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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0146 지리산 천왕봉 1915m 2005.4.23.토요일 맑음 지리산5회차

지리산 천왕봉 1915m

2005.4.23.토요일 맑음 지리산5회차

참석인원 : 7명 현산 리치 맑은바다 산아름 허수 빵아찌 산야

 

 

청주남이초등학교앞 6:00 - 함양휴게소7:22 ~7:47 - 단성인터체인지 8:10 - 중산리주차장 8:38~8:45(장터목5.5k) -칼바위9:10 - 법계사,장터목삼거리9:15 - 법천폭포 9:28 - 유암폭포10:25~10:30(장터목1.6k) -병기막터교10:45(장터목1.0k) -평성교10:50 ~11:00 -장터목산장11:25~11:40(천왕봉1.7k) -제석봉12:00 -천왕봉12:32~12:43(중산리5.4k)-천왕샘12:50~13:32(중식)-개선문13:45 -법계사14:10(해발1450m)~14:30 -망바위14:50 ~15:00 -법계사,장터목삼거리15:20 -중산리주차장17:45~18:05 -비룡분기점18:45-청원인터체인지19:00 -청주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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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

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천왕봉은 함양 방면으로 칠선 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 내며 산청 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뤄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은 세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인의 젖줄이 된다.

 

천왕정상에는 현재 82년 여름 경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는데 전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란 글이 표기돼 있다. 그 전에는 진주 산악인들이 남명 선생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이란 글귀를 새겨 표지석 으로 세워 두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곳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 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 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모상은 훼손된 채 사라졌다가 다행히 한 스님에 의해 찾겨져 성모상은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천왕봉은 지리산의 최고봉으로 해발 1,915m의 거봉이다.

 

천왕봉은 그 옛날 토속적 산신신앙의 대상으로 성모숭상의 유적인 석상과 마야부인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천왕봉 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데 없으며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천왕봉의 해돋이는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장관으로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천왕봉 정상은 언제나 구름에 쌓여 있어 맑은 날을 보기가 어려워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 우리민족의 기상과 혼, 정서, 그리고 애환이 깃들여 우리와 더불어 숨쉬어 온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 (三神山)의 하나로 알려져 왔으며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려 왔다. 지리산은 백두산의 맥이 반도를 타고 내려와 이곳까지 이어졌다는 뜻에서

두류산(頭流山) 이라고 불려지기도 하고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소를 가리키는 방장의 의미를 빌어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한다.

 

천왕정상에는 현재 82년도에 경상남도에서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 있는데 전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 란 글이 표기돼 있다. 그전에는 진주 산악인들이 남명선생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이란 글귀를 새겨 표지석으로 세워 두었다.

1967년 12월 27일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지리산은 주봉 천왕봉(1,915m)에서 노고단(1,500m) 을 잇는 1백리 능선에 반야봉, 제석봉, 촛대봉등 해발 1,500m를 넘는 10개의 거봉이 구름 위에 솟아있고 이들을 호위하듯 해발 1,000m를 넘는 20여개의 높은 봉우리들과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용트림하듯 길게 뻗어진 주능선의 길이만도 100리가넘는 지리산은 북쪽을 내지리, 서남쪽을 외지리로 구분하나 잘 통용하지는 않고 있다.

산릉은 주능선에 15개의 지능선과 15개의 계곡을 배열해 남북으로 흐르는 큰 강과 이어져 바다로 빠지게 연결시켜 두고 있다. 거산의 물줄기 큰 하나는 남강으로 또 하나는 멀리 덕유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봉우리와 재가 지리산의 위상이라고 보면 지리산의 실질이 되는 계곡은 이들 두 줄기 큰 물줄기를 만나기 전에 강으로 이어지는 계류천을 만든다. 화개천, 연곡천, 동천, 엄천강, 경호강, 덕천강, 횡천강 등 14개의 크고 작은 하천이 그것이다. 이들 하천을 만들기 위해 능선 사이사이에서 옥류청계를 자랑하며 그 하나하나가 비경을 이루는 것이 지리산 12동천이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이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혹은 73개의 골을 이야기하고 혹은 99개의 골을 논하고 있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봉우리와 능선 그리고 계곡들은 대자연의 섭리와 어우러져 지리10경을 펼쳐 보이니 노고운해, 피아골단풍, 반야낙조, 벽소령명월, 세석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천왕일출, 칠선계곡, 섬진청류가 그것이다.

 

지리산의 비경은 또한 3도 5개군 15개면에 걸쳐 484㎢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어 동식물의 보고로도 정평이 나 있다.

현재까지 보고된 식물류는 목본식물 245종, 초본식물 519종 등 모두 824종. 이 중 식용식물이 285종, 약용식물이 174종, 독초식물이 14종으로 알려져 있으나 더 많은 연구 여부에 따라 더 있을 가능성이 많다. 수림이 울창해 동물류도 다양해 이미 호랑이 표범 불곰 등은 사라진 것으로 보고 되고 있으나 멧돼지, 반달곰, 사슴 등 짐승 22종과 조류 163종 등 421종의 동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면 최근에 반달곰 4마리를 방생하였다.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모상은 훼손된 채 사라졌다가 다행히 한 스님에 의해 찾겨져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으나 제자리로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천왕봉의 성모사는 1489년 이곳을 오른 김일손의 "속두류록"에 의하면 성모사는 천왕봉 정상에 한 칸 정도의 돌담벽이 있고 담 안의 너와집에 성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전한다.

이 사당은 빨치산에 의해 허물어진 뒤 오늘날까지 노천암대만 남아 처량하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실정이다.

 

지리산은 가도가도 끝내는 그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과 석양낙조를 빚어내는 천왕봉은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하는 일출 광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더불어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것이 그것이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있다. 이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깍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멀리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험난한 길 등 두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듯 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5백년전 김종직, 김일손, 이육, 조식 선생 등 선인들의 지리산 기행에서조차 그들의 내면세계 전부를 토해 내고도 모자란 듯 여운을 남겨 두었다. 남명선생은 그의 "유 두류록"에서 무릉도원을 지리산 어느 곳으로 여기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고 읊조렸다.

 

고려 말 이인로 역시 지리산을 찾아 헤매며 “두류산 멀고 깊은데 저녁 구름 나직하니 신선 사는 곳 어디인지 물을 길 없는데 시냇물에 꽃만 떠내려와 속객을 어리둥절케 하느냐”며 지리의 신비함에 탄복했다.

서산대사는 "지리는 장엄하되 빼어나지 않았다“ 며 수려하기 보다는 장엄 웅장한 남녘의 진산이라고 찬탄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는 지리산에 절과 암자가 3백50군데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니 가히 지리산은 수도처로서의 적지는 물론 문화유적의 보고라고도 할 만하다. 현재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칠불사를 비롯, 사적 7개소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에는 수많은 한국인의 시상이 발원하는 곳으로 부르며 마음의 고향으로 믿고 있다.

 

태고적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둘러싼 선인들의 숱한 답사 기록과 풍류는 나아가 지리산을 매개로한 문학으로까지 발전했음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전문학으로 손꼽히는 "춘향전", "흥부전", "변강쇠타령" 등은 모두가 지리산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저변에 깔린 정서는 지리산속의 잠재된 변혁세력과 무관치 않음을 엿 볼 수 있다. "흥부전"의 본무대는 지리산 자락의 운봉여원치에서 함양 팔령재까지로 지금도 "흥부마을"이 있다. 경남과 전북 경계지점을 지나면 바로 나온다. 변강쇠타령은 알려진 대로 거의 지금의 함양군 마천면 일대인 등구,창원이다.

이같은 문학적 배경은 근세까지 이어져 박경리의 "토지", 황순원의 "잃어버린 사람들", 김동리의 "역마"등은 조선말기와 일제의 침탈 과정에서 빚어진 지리산과 한민족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근대화 이후에는 이데올로기의 붕괴와 더불어 빨치산 투쟁을 형상화한 이병주의 "지리산"에서 80년대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등으로 이어져 지리산과 함께한 민족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고통, 사랑과 분노가 문학작품을 통해 감동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지리산의 모습은 천의 얼굴을 하면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기에 아직 그 누구도 지리를 다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멀리 천왕은 1백여리 능선길마다에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을 숨겨 놓은채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지켜봐 온 듯 넉넉함으로 남아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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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단에 웅장하게 솟은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놓인 3도 5개군 16면에 걸쳐 둘레가 무려800리에 이르며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산이다.

동서로 약45KM에 이르며 1400M가 넘는 고봉만도 20여개에 이른다.

산능에는 천왕일출 반야낙조 연하선경 등 손꼽는 7경외에 수림지대와 고원지대가 어우러져 있다.

 

계곡에는 불일 구룡 무재치기 칠선 가내소 법천 용추등 지리산 7대 폭포와 많은 담과 소를 이루고 화엄사 쌍계사 대원사 천은사 연곡 벽송사 우리나라에서 제일높은 곳에 자리잡은 법계사가 유명하다.

 

지리산등산로는 북쪽의 추성동 백무동 반선과 남쪽의 화엄사 연곡사 쌍계사 거림 중산리및 동서로는 대원사와 천은사등을 기점으로 하고 주능선종주 또는 일부능선을 거쳐 하산하는코스로 나누고 있다.

 

능선코스로는 삼신봉능선 왕시루봉능선 삼정산능선 만복대능선 등이 대표적이다.

주능선에는 노고단선도샘 벽소령뱀실샘 임걸령샘 선비샘 뱀사골산장샘 세석샘 총각샘 장터목샘 천왕샘 치밭목샘 중봉샘등이 있어 주능선 종주시에도 물걱정은 없다.

 

지리산 10경으로

1.노고단 운해 2.피아골 단풍 3.반야봉 낙조 4.섬진 청류 5.벽소령 명월

6.불일폭포 7.세석평전 철쭉 8.연하선경 9.천왕봉 일출 10.칠선계곡

 

주능선 종주시 산장으로 노고단산장 세석산장 장터목산장 피아골산장 뱀사골산장

연하천산장이 있으나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수 없다.

 

오늘은 아침 날씨가 좋아 모처럼 지리산을 만끽할수 있을것 같다.

산아름과 둘이서 출발하여 남이초교에서 현산님 리치님 맑은바다님 허수님 빵아찌님 누가 빠졋나 아고 내가 빠졋구먼 이렇게 7명이 출발

 

가는도중 함양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넘일찍 나오느라 아침식사 못하신분덜 순두부찌개 하나 시켜 밥3공기와 함께 나누고 자세히 못봐서 틀렷을수도 있음 ㅋㅋㅋ

중산리 주차장에 8:38분 도착

 

오늘 맑은바다님 기분 넘좋아 보인다.

이유인즉 우리앞차엔 남정네 셋이서 타고 오고 바다님은 여복이 많아 어여쁜 여사님 셋을 모시고 왔으니 얼매나 황홀혔을까?

 

중산리 매표소에서 입장료 1600원지불하고 오르려니 매표담당 아지매 오늘은 산불땜시 법계사위로는 오를수 없다네요~

그럼 할수 없지요 그리 안오르고 다른데로 혀서 법계사만 통과하지 않으면 되것네

아름하고 둘이 키득키득 거리며 처음 오르려던 법계사쪽 방향을 장터목쪽으로 오르기로 하고 매표소에서 조금올라 교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른다.

 

산행시작 25분후 칼바위도착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후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지리산 중턱의 큰바위 밑에서 은거중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장수에게 그사람 목을 베어오라 명하여 그장수가 지리산을 헤메다가 이곳에서 2km떨어진 큰바위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칼로 치나 바위는 갈라져 홈바위가 되고 칼은 부러져 이곳에 날라와 꽂히면서 하늘을 찌를듯한 바위로 변하닌 이바위를 칼바위로 부른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칼바위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법계사,장터목으로 오르는 삼거리 법계사쪽은 포기하고 장터목 오르는 곳으로 접어드니 이곳도 대나무 죽살로 막아 놓았다.

요곳을 살짝 우회하여 들어가니 가지말라고 말리는 아자씨는 없드만요~

 

시원한 계곡물을 벗삼아 오르니 옆으로는 진달래가 반기고 우리 나물박사 현산님은 우린 앞에서도 보지못한 드릅을 따오셨드만유~ 벌금50만원이유 국립공원에서 나물채취는 담배피는것 하고 똑같아유~

 

법천폭포를 지나고 시원한 소를가 반기는 곳에서 쉬면서 얼큰한 동동주로 걸걸한 포도청 청소도 하고 누구는 오염시키지 말아야 할 맑은 물에 얼굴도 닦데요~

거기다가 자기덜이 무시기 어린 동심이라고 물탕까지 튀기면서 즐기더만유 !!

아고 나도 돌맹이 하나 던져서 옷다 젹셔 놔야 하는데 나하고 동갑내기 여사가 넘장난이 심하다고 핀잔을 줘서 못혔구먼요 아고 배아파라~~

 

쉬원한 소를 뒤로 하고 계류를 거슬러 오르니 왼쪽 오른쪽에 과거에 좋아 하던 겨우살이가 날잡아 보라고 손짓하더만 오르는 길이니 힘부쳐 못한다고 안뇽하고 갔지유~~

장터목으로 오르는 계곡도 흐르는 물과 주위에 천년원시림이 펼쳐져 볼거리 짱이지요 여름에 이곳으로 내려오믄 그냥은 못갈긴디 어데서고 찬물에 퐁당 들어갔다가 가야지 직성이 풀릴긴디 아쉽네요~

 

한동안 오르자 그간 큰비로 자갈더미가 된 계곡을 지나고 나무로 계단과 다리를 만들어 우리같은 초심자덜 잘가라고 하니 고맙네요~

나무다리 몇 개를 통과하자 이제 유암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반긴다.

한여름 등맞사지 하믄 십년은 젊어질틴디 언제함 다시 오나~~·

 

병기막터교란 다리를 지나자 앞으로 장터목까지 1.0km로 남았다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다시 평성교를 지나자 이제 계곡의 물줄기도 소오줌 줄기 마냥 작아 진다.

굽이굽이 내려오는 물줄기 벗삼아 잠시 한번 더쉬고

이제 장터목까지 남은 800m를 오른다.

여기서부터 오름길이 가파르고 계단도 많아 힘한번 쏟는데 등줄기에 땀이 줄줄이 흐른다.

 

그래도 어느 여사라곤 말안치만 허야사라고 하시는분 힘이 남아돈다고 오빠 나 주력 무지 많이 늘었지 한다. 난 힘들어 죽갔는데 약올리는거 아녀 ~~

800m를 오르는데 20여분이 소요되니 드뎌 장터목산장.

산장아래 식수터에서 시원한 물로 얼굴도 문지르고 맘것 마시니 아고 시원타~·

 

입산통제를 혀서 그런가 개미하나두 보이질 않는 산장엔 발전기 소리만 웽거린다.

산장지기한티 혹여 들키기라도 할까봐 산장은 옆에서 구경하고 숨소리 조차 죽여가며 산장위 하늘에서 헬기한테두 안들킬만한 장소를 찾아 간식으로 힘을 붙이고 천왕봉까지 남은 1.7k 구간을 향하야 다시 출발

 

제석봉을 오르자 황량한 풍경에 매료되어 발걸음이 더디다 .

예전에 내가 알기로는 구상나무로 알았던 고사목이 꼬랑지 팻말에 가문비나무로 적혀있다 같은 말인지 모르나 어느것이 맡는지요~·

제석봉 고사목에서 갖은 폼 다잡고 사진 찍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고

다시 마지막 남은 천왕봉을 오르는데 나와야 할 통천문이 영 나오질 않으니 어데로 이사를 갔나~

산아름님 따라 바우등컬 타고 올라 통천문을 지나듯하여 물어보니 거길 통과하여 왔다고 하네요~

 

산행시작 4시간 드디어 오늘 이곳에 신고차 오신 울님덜 고생했시유~

그래도 오늘날씨 지리산에서 보기힘든 날씨네요 구름한점 없는 맑은날씨에 바람도 자니 우린 복받은거 맡지유~

허여사는 누가 날잡았나 처음으로 잘잡았다나 ~

 

육지에서선 남한의 최고봉인 이곳

가장가까운 거리인 많큼 경사도 심하고 계단도 많아 울님덜 고생혓지만요 그간 실력덜이 급성장 하신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은 전망도 좋아 멀리 노고단쪽 반야봉까지 하봉거쳐 대원사쪽으로 우리산아름 좋아하는 웅석봉까지 들춰보이니 아름님 저기가 웅석봉으로 저기서 요기로 혀서 조기 반야봉쪽으로 혀서 어케 어케 내려서면 요것이 태극종주라고 설명한다.

근디 우린 무서워 못가유 장장 80리도 아닌 80km유 그럼 몇리유 200리 안유~·

 

울님덜 정상에선 헬기에 노출이 되니 아고 내려가서 점심식사 하자네요·

ㅎㅎㅎ 그려 어째든 들키는 것보단 낫것제요,

가파른 돌무더기 길을 내려서는데 예전에 오를적 생각이 난다.

요 300m구간을 아마 두어번은 쉬어다가 오른거 같다 .

다행이 오늘은 내려서니 쉬지 않아도 되니 얼매나 행운인가~

 

천왕샘에서 헬기에게 노출이 되지 않을 장소에 자리잡고 즐기는 식사시간

리치님은 빠빠 묵는거 보다도 샘절벽에 매달린 고드름이 더 맛이 있다나 ~~

아고 난 반찬도 못싸들고 따라 갔것만 먹거리 많아 덤으로 맛난 식사 즐겻네요.

 

식사후 개선문을 통과하여 내려서니 법계사전 바위끝부근에도 철문으로 굳건히 잠가놓아 잠시 옆으로 돌아 내려서 법계사에 다달으니 여기두 대나무 통발로 막아 놓았다.

 

법계사도 우리나라에 몇안되는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향하여 예배드리는 법당이란 설명과 함께 신라 진흥왕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왓다는 내용의 설명문이 있다.

법계사는 해발1450m로 우리나라 사찰중에서 가장높은 곳에 자리 잡은 사찰이라 한다.

 

다시 하산은 수련원쪽이 아닌 주등산로로 하여 하산

내려오는 중 리치님 잘 서있는 나무를 들이 받자 현산님 왈 나무는 괜찬냐고 ㅋㅋ

걱정혀야 할 일이 마나님 이마가 아니구 나무라니~~

다시 리치님 왈 당신이 들이 받지 않키가 다행이라나 .

아고 우리 리치님 서방님 생각 무지 하시네 혔더만

당신이 받았으믄 나무가 다쳤을 거라나

아고 무지 부러운 부부여 도란도란 야그하며 잼나는 야그도 이리 잘하실까~

 

망바위에 올라가 노느라 정신없는 여사님 달래서 다시 한동안 내려오니 다시 삼거리 이제 이곳부터 아까 올라오던곳을 다시 내려서는곳이다.

산행시간 7시간 맞춘다고 열심히 내려오니 아고 땀나네 .

마지막 다리아래 계곡으로 들어가 발담그고 세수도 하고 하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정신도 맑고 한디 어라 내가 맨아래 있었으니 아름 바다 허수 발씻은 물에 세수한거 아녀 ~~

 

마지막 도란도란 손잡고 내려오는 현산님 내외분과 합하여 마지막 들르는곳

손두부에 동동주 거기에 향긋한 취나물이 있어 더좋은 맛

넘 좋은 하루 였습니다.

빵아찌님 내려오는 도중 돌맹이에 놀란거 누가 써먹을 까봐 안썻는데 쓰라 하믄 담에 쓸게요 그러고 오늘 간식거리 빵 무지 잘묵었습니다. 감사~~·

담에도 종종 부탁혀유~

그러구 허수님 감사~

운전하신 바다님 아름님 고생하셧고요 맏형님 누님같은 현산님 내외분 고생했시유~~

 

청주 ~ 중산리 ; 약210km

청주 ~ 중산리 ; 약2:50분

청원 ~ 단 성 ; 고속도로비 7600원

입장료 ; 1600원

산행시간 ; 7;00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