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연대봉일출447m ~남해 응봉산472m
2011.1.1 토요일 맑음
참석인원 : 8명 산띠 릴라 고을 벼리 악당 울집 마님 딸 나
청주 2:00출발 -함양휴게소 3:55 ~4:05 -노량 연대봉입구 5:25 ~6:30 (아침식사) -연대봉 7:20 ~일출 7:35 ~7:50하산 -노량연대봉입구 8:15 ~8:20 -사촌해수욕장위 응봉산입구 9:10 -작은굴 9:18 -칼바위 10:15 -응봉산 정상 10:45 ~10:50 -가천다랭이마을 주차장 11:35 ~13:00 -독일마을 -남해대교 14:50 -하동 악양 평사리 15:24 ~15:50 -함양휴게소 17:19 ~17:33 -청주 19:05분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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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 447m
연대봉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 있는 남쪽 바닷가 끝에 있는 작은 산으로 높이가 447m 이다. 연대봉은 옛날 봉화를 올리던 곳으로 작은 성이 었다. 노량리의 북쪽과 송문리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형태가 연꽃열매처럼 생겼다 해서 연대봉이라 한다. 성안의 봉수대에서 봉화를 올려 왜구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요새지로 활용되었으며, 정상에서 아래로 남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볼수가 있을 정도로 시야가 탁월하여 전시에는 수비군과 봉졸을 두어 방비케 할 정도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순신 장군도 이곳을 요새로 사용하였다 한다. 노량해전은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싸움이자,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서 벌어진 최후의 대규모 해전이었다. 1592년(선조 25)의 1차 침입에 이어 1597년에 다시 침략하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군은 그해 9월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하였으며, 지상전에서도 점점 조·명 연합군의 반격에 밀려 고전하였다. 다음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자, 일본군은 그의 유언에 따라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점차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은 명나라 수사제독(水師提督) 진린과 함께 고금도 수군진영을 떠나 노량 앞바다에 이르렀다. 이어 명나라 육군장 유정(劉綎)과 수륙합동작전을 수행하여 왜교(倭橋)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를 전멸시키고자 했다. 그결과 고니시는 수륙양면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어 진린에게 뇌물을 주고는 후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간청했다. 진린은 이를 받아들여 고니시가 마지막으로 애원하는 통신선 1척을 빠져나가도록 방조하고는 이 사실을 이순신에게 통보했다. 이에 이순신은 적을 너무 쉽게 놓아주었음을 보고 크게 노하여 진린을 꾸짖었다. 이순신은 고니시가 이 통신선을 이용하여 사천(泗川) 등지에 나가 있는 시마쓰[島津義弘]와 남해, 부산 등지에 있는 소오[宗調信]에게 연락하여 이들 수군의 구원을 받아 조·명 연합수군을 협동공격하면서 퇴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이순신은 조·명 연합함대의 진영을 재정비하여 쳐들어올 왜군에 대비했다. 과연 11월 18일 500여 척의 왜선이 노량수로와 왜교 등지에 집결하여 공격할 자세를 갖추었다. 200여 척의 조·명 연합수군밖에 보유하지 못했던 이순신은 배가 넘는 적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모든 병사들에게 전투태세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곧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을 죽이니, 적들은 이순신을 포위하려 했다. 이때 진린의 명군이 와서 왜적을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200여 척의 일본수군이 격파되고 패잔선 50여 척만이 관음포 방면으로 겨우 달아났다. 이순신은 관음포로 마지막 도주하는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적을 격파하여 포위되었던 진린을 구했다. 이어 남해 방면으로 계속 도주하던 적을 추격하다가 왜적의 흉탄에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전쟁과정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여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전사하여 노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에야 알려졌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 이외에도 명나라 장수 등자룡(鄧子龍)과 가리포 첨사 이영남(李英男), 낙안군수 방덕룡(方德龍), 홍양현감 고득장(高得藏) 등 많은 명장들이 사망했다. 한편, 순천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의 군사들은 남해도 남쪽을 거쳐 퇴각하여 시마쓰의 군사들과 함께 부산에 집결한 후 철수했다. 노량해전의 승리는 정유재란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등산로는 노량에서 하동쪽으로 700m 지점에 보면 철계단이 있다. 이곳에서 연대봉까지는 1.2km 50분이 소요 된다. 또한길은 송문리쪽에서 오르는 길이 있으며 연대봉~깃대봉~금오산으로 종주시 에는 구노량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구노량 도로에서 산쪽으로 보면 오성슈퍼가 보인다. 오성슈퍼 왼쪽 골목으로 접어 들면 50여 m를 올라가 길이 양쪽으로 갈린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길을 따르면 조금 넓직한 세멘길이 나오고 그길을 따라 오르면 이길은 동네위 산으로 오른다. 이길에서 내려다 보는 남해대교의 모습과 바다 건너 남해의 모습이 이쁘게 시야에 들어오며 좌측 삼천포쪽과 우측 광양쪽의 바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이제 세멘포장길에서 우측으로 산쪽 물탱크 쪽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물탱크에서 우측길로 오르면 여기서부터 정상 200m 라 쓰여진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 이 나온다. 이제 연대봉까지는 가파른 길이다. 연대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이 참으로 좋다. 바위지대를 올라 연대봉 정상에 오르니 아 ~~참으로 감탄사 나오는 경관이다. 올망졸망한 섬들과 구릉지대 앞쪽으로 있는 남해섬의 모습까지 좋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우측으로는 광양만의 공단과 부두, 그앞쪽으로 여수 여천공단까지 좋은 경치를 이루고 좌측으로는 남해와 삼천포앞까지 이르는 바다와 그 안쪽으로 점점이 펼쳐진 섬들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은 조망이다. 연대봉정상엔 커다란 돌탑이 있고 그 앞쪽으로 정상석이 놓여 있다. 참으로 바다 경치를 볼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남해 응봉산 472m
2km가 넘는 긴 성곽 암릉길 가며 망망대해 조망산악지대의 면적 분포가 매우 높은 축에 드는 남해도는 남해 금산만 없었다면 전국적 명성을 누렸을 산들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두 산이 호구산(虎丘山)과 설흘산(雪屹山)이다. 어느 산이 더 좋은 산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바다 조망이 광대하기로는 설흘산이 외려 금산을 앞서는 게 아닌가 싶다.금산은 사실 등산 대상지라기보다는 탐승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차량으로 산정 가까이까지 올라가서는 가볍게 한두 시간만에 금산 탐승을 끝낸다. 때문에 땀 흘려 산정까지 걸어올라 바다를 시원스레 조망하는 즐거움을 맛보고자 하는 등산꾼들은 금산보다 설흘산을 더 선호한다.단순히 설흘산이라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설흘산(481m)과 그 서쪽 옆으로 능선이 이어지는 응봉산(472m)까지를 포함한 산행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망과 산행하는 맛까지 두루 따져 말하면 응봉산이 월등 뛰어난 산행지다. 성곽같이 길고 조망좋은 암릉은 거의가 응봉산쪽에 있기 때문이다.응봉산릉은 능선 전체가 전망 좋은 휴식처설흘산~응봉산 능선은 남해도 남서쪽의 끝단을 가로로 길게 담장을 쌓듯 늘어서 있다. 실제로 남쪽으로부터 밀려오는 태풍의 위세를 적잖이 걸러주지 않을까 싶을 만큼 동서로 길고 남북이 가파른 산형을 이루고 있다.산형이 이러한 만큼 종주 산행을 하며 특히 남쪽으로 바라뵈는 바다 조망이 기막히게 좋다. 남해 주민 중에는 남해안 섬산행지 중 으뜸으로 꼽히는 사량도 지리망산보다 이 설흘산~응봉산 능선이 더 낫다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설흘산~응봉산 능선에서 산행은 그간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가장 인기 높은 것은 다랭이 마을로 유명한 남쪽 가천 마을에서 설흘산 정상의 봉수대나 그 남쪽 바로 앞의 조망바위까지 올랐다가 되내려오는 방식이다. 얼마간 땀 흘리며 운동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높은 산정에서의 바다 조망을 즐기려는 단체 산행객들이 거의 이 봉수대 왕복 코스를 택한다.가천에서 안부로 오른 다음 봉수대가 아니라 그 반대쪽인 서쪽으로 응봉산 능선을 타는 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성곽 같은 암릉을 가며 시원스레 바다를 바라보는 멋에 반한 사람들이다.이번 취재 산행은 이 두 산릉을 모두 연결하는 미니 종주로 했다. 동서 종주코스의 길이는 약 7km. 동쪽 홍현리 중촌 마을에서 시작해 봉수대 넘어 응봉산 서릉의 성곽 암릉을 걸었다.중촌 마을에 설흘산행 시작지점을 안내하는 간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그간 사람들이 이쪽으로는 별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해읍내에서 한정식집 미담을 운영하는 토박이 문찬일씨는 "곧 이쪽 코스도 재정비하고 등산로 안내판이 간단하게나마 세워지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중촌 마을에서 서쪽 선구리로 설흘산~응봉산 능선 북쪽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언덕배기 도로로 접어든다. 이 도로로 접어들자마자 왼쪽의 다소 넓은 노변, 그리고 중촌 마을 홍현선박출입항 대행 신고소 입구 공터 등에 몇 대나마 차를 댈 만하다.이곳들도 꽉 차 있으면 저 아래 방풍림 옆의 제방이 넓으니 산책 겸하여 거기에 주차하고 올라온다. 삼거리 북쪽 약 1.5km 지점에 '홍현리 아랫마을 진입로'라는 큰 비석이 선 도로로 내려가서는 해변을 따라 주욱 남쪽으로 다시 1.5km쯤 내려와서 제방 근처에 주차한 뒤 중촌 마을 골목길을 가로질러 올라오면 곧 삼거리다.삼거리 언덕배기 왼쪽(남쪽) 축대 위에는 회색 지붕을 한 양옥집이 서 있다(좌표 N 34 44 27.3 E 127 54 31.7). 이 양옥집 뒷길로 50m쯤 가면 정면으로 산기슭에 농가가 한 채 서 있다. 이 농가 오른쪽 옆 약 30m 지점 숲속에 표지리번과 더불어 설흘산 오름길목이 보인다. 길이 다소 좁고 희미하지만 능선 중간쯤에 이르면 뚜렷해진다. 이 길은 망산(406.9m) 정상으로 하여 설흘산 정상으로 이어진다.너덜겅 그늘서 대해 바라보는 멋 기막혀문찬일씨는 다른 길로 가보자며 농가 왼쪽 아래의 폐농가 바로 옆으로 난 농로로 접어들었다. 풀이 무성한 농로는 섬 일주도로 위의 사면을 길게 가로질러 나아간다. 수목 사이로 푸른 바다를 보며, 간혹 가시덩굴에 자지러지기도 하며 너무 내려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참(약 2km쯤) 가면 무덤이 나온다(좌표 N 34 43 58 E 127 54 35). 이 무덤 지나서 남동쪽으로 100여m 더 가면 이윽고 넓고 긴 너덜겅지대가 나온다. 이 너덜지대 옆 숲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남쪽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멋이 기막히다.검고 큰 바윗덩이들을 디디며 위로 오르다가 너덜지대 끝에 다다랐을 즈음 오른쪽 숲지대로 들어가자 희미한 족적이 위로 뻗고 있다. 이 족적을 따라 가파르고 짙은 숲속 산비탈을 20분쯤 오르자 바다가 조금 뵈는 자그마한 너럭바위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소로를 따르면 망산 정상이다. 정상은 평평한 암부이고 나무 그늘도 있어 한참 쉬어갈 만하다. 동쪽 앵강만 바다가 시원스레 바라뵈고, 아까 출발한 중촌 마을 집들도 빤히 내려다뵌다.능선을 따라가 확인해보니 중촌 마을에서 올라온 뚜렷한 능선 등산로가 이곳 정상 암부로 와닿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올라온 너덜겅 지대만큼 시원스런 멋은 없을 것 같다. 정상 옆 나무줄기에는 '설흘산 봉수대까지 300m'란 팻말이 매어져 있다.길쭉하고 가는 말풀들이 무성하여 부드러운 느낌인 능선길을 따라 가노라면 잠시 수평선이 바라뵈는 암릉이 나왔다가 다시 숲속으로 이어진다. 봉수대가 점점 가까워졌고, 삼각점이 설치된 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가자 삼거리다. 직진은 정상, 오른쪽은 가천임을 알려주는 팻말이 섰다. 가천 마을은 왼쪽(남쪽) 아래지만 설흘산 정상 남면이 절벽이어서 북쪽으로 돌아 길이 나 있는 것이다.갑자기 서울 근교처럼 많아진 등산객들과 더불어 10분쯤 오르자 봉수대 위다. 막돌로 대강대강 높직하게 돌탑을 쌓아올린 봉수대는 그늘도 없고 조망도 신통치 않아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여기서 남쪽 200여m 저편에 평평한 암부가 바라뵈는데 거기가 수백 길로 깎아지른 절벽 위의 조망처다. 여기서 보는 남해바다 풍광이 압권이라 너도나도 거기로 몰려가 있다.조망대 구경 후 봉수대에 이어 삼거리로 되내려와 설흘산 정상 북쪽을 돌아 내려가면 가천 마을 하산길이 갈라지는 설흘산~응봉산 간 안부의 삼거리. ' 가천 700m, 봉수대 500m , 주차장(매봉산) 1.8km '로 적힌 팻말이 서 있다. 예서 뒤돌아보니 아까의 봉수대 남쪽 조망바위 남면의 높이가 엄청나다.이 삼거리에서 평탄한 길을 따라 10분쯤 빠른 걸음으로 걷자 또다시 삼거리다. 누가 일부러 가꾸기라도 한 듯한 잔디밭이 곱게 깔린 여기서 왼쪽(남쪽)으로는 가천 마을로 이어진 임도가 와닿아 있다. 이 비포장에 차가 올라오기는 매우 위험할 것 같은 임도를 따라 300m쯤 내려가면 콘크리트 포장도로의 끝지점으로, 여기엔 샘터도 마련돼 있다.그러나 대다수 등산객들은 이 길이 아니라 아까의 삼거리에서 곧바로 가천 마을로 이어진 등산로를 주로 이용한다.북쪽에서 보면 구름 같다 하여 운암(雲岩)삼거리 이후로도 여전히 평탄하고 숲그늘이 진 것도 조망이 좋은 것도 아닌, 지루한 길이 '육조문 삼거리'까지 계속된다. 육조문이란 응봉산 남동릉 상에 솟은 6개 암봉을 이르는 말로, 이 삼거리에서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 왼쪽으로 가로질러 나아가면 이 암릉으로 붙는다. 아니면 응봉산 정상까지 갔다가 이 암릉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육조문 삼거리 이후로 길은 갑작스레 가팔라지며 바위지대가 나타나기 시작, 5분 뒤 조망바위를 지나 곧 응봉산 정상에 다다른다. 돌탑이 쌓인 정상에서 남동쪽 육조문 능선으로도 리본이 매어져 있다. 육조문 능선도 응봉산 서릉 못지않은 멋진 암릉이다.응봉산 정상 이후 비로소 암릉길이 시작된다. 양쪽 모두 사면이 바라뵈지 않는 급경사 절벽을 이루고 있어, 특히 왼쪽 망망대해 조망이 기막히다. 짧게 오르내리는 암봉이 연이어져, 저 앞 봉에 간 사람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드러낸 실루엣이 멋지게 드러나곤 한다. 이러한 암릉이 응봉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5km쯤 연이어진다. 이 암릉은 북쪽 임포리 운암 마을에서 보면 구름 같다고 하여 운암(雲岩)이라 부른다는 문찬일씨 말이다.500m쯤 가면 오르내림은 끝나고 긴 성곽 같은 암릉으로 변한다. 중간에 로프가 매어진 높이 5m쯤 되는 급경사 구간도 나온다. 여기서 노약자는 주의해야 한다. 암릉은 곧게 외가닥으로 뻗지만 간혹 옆으로 가지를 뻗기도 한다. 구름이 짙게 끼었을 경우는 이런 옆가지로 잘못 들어서지 않도록 유의한다.암릉이 끝난 뒤 길은 다시 짙은 숲속으로 빠져든다.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중간에 큼직한 바윗덩이들이 놓인 곳도 지난다. 숲속으로 들어 30분 이상 길게 걸어 내려가면 이윽고 선구 마을 둔덕 위 정자나무에 다다른다(좌표 N 34 44 12.4 E 127 51 34.9). 차량이 2대인 경우 이곳에 미리 한 대를 가져다두면 한결 편할 것이다.설흘산 주변에는 조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펜션, 민박집 등이 많다. 특히 설흘산 동사면에 앵강만을 바라보고 선 민박집들이 여럿 있다. 이중 한 곳에 투숙, 산행 후 차량을 둔 중촌까지 태워 달라고 부탁, 차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하산지점인 선구리 북쪽 바로 위, 임포리 사촌 마을에는 사촌알로에농장(055-863-0473)이 있다. 알로에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 전문점으로서, 커다란 자체 농장이 있다. 알로에만 먹이므로 병이 없어 항생제를 쓰지 않았다는 점, 돼지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자랑이다. 1인분 7,000원. 이 집은 봉고차량이 있어 산행 시작점인 종촌까지 차량 서비스를 해준다.
감동산행 월간산에서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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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발 02:00
새해 일출산행으로 하동의 금오산으로 잡고 청주에서 2시 출발을 한다. 운전은 항상 고생하는 악당이 맡아서 한다. 가는 길에 함양에서 한번 휴식을 한 후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진교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진교읍을 막 빠져 나오면 금오산으로 오르는 임도길 입구가 있다. 이곳에 당도하니 구제역으로 인하여 일출행사가 취소 되었고 도로가 결빙되어 오르지 못한다고 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도로가 결빙되었다는 것은 핑계이고 구제역으로 인하여 방역 때문에 통제 하는 것이다. 입구를 봉쇄하고 있으니 금오산으로 오르는 것은 포기 하고 미리 생각하고 있던 하동의 맨 아래쪽에 있는 연대봉으로 향한다. 금오산 까지 오르려면 청소년수련원 등산로에서 2시간 정도는 올라야 하므로 힘들어 할 님들이 있을 것 같아 천천히 올라도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연대봉으로 향한다. 연대봉은 아직은 생소한 산이라 하겠지만 해맞이 장소로는 어느 곳에 뒤지지 않는 장소라 자부한다.
노량 연대봉입구 5:25 ~6:30
금오산 임도 입구를 지나 남해대교 앞 노량에 도착을 하니 5:20분이다. 이곳에서 다시 하동쪽으로 있는 연대봉입구를 찾아서 천천히 가니 산으로 오르는 철계단이 보인다. 철계단 앞쪽에 차를 주차하고 지하도에 들어가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고을님이 가져온 버너의 화력이 좋아 8인분의 물을 끊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라면 8개를 넣고 떡첨을 넣어 끓이니 푸짐하다. 반찬은 아침에 꺼내 썰어온 김치 뿐이지만 여러 가지 진수성찬에 못지 않다. 아침 쌀쌀한 날씨에도 호호 불어가며 먹는 떡라면국이 맛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짐을 깨끗이 챙기고 나니 6:10분이다. 20여분을 차안에서 기다린 후 6:30분 연대봉으로 향한다.
연대봉 7:20 ~7:50
아침 해뜨는 시간이 7:40분경이라 한 시간을 잡고 오르면 딱 맞을 것으로 생각하고 6:30분 연대봉으로 향하니 처음 철계단을 올라 서서히 오르는 등산로는 후레시불을 비추고 오르기에 어렵지 않을 정도로 좋은 등산로다. 30여분을 오르면 노량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고 더 오르면 산소가 있는 지점을 지나 연대봉 아래까지 이른다. 이곳부터 연대봉까지는 가파른 길로 오르면서 산 아래로 보이는 남해대교와 남해의 모습이 보기 좋은 곳이다. 아직은 날이 밝지를 않아 남해대교의 불빛과 거무스레한 남해섬이 보이지만 조금 더 날이 밝으면 좋은 전망이 펼쳐질 것이다. 연대봉 정상에 닿기 전 남해바다가 붉게 물들며 해가 나올것만 같다. 서서히 밝아지는 2011년 첫해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씨도 참으로 좋아 좋은 일출이 펼쳐질 것 같다. 해가 떠오를 때 갑자기 몰려드는 구름 때문에 일출을 망친 때가 여러 번인데 오늘은 좋은 일출이 되겠다. 연대봉 정상에 오르니 20여명의 지역민들이 미리 올라와 일출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역의 산악회 회장님을 비롯하여 산악회원들이 멀리 청주에서 찾아온 우리를 맞아 매우 반가워하고 있다. 지역민 말고는 외지인들은 우리 8명이다. 드디어 7:35분 붉은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맞아 여기 연대봉에 있는 모두가 환호를 하고 있다. 올 한해 평온하고 건강하게 모두가 소원하는 일 이루게 하옵소서 마음으로 빈다. 2011년 새해가 떠오르고 지역의 산악회장님의 선창으로 만세 삼창을 하고는 박수와 환호가 퍼진다. 좋은 한해 되게 하소서~~~
멀리서 왔다고 수고 했다고 소주2병을 안기며, 귀히 여겨온 양주까지 돌린다. 조촐하게나마 산위에서 이루어진 새해시산제를 금남산악회원들과 같이 했다. 회장님이하 여러님들께 감사 한다.
연대봉 산행지 입구 8:15 ~8:20
연대봉에서의 해맞이 행사를 지역민들과 함께 나누고 이제 하산이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우리님들과 지역민들이 다 내려간 다음 마지막으로 연대봉을 한번 더 카메라에 담고 남해에 떠오른 태양도 한번 더 바라본 후 하산을 한다. 내려오면 연대봉 아래 산소가 있는 지점에서 회장님이하 몇 분이서 커피한잔 더하고 내려가라 붙들어 마다하지 못하고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내려온다. 먼저 간 우리님들과 차이가 많이 났으므로 거의 뛰다시피 내려가니 동네 젊은 친구들도 덩달아 뛰어 내린다. 이윽고 우리님들과 만나 조금을 더내려오니 산행지 입구 철계단 아래 지하도 입구다.
사촌해수욕장위 응봉산 입구 9:10
연대봉 산행지 입구를 떠나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 남면에 있는 응봉산 입구인 사촌해수욕장위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악당은 운전을 하느라 피곤하다며 다랭이 마을에 가 한잠을 잔다고 하고 벼리와 고을님은 전에 한번 다녀 갔다고 그곳으로 간다고 하여 우리 5명이서 응봉산으로 향한다.
칼바위 10:15
산행지 입구에서 서서히 오르면 8분 후 작은 굴이 있는 지점을 지나 조망이 좋은 너럭바위에 오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펼쳐지는 아늑한 동네의 모습과 그 주위로 있는 다랭이 논들이 아름답게 시야에 들어온다. 다시 좀 더 오르면 돌담이 있는 지점을 지나고 서서히 바위지대로 올라 바위를 넘고 계속 오른다. 남쪽으로 여우꽁댕이 처럼 생긴 육지의 안쪽으로 있는 마을과 방파제가 보이며 해발225m 응봉산 1.70km가 적힌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더 가면 멀리서 볼 때 우뚝하게 솟아 있는 바위봉을 우측으로 돌아서 오르는 지점에 닿는다. 우측으로 오르는 지점의 바위사면 길을 오르면 이제 바위 암릉으로 사방이므로 조망이 좋다. 가까이 보이는 여수로 커다란 배들이 연신 드나드는 모습이 보이며, 발 아래로는 올망졸망 늘어선 마을이 보인다. 이제 길은 암릉으로 가는 길과 아래쪽으로 암릉을 우회하여 가는 길이 나뉜다. 위쪽으로 암릉 길을 따라 가면 드디어 칼바위다. 칼바위를 따라가며 보는 응봉산줄기가 멋지다. 칼바위 끝지점에서 스텐철계단을 내려서면 앞으로는 목책이 펼쳐지는 암릉 길이다.
응봉산 정상 10;45 ~10:50
칼바위 철계단을 내려와 평탄한 바위지대에서 잠시 쉬면서 물한모금씩을 마신 후 목책길을 따라 간다. 이제 앞쪽에서 오는 많은 님들이 마주한다. 서로 반가이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라고 인사를 나누며 간다. 암릉 길이 끝나고 널직한 바위가 있는 지점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릴라님이 가져온 귤을 나누어 먹고 잠시 쉬는 동안 사진도 담아 본다. 휴식이 끝나고 오르면 평탄한 능선길이 끝난 후 마지막 응봉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지나 드디어 응봉산 정상에 닿는다. 응봉산 정상엔 조그만 정상석이 있으며 삼각점과 동그란 표석에 가천부락 1.7km, 설흘산2.02km,칼바위0.7km이 적혀 있다. 응봉산 정상엔 막걸리를 파시는 님이 한분 계시지만 우리는 이미 마신 술기운도 있고 하여 그냥 하산을 한다. 조금 미안한 감이 든다.
가천다랭이 마을 주차장 11:35 ~13:00
응봉산에서 가천부락 쪽으로 하산을 한다. 가까이 보이는 설흘산의 봉수대를 눈에 담고 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하산을 하다. 내려서는 암릉 길이 재미있다. 설흘산이 봉수대가 보이는 너럭바위를 지나고 바위 문을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선 후 능선 끝에서 길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이제 가천부락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가 뚜렷이 들린다. 세멘포장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따라가면 응봉산 입구 이정표가 있는 도로에 닿는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2~3분을 내려오면 가천부락 주차장이다. 이곳에는 많은 차량들과 사람들로 붐빈다. 이곳에서 악당이 잠자고 있는 차량에 배낭을 벗어 놓고 바닷가로 향한다.
암수바위, 바닷가 산책 및 식사
가천 다랭이 마을 주차장에서 아래쪽으로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조그만 다랭이 텃밭에 시금치 상추가 파릇하게 자라고 있다. 저것을 따다가 고추장 넣고 썩썩 비며 먹으면 입맛이 돋을텐데 ~~군침이 꿀꺽 넘어 간다. 좌측으로 팔각정이 있는 쪽으로 하여 양쪽으로 소로 길이 있다. 차량들이 다닌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또 팔각정이 있다. 좌측으로 오늘 꼭 보고 가리라 맘먹던 암수바위가 있다. 참으로 기이하게 생긴 놈이다. 가천암수바위에 대한 내력을 적자면 ~~이암수바위를 이곳 사람들은 미륵불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일컫는다. 숫미륵은 남성의 성기를 닮았고, 암미륵은 임신을 하여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1751년(영조27년)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로 우마가 다녀 불편하니 꺼내어 세워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후 현령은 이 암수바위를 꺼내어 미륵불로 봉안하였다. 또 논 다섯마지기를 이바위에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어민들은 지금도 이바위를 발견한 날인 음력 10월 23일을 기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뱃길의 안전과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한다. 이 바위는 원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선돌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기능이 바다와 마을의 수호신으로 확대되어 미륵불로 까지 격상된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본래에 지녓던 풍요와 다산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오늘날에도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이렇게 적혀 있다. ~~~암수바위를 구경하고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가면 길이 좌우로 갈린다. 양쪽에 구름다리가 있으며 우측 편으로 가면 작은 출렁다리도 있어 맘이 연약한 아가씨들은 건너는데 무서워한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닷가 시원한 바위지대로 경치가 좋고 잠시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이렇게 바닷가 산책로와 암수바위를 구경하고는 암수바위바위 반대편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떡국과 빈대떡 막걸리 한주전자를 시켜 점심식사를 한다. 떡국 8000천냥은 좀 비싼듯하며 빈대떡 8000냥은 그런대로 괜찮다. 막걸리 5000냥은 맛이 물맛이라 한다. 여기도 관광지니 그런대로 이해하자고 하며 식대 85000원을 지불하고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와 차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다음 목적지인 독일마을로 향한다.
남해대교 14:10
가천 다랭이 마을 떠나 우측 편으로 도로를 따라 미국마을 지나고 앵강고개를 넘어 금산 보리암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우측편 길을 따라 상주해수욕장을 거쳐 바닷가 쪽으로 가니 물건방조제가 있는 마을이다. 이곳의 위쪽에 독일마을이 있다. 독일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나 크게 볼 것은 없다. 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서 내려와 좌측으로 진행을 하니 조그만 마을에서 남해로 가는 샛길이 있다. 남해를 지나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으로 향한다.
하동 악양 평사리 15:24 ~15:50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을 지난 후 평사리에 도착을 하니 15:24분이다. 평사리의 최참판댁 주위는 보수 공사 중으로 어수선하며 입장료도 공사가 끝나는 시점까지 받지 않는다고 한다. 20분에 걸쳐 안채 별당을 구경한 후 집으로 향한다.
청주 19:05분 도착
평사리를 떠나 화개를 지나 구례에서 남원으로 넘어와 88고속도로를 따라 오다 함양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어 함양휴게소에서 한번 쉰 다음 청주까지 오니 19:05분이다. 근무시간이 조금지난 산띠님은 직장으로 향하고 우리는 칼국수집에서 칼국수로 저녁식사까지 함께나눈 후 오늘의 바쁜 일정을 마무리 한다. 오늘 좋은 일출과 함께 하루를 같이 보낸 회원님들께 감사 하며 모든 님들 올 한해도 무사하게 산행 잘하시고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 합니다.
청주 ~남해 노량 : 3:25분 소요
연대봉 일출산행 ; 1:45분 소요
남해 응봉산 산행 ; 2:25분 소요
점심식대 : 85000원
청주 ~진교 도로비 ; 10400원
남원 ~청주 도로비 ; 8000원
연료비 13만원
합계 24만원
경비 ; 일인당 3만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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