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 진천 농다리 및 초롱길 2015.12.25.금요일 맑음
진천 농다리 및 초롱길
2015.12.25.금요일 맑음
참석인원 : 우리 세 식구
청주 02:00 - 진천 농다리 주차장 02:50~02:55 -용고개 15:11 -해발 약190봉 15:35 -하늘다리 건너 휴게소 15:55 -호수변 산책로 따라 -농다리 16:23 ~16:25 -청주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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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중리)마을은 상산 임씨의 세거지로, 고려 적에 최씨 무신정권의 뒤를 이어 권세를 잡았던 무신 임연(林衍, ?~1270)이 태어난 곳이다. 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하천이 세금천(洗錦川)이다. 여기에서 매우 독특한 형태의 다리 하나를 만난다.
다리는 얼핏 보아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석을 축대 쌓듯이 안으로 물려가며 쌓아올린 교각의 너비가 그 위에 올려진 상판보다 넓으므로,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지네 발처럼 보이는 것이다. 재료로 쓰인 돌도 독특한데 주로 자색이지만 얼룩무늬가 박힌 쑥색 돌도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이 동네 돌이 대개 그렇다.
고려 말에 놓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가 매우 큰 돌다리이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두께가 각각 1m가 넘는 교각들은 양끝을 유선형으로 오므려 물살의 저항을 덜 받게 해놓았으며 너비가 3m쯤 된다. 그 위 한가운데에 길이 1.7m 안팎, 두께 0.2m쯤 되는 돌판을 한 개 또는 두 개씩 걸쳐서 상판으로 삼았다. 옛 기록에 따르면 맨 처음에는 교각의 수가 28개였다는데 지금은 양쪽으로 두 개씩이 줄어서 24개만 남아 있다.
다리 전체의 길이는 현재 93.6m에 이른다. 예전에는 어른이 서서 다리 아래로 지나갈 만큼 물 바닥이 낮았다지만 지금은 토사가 많이 쌓여서 그 아래에 묻힌 교각의 전체 높이나 기반부는 확인할 수 없다. 상판석 양쪽으로 교각이 튀어나오게 한 것이라든가 교각의 양끝을 유선형으로 만드는 등의 배려로 인해 이 다리는 오랜 세월 이 만큼 잘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오랜 세월이다 보니 조금씩 허물어진 것을 다시 손보는 가운데 변형이 있었는지 교각과 상판의 길이나 간격 등이 일정하지 않고 다리의 방향도 중간에 조금 휘어 있다. ‘농(籠)다리’라는 이름은 밟으면 움직이고 잡아당기면 돌아가는 돌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농다리의 교각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쌓아올린 교각들로 양끝을 유선형으로 오므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만들어 물의 저항을 덜 받게 하였다.
고려 고종 때의 권신인 임연이 전성기에 고향 마을 앞에 놓은 것이라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이 다리는 대략 고려 말에 놓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근처 노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임연은 날마다 세금천에서 세수를 했다고 한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임연이 세수를 하다 보니 건너편에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는 길이라는 것. 그 정경을 딱하게 여긴 임연은 당장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놓아주었다. 이때 일을 마친 용마는 기운이 다 빠져서 죽었는데 용마에 실었던 마지막 돌이 떨어져 그대로 둔 것이 마을의 용바위라고 한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면 농다리가 며칠씩 우는데 한일합방 때와 한국전쟁 때도 며칠이고 울어서 동네사람들이 잠을 못 잤다고들 한다. 다리가 오래되다보니 전설도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고구려로부터 낭비성을 되찾은 후 그 기념으로 농다리를 놓았다는 전설도 있다.
한편, 진천 일대의 좋은 경치 여덟 가지를 꼽은 ‘상산팔경’ 가운데 ‘농암모설’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 농다리 위에 흰눈이 쌓였을 때의 정취를 말하는 것이다.
1) 농다리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교통, 숙식 등 여행에 필요한 기초 정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다. 용화사에서 앞으로 계속 난 길을 따라 약 800m 가면 새끼미마을 앞 사거리가 나온다. 새끼미마을 앞 사거리에서 오른쪽 신정농공단지로 난 군도로를 따라 550m 가면 길 오른쪽에 신정농공단지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신정농공단지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3번 군도로를 따라 4.2㎞ 가면 길 왼쪽에 중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구곡리 중리마을에 닿고, 중리 버스정류장 옆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500m 가면 농다리가 나온다. 농다리 앞에는 따로 주차장은 없으나 승용차는 여러 대 주차할 공간이 있다. 대형버스는 중리 버스정류장 한편에 잠시 주차해야 한다. 농다리 주변에는 숙식할 곳이 없다. 진천 시외버스종합정류장 앞에서 중리 버스정류장으로는 통산행 버스가 하루 8회 다닌다.
ⓘ 본 정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행 시에는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진천사람들이 꼽아온 상산팔경에서 나머지 일곱 가지는 다음과 같다.
평사낙안 : 문백면 평산리에 펼쳐진 10리 모래밭과 기암괴석, 거기에 내리는 기러기떼.
우담제월 : 문백면 은탄리의 호수인 우담에 비치는 달빛.
금계완사 : 만승면 광혜원리 금계 물가에서 빨래하는 풍경.
두타모종 : 초평면 화산리 두타산 영수암에서 퍼지는 저녁 종소리.
상산모운 : 진천읍 서북쪽 상산 허리에서 저녁놀과 더불은 구름을 보는 정취.
어은계석 : 문백면 봉죽리 어은마을 정철 묘소 부근의 계곡과 수림.
적대청람 : 문백면 평산리의 깎은 듯 솟은 암벽의 아름다운 자태.
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진천 농다리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농다리로 1032-11
문화재지정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1976.12.21 지정)
출처원문보기 대한민국구석구석 원문보기
○ 개요
사력 암질의 붉은 돌을 쌓아서 만들어진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이다. 다리는 사력암질의 자석을 쌓아 놓은 다리로서, 28칸의 교각이다. 지방유형문화재 28호로서 길이는 93.6m, 폭 3.6m, 교각 1.2m 정도이며, 교각 사이의 내폭은 80㎝ 내외이다. 석회 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져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다리는 고려 초엽시대의 권신, 임장군이 놓았다는 돌다리로 규모도 크고 축조술도 특이하다. 정자, 산책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된 수변데크 등이 조성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신비로운 다리모양과 주변풍경이 잘 어우러져 드라마 촬영지로도 등장한다.
[농다리에 관한 전설]
* 농다리
임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몹시 추운 겨울 어느날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이 답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셔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모습을 딱히여겨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죽었다고 하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 임연 오누이 힘내기 설화
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아들(임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가 오기로 했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여,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고 딸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갔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을 내어 딸에게는 뜨거운 팥죽 등 먹을 것을 해다 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온 것에 화가 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아직까지도 그 돌이 그대로 박혀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고, 딸이 마지막 한 칸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놓은 다리는 그대도 있는데, 일반인이 놓은 다리는 장마가 지면 떠내려간다고 한다.
○ 개장휴무
연중무휴
○ 관련 홈페이지
진천군 문화관광 http://www.jincheon.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정보제공자
충북 진천군청
문화재청
천년을 이어온 동양최고 돌다리
진천 농다리
충북 진천군, 김유신 장군의 고향으로 동양 최고의 돌다리로 알려진 곳이다.
진천 농다리는 생김새는 서로 다른 돌을 얹었지만 비바람과 홍수를 거뜬히 이겨내는 지혜가 숨어 있어 천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천년을 이어온 농다리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의 굴티마을 앞에 있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아니라 마치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교각을 세우고 반듯하게 돌을 깎아 만든 다리가 아니라 돌을 원래의 모양 그대로 쌓아 투박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듬성듬성 구멍도 뚫리고 발로 밟으면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큰 돌을 쌓고 그 사이엔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천년 세월을 이겨낸 다리다. ‘농다리’의 ‘농’자는 해석이 분분하다. 물건을 넣어 지고 다니는 도구의 ‘농(篝)’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혹은 고려시대 임연 장군이 ‘용마(龍馬)’를 써서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에서 ‘용’자가 와전되어 ‘농’이 됐다고도 한다.
생김새 다른 돌이 어우러진 천년 세월
다리를 구성한 돌들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모두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사용했는데 깎거나 다듬지 않았다. 얼기설기 얹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강한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과학적 원리와 함께 철학적 뜻까지 담고 있다. ‘조선환여승람(朝鮮環與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자석배음양, 즉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을 이용해 고려 때 축조했다고 한다. 28개의 교각은 하늘의 기본 별자리인 28숙(宿)을 응용했고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만든 수월교(水越橋)형태로 만들어 오랜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듯 구불거리는 모양으로 생긴 다리는 빠른 물살에 견디기 위한 구조다.
또한 교각 역할을 하는 기둥들은 타원형으로 만들어져 물살을 피하고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어눌하게 생긴 돌다리가 천년을 이어온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농다리는 지난 1976년 충청북도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24간이 남아있던 것을 고증을 통해 최근 28간으로 복원했다.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구곡리에서 농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미호천변은 1982년 댐 확장으로 수몰되기 전까지 농다리를 통해 구곡리와 왕래하던 마을이 있던 곳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동냥을 온 도사에게 밥은커녕 소여물을 줘 보낸 후 큰 물난리가 났다는 것. 베풀지 않고 살았던 부잣집은 마을이 수몰된 지금도 저수지 바닥에서 금방아를 찧고 있다고 한다.
또 저수지와 구곡리를 잇는 길을 뚫었는데 이것이 용의 허리를 자른 격이라 비가 많이 오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까지도 마을 노인들을 통해 구전되는 얘기들은 대부분 물에 대한 얘기다. 농다리가 생겨난 이유도 고려시대 부친상을 당하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여인이 물을 건너지 못하자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것에서 비롯되니 물과 마을에 얽힌 이야기가 농다리와 함께 천년을 전해온 것이다.
천년을 지켜온 사람들
농다리가 있는 구곡리는 상산 임씨의 집성촌이다. 고려 때부터 이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지역을 가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천년을 이어온 다리라고 하지만 폭우가 내리거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일부 유실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농다리보존회, 농다리지킴이회, 구산동향우회 등 농다리 관련 단체가 복구에 앞장섰다. 최근까지 유실로 인해 24간만 남았던 다리가 고증을 통해 28간으로 복원된 것도 지역단체의 역할이 컸다.
또한 동양 최고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자치단체의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2000년부터 해마다 농다리 축제도 열린다. 농다리에 대해 알리기 위해 전시관도 만들었고 다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만들어졌다. 살아서 농사를 짓기 위해 건너고 죽어서는 꽃상여에 실려 건너는 사람과 공존하는 다리, 바로 진천 농다리다.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진천 IC에서 좌회전, 21번 국도를 타고 성석사거리에서 34번 국도로 좌회전한다. 지석마을 지나 우회전하면 농다리 입구가 나온다. 고속도로부터 표지판이 되어 있어 찾기 쉽다. 버스로는 진천읍내에서 문백방면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하루 9회 운행한다. 내비게이션으로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를 찾아가면 쉽게 갈 수 있다.
글이다일 | 자동차 전문기자디지털미디어를 전공하고 글과 영상, 사진을 아우르는 멀티미디어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등 다수의 기획연재에 참여했다. 네이버와 함께 '아름다운 한국'을 2년간 연재했으며 지금은 자동차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사진 이윤정 / 경향닷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選
제공경향신문
초평저수지 초롱길
진천군의 대표 저수지인 초평저수지는 충청북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 충주호와 함께 가장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천년의 숨결을 이어온 농다리에서 시작을 하여 초평저수지까지 오르면 된다. 이 초평저수지에는 진천군 청소년수련원에 이르는 수변에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길을 초롱길이라 부르며 왕복2.7km에 이르는 초롱길을 따라 걸으면 초평저수지의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 할 수도 있고 초평저수지 맞은편으로 이어지는 하늘다리를 볼 수 있다. 하늘다리는 초롱길과 진천군 청소련수련원사이를 잇는 출렁다리가 길이가 93m에 이른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두타산의 저녁노을에 종소리가 들리는 초평저수지
[ 頭陀山의 저녁노을에 종소리가 들리는 草坪貯水池 ]
개설진천군의 대표 저수지인 초평저수지(草坪貯水池)는 충청북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이며, 충주호와 함께 가장 이름이 알려진 낚시터이다. 초평면 동남쪽으로 5㎞ 떨어진 미호천(美湖川) 상류를 막은 영농 저수지로 진천군뿐만 아니라 청원군 6개면에 물을 공급한다.
충청북도 최대의 저수지초평저수지는 1942년 공사를 시작하여 1958년 한미 협조로 준공하였다. 몽리 면적[저수지 등에서 물이 닿는 면적]이 늘어나고 용수량이 부족해지자 1982년 종전의 댐보다 2㎞ 하류에 다시 댐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1986년 준공하였다.
저수량 1378만t으로, 진천군뿐만 아니라 청원군 6개면에 물을 대고 있다. 몽리 면적은 19,834,800㎡, 만수 때의 면적은 2,568,606.6㎡이며 저수지 둘레는 29㎞, 수로의 직선거리는 약 64㎞이다.
처음에는 인근 곡창 지대에 물을 공급하는 저수지로 기능하였다. 당시에는 주변 대부분이 농지였고, 갈수기 때의 피해가 매우 심하여 충청북도 최대의 저수지 조성 소식은 지역 사회에 큰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본래의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그 대신 한 해 동안 약 80,000명이 찾아올 정도로 진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일반적인 저수지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탁 트인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한 기분과 깊은 물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안정감, 함께 온 사람을 더욱 친숙하게 느끼게끔 하는 아늑한 분위기는 초평저수지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초평저수지는 충주호와 함께 충청북도 낚시터의 양대 산맥으로도 유명하다. 얼음낚시로 잘 알려져 있으며, 잉어·가물치·붕어·뱀장어 등이 많이 서식한다.
저수지는 전체적으로 굴곡이 심한 ‘ㄹ’자 형태를 이루고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에 둘러싸여 있어 산을 병풍 삼은 산속의 호수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저수지 안에는 수초 섬이나 크고 작은 섬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고, 수상 방갈로가 떠 있다. 저수지 주변에는 진천청소년수련원이 있다.
천 년 세월 견딘 농다리를 건너 물결 넘실거리는 초평저수지로 농다리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입구에 있는 돌다리로 마을의 앞을 흐르는 세금천(洗錦川)과 가리천이 합류하는 곳에 놓여 있다. 무려 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 온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여느 다리처럼 교각을 세우고 돌을 반듯하게 깎아 만든 것이 아니라 다듬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쌓아 투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 투박함으로 천 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과 홍수를 견디고 역사의 생생한 사료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낮고 투박하지만 천 년을 견뎌온 진천 농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옛날의 풍류가 느껴지는 정자가 서 있고,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이 나온다. 그 뒤로 이어진 산책로가 고즈넉하다. 산책로는 서낭당을 거쳐 초평저수지까지 길손을 안내한다.
이처럼 농다리가 놓인 세금천에서 5분 남짓 올라가면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큼지막한, 아니 끝이 가물가물한 호수를 만날 수 있으니 산책로에서 증폭된 농다리의 감흥이 초평저수지에서 넓게 퍼져 가는 느낌이다.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호수를 바라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무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낙조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다. 푸른 하늘을 닮은 물빛에 흰 구름이 두둥실, 바람이 일렁이는지 물결이 넘실거리는지 알 수 없는 초평저수지의 사계절은 이처럼 늘 풍성하다. 초평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진천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농다리여서 오래전에는 그곳에 주막도 하나 있었다고 한다.
두타산 종소리에 초평지 붕어가 한가로운데 초평저수지는 두타산(頭陀山)[598m]을 끼고 있다. 증평군과 진천군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하며, 달리 두대산이라고도 한다. 산자락에는 영수사(靈水寺)를 품고 있다. 918년(태조 1) 증통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절 뒤쪽에 영천(靈泉)이 있어 붙인 이름이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영수사에서 치는 종소리가 주변 풍광과 어우러진 정취를 ‘두타모종(頭陀暮鐘)’이라 하여 진천군 상산팔경(常山八景)의 하나로 꼽는다.
화산리 끝자락에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두타산 영수사의 종소리에 부끄러웠는지, 초평저수지 맑은 물에 얼굴을 살포시 비추어 볼 때 물속에서 한가로운 붕어 한 마리가 놀랐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알 수 없는 전설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한가로이 노니는 백로 한 마리가 해탈한 듯 저녁 물안개를 피어 올리는 초평저수지와 붉은 저녁노을 사이를 유영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백 년의 덕을 쌓은 사람임에 분명하리라.
붕어찜의 본향초평저수지 주변에는 붕어찜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붕어찜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스무 곳이 넘을 정도로 붕어찜 천국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보양식으로 언급될 정도로 붕어찜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보양식 가운데 하나이다.
인조, 영조, 효종 때 문헌에도 이 붕어찜에 대한 기록이 여러 번 나오고, 나중에는 민간에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 1881년(고종 18) 간행된 부녀자의 생활 지침을 위한 순 한글판 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붕어찜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귀가하는 낚시꾼들에게는 짜릿한 손맛의 여운이 되고, 두타산 등산객들에게는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힘찬 에너지를 충전하는 음식이라고도 할 것이다.
한편 붕어찜은 1980년대 중부고속도로 공사 중 고된 노동에 지친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초평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경위야 어쨌든 1980년대 이후 초평저수지 인근의 붕어찜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니,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잘 익은 붕어를 감싼 우거지와 대충 뚝뚝 떠 넣은 듯한 투박한 양념장의 맛이 밴 수제비의 맛이 서로 잘 어우러진 붕어찜은 그 자체로 정이 담뿍 느껴지는 음식이다.
붕어찜 외에도 메기찜과 각종 매운탕도 맛이 좋다. 특히 충청북도 영동이나 충청남도 금산, 금강 변의 음식점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소문이 난 도리뱅뱅이도 식탁에 올라온다. 도리뱅뱅이란 이름은 피라미나 빙어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돌려서 조리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조리법은 피라미나 빙어를 깨끗이 손질하여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올린 뒤 기름을 넉넉히 붓고 바싹 튀겨 기름을 따라낸다. 튀긴 물고기 위에 고추장, 물엿, 파, 마늘, 설탕, 참기름 등 갖은 양념을 섞어 살짝 졸이면 맛있는 도리뱅뱅이가 된다. 쟁반 위에 옮겨 담은 뒤 붉은 고추로 장식을 하여 멋을 부릴 수도 있다. 단백질과 칼슘이 많고 민물고기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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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02:00
오늘 성탄절 공휴일 오후에 잠시 다녀올곳을 생각하니 대청댐 쪽으로는 여러번 돌아서 별 흥미가 없고 새로운 곳을 생각하다 보니 좌구산 천문대, 아니면 현암사와 구룡산을 한바퀴돌까, 진천 만뢰산 보탑사를 다녀올까 생각하다 문득 진천 농다리가 생각난다.
오후 2시경 집을 출발하여 국도를 따라 오창 진천을 거쳐 농다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대략 50분이 걸린다.
진천 농다리 주차장 02:50~02:55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오면 농다리 주차장이 있다. 승용차 100대는 주차 할 수 있는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대형차는 굴다리전 농다리 전시관이 있는 곳에 주차를 하여야 한다. 주차장 한쪽에는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고, 몇 개의 포장마차가 영업을 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농다리로 향한다.
해발 약190봉 15:35
세금천 농다리 위쪽으로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일단 이곳으로 건너고 나올 때 아랬쪽에 있는 농다리를 건너기로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 인공폭포 아래를 지나 데크길을 따라 오르면 농암정 250m, 초롱길 300m, 하늘다리 1.3km가 적힌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고개로 오르면 “장수 및 말 발자국”이란 안내문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임장군이 이곳 세금천에 다리를 놓기 위해 큰 바위를 메고 말을 탄 채 용고개(살고개)를 내려오고 있었다. 농다리에 거의 도착할 무렵 힘센 말이 이곳을 지날 때 장군이 메고 있던 바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그 힘에 의해 디딘 바위가 움푹 들어가 말의 발자국이 생겼다고 하며, 말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임장군이 큰 바위를 든 채 말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 그 무게에 의해 장군 발자국이 생겨 났다고 한다. ”
믿거나 말거나 할 내용이다. 작은 도랑 바위에 새겨졌다고 하는데 난 보아도 잘 모르겠다. 여기서 오르면 좌측으로 농암정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큰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용고개(살고개)에 닿는다. 여기에도 안내문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성황당은 일명 서낭당이라고 하며, 토지와마을을 지켜 준다는 신인 성황(서낭)을 모신 곳을 의미한다. 보통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돌무더기나 나무 또는 장승 등으로 이루어 진다.
이곳 성황당은 용고개 일명 살고개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현재 저수지에 수몰된 화산리에 큰 부자마을이 있었는데, 한 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마을에서 거절하자, 스님이 괘씸히 여겨 마을 사람들에게 “앞산을 깎아 길을 내면 더 큰 부자마을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그대로 하니 그 곳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이후 마을은 망하여 없어졌다고 한다. 이 일대의 지형이 용 형상을 띠고 있는데 스님이 말한 이곳이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을 깎아 길을 내어 용이 죽었다고 하여 “살고개”라고도 불리운다. 이후 사람들이 마을의 수호와 액운퇴치, 소원성취, 무병장수 등을 기원하기 위하여 돌을 쌓고 나무에는 오색 헝겊을 걸어 놓았다. 또한 가을 수확 후 떡을 만들고 정화수를 함께 성황당에서 기원을 드렸고, 지나가는 길손들은 엽전을 올려놓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 이런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용고개를 넘어서면 양쪽으로 임도가 나 있고 아랬쪽으로는 초평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초평저수지변의 널찍한 데크가 만들어져 조망과 함께 잠시 쉬면서 즐기기 좋다.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초평호와 앞쪽으로 병풍을 두른 듯 솟아 있는 두타산이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하름답다. 초평저수지변으로는 초롱길이라하여 데크길이 설치되어 하늘다리까지 연결이 되어 저수지 반대편 진천청소년수련원까지 갈수 있다.
우리는 임도를 따라 가기로 한다. 좌측 농암정이 있는 능선으로 산길이 잘나 있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구비진 곳에서 저수지변 데크 길로 내려서는 곳이 한군데 있고, 여기서 좀 더 오르면 널찍한 쉼터에 나무조각을 펼쳐놓아 밟고 지나가니 감촉이 좋다. 이제 서서히 오르는 임도는 능선 길과 만난다. 여기에 이정표가 있다. 하늘다리, 농암정, 초평지의 세방향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이곳에서는 가장 높은 봉에 닿는다. 해발 약190m다.
하늘다리 건너 휴게소 15:55
해발 약 190봉에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가면 먹뱅이산을 거쳐 함박산 맹동 꽃동네를 거쳐 소속리산 까지 연결이 된다. 언제 이능선도 걸어 봐야 할 것 같다. 한남금북함박단맥이라 칭했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서기 시작한다. 다소 가파르기는 해도 길은 좋다. 계단이 잘 놓여 있고 로프도 잘 매여져 있어 내려가는 데는 좋지만 반대로 올라오는 분들은 몹시 힘들어 한다. 중간지점을 좀 더 내려가면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길게 이어지는 호수 양쪽으로 잎이 져서 누렇게 변한 나무들의 모습이 보이는 낮은 산줄기가 길게 이어졌다. 호수가 끝 좌측으로는 증평과 진천의 경계지역에 높이 솟아 있는 두타산이 초평저수지를 바라보고 서 있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다. 이곳에서 해맞이를 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전망대에서 바위 길을 돌아서 가고 가파르게 설치된 철 계단을 내려서면 우측으로 몇 미터 이동하여 진천청소년수련원이 있는 쪽으로 초평호를 건너는 하늘다리라 칭하는 출렁다리가 있다. 길이가 93m이르는 긴 다리다. 잠시 하늘다리를 건너 청소년수련원이 있는 곳의 휴게소로 건넌다. 다리는 크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작은 흔들림은 있다. 사진도 찍고 즐기면서 다리를 건너 휴게소 앞 널찍하게 만들어 놓은 데크에서 잠시 아름다운 초평저수지의 모습을 즐긴 후 저녁 식사 예약 시간 때문에 자리를 뜬다.
농다리 16:23 ~16:25
다시 하늘다리를 건너 초롱 길을 따라 농다리로 향한다. 저수지변으로 이어지는 초롱길 데크 길의 길이는 1.2km 정도가 되겠다. 오늘 성탄절 휴일로 날씨가 쌀쌀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데크 길이 양쪽으로 비켜서 갈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여 산책하는 데는 지장은 없다. 20여분이면 용고개 아래 호수변 널찍한 데크에 닿는다. 용고개를 넘고 정자를 들러 오늘의 가장 중요한 곳인 농다리를 건넌다. 지네가 살아 움직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다리를 건너며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잘 놓았구, 초롱길 까지 겸비한 곳으로 한번쯤 와 볼만한 곳이구나 싶다.
오늘 잠시 들러본 농다리 이렇게 훌륭할줄은 미쳐 몰랐다. 용고개를 넘어 초평저수지와 연계가 된 초롱길이 있는 줄도 몰랐다. 고속도로를 지나며 여러번 보아 왔던 내고장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이제 찾아본 것이 아쉽다. 언제 아침에 일찍와서 용고개에서 밤나무단지 - 진천청소년수련원 -190봉 -농산정으로 이르는 길을 돌아 봐야 겠다. 대략 8~10km는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모처럼 뜻하지 않게 좋은 곳 다녀왔다.
산책시간 : 1시간 30분 소요
산책거리 : 4.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