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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1011 한강기맥1 운두령~계방산~호령봉~비로봉~상왕봉~두로봉~상원사 2017.06.20~20, 화~수요일. 구름후 아침에 소나기

한강기맥1 운두령~계방산~호령봉~비로봉~상왕봉~두로봉~상원사

계방산1577.4m, 뽀지게봉1359m, 호령봉1566m, 오대산 비로봉1563.4m, 상왕봉1493m,두로봉1422m

 

2017.06.20~20, ~수요일. 구름후 아침에 소나기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청주집 12:00 -도보 -청주시외버스터미널 12:25~12:35 -버스비 8900 -원주시외버스터미널 14:10 ~15:10 -버스비 5900 -진부시외버정류장 16:35 ~17:00 -버스비 2800 -운두령 17:23 ~18:32(저녁식사 및 휴식) -구조05-01지점 18:45 -구조15-02지점 18:51 -이정표(1.23km, 1120m) 18:54 -서서히 내려서서 안부(05-03지점, 1.44km, 1073m) 18:57 -오르막 -안전쉼터 19:00 -이정표(1.70km, 1130m) 19:04 -구조05-04지점(1.80km, 1187m) 19:10 -이정표(쉼터, 2.15km, 1236m) 19:16 -오르막 계단(구급함, 2.36km, 1279m) 19:22 -오르막 계단(구조05-06지점, 2.65km, 1388m) 19:33 -우꺽임봉(2.79km, 1410m) 19:39 -헬기장(3.14km, 1425m) 19:44 -전망대(3.27km, 1496m) 19:50 -헬기장(좌꺽임, 3.80km, 1515m) 20:02 -계방산(4.07km, 1577.4m) 20:08 ~20:14 -우 하산로 삼거리(주목, 4.58km) 20:28 -소계방산 삼거리(헬기장, 4.94km, 1548m) 20:39 -주목 20:53 -바위봉(5.69km, 1522m) 20:58 -안부 삼거리(우 하산로, 6.15km, 1490m) 21:10 -삼각점봉(6.41km, 1462.3m) 21:19 -주왕지맥 분기(6.65km, 1450m) 21:28 -급경사 내리막(지그재그길) -안부(7.41km) 21:49 -(7.53km, 1290m) 21:52 -(8.12km, 1224m) 22:04 -안부고개(사거리, 8.35km) 22:10 ~22:15 -우꺽임봉(썩은 나무둥치, 8.64km, 1208m) 22:35 -오르막 -우꺽임봉(9.31km, 1271m) 22:41 -뽀지게봉(헬기장, 좌꺽임, 간첩신고표지판, 9.96km, 1359m)23:00 ~23:05 -헬기장 23:09 -좌꺽임봉(우측 하산로, 10.66km, 1357m) 23:20 -서서히 내려서고 -아름드리 신갈나무 군락지 -안부(11.60km, 1255m) 23:35 -1309(12.22km) 23:52 -C-10지점(12.70km, 1308m) 00:02 -쓰러진 나무 조금 지나 -헬기장(좌꺽임, 13.23km, 1318m) 00:12 -쓰러진 나무 다수 -헬기장(갈림길, C-8지점, 14.04km, 1265m) 00:31 ~00:38 -1315.2(14.47km) 00:50 -삼각점봉(우꺽임, 14.84km, 1371m) 01:01 -곰취, 참취 다수 -1484(15.69km) 01:27 -길 나쁨 -헬기장(좌꺽임, 15.85km, 1537m) 01:37 -1분후 우측 하산로 -전망바위(15.92km, 1547m) 01:40 ~01:44 -바위 돌아가고 -바위 내려서고 -우측 동피골 하산로(16.46km) 02:03 -호령봉(16.88km, 1566m) 02:20 ~02:32 -헬기장(17.67km, 1532m) 02:52 -우측 서대사 하산로(17.71km) 02:55 -헬기장(18.27km, 1520m) 03:11 -삼각점(18.82km) 03:30 -우측 하산로(18.90km) 03:32 -목책 03:34 -오대산 비로봉 정상석(18.98km, 1563.4m) 03:35 ~03:45 -헬기장(19.47km, 1542m) 03:55 -헬기장(19.69km, 1537m) 03:59 -주목나무 04:05 -비오기 시작 -헬기장(20.88km, 1463m) 04:30 -상왕봉(21.21km, 1493m) 04:40 -1410 04:55 -북대사 삼거리(22.0km) 05:01 -헬기장(22.14km, 1410m) 05:07 -헬기장(22.40km, 1460m) 05:12 -두로령(23.06km, 1300m) 05:27~05:32 -헬기장(23.64km, 1320m) 05:45 -동대산 삼거리(24.65km) 06:07 -두로봉(24.75km, 1422m) 06:10 ~06:15 -헬기장(25.84km) 06:36 -두로령(26.38km) 06:44 ~07:08(아침식사) -북대사(27.92km) 07:29 -이정표 삼거리(상왕봉,비로봉, 28.26km) 07:34 -탐방지원센타 3.5km 전 이정표(29.33km) 07:48 -탐방지원센타 2.9km전 이정표(29.80km) 07:55 -쉼터(31.85km) 08:24 -탐방지원센타(32.90km) 08:35 -상원사(33.17km) 08:45 -탐방지원센타(33.51km) 08:50 ~09:20 -진부 버스정류장 10:00 ~10:30 -5900 -원주시외버스터미널 11:50 ~12:00 -8900 -청주시외버스터미널 13:46 -청주 집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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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기맥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분기하여 인간의 때가 거의 묻지 않은 자연상태의 큰 심산을 두루 거친 뒤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양평 양수리의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약 166Km의 산줄기다. 산경표상 1대간9정맥(1대간1정간13정맥)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웅장한 산세와 심산유곡의 모습은 정맥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당당한 산줄기다. 백두대간에서 비켜나있는 오대산 두로봉(1421.9m), 상왕봉(1491m), 비로봉(1563m), 효령봉(1561m), 뽀지게봉(1358.7m), 계방산(1577m), 보래봉 (1324.3m), 청량봉(1052m), 삼계봉(1070m), 덕고산(1125m), 운무산(980.3m), 수리봉(959.6m), 대학산(976m), 덕구산(652.2m), 응곡산(603.7m), 만대산(680m), 오음산(930.3m), 금물산(774m), 시루봉(504.1m), 갈기산(684.9m), 송이재봉(670m), 싸리봉(812m), 단월산(778m), 용문산(1157m), 소구니산(779.9m), 옥산(577.9m), 말머리봉(500m), 청계산(658.4m) 등이 있다.

 

대체로 서진하는 형태의 산줄기가 되며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를 이어가다 횡성을 지나면서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를 잠시 이룬다. 그리고 통골고개에서 강원도와 이별, 양평의 용문산 줄기를 달리다가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그 화려한 맥을 마감한다. 심산유곡의 험준한 준령을 간직한 탓에 날머리지점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기맥길이다.

 

한강기맥 시발점-백두대간상에 있는 오대산 두로봉에서 두갈래의 산줄기가 분기되는데 남쪽 동대산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이어지고 또 하나의 줄기는 서남진하여 오대산, 계방산, 덕고산, 운무산, 수리봉, 대학산, 덕구산, 응곡산, 만대산, 오음산, 금물산, 시루봉, 갈기산, 폭산(문례봉), 용문산, 유명산, 소구니산, 옥산, 청계산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합수부,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68km(실거리는 200km 넘는)의 산줄기를 말한다.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비로봉.계방산,구목령.용문산유명산을 지나서 양평의 두물머리(양수리)까지 이어져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산줄기다.

 

산세로보나 길이로 보나 여느 정맥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를 않는산줄기라서 혹자들은 한강정맥으로 불러야한다는 얘기가 나올정도로 옹골찬 산줄기다.도상거리 166.9km.

 

현재 오대산 비로봉에 계방산구간이 휴식년제로 묶여있고 오음산정상부는 군부대로 출입을 못한다.

 

운두령에서 회령봉,청량봉(춘천지맥분기점:청량봉응봉산백암산가리산춘성대교까지 127.4km),삼계봉(영월지맥 분기봉:삼계봉태기산치악산남대봉감악산삼태산태화산까지 134.5km).운무산을 넘어 먼드래재까지 도상거리38km가 문제인데 중간에 한번을 끊던 두번에 끊던 하산하는데 두시간정도가 든다.한번이 끊어 구목령에서 오르내린다면 봉고추럭으로 구목령까지 올리는것이 좋을듯하다. 이구간은 또 남한에서 몇군데 안되는 진드기 출몰지역인데 주의를 요한다.용문산구간은 철조망갖으로 우회할수있다.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까지의 약 162.6km의 산줄기로 한강기맥은 공식명칭이 아니라 조석필 저(도서출판 '사람과 산' 간행) '태백산맥은 없다.

 

이 땅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다'에서 산경표상 표기가 없는 몇몇 산줄기를 기맥으로 부르자고 제안하였는데 그 중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는 이 산줄기를 '한강기맥'이라 칭하여 불리어지게 되었다.

 

혹자는 대표산인 계방산이 지난다 하여 계방지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계방산 동쪽 1462.3봉에서 남쪽(, 영월방향)으로 진행하여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곳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계방지맥(가칭)'이라 칭하고 있어, 한강기맥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산경표상 1대간 1정간 9정맥에는 속하지 않는 산줄기이지만 백두대간에서 분기하여 비교적 큰 산들을 두루 거친 후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라 정맥에 전혀 뒤지지 않는 산줄기이다

 

 

오대산(五臺山)

오대산(五臺山)은 주봉인 비로봉(毘盧峰, 해발 1,563m))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상왕봉(象王峰, 해발 1,491m), 두로봉(頭老峰, 해발 1,422m), 우측으로 호령봉(虎嶺峰, 해발 1,561m), 앞쪽에 동대산(東臺山, 해발 1,433m)  5개의 봉우리가 있다. 백두대간과 한강기맥상의 여러 봉우리 사이사이로 중대(中臺 : 지공대), 동대(東臺 : 만월대), 서대(西臺 : 장령대), 남대(南臺 : 기린대), 북대(北臺 : 상삼대)  5개의 평평한 대지로 둘러싸여 있어 오대산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오대산은 일찌기 일연 스님께서 우리나라 명산 중에서 불법(佛法)이 가장 번창할 곳이라고 칭송한 곳인데, 오대산의 다섯대에는 각각 암자를 하나씩 갖고 있다. 중대의 사자암을 중심으로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이 각각 위치해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부처 정골사리를 중대 적멸보궁에 모시고, 이를 중심으로 동···북대에 오류성중이 상주하면서 설법했던 곳이라 해서 오대산이라 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기거했던 작은 띳집이 후에 월정사가 되었다 한다.

 

오대산 중대 사자암에 적멸보궁이 위치해 있는데, 영축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작멸보궁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물체로 이우어진 불상이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고개(해발960m)

위치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병내리 101-18

진고개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연곡면을 잇는 고개이며, 6번과 59번 국도가 지난다. 진고개(泥峴)는 비만 오면 땅이 질어지는 이 고개의 특성이 지명이 되었다. 또 고개가 길어서 긴 고개라 하다가 방언의 구개음화(ㄱ→ㅈ)로 진고개가 되었다.

 

 

평창(平昌)의 유래

평창군의 총 면적이 1,464.16로 강원도 총면적 16,874.60 8.7%에 해당하며, 전국 군 중 홍천과 인제 다음인 3번째로 면적이 넓다

삼국시대에는 우오현(于烏縣)이었으며, 고구려의 행정구역의 행정구역이되면서 욱오현(郁烏縣)으로 되었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백호현(白烏縣)으로명칭이 바뀌어 주천현( 영월군)과 자천현( 단양군)과 함께 내성현으로편입되었으며, 고려 태조23(940)에 평창현으로 개칭하여 원추의 속현이 되었다.

그 후 조선 태조 1(1392)에 목조(穆祖: 태조의 고모부)의 비 효공왕후가평창이 내향(內鄕)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오대산 국립공원

오대산국립공원은 오대산을 중심으로 하여 강원도 평창군·홍천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으로 면적 298.5이다. 오대산에는 동쪽에 만월대(滿月臺) 서쪽에 장령대(長嶺臺) 남쪽에 기린대(麒麟臺) 북쪽에 상삼대(象三臺) 중앙에 지공대(知工臺)가 있어 이들 5개의 대를 꼽아 오대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중대, 동대, 서대, 남대, 북대의 5(五臺)에 각기 석가, 관음, 미타, 지장, 문수의 부처가 상주하며 설법하는 성지이므로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비로봉(毘盧峰, 해발1,563m)을 주봉으로 하여 남서쪽으로 소대산(小臺山, 해발1,270m), 호령봉(虎嶺峰, 해발1,560m), 소계방산(해발1,490m)으로 뻗어내리고, 동쪽으로 상왕봉(上王峰, 해발1,493m), 두로봉(頭老峰, 해발1,422m), 동대산(東臺山, 해발1,434m), 노인봉(老人峰, 해발1,338m)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 모두 고도 높이가 1,000m 넘는 준령으로 이름난 명산이다. 이 산들이 마치 분지를 에워싼 것 같은 지형을 이루고, 그 사이의 분지를 북한강(北漢江)의 지류인 오대천이 비교적 깊은 협곡을 이루면서 남류한다. 다만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의 안부(鞍部)인 진고개는 오대천의 한 지류와 연곡천(連谷川)과의 분수령이 된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은 신라시대 지장율사가 지은 이름으로 전해진다.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오대산이다. 지장율사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에 자리한 이 산을 보고 오대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오대(五臺)는 비로봉(毘盧峰, 해발1563m), 호령봉(虎嶺峰, 해발1560m), 상왕봉(象王峰, 해발1493m), 두로봉(頭爐峰, 해발1421m), 동대산(東臺山, 해발1433m) 등 다섯 봉우리를 말하는 것이다. 오대산은 1975년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동대산(1,432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산.높이 1,434m. 북쪽의 두로봉 북서쪽의 비로봉·상왕봉 서쪽의 서대산 ·호령봉, 동쪽의 노인봉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줄기를 이루는 오대산맥 안에 솟아 있다. 이 산은 동사면을 흐르는 연곡천과 서사면을 흐르는 평창강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계곡과 짙은 수림에 유서 깊은 월정사를 비롯하여 상원사 ·관음암 등이 있으며, 1975 2월에 지정된 오대산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된 데 힘입어 관광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또 최근 관광 ·등산객이 늘어나면서 오대산과 노인봉을 잇는 등산로가 있다.최고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봉의 5개 대를 합쳐 오대산이라 부른다.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서 다섯 개의 연봉이 주축을 이루면서 마치 연꽃처럼 피어올라 있으며, 이들 연봉의 사이사이에도 노인봉, 계방산, 복용산 등 그만그만한 준봉들이 숱하게 솟아있고 오대산 일대의 주요 산마루는 거의 대부분이 평정봉으로 그 풍치는 마치 우아한 여성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태백산맥의 중추를 이루며 산세가 만만치 않아 주요 코스 이외에는 아직도 개발이 안된 부분이 많은 산이다. 월정사 일대의 전나무들과 단풍이 유명하고 상원사 적멸보궁 등의 명소가 많아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75. 2. 1  11번째 국립 공원으로 지정됨 태백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충청북도와 남도를 거쳐 태안 반도에 이르는 차령산맥의 분기점이 되는 오대산은 한강 발원지의 하나인 오대천 상류를 둘러싸고 수려한 계곡을 조성하고 있다. 연꽃 같은 산세의 화심의 명당에는 적멸보궁이 있고, 동대산록에는 고찰 월정사가 있으며,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는 완만한 길을 지그재그로 오르게 된다.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는 도상거리가 21.2이고 1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므로 하루에 등산하기는 벅찬편이다. 2개구간으로 나누어 등산하는 것이 현명하지만 하루에 산행하려면 새벽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전에 충분한 준비와 음료수, 간식 등을 갖추어야 한다.평창군 진부면에서 6번 국도를 따라 오르면 진고개 정상에 이른다. 비만 오면 길이 질다는 진고개의 오른쪽으로는 진고개 휴게소가 있고, 휴게소에서 서쪽으로 마주 보이는 산이 동대산이다.상원사에선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진고개에선 서쪽에 자리하게 된다. 오대산의 오대 가운데 동대에 속하는 산이 동대산이다. 동대산 정상으로 가기 전 왼쪽으로는 구곡동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동대산 주위는 철쭉, 참나무 등 활엽수림대에서 풍겨 나오는 향긋한 냄새와 고산지대에서 볼수있는 야생화들이 풍부하다. 동대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새벽 풍경은 가히 선경이라 할 수 있다. 운해가 산중턱에 걸쳐져 마치 신선이 구름을 타고 있는 것과 같고, 자욱한 안개를 뚫고 솟아오른 산들은 그야말로 별천지 풍경이다. 동대산에서 두로봉까지는 2시간30분정도 걸리며 대체로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두로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구간에선 시간이 좀 걸린다. 동대산에서 조금 벗어나면 단풍나무와 참나무, 자작나무 등 활엽수가 뒤엉켜 자라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여기저기에 곤드레,곰추 등 산나물들이 눈에 띈다. 능선 왼쪽으로는 계곡사이로 상원사와 북대사가 보인다. 아기자기한 자연을 감상하며 걸으면 산행의 피곤이 훨씬 덜하다. 차돌바위(규암석)에 이르면 신록이 우거진 틈 사이로 흰색의 바위가 광택을 내며 빛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단연 색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다.이곳을 통과하여 봉우리를 지나면 두로봉 바로 밑에 도착하게 된다. 두로봉 밑은 넓은 구릉이 형성되어 참나무 고목의 활엽수림 밑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서로의 자태를 자랑하며 피어나는 생기 있는 야생화의 모습은 산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 잡는다. 참나무와 여러 활엽수에 덮여 산은 온통 원시림을 형성하고 있다.두로봉은 연곡면 삼산 3리와 홍천군 내면 명개리,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사이에 있는 산이다. 이산은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에서 북동쪽으로 떨어진 상왕봉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두로봉에서 내려오면 주위는 온통 주목밭이다. 고령의 주목들이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 등산객들의 산행을막는다. 이 지역은 주목 보호지역이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구간을 통과하면 흰 살색을 뽐내면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자작나무 집단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신배령까지는 완만한 내리막길이고 구릉지가 많아 야생화들이 무리 지어 자라는 초록의 낙원이 이어진다. 단풍나무, 참나무 숲 밑으로는 산나물과 얼레지, 연령초등 수 많은 식물들이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자라고 있어 야생화 박물관과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되어 걸으면 저절로 신배령에 도착하게 된다.만월봉에는 산목련나무와 마가목이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다. 1,210.1m의 산은 강릉시, 양양군, 홍천군이 함께하는 경계지점이다. 만월봉에는 산목련과 마가목이 집단으로 자생하고 있으며 간간이 장대한 주목나무가 보인다. 만월봉 주변에는 산나물들이 많이 자란다

 

한강기맥 분기봉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분기(分岐)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서쪽으로 뻗어내려 두 강이 만나는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한다. 산줄기의 길이만 해도 167km로 금남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보다 더 길고마루금상에 품고 있는 산의 높이 또한 남한 다섯 번째인 계방산을 위시하여 1,000m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다.

 

두로령(頭老嶺 :1,300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상원사)와 홍천군 내면 명계리을 연결하는 고개이며 비포장 446번 지방도이 지나고 있다. 두로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고개라 두로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이정표와 함께 백두대간 두로령 이라는 표지석과 오대산 국립공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강기맥 마루금은 446번 지방도에서 좌측방향으로 20m 진행후 우측편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곳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오대산 비로봉(毘盧峰, 해발 1563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 경계에 있는 산이며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기나긴 산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로봉(해발1563m), 동대산(해발1433.5m), 두로봉(해발1421.9m), 상왕봉(해발1491m), 효령봉(해발1531m) 등 다섯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동쪽으로 따로 떨어져 나온 노인봉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 자리잡고 있다.

 

오대산이란 명칭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과 산의형세가 흡사하다 하여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소금강은 노인봉을 시작으로 동쪽으로 펼쳐진 기암들의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비슷하여 붙혀진이름이다. 오대산은 내륙성기후 특성을 보이는 월정사지역과 동해와 인접한 해안기후 특징을 보이는 소금강구역으로 구분되며 197521일 우리나라 1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연간 약 백만명 이상의 탐방객들이 찾는다.

 

 

오대산 비로봉(毘盧峰, 해발 1563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 경계에 있는 산이며, 태백산맥에 속에 솟아 있는 산줄기다. 오대산에는 비로봉, 동대산,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등 5개의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 사이사이에 중대, 동대, 서대, 남대,북대가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 화강편마암이며, 오랜 풍화, 침식 작용으로 곳곳이 평탄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산림지대로 동식물의 종류도 다양하고 풍부하다. 우아한 산세, 뛰어난 계곡미, 울창한 수림, 많은 유물·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어 평창군, 홍천군, 강릉시일대가 1975년 국립공원(총면적 298.5)으로 지정되었다.

오대산의 상원사는 6·25전쟁 때 오대산에서 불타지 않은 유일한 절이며 경내에는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보물 제140) 등이 있다. 주변일대는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오대산 비로봉(毘盧峰, 해발 1563m)

태백산맥 줄기의 중심부에서 차령산맥 줄기가 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지점의 첫머리에 우뚝 솟아 있다.

 

주봉인 비로봉 외에 호령봉(해발1531), 상왕봉(해발1491), 두로봉(해발1422), 동대산(해발1434) 등 고봉들이 즐비하게 많다. 다섯 봉우리 및 그 일대의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 오대산지구와 노인봉(해발1338) 일대의 강릉 소금강지구로 누어지고, 전형적인 흙산이며 토양이 비옥해 산림자원이 풍부하고 겨울철에는 강설량이 많다은 곳이다. 특히 월정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빽빽한 젓나무 숲과 중턱의 사스레나무, 정상 부근의 눈측백나무와 주목 군락, 호령계곡의 난티나무 군락이 장관이다. 동물은 멧돼지, 사향노루, 오소리, 너구리, 산양, 청딱따구리, 수리부엉이, 산천어, 금강모치 등 26종의 포유류와 85종의 조류, 1,124종의 곤충, 21종의 양서류, 파충류, 20종의 담수어류 등이 서식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 북대사(미륵암), 중대사(사자암), 서대사(수정암) 등의 유서깊은 사찰과 오대산사고지(사적 37)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상원사동종(국보 36),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 48), 월정사석조보살좌상(보물 139) 등이 있다. 1975 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연간 80만 명 정도의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는다.

 

오대산(五臺山)의 주봉인 비로봉에서

강원 평창군과 홍천·강릉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는 오대산. 예부터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 명산으로 손꼽힌 오대산은 1875 21일 국내에서 1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을 비롯해 적멸보궁, 상원사 동종 등 다양한 불교 유적이 많아 불교성지로도 유명하다. 전체 면적이 303.929에 이르고 최고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해발 1563.

 

오대산이란 명칭은 연꽃 모양으로 둘러선 5개의 봉우리가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는 데서 유래되어다고 하며 주봉인 비로봉(毘盧峰;1564m)을 중심으로 동대산(東臺山 : 1,434m) 호령봉(虎嶺峰 : 1,042m)·상왕봉(象王峰 : 1,493m)· 두로봉(頭老峰 : 1,422m)  5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오대산(五臺山)이라 부른다.동대산(東臺山, 해발 1,434m),호령봉(虎嶺峰, 해발 1,042m)·상왕봉(象王峰, 해발 1,493m)·두로봉(頭老峰, 해발 1,422m)  5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오대산(五臺山)이라 부른다.봉우리 사이사이로는 중대(中臺 : 지공대 동대(東臺 : 만월대 서대(西臺 : 장령대) ·남대(南臺 : 기린대) 북대(北臺 : 상삼대)  5개의 평평한 대지로 둘러싸여 있어 오대산이라고 했다. 또한 중대·동대·서대·남대·북대는 각각 문수보살·관음보살·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지장보살·아라한(阿羅漢) 등이 상주하면서 설법하던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대산의 동대·서대·남대·북대·중대에 각각 관음암·수정암·지장암·미륵암·사자암 등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은 월정사(月精寺)의 부속암자이다. 자장율사가 오대산 자락에 전망좋은 평평한 大地의 가운데에 중대(中臺)를 놓고 동...북 방위에 따라 동대.서대.남대.북대를 정해 각각에 암자를 지었는데 이렇게 지어진 다섯 암자가 동대의 관음암,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그리고 중대에 사자암이 있다. 각각의 암자는 모시는 불상도 다르고 읽는 경전도 다르다. 동대는 관세음보살, 서대는 아미타불, 남대는 지장보살, 북대는 석가모니불, 중대는 문수보살을 주불로 모신다.

 

 

비로봉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오대산유래 안내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 경계에 있는 산이며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기나긴 산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비로봉(해발1563m), 동대산(해발1433.5m), 두로봉(해발1421.9m), 상왕봉(해발1491m), 효령봉(해발1531m) 등 다섯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동쪽으로 따로 떨어져 나온 노인봉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자리잡고 있다.

 

오대산이란 명칭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과 산의형세가 흡사하다 하여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소금강은 노인봉을 시작으로 동쪽으로 펼쳐진 기암들의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비슷하여 붙혀진이름이다. 오대산은 내륙성기후 특성을 보이는 월정사지역과 동해와 인접한 해안기후 특징을 보이는 소금강구역으로 구분되며 197521일 우리나라 1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연간 약 백만명 이상의 탐방객들이 찾는다.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동대산,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과 오대산을 구성하는 다섯개의 봉우리 중 주봉(主峰)으로 원래는 풍로산 또는 지로산으로 불리웠는데 이곳 오대산은 불법(佛法)이 가득한 불교신앙이 녹아들어 비로나자불을 나타내는 비로봉이라 불렀다.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살면서 그의 몸은 법계(法界)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내비추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이다. 그러니 비로봉은 부처의 산이다. 오대산은 부처를 중심에 모신 불교신앙의 성지이다. 오대산 외에도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들이 우리나라의 산에는 많다. 금강산 비로봉(1638m), 치악산 비로봉(1288m), 속리산 비로봉(1057m)과 소백산 비로봉(1439.5m)이다.

 

비로봉의 이름이 된 비로나자()은 산 크리스트어 Variocana 태양이라는 뜻이다 산크리스트어 Variocana 를 발음을 따라 한자어로 음역한 것을 우리 식으로 읽어서 비로나자(毘盧遮那佛)가 된 것 으로서 절대 불신佛神, 부처님의 original 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모양이 변함없는 진리이자 최고를 의미하며 가장 높다는 의미라고 한다.

 

오대산은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별칭으로, 신라시대 지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곳이다.

 

그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의 한가운데 있는 오대산을 보고 너무 흡사하여 오대산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이곳 오대산을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상주하는 곳이라 지목하여 개산(開山)한 이후 불교계에서는 성산(聖山)으로 받들고 있다. 이 산은 신라시대에서 부터 오대산으로 불리웠고 삼국유사에서는 국내의 명산중에 이곳이 지세가 가장 승하니 불법(佛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 하면서 각 대()에서는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한다고 씌여있다.

 

오대산은 봉우리()마다 유서깊은 암자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중대에는 규모가 가장 큰 사자암이 있고 동대에는 관음암, 서대에는 우리나라 유일한 굴피집 암자인 염불암(예전에 수정암), 남대에는 오대산속에 유일한 비구니 사찰인 지장암이 그리고 북대에는 미륵암(북대사)이 있다

 

오대산의 최고봉 비로봉이 비록 백두대간 마루금으로부터 6Km나 서편으로 벗어나 있지만 워낙 산세가 장중하기 때문에 선조들은 황병산, 덕유산, 민주지산 등과 마찬가지로 오대산도 '백두대간의 산'으로 치부해 왔다. 오대산은 한반도의 중심부 심장을 향해 서쪽으로 힘차게 벋은 양수기맥(兩水岐脈: 또는 한강기맥)과 정남으로 내리 뻗어 충주호 북안을 꾸미는 치악기맥(雉岳岐脈)의 산뿌리가 된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비로봉, 효령봉을 거쳐 계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서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면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른다. 이 산줄기에는 계방산(1577m: 남한제5), 운두령(1089m),태기산(1261m), 운무산(980m), 오음산(930m), 중원산(799m), 용문산(1157m), 유명산(864m), 청계산(658m)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까지 먼 거리를 힘차게 달린다. 그러나 선조들은 산경표에 정맥(正脈)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내륙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신라 시대의 건축물이다. 신라 시대인 647년경(진덕왕 재위 기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하나

 

[적멸보궁의 유래]

석가모니가 설법을 펼친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을 뜻하는 전각으로 석가모니 사후에 와서는 그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 , 암자 등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보통 절과 보궁을 헷갈려 통도사 절 자체를 적멸보궁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틀린말은 아니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절 자체가 적멸보궁이 아니라, 절에서도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장소를 일컬어 보궁이라 한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진신사리라고 하며, 이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에서는 석가모니, 즉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여 다른 부처님을 상징할 수 있는 불상이나 조각을 절에 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절의 시설은 전(殿)이나 각()으로 나타내지만, (대웅전, 삼신각) 진신 사리를 봉안한 절은 보궁이라 하여 궁()으로 높여 부른다. 적멸보궁은 여러 불교 문화재 중에서도 그 가치가 두드러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적멸보궁 중 가장 유명한 5개의 보궁을 꼽아 5대 적멸 보궁이라 하는데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中臺)상원사에 있는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 (영월군)(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등이다.

 

[5대 적멸보궁과 관련된 설화와 그 역사]

각각의 보궁과 관련된 전설은 모두 자장율사가 승려로 현신한 문수보살로부터 가사, 진신사리 100여과, 경전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해동에 불법을 밝히라는 보살의 말을 들은 후 율사는 친히 신라로 건너와 절을 창건하고 불법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각각의 적멸보궁마다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비록 용과 봉황 등 전설의 동물들이 나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의 상징과 유래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설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등이다

 

1. 양산 통도사(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신라로 건너온 자장율사가 가장 먼저 세우게 된 절이 통도사이다. 통도사의 건립과 관련된 전설은 절 내부에 있는 연못인 구룡지로부터 비롯된다. 예로부터 명당 자리였던 영취산 인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궁궐이나 탑을 세우려 했으나, 아홉 마리의 용들이 방해를 하는 바람에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후 절을 세울 터를 찾다가, 그가 직접 날린 나무오리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칡꽃을 물어오는 것을 보고, 겨울인데도 생생한 기운이 살아 있는 명당임을 알아본다. 처음에 율사는 구룡지에서 용들을 설득하여 나가게 하려하지만, 용들이 말을 듣지 않자, ()자를 종이에 쓰고 연못에 넣은 후 진언을 외워 물을 끓게 한 후 용들을 좇아낸다. 그 중 3마리는 하늘로 올라가려하다 죽고 5마리는 골짜기로 숨는데 이 5마리 용들이 숨은 곳을 오룡곡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먼 용 한마리가 도망가지 못해 자장율사에게 살려달라고 빌자, 이를 불쌍히 여겨 연못을 지키도록 하니 이것이 구룡지의 유래이며, 통도사 내부에 있는 구룡지는 용이 지키기 때문에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고 홍수가 나도 물이 불지 않는다고 한다. 이 이후 통도사는 남부의 대표적인 불교 중심지로써의 역할을 하게 되며, , , , 중 불()을 상징하는 불교의 3대 상징 성지 중 하나가 된다. (: 합천 해인사, : 송광사)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략으로 인해 절 외부의 전각이 손상되는 등 큰 피해를 입지만, 사명대사가 통도사에 있던 진신사리 중의 일부를 정암사로 옮겨놓으면서, 진신사리의 훼손은 막을 수 있게 된다.

 

2. 오대산 중대 상원사(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자장율사가 오대산을 개산한 이후로, 오대산에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하여 불교 성지로 추앙받았으나, 이 사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아, 신비로운 전설처럼 전해진다. 상원사는 이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호령 역할을 맡는 절이며, 이 상원사의 건립과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자면, 상원사는 선덕왕의 두 왕자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진여원이라 불렀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 그 이름을 빛내면 서 마침내 오류성중,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 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절을 짓고 난 후 두 왕자는 그 곳에서 수행을 했는데, 신문왕이 죽은 후 후계 문제로 다툼이 끊이질 않자, 오대산의 두 왕자를 찾아왔고 그 중 하나가 왕이 된 후 진여원을 상원사로 개명했다. 고려시대에 들어 상원사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국교가 불교이니만큼 불교 성지에 대한 중흥이 일어날 법도 한데,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삼국 시대를 전후로 소실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려 후기 이색의 오대상원사승당기라고하는 기행문에서 나옹스님의 제자로 알려진 영로암 스님이 재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상원사는 적어도 고려 말 이후의 것이다. 그 이후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인해 상원사는 자칫하면 소외된 절이 될 뻔 했으나. 세조와의 인연으로 다행히 그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현재 상원사는 월정사에 포함된 절이다.

 

3. 사자산 법흥사(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는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흥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흥녕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적멸보궁 중 가장 오래 머물던 곳으로 직접 율사가 수행하던 토굴이 그 뒤에 있다. 율사가 절을 세운 후에 신라의 선승들이 모여 사자산에 신라 말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연다. 이 사자산문은 특히 흥녕선원으로 불리며, 한국불교사의 명맥을 이어가는 선원 중의 하나로 자리잡으며, 불법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흥녕사는 고려 의종(1163)년에 중창하였으며,조선 영조,정조,헌종 때까지 적멸보궁, 선문의 역할을 다해왔다.하지만 워낙 오랜 역사를 견뎌왔기에 절의 형태는 폐사지에 가까웠다. 1902년에 대원각사에 의해 법흥사로 개칭되고 재건되었다.

 

4. 태백산 정암사(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方袍)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절 입구에는 일주문(一柱門)이 세워져 있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근년에 완공된 선불장(選佛場)이 있다.

 

오른쪽에는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중간 도량가에 종루가 있고, 선불장 옆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자장각(慈藏閣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이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점은 고목이 옛날 그대로 손상된 곳이 없다는 것인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5. 설악산 봉정암(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길지를 찾던 도중, 봉황이 한 마리 나타나서 율사의 눈을 끌었다. 날아가는 봉황을 자장율사는 계속해서 따라갔고, 그러던 중 부처님을 닮은 바위를 찾게 되었다. 봉황은 부처님을 닮은 바위의 이마부분으로 사라졌고, 율사는 곧 그 주위가 수려한 산들로 둘러싸인 길지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마를 닮은 부분에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하고 암자를 세우니, 이 것이 봉정암의 유래다. 봉정암은 말 그대로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특히 봉 정암은 암자나 고승들의 수행처로 이름 높은 곳이다. 자장율사가 봉정암을 세운 이래로, 원효, 보조 등의 국사가 수행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공부를 위해 봉정암을 찾았다. 워낙 산세가 험하기 때문에 봉정암이 현재의 모습처럼 절의 모양을 갖추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중건에 앞장 선 후 고려 명종에 이르러 지눌국사가 다시 재건하였으며, 6.25이전까지 여러 스님들과 불교 신도들이 7차례에 걸쳐 절을 세우는 것을 돕기 위해 모금 활동을 했다.

 

적멸보궁의 건축적. 미술적 상징과 가치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 그 자체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기에, 불상이나 탱화 등 그 어떠한 부처를 상징하는 다른 대상은 없다. 대신에절의 대들보를 구성하는 공포나 벽면의 벽화, 또는 탑 등에서 다른 전각들과는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특히 다른 절들의 건축 형식, 미술 형식보다 더욱 큰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숨은 상징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불교의 가치[7]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불뇌보탑 - 봉정암(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봉정암의 불뇌보탑은 석가모니불, 즉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지는 탑이다. 이 탑에는 다른 불탑과는 달리 별다른 장식이 없다. 5층 중 가장 밑에 연꽃 모양의 문양이 희미하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탑의 벽면에 다른 문양이 있고 풍화된 것으로 짐작했으나 어떠한 문양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조각된 문양은 밑 부분의 연꽃이 유일한 것이 밝혀졌다. 불뇌보탑은 특이하게 탑의 기단부를 찾을 수 없다. 탑의 기단부는 원래 탑의 맨 밑층과 지반을 구분하기 위해서 만드는 석조물인데, 불뇌보탑은 상징적으로 중요한 탑임에도 불구하고 기단부가 없다. 이에 대한 해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유력한 것은, 설악산의 장엄한 암석들이 탑의 기단부 역할 즉, 탑을 떠받들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라는 설이다. 기단부를 따로 만들지 않고, 부처의 진신사리에 대한 존경까지를 함께 나타내는 것이다.

 

[불교성지로써의 가치]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건립한 이래로 종교적 성지로써의 역할을 해왔다. 큰 불교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행사가 행해졌으며, 주요 선승들과 고승들이 공부를 위해 선택한 장소도 적멸보궁이었기에 자연스레 불법의 전승 장소라는 명맥도 이어갔다.이러한 불교 성지로서의 가치가 극에 달한 것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크게 진흥시킨 고려에 이르러서이다. 물론 고려시대에는 적멸보궁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일반 민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대중적인 절들이 세워졌지만, 그럴수록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성지로써의 적멸보궁이 가지고 있는 유일함과 특별함은 더욱 빛을 발했다.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적인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많은 불교 신도들이 탄압받았고, 적멸보궁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결국 [[임진왜란[[ , 구국의 기치를 들고, 승병과 의병을 일으킨 중심지가 되었던 것도 적멸보궁의 힘이 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명대사는 전국의 명산, 명승지, 특히 적멸보궁을 중심적으로 돌아다니며, 승려들의 참여를 촉구하였고, 결국 이러한 노력은 적멸보궁의 선승들이 구국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그 중 임진왜란 당시 통도사의 설화를 하나 살펴보면, 사리를 훔치려던 왜군들이 처음에 함을 열어보니 두꺼비가 사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에 놀라 함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니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사리를 지키고있어 사리를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이 두꺼비와 구렁이는 별다른 특별한 전설이나 설화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적멸보궁을 비롯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의 마음이 비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승병들의 궐기로 인해 많은 일반 백성 또한 의병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의병 활동이 확산되기도 하였다.이렇듯, 적멸보궁은 그 명맥을 이어오며, 국난 때에는 민족적 운동의 중심지로써의 역할까지 수행하였다.하지만 대부분의 적멸보궁이 6.25 때 크게 훼손되었는데, 이는 적멸보궁 대부분이 깊은 산 속에 있어, 그대로 놔두면 적군의 결집 장소가 된다고 판단, 없애는 것이 군사작전상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다행히도 6.25가 끝난 후에 재건과 수리가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현재 적멸보궁은 대한민국 불교 신도들의 성지로써 여전히 남아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우리 나라 절 가운데는 불상(佛像)을 전혀 모셔놓지 않은 데가 있다. 법당 안에는 단(.戒壇)만 있고 속이 텅 비었으며 법당 밖 뒤편에는 사리탑을 봉안하여 놓은 곳이다. 이러한 곳을 적멸보궁, 또는 보궁이라 하는데 이는 사리탑에 부처님의 진신(眞身) 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곳이란 뜻이다.

 

신라 진덕왕 때 자장(慈藏) 스님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 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받아와 우리 나라의 가장 수승한 땅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여 모셨는데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 계단을 세웠다. 그리고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鳳程庵),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 각기 사리를 모시고 적멸보궁을 지었다 한다. 또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와 태백산 정암사(淨岩寺)에도 부처님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세웠다. 이로써 이곳을 3대 적멸보궁, 5대 적멸보궁이라 통칭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불전을 지칭하여 적멸보궁이라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게 된다. 부처님 생존시는 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로, 을 설파한 적멸도량임을 뜻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곧 법신불(法身佛)로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예불의 대상으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다른 불전과의 차이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개의 적멸보궁은 경상남도 양산군 영축산 통도사의 대웅전,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의 적멸보궁,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의 적멸보궁,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등이다. 이 중에서 태백산 정암사(淨巖絲)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것이다. 정암사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통도사의 적멸보궁인 대웅전은 특이한 건축 형식과 금강계단의 존재로 가장 주목할 만한 적멸보궁이다. 통도사 대웅전은 1645년에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특이한 평면형식은 이 전각 내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건물 후면에 있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향하여 정면이 위치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이문(不二門)을 들어섰을 때 마주 보이는 측면에도 합각(合閣)을 만들어 출입상의 정면과 예배상의 정면 양쪽 모두를 강조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의 기단은 건물의 격에 맞추어 격식을 갖춘 가구식기단으로 장식하였으며, 건물 내부의 불단과 천정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단청을 하여 장엄하고 있다.

 

적멸보궁 뜻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을 가리킵니다.

법당 내에 부처의 불상을 모시는 대신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으로 바깥이나 뒷쪽에는 사리탑을 봉안하고 있거나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보궁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은 전(殿)이나 각()보다 우위에 있다.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몸이 되었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적멸보궁의 편액을 붙인 전각은 본래 진신사리의 예배 장소로 마련된 절집이었다. 처음에는 사리를 모신 계단을 향해 마당에서 예배하던 것이 편의에 따라 전각을 짓게 되었으며, 그 전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다. 다만 진신사리가 봉안된 쪽으로 예배 행위를 위한 불단을 마련하였다. 한국에서는 643년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들의 순례지이자 기도처로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신봉되고 있다. 그밖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경상남도 사천시 다솔사(多率寺) 에도 적멸보궁이 있다.

 

중대사자암(中臺獅子庵)

적멸보궁이란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곳으로 오대산 적멸보궁은 신라시대 때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가운데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교의 성지이다. 우리나라에는 설악산 봉정암,오대산 상원사,사자산 법흥사,정선 정암사.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쳐서 5대보궁이라 일컷는다.불자들에겐 반드시 참배하는 성지(聖地)이다

 

적멸(寂滅)이란 모든 번뇌의 불이 꺼진 곳, 본래의 마음자리인 고요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열반을 뜻한다. 그런 적멸에 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니 적멸보궁이다.

 

월정사(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

위치 : 강원도 편창군 진부면 동산리 308-5번지

삼국유사에 나타난 창건 유래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온 643(신라 선덕여왕 12)에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민지가 쓴 봉안사리 개건사암 제일조사 전기에 인용한 대산본기에는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이며, 자장은 훗날 다시 8척의 방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렀다고도 전하고 있어 이 절은 643년 자장이 건립했다고 볼 수 있다.

 

상원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 나옹(懶翁)이 중창하였고, 월봉(月峯위학(偉學정암(靜巖해봉(海峯삼공(三空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에서 국태안민(國泰安民)을 기도하게 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되었던 것을 1968년 주지 송문영(宋文永)과 의성(義成)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요사채, 객사(客舍) 등이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에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아름다운 삼층석탑 2기가 있다. 이 탑은 상원사의 창건과 동시에 세워진 것으로, 상륜부(上輪部)에 둥근 연꽃 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炎文)을 보이는 섬세한 불상의 광배(光背)와 연화대석(蓮華臺石)이 있어, 원래 이 절에 석불이 봉안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절 뒤쪽 200m 지점에는 높이 1m의 지극히 단조로우나 매우 오래된 부도와, 무착이 중국에서 묘목을 얻어와 심었다는 계수나무 네 그루가 있다. 이 절은 은혜갚은 꿩과 뱀의 전설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치악산 기슭에 수행이 깊은 승려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산길에서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아 죽이려는 것을 보고 지팡이로 구렁이를 쳐서 꿩을 구하였다.

 

그 날 저녁 여인 혼자 사는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죽은 구렁이의 아내로서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으로 변신하여 그를 유인한 것이었다. 그 여인은 자정이 되기 전에 폐사가 된 상원사의 종을 세 번 울리게 하면 죽은 구렁이가 승천할 수 있으므로 그 승려에게 종을 세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상 도저히 산정까지 올라갈 수 없었으므로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종이 세 번 울려왔다. 구렁이는 기뻐하면서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므로 다시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있었던 곳은 숲에 싸인 자갈밭이었다. 먼동이 트고 상원사로 올라가 보니 종루 밑에 꿩과 새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이와 같이, 꿩이 죽음으로써 은혜를 갚았다고 하여 이 산을 치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상원사 대웅전앞 연등의 모습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형제도 이 곳 어디선가 푸른 연꽃을 보았을 것이다. 두 형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멋진 사내들이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 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출가의지를 오래 전부터 다졌을 법도 한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저마다 1000명과 놀다가 아무도 모르게 오대산으로 입산출가 했단다! 유쾌한 반전이다. 보천은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암자를 지었고,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암자를 지었다. 형제는 함께 염불하며 정진했고, 오대에 나아가 예배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장군 네 명이 찾아와 형제에게 왕위계승을 청했다. 보천은 울면서 사양했고, 아우 효명은 수락해 신라 33대 왕위(성덕왕)에 올랐다.

 

보천을 보라. 왕의 자리조차 울면서 사양하지 않는가? 구도를 향한 절실함이 묻어나 있는 범상치 않은 반전이다. 자장으로 태동한 문수성지 오대산은 보천으로 인해 동서남북, 그리고 중대에 각각 1만 보살이 머무는 ‘5만 보살 상주 성지로 확대됐다. 연꽃처럼 펼쳐진 다섯 개의 봉우리 안에 석가모니를 비롯한 5백 아라한과 문수, 관음, 지장, 대세지 등의 5류 성중 5만 진신이 법을 펴고 있는 셈이다. 성덕왕 즉 효명이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 지금의 상원사다. 6·25 한국전쟁 중 월정사는 불탔어도 상원사만은 건재했다. ‘한암이라는 고매한 학()이 큰 둥지를 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 봉은사에서 법을 폈던 한암 스님은 일제의 감시로 포교와 수행이 어렵게 되자 1927년 오대산으로 들어온다. 그 때 세상에 남긴 한 마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가 되지 않겠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허수아비 노릇하며 살지 않겠다는 수좌의 천명이다. 이후 1951년 입적 전까지 27년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일본 이께다 경무국장이 오대산 한암 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이번 전쟁, 어느 나라가 이길까요?” 연합군의 승리를 장담하면 당장 목이 떨어질 수 있고, 일본군의 승리를 장담하면 앵무새가 되고 만다. 원 안에 있어도 죽고, 원 밖에 나와도 죽는 상황에서 어찌할 것인가? 목을 내놓을 것인가, 앵무새가 될 것인가? “이번 전쟁은 덕 있는 나라가 이긴다!” 일본은 패망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상원사가 인민군 은신처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감에 국군은 상원사 소각 명령을 내렸다. 국군장교가 절에 남아 있던 한암 스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스님은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가사장삼을 수한 후 법당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마디 이른다. “불을 질러라! 나는 불법을 위해 죽을 것이다. 중이 죽으면 어차피 화장해야 하는 법. 절을 지키는 것은 중의 본분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중의 위치를 지키다 죽을 것이다.” 장교는 법당 문 한쪽 태우고 물러갔다.

 

상원사 문수동자상과 한암스님 설화

상원사에 있는 문수동자상은 국보 제 221호로 유서 깊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입니다.

 

상원사는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이 터지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1.4후퇴를 할 당시 상원사 절을 불로 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불에 태워질 위기에 처해졌던 사찰입니다.

 

당시 법당에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한암 스님은 당신들은 상부의 명령을 복종해야 하는 것이니 불을 놓으면 되는 것이고, 나는 중으로서 부처님의 제자이니 마땅히 절을 지켜야 되는 입장이다.”

 

너희는 상부의 명령을 따르면 되고, 나는 중으로서 부처님 명령을 따라 절을 지키면 되지 않겠느냐?”“그러니 염려 말고 불을 질러라.”하고 법당에 들어가 가부좌를 하며 군 책임 장교에게 불을 놓으라고 태연히 말을 했습니다.

 

서릿발처럼 꼿꼿한 한암 스님의 자세를 보고 책임 장교는 보통스님이 아니라 도인(道人)임을 알아차리고 모든 사병들을 밖으로 물리고 절을 태웠다는 증명을 얻기 위해 문짝만 떼어서 태웠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원사가 불에 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했는데, 그때 만약 상원사가 불에 탔으면 상원사 문수 동자상(국보 221)은 불에 타서 후세 사람들이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상원사에 모셔져 있는 문수동자상에 대해 전해져 오는 실화가 있습니다. 단종이 폐위된 뒤 세조가 정신적 고통에서 피부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상원사 근처 계곡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어떤 동자가 와서 등을 씻어주었는데, 세조가 하는 말이다른데 가서 임금님이 여기에 와서 몸을 씻고 갔다고 말하지 말라

 

라고 하니 동자가 하는 말이 임금님께서는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봤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서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이미 동자는 없어지고 피부병이 다 나아있었다고 합니다.그래서 세조는 문수보살님의 은혜에 감사의 백일기도를 올렸으며 상원사에 있는 문수동자상은 세조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원사를 온몸으로 지키신 한암 스님은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세수 22세 때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가하여 수행하였으며 선불교의 고승인 경허스님에게 인가를 받았고, 통도사 조실스님으로 계시며 파계승이 들끓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천고에 자취를 감출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 상원사로 들어갔습니다. 상원사 가람수호를 하시면서 문화재를 수호(守護) 한 한암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네 번이나 역임한 근대 불교의 큰 어른이십니다, 또한 열반에 들 때는 좌탈입망(座脫立亡)을 하여 후학(後學)들에게 많은 신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불교계의 큰 스승이었습니다.

 

오대산 상원사 팔각구층석탑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신앙되고 있는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가 있었고, 1464(세조 10)에 말사인 상원사)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보관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이 있다.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上院寺木彫文殊童磁坐象, 높이 98.)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와 같이 상원사는 문수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446년 조선 초기 조성된 문수동자상(국보)은 오대산 문수신앙의 상징이다. 암살 위험에서 세조를 구해준 고양이를 기리는 상원사 고양이상과 한암 스님이 사자암에 꽂아둔 지팡이가 큰 단풍나무로 자랐다는 한암스님 단풍나무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대산 월정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 60여 개의 절을 관리하고 있다. 삼국유사권3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에 따르면 643(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으로 얻은 석존 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가지고 돌아와서 통도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초암(草庵)으로 엮어 만든 임시암자에 불과했지만, 그 뒤 신효(信孝신의(信義유연(有緣)대사가 차례로 이곳에 머물면서 점차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대산의 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에 각각 관음암· 수정암· 지장암· 미륵암· 사자암 등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은 월정사(月精寺)의 부속암자이다.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뿐더러 예로부터 오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그 오대산의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僧伽)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상원사 동종 (上院寺 銅鍾) 국보 제36

- 소재지 :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50, 상원사 (동산리)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 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계방산

개설

계방산의 높이는 1,577.35m,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차령산맥의 고봉으로 주변에

는 오대산을 비롯하여, 백적산(白積山, 1,141m)·태기산(泰岐山, 1,261m)·방대산(芳臺山, 1,436m) 등이 솟아 있다. 북으로는

설악산(1,708m), 남으로는 태백산(1,657m)을 이어주는 태백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인근의 오대산(1,563.4m), 발왕산(1,485.8m)과 함께 이 지역 일대의 식생을 대표한다.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4215~37°4615, 동경 128°2615~128°3000에 위치한다.

 

자연환경

산세는 설악산 대청봉과 비슷하며, 최근 들어 이 일대가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이 잘 보호되어

있는 곳이다. 수계는 북쪽 골짜기에서 계방천이 시작하여 내린천(內麟川)으로 흘러들고, 남쪽 골짜기에서는 남한강의 지류인 평창강(平昌江)이 시작된다.

이 산의 일부는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며, 최근의 학술조사 결과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약초·야생화 등이 많이 서식하고, 희귀수목인 주목·철쭉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의 계방산 일대 동·식물 현황 조사 결과, 운두령·계방산 정상·윗삼거리·아랫삼거리·계방산장

일대에서 조사되는 계방산의 대표 식물군락은 신갈나무군락, 소나무군락이며 물푸레나무, 피나무 등 다양한 식물군락이 혼생하여 분포하였다. 계방산의 초입부에는 양지꽃, 향유, 이고들빼기, 고추나무, 노린재나무 등이 서식하고 있고, 계방산 정상에는 신갈나무가 우점하며 사스레나무군락, 철쭉군락, 분비나무군락, 쉬땅나무군락, 생열귀나무 등이 분포하였다.

운두령·계방산 정상·운두령의 경로에서 조사된 조류는 붉은배새매(천연기념물 제323), 황조롱이, 소쩍새(천연기념물 제324), 원앙(천연기념물 제327), 명종위기급인 새흘리기를 포함하여 총22 44 155마리가 관찰되었다.

포유류는 총8 10 37마리가 관찰되었으며, 현지주민의 청문조사 결과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 멸종위기 급인 삵, 담비를 포함하여 총9 15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황

2002년도에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었다. 계방산의 방아다리약수가 유명한데, 몸에 좋은 화학성분이 많아 위장병, 피부병에 특효라고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서쪽의 안부(鞍部: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인 운두령(雲頭嶺, 1,089m)으로 31번국도가 통과하고 있어, 홍천군·인제군 등지와 서울~강릉간 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속사 IC에서 좌회전하여 31번 국도운두령 방향으로 11.1가면 이승복기념관을 지나 운두령 정상에 도착한다.

계방산의 주요 산행 코스는 계방산의 한줄기인 운두령 고개에서 시작하여 1166·1492·정상·안부·이승복집터·노동리마을·삼거리교 코스( 5시간 소요)를 많이 이용한다.

영서내륙과 영동지방을 연결하는 국도 56호선 변에는 운두령 산촌마을이 있다. 산촌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1998년도에 설계에 착수하여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에 걸쳐 살기좋은 삶의 터전인 아름다운 산촌마을로 가꾸어졌다. 운두골과 큰골, 갈골 세 개의 자연부락 구성되며 총 120가구에 363명이 살고 있고, 구역면적은 554ha, 그 중 산림이 474ha 86%가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농지 77ha, 기타 3ha로 수려한 경관에 둘러싸여 있는 해발 700m 내외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마을은 고산지대로 고랭지채소와 시설재배, 산나물, 감자 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자연환경 조건이

뛰어나며 주변에는 삼봉자연휴양림, 삼봉약수, 모래소유원지 등이 있다.

[Daum백과] 계방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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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집 12:00

땅끝기맥에 이어서 이번에는 한강기맥으로 가려 한다. 한강기맥은 백두대간 오대산 부근 두로봉에서 시작하여 상왕봉(1491m), 비로봉(1563m), 효령봉(1561m), 뽀지게봉(1358.7m), 계방산(1577m), 보래봉 (1324.3m), 청량봉(1052m), 삼계봉(1070m), 덕고산(1125m), 운무산(980.3m), 수리봉(959.6m), 대학산(976m), 덕구산(652.2m), 응곡산(603.7m), 만대산(680m), 오음산(930.3m), 금물산(774m), 시루봉(504.1m), 갈기산(684.9m), 송이재봉(670m), 싸리봉(812m), 단월산(778m), 용문산(1157m), 소구니산(779.9m), 옥산(577.9m), 말머리봉(500m), 청계산(658.4m) 등의 큰 심산을 두루 거친 뒤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양평 양수리의 두물머리 까지 이어지는 약 166Km의 산줄기다.

첫 구간인 두로봉에서 운두령 까지 산행거리는 대략 25km 이지만 접근구간과 교통편이 썩 여의치 않아 요즘 더운 날씨도 걱정이 되고 하여 야간산행으로 하기로 하고, 첫 구간만은 역 산행으로 운두령에서 시작하여 계방산~뽀지게봉~비로봉~상왕봉~두로봉을 거쳐 상원사로 내려오려 한다. 적막님과 원주에서 15시경 만나기로 하고 난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2 35분 원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12정각에 출발을 한다.

 

운두령 17:23 ~18:32(저녁식사 및 휴식)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2 35분 원주행(8900)을 타고 중부고속도로 경유 제천으로 가는 동서고속도로를 타고 충주에서 내려서 국도를 따라 원주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14 10분이다. 여기서 진부로 가는 버스는 14 30, 15 10분 버스가 있으나 천안에서 서울 청량리를 경유해서 이곳으로 오는 적막님이 14 40분경 도착 예정이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전화기도 충전하며 기다리니 14 40분경 적막님이 도착을 한다. 진부로 가는 15 10(8900) 표를 끊고 잠시 더 기다려 버스를 타고 진부에 도착을 하니 16 35분이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17시 내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운두령(2800)에 내리니 17 23분이다. 이곳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진도 찍고 한 후 운두령 임산물 홍보관에 들러 과자 한 봉다리를 사고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애기를 나누고는 저녁식사를 한다. 운두령에는 임산물 홍보관이 있는데 반을 나누어 좌측은 평창군부녀회에서 우측은 홍천군 부녀회에서 운영을 한다. 우측으로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생태 관리센터가 있고, 의자등을 마련하여 쉬었다 갈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식사가 끝나고 18 30분이 넘어서 홍보관 아주머니한테 다음에 또 들르겠다고 인사를 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이정표(쉼터, 2.15km, 1236m) 19:16

운두령에서 계방산 탐방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 노동리에서 올라온 꼬부랑길이 보인다. 산행시작 13분 정도가 지나며 구조 05-01지점인 1173봉을 지나고 등산로는 대부분 평탄하게 이어간다. 6분이 지나며 02지점을 해발 1137m. 잠시 더 가면 반듯하게 자란 물푸레나무가 많은 등산로를 지나 민둥봉에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운두령 1.0km, 계방산 3.1km가 적혀 있다. 이후 서서히 내려서서 안부에 닿는다. 이곳에는 구조목 05-03지점으로 해발 1073m가 적혀 있다. 이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 안전쉼터라고 통나무로 만들어 놓은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더 오르면 운두령 1.7km, 계방산 2.4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운두령에서 이곳까지는 대부분 평탄한길로 우거진 숲속을 산책하듯 걷는 기분으로 걸었다.

 

계방산(4.07km, 1577.4m) 20:08 ~20:14

이정표를 지나고 굵직한 로프가 매여져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6분후 구조목 05-04지점에 닿는다. 해발 1187m가 적혀 있다. 다시 3분여 오르면 커다란 바위가 있는 가운데로 올라선다. 이곳을 오르면 우측 바위를 위험하다고 오르지 말라는 경고문을 지나고 굵직한 신갈나무가 듬성등섬 서 있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 널찍한 민둥봉으로 계방산 1.9km, 운두령 2.2km가 적혀 있으며 주변으로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위자가 여러 개 놓여 있으며 탐방로 안내도에 현 위치 쉼터로 표시되어 있으며,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 안내문이 있는 쉼터다. 쉼터봉을 지나 6분을 더 가면 오르막 계단이 시작이 된다. 2분여 오르면 구급함이 있으며 05-05지점 구조목이 있다. 해발 1279m가 적혀 있다. 이곳을 지나며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반쯤 썩어서 텅빈 굵직한 신갈나무지점을 지나고 11분 정도를 헉헉대며 오르면 구조목 05-06지점으로 해발 약1388m가 나온다. 이곳이 계방산 등산로 중 가장 힘든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경사도가 줄어들어 한결 숨소리가 줄어든다. 이후 6분을 더 가면 등산로가 우측으로 90도 꺽이는 해발 약1410봉이다. 이후 등산로는 평탄하게 진행이 되다가 서서히 올라서면 널찍한 헬기장이 나오고 우거진 숲길을 따라 6분을 더 가면 조망이 매우 좋은 전망대가 나온다. 목재로 전망대를 잘 만들어 놓아 이곳에 올라서면 계방산 정상이 가까이 보이고, 멀리 가칠봉, 뒤로 설악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측으로 호령봉, 비로봉등이 조망이 되며 우측으로는 속사에서 노동리로 들어온 계곡이 보인다. 전망대 주변으로는 라일락꽃이 만개를 하였으며 아직도 지지 않은 철쭉이 남아 있다.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계방산의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진행하면 우거진 숲길을 따라 12분을 더 가면 등산로가 좌측으로 90도 꺽이는 헬기장에 닿는다. 05-09지점으로 해발 1515m. 이후 서서히 오르는 길을 따라 6분을 더 오르면 계방산 정상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정상석 2개와 삼각점이 있으며 커다란 돌탑이 있다. 조망도가 있으며 이정표에는 운두령 4.1km, 계방산 주차장 4.2km, 자동차야영장 4.8km가 적혀 있다. 이제 점점 어두워져 앞으로 진행하는 길은 후레쉬를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계방산에서 주변의 산하를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삼각점봉(6.41km, 1462.3m) 21:19

계방에서 북동쪽을 향하여 진행을 한다. 테크길 계단을 내려서고 잠시 후 후레쉬를 켠다. 등산로 주변으로는 산목련이 만발을 했다. 찔레나무 비슷한데 찔레꽃 보다는 훨씬 큰데 이꽃도 이쁘다. 잠시 더 내려서면 우측으로 하산로가 있다. 커다란 주목나무가 있는 곳으로 이정표에 자동차 야영장 4.4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직진한다. 대부분 평탄한길이지만 잡목이 걸치적거리며 바닥도 평탄하지 않아 걷는 데는 좋지를 못하다. 10여분을 좀 더 가면 좌측으로 소계방산으로 빠지는 삼거리가 있는 헬기장봉에 닿는다. 이곳을 지나며 어두운 밤길 주변으로는 보이는 것이 없다. 15분 정도를 지나니 커다란 주목나무가 있고, 5분 정도를 더 가니 커다란 바위가 있는 봉을 지난다. 이후 우측 노동리로 빠지는 안부를 지나서 오르기 시작하면 10여분이 지나서 높다란 고개에 닿는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조금 가면 삼각점이 있는 봉에 닿는다. 해발 약1462.3봉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광원리다.

 

안부고개(사거리, 8.35km) 22:10 ~22:15

삼각점봉에서 다시 돌아 나와 잠시 내려서면 우측으로 주왕지맥길이 시작되는 분기점인데 밤이라 그런지 주왕지맥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겠다. 주왕지맥은 한강기맥의 운두령에서 계방산(1,577m)을 지나 6.5km 지점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산줄기로 백석산(1,141m), 잠두산(1,243m), 백석산(1,365m), 중왕산(1,376m), 청옥산(1,249m), 접산(836m)를 지나 영월 동강에서 그 맥을 다한다. 지맥에서 가장 높은 중왕산은 가리왕산의 줄기로서 주왕산이라고도 하며 주왕산의 이름을 따서 주왕지맥이라 부르고 지맥의 총 거리는 약 86km에 달한다.

주왕지맥 분기점을 지나며 길 대부분을 멧돼지가 파놓아 걷기도 나쁘고 잔돌이 많이 튀어 나와 발에 걸려 넘어 질뻔 하길 여러 번이다. 산길도 가파르게 내려선다. 지그재그로 급경사 지대를 내려서고 20여분이 지나 안부에 닿는다. 우측으로 척천리 방아다리 약수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이곳을 지나 3분을 오르면 해발 약1290봉을 지나고 12분 정도를 평탄한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해발 약1224봉을 지나 6분여 내려서면 안부고개 사거리에 닿는다. 좌측 광원리로 가는 길은 잘 보이지 않지만 우측 척천리 방아다리 약수로 가는 길은 확실히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 후 출발을 한다.

 

뽀지게봉(헬기장, 좌꺽임, 간첩신고표지판, 9.96km, 1359m)23:00 ~23:05

안부고개에서 휴식 후 오르기 시작한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가는 곳이다. 그저 어두운밤 우거진 숲길을 걷는다. 이곳은 낮이라도 좌, 우로 보이는 것이 없을 것 같다. 잠시 올라서서 평탄한길을 따라 10여분을 가면 썩은 나무둥치가 있는 우꺽임봉인 해발 약1208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서서히 올라서면 5~6분후 우꺽임봉인 해발 약1271봉이다. 이후 산길은 계속 오르막길로 쉼 없이 20여분을 올라서면 앞쪽으로 널찍한 풀밭으로 된 커다란 헬기장이 나온다. 뽀지게봉으로 지도에는 봉 이름이 없는 해발 약1359봉이다. 1996 10월 무장공비가 탑동리 민간인 3명을 피살하고 도주를 하였던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지만 글씨가 거의 다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잠시 물 한모금씩 마시고 진행을 한다.

 

헬기장(갈림길, C-8지점, 14.04km, 1265m) 00:31 ~00:38

뽀지게봉에서 등산로는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며 산길은 평탄하니 좋다. 잠시 가면 쓰러진 안내문이 있는 지점을 지나고 10여분을 좀 더 진행하여 좌꺽임봉인 해발 약1357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탑동리 활산목이로 빠지는 길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보이지는 않는다. 이후 이어지는 길도 밋밋한 능선으로 평탄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우 좋다. 서서히 내려서고 아름드리 신갈나무가 능선 좌, 우측으로 즐비한 원시림길이다. 15분 정도를 원시림 길을 이어가면 조금 나지막한 안부를 지나 이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17분가량을 서서히 오르면 커다란 신갈나무가 들어찬 해발 약1309봉에 닿는다. 봉이라고 하기는 그렇다. 평탄한 능선에 조금 봉긋한 곳으로 신갈나무 군락지다. 10여분을 더 가면 군인들이 훈련하느라 붙여놓은 C-10이 적혀 있는 표지판을 지나 능선으로는 역시 신갈나무 군락지로 쓰러진지 얼마 안 되는 커다란 신갈나무를 간신히 밟고 넘어서서 가면 앞쪽으로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산길은 좌측을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어 능선으로는 쓰러진 나무들이 듬성등섬 놓여 있어 가끔은 낮은 포복으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옆을 돌아가기도 하며 진행하면 C-8이 적힌 헬기장이 나온다. 좌측은 은행나무로 유명한 광원리로 빠지는 길이 하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앉아 빵과 과자로 간식 후 출발을 한다.

 

호령봉(16.88km, 1566m) 02:20 ~02:32

휴식 후 우측으로 넘어서 진행을 하면 12분이 지나서 1315.2봉에 닿는다. 이곳에는 헬기장이 없다. 여기서 다시 11분을 가니 헬기장이 나오며 낙엽에 반쯤 가려진 삼각점이 나온다. 나뭇잎을 치우고 사진을 찍어두고는 다시 진행을 하면 오르는 길에 곰취가 널려 있고 참취도 가끔씩 보인다. 이지점이 곰취 군락지인가 보다. 밤이라 등산로 주변만 보일뿐 능선 아래쪽은 보이지 않으니 어느 정도 있는 지는 정확치는 않다. 여기 오르는 길은 잡목이 더욱 짙어지며 산길이 전보다는 좋지를 않다. 이렇게 하여 30여분 가까이 오르면 해발 약1484봉으로 다시 1500대 능선에 가까이 오르게 된다. 이후 산길은 더욱 나빠져 잡목이 등산로를 가려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10분을 오르니 헬기장이 있는 좌꺽임봉으로 해발 약1537봉이다. 이제 1500능선을 넘어선 것이다. 1분여 지나며 밤이라 정확치는 않지만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보인다. 오대산길 조개골로 빠지는 지점이다. 이곳을 지나고 2분 정도를 더 가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능선 좌측 광원리 방향으로 조망이 확 트이는 곳이지만 밤이라 보이지않는다. 좌측 광원리쪽 계곡으로 나가면 내면에서 구룡령으로 갈 때 지나는 칡소 폭포가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전망바위에 앉아 있으니 금시 한기가 느껴진다. 다시 진행을 하니 전망바위를 우측으로 돌아서 가는 곳이 조금 위험한 곳이 있으며 이곳을 돌아가면 잠시 바위지대를 가파르게 내려선다. 이제 길은 매우 좋지를 않다. 우측으로 동피골로 빠지는 길을 지나고 커다란 바위사이를 빠져나가 능선을 넘어 좌측으로 진행을 하기도 하며 잡목에 걸려 얼굴을 수차례 얻어터지며 진행을 하면 전망바위에서 30여분이 지나서 호령봉에 닿는다. 커다란 헬기장으로 정상석은 없다. 헬기장 보도블럭에 호령이라 적은 것이 전부다. 호령봉은 비로봉보다도 좀 더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 오대산의 가장 높은 봉인 것이다. 이래서 오대산을 호령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 후 진행을 한다.

 

오대산 비로봉 정상석(18.98km, 1563.4m) 03:35 ~03:45

호령봉에서 비로봉까지는 약2.1km 거리다. 대략 1시간 거리다. 산길은 처음 생각에는 매우 좋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곳은 아직도 비등구간이라 산길이 매우 나쁜 편이다. 그간 나지를 않아서인지 잡목이 길을 덮었다. 울퉁불퉁한 바윗길도 많고 가끔은 길이 어느 곳으로 향했는지 알기 어려운 곳도 몇 군데 있다. 20여분을 진행하면 해발 약1532m의 헬기장에 닿는다. 헬기장을 지나고 잡목길 풀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길은 더욱 나빠져 오대산 정상을 쉽게 내주지 않는 것을 실감한다. 우측으로 서대사로 내려서는 지점에 커다란 나무에 표지기가 몇 개 붙어 있으며 6분을 더 가면 오대산 비로봉 전 마지막 헬기장을 지나서 잡목을 뚫고 20여분을 더 가니 삼각점이 나온다. 오대산 정상 삼각점인 것이다. 잠시 후 우측으로 하산로 같은 것이 보이고 도랑을 넘어서 오르면 목책이 나온다. 목책을 지나면 곧바로 오대산 비로봉 정상석이 있는 곳이다. 정상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방위표가 있고 오대산국립공원안내도, 조망도가 있으며 자연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있다. 상원 탐방지원센타 3.5km, 상왕봉 2.3km, 두로봉 4.2km가 이정표에 적혀 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 별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밤이라 시원한 바람 맞으며 잠시 쉬었다 간다.

 

상왕봉(21.21km, 1493m) 04:40

비로봉에서 우측 계단으로 내려서면 적멸보궁, 상원사를 거쳐 탐방지원센타로 내려서는 길이고, 좌측 직진방향으로 가면 기맥길이다. 이 길을 따라 10여분을 가면 둥그런 테두리를 두른 커다란 헬기장에 닿는다. 해발 약1452봉으로 여기 이정표에 상왕봉 1.8km, 비로봉에서는 500m 온 곳이다. 4분여 가면 두 번째 헬기장이 나오고 시커먼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에구 기어코 비가 오려나보다. 어제 저녁부터 심상치 않던 날씨가 참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엄청난 가뭄으로 나라 전체가 난리라 비가 와야 하겠지만 그래두 산행중 비를 맞는 것은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다. 6분여 내려서니 주목나무가 양쪽으로 있는 곳이다. 이곳 부터는 비가 좀 더 내려서 그냥 갈수가 없을 것 같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일회용 우비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이라 꺼내서 입고는 진행을 하니 금시 비가 엄청 쏟아지기 시작한다. 20여분 후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10여분을 더 가면 두로령 1.9km, 두로봉 3.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오고 널찍한 풀밭이 나오며 자연석으로 된 상왕봉 정상석이 나온다. 비가 오는 가운데 간신히 사진 한 장만 찍고는 진행한다.

 

두로령(23.06km, 1320m) 05:27~05:32

상왕봉에서 이어지는 길도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국립공원 주등산로 중에는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자연생태는 그 많큼 좋다는 애기도 된다. 날은 훤하게 밝아 왔으나 비가 와서 조망을 즐기기에는 틀렸다. 답답한 산행을 이어간다. 상왕봉에서 15분을 가면 해발 약1410봉에 닿고 여기서 내려서면 안부에서 우측으로 북대사로 내려서는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북대사 1.3km, 상원탐방지원센타 6.1km, 두로령 0.9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다시 앞쪽의 높다란 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6분을 오르니 헬기장이 나온다. 비는 이제 뜸해져서 조금씩 내리지만 아직은 우비를 벗기에는 이르다. 등산로 폭이 좁아 나뭇잎에 뭍은 물기가 옷깃에 스쳐 가랑이가 다 젖는다. 5분을 더 가면 커다란 헬기장이 나온다. 비로봉 3.8km, 두로령 0.4km, 두로봉 2.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는 헬기장이다. 이제 이곳에서 내려서면 두로령이다. 내려서는 길이 미끄러워 천천히 내려선다. 이정표에는 400m로 되어 있지만 실제 트랭글에는 660m로 실제 더 거리가 길다. 15분을 내려서니 널찍한 임도길인 두로령에 닿는다. 두로령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두로령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상원사)와 홍천군 내면 명계리을 연결하는 고개이며 비포장 446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두로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고개라 두로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이정표와 함께 백두대간 두로령 이라는 표지석과 오대산 국립공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한강기맥 마루금은 446번 지방도에서 좌측방향으로 20m 진행 후 우측편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곳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두로령에서 두로봉까지는 1.6km, 탐방지원센타 6.4km가 적혀 있으며 내면까지는 10.1km가 적혀 있다.

 

두로봉(24.75km, 1422m) 06:10 ~06:15

두로령에서 탐방로 안내도가 있는 곳으로 오른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 산나물 채취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있고 우거진 산길을 따라 오르면 굵직한 신갈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13분을 오르면 오대 02-23번 구조목이 있는 헬기장에서 등산로는 우측으로 살짝 꺽여서 잠시 내려선다. 안부를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15분 정도를 더 올라서 굵직한 주목나무가 등산로 양쪽으로 무수히 많은 군락지를 지나서 오르면 5분 정도를 더 올라서 동대산과 두로령이 갈리는 삼거리 백두대간 주능선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동대산 6.7km, 비로봉 5.8km, 상원탐방지원센타 8.0km가 적혀 있다. 탐방로 안내도가 있고, 오대 02-21번 구조목이 설치되어 있고 해발 1433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조금 가면 두로봉 정상석이 있는 커다란 헬기장이 있는 곳이다. 두로봉은 한강기맥 분기봉이다.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분기(分岐)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르며 서쪽으로 뻗어내려 두 강이 만나는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한다. 산줄기의 길이만 해도 167km로 금남정맥이나 금남호남정맥보다 더 길고 마루금상에 품고 있는 산의 높이 또한 남한 다섯 번째인 계방산을 위시하여 1,000m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다.

 

북대사(27.92km) 07:29

두로봉에서 시작을 해서 오대산을 지나고 계방산을 거쳐 운두령으로 진행을 하려 하였으나 교통편 때문에 첫 산행은 역 산행을 하였다. 두 번째 산행부터는 정상적으로 이어가려 한다. 이제 접속 구간으로 상원탐방지원센타 까지 무려 8.2km를 내려가야 한다. 만만치 않은 접속 거리다. 진고개에서 동대산을 거쳐 올라 올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곳을 지나는 대중교통이 없어 포기하였다. 이제 하산을 한다. 비는 그쳐서 이제 비옷은 벗어서 배낭에 넣고 내려서기 시작한다. 조금 전 지나온 동대산 비로봉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주목나무 군락지를 지나 두로봉 0.7km, 상원탐방지원센타 7.3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서 굵직한 신갈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올 때 지나온 헬기장을 지나고 두로령 까지는 30여분이 걸려서 내려선다. 두로령 표지석 앞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널찍한 임도를 따라 걸으면 30여분이 지나서 북대사에 닿는다. 북대사는 신축건물 공사로 주변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지저분하다. 미륵암에 감로수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해발 1300고지에 차량으로 오를 수 있는 사찰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탐방지원센타(33.51km) 08:50 ~09:20

아직도 남은 거리는 대략 5km. 널찍한 임도길이지만 거리가 길기 때문에 지루하고 발바닥도 등산화에 물이 들어와 아프기 시작한다. 에구 한 시간 남짓 내린비로 옷도 젖고, 배낭도 젖고 무심한 날씨다. 북대사에서 5분을 내려오니 상왕봉에서 두로령으로 가다가 지난 북대사 삼거리로 가는 곳 이정표가 나온다. 북대사 0.4km, 두로령 1.8km, 상왕봉 2.1km, 비로봉 4.4km, 상원탐방지원센타 4.6km가 적혀 있다. 내려서는 길옆으로는 흰색의 자작나무 비슷한 나무가 있고, 북대사 정지 작업을 하러 올라오는 트럭들로 인하여 길이 막히기도 하였다. 북대사 아래 이정표에서 15분을 내려서면 3.5km전 이정표를 지나고, 몇 번의 구비를 지나며 내려서면 돌무더기가 있는 구비의 2.9km전 이정표가 나오고 송신탑이 있는 곳을 지나 내려서면 쉼터가 있고 마지막 구비를 지나서 개울가 옆길을 따라 나오면 상원탐방지원센타가 있는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이곳에서 잠시 상원사를 다녀와서 산행을 끝마친다.

 

오늘 산행은 야간 산행으로 대부분 산행을 마무리 하였으며 처음 생각에는 산길이 매우 좋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계방산에서 주왕분기점을 지나 안부사거리 까지 길이 별로 좋지를 않았고, 이후 뽀지게봉을 지나 바위전망대 오르기 전부터 길이 좋지를 않아 비로봉까지 잡목 길로 늘어진 나뭇가지에 길도 잘 보이지 않고 돌부리 길이 많아 산행하는데 힘이 들었다.

오늘도 함께한 적막님 도중에 돌부리에 넘어져 미간에 부상을 입는 등 고생 많이 했습니다. 내도 열 번은 돌부리에 반쯤 넘어 질뻔 했으나 다행히 과당은 안 했다우 ~~~

수고 많았습니다.

담 낙남 도중에 빠진 거 보충하시고 7월 초 한강기맥 두 번째 산행 때 봅시다.

 

산행시간 : 14시간 20분 소요

산행거리 : 33.5km

 

청주 ~원주 버스비 : 8900

원주 ~진부 버스비 : 5900

진부 ~운두령 버스비 : 2800

상원사 ~진부 버스비 : 3000

진부 ~원주 버스비 : 5900

원주 ~청주 버스비 : 8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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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기맥 제1구간 상원사~두로봉~비로봉~계방산~운두령

 

청주 ~상원사 : 220.6km 3시간 15분 소요

진부공용버스터미널 ~상원사 : 21.4km 진부공용버스터미널 ~운두령 : 21.1km

상원사 ~운두령 : 41.7km 1시간 30분 택시비 66000원 진고개 ~운두령 ; 38.6km

 

갈 때

조치원역 ~서울역 : 02:58 ~ 04:32 8400(영등포 7800)

서울역 ~강변역 : 서울역 4호선 당고개역 방면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환승 -강변역 30분소요 1450

동서울 터미널 ~ 진부 : 6:22, 7:00, 7:30, 08:05  2시간 15분 소요 13100

청주~원주직통 : 7:40,~12:05,12:35,13:35~15:35,16:05,16:35,17:35,18:15,19:20 1:40소요 8900

천안~원주시외:7:30,9:00~13:55,14:10,15:40,16:30,17:40,19:10 2:30 9800

원주~진부 : 6:45,7:05,~14:30,15:10,15:45,16:45,17:15,17:55 1:15소요 5900

진부~상원사 : 7:30, 8:30, 9:40, 10:50, 11:50, 12:50, 15:30,16:40, 19:00(월정사) 3000 40분 정도 소요

상원사 ~진부 : 8:10, 9:20, 10:30, 11:30, 12:40, 14:00, 14:40, 16:20, 17:20

 

올 때 ( 46000)

* 진부-운두령 경유(25분 소요) 내면행 : 09:30, 13:10, 17:00, 운두령 \ 2.800, 내면 \ 4.100

* 내면-운두령 경유(15분 소요) 진부행 : 08:20, 11:40, 15:30

* 내면-서석 경유 홍천행 : 07:20, 08:30, 09:30, 12:00, 14:30, 16:20, 17:00, 18:00, \ 8.400, 1시간 10분 정도 소요

진부-운두령 : \ 28.000 정도, 진부~진고개: \ 24.000 정도, 상원사-진부 : \ 30.000 정도

(2014.10.12 이용, 진부택시 : 033-335-1050, 335-0088, 336-7271, 335-9208, 335-8107,  334-8488, 010-8704-0868 이기홍)

 

*진부~원주:7:20,8:25,9:00,9:30,10:30,11:40,12:15,12:50,14:00,14:25,15:10,15:50,17:00,17:30(현지시간표)

진부터미널~원주터미널 버스비 : 5900(원주~진부: (7:45.8:55.9:55,10:10~15:10,16:45,17:15,17:55,18:45)

원주터미널~청주터미널버스비:8900(1:40분소요,9:50,10:10,10:30,11:00,11:30,12:00,~18:35,19:15()

원주터미널~천안시외버스터미널 : 7:20,9:10,10:50,12:05,14:00,16:00,17:00,17:25,19:10

 

교통편:

갈 때 : 동서울터미널(20:05)~(22:15)진부13,100 .

진부~운두령 (택시)28.000

 

올 때 : 상원사(17:20)~진부(18:00)1,900원 진부(18:20)동서울터미널(20:30) 13.100

 

대중교통

* 동서울-진부 : 장평,진부,횡계 경유 강릉행 고속버스, 2시간 15분 소요, \ 13.100, 첫차 06:22, 07:00, 07:30 ~

* 진부-동서울 : ~ 18:20, 18:55, 19:30, 20:05, 20:40

* 서울 남부-진부 : 07:00, 09:00, 10:40, 12:30, 14:20, 16:00, 17:45, 19:20, 우등, 2시간 10분 소요, \ 12.200

* 진부-서울 남부 : 07:45, 09:50, 11:50, 13:10, 14:45, 16:30, 17:50, 19:35

* 진부-상원사 : 07:30, 08:30, 09:40, 10:50, 11:50, 12:50, 13:50, 15:30, 16:40, \ 3.000, 40분 정도 소요

* 상원사-진부 : 08:10, 09:20, 10:30, 11:30, 12:40, 14:00, 14:50, 16:20, 17:20

* 진부-운두령 경유(25분 소요) 내면행 : 09:40, 13:10, 17:00, 운두령 \ 2.800, 내면 \ 4.100

* 내면-운두령 경유(15분 소요) 진부행 : 08:20, 11:40, 15:30

* 내면-서석 경유 홍천행 : 07:20, 08:30, 09:30, 12:00, 14:30, 16:20, 17:00, 18:00, \ 8.400, 1시간 10분 정도 소요

* 홍천-서석 경유 내면행 : 06:45, 08:00, 09:45, 12:00, 14:00, 15:00, 16:40, 18:40

* 진고개는 고개를 지나는 정기 노선버스가 없다. 히치를 하던가 진부에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진부-진고개 : \ 23.000 (2014.10.12 이용, 진부 택시 : 033-335-1050)

진부-운두령 : \ 28.000 정도, 장평-운두령 : \ 23.000 정도, 상원사-진부 : \ 30.000 정도

 

구간거리:상원사~두로봉~3.3~상왕봉~2.3~오대산비로봉~1.9~호령봉~10.1~계방산분기 점~2.4~계방산~3.9~운두령 32.3km  11~13시간 소요

(진고개~두로봉 약8km 3시간)

 

상원사-7.8km-두로봉-1.5km-두로령-1.75km-상왕봉-2.25km-비로봉-1.88km-호령봉-0.88km-1537-5.14km-1357-1.26km-1271-2.76km-1462.3-2.13km-계방산-1.75km-1236-2.26km-운두령=31.3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