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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481 산청 왕산 923.2 m~필봉 858m 2010.3.38.일요일 맑음

산청 왕산 923.2 m~필봉 858m

2010.3.38.일요일 맑음

참석인원 ; 8명 덕준 산거북 적막 성시경,장옥희내외 감시연시 울집내외

 

 

청주 7:50(천안 7:10) -죽암휴게소 8:10 ~8:15 -생초톨게이트 9:30 -화계리 덕양전 9:38 ~ 10::08 - 구형왕릉 10:25~10:28 -임도 10:38 -류의태약수터 10:50 -능선 11:07 -망경대 11:11 ~11:14 -강쇠약수 11:26~11:28 - 좌측한방박물관삼거리 11:36 -암봉(119 구조4번) 11:45 ~11:48 -전망대(왕산정상석)(910m) 11:54 ~11:56 -헬기장 11:57 -소나무있는 봉 (중식) 12:05 ~12:38 -왕산 정상 (923.2m) 12:43 ~12:46 -우측 암봉 12:54 -다시 왕산정상 13:06 -헬기장 13:18 -고개 13:21 -필봉산 13:31~13:38 -우측 향양삼거리 13:43 -안전팬스지대 13:48 -능선안부(직진 왕산사) 14:00 -특리교 14:28 ~14:50 -덕양전 15:00 ~구형왕릉 15:10 ~15:15 -함양휴게소 15:40 ~15:50 -죽암휴게소 17:00 ~17:10 -청주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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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필봉산

위치 : 금서면 화계리

높이 : 왕산 923.2m, 필봉산 848m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 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왕산과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상징한다는 필봉산은 산청군 금서면 일대에 높이 솟아 있다. 이런 사연을 안고 있어서 산 이름도 왕산이다.

지리산에는 예상외로 가락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왕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깃대봉에 이어 아직도 성곽의 모습이 남아 있는 왕등재, 칠선계곡 쪽에 있는 국골 등에는 가락국의 전설이 살아 있다. 깃대봉은 가락국을 상징하는 깃대를 꼽은 곳이며, 왕등재는 왕이 올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주변에는 토성이 남아 있다. 또 국골은 나라가 있었던 골짜기란 뜻으로 곡식을 보관했다는‘두지터’와‘얼음터’등의 지명이 있으며, 칠선계곡 입구에 있는 마을 추성리도 국골에 있었던 추성산성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잃어버린 나라라고 일컫는 가락국의 내력이 전설로 전해 오는 현장이 지리산록이다.

왕산의 산행은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덕양전 옆길을 따라 1km 정도 거리에 있는 구형왕릉에서 시작된다. 덕양전에는 홍살문을 비롯해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안향각, 연신문, 추모재, 정숙당 등의 건물들이 가득하다. 산청읍에서 버스를 이용했다면 여기서 내려야 한다. 자가용은 구형왕릉까지 갈 수 있다. 등산로는 왕릉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왼쪽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왕릉의 돌담 옆으로 이어진 길이 있다. 어느 쪽을 들머리로 해도 상관없다. 왕산은 구형왕릉을 중심으로 긴 타원형으로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가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등정은 능선에 샘이 있는 왕릉의 돌담을 따라 오르는 길을 택한다. 5분 가량 힘든 비탈길을 오르면 소나무 숲 가운데로 난 부드러운 흙길이 한동안 계속된다. 이 오솔길을 1시간 가량 오르면 시야가 트이는 넓다란 잔디밭에 다다른다. 바로 아래에는 ‘동의보감’을 쓴 허준의 스승 류의태가 약수로 사용했다는‘류의태약수터’가 있다. 천하 명의 류의태의 이름이 붙은 약수터여서인지 물맛이 좋다.

여기서 10여분 오솔길을 오르면 주능선에 오르게 된다. 구형왕릉을 출발한지 1시간 40여 분이면 일명 여우고개라는 잘록한 고개에 올라선다. 막바지 오르막은 겨울이면 얼었다 녹았다 하는 기후변화로 꽤나 질퍽거린다. 억새가 볼만한 여우고개에 올라서면 오른쪽에는 필봉이, 왼쪽에는 왕산 정상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왕산의 정상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둥그런 봉우리인지 삐죽삐죽한 바위가 솟아 있는 암봉인지 멀리서 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우고개에서 보이는 필봉의 모습은 독특하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산의 이름대로 붓 끝을 연상해 필봉(筆峰) 또는 문필봉(文筆峰)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혹자는 여인의 가슴을 연상해 유방봉, 유두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높이는 이웃한 왕산보다 75m가 낮지만 산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시야에는 필봉산이 먼저 들어온다. 필봉산 정상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바윗덩어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다 뾰족하고, 사방이 가파른 급경사라 여우재쪽 외에는 접근하기가 까다롭다.

필봉산은 국가지원지방도 60호 상에 있는 특리다리나 금서면 항양마을에서 오르는 독립 산행코스가 있으나, 대체로 구형왕릉을 들머리로 여우재에 올라 여기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필봉을 다녀와 왕산 정상으로 해서 구형왕릉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택한다. 자가용이 아닌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으면 구형왕릉에서 왕산∼여우재∼필봉산∼향양리로 하산하는 종주코스도 좋다. 향양리 코스는 거의 일직선이라 할 만큼 가파르다. 그러나 정상 부근을 벗어나면 부드러운 흙길인데다 오솔길이 정감있어 하산은 힘들지 않다. 전체 산행시간도 4시간 30분 정도라 이상적인 코스이기도 하다.

필봉에 올랐다가 여우재로 되돌아 왕산을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면, 여우재에서 필봉을 등지고 가파른 억새능선을 한동안 올라야 한다. 거대한 바위들이 모여 암봉을 이루고 있는 정상에 서면 필봉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고, 산청읍 일대와 경호강, 엄천강의 유장한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한 지리산 천왕봉에서 웅석봉까지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길게 뻗은 산자락이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하산은 정상 아래로 뻗은 길로 내려서면 된다. 급경사인데다 겨울이면 길이 꽤나 질척거린다. 산행 들머리를 굳이 왕릉 돌담을 따라 오르는 길을 택한 것도 바로 이 급경사를 피하기 위해서다. 소나무 숲을 한동안 내려오면 망경대(望京臺)라는 바위가 있다. 망경대는‘충신(忠臣)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지조를 지킨 선비의 고집이 서려 있는 바위다. 고려에서 판서의 벼슬을 한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는 나라가 망하자 고려의 선비가 조선에 나갈 수 없다며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산청에 낙향해 살면서 망경대에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등산코스

주코스 : 덕양전→왕릉(1km)→바람재(4km)→왕산(1km)→필봉산(2km)→향양마을(4km)

망경대코스 : 특리강구폭포→필봉산(2.7km)→왕산(2km) →망경대(1km)→왕릉(2km)→덕양전(1km)

류의태 약수터코스 : 덕양전→왕릉(1km)→류의태약수터(2km)→왕산(2.5km)→망경대(1km)→왕릉(2km)→덕양전(1km)

 

주차시설

덕양전 앞 주차장 : 20대

왕산 주차장 : 50대

 

찾아오시는 길

대전-통영간고속도로 : 생초IC→금서면 화계→왕산·필봉산

국도3호선 : 생초면→금서면 화계→왕산·필봉산

 

왕산 - 필봉산 종주 산행

가락국 마지막 전설 깃든 곳, 9.2km 4시간 30분

월간 <마운틴> 05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 천왕봉(1915m)을 서쪽 경계에 세워둔 경남 산청군은 1000고지가 넘는 웅석봉(1099m)과 황매산(1104m)을 비롯 20여 개의 높고 낮은 산들을 곳곳에 배치시키고 있다. 산의 대부분은 지리산의 위성봉이자 황매산의 곁가지가 된다.

천왕봉•웅석봉•황매산과 마름모꼴로 이어진 금서면 왕산(923m)은 지리산 왕등재에서 뻗어내린 봉우리다. 왕등재는 천왕봉을 출발해 쑥밭재~새재~외고개를 넘어 960고지에 커다란 습지를 만들어낸 생명의 땅, 이 봉우리에서 북으로 발을 넓혀 왕산을 세웠고 왕산은 다시 필봉산(848m)까지 이어져 경호강에 의해 길고 긴 걸음을 멈춘다. 왕등재와 왕산, 굳이 두 지명에 ‘왕’자를 넣은 까닭이 궁금한데, 산행은 그 이유를 설명하듯 구형왕릉 돌무더기 앞에서 시작된다.

 

가락국의 자취, 덕양전과 구형왕릉

도로변에 자리해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덕양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은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521~532 재위)과 왕비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구형왕은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겨준 후 왕산 수정궁으로 옮겨와 살았는데, 사후 이곳 덕양전에서 구형왕을 기리는 향화가 이뤄졌다. 전쟁 등으로 소실되었던 것이 1798년 중건 되면서 향례를 계속해왔고, 1898년 수로왕의 능침이 승선전으로 사액될 때 덕양전도 그 이름을 얻게 된다. 지금의 건물은 1991년 문화재 정비사업으로 새로 지은 것이다.

덕양전을 우측에 두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오른다. 도로에서 구형왕릉까지는 1km. 8분쯤 올라서니 ‘왕산산장건강촌’ 앞마당에 ‘최고 좋은 물 류의태 약숫물’이라고 적힌 샘터가 있다. 진짜 류의태 약수는 산중에 있으므로 소위 ‘짝퉁’ 약수거나 그 물을 끌어다 내린 하류쯤이겠다. 3분을 더 올라서자 오른쪽 오솔길 사이로 왕림사가 보인다. 사찰의 내력까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왕산과 구형왕릉을 중심으로 이 일대엔 특히 ‘왕’자 들어간 이름이 많다.

아직은 한낮에 더워 덕양전에서부터 걸어오는 길이 제법 부담된다. 차를 구형왕릉 주차장에 놓아둘 걸 후회스럽다. 왕림사 입구를 지나 10분쯤 걸으면 임도 쪽으로 류의태 약수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임도에서 1.84km 떨어졌다. 산행은 구형왕릉을 돌아보고 왕릉 입구의 산길을 따를 예정이다. 이정표를 무시하고 5분을 더 걸으면 구형왕릉에 닿는다.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구형왕릉은 돌무덤이다. 돌과 돌을 잇대어 쌓은 것이 마치 피라미드의 축소판 같다. 각 단 앞부분 양쪽에는 모서리가 분명하지만 뒤쪽은 경사면에 돌을 쌓아 모서리가 없다. 네 번째 단에는 가로 세로 40cm 깊이 68cm의 감실이 설치돼 있다. 높이는 총 7.15m다. 감실이란 주로 신주나 등잔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구형왕릉 감실은 아직도 그 용도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무덤 앞에는 ‘가락국 양왕릉’이라 새겨 넣은 비석이 있고, 문인석•무인석•돌짐승•상석•장명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모두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흔히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를 붙이는데 ‘구형왕릉 무덤이라 전한다’는 뜻일 뿐 거대한 돌무더기가 무덤인지 석탑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구형왕을 양왕으로 부르는 이유는 신라에 나라를 넘겨주었기 때문인데, 일설에는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 속에 묻히겠는가. 돌로 덮어 장사 지내 달라”는 왕의 유언에 따라 병사들이 임금의 시신을 매장하고 그 위에 잡석을 하나씩 포개었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구형왕은 신라에 투항한 후에도 30년을 더 살았다 하여 이 이야기조차 크게 신빙성은 없다. 전설에 싸인 구형왕릉을 둘러본 다음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류의태 약수와 평전샘물

구형왕릉을 등 뒤에 두고 좁은 길 하나가 열렸다. 넓게 도열한 소나무 군락 사이로 얕은 계곡이 흐른다. 왕산까지 4.8km. 15분쯤 울창한 솔숲을 올라서면 사위가 훤해지며 느닷없이 임도와 맞닥뜨린다. 구형왕릉 직전 임도와 만나는 지점(류의태 약수 1.84km 이정표 앞)인 듯하다. 류의태 약수로 가기 위해 수정궁 방향인 오른쪽 너른 길을 따른다. 이 임도는 구불구불 쌍재를 지나 향양리로 이어지는데 길이 좋은 편은 아니어도 자가용 통행은 가능하다. 임도를 700m쯤 걸어 올라서자 왼쪽으로 약수 이정표가 보인다. 이 일대가 수정궁임을 알리는 낡은 안내판이 쓰러질 듯 버티어 섰다. 풀숲에 덮인 수정궁터를 지나 5분쯤 올라서면 삼거리인데, 약수는 망경대 쪽으로 몇 발자국 더 가야 한다. 전체적으로 이정표가 많아 길 찾기는 수월하다.

산청군 신안면 상정마을에서 태어난 류의태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허준>에 묘사된 것처럼 그의 스승이다.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준에게 의학 지식을 전수한 건 물론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제공해 해부학의 효시를 이룬 인물로도 유명하다. 물에는 모두 서른세 가지의 종류가 있고 그 물마다 약효가 달라 물을 가려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류의태는 주로 이 물을 길러다 탕약을 다렸다고 한다. 위장병•피부병•각종 불치병에 효과가 있다 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류의태 약수까지 오른다. 차를 갖고 온다면 겨우 왕복 600m의 수고만 들이고도 좋은 물을 원없이 마실 수 있다. 산청군에서 매년 한방약초축제를 열고 한방휴양타운을 건설하는 것도 이 두 명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왕산 산행은 구형왕의 쓸쓸한 무덤과 류의태가 아꼈다는 신비한 물로 걷는 재미를 더한다. 약수를 몇 번씩 들이키고 물통에 가득 채워 산행을 계속한다. 길은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솔숲 길을 35분쯤 올라서자 억새숲 너머로 휑한 공터가 나온다. 무덤 1기만이 파수꾼처럼 취재진을 맞는다. 왕산을 잇는 주능선이 눈높이로 가깝다. 왕산 1km 전. 구형왕릉에선 약 3.3km를 걸어온 셈이다. 그 외 방곡 3.5km, 상사폭포 2.1km, 평전샘 20m라고 쓰인 이정표가 친절히 웃고 있다.

류의태 약수에서 떠온 물이 아직은 넉넉하지만 20m뿐이라는 평전샘으로 향한다. 무덤을 중심으로 사거리인데 왼쪽은 왕산, 직진은 평전샘, 우측은 방곡마을로 하산하는 길이다. 평전샘으로 가는 가운데 길은 기역자로 꺾인 소나무 아래 있다. 약간 불투명한 물빛이 걸리긴 해도 평전샘 물맛은 일품이다. 왕산 주변은 도자기 원료인 고령토 산지로 유명한데 혹여 고령토가 이 물에 영향을 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맛만 보고 다시 무덤으로 돌아나온다. 억새와 소나무 숲이 적절히 섞인 오르막을 20분쯤 오르니 본격적인 주능선이다. 왕산과 필봉산은 오른쪽에 있지만 일단 왼쪽으로 진행한다. 인원이 많거나 햇볕을 피해 도시락을 먹을 생각이라면 왕산 정상으로 바로 가는 것보다 왼쪽의 공터로 가는 것이 훨씬 낫다. 20여 명은 족히 앉아 쉴 너른 전망대다. 나무 그늘이 넉넉히 드리워 있는데다 트임이 좋아 쉼터로는 제격인 것. 야릇한 필봉산이 지척에 보이고 왼편에는 돌비석이 세워진 망바위가 멋스럽게 섰다. 망바위에 서서 조망을 즐기는 산행객 몇몇이 분주한 시선을 움직인다.

 

왕산과 필봉산은 겨우 1km

억새를 친구 삼아 13분쯤 부드러운 능선을 밟고 서면 곧 왕산이다. 덕양전부터 치자면 대략 5.8km며 쉬는 시간을 빼고는 2시간 20분쯤 걸린다. 산청군 금서면 산악회•체육회•청년회에서 최근 정상비를 새로 세웠다. 천왕봉과 웅석봉은 각각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왕산이 지리산의 혈통임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왕산에서 왕등재까지는 5km 남짓. 해발 960여m의 왕등재는 꽤 넓은 고산 습지다. 지명만으로도 범상치 않은데 실제 습지 주변에서 토성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함양 마천의 국골•두지터•추성 등과 함께 왕등재•깃대봉 모두 가락국 구형왕과 전설이 맞닿아 있다. 왕등재와 한 몸인 왕산 아래 구형왕의 무덤이 남아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밀을 푸는 열쇠는 사학자들의 몫, 우리는 그저 가락국 엑스파일을 곱씹으며 바람을 쐬는 게 전부다.

왕산 정상에서 필봉산은 고작 1km, 두 산을 잇는 길치고는 참으로 민망스러운 거리다. 왕산만 산행하기엔 아쉽고 필봉산만 오르는 것도 왠지 밋밋해 흔히들 왕산과 필봉산을 세트로 묶어 ‘왕산•필봉산’ 하나의 이름처럼 부르고, 하나의 산처럼 산행한다. 만약 왕산 산행만 할 계획이라면 류의태 약수에서 왕산으로 오른 다음 망경대를 거쳐 구형왕릉으로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4시간이면 족하다. 1.5km인 쌍재 하산이 가깝긴 해도 막상 내려서면 마을도 차도도 없는 임도여서 막막해진다. 예정대로 필봉산 쪽으로 방향을 튼다. 왕산~필봉산은 40분이면 넉넉하다.

왕산보다 75m 낮은 필봉산까진 대체로 유순한 내리막이어서 걷기에 부담이 적다. 20분간 내려서니 공터가 나오고 오르막으로 연결된다. 경사가 급하지는 않다. 10분쯤 올라서면 필봉산 정상부 암릉이다. 우회길로 돌아가거나 직접 암릉을 타고 오르면 된다. 바위에 몸을 붙이고 정상에 올라서자 입이 쩍 벌어진다. 조망이 아주 시원하다. 경호강을 따라 늘어선 산청군 일원은 물론 엄천강 건너 함양 휴천면 일대, 올망졸망 산골 마을들과 다닥다닥 붙어선 다랑논, 대진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자동차들.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손톱보다도 작은 차량들이 길다란 도로 위로 춤을 추며 사라진다.

 

유두봉 또는 필봉산

필봉산은 영락없이 여자 젖가슴을 닮았다. 당연히 ‘유두봉’이 될 법도 한데 선비의 고장 산청에선 절대 용납될 수 없던 이름. 붓끝을 닮았다 하여 필봉산이 되었고 문필봉이란 이름도 얻고 있다. 정상이 암릉인 것도 그렇지만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든 필봉산은 육산마냥 그리 풍만한 가슴은 아니다. 태양 아래 드러난 깡마른 돌덩이와 흙들이 말라버린 젖무덤처럼 안쓰럽다가도 황금빛으로 변할 논들을 내려다보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필봉산 모유를 먹고 자란 건강한 곡식들 아니겠는가.

필봉산에서 강구폭포 쪽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하산길은 2.4km. 이렇게 내려서야 차를 주차해둔 구형왕릉으로 돌아가기가 편하다. 직삼각형 산이어서 하산길이 가파르다. 이 길로 올라서려면 땀 꽤나 흘려야 할 터. 늘 필봉산 앞에 왕산이 먼저 붙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산행은 비교적 유순한 왕산에서 시작해 발 아래 펼쳐진 산청의 뜰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하산하는 것이 편하다. 10분쯤 내려서니 쉬어가기 좋은 바위가 나온다. 평평하진 않지만 10여 명은 앉아 쉴만하다. 두껍고 딱딱한 바위 틈으로 용케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3분쯤 진행 후 희미한 갈림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내려선다. 이어 철난간으로 단단히 보호막을 친 바윗길이 나오고 이 바위를 지나면서 약간의 오름길이 나타난다. 고만고만한 길들이 이어지면서 암릉이 나오는데, 필봉산 정상 아래 전망대에서도 훤히 내려다 보이던 곳이다. 촘촘하게 박힌 나무계단을 10분쯤 내려서자 삼거리가 나온다. 왕산에서 1.7km 지점이니 필봉산 정상에선 700m쯤 진행한 셈. 하양까지 3.2km 강구폭포는 1.7km 남았다. 등산로는 왕산에 비해 다소 거칠다.

이정표 삼거리에서 10분을 진행하자 왼쪽으로 계곡 소리가 들린다. 수풀과 잡목이 우거져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7분을 더 진행하면 드디어 계곡. 길은 조그만 계곡을 건너서 이어진다. 폭이 겨우 1m 남짓인데다 중간에 바위를 디딜 수 있어 건너는 데는 지장이 없다. 계곡을 건너면서 길이 좋아진다. 외딴 집 한 채를 왼쪽에 두고 내려서면 출렁대는 철다리가 나온다. 강구폭포에는 별다른 이정표가 없다. 이름있는 여느 폭포에 비하면 무명폭 수준에 불과하다. 흔들다리를 건너자 최근에 새로 지은 화장실이 나오면서 곧 큰 도로와 만난다. 필봉산에서 1시간 남짓이다. 산행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05년 9월... 검/은/별

 

교통과 숙박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www.nambuterminal.co.kr)과 동서울터미널(www.busnara.com)에 산청까지 가는 버스가 있지만 산청읍에서 내리는 것보다 생초에서 내리는 것이 편하다. 남부터미널의 경우 오전 9시 첫차부터 저녁 6시 30분 막차까지 하루 5회 생초행 우등고속이 다닌다. 요금은 1만5600원이며 소요시간은 3시간 10분. 산청읍에서 군내버스를 이용할 경우 화계행을 타야 하지만 배차 간격이 뜸하다. 이 버스는 하산지점인 강구폭포 앞도 지난다. 생초로 와서 구형왕릉까지 택시를 타는 것이 시간적으로 여유롭다. 택시비는 7천원이다. 하산지점인 강구폭포까지는 1만원. 구형왕릉은 행정구역상 금서면에 속하지만 타지에서의 대중교통이 닿지 않아 산청읍과 생초에서 접근해야 한다. 부산•진주•함양 등지에서도 생초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문의 산청시외버스터미널 055-973-2207 / 생초시외버스정류장 055-973-0309 / 생초개인택시 055-972-1900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진고속도로 산청IC나 생초IC로 나온다. 구형왕릉은 생초IC에서 8km 가량 떨어져 있다. 남해고속도로에서는 진주를 거쳐 대진고속도로로 붙는다. 차량이 2대 이상이라면 들머리와 날머리에 각각 주차하겠지만 1대일 경우 두 곳 중 한 곳에 세워두고 지나는 차를 얻어 타거나 택시를 불러야 한다. 운이 좋다면 버스 시간과 맞을 수도 있다. 두 곳은 60번 국도로 연결돼 있어 비교적 차량 회수가 수월하다. 도로상 거리는 5km 안팎이다.

산청읍과 생초에는 각각 장급 여관이 있어 숙박에 어려움은 없다. 산청읍에는 숙박이 가능한 찜질방도 있다. 어른 1인 6천원씩이다. 산청온천 055-972-2232. 구형왕릉 관련 교통편과 문화유적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민향식(016-9318-1618) 씨를 통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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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화계리 덕양전 9:38 ~10:08

오늘 일요일 모처럼 청명하고 좋은 날씨이다. 이달들어 몇 번을 궂은 날씨 때문에 산행을 취소 했었지만 삼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 기온이 좀 쌀쌀하지만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가 될듯하다. 악당의 차가 고장 나 승용차 2대로 가기로 하고 천안에서 산거북이 차를 가지고 죽암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청주에서 5명이 7:50분 출발하여 서청주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죽암휴게소로 향하니 도착했다고 연락이 온다. 우리도 10여분후 죽암휴게소에서 만나 산청 왕산으로 향하니 대전을 지나 통영으로 가는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달린다. 고속도로엔 일요일을 맞아 차량이 평소보다 상당히 많이 늘었다. 덕유산 옆을 지나고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육십령터널을 넘어서며 긴 내리막 길을 달린다. 몇 개의 터널이 있는 함양 안의 지역을 지나고 함양분기점을 넘어서 첫 번째 톨게이트인 생초에서 빠져 나간다. 생초로 가기 전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이정표에 화계로 표시가 되어 있다. 도로면에 방지턱이 여러개 있는 동네를 지나면 얼마 안가 길 우측 옆으로 물이 흐르는 강변이 나온다. 오래된 버드나무가 줄이어 서있고, 좌측으로 선바위산의 돌부리가 튀어 나온 곳이다. 몇 개의 비석이 길섶으로 서있다. 이제 앞쪽으로는 큰 마을이 보인다. 유림면소재지이다. 이곳에 이르니 삼거리다. 구형왕릉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2~3분이면 구형왕릉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 화계리 덕양전 앞에 닿는다. 이곳이 오늘 산행초입이 되겠다. 일행을 이곳에 내려 주고 먼저 산행을 시작하라 이르고,산거북과 난 하산지점에 차량을 한 대 놓으려 떠난다. 한방단지 주차장에 올랐다 다시 특리교 옆에 차량을 주차한 후 다시 덕양전 앞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니 어언 시간이 30분이 흘렀다.

 

구형왕릉 10:25 ~10:28

산행출발지인 덕양전은 가락국의 마지막왕 구형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선양한 후 이곳 수정궁으로 옮겨와 5년을 살다가 돌아 가셨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91년 문화재 사업으로 복원 된것이라 한다. 덕양전에는 홍살문을 비롯해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 안향각, 연신문, 추모재, 정숙당 등의 건물들이 가득하다. 덕양전을 뒤로 하고 좌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으면 덕양전 뒤편으로 오래 묵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덕양전을 지키고 있다. 이후 도로를 따라 걸으면 우측으로 정자가 하나 있고 몇분 후 우측 계곡 안으로 왕림사란 절이 있다. 이곳에서 좀더 오르면 구형왕릉 주차장이 있고 이곳까지 차량을 가지고 올라 올수가 있다. 이곳에서 좀더 가면 임도를 따라 류의태 약수터로 가는 방법이 있고, 직진으로 앞쪽으로 올라가면 구형왕릉이 나온다. 특이한 석조물로 이루어진 가락국의 10대 구형왕릉은 피라밋 형태로 쌓아 올린 7단의 능으로 되어 있지만 정확히 구형왕릉이는 확증은 없다고 한다.

 

류의태 약수터 10:50

구형왕릉에서 길이 두갈래다. 왕릉앞쪽으로 오르는길과 왕릉좌측 담을 끼고 오르는길이 있다. 담을 끼고 오른길은 평전샘쪽으로 오른길고, 우리가 오르는 길은 류의태약수 쪽으로 오르는 길이 되겠다. 산길을 따라 10분을 오르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 7분여를 더 가면 류의태 약수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임도를 떠나 5분이면 류의태 약수에 도착을 하게 된다. 이약수는 수량도 많고 물맛도 아주 좋다. 이물은 여름에 차고,겨울에 온화한 한천수로 장복을 하면 위장병을 고친다는 물이라고 한다. 류의태선생은 이물로 한약을 다렸고 많은 사람들이 이물을 마시고 병을 고쳤다는 애기다. 류의태 선생은 허준의 스승으로 자신의 몸을 해부용으로 제공하여 해부학의 효시를 이룬 살신성인의 위대한 의학자로 전해진다는 내용이다. 이곳에서 먼저 오르던 적막이 기다렸다 같이 산행을 한다.

 

망경대 11:11 ~11:14

류의태약수터에서 산길은 좌측으로 비스듬히 가로 질러 올라가게 된다. 15분후 능선에 닿게 되고 이후 서서히 올라서는 능선길을 따라 4분여를 더 오르니 망경대가 나온다. 망경대는‘충신(忠臣)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지조를 지킨 선비의 고집이 서려 있는 바위다. 고려에서 판서의 벼슬을 한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는 나라가 망하자 고려의 선비가 조선에 나갈 수 없다며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갔다가 산청에 낙향해 살면서 망경대에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암봉 (119 구조 4지점) 11:45 ~11:48

망경대에서 부터는 쭉쭉 뻗은 소나무 숲 지대다. 10여분을 오르면 좌측으로 강쇠약수 가는 길이 있다. 이길을 따라 1분 정도를 들어 가면 대나무통 끝으로 졸졸졸 흐르는 강쇠약수가 있다. 주위엔 아직 얼음덜어리가 있다. 수량이 아주 적어 한여름엔 물이 나올지가 궁금하다. 다시 능선으로 나와 오르면 8분후 좌측으로 한방단지 박물관 쪽으로 가는 길이 있고 조그만 바위가 옆으로 있으니 이바위가 망바위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이제 여기 부터는 길이 녹아 질컥거리고 미끄럽다. 경사도 가파라져 첫 번째 암봉까지 오르는데 힘이 상당히 든다. 박물관 삼거리에서 약 10분이면 암봉에 오르게 된다. 이정표가 있고 119구조4번목이 있다. 이곳에서 보는 조망이 아주 좋다. 산아래 파헤쳐지는 모습이 보기 싫치만 이곳도 개발을 해야 수입이 오를 것이니 뭐라 할수야 있겠는가? 앞쪽에 필봉에 뾰족한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동녘으로는 황매산의 모습도 보인다.

 

소나무있는 봉 (중식) 12:05 ~12:38

암봉에서 부터는 능선이 완만하게 진행이 된다. 6분후 왕산 정상석이 있는 910봉에 오르게 된다. 이봉은 왕산의 정상은 아니고 지도에 전망대로 표시된 봉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이봉에서 보는 조망도 일품이다. 좀전에 지나온 암봉의 모습이 보기 좋다. 암봉의 아래로 뻗어 내린 바위줄기가 하얀하게 보이고 필봉의 모습도 더욱 선명하니 보인다. 전망대에서 1분이면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두그루의 이쁘게 생긴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모두가 사진을 한 장씩 남긴 후 길을 간다. 이후 몇분을 더가 소나무가 있는 봉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다. 모처럼 가져온 소주가 있어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나 뭐라나 즐거워 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날씨도 풀려 따스하니 점심식사 하는데 좋다.

 

왕산 정상 923.2m 12:43 ~12:46

점심식사를 하고 5분 정도를 더 가니 왕산 정상이다. 정상석에 923.2m 라 쓰여 있으며 세운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정상석이다. 삼각점이 있고 이곳에서는 얼마전 다녀온 웅석봉까지의 조망이 보이지만 황사가 조금낀듯한 연무 현상으로 확연히 그러다지는 않는다. 그위쪽으로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도 조망이 되며 필봉은 바로 앞쪽으로 다가 왔다. 가락국의 멸망을 지켜본 구형왕의 능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이 활쏘기를 했다는 사대(射臺)가 있는 왕산, 천왕봉 웅석봉 황매산과 마름모꼴로 이어진 금서면 왕산(923m)은 지리산 왕등재에서 뻗어내린 봉우리다. 왕등재는 천왕봉을 출발해 쑥밭재~새재~외고개를 넘어 960고지에 커다란 습지를 만들어낸 생명의 땅, 이 봉우리에서 북으로 발을 넓혀 왕산을 세웠고 왕산은 다시 필봉산(848m)까지 이어져 경호강에 의해 길고 긴 걸음을 멈춘다. 조망도 뛰어나고 훌륭한 산이다.

 

우측에 있는 암봉 12:54

왕산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암봉을 향하니 첫머리가 급하게 내려선다. 암봉까지는 8분이 걸렷고 암봉의 아래쪽으로는 육산능선이나 아래쪽으로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인다. 암봉의 모든바위를 넘어서 다시 왕산정상으로 오니 20분이 소요 된다.

 

필봉산 13:31

왕산에서 필봉산까지는 1km의 거리다. 내려서는 길이 바윗길로 이어진다. 내려서는 길에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여우고개로 칭하는 고개를 지나며 이제부터는 필봉산으로 오르게 된다. 여우고개에서는 한방단지로 내려서는 길이 있으며 필봉까지는 300m의 거리다.필봉으로 오르는 길은 멀리서 볼때 뾰족하니 생겨 급경사길을 오르게 된줄을 알지만 실지 오르니 생각보다는 힘이 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등산로를 옆으로 하여 바위로 붙어 바위를 잡고 오르니 잡을 대도 많고 하여 오르는데는 크게 힘든 부분은 없다. 이바위를 오르니 곧바로 필봉산의 정상이 나온다. 필봉정상엔 먼저 온 우리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필봉에서 보는 조망은 왕산과 거의 같다. 산아래 들녘의 다랑이 전답의 모습이 보기 좋다. 경호강이 흐르고 대진고속도로가 시야에 들어 온다.

 

능선안부 14:00

필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바윗길로 오늘 산행중 가장 험난한 길이다. 첫머리를 내려서면 넓직한 바위가 있고 이곳에서 보면 필봉의 서쪽으로 깍아지른 절벽지대가 보인다. 다시 바윗길을 내려서면 향양으로 내려서는 길이 우측으로 있고 특리교는 좌측길로 내려서야 한다. 내려서는 길에 안전팬스가 설치된 바위를 돌아서 내려서는 곳이 있고 다시 몇분을 더 내려서면 능선안부로 강구폭포는 이곳에서 능선을 버리고 계곡 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봉을 하나 더 넘어 왕복사까지 갈수도 있다.

 

특리교 14:28 ~14:50

이제 내려서는 길은 완만하니 이어져 걷기에 아주 좋다. 처음 내려서는 지점을 지나면 길은 계곡 위쪽으로 산허리를 가로지르게 된다. 길옆으로 나무를 잘라 사각으로 정렬해놓았다. 약초를 재배하기 위한 것이란다. 너덜이 있는 지점을 지나 조금을 더 가면 이제 어수선하게 조성하고 있는 한방단지로 내려서게 된다. 계곡의 다리를 건너고 출렁다리를 건너면 한방단지로 오르는 포장도로가 나온다. 위쪽으로 사자상, 곰형상등을 커다랗게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우리는 그냥 특리교로 내려오니 특리교 아래쪽의 계곡의 모습이 이쁘다. 계곡사이로 황매산의 암릉이 보이고 지도에 나와 있는 강구폭포는 찾기가 어렵다. 정자옆에 있는 조금만 것이 강구폭포인가 아래쪽까지 한참을 내려가며 찾아 보았지만 폭포로 보이는 것은 없다.

 

오늘 날씨도 좋았고 산행거리도 적당하니 좋았다. 대충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산거북님차에 모두가 승차하여 아우성을 치며 10여분 고행 끝에 덕양전에 도착을 한다. 덕양전에서 다시 두 대로 나누어 타고 먼저 간님들이 구형왕릉을 구경하지 못하였다하여 그곳까지 차를 몰고가 구경을 한후 생초톨게이트를 거쳐 함양휴게소를 거쳐 죽암휴게소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후 집으로 돌아와 오늘의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 한다.

모두가 수고 만았습니다.

 

산행거리 : 9.2km

산행시간 ; 4:2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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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왕산~필봉산

 

청주복대사거리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구형왕릉 ;167.69km 2:10분 소요

 

생초톨게이트-생초가기전에서 좌회전 -상촌리~화계리~구형왕릉

생초톨게이트 ~생초쪽으로 교량건너~생초면소재지 반대쪽으로 좌회전 -화산리에서 좌회전 다리건너고 ~대궁리~국계리~화촌리~유천면사무소 ~다리건너 -덕양전 -구형왕릉

 

산행코스 ; 구형왕릉~유의태약수~망경대~전망바위 ~왕산~여우재~필봉산~특리교

산행시간 : 4:30분 소요

산행거리 ; 8km

 

강변도로 SK주유소 -0.8km -선바위산 285.7m 3.5km -봉화산 1.5km-특집재-3.0m-왕산

923.2km -3.7km -고동재 -2.8km -가현교

산행거리 15.3km

 

구형왕릉~전통한방관광지 ; 6.04km

덕양전~구형왕릉 ; 1.02km

 

산청읍에서 군내버스를 이용할 경우 화계행을 타야 하지만 배차 간격이 뜸하다. 이 버스는 하산지점인 강구폭포 앞도 지난다. 생초로 와서 구형왕릉까

 

지 택시를 타는 것이 시간적으로 여유롭다. 택시비는 7천원이다. 하산지점인 강구폭포까지는 1만원. 구형왕릉은 행정구역상 금서면에 속하지만 타지에

 

서의 대중교통이 닿지 않아 산청읍과 생초에서 접근해야 한다. 부산•진주•함양 등지에서도 생초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문의 산청시외버스터미널 055-

 

973-2207 / 생초시외버스정류장 055-973-0309 / 생초개인택시 055-972-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