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우암산~상당산~것대산~낙가산~중봉
2018.03.30.토요일 맑음
참석인원 : 나홀로
청주집 10:10 -시내벼스 1300원 -상당공원 버스정류장 10:34 -우암산(2.4km, 353m) 11:13 -생태통로(3.4km) 11:29 -산성(5.9km) 12:11 -상당산(7.4km, 491.5m) 12:34 -산성도로(8.4km) 12:48 -남암문(9.1km) 13:01 -출렁다리(9.9km) 13:11 -상봉재(10.7km) 13:23- 봉수대(11.1km) 13:31 -것대산(11.3km.484m) 13:36 -낙가산(12.4km, 483m) 14:07 -되돌아서 -것대산(13.6km) 14:24 -상봉재(14.1km) 14:34 -상봉샘 -중봉(삼각점, 15.5km, 275m) 14:57 -어린이회관앞 도로(16.2km) 15:11 -우암산 우회도로 따라 -삼일공원(20.4km) 16:04 -상당공원버스 정류장(21.25km) 16:16 -청주 집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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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산
* 청주의 진산, 우암산 *높이 353m이다. 청주시의 진산으로 장암산·대모산·무암산·와우산·당이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와우산이라는 별칭처럼 산세가 소가 누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청주시 명암동·내덕동·우암동·수동·대성동·문화동·용암동에 걸쳐 있다. 우암산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온 한남금북정맥 산줄기에 속한다. 청주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선도산-것대산-상당산-구녀산인데 그 중 상당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353.2m의 산이 바로 우암산이다. 우암산은 예로부터 와우산(臥牛山), 대모산(大母山), 모암산(母岩山), 장암산(壯岩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오는 청주의 진산이다. 침엽수림과 낙엽수림이 섞인 숲이 우거지고, 약수터와 순환도로·등산로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산기슭에는 표충사(表忠寺)·용화사(龍華寺) 등의 사찰이 많고, 정상 부근에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와우산성(臥牛山城)이 있다. 와우산성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1.587km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내성 2km, 외성 1,800km로 총 3.8km에 이른다. 지금은 성 주변으로 민가와 농경지가 늘어나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 우암산 장군의 혈에 대하여 *선조 때 토정 이지함이 청주 서쪽의 부모산에 올라 우암산의 지세를 살피다가 황소기질 같은 강인한 기운이 솟는 명당혈을 발견했다. 우암산이 전체적으로 소가 앉은 형상이라면 그 혈은 배 부분에 해당된다.토정은 제자 박춘무와 함께 그 곳을 확인한 뒤 '이 곳은 장군에게 적합한 곳이니 범하지 말라'는 푯말을 세우고 떠났다.그 뒤 진천의 조풍수란 사람이 이곳에 이르러 푯말을 뽑아 버리고 조상의 묘를 이전하려하자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황소 우는 소리가 나고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더니 가묘는 검은 바위로 변했고, 조풍수의 눈도 멀어 버렸다.
상당산
높이는 491m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다.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에 해당했던 것에서 비롯하였다. 산의 서쪽과 남쪽 사면은 급사면을 이루고 동쪽 사면은 완만한 지형을 이룬다. 남서쪽 사면에서 흐르는 물이 무심천(無心川)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 들어고, 동쪽 사면에서 흐르는 물은 미원천을 거쳐 남한강에 합류한다. 주요 유적으로는 사적 제212호로 지정된 상당산성이 있다.
상당산성
사적 제212호. 지정면적 180,826㎡.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백제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이 상당현(上黨縣)이라 불렸고, 숙종 때 축성기록에 ‘上黨基址 改石築(상당기지 개석축)’이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8부 능선에서 시작하여 성안의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동서의 등성이를 타고 사행(蛇行)하는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4.2㎞의 유구가 잘 남아 있는 서벽과 동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성벽 위에 설치하였던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성벽의 안쪽은 돌을 깨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을 채우고 다지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2개의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2곳의 장대(將臺), 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대소 2곳의 연못이 있다. 정문인 남문 주변에는 3개의 치성과 장대, 4곳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숙종 때의 개축 이후에도 1731년(영조 7) 남문 문루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1802년(순조 2) 1,176개의 첩(堞)을 시설하여 산성으로서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성벽이 퇴락하고 문루가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1971년 석축 부분을 개축하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서문·동문의 누문을 모두 복원하였다.
일부에서는 이 산성을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전적지인 낭비성(娘臂城)으로 비정하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것대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낭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고도:484m). 「1:50,000 지형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지리지나 옛 지도에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봉수가 있었던 곳이다. 경상남도 남해의 금산봉수(錦山烽燧)에서 출발하여 서울의 남산에 이르는 중간 경유지 이다. 남쪽으로는 문의(文義) 소이산(所伊山)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所乙山) 봉수에 연결된다.『세종실록지리지』에는 '거차대(居次大)' 봉수라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지에는 '거질대산(巨叱大山)' 봉수라 표기되어 있다. 봉수터는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둘레에는 방호벽(防護壁)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지도』에는 '거질대령(巨叱大岺)'으로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거대산(巨大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곳의 줄기가 서쪽의 상당산성으로 이어져, 청주 읍치로 이어진다. 옛문헌에서 나오는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낙가산
충청북도 청주시의 상당구 용정동과 용암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고도 475m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상당산에서 상봉재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리는 일명 상당산맥의 한 줄기에 속하는 봉우리이다. 인근의 보살사에서 낙가산에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나 용정동이나 용암동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정상 부근은 평평하여 평정봉을 연상하게 한다. 청주시의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낙가산이라는 지명은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 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되었다. 옛 지리지에 '낙가산'에 대한 기록이 있어 오래된 지명임을 보여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명이 처음 나오며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동쪽 7리에 있다. 것대산에서 뻗어 나와 보살사(菩薩寺)의 으뜸이 되는 줄기가 된다."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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