간 10:00~18:00, 관람료 일반 3,000, 어린이 1,000. 매주 월요일과 11일은 휴관일이다. 063-859-4641. http://www.jewelmuseum.go.kr 익산보석박물관.

 

용화산(341m)

익산 시민의 가족 같은 산

백제의 무왕이 된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간직한 미륵산. 그곳에 서면 서동을 바라보는 선화처럼 미륵산을 바라보는 용화산을 만날 수 있다.

 

아리랑고개(다듬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미륵산과 용화산은 원래 하나의 산으로 용화산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미륵사가 창건된 이후 미륵산과 용화산으로 나뉘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미륵산을 용화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비록 낮은 산이지만 이곳 익산에서는 사람들의 휴식을 도와줄 첫번째 산이기도 하다.

 

산행은 대부분 서동공원에서 시작한다. 아리랑고개를 들머리로 잡기도 하지만 그곳은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어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서동공원 꼭대기에는 2008년 개장한 마한관이 있는데, 건물 오른쪽에 있는 나무계단을 올라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아이들 손을 잡고 삼삼오오 소풍을 나온 가족산행팀이 많이 보인다.

 

붉은 황톳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곧바로 공동묘지가 나온다. 볕 잘 드는 양지에 자리한 공동묘지는 공포영화의 풍경처럼 을씨년스럽지 않다. 밝은 등산복 차림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르는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는 공동묘지를 호러영화 배경이 아닌 명랑만화 분위기로 바꿔놓는다.

 

평탄하던 산길은 잠시 폭이 좁아지다가 야트막한 솔숲으로 이어진다. 몇 해 전엔 보지 못했던 빨간색 구조푯말이 길옆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큰 산에서만 사고가 나란 법은 없으니, 이런 세심한 배려가 나쁘지 않다.

 

221봉에 올라선다. 발밑에 놓인 삼각점이 아니었다면 봉우리인지 몰랐을 평범한 능선상의 작은 언덕, 볼만한 풍경하나 없으니 서둘러 지나치고 산행 시작 40분만에 동서로 전망이 트인 헬기장으로 올라선다. 왼쪽으로 미륵산과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금마저수지, 오른쪽으로는 용화제와 왕궁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헬기장을 지나면 오른쪽 능선에서 오르는 산길과 합쳐진다. 대동금남정맥을 만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대간과 정간, 정맥의 개념은 조선시대 신경준이 지은 <산경표>란 지리서에 나온 내용이다. 산자분수령을 기초이론으로 삼은 이 지리서에서 금강 남쪽으로 따라 흐르는 금남정맥 산줄기는 금강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부여의 부소산에서 멈추고 만다. 하지만 <대동여지도>의 금남정맥(대동금남정맥)은 용화산과 미륵산을 거쳐 금강하구둑까지 산과 물이 함께 뻗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작은 함께하지만 끝이 다른 두 개의 정맥 중 어느 것이 올바른 길인지는 직접 걸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울타리가 쳐진 봉분 하나를 지나면 철조망과 푯말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변에 있는 군부대 사격장에서 세운 것으로 혹시 모를 오발탄의 위험 때문에 돌아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왼쪽 능선 아래가 사격장이니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 능선 아래로 우회한다.

 

미륵산성을 비롯해 정비가 진행 중인 미륵산과 달리 용화산은 정상석 하나 변변히 없다. 하지만 조망은 미륵산에 견줘 전혀 뒤지지 않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리랑고개 너머 우뚝 솟은 미륵산과 보디가드처럼 든든하게 미륵산 허리를 감싼 미륵산성이다. 미륵산성은 고조선시대 기준왕이 내려와 쌓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고려 태조가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석꾼과 만석꾼이 즐비했다는 익산의 풍요로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인데, 한편으론 일제 수탈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했던 슬픈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내려서면 2m 남짓의 돌탑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으로는 아리랑고개, 정면으로는 용리산과 선인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다. 용리산 갈림길은 돌탑에서 내려서면 금세 나타난다. 표식은 없지만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선인봉, 오른쪽은 용리산 방향이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구간과 달리 이곳을 찾는 산꾼들은 거의 없다. 나무에 매달린 독도법 교육재료와 각종 푯말, 흔적들로 쉽게 들어서기 꺼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능선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산길에 낙엽만이 선인봉까지 따라온다. 내산마을과 석교마을로 내려서는 사거리를 지나 한 차례 얕은 오름짓을 하고나면 선인봉이다. 북쪽으로 조망이 뚫려 용화산에서 보던 넓은 평야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선인봉에서 내산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고 쌓인 낙엽은 미끄럽다. 안전에 유의하며 임도가 있는 곳까지 내려온다. 준비운동을 끝내고 본 게임을 치루기도 전에 마무리 운동을 하는 느낌처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집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싣는다.

 

*산행길잡이

서동공원-(20)-221-(25)-헬기장-(15)-용화산-(40)-선인봉-(35)-외산마을

익산 지도를 구할 수 있다면 한번 보라. 돌산(81m), 남당산(50m), 매봉산(32.5m), 우두머리산(19m)  100m도 되지 않는 수많은 산이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342m의 용화산은 익산시민들에게 더욱 소중하다.

이정표가 없지만 산굴이 단순해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능선상에서 식수를 구할 수 없지만 코스 자체가 짧다보니 특별히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해빙기에 땅이 녹으며 진흙탕이 되는 구간이 있으니 미끄러짐에 조심해야 한다.

서동공원에서 선인봉을 거쳐 날머리까지 약 7km의 산길은 특별히 어려운 코스가 없다. 다만 용화산에서 다듬재 갈림길을 지나 선인봉, 용리산 갈림길은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륵산이 가파른 능선, 각종 돌, 바위가 존재한다면 용화산은 완만한 능선과 부드러운 흙길이 특징이다.

용화산 단독 산행이라면 서동공원 원점회귀나 서동공원~아리랑고개 코스가 주요 등산코스며, 조금 길게 코스를 잡고 싶다면 용화산~아리랑고개~미륵사~미륵사지로 내려오는 코스나 선인봉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적당하다.

 

*교통

KTX가 지나는 익산은 교통의 요충지다.

용산에서 출발하는 KTX와 새마을호, 무궁화호까지 하루 50(05:20~23:10) 이상 운행한다. 센트럴시티터미널 호남선에서 출발하는 익산행 고속버스는 20~30분 간격(05:30~22:30)으로 있고 남부터미널에서는 18(06:30~20:30, 8500), 동서울터미널에서는 12(07:30~18:30) 다닌다.

 

*잘 데와 먹을 데

금마면 동고도리에 여관과 모텔 등이 있고, 미륵사지 앞에도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드라마모텔(063-831-1313), 미륵파크(831-2260).

 

미륵사지 근처에 있는 미륵산순두부집(835-7400)이 소박하지만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익산시내에서는 북부시장 근처에 위치한 북부생선(843-1181)도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에 얼큰한 생선탕이 일품이다.

 

*볼거리

미륵사지와 유물박물관 미륵산 아래 위치한 미륵사지와 유물박물관은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미륵사지는 백제시대의 절터로 백제 무왕 때 지어져 조선 중기 경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석탑과 당간지주가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데, 국보 제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석탑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 최대의 석조건축물이다. 현재는 탑 복원공사 중이다. 해체 후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어 탑의 건축과정을 알 수 있다. 미륵사지 한쪽에는 백제, 마한 시대 등의 유물들이 전시된 유물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익산보석박물관 왕궁보석테마관광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금관 등 유물들과 보석의 원료가 되는 대형 원석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각종 진기한 보석들을 볼 수 있다. 옆 건물엔 공룡모형과 각종 화석 등이 전시되어 있어 휴일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이 찾는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관람시간은 10:00~18:00, 성인 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063-859-4641.

 

 

익산 미륵사

금마면 용화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미륵사터는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무왕 2)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한층 유명하지만 부서진 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몇몇 유구(遺構)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발굴작업을 마치고 잘 정리를 해놓은 광활한 절터를 걸으면서 옛 절간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것 자체가 현재와 과거, 개인과 역사가 만나는 일이 될 수 있다. 일제에 의해 시멘트가 쳐발라졌던 그 유명한 미륵사 탑(서탑, 국보 제11)은 지금 해체 복원 중이라 거대한 천막에 가려져 있으며, 수년 전 복원된 동탑은 아직 세월의 때를 묻히지 못해 제법 생뚱스런 모습으로 절터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미륵사 박물관까지 둘러본 뒤, 그래도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절터를 내려다보고 있는 뾰족산 용화산에 한 번 올라 볼 일이다. 높이가 4백 미터를 겨우 넘으니 오르는 일도 어렵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의 세상이 다한 뒤, 이 세상을 새롭게 제도하는 부처가 미륵이다. 질병도 고통도 없는 그 영화로운 미륵 세상의 이름이 곧 용화세계이다. 수천 년 세월 동안 우리네 민초들이 미륵을 받들면서 미륵 오시는 때를 기다린 것도 모두 현재의 고단과 간난 때문이었다. 용화산 아래 대가람 미륵사가 앉았고, 머지 않은 모악산 품에 미륵 전당 금산사가 안긴 것만 봐도 이곳 익산 김제는 미륵신앙의 홈그라운드가 되는 영험스런 땅이다. 산 정상 우제봉 언저리에는 미륵산성이 있으며 그밖에 등잔암, 투구바위 등 볼거리가 있으며, 안질에 특히 좋다는 약수터며 사자암, 심곡사 같은 작은 절들도 있다. 미륵사 터를 출발하여 약수터를 지나 정상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된다.

 

전북 익산에 있었던 미륵사는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그 후에 괴이한 전설이 생겨서 나돌았습니다.

 

미륵사가 한창일 때는 스님들이 1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륵사 스님들은 하나같이 여색을 밝혀서 절 앞을 지나가는 여자들을 그냥 두는 법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가까운 마을의 어떤 사람이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는데, 볼일이 있어서 자주 그 절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스님들이 딸을 고이 보내줄 것 같지 않아 고심하고 있던 차에 한 풍수가 나타나서 비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비법인즉-미륵사 주지는 천년 묵은 쥐인데, 고양이를 절 입구에 몰래 묻으면 절이 망한 다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풍수가 시킨대로 했더니 주지가 죽고 절이 망했습니다.

      그때 고양이를 묻었다는 (괭이)무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 숭유배불시대에 불교를 탄압하고 부녀자들이 절에 못 드나들게 하기 위해 유림(儒林)들이 지어낸 전형적인 왜곡 전설이지요.

서동과 선화 공주의 사랑 이야기

백제 익산 땅에서 살던 서동(薯童, 마 캐는 소년)은 당대 최고의 미인인 선화 공주의 사랑을 얻는 게 소원이었다. 그는 경주로 가서 저잣거리 아이들을 얼러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도록 했고, 신이 난 아이들이 밤낮으로 거리를 휩쓸며 불러대는 통에 일약 신라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러자 선화 공주나 아버지 진평왕은 대단히 난처해졌다. 가사가 서동과 선화 공주가 연인임을 암시하고 있어서 존엄한 왕실의 체면을 구겼기 때문이다. 진평왕은 할 수 없이 선화 공주를 궁중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잣거리에서 불리던 노래와 그로 인해 불거진 헛소문 때문에 애지중지 키운 딸을 내치는 부모가 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게다. 아마도 진평왕은 소문이 커지자 소문의 진원지인 서동을 궁중으로 은밀히 불러서 한번 만나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젊은 친구가 보통이 아니어서 그의 두둑한 배짱과 범상치 않은 성격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 다음 진평왕은 선화 공주를 궁중에서 내보내 귀양 보낸다. 그렇게 내치면 둘이 저절로 만나 결혼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진평왕의 계획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서동은 귀양길을 호송해 주겠다면서 자연스레 선화 공주를 찾아갔고, 그 길로 고향인 익산으로 함께 내려가 소원대로 선화 공주와의 결혼에 성공했다

 

무왕과 선화 공주의 발원으로 세워진 미륵사

 

삼국유사에는 서동의 드라마틱한 청년 시절 이야기 외에 후일담도 실려 있다. 서동은 이처럼 탁월한 지략과 두뇌를 바탕으로 왕위에까지 올랐고, 불심

이 돈독한 두 사람은 종종 함께 익산의 용화산 정상에 있는 사자사를 찾곤 했다. 서기 600년의 어느 날, 무왕과 선화 공주가 여느 때처럼 사자사로 향하는 도중 용화산 입구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솟아 나오는 이적이 일어났다. 감동한 선화 공주는 무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울 것을 부탁하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미륵사다. 일연 스님은 이 미륵사의 규모를 금당과 탑, 그리고 회랑을 각각 세 곳에다 지었다(殿塔廊 各三所創之)”라고 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왕과 선화 공주의 발원으로 세워진 미륵사는 미륵 신앙의 성지로서 고려시대까지 이 땅의 대표적 도량으로 법등을 이어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선시대 중기 무렵쯤에는 탑이나 당간지주 같은 석조물만 남은 채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황무지처럼 버려졌다. 탑도 앞서 말한 것처럼 본래는 9층탑 세 개가 있었으나 언제인가 동탑과 중앙탑은 뿌리까지 없어져 버렸고 드넓은 절터에는 서탑만 외롭게 서 있는데 그나마 조선시대에 꼭대기가 무너져 버려 지금은 6층만 남아 있다. 17세기의 선비 강후진이 쓴 기행문 와유록 나이 지긋한 촌로가 미륵사 탑에 올라가 비스듬히 누운 채 곰방대를 뻐끔뻐끔 물고 있더라는 얘기가 있다. 목가적 풍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역사의 무상함을 전해주는 스산한 겨울 풍경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천 년의 영화는 간곳없고 절터만 남았어도, 미륵사는 동양 최대의 석탑이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 자리한 곳으로 미술사와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는 꼭 가보아야 할 성지처럼 인식된다. 게다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발굴을 통해 방대하고 다양한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우리 불교문화사를 한층 풍성하게 해준 황금 어장이자 보물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1, 미륵사지 서탑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사리장엄이 나왔다. 유물들의 면모가 금제 사리호, 은제 사리합 등 하나같이 국보급인 데다가, 무왕 때 봉안된 것이 틀림없어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건만 씁쓸한 뒷말들이 나와 개운치만은 않았다. 논란의 발단은 사리장엄 중 하나인 금판 앞뒤로 새겨진 글씨 중 특히 다음과 같은 부분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我百濟王后 佐平沙?積德女 種善因於曠劫 受勝報於今生 撫育萬民 棟梁三寶 故能謹捨淨財 造

 

立伽藍 以己亥年正月卄九日 奉迎舍利

이 글의 핵심은 한마디로 639년 왕후인 백제 사택 씨의 딸이 사리를 봉안했다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600년에 선화 공주의 발원으로 미륵사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달라 보인다. 이 때문에 삼국유사의 기록을 심각하게 부정하는 주장이 나오고, 심지어는 고대 국경을 뛰어넘은 숭고한 연가인 백제 왕자 서동과 신라 공주 선화의 사랑 이야기는 하루아침에 허구가 되어 버렸다. 기존의 무왕 관련 서동요 전설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삼국유사를 아끼고 일연 스님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불교문화의 금맥인 삼국유사하지만 금판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삼국유사의 기록이 부정될 이유는 없다. 미륵사 창건 연도가 600년에서 639년으로 바뀐 것은, 미륵사처럼 대규모 사찰이 불과 몇 년 만에 완성될 리가 없으니 일연 스님이 말한 600년이란 착공 연도이고 금판에 나온 639년은 그 완공 연도로 볼 수 있다. 미륵사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부여 왕흥사만 해도 35년 만에 완성되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또 왕후가 백제 사택 씨의 딸로 적혀 있다고 해서 선화 공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 미륵사가 완공된 것은 처음 선화 공주가 발원했던 때보다 무려 39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선화 공주가 스무 살에 무왕과 혼인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때는 이미 환갑을 바로 앞둔, 당시로서는 고령의 나이였다. 그런즉 금판에 그녀의 이름이 빠져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또 당시 적대 관계였던 백제와 신라가 왕실 간 혼인을 할 수 있을 상황이 아니라며 일연 스님의 기록 자체를 허무맹랑한 짓으로 돌리려는 말도 그 자체가 맹랑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493년에 백제의 동성왕과 신라 이찬(伊飡) 비지(比智)의 딸이 결혼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무령왕의 부인 역시 신라 지증왕의 딸일 가능성이 있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는 만큼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옛 사람들은 애독서를 수택본(手澤本)이라고 불렀다. 좋아하는 책을 한복의 풍성한 소맷자락 안에 넣어 두고서 어디서든 틈나면 꺼내 읽느라 겉표지가 반들반들해졌다는 뜻이다. 나 역시 거의 30년 전부터 삼국유사를 읽고 있으므로 나의 수택본은 삼국유사인 셈이다. 지금도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올려지곤 하니, 나로선 이 책이 우리 불교문화의 금맥처럼 느껴진다. 우리 학계에서는 불교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조건 역사가 아닌 설화로 보려는 악습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설화는 설화일 뿐이라며 삼국유사 이야기를 부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일연 스님이 이건 설화처럼 써야지!’ 하고 무왕과 선화 공주 이야기를 삼국유사에 허구로 썼겠는가. 당시까지 전해지던 사실을 애써 모아 후세에 전해준 것이건만 오늘의 우리는 그 노고를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흠잡으려고만 드니, 무왕과 선화 공주는 물론이고 일연 스님은 또 얼마나 섭섭해 할까.

 

익산 심곡사

심곡사는 사찰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시대에 무염대사(無染大師)가 수도할 장소를 찾던 중 미륵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절을 세움으로써 심곡사(深谷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심곡사가 위치한 미륵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 서동(薯童)왕자인 무왕(武王)이 백제의 부흥을 꿈꾸며 세웠던 미륵사가 자리잡은 곳이기도 하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와 함께 미륵산을 찾아가는 도중에 미륵삼존(彌勒三尊)을 알현하고 창건하였는데, 심곡사가 창건될 당시에도 상당한 규모의 거찰로 사격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륵산 일대가 미륵신앙의 도량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미륵사는 폐사되어 창건 당시의 석탑인 미륵사지석탑과 통일신라 때 세운 당간지주와 초석만 남아있지만, 창건 당시 소규모의 가람으로 출발한 심곡사는 그 법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 하다.

 

관람포인트

1. 심곡사는 최근에 미륵대불을 봉안함으로 미륵도량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2. 단출한 사찰이지만 칠층석탑과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좌상 및 권속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옛 도량의 면모를 말해주는 듯하다.

 

위치

심곡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176번지 미륵산 기슭의 장암마을 위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063-855-2001)

 

찾아오는 길

자가용편호남고속도로 익산IC에서 빠져나와 720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익산으로 접어들면 약 5km 지점에 금마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우회전하면(1km 정도) 금마읍이다. 금마읍을 지나 722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미륵사지 방향으로 가다보면 종평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낭산방향으로 약 5km 가면 장암마을이 나온다. 심곡사는 장암마을 안쪽 미륵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을에서 절까지의 거리는 대략 1km 남짓이다.

 

대중교통편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함열역익산역 또는 익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나 버스편을 이용하면 된다. 함열역 부근에서는 거리가 다소 가까운 편이므로 택시를 타는 것도 좋으며, 익산역 또는 익산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할 경우에는 터미널에서 낭산장암마을행(30, 60-2) 버스을 타야 하며 배차간격은 2시간에 한 대꼴이다

~~~~~~~~~~~~~~~~~~~~~~~~~~~~~~~~~~~~~~~~~~~~~~~~~~~~~~~~~~~~~~~~~~~~~~~~~~~~~~~~~~~~~

 

익산역 7:00 ~7:40

오후에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산행준비를 하여 조치원역으로 이동을 한 후 여수로 가는 막차에 승차를 한다. 적막님은 천안에서 승차를 하여 이미 취침에 들어갔다.

나도 옆에 자릴 잡고 취침에 들어간다. 오늘은 순천에서 벌교로 이동을 하여 고흥반도 첫머리에 있는 첨산,두방산,병풍산을 한바퀴 돌아볼 예정으로 길을 떠난다. 하지만 순천부근에 이르러 살며시 잠에서 깬 나를 보고 적막님이 준비성이 없다고 질타를 한다. 얼마 전 구입한 비싼 휴대폰을 드리대며 지금 비가 오고 있다고 하며, 오기 전에 확인을 해봤냐고 하니 에고 난 비올 것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차창을 보니 빗줄기가 유리창에 부딪쳐 떨어진다. 우짤꼬나 큰일이다. 일단 여수까지 향하며 날씨 검색을 하니 남원부근까지 비가 온다고 한다. 익산날씨를 보니 그곳은 흐리기만 한다고 한다. 여수역에 도착을 하여 대합실에서 기다리며 밖을 나가 보니 산행하기엔 어려운 날씨다. 겨울비 맞고 산행하기란 쉽지가 않다. 여수역 대합실을 이리저리 뒤지며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벽에 붙은 안내도까지 훍어 본다. 1시간 20분이 지난 후 우리는 첫차로 익산으로 향한다. 곡성 남원을 지날 때도 비는 계속된다. 잠시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니 전주역이다. 비는 오지 않는다. 익산역에 도착을 하니 7시다. 익산역 앞에서 도로를 건너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씩 사서 전자랜지에 뜨겁게 데워서 아침식사를 한다.

 

미륵사지 8:45~9:40(미륵사지관람)

익산역 앞에서 아침식사를 대충마무리 하고 버스를 타려고 하니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르겠다. 역 앞 길 건너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보니 인력시장이다. 그곳의 젊은 친구들에게 미륵사지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으니 익산역 좌,우로 있는 버스정류장 어느 쪽으로 가든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일단 익산역에서 보아 좌측편 즉 북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시간을 보니 이곳에서 미륵사지 가는 버스노선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도착하는 버스기사님에게 물으니 이곳에서는 미륵사지 가는 버스가 없고 익산역 정면으로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41, 60번 버스를 타라고 알려준다. 미륵사지로 가는 버스는 익산역에서 보면 삼거리다. ,, 정면의 세갈래길 중 정면으로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승차를 해야 한다. 익산역 삼거리에서 정면으로 약 50m 지점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시간표를 보니 41번은 8 12, 60번은 8 18분이다. 먼저 오는 41번 버스를 타고 가니 북부시장, 원광대학교, 황등,삼기를 거쳐 미륵사지 앞까지 약 40분후 도착을 한다.

 

과학고위 등산로 초입 9:45

미륵사지에 도착을 하여 미륵산에 오르려니 갑자기 바꾼 산행인지라 지도도 준비를 못했고 해서 운동복을 입은 사람에게 미륵산 오르는 길을 물으니 미륵사지 정문을 바라보아 좌측편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가라고 알려준다. 일단 미륵사지 안을 관람하려고 정문에 다가 가니 입장료가 무료라고 되어 있다. 미륵사지 앞으로 들어가 커다란 전시관으로 들어가 잘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면서 청원경찰아저씨에게 다시 한번 길을 더 물으니 자세히 알려 준다. 처음 알려준 코스는 오르기 쉬운 등산로 이며 교육원쪽 등산로는 계단이 많아 어렵다면서 동탑이 있는 곳 뒤로 쪽문으로 나가면 된다고 알려 준다. 전시관을 나와 당간지주를 보고는 사방을 높다란 창고식으로 막아놓은 복원 공사현장으로 들어가니 가운데 탑이 있던 자리가 있고 주위로 이곳에서 뜯어낸 조각들이 놓여 있다. 벽면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복원공사현장을 나오니 위쪽으로 보이는 미륵사지터가 엄청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넓은 절터는 노란 잔디로 구역구역 조성을 하여 놓았다. 동탑으로 가는 중에 석등 하대석을 잠시 보고, 높다랗게 외로이 서있는 동탑으로 가 사진을 한 장남기고 빠져 나가니 고려가마터가 있고 옆으로 쪽문이 있다. 쪽문을 나가면 둘레길 이정표가 있다. 둘레길을 따라 가다가 밭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과학고위쪽 미륵산 산행초입에 닿는다. 이곳에는 커다란 미륵산 둘레길 안내도가 자리하고, 미륵산으로 오르는 널직한 등산로가 시작이 된다.

 

사자암 10:15

정비가 잘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9분 후 뜬바위(뜬바위2.4km, 미륵사지1.2km)로 가는 이정표가 있고 잠시 후 돌계단을 시작으로 철계단이 계속이어 진다. 계단을 따라 9분여 오르면 능선삼거리에 닿는다. 이정표에 연수원주차장 0.960km,정상0.980km가 적혀 있다. 능선삼거리에서 좌측 능선길 계단을 따라 오르면 10분후 사자암 100m가 적힌 이정표가 나온다. 산행초입부터 미륵산에 대해 여러 가지 애기를 해주던 지역 주민은 이곳에서 먼저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고 우리는 사자암으로 향한다. 이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2~3분 들어가면 사자암이 나온다. “서기 600년의 어느 날, 무왕(서동)과 선화 공주가 여느 때처럼 사자사로 향하는 도중 용화산 입구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솟아 나오는 이적이 일어났다. 감동한 선화 공주는 무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울 것을 부탁하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미륵사다. 일연 스님은 이 미륵사의 규모를 금당과 탑, 그리고 회랑을 각각 세 곳에다 지었다(殿塔廊 各三所創之)”라고 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사자암은 미륵사 보다도 오래된 사찰이 었다. 사자암 대웅전앞에서 내려다 보는 앞뜰이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여 좋다.

 

정상 장군봉 429.5m 10:52 ~11:00

사자암을 나와 오르면 미륵사지 북쪽 편에서 오른 제1등산로가 만나는 곳이 나온다. 이정표에 약수터 0.65km, 정상 0.390km, 연수원주차장 1.552km가 적혀 있다. 이곳부터 바위지대가 시작되며 1분여 오르면 사자암 뒤편으로 조망이 좋은 바위전망대다. 철재난간이 쳐져 있다. 산아래로 미륵사지 금마쪽 벌판이 펼쳐진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하얀바위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바위가 나온다. 잠시 이곳에도 올라본다. 아주 좋은 전망 포인트다. 조망은 조금 전 전망대와 같다. 여기서 철재 난간길을 따라 오르면 작은 삼각점이 있는 커다란 바위봉이다. 이곳 바위에 올라 보니 사방이 두루 두루 보이는 것이 좋다. 오늘 아랫 지방에는 비가 오지만 이곳에는 구름이 잔뜩 끼여 있어 날씨도 푸근하고 좋다. 우뚝선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두루 살피는 맛이 참 좋다. 이바위봉에서 조금 가면 장항교로 가는 방향표시가 있고 정상으로 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6~7분 후 미륵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에 닿는다. 장군봉에는 돌탑이 있고 그 가운데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삼각점이 있으며 정상석은 없다. 이정표 가운데 기둥에 거울을 달아 두어 이곳까지 올라 올때의 흐러짐을 가다듬고 하산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장군봉 정상에는 커피를 파는 작은 커피점이 있으며 미륵산성에 관한 이야기가 적힌 안내문이 있고, 아침운동을 하러 올라오는 익산시민들이 줄을 있고 있다.

 

우제봉 11:05

장군봉에서 보면 송신탑이 있는 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봉이 우재봉이다. 그 뒤로 송신탑이 몇 개 있는 능선이 보이며 그 아래로 심곡사가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은 올라오면서 귀동냥으로 들은 용화산까지 가보려 한다. 장군봉을 내려와 잠시 오르면 널직한 봉이다. 헬기장터 같기도 하다. 이 봉아래로 널직한 반석이 장군봉 쪽에서 보이나 이곳에 올라오니 보이지 않는다. 조금 이동을 하면 송신탑이 잘 보이는 지점이 있다. 이곳으로 오면서 장항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한군데 있다. 이곳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틀면 미륵산성을 따라 내려가 아리랑고개를 거쳐 용화산으로 가는 길이다.

 

수구문 11:30 ~12:05 (휴식 및 점심 대용식)

우재봉에서 내려오면 잘 쌓은 성이 나온다. 이성을 따라 내려오면 끝부분에서 우측으로 방향이 틀린다. 우측 끝 지점에서 성을 내려와 로프가 설치된 길을 따라 내려오게 된다. 이곳에서는 반대편 능선으로 까마득히 오르는 성곽이 보인다. 이성곽은 장군봉아래 까지 이어진다. 로프가 설치된길을 내려오면 계곡으로 미륵산성 안내문이 있는 수구문이다. 이곳으로 미륵산 둘레길이 연결이 된다. 구룡마을에서 이곳으로 올라, 장암마을로 연결이 된다. 장암마을 쪽으로 개울을 건너서 조금 가면 좌측으로 하얀 암반지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빵과 육포 커피등으로 점심식사를 간단히 한다.

 

아리랑고개(다듬재) 12:15

암반지대에서 돌아 나오면 우재봉에서 내려온 능선길과 만난다. 능선길을 따라 내려오면 9분 후 좌측 편으로 장암마을로 가는 둘레길이 빠지고 1분여 내려서면 차도가 있는 아리랑고개에 닿는다. 아리랑 고개는 다듬재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심곡사까지는 3.7km. 아리랑고개에서 길을 건너면 용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연결이 된다. 이곳으로 오려면 익산에서 60-2번 버스편을 이용하면 된다고 한다. 이버스는 우리가 익산역앞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릴 때 752분 도착한 버스로 금마 함열 함라가 적힌 버스였다. 일일 5회 다닌다.

 

용리산 13:15

아리랑고개에서 부터는 119구조판이 잘세워져 있다. 3분여 오르면 우측에서 올라온 길이 있고, 다시 5분을 더 가면 또 한번 우측(119 용화 2-2)에서 올라온 길과 만난다. 8분여 오르면 모처럼 좌측에서 올라온 길이 있다. 아리랑고개 0.98km 지점이다. 이곳에서 15분을 더 가니 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우측 길을 따라 가니 돌탑이 있는 곳에서 갈림길이 만난고 나뭇가지에 그쪽 방향으로 용리산표시가 걸려 있다. 멀지 않아 보이는 봉이 용리산 일것이라 생각하고 그쪽 방향으로 향하니 1분후 안부삼거리가 나온다. 아리랑고개 1.6km,용화산 1.0km 이정표가 있으며 번호가 틀린 빨간색 119구조표찰이 4개가 서있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119표찰 3-11,4-11번이 있다. 이 삼거리에서 많이 다닌 등산로는 좌측편인 3-11표찰 쪽이다. 이 길을 따라 가니 봉 가운데 군부대에서 설치한 소대장표식인 듯 표식이 세멘트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조금을 내려서다 아무래도 이 길은 아닌듯하여 휴대폰으로 지도검색을 하려니 잘 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 삼거리에서 4-11번 표찰 쪽으로 향하니 살짝 내려서다 한번 올라서니 봉이 나온다. 삼각점이 있고 작은 돌에 용리산이라 적어 놓았다. 처음부터 이곳 일것이라 하였건만 많이 다닌 등산로 쪽으로 갔다가 10여분 이상 시간을 허비하였다. 3-11번쪽 등산로는 선인봉으로 가는 길로 금남정맥길이다. 용리산과 용화산 동쪽편 아래쪽으로는 서동요 촬영장이 있다.

 

용화산 정상 13:43 ~13:55

용리산에서 선인봉 삼거리까지는 5분여 소요되며 약 300m 거리다. 이곳에서 다시 1분여 오면 아리랑고개 1.6km가 적힌 삼거리다. 이곳까지 약 400m. 조금 더 오르면 처음길이 갈린 돌탑이 있는 삼거리다. 대략 이곳에서 용리산까지는 왕복 1km쯤 잡으면 되겠다. 이곳부터 군부대 사격장 뒤로 철조망길을 따라 오르면 7~8분후 군부대 경고문이 있는 봉에 닿는다. 앞쪽으로 미륵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봉이다. 119구조목 1-6번 입구 3.2km가 적힌곳이다. 여기서 다시 완만한 능선을 따라 10분을 더 가면 용화산 정상에 닿는다. 용화산 정상에는 산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주위로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이정표에 아리랑고개 2.6km, 서동공원 2.6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지도가 없으니 가장 가까운 길을 찾다보니 조금 전 지나온 샛길이 생각나 그곳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자료를 정리 하다 보니 서동공원부터 시작하여 용화산 미륵산으로 향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금마터미널에서 서동공원까지는 대략 1km 정도의 거리이니 익산역 앞에서 41번 버스를 타고 금마까지 간 후 서동공원을 거쳐 용화산~용리산~미륵산으로 한바위 도는 코스가 좋을듯하다.

 

도천리 버스정류장

용화산에서 조금 되돌아와 샛길을 따라 내려오니 길이 가파르게 내려오더니 서동공원쪽 능선에서 이곳으로 온 길이 있다. 이길은 그런대로 등산로가 확실하며 내려가면서 길이 여러번 갈린다. 이길은 도천리 쪽으로 이어지며 22분후 십자가가 서있는 커다란 산소가 나오며 세멘포장임도길로 내려선다. 여기서 세멘포장길을 따라 나오면 12분후 개울을 건너 도천리버스정류장에 닿는다.

 

금마,사자암 미륵사지 삼거리 버스정류장(종평삼거리) 14:57 ~14:59

이곳은 60-2번 버스가 다니나 하루에 몇 차례 없으므로 버스정류장 이정표에 서동공원 1.4km, 구룡마을 0.9km 이정표가 있어 구룡마을 쪽으로 향하니 마을안길을 따라 폐교가 된 학교 앞에서 길이 좌측으로 꺽여서 세멘포장길을 따라 간다. 잠시 후 길은 계곡 쪽으로 내려서며 작은 개울을 지나 대솔한증막앞에 닿는다. 이정표에 뜬바위 0.7km, 서동공원 1.9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세멘포장길을 따라 가면 5분후 구룡마을 앞 이정표가 있는 포장도로에 닿는다. 여기서 미륵사지 위쪽 까지는 2.1km 잠시 일을 하는 주민에게 가장 가까운 버스타는 곳을 물으니 금마에서 나오는 삼거리를 알려준다. 구룡마을에서 나오면 아리랑고개로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좀 더 가면 금마에서 나오는 종평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숨도 다고르기 전에 금마에서 버스가 나온다. 오늘 일진이 좋은 모양이다.

 

이렇게 하여 익산으로 가는 버스를 쉽사리 얻어 타고 나오니 금시 미륵사지 앞을 지나 삼기 황등을 거쳐 익산역 앞까지 40여분이 소요되어 도착을 한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잠시 오뎅 몇 개를 사먹은 후 익산역으로 돌아와 20여분 기다린 후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18 20분이다.

 

오늘 여수까지 내려갔으나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그쪽 산을 포기 하고 익산까지 올라와 익산의 유일한 산인 미륵산, 지도가 없어 답답하긴 했어도 주민들이 잘 알려주어 미륵산~용리산~용화산까지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같이한 적막동상 한겨울에 비가 올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니 널리 이해 하시기 바람니다. 앞으로 일진은 적막동상이 보는 것이 좋을듯하오 아주 친절한 휴대폰을 이용하시여 ~~ 수고 많았수 ~~

 

산행시간 : 5:17분 소요

산행거리 :  11km

(미륵사지쪽문 ~미륵산 정상 1.9km, 미륵산~아리랑고개 1.5km, 아리랑고개~용화산 2.6km, 용리산 왕복 1km, 용화산~도천리버스정류장 2km, 도천리버스정류장 ~구룡마을~종평삼거리 1.7km)

 

아침식사 :2800

익산~미륵사지 버스비 : 1200

종평삼거리 ~익산역 버스비 : 1200

오뎅 : 3000천냥

~~~~~~~~~~~~~~~~~~~~~~~~~~~~~~~~~~~~~~~~~~~~~~~~~~~~~~~~~~~~~~~~~~~~~~~~~~~~~~~~~~~

 

익산 미륵산430m

 

천안아산 5:58 - 서대전 6:22 -익산 7:14

천안아산 6:58 - 서대전 7:23 -익산 8:12

천안 7:06 -조치원 7:30 -서대전 8:01 -익산 9:05

 

익산 14:18 서대전 15:28 조치원 15:57

익산 15:07 서대전 16:12 조치원 16:42

익산 15:20 서대전 16:30 조치원 16:56

익산 16:21 서대전 17:28 조치원 17:55

익산 16:42 서대전 17:52 조치원 18:23(함열 16:55)

익산 17:04 서대전 18:12 조치원 18:43(함열 17:19)

익산 17:18 서대전 18:27 조치원 18:54

익산 18:38 서대전 19:42 조치원 20:10

 

함열역 ~낭산면 낭산리 심곡사 ; 12.07km 버스 60-2

익산 함열 개인택시 063-862-1666 063-861-0014

 

60-1번 동산동신A -금마 검지 함열, 5 60 17

익산역- 김내과- 창인성당- 전화국- 익산시청- 기계공고- 동부시장- 일우맨션- 1공단사거리- 약촌- 쌍용A- 어양A- 1공단후문사거리- 한국폴리텍- 2공단사거리- 부송전화국- 삼성A- 우남A- 원팔봉- 익산종합경기장- 컨트리입구- 석왕- 쌍릉입구- 토끼제- 연동- 금마터미널- 금마삼거리- 금마소방서- 공수부대- 종평- 교육연수원- 미륵사지- 기양리- 원기양- 원기산- 현동- 삼기농공단지- 석불사거리- 검지입구- 검지- 맹동- 갱이- 학선- 과동- 정동- 함열원광보건대학- 함열

 

41번 동산비사벌~삼기 금마 23, 41-1번 동산비사벌~삼기 관촌 금마 3

익산역- 김내과- 창인성당- 전화국- 익산시청- 북부시장- 신동A- 신동사무소- 원대병원- 원대사거리- 원광대- 원광보건대- 도치마을- 동사입구- 황등우남A- 황등역- 황등파출소- 황등삼거리- 율동- 신평- 정착2- 상마- 삼기부대- 도마리- 하갈- 상갈- 삼기파출소- 삼기면사무소- 석기- 삼기산- 각봉- 마전- 향산마을- 미륵사지- 교육연수원- 종평- 공수부대- 금마소방서- 금마삼거리- 금마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