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무등산 (서석대~지왕봉~낙타봉~중봉)
(원효사~옛길~목교~장불재~서석대~지왕봉~낙타봉~장불재~중봉~덕산너덜~원효사)
2019.05.11.토요일 맑음(무등산 정상개발일)
참석인원 : 딸과 둘이서
청주 집 04:35 -승용차 -백양사 휴게소 -원효사 주차장(해발 약350m) 07:10 ~07:15 -무등산 옛길 2구간으로 -물통거리(1.44km, 해발 약580m) 07:40 -목교1.8km 전 이정표(1.76km, 약590m) 07:45 -계곡 옆(2.28km, 약620m) 07:53 -나무 다리(2.94km, 약820m) 08:07 -좌측으로 -잠시 평탄한길 -급경사 돌계단길 -목교(3.48km, 약940m) 08:22 ~08:25(정상 탐방 등록) -임도 따라 -장불재(4.20km, 약895m) 08:32 - 입석대(4.56km, 1017m) 08:43 -서석대(5.02km, 약1095m) 08:58 ~09:02 -철문(5.41km, 1140m) 09:12 -지왕봉 전망대(5.58km, 1160m) 09:18 -지왕봉과 천왕봉<1186.8m> 사이 고개(5.80km, 약1165m) 09:23- 북봉입구(누에봉, 6.50km, 약1070m) 09:35 -북봉(누에봉, 6.80km, 약1055m) 09:44 ~10:12(휴식) -목교(8.62km, 약940m) 10:31 -두번째 장불재(9.30km, 약895m) 10:40 -만연산 삼거리(9.60km, 약895m) 10:45 -바위봉(10.00km, 약915m) 10:51 -바위봉(철주, 10.20km, 약910m) 10:55 -안부(10.50km, 약865m) 11:02 -낙타봉(10.49km, 약926m) 11:10 ~11:18 - 되돌아서 -능선암 이정표(11.35km, 약890m) 11:30 -바위봉(11.34km) 11:31 -바위봉(11.56km) 11:35 -만연산 삼거리(11.89km) 11:40 -세번째 장불재(12.20km) 11:44 -임도 삼거리(좌측으로, 12.75km, 약905m) 11:50 -임도에서 좌측 능선길로(13.00km, 약985m) 11:53 -중봉(13.40km, 약910m) 12:01 -중계소 안테나 우측으로 돌아올라 -청심봉(물통, 14.00km, 약911m) 12:16 ~12:40(중식) -이정표 삼거리(우측으로, 14.24km, 약870m) 12:43 -동화사터 삼거리(좌측으로, 14.80km, 약800m) 12:50 -샘터(14.91km, 약750m) 12:54 -급경사 내리막 -샘(15.20km, 약670m) 13:03 -급경사 내리막(우측으로 덕산너덜) -119구조 2지점(15.45km, 약570m) 13:10 -백운암터, 덕산너널 사거리 이정표(우측으로, 15.56km, 약520m) 13:13 -덕산 너덜 표지판(15.66km, 약520m) 13:15 -이정표(16.02km, 약540m) 13:24 -작은 너덜 지나고 -능선 사거리 이정표(직진, 16.36km, 약560m) 13:31 -능선 삼거리(좌측으로 능선 따라, 16.90km, 약540m) 13:40 -능선 사거리(우측으로, 16.94km, 약535m) 13:42 -아스팔트길(17.09km, 약490m) 13:46 -도로 따라 좌측으로 -잠시후 늦재쉼터 삼거리 -계속 도로따라 - 원효사(18.08km, 약400m) 13:58~14:02 -원효사 주차장(18.62km, 약350m) 14:10 ~14:20 -벌곡 휴게소 16:14 ~16:26 -서청주 톨게이트 17:05 -청주 집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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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록 따라 가는 산행<18>|고경명 <유서석록遊瑞石錄>] “상봉은 봉우리가 천·지·인 셋… 죽순 자라듯 솟은 주상절리”
[589호] 2018.11
글·월간산 박정원 편집장
사진·월간산 이신영 기자
절경에 취해 이리저리 유람… 4박5일 머물며 절·자연 상세히 묘사
‘상봉上峰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셋 있었는데 동쪽에 있는 것은 천왕봉이요, 가운데 있는 것은 비로봉인데, 그 사이가 100여 척이 된다. 평지에 서서 바라보면 대궐문과 비슷한 것이 이것이요, 서쪽에 있는 것은 반야봉인데 비로봉과 더불어 두 정상의 거리가 거의 포목 한 필의 길이가 된다. 그 아래는 겨우 일척 남짓 됐으니 평지에서 바라보면 화살촉과 같다. 정상에는 잡목이 없고 다만 진달래 철쭉이 바위틈에서 소복하게 나와 길이는 일척가량 되고 가지는 모두 남쪽으로 쏠려 깃발과 비슷했다. 그 지형이 높고 기후가 차갑기 때문에 풍설에 시달려 그렇게 된 것이다.’
고경명의 <유서석록>에 나오는 무등산無等山(1,187m) 정상 부위에 대한 설명이다. 무등산 정상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 접근이 통제되어 있다. 바로 그 아래 서석대와 입석대까지 현재 출입이 가능하다.
무등산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주상절리로 유명하다. 무등산 주상절리 중 입석대와 서석대는 이미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돼 국가문화재로 보호받고 있으며, 11월부터는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다. 지난 4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확정된 데 이어 무등산의 지리·경관적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세계지질공원은 제주도, 청송에 이어 국내 세 번째.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규봉은 무등산 주상절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경관적 가치는 더욱 뛰어나다. 입석대·서석대와 더불어 일찌감치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야 할 문화재였다. 특히 하늘과 맞닿을 듯 깎아지른 100여 개의 돌기둥 사이로 자라는 울창한 수림과 규봉암이 잘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규봉에는 열 개의 대臺가 있는데, 송하送下·광석廣石·풍혈風穴·장추藏秋·청학靑鶴·송광松廣·능엄楞嚴·법화法華·설법說法·은신隱身이라고 이름한다’고 돼 있다. 고려 말 문신 김극기의 시에도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렵더니, 올라와 보니 만상萬像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아낸 듯하고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다. 명승을 밝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跏趺하고 앉아 무생無生을 배우노라’고 노래했을 정도다.
지공너덜은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깨어져 산능선을 타고 모인 산물로, 특이한 지형경관을 이루며, 인도 승려인 지공대사가 이곳에서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이와 같이 무등산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인정받은 명산이었다. 통일신라는 무등산을 소사 무진악으로 지정하고 국가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그 무등산을 문신으로서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을 지낸 고경명高敬命(1533~1592)이 올라 거의 최초의 유산록을 남겼다. 시와 기록을 남긴 선비들은 있으나 유산록으로서는 가장 이른 편이다. 그는 42세 되던 해인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4박5일간 무등산을 누비고 적벽과 소쇄원~식영정~환벽당까지 둘러본 뒤 유람을 끝냈다. 그의 유람코스는 취백루~증심사~사인암~증각사~중령中嶺~냉천정~입석대~불사의사~염불암~덕산너덜~지공너덜~상원등~정상 삼봉~서석대~삼일암~금탑사~은적사~석문사~금석사~대자사~규봉암~광석대~문수암~풍혈대~은신대~영신골~창랑천~적벽~소쇄원~식영정~환벽당으로 이어진다.
그는 취백루翠栢樓에서 임훈 일행을 만나 출발한다. 취백루는 누대 앞에 오래 묵은 측백나무 두 그루가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 증심사 입구 누각이다. 당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취백루’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석양에 입석암에 닿으니 양사기楊士奇의 시에 이른바 십육봉장사라는 곳이 바로 여기로구나 싶다. 암자 뒤에는 괴석이 곧추서서 죽 늘어서 있어서 마치 봄에 죽순이 다투어 머리를 내미는 듯도 하며, 희디희어서 마치 연꽃이 처음 필 때와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높은 관모를 쓰고 몸이 큰 귀인이 단정하게 홀笏을 쥐고 공손히 읍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가까이 가서 보면 마치 철옹성과도 같은 튼튼한 요새에 일만의 병사가 숨어 있는 듯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아무런 의지 없이 홀로 솟아서 형세가 더욱 홀로 빼어나니, 마치 세속을 떠난 선비가 무리를 벗어나 홀로 초연한 모습 같기도 하다. (중략) 입석암은 입석대의 한가운데 자리 잡아 있다. 우러러보면 위태로운 바위가 높이 솟아서 곧 떨어져 눌러버리지 않을까 해서, 두려워서 머물러 있기가 불안하기 그지없다. 바위 밑에 샘이 있어 모두 두 곳인데, 하나는 암자의 동쪽에 있다. 하나는 서쪽에 있다. 아무리 큰 가뭄에도 줄지 않는다 하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고경명은 취백루에서 출발해 곧바로 중령으로 향한다. 지금의 증심사 등산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중령은 가운데 고갯길인데, 지금의 중머리재(617m)로 추정된다. 장불재와 중봉이 저만치 앞에 보인다. 이어 냉천정에 도착한다. 냉천정은 ‘광주천 발원지’라는 이정표가 지금 그 앞에 세워져 있다. ‘샘물은 나무 밑 돌 틈에서 솟아난다. 그 찬맛은 도솔천에 미치지 못하나 단맛은 그보다 더한 듯싶다. 때마침 모두 목이 말라 서로 서둘러 콩가루를 타먹으니 금장옥례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있으랴 싶다’고 표현하고 있다. 냉천정 물이 그만큼 좋았다는 의미이나 지금은 그냥 흘러가는 조그만 샘물일 뿐이다. 광주천 발원지라면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해서 관리할 수도 있으련만 방치된 것이 아쉽다.
냉천은 광주천 발원지로 현존
당시에도 ‘입석대’라는 명칭이 그대로 있었던 듯하다. 그 사이에 마르지 않은 샘을 가진 입석암이라는 암자도 나타내고 있다. 동행한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탐방시설과 정병열씨가 입석대 출입통제 구역 안을 가리키며 “저 안에 우물이 있는데 항상 물이 고여 있다”고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산 서쪽 양지바른 언덕에 돌기둥 수십 개가 즐비하게 서 있는데 높이가 백 척이나 된다. 산 이름 서석瑞石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날이 가물다가 비가 오려고 할 때나 오랫동안 비가 오다가 개려고 할 때에는 산이 우는데 수십 리까지 들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석이란 명칭은 주상절리에서 비롯됐다. 서석대·입석대·규봉 등 직립형 돌무더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형상을 선돌이라 한다. 그 뜻을 취해 ‘입立’이라 하고, 음을 취해 ‘서瑞’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석이란 명칭이 나왔고, 고려 이후로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불렀던 듯하다. 통일신라가 소사로 지정할 때는 무진악이었다. 또한 무진주를 광주로 고쳐 부른 것은 940년 즈음. 광주로 바뀌면서 무진악이 서석산과 함께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경명은 입석암에서 불사의사로, 다시 염불암으로, 삼일암으로, 금탑사로, 은적사로 가는 곳마다 절을 찾아 묵었다. 여느 유산록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유산록은 묵었던 절만 간단히 언급하고 주변 사찰에 대해서 아예 언급을 안 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고경명은 유독 절을 일일이 나열하고 있다.
동행한 정병열씨는 “과거엔 무등산에 절이 500개나 됐다고 전한다”고 보충 설명했다. “8만9,000 암자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 정도까지야 되겠냐만 그만큼 많았다고 한다. 그 많던 절도 지금은 무등산 전체에서 불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일행은 장불재를 거쳐 바로 입석대로 올라간다. 그런데 장불재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당시엔 지금과 같이 유명하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그 지명에 대해선 궁금증을 갖게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長佛’로, <대동지지>에서는 ‘獐佛’로 표기하고 있다. 오기라면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오기가 아니라면 전혀 다른 뜻이다. ‘長佛’은 으뜸 되는 부처가 있거나 항상 부처가 있다는 뜻이 되고, ‘獐佛’은 노루목같이 길이 좁아지면서 왕성한 기운을 가진 장소를 이른다. 일종의 긴골이나 장골과 같은 의미다. 그렇다면 두 가지 다 의미가 통한다. 과거 장불재와 정상 천왕봉 사이엔 고경명이 언급한 절만 하더라도 지금 무등산 전체의 절보다 많다. 또 장불재는 화순 동복에서 광주로 넘어오는 고갯길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던 좁은 길이었다. 지금 장불재는 바람도 많고 가을에는 억새 장관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고경명은 염불암에서 하룻밤 유숙했다. 염불암은 지금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대략 석불암으로 추정한다. 암자 동쪽에 지공너덜이 있어 위치상 비슷하다.
그는 다음날 상원등으로 올라 상원암에 간다. 그리고 정상 상봉으로 향한다. 그 상봉이 맨 앞부분에 언급한 문구다. 지금도 정상 봉우리는 세 개다. 천왕봉, 비로봉(지왕봉), 반야봉(인왕봉)을 천지인으로 부른다. 지금은 서석대까지만 출입이 가능하고, 정상 세 봉우리는 통제구역이다. 고경명의 코스를 따라 서석대로 내려간다.
비단을 마름질해서 암석 만든 규봉
‘반야봉 절벽에 올라 줄지어 앉아서 우상羽觴(=술잔)을 날리듯 주고받으니 훌쩍 우화동선 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단애의 서쪽에 총석이 빗살처럼 늘어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100척씩 된다. 이른바 서석이 이것이다.’
이어 그는 ‘사흘간 머무르면 도를 깨칠 수 있어 명명했다’는 삼일암과 김극기의 시에 ‘절문이 영운嶺雲의 봉토를 호위하고 있네’라고 노래한 금석사 등 여러 절을 거치며 그 절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 절경은 규봉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금석사로부터 산을 휘감아 기슭 동쪽으로 나오니 곧 규봉圭峰이다. 김극기의 비단을 마름질해서 암석 모양 만들었고, 홀을 쪼아 봉우리의 기세를 이루었다는 시구가 정말로 헛말이 아니었다. 돌의 기이하고 오래됨이 입석과 대등하지만, 그 자리의 넓고 높음과 모양의 빼어남과 훌륭함은 역시 입석이 감히 흉내 낼 바가 아니었다. 규봉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권극화의 기록에 보이고 <동국여지승람>에 모두 실려 있으니 여기서는 대략 말했다. 예부터 신라의 김생이 암자의 편액에 세 글자를 크게 썼는데 훗날 어떤 사람이 훔쳐갔다는 말이 전한다.’
이어 광석대廣石臺에 대한 묘사가 뒤따른다. 신선한 바람이 저절로 불어 한창 무더위에도 한두 겹의 옷을 걸친 자라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아마 풍혈이 주변에 있을 듯하다. 자월암 동쪽에 풍혈대가 있다고 하나 규봉 주상절리가 워낙 많아 찾을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충분히 있을 가능성은 높다.
고경명은 절경에 취해서인지,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정상 부근 암자를 왔다 갔다 하며 정상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듯하다. 정확한 동선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다. 단지 주상절리 기암괴석과 사찰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장추대에서 서쪽으로 가서 절벽을 기어올라 남쪽으로 돌면 오솔길이 나오는데 폭이 한 척도 되지 않는다. 어그러진 곳은 돌로 덮어서 그곳을 밟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끊어진 산비탈을 내려다보면 칠흑처럼 깊디깊어 비록 백혼무인처럼 아스라한 바위를 밟고 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당장에 발꿈치를 고정시킬 수 없다. 절벽이 끝나면 움푹 파인 곳이 나와 원숭이처럼 줄을 끌며 올라가니, 그 남쪽은 은신대이다. 은신대 서쪽에 바둑판처럼 네모지고 가지런한 돌이 있는데, 사람들이 도선이 좌선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 북쪽은 청학대·법화대 등 여러 대가 널려 있다. 바위 구멍을 뚫고 지나가노라니, 배와 등이 모두 암벽에 부딪치고 문질러진 뒤에야 정상에 도달했다. 사람들이 모두 벌벌 떨며 손으로 땅을 짚는 것이 팽조彭祖가 우물을 들여다보는 모습 같았다.’
지금은 수월하게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정상 길이지만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더 주상절리가 많았던 듯하다. 정상이 통제된 이후 천왕봉 주상절리를 폭파시켜 없애고 군사시설을 건립하느라 높이 4m가 내려앉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서석대 전망대에는 과거 주상절리가 있던 천왕봉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고경명이 무등산의 절경에 흠뻑 취해 이리저리 옮겨가며 즐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눈에 선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 오솔길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 의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산에 오솔길이 있어, 그 길로 사람이 다니면 이 이상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싶다.
박정원 편집장 jung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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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4:35
어제 제천 솔미산~송학산~청룡산 산행에 이어 오늘은 광주 무등산을 간다. 며칠 전 갑자기 무등산 정상개방일이 생각나서 인터넷을 검색하니 5월 11일 무등산 정상을 개방한다고 한다. 이래서 연이어 산행을 잡고 무등산을 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고속버스로 광주종합터미널에 도착하여 증심사 방향으로 버스로 진입하려 했으나 이미 인터넷 예약으로 5000명이 예약이 완료되고 현장 등록이 목교에서 1200명 장불재에서 800명 도합 2000명으로 제한을 하여 혹여 이 안에 들지 못 할수도 있겠다 싶어 딸아이와 함께 승용차로 일찍 출발하기로 한다. 아침 4시 기장하여 대충 세면하고 물 준비하고 산행준비를 한 후 04시 35분 집에서 나선다.
원효사 주차장(해발 약350m) 07:10 ~07:15
청주에서 출발하여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고속도로를 달린다. 속도를 조금 높여서 진행을 하는데 딸이 갑자기 신분증을 안 가져 왔다고 한다. 에고 이를 어쩌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무인민원발급기가 없을 긴대 별별 생각을 다하며 가다가 유성에서 서대전에 이르기 전 구간단속구간을 실념하고 달리다가 불이 번쩍하는 통에 정신이 번득 들었다. 평균속도가 120km는 넘었을긴대 그러면 6만원인가 나올텐데 오늘 연료비에 도로비에 경비가 상당히 많이 나오게 생겼다. 이렇게 하여 이후로는 정신을 잔뜩 차리고 속도는 조금 높여서 가기는 했어도 카메라는 조심조심 속도를 낮추어 진행을 하며 달리다가 여산휴게소에 잠시 들러 민원발급기는 찾으니 역시나 없다. 이후 달리다가 집에 계신 마나님한테 전화로 여권사진 찍어서 보내하고 현장에서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여 달리다가 광주 전 마지막 휴게소인 백양사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연료까지 채운 후 다시 달려 광주요금소에서 9700원 도로비를 지불하고 다시 달려서 동광주 톨게이트로 나와 광주 시내 길을 이리저리 돌고 돌아서 무등산 옛길 입구에 닿는다. 네이비를 업그레이트 했더라면 문흥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돌아서 두암교차로로 빠져나왔으면 쉽게 이곳에 닿는 것인 대 고생을 좀 했다. 이제 무등산 원효사로 향하는 산길을 따라 앞차를 따라서 진행을 한다. 이렇게 하여 원효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위쪽 주차장은 내가 마지막으로 주차를 하고 이후 뒤에 오는 차는 화장실이 있는 아래쪽 주차장으로 안내를 한다.
목교(3.48km, 약940m) 08:22 ~08:25(정상 탐방 등록)
원효사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마친 후 무등산 옛길을 따라 오르기로 한다. 가장 가까운 길로 서석대 아래 목교 까지 진입을 하려는 것이다. 앞서가는 분들을 하나 둘 추월하며 진행을 한다. 옛길은 널찍하니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물통거리라고 하는 지점까지 오르는데 25분이 소요되었고 점차 고도를 높여가며 오르면 목교 1.8km전 이정표를 지나 등산로는 계곡이 우측으로 있는 지점을 지나서 52분이 지나서 계곡을 건너는 짧막한 나무다리에 닿는다. 여기서 옛길은 좌측으로 방향이 바뀌며 평탄하게 진행이 되다가 이제는 돌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뒤에 오는 분이 이곳이 첫 번째 깔닥고개라고 한다. 10여분 이상을 가파른 돌계단 길을 따라 오르면 그 끝으로 널찍한 임도길이 나오며 앞쪽으로 정상탐방 등록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먼저 오른 딸은 이미 팔찌를 찾다고 돌계단을 오를 때 전화가 왔기에 나도 좌측 편에 있는 등록대에서 현장등록을 하는데 인터넷으로 예약한분보다 더 먼저 팔찌를 찬다. 생각보다 빨리 온 분이 없어 여유 있게 등록을 마쳤다. 오면서 대략 70명을 추월했고, 먼저 온 딸아이는 현장등록 현장을 준비하는 시간을 기다려 가장 먼저 했다고 한다.
***무등산 개방은 2011년 처음으로 개방이후 일년에 두 번씩 올해가 23번째이며 그 동안 누적 탐방객만도 40여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1966년 공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무등산 정상을 비롯해 서석대와 중봉까지도 일반인 출입이 금지 됐었지만 철조망을 걷어내고 빗장을 푼 날이 지난 2011년 5월 14일이라고 한다. 광주시민단체의 많은 노력으로 45년만에 광주의 어머니산인 무등산 정상을 항시 갈수는 없지만 일 년에 두 번이라도 갈수 있게 된 것이라 한다. 작년까지는 신분증만 있으면 자유롭게 탐방하던 방식을 올해부터는 인터넷으로 5000명 현장에서 2천면 전체 7000면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 보니 여유롭게 정상을 현장에서도 등록하여 다녀올 수 있겠다. 서석대까지는 여러번 다녀왔기 때문에 새로운 길인 서석대에서 무등산 정상부인 지왕봉 전망대까지 이르는 대략 1km 구간이 오늘 새로이 가는 구간이다.
무등산은 기록에 따르면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 불렀으며 상스러운 돌이 있는 산이란 뜻으로 광주를 빛고을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무등산 서석대에서 연유 한것이라 한다. 겨울철 해 질 녘 광주에서 무등산으로 바라보면 서석대가 마치 수정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고 불렀다하며 오늘 개방하는 정상은 천, 지, 인등 하늘과 땅, 사람이라는 만물의 구성요소인 세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무등산이 유일하다고 한다.
무등산은 1966년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정상까지 군사작전도로를 개설했고 그때부터 광주시민들은 지금까지 광주의 어머니산을 군부대에 뺏기게 된 것이지만 그간 많은 노력으로 중봉일대와 장불재 일대까지는 군부대가 철수를 하여 다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무등산은 임진왜란때 의병장 고경명 장군이 1574년 무등산 기행문인<유서석록>에 5일간 무등산을 오르며 무등산의 3대 석벽과 사찰등 4800자에 이르는 기행문을 남겼고, 근대에는 무등산의 살아 있는 역사 박선홍 선생께서 540쪽의 <무등산>과 생전에 천번이나 무등산으로 오르내린 범대순 시인의 <무등산연가>등이 있다고 한다. 무등산은 또한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면 장군에 대한 전설과 유물이 가장 많이 간직한 곳으로 충장사 옆 이치장군대 설화, 원효계곡의 치마바위, 금곡동의 시검바위, 지왕봉의 뜀바위, 중봉의 삼밭실, 장불재의 의병활동지, 의상봉의 비마족바위등이 있다. 박선홍 선생의 <무등산>에는 뜀바위에 얽힌 일화가 적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일본군 장교가 김덕령 장군의 전설이야기를 듣고 ‘나도 뛸수 있다.’라며 뜀바위에서 뛰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일화가 적혀 있다고 한다.
지왕봉 뜀바위에서 김덕령 장군이 말을 타고 의상봉까지 뛰어 생긴 말발자국이 있는데, 이런 형태의 바위를 지질학적으로 나마(gnamm)라고 부른다고 한다.
무등산은 2013년 21번째 국립공원이 되었으며, 2014년 국내 6번째 국가지질공원이 되었고, 2018년에는 세계 137번째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청송에 이어 세 번째 세계지질공원이 되었다. 지왕봉은 서석대와 비슷한 풍경으로, 무등산은 약 8,700만 년 전 화산 폭발에 의해 생긴 산이다. 산 곳곳에 화산활동의 흔적들이 수없이 많은데, 무등산 서석대와 입석대, 광석대 그리고 지왕봉, 인왕봉 등이 모두 화산활동 흔적으로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화산활동은 울릉도가 약 500만 년 전에 화산 폭발이 있었고 제주도 한라산은 5천 년 전 마지막 화산 폭발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서기 946년 폭발한 백두산이 있으며, 무등산은 8천 700만년전으로 한반도 다른 화산과 비교해 상당히 오래된 화산이다.
지왕봉도 서석대처럼 풍화작용이 진행 중이며. 화산 폭발로 마그마가 땅속에 있다가 위로 솟구치며 오랜 세월 물에 잘 녹는 부분은 없어졌지만 단단한 화강암만 살아남았고, 그 바위들도 비바람에 깎이는 등 풍화작용에 의해 결국 단단한 부분만 남게 된 것이다.
그것들이 바로 의상봉 비마족 바위 같은 나마(gnamma)이며 나마는 암석이 물리적, 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아 암석의 상부에 형성된 구멍이고, 암석이 풍화작용을 받을 때 독립성이 강한 둥그스름한 돌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을 지질학적으로 토루(tor)라고 한다.
무등산의 수백만 년 후 미래를 보면 아마 지왕봉도 쓰러지고 없을 건대, 서석대가 앞으로 지왕봉처럼 바뀌고 곧이어 입석대처럼 돌기둥만 남게 된 뒤, 잠시 후 보게 될 누에봉처럼 일제히 쓰러지고 이어 덕산 너덜이 나 지공 너덜처럼 잘게 부서져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게 된다고 한다.
[출처] 무등산 정상 개방. 무등산 최고의 절경 지왕봉을 만나다.|작성자 simpr 님글에서 발췌함
지왕봉 전망대(5.58km, 1160m) 09:18
목교에서 직접 서석대로 오르면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듯하여 우리는 장불재로 돌아서 오르기로 한다. 임도를 따라 중봉 삼거리를 지나고 7분후 장불재 정상탐방 등록하는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장불재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자니 공단 직원분이 우리 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몇 장을 찍어 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우리는 입석대로 향한다. 널찍한 등산로를 따라 10여분을 오르면 입석대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에서 입석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다시 내려와 입석대 표지석을 지나 이제 서석대를 향하여 서서히 오르게 되면 등산로 양쪽으로 곱게 핀 철쭉이 우리를 반기고 위로 오를수록 바위에 핀 철쭉은 더욱 빛을 발하여 그 모습이 보기 좋다. 서석대 우측으로 우리가 오늘 오르게 될 정상부가 그림처럼 보이고 바위지대를 올라서 서석대 가까이 가니 벌써 무등산 정상부로 오를 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아니지만 몇 시간 후면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이곳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 서석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잠시 기다려 우리도 줄에 서서 잠시 기다리니 드디어 09시 정각 군인들의 파란띠 확인을 거쳐 입장이 시작된다. 첫머리 평탄한 능선을 지나 앞쪽에 보이는 인왕봉 우측사면으로 오르면 10여분 후 철문에 닿는다. 서석대에서 400m 거리를 그토록 오랜세월 오르지 못한 것이다. 철문을 지나 잠시 오르니 군부대 안으로 널찍한 세멘트 도로가 있으며 각종 군부대 시설물들이 보인다. 잠시후 지왕봉 앞에 닿게 되고 지왕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잠시 후 좌측으로 조금 더 오르면 지왕봉 전망대에 닿게 된다. 오늘 정상부 등정의 가장 핵심이 되는 곳으로 전망대에는 광주시가지의 조망도가 있으며 군인들이 늘어서 있어 지왕봉, 인왕봉, 천왕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시대에 시설물의 사진이 그렇게 군사기밀사항은 아닐 것인데 쓸데 없는 짓은 아닌지 모른다. 인공위성으로 손바닥 보듯하는 세상에 사진으로 남는다고 무슨 기밀이 유출되겠는가? 지왕봉은 2개의 바위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가 뜀바위인지는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정상인 셈이다. 인왕봉은 지왕봉보다 한결 나지막하며 군사시설이 있으며 바위봉은 널찍하니 분포가 되어 있는 듯하다.
북봉(누에봉, 6.80km, 약1055m) 09:44 ~10:12(휴식)
지왕봉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지왕봉앞 널찍한 마당을 통하여 지왕봉과 천왕봉 사이 고개로 향한다. 지왕봉앞 널찍한 공터에는 오늘 행사를 한다고 119구급대등 각종 차량들이 있으며 군부대 시설물 앞에서 군인들이 인사를 반가이 하며 우리를 맞는다. 여기에는 지하암반수가 있는대 깊이가 180m 해발 1000m에 올라오는 물이라고 적혀 있다. 역시 물맛을 보니 상당히 시원하니 좋다. 한바가지 더 마시고 이제 지왕봉과 천왕봉 사이 군사도로를 따라 넘는다. 우측으로 천왕봉은 군부대시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인지 미개방 상태로 갈수 없는 곳으로 군사도로가 잘 나 있다. 여기 고갯길에도 군인들이 보초를 서며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천왕봉 언덕에 핀 철쭉을 찍으려 해도 안 된다고 한다. 철쭉도 군사기밀사항인가보다. 이렇게 하여 고개를 넘어서 잠시 내려서면 군부대 정문이 나온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잘 가라 인사를 하며 서석대에서 여기까지 약 1km구간의 거리를 우리는 완전히 넘어 섰다. 생각보다는 정상일대가 좋다는 느낌은 받지를 못했다. 그저 정상까지 갈수 있다는 아니 정상부의 일부를 갈수 있다는 것 뿐인 것 같다. 지왕봉도 오를 수는 있을 것 같은대 그 옛날 김덕령 장군은 저곳에 올라서 뜀바위를 건너뛰며 훈련을 했다는 곳인대 올라가지 못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정문을 나와 작전도로를 걸어서 내려오며 지왕봉을 바라보면 왼쪽 바위절벽에 핀 철쭉꽃이 아름답다. 요즘은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 멀리서도 망원으로 댕겨서 찍으면 가까이서 찍는 것 같이 나오는데 굳이 저곳도 못 찍게 한다고 뭔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작년겨울인가 무등산을 오면서 북봉으로 향할 때 우측에 있는 신선바위는 겨울철에 올라가 본 곳이다. 이곳 바위에 올라서 보는 경치가 참으로 좋았던 기억이 난다. 신선바위는 8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대, 신선들이 앉아 바둑을 두는 평평한 바위가 있고 화순 쪽 바위는 사람 얼굴 형상으로 보인다고 한다. 신선바위 앞을 지나 좀 더 내려서면 북봉입구이다. 북봉 까지 가는 능선은 평탄한 능선으로 가을철 억새가 한창일 때 볼만하다. 북봉은 누에봉이라 하며 주상절리가 쓰러져 누워 있는 곳으로 그 끝 지점에 송신탑이 있다. 우리는 송신탑 까지는 가지 않고 누에봉 쓰러져 있는 바위까지 진행 후 주변에 붉게 핀 철쭉으로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잠시 휴식후 낙타봉으로 향하다.
낙타봉(10.49km, 약926m) 11:10 ~11:18
북봉에서 군사용 작전도로로 나와 작전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20분이면 목교에 닿는다. 아직도 현장등록이 실시되고 있으며 등록하는 곳은 한산한 편이다. 목교를 지나 두 번째로 이 길을 걸어서 중봉삼거리를 지나고 장불재를 두 번째로 지난다. 여기 등록센타도 한산한편으로 아직도 현장등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송신탑이 있는 평탄한길을 따라 낙타봉으로 향한다. 5분후 만연산, 너와나 목장으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6분을 서서히 오르면 첫 번째 바위봉에 닿는다. 멀리서 볼 때는 철쭉이 그져 붉게 핀 것이 듬성듬성 보이더만 실제 가까이 접근하니 그 경치가 대단하다. 온통 붉게 핀 철쭉으로 물든 백마능선은 철쭉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고 오늘 정상을 다녀온 것보다도 더 이곳을 온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재 바위봉에 올라 암능을 따라 진행하여 끝 쪽에 철주가 쳐져 있는 바위봉을 지나고 좀 더 진행하여 우측 편으로 있는 바위봉 좌측사면을 통하여 안부로 내려서면 안부지역에 붉게 핀 철쭉은 억새가 꽉 들어찬 가을 많지나 아름답다. 안부에서 낙타봉으로 오르는 능선으로 철쭉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으며 꽃 터널을 지나 낙타봉 정상에 오르니 정상부의 바위틈으로 자란 철쭉꽃은 앙증맞은 것이 보기에 너무 귀엽다. 낙타봉에서 사진을 찍고 반대편으로 보이는 만연산과 남쪽 끝으로 있는 안양산은 이곳보다 철쭉꽃이 더욱 밀집해 있어 정상부가 붉게 보인다. 무등산 정상부의 천왕봉 쪽도 여기서 보니 그 덩치가 큼지막한 것이 언제 저기를 올라갔다 여기까지 왔나 싶다.
중봉(13.40km, 약910m) 12:01
낙타봉에서 내려서서 다시 되 돌아온다. 내려오며 보는 모습은 더욱 좋은 것 같다.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첫 번째 철주가 있는 바위봉 아래로 이정표가 나온다. 능선암으로 장불재 0.9km, 안양산 2.2km가 적혀 있다. 낙타봉에서 이곳까지 약 800m거리이니 낙타봉에서 안양산까지는 대략 1.4km 거리가 나온다. 안양산 까지 다녀와도 시간은 되겠지만 저녁에 모임이 6시 반에 있다고 하니 낙타봉에서 산행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되돌아서 이곳 까지 왔다. 이제 암릉을 지나 마지막 바위봉을 지나 내려서면 너와나목장으로 내려서는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 오늘 세 번째로 장불재를 지나게 된다. 아직도 현장등록이 실시되고 있어 오늘 청주에서 올 때 천천히 여유를 갖고 와도 되는 것인데 너무 급하게 서두른 것 같다. 장불재를 지나 중봉으로 가는 임도삼거리를 지나 좀 더 진행하면 임도에서 좌측으로 예전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능선으로 진입을 하게 된다. 이 능선을 사양능선이라 하며 중봉을 거쳐 충장사까지 진행할 수 있다. 중봉까지 이르는 이 능선은 1966년 군부대가 주둔을 하며 콘크리트 막사를 비롯해 식당, 창고. 사무실등 군사시설이 30년간 주둔하고 있다가 1996년 군 시설이 이전 후 식생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은 대표적인 무등산 억새군락지가 되었다. 지금도 능선 길은 세멘트 길이 남아 있다. 김덕령 장군이 이곳에 삼을 심어 놓고 높이뛰기 훈련을 했다해서 삼밭실이라고 부른단다. 잠시 후 이 능선을 지나 서서히 오르게 되면 중봉정상에 닿는다. 정상표지석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바위에 앉아 점심식사 중이다. 우리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시원한 그늘을 찾아 더 진행하기로 한다.
백운암터, 덕산너널 사거리 이정표(우측으로, 15.56km, 약520m) 13:13
중봉에서 내려서서 좀 더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는 오늘 행사로 인하여 광주소방헬기가 주둔을 하고 있다. 우리가 헬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 조종사님께서 헬기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어 주었는데 너무 잘 나왔다. 조종사님께 감사하다. 헬기장을 지나 광주방송 송신탑이 있는 좌측으로 오르니 길이 없다.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돌아서 가니 여기도 철쭉꽃이 만발해 있으며 너럭바위에서 보는 무등산의 서석대 인왕봉 지왕봉 천왕봉이 있는 정상부가 멋지게 보인다. 잠시 후 물통이 있는 중봉보다 1m가 더 높은 해발 약911m봉에 오른다. 이봉을 ‘청심봉’이라 한다. 청심봉아래 시원한 그늘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출발을 한다. 여기 사양능선으로도 철쭉꽃이 만개를 하여 아름답다. 식사 후 3분을 가니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은 중머리재, 장불재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동화사터 0.6km가 적혀 있다. 우측으로 길을 따라 진행하면 7분후 동화사터 삼거리에 닿는다. 증심교 2.4km, 동화사터 20m가 적혀 있다. 여기서 능선으로 진행하지 않고 동화사터로 내려선다. 토끼등 까지는 가지 않고 그전에 있는 사거리까지 진행한 후 우측으로 진행할 예정으로 좌측으로 내려서면 4분이 지나서 샘터가 있는 곳에 닿는다. 이곳 주변으로 돌담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동사화사 터로 보인다. 여기 샘은 식수로는 불가 하다. 이후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돌길을 따라 내려서서 10여분 후 바위 밑 샘에 닿는다. 여기 물은 깨끗하니 식수로 사용 가능하며 물맛도 나쁘지 않다. 이후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서면 우측으로 무등산의 대표적인 너덜중 하나인 덕산너덜이 가까이 있고 너덜을 끼고 계속 내려서면 7분을 더 내려서서 119구조 2지점에 닿는다. 이곳에서 3분을 더 내려서면 좌측으로는 백운암터 0.9km, 아래쪽으로 토끼등 0.3km, 위로는 동화사터 0.7km가 적혀 있으나 우측 내가 가려는 방향의 덕산너덜 쪽으로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서 토끼등 까지 내려서서 원효사로 가는 길은 좋은 것으로 보이나 덕산너덜을 직접 보려면 여기서 우측으로 가야 한다.
원효사 주차장(18.62km, 약350m) 14:10 ~14:20
이제 우측으로 덕산 너덜 방향으로 이동을 하면 2분후 덕산 너덜에 닿게 되고 여기 덕산너덜 안내판이 있다. 엄청난 규모의 덕산너덜을 지나는 길은 매우 좋은 편이다. 너덜 길을 따라 10분을 지나면 이정표가 나온다. 바람재 0.7km, 늦재 1.1km, 백운암터 1.3km가 적혀 있으며 이곳에서 잠시 가면 작은 너덜을 하나 더 지나서 작은 바윗길을 따라 가면 능선 사거리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 닿는다. 백운암터 1.7km, 위쪽으로 동화사터 0.9km, 아래쪽으로 바람재 0.3km, 사면을 따라 늦재 0.7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직진 방향으로 사면 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작은 바윗길을 따라 진행하여 중간지점을 지나면 산길은 육산 길로 매우 좋아진다. 이렇게 하여 10여분을 진행하면 동화사터 능선에서 내려온 길과 두 번째로 만나는 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아래쪽으로 늦재 0.2km, 위로 동화사터 1.3km, 중봉 2.6km, 사면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원효분소 1.7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원효 분소 방향을 따라 사면으로 따라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4분후 아스팔트길에 닿는다. 이 길은 군작전도로로 무등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내려오면 늦재 쉼터가 있는 도로 삼거리에 닿는다. 늦재로 내려서면 도로를 따라 이곳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서면 10분이 좀 더 지나 원효사에 닿는다. 원효사 경내로 들어가 잠시 관람을 한후 도로를 따라 다시 8분여 내려서면 차량을 주차한 원효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오늘 이렇게 하여 무등산 개방일을 맞이하여 무등산 정상부와 낙타봉 중봉을 거쳐 멋지고 아름다운 무등산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가는 길, 오는 길 주말이지만 차량도 밀리지 않아 운전하는 대도 편안하게 하며 무사히 집까지 도착하여 저녁 모임에도 늦지 않게 참석하여 즐거운 하루를 마감 할 수 있었다.
산행시간 : 6시간 55분 소요
산행거리 : 18:62
도로비 갈 때 : 9700원
올 때 : 10200원
연료비 : 약 50000원
주차비 :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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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산
청주 ~광주 : 7:10분 고속버스
광주광천터미널~충장사:지선1187번(원효사하차) 광천동10:55,11:20 1시간 소요 1250원
급행 순환 01번 -풍향시장 정류장 환승 - 충효 187번 -충장사
증심사 지구 ~ 광주 광천터미널 : 급행 첨단09(40분 소요, 시간당7대), 지선 수완12(신세계백화점하차 500m), 간선 운림50(농성역, 터미널 1.2KM)
광주 ~청주 : 평일 14:10, 15:20, 16:45, 18:20, 20:10(금토일 시간당 1대꼴)
산행코스
원효사~서석대~중봉~중머리재~증심사~증심사입구 (서석대 1100M, 증심사 100M)
산행시간 : 5시간 산행거리 : 14.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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