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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580 지리산 불무장등봉 능선 2011.8.21.일요일 맑음

지리산 불무장등봉 능선

성삼재~노고단~반야봉~삼도봉~불무장등봉~통꼭봉~황장산~촛대봉~화계

노고단1507m, 반야봉1732m, 불무장등봉1446m,통꼭봉904.7m,황장산942.1m,촛대봉728m

2011.8.21.일요일 맑음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천안23:52 -조치원0:13 -구례구역 3:18~3:35 -버스1100 -구례터미널 3:40 ~4:00 -버스 4000 -성삼재 4:38 ~4:45 -노고단산장 5:15 ~5:35 (아침식사) -노고단 고개 5:42 -노고단 정상 5:55 ~6:10(해맞이) -돼지령 6:51 -피아골삼거리 7:01 - 임걸령 7:10 -노루목삼거리 7:36 ~7:40 -반야봉 8:15 ~8:30 -삼도봉 9:02 ~9:07 -우측피아골쪽 하산로 9:23 -불무장등 9:59 -전망대 10:23 -좌측하산로 10:59 - 11:20 ~11:30 -통꼭봉 11:38 ~11:40 -국립공원경고문사거리 12:00 -헬기장 12:04 -임도고개 12:08 ~12:35(중식) -당재 12:37 -첫봉(812) 12:55 -황장산 전 높은봉 13:29 -헬기장 13:37 -평도마을 삼거리이정표 13:38 -우측모암마을 하산로(폐쇄) 13:44 -전망봉 13:58 -황장산 14:00 ~14:15 -이정표봉(687)(우측능선으로) 14:31 -중기마을 삼거리 14:37 -새끼미재 14:54 -촛대봉 15:07 ~15:10 -바위 15:23 -촛대바위 15:28 -삼각점봉(586) 15:45 - 약천사갈림길(우측으로) 15:49 -안부사거리 15:55 - 안부사거리 16:06 -31816:11 -무덤군 16:31 -화계 산행끝지점 16:45 ~17:30 -구례구역 17:55 ~17:55 -조치원역 21:23 -천안역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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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무장등 능선 ( 농평 또는 쌍계사 삼거리) - 당재 - 삼도봉불무장등(1,446m) 능선은 주릉 상의 삼도봉(1,499m)에서 불무장등 - 통꼭봉(904.7m) - 황장산(942m)을 거쳐 섬진강변의 화개까지 이어지는 긴 능선을 말한다.

서쪽으로는 그 유명한 <피아골> , 동쪽으로는 <목통골,일명 연동골>을 끼고 늘어서 있는 불무장등은 남쪽으로 내려서면서 그 기세를 낮추다가 통꼭봉(904.7m)이 후 <당재>에서 그 기세를 완전히 낮추었다가 다시 황장산(942.1m) 촛대봉으로 이어진다

이름부터 만만찮게 느껴지는 불무장등 능선은 영신봉(1,651.9m)에서 삼신봉(1,284m) - 제봉(1,115.2m)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과, 왕시리봉 능선과 함께 지리산 남부를 대표하는 능선이다.   산행 기점은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입구 삼거리와 구례군 초지면 농평으로 나눌 수 있다.

산행시간은 쌍계사 삼거리 기점은 8시간, 농평 기점은 4시간 정도 걸린다. 하산길은 노고단 또는 뱀사골로 이을 수 있으나, 원점회귀형 산행을 원할 경우 쌍계사 기점은 목통골, 농평 기점은 피아골로 내려선다.

쌍계사 입구 기점 산행에 나설 경우, 주차장에서 서쪽 계곡가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만황 마을까지 오른다. 만황 마을은 대나무숲 속에 들어앉은 독특한 분위기의 산중 마을로, 마을을 지나 새껴미재와 황장산 사이의 능선에 올라서면 일단 힘든 과정은 끝난다.

이후 당재로 살짝 내려섰다가 통꼭봉까지만 오르면 불무장등 직전 안부까지 완경사의 능선으로 이어진다.

완경사의 능선이 끝나면 불무장등 정상까지 40분 정도 가파른 능선길이지만, 불무장등 이후 삼도봉까지는 또다시 완경사의 능선길이다. 삼도봉 직전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은 삼도봉 서쪽 안부로 이어지고, 오른쪽 길은 정상으로 오르는 바윗길로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와 함께 전망이 뛰어난 길이다.   전남 전북 경남 3개 도의 접경지에 솟아 있는 삼도봉은 '날나리봉' 이라고도 불리는 암봉으로 정상에서 오른쪽(동쪽) 길로 내려서면 화개재 - 천왕봉 방향, 왼쪽(서쪽) 길을 따르면 반야봉(1,732m)이나 임결령을 거쳐 노고단으로 이어진다.

반야봉을 오르려면 삼도봉에서 임걸령쪽으로 가다 첫번째 삼거리와 두번째 삼거리에서 모두 오른쪽 길을 따라야 한다.

뱀사골은 화개재에서 북쪽, 목통골은 남쪽으로 내려서야 하고, 피아골은 임걸령을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마치 되돌아가는 듯한 능선을 타다 남쪽 골짜기로 내려서야 한다.

농평 마을은 피아골 매표소 직전 오른쪽 콘크리트 길을 따라 2km쯤 오르면 나타나는 산중 마을로, 농사짓기에 좋은 곳이라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마을 맨꼭대기 민가 뒤로 난 묵밭 길을 따르면 당재 위 날등에 올라선다.

 

 등산코스

 농평마을-불무장등-삼도봉피아골 내동리 농평마을에서 불무장등-삼도봉 코스는 화개장터가 영화를 누리던 시절, 장사꾼들이 넘나들던 능선길이다. 지리산을 좀 안다는 산꾼들도 가본 사람이 드물정도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코스다. 등산로는 뚜렷하게 나있지만 숲이 우거져 손으로 헤치고 나가야 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번잡함을 꺼리는 호젓한 산행을 원한다면 반드시 한번은 가봐야 할 코스다.들머리는 농평마을이다. 해발 650미터에 위치한 농평마을은 여타의 지리산 산마을들이 개발의 바람을 타고 인심이 사나워진데 반해 아직은 풋풋한 산골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농평마을은 연곡사 입구인 내동리 평도에서 1시간 30분을 걸어야 한다.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올라온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는 이 마을은 예전엔 화개장터를 오가는 장사치를 상대로 한 술도가가 있었을 만큼 번성하기도 했다. 지금은 7가구가 고냉지 채소와 한봉, 토종닭을 치며 살고 있다.농평마을에서 등산로 들머리 찾기는 쉽지 않다.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가 맨 끝집에 다다르기 전 왼쪽의 묘지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10분쯤 가면 통곡봉에서 당재 황장산으로 흘러내린 능선 마루에 올라선다. 능선 마루 사거리에서 왼쪽 능선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20분쯤 가면 사위가 시원하게 트이는 바위가 있다. 바위에서 통꼭봉 정상까지는 10분 거리.통꼭봉에서 불무장등으로 가는 능선길은 흙길로 부드럽고 평탄하다. 숲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햇빛 볼 일 없이 시원한 산행을 할 수 있다. 40분쯤 가면 오른쪽으로 연동골로 빠지는 길이 있고, 능선을 따라 얼마 가지 않아 왼쪽으로 계곡을 따라 피아골 직전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무조건 능선길만 따르면 된다.불무장등은 통꼭봉에서 보았던 것처럼 가파르고 오름길이 길다. 직전마을 갈림길 지나 10분쯤 가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다. 숲이 우거져 답답한 길이다. 1시간 바삐 걸으면 불무장등에 설 수 있다. 불무장등 오르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다. 불무장등에서의 조망도 그리 시원한 편은 아니다. 불무장등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반야봉과 삼도봉이 시원스럽게 보이고, 주릉 종주 중인 사람들의 야호 소리도 들린다. 불무장등에서 삼도봉까지는 40분쯤 걸리며 능선은 한없이 부드럽다. 삼도봉 올라가기 전에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오른쪽 바윗길은 가파르지만 바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왼쪽길은 반야봉 쪽으로 우회해서 오른 길이다. 총 산행 시간은 3시간쯤 걸린다

 

<등정코스>

 목통교(주차장)-당재-통꼭봉-삼도봉-화개재-토끼봉(헬기장)-참샘-칠불사-목통마을(7시간40)

 목통교(주차장)-당재-통꼭봉-삼도봉-화개재-목통골 - 목통마을(6시간20)

불무장등 능선은 삼도봉(1499m)에서 불무장등(1446m), 통꼭봉(904.7m), 황장산(942m)을 거쳐 섬진강변의 화개까지 이어지는 긴 능선이다. 불무장등 능선은 영신봉에서 삼신봉, 형제봉에 이어지는 남부능선 및 왕시루봉 능선과 함께 지리산의 남부를 대표하는 능선이기도 하다. 불무장등의 등산로는 능선을 뚜렷하게 있지만 수림이 울창하고 산죽과 나무숲이 우거져 헤치고 지나야 하는 곳도 많다. 이 능선은 물을 구할 수가 없으니 미리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번잡함을 피해 호젓한 산행을 원한다면 반드시 한번은 가봐야 할 코스이다.

산행기점은 대부분이 직전마을 또는 피아골 방향의 통곡봉 아래에 위치한 해발 650m의 높이에 있는 농평 마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농평마을은 연곡사입구에서 1시간30분 정도 올라야 하고, 원점회귀 하는 데에도 불편하다. 직전마을에서는 통꼭봉을 거치지 않고 불무장등에 바로 오르게 되어 산행의 재미가 없다.

통꼭봉과 불무장등을 모두 거치면서 호젓한 산행을 할 수가 있는 원점회귀 코스는 쌍계사 방향의 범왕리 목통마을이 좋다. 목통마을에서는 통꼭봉과 불무장등을 거쳐 삼도봉에 오를 수가 있다. 삼도봉에서는 화개재로 내려와 목통골로 하산 또는 토끼봉까지 올랐다가 칠불사를 거쳐 목통마을로 하산할 수도 있다. 목통 마을은 목통교(다리)를 사이로 양쪽에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다.

목통마을은 깊은 산간 오지에 위치하여 마을이 바로 산이며 계곡이라고 하겠다. 주차장은 한여름의 피서철과 단풍철에 유료로 운영하지만 그 외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 그냥 이용할 수가 있다. 목통교(다리)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계곡 좌측의 길을 따라 가면 민박집 마당에 들어가진다. 민박집 마당 우측의 샛길로 따라가면 왼쪽의 당재방향 계곡을 따라 산길이 이어진다. 15분정도 오르면 외딴농가의 앞을 지나가게 된다.

농가를 지나 계곡 방향의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면 우측의 산비탈에 농막이 하나 보인다. 계곡물이 쫄쫄 흐르다가 갑자기 끊어지므로 농막이 보이는 지점을 지나자마자 수통에 물을 보충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물을 전혀 구할 수가 없다. 계곡을 지나 능선부에 올라서면 당재이다.

목통교(다리)에서 당재까지는 완만한길로 35분 정도면 당재에 도달하게 된다. 당재에는 농평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황장산 방향의 길이 능선을 따라 있다. 당재에는 황장산 방향으로 가는 능선에 울타리가 쳐져 있으며 나무문이 설치되어 있고, 임시농막도 보인다. 우측의 불무장등 방향의 능선을 따라 조금 올라 넘어가면 능선을 가로질러 넘나드는 경운기길(농로)이 나타난다.

다시 능선에 올라 10분정도 오르면 전망 바위가 있다. 이 전망바위를 내려서면 농평마을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산로를 또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등산로는 더욱 뚜렷하게 좋아진다. 그리고 곧 바로 입산통제 안내판이 있고, 길은 능선과 우측의 산비탈을 따라 가는 길로 나뉘어 진다.

능선을 택하여 30~40분정도 오르면 통꼭봉에 도달한다. 통꼭봉에서는 북동 방향의 조망이 트여 높고 거대한 불무장등의 봉우리가 앞쪽에 보이며, 이곳(통꼭봉)에는 이동통신(SK,KTF) 전파탑시설이 있다. 통꼭봉에서 불무장등에 가는 능선은 낙엽이 덮인 흙길로 부드럽고 평탄, 완만하며 산죽이 무척 많이 우거져 있다.

사람의 키를 훨씬 높게 자라서 산죽굴을 이루고 있으며, 또 울창한 수림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햇빛 볼일이 없어 시원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통꼭봉에서 30분쯤 가면 오른쪽에 연동골로 빠지는 길이 있고, 또 조금 가면 왼쪽에 피아골의 직전마을에 내려가는 길이 있다. 수림이 우거져 있어 갈림길에서 방향 잡기가 조금 어렵지만 능선을 따라 오르면 된다. 불무장등 봉우리는 통꼭봉에서 보았던 것처럼 가파르고 오름길이다. 갈림길에서 1시간20분 정도면 불무장등에 오를 수가 있다.

불무장등 정상을 지나면 목통골(연동골)과 피아골 방향의 용수골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계속하여 능선을 따라 가서 작은 봉우리를 하나 지나면 반야봉과 삼도봉이 시원하게 보이고, 사람들의 야호 소리도 들려온다. 불무장등에서 35분정도 오르게 되면 바위봉을 만나는데 길은 바위로 오르는 길과 왼쪽을 우회하는 길이 있다. 바위에 올라서면 조망이 매우 뛰어나고, 전면의 아래는 절벽 낭떠러지이다. 이 바윗길을 계속 따라 오르면 삼도봉 표지가 나타난다. 불무장등 봉우리에서 삼도봉까지는40분쯤 소요된다.

삼도봉에서는 노고단과 천왕봉이 선명하게 조망된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서 목통골로 하산해도 되고, 다시 30분정도 토끼봉을 올라서 칠불사를 거쳐 목통마을로 하산해도 된다. 목통골은 화개재에서 15분정도 내려가면 계곡이 시작되고, 또 사람발길도 크게 없는 곳이므로 계곡이 한적하고, 매우 좋아 여름 산행지로는 아주 좋다. 화개재에서 2시간정도 내려가면 목통마을에 닿는다.

화개재에서 20분정도 오르면 토끼봉이다. 토끼봉은 헬기장이 있으며, 밧줄로 보호선을 둘러쳐 놓았다. 그리고 칠불사 방향에는 "등산로통제" 안내판이 있다. 이 안내판에서 오른쪽에 보면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다. 1시간10분정도 내려가면 참샘에 도달한다.

시원한 물을 받아 마시고 20분정도 더 내려가다 보면 갈림길이 있다. 이곳에 능선을 넘어가는 길과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능선 방향은 등산로 아님을 표시하여 놓았다. 그러나 능선은 칠불사로 가는 길이고 능선을 넘어내려 가면 범왕마을로 가진다. 목통마을로 하산하려면 칠불사 방향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20분정도 내려가다 보면 다시 우측에 갈라지는 갈림길(P)을 만난다.

여기서 우측의 길을 택하여 10분정도 내려가 약간 평탄한 곳에서 또 샛길이 갈라지는데, 좌측의 길로 접어들어 내려가면 곧 바로 칠불사가 보인다. 칠불사 마당에 들어가 도로를 따라 내려가도 되고, 오른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도 도로를 만나게 된다. 칠불사 뒤의 능선에서 오른쪽 산비탈의 길을 따라 가면 동굴을 지나 목통골로 들어가지게 되므로 바로 따라 내려와야 한다. 칠불사를 지나 포장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아주 넓은 칠불사 주차장을 지나게 된다. 주차장을 지나 조금 내려오다(주차장에서 30m정도) 보면 앞쪽에 도로가 좌로 꺾어지는 곳이 있는데, 도로 표지판이 멀리 보이고, 우측의 작은 계곡 위쪽에 작은 밭 같은 것이 있고, 안쪽에 통신망과 관련된 전주가 하나가 있다. 이곳을 들어서면 희미한 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초입에는 길이 희미하고 잡풀이 많지만 내려 갈수로 뚜렷해지면서 목통마을로 이어진다. 20분정도 내려가면 목통마을에 닿게 된다.

목통마을에서 당재로 올라 통꼭봉, 불무장등과 삼도봉, 토끼봉, 칠불사를 거쳐 목통마을까지 원점회귀 하는 산행소요시간은 목통마을에서 당재까지 35, 당재에서 삼도봉까지 3시간40, 삼도봉에서 토끼봉까지 45, 토끼봉에서 칠불사까지 2시간10, 칠불사에서 목통까지 25분하여 총 7시간40분정도 소요된다. 점심시간 포함하면 8시간정도 소요된다.

이 코스는 통제구간이라서 안내표지가 전혀 없고, 수림이 울창하여 갈림길에서 방향잡기가 조금 어려우며, 통곡봉에서 당재 구간에는 여러 군데 갈림길이 있지만 숲속이라서 정확한 지점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원점회귀 하는 불무장등 코스는 목통에서 당재로 올라 목통골(연동골이라고도 함), 또는 토끼봉에서 칠불사 방향의 능선타고 하산하는 것이 쉽다. 화개재에서 목통골로 하산하면 40~50분정도 산행시간의 단축이 가능하다. 2005. 6월현재 토끼봉에서 칠불사 방향도 통제구간이므로 이곳을 산행하려면 요령껏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동황장산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에위치한 해발 942m

*지리산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내닫는 긴산등성이는 경상도와 전라도의경계를이루며 양겨드랑이에 피아골과화개골을 끼고 뻗어내린다  이름하여 불무장등능선으로 불무장등 통곡봉 황장산 촛대봉을 일어켜세우고 섬진강에서 꼬리를내린다   그러니까 황장산은 불무장등능선에 위치하고있다

황장산은 한문표기가잘못되어 누른노루라는 황장산(黃獐山)으로쓰고있으나 원래지명은 정상까지 멀고도먼산이라는뜻인 항장산(項長山)이었다

* 화개버스터미널--대밭--316--약천사표지판--촛대바위--촛대봉--새끼미재--중기마을 갈림길--황장산--평도마을갈림길--당재--목통

처음부터 끝까지 숲으로둘러쌓여 시원하고 푹신한육산으로 여름산행코스로좋으나 숲으로가려 조망이없음

*마산시외터미널에서 진주행뻐스4400--진주서 하동행뻐스4700--하동서 화개행뻐스2100

*목통에서신흥마을까지걷고 신흥마을에서 오토바이로 고마운분이 쌍계사까지태워줌 쌍계사에사 화개까지 택시비 3000원 화개에서 하동까지 택시비 21000

  

지리산 토끼봉 칠불사

지리산 토끼봉의 해발 830m 지점에 있는 칠불사는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왕자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8월 보름날밤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지리산 최고의 심산유곡에 자리를 잡아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1800년 큰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신선당, 벽안당, 미타전, 칠불상각, 보술루등 10여동의 건물이 불탓다가 복구 되었다.

1948년 여수순천반란 사건을 거쳐 6.25전쟁중 다시 불탄뒤, 1978년에 복구하여 지금의 칠불사가 되었다. 운공선사가 축조한 벽안당 아자방은 세계건축 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을만큼 독특한 양식으로 서산대사가 좌선한곳이자 1828년 대은선사가 율종을 수립한곳으로 유명하다.

아자방은 신라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방으로 방안 네 귀퉁이에 70cm씩 높인곳이 좌선처이며, 가운데 십자모양의 낮은곳이 행경처이다.

한번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하며, 100명이 한꺼번에 좌선을 할수 있는 방으로 건축이래 한번도 보수한적이 없다.

일곱왕자를 성불시킨 보옥선사는 거문고의 명인이 었으며, 신라 경덕왕때는 옥보고가 입산해 50년간 30곡의 거문고곡을 지었다고 한다.

주변에 쌍계사, 청학동 도인촌, 청학선원 삼성궁, 화계장터, 섬진강, 하동송림등의 관광지가 있다.

자료출처 : 하동군 홈페이지

 

지리산 지명이야기

 지리산 노고단 老姑壇

 선도성모 *** 노고단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고는 넑은 할머니을 이르는 말이다. 길상봉이라고도 한다.

제사는 선도성모의 사당인 남악사를 세워 올렸는데 지금은 화엄사 앞으로 옮겨져와 구례군민들이 해마다 곡우절을 기해 약수제와 함께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남악사의 유래 *** "삼국사기" 제사 부분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삼산과 오악 이하의 명산대천에 대사. 중사. 소사의 제사를  지냈는데, 중사를 지내는 오악은 동쪽 토함산, 남쪽 지리산, 서쪽 계룡산, 북쪽 태백산, 중앙부악(지금의 팔공산)이었다' 고 적혀 있어 지리산에서 남악으로 정해져 제사를 올리던 명산이었다.

 

 바위할매. 바위할배 전설 **** 옛날 노인 부부가 자식이 없어 애를 태웠는데, 영산에서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 든 곳이 노고단이었다.

두 부부는 천 일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가 끝난 날 안타깝게도 천왕봉을 향해 두 손을 곱게 모은 채 함께 숨지고 말았다.

노부부는 바위할매와 바위할배로 변했는데, 그 뒤 이곳을 지나는 산 사람들이 간단한 산제를 지냈다. 또 그 주변에는 할미꽃이 만발한 꽃밭을 이루었고 철쭉꽃, 백합꽃, 나리꽃이 점차 늘어나 화원이 되었다  한다.

     

성삼재 姓三峙

성삼재 지명유래는 삼한시대에 진한군에 밀리던 마한왕이 피난할 때, 이능선은 가장 중요한 곳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 방어케 하였으므로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

 

무넹기

성삼재휴게소를 출발하여 30분정도 올라가면 무넹기(해발1,250m)가 나온다.

무넹기의 지명유래는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고개를 넘겨 흐르게 한다고 하여 무넹기라

고 지명되었다, 이곳은 시야가 넓은 곳으로 조망대가 설치되어 구례읍 전경과 섬진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종석대(우번대) 鐘石臺

성삼재 뒤쪽의 바위봉우리이다. 백두대간상에 있으며 노고단에서 보면 종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바위에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돌종을 울리는 소리와 같다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으며 혹자는 관음대라고도 한다.

우번암을 찾아가는 길은 정상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2~3분 나아가면 조그만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남쪽방향으로 길이 있다.

그 길로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번암의 붉은색 지붕이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길로 내려서면 된다. 우번대사가 깨쳤다는 곳이다.

 

돼지령  

노고단 능산 안부에 진달래와 철쭉산행지로 유명한 돼지령은 멧돼지가 원추리 뿌리를 종종 파 먹던 곳에서 유래되었다.

 

임걸령

옛날 지리산 기슭 마천면 삼정리 하정부락에는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사냥 길목에서는 하루에 꼭 3차례씩 무지개가 섰다가 꺼지곤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무지개 아래 소()에서 어여쁜 3선녀가 정성껏 밥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옥황상제의 시녀들이 날마다 내려와 밥을 짓는데 그러던 어느날 더위를 못 참았는지 선녀들이 소에서 멱을 감게 되었다.

이때 인걸은 선녀들의 날개 옷만 입으면 자기도 옥황상제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날개 옷을 훔쳐 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날개 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버렸다.

옷 찢기는 소리에 깜짝 놀란 선녀들은 놀란 나머지 각자 자기의 옷을 찾아 입었는데 아미(阿美)라는 선녀만은 옷이 없어 인걸이 갖다 준 어머니의 옷을 입고 결국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하고 인걸의 집으로 와서 몇 날을 지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미 선녀를 인걸과 같이 살도록 허락하고 비단옷과 쌀이 나오는 바위를 하사해 주었다. (이 쌀 바위는 작전도로 공사 때 묻혀 버렸다고 한다)

인걸과 아미는 그로부터 1 2녀를 낳아 하늘아래 첫 동네에서 정자(지금 하정부락 앞 솔밭 근처에 있는 선유정이 그것이라고 한다)를 짓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걸이 장난삼아 옛날 찢어진 아미의 날개 옷을 기워서 입혔는 데 그만 아미가 하늘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삼도봉 (三道峯)1,550m

삼도봉은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짓는 봉우리이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이정표를 세우면서부 명명되고 삼도 경계의 삼각점에 동판이 있다.

삼도봉-토끼봉-영원령-삼정산의 능선으로 전북과 경남을 경계로. 삼도봉-반야봉-맘복대-다름재의 능선으로 전북과 전남을 경계로. 삼도봉-불무장등-통곡봉-촛대봉의 능선으로 전남과 경남을 경계로 하였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삼도봉은 화개재에서 2km의 짧은 거리다. 또한 반야봉까지도 2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노고단까지는 8.5km 남짓한 거리로 삼도봉은 종주능선상의 요충지이다.

더욱이 반야봉 등반에 앞서 삼도봉과 반야봉, 그리고 삼도봉에서 노고단쪽으로 2km 남짓한 곳에 위치한 노루목등 세지점은 삼각형의 등산로를 연결하고 있다.

 

 노루목****여기서 등장하는 "노루목"이란 지명의 유래도 흥미롭다. 노루목이란 독특한 이름은 노루들이 지나다니던 길목이란 뜻도 있지만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 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지켜들고 있는 형상의 바위 모양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불무장등****삼도봉은 주릉상의 요충지면서 그 산세는 섬진강으로 뻗어내리는 불무장등 능선의 시발점이다.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삼도봉과 불무장등 능선은 삼도봉에서  해발 1,446m의 불무장대, 해발 942m의 황장산을 지나 촛대봉에서 잠시 솟았다가 화개장터 부근의 산자락을 끝으로 섬진강으로 잠긴다.

이능선이 경남과 전남을 구분지으며 경남쪽으로는 연동골과 화개골을 빚어내고 있으며 전남쪽으로는 피아골을 만들어내 모두 섬진강에서 하나가 된다.

"불무장등"의 한자표기는 "不無長嶝"이나 "佛母長嶝"으로 표기하고 있다 "不無長嶝"이라 표  기한 경우는 불무장등의 산세가 대장간의 화로인 불무와 같은 형상으로 생겼다하여 생긴  지명이다

올바른 표기는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뜻하는 단어인 반야(般若) 반야봉에서 시작한 반야 장등에 있는 가장 높은 봉으로 불모장등(佛母長嶝)의 이름이 "佛母"는 불무로도 읽어 현재   "불무장등"이다.

 

서산대(西山臺)

피아골산장 뒤편 지능선상에 있다. 산장 뒤 비탈길을 1시간가량 올라가면 너덜겅 지대 같은 바위길이 있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비스듬히 5분여 나아가면 바위절벽이 있는 서산대가 나온다.

주능선상에서는 돼지평전 첫 번째 헬기장에서 내려오는 길이 있으나 인적이 희미하여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며 내려서야 한다.

서사대사는 지리산 덕평봉 남록에 위치한 원통암에서  입산출가 하였는데 이 서산대는 대사가 수도한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원통앙은 오랜세월 폐사(廢寺)되어 있는 곳에 칠불사를 중창하신 통광(通光)스님께서 터를 다시 닦았고,  15년 전 쯤 스님의 맏 상좌인 동림스님이 도량을 복원하여 수행도량이 되었다.

 

문수대 文殊臺

문수보살(文殊菩薩)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지리산은 지혜의산 문수보살의 산이다  따라서 문수대의 문수는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자리로 도를 구할수 있는 곳이다.

노고단 정상부근에 있는 군사시설에서 우측 철조망을 따라 피아골 방향으로 나아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 바로 위에 단아하고 정갈한 건물이 서있었다. 직진하는 길은 왕시루봉과 돼지평전 가는 길이다

 

 피아골 稷田谷 - 지리산 10

피아골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골짜기로, 지리산의 관문인 노고단에서 섬진강으로 향하는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깊이 빠져나간 큰 계곡이다.

옛날부터 불러 내려오는 유서 갚은 이름이다. 그 어원은  한적한 이곳 선경을 찾은 선객들이 오곡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어 자연히 피밭골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 후 점차 그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다.

 

 삼홍소(三紅沼) *** 피아골은 지리10에 들만큼 가을단풍이 유명하고 식물이 능선별로 구분되어 분포한다. 산은 단풍에 의해 붉고(산홍; 山紅), 그 붉은 산이 계곡물에 비쳐서 물도 붉고(수홍; 水紅),

또한 그 물에 반사된 사람의 얼굴 또한 붉어진다(인홍; 人紅), 즉 산··사람 모두가 빨갛다는 삼홍소(三紅沼)가 있다.

 

 연곡사(燕谷寺) *** 피아골 입구에 있는 연곡사(燕谷寺)는 화엄사와 같은 해에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현재는 일부만 중건되어 있다.

 

 서산대사 西山大師   

서산대사(1520~1604)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승병의 총수(總帥)로 더욱 유명하다. 그의 본명은 현응(玄應)이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이나 별호인 서산(西山)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평안도 안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최세창이며 어머니는 김씨였다. 중종 14(1519) 여름, 어머니 김씨는 며칠간 계속 몸이 불편했는데 하루는 창가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아기스님 운학****이때 어느 틈엔가 한 노파가 나타나 예를 올리고 놀라지 마십시오. 장부를 잉태하겠기에 제가 와서 축하드리는 것입니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김씨 부인이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는데 이듬해 3월 오십에 가까운 나이에 기골이 훤칠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가 세 살 되던 해의 4월 초파일에 최세창이 등불 아래에서 졸고 있으니, 한 노인이 나타나 아기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하고는 두 손으로 아기를 받쳐 들고 주문을 몇 번 외웠다.

주문 외우기를 끝내고 나서 노인은 아기를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아기의 이름을 운학(雲鶴)이라 하고 소중히 기르십시오.”라고 한 뒤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서 노부부는 아기를 부를 때 아기 스님 혹은 아명(兒名) 운학이라 불렀다.

서산대사는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놀 때에도 남다른 바가 있었다. 모래를 모아 탑을 쌓거나 기와를 가져다가 절을 세우는 종류의 놀이를 즐겨했다. 그런데 그가 9세 되던 해에 큰 불행이 닥쳐왔다.

이해 어머니가 홀연 돌아가시더니 이듬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고만 것이다. 이때 안주목사(安州牧使)로 있던 이사증(李思曾)이 슬픔에 잠긴 고아의 소문을 듣고 소년을 자신의 처소로 불렀다.

때는 마침 겨울이어서 목사가 멀리 눈 덮인 소나무 숲을 가리키며 시()를 지어 보게 했더니 소년은 이내 시를 읊었다. 소년의 재주에 탄복한 목사는 그를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목사가 내직(內職: 기관의 중앙 부서에 있는 직책)으로 옮기면서 그도 한양의 성균관에 취학해 3년 동안 학문에 정진하였다.

 

 유람과 출가 **** 15세 되던 해에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했으나 낙방의 쓴 잔을 마시고 동문들과 호남지방에 내려가 있던 스승을 찾아갔으나 그때 이미 스승은 서울로 돌아가고 없었다.

이왕 내려온 김에 산천이라도 유람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서산대사와 일행들은 지리산의 화엄동, 칠불동 등을 구경하면서 여러 사찰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자그마한 암자에서 한 노승의 설법을 듣고 행자생활을 하며 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3년간 불법을 공부하다가 문득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삭발한 다음 지리산에서 크게 선풍(禪風)을 일으키고 있던 영관(靈觀)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서산대사****묘향산의 금강암에 오랜 기간 머물렀다. 묘향산은 서북의 명산이란 뜻에서 서산(西山)이라 불렸는데 그의 별호인 서산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도술 겨루기***이야기는 금강산에도 전해지고 있다. 외금강의 유점사에 있던 사명당은 서산대사가 내금강의 백화암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찾아갔다.

백화암으로 가던 사명당은 서산대사의 도술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누구도 모르게 시냇물을 거꾸로 흐르게 한 채 올라가다가 절 어귀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때 한 동자승이 나타나 그를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이었다. 사명당이 네가 어찌 나를 알아보는 것이냐?” 하고 물으니,

동자승은  스님이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시냇물을 역류시키며 올라오는 분이 사명당이니 정중히 모셔오라고 하신 전말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명당은 속으로 스님은 과연 보통 분이 아니시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동자승과 함께 암자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산대사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 서산대사 -

 

 정령치***서산대사의 황령암기 의하면 정령치는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신라시대 화량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고 하여 산정에는 지금도 옛날의 역사를 실증 하듯 군데군데 유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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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 3:38 ~3:45

용산역에서 여수로 가는 막차를 적막님은 천안에서 승차하고 난 조치원역에서 승차를 하니 적막님은 저녁 모임에서 술을 한잔 한 듯 이미 잠이 들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자리도 없고 하여 서대전역 까지 온 후 바닥자리 한군데 끼여서 졸며 가니 익산역에서 자리가 난다. 남원을 지나고 곡성역에서 부터 내릴 준비를 하여 구례구역에서 내려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승차를 하니 부지런을 떤 덕인지 맨 앞좌석을 차지 하고 앉는다. 열차에서는 몇 보이지 않던 배낭족들이 버스를 타고 나니 만원이다. 입석까지 꽉 메운 버스는 3:35분 구례구역 앞을 출발하여 5분후 구례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여 20분을 기다린 후 4시에 출발을 한다. 이시간 동안 아침 식사를 하실분들은 대합실 안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김밥집에서 깁밥등을 준비한다. 대합실에는 정수기도 한 대 설치 되어 있어 물을 준비 못한 분들은 이곳에서 준비를 하면 된다. 구례구역에서 4시에 출발한 버스는 화엄사 입구에 한번 정차를 한다. 요금은 구례구역에서 구례터미널 까지 승차 후 1000원을 내고, 구례구역에서 화엄사까지 1500원을 낸후 하차를 한다. 버스는 천은사 매표소를 통과하여 꼬불꼬불 오르는 험한길을 올라 38분이 지나서 성삼재 주차장 앞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개인당 4000원씩을 더 낸후 하차를 한다.

 

노고단 산장 5:15 ~5:35(아침식사)

성삼재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날아갈 듯한 바람이 매섭게 몰아 친다. 아직 한여름인줄 알고 반팔에 간단히 산행준비 하고 내렸다가 금시 추위에 얼어 붙는다. 다시 가벼운 바람막이를 꺼내 입으니 살 것 같다. 오늘 지리산부근은 오전까지 비가 온다고 일기예보에 나와 있었으나 우리가 구례구역에 도착하기 바로 전까지 비가 쏟아 붓다가 금시 그쳤다고 한다. 성삼재에 내리니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에 떠있고 별들이 총총한 모습이 언제 비가 왔냐는 표정이다. 성삼재에서 4:45분 오늘 산행 코스를 향하여 출발을 한다. 아직은 후레쉬불이 필요하지만 노고단에 오르면 거의 해가 뜨지 않을까 싶다. 버스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이 앞서서 간다. 널직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은 처음 버스에서 내릴때완 사뭇 다란 모습이다. 바람이 잔잔하게 자며 추위도 금시 없어 졌다. 무냉기로 가기 전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선 후 조금을 더 가면 또다시 노고단 산장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이곳은 아직 나무숲이 우거져 후레쉬불이 필요하다.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30분이 되니 노고단 산장에 도착을 한다. 날도 부연하게 밝아 오며 주위의 사물이 구별이 될 정도다. 아직은 조금 이른 시간인지라 이곳 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노고단으로 오르려 한다.

 

노고단 정상 5:55 ~6:10

노고단 산장 식당 안에는 이미 도착한 산객들이 불을 지피고 라면을 끓이는등 아침식사준비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식당앞 식탁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날 때 즈음은 이미 날이 밝아 우리가 노고단정상에 오르면 해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식사가 끝나고 서서히 노고단으로 오르니 처츰 오르는 돌계단이 무척 힘이 든다. 7분여를 오르니 노고단 고개다. 좌측으로 예전에 노고단을 기념으로 찍던 돌탑이 있고 우측으로 노고단정상으로 오르는 탐방로다. 개방시간이 10부터 이지만 오늘 좋을 일출을 보기 위해선 좀 일찍 들어가고자 한다. 노고단 고개에 오르니 이미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고 반야봉과 만복대 사이의 너른 사이에 펼쳐진 운무의 모습이 장관이다. 이모습을 보기 위하여 오늘 비가 온다고 하는데도 궂이 이곳에 왔나 보다. 이미 적막님은 본전을 뽑았다고 좋아 한다. 아직 노고단 정상길이 시간이 안 되여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주위의 눈치를 뿌리치고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니 탐방로 주변의 이쁜 들꽃들이 피어있고 오르면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며 보이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다.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오르는 시간은 좀 지체가 되지만 이광경을 일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 장관인데 어찌 그냥 지나치랴~~ 노고단 정상에 오르니 그 사납던 바람도 잠을 자고 아름다운 경치만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우리가 올라온 쪽으로 운해와 만복대를 넘나드는 구름으로 인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도 장관이다. 노고단 뒤편으로 구례오산 쪽으로 펼쳐진 구름의 모습도 장관이다. 이제 서서히 밝아 오는 태양이 반야봉을 넘어 구름사이로 고개를 든다. 너무도 황홀한 모습이다. 구름과 태양, 반야봉이 조화를 이룬 이런 광경을 어찌 쉽게 볼수가 있으리 ~~ 밝아 오는 햇살을 받아 붉은 빛으로 물드는 왕시리봉 능선쪽의 모습도 좋다. 우리가 내려갈 불무장등 능선도 서서히 햇살을 받아 은은한 빛으로 변모를 한다. 노고단 정상에서 15분여를 해뜨는 광경을 맞고는 이제 노고단 고개로 향한다.

 

임걸령 7:10

노고단 정상에서 탐방로를 따라 내려서니 이제 오르는 사람들이 좀 있다. 노고단 고개로 내려와 반야봉으로 향하니 아직 물기 머금은 등산로가 미끄럽다. 군데군데 물이고이고 진흙뻘이 있어 건너뛰고 돌을 밟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형식으로 진행을 한다. 노고단을 돌아 왕시리봉으로 빠지는 길을 지나고 10여분을 더 진행 후 돼지령에 닿는다. 돼지령은 진달래와 철쭉산행지로 유명하며 멧되지가 원추리 뿌리를 종종 파먹던 곳에서 유래 되었고 한다. 다시 10분을 더 가면 피아골로 하산을 하는 피아골 삼거리이며 다시 10여분을 가면 임걸령이다.

임걸령에는 이런전설이 있다.”

옛날 지리산 기슭 마천면 삼정리 하정부락에는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사냥 길목에서는 하루에 꼭 3차례씩 무지개가 섰다가 꺼지곤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무지개 아래 소()에서 어여쁜 3선녀가 정성껏 밥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옥황상제의 시녀들이 날마다 내려와 밥을 짓는데 그러던 어느날 더위를 못 참았는지 선녀들이 소에서 멱을 감게 되었다.

이때 인걸은 선녀들의 날개 옷만 입으면 자기도 옥황상제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날개 옷을 훔쳐 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날개 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버렸다.

옷 찢기는 소리에 깜짝 놀란 선녀들은 놀란 나머지 각자 자기의 옷을 찾아 입었는데 아미(阿美)라는 선녀만은 옷이 없어 인걸이 갖다 준 어머니의 옷을 입고 결국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하고 인걸의 집으로 와서 몇 날을 지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미 선녀를 인걸과 같이 살도록 허락하고 비단옷과 쌀이 나오는 바위를 하사해 주었다. (이 쌀 바위는 작전도로 공사 때 묻혀 버렸다고 한다)

인걸과 아미는 그로부터 1 2녀를 낳아 하늘아래 첫 동네에서 정자(지금 하정부락 앞 솔밭 근처에 있는 선유정이 그것이라고 한다)를 짓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걸이 장난삼아 옛날 찢어진 아미의 날개 옷을 기워서 입혔는 데 그만 아미가 하늘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옛날 지리산 기슭 마천면 삼정리 하정부락에는 인걸이라는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사냥 길목에서는 하루에 꼭 3차례씩 무지개가 섰다가 꺼지곤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무지개 아래 소()에서 어여쁜 3선녀가 정성껏 밥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옥황상제의 시녀들이 날마다 내려와 밥을 짓는데 그러던 어느날 더위를 못 참았는지 선녀들이 소에서 멱을 감게 되었다.

이때 인걸은 선녀들의 날개 옷만 입으면 자기도 옥황상제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날개 옷을 훔쳐 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날개 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버렸다.

옷 찢기는 소리에 깜짝 놀란 선녀들은 놀란 나머지 각자 자기의 옷을 찾아 입었는데 아미(阿美)라는 선녀만은 옷이 없어 인걸이 갖다 준 어머니의 옷을 입고 결국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하고 인걸의 집으로 와서 몇 날을 지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미 선녀를 인걸과 같이 살도록 허락하고 비단옷과 쌀이 나오는 바위를 하사해 주었다. (이 쌀 바위는 작전도로 공사 때 묻혀 버렸다고 한다)

인걸과 아미는 그로부터 1 2녀를 낳아 하늘아래 첫 동네에서 정자(지금 하정부락 앞 솔밭 근처에 있는 선유정이 그것이라고 한다)를 짓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걸이 장난삼아 옛날 찢어진 아미의 날개 옷을 기워서 입혔는 데 그만 아미가 하늘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임걸령에는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

 

반야봉 8:15 ~8:30

임걸령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15분 뒤 노루목이란 곳에 닿는다. 삼도봉과 반야봉으로 가는 삼거리다. 이곳 바위봉에서 내려다 보는 피아골과 노고단 정상의 모습이 보기 좋다.

노루목이란 독특한 이름은 노루들이 지나다니던 길목이란 뜻도 있지만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 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지켜들고 있는 형상의 바위 모양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노루목에서 잠시 임걸령 오기 전 만난 세분의 전주에서 온 아가씨들 중 한명이 반야봉을 간다고 따라와 잠시 기다린 후 반야봉으로 향한다. 5분여를 올라 삼도봉으로 가는 삼거리에서뒤따라 오던 아가씨가 오지 않아 좀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좀 전 삼거리에서 그냥 삼도봉으로 갔는가 보다 하고 반야봉으로 오르니 반야봉 오르는 길도 생각보다 힘이 든다. 예전에도 몇 번은 올랐던 반야봉인데 더 힘이 든다. 철계단을 오르고 구상나무들이 능선에 늘어선 지점을 지나 마지막 바위봉으로 오르니 반야봉 정상이다. 예전에는 커다란 정상석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들었으나 올라가 보니 작은 정상석이 자리잡고 있다. 반야봉에서 보는 조망이 좋다. 시원하게 트이는 조망은 우측으로 만복대쪽과 바로 정면으로 피아골을 지나 구례의 오산과 앞으로 둥그렇게 흘러가는 물줄기가 흰구름과 조화가 되어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듯하다. 하기사 이보다 더 훌륭한 풍경화가 어디 있겟는가. 이런 경치를 보고 그린 것이 풍경화니 그에 앞선 것이 이모습이리라.~~ 반야봉 주위로도 이쁜 야생화들이 피었다. 뒤편으로 구상나무 사이로 토끼봉과 천왕봉으로 가는 산줄기가 보인다.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좋은 조망을 감상하고 있는 사이 전주에서 온 아가씨가 올라온다.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늦은 모양이다. 사진도 한 장 찍어 주고 삼도봉까지 같이 동행을 한다.

지리산 3대 주봉중 하나인 반야봉(1,732m)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봉우리이며,지리10경 중 하나인 落照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반야봉은 우리나라 제1의 반야도량으로,반야봉을 백번 오르면 스스로 도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며, 먼둥이 떠오르는 반야봉/저녁노을이 짙어가는 반야봉/에서는 천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금강굴이 보인다고도 한다.

[마고 할미의 전설]

반야봉에는 지리산 山神 중 여신인 천왕봉의 [마고 할미]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 또는 "마고 할미(老姑)"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를 만나 천왕봉에서 살았는데,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그 어느날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의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가다리지만,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그것이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삼도봉 9:02 ~9:07

반야봉에서 왔던 길을 따라 내려오면 노루목으로 가기 전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삼도봉으로 가는 길이다. 두런두런 애기를 나누며 30분을 좀 더가니 삼도봉이다. 삼도봉에는 여러사람들이 올라와 간단한 요기를 하며 즐기고 있다. 삼도봉에서 잠시 우리와 함께 했던 전주의 아가씨는 화개재로 향하고 우리는 불무장등으로 향한다.

삼도봉은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짓는 봉우리이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이정표를 세우면서 명명되고 삼도 경계의 삼각점에 동판이 있다.

삼도봉-토끼봉-영원령-삼정산의 능선으로 전북과 경남을 경계로. 삼도봉-반야봉-만복대-다름재의 능선으로 전북과 전남을 경계로. 삼도봉-불무장등-통곡봉-촛대봉의 능선으로 전남과 경남을 경계로 하였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삼도봉은 화개재에서 2km의 짧은 거리다. 또한 반야봉까지도 2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노고단까지는 8.5km 남짓한 거리로 삼도봉은 종주능선상의 요충지이다.

더욱이 반야봉 등반에 앞서 삼도봉과 반야봉, 그리고 삼도봉에서 노고단쪽으로 2km 남짓한 곳에 위치한 노루목등 세지점은 삼각형의 등산로를 연결하고 있다. 

 

불무장등봉 9:59

삼도봉에서 서쪽 편으로 바위지대를 내려서는 곳이 불무장등으로 향하는 길이다. 처음 바위지대를 지날 때 험한 편이지만 이후로는 길은 그런대로 좋은 편이며 길은 확실하게 나있다. 삼도봉에서 16분을 지나니 바위지대를 완전히 내려와 우측으로 피아골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이후 가파르지 않은 평탄선길은 조릿대가 많고 하여 물기로 인하여 옷과 신발은 비에 맞은 듯 다 젖고 만다. 강원도의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신갈나무 원시림은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한 그늘을 만들고 운좋게도 귀한 표고도 한줌 딴다. 삼도봉에서 50여분을 진행하니 불무장등 전에서 길이 능선길과 옆으로 돌아가는 길이 갈린다. 좌측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야 불무장등 정상에 오른다. 정상은 협소 하며 조망은 전혀 볼수가 없는 봉이다. 그저 불무장능선의 최고 봉으로의 위치만 지키고 있다 하겠다.

 불무장등****삼도봉은 주릉상의 요충지면서 그 산세는 섬진강으로 뻗어내리는 불무장등 능선의 시발점이다.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삼도봉과 불무장등 능선은 삼도봉에서  해발 1,446m의 불무장대, 해발 942m의 황장산을 지나 촛대봉에서 잠시 솟았다가 화개장터 부근의 산자락을 끝으로 섬진강으로 잠긴다.

이능선이 경남과 전남을 구분지으며 경남쪽으로는 연동골과 화개골을 빚어내고 있으며 전남쪽으로는 피아골을 만들어내 모두 섬진강에서 하나가 된다.

"불무장등"의 한자표기는 "不無長嶝"이나 "佛母長嶝"으로 표기하고 있다 "不無長嶝"이라 표  기한 경우는 불무장등의 산세가 대장간의 화로인 불무와 같은 형상으로 생겼다하여 생긴  지명이다

올바른 표기는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뜻하는 단어인 반야(般若) 반야봉에서 시작한 반야 장등에 있는 가장 높은 봉으로 불모장등(佛母長嶝)의 이름이 "佛母"는 불무로도 읽어 현재   "불무장등"이다.

 

통꼭봉 11:38 ~11:40

불무장등 정상에서 내려서면 산소가 있다. 이지점을 지나 얼마를 내려서면 좌측에서 불무장등을 우회하여 지나온 길과 만난다. 이후 우거진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 된다. 길이 복잡하거나 다른 곳으로 갈 염려는 없다. 능선에서 한참을 사면 길을 타고 내려오면 목통골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좋은 바위가 나온다. 불무장등에서 통꼭봉으로 향하는 길에 유일한 전망대다. 전망대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길은 서서히 우측으로 돌아간다. 사면길을 다 빠져 나가기 전 다래나무 터널을 빠져 나가는데 다소 구부리고 하자니 귀찮고 시간도 지체가 된다. 이후로는 길은 좋아 진다. 거의 평평한 능선길로 전망대에서 26분경 널직한 공터지점의 좌측으로 하산로가 있는 지점을 지난 후 다시 키를 훌쩍 넘는 조릿대숲을 몇 군데 더 지나 작은 봉을 몇 개를 더 넘고 나서 통곡봉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의 봉에서 물을 마시고 10여분 휴식을 갖은 후 8분을 더 가니 통꼭봉 정상이다. 통꼭봉 정상전에 무선기지국이 있고, 통꼭봉 정상 조망은 좋지 않다.

 

당재 12:37

통곡봉에서 내려서면 좌측에서 우회한 길과 한번만나고 조금은 가파르게 내려온다. 움푹 들어간 안부에서 앞쪽으로 바위봉이 있다. 이곳에서 바위봉을 넘어서 가야 하나 우측으로 빠진 길이 있어 그길을 따라 내려가다. 통꼭봉 무선기지국에서 내려온 통신케이블을 따라 가니 울타리가 쳐져 있는 부분 위로 지나간 샛길이 보인다. 이길을 따라 가니 능선길과 만난후 곧 바로 국립공원지역 끝에 있는 출입금지 구역 경고문이 붙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난길은 칠불사로 가는 길인듯하고, 우측길은 농평마을로 가는 길로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4분후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4분여를 더 가면 임도고개가 나온다. 임도고개에서 절개지 우측 편으로 올라가 27분간에 걸쳐 점심식사를 하고 2분여를 내려가니 당재다. 당재에는 많은 표식기와 이정표 싸립문이 있다. 이곳에서 좌측은 목통이고, 우측은 농평마을이다. 농평마을은 7가구가 살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더 줄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재에서 황장산까지는 3.4km, 황장산에서 화계까지 7.6km이니 꼭 11km가 남았다.

 

황장산 14:00 ~14:15

당재에서 오르는 길이 계속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18분을 오르니 첫 번째 봉에 올라선다.후로는 평탄하게 진행하다. 봉을 오르고 평탄하게 진행하다.봉으로 오르고를 반복한다. 구간에서 모처럼 불무장등 능선에서 산행을 하는 두분과 마주친다. 지루하게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진행을 하니 40여분 후 높은 봉이 나온다. 힘겹게 3~4분을 땀을 범벅을 하고오르니 황장산 바로 전봉이다. 봉앞으로 등산로라 붙여 놓은 줄이 쳐져 있다. 줄을 넘어서 봉꼭대기로 올라보니 이렇다할 것은 없다. 이곳에서 앞쪽으로 높다란 봉이 황장산으로 보인. 여기서 길은 우측으로 꺽여서 가고 8분후 풀이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 2분을 더 가니 이정표가 있다. 평도마을 삼거리다. 이정표 위쪽 봉에 의자 2개가 놓여 있다. 평도마을 까지는 3.3km, 황장산까지는 아직도 1.3km가 남았다.

이곳에서 길은 좌측으로 조금 휘여서 가고 6분후 좌측으로 하산하는 모암길이 있으나 하산로 끝지점이 사유지라고 하여 주인이 붙여 놓았는지 등산로 폐쇄라고 붙여 놓았다. 이지점을 지나 바위지대의 로프가 쳐져 있는 부분을 지나 앞쪽의 높다란 바위봉을 좌측으로 우회를 하여 올라 조금을 더 가면 지나온 쪽으로 조망이 확트인 전망봉이 나온다. 앞쪽으로 직전마을과 농평마을 삼도봉에서 피아골로 내려오는 골짜기와 우리가내려온 불무장등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황장산은 2분거리에 있다. 황장봉에 도착을 하니 조망이 참으로 좋다. 우측으로 왕시리봉과 그아래 피아골골짜기의 마을들 좌측으로는 세석에서 삼신봉으로 내려가는 긴산줄기가 바로 앞쪽으로 조망이 되고 구례 오산쪽의 높은 봉들이 조망이 되는 좋은 위치 이다.

 

촛대봉 15:07 ~15:10

황장산에서 내려서면 16분후 스텐판에 새겨진 이정표가 있는 봉이나온다. 올라온쪽으로 황장산, 내려가는 쪽으로 화계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길이 우측으로 꺽여서 진행이 된다. 은 가파르지 않고 걷기에 좋다. 여기서 6분을 더 가면 중기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중기마을쪽 천왕사 까지는 3.1km가 적혀 있다. 중기마을 삼거리에서 좀 가파르게 17분을 내려가니 새끼미재다. 이곳에서도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등산로 아님 표지가 걸려 있고, 우측 천왕사쪽으로 내려간 길은 있다. 새끼미재에서 다시 13분을 올라가니 오늘의 마지막 산인 촛대봉이다. 촛대봉도 주위 숲이 가려 조망은 좋지 못하다. 이곳에서 화계까지는 5km가 남는다.

 

화계 산행끝지점 16:45

촛대봉에서 내려서면 13분후 커다란 바위지점을 지나 5분을 더 가니 등산로 가운데 커다란바위 하나가 우뚝서있다. 촛대바위다 이바위로 인하여 촛대봉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촛대바위에서 17분후 삼각점이 있는 586봉을 지나고 4분을 더 가니 약천사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능선길은 우측길이다. 여기부터 길이 조금은 다닌 흔적이 작아지며 안부 4거리 2군데를 더 지나 318봉에 닿는다. 이곳에는 삼각점이 있을까 해서 이곳저곳을 풀섶을 헤치고 찾아 보았지만 삼각점은 찾지를 못했다. 이봉에서 급하게 내려서는 끝지점에 산소가 여러기 있으며 지루하게 20분을 더 가니   지도에 무덤군이라 표기된 무덤들이 있다. 이곳에서  15분을 더 내려 가니 굵직한 대나무 숲 계단을 내려가 오늘의 마지막 화계에 닿는다.

내려오는 5km구간이 마지막 구간이란 생각 때문인지 상당히 지루한 구간이었다.

 

오늘도 같이 한 적막님 수고 많았다오 ~~ 아침에 노고단의 장관은 아마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으리라 생각이 드오 ~~

 

산행거리 :  27km

산행시간 : 12시간소요

 

구례구역 ~성삼재 버스비 ; 5000원씩

화계 ~구례구역 택시비 : 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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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불무장등봉 능선

성삼재~노고단~삼도봉~불무장등~통꼭봉~황장산~촛대봉

 

천안역 23:52 -조치원 0:13 - 구례구역 3:18

 

구례구역 15:14 -조치원 18:34 -천안 18:54

구례구역 16:28 -조치원 19:31 -천안 19:55

구례구역 17:15 -익산역 18:54 ~18:57() -조치원 20:28 -천안 20:49

구례구역 17:57 -조치원 21:23 -천안 21:46

구례구역() 19:15 -서대전 21:42 (22:18 -조치원22:45) -천안 22:28

구례구역 19:46 -조치원 22:58 -천안 23:20

조치원 0:18 -구례구 3:23~3:35 -구례공용버스터미널 3:48 -4:00 -버스 5100 -성삼재4:35

 

구례구역 ~화개삼거리 : 20.74km

구례구역 ~목통마을(범왕리) : 32.37km

범왕리입구(신흥교)~칠불사 ; 4.58km

칠불사~ 범왕리입구(신흥교) : 29.92km

화개장터~의신 :  14.24km

구례구역 ~의신 : 35.07km

화개 개인택시 정복수 011-884 -8116 화개 택시 원갑종 011-865 -4991

 

코스 : 성삼재 ~노고단 정상~삼도봉~불무장등~통곡봉~당재(농평)~황장산~화개

거리 : 25.3KM

시간 : 9:13분 소요

일시 : 2010.5.15.

 

산행코스 : 화엄사주차장-원사봉-차일봉-종석대-무넹기-노고단대피소-임걸령샘터 삼도봉-불무장등-통꼭봉-당치-황장산-새끼미재-촛대봉-화개산행소요시간 : 11시간35 (05:00~16:35)산행총거리 : 29km정도차일봉능선 : 3시간30분소요

주릉 : 1시간30분소요불무장등능선 : 6시간30분소요

 

칠불사-토끼봉-삼도봉-불무장등-황장산-화개

07:20 칠불사 출발 -09:50 토끼봉(1534m, 주능선) -11:00 삼도봉(1499) -12:00 불무장등(1446m) -14:00 통꼭봉(905m) -16:20 황장산(942m) -17:00 촛대봉 -18:50 화개 하산

산행시간 11:30분소요

 

칠불사입구 범왕마을-범왕골-토끼봉-화계재-삼도봉-불무장등-당재-황장봉산-쌍계사:9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