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1045 한남정맥6 대곶사거리~것고개~문수산(376m)~보구곶리 2017.12.29.금요일 맑음(미세먼지 심함)

한남정맥6 대곶사거리~것고개~문수산(376m)~보구곶리

2017.12.29.금요일 맑음(미세먼지 심함)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청주 02:00 -승용차 -조치원역 02:25 ~02:44 -열차비7800 -영등포역 04:16~05:33(아침식사 및 휴식) -신세계백화점앞 버스정류장 05:38 ~06:24 -버스비 2400 -대곶사거리 07:48~07:50 -대곶초등학교앞 07:51 -(0.40km, 80m) 08:00 -주 아산앞 도로(광명공업기계, 0.615km) 08:07 -우측으로 -성화전기에서 좌측골목으로 -철강공장(동영정공) 뒤편으로 올라서서 -이의갑선생 흉상 08:17 -능선 철조망 08:23 -90(1.5km) 08:30 - 덕원군묘 08:31 -대곶북로 도로(창조스텐고철, 2.3km) 08:42 -도로따라 -팔거리 표지석(2.83km) 08:50 -우측편 골목따라 -서일공장앞 08:56 -장승산단앞(3.68km) 09:01 -장승고개(동인기연, 4.35km) 09:09 -잡목길 - 임도(통신탑. 4.65km) 09:17 -철문 09:20 -안부농가 - 철조망 넘고 -능선잡목길 따라 -신설 공장 절개지 내려서서 -광보화학앞 좁다란 포장도로(5.36km) 09:33 -잡목길 능선 -좌측으로 공장지대 -우측 묘지조성공사지 -도로(좌측으로) - 도로 삼거리(독립운동가 전태순의 묘, 고려가구, 5.95km) 09:45 -공동묘지 -철조망앞 초소(6.08km, 80m) 09:50 -철조망 따라 좌측으로 -철조망 새로 신설(좌측으로 공장지대) 담장치면 빠져나갈곳 없음 -공장안으로 들어가 길따라 우측으로 -절개지 아래 임도길 따라 굴뚝 보이는 곳으로 -삼부정밀 옆 도로(높다란 굴뚝이 삼부정밀임, 6.71km) 10:04 -좌측 능선으로 표지기 붙어 있어 따라 감(우측으로 가야 72.8봉임) -공장지대로 내려서서 심강신도비입구 10:18 -능선으로 올라 삼각점봉(삼각점2, 7.56km, 80m) 10:29 -것고개(통진두레문화센타, 해병대 2사단 정문, 7.90km) 10:39 -승룡APT 6동옆 길은 막혔음 -도로따라 문배주공장 삼거리(9.09km) 10:56 -문덕제 표지석(수로) 11:03 -군부대 담장따라 우측으로 -문덕제앞에서 좌측편 군부대 철조망따라 11:12 -철조망옆 계단길 -6초소옆 삼거리(좌측으로, 10.51km, 105m) 11:26 -군부대 철조망따라 -진지옆 작은 철문(11.40km) 11:45 -좌꺽임봉(11.45km, 120m) 11:47 -임도고개(11.84km) 11:55 -돌계단올라 -고정리 지석묘 11:56 -12번 군도(남정곡고개, 12.11km) 12:00 -95(참호, 12.39km) 12:06 -비포장 임도위 공장지대(동호엔지니어링 등, 갈산공단, 12.87km) 12:16 -절개지 올라 무장김씨묘 12:17 -(13.28km, 80m) 12:26 ~12:47(중식) -에덴축산 앞도로(13.70km) 12:57 -56번 지방도(비루고개, 태웅메디칼, 14.87km) 13:12 -웅덩이봉(좌꺽임, 15.08km, 80m) 13:18 -철조망(금녕김씨묘, 15.17km) 13:21 -군부대철문(15.56km) 13:27 -능선으로 군부대 훈련장 -삼각점봉(15.72km, 100m) 13:32 -임도(15.98km) 13:37 -임도따라 -애기봉 이정표 삼거리(16.56km) 13:45 -쌍용대로 표지판, 22번군도(아스팔트도로, 우측 조강리, 17.08km) 13:54 -흰색철문(새싹유치원, 17.25km) 13:59 -철망끝(17.40km) 14:04 -좌측하산로(17.79km, 230m) 14:18 -능선마루918.0km, 310m) 14:26 -문수산정상(정자, 18.24km, 376m) 14:32~14:40 -전망대 14:44~14:48 -좌측 성동리 삼거리(19.32km) 15:01 -321(이정표, 19.44km) 15:06 -내리막 로프지대 -좌측 하산로(19.56km) 15:10 -안부 삼거리(좌 동막골, 소나무숲, 19.90km) 15:20 -바위봉(20.47km, 240m) 15:33 -270(두류봉, 20.86km) 15:42 -철조망 앞(21.06km) 15:48 -좌꺽임봉(TV안테나, 21.72km, 145m) 16:01 -성주이씨묘(22.11km) 16:08 -검문소 앞 도로(22.26km) 16:11 -보구곶리 버스정류장(22.75km) 16:20~16:55 -11번 버스비 1150 -군하리 17:15~17:17 -3000번버스비 2400 -합정역 19:00 ~19:09 -지하철비1250 -신도림역 19:17~19:21 -영등포역 19:25 ~19:53 -열차비 입석 6600 -조치원역 21:19 ~21:26 -청주집 21:50

~~~~~~~~~~~~~~~~~~~~~~~~~~~~~~~~~~~~~~~~~~~~~~~~~~~~~~~~~~~~~~~~~~~~~~~~~~~~~~~~~~~~~~~~~~

 

덕원군

덕원군(德源君, 1449 3 6~1498 7 22)은 조선전기의 왕자, 왕족으로 세조의 서장이며 근빈 박씨의 소생이다. 예종 때 남이의 옥사를 평정한 공으로, 수충보사정란익대공신(輸忠保社定難翊戴功臣)에 책록되었다. ()는 서()이고, ()는 정수(晶受)이며 호는 종덕암(宗德菴)이다.

조선 세조와 근빈선산박씨(謹嬪善山朴氏) 사이의 서자로 세종 31(己巳年 -1449 3 6일 한성부에서 출생하였다. 단종3(1455) 甲戌年 어머니를 여의고 부왕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부왕 세조가 등극한 뒤 세조4(1458) 戊寅年 8 10세에 덕원군에 봉군(封君)되고 세조8(1462) 임오년 14세에 혼인하여 사저 60여칸을 하사받고 출궁하여 이때부터 궐밖 건천동(乾川洞)에서 생활하였다. 덕원군은 평소 효심이 지극하여 부왕을 정성껏 모셨으며 부왕이 거동할 때에는 항시 배행(陪行)하였다.

부왕의 온양온천 행차에 배종하면서 진위군 종덕면 막금리(현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당현리)에 당도하니 옛날나라에서 지표(地標)를 묻어둔곳 인데, 덕원군이 세조의 어가 앞에 나아가 이 땅을 자신에게 내려주실 것을 청하니, 세조가 쾌히 승낙하여 그 땅을 덕원군의 사패지 전지로 하사하였다. 후일 덕원군은 수구(水口)에 긴 뚝을 쌓고 안산(案山)에 작원당(作願堂)을 짓고 탑()을 세우며 대로(大路)를 평택 쪽으로 옮기니, 이곳이 훗날 공()의 묘소가 있는 사패지이다. 이때부터 매표저동강종덕(埋標處東岡宗德)이라하고 공의 호 또한 종덕에서 유래하였으며 사시(賜諡)는 소간(昭簡)이시다.

세조14(1568) 무자년 덕원군의 나이 20세에 세조가 승하하고 이복동생 예종이 즉위하였다. 예종조에는 국정을 돌보고 문충공 신숙주, 한명회, 유자광 등과 협력하여 남이의 옥사을 평정한 공으로, 수추오사정란익대공신에 책훈되고 성종조에는 종부시도제도(宗簿寺都提調)를 명받아 종실을 바로 살피고, 선원보를 관장하였으며, 선왕의 제향소 일을 맡아 보았다. 연산조에는 바른 말을 진언하여 잘못된 정사를 다소 시정케하였다. 공께서는 세종대왕이 성리에 심취한 유지를 받드러 성현의 학문을 전수하고,(),()를 밝히니 일대의 유종(儒宗)이라 칭송을 받았다. 무오사화로 많은 사림파의 유생들이 희생당하자 낙향하여 연산군 491498) 7 22일 한성부 건천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니 향년 49세였다.

묘소는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당현리에 있었으나 김포시 대곶면 송마리로 천묘하여 흩어져 있던 어머니 근빈선산박씨와 군부인(4)을 같이 모셨다.

 

예종 때 덕원군은 즉위년 10월에 있었던 남이장군의 옥사(獄事)에 왕실의 종친으로서 적극 관여하여 2등 공신(功臣)인 수충보사정난익대공신에 올랐다. 조선이 왕족이나 외척의 정치개입을 적극 견제하였다고는 하지만 공신(功臣)으로 책봉되면 본인 뿐 아니라 조상과 후손들에게까지 부귀와 영화가 보장되게 마련이다. 예종 1 5월에 덕원군은 공신(功臣)에 대한 포상으로 영정이 그려져 각()에 보관되고, 반인(伴人) 8, 노비 10, 구사(丘史) 5, 전지(田地) 1백결,  25, 표리(表裏) 1, 내구마 1필과, 역적으로 몰린 민서의 첩 중비와 문치빈의 첩 눌가의 딸 문용비를 받았다. 덕원군의 입지(立志)는 성종이 즉위한 다음에도 줄지 않았다. 성종 1년에 이조판서 권맹희가 왕족들의 역할을 평가할 때 "다른 왕족들이 덕원군과 같다면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라고 평하고 있는 것에서 일면이 파악된다. 그러나 성종 3년에 방호련, 김효동 등 3천여 명과 함께 회암사에 가서 불공을 드린 것이 문제가 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내리막 길을 걷는다.

기록에 의하면 덕원군은 세조의 셋째 아들이다. 세조는 왕비 윤씨에게서 의경세자와 예종을 낳았고, 귀인 박씨(나중에 근빈에 봉함)에게서 덕원군과 창원군을 얻었다. 그러므로 덕원군은 적자가 아닌 서자(庶子)인 셈이다. 실록에서도 그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는데, 세조 8 8월의 기록에 덕원군의 집을 구입하면서 예조에서 60여 간()이나 되는 큰집을 구한 것을 노사신이 비판한 내용이 있는 것을 볼 때 세조 2(1456) 전후가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서(李曙)가 덕원군에 봉해진 시기가 세조 4년이며, 귀인 박씨가 본래 궁인(宮人) 출신이었고 궁인을 후궁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세조가 왕이 된 다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덕원군은 어려서 의경세자와 돈독한 관계였다. 세자의 생일에 초대된 것은 물론이고, 매사냥을 할 때도 동행하였다. 그러나 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고 동생이었던 예종이 즉위하였다.

짐작할 때 평택지방에 은거한 것도 이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성종 때는 유교정치이념이 정착되는 시기여서 사대부나 왕족의 성리학 외에 다른 사상이 용납되지 않던 시기였다. 그러나 왕은 왕실의 체통 때문이었는지 방효동 등은 처벌하였지만 왕족인 덕원군과 창원군은 삼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벌하지 않았다. 하지만 덕원군은 자신이 주도한 일에 방호련 등만 처벌받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벌였다. 실록에는 덕원군이 언제 죽었는지 나와 있지 않다. 보통 조정의 고위 관료가 죽으면 실록에 졸기라고 해서 일생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데 덕원군에게는 그런 것도 없다. 하지만 성종 5 10월 덕원군의 아내에게 부의(賻儀)로 쌀과 콩 40석과 종이 1백 권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 때쯤 죽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출처] 덕원군 묘|작성자 핸섬

 

김포 고정리 지석묘

고정리지석묘(高亭里支石墓)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이다. 1986 9 7 경기도의 기념물 91호로 지정되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탁자식과 바둑판식으로 구분되는데, 탁자식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이고, 바둑판식은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형태이다.

통진읍 고정리 뒤편의 구릉지대에 3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가운데 1기는 탁자식 고인돌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3m, 두께 0.83m이다. 나머지 2기는 받침돌 부분이 땅 속에 묻혀 정확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

고정리 고인돌은 한강 하류 지역에 나타난 고인돌 문화와 사회, 그리고 고인돌 축조 방법과 기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수산 (김포)

문수산(文殊山)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산 35-1번지에 있는 해발 고도 376m이다. 김포시 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조선시대 숙종(肅宗) 때 축성한 산성이 있는데 1866(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곳을 점령하였다고 한다. 문수산 산자락, 산성 안으로는 문수사(文殊寺)가 세워져 있다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와 포내리 일원에 위치하여 강화도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은 한남정맥(漢南正脈)에 속해있는 산으로 칠장산(죽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의 줄기로 도덕산·국사봉(안성상봉·달기봉·무너미고개·함박산(函朴山:349.3m, 용인학고개·부아산·메주고개(覓祖峴석성산·할미성·인성산(仁聖山:122.4m, 용인형제봉·광교산(光敎山:582m)·백운산(白雲山:560m)·수리산·국사봉(國思峯:538m)·청계산(淸溪山:618m)·응봉(鷹峰:348m)·관악산·소래산(蘇來山성주산(聖住山철마산·계양산(桂陽山가현봉(歌弦峰필봉산(筆峰山학운산(鶴雲山것고개·김포 문수산 등으로 이어주고 있다

문수산성은 숙종 8(1882)에 강화유수가 강화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여 12년이 지난 숙종 20(1694) 끝낸 산성이다. 조선 말기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문수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비아산으로 나오는데 통진현 읍에서 북쪽 6리에 있는 진산이었다. 기록에는 문수사(文殊寺)와 흥룡사(興龍寺)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문수사 흥룡사는 함께 비아산에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지승람이 편찬된 중종 25년간(1530)까지는 적어도 문수사와 흥룡사가 현존했던 것이고 비아산은 문수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진은 지금의 김포 월곶면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통진현으로 독립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한 때는 통진도호부(通津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김포시의 한적한 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범우고(梵宇攷) 가 발행된 정조 23(1799)에는 흥룡사가 이미 사라져 없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한 전등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 전등사와 그 말사를 기록한 책)에 있는 문수사지(文殊寺誌)에도 통진 비아산 문수사라는 기록으로 보아 비아산은 지금의 김포 월곶면 문수산 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애기봉

애기봉(愛妓峰)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의 경계에 있는 이다. 기생의 이름인 애기에서 유래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애기와 평양감사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은 김포 해병대 2사단이 주둔하는 군사시설보호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출입시 신고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애기봉 등탑

1954부터 애기봉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연말연시에 트리에 불을 켰다. 처음에는 소나무로 장식 트리를 만들어 썼으나, 1971에 철탑으로 대체되었다. 애기봉에서 한강 하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인 북쪽 하안(河岸)까지 거리는 3 km 밖에 되지 않으며, 에 등탑에 불을 켜면 전력 사정이 나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에서는 그 불빛이 약 25 km 떨어진 개성 시내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간 갈등을 야기해 왔다.

2004년부터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의 합의에 따라 점등을 하지 않다가, 2010년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12 21일부터 다시 점등하였다. 2011년에는 12 23일부터 점등할 예정이 었으나, 12 18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김포시에서 국방부에 점등 중단을 요청해 취소되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2014 10(10:15~10:16) 철탑을 철거하였는데, 국방부는 각급 부대의 대형시설물 안전진단 결과 애기봉 철탑이 지반이 약한데다 철골이 오래돼 쓰러질 위험이 있는 D등급 판정을 받아 붕괴시 일발 관광객의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어 철거 하였으며, 철탑 철거와 남북관계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김포시는 등탑을 철거한 자리에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아파트 18층 높이인 54M의 고층전망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워키백과에서 옮김

~~~~~~~~~~~~~~~~~~~~~~~~~~~~~~~~~~~~~~~~~~~~~~~~~~~~~~~~~~~~~~~~~~~~~~~~~~~~~~~~~~~~~~~~~

청주 02:00

저번 주 제천 스포츠센타 화재사고로 영산기맥 4번째 산행을 가지 못하여 10여일 만에 올 마지막 산행을 하게 되었다. 국민들의 자유의 함성으로 전직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고 다시 선출된 대통령이 탄생을 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던 한해였다. 또한 올해 마지막달 성탄절 전에 일어났던 커다란 사건인 제천 스포츠 센타 화재 사건은 많은 분들이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이렇듯 올해도 많은 일들이 지나며 한해가 기울고 있다. 내일모래면 2017년 한해가 가고 2018년 개띠해인 무술년 새해가 떠오를 것이다. 그때 다시 힘찬 발걸음으로 목적하는바 소원을 이루시길 바라며 올 한해 마무리 산행으로 1대간 9정맥의 마지막 산행으로 한남정맥 대곶사거리에서 문수산, 보구곶리 까지의 산행을 하기로 한다. 함께 항상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적막님은 오늘 산행으로 1대간 9정맥중 금북정맥 몇 구간만을 남기게 된다. 적막님의 주거지인 만큼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마치길 바라며 한남정맥 마지막산행, 올 마지막 산행을 하기로 한다. 난 조치원역에서 용산으로 가는 02 44분차를 타기로 하고 적막님은 천안에서 이차를 타기로 한다. 집에서 새벽 2시에 출발을 한다.

 

대곶사거리 07:48~07:50

집에서 승용차로 조치원역에 도착을 하니 02 25분이다. 차량을 조치원역 근방에 주차를 하고 용산으로 가는 열차 영등포까지 7800원을 주고 차표를 끊고서 잠시 기다려 정시로 들어오는 차에 승차를 한다. 야간열차라 그런지 좌석이 대부분이 비어 있다. 20여분이 지나 천안에서 적막님이 승차를 하고 1시간을 더 달려 영등표역에 10여분이 늦어서 도착을 한다. 전철 타는 곳은 개방이 되어 있으나 일반열차를 타는 곳은 굳게 닫혀 있어 갈 곳이 없어 30여분 방황을 하고 있자니 역사의 문이 열린다. 역사 맞이방 TV시청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5 20분경 역사내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가볍게 해결하고 신세계 백화점앞 버스정류장으로 이동을 하여 대명항 까지 가는 8000번 버스를 기다리니 예정된 05 50분을 훌적 넘겨도 버스가 오지를 않는다. 버스정류장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로 적막님이 전화를 하니 첫 버스는 벌써 떠났단다. 정류장 8000번 아래에 적혀 있는 시간도 분명 05 50분이 첫 버스라고 적혀 있는데 글씨 첫버스 시간이 05 30분이란다. 뒷차가 당산역에 가고 있다고 한다. 5~6분을 더 기다려 두 번째 차가 오는데 고장으로 못 고치면 못 간고 하는데 다행히 작은 고장이라 버스를 기다리던 분과 합세하여 간단히 고치고는 06 24분 출발을 한다. 버스시간님에게 물어보니 첫 버스는 이곳에서 5분을 기다리다 05 40분에 출발을 했다고 한다. 첫 버스 시간이 05 40분이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여기서 예정보다 30분이 늦었다. 버스는 이곳저곳을 돌아서 대곶사거리에 07 48분 도착을 한다.

 

대곶북로 도로(창조스텐고철, 2.3km) 08:42

대곶사거리에 도착하여 뒤쪽으로 조금 가면 파출소가 있고 잠시 후 골목이 나온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대곶초등학교가 나온다. 이곳에서 지름길은 좌측으로 간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첫 번부터 우회할 생각은 없기에 우측으로 돌아서 밭 가운데로 들어가 초등학교 철조망 옆쪽으로 치고 오르니 전주이씨 가족묘를 지나 해발 약 80봉에 닿는다. 이곳부터는 산길이 제대로 있다. 이 길을 따라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7분후 우측으로 대곶복지관 목욕탕 높다란 옹벽이 있어 내려설 수 없어 어린이집 옆쪽의 포도밭을 따라 내려서서 도로에 닿는다. 도로에서 반대편 능선으로 붙어야 하는데 이곳이 온통 공장지대로 변모하여 건널 수가 없다. 정면의 철도 전기공사에 쓰이는 전철공사장비가 있는 광명공업옆 공터로 들어가서 어떻게 가보려 했으나 여기도 공장을 짓고 담장을 치고 철망을 쳐서 넘어 갈수가 없다. 다시 돌아 나와 도로를 따라 우측(팔거리방향)으로 따라 내려가면 신성정공 담장 끝에서 성화전기공업 붉은 건물이 있는 사이로 골목을 따라 좌측으로 들어가면 철강공장인 공영정공이라는 공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공장 앞을 가로 질러가면 끝에서 산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 보인다. 이곳으로 오르면 쌍사자석물이 있고 탑이 보이는 커다란 산소가 있다. 이 앞쪽에 이의갑선생 흉상이 있다. 이곳에서 우측에 보이는 임도를 따라 오르면 산소지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능선을 치고 오르면 몇 분후 능선 부근의 산소가 나오고 산소 뒤로 오르면 철조망이 있는 정맥 길에 닿는다. 철조망을 따라 진행을 하면 잠시 후 90봉에 닿고 여기서 내려서며 좌측으로 담장이 쳐져 있는 커다란 산소에 닿는다. 문인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산소는 아니기에 내려가 보니 세조의 3째 아들인 덕원군묘소다. 세조와 근빈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다. 이후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면 10분이 좀 더 지나 창조스텐고철 간판이있는 대곶북로 아스팔트도로에 닿는다.

 

광보화학앞 세멘트도로(5.36km) 09:33

이제 도로를 따라 걷는다. 좁다란 도로에 차량이 많아서 먼지가 날리고 위험하여 신경이 많이 쓰인다. 뷔폐식당, 주유소등을 지나 송마리 팔거리표지석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측편 더 김포 부동산우측으로 골목길이 있다. 이곳으로 가면 잠시나마 한적하니 좋다. 이길 끝 서일공장 앞으로 나와 팔거리 계량소를 지나고 장승산단진입로를 지나서 가면 좌측으로 뉴팜공장이 보이고 잠시 더 가면 우측으로 동인기연 공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옆으로 장승이 서있는 곳에 닿는다. 장승이 서있다고 장승고개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이 장승고개다.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마송리와 석정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아웃도어와 유아용품을 생산하는 공장인 동인기연이 우측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공장진입로 옆 가시밭으로 여러기의 표지기가 붙어 있다. 잠시 앞쪽으로 가서 우측으로 진입하여 능선에 오른다. 이후 능선 길에서 좌측편 풀밭으로 내려서서 동인기연 철조망을 따라가면 컨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곳에 여러 마리의 개들이 짖어대는 곳에 닿는다. 동인기연에서 키우는 개들로 철조망안쪽으로의 진입을 막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서 좌측 편으로 조금 더 오르면 표지기가 보인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면 금시 널찍한 임도에 닿는다. 도로를 따라 이곳 임도로 오면 편하게 올수 있는 것을 가시밭길을 따라 온 것이다. 임도를 따라 잠시 가면 좌측으로 SK송신탑이 있고 조금 더 가면 철문이 나온다. 철문은 자물통으로 잠겨져 있으나 쇠사슬이 끊겨 있어 안쪽으로 손을 넣어 쇠사슬을 풀어헤치고 문을 열고 들어서서 잠시 가면 우측으로 널찍한 전답이 있는 안부의 커다란 농가 막사가 있는 곳에 닿는다. 조막만한 개가 마구 짖어댄다. 농가 앞쪽으로 돌아서 가면 금시 철조망이 나온다. 굵직한 신갈나무를 이용하여 넘어선다. 이후 능선 길은 잡목 길로 이어지며 매캐한 냄새와 분진이 나오는 좌측편 공장이 있는 곳에서 산길은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어 잠시 더 가면 신설공장 건물 옆쪽 절개지가 나온다. 절개지를 따라 내려서면 공장 안쪽으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광보화학이 보이는 좁다란 도로에 닿는다.

 

것고개(통진두레문화센타, 해병대 정문, 7.90km) 10:39

광보화학 앞 고개에서 곧바로 잡목 숲으로 들어서서 진행을 하면 잡목 길을 따라 진행하여 좌측으로 보이는 공장지대를 따라 능선 길로 가면 우측으로 벌목을 한 안부를 지나 올라서 납골묘를 신설하고 있는 능선에 닿는다. 좌측은 공장지대로 정맥 길은 저곳으로 가야 하나 우측으로 돌아서 가는 것이다. 앞쪽으로 공동묘지가 보이는 곳으로 산소조성을 하느라 임도를 냈고 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도로에 닿는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수로를 건너는 나무다리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다리가 놓여 곧바로 도로와 연결이 된다. 이후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태성기계기술등 공장을 지나 독립운동가 전태순의묘 이정표가 있는 지점을 지나면 도로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는 김포테마한증막, 밤골식당, 블루밸리농장 선전물이 있다. 좌측으로 고려가구 공장이 보이며 길을 건너면 공동묘지다. 이곳이 절골로로 통진읍 매수리와 절골안을 연결하는 도로다. 앞으로는 이곳 삼거리에서 좌측편 서문인터퍼니공장이나 우측편 충의아파트 쪽으로 가야할 것 같다. 초소에서 내려서서 길이 막힌다. 여기 삼거리에서 곧장 올라서면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끝 쪽에서 잠시 더 가면 군부대 철조망이 나오고 안쪽으로 흰색으로 된 초소가 보인다. 여기서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가면 좌측철조망 아래쪽으로는 서문인터퍼니, 해진산업공장등이 있는 공장지대로 철조망을 잡고 간신히 잡목지대를 따라가면 현재 새로이 설치하고 있는 신설 철조망이 나온다. 길은 더욱 나빠져서 이곳으로 가면 끝 쪽에서 길이 완전히 막히게 된다. 아직은 내려서는 좌측 편으로 공장지대의 담장에 철조망이 쳐져 있지 않아서 담장으로 올라서서 신설중인 공장안을 지나 우측으로 빠져 나갔지만 앞으로는 길이 완전히 막히게 된다. 우측으로 빠져나가 앞쪽으로 높다란 굴뚝이 보이는 절개지를 내려서서 잡목이 많이 자란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니 몇 분후 굴뚝 앞 도로에 닿는다. 삼부정밀 공장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 78.2봉으로 가는 것인데 좌측 능선으로 표지기가 붙어 있어 무심코 따라가니 길은 좋은데 좌측 편으로 넘어간다. 능선고개에서 우측으로 올라서서 앞쪽으로 보이는 78.2봉과 해병대 헌병대가 보이는 능선을 바라보고는 잘못 왔음을 인지하고는 그냥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공장지대 앞 도로에 닿고 도로를 따라 가니 철문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 철문 안쪽으로 심강신도비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 삼각점 2개가 있는 해발 약80봉에 오르고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통진두레 문화센터 옆 정자가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앞쪽으로 해병대 2사단 1연대정문이 보이며 횡당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것고개다. 통진읍 마송리와 옹정리를 잇는 48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다.

통진두레놀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벼농사가 시작된 통진읍 가현리 일대의 두레에서 비롯됐다. 1997년 제38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통진두레놀이는 1998 4 13일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통진두레놀이는 매년 단오제와 김포문화예술제등에서 볼 수 있으며 통집읍 48번 국도변에 통진두레문화센타가 건축되어 전승보전되고 있다.”

 

6초소옆 삼거리(좌측으로, 10.51km, 105m) 11:26

것고개 해병대 정문에서 우측으로 가면 식당 몇개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가면 해병대 군인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푸른미르아파트, 세탁소가 있는 아파트, 선봉연대 앞을 지나서 가면 승룡아파트가 나온다. 6동으로 내려서는 계단입구에 여러기의 표지기가 붙어 있어 내려서니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길이 없어졌다고 한다. 군부대에서 집을 졌는지 막았다고 한다. 다시 돌아 나와 도로를 따라 가면 대한폴리텍공장을 지나고 잠시 더 가면 김포시중소유통공동도매물류센터 간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 편으로 들어간다. “해주 최씨 문덕재 표지석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문배주 술공장이 나오고 공장 우측 길을 따라 가면 앞쪽으로 수로가 지나는 곳 아래로 두 번째 문덕재 표지석이 나온다. 여기서 우측 편으로 군부대 담장과 수로사이 도로를 따라가면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산 능선으로 오르는 좋은 길이 보인다. 저곳으로 올라도 되겠구나 생각을 하며 군부대 담장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그 끝에서 해주 최씨 문덕재가 나온다. 이곳에서 군부대 담장사이로 진입을 하면 문덕재와 사이의 좁다란 길을 따라 들어가 철조망을 따라가게 된다. 안쪽으로 문덕제 재실 건물과 정원등이 보이고 철조망을 따라가면 계단이 있는 곳에서 우측 편으로 해주최씨 묘역이 나오고 위쪽에서 좌측으로 꺽여서 잠시 들어가면 다시 철조망은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이곳도 통나무계단이 설치되어 그 끝에 군부대 제6초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산길이 양쪽으로 있다. 우측으로 좋은 길을 따라가다가 방향을 잘못 잡았음을 인지하고 다시 돌아와 좌측으로 간다. 우측 길은 문덕제 오기 전 수로에서 우측능선으로 오른 길이었다.

문배주

몽골군이 유라시아 대륙을 정벌하고 세계를 호령할 때 아랍의 알콜 증류법을 도입해서 증류식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에 몽골군에서 유명한 술은 마유주(말의 젖을 발효시켜서 만든 술)인데 술을 워낙 좋아하던 민족이라 새로운 증류식 소주도 그들의 입맛에 맞았던지 13세기 초 몽골군의 진격에 고려국도 어쩔 수 없이 지배를 당하는데 그 당시 그들이 주둔을 했던 평양에서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좋은 술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문배술의 시초라고 한다. 고려시절에 그 맛이 너무 좋아서 왕에게만 진상이 되다가 고려시대 중엽에 이르러서 양조비법을 퍼트려서 서민들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맥이 끊겼다가 평양에서 3대째 전수자이신 이경영옹께서 아버지께 비법을 전수 받다가 6.25가 일어나자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서울에서 거북선이란 이름으로 문배술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간에 양곡관리법으로 중단이 되었지만 80년대에 들어서 다시금 생산을 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5대째 전수를 받아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문배술은 특이하게 쌀이랑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밀과 수수, 조를 원료로 하여서 술을 빚는 삼양주이다.(한번만 빚은 술이 단양주, 이술에 덧술로 이뤄진 술을 이양주 여기에다 덧술을 한번 더 빚어서 만드는 술이 삼양주이다) 잡곡으로 만든 순곡 증류주이지만 맛이 깔끔하고 뒤끝이 없어서 높은 도수임에도 불구하고(40) 술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술이다. 잡곡으로 만들었지만 야생돌꽃배의 향기가 난다고 해서 문배술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배술이 또 유명한 것은 2000년 남북정상들이 만남을 가졌을 당시 우리 측에서 제공한 건배주가 문배주였다. 술의 맛은 도수가 높지만 깔끔하게 넘어가고 뒷끝이 없다 그리고 원래 돌꽃배의 향기가 난나고 한다. 문배술은 40도와 23도의 두 종류가 나온다.

 

문덕재

해주최씨 김포문중의 제실로 시조인 온()을 모시고 있으며 사적비도 있다고 한다.

 

에덴축산 내려서기 전 봉(13.28km, 80m) 12:26 ~12:47(중식)

6초소에서 잠시 가면 좋은 길은 끝이 나고 철조망을 따라 간다. 좌측으로 군부대의 시설물들이 보이고 20여분 가까이 철조망을 따라 가면 철조망을 밟고 넘어서고 우측편으로 교통호를 따라 잠시 내려서서 작은 철문을 빠져나간다. 이곳이 아직도 얼어붙어 있어 매우 미끄럽다. 배낭에서 스틱을 꺼내 지팡이 삼아 미끄러운 길을 더듬더듬 내려서서 가면 면천박씨가족 납골묘가 나오고 안부를 지나 살짝 올라섰다 폐타이로 만든 벙커봉인 좌꺽임봉에서 내려서는 곳은 폐타이어로 쌓은 교통호를 따라서 간다. 이후 풍양조씨 묘지 3기를 지나서 내려서면 안부를 지나 다시 까망망이 씌워진 철조망 길을 따라서 가면 널찍한 임도고개다. 우측으로 민가가 보이며 좌측은 12번 군도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고정리 지석묘가 나온다. “선사시대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돌맨(DOLMEN) 또는 고인돌이라 불리고 있다.  3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가운데 1기는 탁자식 고인돌이고, 나머지 2개는 받침돌부분이 땅속에 묻혀 정확한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 확인이 가능한 탁자식 고인돌의 덮개돌 길이는 약2.3m, 두께는 0.83m이다.

고인돌을 지나 잠시 내려서면 12번 군도다. 남정곡 고개라고도 하며 군하리와 고정리를 잇는 고개다. 고개 서쪽에서 곧바로 표지기가 붙어 있는 곳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6분후 참호가 있는 해발 약95봉에 닿는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 길을 따라 임도 길에 닿고 임도 길을 따라 좌측으로 올라서면 동호엔지니어링등 공장들이 있는 갈산공단으로 여기서 우측편 공터로 들어가 절개지를 따라 올라서면 무장김씨묘역이 나온다. 아직도 짓고 있는 공장옆 능선을 따라가면 십자가가 그려진 묘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기독교인공원묘지로 보이고 이곳으로 오르며 심한 악취가 진동을 한다. 이후 능선을 따라 한동안 진행을 하면 해발 80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56번 지방도.애기봉로(비루고개, 태웅메디칼, 14.87km) 13:12

80봉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진행을 하면 문수산이 보일랑 말랑하며 서서히 내려선다. 오늘 심한 미세먼지로 인하여 가까운 곳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산행하는 내내 답답하다. 미세먼지 정확히 말하면 중국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날라와 우리나라 상공을 뒤덥은 것이다. 우째된 일인지 우리나라 정치하시는 분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우리나라 화력발전소 탓 만 하고 있다. 만치도 않은 화력발전소 내는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기를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온통 우리나라 하늘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다. 이제 중국당국에 떳떳하게 환경오염 줄려달라고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80봉에서 내려서며 좌측으로 공장지대와 커다란 축사들이 보인 후 높다란 골프연습장 그물망과 에덴축사 간판이 걸려있는 집이 나온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멍멍이 두 마리가 뛰쳐나와 마구 짖어 댄다. 잠시 나가면 차단기가 나오고 청림농장, 에덴농장간판 앞쪽으로 아스팔트포장도로가 나온다. 여기서 능선으로 잘 나 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 폐차장간판이 있는 사거리안부를 지나 서서히 도로를 따라 오르면 군부대 담장옆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도로가 좌측으로 꺽이는 곳 부터는 좌,우로 공장지대다. 태웅메디칼 공장 간판이 있는 56번 지방도인 애기봉로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닿는다. 비루고개라고도 하며 군하리 월곶면소재지와 하성면소재지를 잇는 도로다.

 

쌍용대로 표지판. 22번 군도(아스팔트도로, 우측 조강리, 17.08km) 13:54

태웅메디칼 공장앞 애기봉로를 건너 곧장 숲길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군부대 건물이 보이고 김해김씨묘소를 지나 산길을 따라 오르면 웅덩이가 있는 해발 약80봉에 닿는다.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천천히 내려서면 김녕김씨 묘지가 있고 바로 앞쪽으로 군부대 철조망이 나온다.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철조망 안쪽으로 해병대부대의 대포들이 보이며 철조망 군부대 작은 쪽문이 있는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으로 오르면 각개전투훈련장으로 북한군 인형이 서있는 곳으로 올라서서 푸석바위가 있는 해발 약100봉에 닿는다. 군부대 벙커가 있으며 삼각점이 있다. 100봉에서 내려서면 널찍한 임도가 나온다. 이후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가면 임도 좌측으로 철문이 하나 있고 6분을 더 임도를 따라가면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온다. 우측 애기봉 가는 쪽으로 문이 설치되어 있고, 이정표에 애기봉 3.8km, 문수산성 4.2km가 적혀 있다. 잠시 후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고 지붕이 설치된 의자 2개와 추모비하나가 있다. 여기 공터에서 임도 길을 따라 내려서면 5분후 좁다란 아스팔트포장도로에 닿는다. 쌍용대로 표지판이 있는 22번 군도로 좌측은 군하리, 우측은 조강리, 용강리로 가는 고갯길이다.

 

문수산정상(정자, 18.24km, 376m) 14:32~14:40

22번 군도 쌍용대로 표지판 앞쪽 이정표에 애기봉 4.3km, 문수산성 남문 3.7km가 적혀 있다. 도로건너편으로 진입을 하면 벌목지를 지나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가면 폐타이어로 만든 포진지가 나온다. 진지 앞 임도삼거리에서 좌측임도를 따라가면 흰색으로 된 철망과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는 철문이 나온다. 철문은 쇳대가 걸려 있으나 안으로 손을 넣어 옆으로 미니 열린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절개지 아래로 새싹 유치원이 보이고 유치원에서 올라온 테크계단이 연결이 되어 있다. 위쪽으로 다람쥐코스, 토끼코스, 거북이코스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거북이코스를 따라 위로 오르면 국기게양대가 있는 곳에서 양쪽에서 올라온 흰색철망이 만나게 되는데 저걸 어찌 넘나 생각을 하며 마지막 지점까지 가니 사람 하나 빠져나갈 만큼 열려 있다. 이후 능선은 좋아지며 서서히 오르게 되면 지나온 정맥 길이 보이지만 심한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하여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좋을 때는 북한산 까지도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복이 없어서 인지 간신히 가까운 곳 까지만 조망 할 수 있다. 이제 능성을 따라 15분 정도를 오르니 좌측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고, 다시 10분정도를 조금 못 올라서 우측능선과 만나는 능선마루에 닿는다. 이제 여기부터는 능선이 가파르지 않아 걸을 만하고 5~6분을 더 오르니 문수산성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닿는다. 앞쪽으로 높다란 장대지라고 하는 정자가 보인다. 우측으로 돌아서 가면 문수산 정상석이 나오고 좌측으로 돌아가면 장대지 정자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여기 문수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입구를 지키기 위해 조선 숙종 20년에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고종 3년에는 병인양요의 전쟁터였다. 장대지는 장수가 주변지형을 둘러보고 군사를 지휘하던 장소라고 한다. 문수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강화도로 건너가는 강화대교가 조망이 되고, 마니산 초지진등이 조망이 되며 우측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들어가는 조강이 시작되며 앞쪽으로 조강을 건너서 북한땅인 황해도 개풍군이 있지만 오늘 날씨로는 산 아래 조강과, 조강리 일대와 애기봉, 한강건너편 파주의 도라산 전망대의 흰색 기둥만 간신히 보일정도다. 문수산은 한강하류인 김포반도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산으로 좌측은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우측은 조강리에 위치한 산이다. 한남정맥의 최 북서쪽에 의하여 사계절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휴전선 최북단으로 서울의 관문이자 수도서울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며, 강화도가 지척에 있는 특이한 지형으로 인해 늘 역사의 현장이 되었던 곳이다. 멀게는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때 이곳 문수산 일대가 격전지였고, 가까이는 1866(고종3) 병인양요때 프랑스군과 일대격전이 있었다. 이때의 격전으로 성곽과 문루가 파괴되고 성내가 크게 파손됐다. 이후 6.25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기 까지 분단의 최전선에서 북한과 지척에서 대치를 하고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북한땅 연백평야와 예성강하구를 희미하게 볼 수 있고 개성 송악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좌측으로 강화대교 까지는 조망이 되는데 뒤편으로 고려산이나 혈구산, 마니산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강화도령으로 불리던 철종(조선25대임금)의 애뜻한 사랑이 서려 있는 강화도와 마니산이 가까운 곳이다. 철종은 강화도에서 농민과 행상으로 살던 양순이라는 천민처녀를 만나게 되어 양순과 혼약을 맺는다. 시골도령과 시골처녀로 시골에 살던 철종이 왕위에 오르며 둘 사이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천민은 궁녀조차 될 수 없는 규범 때문에 양순을 궁궐로 데려 갈수 없었다. 양순을 잊지 못하는 상사병을 앏자 왕가에서는 은밀하게 양순을 죽여 버린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철종은 비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김포반도와 강화도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마치 강줄기 같다하여 염하라고 한단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서 서해로 들어가는 큰 강줄기를 할아버지 강이라 하여 조강이라 한다고 하며 보구곶리 앞쪽으로 작은 섬을 유도라 부른다.

 

270, 두류봉(20.86km) 15:42

문수산 정상에서 널찍한 테크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널찍한 목재로 만든 쉼터가 나온다. 고양이 몇 마리가 상주하고 있다. 다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전망대다. 잠시 전망대에 올라보았지만 날씨 탓으로 조망은 좋지 않다. 다시 전망대를 지나 진행을 하면 두 번째 전망대를 지나서 이정표가 나온다. 북문 1.8km, 용강리 1.7km, 문수산 정상 0.4km가 적혀 있다. 잠시 후 발굴작업을 하는 앞쪽 봉으로 오르는 곳은 물건을 올리는 시설이 되어 있다. 이곳에 오르면 이정표에 문수산 정상 0.8km, 동막골 1.4km, 북문 1.4km가 적혀있다. 여기서 앞쪽에 보이는 봉을 향하여 간다. 내려서는 곳은 항상 얼어붙어 미끄러워 살살 기고 올라서는 곳은 눈이 없어 오를만하다. 5분후 벙커가 있는 해발 약321봉에 닿는다. 문수산 정상 1km, 경기도 학생야영장 2.3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고 좌측 편으로 강화도로 건너는 강화대교가 가까이 보인다. 우측으로 애기봉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점이다. 병자호란때 평양감사와 기생인 애기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 있는 곳으로 이북과 가장 근접한 지점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대형트리가 있던 곳으로 현재는 노후되어 철거를 하였다고 한다. 실향민을 위한 망배단이 93년에 세워졌다. 좌측편 성동리에는 신라 혜공왕(876)때 창건했다는 문수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제 가파르게 내려선다. 굵직한 와어줄에 흰색 줄로 감아서 잡고 내려서기 아주 좋다. 한동안 지그재그로 줄을 잡고 내려서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내려서면 소나무숲이 울창한 안부에 닿는다. 안부 좌측으로 널찍한 임도길이 보인다. 여기 이정표에 정상 2.2km, 경기도 학생야영장 2km, 동막골 1km가 적혀 있으며 소나무숲에 의자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이후 소나무숲길을 따라 서서히 올라서면 15분을 조금 못가서 바위봉에 닿는다. 앞쪽으로 마지막 봉인 270봉이 가깝다. 바위봉에서 내려서고 여러 개의 바위들이 널려 있는 능선을 따라 오르면 문수산정상 2.2km, 경기도학생야영장 1km가 적혀 있는 270봉아래 이정표가 나온다. 벙커로 되어 있는 270봉 정상에 올라서면 조강이 내려다보이고 조강에 있는 작은 섬인 유도(머머리섬)가 보이며 그 앞쪽이 철책선이다. 해병대의 철책부대가 보이며 대북방송소리가 들려온다. 유도(留島)는 한강에서 떠내려가던 섬이 멈춰서 머무른 곳이라 유도라고 부른단다. 조선시대 까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섬으로 각 지방에서 올라온 배들이 한양의 마포나루로 올라가기 위해선 서해바다의 간조 시간을 맞춰서 밀물 때 올라가기 위해 머물던 장소라 한다. 그 시절에는 저 유도에 주막집도 있었다고 한다.

 

보구곶리 버스정류장(22.75km) 16:20~16:55

한남정맥의 마지막 봉인 270봉 일명 두류봉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시 더 한남정맥 길을 따라 간다. 위에서 보았던 군부대가 있는 능선이 정맥 길이지만 저곳으로는 갈수가 없단다. 잠시 내려서면 철조망이 쳐져 있는 마지막 지점에 닿는다. 방카위로 출입을 금지 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는 좌측 우회 길을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여기 이정표에 경기도 학생야영장 0.7km, 문수산 정상 2.5km가 적혀있다. 이제 능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서면 400m 정도를 내려서서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 편으로 능선을 따라가면 좌측으로 보구곶리가 보이고, 우측으로 정맥길 능선이 보이며 군부대가 간간이 보인다. 5~6분을 진행하면 TV안테나가 있는 좌꺽임봉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가면 7분여 지나서 성주 이씨묘역이 우측으로 보이며 정맥길 능선 군부대가 가까이 보인다. 이후 서서히 내려서는 능선을 따라 가면 보구곶리에서 용강리로 들어가기 전 군부대 검문소가 있는 바로 앞쪽의 수로에 닿는다. 수로를 건너서 도로에 닿으며 한남정맥을 마감한다. 우측으로는 마을이 있지만 검문소가 있어 들어 갈수는 없다. 주민증이 있으면 갈수도 있는지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걸어서 들어간다고 하면 안 들여 보내줄 것 같다. 이제 도로를 따라 보구곶리 마을로 향한다. 숯불장어구이집을 지나고 전망대회관을 지나 보구곶리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한다. 학생야영장과 마을회관은 버스정류장에서 성동검문소 쪽으로 조금 안쪽에 위치해 있다. 이렇게 하여 3600km에 이른다는 1대간 9정맥을 마감한다.

그간 함께한 적막님 가시밭길, 한밤중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여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내년 2018년 무술년 개띠 해에는 기맥길 남은 4곳도 마무리 하고 지맥 길에서는 여유 있게 천천히 진행합시다.

고생많았습니다.

 

돌아오는길

보구곶리 버스정류장에 시간표가 있다. 우리가 타야할 버스는 16 55분차다. 보구곶리는 통진읍 마송리에서 출발해서 성동검문소~보구곶리 ~용강리~조강리를 거쳐 군하리 방향으로 가는 11B번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11A번 버스가 교차로 운행을 한다. 우리가 탈 차는 용강리~조강리를 거쳐 군하리로 가는 11B번 버스다. 버스는 정시보다 1분이 늦어서 도착하여 잠시 후 검문소(버스승객은 검문을 안함)를 통과 후 용강리~조강리를 거쳐 쌍용대로 간판이 있던 22번 군도를 지나서 군하리에 닿는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차하여 2분후 3000번 버스를 탄다. 3000번 버스는 신촌과 강화도를 오가는 버스노선으로 군하리에서 김포대학 쪽으로 돌아서 성동검문소를 지나 강화도로 운행을 하는 노선이다. 군하리에서 30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40여분이 소요되어 합정역에 도착하여 합정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신도림역을 거쳐 영등포역에 도착을 하니 19 25분으로 지하철 시간은 16분정도가 소요되었다. 영등포역에서 19 53분차를 타고 조치원역에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니 21 50분이다.

*보구곶리에서 통진성당으로 나와서 96번이나 97번을 타고 대화역으로 나오 대곡역에서 갈아타고 서울역이나 용산역으로 나오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은 더 걸릴 듯 하다.

 

산행시간 : 8시간 30분 소요

산행거리 : 22.75km

 

조치원역 ~영등포역 : 7800

영등포 신세계 백화점앞~대곶사거리 버스비 : 2400

보구곶리 ~군하리버스비 : 1150

군하리 ~합정역 3000번 버스비 : 2400

합정역 ~영등포역 전철요금 : 1250

영등포역 ~조치원역 입석요금 : 6600

~~~~~~~~~~~~~~~~~~~~~~~~~~~~~~~~~~~~~~~~~~~~~~~~~~~~~~~~~~~~~~~~~~~~~~~~~~~~~~~~~~~~~~~~~~~

 

6 구간 대곶사거리~문수산~보리곳리

*대곶사거리~보리곶 : 20.4km 8~9시간 (신선놀음님자료: 스므네고개~보리곶 ; 34.2km 9시간)

조치원 2:44 ~영등포 4:05, 22:13~23:32, 22:46~00:05

직행 8000 (대곶면사무소사거리 ~신세계백화점 2700 1시간 20분 소요) 60-3 1950 2시간 소요 8000(대명항~신세계백화점 4:30~23:10 25분 간격), 김포운수

8000(신세계백화점 5:50~00:30 평일 15~25분간격, , 25~40분 간격)

 

보리곶리 11A번 버스타고 김포대학입구 내려서 90번 버스타고 강화버스터미널로 *보리곶리~성동검문소 : 4.3km

보리곶리 11A번 버스타고 김포대학입구 내려서 90번 버스타고 검단사거리역 정류장 1시간 30(좌석800 1:15) 휴일 보리곶리 시간 08:30,11:05,14:15,16:55

보리곶리 11A번 버스타고 포내2리 정류장 하차 일발 88번 타고 영등포시장 정류장 하차 2시간 40분 소요(송정역)

보리곶리 11A번 버스타고 성동검문소 정류장 하차 3000번 직행 타고 신촌오거리 현대백화점(3000) 전철이용 가능

*** 신촌역(2호선)~홍대역등 6번째 신도림역(환승) -영등포역

*** 신촌 ~강화 : 1시간 40분 소요 2400원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출구에서 50m 아웃백앞 정류장에서 승차

 

강화버스터미널 ~청주 버스시간 : 7:00, 9:40, 11:00, 12:20, 13:40, 15:00, 19:00 3시간소요 15900

영등포역~조치원역 : 16:44,52, 17:02,23,52, 18:13,30,53(), 19:28,53, 20:04,17,34(),21:33, 막차23:08 7800

 

강화터미널 ~전등사 : 간선 70, 순환03, 길상51, 700-2번등 1시간 소요

정족산성길 : 2.3km 전등사 입장료 3000

KT&G 강화수련관(가천대학, 택지돈대) -길상산(334M) -로얄유스호스텔 -정족산(222M) -덕포리 -초피산(242M)

 

대곶사거리 -0.5-대곶초등학교 -도로시작~도로끝 -6.7-것고개 ~12번 군도 -4.2-56번 지방도 ~쌍용대로 -3.2-문수산 -3.8-보리곶리 약20.4KM 10시간

 

대곶사거리 -정면 빌라에서 우측 -대곶초교 우측으로(좌측으로 가면 지름길) -포도밭고개에서 좌측으로 -헬기장 -아스팔트도로 -도로따라 좌측으로 -송마리 팔거리 마을 지나고 -뉴팜 공장앞 지나고 -장승뒤로 들머리(동인기연) -공장철조망을 끼고 올라 비포장길 만나 우틀 -기지국앞 -농장 철문앞 우측-철조망개구멍통과 -개집앞 -철조망넘고 -철조망새로 빠져나와 -공장뒤편 절개지로 -수로 만나 좌측으로 이동 하여 건너고 -마송공원묘지 -공장지대 -군부대 철조망 좌측으로따라서 -큰나무밑에서 철조망과 이별 -농장앞 -군부대 정문앞 -배수지 -청룡사(무의도 한방병원) -것고개(김포~강화도간 48번 국도, 해병대가 있어 우측으로 우회, 완구국내 최저가 간판우측, 포병부대정문, 철조망-철문-타이어로된 교통호 -지석묘) -부대안 통진교회지나고 -군인아파트 푸르미르2차 아파트안으로 들어가 -7동옆 놀이터 뒤로 들머리 -군부대 철조망 -공장뒤로 -절개지 -희미한옛길 -계단 -고정리 지석묘 -12번 군도 건너고 -공장지대(동호엔지니어링) -새로낸 도로 -공동묘지 -축사옆을 지나고 -길따라 -엔덴농장앞지나고 -도로따라 -꿩요리 전문점 -56번 도로 건너고(아이젠 공장,태응메디칼) -삼각점 -군교통호 -115(참호) -애기봉3.8km이정표 -쌍용대로(22번군도) 건너서(56번도로에서 약40) -사유지 철망 따라 -문수산(쌍용대로에서 약40) -용강리,성동리 방향 -이정표 -문수산성 동아문 -동막골 갈림길 -270 -한강하구 유도가 보이고 -군 경고문에서 좌측으로(문수산에서 20) -35 -보리곶리 마을 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