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3구간 추정재~대항산~선두산~선도산~것대산~상당산~성내주차장
대항산483m, 선두산526.5m, 선도산547m, 것대산485m, 상당산491.5m
2015.03.24.화요일 맑음
참석인원 : 푸른소나무와 둘이서
청주집 6:40 -서원초교앞 버스정류장 6:43 ~6:46 -영운교 환승 7:11 ~7:13 -추정재(관정리, 해발 약270m) 7:40 ~7:46 -능선(0.68km, 해발 약370m) 08:00 -약410봉(1.03km) 08:08 - 약432봉(좌측 샛길, 우측 골프장, 2.67km) 08:17 -대항산(삼각점, 2.14km, 483m) 08:27 ~08:29 - 좌측 임도길(2.79km, 약382m) 08:38 -임도(능선으로 이어짐, 3.03km, 약372m) 08:41 -산정말고개(3.32km, 약358m) 08:45 -좌측 하산로(4.03km, 약411m) 08:57 - 고개 사거리(좌측 상정말쪽 민가보임, 우측 호정리, 4.12km, 약410m) 08:59 -고개 올라서면 능선으로 임도길 이어짐 -좌측 산소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임도길 빠짐 09:06 - 좌 꺽임봉(잠시 우측길로 알바, 4.82km, 약485m) 09:11 -백족산 삼거리(걸손봉, 5.69km, 약480m) 09:29 -임도(좌 한계리, 우 낭성) 09:45~09:54 -선두산(7.07km, 526.5m) 10:08 ~10:10 -안건이고개(7.79km, 약359m) 10:23 -능선 삼거리(좌 한계리, 산소, 8.01km, 약366m) 10:27 -안건이고개2(8.24km, 약370m) 10:32 -성무봉 삼거리(이정표, 9.35km, 약531m) 10:52 -선도산(9.81km, 547m) 10:58 ~11:10 -우측 샛길(우측 자작나무숲, 10.7km, 약481m) 11:21 -산소 있는 봉(약10.8km, 495m) 11:23 -이정표(10.9km, 약475m) 11:25 -안부 고개(좌측으로, 11.2km, 약418m) 11:28 -현암리 앞도로(11.8km, 약311m) 11:38 -도로따라 -생태통로공사장앞(12.4km, 약328m) 11:45 -임도(성주이씨산소, 12.6km, 약336m) 11:50 - 401봉(이정표, 좌꺽임, 12.8km) 11:55 -목련공원위 12:00 -능선으로 산소지대 -오름길 사거리(13.5km, 약375m) 12:10 -404봉(삼각점, 13.6km) 12:13 -청양원 도로(이정표, 13.7km, 약385m) 12:17 -나무계단 -송신탑 -것대산 활공장(14.3km, 485m) 12:29 ~12:45(중식) -봉수대(14.6km, 약460m) 12:50 -119 구조 11-02지점(14.8km, 약445m) 12:53 -우측으로 핀참나무숲 -상봉재(14.9km, 약415m) 12:56 -출렁다리(15.8km, 약370m) 13:07 -쉼터봉(탁자3개, 좌측으로 하산로, 16.2km, 약408m) 13:13 -이정표(좌측 하산로) 13:18 -산성 남암문(16.6km, 약430m) 13:20 -서문(보수공사중, 17.4km, 약425m) 13:30 -휴양림 삼거리(이정표, 17.9km, 약460m) 13:37 -상당산(18.4km, 491.5m) 13:46 ~13:50 -동암문(18.5km, 약485m) 13:54 -동문(19.0km, 약390m) 14:03 -성내 주차장(19.2km, 약360m) 14:04 ~14:25 -청주 집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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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역사와 유래청주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으로 백제 시대에 이르러 상당현(낭비성 또는 낭자곡)이라 칭하고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5소경중의 하나인 서원경으로 승격,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청주로 지명을 개칭.조선시대에 들어 수운이 발달한 충주가 교통의 요지로 부상함에 따라 청주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정체되었으나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과 함께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으며, 1908년에는 관찰사가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되었다. 1920년 충북선개통은 지역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1946년에 청주부와 청원군이 분리되었고 1949년에 청주시로 승격되었다. 그후 행정동 분동, 청원군 편입 등에 거쳐 1989년 7월에 2개의 출장소(동부·서부)가 설치되었고 1995년 1월에 출장소가 구(동부 -상당, 서부-흥덕)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 대 명 칭 백 제 상당현(일명 낭비성 또는 낭자곡) 신 라 서원경(757년) 고 려 청주목(983년) 일 제 청주읍(1931년) 대한민국 청주시(1949년)[상당산성] 상당"은 백제시대에 청주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상당산성도 백제의 상당현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삼국사기 열기열전>에 적힌 김유신장군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 고금사적기>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이던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까지 3년간, 청주병사 유성추의 감독 하에 대대적으로 성벽을 개축하였다. 그 후에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산성 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ㆍ군기고ㆍ창고ㆍ수고ㆍ장대ㆍ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ㆍ서문(미호문)ㆍ남문 등 3개문과 동암문ㆍ남암문 2개 암문, 치성 3개 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뤄진 정비공사로 동ㆍ남문루와 서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예전에는 성 안에 다섯 개 연못과 여러 개의 샘이 있었고, 사찰도 세 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다섯 개의 연못이 모두 합쳐져 큰 저수지가 되었다고 한다. 산간벽촌으로 남아 있던 마을을 지난 1982년과 1983년에 청주시가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마을 전체를 한옥기와집으로 개량하여 전통 한옥마을로 바꾸어 보존하고, 서울의 남한산성과 같이 유원지로 변신한 이곳에는 음식점들이 성시를 이루고, 매년 4월이면 시민의 날에는 가정의평화를 기원하는 "성 돌이 행사"로 역사의 산교육장이며, 시민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주시 자료)
산성을 돌아가며 뒤 돌아보면 지나온 것대산 봉수대가 멀리보이고,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산성을 굽어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서문에 도착한다. 현판에는 미호문(彌虎門)이라 쓰여 있다. 산성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일품으로 청주시가지와 오창 신도시, 증평의 너른 평야를 배경으로 두타산(508m)이 병풍처럼 산맥을 이루고, 청주의 관문인 국제공항도 볼 수가 있다. 평탄하던 산성 길도 암릉 봉우리를 넘어서며 좁아지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진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산성과 동행하여 올라서면 상당산(491m) 정상이다. 정상엔 2003년 재설된 미원24호의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고 측량안내문이 있다. 무심코 산성을 따르다 정맥을 이탈하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정맥은 상당산에서 북쪽으로 맥을 이어가지만 바로 진입할 수 없으니 동암문에서 산성 길과 이별을 하고 정맥능선으로 합류한다. 호젓한 능선으로 10여분 진행하면 “숲속의 둥지와 등산로” 이정표와 이티재까지 8km에 5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문이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고도를 낮추어 작은 돌탑이 있는 안부를 넘는다.
조망하며 돌아보는 상당산성 코스는 우리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정맥을 이어가는 산 꾼들에게 새로운 의지를 불태운다. 동북쪽으로 진행하는 정맥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로에서 “숲속의 둥지와 등산로” 이정표만 따라가면 호젓하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아주 편안한 길이 열린다. 농장주인의 출입금지 경고판을 지나 475봉을 올라선 후, 1시간 넘게 길동무를 하던 이정표와 이별을 하고정맥은 우측 능선을 따른다.
앙상한 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마을은 우측으로 안동뱅이 마을이고 왼쪽으로 덕암리의 너른 분지에 주성대학과 종합운동장이 보이고소류지 아랫마을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사저와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인경산((582m)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사면을 돌아 내려서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겨주는 임도(390m)에 도착한다. 납골당을 뒤로하고 작은 소나무가 있는 능선에 올라 참호지대를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이티봉(486m)이다. 너른 공터가 있는 정수리에서청주와 내수읍의 조망이 시원하다. 완만한 능선을 이어가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소나무 조림지대가 나오고 2차선 포장도로인 이티재에 도착한다.
증평 초정리와 미원면을 잇는 511번 지방도로인 이티재(360m)에는 등산로가든 과 휴업중인 이티봉 주유소가 있다. 뒤편으로 이티봉 약수와 오골계농장 펜스왼쪽으로 오르면 쉼터에 운동시설이 있고, 구녀성 방향의 이정표와 오른쪽으로 대신리 인경산 비알에는 골프장공사가 한창이다.
구녀성터엔 묘지가 자리 잡고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멋진 노송이 감싸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운동시설과 정자, 돌무더기와 표지석까지 있는 구녀산 484m)정상에는 구녀성의 유래간판이 있다.
구녀성: 신라시대의 축성으로 추정되는 이곳 산정에 아들 하나와 아홉 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 장사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마침내는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인 즉,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 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서울 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게 되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한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을 불러 모아 팥죽을 먹으며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은 부르튼 다리를 이끌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 딸은 성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 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게 된 동생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어머니도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 때 당시 죽은 아홉 딸과 부모의 묘는 이 성안에 2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해진다.
구녀산 정상에서 소나무가 있는 능선으로 완만하게 진행하여 벤치가 있는 곳을 지나면 457봉이다. 이곳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갈려지고 왼쪽으로 분기하는 능선이 초정약수로 이어진다.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하루 약 8,500ℓ 정도 솟아나는 무균의 단순 탄산천으로,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노쇠한 세포를 자극하여 몸 안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혈압을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라듐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이 성분 때문에 레몬 향기와 함께 후추처럼 톡 쏘는 맛이 난다고 하며, 초정(椒井)이란 지명도 '후추처럼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세계광천학회에서는 미국 샤스터 광천, 영국의 나포리나스 광천과 함께 초정약수를 세계 3대 광천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조선왕조실록〉 등에 세종과 세조가 눈병·피부병·속병을 고쳤다는 기록과 고혈압·위장병·당뇨병·안질·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457봉에서 살짝 내려서면 모진생명 이어가는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에 바위도 틈새를 벌리고,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을 지나면 1번 국도가 지나는 분저치(330m)에 도착한다. 율리 웰빙타운에서 유원지를 만들며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신설한 2층의 정자(좌구정)는 주위를 바라보는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왼쪽으로 회평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은 증평읍이요 오른쪽은 청원군의 미원면이라. 미원면 쪽으로 진행하면 인삼밭이 있고 들머리에는 한남금북정맥 이정표(좌구산 4km)가 반갑게 맞아준다.
해주최씨 묘 옆으로 올라 완만한 고도를 올라가면 간간이 표지기도 보이고 450봉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안부를 건너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530봉 정상이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전면으로 좌구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슷비슷한 봉우리를 넘나들며 내려다보이는 계곡에는 방고개를 오르는 임도가 九折羊腸(구절양장)의 아슬아슬한 구비로 산 비알을 파고든다.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면 배짱 좋은 승용차와 찝차들이 주차된 방고개(360m)에 도착한다.
증평 산악회에서 세운 이정표와 직사각형의 쉼터가 있는 고개 마루에는 비포장도로가 위험하여 차단기로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낙엽송 그늘아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침대도 있고 바위지대와 소나무가 운치있는 완만한 능선을 오르면 의자가 2개 놓여있는 510봉 정상이다. “방고개 0.68km, 좌구산 1.26km, 주차장1.72km”의 이정표가 있다.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는 530봉에 오르면 의자 2개가 길손을 기다리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정맥이다. 낙엽송이 울창한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정맥을 이어가는 고단한 산 꾼에게 전위봉의 돌탑이 반겨준다. 속리산을 떠나온 뒤로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선 정상은 청원군에서 가장 높은 좌구산(657m)이다. 검은 오석의 아담한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고 억새밭에 숨어있는 삼각점도 확인을 한다.
좌구산은 1.9km의 거리를 두고 있는 세작골산(560m)은 능선갈림길이다. 증평군이 괴산군에서 分 郡이 되기 전에는 청원군과 경계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3개 군의 접경 지역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3km를 내려서면 질마재 고개가 된다. 하지만 200여 m의 고도를 내려서는 벼랑길은 한겨울의 빙판길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2차선 포장도로인 질마재(334m)는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에서 문당리를 넘는 592번 지방도로가 된다. 고개 마루에는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수준점이 있다.
수준점이란 : 우리나라 높이의 기준인 인천앞바다 평균해면(0.0m)으로 부터의 차이를 정밀수준측량 방법으로 산출하는 지점으로 이곳 질마재의 고도를 334m로 기록하고 있다. 들머리 옆으로 최원용공적비라는 비석이 세워졌는데 질마재 도로를 확장 보수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1983년에 청안면민들이 세운 것이라 한다.
것대산 높이 484m
위치 충북 청주시 상당구
'것대산'은 상당산 위쪽에 있는 산이다. 해발 484m의 높은 산이다. '거질대산', '상령산'(上嶺山)이라고도 한다. '것대산'에는 조선 시대에 봉수(烽燧)가 있어 남쪽으로는 문의현(文義縣)의 소이산(所伊山), 북쪽으로는 진천현(鎭川縣)의 소을산(所乙山) 봉수와 연계되었다.
'것대산'은 옛 문헌에 '居次大山' 또는 '居叱大山' 등으로 차자되어 나온다.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된다.
'거질대산'은 '居叱大'의 '叱'이 차자 표기에서 'ㅅ'의 표기인 줄을 모르고 음으로 읽은 지명이다.
것대산 봉수지는 청주시 산성동의 속칭 것대산 서쪽 해발 403m 산봉우리에 위치한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청주목편에 '것대산 봉수는 청주 동쪽 11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봉수는 문의 소이산과 진천 소을산의 중간거점 봉수로서의 역할을 했다. 것대산 봉수대에는 현재 민묘가 있으며 유구로는 석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서쪽과 남쪽부분은 민묘로 인하여 파괴되고 북쪽면과 동쪽면에 일부가 남아있다. 봉수대의 규모는 동서길이 26m, 남북너비 15.5m이다.
□ 것대/거죽(居竹)
'것대'는 상당산성(上黨山城) 밖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거죽'(居竹)이라고도 한다.『世宗實錄地理誌』(세종실록지리지)에 '居次大',『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巨叱大',『大東地志』(대동지지)에는 '居大'로 차자되어 나온다. '居次大', '巨叱大'는 '것대'로 재구되며, '居大'는 '거대'로 재구된다. '거대'는 '것대'의 변형이다. '것대'의 어원은 알기 어렵다. '것대'의 '대'는 '짐대', '솟대' 등의 '대'와 어떤 관련이 있지 않나 한다.
'거죽'은 '居竹'으로 쓰고 있다. 이는 '것대'의 '대'를 '竹'으로 보고 다시 만든 지명이다.
□ 것대고개/상봉고개(上峰-)/상봉재(上峰-)
'것대고개'는 것대산에 있는 고개이다. 것대에서 명암동 중봉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상봉고개', '상봉재'라고도 한다. 청주에서 가장 높은 고개이다.
'상봉고개'와 '상봉재'는 '상봉'과 '고개' 및 '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봉'은 '上峰'으로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산이다. 명암동의 '중봉'(中峰)은 이 '상봉' 아래에 있다. '고개'와 '재'는 같은 뜻이니 '상봉고개' 및 '상봉재'는 '상봉에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전국에는 '상봉'이라는 산 이름은 물론 '상봉고개', '상봉재'라는 고개 이름도 아주 흔하다.
선도산 547.2m
우암산(와우산 353m)이 청주의 진산임에는 틀림없지만 청주 제일봉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청주에서 제일 높은 산이 어디냐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이 우암산,상당산성,것대산이라 답한다. 청주에서 제일 높은 산은 월오동 목련공원 남쪽 맞은편에 있는 선도산이다.
선도산은 백두대간의 지선인 한남금북정맥이 속리산 천황봉에서 시작되어 보은을 지나 선도산에 이르고 이 산줄기는 상련산을 거쳐 음성지역을 거쳐 경기지역으로 이어진다.
한강의 남쪽에, 금강의 북쪽에 위치한 산줄기로서 청주시 동쪽에 위치하고 청원군과의 시군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선도산은 지리적으로 백두대간의 줄기와 행정구역으로 청주시 경계선이 만나 함께 가는 유일한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선도산을 기점으로 북쪽으로는 상련산 줄기로 이어지며 동남으로 선두산 지역인 청원군 낭성면과 가덕면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말구리재 미태재 관봉으로 이어가며 한계저수지를 끌어 안고 있다. 서쪽으로는 청주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 동네인 월오동 서운말을 끼고 그 건너편에 낙가산과 것대산을 마주보며 상봉재와 보살사를 품에 안고 있다. 선도산은 청주 삼백리 답사코스의 2구간에 있으며 유럽의 산을 기준으로 할때 청주지역에서 유일하게 산 이름이 붙여진 산이 된다.
즉 해발 500m 이상은 산 지형으로 보고, 500m 이하는 구릉지대 또는 저 산성지형으로 분류한다면 선도산은 청주지역의 유일무일한 단하나의 산이다.
등산기점은 현암삼거리 수레너머 마을 뒤로 올라 정상으로 향하며 하산은 말구리재를 지나 월오동 서운말이나 한계리 저수지로 내려선다. 그 외에 등산로는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으며 옹달샘이 없어 물구하기도 어렵고 상수리나무가 너무 우거져 있어 조망이 잘 안된다.
일제 강점기 숯골에 저수지를 만들어 용암동 일부지역에 먹는 물을 공급할 정도로 물 좋고, 골 깊은 선도산이다.
상당산과 상당산성<청주시 자료>
상당"은 백제시대에 청주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상당산성도 백제의 상당현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삼국사기 열기열전>에 적힌 김유신 셋째 아들 원정공이 쌓았다는 서원술성(西原述城)이 바로 이곳이라는 학설 등 두 가지 있다.
최초의 축성년대는 정확히 알기는 힘드나, 김유신의 세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 고금사적기>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이,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주목 고적조에는 고상당성은 율봉역의 북(뒤)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 7,773척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이었던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까지 3년간, 청주병사 유성추의 감독 하에 대대적으로 성벽을 개축하였다. 또한 이듬해 성 내에 구룡사와 남악사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것은 성문 무사석의 기록에 남아 있다.그 후에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산성 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ㆍ군기고ㆍ창고ㆍ수고ㆍ장대ㆍ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ㆍ서문(미호문)ㆍ남문(공남문) 등 3개 문과 동암문ㆍ남암문 2개 암문, 치성 3개 소, 수구 3개 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뤄진 정비공사로 동ㆍ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예전에는 성 안에 다섯 개 연못과 여러 개의 샘이 있었고, 사찰도 세 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다섯 개의 연못이 모두 합쳐져 큰 저수지가 되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곳은 산간 벽촌으로 남아 있었던 마을을 지난 1982년과 1983년에 청주시가 산성을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마을 전체를 한국 재래 한옥기와집으로 개량하여, 보기 드문 전통 한옥마을로 바꾸어 보존하고 있다.현재 32가구가 모여 사는 산성 안의 한옥마을은 27집이 음식점을 경영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대체로 토종닭과 오골계ㆍ꿩요리 등을 전문으로 하고 반주로 이곳 명산물인 대추술을 함께 내놓고 있다. 또한, 매년 4월에 있는 시민의날 행사 때는 국운융성ㆍ청주발전ㆍ가정화평을 기원하는 "성돌이 행사"를 하고 있으며, 평상시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역사의 산교육장이며, 시민의 대표적인 시민 휴식공간이다.
상당산성 일원은 봄철의 경치가 빼어나다. 특히, 산성 입구의 넓적한 돌계단을 따라 공남문에 이르는 오솔길 주위에 펼쳐진 봄꽃들의 향연이 화려하다. 명암약수 앞에서 상당산성 어귀로 오르는 해발 343m의 산성고개는 급커브와 급경사가 계속 되고 있어 스릴과 운치가 그만이다.산성 인근의 명암약수는 초정약수와 부강약수 등과 함께 충북의 3대 명천(名泉)으로 꼽혀오며,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위장병ㆍ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명암약수에 이르기 전에는 국립청주박물관, 우암 어린이회관을 거치게 되므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드라이브 코스로도 더없이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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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집 6:40
이제 겨울도 다가고 산행하기 딱 좋은 계절이 돌아 왔다. 단지 산불방지 기간으로 통제하는 곳이 많아 어려움은 있다. 벌써 남쪽 섬으로는 진달래가 활짝 핀 곳도 있다. 매화꽃이 피고 산수유, 산으로는 노오란 생강꽃이 피고, 복수초도 저번 산행에서 보았다. 요즘 가뭄이 심하다. 산불이 평년보다 많이 난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비가 잘 오질 않아 물 부족이 심화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오늘은 청주 시내에서 가까운 추정재에서 부터 시작하여 청주 산성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산행코스를 잡았다.
추정재(관정리, 해발 약270m) 7:40 ~7:46
새벽에 일어나 산행준비를 한 후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버스를 타고 영운동에서 내려 친구와 만나 2~3분을 기다려 미원 미동산수목원 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추정재에서 내린다. 추정재에서 내리니 기온이 쌀쌀하다. 동녘에는 햇님이 산위로 올라와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제 해가 많이 길어 졌음을 느낀다. 관정리 버스정류장에서 고개 쪽으로 조금 올라와 마을로 들어가는 세멘포장길 입구에서부터 산행은 시작된다.
대항산(삼각점, 2.14km, 483m) 08:27 ~08:29
세멘포장길 좌측편 표지기가 붙어 있는 절개지를 타고 오르기 시작하면 곧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절개지 위로 오른다. 절개지를 타고 조금 가면 좌측 산속으로 내려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우측으로 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임도 쪽으로 작은 집이 한 채 보인다. 민가는 아닌 것 같고 사당 같아 보인다. 여기부터 오르는 길은 매우 좋다. 한발 한발 위로 오르기 시작하면 좌측으로 봉이 보이는 능선에 닿는다. 해발 약370m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능선을 따라가면 추정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앞이 확 트인 전망대에 닿는다. 산 아래로는 벌목을 하여 시원스레 추정리 뒤 정맥능선까지도 조망이 된다. 여기서 정맥 길은 우측으로 방향이 틀어져 좌, 우측으로 조망이 확 트인 능선을 따라 간다. 우측으로 골드나인CC가 보이고 위쪽 산사면은 벌목을 하여 시원스럽다. 여기 낭성부근의 산들이 올해 집중적으로 벌목을 한 것 같다. 저번 가래산에서 인경산 쪽으로 한 바퀴 돌때도 낭성쪽 산들이 최근에 벌목을 한곳이 많았다. 좌측 추정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는 약432봉을 지나고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 10여분 후 삼각점이 있는 해발483봉에 닿는다. 삼각점 안내문도 있으나 대항산 표지판은 없다. 표지판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을듯하다.
산정말고개(3.32km, 약358m) 08:45
대항산에서 방향이 좌측으로 틀어져 진행이 된다. 몇 분간 내려오면 앞쪽으로 조금 높아 보이는 봉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좌측으로 파란색 지붕의 축사가 보인다. 능선을 따라 가까이 가보니 흑염소 목장이다. 추정리1리에서 북쪽편 골짜기를 따라 들어온 곳으로 안쪽으로 들어오면 생각 보다 널찍한 골짜기가 펼쳐지는 곳으로 산 아래 추정2리 마을이 있다. 흑염소 목장 쪽으로 내려가는 임도가 있는 곳을 지나고 3분을 더 가면 다시 흑염소 목장 쪽에서 올라온 임도가 나온다. 이 임도는 능선을 따라 이어져 좌측으로 납골묘가 있는 곳을 지나 추정리에서 호정리 전원주택이 보이는 마을로 넘어가는 산정말고개 까지 이어진다. 이 고개는 추정1리에서 북쪽편 골짜기를 따라 들어와 추정2리 뒤편 산사면을 따라 이곳으로 이어져 낭성 호정리로 넘어가는 임도길이다.
백족산 삼거리(걸손봉, 5.69km, 약480m) 09:29
산정말고개에서 능선으로 올라서 진행을 하면 잡목길이 조금 있고, 우측으로는 벌목지로 가끔씩 드릅나무도 보인다. 10여분을 진행하면 좌측 추정2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여기서 2분을 더 가면 고개 사거리에 닿는다. 좌측은 추정2리 상정말 민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호정리다. 여기서 고개를 올라서면 곧 널찍한 임도길이 능선으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울창한 잣나무숲을 지나고 좌측으로 산소가 있는 곳에서 임도는 우측으로 빠지고 능선으로도 널찍한 길이 이어져 좌꺽임봉인 해발 약485봉에 닿는다. 이곳에서 잠시 방심한 탓에 직진으로 진행을 하여 낭성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다 약 150m지점에서 다시 돌아 왔다. 이 능선은 국수봉을 거쳐 낭성면 이목리로 연결이 되는 능선으로 등산로도 있다. 다시 돌아와 좌꺽임봉에서 정맥길을 따라 가면 10여분 후 백족산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를 지도에 걸손봉으로 표시한곳도 있다. 등산로는 백족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여서 내려서게 된다.
선두산(7.07km, 526.5m) 10:08 ~10:10
백족산 삼거리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간다. 올겨울 성무봉을 거쳐 선도산~ 선두산을 거쳐 백족산으로 한 바퀴 돌고 두 번째 걷는 길이다. 이곳으로 올라올 그때는 북사면으로 눈이 많아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5분을 내려서면 한계리(한시울)와 낭성을 잇는 임도가 나온다. 차량이 넘어 다닐 수 있는 곳이다. 임도에는 이정표도 있다. 한계리, 낭성, 선두산 세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잠시 이곳에 앉아 푸른소나무님이 준비한 빵과 칡즙으로 목을 축인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임도에서 오르는 가파른 지역을 지나면 경사도는 완만해졌다가 다시 가파르게 오르게 된다. 가파른 능선으로 오르면 상당히 많은 표지기가 붙어 있는 지점에 닿는다. 여기부터는 능선이 평탄해져 2~3분을 더 가면 선두산 정상이다. 선두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으며 정상표지판도 있다. 잡목을 많이 베어내 조망을 상당히 많이 트여 놓았지만 아직도 주변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선도산(9.81km, 547m) 10:58 ~11:10
선두산에서 내려서면 우측으로 한계리가 보이기 시작하여 한계저수지가 보이고 능선을 따라 좀 더 가면 작은 돌무더기가 있는 고개에 닿는다. 안건이고개를 이 고개를 말하는지 좀 더 가서 있는 고개를 말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기를 안건이고개 1로 하자. 여기서 좌측으로는 한계리, 우측으로는 낭성면 지산리 안건이 마을이다. 여기서 능선으로 올라서 4분 정도를 가면 한계리 쪽으로 빠지는 능선으로 길이 있는 삼거리로 이봉아래 산소가 있다. 살며시 내려섰다가 평탄한 길을 따라 가면 선도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지대를 오르기 전 고개가 있다. 이 고개를 안건이 고개2로 하자. 여기서 좌측은 한계리 우측은 지산리 불당골로 하산을 하게 된다. 이제 여기부터는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다. 씩씩거리며 오르면 20분후 좌측으로 성무봉으로 향하는 능선이 빠지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선도산 0.5km, 미테재, 성무봉 3.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거의 평탄한길을 따라 6분을 더 가면 오늘의 최고봉인 선도산 정상에 닿는다. 선도산 정상에는 군부대 시설물이 있으며 이정표 정상석등이 있다. 이곳에 올라오니 먼저 올라온 3분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커피한잔을 대접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 같이 간 친구가 도착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분 중 가장 나이가 많이 드신 분에게 인사를 한다. 전에 다니던 직장의 소장님이셨다고 한다. 반가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도산 정상석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잊었다.
생태통로공사장앞(12.4km, 약328m) 11:45
선도산에서 애기 하다가 사진 찍는 것도 잊고서 하산을 한다. 10여분을 진행하니 우측 무성삼거리 쪽으로 내려서는 샛길이 하나 보인다. 자작나무 숲이 보이고, 2분을 더 오르니 산소가 있는 봉으로 해발 약 495m가 나온다. 이곳에서 2분여 내려서면 이정표가 나온다. 선도산 1.2km, 현암리 1.1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다시 3분 정도를 더 내려오면 안부고개에 닿는다. 능선을 따라 앞쪽으로는 442봉이 보이지만 여기서 등산로는 좌측 사면으로 나있어 대부분 이 길을 따라 현암리로 간다. 우리도 이 길을 따라 간다. 6~7분후 현암리 마을 뒤편 임도에 닿으면 여기서는 우측으로 내려가면 등산로 표시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좁은 길을 따라 나오면 현암리 마을 앞 도로로 나가는 세멘포장길이다. 도로에 닿은 후 좌측으로 마을 앞을 지나서 가면 목련공원으로 내려가는 도로가 갈리는 현암삼거리다. 이지점이 현재 도로 확장공사로 매우 복잡하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가면 앞쪽으로 둥그런 터널을 만들고 있는 곳이 보인다. 생태통로로 이곳까지 우리는 도로를 따라 간다. 원 정맥 길은 삼거리에서 도로 우측 편으로 있는 언덕으로 올라 송전탑이 보이는 봉에서 생태통로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야 하지만 현재는 도로 우측 언덕이 대부분 도로로 들어가고 조금 남은 송전탑이 있는 봉으로 오르려면 높다란 절개지가 있고 생태 통로로 내려오는 곳도 공사 중이라 현재는 내려올 수 없다. 이공사가 다 끝나고 나면 생태통로로 길이 연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청양원 도로(이정표, 13.7km, 약385m) 12:17
생태통로 좌측으로 들어가면 희미한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능선으로 들어가면 생태통로 너머에서 올라온 임도가 나온다. 임도 좌측으로 잘 가꾼 산소들이 보이고 위로는 은행장을 했다는 성주이씨묘가 있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길은 점점 더 가파르게 올라 이정표가 있는 해발 약 401봉에 닿는다. 이정표에는 선도산 3.1km, 것대산 1.6km가 적혀 있다. 능선에 닿은 후 우측으로 조금가면 좌측 방향으로 급격히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곧 목련공원 위쪽 능선이다. 이 능선에서 바로 앞쪽으로 금시 지나온 선도산이 마주 보인다. 이제 목련공원 뒤편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면 능선으로는 좌, 우로 온통 산소가 차지하고 있다. 산소지대의 능선에서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양쪽으로 산소로 가는 길이 있는 곳에서 가운데 능선을 따라 오르게 되면 삼각점이 있는 404봉에 닿는다. 삼각점 안내문은 반이 동강나 한쪽은 땅에 떨어져 있다. 이제 이봉에서 내려서면 4분이면 커다란 산소가 있는 곳을 지나 요양시설인 청양원으로 가는 도로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선도산 3.5km, 것대산 1.2km가 적혀 있다.
것대산 활공장(14.3km, 485m) 12:29 ~12:45(중식)
청양원 도로에서 것대산으로 향하는 곳은 목재계단이 잘 놓여 있다. 이곳을 오르면 송신탑이 있고 서서히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청양원 건물들이 보이고 뒤편으로 잣나무가 보이는 능선으로 가면 낙가산을 거쳐 보살사로 하산을 하는 능선이다. 앞에 보이는 봉을 향하여 오르다 적당한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하려 한것인대 이제 앞쪽으로 정자가 있는 봉이 가까이 보이니 저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여야겠다. 이봉이 것대산 정상으로 정자가 있고 풍향계가 있는 활공장이다. 여기 것대산에서 내려다보는 청주시의 전경이 매우 좋다. 청주시의 대부분 지역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지점이다. 우리는 이곳 정자에서 오붓하게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정자에는 둘레로 의자가 있으며 식탁으로 쓸 탁상이 하나 있어 우리는 편히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는 중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친구들이 질러 대는 요란한 소음에 잠시 식상했으나 식사가 끝나기 전 내려갔다.
산성 남암문(16.6km, 약430m) 13:20
것대산에서 인증샷을 한 후 내려서기 시작한다. 여기 등산로는 대로나 마찬가지다. 청주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으로 조망도 좋고 등산로도 매우 좋다. 잠시 후 임도에서 올라온 널찍한 지점을 지나 봉수대에 닿는다. 4개의 화로로 되어 있는 봉수대 좌측으로는 수직으로 된 높다란 바위가 있다. 바위 아래로는 치성터가 있다. 이제 봉수대를 지나 내려서면 119구조 11-2점의 해발 약445봉이다. 이봉에서 내려서는 지점이 음지쪽으로 이제 막 언 땅이 녹아서 매우 미끄럽다. 우측으로는 핀 참나무라고 하는 특이한 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내려서면 상봉재로 이정표에 낙가산 2.4km, 상당산성 1.1km가 적혀 있다. 여기 안내문에 상봉재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상봉재는 미원이나 낭성에서 소몰이꾼이나 장을 보러 청주로 오가던 이들의 옛길 고개로 것대고개 또는 상봉고개라 하며, 상당구 산성동 것대에서 것대산을 끼고 명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아래는 중봉으로 명암지위에 해당되며, 그 위가 상봉에 해당된다.
상봉재를 지나면 것대골이 나오고 산성고개와 만나 낭성면 현암리와 연결이 된다. 상봉 지명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의 산이라는 뜻으로 전국의 곳곳에 산이나 고개에 흔히 쓰인다. 명암동에는 ‘상봉’아래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중봉’이 있다. 또한 금강과 한강의 물줄기를 가르는 한남금북정맥이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상봉재에는 모자상봉이 얽힌 애틋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청주 영기로 적을 두고 있던 김해월은 영장 남정년의 주선으로 비장 흥림의 애첩이 되었다. 그 당시 청주 병영 군관으로 있던 흥림은 팔십노모를 모시고 있었으나 슬하에 혈육이 없어 손을 보기 위해 해월이를 첩으로 맞아들여 남문 밖에서 살림을 하고 있던 중 마침내 잉태를 하여 해월이가 해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조4년(1728년) 이인좌 등이 모반하여 청주성을 기습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흥림이 장검을 꺼내들고 나가려 하자 후일을 모도하라고 만류하였으나 흥림은 팔십노모와 유복자를 부탁하고 나가 전사한다. 해월은 다음날 남편 흥림의 시체를 거두어 우암산 기슭에 묻고 장례를 치뤘다. 해월의 아이가자라 세 살이 되던 해, ‘동자가 열 살을 못 넘기고 수액에 의해 요절 하리라’는 시주스님의 말을 전해 들었다. 당황한 해월이 시주스님에게 해결방법을 종용하자 스님은 ‘저 아이를 보국사 주지스님 해원에게 위탁하여 열흘에 한번씩 성황당 고개에서 기다렸다가 만나야 하며 절대 성황당을 한 발짝이라도 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 금기를 일러 주었다. 아이가 7세 되던 해 해월은 ‘절대 성황당 고개를 넘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잠시 잊고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성황당 고개를 넘고 말았다. 아이 역시 해월의 모습이 보이자 쉴새 없이 달리다가 그만 연못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 결국 해월이 남편의 유지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자결하고 말았다는 모자상봉의 애틋한 전설이 있다.”
상봉재를 올라서면 산소주위로 측백나무가 심겨진 봉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어린이 회관이 있는 곳에 닿는다. 이곳 이정표에 어린이 회관 2.7km, 낙가산 2.5km, 상당산성 1.1km가 적혀 있다. 이곳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따라 가면 곧 능선으로 목책이 쳐져 있는 산소지대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 조금씩 오르내리며 12분을 더 가면 출렁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 아래로는 약수터에서 산성으로 넘어 다니던 옛 도로가 있다. 현재는 이곳을 막고 옛길 복원 공사 중이다. 출렁다리를 건너 능선으로 올라서면 2~3분후 높다란 송신탑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 좀 더 오르면 탁자 3개가 놓여 있는 쉼터봉에 닿는다. 여기서 좌측으로 약수터 쪽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 쉼터봉에서 5분을 더 가면 산성에 닿기 전 이정표가 나온다. 것대산 2.7km, 산성서문 1.2km, 산성남문 0.6km가 적혀 있다. 여기서도 좌측으로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제 이곳에서 2분을 더 가면 산성으로 들어가는 남암문에 닿는다.
상당산(18.4km, 491.5m) 13:46 ~13:50
남암문에서 부터는 산성을 한 바퀴 도는 길이 널찍하니 잘 나있다. 조금 더 있다가 연산홍꽃이 만발할 때 올라오면 꽃구경도 좋고 사람구경도 좋을 것인대 아직은 조금 이르다. 성길을 따라 가면 우암산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있는 지점을 지나고 좀 더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며, 이곳을 넘어가면 서문으로 현재는 하얀 천으로 가리고 보수공사중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성문을 빠져 나가면 샘터가 있고 백화산으로 가는 길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성내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성터 길을 따라 오른다. 7분을 오르니 내수 덕암리 쪽의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곳 이정표에 휴양림 2.0km, 동문1.4km가 적혀 있다. 이곳을 지나 오르면 오늘의 마지막 봉인 상당산으로 휴양림 삼거리에서 10분 정도가 더 소요된다. 상당산 정상에도 복원공사인지 발굴을 하는지 파란 포대로 덮어 놓았다. 상당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으며 길죽한 정상석도 있다.
성내 주차장(19.2km, 약360m) 14:04 ~14:25
상당산에서 이티재로 가려면 이곳에 성이 있기 때문에 직접은 내려 설수가 없다. 예전에는 성이 낮고 하여 돌을 하나 놓고 올라 다녔으나 복원공사가 끝나고는 내려 설수가 없다. 이티재로 가기 위해서는 동문 쪽으로 4분여 내려서면 동암문이 나온다. 이곳에서 이티재로 가야 한다. 우리는 오늘 정맥 길은 이곳에서 끝을 맺으려 한다. 앞으로의 대중교통편을 맞추기 위해선 이곳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 여기 이정표에 이티재 6.8km, 동문 0.6km가 적혀 있다. 이제 성길을 따라 내려서면 10분을 조금 못가서 동문에 닿는다. 동문에서 내려서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면 성내에 있는 버스정류장 앞에 닿는다. 이곳에는 식당과 슈퍼 커피점등 식당가가 있으며 앞쪽으로 작은 저수지가 있다. 청주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휴식터다.
우리는 이곳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씩을 나누고는 버스를 타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청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우리는 오늘 산보 하듯 편하게 산행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 여행을 다녀와 피곤할 터인데 쉬지도 못하고 함께 산행하느라 고생한 친구 수고 많았네
담 산행은 이곳에서 시작이 되니 담 산행까지는 그래도 편하게 산행을 할수 있겟구려 ~~
담 산행때 봄세나 ~~
산행시간 : 6시간 18분 소요
산행거리 : 19.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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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금북정맥 제3구간(추정재~선도산~상당산)
오동육교 ~미원(211번) : 첫차 : 5:55 , 6:25, 7:00, 7:19, 7:55 등
서원초등학교앞 버스(1000원) 6:10 -철당간앞 버스정류장(1850원) 6:30 ~6:44 -추정1리 7:15
산성 ~체육관(862-1번) : 14:00, 14:25, 14:50, 15:15, 15:40, 16:45, 17:10, 17:35등
산행거리 16.6km 6시간
추정재(머구미) -2.1 -483.1봉 -4.1 -선두산 -2.5 -선도산 -1.8 -현암삼거리 -3 -상봉재 -1.1 -산성고개 -2 -상당산
산행코스
추정재 -395봉 -410봉 -432봉 -대항산(483.3m) -372봉 -산정말고개 -420봉 -485봉-485봉(걸손봉) -525봉 -선두산(527m) -372봉 -안건이고개 -441봉 -525봉 -선도산(547m) -500봉 -442봉 -현암삼거리 -403.6봉 -것대산(485m) -433봉 -삼봉재 -산성고개 -남암문 -450봉 -서문 -상당산(471m)
산행시간
추정재 -3.3km, 60분 -신정말고개 -3.05km, 60분 -선두산-2.55km, 60분 -1.95km, 30분 -현암삼거리 -2.65km, 70분 -거대산 활공장 -1.35km, 20분 - 산성고개 -2.45km, 50분 -상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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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3 팔봉지맥3구간 은적산~학천산~출동산~황우산~용대이산 ~부강약수터 2015.03.19.목요일 맑음 (1) | 2023.01.16 |
0832 백두36구간 백봉령~등갈산~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 2015.03.14.토요일 맑음 (1) | 2023.01.16 |
0831 한남금북2구간 구티재~탁주봉~시루산~구봉산~국사봉~추정재 2015.03.10.화요일 강풍,한파 (2) | 2023.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