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금남3 석불사거리~함라산~망해산~취성산~애잿고개
함라산240.5m, 봉화산236.3m, 망해산230m, 취성산219m, 용천산136m, 대명산129m, 망경산129m, 고봉산147.6m
2015.11.17.화요일 흐림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청주 6:25 -오송역 6:50~7:03 -고속열차 14000원 -익산역 07:29 -익산역앞 버스정류장 7:35~08:09 -39~1번 버스(1300원) -석불사거리(약40m) 08:48 ~08:51 -첫번째 사거리에서 좌측 구정마을 쪽으로(0.495km, 약43m) 08:57 -약100m 지나서 우측에 큰공장 쪽으로 우회전(야스나가 공장) -야스나가 공장 끝에서 좌회전 -사거리에서 우회전 09:08 -두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1.83km, 약41m) 09:13 -다음 블록 사거리에서 우회전 -검지,욕실마을 이정표 있는 사거리에서 좌측(2.17km, 약48m) 19:17 -1분후 검지버스정류장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마을길 지나고 -큰사거리 좌측 방향 공원으로(2.60km, 약54m) 09:27 -공원 좌측 방향 도로따라 끝까지 간후 좌측으로 -벽돌공장 방향으로 우측 -벽돌공장전 인삼밭, 단풍나무사이 세멘트길따라 -벽돌공장앞(3.6km, 약50m) 09:36 -고속전철 아래통과 직진(3.79km, 약50m) 09:36 -세멘트길에서 좌측 아스팔트길로 넘어감 -상마사거리(4.1km, 약50m) 09:42 -좌측 수로있는 세멘트길따라서 23번 국도까지 -23번 국도 현대주유소앞(6.16km, 약52m) 10:07 -좌측으로 중앙분리대 피해서 횡단 -현대주유소 옆 수로 길따라서 -그린환경앞서 좌측으로 넘어가서 좌측길로 -용산리 철길건널목(6.81km, 약40m) 10:16 -건널목 건너 우측길로(양계장앞길) -황등-오산간 신도로 굴다리(7.11km, 약45m) 10:20 -개집 지나고 -계속 수로옆 세멘트길따라 -용산리 마을 아스팔트길(7.88km ,약51m) 10:31 -용산삼거리(8.2km,약50m) 10:34 -아스팔트 도로따라 -구자리 입구(8.5km) 10:39 -봉곡리 입구(10km) 10:53 -효도마을(10.11km, 약50m) 10:56 -천남사거리(11.04km, 약50m) 11:07 -함라파출소(11.3km, 약45m) 11:11 -함라성결교회(11.4km, 약53m) 11:15 -노인복지시설(12.1km, 약80m) 11:26 -가시밭길 헤치고 -함라산 정상(12.90km, 240.5m) 11:58~12:02 -좌측 하산로 이정표(13.22km, 약195m) 12:07 -함라재(13.47km, 183m) 12:10 -약210봉(13.5km) 12:13 -봉화산(14.07km, 236.3m) 12:23~12:58(중식) -좌측으로 하산로 2번 지나고 -쉼터봉(14.92km, 약170m) 13:10 -좌측 입남 하산로 이정표(15.5km, 약150m) 13:17 -산소위봉(15.66km, 약170m) 13:20 -쉼터봉(15.91km, 약160m) 13:23 -산소지나고 -약140봉(16.68km) 13:34 -내리막에 산소5기 지나고 -칠목재(17.13km, 약78m) 13:41 -178봉(삼각점, 17.58km) 13:57 -등산로 나쁨(소나무 쓰러진 것 많음) -142.5봉(좌꺽임봉, 18.5km) 14:17 -급경사길 -임도(18.59km, 약110m) 14:20 -좌측으로 세멘트임도길 보임,축사) -편백나무숲 -안부 임도(철탑, 양쪽으로 마을 가까이 있음, 18.83km, 약90m) 14:28 -약100봉삼거리(우측으로, 18.99km) 14:35 -봉 아래 산소부터 길 양호 -우꺽임봉(산소, 19.6km, 약105m) 14:47 -좌측 임도삼거리(산소, 19.92km, 약85m) 14:54 -송전탑 삼거리(우측으로, 좌측마을, 20.03km, 약102m) 14:57 -산소봉삼거리(우측으로, 20.15km, 약100m) 14:59 -수례재(21.05km, 약70m) 15:14 ~15:24 -안부고개(이정표, 21.68km, 약75m) 15:34 -약140봉(산소위봉, 22.27km) 15:47 -이정표 -납골묘 -안부사거리(가시밭, 좌측 논, 우측 마을, 22.64km, 약115m) 15:53 -임도(23.04km, 약180m) 16:06 -정자 있는 봉(23.19km, 약225m) 16:10 ~16:13 -능선 삼거리(좌측으로, 23.28km, 약220m) 16:14 -능선 임도끝(좌측 임도, 23.44km, 약210m) 16:17 -헬기장(산불감시초소, 23.57km, 약225m) 16:19 -30초후 헬기장 -망해산 정상(삼각점, 조망, 헬기장, 23.68km, 230m) 16:22~16:29 -임도사거리(좌 흥법, 우 부곡리, 24.5km, 약150m) 16:40 -임도따라 우측으로 -임도사거리(좌 축동, 우 부곡리, 24.73km, 약150m) 16:44 -임도에서 우측 산길로(24.95km, 약170m) 16:48 -취성산(우측길로 하산, 25.34km, 219m) 16:57 ~17:00 -임도고개(26.53km, 약98m) 17:21 -(임도고개에서 좌측 세멘트길 따라 내려와야 함) -거점재(26.8km, 약67m) 17:27 -용천산(27.21km, 약136m) 17:39 -임도(우측 공원묘지, 27.56km, 약85m) 17:55 -군산휴게소-우곡재넘어가는 도로(미산재, 28.07km, 약30m) 18:08 -도로넘어 임도따라 -집나오면 우측으로 세멘트길 따라 감 -우측 생명수교회 삼거리(28.45km, 약20m) 18:14 -잠시후 태양광시설앞 세멘트 포장 넓은 공터 -계속 세멘트길따라 -고속도로 굴다리(29.03km, 약20m) 18:21 -창안리마을 버스정류장(744번 지방도, 29.26km, 약20m) 18:25 -길따라 창안리 마을로 -창안리 마을 뒤편 임도 따라 능선까지 -길 아주 나쁨 -대명산(30.56km, 129m) 18:54 ~19:00 -잡목길 빠져나오면 길 양호 -세멘트임도고개(창안재, 30.99km, 약98m) 19:04 -임도 지나고 길 나쁨 -망경산(31.74km, 129m) 19:23 -다리실재(아스팔트도로, 32.33km, 약90m) 19:43 -육교(군익로, 32.55km, 약85m) 19:50 -아스팔트도로 조금 이후 비포장 임도길 -고봉산(철조망,옛미군부대, 33.0km, 147.6m) 20:01 -철조망 우측으로 돌아 임도 -고봉산 헬기장 20:09 -잠시 알바 -봉정암 앞 도로(33.78km, 약123m) 20:21 -도로따라 -애잿고개 삼거리(34.32km, 약110m) 20:29 -좌측으로 도로따라 하산 -남성환경 -산남리 버스정류장(35.86km, 약42m) 20:50 ~21:01 -택시(콜비 천원포함 5500원) -대야역 21:09 -대야역앞 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대야역 22:01 -익산역 22:17 ~22:40 -오송역 23:06~23:10 -청주집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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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함라산(240.5 m) ㅡ봉화산(236.3 m )
산행코스
율재 생태통로-전망대-쉼터-헬기장-함라산-웅포재- 봉화산-야생차군락지-함라산둘레길-3부잣집갈림길-웅포재-함라산-율재 원점회귀 (산행시간:9.4km 식사및 휴식포함 3시간33분)
숭림사에서 함라산 전망대로 이어지는 2km의 '건강길'이있다.
지압로와 맨발로의 길을 조성할 예정이다.
그 앞으로 '병풍길'이 조성된다.
함라산 정상에서 자생차나무군락지 까지의 2km다. 차나무 군락지는 우리나라 차나무 자생의 북방한계선으로 그 의의가 있는 자리다.
계속이어 능선을 타고 내리면 둘레길중 가장 긴 코스인 4.5km의 '명상길'이다.
칠목재에서 자생차나무군락지까지로 곳곳에 좋은 글귀와 명시등을 설치하고, 명상음악을 흐르게 해 놓는다.
그리고 고분전시관 까지 이어지는 1.5km의 '역사길'이다.
함라산과 봉화산을 잇는 능선을 따라 10여km가 둘레길로 조성되고, 나머지 한길 '양반길'은 함라산면소재지에서 함라산 병풍길과 만나는 1.8km의 돌담길이다.
김원균, 조해원, 이배원의 3부자집이 있는 마을의 길이다.
이렇게 이어진 길이 모두 12km, 건강길, 병풍길, 명상길과 역사길, 그리고 양반길이다.
*코 스 ; 숭림사주차장 - 숭림사 - 함라산 둘레길 - 율재 - 사격장전망대 - 헬기장 - 함라산정상 - 웅포재 - 봉화산정상 - 칠목재
충청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르며 유유히 흐르는 금강, 그 금강을 따라 넓은 들판위에 솟은 함라산은 정상이 겨우 240.5m 밖에 되지 않은 낮디낮은 산이다. 평균 고도가 600 - 700m에 이르는 강원도와 비교 해 보면 함라산은 그야말로 작은 언덕쯤으로나 치부 될 정도로 낮다.
하지만, 주변의 큰산이 없고 평야지대의 고도가 해발 0m에 가까운 탓에 밑에서 바라본 함라산은 제법 우뚝 솟은 위용을 자랑한다. 동서로 길게 뻗은 능선은 총연장 길이가 6.1km로, 능선으로 올라서면 금강의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산행 할 수 있는탓에 산이 많지 않은 익산에서 미륵산과 함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행지 이기도 하다.
군산 망해산 일원 생태탐방로 개설된다
【군산=뉴시스】고석중 기자 = 전북 군산시에 총 13.3㎞에 조망·휴게시설을 갖춘 생태탐방로가 개설된다.
6일 군산시에 따르면 생태탐방로 순환코스는 원나포 서지골에서 망해산 정상까지 4.2㎞와 망해산 정상에서 탐조회랑 원나포 서지골로 이어지는 5.3㎞, 생태 종단코스로는 망해산 정상에서 임피 축산제까지 3.8㎞다.
시는 총 사업비 1억7800만 원을 들여 파고라, 의자 등 편의시설과 나무 심기, 휴게, 조망 등 편익시설 등을 갖춘 생태탐방로를 올해 말까지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생태탐방로가 완료되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4개 코스의 구불길과 함께 군산의 생태를 체험하고 고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새만금 방조제 관광객들이 체류하면서 군산을 알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소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망해산의 어원은 한국지명유래집에 “「한국지명총람」에 望海山은 나포면 옥곤리와 서수면 축동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바다가 보임. 불지산은 나포면 옥곤리와 장상리에 걸쳐 있는 산. 불지사가 있음.이라는 기록이 있어 망해산과 불지산은 같은 산이나 능선의 서로 다른 지점을 지칭하면서 나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적혀 있고 조선시대부터 사용하던 지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군산, 근대항구도시 유산의 보고(寶庫) ...11월 고을학교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해보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고을학교 제25강은 11월 22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에 출발합니다. 오전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고을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날 답사 코스는 서울-동군산IC-옥구읍치구역(자천대/옥구향교/옥산서원)-근대역사문화거리(군산근대역사박물관/부잔교/근대건축관/구군산세관/해망굴/초원사진관/신흥동일본식가옥/동국사)-점심식사 겸 뒤풀이-진포대첩비-이영춘가옥-발산리유적(석등/5층석탑/시마타니금고건물)-임피역사-임피읍치구역(노성당/임피향교/채만식생가터)-군산IC-서울의 순입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25강 답사지인 군산고을에 대해 설명을 듣습니다.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략 때 세 번의 격전장
군산은 금강의 하류에 있는 서해안의 중심 항구로서 넓은 호남평야를 뒤에 두고, 동쪽으로는 익산, 남쪽으로는 김제와 부안, 서쪽으로는 서해, 북쪽으로는 금강을 경계로 서천, 보령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서쪽은 바다와 섬들이 있고 남쪽과 동쪽은 평야와 나지막한 야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군산의 산줄기는 금남정맥(錦南正脈)에서 갈려나온 함라지맥(咸羅之脈)의 낮은 능선으로 대부분 충적평야와 구릉지로 되어 있으며 북동쪽으로 오성산(210m), 장계산, 천방산, 월명산을 등지고 위치한 중부 서해안의 해상관문의 도시입니다. 내륙은 곡창지대인 임옥평야(臨沃平野)가, 서해에는 고군산군도를 중심으로 풍성한 어장이 조성되어 있고, 16개의 유인도와 40여 개의 무인도가 해상에 펼쳐져 있습니다.
군산에는 연강(회현), 옥산(옥구), 취성(임피)의 3개 마을들이 마한시대부터 명칭은 바뀌지만 생활공간은 바뀜 없이 이어져 살아 왔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옥구(沃溝)와 임피(臨陂)가 고을로 발전하였습니다.
군산은 4세기 후반(근초고왕 때) 마한의 영역이었던 금강 이남 지역을 백제가 차지함으로써 그에 속하게 되었고 이후 백제의 도성이 한강 유역에서 금강 유역인 웅진성과 사비성으로 옮겨지면서 백제의 대외무역과 군사상의 중요한 지역으로서 발전하게 됩니다.
군산은 백제시대에 기벌포 혹은 백촌(白村)으로 불렸는데 넓은 의미로는 현재의 금강 하류지역이었고 좁은 의미로는 군산 인근 지역을 나타내는 지명이었습니다. 그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나당연합군의 백제 침략 때 주된 공격 대상이 되어 세 번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첫 번째 전투는 나당연합군의 백제 기습공격 때 소정방의 당나라군이 기벌포 상륙작전을 감행한 현장으로, 이때 침입해 오는 당나라군을 맞아 항거하다 죽음을 당한 분들을 기리는 오성인 대제가 매년 군산의 오성산 정상에서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전투는 663년 쓰러진 나라를 일으키려는 백제부흥군과 나당연합군과의 기벌포 해전으로 달리 백강전투이라고도 하는데, 이 전투에서 백제부흥군이 패배함으로써 백제가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세 번째 전투는 백제, 고구려 멸망 후 신라가 우리의 땅을 직접 지배하려는 당나라군에 맞서 싸우게 되는데 매초성 전투에서 승리한 신라군이 설인귀의 당나라 해군을 이곳 기벌포에서 20여 회의 전투 끝에 승리함으로써 한반도 남부에서 당나라군을 완전히 몰아내게 되었습니다.
한일합병 직후 급성장, 총수출량 전국 2위에 총수입량 전국 4위
고려시대의 조창제도는 전국에서 세금으로 거두는 곡식을 개경(고려시대 서울)으로 실어 가기 위해서 해안이나 강가에 보관창고를 전국 12곳에 두었는데 이 중 하나인 진성창(鎭城倉)이 지금의 군산 성산면 창오리 망경산(望景山), 창안 방죽 근처에 있었으며 이곳에 토성을 쌓아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였습니다.
진성창에 보관하고 있는 곡식을 약탈하려고 왜구의 침략이 잦았었는데 왜구와의 가장 유명한 전투가 진포대첩입니다. 고려 우왕6년(1380) 8월 왜선 500척이 진포 입구에 침입하여 배를 서로 묶어 놓고 상륙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이때 나세, 심덕부, 최무선 세 장군이 최무선이 만든 80여 척의 병선에 최무선이 만든 화통, 화포를 설치하고 진포로 진격하여 왜의 병선에 화포를 쏘아대자 적의 배는 서로 묶어 놓은 터라 일시에 불타 가라앉았고 왜구의 대부분은 타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중에서 용케 살아남아 육지로 도망친 왜구들이 옥천, 영동을 거쳐 곳곳에서 노략질을 하다가 이성계 부대에 의하여 황산(남원 운봉)에서 거의 전멸을 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산대첩(荒山大捷)입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군산은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1899년 5월 1일 강제로 개항되어 목포영사관 군산분관이 생겼는데 일본영사가 각국 거류회의 회두를 겸하고 있어 항만관리권은 그들의 소관이 되었습니다.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고 통감부의 지역기관인 이사청(群山理事廳)을 군산을 비롯한 10곳에 두었는데 군산이사청은 전북 지역 만경, 부안, 고부, 정읍, 순창, 구례, 남원과 충남 남부 지역 보령, 남포, 홍산, 정산, 공주 등을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자 조선총독부의 설치로 군산이사청은 폐지되고 군산은 부로 승격, 군산부청이 설치되었습니다. 1914년에 간행한 <군산안내>에 따르면 군산은 전국 12부 중 상업항구도시로서 총수출량은 부산 다음으로 전국 2위를, 총수입량으로는 전국 4위를 차지했는데 수출품은 주로 쌀이었습니다.
군산을 이처럼 급격히 항구도시로 성장시킨 배경은 호남, 충청의 농토를 빼앗아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 가난한 일본 농민을 옮겨와 살게 하고, 역시 호남, 충청의 쌀을 일본으로 강제 수출시켜 일본의 쌀 부족을 보충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전북 지역은 가장 많은 일본인 농장이 모여 있던 지역이 되었고 가장 높은 사회 지배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일본 식민정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특히 농장이 많았는데 1910년 한일합병에 이르기까지 전북 지역에는 이미 24개의 일본인 농장이 만들어졌고 이후 1920년에 이르기까지 다시 18개의 농장이 더 생겼습니다.
일제의 식민정책은 한국을 식량 및 원료생산지로, 또 일본 공업제품의 판매시장으로 만들고자 산미증산계획에 역점을 두었기에 10여 개의 정미소가 밤낮 없이 가동되었고, 일본인 지주들의 가혹한 소작료 강제 징수로 빼앗긴 곡물은 모두 군산으로 집결되어 군산부두에는 ‘쌀의 산’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옥구 자천대는 최치원이 어린 시절 책 읽으며 놀던 곳
군산에는 옥구와 임피에 읍치구역이 있었습니다. 옥구의 읍치구역에는 옥구향교, 자천대, 문창서원, 옥산서원, 염의서원이 남아 있으며 옥구향교를 제외한 다른 유적들은 모두 고운 최치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옥구향교(沃溝鄕校)는 4개의 영역으로 나눠지는데 문창서원의 서쪽으로 단군성묘(檀君聖廟)와 대성전(大成殿) 영역이 있고 그 남쪽으로 명륜당, 전사재, 양사재, 자천대가 있으며 옥구향교와 인접하여 서쪽에는 세종대왕숭모비, 동쪽에는 옥산서원이 있습니다.
옥구향교는 조선 태종 3년에 당시 교동이라 불렸던 옥구현 이곡리에 처음 세워졌다가 인조 24년 현 위치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동국18현(東國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자천대(紫泉臺)는 군산의 유일한 2층 누각정자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2층 팔각지붕 형태인데 조선후기의 누각 양식이며 옥구현 서쪽에 위치한 하제 포구 인근 바닷가에 있던 바위산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바위산 옆 연못의 빛깔이 항상 붉어 ‘붉은 연못가의 바위산’이라는 뜻에서 자천대라고 불렀으며, 일제시대 1934년 비행장 확장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당시 옥구 군수와 유림들이 나서서 일본군의 장비를 동원하여 옥구향교로 이전하였고 이때부터 경현제 혹은 자천대로 불렀으며 1967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습니다.
자천대는 “최치원이 소년 시절에 신라의 무관으로 내초도(지금은 육지가 됐음)의 수군장으로 부임한 아버지 최충을 따라와 같이 살았는데, 이곳 정자에서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까지 들려 사신이 건너와 그를 데리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하자, 자천대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합니다.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자천대는 서해안에 위치하며, 지형은 넓고 평평하며, 샘과 돌이 가히 즐길 만하다. 세상이 전하기는 최치원이 놀던 곳이라 한다”고 자천대의 위치와 유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창서원(文昌書院)은 고운 최치원을 배향하고 있으며 서원의 이름은 최치원의 시호인 문창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숙종 때 건립되었다가 1868년 훼철되었으며 1969년 옥구 유림들이 재건립을 발의하여 다시 세워졌으며 옥구향교 경내의 동쪽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습니다.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일제 강점기인 1929년에 건립된 서원으로 문창후 최치원 선생을 비롯하여 옥구 지역의 문무(文武) 및 충효(忠孝)에 특출한 선현(先賢) 14분을 배향하고 있는데 사당인 옥산원, 강당, 내삼문, 원직사, 외삼문 등 총 5채의 건물이 있습니다.
염의서원(廉義書院)은 조선 숙종 11년(1685) 창건되어 순조 4년(1804)에 사액(賜額)된 서원으로서 고종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가 1920년에 다시 세워졌으며 한림사(翰林祠), 유허비각(遺墟碑閣), 어필각(御筆閣), 내삼문, 외삼문, 경부당, 원직사, 전사재 등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배향공간인 한림사에는 이곳 출신인 문창후 최치원(文昌侯 崔致遠), 문충공 고경(文忠公 高慶), 문영공 고용현(文英公 高用賢) 등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유허비각에는 1915년 봄에 세워진 고경, 고용현 선생의 유허비가 있으며 어필각에는 1908년 순종황제의 친필인 어필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임피, 고려시대 이후 금강 하류의 중심지
임피는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군산 일대 전역을 관장했던 읍치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금강 하류의 중심 조창이 설치되어 번성을 누렸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가까운 내륙에 위치한 익산이 철도의 중심지가 되어 도시로 성장하였고 더 나아가서 쌀 수탈을 위해 전주에서 군산까지 포장된 신작로가 건설되면서 임피는 교통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게 되고 그 입지적 기능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해서 퇴락을 거듭하여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이 되어버렸고 그 옛터에는 읍치의 흔적을 보여주는 향교, 이방청 건물과 관아 앞에 놓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공덕비들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성당(老星堂)은 임피의 유생들이 역대 수령들의 위패를 배향하고 1년에 한 차례씩 제사를 지내고 함께 모여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곳입니다.
또한 이방청(吏房廳)의 역할도 하여 임피 장날을 정하고 물가를 형성해 주는 사람(말쟁이)을 지정해 주었으며, 대야면 복희리 신창마을에 있는 신창진(사챙이나루터)의 입, 출항하는 각종 선박을 통제하기도 했습니다. 또 무당(巫堂)의 자격과 생활 지역을 정하여 주기도 하고 또한 웃어른에게 불효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곤장을 치거나 북치고 조리돌림을 하던 곳으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찰관 주재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1945년 이후 적산(敵産)으로 불하되어 임피의 유지 이동석(李東錫)이 매입, 노인회에 기증하여 지금은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물은 평지에 약간 남, 동향으로 배치된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평면은 일(一)자 형식인데 중앙의 대청과 서쪽에는 툇마루와 벽장이 있는 1칸 온돌방, 동쪽에는 툇마루와 골방이 딸린 2칸 온돌방이 있습니다.
‘崇禎紀元後四乙卯四月初八日卯時開基五月初六日未時竪柱同月初九日卯時上樑’이라는 묵서명(墨書銘)으로 미루어 보아 이 건물은 1855년(철종 6)에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공간 구조와 외관이 단순하나 기둥과 보, 도리, 창방, 추녀 등 주요 부재의 단면이 넉넉하게 사용되어 견실한 맛이 있고 세부에서도 전통건축의 법식이 잘 지켜져 있으므로 19세기 관아 건축 가운데에서도 우수한 건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피향교는 1403년(태종3) 현 경산리 교동인 대정동에 창건되었다가 1630년(인조8)에 서미곡으로 이건되었으며 1710년(숙종 36)에는 현재의 위치인 장유동으로 다시 옮겨 세웠습니다.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성전은 공포의 양식이나 초석 등에서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많은 건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동국사(東國寺)는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
군산에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동국사(東國寺)는 군산시 금광동에 남아있는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內田)가 일본에서 모든 건축자재를 들여와 창건하여 ‘금강사(錦江寺)’라고 하였으나 광복 후 김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사찰과는 다른 양식을 띤 대웅전, 요사채, 종각 등이 남아 있습니다.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건축양식을 띠고 있으며 외벽에 많은 창문이 있고 장식 없는 처마가 특이합니다. 석가삼존상 및 복장유물은 1650년이라는 조성시기, 조성주체, 조성에 소요된 시주물목과 시주자 등이 조성발원문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어 복장의식, 사원경제사, 조선후기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기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대웅전의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17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불상으로 조각 승(僧) 응매(應梅)의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으로, 해방 후 김남곡 스님이 주지일 때 금산사 대장전에서 옮겨온 것이라 합니다. 이 불상의 조성불사에는 조선후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호연태호(浩然太湖)와 벽암각성(碧巖覺性)이 증명법사로 참여하였고 천여 명이 넘는 시주자(施主者)들이 동참하였음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2012년 세워진 참사문비(懺謝文碑)는 일본의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모든 비용을 지불하여 세운 것인데 그 내용은 “석가모니 세존의 법맥을 잇는 것을 목표로 삼은 우리 종문은 여러 아시아 민족 침략전쟁에 대해 성스러운 전쟁이라 긍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며 “특히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다. 조동종은 그 첨병이 돼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됐다”고 하며 스스로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군산시 신흥동 ‘히로쓰가옥’은 일제 강점기 포목상으로 임피 부근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한 일본인 히로쓰가 지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입니다. 건물의 형태는 근세일본 무가(武家)의 고급주택 양식을 띄고 있으며 목조2층주택으로,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적산가옥이 된 이 집은 당시 호남제분의 이용구 사장 명의로 넘어가서 지금까지 한국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해졌습니다.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 있는 임피역사(驛舍)는 1936년경 군산선의 철도역사로 세워진 건물로서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입니다. 본래는 임피면 읍내리에 세웠어야 하는데 읍내리의 유림(儒林)들이 풍수지리적 이유로 반대하여 철로가 술산리로 경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일본18은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군산에는 1907년에 설립되어 조선에서 일곱 번째 지점이 되었으며,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대부업(貸付業)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일본인들은 이 돈으로 조선인에게 토지를 담보로 한 고리대금업을 하여 우리 농민들의 농토를 많이 갈취하였습니다. 지금은 군산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구조선은행은 1923년에 일제의 식민지정책의 총본산이었던 조선은행의 군산지점으로 건립되었고 설계자는 일본인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이며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蔡萬植)의 소설 <탁류>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군산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해망굴은 월명산 북쪽 끝에 있는 해망령을 관통하는, 길이가 131m, 높이 4.5m인 반원형의 터널로 1926년에 시작된 제3차 축항공사 때 화물하차장 확대, 부잔교 추가 설치, 창고건설 등과 함께 군산 내항과 시내를 연결하기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곡창지대인 호남에서 생산된 쌀이 기차나 도로를 통하여 군산으로 모이고 다시 항구에서 배에 실려 일본으로 가는 운송과정에서 시내에 모인 물자를 보다 빠르고 편하게 항구로 나르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양한 일제 건물유적, 많은 영화·드라마의 촬영지
이영춘가옥(李永春家屋)은 일제 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별장주택입니다.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되던 별장으로 서구식, 한식, 일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면서 이영춘가옥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나 평양고보 사법과 시절 담임선생이던 경성제대 와다나베 교수의 소개로 구마모토농장에 소속된 2만여 명 소작농 가족을 돌보기 위해 1935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혜의원 원장으로 부임하는데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양호교사제와 의료보험조합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영춘가옥은 건물 외관이 아름다워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구군산세관은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시작된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1905~1910) 중인 1908년(순종2) 6월에 만들어졌으며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 건물만이 남아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건물의 지붕은 고딕 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고로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은 구군산세관 본관, 한국은행 본점, 구 서울역사입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는 일본에서 주조업(酒造業)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와서 1903년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대농장주가 됩니다.
시마타니의 집과 농장이 있던 발산초등학교에는 충청남도와 전라남북도에서 옮겨진 석조 유물 총 31기가 남아 있는데 이중에 특히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 있었던 석등과 석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물급의 우수한 문화재입니다.
발산리석등(鉢山里石燈)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하대석에는 8장의 복련이 새겨져 있고, 간주석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용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처럼 석등의 기둥에 용이 새겨진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시마타니가 반출하여 이곳에 갖다 놓았으며 지대석은 전북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발산리5층석탑(鉢山里五層石塔)은 2층 기단, 5층의 탑신(塔身),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으로 탑신부의 경쾌함과 안정감 등으로 보아 신라석탑의 계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백제석탑의 잘 다듬어진 아름다움을 이어받은 듯한 느낌을 주는 고려전기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이 또한 일제 강점기에 시마타니가 반출하여 이곳에 갖다 놓았습니다.
시마타니금고는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로 시마타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입니다. 반 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되어 있으며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금고의 1층에 해당하는 반 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들이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하나 3층의 고미술품은 미군정기에 미군이 모두 압수해 갔다고 합니다.
이날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풀숲에선 필히 긴 바지), 모자, 선글라스, 장갑,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11월 고을학교 참가비는 10만원입니다.(강의비, 2회 식사 겸 뒤풀이, 관람료, 운영비 등 포함).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전화 문의(050-5609-5609)는 월∼금요일 09:00∼18:00시를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공휴일 제외).
▷참가신청 하신 후 참가비를 완납하시면 참가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립니다.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회원가입 바로가기). ▶참가신청 바로가기
▷고을학교 카페 http://cafe.naver.com/goeulschool 에도 꼭 놀러오세요. 고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고봉산
대야면 소재지로부터 만경강, 오성산에 이르러 남북으로 길게 연계된 만경들판을 근간으로 하는 제일 높은 산이다. 동으로는 산곡평야가 있고 서쪽으로는 장군봉을 바라보고 그 밑에는 개정뜰로 이어지는 만경평야의 곡창지대로써, 왜정시대는 쌀의 수탈지역이었으며 도곡농장(現 발산초교)이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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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6:25
이달 들어 연속으로 대동금남정맥에 치중하여 이제 3번째로 오늘은 익산까지 열차로 이동하여 익산에서 버스로 석불사거리로 갈 예정이다. 석불사거리까지 가는 버스편이 열차시간과 많이 차이가 있어 많이 기다려야 하지만 그사이 그 부근으로 가는 버스를 다행히 탈수 있으면 좀 걷더라도 타려 하지만 시간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달 5일 대동금남 첫 구간 진안 대불리 중리경로당 앞에 우여곡절 끝에 저녁 19시가 좀 넘어 도착을 하여 첫 구간 욕심을 조금 내서 말골재 까지 하려 하였으나 말목재 까지 무사히 마치고 두 번째 구간 미륵산 전인 쑥고개 까지 하려던 것을 연장하여 석불사거리까지 진행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처음엔 5구간으로 하려던 것을 이제는 4구간에 마칠 요량으로 오늘은 석불사거리에서 거점재가 목표이나 다리실재 애잿고개 까지는 가보려 한다. 여기서 좀 더 갈수 있으면 광법사, 대야 까지도 욕심을 내볼만 한데 요즘 낙엽으로 밤이 되면 길 찾기가 어려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오늘은 오송역에서 7시 03분 출발하는 고속 열차를 타기로 한다. 천안에서 적막님이 이 열차를 타고 내려오고 난 오송역에서 승차를 하여 곧 만나서 익산으로 향하니 공주역은 통과를 하고 잠시 후 익산역에 도착을 하니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요금이 좀 비싸긴 하지만 고속열차 빠르긴 하다.
석불사거리(약40m) 08:48 ~08:51
익산역에 정시 도착하여 급히 역사를 빠져나가니 우리가 타려던 41번 버스가 역 앞을 돌아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아 신호만 빨리 떨어져 주면 탈수 있겠는데 이넘 빨강신호 끝내 도와주지를 않아 버스가 떠나고서야 파란불로 바뀐다.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여 시간표를 보니 인터넷으로 익산시청에 들어가서 보던 것하고는 차이가 좀 있다. 보기도 편하고 어느 방면에 몇 시에 도착하는지 쉽게 볼 수가 있어 좋다. 39-1번 강경행 버스가 석불사거리를 통과하는데 버스시간이 7시 54분이라 적혀 있다. 얼마 기다리지 않으면 되겠다 싶어 기다리고 있자니 많은 버스들이 지나가고 시간이 다 되어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버스는 끝내 오지를 않는다. 시간표를 다시금 쳐다보니 누군가 연필로 버스시간 옆에 8.9라고 적은 것이 보인다. 아~ 이 버스가 8시 9분에 온다는 애기 인가보구나 하고 내가 수집한 자료를 보니 8시 09분으로 적혀 있다. 이시간은 시청홈페이지에 있는 시간이 맞는 것이다. 시간표를 훍어 보니 이렇게 하여 연필로 적어 놓은 것이 몇 개가 있는데 관계처에서는 하루 빨리 시간표를 수정하여 게시를 하였으면 한다. 많은 시민들이 보는 시간표를 오자가 있음에도 방치한다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닌가 한다. 버스는 8시 09분이 되기 전에 처음에 우리가 타려던 41번(삼기에서 2.5km를 걸어가야 함) 버스가 들어오고 곧 이어서 39-1번 강경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을 한다. 이 버스는 앞서간 41번 버스를 뒤 쫒아서 황등을 지나고야 앞서기 시작하여 삼기면을 거쳐 여기서는 41번 버스는 금마방향으로 우리는 석불사거리를 향하여 간다. 삼기면에서는 대략 5분이면 석불사거리에 닿는다. 우리는 예상보다 조금 일찍 석불사거리에 08시 48분 도착을 한다.
상마사거리(4.1km, 약50m) 09:42
석불사거리에서 함열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큰 도로를 따라가다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측 구정마을 방향으로 가면 약 100m를 지나서 우측으로 큰 공장이 보인다. 공장 쪽인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야스나가 공장 정문을 지나 철조망 끝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간다. 여기서 앞쪽에 보이는 조금 높다란 둔덕까지 진행하여 둔덕을 따라 가도 되고 첫 번째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다시 바꾸어 가도 된다. 커다란 사거리를 2번 지나고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고 다음 불럭 사거리에서 우회전하고 검지,욕실마을 이정표가 보이는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1분후 좌측 편으로 검지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 옆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따라가면 마을길을 지나고 큰 사거리가 나오면 앞쪽에 보이는 공원으로 진입을 하여 공원을 지나 교회옆길을 따라가면 멀리 벽돌공장 굴뚝이 보인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굴뚝이 있는 벽돌공장 앞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굴뚝을 향하여 가려면 이 길을 따라 곧장 큰길에 닿은 후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조금 가면 공장으로 가는 좁다란 길과 연결이 된다. 공장에 닿기 전 좌측으로는 인삼밭이 있고 우측으로는 단풍나무가 심겨진 좁다란 세멘포장길을 따라가면 성광벽돌공장 정문을 지나 곧 고속전철 아래를 통과하여 큰 도로변 우측 세멘포장길을 따라가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좌측 아스팔트 도로로 건너서 조금 가면 상마사거리에 닿는다. 상마사거리에서 정면은 부여 웅포 방향이고, 우측은 상지원, 좌측은 상마방향이다. 상마 방향 도로는 황등에서 삼기 중간지점쯤으로 연결이 된다.
용산삼거리(8.2km,약50m) 10:34
상마사거리에서 좌측 방향으로 가면 수로를 따라 세멘트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23번 국도까지 가면 된다. 가면서 수로변으로 몇군데 축사가 있고 좌, 우측으로 마을들이 보인다. 수로를 따라 얼마를 갔을까 수로에 빠진 고라니 한 마리가 우리를 보더니 첨벙첨벙 수로를 따라 도망을 간다. 한참을 뛰어가던 고라니 힘이 빠졋는지 수로에 서서 쉬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또 다시 도망을 치는데 어느 순간 이 넘 고라니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도중에 수로에서는 빠져 나갈 때가 없는데 지금도 궁금하다. 수로를 따라 25분을 가니 익산에서 함열을 잇는 23번 국도에 닿는다. 앞에는 현대주유소가 보이는 곳이다. 이곳 도로 중앙으로 분리벽이 설치되어 많은 차들이 오가기에 넘어 갈수도 없다. 잠시 좌측으로 10m를 이동하면 분리가 끊기여 이곳으로 도로를 횡단하여 다시 주유소 쪽으로 돌아와 수로변 세멘포장길을 따라 가면 좌측으로 신재생산업기게 공장이 보이고 좀 더 가면 그린환경이란 간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수로의 철판다리를 건너면 그린환경 좌측으로 좁다란 세멘트도로가 보인다. 이 도로를 따라가면 6분이 지나서 철길 건널목이 나온다. 마침 열차가 지나가 차단기가 내려간다. 잠시 쉴 겸 기다려 용산리 건널목을 건너면 앞쪽에 양계장이 있다. 양계장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4분후 황등-오산간 신도로 굴다리가 나온다. 굴다리를 지나면 세멘트길 좌측으로 누렁이 개들을 사육하는 곳으로 많은 개들이 우리를 보고 마구 짖어 댄다. 이제 또다시 수로옆 세멘트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10여분 후 용산리 마을이 나온다. 여기서 우측 길을 따라 갔으나 길이 끊겨 좌측편 집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가니 아스팔트도로가 나온다. 여기까지 계속 세멘트 길을 따라 오면 되는 것이다. 도로변 뽀빠이 간판이 보이고 잠시 후 벼를 수매하는 날인지 많은 트랙터에 실린 벼들이 수매를 기다리며 농협창고 앞에 대기를 하고 있다. 이후 용산리 마을표지석이 있는 용산삼거리로 지금은 사거리지만 아직도 용산삼거리라 칭한다. 좌측 편으로 파란지붕의 용산삼거리 슈퍼가 보인다.
함라성결교회(11.4km, 약53m) 11:15
용산삼거리에서 직진을 한다. 여기부터 함라 까지는 도로를 따라 간다. 5분을 지나면 구자리 마을 입구의 표지석을 지나고 우측으로 둥그렇게 돌아가는 도로를 따라가면 이제 앞쪽으로는 함라산 봉화산이 점점 가까이 닿아 오고 양쪽으로는 널찍한 농토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에바다교회를 지나고 좀 더 가면 구자리 입구에서 약 15분후 봉곡리 입구에 닿는다. 잠시 후 바윗돌에 새긴 ‘갈마’ 표지석 뒤로 사회복지법인 효도마을 건물이 있고, 좌측으로는 예전 말로 소를 매매하는 ‘소전’이 있고, 우측으로는 축협사료공장 축협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후 좀 더 가면 군산 임피에서 강경간을 잇는 큰 도로에 닿는다. 여기 천남사거리(행동교차로)를 건너면 좌측으로 역사가 백년이 넘은 함라초등학교가 있다. 교문안에는 개교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08년도에 세워졌으니 현재 107년이 된 것이다. 유서 깊은 학교다. 학교를 지나 몇 분을 더 가면 함라파출소 앞에 닿는다. 도로를 건너 파출소 옆길을 따라 들어가면 함라의 유명한 삼부잣집 골목에 닿는다. 황토담이 아직도 튼튼하게 둘러쳐져 있는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조해영가옥을 비롯하여 김안균가옥이 보인다. 나머지 한 채인 이배원가옥은 보이지 않는다. 도로 반대편으로 함라 성결교회가 높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주변으로 붉은담장과 삼부잣집의 아름다운 가옥들이 모여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함라산 정상(12.90km, 240.5m) 11:58~12:02
함라 성결교회 앞에서 조금 올라가면 안내도가 있는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안내도 하나는 익산 둘레길 안내도이고, 하나는 함열현관아터 안내도이다. 이곳을 지나 오르면 주차장 위로 ‘추억남기기’라 적힌 정자가 있고 좀 더 오르면 대나무 앞에 ‘둘레길 양반길’ 표시가 적힌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오르면 감나무골 식당위로 좀 더 올라 함라재로 오르는 길이 있고 직진해서 오르면 노인복지 전문시설이 있다. 이곳에서 뒤쪽 계곡 쪽으로 들어가는데 복지시설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그쪽으로 오르는 길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알았다고 하며 계곡을 따라 들어가니 처음 한동안은 가시잡목길 사이로 길 흔적이 있으나 안쪽에 쌍굴이 있는 곳부터는 길이 전혀 없다. 여기서 난 쌍굴 우측사면으로 오르기 시작하고, 적막님은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여 난 가시덤불길 헤치고 가진 고생하며 오르니 시커먼 바위들이 나란히 서 있는 지점을 지나 15분 정도를 더 가시덤불 길을 헤치고 나서야 능선에 닿은 후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조금 더 이동을 하니 이곳으로 ‘등산로 없음’이란 간판을 지나 함라산 정상에 올라섰다. 노인 복지 시설에서 35분 정도를 고생해서 산경표에서 가리키는 방향과 근사치로 간신히 오를 수가 있었다. 함라산 정상은 널찍한 공터로 되어 있으며 여러개의 의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쪽에 스텐레스판으로 제작한 정상표지판이 서있다. 우측으로 조금 더 높아 보이는 곳으로 가보니 헬기장으로 삼각점등은 찾지 못했다. 함라산은 숭림사에서 시작하여 율재를 거쳐 오르던가 율재에서 오르면 된다. 봉화산을 거쳐 칠목재 까지 산행을 하면 적당한 산행이 되겠다. 함라산에서는 반대편 넘어로 금강이 내려다보이고 웅포면일대의 그림 같은 경치가 내려다보인다. 골프장을 비롯하여 생태공원등 금강 넘어 부여의 신성리 갈대밭까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봉화산(14.07km, 236.3m) 12:23~12:58(중식)
함라산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길은 매우 좋다. 처음 계단 길을 내려서고 나면 한동안 평탄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5분이 지나면 좌측으로 하산로가 나온다. 함라삼부잣집 1.1km, 봉수대 0.7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이곳을 지나고 다시 3분을 더 가니 나무다리가 나오며 다리 아래를 함라재라 한다. 함라재는 금강변의 웅포 곰개나루와 평야지대인 함라를 잇는 가장 짧은 산마루 고갯길로 예전부터 이 길로 많은 사람과 물건이 넘나들던 고갯길이라 한다. 함라재 이정표에는 함라 삼부자집 1.3km, 임도 0.2km, 생태통로 2.4km, 봉수대 0.4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부터 통나무계단 길을 따라 오르면 3분이면 해발 약210봉에 오르고 여기서 살며시 내려선 후 잠시 평탄한길을 따르다가 잠시 오르게 되면 정자가 있고, 산불감시탑이 있는 봉수대 즉 봉화산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야생차단지 0.3km, 생태통로 2.8km, 칠목재 2.7km가 적혀 있다. 여기서는 조망이 매우 좋아 북으로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주변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남으로는 널찍한 함라 일대의 평야지대가 시야에 들어오며 함라산에서 칠목재로 이어지는 능선을 살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망대다. 이곳에 도착하여 당연히 먼저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한 적막님이 보이지 않아 논산에서 오신 몇 분의 등산객들에게 물어보니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소리 높여 부르다가 목이 메여 멈추어 주변을 감상하다. 다시한번 더 부르니 함라산 쪽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노인복지시설 쪽에서 도저히 뚫고 오를 수가 없어 다시 내려서서 함라재 쪽으로 올라서서 함라산을 들러서 이쪽으로 왔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먼저 도착한 논산팀들이 끊여서 나누어준 따끈한 순두부 청국장을 곁들여 식사를 마친 후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우리는 칠목재로 향한다.
칠목재(17.13km, 약78m) 13:41
봉화산에서 잠시 내려선 후로는 길이 매우 좋다. 거의 평탄하게 이어지는 등산로는 널찍하니 낙엽이 덮고 있어 운치도 있고 산책하기 딱 좋은 산길이다. 좌측으로 하산하는 길을 두 번 지나고 봉화산을 출발하여 12분후 해발 약170m의 쉼터봉을 지나면 좌측 예비군 훈련장 쪽으로 접근금지 표지판을 몇 개를 지나 입남으로 하산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다. 입남마을 0.92km, 봉화산 1.49km, 칠목재 1.63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이후로도 등산로는 매우 좋아 3분후 산소위봉을 지나고 해발 약160m의 쉼터봉을 지나서 양쪽으로 산소가 있는 하늘이 터진 지점을 지나고 갈잎이 수북히 쌓인 등산로를 지나 우측으로 파란지붕이 보이는 계곡으로 교회가 내려다보이는 산소지대를 지나면 이후로는 등산로 양쪽으로는 거의 대부분 산소들이 차지하고 있다. 양쪽으로 측백나무를 심은 산소가 있는 지점을 지나서 해발 약140봉을 넘어서면 내리막에 산소 5기가 있다. 이곳을 지나 5분 정도를 더 가면 함라산 등산안내도가 있고 휴게소가 있는 칠목재다. 칠목재 휴게소는 지은지 얼마 안 되는 한우촌 식당을 겸한 휴게소다.
수례재(21.05km, 약70m) 15:14
칠목재에서 휴게소 정면으로 있는 세멘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기도원이 하나 있다. 기도원 뒤로 올라가면 감나무과수원을 지나 표지기들이 우측으로 붙어 있어 이 방향으로 따라가니 산소를 지나며 부터는 길이 없어진다. 산경표의 길 표시는 좌측 능선을 가리키고 있기에 사면을 가로 질러 좌측 능선으로 붙으니 길 흔적은 있다. 이후 조금 더 오르니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문이 있는 해발 178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등산로는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며 이곳 능선으로 길이 매우 나쁘다. 간간이 쓰러진 소나무들이 길을 막고 찔레나무 멍과넝쿨이 막고 있어 진행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 이렇게 20분을 진행하면 표지기가 많이 붙은 좌꺽임봉이 나온다. 이봉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서면 좌측으로 파란색 지붕의 축사가 보이며 곧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서 좌측능선 아래로 마을에서 올라온 세멘트임도가 보이며 서서히 반대편으로 오르면 봉 정상부에 편백나무들이 많이 심겨져 있으며 길은 대부분 없어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산소가 나온다. 산소에서 철탑을 지나 내려서면 안부에 임도가 나온다. 임도 양쪽으로는 마을이 가까이 보인다. 우측은 나포면 정상리, 좌측은 황등면 신동리다. 여기서 오르면 해발 약100봉으로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산소가 나온다. 여기 산소부터 길이 좋아 진다. 안부를 지나 오르면 좌측으로 공동묘지가 나오며 마을이 보인다. 공동묘지 위 능선으로 진행하면 우 꺽임봉으로 산소가 있다. 능선을 따라 7분 쯤 가면 좌측에서 올라온 임도가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을 지나 3분을 가면 송전탑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좌측으로 마을이 보이고 조금 더 가다 산소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아스팔트도로가 나온다.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고갯마루에 이정표가 있는 수례재 정상이다. 이곳으로 하산할 때 송전탑이 있는 삼거리에서 길을 잘못들은 것 같다. 수례재는 서수면에서 나포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측엔 흥법마을이 우측엔 와촌마을이 있다. 흥법마을 0.3km, 와촌마을 0.5km, 망해산 까지는 2.7km가 이정표에 적혀 있다.
망해산 정상(삼각점, 조망, 헬기장, 23.68km, 230m) 16:22~16:29
수례재에서 오르는 첫머리는 통나무계단이 놓여 있다. 통나무계단을 오르고 평평한 길을 따르다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조금씩 오르내리면 대나무숲을 지나 안부고개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흥법마을 입구 0.9km, 망해산 2.1km, 와촌마을 0.3km, 흥법마을 0.3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흥법마을 쪽으로는 대나무가 꽉 들어차 내려가기가 어렵겠다. 안부고개를 지나고 등산로는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한참을 땀을 비오듯 흘리고 오르면 주변이 온통 산소인 해발 약140봉으로 여기 산소 날개 위가 가장 높은 봉이다. 산소 아래로 둥그렇게 만든 작은 동산이 있고, 좌측 우측 모두 산소가 있는 곳으로 능선이 좌측으로 꺽이는 부분으로 바로 앞쪽 능선에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에는 망해산 1.3km, 흥법마을 입구 1.7km, 흥법저수지 0.6km가 적혀 있다. 납골묘를 지나고 안부사거리에 닿으면 이곳이 가시밭으로 비집고 나가는데 어렵다. 좌측으로는 논이 가깝게 보이고 우측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와촌마을이 보인다. 가시밭길 헤치고 나가면 이후로는 길이 좋아 진다. 쓰러진 나무에 소복하게 매달린 목이버섯은 짐이 가볍다면 채취하고 쉽지만 짐도 무겁고 갈 길도 멀고 군침만 흘리다가 간다. 이곳을 지나며 통나무계단길이 시작되어 8~9분을 오르면 널찍한 임도가 나온다. 취성산 쪽에서 금강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다. 여기임도에 망해산 0.61km, 금강 4.01km, 팔각정자 0.1km가 적혀 있다. 망해산은 임도를 따라 가도 되고, 팔각정자를 경유해서 가도 된다. 임도를 건너 통나무계단으로 올라서면 곧 팔각정자가 나온다. 망해산 동봉이라고도 하는 봉으로 조망이 매우 좋은 곳에 세워진 정자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황등 임피 익산등 넓은 벌판에 군데군데 마을이 보이고 금강변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살펴 볼 수 있는 전망대다. 팔각정자에서 조금 가면 능선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 길은 나포 쪽으로 내려가고, 망해산은 좌측으로 간다. 잠시 후 임도가 끝나는 능선에 닿는다. 여기에는 군산 구불길 안내도가 있고 이정표에 망해산 정상 0.23km가 적혀 있다. 임도를 지나 능선을 따라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헬기장에 닿는다. 여기도 역시 조망이 매우 좋다.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고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고 세 번째 헬기장이 있는 곳이 망해산 정상이다. 삼각점이 있고 삼각점 안내문이 있으며 금강 쪽으로 산소가 있다. 이정표와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상목이 있으며 의자가 놓여 있어 주변에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 딱 좋은 장소이다. 여기서 금강 쪽으로 내려다보면 좌측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금강을 건너는 다리의 모습이 보이고, 팔각정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저녁햇살을 받아 은은한 빛깔이 너무 곱다. 다시한번 더 찾고 십은 곳이다.
취성산(우측길로 하산, 25.34km, 219m) 16:57 ~17:00
망해산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취성산으로 향하니 이 방향으로 저녁 햇살이 비추어 늦가을 노랗게 물든 신갈나무, 낙엽송등 단풍과 어울려 너무 색감이 좋다. 능선 우측으로 부곡리 우곡제에 비친 햇살이 반사되어 나오는 빛이 강렬하여 눈이 부시다. 좁다란 계곡으로 이어지는 전답과 우곡제, 마을이 어우러진 모습도 볼만하다. 망해산에서 이런 좋은 경치를 바라보며 10여분을 내려오면 임도사거리에 닿는다. 임도 건너 높다란 봉을 거쳐서 가야 옳겠지만 이미 내려오며 임도를 따라 취성산으로 갈려는 마음 때문에 건너편 봉으로 오르는 길은 대충 살펴보았으나 흔적이 없다. 아마 이곳에서 저 봉을 올랏다가 취성산으로 간 분들은 열에 한명정도 될까 싶다. 여기임도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부곡리 방향이고, 좌측으로 내려서면 흥법마을 쪽이다. 여기서 임도를 따라가니 모처럼 편안한 길이다. 3분여 가면 조금 전 올라가지 않은 봉으로 올라가는 통나무계단이 있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다. 망해산 1.5km, 축성산 0.8km, 봉으로 오르는 방향으로 흥법마을 입구 2.5km가 적혀 있다. 이곳을 지나면 곧 조금 전 임도 사거리보다 더 널찍한 임도 사거리다. 좌측은 축동리로 우측은 부곡리로 간다. 정면의 길은 축성산을 좌측으로 지나 축산리 방향으로 빠진다. 여기에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커다란 군산 구불길 안내도가 있으며 이정표에 원부곡마을 2.13km, 망해산 정상 1.25km, 축성산 0.88km가 적혀 있다. 여기 임도사거리에서 정면의 임도를 따라가면 4~5분후 우측 산길로 올라가는 지점에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다. 산길을 따라 축성산으로 오르는 길은 좋지 않다. 잡목이 등산로를 거의 덮어 지나는데 어려움이 많다. 잡목사이를 뚫고 10분 정도를 오르면 취성산 정상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산불감시탑이 있으며 정상표지판은 작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거점재(26.8km, 약67m) 17:27
취성산에서 생각 없이 좋은 길을 따라 내려서다 이 길이 아니다싶어 산경표를 보니 막 등로에서 벗어나려한다. 이 길은 성주사 방향인 축산리로 내려가는 길로 우리가 갈 방향은 아니다. 다시 올라가 정상표지판 뒤로 난 우측 길을 따라 내려서니 길이 상당히 가파르게 내려선다. 이후로는 거의 평탄하게 등로가 이어지지만 길 상태는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20여분을 좀 더 가니 임도고개가 나온다. 임도 좌측 아래로는 차량이 지나는 것이 보인다. 임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올라서니 내려설 수 없는 곳이다. 거점재의 절개지로 철조망이 보인다. 좌측 산소를 따라 내려서서 조금 전 임도로 오르는 길을 따라 나오면 ‘시온동산’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나온다. 조금 전 임도고개에서 좌측 세멘트 길을 따라 내려오는 편이 좋겠다. 도로에 닿은 후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거점재다. 거점재는 임피면 축산리에서 나포면 부곡리로 넘어가는 도로고개다.
창안리마을 버스정류장(29.26km, 약20m) 18:25
거점재에서 좌측 산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10분을 오르니 봉 정상에서 길이 끊긴다. 이리저리 길을 찾다보니 우측으로 표지판 하나가 보인다. 용천산이라고 적혀 있다. 해발 136m의 낮은 봉으로 잡목 숲에 가려진 봉이다. 이봉에서 내려서는데 능선으로 따라 좌측으로 가다가 산경표를 보니 길에서 벗어난다. 이 길은 좋지는 않치만 임피 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보인다. 이쯤에서 우리는 헤드랜턴을 켜기 시작한다. 다시 용천산 방향으로 올라서니 우측 사면 쪽으로 표지기가 보인다. 가파르게 내려서는 길을 따라 한동안 내려서면 우측으로 공원묘지가 보이는 지점에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 공원묘지 쪽으로 이동을 하여 좌측 능선을 따라 난 임도를 따라가면 아스팔트도로가 나온다. 군산휴게소앞 상작마을에서 우곡제를 거쳐 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길인 미산재다. 여기서 좌측편 임도를 따라 조금 가면 집이 나오고 세멘트길이 있다. 세멘트길을 따라 우측으로 가면 대나무숲길도 지나고 우측으로 우곡제 옆에 자리 잡은 생명수교회로 가는 세멘트길 삼거리다. 이곳을 지나면 태양광시설이 된 곳으로 세멘트포장이 된 널찍한 공터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상작마을로 군산휴게소가 가까운 곳이다. 이지점을 지나고 우곡제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마을 지나고 녹색철조망의 상수원을 지나면 3분후 서해안 고속도로아래를 통과하여 조금 더 가면 창안리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에 닿는다. 버스가 곧 오는지 마을분 몇이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야를 거쳐 군산으로 가는 버스노선이 있다.
망경산(31.74km, 129m) 19:23
창안리 버스정류장을 막 벗어나니 대야 쪽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한다. 아 저 버스를 타고 갈 것을 이미 날은 어두워 집 생각이 막 나는 시간인데 산행은 끝나지 않고 갈 길은 멀고 여기서 그만 접고 버스를 탈걸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는 마을길을 따라 창안리 마을로 향한다.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지만 능선으로 접근한 지점을 찾지 못햇다. 창안리 마을에 닿은 후 첫 번째 골목에서 우측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니 능선아래에 가까이 있는 집까지 길이 나있다. 여기서 잠시 숲을 헤치며 올라서면 곧 능선에 닿는다. 풀과 잡목으로 어수선한 길을 따라 오르면 가시덤불길도 나오고 잡목이 길을 덥고 있어 진행하기 매우 어려운 지점이다. 간신히 비집고 올라서니 잡목숲 가운데 하얀 아스테지 표지판이 보인다. 대명산이라고 써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길이 매우 좋지 않다. 대명산을 기점으로 등산로는 좌측으로 둥그렇게 돌아서 대야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간다. 대명산에서 잡목지대를 잠시 벗어나면 길이 좋아 진다. 산소가 주변으로 많이 있어 산소를 오가는 길인듯하다. 10분이 지나면 세멘트임도 고개가 나온다. 창안재라 한다. 임도고개에서 좌측 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나지막한 능선으로 잡목을 피해가며 한동안 간다. 길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가지만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존하여 진행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된다. 20여분을 진행하니 앞쪽에 아스테지 표지판이 나온다. 망경산이라 적혀 있다. 산속의 날은 너무 어두워 여기가 어딘지 전혀 구분이 안 간다. 지도에 표시된 도로가 좌측으로 가까이 있을 것이란 것 말고는~~
애잿고개 삼거리(34.32km, 약110m) 20:29
망경산에서 번듯한 길은 우측으로 가고 우리가 갈 방향은 좌측으로 표지기가 매달린 곳이다. 여기도 잡목사이로 난 길로 매우 좋지 않다. 얼마를 가니 나무가 쓰러져 이리저리 헤메도 길이 안 보인다. 몇 분을 헤메다가 쓰러진 나무를 간신히 넘어서서 가니 잠시 가파르게 내려서서 우측으로 불빛이 보이는 쪽으로 길이 닿는다. 고물상인지 깨끗하지 않은 골목을 빠져나가니 거시기식당이라고 하는 곳이다. 도로 옆으로 거시기 삼계탕이라 적힌 간판불빛이 유난히 밝다. 식당에서 좌측으로 조금 올라가면 우측으로 들어가는 임도가 있고 조금 더 올라 다시실재 고갯마루에서 표지기가 매달린 곳으로 들어가려 하니 대야로 가는 버스가 막 지나친다. 저걸 타고 갔어야 하는데 버스만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다리실재에서 능선으로 올라 산소가 있는 봉에서 우측 임도로 내려선다. 이 임도는 거시기 식당 앞쪽에 있던 임도길이다. 처음부터 이 길을 따라 왔으면 조금 고생은 덜 했을 것인데 시간이 더 지체가 된다. 임도를 따라 조금 가면 다리가 나온다. 군산에서 익산으로 가는 군익로다. 다리를 지나며 널찍한 아스팔트도로가 나오지만 곧 비포장 임도로 빠뀌어 고봉산 쪽으로 향한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표지가 매달린 방향으로 좌측 길로 접어 들어가면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는 곳이 나온다. 여기도 잡목사이를 비집고 지나야 하는 길로 좋지를 않다. 몇 분을 올랐나 앞쪽에 철조망이 나오며 고봉산 아스테지표지판이 보인다. 고봉산 정상은 옛 미군부대 자리로 지금은 비어 있으나 철조망 때문에 더 이상 갈수가 없고 우리는 여기서 좌측 우측 점을 치다가 표지기가 많이 매달린 우측길 철조망을 따라가니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얼마 안가 철조망 아래로 임도길이 보인다. 임도로 내려서서 조금 가니 삼거리가 나온다. 구불길은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좌측으로 가니 세멘포장이 된 널찍한 헬기장이다. 헬기장을 지나 철조망을 따라 가니 이건 다시 처음 고봉산 표지판이 있던 방향이라 다시 돌아와 헬기장에서 길을 찾으니 길이 안 보인다. 간신히 길 하나를 찾았는데 잡목 속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더니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아 되돌아서서 헬기장을 지나 구불길을 따라 조금 가다가 좌측 산소가 있는 곳으로 가니 산 아래 마을의 불빛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어째든 길을 찾아야 한다. 방향은 조금 전 헬기장에서 좌측 방향인데 우리는 우측으로 와 있는 것이다. 산소를 따라 내려서니 좌측으로 불빛이 보인다. 우리는 저곳으로 가야 한다. 산소를 따라 내려서다. 능선 좌측을 보니 산소가 또 있다. 좌측 산소 쪽으로 넘어서서 내려서니 널찍한 산속의 포장포도가 나온다. 군데군데 파이긴 했어도 우리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좋은 도로다. 잠시 후 도로 좌측 위로 절이 하나 나온다. 조금 전 봤던 불빛은 절에서 나온 불빛이다. 봉정암 해동종이라 하며 지도에는 낙영당이라 표시되어 있다. 이 길은 산남리 마을에서 애잿고개로 올라와 반대편 개정면 아산리 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임도인 것이다. 이 도로를 따라 8분을 가니 애잿고개 삼거리에 닿는다. 정면으로는 대야로 가는 능선길이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산남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리는 여기서 산행을 접고 하산을 하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광법사 까지는 30분이면 족하겠는데 고봉산에서 너무 헤메서인지 더 이상 산행을 하고픈 마음이 싹 가셨다.
산남리 버스정류장(35.86km, 약42m) 20:50 ~21:01
애잿고개에서 산남리로 내려가는 길은 좋다. 잠시 내려서면 남성환경이라고 하는 쓰레기 처리장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 좁아진 도로를 따라 가면 우측으로 집이 한 채나오고 좀 더 가면 축사가 있는 마을을 지나 좁다란 아스팔트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면 우측으로 산남리 마을이 보이고 좀 더 나가면 산남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에 닿는다. 애잿고개에서 부터 여기까지 1.5km로 31분이 소요되었다. 다음 산행에 참고를 하여야 한다. 오늘 석불사거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약 36km 12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길도 좋고 거침없이 나갔으나 점점 길이 나빠져 마지막 고봉산에서 헤메면서 광법사 까지 진행을 하지 못해서 조금은 서운한 감도 있는 산행이었다.
산행은 이렇게 하여 일단마무리가 되고 여기서 대야 택시를 부르니 5분 정도의 짧막한 시간이 지나서 택시가 도착을 한다. 택시를 타고 대야역 앞에 내리니 택시비 4500원 정도 나왔는데 콜비 1000원 포함해서 5500원을 받는다.
대야역 앞 뼈다귀 해장국 집에서 저녁식사를 배불리 하고 시간을 맞추어 용산에서 익산까지 가는 마지막 열차를 타려고 대야역에 들어가니 손님은 우리 뿐이다.
10여분을 기다려 막차를 타고 익산역에 도착하여 22시 40분 고속열차를 타고 오송역에 내려 적막님은 6분후 다시 천안아산역으로 난 청주로 돌아 왔다.
오늘 산행도 무사히 잘 마쳤다. 이제 대동금남정맥은 1구간이면 끝을 맺을수 있겠다. 오늘도 함께 한 적막님 수고 많았습니다.
다음 한 구간도 빠른 시일 내에 마치도록 합시다.
수고 했시오 ~~ 감사
산행시간 : 11시간 59분 소요
산행거리 : 35.86km
산행경비
오송 ~익산 고속열차비 : 14000원
익산 ~석불사거리 버스비 : 1300원씩
산남마을 ~대야역 택시비 ; 5500원
대야역앞 해장국집 저녁식사비 : 6000원씩(정확치 않음)
익산 ~오송역 고속열차비 : 14000원
주차비 :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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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금남정맥3 석불사사거리~ 함라 ~봉화산~망해산~용천산~거점재~우곡2교
갈 때
조치원역 ~익산역 : 08:04~09:43 (오송 7:03(천안아산 6:48) ~ 익산7:29 19600원 할인10% 12600원)
익산역 ~석불사거리 : 약 15km (금마터미널 ~석불사거리 6.5KM)
익산역(익산역 정면골목 우측 K2앞)~금마 : 좌석222-1, 555, 65,61,41번) 금마택시 063-836-9403,3455,9433,7888
익산역 ~금마 : 222-3번 08:05, 222-1번 9:55, 65 번(김내과) 7:32, 8:10, 61번(김내과) 7:42, 41번(=) 7:34
익산역~석불사거리(약15KM) : 39번 7:17(김내과), 39-1번 08:09(=), 60-2, 7:54(금마에서택시),60-3 8:25
올 때
(익산택시:063-831-7011, 836-1200,831-5444,841-4409,858-6670,857-1188,858-5560)
함라파출소 ~함열역 ; 5.6km(버스 33번 함열정류장 하차 200m), 함열택시 063-861-0014,1550,2323,34349
수레재~익산역:약14km, 칠목재(우측으로60m소룡정류장)~익산역:약16~17km(버스35 31회,35-1번 6회 1시간소요)
(35번 김내과 7:19, 8:14, 9:09, 9:54, 10:45, 제성~익산역: 15:55, 16:50, 17:45, 18:40, 19:35, 20:24)
거점재 ~익산역 : 약14km,(버스 59번 타고 임피에서 27번으로 환승)(거점재~임피 약 2.1km 30분)
*27번 버스 익산역 : 7:04, 8:04, 8:53, 9:53, 10:56등 , 임피~익산역: 15:30, 17:04, 17:42, 19:08, 21:30
우곡1교 ~대야역 : 6.14KM,(063-451-5500, 2566, 6006), (거점재~우곡1교 ;1시간 거리) 다리실재~대야역 ;7KM ( 대야택시 : 063-451-5500, 2566, 6006)
대야공용터미널~익산역 ; 18:17,52,19:52,20:57,21:57, 대야역~익산역 : 17:55, 19:54~20:07, 22:02~22:15
함열역~조치원역 ; 18:59 ~20:21, 21:39 ~22:58
익산역~조치원역:17:06~18:39,17:22~18:52, 18:46 ~20:21(7800원), 20:28 ~21:57(새 11600원), 21:27~22:58
익산역 ~오송역 ; 18:50(천),19:19,19:37,20:00(=),21:14,22:40~23:06~23:12,23:23(=),
거리표
석불사거리~2.4k~삼기교회~4k~23번 국도~0.7k~호남선~1.5k~용산삼거리~3k~함라초교 ~1.9k~봉화산 ~3.4k~칠목재 ~2k~임도 ~2.4k~수례재 ~2.8k ~망해산 ~1.7k ~취성산~1.5k ~부곡재(거점재)~1.4k~~미산재 ~2.7k~대명산~1.8k~다리실재육교~3k~임도사거리~3.3k~군산남고
금남(금강)기맥 제3구간 석불사사거리-23번국도-함열리 함라
구간
석불사거리(30)-6.1km(검지옥실마을갈림길, 검지마을쉼터, 삼기제일교회, 도마리경노원, 사도사거리, 사랑의집 입구, 원형동표지석, 도마리표지석) - 23번국도-1.5km(철길건널목,지하도)-황교이구-3.5km(용산리표지석,구자마을표지석,탑고지복지마을표지석,봉곡마을표지석,갈마간이정류장,봉곡표지석, 참숯마을표지석)-함라면 함라파출소.
*산행거리 : 11.6km, 산행시간 : 3시간 07분 (함라~거점재: 14.2km 5시간)(거점재~우곡2교 1시간, 다리실재 2:17)
함열리함라파출소-1.2km(추억만들기정자,함라재)-봉화산(240m)-4.1km-칠목재(70) -3.3km(어래산성,임도,안부)-수례재(50)-2.5km(악촌마을갈림길,흥법저수지갈림길,팔각정,산불감시초소,제1헬기장, 제2헬기장)-망해산(228m),헬기장-1.5km(임도,원부곡마을갈림길)-취성산(210m)-1.6km(거점재)-용천산(141m)-3.1km(공원묘원,우곡제도로,생명수교회갈림길,성산양수장,지하도,창안마을간이정류장)-대명산(130m)-1.2km(안부,망경산129m)-다리실재(70)-0.8km(다리실재육교)-고봉산(147m),헬기장 -4.3km(애잿고개,지장암갈림길,무인카메라,무명삼각점아라406,임도,육각정, 26번도로,대야배수지,팔각정)-대야옥구중학교
3. 거리/소요 시간 : 도상거리 23.6km, 10시간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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