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제석봉
2016.07.17.일요일 비온후 갬
참석인원 : 뽀빠이, 딸,나
청주 집 05:00 -덕유산 휴게소 06:15 ~06:45(아침식사7000원x3) -단성톨게이트(고속도로비 9800원) -중산리 주차장(해발 약615m, 주차비 5000원) 08:00 ~08:10 -이정표(법계사 2.7km, 0.875km, 해발 약710m) 08:26 -철계단 -칼바위(1.35km, 약800m) 08:38 -삼거리(우측으로, 1.45km, 약0822m) 08:41 -급경사 계단길 -108계단 위(2.17km, 약1080m) 09:09 -급경사길 -망바위(2.23, 약1150m) 09:13 -전망대(3.04km, 약1355m) 09:36 -로터리 산장(3.18km, 약1350m) 09:41 -법계사 샘터 09:43 -슬랩지대(3.55km, 약1450m) 09:58 -쉼터(4.0km, 약1615m) 10:14 -개선문(4.23km, 약1680m) 10:21~10:25 -이정표(천왕봉 0.6km, 4.36km, 약1717m) 10:30 -천왕샘(4.58km, 약1810m) 10:41 -천왕봉(4.89km, 1915.4m) 10:54 ~11:30(점심식사) -통천문(5.35km, 약1730m) 11:47 -제석봉(6.30km, 약1806m) 12:18 -얼굴바위(6.97km, 약1696m) 12:42 -등산로 삼거리(좌측으로, 7.11km, 약1645m) 12:46 -장터목 산장(7.63km, 약1560m) 13:10 -이정표(중산리4.8km, 8.17km, 약1445m) 13:27 -다리1(8.36km, 약1390m) 13:37 -다리2(8.22km, 약1331m) 13:45 -유암폭포(9.08km, 약1205m) 13:57 -다리(9.37km, 약1147m) 14:02-돌탑지대 -이정표(중산리2.6km, 10.09km, 약986m) 14:18 -긴계단 -다리(10.71km, 약882m) 14:31 -삼거리(우측으로, 11.19km, 약820m) 14:43 -칼바위(11.35km, 약800m)14:45 -중산리 0.7km전 이정표(11.78km, 약710m) 14:53 -중산리 주차장(12.7km) 15:11 ~15:27 -무주천마루 중식당 17:00 ~17:35 -청주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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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높이 1,915.4m.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의 산세는 유순하나 산역(山域)의 둘레가 800여 리에 달한다.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35°27′에 위치한 거대한 이 산은 총면적이 440.4㎢이며, 전라북도에 107.7㎢, 전라남도에 87.9㎢, 경상남도에 244.7㎢ 분포한다.
주능선 방향은 서남서∼동북동으로,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 1,915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칠선봉(七仙峰, 1,576m)·덕평봉(德坪峰, 1,522m)·명선봉(明善峰, 1,586m)·토끼봉(1,534m)·반야봉(般若峰, 1,732m)·노고단(老姑壇, 1,507m) 등이, 동쪽으로는 중봉(1,875m)·하봉(1,781m)·싸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또 주능선과 거의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가지능선은 700∼1,300m의 고도를 나타내며, 종석대(鐘石臺, 1,356m)에서 북으로 고리봉(1,248m)·만복대(萬福臺, 1,433m) 등의 연봉이 나타난다.
이 산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섬진강 지류들의 강력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고 산지 정상부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험준한 산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들 계곡이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의 주변에는 동쪽에 산청, 남쪽에 하동·광양, 서쪽에 구례, 북쪽에 남원·함양 등의 도시와 계곡에 마을이 발달하고 있어 원상(圓狀)을 이룬다.
지리산에는 이칭(異稱)과 별칭(別稱)이 많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리산을 그 음대로 지리산(地理山)이라 쓴 기록도 많다. 원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말의 음사(音寫)일 뿐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두래는 (달)의 분음(分音)으로서 ‘두리’·‘두류’ 등으로 변음하여 ‘頭流’·‘豆流’·‘頭留’·‘斗星’·‘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이 많다. 이 중 두류(頭流)는 백두산의 맥세(脈勢)가 흘러내려서 이루어진 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지리산(地理山)·두류산(頭流山) 등이 지리산의 이칭이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삼신산은 중국 전설의 발해만(渤海彎)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州山)으로, 이곳에 신선(神仙)과 불사약(不死藥)과 황금(黃金)·백은(白銀)으로 만든 궁궐이 있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 있는데 지리산은 이 중 방장산에 대비가 된다. 그 밖에 봉래가 금강산, 영주가 한라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 신산(四大神山)이라 하고, 그에 구월산을 합하여 5대 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나 지리산을 신산(神山)으로 꼽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서산대사휴정(休靜)은 지리산을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壯而不秀)고 표현하였다. 또 『팔역지(八域志)』의 저자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산수론(山水論)에서 지리산을 조선의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에 해당되며 12종산(宗山)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호남읍지』, 신경준(申景濬)의 『산수고(山水考)』,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도 모두 지이산(智異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류산·방장산·지리산(地理山)·남악 등의 이칭이 소개되어 있고, 두류의 류(流)자는 백두산의 맥이 잠시 정류(停留)하였다 하여 류(留)로 씀이 옳다는 제안도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두류산(頭留山)이라는 이칭이 하나 더 추가된다.
문학·예술 속에 나타난 모습
우리나라의 기본 골격이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계가 중추가 된다는 인식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지리산을 백두산이 흘러내린 산이라 하여 두류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래의 지리 사상인 풍수지리설에서도 받아들인 바이거니와, 실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의 없이 전수되어온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기초적인 관념인 것이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밝힌 이가 신경준이다. 신경준은 그의 「산수고」에서 산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산맥세의 흐름을 상세하게 파악한 바 있는데, 뒤에 이것을 기초로 『산경표(山經表)』가 만들어졌다.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맥세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지리산은 민족의 진원지며 영산으로 추앙받는 백두산의 한반도 남부를 대변하는 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풍수사상에서는 민족적인 주체의식을 상징하는 의미를 띠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실상사의 풍수전설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백두산의 기맥(氣脈)이 이곳을 지나 일본으로 연결되는데 그 지기(地氣)를 끊어 놓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 바로 실상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경내 약사전에 봉안된 4,000근짜리 무쇠로 제작된 약사여래철불은 높이 2.5m로 좌대 없이 땅바닥에 그대로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과 일본 후지산(富士山)을 일직선상으로 바라보도록 좌정되어 있는데, 맨 바닥에 철불을 모신 이유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지기를 막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보광전 범종에 그려진 일본 지도 역시 매일 종을 때릴 때 얻어맞는 위치에 일본이 그려져 있어 위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리산 도처에서 들을 수 있는 설화들인데, 남원시 주천면 노치산 갈재의 「숯막이야기」는 고종이 그곳에 숯 수천 가마를 쌓고 불을 놓아 일본으로 가는 지맥을 막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혹은 동학운동 때 또는 의병항쟁 때 왜군을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의 한 맺힌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리산에는 지리천왕(智異天王)과 여신(女神)숭배의 설화들이 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보면 그는 천왕봉에 발을 딛고 맨 먼저 그 천왕봉에 있는 성모 묘에 제를 올리는데, 당집에 들어가 주과(酒果)를 차려놓고 성모상 앞에서 비는 일이 그것이었다.
이 성모상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로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이라는 설이 그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교에서 마야부인상을 숭배하는 전통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 설은 후세의 윤색이 아닌가 싶다.
둘째로 고려왕계를 성스러운 혈통으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고려 왕실에서 도선선사(道詵禪師)로 하여금 이 성모상을 만들게 하였다는 설이다.
성모에 대하여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지금 지리천왕은 곧 고려태조의 비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고 고려 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이야기(三國遺事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음.)를 듣고 이를 그들 임금의 핏줄로 삼고자 이를 만들어 받든다고 하였다.
셋째로 도선이 지리산에 선암(仙巖)·운암(雲巖) 등 삼암사(三巖寺)를 세우면서 이 절을 세우면 삼한을 통일할 수 있다는 성모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뒤 고려를 세워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계시를 내린 성모상을 세워 받들었다는 설이다. 넷째로 중국의 여신인 마고(麻姑)가 동쪽으로 와 정착한 것으로 믿고, 그 여신 숭배가 이 성모상을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전설에 지리산의 산정에 사는 여신의 이름이 마고 또는 마야고(麻耶姑)로 불린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래서 마고성모라는 복합어를 쓰기도 한다. 「마고전설」은 지리산의 능선을 형상화하고 있는 면도 있다. 마고는 반야(般若)를 사랑하였다. 어느날 반야는 돌아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났으나 오지를 않는다. 마고는 기다림의 초조로 나무를 할퀸다.
이것이 지리산 주능선 부근의 고사목(枯死木)이다. 그 올로 베를 짜던 자리가 세석평전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천왕봉의 돌무덤 위에 앉아서 서쪽 하늘을 보면 낭군봉인 반야봉이 마치 달려올 듯한 산세로 눈에 담긴다.
산 주변에서 익히 들을 수 있는 설화·전설들 외에도 음악에 있어서 민요가 주변 산촌에서 불려지고 있을 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리산을 주대상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아리랑의 경우, 「남원아리랑」·「하동아리랑」 등이 있으나 지리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지리산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을 보면 『고려사』 악지나 『증보문헌비고』에 작자나 연대는 알려지지 않은 「지리산가(智異山歌)」라는 백제 때의 가요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지리산에 대한 최초의 문학·예술 작품이 아니었겠는가 여겨진다.
구례의 한 여인이 지리산 밑에 살았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부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임금이 그 여자를 데려가고자 하나 죽기를 한하고 듣지 않으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본격적인 지리산 기록은 역시 기행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조선 시대의 기행문으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佔畢齋集 권2), 이륙(李陸)의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東文選 권21), 남효온(南孝溫)의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秋江文集 권6), 김일손(金馹孫)의 「속두류록(續頭流錄)」(濯纓集 권5), 조식(曺植)의 「유두류록」(南冥文集 권4), 양대박(梁大樸)의 「두류산기행(頭流山紀行)」(淸溪集 坤), 박장원(朴長遠)의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久堂集 권15), 정협(鄭悏)의 「유두류록(遊頭流錄)」(東文選 권21), 송병선(宋秉璿)의 「두류산기(頭流山記)」(淵齋文集 권21) 등이 있다.
이 중 김일손의 지리산 기행문 내용에서 몇 가지 표현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일행은 종자(從者)를 제외하고 정여창(鄭汝昌)·임정숙(林貞淑) 등 세 사람이며, 날짜는 4월 14일이다.
“단성(丹城) 서쪽으로 15리를 지나 또 비탈을 타고 서너마장을 가니 골짜기 입구 바위에 ‘광제암문(廣濟巖門)’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획이 고고(高古)하여 세상에서 최치원(崔致遠)의 수적이라고 전한다.……나무를 휘어 농기구를 만들고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 마을이 있어 감탄하니, 따라온 중이 일러주기를, 이런 외진 땅에 사는 것은 이정(里正)의 박해가 없고 과중한 부역의 고통을 받지 않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 하였다.……길은 없고 다만 천길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마치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 듯하고, 오가는 나무꾼이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아 길을 표시하여 두었는데 나무그늘이 하늘을 가리어 햇볕이 들지 않았다.
시내가 그치고 대숲을 헤쳐 나오니 이윽고 땅은 모두 돌인데, 칡덩굴을 더위잡고 굴면서 숨가쁘게 10여 리를 걸어서 한 높은 고개에 오르니, 철쭉꽃이 활짝 피어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우람한 봉우리 세존암(世尊巖)을 만나 마침 사다리가 있어 올라가 바라보니 천왕봉이 10리 정도 되어 보였다.
여기서 5리쯤 가서 법계사(法界寺)에 닿으니 중은 한 사람밖에 없고, 산꽃이 곱게 펴 저문 봄철을 수놓았다. ……저물녘에 봉우리의 절정에 오르니 바위 위에 한 칸의 판옥(板屋) 한 채가 겨우 서 있었다. 그 안에 여자의 석상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이란다. 지전(紙錢)이 어지러이 들보 위에 걸리었고, ‘김종직·유호인(兪好仁)·조위가 성화 임진(成化壬辰, 1472년)에 함께 오르다’고 쓰여 있었다. 예전에 구경 온 사람들의 성명을 훑어보니 당세의 호걸들이 많았다.”
위의 일부 인용한 글로써 당시 지리산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섬세하다. 또 알려진 한시로는 김부의(金富儀)의 「등지리산(登智異山)」, 김돈중(金敦中)의 「지리산차계부운(智異山次季父韻)」, 이색(李穡)의 「두류산」, 이첨(李詹)의 「두류산」, 양성지(梁誠之)의 「지리산」, 최익현(崔益鉉)의 「등두류산(登頭流山)」·「천왕봉(天王峯)」, 유방선(柳方善)의 「청학동(靑鶴洞)」 등이 있다.
현대작품으로는 이병주(李炳注)의 『지리산』, 문순태(文淳太)의 『달궁』과 『피아골』, 서정인(徐廷仁)의 『철쭉제』 등의 소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가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좌우 대립에 따른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이 현대사에서 차지하였던 첨예한 이념 대립의 공간적 현장성의 반영인 것으로 보여진다.
또 산을 둘러싸고 있는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의 작가들로부터도 시·소설·수필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이 서정성을 짙게 풍기는 것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직접 몸으로 그 뼈저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쓰라린 상처를 덮어두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혹은 묵중하고 푸근한 지리산의 웅자가 그 섬세한 정기로 모든 인간의 아픔을 감싸안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석단(帝釋壇)
제석봉에는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었다.
제석단(帝釋壇)은 제석천(帝釋天)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천제석(天帝釋)·천주(天主)라고도 부르며 단군의 아버지 환인을 이른다.
민간에서는 이를 신앙 대상으로 삼아 하늘의 주인으로 천제석, 천주로 숭배하였다.
1586년에 지리산을 오른 양대박(1543~1592)은 <두류산기행록>에서 폐허가 된 제석당 터와 신을 모시는 사당인 제석신당에 대해 적고 있다. 그보다 뒤인 1610년에 지리산을 찾은 박여량(1554~1611)은 <두류산일록>에서 "제석당의 규모는 제법 넓어 들보의 길이가 거의 23~24자 정도나 되었다. 좌우의 곁방을 제외하고 가운데 삼 칸의 대청이 있었다. 지붕은 판자로 덮었는데 못을 박지 않았고, 벽 또한 흙을 바르지 않고 판자로 둘러놓았다"며 한 노파가 돈을 내어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아 제석당을 새로 지었다고 적고 있을 정도로 제석당은 인근 주민들에게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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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5:00
오늘은 모처럼 딸과 함께 지리산을 가기로 한날이다. 중산리에서 시작하여 법계사 쪽으로 천왕봉에 오른 후 제석봉을 거쳐 장터목에서 다시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산행시간은 6~8시간으로 지리산 코스 중에서는 비교적 짧은 코스다. 며칠 전 뽀빠이친구가 같이 간다고 하여 집까지 5시 까지 오도록 하고 아침 4시에 일어나 산행준비를 하고 부랴부랴 5시에 맞추어 나가 지리산으로 출발을 한다.
중산리 주차장(해발 약615m, 주차비 5000원) 08:00 ~08:10
청주를 출발하여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대전에서 통영방향으로 달리다가 1시간 15분후 덕유산휴게소에 닿는다. 밤까지 비가 내려서인지 고속도로 달려 이곳까지 올 때 까지 차량 몇 대를 못 보았다. 이곳 덕유산 휴게소에도 차량이 거의 없다시피 텅 비어 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해물순부두(7000원)를 시켜서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달리면 약45분후 단성톨게이트를 빠져 나간다. 단성에서 한동안은 4차선 널찍한 도로로 달리다가 다시 좁다란 편도 1차선길을 달리면 시천 부근에서 다시 4차선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달려 거림으로 갈리는 부근에서 다시 1차선으로 길 폭이 좁아져 달리면 청주를 출발한지 꼭 3시간 만에 중산리 탐방센타 바로 앞 주차장에 닿는다. 오늘은 지리산을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지 탐방센타 앞 주차장도 많이 비어 있다.
망바위(2.23, 약1150m) 09:13
중산리에 도착을 하여 간단히 산행준비를 마친 후 08시 10분 출발을 한다. 탐방센타 앞으로 지나 도로를 따라 오르면 다리를 지나 곧 좌측으로 천왕봉으로 오르는 통천길이 시작된다. 우측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순두류골로 진입을 하여 법계사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통천길을 따라 오르기로 한다. 서서히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쉽지 않다. 15분 정도를 가면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온다. 중산리 0.7km, 로터리산장 2.6km, 법계사 2.7km, 장터목대피소 4.6km가 적혀 있다. 이후 철계단을 오르고 12분후 칼바위가 나온다. 날카롭게 뾰족하게 하늘로 향한 바위다. 칼바위를 지나고 점점더 고도를 높여 오르면 대부분 바윗길로 어제 까지 내린 비로 인하여 미끄럽다. 칼바위에서 3분여를 더 오르면 장터목대피소와 법계사길이 갈리는 삼거리다. 이곳을 지나며 등산로는 더욱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대부분 계단길로 이어지며 상당히 힘든 곳이다. 급경사 계단길을 오르고 바위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108계단이 나온다. 한계단 한계단 세며 올라본다. 딱 108계단이다. 이곳까지 삼거리에서 약 30분이 소요된다. 다시 급경사길을 올라서 4분을 더 오르면 망바위다. 둥그렇게 생긴바위로 지리산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망을 보는 바위다.
개선문(4.23km, 약1680m) 10:21~10:25
망바위 이정표에서 법계사 1.0km, 천왕봉 3.0km가 적혀 있다. 망바위에서 부터는 길이 좀 나아진다. 아주 가파르지 않고 서서히 올라서서 가면 커다란 바위들 몇 개를 지나서 119구조목 05-05지점을 지나고 좀 더 가면 조망이 트이는 지점이 나온다. 새파란 하늘에 산중턱으로 드리워진 구름이 멋지다. 바위지대를 좌측으로 돌아가는 테크길 옆으로는 산수국이 이쁘게 피어 있어 지리산의 야생화가 기대가 된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다시 돌계단을 길게 오르며 좌측으로 비슷한 모양으로 선 바위 2개를 지나면 약 3분후 천왕봉이 정면으로 올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사방으로 조망이 트여 있어 오늘 밤까지 내린 후 청명한 새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조화가 되어 너무 아름다운 날이다. 전망대에서 조금을 더 가면 로터리 산장이다. 순두류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로터리 산장옆 이정표에 천왕봉 2.1km, 순두류 2.7km, 중산리 5.9km가 적혀 있으니 우리가 올라온 길보다 2.7km가 더 먼 거리다. 로터리 산장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법계사 일주문 앞이다. 일주문 앞 샘터에서 물을 좀 먹으려니 물의 량이 너무 적게 나와 앞에서 물을 받는 사람들도 있고 하여 10분 이상을 기다린듯하다. 법계사는 예전에 몇 번 들러본 곳이기에 그냥 통과를 한다.
법계사를 옆으로 지나 오르면 바위지대를 올라 커다란 슬랩지대에 닿는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 매우 좋다. 슬랩지대 가운데로는 안전팬스를 쳐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후 숲길을 따라 오르면 15분을 좀더 올라 긴통나무를 옆으로 눕혀 놓은 쉼터가 나온다. 쉼터를 지나고 계단을 올라 서면 여기도 조망이 트이는 지점으로 잠시 새파란 하늘과 마주한다. 이후 5~6분을 더 오르면 천왕봉을 성공적으로 올라왔다하여 개선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커다란 바위사이로 난 개선문을 통과하면 나머지 천왕봉까지는 어떻게 해서라고 올라설 것이다. 개선문에서 법계사 1.2km, 중산리 4.6km, 앞으로 더 가야할 천왕봉은 0.8km가 적혀 있다.
천왕봉(4.89km, 1915.4m) 10:54 ~11:30(점심식사)
개선문을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5분후 길쭉한 선바위가 서 있는 옆으로 천왕봉 0.6km가 적힌 이정표를 지나고 바위지대를 따라 올라서면 구상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고사목도 있어 지리산의 멋을 자아내고 있다. 이제 널찍한 돌계단길을 따라 오르면 조망이 확트이는 바위봉에 닿는다.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2~3분을 더 가면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약1800지대에 자리잡은 천왕샘이다. 오늘 새벽까지 비가 내려서인지 수량이 상당히 많다. 물한바가지 씩을 마시고는 마지막 천왕봉으로 향향다. 거리는 300m로 별거 아닌듯하지만 이곳이 천와봉 구간에서 가장 힘이 든 곳이다. 대부분 계단으로 정상까지 잇어 놓았지만 예전에 계단이 없을 때도 힘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구간은 계단을 놓아줌으로써 오르기가 편해진 것 같다. 길다란 계단을 따라 오르면 천왕봉 아래 풀밭에는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있어 보기 좋고 좀 더 오르면 파란 하늘과 맞닿은 천왕봉이 오늘 따라 더욱 멋져 보인다. 오늘은 다행히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정상석을 차지하려는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도 정상석과 함께 인증샷을 한 후 중봉쪽으로 조금 내려와 널찍한 곳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다가 햇볕이 너무 강렬해 천왕봉아래 그늘진 공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늘 지리산은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파란하늘과 푸르른 초목과 흰 구름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고 있다.
장터목 산장(7.63km, 약1560m) 13:10
천왕봉에서 식사를 마치고 장터목으로 향한다. 바위지대를 따라 내려서며 앞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오래된 구상나무가 올해는 유독 더 생생한 것 같다. 가끔씩 고사목이 있어 운치도 있고 좋다. 바위지대를 지나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통천문이 나온다. 통천문을 지나 안부에 닿으면 야생화가 길옆으로 곱게 피어 가는 길이 즐겁다. 조팝나무, 오이풀, 산수국, 모시대, 동자꽃, 노각나무꽃등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어있어 산행내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장터목 대피소 1.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 부근에는 돌탑이 있으며 그 아래로 터리풀등 야생화꽃밭이다. 이후 다시 바위지대를 따라 오르게 되면 구상나무, 바위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이후 야생화꽃밭인 안부로 다시 한번 더 내려선 후 다시 오르게 되면 제석봉이다. 제석봉 전망대는 식사하시는 분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갈수가 없고 여기 이정표에 장터목 0.6km, 천왕봉 1.1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제석단을 구경하기 위하여 제석봉 정상으로 향하였으나 길이 여기저기로 나 있어 결국 찾지는 못했다. 제석봉 정상부근으로는 헬기장이 있고 그 아래로 제석봉 식수 기념비가 있다. 작은 바위로 되어 있는 제석봉 최정상을 올라왔다가 내려오며 얼굴바위등을 보고는 장터목에서 소지봉으로 가는 등산로와 만나 좌측으로 등산로를 따라 이동을 하니 정규 등산로를 따라 15분후 장터목산장에 도착을 한다. 장터목 산장에서 뽀빠이님이 캔커피를 사서 마시고 우리는 이제 중산리로 하산을 한다. 제석단은 얼굴바위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던지, 장터목에서 제석봉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첫 번째 지점의 줄을 넘어서면 된다고 적혀 있다.
유암폭포(9.08km, 약1205m) 13:57
장터목에서 내려서며 식수대에서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씩 마시고 하산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내려서는 길은 바위너덜 길로 가파르게 내려서기 시작한다. 내려서면 금시 물줄기가 시작이 되어 파란 이끼가 있고 작은 물줄기가 졸졸졸 흐르는 작은 폭포를 시작으로 규모가 조금 더 큰 작은 폭포가 나오고 이어서 장터목산장 0.5km, 중산리 4.8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5분을 내려가면 첫 번째 다리가 나온다. 여기 다리위쪽으로 길다란 폭포가 있다.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가 보기 좋다. 이후 2번째 다리를 지나고 내려오며 우측으로 사람들이 들락거린 흔적을 따라 잠시 들어가면 좁다란 바위틈을 따라 내리쏟는 물줄기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즐긴 후 다시 더 내려서면 이 계곡에서 유일하게 폭포이름이 붙어 있는 유암폭포에 닿는다.
중산리 주차장(12.7km) 15:11 ~15:27
유암폭포에서 내려서면 5분후 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 위, 아래로 큰 사태지역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계곡으로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내려서면 돌무더기 여기저기에 작은 돌탑들이 수없이 많이 쌓여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후 등산로를 따라 내러서면 15분이 지나 중산리 2.6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 닿는다. 거리상 거의 중간지점이다. 이후 긴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고 다시 다리를 건너서 가면 몇 번 조금씩 오르내리며 진행을 하여 법계사로 오르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는 국립공원 직원들이 해충퇴치제를 준비하고 있으나 뿌려 달라는 분들만 뿌려주는지 그냥 쳐다만 보고 약제를 뿌려주지는 않는다.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서면 칼바위를 지나고 이후 길은 조금씩 좋아져 10여분 후 중산리 0.7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 6~7분을 더 가면 야영장을 지나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다리를 건넌 후 조금 더 내려서면 탐방센타 앞 주차장에 닿는다.
장터목대피소에서 2시간이 꼭 걸려서 하산을 완료하였다.
오늘 산행하기는 참으로 좋은 날씨였다.
며칠 전 까지 만 해도 무더위로 산행하는데 고생이 무척 심했는데 오늘은 비가 온 끝에 기온이 떨어져 청명한 날씨와 구름도 군데군데 떠있어 아름다운 산하의 모습을 그렸다.
처음으로 지리산에 발을 디딘 딸이 무척좋아해서 나도 흐믓하다.
좋은 산행이 었다. 함께한 뽀빠이님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 ~~
산행시간 : 7:00시간
산행거리 : 12.7km
경비
아침식사 해물순두부 7000x3, 고속도로비 9800원, 주차비 5000원, 무주 천마루 낙지짬뽕 7000x3, 도로비 9000원, 연료비 55000원, 커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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