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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475 한남금북정맥 모래재~칠보산~좌구산~이티봉~상당산2010.2.26.금요일

한남금북정맥 모래재~칠보산~좌구산~이티봉~상당산

2010.2.26.금요일 흐린후 오후 늦게 갬

참석인원 ; 나홀로

 

청주집 6:00 -서원초교 버스승차 9:07(증평1870원) -증평상수도사업소앞 버스정류장 6:50 -증평역 7:00 ~7:25(괴산행 버스 1100원) -모래재 7:45~7:47 -능선분기봉 8:00 -삼각점봉 8:03 -우측길 8:07 -우측길(의성김공묘) 8:10 -우측길 8:12 -송치재(철조망) 8:14 - 철조망끝 8:20 -좌측길 8:21 -철선시작되는 삼거리봉(465봉) 8:37 -596.5봉(삼각점) 8:54 -삼거리(우측으로 진행,산소) 9:06 ~9:10 -칠보산 삼거리 9:25 -칠보산정상 9:26 ~9:28 -다시 칠보산 삼거리 9:29 -안부고개 9:40 -소나무 구덩이봉 9:44 -삼거리봉(우측으로) 9:48 -임도고개(칠보치) 9:52 -원형철조망있는봉 10:08 -삼거리봉(좌측으로) 10:22 -삼거리(좌측으로) 10:25 -고개지나 오른편으로 인삼밭,산소 -고개에서 산소 있는 봉 넘고 10:32 -질마재 10:40 -새작골산 삼거리 이정표 11:04 -삼거리봉(우측으로) 11:10 -벌목봉 11:12 -삼거리 (좌측으로) 11:16 -삼거리봉(좌측으로) 11:25 -안부 -좌구산 11:41 ~11:45 -안부 -돌무더기봉 11:49 -첫번째 쉼터 11:58 -주차장 삼거리 12:00 -주차장 삼거리봉 12:10 -방고개 12:20 ~12:31(중식) -삼거리봉(좌측으로) 12:54 -분젓치 13:13 -우측길 13:17 -우측초정길(운동시설) 13:36 -구녀산 13:47 -이티재 14:03 ~14:07 -삼거리봉(좌측으로) 14:17 -삼거리(좌측으로) 14:20 -우측길 14:22 -삼각점(헬기장) 14:28 ~14:31 -이티봉(우측으로) 14:34 -삼거리(좌측으로) 14:44 -납골묘,임도,느티나무 14:48 -첫봉 14:58 -상당산성삼거리 15:12 -리틀봉(헬기장) (인경산 전봉) 15:22 ~15:26 -다시 삼거리 15:30 -삼거리봉(좌측으로) 15:35 -우측길 15:40 -삼각점봉 15:43 -우측산소,좌측 삼밭길 15:50 -숲속의 둥지길 15:54 -소나무봉 16:00 -우측 운보의집하산로 16:04 -봉 16:14 -고개 18:27 -숲속의 둥지 삼거리(우측으로) -다음 삼거리(좌측으로) 16:44 -산성전봉 16:53 -상당산 16:59 ~17:04 -성문 17:35 -출렁다리(산성고개) 17:44 -약수터 18:10 ~18:23 -버스(중간에서 환승) -집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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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 657m

충북 괴산군과 청원군에 걸쳐 있는 좌구산은 증평읍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아 등산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다. 전체적으로 수림이 우거진 육산으로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알맞은 산행지이며 장마끝무렵에는 온 산에 버섯이 지천으로 피어 등산객들의 손을 심심치 않게 한다.

"앉을 ´좌(坐)´자 거북 ´구(龜)´자. 거북이가 앉아 있는 형국이다 해서 좌구산(좌구산)이라 쓰는데 여기서는 최고 높은 봉우린데, 왜 옛날에는 난리가 나면 봉화를 올리던 자리가 있어. 그런데 원래는 그게 그 위에 가면 봉화를 올리던 자리가 있어.

그런데 원래는 그게 좌구산(坐狗山)이 아니고 앉을 ´좌(坐)´자 개 ´구(拘)´자. 좌구산(坐狗山)였데. 왜 그러냐 하면, 예전에는 민가가 없었어. 그냥 산밖에 없었는데 그 산에 올라가면 개짖는 소리가 났데여. 그래서 좌구산(坐狗山)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풍수적으로 말해서 좌구산(坐狗山)으로 고쳤다는거여."

증평에서 청안을 거쳐 청천쪽으로 가다보면 칠보산과 좌구산의 중간지점 쯤 되는 곳에서 봉천사 입구인 고개가 질마재 고개다. 이 고개를 넘어 조금 가면 봉씨가 난을 피해 살았다하여 봉천리라고 이름 지은 마을이 있다.

1106년(고려 예종 1년) 어느날, 경기도 강화군 하첩면 장정리 하음산 기슭 연못가에 상서로운 광채가 비치더니 이어서 비가 내리쳤다. 물을 길러 왔던 한 노파가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못 수면에 돌로 만든 상자가 떠 있었고, 그 상자 속에는 귀여운 사내 아이가 들어 있었다.

노파는 이 아기를 궁중에 바쳤고 왕은 기이하게 여겨 왕실에서 키우도록 했다. 노파가 봉헌했다 하여 성을 봉(奉)이라 하고 장래 국가를 도울 인재라 하여 이름을 우(佑)라 붙인 '봉우'를 시조로 하는 하음 봉씨들의후손들은 그 후 많은 인재들이 등용됐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다음해인 1457년 성삼문, 박팽년 등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동료인 김질의 배신으로 발각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소식을 들은 박팽년의 매부 봉여해는 세조를 살해하기 위해 칼을 차고 어전으로 가던 도중 의금부에 붙잡혀 화를 당했다. 당시 그의 벼슬은 궁중요리를 검사하는 사옹원별좌였기에 어전 출입이 쉬웠다 한다.

봉여해는 어려서 재주가 뛰어나 박팽년, 성삼문 등과 함께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문하에서 수업, 학문을 떨쳤고 박중림의 사위가 됐다.

봉여해가 박팽년과 함께 단종 복위 모의에 참여했다가 화를 당한후 세조 이후에는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 거의 없고, 화를 면하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지던 중 일부가 이곳에서 살게 됐다 한다.

외봉천에서 서쪽으로 약 1km쯤 떨어진 망월산(해발 459m : 망탑봉)이 있어 이곳에서 보면 미호평야와 증평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이곳에 사는 봉씨들은 강화도를 쳐다보며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난을 피하는 사람으로 감시의 역할을 한 산이기도 하다.

망탑봉에서 보면 군사적 요충지인 두타산성, 이성산성, 구녀산성과 북이면 부연, 토성, 광암의 경계가 되는 낭비성, 삼보산맥들이 한눈에 보여 군사적 요충지로 적진의 활동을 탐색하고 감시하는데 적지임을 알 수가 있다.

남봉 김치(金緻 : 1577~1625)는 1597년(선조30)에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 설서(設書 : 세자시강원의 정7품)를 거쳐 1608년에 조정 관리들의 휴가연수를 담당하는사가독서를 담당했다.

광해군 때 사북시정, 이조참의, 동부승지, 대사간을 거쳐 홍문관교리, 부제학등을 역임하고 정3품 병조참지에 올랐으나 독직사건으로 파면됐다.

이이첨의 심복으로 이조에 있으면서 흉한 일을 벌였으며 대사간이돼서는 영창대군 살해음모를 반대하는 정온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충남 병천면 백전리에서 괴산 능촌으로 이사해 살았다고 전하는데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짐을 깨닫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차에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에 자기의 관상을 보니 그해에 죽게 됐는지라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변성을 만나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인조반정이 있을 무렵 심기원과 사전에 내통해 벼슬길에 다시 올랐으나 대북파로 몰려 유배를 당했다.

광해군은 즉위한 후 정세변화에 따라서 왕위를 위협할 지도 모를 동복형 임해군과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등 학정을일삼으므로 인헌황후(좌찬성 구사맹의 딸)의 아들인 종(倧, 인조 : 1595-1637)은 조정에 대북파와 견원지간인 서인 일파와 경기 · 충청지방의 관리들을 포섭해 반정을 일으킬 것을 모의한다.

인조가 반정을 일으키기 전 어느 여름날 심기원이 그를 찾아와서 능양군(인조)의 사주를 봐 달라고 하기에 이곳 율리의 물치폭포에서 목욕한 후 소반에 보를 놓고 점을 쳐 보니 임금이 될 쾌인지라 이를 극비로 하고 반정을 일으킬 날을 잡아 주는데 천파일로 잡아주고 심기원의 심복이 될 것을 다짐한다.

그가 밀담을 마치고 오랜 노독으로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난데없이 한 밤중에 동편 산에서 개가 짓는 소리가 3번 들리므로 그는 잠에서 벌떡 일어나 "이 앞산이 무슨 산이냐?" 하고 물으니 그의 심복 하나가 대답하기를 "이 산은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구산이라고 합니다"하니 점술을 연구해 천문에 밝고, 풍수에 조예가 있는 백곡 김치는 말하기를 "아니다 저곳에서 개가 3번 짖었으니 저 산은 좌구산이 틀림없다"하면서 "누가 염탐을 하러 오는 것이 틀림없으니, 이곳을 빨리 떠나자"하고 서둘러 모두 이곳을 떠나므로 난을 무사히 피했다고 한다.

그 후 인조는 1623년 3월 13일 밤에 이귀, 심기원, 최명길, 김자점 등의 병력 700여명과 능양군이 이끄는 친병과 장단부사 이서의 병력 700여명이 합세해 인조 반정을 성공시킨다.

 

김치는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다시 유배에서 풀려나 동래부사를 거쳐 1625년(인조3년)에 경상도 관찰사가 됐으나 그 해에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 그가 죽은 후 시신을 괴산 능촌으로 모시려했으나 상여가 이곳 율리재를 넘을 때 명정이 바람에 날려 현재의 그의 산소 자리에 앉으므로 그 곳에 안장했다고 그 후 후손들이 이 곳에 와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그가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닦으며 지낸 보천에서 율리에 이른 깊은 골짜기를 뜻하는 심고을 그의 호로 정했을 가능성과 유배를 당할 때는 근처에, 산소의 우연성으로 미루어 이 곳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대중교통

증평읍내에서 율리방면 시내버스 승차 → 율리 → 밤티마을에서 하차 → 부점촌 → 청원경계에서 좌측능선을 따라 산행

승 용 차

중부고속도로 → 증평 IC → 율리→ 밤티 → 부점촌 → 임도 → 청원경계에서 좌측능선을 따라 산행(2시간 정도소요)(율리 버스정류장에 주차)

34번 국도를 이용, 증평에 닿으면 540번 지방도를 타고 율리마을까지 간다.

 

구녀산(484m)

♣ 구녀산(484m)은 청원군 내수읍과 미원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가벼운 하이킹 정도로 산행을 마칠 수 있으며, 등산로 입구에는 약수목욕탕이 있어 약수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이정표가 잘 되어있어 있다)

구녀산은 삼국시대의 석성터로 내부 전체가 울창한 송림과 휴식공간으로 이루어져 가족 또는 단체여행객의 소풍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성 둘레는 약 1km정도로 약 30분정도면 성곽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구녀산은 남한강의 발원지인 좌구산(座龜山, 675m)에서 남서쪽으로 북일면 우산리 및 미원면 대신리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구녀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구녀성은 정확한 축성기록은 없으나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 또는 삼년산성)과 대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민간신앙의 집산지로 출생과 무병을 기원하는 서낭지가 여러곳에 산재하고 있으며, 오랜기간 신성시 되던 곳으로 노송 과 원시림이 천연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산의 내부는 성터로써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놀이와 휴식에 적합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서북쪽 미호평야와 청주의 상당산성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다. 구녀산은 구라산(句羅山)이라고 불려 졌으나 이곳 축성 설화와 관련하여 구녀산으로 불리고 있다.

구녀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세계 3대 광천수의 하나인 초정약수터가 위치하고 있다.

초정약수는 약이 되고 병이 낫는다는 신효의 물로써 세계 광천학회에서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로 꼽고 있으며, 조선 세종 대왕이 친히 이곳에 행차하여 60일간 머물면서 안질을 다스렸으며, 세조대왕께서도 이곳에서 치료하였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청주목 산천조에 '청주에서 동쪽으로 39리에 매운 맛이 나는 물이 있는데 이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 고 하였으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우리나라에 많은 초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광주와 청주의 초수가 가장 유명하다' 고 기록하고 있어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자가운전

청주에 도착하여 36번 국도를 따라 증평방면으로 약 12km인 내수사거리에서 초정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약 6km가면 도착할 수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증평 IC에서 빠져나와 청주방면으로 약 5km 가면 내수사거리에서 511번 국도를 따라 초정 방면으로 가다가 보은 방면 511번 국도를 타고 이티휴게소에 도착하게 된다.

주차 시설은 이티휴게소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밖에 초정리 내에 주차한다.

대중교통편

서울에서 청주까지 매 10분 간격으로(06:30 - 21:00)고속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직행버스도 같은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청주에서 다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수 또는 증평 방면의 시내버스를 타고 내수읍에서 하차하여 초정방면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초정리에서 하차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구녀산의 전설

충북 청원군에 자리한 '구녀산'은 해발 484m로 야트막한 봉우리지만 산자락에 있는 구녀성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구녀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성(지금의 상당산성 또는 삼년산성)과 대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

성 둘레는 약 1㎞ 정도로 약 30분 정도면 성곽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성터는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일상생활에서의 무거운 짐을 풀어놓기 좋은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주위를 살펴보면 출생과 무병을 기원하는 서낭지가 여러 곳 눈에 띈다.

오랜 기간 민간신앙의 집산지로 신성시 여겨왔던 덕분에 이 구역은 노송과 원시림이 천연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서북쪽으로 미호 평야가 굽어보이고 청주의 상당산성이 건너다 보이는 아름다운 조망이 산의 품위를 더해준다.

구녀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초정 약수터도 구녀산의 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초정약수는 '약이 되고 병이 낫는다'는 신효의 약수로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로 꼽힌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세종대왕이 안질을 다스리느라 이곳에서 60일간이나 머물렀으며, 세조대왕도 이곳에서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범상치 않은 정기를 품고 있는 산에는 꼭 전설 하나씩 따르기 마련이다.

구녀산의 원래 이름은 구라산이었으나 구녀성 축성설화와 관련하여 아흡 구자에 계집 녀자를 쓴 구녀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사연은 이렇다.

옛날 이곳 산정에 아들 하나와 아홉명의 딸을 둔 홀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명분이 좋아 어머니지, 열남매를 둔 이 어머니의 행실은 이미 어머니이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막내아들을 끼고 안방에 들어앉아

"첫째야, 밥해와라.",

"물 한 사발 떠와라,

둘째야."

"얘, 셋째는 뭐하냐? 이 에미 머리 좀 빗겨 다오." 하는 식이었다.

아들만을 애지중지하며 아홉 딸을 시녀부리듯 했다.

딸들이 밭일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 마실 다니며 딸들 흉보기 일쑤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어머니와 아들만은 복실복실 살이 쪄갔다.

그러나 무정한 어머니의 방만한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이라면 절대 복종하던 유순한 딸들이 어느때부턴가 하나 둘씩 반항의 조짐을 보였다.

일을 맡기면 저물녘에나 들어오던 아이들이 밭 매라고 호미를 쥐어 내보냈더니 끼리끼리 모여 수군대기 시작하였다.

"저년들이 무슨 작당을 하는 게지? "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어머니는 서서히 위기감을 느끼고 혹 자신을 내쫓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이르렀다.

며칠 궁리 끝에 기발한 묘안을 떠올렸다.

아들과 딸들에게 내기를 시켜 지는 쪽은 과감히 목숨을 버려야 하는 내기였으니 과연 비정한 어머니다운 생각이었다.

내기인즉, 닷새 동안 딸 아홉은 성을 쌓고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그 내기를 시행하였다.

5일이 되던 날, 성은 다 쌓아가는데 한양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어머니는 또 한 번의 반칙을 계획한다.

이 작전은 순전히 아들을 위한 것이니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딸들의 일을 방해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어머니는 딸들을 불러 뜨거운 고깃국을 먹였다.

"자, 힘들지? 이거 먹고 쉬엄쉬엄 쌓도록 해라."

생각하는 척 하고 건네주는 고깃국에는 아들만을 살리려는 음모가 담겨있었는데 그 의도대로 뜨거운 고깃국을 식혀 먹는 동안 한양에 간 아들이 돌아왔다.

딸들은 약속대로 다 쌓아가는 성 위에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없는 내기에 아홉누이를 잃은 동생은 그 충격에 집을 나가고 돌아오지 않았다.

노약한 어머니 역시 당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아홉 딸의 무덤 앞에서 여생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자식의 생사를 건 비정한 내기에 얽힌 구녀성의 전설은 우리 민족정서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조작한 이야기라 추정된다.

일본인들은 억지전설까지 만들어가며 우리 민족을 비하시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당산과 상당산성<청주시 자료>

상당"은 백제시대에 청주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상당산성도 백제의 상당현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삼국사기 열기열전>에 적힌 김유신 셋째 아들 원정공이 쌓았다는 서원술성(西原述城)이 바로 이곳이라는 학설 등 두 가지 있다.

최초의 축성년대는 정확히 알기는 힘드나, 김유신의 세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 고금사적기>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이,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 고적조에는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뒤)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 7,773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이었던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까지 3년간, 청주병사 유성추의 감독 하에 대대적으로 성벽을 개축하였다. 또한 이듬해 성 내에 구룡사와 남악사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그 후에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산성 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ㆍ군기고ㆍ창고ㆍ수고ㆍ장대ㆍ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ㆍ서문(미호문)ㆍ남문(공남문) 등 3개 문과 동암문ㆍ남암문 2개 암문, 치성 3개 소, 수구 3개 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뤄진 정비공사로 동ㆍ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예전에는 성 안에 다섯 개 연못과 여러 개의 샘이 있었고, 사찰도 세 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다섯 개의 연못이 모두 합쳐져 큰 저수지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곳은 산간 벽촌으로 남아 있었던 마을을 지난 1982년과 1983년에 청주시가 산성을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마을 전체를 한국 재래 한옥기와집으로 개량하여, 보기 드문 전통 한옥마을로 바꾸어 보존하고 있다.현재 32가구가 모여 사는 산성 안의 한옥마을은 27집이 음식점을 경영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대체로 토종닭과 오골계ㆍ꿩요리 등을 전문으로 하고 반주로 이곳 명산물인 대추술을 함께 내놓고 있다. 또한, 매년 4월에 있는 시민의날 행사 때는 국운융성ㆍ청주발전ㆍ가정화평을 기원하는 "성돌이 행사"를 하고 있으며, 평상시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역사의 산교육장이며, 시민의 대표적인 시민 휴식공간이다.

상당산성 일원은 봄철의 경치가 빼어나다. 특히, 산성 입구의 넓적한 돌계단을 따라 공남문에 이르는 오솔길 주위에 펼쳐진 봄꽃들의 향연이 화려하다. 명암약수 앞에서 상당산성 어귀로 오르는 해발 343m의 산성고개는 급커브와 급경사가 계속 되고 있어 스릴과 운치가 그만이다.산성 인근의 명암약수는 초정약수와 부강약수 등과 함께 충북의 3대 명천(名泉)으로 꼽혀오며,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위장병ㆍ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명암약수에 이르기 전에는 국립청주박물관, 우암 어린이회관을 거치게 되므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드라이브 코스로도 더없이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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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재 7:45~7:47

청주 집에서 6:00시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증평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타고 가니 예상시간보다 적게 걸려 증평 상수도 사업소 정류장앞에 6:50분 도착을 한다. 괴산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그냥 서있기 뭣해서 버스 시발지인 증평역으로 걸어서 가니 7시다. 증평역에서 커피한잔 마시구 기다리는 사이 버스시간이 된다. 증평역을 출발한 버스는 20분을 달려 괴산으로 넘어가는 모래재에 7:45분 나를 내려 주고는 휑하니 괴산으로 떠난다.

 

송치재 8:14

모래재에는 의병격전유적비가 있으며 유적비 뒤로 있는 보광산 관광농원을 통하여 안쪽으로 들어서 능선으로 진입을 하니 15분 산행후 첫 번째 능선분기 지점이 나오며 능선이 완만해 진다. 3분을 더가니 삼각점이 있는 봉을 지나고 다시 4분후 우측으로 길이 하나 있고, 다시3분후 의성김공묘가 있는 부분에서 우측으로 길이 있고, 2분후 또한번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으며 2분을 더 내려서면 지금은 다니지 않아 넝쿨이 우거진 송치재에 닿는다. 송치재 우측으로는 조그만 돌탑이 여려개 놓여 있으며 이곳부터 오르는 길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596.5봉 8:54

송치재부터 왼편으로 쳐져 있는 철조망 옆을 따라 걸으면 6분후 철조망은 끝을 맺고 왼편으로 포크레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내려선 길을 지나고 서서히 오르는 길은 어제 많이 내린비로 인하여 눈은 전부 녹았으나 길이 질어 빠지고 미끄럽다. 서서히 가파라지는 오름길에 산소를 한기 지나고 1분을 더 가면 우측으로 길이 있고 다시 2분여를 더 오르면 돌이 있는 봉이 나오며 능선은 완만하게 진행이 된다. 2분여 진행이 되다 살짝 내려선 후 다시 올라서 5분여를 더 가면 두갈래 능선이 갈리는 부분에서 철선이 시작된다. 이곳으로 오는 중에 소나무숲이 이쁘며 여기 삼거리에서는 우측 능선길을 따르면 철선 넘어 아래쪽엔 목장인듯하지만 오늘 잔뜩낀 안개로 인하여 보이는 것은 없다, 이어지는 능선에 소나무는 여기도 이쁘다. 철선은 능선을 따라 10여분 후 서서히 오르는 지점부터 점점 멀어지며 6분을 가파르게 올라서면 삼거리가 나오며 이곳에서 왼쪽길로 2분여를 더가면 하얀나무판에 596.5봉이란 팻말이 걸려 있다. 이곳이 쪽지봉인듯하다.

 

칠보산 정상 9:26 ~9:28

596.5봉에서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한참을 내려선 후 조그만 봉 2개를 좌측으로 우회를 하여 지나면 다시 길이 두갈래로 갈린다. 이부분에서 잠시 왼편길을 따랐다 다시 올라오느라 4분이 더 소요 되었다. 우측으로 표시기가 걸린 부분으로 들어서야 한다.우측으로 들어서면 금시 산소가 있고 산소를 지나 길은 다시 능선쪽으로 이어진다. 이후 완만하게 능선길이 이어지며 15분 정도를 더 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며 칠보산 정상은 이곳에서 30m를 좌측길로 더 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좌측길로 1분을 더 가면 길쭉한 오래된 칠보산 정상석이 놓여 있다. 정상은 나무숲이 우거져 조망은 전혀 볼수가 없다.

 

칠보치 (임도고개) 9:52

칠보산에서 다시 돌아 나와 삼거리를 지나며 가파르게 내려서는 길을 지나면 이후 능선은 완만하게 한동안 진행이 된다. 좌측으로 낙엽송조림지가 있고 산소가 있는 부분에서 조금 내려서면 안부고개를 지나며 좌측으로 낙엽송조림지는 더욱 넓다. 나무가 있고 구덩이가 있는 봉을 지나면 좌측으로 파란 지붕이 보인다. 축사 같다. 4분을 더가면 다시 삼거리봉이 나오며 이곳에서 우측길을 따르면 임도고개가 나온다. 이곳이 칠보치다.

 

질마재 10:40

칠보치에서 10분을 오르면 산소가 있는 봉을 지나고, 2분후 능선이 조금 들어간 부분에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가 있다.누군가 파놓은 것이 평소에도 이곳에 물이 고이는 곳인 것 같다. 웅덩이를 지나며 서서히 올라서는 길은 원형철조망이 있는 봉에서 살포시 내려선 후 다시 올라서면 삼거리봉이 또 나온다. 이곳에서는 우측길을 따라야 한다. 다시 3분후 삼거리가 나오면 좌측길을 따라 간다. 산소가 나오고 고개를 지날 때는 왼편으로 인삼밭이 보인다. 고개에서 산소가 있는 봉을 넘고 8분여를 서서히 능선을 타고 내려서면 증평에서 부흥으로 넘어가는 질마재 고개에 닿는다. 이고개는 부흥고개라고도 부른다. 질마재에 내려서니 마침 증평에서 부흥 쪽으로 넘어가는 버스가 지나간다. 질마재는 해발 350m로 공적비가 하나 서있다.

 

좌구산 11:41 ~11:45

질마재에서 오르는 길이 힘들다. 경사도 있고 길게 이어진다. 24분을 숨을 몰아 쉬며 오르니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현재위치 새작골산 질마재가 1.3km, 좌구산이 1.9km,안봉천이 1.6km라 되어 있다. 새작골산을 지나면서도 능선길은 계속 오름길이다. 6분후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길을 따르고, 좌측길은 미원 구방리에서 청천 부흥으로 가는 길에 있는 거리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이능선에도 길은 뚜렷이 있다. 2분을 더가면 벌목을 한 봉이 있고 여기서 내려서는 부분에 조그만 암릉이 이어지며 4분후 우측으로 내려선 길을 지나고, 다시 9분여를 더 가면 삼거리봉이 나오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안부에서도 우측으로 내려선 길이 있으며, 다시 15분을 더 가면 삼각점이 있는 좌구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좌구산 정상석엔 청원의 최고봉이라 적혀 있으며, 높이가 657m다. 증평군과 청원군의 경계이다. 여기서 길이 두갈래로 좌측길로 가면 미원면 대덕마을로 가는 길이고, 능선을 계속따라 가면 상당산성까지 간다. 조망은 터 있으나 날씨가 나빠 보이는 것은 없다.

 

방고개 12:20 ~12:31

좌구산에서 안부로 내려선 후 우측으로 우회길이 있고, 그냥 봉으로 오르면 돌무더기 있는 봉이다. 이곳에서 가파르게 내려선다. 내려서는 도중 오늘 처음으로 한분을 만난다. 10분을 지나니 이제는 능선에 나무의자를 만들어 놓은 쉼터가 있다. 이후 쉼터는 몇군데가 더있다. 2분을 더 가니 우측으로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있으며 이정표가 있다. 주차장은 율리저수지 위쪽 동네에 있는 것으로 안다. 안부로 내려서고 다시 오르면 첫머리봉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이부분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정표엔 주차장 1.72km,좌구산1.26km,방고개0.68km라 되어 있다.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지점의 이정표에서 능선을 따라 10분을 가니 방고개가 나온다. 방고개로 내려서는 부분에 여러개의 의자등 휴식장소를 만들고 있는 것이 휴양림을 만들고 있는 것같다. 방고개로 내려서는 부분엔 나무계단을 설치 하였으며 정자가 있다. 이고개는 증평 율리에서 미원 화원리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이고개 정자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 좌구산 전에서 만났던 님이 다시 돌아 온다. 이후 그분과 함께 이티재까지 간다.

 

분젓치 13:13

방고개에서 좌구산으로 향하던 님이 되돌아와 동행을 한다. 청주에 사시는 버스기사님으로 짬을 내어 열심히 산행을 하시는 님으로 산행 수준도 상당히 높다. 나이는 나보다 5섯이 아래지만 그냥보기엔 동년배로 보인다. 처음 20여분을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길을 따라 가야 하며 이후로는 조금씩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20여분을 더 가면 증평 율리에서 미원 종암리로 넘어가는 차도인 분젓치에 닿는다. 교통량은 많치 않은 도로로 포장을 한지는 오래 되지는 않는 듯하다.

 

구녀산 13:47

분젓치에서 3분을 오르면 이정표가 있다. 좌구정 320m, 삼기저수지 1160m, 삼보산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하산로가 있으며, 다시 20여분을 더 가면 우측 초정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으며 이곳엔 운동시설이 되어 있다. 힘들지 않은 능선길을 따라 초정하산로에서 10분을 더 가면 돌무더기 옆으로 구녀산 정상석이 있는 484m의 구녀산 정상이 나온다. 같이온 일행덕분에 손쉽게 사진도 한 장 남기고 한다.

 

이티재 14:03 ~14:07

구녀산 부터는 길이 더욱 좋아 진다. 정상부근에는 사각 정자가 있고, 구녀성의 유래가 적힌 흰색 판에는 신라시대의 성으로 아홉딸의 원혼 서린 구녀성의 유래가 눈시울을 붉힌다. 이곳엔 운동시설이 있으며 조금을 더 가면 청원군 초정에서 괴산군 청천면 부흥으로 넘어가는 이티재에 닿는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말동무를 하고온 님과 작별을 하고 난 이티재를 한바퀴 돌아 보고 상당산으로 향한다.

이티재에는 구녀성이란 큰 표석이 있고 식당한켠으로 이티봉약수가 있으나 겨울이라 아직 물을 열어 놓치를 안아 물맛은 볼수가 없었다. 고개에 주유소가 있으나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듯 보인다.

 

이티봉 14:34

이티재에서 올라서니 두 개로 된 논이 있다. 이곳에는 벌써부터 개구리가 펄쩍 뛰며 울어 대고 있다. 아직 겨울이 다 간것이 아닌데 얼어 죽지나 않을런지 상당히 많은 양의 개구리덜이 아래 웃논의 따스한 논두렁아래쪽에 모여 노래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서서히 능선으로 올라서면 10분후 삼거리봉이 나오고 능선길은 좌측길을 따라야 하며 우측으로는 아래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후 두 번에 걸쳐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부분의 헬기장을 지난다. 여기서 3분후 조그만 움막이 있는 이티봉에 닿으면 하얀판에 이티봉 486.8m이라 적혀 있다.

 

임도 14:48

이곳에서 길은 두갈래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10분을 더 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며 이곳에서는 왼편길을 따라야 하며 이길을 따라 내려서면 커다란 납골묘가 있고 불에 탄 오래된 고목의 느티나무가 있는 임도에 닿는다. 이임도는 청원군 북이면 비상리에서 미원면 대신리로 넘어 가는 길이다. 대신리쪽으로는 가까이 마을이 보인다.

 

리틀봉(헬기장) 15:22 ~15:26

임도에서 가파르게 올라서면 10분후 첫 번째 봉을 지나며 길은 다소 완만하게 진행이 된다. 14분후 상당산성으로 가는 표지판이 붙은 삼거리에서 난 좌측 봉으로 올라선다. 경사도 가파르고 하여 상당히 힘이 든다. 꼭 10분을 올라서니 깔끔하게 단장이 된 헬기장이 있고 한켠에 리틀봉 486.8m라 적혀 있다. 헬기장에서 우측능선으로도 길이 있고 직진방향으로도 길이 있다. 이곳에서 직진길은 인경산으로 향하는 길이며 이길은 낭성에서 나와 미원으로 넘어가는 고개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리틀봉에서 더 이상가는 것은 하지 않고 다시 되돌아 내려와 삼거리에서 상당산성으로 향한다.

 

상당산 16:59~17:04

리틀봉 삼거리에서 5분을 가면 삼거리봉이 나오며 이곳에서는 좌측길로 가야 한다. 좌측 아래쪽으로 파란 지붕의 축사가 보이고, 5분을 더 가면 또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길로 직진이다. 3분을 가면 삼각점이 있는 봉을 지나고 안부를 지나 오르면 오른편으로 산소로 가는 길이 있으며 조금 앞으로 좌측으로 삼밭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다시 4분후 숲속의 둥지로 가는 하산로가 있으며 조금을 지나면 조금 넓직한 임도가 왼편으로 있고, 16시정각에 소나무가 한그루 버티고 있는 소나무봉을 지난다. 소나무봉에서 4분을 가면 우측으로 운보의집으로 내려서는 길을 지나고, 이후 10분을 가면 봉을 지나며 이후 몇분간격으로 3개의 봉을 지나 고개에 닿으면 왼편으로 동네가 보이며 농장으로 접근을 하지 말하는 경고판이 있다. 이고개에서 14분을 가니 앞쪽에 능선이 나타나며 아래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쪽으로는 숲속의 둥지란 팻말이 있으며 위쪽으로 90도 꺽여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가면 3분후 길은 좌측 능선으로 90도가 다시 한번 더 꺽여서 상당산성으로 향한다. 여기부터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면 7분정도를 더 가서 앞쪽에 높다란 상당산이 보이는 마지막 봉을 지나 4~5분이면 상당산 아래부분의 성벽에 닿는다. 성벽에서 좌측으로 하여 문을 통하여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나 난 우측으로 하여 성이 낮은 부분에서 턱을 넘어 성길로 올라 섰다. 성길에서 상당산은 1분 거리다. 상당산성길을 여러번 셀수 없이 돌았지만 상당산 정상석이 있는 이곳은 처음인듯하다. 우암산을 지나 상당산성을 돌긴 했지만 상당산 정상석은 지금껏 신경을 쓰지 않았다. 상당산은 491.5m 이며 삼각점이 있고 5~6평 정도의 공터로 되어 있다.

 

산성고개 17:44

상당산에서 산성길을 따라 가니 이제 날이 개어 산아래 내수읍의 전경이 보이며 그간 답답하게 진행해온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서문을 지나고 우암산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있는 부분을 지나 남문 전에 있는 조그만 문을 통하여 산성고개로 향하니 빠른걸음으로 10분이 걸려 출렁다리가 있는 산성고개에 닿는다. 출렁다리 중간까지 들어가 몇 번을 흔들어 보니 그반동이 좋다. 다시 돌아 나와 약수터로 향하니 몇 구비를 돌고 돌아 25분이 소요 되어 약수터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오늘 괴산으로 넘어가는 모래재에서 이곳 산성고개 까지 진행한 후 약수터까지 이르는 길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30km가 넘는 대장정을 마무리 하고 버스로 집에 돌아 오니 19:05분이다.

 

산행시간 ; 10시간 (접근시간 포함 10:25분소요)

산행거리 : 모래재 ~칠보산 4.8km

칠보산 ~질마재 4.4km

질마재 ~좌구산 2.8km (이정표 질마재 ~좌구산 3.2km)

좌구산 ~분젓치 4.2km (이정표 좌구산~분젓치 4km)

분젓치 ~이티재 2.8km (이정표 분젓치 ~구녀산 3km, 구녀산 ~이티재 0.8km)

이티재 ~상당산 7.3km (이정표 이티재 ~상당산 8km)

상당산 ~산성고개 2.2km

산행거리 28.5km

 

산성고개 ~약수터주차장 1.8km ,리틀봉왕복 0.8km

총산행거리 31.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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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청원,청주 칠보산~좌구산~구녀산~상당산

청주가경터미널 6:01 -증평 7:17

증평역 7:25 - 모래재 7:50

 

中部內陸 兩大江의 젖줄! 한남금북정맥 [모래재~산성고개]

모래재~칠보산~질마재~좌구산~분젓치~구녀산~이티재~상당산~산성고개

산행거리 28.5km 산행시간 10:15

 

모래재[07:46~47 / 도착~시작]→344.1m봉[08:00]→분기점(묘지)[08:09]→솔티재[08:13]→무명봉(웅덩이)[08:35]→596.5m봉 분기점[08:52~09:00. 596.5m봉 확인 및 휴식]→쪽지봉[09:26~29. 칠보산 왕복]→무명봉(웅덩이)[09:45]→칠보치[09:56]→무명봉(백색합판)[10:12~13]→무명봉(TV안테나)[10:37]→질마재[10:47~50. 휴식]→무명봉[11:02]→새작골산[11:11]→안부[11:24]→안부[11:35]→좌구산[11:50~12:20. 중식]→주차장 갈림길[12:31]→방고개[12:49]→510m급 무명봉[13:07]→491m봉[13:20]→분젓치[13:37]→삼거리(방향표)[14:02]→구녀산[14:12~14]→삼거리[14:18]→이티재[14:30~40. 휴식]→486.8m봉[15:01]→비포장 도로(괴목)[15:14]→무명봉[15:21]→인경산 분기봉(우회로)[15:34]→쉼터(우측 묘지지대)[15:53~16:00. 휴식]→무명봉(노송 1그루)[16:09~11]→벌목지[16:19]→무명봉(웅덩이)[16:33]→안부(돌탑)[16:49]→능선삼거리[16:54]→산성 성벽[17:08]→동문[17:10]→상당산[17:13~20. 휴식]→미호문[17:35]→산불감시초소[17:39~42]→암문(서)[17:49]→약수터갈림길(고목)[17:50]→이동통신탑[17:58]→산성고개[18:02. 4구간 끝]

 

[모래재--도상 4.8Km<실거리 5.3Km / 8,484보>--칠보산(540m)]

[칠보산 --도상 4.4Km<실거리 4.9Km / 7,903보>--질마재]

[질마재 --도상 2.8Km<실거리 3.1Km / 5,180보>-- 좌구산]

[ 좌구산--도상 4.2Km<실거리 4.8Km / 7,908보>--분젓치 ]

[분젓치 --도상 2.8Km<실거리 3.1Km / 4,850보>--이티재]

[ 이티재--도상 7.3Km<실거리 8.3Km / 13,582보--상당산 ]

[ 상당산--도상 2.2Km<실거리 2.5Km / 4,110보--산성고개 ]

산성고개 ~약수터 주차장 : 1.8km

 

모래재-0.8km-344.1봉-2.7km-595.5봉-1.3km-칠보산-4.2km-질마재-2.8km-좌구산-1.8km-방고개-2.4km-분젓치-1.8km-구녀산-1.0km-이티재-1.0km-486.6봉-6.3km-상당산-2.2km -산성고개-2.2km-403.6봉-1.5km-수레너미 = 32km

 

* 일정표

모래재(08:35) -송치재(09:05) -460봉(09:23) -595.5봉(09:49) -칠보산(10:28) -칠보치 (11:07) -마재(12:08) -613봉(12:41) -좌구산(13:27) -비포장도로(14:04) -510봉(14:24) -분젓치(14:58) -구녀산(15:31) -이티재(15:50) -486.8봉(16:10) -인경산갈림길(16:50) -등산로안내판(17:43) -상당산(18:11) -산성동(19:26)

* 산행시간 약 10시간 5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