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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941 금남정맥3구간 양정고개~계룡산~팔재산~안골산~망덕봉~진고개 2016.05.19.~20. 목~금 맑음(폭염)

금남정맥3구간 양정고개~계룡산~팔재산~안골산~망덕봉~진고개

국사봉454m, 천황봉845m, 쌀개봉829m, 관음봉766m, 삼불봉775m, 수정봉662m, 팔재산364m, 안골산322m, 성정산237m, 망덕봉210m

 

2016.05.19.~20. ~금 맑음(폭염)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청주 20:04 -버스정류장 20:06~20:07 -조치원역 20:40 ~21:21 -계룡역 22:06 ~22:09 -계룡지구대앞(양정고개, 2.43km, 130m) 22:40 ~22:52 -철길육교(3.24km, 142m) 22:55 -엄사리 산길 입구(3.83km, 150m) 23:04 -우측 샛길(4.56km, 235m) 23:17 -청송약수삼거리이정표(4.68km, 230m) 23:18 -2정문 삼거리 이정표(구럭재, 송전탑, 4.81km, 205m) 23:20 -2정문 이정표(5.18km, 280m) 23:27 -만운사이정표 사거리(5.81km, 270m) 23:37 -헬기장(운동기구, 6.13km, 325m) 23:44 -공터 이정표(헬기장, 6.73km, 350m) 23:54 -싸리재 (7.18km, 310m) 00:00 -계단을 오르고 -삼거리 이정표(우측길로, 7.33km, 320m) 00:06 -향적산 삼거리(우측으로, 7.55km, 440m) 00:16 -멘재(8.13km, 435m) 00:29 -국사봉(8.80km, 454m) 00:42 -바위전망대(금강대학쪽 조망, 9.03km, 470m) 00:49 -508(9.32km) 00:56 -헬기장(9.94km, 460m) 01:09 -안부 삼거리(우측 하산로, 10.21km, 425m) 01:15 -용천령(10.50km, 385m) 01:23 -바위전망대(10.85km, 435m) 01:34~01:45 -큰서문다리재(11.30km, 390m) 01:53 -삼거리(우측으로, 11.73km, 430m) 02:06 -천황석문(12.84km, 760m) 02:45 -노랑 표지기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천황봉 정상(천단 표지석, 13.1km, 845m) 03:08 ~03:18 -산허리 돌아 삼거리 초소터(13.58km, 790m) 04:00 -홍수방지시설봉 04:11 -통천문 04:18 -쌀개봉(13.95km, 829m) 04:25 -관음봉고개(14.65km, 740m) 04:55 -관음봉(14.74km, 766m) 04:58 ~05:31(아침식사) -자연능선 이정표(삼불봉,관음봉0.8km지점, 15.52km, 715m) 05:57 -정맥 삼거리(우측으로, 16.02km, 768m) 0615 -삼불봉(16.26km, 775m) 06:24 -다시 정맥삼거리(16.49km) 06:35 -금잔디고개(16.9km, 645m) 06:47 -수정봉(17.25km, 662m) 06:57 -안부사거리(17.55km, 580m) 07:05 -바위봉(우측으로 우회길 있음, 17.6km, 599m) 07:09 -610(17.92km) 07:18 -580(큰소나무, 18.18km) 07:23 -바위전망대 07:42 - 1분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612봉 삼거리) -삼거리(우측으로, 19.48km, 325m) 07:53 -송신탑(고사리밭) 08:01 -만학골재 도로(20.17km, 195m) 08:05 ~08:10 -325(삼각점, 산소지대로 고사리 밭, 삼각점, 20.78km) 08:30 -삼거리(우측으로, 20.94km, 283m) 08:34 -삼거리(좌측으로, 21.25km, 190m) 08:41 -평탄한 길 -2분후 좌측 하산로 -30초후 안부 사거리 -좌측 하산로(21.5km, 180m) 08:46 -다시 가파르게 올라 -265(21.80km) 08:56 -우측 밤나무단지 -철조망 -중장고개(윗장고개, 22.46km, 170m) 09:09 -급경사 오르고 -팔재산(23.07km, 364m) 09:34 ~09:37 -드릅재배단지 위봉(23.50km, 310m) 09:53 -널티고개(24.76km, 190m) 10:19 -산소지대 지나고 -안부사거리(25.83km, 170m) 10:47 -215(26.06km) 10:54 -능선 상(26.18km,  210m) 10:56 ~11:15(중식) -안부사거리(26.34km, 195m) 11:22 -밤나무 단지 임도(우측으로 임도따라, 26.18km, 170m) 11:33 -상리 임도(27.4km, 140m) 11:50 ~12:15 -안골산(28.08km, 340m) 12:37 -거북바위산 삼거리(28.44km, 330m) 12:48 -임도고개(30.14km, 130m) 13:18 -안부사거리(30.73km, 140m) 13:30 -노성지맥 분기(LG송신탑, 31.0km, 148m) 13:56 -세멘트길 삼거리(정면 세멘트길로, 31.35km, 120m)13:49 -경주최씨묘역 지나 -아스팔트도로(벌문이재, 31.75km, 90m) 13:59 ~14:13 -성정산(32.57km, 237m) 14:36 -밤나무단지(좌꺽임 내리막, 32.86km, 225m) 14:45 -1차선 아스팔트도로 고개(철문, 산의리~반송리간도로, 33.93km, 112m) 15:06 -밤나무단지 -산소 -가파르게 올라 -185(34.25km) 15:48 -평탄한길 -183(34.59km) 15:23 -안부사거리(36.32km, 150m) 15:55 -복룡고개(36.64km, 112m) 16:02 -우측 고속도로 아래에서 산길로 -철탑(37.02km, 150m) 16:16 -180(좌꺽임, 37.79km) 16:34 -좌꺽임지역 16:36 -망덕봉(우꺽임, 39.1km, 210m) 17:00 -안부사거리(39.82km, 158m) 17:11 -208(40.82km) 17:27 -우측으로 가족묘지 17:40 -진고개(42.01km, 98m) 17:52 ~18:15 ~택시 -공주역 18:25 ~19:08 -오송역 19:23 -19:36 -500번 버스 -청주 집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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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래미

[전설]

아주 먼 옛날 이 나라 임금은 백성들을 돌볼 생각은 안하고 주색과 도탄에 빠져 있어 백성들은 굶주리고 도적들은 들 끊고 하여 나라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옥황상제가 세상을 내려다보니 매우 혼란스럽기에 물으니 대답하기를 위와 같다 하니 그럼 세상을 구제하고 5만년 태평성대을 이어갈 방법이 없는고 하고 물으니 계룡산 신도안 에 정도령 이란 사람이 후덕하여 만백성이 우러러 보고 따른다고 아뢰니 그럼 계룡산 에 단을 쌓고 천일기도를 하면 내 세상을 다스릴 비법을 전해 줄 것이라 이르니 신하가 신도안의 정도령을 찾아가 옥황상제의 옥음을 전하니 만백성이 기뻐하였다.

정도령은 좌우에서 보필하는 두 신하를 데리고 계룡산 천황봉에 단을 쌓고 천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정도령이 천황봉에 올라 기도를 드리면 두 신하는 하늘문 앞 문다래미 앞에 무릅을 꿇고 같이 기도를 드렸다 이 두 신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으니 정도령의 5만년 태평성대 세상이 열리면 정혼하기로 하였다

구백구십구일의 기도를 마치고 하루만 더 기도를 마치면 정도령은 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할 비법을 옥황상제에서 전달 받기로 한 것인데 정도령이 장차 옥황상제의 자리를 탐한다는 간신들의 거짓 간언에 옥황상제가 진노하여 이르니 정도령이란 작자는 돌이 되고 두 년놈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도록 동물이 되라 이르니 만백성의 피눈물이 흘러 숫용추를 만들고 암용추를 만드니 이 어찌 원통하고 애석하지 않으리...!!!

문다래미는 문달린 산(미는 산이란 다른표현 이라함) 돌문이 달린 이란 뜻으로 말하며 무속신앙인 들은 세속의 세계에서 신앙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라 하고 풍수지리가 들은 기의 절정이 이곳 문다래미를 거쳐 확산되는 중요한 지점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계룡산

[개설]

높이 845m.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차령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가다가 금강의 침식으로 허리가 잘리면서 분리되어 형성된 잔구이다. 지도상으로 대전·공주·논산을 연결하여 세모꼴을 그린다면 그 중심부에 자리 잡은 것이 계룡산이다.

이 산은 대전에서 서남쪽으로 25 지점에 있는 동학사 지구와 공주에서 동남쪽으로 19.6 지점에 있는 갑사 지구로 구분된다. 동경 12.7°7′∼12.7°19, 북위 36°16′∼36°28에 있으며, 총 면적은 65.34인데, 공주시에 42.45, 계룡시에 11.9, 논산시에 2.12, 대전광역시에 8.86로 걸쳐 있다.

산 이름은 주봉인 천황봉(天皇峯, 845m)에서 연천봉(連天峯, 739m)·삼불봉(三佛峯, 77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계룡산은 풍수지리에서도 우리나라 4대 명산으로 꼽힐 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제5위를 차지하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계룡팔경은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삼국시대부터 큰 절이 창건되었으며, 지금도 갑사·동학사·신원사(新元寺) 등 유서 깊은 대사찰이 있다. 특히, 철당간·부도·범종, 각종 석불, 월인석보의 판목 등은 현전하는 중요한 불교 문화재이다.

, 숙모전(肅慕殿삼은각(三隱閣) 등 충절들을 제사하는 사당과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오누이탑, 그리고 조선 초에 왕도를 건설하다가 중단한 신도안 등 명소가 많다.

이 산은 정감록(鄭鑑錄)에 피난지의 하나로 적혀 있는데 이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 신도안을 중심으로 수많은 신흥종교, 또는 유사종교들이 성하였으나 지금은 정리가 되었다. 계룡산은 공주·부여를 잇는 문화 관광지로서, 유성온천과도 연결되는 대전광역시 외곽의 자연공원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자연환경]

계룡산 일대의 지질은, 대체로 서북부에 쥐라기의 편마암·화강암, 남부 및 동남부에 쥐라기의 복운모(復雲母) 화강암, 그리고 동학사를 중심으로 중앙부에 백악기(白堊紀)로 보이는 홍색 장석화강암이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능선 따라 남북 방향으로 반암류(斑岩類)가 관입하였고, 부분적으로 염기성맥암(鹽基性脈岩)과 산성맥암이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관입하여 산체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계룡산은 지리산에서 뻗어 나온 한 갈래의 산줄기가 덕유산에서 다시 갈라져 300리를 거슬러 올라와, 공주 동쪽에서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돈 형세를 이루고 있다. 차령산맥 중에서도 비교적 험난한 이 산은 유연히 흐르는 금강의 풍치와 어울려 독특한 산악 경관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천황봉을 중심으로 쌀개봉(828m)·연천봉·문필봉(文筆峰, 796m)·삼불봉·수정봉(水晶峰, 662m) 등이 에워싸고 있으며, 이 밖에도 관음봉(觀音峰, 766m)·막적봉(莫積峰, 664m)·임금봉(553m)·형제봉(520m)·장군봉(將軍峰, 410m)·도덕봉(道德峰, 524m) 등 크고 작은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또한 주능선이 남북으로 크게 뻗은 가운데 다시 서에서 동으로 두 개의 능선이 나란히 뻗어내려 F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들 주요 봉우리 사이의 7개 골짜기에서 발원한 노성천(魯城川구곡천(九曲川용수천(龍水川갑천(甲川) 등이 금강으로 흘러든다.

이 계룡산은 금강을 허리에 두른 채 공주시 계룡면과 반포면, 논산시 두마면, 대전광역시 중구 유성 지역 등에 걸쳐 있다. 계룡산은 풍수지리설에서 대단한 명산으로 꼽아 일찍이 조선 왕조가 이 산 기슭에 도읍 터를 고려해 보기도 하였다. 또한 그 뒤 수많은 신흥 유사종교들이 모여든 것도 계룡산을 풍수설에서 중요시한 때문이었다.

풍수가에 따르면, 용세가 제 몸을 휘감아 제 꼬리를 돌아보는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을 이루었고, 상봉인 천황봉이 형제봉·중두봉(中頭峯종봉(終峯)을 이루어 이것을 제자봉(帝字峯)이라 한다.

계룡산은 산형이 수체(水體)로서 동서로 병풍같이 둘려 있고, 산이 북에서 동서로 싸안으니 두 쌍의 봉황이 서로 희롱하는 형상이요, 흙빛이 바래서 흑기(黑氣)를 벗으니 백옥이 되었다고 한다.

힘차게 뻗어 내린 주룡이 북으로 가니 한줄기 한줄기가 조각난 황금 같고, 청룡은 겹겹이 감싸서 주봉을 호위하고 백호는 국사봉(國師峯)의 호랑이가 얌전히 엎드린 형상이라 한다. 다시 안쪽을 내려다보면 멀리 장군봉·천쌍봉(天雙峯함지봉(咸芝峯함박봉(咸朴峯) 등이 주봉을 향하여 하례하니 군신이 다정하다.

수세는 골육수(骨肉水: 무덤이 있는 산 밑에서 흐르는 물)로 좌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앞으로 모여 양수합금(兩水合襟)을 이루었고, 주위 봉우리들은 사방에서 사신팔장(四神八將)이 둘러싸 나성(羅城)을 이루었으며, 삼길육수방(三吉六秀方)의 영봉들이 정기를 내뿜어 신도안을 비추는 형국이라 한다.

기온의 연교차는 -20℃∼35로 연평균 11를 보이고 있다. 연중 주풍향은 서북풍이고, 여름에는 남동풍 또는 남서풍, 겨울에는 북풍, 봄에서 초여름까지는 북북서풍이 불고 있다. 강우량은 연중 69월에 90가 집중되고, 12월이 가장 적게 나타난다.

연강우량은 1,280이며 하루 동안의 최대 강우량이 1974 229까지 이른 바 있다. 높이 500m 이상의 능선 사이에 있는 계곡으로 미기후(微氣候)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어 일교차가 심하며, 서리는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 중순까지 6개월 정도 내리며, 결빙 기간은 10월 하순부터 다음해 4월 중순까지이다.

동식물 분포는 식물이 860, 포유류 25, 조류가 52, 곤충류가 1,184, 양서·파충류 16, 담수어 25종 등으로 약 2,100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에는 황매화·팽나무·벗나무·회나무·느티나무 등이 있고, 산짐승에는 노루·담비 등, 조류에는 딱다구리·까치·두견이·뻐꾸기·왜가리 등, 곤충류에는 참매미·호랑나비·여치 등, 기타에는 두꺼비·청개구리·살모사 등이 있다. 계룡산의 수목 분포는 54 이상이 침엽수이고, 활엽수가 6, 나머지 40는 떨기나무덤불이다.

관다발식물管束植物은 양치류(羊齒類) 12 23 38 3변종이고, 나자식물(裸子植物) 5 12 20 1품종이며, 속씨식물被子植物 102 372 612 8아종(亞種) 146변종 24품종으로 충청남도에서 사는 식물 중 76나 차지하고 있다.

한편, 관다발식물 중 목본은 304종으로, 그 중 뽕피나무·털피나무·합다리나무·예덕나무·고광나무·오동나무·참느름나무·딱총나무·참조팝나무·산앵도나무·회양목·긴잎회양목·소사나무·말채나무·개비지나무·단풍나무·지포나무·청복분자딸기·복분자딸기 등 19종이 한국 특산이고, 초본은 528종으로 좀닭의장풀·개맥문동·골잎원추리·금관초·벌개미취·산바랭이 등 6종이 한국 특산종이다.

이끼식물蘚苔植物 25 38 58종으로 이 중 선류(蘚類) 11 11 15, 태류(苔類) 14 27 38종이다. 이끼식물은 하천이 흐르는 동학사·갑사·신도안 주변에서 각각 43, 37종이 분포되어 있다. 균류(菌類) 중 담자균(擔子菌)은 광대버섯속·그물버섯속·젖버섯속·낙엽버섯속·주름버섯속 등이 우점종(優占種)이다.

식용버섯으로는 향버섯(능이넓은솔버섯·싸리버섯·바늘싸리버섯·나무싸리버섯·꾀꼬리버섯 등이 분포되어 있다. 동물 중 포유류에 대하여 충남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가 1981 10, 현지 조사와 주민들의 상황 청취를 통하여 작성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두더쥐와 오소리가 굴속에서, 쪽제비가 개울가나 인가에서 발견되었고, 고슴도치도 상당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묘포장에 해를 끼치는 고라니·노루도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와 계룡산 산정에서 발견된 큰부리까마귀가 가장 특이한 것이다.

동학사에서 갑사 사이의 우점종으로는 흰배지빠귀 24.64, 박새 16.36, 산솔새 10.9이고, 백암동에서 신원사 사이의 우점종은 흰배지빠귀 15.69, 붉은머리오목눈이 13.73로 나타나 있다.

 

[역사와 문화유적]

계룡산은 예로부터 계람산(鷄藍山옹산(翁山서악(西嶽중악(中嶽계악(鷄嶽) 등 여러 가지 이칭으로 불렸다. 중국의 문헌에도 당나라 장초회(張楚會) 한원(翰苑)백제조에 계룡동치(鷄龍東峙)’ 국동유계람산(國東有鷄藍山)’이니 한 것은 모두 이 산을 가리킨 것이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이른바 신라5 중의 서악으로서 제를 올려 왔다. 조선 시대에는 묘향산의 상악단(上嶽壇), 지리산의 하악단과 함께 이 산에 중악단을 설치하고 봄가을에 산신제를 올렸다. 계람산이라는 이름은 계곡의 물이 쪽빛같이 푸른 데서 나온 것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4대 명산 또는 4대 진산이라고 일컬어 왔으므로 역사가 얽힌 유적과 유물이 많다. 그 중 갑사와 동학사가 유명하다. 갑사는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절로서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이다.

420(구이신왕 1)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창건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4년인호(印浩)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에는 보물 제256호인 갑사철당간 및 지주, 보물 제257호인 갑사부도, 보물 제478호인 갑사동종, 석조약사여래입상·석조보살입상·사적비·표충원(表忠院공우탑(功牛塔대적전(大寂殿천불전(千佛殿) 등을 비롯하여 31개의 월인석보 판목 등이 있다.

갑사에서 용문폭포를 따라 1.3쯤 오르면 왼쪽에 신흥암(新興庵)이 있고, 그 뒤쪽에 천진보탑(天眞寶塔)이 있다. 이 천진보탑은 천연 석탑으로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한다. 갑사와 등지고 있는 동학사는 비구니의 강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절은 신라 성덕왕 때 회의(懷義)가 그의 스승 상원(上願)의 사리탑을 세우고 창건하였으며, 절 동쪽에 학바위鶴巖가 있어서 동학사라 하였다. 이 절에는 김시습(金時習)이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냈던 숙모전과 길재(吉再)가 공민왕과 정몽주(鄭夢周)를 제사지냈던 삼은각이 있다.

갑사 대웅전으로 가는 다리 밑 계곡에는 군자대(君子臺)가 있는데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160년 전 오경감(吳景鑑)이 퇴관한 뒤 이곳에 와서 울창한 수목과 기묘한 암석 사이를 굽이치는 맑은 물을 보고 가히 군자가 수양할 만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원사(新元寺)는 계룡면 양화리에 있는 고찰이다. 652(의자왕 12)보덕(普德)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본디 신정사(神定寺)라 하던 것을 뒤에 신원사(神元寺)라 하였다가 1885(고종 22)에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경내에는 동쪽에 중악단(中嶽壇), 동남쪽에 5층석탑이 있다.

중악단은 신라 시대 이래의 산신 제단으로 조선 초에는 무학(無學)의 현몽으로 태조가 이곳에서 계룡산 산신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 단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산신 제단으로써 1879년에 중수하였다.

그리고 이 절의 부속 암자인 고왕암(古王庵) 660년에 창건하고 1419년에 중건한 암자로, 백제 말에 의자왕이 이곳에 숨었다가 소정방(蘇定方)에게 붙잡혔다는 전설이 있다.

동학사에서 갑사로 가는 도중의 청량사(淸凉寺) 터에는 남매탑(男妹塔)이라는 두 개의 탑이 있는데, 7층탑을 오라비탑이라 하고 5층탑을 오누이탑이라 하여 합해서 오누이탑으로 불린다. 이 탑들은 고려 시대에 세워졌다고 전하나, 백제석탑양식으로 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백제의 왕족 하나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고 있을 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호랑이를 구해주었더니, 호랑이는 며칠 뒤 예쁜 처녀 하나를 업어왔다. 왕족은 그 처녀를 고이 돌려보냈으나, 그 부모가 딸을 다른 데로 시집 보낼 수 없다 하고 다시 왕족에게로 보냈다.

왕족은 하는 수 없이 누이로 맞이하여 남매가 함께 수도하여 마침내 성도하였다. 그들이 죽은 뒤 몸에서 많은 사리가 나와 사람들이 이 탑을 세워 오누이를 공양하였다고 한다.

조선태조는 이곳으로 천도하기 위해서 궁궐 영조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조운(漕運)의 불편 등 왕도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따라 중단하였으며, 지금도 부남리에는 초석으로 다듬어진 암석이 94개나 있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곳에는 동문거리·서문거리 등의 지명과 함께 신도 역사의 인부들이 일을 마치고 짚신을 털어 봉우리가 되었다는 신터리봉도 있다. 사적지와 명승지로서 널리 알려진 계룡산에 신비감까지 보태준 것이 곧 정감록이다.

이 책은 여러 이본이 있어 종잡을 수 없는 대목도 많은 것 같으나,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완산백(完山伯)의 두 아들 이심(李沁)과 이연(李淵)의 형제가 정공(鄭公)이라고 일컬어진 사람과의 문답을 중심으로 한 감결 鑑訣이 있다.

그 밖에는 세전(世傳)하는 예언적 문서들을 한데 묶어놓은 것인 만큼 통일성이나 일관성이 없는데 있는 그대로 계룡산에 관한 기록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정감록에 적힌 계룡산은 크게 미래의 도읍지라는 것과 피란지라는 것의 두 가지로 집약된다.

먼저 도읍지로서는 감결에서 이심이 ……산천의 뭉친 정기가 계룡산에 들어가니 정씨 800년의 땅이다.”라고 하여 한양에 도읍한 이조 500년이 지나면 계룡산에 도읍한 정조(鄭朝) 800년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어서 정공은 계룡 개국에 변()씨 재상에 배()씨 장수가 개국원훈이고, ()씨와 우()가가 수족과 같으리라.” 하여 개국의 상황까지를 구체적으로 내다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체적 예언은 감결의 부록인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祕記)에도 계룡산에 도읍지가 있으니 정씨가 이곳에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복덕(福德)은 이씨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밝고 의로운 임금이 많이 나와 불교가 크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 피란지로서는 장차 ‘12년 병화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큰 변란이 일어나는데, 그 시기를 암시하는 말들 가운데 계룡의 돌이 희어질 때라 하였다. 이런 큰 난리를 피하여 살아남을 곳으로 이른바 십승지라는 것을 열거하였는데, 그 중 계룡산 또는 계룡산 인근 지역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십승지는 감결에 두 군데 외에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南格蓭山水十勝保吉之地) 등에 보여 지명도 들쭉날쭉 일정하지 않다. 처음 나온 십승지에서는 계룡산이 아예 빠져 있으나, 이어서 여러 문답 끝에 계룡산의 남쪽 바깥의 네 고을 또한 인민이 보신할 만한 곳이다.”라 하였다.

두번째 나온 십승지에는 공주 계룡산 유구(維鳩) 마곡(麻谷) 양수지간의 둘레 200리 안은 가히 난리를 피할 만하다.”고 명기하고, 다시 동북 정선현(東北旌善縣) 상원산(上元山) 계룡봉(鷄龍峯) 또한 가()하다.”고 하였다.

남격암은 십승지에는 넣지 않았으나 그 밖의 장신지소(藏身之所)’라 하여 17개의 명산을 적었는데 그 열 번째에 계룡산을 들었다. 이와 같이, 계룡산은 문서에 따라 십승지에 들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였으나 빠진 경우에도 그냥 빠뜨리기가 아쉬워 꼭 언급하고 넘어간 것을 보면, 역시 피란지로서 공인을 받았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어떻든, 한말부터 세태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정감록 등의 도참설에 매혹되어 계룡산에 관심을 점차 가지기 시작하더니, 민족 항일기 말기에 들어서는 무속 등 전래의 토속 신앙을 비롯하여 각종 신흥종교 및 유사종교가 계룡산 신도안을 중심으로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 중 주류를 이룬 것은 동학(東學)과 정역사상(正易思想)이었다. 이들 신봉자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수도장으로서 피란처를 겸하여 들어왔으나 차차 종교적 형태를 갖추어 가면서 분파에 분파를 거듭하여 수없는 유사종교의 집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처음 동학계통의 시천교(侍天敎) 교주 김연국(金演局) 1912년 신도안을 답사하고 이듬해 많은 토지를 사들였다. 그러다가 1920년 교당을 신축하여 이듬해 시천교의 본부를 그곳으로 옮긴 뒤 각종 신흥종교가 따라 들어오거나, 이곳에서 새로 일어나고 분열되고 하면서 마침내 계룡산은 사교의 요람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문학·예술에 나타난 모습]

계룡산은 비록 웅장한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골물이 쪽빛처럼 맑아서 멀리 보면 전체적 인상이 푸르게 보이고, 가까이 보면 그윽하여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래서 예로부터 온갖 종교가 번성하여 수도장이 되었고, 명당이니 피란처니 하여 도참설이 성행하기도 하였으며, 또 시인 묵객을 비롯한 탐승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계룡산은 수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종교적 성지가 되기도 하며, 관광의 명소로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중환(李重煥) 택리지에서 경도진산(京都鎭山)으로 개성의 오관산(五冠山), 한양의 삼각산(三角山), 진잠(鎭岑)의 계룡산, 문화(文化)의 구월산(九月山)의 넷을 들고, 그것들을 서로 비교하는 가운데 계룡산을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계룡산은 웅장하기가 오관산에 미치지 못한다. 골짜기가 깊숙하게 들어앉은 것이며, () 안 서북쪽에 용연(龍淵)이 있어 심히 깊고 넓게 흘러서 국 안에 큰 시내를 이룬 것은 개성이나 한양에는 없는 것이다.” 하고 이어서 갑사·동학사 등 명승지를 소개하였다.

옛 사람들이 일러온 공주십경 중에 계악한운(鷄嶽閑雲)’을 꼽았거니와, 성종대의 문인 서거정(徐居正)은 이에 대하여 계룡산 높이 솟아 층층이 푸름 꽂고 맑은 기운 굽이굽이 장백(長白)에서 뻗어왔네/산에는 물 웅덩이 용이 서리고 산에는 구름 있어 만물을 적시도다/내 일찍이 이 산에 노닐고자 하였음은 신령한 기운이 다른 산과 다름이라/때마침 장마비가 천하를 적시나니 용은 구름 부리고 구름은 용을 좇는도다.”고 읊었다.

, 세종조의 학자 남수문(南秀文) 독락정기(獨樂亭記)에서 남쪽으로 계룡산을 바라보니 은하수 위로 솟아난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숙종영조조의 학자 남하정(南夏正) 계룡기행이 그의 문집 동소유고(桐巢遺稿)에 수록되어 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하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동학사를 찾았다. 동학사는 계룡산 북쪽 기슭에 있는 옛 절인데, 양쪽 봉우리에 바위가 층층으로 빼어나고 산이 깊어 골짜기가 많으며, 소나무와 단풍나무와 칠절목(七絶木)이 많다. 지금은 절이 절반쯤 무너지고 중이 6, 7인 뿐인데, 그나마 몹시 용렬해서 옛일을 이야기할 만한 자가 없다. ……물을 따라 동구를 나와서 남쪽으로 밀묵령(密默嶺)을 넘으니 이것이 신도(新都) 북문이다.

아래로 전목정(栴木亭)에 이르니 나무는 불에 타고 반쯤 남았는데도, 그 그늘이 소 열마리는 가릴 만하니 그 크기를 알겠다. ……봇도랑의 옛 제도를 찾아 보노라니 절터에 옛 주춧돌이 보인다. 패사(稗史)를 상고하건대 우리 태조 2년에 도읍 터를 이 신도에 잡고 성을 쌓고 대궐을 세울 계획을 세웠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상제가 불길하다고 현몽하므로 이를 취소하고, 대신 한양에 터를 정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곧 그때의 남은 터이고, 지금도 이곳을 신도라고 하는 것은 이 까닭이다.”

다음으로 현대의 한학자 김철희(金喆熙)는 계룡산 시에서 한 번 계룡산에 오르니 만산의 꼭대기인데, 여기 서서 황도(皇道)가 크게 열리는 때를 보네/곤륜산의 원기가 뻗어오기를 멀리하였고, 황해의 정신이 와서 모이기를 멀리하였네. /안으로 불교요 밖으로 유교를 믿는 것이 까닭이 있고, 하늘을 높이고 땅을 낮추는 것이 이치가 모두 그렇겠도다 /내가 온 것은 아름다운 경치 보려는 것뿐이 아니라, 산신령께 빌어 함께 신선이 되려는 것이었네/거꾸로 계룡산에 오르니 높다랗게 하늘에 닿았는데, 사방으로 둘러싸인 모든 산이 비단 병풍과도 같네.”라고 찬양하고, 이어서 계룡산에 대한 시편들을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우리나라 공주에 있는 산을 이름하여 계룡산이라 하는데, 그 산의 생김새가 엄연하고 따뜻해서 마치 군자가 예양(禮讓)하는 모양과 같으며, 아름답고도 곱고 덕이 맑은 가인(佳人)의 고요하고 한가로운 얼굴과 같으면서도, 높고도 커서 호걸스럽고 잘난 선비가 우뚝 서서 건드리지 못한 것만 같다. 이 태조가 도읍 터 공사를 시작하였다는 전설이 있고, 정여립(鄭汝立)의 불령스러운 옥사가 있었으니 그 신령스러운 기운이 평범하지 않은 것은 비록 아는 자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이장(李丈)이 이 산 속에 수년 동안 살면서 봉우리 이름과 물의 명칭의 연유와 대(바위··민사(民社) 등의 토속 유래까지를 다 조사하고, 가는 곳마다 절구(絶句) 한 수씩 지어 이것을 합쳐서 계룡시첩 鷄龍詩帖이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한 걸음도 걷지 않고서 산의 안팎 모든 명승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게 하였으니, 그 마음씀이 가히 넓다고 하겠다.”

 

[자원]

계룡산의 산지는 대개가 키 작은 나무로 구성된 산림지대이고, 갑사·동학사·신원사 등 큰 사찰 부근에 땔나무 숲이 약간 산재해 있다. 농경지는 산 주위의 계룡면과 반포면 계곡에 전답이 약간 있어 쌀·보리·콩과 그 밖에 약간의 과수가 재배되고 있다.

광산자원으로는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 연간 생산량 1,800t 규모의 아연광(亞鉛鑛)이 있었으나 10여년 전부터 채광이 중단된 채 폐광되었다.

계룡산의 자원적 가치는 관광자원이 으뜸이다. 계룡산은 봄철의 춘산백화(春山百花), 여름철의 녹음방초, 가을철의 만산홍엽, 겨울철의 심계백설(深溪白雪) 등 철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용문(龍門)과 은선(隱仙)의 두 폭포를 이루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1964년 우리나라의 8대 관광지를 인기 투표하였을 때 계룡산은 제5위를 차지할 만큼 손꼽히는 명승지로서, 1968 12 31일자로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의 국립공원이 되었다. 교통편은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서울·대전·대구에서 3시간 이내에 갈 수 있고, 대전 및 공주에서 시내버스가 내왕하고 있어 비교적 편리하다.

계룡산에는 백제 문화의 유적과 대찰, 그리고 명승지가 많아 역사 관광 또는 자연 관광지로서 좋은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다. 산의 모습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골짜기마다 푸른 늪이 있고, 시원한 폭포가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 세 곳의 큰 절이 동학사는 동쪽에, 갑사는 서북쪽에, 그리고 신원사는 서남쪽에 알맞게 배치되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계룡산 안에는 지정 문화재가 15, 비지정 문화재가 13점이 있고, 크고 작은 사찰이 22개소나 있다. 자연경관으로는 산봉우리가 15, 계곡이 7, 폭포가 3, 이름난 암굴도 5곳이나 된다.

그 중에서도 계룡팔경은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데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1경은 천황봉의 일출로 계룡산의 최고봉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에 그림 같은 조망이 펼쳐진다. 특히, 아침에 보는 해돋이는 너무도 장엄하여 가히 첫 손가락을 꼽을 만한 장관이다.

2경은 삼불봉의 설화(雪花), 삼불봉은 세 부처님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 나무숲에 눈이 쌓이면 신비로운 경관을 이룬다.

3경은 연천봉의 낙조로, 산 높이로는 계룡산 중 여섯 번째이지만 산 모양이 준수하기로는 으뜸이다.

갑사계곡과 신원사계곡을 좌우로 두고 우뚝 솟아 발 아래에 상원들과 계룡지·경천지 등의 절경을 안고 있다. 이곳의 지는 해는 천황봉의 일출과 쌍벽을 이루는 장관이다.

4경은 관음봉의 한운(閑雲)으로 관음정에 누워 한가로이 떠다니는 흰 구름을 바라보면 세상사가 한낱 물거품과 같다 한다.

여기서 쌀개봉으로 이어진 철쭉 길은 관음봉의 자랑이다. 공주십경의 하나인 계악한운은 곧 관음봉의 한운을 가리킨 것이다.

5경은 동학계곡의 신록으로, 학바위 앞에서 관음봉 고개까지 3.5에 이르는 계룡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흔히 춘 동학, 추 갑사라 하는데, 이 계곡의 울창한 숲에 신록이 돋아나면 온 산에 생기가 약동한다.

6경은 갑사계곡의 단풍으로 계룡산 단풍은 널리 알려진 가경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갑사를 싸안고 오리숲에서 금잔디고개에 이르는 갑사구곡의 단풍은 마치 불타는 듯하여 가을 계룡의 으뜸 가는 경관이다.

갑사구곡은 남쪽으로 난 계곡에 있는데  용유소(龍遊沼),  이일천(二一川),  백룡강(白龍崗),  달문택(達門澤),  군자대(君子臺),  명월담(明月潭),  계룡명암,  용문폭포,  수정봉이 그것이다. 특히, 6곡인 명월담에는 취사장이 마련되어 있고, 왼쪽 바위 밑에 석조약사여래상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용문폭포를 거쳐 금잔디고개·오누이탑·동학사로 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연천봉·관음봉·은선폭포를 지나 동학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8곡인 용문폭포는 등산객이 가장 많이 찾는 절경이며, 9곡인 수정봉은 이름 그대로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모양의 바위산이다.

7경은 은선폭포의 운무(雲霧)로 동학사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약 20m 높이에서 내리 쏟아지는 물줄기는 동학계곡의 유일한 폭포이기도 하다. 폭포 앞의 기암절벽은 자연경관의 극치이고,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쓸개봉의 위용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옛날에 신선이 숨어 살았대서 이 이름이 생겼다 한다.

8경은 오뉘탑의 명월로 오뉘탑은 남매탑이라고도 하나 제대로의 이름은 청량사지쌍탑(淸凉寺址雙塔)이다. 삼불봉의 기슭에 있는 이 탑은 둘이 한 쌍을 이루는데, 큰 탑은 화강석조의 7층탑으로 상륜부는 결실되었고, 작은 탑은 원래 5층탑이었으나 4층까지만 남아 있다.

이 작은탑은 부여의 정림사지석탑(定林寺址石塔)을 충실히 모방한 걸작품이다. 이들 탑에 얽힌 의남매전설을 생각하면 숲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은 신비감에 젖게 한다. 이들 팔경 외에도 용추폭포 등 명승지가 많다.

용추폭포는 신도안에서 신원사 쪽으로 2 지점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숫용추가 있고, 동북쪽 용화사(龍華寺)쪽으로 3.2 지점에 암용추가 있어 이 두 폭포를 아울러 이른다. 이곳은 영험한 곳이라 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계룡산에는 갑사 입구의 갑사저수지(또는 계룡저수지)와 신원사 입구의 신원사저수지(또는 경천양화저수지)가 있어 공해 없는 낚시터를 찾아 낚시꾼들의 사랑을 받는다. 계룡산에는 여러 개의 등산 코스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의 두 길이다.

1코스는 주차장·동학사·오누이탑·금잔디고개·신흥암·용문폭포·갑사·주차장으로 이 코스는 총 8,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 길은 거꾸로 갑사에서 시작하여 동학사로 나가도 좋다.

2코스는 주차장·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연천봉·갑사·주차장으로 총 8.8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계룡산을 찾는 관광객은 유성온천에 온천욕을 겸해서 가기도 하고, 또는 대전국립묘지 참배를 겸해서 가기도 한다.

 

[현황]

국립공원 계룡산 지구의 자연환경 및 관광자원 보호를 위하여 일대 5m에 걸쳐 자연환경 보호지구를 설정하고 동서남북 사방으로부터의 진입로의 건설 및 확장, 그리고 도로의 포장을 서둘러 시행하였다.

계룡산에는 현대 시설 지구가 있는데 삼불봉과 관음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동학사 지구와 서쪽에 갑사 지구의 두 집단 시설지가 있다. 계룡산은 우리 국토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하기 쉽고, 역사적·자연적으로 우수한 관광자원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서 탐방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공주·부여 등을 연결하는 문화 유적 관광축으로, 계룡산 국립공원과 주변의 휴양지인 칠갑산 도립공원·대둔산 도립공원 등과 상호 연계되기 때문에 다양한 관광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옮김)

 

계룡산

요약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이며 높이는 845m이다. 차령산맥 서남부에 있으며 금강에 의한 침식으로 이루어졌다. 산세가 험하며, 노성천·구곡천·갑천 등이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2줄기, 서쪽으로 1줄기를 뻗치고 있는데, 전체 모습이 닭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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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845m. 차령산맥 서남부에 솟아 있으며, 금강에 의한 침식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도덕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2줄기, 서쪽으로 1줄기를 뻗치고 있어, 전체의 모습이 마치 닭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했다.

산세가 험하며, 노성천·구곡천·갑천 등이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연평균기온은 11 내외이며, 연강우량은 1,280 정도로 6~9월에 강우량의 90%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식물 804, 포유류 27, 조류 110, 곤충 2,113, 양서·파충류 21, 어류 21종 등 3,619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예로부터 신라 5악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제사를 지내왔고, 조선시대에는 중악단(中嶽壇)을 세워 산신제를 지낼 만큼 신령스러운 산이었으며,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이다. 정감록에서는 이 산 일대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예언했고 조선초에는 계룡산 신도안에 왕도를 건설하려 할 정도로 명당이라 알려졌다. 19세기말부터 나라가 혼란해지자 신도안을 중심으로 전래의 무속신앙과 각종 신흥종교가 번성하고 이들의 수도장으로 이용되어, 계곡 곳곳에 교당과 암자·수도원·기도원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종교정화운동으로 시설물들이 철거되고 주변을 정리해,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1968 12월 지리산에 이어 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의 총면적은 65.34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산봉·계곡·폭포·암굴 등의 특출한 자연경관을 비롯해 갑사·동학사·신원사 등의 고찰과 유물유적이 많아 교육의 장으로도 적합하다.

비구니들의 불교 전문 강원(講院)인 동학사는 산의 동쪽 기슭에 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동쪽에 학바위가 있어 동학사라 했다. 고려말·조선초 삼은의 위패를 모신 삼은각과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냈던 숙모전 등이 있다. 서쪽 기슭에 자리한 갑사는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백제시대에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했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 인호대사가 다시 중건했다.

갑사 삼신불괘불탱(국보 298)·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299) 등 국보 2점과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부도(보물 제257), 구리가 8,000근이나 들었다는 동종(보물 제478)을 비롯한 보물 6점 외에도 지정문화재 9, 비지정문화재 10점 등이 보존되어 있다. 갑사에서 용문폭포를 따라 1.3 정도 오르면 천연석탑인 천진보탑과 신흥암이 있다.

서남쪽에 있는 신원사는 652(의자왕 12)에 보덕화상이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뒤에 다시 지은 것이다. 경내에는 산신제단인 중악단, 5층석탑 등이 있으며, 주위에 고왕암·등운암 등 암자가 있다. 이밖에도 용화사 등 많은 절이 있다.

또한 계룡8경으로 알려진 뛰어난 경치 8곳이 있는데, 1경은 주봉인 천황봉의 일출이며, 2경은 세 부처님의 모양을 닮았다는 삼불봉의 설화(雪花)로 겨울 설경이 신비롭다. 3경은 천황봉의 일출과 쌍벽을 이루는 연천봉의 낙조이며, 주위에 갑사·신원사 계곡 등이 있다.

4경은 관음봉에서 바라다보는 흰구름이며, 이곳에서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철쭉길 또한 유명하다. 5경은 춘동학 추갑사로 표현되는 울창한 숲의 동학사계곡이며, 6경은 갑사계곡의 단풍으로, 특히 용문폭포를 포함한 갑사구곡이 유명하다. 7경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은선폭포이며, 8경은 청량사터의 전설에 얽힌 청량사지쌍탑(지방문화재 제1)이다.  7층탑을 오라비탑, 5층탑을 누이탑이라 하여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영험한 기도터로 알려진 수용추폭포와 암용추폭포가 있으며 계룡·양화 저수지는 낚시터로 유명하다.

동학사-오누이탑-금잔디고개-용문폭포-갑사 코스와 갑사-연천봉-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 코스는 등산로로 유명하다. 산 주위에 유성온천·무령왕릉·용국사·공산성·노성산성 등이 있어 관광지로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관광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식당·상가 등 각종 관광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대전에서 갑사까지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옮김

 

암용추 숫용추

계룡산의 정기를 받은 연못으로 옛날 숫용이 승천하여 올라간 자리라는 설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옛날 이곳에 살던 암용이 먼저 승천하였고 뒤이어 숫용추에 살던 숫용이 올라갔는데, 이 광경을 본 마을 사람들이 암용이 올라간 연못을 암용추라 불렀고 숫용이 올라간 연못을 숫용추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10m 높이 폭포가 아래로 떨어지며 화강암 바위 면에 약 4m 깊이의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연산) "계룡산 아래 봉우리 둘이 깊은 골짜기를 이룬 가운데 큰 바위가 있는데 거북이 모양으로 굴을 이루고 있다. 그 너비는 30여 척이나 되며 가운데 물이 있는데 그 깊이는 바닥을 알 수 없다. 사람들이 나무와 돌로 메웠는데 이튿날 모두 나와 있었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연못 아래에는 항상 용()이 사는데 공중으로 떠오르는 기운을 타고 드나든다고 한다. 가뭄을 만나 비를 내려달라고 빌면 번번이 효험이 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정도령 바위

정도령 바위.일명 사자바위,백호 바위라 부르기도 한다."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가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들을 구제하고 5만년 태평성대를 이어갈 방법이 없는냐고 신하들에게 말하자 두 신하(,녀 사랑하는 사이)가 말하길 계룡산 신도안에 정도령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후덕하고 만백성에 칭송을 받는 자라고 아뢰고 계룡산에 단을 쌓고 천일 기도를 하면서 내 세상을 다스릴 비법을 전해줄 것이라 이르니 신하가 신도안의 정도령을 찾아가 옥황상제의 옥음을 전하니 만 백성들이 기뻐 하였다.이에 정도령은 좌우에서 보필하는 두신하를 데리고 계룡산 천황봉에 단을 쌓고 천일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정도령이 천황봉에 올라 천일 기도를 드리면 두신하도 무릅을 끊고 기도를 드렸다.그러던중 999일 기도를 마치고 하루만 더 기도를 마치면 정도령은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할 비법을 전수받게 되는데 정도령이 장차 옥황상제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는 간신들의 거짓 진언에 옥황상제가 진노하여 정도령을 둘이 되게하고(정도령바위) 하던 두신하들도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사랑하는 두신하가 마주보고 있는 바위가 "문다래미"이다.

 

팔재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산.

[명칭유래]

산봉우리 밑부분의 돌이 여덟 팔자 모양을 띠고 있어 팔재산 또는 팔자산이라 한다.

[자연환경]

팔재산은 높이가 350m이며, 전체적으로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부는 규장암, 석영반암, 화강반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룡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와우산, 성화산에 이어지는 남쪽 능선에 해당된다. 동쪽으로는 계룡산지, 서쪽으로는 월암천이 흐르고 있으며, 팔재산의 남쪽은 갑사 곡구를 비롯한 계룡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현황]

팔재산의 서쪽은 공주~논산에 이르는 구조곡이 있는데, 이 골짜기를 따라 현재 국도 23호선이 달리고 있다. 팔재산의 남쪽에는 계룡저수지가 있는데, 이 계룡저수지에서 북동쪽으로 계룡산의 유명한 사찰 중 하나인 갑사가 자리잡고 있다.

팔재산의 서쪽과 남쪽은 모두 전형적인 곡저 충적지이다. 계룡저수지의 북동쪽과 팔재산 남서쪽의 월암리 일부에서만 밭농사가 행하여지며, 나머지 평지에서는 모두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팔재산의 말단부에는 공주의 특산물인 밤이 재배되고 있다.

팔재산은 최근 호남고속철도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개발과 보전의 논란 속에 제2의 천성산으로 불리고 있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에서 옮김)

 

성항산(성정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 있는 산.

[개설]

성항산(城項山)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데, 국립지리원에서 1961 4 22일 성정산(城頂山)으로 고시하였다.

[명칭유래]

특별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둘레 약 800m나 되는 백제시대의 용산성(龍山城)의 성 터가 남아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성이 있던 산이라 하여 명칭 그대로 성정산이라 불리우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자연환경]

성정산은 공주시가지로부터는 남쪽에, 이인면소재지로부터는 동쪽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높이는 217.1m이며, 금강 이남의 구릉성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반상쇄층화강암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산체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남북은 길게 안산암질암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사면은 운모편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정산의 주변은 금강 부근의 여느 구릉성 산지와 마찬가지로 그 지류들에 의해 형성된 곡저 충적지가 발달해 있는데, 이곳을 흐르고 있는 용성천에 의해 형성된 북동쪽의 안산들과 서쪽의 괴암앞들이 자리잡고 있다.

[현황]

성정산 주변은 모두 충적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 대부분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으나, 성정산 서쪽에 형성되어 있는 단구들을 비롯한 사면 말단부에서는 일부 밭농사와 과수 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성정산의 바로 서쪽으로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와 부여~공주를 잇는 국도 40호선이 지나고 있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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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20:04

요즘 날씨가 한여름 날씨라 걱정이다. 아직은 이렇게 무더울 때가 아닌데 기상이변인지 30도를 훌쩍 넘는 날씨다. 기상관측상 이렇게 더위가 일찍 온 적은 없다고 한다. 오늘 낼도 마찬가지라 하니 낼 산행이 걱정이 된다. 오늘 산행은 금남정맥 3번째 산행으로 양정고개에서 시작하여 계룡산을 지나고 공주에서 부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공주 탄천면에 있는 진고개까지 가보려 한다. 시간이 부족할 경우 복룡고개에서 마치기로 산행계획을 짜고 저녁차로 계룡역 까지 간 후 야간산행으로 시작하려 한다. 계룡역에서 부터 계룡산을 거쳐 박정자 삼거리 까지는 전에도 한번 산행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제구간이 있어 찜찜하긴 해도 10년 기한이 넘어도 어짜피 또 10년씩 계속 연장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는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국립공원 행정의 맹점이다. 정맥하는 사람이나 산에 자주 다니는 사람들 이런 것 모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굳이 과태료 각오하고 이 구간을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도 적막님과 둘이서 산행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조치원역에서 21 21분 여수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20 04분 나선다.

 

계룡역 22:06 ~22:09

집을 나서 버스승강장에 나가니 금시 조치원으로 가는 502번 버스가 온다. 이 버스를 타고 30분이 좀 더 지나 조치원역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역 광장에서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분들이 요란한 악기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귀가 멍멍할 정도의 고음으로 좁은 역 광장에서의 공연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불륨을 좀 줄여 주든지 ~~

조치원역 대합실로 빠르게 도망치듯 들어가니 좀 살 것 같다. 계룡역 까지 열차표를 끊고 기다리자니 너무 일찍 와서 인지 지루하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티비를 보며 시간을 보낸 후 승강장으로 나가려니 적막님으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시간이 없어 커피도 못 마시고 왔다고 천원짜리 커피 사오라구!! 지금껏 요런 것 적막님 담당이라 신경두 안 썻는대 막상매점에 들어가 요것 찾으려니 눈에 안 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아이스크림 넣는 곳을 보니 아 ~~ 이 넘이 이곳에 숨어 있었다. 얼음통은 아이스크림 박스 안에 블랙커피봉지는 바로 그 위쪽 진열대에 이제는 이 넘 찾는데 이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서 시간을 많이 보내 승강장으로 나가니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열차에 오른 후 적막님과 만나 커피한잔씩 마시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 나누며 50여분의 시간이 흐르니 계룡역에 열차가 도착을 한다. 이번 정맥산행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엄사리 산길 입구(3.83km, 150m) 23:04

계룡산 천단 도착시간이 아무래도 너무 이를 것 같아 계룡역에서 부터 걸어가기로 한다. 양정고개 까지 대략 2.3km이니 거리도 얼마 되지는 않는다. 또한 전에도 걸어본 곳이기에 낮설지는 않은 곳이다. 열차에서 신발끈은 맺고 내리자마자 걷기 시작한다. 조금 걸어가니 양정고개 방향으로 가는 2002번 버스가 지나가고 그후 그 방향으로 가는 버스 2대가 더 지나간다. 우리는 팥죽다리를 건너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공원 옆을 지나기도 하고 철길건널목이 보이는 지점을 지나기도 하며 철길과 거의 평행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면 어느덧 시내구간을 지나 한적한 도로에 닿는다. 도로변으로는 어둠이 내려 가끔씩 지나는 차 외에는 인적이라곤 없다. 좌측으로 천마사로 들어가는 지점을 지나 좀 더 가면 양정삼거리다. 신호에 따라 도로를 건넌 후 조금을 더 가면 저번구간 산행이 끝난 지점인 계룡지구대 앞이다. 지구대 앞에서 조금 지나 좁은 골목입구에서 후레쉬, 스틱등 야간 산행준비를 한 후 골목길을 건너 삼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가면 그 끝에서 신도초등학교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 길을 따라 철길 위 과선교를 건너고 몇 블럭을 더 지나 엄사초등학교가 나오면 좌측으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 엄사초등학교가 끝나는 곳에서 다음 블록으로 우측으로 돌아서 가면 큰 도로를 한번 건너고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향적산으로 가는 산길 입구 계단과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 닿는다. 오늘 우리가 온 길이 시내구간으로 정확치는 않지만 능선에 가장 가깝게 온 길이다.

 

싸리재 (7.18km, 310m) 00:00

한낮에 그 뜨껍던 날씨도 밤이 되니 시원하니 산행하기에 딱 맞다. 이렇게 야간 산행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엄사리 산길 입구 계단 옆으로 이정표가 있다. 향적산 정상 5.01km, 양정 1.6km가 적혀 있으며 옆으로 금남정맥 안내도가 있다. 천호봉에서 계룡산 천황봉에 이르는 금남정맥 중 가장 멋진 구간이라며 자세한 안내도까지 곁들여 있다. 금남정맥을 권장하는 것인지 눈을 감아주겠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둘 다 이해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오늘 밤 이 구간을 들어가려 한다. 첫머리는 널찍한 테크길 계단으로 시작을 한다. 전에 왔을 때는 이 계단은 없었다. 계단을 오르면 멍석 같은 재질을 깔아놓은 길을 지나고 이어지는 길은 널찍하니 좋다. 나무들이 우거져 양쪽으로 불빛도 거의 차단이 될 만큼이 숲이 좋아 졌다. 15분 정도를 오르니 우측으로 샛길이 하나 보이고 1분후 우측 청송약수 방향에서 올라온 길과 합류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다. 좀 더 가면 송전탑이 있고 제2정문 0.44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 서서히 오르는 길을 따라 7분을 더 가면 제2정문(군사시설 출입금지)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난 후 운동기구가 있는 부근의 헬기장에 닿는다. 여기서 10분을 더 가면 두 번째 헬기장으로 지금은 공터로 되어 있다. 여기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무상사 0.97km가 적혀 있다. 이제 서서히 내려서기 시작하면 운동기구와 정자가 있는 싸리재 고개로 좌측은 무상사, 우측은 군사시설로 철문으로 막혀 있다.

 

국사봉(8.80km, 454m) 00:42

싸리재에서 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6분을 오르니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향적산 정상, 엄사리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우측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씩씩거리고 10분을 오르니 바위봉이 나온다. 우측으로는 계룡산 천황봉의 안테나 불빛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향적봉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측 길을 따라 계룡산 천황봉으로 향한다. 이미 입구에서 권장하는 문구를 보았기에 서슴없이 들어간다. 등산로는 좋은 편으로 거의 대부분 평탄한 길이기에 큰 힘도 들지 않는 구간이다. 능선 좌측의 금강대학 쪽으로 마을마다 불빛이 보이고 우측 계룡시 쪽으로는 불빛을 거의 볼 수 없다. 삼거리에서 13분을 진행하니 산경표에 멘재라고 뜬다. 양쪽으로 하산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에는 이고개로 넘어 다녔을 것인대 군 시설이 들어온 후로는 길이 막혔을 것이다. 멘재를 지나고 다시 13분을 진행하니 트랭글이 운다. 국사봉이라고 한다. 정상에 올라서니 구부러진 소나무가 있을 뿐 표지기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공단에서 제거를 한 것인지 인기가 없어서 붙여 놓치 않은 것인지 모른다.

 

바위전망대(10.85km, 435m) 01:34~01:45

국사봉을 지나고 좀 더 가면 바위지대로 낮이라면 바위에 올라서 조망도 보겠지만 밤이라 그냥 진행을 한다. 다시 가면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금강대학 쪽으로 많은 불빛이 보이는 바위전망대다. 전망대를 지나 바윗길을 따라 오르면 508봉으로 숲이 우거져 좌우로는 보이는 것이 없다. 508봉을 지나며 몇 개의 참호가 있다. 조금씩 내려서는 길로 우거진 숲을 헤치고 나가면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걸어서 흰색의 헬기장 표시가 정확히 보이는 헬기장에 닿는다. 여기를 지나서 조금씩 내려서면 소나무숲길로 걷기에 좋은 능선길이 나온다. 잠시 후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8분이 지나서 용천령에 닿는다. 좌측은 신원사 방향의 용화사가 있고, 우측으로는 숫용추나 머리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 사거리다. 이곳을 지나서 다시 걷노라면 10여분을 서서히 올라서서 조망이 좋은 바위봉에 닿는다. , 우측 전면 모두 조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간식으로 빵을 하나씩 나누어 먹은 후 출발을 한다.

 

천황봉 정상(천단 표지석, 13.1km, 845m) 03:08 ~03:18

435봉 바위전망대세 잠시 휴식 후 출발을 하면 8분후 큰서문다리재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숫용추나 머리봉으로 갈수 있고, 능선을 따라가면 청송심씨묘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면 신원사 쪽에서 올라온 길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이후로는 가파른길이 계속이어지며 가끔씩 바위지대도 올라야 한다. 매우 지루하게 오르는 길로 야간에는 바위도 있고 산길이 험하여 조금은 쉽지 않은 길이다. 우리가 휴식을 한 435봉 바위전망대에서 꼭 1시간을 오르니 천황석문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 계룡산의 정상인 천황봉으로 오르는 능선이다. 석문 좌, 우측으로는 바위지대로 절벽에 가까워 쉽게 오르지 못한다. 혹여 낮이라면 위험을 감수 하겠지만 밤이라 엄두를 못 낸다. 여기저기 올라갈만한 곳을 찾다가 반대편으로 넘어선다. 조금 지나니 노랑색 표지기가 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오르면 바위절벽아래를 따라 우측으로 간 흔적이 나온다. 이 흔적을 따라 우측으로 이동을 하면 끝에서 능선에 닿는다. 바로 바위 절벽 위쪽으로 보인다. 이곳부터는 능선을 따라 간다. 가끔씩 커다란 바위가 있고 잡목으로 길이 잘 보이지 않은 곳들이 있지만 천황석문에서 15분 정도를 오르면 철조망이 쳐져 있는 바위아래에 닿는다. 이곳에다가 배낭을 벗어 놓고 오른다. 바위를 살짝 올라서면 철조망이 나온다. 원형철조망으로 새로이 보강을 하여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이동을 하면 끝에서 넘어 설수 있다. 철조망에 달려 있는 매서운 가시에 조심해야 한다. 철조망을 넘어서면 좌측 건물에서 이곳으로 오는 테크 길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에 보이는 높다란 송전탑 옆으로 오르면 곧 천단아래 커다란 바위에 닿는다. 여기서 살짝 우측으로 돌아서면 산제단 표지석이 있고, 백호할머니제단이 있다. 다시 바위를 올라서면 계룡산의 최정상으로 여기에는 천단이라 적혀 있는 표지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천단에 오르기를 원하지만 현재는 군사시설이 있어 통제구역으로 묶어 놓아 마음대로 오를 수 없는 곳이다. 어쩌다 허가를 받고 오르는 산악회도 있으나 허가를 받는 루트를 알아야하고 번잡하기에 대부분은 그냥 올라와서 들키면 사진지우고 내려선다. 천단은 2003 5월에 심대평지사가 도민등 300명이 참석해서 복원을 했다. 하루 속히 개방하길 소망한다.

 

쌀개봉(13.95km, 829m) 04:25

천황봉 천단에서 이제 내려선다. 올라올 때 보다는 그긋하니 여유가 있다. 올라 올 때는 혹시나 군인들이 나타나지 않나 해서 조금은 걱정이 되었고 초행길이라 잘 찾아 갈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기 올라가려고 다른 분들 다녀온 과정등 사진을 눈으로 익히고 또 익혔다. 요즘 통신망이 발달하고 위성으로 모든 것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렇게 통제를 하면 뭘 하나 싶다. 군사 기밀도 아니지 않는가? 공연히 철조망에 옷 찢기고 상채기 나지 않게 개방을 하길 바란다. 아니면 정상이 아닌 곳으로 시설을 옮기던지 최전방 지역도 거의 대부분 개방이 되어 안가는 곳이 없는데 여기가 그리 중요한 시설인지 의문점이 생긴다. 이제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왔다. 천황석문아래에서 우측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무엇에 홀렸는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전에도 석문을 빠져나와 천황봉을 돌아서 사용하지 않는 초소로 나왔었는데 길이 안 보인다. 다시 천황석문으로 돌아가서 길을 따라 온다. 노랑 표지기에서 우측으로 갔으면 되는 것을 여기서 착각을 하고 아래로 내려와서 길을 찾으니 있을리 만무 다. 이래서 여기서 20여분간 헤메다가 길을 찾아 천황봉에서 이어지는 주능선길 참호에 닿은 후 능선을 따라가면 첫 번째 홍수경보시설이 있는 바위봉에 오르고 안부로 내려선 후 오른편 사면을 따라 내려선 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쌀개봉 통천문이 나온다. 이통천문을 통과 하여 오르면 쌀개봉이고 이곳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면 향적봉능선으로 가는 길이다. 향적봉 능선도 바위 암릉 길이 상당히 좋은 곳이다. 통천문을 지나 쌀개봉에 오르니 표지기 몇 개만 보인다.

 

관음봉(14.74km, 766m) 04:58 ~05:31(아침식사)

쌀개봉에서 내려서는 곳이 바위지대로 위험한 곳이다. V계곡 정면에서 약간 좌측으로 돌아오는 지점으로 로프가 매여져 있어 잡고 내려왔으나 밤에는 쉽지가 않는 곳이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서서 좋은 길로 온 것 같아 내려서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올라와 반대편 바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바위슬랩 마지막 부근에는 가느다란 줄이 매여져 있어 잡고 올라가도 되고 그냥 올라서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이제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면 우측으로 동학사 방향으로 불빛이 보이고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여온다. 벌써 스님들이 기침을 한 것이다. 아직은 날이 어둡지만 곧 날이 밝아 올 것이다. 바위능선을 따라가다가 난 좌측으로 내려서서 좋은 길을 따라 진행하고 적막님은 능선 길을 따라 진행한다. 몇 분후 목책이 쳐져 있는 관음봉고개로 넘어서니 날이 어느 정도 환해진다. 낙뢰가 심한지역인지 낙뢰에 대한 안내문이 있고 이정표 아래에 등산안내도가 같이 있다. 연천봉 1.0km, 동학사 2.3km, 관음봉 0.1km가 적혀 있다. 관음봉고개를 뒤로 하고 이제 관음봉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돌계단으로 오르고 다시 널찍한 테크길을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 전망대도 보이고 이제 어둠이 물러나고 있어 서서히 세상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삼불봉 너머로는 붉게 물든 하늘이 곧 해가 올라올 것 같다. 고개에서 3분여 오르니 관음봉이다. 정자가 있고 삼불봉 쪽을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다. 정상바위에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고 잘못된 높이를 바로 잡았다는 안내문구도 보인다. 해발 766m의 관음봉은 정상인 천황봉이 통제구역으로 묶어 놓은 때문으로 계룡산의 정상 노릇을 하고 있는 곳으로 세갈래 계룡산의 능선이 갈리는 정중앙에 자리 잡은 봉이다. 이곳 정자에서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식사가 끝나고 해가 떳나 보려 하니 벌써 한뼘이 올라와 있다. 연무현상으로 맑지 않은 하늘로 시야가 좋지를 않다. 관음봉에서 바라보는 삼불봉 능선이 아름답고 연천봉으로 3개의 바위봉이 멋지며, 높다란 천황봉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삼불봉(16.26km, 775m) 06:24

관음봉에서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자연성릉이라 한다. 계룡산의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아침햇살을 받아 은은한 빛이 비추니 더욱 아름답다. 삼불봉으로 향하는 첫머리는 철계단으로 내려선다. 철계단 옆으로 아직 지다만 철쭉이 햇살을 받아 이쁘장하다. 철계단을 내려서 암릉길을 따라 이어가면 절벽에 붙어서 자란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절벽지대를 올라서 난간이 설치된 암릉길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절벽 길을 따라 가면 해발 715m로 자연성능 이정표(관음봉 0.8km,삼불봉 0.8km) 가 있는 지점을 지난다. 긴 나무다리를 지나 계단을 오른 후 철계단을 몇 번 지나 오르면 노송에 철난 간이 있는 전망좋은 삼불봉 직전 암봉에 올라선다. 이봉에서 내려서면 산소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편으로는 정맥길로 금잔디고개를 거쳐 수정봉 쪽으로 가는 길이고, 삼불봉은 오른편 길을 따라 가야한다. 정맥 길에서는 벗어낫지만 잠시 삼불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거리가 약250m정도 된다. 능선을 따라가면 삼불봉으로 오르는 길 다란 철계단이 나온다. 삼불봉에 오르니 산 조망도가 설치되어 있고, 삼각점이 있으며, 계룡산 제2경 삼불봉 설경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경치가 매우 좋다. 계룡산 전체가 아침햇살을 받아 그림처럼 아름답다. 먼저 올라와 기도를 드리고 있는 분인지 인사를 하고는 우리는 삼불봉의 멋에 빠져 사진도 찍고 조망을 즐긴 후 급히 하산을 한다.

 

바위전망대 07:42

삼불봉에서 내려와 다시 정맥 삼거리로 돌아와 정맥길을 따라 내려서기 시작하면 몇 기의 산소를 지나고 우거진 숲길을 지나 10분을 좀 더 내려오면 금잔디고개에 닿는다. 금잔디고개는 커다란 헬기장으로 되어 있으며 이정표에 갑사 2.3km, 남매탑 0.7km, 상신탐방지원센타 3.0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수정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기 시작하며 트랭글에서 수정봉 빼지가 도착을 한다. 5분여 오르니 좌측 금잔디고개 위로 아름다운 소나무들로 들어선 곳이 나온다. 이곳이 수정봉으로 보인다. 아무런 표시도 없다. 다시 돌아 나와 우측으로 가면 커다란 바위가 있는 해발 약662봉에 닿고 이어지는 능선은 조금씩 오르내리며 간다. 안부사거리를 지나고 앞쪽의 바위봉으로 오르다가 우측 우회 길로 간다. 적막님은 바위봉으로 올라서 진행을 한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서 가면 해발 약610봉을 지나고, 다시 5분을 더 가면 큰 소나무가 있는 해발 약580봉이다. 이봉에서 이제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를 더 가면 좌측으로 갑사가 내려다보이고 지나온 관음봉에서 연천봉에 이르는 능선이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바위전망대에 닿는다. 갑사 아래로 짓다만 큰 건물도 보이고 중장삼거리 부근의 마을들이 내려다보인다.

 

325(삼각점, 산소지대로 고사리 밭, 삼각점, 20.78km) 08:30

바위전망대에서 조금 더 오르면 612봉으로 우측으로 우회길이 있다. 우회길을 따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 직진으로 내려서는 길은 구재를 거쳐 달갈봉, 명덕산 방향으로 가는 능선이고 정맥 길은 우측으로 612봉 사면을 따라 좌측 능선에 붙어야 한다. 이 능선을 따라가면 커다란 소나무 군락지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다가 가파르게 내려서기 시작하여 10여분 후 삼거리가 나오면 우측 길을 따라 내려서야 한다.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길은 좋아지기 시작하여 평탄해다가 송신탑이 나온다. 이 부근 산소 옆으로 고사리 밭이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지만 능선 끝까지 간 후 우측으로 내려서면 만학골재 도로에 닿기 전 철조망이 쳐져 있어 넘기가 어렵다.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이동을 하면 곧 철조망이 끝이 나고 옆으로 돌아서 나오면 된다. 만학골재 도로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물 한 모금씩을 마신 후 출발을 한다. 앞쪽 능선으로 오르는 곳은 고개에서 좌측으로 세멘트벽을 오르는 곳에 말목을 박아 놓아 밟고 오르면 된다. 이곳으로 올라서서 우측으로 이동하여 조금 오르면 능선에 닿는다. 능선을 따라 가면 좌측으로 산소지대가 보이고 곧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한동안 땀이 범벅이 되도록 힘들게 올라야 한다. 첫 번째 봉을 좌측으로 돌아서 간 후 다시 오르게 되면 커다란 산소지대의 가장 꼭대기에 삼각점이 있다. 325봉으로 여기 산소지대에도 고사리밥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며 범위도 상당히 넓다.

 

팔재산(23.07km, 364m) 09:34 ~09:37

325봉에서 이제 내려서기 시작한다. 4분을 내려서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이후 7~8분을 내려서면 좌, 우로 지나는 널찍한 길이 나온다. 여기서 좌측으로 간다. 평평한 길로 이어져 2분을 가면 좌측 중장리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30초 후 양쪽으로 내려서는 고갯길을 지나 2~3분을 더 가면 다시 좌측 중장리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이제 능선 길은 다시한번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여 해발 약265봉을 넘어서서 또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면 능선 우측으로 밤나무단지가 보이는 안부를 지나 조금 올라서면 철조망이 쳐져 있고 안쪽으로는 역시 밤나무밭이다. 밤나무밭 아래로 도로가 보이며 좀 더 가면 잠시 가파르게 내려서서 아스팔트도로에 닿는다. 이곳이 중장고개 또는 윗장고개라고 하는 곳이다. 이곳에 휴게소나 구멍가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식수를 보충하려 한것인대 능선 좌, 우 가까운 곳에 식수를 보충할 곳이 없어 그냥 팔재산으로 향한다. 중장고개에서 세멘벽을 올라서서 가파른 절개지를 오르면 이후로는 한동안 능선 길은 그런대로 갈만한데 바위너덜 지대를 지나고 나서는 길이 매우 가파르게 오르게 된다. 이곳 산들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매우 가파르게 오르고 내려서고를 반복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팔재산으로 오르는 길도 매우 가파르게 오른다. 중장고개에서 25분을 오르면 팔재산 정상에 닿는다. 노간주나무에 팔재산 정상 표지판이 걸려 있으며 삼각점 안내문이 있고 삼각점이 있다. 정상은 비좁은 편으로 조금 지저분하며 조망도 없다.

 

능선 상(26.18km,  210m) 10:56 ~11:15(중식)

팔재산에서 또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기 시작한다. 잡석길로 길도 좋지를 않다. 10여분을 내려서면 앞쪽으로 훤하게 무엇인가를 재배하고 있는 곳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드릅나무를 재배하고 있는 곳으로 면적도 상당히 넓다. 드릅나무 재배단지 능선을 따라 오르면 해발 약310봉에서 재배지는 끝이 나고 이제 능선 길은 평탄하게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가면 좌측으로 갑사로 들어가는 곳의 마을이 보이고 옆으로는 계룡저수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후 우측으로 호남고속철길이 도로를 건너 터널로 들어가는 지점이 보이고 좌측으로 민가가 있는 곳에서 식수를 구하러 내려섰다가 주인장이 없고 개만 짖이 대는 통에 마을길을 따라 내려서서 널티고개 옆 공장에서 지하수물을 받고는 좌측으로 이동하여 도로를 건너는 지하차도를 건너 우측으로 이동하여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는 입구에 닿는다. 이곳으로 오르면 산소지대를 따라 올라 능선을 따라가면 다시 능선 좌측으로 커다란 산소지대가 있는 곳에서 능선으로 가시잡목이 많아 산소를 따라 진행하여 능선에 붙은 후 안부고개를 지나고 오르게 되면 해발 약215봉 앞에서 사면을 따라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된다. 서서히 내려서서 그늘이 잘 드는 능선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오늘 날씨도 보통 더운 것이 아니다 연신 물이 먹히고 땀이 비 오듯 하는 날씨다. 마지막 까지 무사히 산행을 마무리하기가 쉽지는 않은 날씨다.

 

안골산(28.08km, 340m) 12:37

215봉 아래 능선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가면 7~8분후 안부사거리에 닿는다. 안부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면 임도가 나온다. 밤나무 단지로 이어지는 임도로 좌측으로는 계룡저수지옆 봉명리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기산저수지 방향이다. 여기서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밤나무단지를 따라 올라가면 산소가 있는 곳에서 우측 붉은 흙이 보이는 밭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가야하는데 좀 더 내려가서 이것저것 심어 놓은 곳에서 길이 아닌듯하여 다시 우측능선을 붙어서 붉은 흙이 보이는 밭에 쳐놓은 전기철선을 넘어 앞쪽으로 이동을 하면 다시 철조망이 쳐져 있는 곳에서 좌측에 보이는 능선으로 가야한다. 우거진 숲길을 빠져 나오면 봉명마을과 기산저수지로 이어지는 세멘포장 임도길에 닿는다. 이임도가 지도에 표시된 상리임도다. 상리 임도에서 앞쪽으로 보이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면 몇 분후 우측 산소가 있는 곳으로 오른다. 잠시 오르다가 밤나무단지를 지나 잠시 길이 헷갈리던 곳에서 헤어진 적막님이 오지를 않아 전화를 하고 잠시 기다려 안골산으로 오른다. 이곳도 길이 가파르고 험하다. 능선길 옆으로 고사리도 많고 점점 오를수록 길은 더욱 가파라져 상리 임도에서 대략 20분이 좀 더 지나면 안골산이라 적혀 있는 봉에 닿는다. 이곳은 실제 해발 340봉으로 안골산은 우측으로 약 600m를 더 가야 한다. 대부분 이곳을 안골산이라 하였으며 트랭글도 안골산이라 하여 빼지를 하나 더 준다. 시간이 그리 많치 않은 관계로 안골산을 다녀오는 것은 포기하기로 한다.

 

아스팔트도로(벌문이재, 31.75km, 90m) 13:59 ~14:13

안골산에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서서히 내려서는 길이지만 가파르지는 않다. 잠시 후 우측으로 공주 이인면의 발양리가 내려다보이고 안골산에서 10여분을 지나 거북바위산과 정맥길이 갈리는 삼거리봉에 닿는다. 여기서 좌측으로 10분 거리에 삼각점이 있는 높다란 봉이 있다. 정맥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어 한동안 이어지면 풀이 수북히 자란 좁다란 임도를 건너고, 10여분이 좀 더 지나 안부사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이어지는 능선으로 잡목이 많고 복분자 가시등 길이 좋지를 않다. 수풀과 덤불을 헤치고 빠져나가면 LG송신탑이 있는 곳에 닿는다. 송신탑 바로 옆으로 노성지맥 분기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다. 해발 약148봉으로 이봉에서 간벌을 하고 치우지 않은 가지를 헤치며 능선을 따라가면 세멘포장이 된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가면 잠시 후 산소지대를 지나 좀 높다란 봉에서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내려서면 둥그렇게 둘레석을 한 경주최씨묘역을 지나서 아스팔트도로에 닿는다. 이도로가 벌문이재로 발양리 벌문이 마을과 반송리를 잇는 고개다.

 

복룡고개(36.64km, 112m) 16:02

벌문이재 고개에서 우측편 전주지지대선에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다. 이곳으로 오르다가 산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여기서 성정산으로 오르는 길은 다른곳 보다는 크게 가파르지는 않다. 대신 거리는 더 멀다. 도로에서 20분 정도를 오르면 성정산 정상이다. 지도에는 성항산과 성정산이 같이 표기가 되어 있는데 어는 산악회에서 붙여 놓은 아스테지판 설명서를 보니 타당한 것 같아 난 성정산으로 쓰기로 했다. 성정산에서 다시 진행을 하면 잠시 내려서다가 올라서서 좌측으로 급격히 꺽이는 봉에 닿는다. 이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는 능선의 우측으로는 밤나무 단지로 해충을 잡는 해충유인장치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밤나무 단지를 내려서면 우측으로 잘 가꾼 산소가 보이는 곳에서 능선은 우측으로 빙 돌아서 조금 전 보이던 산소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곳으로 내려서면 철문을 나가 좁다란 아스팔트포장도로에 닿는다. 산의리와 반송리를 잇는 고개로 우측으로 민가가 보인다. 이곳에서 커브머리에서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여기도 밤나무단지다. 밤나무단지를 지나고 잘 가꾼 산소를 지나 잡목덤불길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면 해발 약185봉이다. 이곳으로 오르며 건너편 밤나무단지 산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이봉에서 부터는 능선은 거의 평탄하게 이어져 다음 183봉을 지나고 내려서면 우측 복룡고개로 이어지는 안부사거리를 지나 다시 오르면 여기도 밤나무 단지로 능선길이 우측으로 방향이 한번더 꺽여서 밤나무단지 사이 길을 따라 가면 KTF송신탑 옆 우측으로 내려서서 복룡고개 아스팔트도로에 닿는다. 고갯마루에 복룡리 표지석이 있다.

 

망덕봉(우꺽임, 39.1km, 210m) 17:00

복룡고개 옆으로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고속도로를 건너기 위해선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교각아래를 통과해야 한다. 우측으로 축사가 있고 고속도로 아래 교각을 빠져나가면 좌측으로 오르는 곳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한동안 올라 고속도로 위 절개지 세멘포장길에 닿는다. 이 길을 따라 좌측으로 이동을 하면 고속도로에서 이어져 온 철사다리가 있는 곳이 나온다. 여기서 위쪽으로 철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철망이 쳐져 있는 곳으로 올라 송전탑이 있는 봉에 닿는다. 여기서 산길은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서서히 내려서게 된다. 이곳도 고사리가 많이 보인다. 안부로 내려선 후 다시 오르는 곳은 벌목지옆 능선을 한동안 올라서서 봉에서 우측으로 길이 살짝 꺽여서 진행을 하면 한동안 평탄하게 산길이 이어지다가 다시 오르게 되면 해발 약180봉으로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다. 여기서 등산로는 좌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되며 산길은 그런대로 좋다. 잠시 후 산길이 좌측으로 방향이 한번더 꺽여서 진행이 되어 20여분간 평탄한길을 따라 이어가면 전면에 높다란 봉에 닿기 전 산길은 우측으로 우회 길을 따라 간다. 이곳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높다란 봉으로 오르게 되면 작은 아스테지로 만든 망덕산 표지가 붙어 있다. 여기까지 복룡고개에서 거리가 대략 2.5km가 나온다. 망덕봉은 조망은 전혀 없는 봉으로 트랭글에서 빼지도 주지 않는다.

 

진고개(42.01km, 98m) 17:52 ~18:15

망덕봉에서 등산로는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서 진행이 된다. 복룡고개에서 진고개 까지 자료에서 잘못보아 2.1km로 생각하고 있다가 실제 산행을 하니 망덕봉에 오기 전부터 거리가 틀렸다는 것을 느낀다. 망덕봉 까지 2.5km가 나왔고 앞으로 가야할 길은 이보다 좀 더 멀어 보인다. 어쨋거나 빨리 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 공주역에서 타려는 열차시간에는 충분히 갈수 있겠기에 맘이 놓이긴 한다. 망덕봉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평탄하니 좋은 편이다. 숲길을 따라 한동안 가면 안부사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이인에서 탄천으로 가는 도로와 능선이 나란히 이어져 도로에 다니는 차량이며 마을이 가끔씩 보인다. 이제 산길에서 임도가 나온 후 다시 산길로 진입을 하여 산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면 다시 널찍한 임도 길로 연결이 되어 한동안 진행을 하다가 해발 약208봉에서 등산로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면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따라 진행하여 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우측으로 잘 조성된 가족묘지가 보이며 골짜기로 나가는 길을 따라 탄천에서 진고개로 가는 도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 가깝게 가보려고도 했지만 마지막에서 꼼수를 부려서 뭣하냐 싶어서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한다. 묘지 끝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가 안부를 넘어서면 능선 좌측으로도 임도가 보인다. 능선을 따라 서서히 올라서면 나지막한 봉에서 우측으로 방향이 틀어져 내려서면 산소지대를 지나 오늘의 마지막 목표 지점인 진고개에 닿는다. 진고개는 삼거리길로 광명리로 들어가는 길과 탄천,공주로 가는길, 강경, 부여로 가는 길과 연결된다.

 

오늘 아직은 30도가 넘은 더위가 올 때가 아닌대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로 산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끝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진고개 민가 앞에서 짐을 정리하고 조금 남은 식수로 간단히 손을 닦고 얼굴도 닦고 기다리니 지나던 택시가 빵하고 탄천방향으로 넘어간다. 손을 흔들어도 그냥 지나던 택시가 10여분이 좀 더 지난시간에 손님을 태우고 다시 넘어온다. 손을 들어 세워 공주역으로 간다고 하니 알았다고 하며 손님을 태워다주고 온다고 한다. 대략 5분이 좀 더 지났나 택시가 돌아와 우리는 이택시를 타고 광명리를 거쳐 복룡고개에서 넘어오는 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여 잠시 후 좌회전을 하여 공주역에 도착을 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공주역에서 시원한 냉커피 두 잔씩을 연거푸 마시며 뜨거워진 몸을 식힌 후 열차를 타고 적막님은 천안으로 돌아가고 난 오송역에 내려 버스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함께 한 적막님 고생 많았습니다.

며칠 전 백두대간 산행 80키로를 하고도 오늘 끄떡없이 정맥길 이어가는 것을 보고 역시 대단한 체력이구나 싶었습니다.

내 이제 20여일 여행 다녀오는 사이에 대간길 쭉쭉 진행하여 동엽령(국공연산으로 지리산에서 여기까지는 했지유)까지 마치시던지 낙동길 몇 구간 남은 것 해치우시던지 하시고 20일 후에 다시 금남정맥길 마치고 호남정맥으로 진군합시다.

감사 혀유!! 함께 여서~~

 

산행시간 : 19시간 43

산행거리 : 42.01km

 

경비

청주 ~조치원 버스비 : 1300

조치원 ~계룡 열차비 : 3700

택시비 7000

계룡~오송 열차비 : 8400

기타 5000

 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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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3구간 양정고개~천황봉~관음봉~만학골재~팔재산~성항산~진고개

 

갈 때

조치원역 ~계룡역 : 18:45~19:31, 21:21~22:05, 22:56~23:44, 00:13~00:56, 08:04 ~08:52(3700)

 

올 때

진고개 ~공주역 : 5.7KM, 진고개 ~이인면 : 5.6KM, 진고개 ~탄천,진고개삼거리 : 1.12KM

*공주역 ~오송역 : 7:00, 8:01, 11:47, 12:34, 13:36, 15:12, 17:47, 19:08, 19:37, 19:55, 21:32(15,8400)

*공주역 19:55 ~오송역 20:09 ~20:27~천안아산역 20:37 *오송20:24~조치원 20:30~21:25~천안21:46

*공주역 ~천안아산역:700,9:52,11:47,13:36, 16:02,19:08, (공주 19:08 -오송19:22~ 19:29-조치원19:34)

(버스: 진고개에서 탄천쪽 우측 사장골 정류장 221,242, - 복룡삼거리에서 250번으로 환승(공주역 2.6KM)

탄천개인택시 : 041-853-5321, 이인택시: 041-857-0615, 041-857-9800, 041-857-4089

 

*복룡고개 ~공주역 : 4.01KM (좌측 복룡리 후천동 버스정류장(770M)에서 250번 승차 공주역으로

공주~공주역버스시간;공주출발(40분소요),7:40,8:15,9:10,10:10,11:00,12:10,13:20 (),13:40,14:00,14:25,15:00,15:45,17:40,18:30,18:50,19:10,21:00

구간거리

양정고개~4.9~향적산(-1.0)~5.3~천황봉~0.5~쌀개봉~0.8~관음봉~1.2~삼불봉~0.7~수정봉~4.9~윗장고개~2.0~널티~7.0~성항산~4.0~복룡재~5.3~진고개 36.6km

 

산행거리 : 37.6KM 20시간 소요

양정고개-4.5-먼재-5.0-천황봉-0.5-쌀개봉-0.6-관음봉고개-0.2-관음봉-1.5-삼불봉-0.5-수정봉-3.0-만학골재--2.1-중장리고개-0.5-팔재산-1.7-널티-6.5-성항산-4.0-복룡고개-5.6-진고개

 

* 6, 양정고개~만학골재, 15.8km. 8시간(중장리고개로 끊어도 됨)

양정고개-4.5-먼재-5.0-천황봉-0.5-쌀개봉-0.6-관음봉고개-0.2-관음봉-1.5-삼불봉-0.5-수정봉-3.0-만학골재

* 7, 만학골재~진고개, 19.3km. 8시간

만학골재-2.1-중장리고개-0.5-팔재산-1.7-널티-6.5-성항산-4.0-복룡고개-5.6-진고개

 

양정고개(19:35)- 엄사초교(20:56)- 엄사리(21:10)- 멘재(22:37)- 계룡산 천단(01:46)- 통천문(02:56)- 관음고개(03:41)- 관음봉(03:48)- 진달래고개(05:10)- 만학골재(07:26)- 중장고개(08:22)- 팔재산(08:45)- 널띠고개 지하도(09:22)- 상리마을 임도()- 노성지맥분기점(11:48)- 포장도로()- 성항산(12:45)- 복룡고개(14:20)- 진고개(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