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백무동 ~한신지곡~소지봉~백무동
2017.06.24.토요일 맑음
참석인원 : 청주 산사랑 산악회 45명
청주종합운동장 06:00 -복대동 06:10 -덕유산 휴게소 07:22 ~07:46 -지리산 톨게이트 08:25 -백무동 주차장 08:52 ~08:58 -탐방안내소(0.591km, 약570m) 09:06 -이정표(백무동 0.7km, 1.24km, 약620m) 09:16 -첫나들이폭포(2.26km, 약730m)09:31 -가내소 앞 교량(2.193km, 약815m) 09:45 -구선폭포(3.31km, 약840m) 09:51 -철계단 -소폭포(3.49km, 약915m) 10:01 -팔팔폭포(3.66km, 약930m) 10:06 -소폭포(4.31km, 약1015m) 10:31 -천령폭포(4.59km, 1050m) 10:39 -Y계곡(좌계곡으로, 5.25km, 1190m) 11:01 -내림폭포(5.41km, 약1235m) 11:11 -함양폭포(5.85km, 약1355m) 11:29 -장군바위(5.91km, 1360m) 11:34 ~11:50 -장터목~백무동 본 등산로(6.65km, 1580m) 12:26 -전망바위(6.80km, 약1637m) 12:33 -망바위(7.49km, 1520m) 12:51 -백무동 3.6km전 이정표(8.18km, 약1395m) 13:04 -소지봉(8.81km, 약1301m) 13:15 -돌계단길 -참샘(9.26km, 약1152m) 13:27 -하동바위(10.00km, 약927m) 13:44 -10-2지점(10.68km, 약701m) 13:58 -10-01지점(11.16km, 약603m) 14:07 - 마지막 다리(11.30km, 약507m) 14:10 -백무동 탐방지원센타 14:13 -백무동 주차장(12.05km) 14:22 ~17:44 -지리산 톨게이트 18:11 -덕유산 휴게소 18:50~19:00 -청주톨게이트 20:10 -청주 집 20:20
~~~~~~~~~~~~~~~~~~~~~~~~~~~~~~~~~~~~~~~~~~~~~~~~~~~~~~~~~~~~~~~~~~~~~~~~~~~~~~~~~~~~~~~~~~~
지리산
높이 1,915.4m.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의 산세는 유순하나 산역(山域)의 둘레가 800여 리에 달한다.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35°27′에 위치한 거대한 이 산은 총면적이 440.4㎢이며, 전라북도에 107.7㎢, 전라남도에 87.9㎢, 경상남도에 244.7㎢ 분포한다.
주능선 방향은 서남서∼동북동으로,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 1,915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칠선봉(七仙峰, 1,576m)·덕평봉(德坪峰, 1,522m)·명선봉(明善峰, 1,586m)·토끼봉(1,534m)·반야봉(般若峰, 1,732m)·노고단(老姑壇, 1,507m) 등이, 동쪽으로는 중봉(1,875m)·하봉(1,781m)·싸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또 주능선과 거의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가지능선은 700∼1,300m의 고도를 나타내며, 종석대(鐘石臺, 1,356m)에서 북으로 고리봉(1,248m)·만복대(萬福臺, 1,433m) 등의 연봉이 나타난다.
이 산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섬진강 지류들의 강력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고 산지 정상부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험준한 산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들 계곡이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의 주변에는 동쪽에 산청, 남쪽에 하동·광양, 서쪽에 구례, 북쪽에 남원·함양 등의 도시와 계곡에 마을이 발달하고 있어 원상(圓狀)을 이룬다.
지리산에는 이칭(異稱)과 별칭(別稱)이 많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리산을 그 음대로 지리산(地理山)이라 쓴 기록도 많다. 원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말의 음사(音寫)일 뿐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두래는
(달)의 분음(分音)으로서 ‘두리’·‘두류’ 등으로 변음하여 ‘頭流’·‘豆流’·‘頭留’·‘斗星’·‘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이 많다. 이 중 두류(頭流)는 백두산의 맥세(脈勢)가 흘러내려서 이루어진 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지리산(地理山)·두류산(頭流山) 등이 지리산의 이칭이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삼신산은 중국 전설의 발해만(渤海彎)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州山)으로, 이곳에 신선(神仙)과 불사약(不死藥)과 황금(黃金)·백은(白銀)으로 만든 궁궐이 있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 있는데 지리산은 이 중 방장산에 대비가 된다. 그 밖에 봉래가 금강산, 영주가 한라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 신산(四大神山)이라 하고, 그에 구월산을 합하여 5대 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나 지리산을 신산(神山)으로 꼽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서산대사휴정(休靜)은 지리산을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壯而不秀)고 표현하였다. 또 『팔역지(八域志)』의 저자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산수론(山水論)에서 지리산을 조선의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에 해당되며 12종산(宗山)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호남읍지』, 신경준(申景濬)의 『산수고(山水考)』,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도 모두 지이산(智異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류산·방장산·지리산(地理山)·남악 등의 이칭이 소개되어 있고, 두류의 류(流)자는 백두산의 맥이 잠시 정류(停留)하였다 하여 류(留)로 씀이 옳다는 제안도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두류산(頭留山)이라는 이칭이 하나 더 추가된다.
문학·예술 속에 나타난 모습
우리나라의 기본 골격이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계가 중추가 된다는 인식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지리산을 백두산이 흘러내린 산이라 하여 두류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래의 지리 사상인 풍수지리설에서도 받아들인 바이거니와, 실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의 없이 전수되어온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기초적인 관념인 것이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밝힌 이가 신경준이다. 신경준은 그의 「산수고」에서 산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산맥세의 흐름을 상세하게 파악한 바 있는데, 뒤에 이것을 기초로 『산경표(山經表)』가 만들어졌다.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맥세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지리산은 민족의 진원지며 영산으로 추앙받는 백두산의 한반도 남부를 대변하는 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풍수사상에서는 민족적인 주체의식을 상징하는 의미를 띠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실상사의 풍수전설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백두산의 기맥(氣脈)이 이곳을 지나 일본으로 연결되는데 그 지기(地氣)를 끊어 놓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 바로 실상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경내 약사전에 봉안된 4,000근짜리 무쇠로 제작된 약사여래철불은 높이 2.5m로 좌대 없이 땅바닥에 그대로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과 일본 후지산(富士山)을 일직선상으로 바라보도록 좌정되어 있는데, 맨 바닥에 철불을 모신 이유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지기를 막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보광전 범종에 그려진 일본 지도 역시 매일 종을 때릴 때 얻어맞는 위치에 일본이 그려져 있어 위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리산 도처에서 들을 수 있는 설화들인데, 남원시 주천면 노치산 갈재의 「숯막이야기」는 고종이 그곳에 숯 수천 가마를 쌓고 불을 놓아 일본으로 가는 지맥을 막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혹은 동학운동 때 또는 의병항쟁 때 왜군을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의 한 맺힌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리산에는 지리천왕(智異天王)과 여신(女神)숭배의 설화들이 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보면 그는 천왕봉에 발을 딛고 맨 먼저 그 천왕봉에 있는 성모 묘에 제를 올리는데, 당집에 들어가 주과(酒果)를 차려놓고 성모상 앞에서 비는 일이 그것이었다.
이 성모상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로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이라는 설이 그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교에서 마야부인상을 숭배하는 전통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 설은 후세의 윤색이 아닌가 싶다.
둘째로 고려왕계를 성스러운 혈통으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고려 왕실에서 도선선사(道詵禪師)로 하여금 이 성모상을 만들게 하였다는 설이다.
성모에 대하여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지금 지리천왕은 곧 고려태조의 비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고 고려 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이야기(三國遺事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음.)를 듣고 이를 그들 임금의 핏줄로 삼고자 이를 만들어 받든다고 하였다.
셋째로 도선이 지리산에 선암(仙巖)·운암(雲巖) 등 삼암사(三巖寺)를 세우면서 이 절을 세우면 삼한을 통일할 수 있다는 성모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뒤 고려를 세워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계시를 내린 성모상을 세워 받들었다는 설이다. 넷째로 중국의 여신인 마고(麻姑)가 동쪽으로 와 정착한 것으로 믿고, 그 여신 숭배가 이 성모상을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전설에 지리산의 산정에 사는 여신의 이름이 마고 또는 마야고(麻耶姑)로 불린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래서 마고성모라는 복합어를 쓰기도 한다. 「마고전설」은 지리산의 능선을 형상화하고 있는 면도 있다. 마고는 반야(般若)를 사랑하였다. 어느날 반야는 돌아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났으나 오지를 않는다. 마고는 기다림의 초조로 나무를 할퀸다.
이것이 지리산 주능선 부근의 고사목(枯死木)이다. 그 올로 베를 짜던 자리가 세석평전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천왕봉의 돌무덤 위에 앉아서 서쪽 하늘을 보면 낭군봉인 반야봉이 마치 달려올 듯한 산세로 눈에 담긴다.
산 주변에서 익히 들을 수 있는 설화·전설들 외에도 음악에 있어서 민요가 주변 산촌에서 불려지고 있을 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리산을 주대상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아리랑의 경우, 「남원아리랑」·「하동아리랑」 등이 있으나 지리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지리산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을 보면 『고려사』 악지나 『증보문헌비고』에 작자나 연대는 알려지지 않은 「지리산가(智異山歌)」라는 백제 때의 가요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지리산에 대한 최초의 문학·예술 작품이 아니었겠는가 여겨진다.
구례의 한 여인이 지리산 밑에 살았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부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임금이 그 여자를 데려가고자 하나 죽기를 한하고 듣지 않으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본격적인 지리산 기록은 역시 기행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조선 시대의 기행문으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佔畢齋集 권2), 이륙(李陸)의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東文選 권21), 남효온(南孝溫)의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秋江文集 권6), 김일손(金馹孫)의 「속두류록(續頭流錄)」(濯纓集 권5), 조식(曺植)의 「유두류록」(南冥文集 권4), 양대박(梁大樸)의 「두류산기행(頭流山紀行)」(淸溪集 坤), 박장원(朴長遠)의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久堂集 권15), 정협(鄭悏)의 「유두류록(遊頭流錄)」(東文選 권21), 송병선(宋秉璿)의 「두류산기(頭流山記)」(淵齋文集 권21) 등이 있다.
이 중 김일손의 지리산 기행문 내용에서 몇 가지 표현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일행은 종자(從者)를 제외하고 정여창(鄭汝昌)·임정숙(林貞淑) 등 세 사람이며, 날짜는 4월 14일이다.
“단성(丹城) 서쪽으로 15리를 지나 또 비탈을 타고 서너마장을 가니 골짜기 입구 바위에 ‘광제암문(廣濟巖門)’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획이 고고(高古)하여 세상에서 최치원(崔致遠)의 수적이라고 전한다.……나무를 휘어 농기구를 만들고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 마을이 있어 감탄하니, 따라온 중이 일러주기를, 이런 외진 땅에 사는 것은 이정(里正)의 박해가 없고 과중한 부역의 고통을 받지 않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 하였다.……길은 없고 다만 천길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마치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 듯하고, 오가는 나무꾼이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아 길을 표시하여 두었는데 나무그늘이 하늘을 가리어 햇볕이 들지 않았다.
시내가 그치고 대숲을 헤쳐 나오니 이윽고 땅은 모두 돌인데, 칡덩굴을 더위잡고 굴면서 숨가쁘게 10여 리를 걸어서 한 높은 고개에 오르니, 철쭉꽃이 활짝 피어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우람한 봉우리 세존암(世尊巖)을 만나 마침 사다리가 있어 올라가 바라보니 천왕봉이 10리 정도 되어 보였다.
여기서 5리쯤 가서 법계사(法界寺)에 닿으니 중은 한 사람밖에 없고, 산꽃이 곱게 펴 저문 봄철을 수놓았다. ……저물녘에 봉우리의 절정에 오르니 바위 위에 한 칸의 판옥(板屋) 한 채가 겨우 서 있었다. 그 안에 여자의 석상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이란다. 지전(紙錢)이 어지러이 들보 위에 걸리었고, ‘김종직·유호인(兪好仁)·조위가 성화 임진(成化壬辰, 1472년)에 함께 오르다’고 쓰여 있었다. 예전에 구경 온 사람들의 성명을 훑어보니 당세의 호걸들이 많았다.”
위의 일부 인용한 글로써 당시 지리산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섬세하다. 또 알려진 한시로는 김부의(金富儀)의 「등지리산(登智異山)」, 김돈중(金敦中)의 「지리산차계부운(智異山次季父韻)」, 이색(李穡)의 「두류산」, 이첨(李詹)의 「두류산」, 양성지(梁誠之)의 「지리산」, 최익현(崔益鉉)의 「등두류산(登頭流山)」·「천왕봉(天王峯)」, 유방선(柳方善)의 「청학동(靑鶴洞)」 등이 있다.
현대작품으로는 이병주(李炳注)의 『지리산』, 문순태(文淳太)의 『달궁』과 『피아골』, 서정인(徐廷仁)의 『철쭉제』 등의 소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가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좌우 대립에 따른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이 현대사에서 차지하였던 첨예한 이념 대립의 공간적 현장성의 반영인 것으로 보여진다.
또 산을 둘러싸고 있는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의 작가들로부터도 시·소설·수필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이 서정성을 짙게 풍기는 것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직접 몸으로 그 뼈저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쓰라린 상처를 덮어두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혹은 묵중하고 푸근한 지리산의 웅자가 그 섬세한 정기로 모든 인간의 아픔을 감싸안은 것인지도 모른다.
< 1. 지리산 - 한신계곡 소개 >
위 치 :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소재
소 개 :지리산 북부의 깊고 넓은 한신계곡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의 험준하면서도 수려한 계곡미가 일품이다. 계곡미의 극치인 폭포를 수없이 빚어내며 백무동에서 세석까지 10Km의 여정을 자랑하는 한신계곡 은 영롱한 구슬이 그르듯 맑고 고운 물줄기가 사철 변함없이 이어지는 폭포수의 계곡이다. 한신계곡은 수많은 폭포수만큼이나 많은 명명 사연을 갖고 있다. 우리네 선조들이 나무 한그루, 돌 하나, 물줄기 하나에도 깊은 사연을 만들고, 그것을 즐겨 얘기 해왔듯 이 계곡 마찬 기지로 예외가 아니다. 하나는 「깊고 넓은 계곡」의 의미로 한신계곡이며 다른 하나는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낀다 해서 한신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계곡의 물이 차고 험난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심하다고 해
서 한심계곡이라 불렀으나 발음 이 변해서 한신계곡이 됐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옛날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했대서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사연이 있는데 지금도 비가 오는 날 이며 계곡에서 꽹과리소리가 들린 다는게 이 지방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신계곡의 본류는 세석으로 이어지지만 이 계곡 주위에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형성돼 있다. 하부 백무동 앞의 계곡을 백무동계곡으로 지칭 할때 백무동계곡은 크게 네 갈래의큰 계곡을 안고 있다.
백무동 위로 세석까지의 한신계곡과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 칠선봉부근에서 내려오 는 곧은재골, 장터목방향에서 흘러내리는 한신지계곡등 네 갈래가 그것이다. 여기서 한신계곡을 중심으로 한 내개의 계곡이 백무동계곡을 만들어 엄천으로 흘러 남강의 상류가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한신계곡은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으로 만들어져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 백무동으로 이어진다. 한신계곡과 한신지계곡은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통해 누구나 쉽게 등반할 수 있으나 바른재골, 곧은골은 아직도 범접하기 힘든 미지의 계곡으로 남아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한신계곡의 등반기점은 백무동이다. 백무동까지 차량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으며 여기서 야영장을 지나 넓다란 길을 따라 첫나들이 폭포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백무동 - 첫나들이 폭포까지 2Km구간은 계곡과 절벽을 사이에 두고 평탄한 오솔길이 있는데 울창 한 숲의 터널을 이뤄 계곡에서 울려오는 물줄기 소리와 어우러져 환상의 등산코스로 불린다. 여름철이면 싱그런 녹음과 시리도록 차갑고 맑은 물줄기로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늦가을이면 어지러이 나뒹구는 낙엽과 단풍물결로 만추의 서정을 빚어내 찾는이를 감동케 한다. 백설이 쌓이면 빙벽과 설벽을 만들어 모험을 즐기는 산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백무동에서 첫나들이폭포까지의 넓다란 오솔길은 가족등반을 가능하도록 해주고 있을 정도로 잘 닦여져 있는데 이 도로의 생성동기는 의외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1963년 9월 삼성흥업주식회사란 벌채업소가 서울 영림서로부터 마천면 강청리, 삼정리, 추성리 일대 국유림내의 고사목등에 한해서 벌목허가를 받았다. 그당시 목재 운반을 위해 산판도로를 만든 것이 이 오솔길인데 벌목허가가 그후 남선목재와 서남흥업 이라는 회사로 전매되면서 무차별 도벌 이 자행된 아픈과거사의 현장이다. 숲속 길을 한참 지나다보면 처음으로 등산로와 계곡이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이곳이 첫나들이폭포이다. 20여개의 물줄기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바람폭포"로도 불리고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다리아래로 쏟아지고 있는데 다리 위에서 보다 아래서 위로 보는 폭포수가 더욱 장관이다. 등산로만 따라가다 보면 놓치기 쉬운 폭포수로 바람처럼 물방울이 흩날리면서 물안개를 피어 올리기도 해 환상적이다. 철제다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가면 곧장 또 다른 철다리 3개를 더 만날 수 있는데 출렁이는 다리 위에서 발아래 계곡류를 구경하는 것도 일품이다.
첫나들이에서 1Km남짓한 거리를 두고 있는 가내소폭포 까지의 계곡미는 한신계곡의 진수로 평가되고 있다. 이름 없는 폭포수며 넓다란 반석들과 울창한 수림은 바로 선경이다. 가내소폭포 바로 아래 지점에서 물줄기는 두 갈래로 나뉘어 지는데 바로 한신계곡과 한신지계곡이다.
한신지계곡은 내림폭포를 따라 장터목으로 이어지며 한신계곡은 오층폭포 한신폭포를 따라 세석으로 연결된다.
가내소폭포는 15m높이의 폭포이며 50여평의 검푸른 소를 만들고 있어 우선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사철 수량이 변함없어 예부터 기우제 장소로 많이 이용돼왔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영험스런곳으로 전해진다.
기우제 방법도 특이해 부녀자들이 홀치마 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린다. 방망이 소리는 통곡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는 지리산신인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 그 눈물이 비 가되어 속세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또 한 가지는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가내소에 던지는데 이는 산신이 산이 더럽혀지면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기우제의 전설을 안고 있는 가네소는 요즘들어 연중 수많은 등반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러한 조건으로 백무동 - 가내소구간은 한신계곡의 서막이다.
한신계곡의 본격적인 산행은 가내소에서부터 세석가지의 4Km구간이다. 가내소 왼쪽 흙비탈길을 올라 조금만 가다보면 계곡을 건너게 되는데 계곡주변 숲길을 가면 5단계의 폭포가 길게 이어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오층폭포가 나온다. "오련폭포"라고도 한다. 오층폭포에서 산죽과 잡목터널을 따라 계곡을 건너고 등반로를 따라가다 보면 다소 벅찬 경사길이 나타나기를 몇 차례 한 뒤에야 한신계곡을 상징하는 한신폭포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폭포는 이정표에서 80여 m 우측 계곡으로 내려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다. 한신계곡은 수많은 폭포수를 빚어 놓은 채 마지막으로 1Km거리를 칼날 같은 바위길을 따라 세석으로 이어진다. 백무동을 출발해 원시림과 수려한 물줄기를 지나 철쭉의 향연장인 세석에서 마무리되는 한신계곡루트는 올여름 한번쯤 등반할만한 환상적 등산코스로 여겨진다.
(산녀님 블로그에서 옮김)
♣ 백무동
백무동 한신계곡은 지리산의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에서 만들어져 가네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 백무동으로 이어진다. 한신계곡은 험준한 지형상 원시림이 자랑이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 을 통해 세석에 이르는 곳은 강인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천왕봉으로 오르기위해 자주 이용하는 백무동 코스는 백무동 넓은 주차장에서 초입 가게를 지나서 한신계곡의 좌측길을 따라서 약 400m 정도 가다가 좌측 소로길로 올라서며 철다리를 건너며 하동바위 - 참샘코스를 지나서 장터목 산장에 이른다. 등반 거리는 비교적 짧지만 경사가 급하여 초보자는 힘들어하는 코스이다. 여름철이면 싱그러운 녹음과 시리도록 맑은 물줄기로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늦가을이면 낙엽과 단풍물결로 만추의 서정은 빚어내 찾는 이를 감동케 한다. 겨울, 눈이 쌓이면 빙벽과 설벽을 만들어 모험을 즐기는 산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한신주곡(백무동 - 가내소폭포 - 세석고원)
한신계곡은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오밀조밀 흘러내리며 일대 승경을 이룬 골짜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91년 초부터 93년 말까지 3년간 자연휴식년제로 묶어두기도 했다.지리산에서 이 한신골만큼 짧은 간격을 두고 폭포가 연이어지는 골짜기가 드물다. 동쪽 하동바위 능선 너머 칠선골에도 폭포가 적지 않지만 워낙 길고 깊은 골이어서 체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
1999년부터는 휴식년제로 묶여 있기도 하다. 반면 한신골은 길이가 칠선골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이고,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 주능선상에서 가장 사라이 많이 몰리는 세석으로 직접 이어진다. 그러므로 여름 지리산 등산로로서 인기가 높을 수 밖에 없다. 한신계곡을 엄밀히 구분지으면 백무동계곡의 상백무 마을 위쪽 골짜기를 말한다. 한신골이란 지명은 중국의 한신장군과 얽힌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골은 중간에서 한신주곡과 한신지곡으로 크게 갈라지는데, 세석고원으로 곧장 이어진 계곡이 한신주곡, 장터목으로 이어진 계곡이 한신지곡이다. 이중 장터목쪽의 한신지곡은 비지정 등산로로서 입구를 철조망으로 막아 두었으므로 이용할 수 가 없다. 이 계곡에서는 낙석사고도 여러 건 발생하였고 안전시설도 전혀 해두지 않았다. 상백무 마을의 하동바위길 갈림지점을 떠난지 1시간쯤 뒤면 첫나들이폭포에 다다른다. 폭포 바로 위에 철다리가 걸쳐져 있다.
이후 세석고원에 이르기까지 총 8개의 다리가 요소마다 가설돼 있다. 지프차라면 얼마든지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널찍한 길을 따라 30분쯤 더 걸어가면 한신주곡과 지곡이 갈라지는 지점에 이른다. 노란색 페인트칠을 한 화장실 건물 옆으로 하여 최근 철골구조물 위에 목제 발판을 부착한 사다리가 새로이 놓여 있다.한신주곡으로 들어서면 이내 가내소폭포가 나타난다.폭포라기에는 실망스러울만큼 규모가 작지만 그 아래의 소는 볼 만하다.
주곡으로 들어선 지 15분쯤 뒤 5층폭포에 다다른다. 등산로 안내판에서 왼쪽으로 20m쯤 내려가면 5층폭포 중간의 암반 위로 나설 수 있다. 여자가 주저앉았다가 일어난 듯한 모양의 선녀탕과 옥녀탕이 있는 멋진 5단폭포다.
한신폭이 길 오른쪽 70m 아래에 있음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면 길은 급경사로 변한다. 세석고원으로 올라서기 직전에 특히 경사가 심하다. 그러다가 문득 경사가 약해지면서 광대한 세석고원 풍경이 펼쳐진다.백무동 버스종점에서 세석산장까지는 10km에 걷는 시간만 4시간쯤 잡아야 한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약 5km에 걷는 시간만 최소 2시간. 그러므로 한신주곡 - 세석코스를 지나 장터목까지 가려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감안, 아침 8시 이전에 출발해야 한다.
(산이 좋아 그저 산이 좋아님 블로그에서 옮김)
한신지곡
<개요>
한신지곡은 왼쪽에 창암능선과 오른쪽 연하북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협곡이다. 본류인 제석봉 아래 제석천에서 서쪽으로 발원한 물과 연하봉 북사면 아래에서 발원한 큰 물줄기 두개가 만나서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날머리는 장터목 대피소 부근이므로 국립공원의 단속을 피하기가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혹여나 중간에 힘이 들어 탈출을 하려고 하면 협곡 경사면이 더 힘든 곳이므로 들어 갈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만 한다.
본류를 따라 내려오면 거대한 암반인 장군대를 만난다. 그곳에서 한신지곡을 내려다보면 협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계곡끝을 가로막고 있는 오공능선과 그 너머로 영원령이 있는 삼정산 능선도 조망 할수 있다.
지도엔 장군대 옆으로 <함양폭포>가 있으며. 그 아래로 350m(도상거리)쯤 내려가면 와폭에 가까운 <내림폭포>가 나온다. 너럭암반을 타고 내려오는 폭포수는 물놀이장의 워터슬라이드 처럼 보인다. 내림폭포에서 100m 남짓 내려오면 넓은 합수지점이 나온다 이곳이 연하봉의 물과 만나는 곳이다. 그곳에서 5~600m쯤 내려가면 한신지곡에서 낙차가 제일 큰 <천령폭포>를 만날 수 있다. 다른 폭포와는 달리 은은한 비취빛 청빙으로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얼음 안쪽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바깥쪽 얼음이 렌즈 역활을 해서 안쪽의 물색이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그 아래로 쭉 내려오면 계곡이 90도 가깝게 급하게 휘어진 곳을 만나는데 그곳에 <팔팔폭포>가 있다. 하류로 더 내려가면 낙차가 3m쯤 되는 <구선폭포>가 나온다. 이 폭포가 한신지곡에 들머리에서 보면 첫번째 폭포이기도 하다.
마지막 폭포를 뒤로하고 300m쯤 내려오면 한신계곡과 만난다.
합수부에서 한신계곡방향으로 1~20m쯤 올라가면 <가내소 폭포>도 있다.
이처럼 한신지곡은 빼어난 경관과 많은 폭포로 인해 끝임 없는 국립공원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연중 산객들을 유혹한다. 아름다운 한신계곡 일대는 2010년도에 우리나라 국가문화유산 명승 제72호로 지정되었다. 반달곰 보호와 자연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2001년 2월15일부터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협곡으로 들어서면 중간 탈출로도 없고, 알바 없이 간다해도 4시간은 족히 걸리므로 코스 선택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
청주종합운동장 06:00
오늘은 오래전 다녀온 함양 백무동에서 세석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한신계곡에서 좌측으로 분기한 한 계곡을 가려 한다. 일명 한신지곡이라 하는 곳으로 백무동에서 오르면 첫나들이 폭포를 지나서 오르면 가내소 폭포에 이르기 전 교량을 건너기 전 좌측으로 진입을 하는 비등구간이다. 계곡이 수려하나 요즘 극심한 가뭄으로 수량이 적을 것을 염려 하며 청주 산사랑 산악회를 모처럼 따라 가보기로 한다. 청주종합운동장에서 6시 출발하는 버스를 집에서 가까운 복대사거리에서 6시 10분경 승차를 한다.
백무동 주차장 08:52 ~08:58
이번 산행에는 백두대간을 같이 하던 두 분이서 함께 하게 됐다. 우연 찮이 버스에 타면서 만났다. 버스는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중부,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대전을 지나 통영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려서 금산인삼랜드휴게소를 지나고 다음번인 무주 덕유산휴게소에 멈춘다. 백두대간을 하던 친구와 커피한잔씩을 나누고 승차하여 차량은 덕유산 줄기인 육십령터널을 넘고 서상을 지나며 우측으로 높다란 괘관산등 산줄기를 지나 함양휴게소를 지나며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빠져 88고속도로를 달리면 인월 지리산 톨게이트가 나온다. 인월을 지나고 우측으로 높다란 덕두산이 보이며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며 우측으로 보이는 계곡에도 물이 바짝 말라 도랑물 흐르듯 한다. 여간해선 이렇듯 수량이 줄어드는 곳이 아닌데 이번 가뭄이 역시 대단한 가뭄임을 느낀다. 실상사 앞을 지나고 잠시 더 가면 함양 마천에 닿기 전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서 백무동으로 향한다. 백무동으로 오르며 깊숙한 계곡으로도 바닥에 간간히 흐르는 물에 이번 계곡산행이 걱정이 된다. 청주에서 출발하여 3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갈 무렵 버스는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가내소 앞 교량(2.193km, 약815m) 09:45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하여 장거리 오르라 참았던 배뇨현상을 해결하고는 곧장 산행이 시작된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바삐 오르기 시작한다. 차에서 오면서 산대장님의 설명이 있었지만 자연적으로 형성이 되는 선두그룹과 중간그룹 후미 그룹의 거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산대장님은 후미에서 전부를 통솔하고 선두그룹은 산행경험이 많고 이곳을 몇 번 다녀간 분으로 해서 뭉쳐진다. 백무동 상가지역을 지나고, 탐방안내소 까지 대략 0.6km거리다. 탐방안내소 여직원이 단체로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답하고 세석~장터목~소지봉으로 거쳐 온다고 세석 길로 들어선다. 널찍한 길로 서서히 오르는 숲길이다. 10여분이 지나서 백무동 0.7km, 세석대피소 5.8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우측으로 커다란 돌무더기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큰새골 입구다. 이후 15분을 더 오르면 좌측으로 너덜지대가 나오고 곧 이어서 첫나들이 폭포다. 바람폭포라도 불리는 폭포로 백무동에서 세석으로 오르는 분들이 처음 맞이하는 폭포다. 폭포에서 곧장 다리를 건너고 오르면 이제 계곡은 좌측으로 있으며 산길은 좀 더 가파르게 오른다. 10여분이 지나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는 교량을 지나고, 5분후 다시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는 출렁다리를 지나 오르면 2분이 지나서 계단을 올라 아치형 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 2~3분이면 가내소폭포로 가기 전 교량 앞에 닿는다.
천령폭포(4.59km, 1050m) 10:39
교량 앞에서 대원들은 멈칫함도 없이 좌측으로 빠져 든다. 계곡으로 내려서고 잠시 따라 올라가면 사방이 수직으로 된 바위 안쪽에 힘찬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가 보인다. 이름하여 구선폭포라고 한다. 가뭄으로 물줄기는 작지만 계곡으로 접어들어 첫 번째 보이는 폭포다. 폭포 쪽으로는 접근을 할 수 없다.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면 철 계단이 나온다. 오래전 이곳이 정규 등산로일 때 놓여진 철 계단일게다. 철 계단을 올라서 한참을 올라선 후 다시 좌측 계곡으로 내려선다. 암반지대를 따라 오르면 웅덩이가 제법 커다란 작은 폭포가 나온다. 이후 계곡을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사태지역이 있는 폭포가 나온다. 이 폭포가 팔팔폭포라고 한다. 이곳에서 물줄기는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흐른다. 팔팔폭포 상당으로 올라서 3분여 오르면 물줄기가 널찍하게 퍼져서 흐르는 나지막한 폭포가 나오고, 잠시 더 오르면 널찍한 암반 가운데를 타고 흐르는 소폭포를 지나서 암반을 따라 오른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하늘색이 너무 보기 좋다. 오늘 한때 소나기가 온다고 하니 비가 안 맞도록 열심히 올랐다 내려서야 하겠다. 암반을 따라 오르면 널찍한 소가 몇 군데가 나오고 작은 폭포가 이어지며 파란이끼가 낀 좁다란 게류를 따라 오르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를 지나 높다란 암반지대에서 서서히 암반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앞쪽으로 보이며 점점 암반을 따라 오르면 널찍하게 퍼져서 흐르는 폭포를 지나고, 소가 제법 커다란 두 줄기 물살이 흐르는 폭포를 지나 오르면 물줄기는 우측 편으로 좁다란 실 폭포를 형성하며 세차게 흘러내린다. 수량이 조금만 더 많았어도 보기가 참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실 폭포를 지나서 5분여를 더 오르면 앞쪽으로 이단으로 보이는 제법 커다란 폭포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 폭포가 천령폭포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먼저 간 친구와 함께 시원하게 폭포수 맞으며 목간도 하고 놀다간 곳이다.
장군바위(5.91km, 1360m) 11:34 ~11:50
천령폭포에서 우측으로 돌아서 오른다. 이후 골짜기를 따라 오르면 암반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바위들을 밟고 이러저리 건너며 오른다. 이렇게 하여 천령폭포에서 20여분을 앞쪽으로 널찍한 암반이 계곡을 꽉 채운 슬랩지대에 닿는다. 여러 갈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오르면 좌골과 우골이 갈리는 Y계곡에 닿는다. 오늘 오를 곳은 좌골이다. 좌측편 높다란 바위절벽이 있는 쪽으로 오르면 10여분이 지나 앞쪽으로 높다란 암반으로 흐르는 멋진 폭포가 나온다. 폭포로 오르기 전 우측으로 오래되어서 녹이 슨 내림폭포 이정표가 있다. 내림폭포는 수량이 많을 때는 정말 보기 좋은 폭포 인데 오늘은 바위슬랩을 오르는 기분으로 오른다. 좁다란 돌 틈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를 피해서 오르다. 미끄러운 바위에서 그냥 나가 떨어질 뻔도 했다. 역시 물이 흐르던 바위는 얕잡아 보다가는 큰일 나겠다. 간신히 미끄러지는 것을 멈추고 옆으로 돌아 올라서 계곡을 따라 오르면 20여분이 지나서 낙차가 제법 큰 마지막 폭포인 함양폭포에 닿는다. 폭포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으로는 이끼가 파랗게 자라있고, 벌레들이 윙윙거리며 날라 다닌다.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함양폭포에서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서면 5분이 지나서 널찍한 바위인 장군바위에 닿는다. 먼저 올라온 6~7명의 다른 팀들이 점심식사 중이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 후 출발을 한다. 장군바위에서 앞쪽으로 올라온 계곡 너머로 보이는 삼정산에서 실상사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동쪽 면이 아름답게 조망이 된다.
전망바위(6.80km, 약1637m) 12:33
장군바위에서 위쪽으로 오르면 장터목으로 가깝게 오르려면 계류를 한번 건너서 계속 따라 오르면 되지만 잘못하다가 눈에 띄면 좋을 것이 없으니 위쪽으로 오르다가 좌측 능선으로 붙어서 오르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계류 쪽으로 올라서 곰취 밭을 지나서 오르니 장터목 산장으로 곧장 닿았었다. 이번에는 아주 멀찌감치 오르려 좌측으로 오르니 길은 별로 좋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오를 많은 하다. 조릿대 길을 따르기도 하고, 가끔은 쓰러진 나무를 낮은 포복으로 빠져나가기도 하며 오르면 바위지대를 오르기도 하며 35분 정도를 진행하여 장터목에서 소지봉능선으로 이어지는 본 등산로에 닿는다. 앞쪽으로 반 토막으로 부러진 구상나무가 있는 곳으로 아주 안전하게 닿는다. 이곳에서 장터목 산장 쪽으로 오르면 150m를 지나서 커다란 바위가 있는 전망대에 닿는다. 제석단과 장터목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아래쪽에 위치한 곳이다. 여기 119구조목 지리 10-10지점으로 해발 1637m가 적혀 있다. 장터목을 거쳐 세석, 한신계곡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갔으면 좋겠는데 일행이 그냥 하산을 하자고 하여 잠시 휴식을 한 후 하산을 시작 한다.
참샘(9.26km, 약1152m) 13:27
전망바위에서 내려서기 시작한다. 장군바위에서 빠져나와 닿았던 구상나무가 반쯤 부러진 지점을 지나고 10여분을 좀 더 내려서면 여러 갈래진 신갈나무가 있는 곳으로 119구조목 10-09지점으로 해발 약1522m로 백무동 4.5km가 적혀 있다. 다시 4~5분을 내려서면 높다란 바위가 있는 망바위다. 좌측으로 추락위험이 있다고 줄을 쳐놓은 곳으로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곳이다. 여기 이정표에 천왕봉 3.2km, 백무동 4.3km가 적혀있다. 여기부터는 길이 조금은 좋아지면 흙길도 나오고 조릿대 길도 걸으며 내려서면 15분 정도를 지나서 백무동 3.6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10여분을 더 내려서면 널찍한 공터가 있는 쉼터인 소지봉에 닿는다. 119구조목 10-06지점으로 해발 1301m가 적혀 있는 곳이다. 이정표에 백무동 3.0km가 적혀 있다. 소지봉을 지나며 부터 내려서는 길이 돌계단 길로 가파르게 내려서기 시작한다. 지리산 길에 이곳저곳 돌계단길이 많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은 돌계단길이 이어져 간다. 무릅이 성할 때야 톡톡 튀며 잘 두 내려갔지만 이제는 무릅도 정상이 아닌지라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지루하고 그렇다. 이렇게 하여 15분 정도를 내려가면 참샘이 나온다. 천왕봉 4.9km, 백무동 2.6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공단직원 두 분이서 진드기 약을 차려놓고 뿌려주는 것 같은데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안 뿌려 준다. 이 넘 진드기가 올라가는 사람만 붙는가 보다.
백무동 주차장(12.05km) 14:22 ~17:44
참샘에서 내려서는 길도 돌계단길이 계속 이어진다. 올라오는 사람들도 힘겨운 듯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오른다. 가끔씩 굵직한 나무에 비닐테이프를 칭칭감아 놓았는데 처음에 왜 나무에 비닐테이프를 감아 놓았을까 궁금이 났으나 몇 개를 지나며 보니 파리등 해충들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서야 아하 소리가 나오며 해충 방제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참샘에서 15분 정도를 내려가면 여러 갈래진 굵직한 나무가 서있는 곳 아래쪽으로 예전에 건너던 구름다리가 있고 새로 개설한 테크 길이 보인다. 하동바위에서 떨어지는 낙석으로 인하여 구름다리는 폐쇄를 한 것이다. 테크 길을 건너면 하동바위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참샘 0.8km, 백무동 1.8km가 적혀 있다. 돌 계단 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15분 정도를 더 내려서면 구조목 10-02번 지점으로 백무동 1.0km 해발 701m가 적혀 있다. 이곳을 지나며 흙길도 나오고 좌측으로 계곡이 가까이 붙는다. 계곡에는 물이 바짝 말라 건천이나 마찬가지다. 굵직한 대나무 숲을 지나고 고사리 밭을 지나 내려오면 마지막 구조목 10-01지점이 나온다. 해발 603m다. 잠시후 마지막 교량을 건너고 조금 나오면 야영장이다. 야영장을 지나면 곧 탐방센타에서 한신계곡으로 오르던 큰 등산로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세석대피소 6.5km, 장터목 5.8km등이 적혀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오면 탐방지원센타를 지나고 상가지역을 지나서 10여분 후 백무동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땀을 씻을 곳을 찾으니 마땅치 않다. 공사 중인 아래쪽 주차장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는 곳이 있으나 줄을 쳐놓아 내려가지 못하게 하였다. 다시 돌아와 화장실에 들러 장애인 화장실에서 시원한물로 세수도 하고 발도 씻은 후 기다리는 시간이 매우 지루하다. 바람기도 없이 더운 날씨로 마땅히 있을 때도 없고 하여 기다리는 시간이 더 고역이다. 장터목을 거쳐 세석으로 돌아왔으면 시간이 대충 맞았을 것인대 그냥 내려온 것이 후회가 된다. 계곡에 물도 부족하고 생각같이 좋은 경치는 보지 못하였지만 오랜만에 걸어본 한신지곡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늘 함께한 산사랑 산악회원님 고생 많았습니다.
산행시간 : 5시간 23분 소요
산행거리 : 12.05km
'산행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14 한강기맥2 운두령~보래봉~청량봉~삼계봉~덕고산~운무산~먼드래재 2017.07.14.~15일 금~토 흐린후 비 (2) | 2023.01.28 |
---|---|
1013 한남정맥1-2 삼죽~국사봉~상봉~달기봉~구봉산~두창리고개~용인 법륜사 2017.07.06.목요일 맑은후 비 (0) | 2023.01.28 |
1011 한강기맥1 운두령~계방산~호령봉~비로봉~상왕봉~두로봉~상원사 2017.06.20~20, 화~수요일. 구름후 아침에 소나기 (0) | 2023.01.28 |
1010 우암산~자연휴양림~상당산~것대산~낙가산~용정산~양궁장 2017.06.18.일요일 맑음 (2) | 2023.01.28 |
1009 한남정맥 3정맥분기봉~칠장산~관해봉~도덕산~삼죽면 2017.06.15.목요일 맑음 (2) | 2023.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