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7 홍성 용봉산~수암산 2015.12.13.일요일 맑음
홍성 용봉산~수암산~세심천
용봉산381m, 수암산275m
2015.12.13.일요일 맑음
참석인원 : 충북뫼벗
청주종합운동장 07:00 -죽천교 07:15 -남공주톨게이트 -공주휴게소 08:07 ~08:23 -용봉초등학교(해발 약30m) 09:24 ~09:26 -용도사 미륵불 09:38 -대피소 09:46 -투석봉(1.3km, 약350m) 10:03 ~10:07 -용봉산정상(1.6km, 381m) 10:15 ~10:29 -최영장군활터 삼거리 10:30 -최영장군활터(1.91km, 약330m) 10:35 -다시 삼거리(2.14km, 약375m) 10:41 -노적봉(345m) 10:50 -악귀봉(2.75km, 369m) 11:00 ~11:23(중식) -절고개(3.24km, 약262m) 11:37 -용바위전 우회길 -병풍바위(3.76km, 약275m) 11:50 -용바위 12:03 -전망대(4.14km, 약320m) 12:05 -아랫가루실고개(5.24km, 약180m) 12:27 -쉼터(5.52km, 약242m) 12:35 -쌍바위 12:40 -수암산(6.04km, 약275m) 12:48~13:00 -정자(6.92km, 약240m) 13:15 -오형제바위(7.10km, 약265m) 13:23 -풍차봉(7.50km, 약255m) 13:30 -수암산 정상석(7.64km, 약260m) 13:34 -돌탑 13:38 -덕산온천, 세심천 삼거리(우측으로, 7.91km, 약220m) 13:41 -세심천, 삽교석조보살 삼거리(8.16km, 약151m) 13:47 -삽교석조보살 입상(8.55km, 약85m) 13:53 -세심천(9.07km, 약30m) 14:00 ~14:57 -공주휴게소 15:47 ~16:00 -청주 용암동 식당 17:02 ~18:30 -집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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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 [龍鳳山] 381m
홍성에 위치한 용봉산은 높이는 낮지만 주변 전경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수석처 같다. 미륵불이 있는 미륵암을 지나 능선에 오르면 5형제바위, 공룡바위, 칼바위 등 즐비한 기암들이 조화를 이루고 바위군을 지나 20여분 내려가면 마애석불이 있는 용봉사가 있다. 가을철 단풍도 볼만하다.
용봉산은 바위산 답게 기암괴석이 기기묘묘한 형상을 빚어 여느 명산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홍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이 용봉산을 내세울 만큼 이 고장 사람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산이다.
용봉산을 낀 홍성 일대는 충절의 고향이라는 얘기답게 만해 한용운 선사, 백야 김좌진 장군, 최영 장군, 사육신의 한 분인 성삼문 등의 생가와 9백의총 등 위인들의 삶의 흔적과 백제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 등 역사유적지가 도처에 남아있다.
용봉산의 좌우 중턱에는 고려시대의 고찰 용봉사와 마애석불, 미륵석불이 있다. 옛 문헌에는 영봉사라고 기록되어 있는 용봉사는 지금은 대웅전과 요사체 등 2동밖에 남아있지 않다.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절 크기가 아흔아홉간에 불도를 닦는 승려수가 천여명에 이를 만큼 큰 절이었다고 한다.
용봉산은 산세가 수려해 등산길로도 그만이다.용봉초등학교 뒷편을 따라 올라 상하리 미륵불을 구경하고 크고작은 봉우리를 휘휘 돌아 정상에 오른 뒤 용봉사 쪽으로 내려오면 두 시간쯤 걸리는데 산 아래 펼쳐지는 경관이 일품이다.
인기명산 100 [38위]
수덕사를 품고 있는 용봉산은 산세는 수려하지만 산이 낮아 산행지라기보다 나들이 코스 같아 특정 계절에 치우치지 않고 사계절 두루 인기 있는 산이다.
용봉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유물로 볼 때 백제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용봉사에 1690년(숙종 16)에 조성한 괘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사찰이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괘불은 영산회상도로서 제작년도가 분명하고 기법도 뛰어나 보물 제1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사찰 서편의 조금 높은 곳에 있던 옛 절이 명당임을 안 평양조씨(平壤趙氏)가 절을 폐허화시키고 그 자리에 묘를 썼으며, 현존하는 사찰은 1906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18세기 후반 무렵 폐사되었으나 1980년 무렵에 중창되었고, 1982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1988년에는 축대를 완성하고, 그 뒤 극락전·산신각 등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옛터에는 보물 제355호로 지정된 마애석불 1위와 절 입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마애석불 1위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는 등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옛 절터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된 장방형 석조(石槽)와 절구, 거대한 맷돌이 있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8호로 지정된 부도 등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마애불 주위에는 백제 때의 기와조각이 산재해 있다. 이밖에도 이 절에서 가져갔다는 유물들이 홍성 읍내의 건양각(乾陽閣)과 홍성여자고등학교 정원에 있다. 건양각에는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좌불이 있는데, 일본인들이 옮겨온 것으로 상체에 걸친 법의의 주름이 특이하다. 처음 옮겨올 때 용문(龍紋)을 조각한 대석(臺石)이 있었으나 다리 공사를 할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 홍성여자고등학교 정원에는 3층 석탑 1기가 있는데, 옥개석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아담한 작품이다. 이들 유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이 절이 수덕사 못지않은 대찰이었다는 구전(口傳)을 믿을만하다. 이 절에서 용봉산을 넘으면 높이 7m의 미륵암 미륵불이 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옮김)
[충청신문= 대전] 안순택·이성엽 기자 = 이응노 화백 생가 ‘소향’이란 이름을 들으면 4옥타브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가창력의 가수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홍성 땅에 소향이란 이름의 규수가 있었단다.
아리따운 모습에 반한 백월산(일월산) 장수와 용봉산 장수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한판 승부를 벌였는데, 그게 투석전이었단다. 그런데 용봉산 장수가 먼저 지친 거라. 백월산 장수가 던진 돌을 막지 못해 무수한 돌들이 용봉산에 수북이 쌓였다는 거다.
기암괴석과 암릉으로 유명한 용봉산의 그 많은 돌들이 예쁜 규수를 차지하기 위한 산신들의 투석전 때문이라는 홍성 사람들의 넉살에 웃음보가 터진다. 그래서 소향 아가씨는 어떻게 됐느냐고? 일월산과 소향리는 행정구역이 같다.
어떤 이들은 암릉을 용의 등줄기로 보았다. 어떤 이들은 늘어선 기암괴석을 봉황의 벼슬로 보았다. 운무 사이를 휘도는 용의 등줄기에 달빛을 감아올리는 봉황의 머리를 얹었다 해서 용봉산(龍鳳山)이다.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라’는 산이다.
직접 올라봐야 왜 ‘호서의 금강산’,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옹골찬 암릉길이면서도 위험하지 않아 아이들을 데려가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대전에서 출발해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타고 당진 쪽으로 가다가 고덕나들목에서 나와 고덕IC 교차로에서 오른쪽 덕산 고덕 방면으로 간다. 622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하고 덕산초등학교 가기 전 삼거리에서 홍성 쪽으로 틀어 봉신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 용봉초등학교로 들어간다.
용봉산 산행은 대개 용봉산자연휴양림이나 용봉초등학교에서 시작한다. 용봉초등학교-용도사(석불사)-투석봉-최고봉(정상)-노적봉-악귀봉-용바위-병풍바위-용봉사로 이어지는 코스다. 대략 3.4㎞에 3시간쯤 걸린다. 용봉초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용봉산자연휴양림 매표소가 나온다.
휴양림과 거리가 있지만 표를 끊어야 한다.
용도사는 역사가 깊은 사찰이 아니다. 절집보다는 그 옆에 있는 상하리 미륵불을 만나야 한다. 높이가 7.7m, 어깨 폭이 4m에 달하는 이 미륵불은 넓은 어깨와 크고 각진 얼굴이 씩씩하고 후덕하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87호. 절집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투석전 전설이 배어있는 투석봉을 지나면 걷기 좋은 소나무 숲길이다. 용봉산은 소나무가 많다. 때문에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드는 멋은 없지만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마치 커다란 분재 속을 걷는 듯한 풍광을 사계절 볼 수 있다. 정상인 최고봉에는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동쪽으로 내포신도시의 모습이 오롯하다.
최고봉에서 노적봉-악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용봉산 절경 중에서도 으뜸이다. 발밑 영불계곡에선 눈 코 귀가 선명한 사자바위가 뚜렷하고 지척에선 볏가리를 쌓아 놓은 듯한 노적봉이 산객의 마음을 넉넉하게 감싸준다. “허어 참! 바위 좋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기암들은 각기 동물과 사물의 모습을 하고 용바위, 물개바위, 삽살바위, 두꺼비 바위 등의 이름을 얻어 자태를 뽐낸다. 행운바위는 그릇처럼 생긴 바위 위에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뜻이겠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고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는 용봉산의 명물이다.
암벽등반을 해야 할 정도로 험난한데 위험하다 싶은 길엔 나무 계단과 난간이 설치돼 초보 산행객도 걱정은 접어두시라. 악귀봉에서 나무계단을 내려가 작은 다리를 건너면 용바위다. 능선을 따라 곧장 걸으면 병풍바위에 닿는다. 병풍바위는 악귀봉이나 노적봉에서 봐야 제 모습이 보인다.
용바위에서 전망대로 오른다. 오서산이며 가야산, 덕숭산의 줄기, 내포신도시가 한눈에 들고 운이 좋으면 천수만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처 수암산으로 올라 종주를 할 수도 있다. 종주길은 신리 세심천온천호텔로 이어진다. 종주를 끝내고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
용봉사에는 두 개의 나라 보물이 있다. 하나는 지장전에 보관돼 있는 괘불탱화(보물 제1262호)이고 다른 하나는 용봉사 뒤에 있는 마애관세음보살상(보물 제355호)이다. 영산회괘불탱화는 조선 숙종 때 조성됐다고 한다. 왕자가 일찍 죽자 숙종 16년(1690년) 승려화가 진각이 그렸고, 영조 1년(1725년)에 그림을 고쳐 그렸다고 한다. 숙종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들은 연령군이다.
연령군을 각별하게 챙겼던 영조가 영험하게 잘 그려진 괘불탱화를 동생의 명복을 비는 의식에 걸도록 했고, 연령군의 묘가 덕산으로 이장되면서 용봉사에 걸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괘불탱화는 초파일 때만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마애관세음보살상은 앞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그 앞에 서면 부처님과 눈을 맞출 수 있다. 왜 기울여 조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왼팔을 가슴 위로 올려 저 산 아래, 우리 인간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이신다. 시무외인(施無畏人). “두려워 말라. 우환과 고난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용봉사 하나 달랑 남아있지만 충남도 조사를 보면 용봉산엔 절터가 무려 27곳이나 된단다. 신라 경주에 석불들이 즐비한 남산이 있다면 내포 땅에는 용봉산이 수많은 사찰로 불국토를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미륵불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텐데, 무엇보다 미륵불을 세우고 두 손을 모으고 미래 세상에서 올 구원을 기다렸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터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젠가 미륵이 내려와 구원해 주기를 빌고 또 빌었던 거다. 그래서 용봉산 산행은 희망을 다시 일으키는 여행길이 된다. 새해 새 마음으로 새 뜻을 세우는 여행길로 이만한 곳도 없다 싶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 한다.
- 주변, 함께하면 좋다
홍북면 중계리=마을에서 동떨어져 산 아래 홀로 있다. 안채 헛간채로 지은 초가다. 이응노는 한지와 수묵이라는 동양화의 도구로‘서예적 추상’이란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마당에 서면 용봉산의 기기묘묘한 암봉이 펼쳐진다. 수려한 용봉산이 소년 이응노를 심오한 미의식의 세계로 이끈 건 아닐까.
홍주성=홍성읍에 들어서면 나그네를 맞아주는 조양문이 홍주성의 동문이다. 홍주성은 1906년 을사늑약에 일어선 의병들이 성 안의 일본군을 6문의 화포로 공격해 퇴각시킨 곳이다.
‘성 밑에 오두막에/ 푹 엎어져 살던 이들/ 돌 하나 쌓으면 피붙이 흩어지고/ 돌 하나 쌓으면 땅 흔들리던…’(신대철‘홍주성’) 백성들의 피맺힌 흔적을 읽게 한다. 순국한 의병들은 의사총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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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종합운동장 07:00
오늘은 충북뫼벗에서 홍성에 있는 용봉산을 가는 날이다. 어제는 날이 화창하니 좋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잔뜩 찌푸렸다. 하루돌이로 날씨가 좋지를 않다. 오랜 가뭄으로 식수가 부족하다고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날씨가 나빠서 울상이다. 올 늦은 가을부터 초겨울인 지금까지 날씨가 좋지를 않아 시골에서는 콩, 배추등 추수도 다 못하고 곡식을 말리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오늘은 예보에 날씨가 좋다고 나왔으니 저번같이 비는 오지 않겠지 싶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07시 05분집을 나선다.
용봉초등학교(해발 약30m) 09:24 ~09:26
청주종합운동장을 7시 출발한 버스를 죽천교에서 7시 15분 승차하여 출발한다. 오늘 산행인원이 좀 적어서 30명이 안될 것 같다. 어쨌든 정해진 산행이니 오늘의 산행지인 홍성 도청이 들어서며 내포신도시로 바뀐 곳의 용봉산으로 향한다. 세종시를 지나 서세종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고속도로에 진입을 한 후 몇 분을 달리면 공주휴게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 후 다시 달리기 시작하여 50분여분후 예산, 수덕사톨게이트가 나온다. 이곳에서 빠져나와 우측으로 가면 홍성방향으로 내포신도시가 들어서며 개설된 새 도로를 따라가면 10여분이면 내포신도시 교육청, 도청 앞을 지나 용봉산아래 주차장에 닿는다. 오늘 목적지가 용봉초등학교라 우리를 내려놓고 가버린 버스를 다시 불러 용봉초등학교로 향하니 거리가 약 2km로 대략 5분이 소요된다. 용봉초등학교 앞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여러대의 버스들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으며 산행준비를 하고 있는 여러 산악회의 등산객들이 모여 있다.
용봉산정상(1.6km, 381m) 10:15 ~10:29
용봉초등학교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미륵봉 용도사 0.5km, 최고봉 1.2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옆쪽으로 매표소가 보인다. 입장료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1000원이다. 마을의 가장 위에 자리 잡은 민가를 지나고 세멘트임도를 따라 거의 직진으로 오르면 10여분 후 “미륵대불 석불사”라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용봉초등학교 0.6km, 최고봉 0.7km, 산림휴양타운 1.2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조금가면 미륵불이 있다. 이정표에는 용도사로 표시가 되어 있으나 석불사로 절 이름이 바뀐듯하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조계종 석불사 미륵대불은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3대 미륵대불에 속한다고 적혀 있다. 전체적으로 남성미가 돋보이는 풍만하고 후덕한 상호를 지녔으며, 옷자락에 섬세한 세로무늬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뒤편의 자연석 모암은 광배를 대신하고 있어 예술성을 더하고 있다. 석불사의 신비한 자연경관은 불교뿐만 아니라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고, 풍수지리에서는 천, 지, 인의 기운이 응결된 최고의 명당으로서 홍성지역에서 임금의 위치에 해당하는 용봉산의 용이 여의주를 토해낸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옆쪽의 창건설화에는
“옛날 천축에서 오신 한 스님이 불사를 이루기 위해 이곳 ‘너럭바위’에서 1000일 기도를 올리던 중 어느 날부터 호랑이가 나타나 시중을 들었다.
기도가 끝나가도록 불사에 아무런 진척이 없었으나 마지막 날 새벽 천둥과 벼락이 치더니 밝은 빛과 함께 산 정상에 미륵불이 출현하셨고, ‘너럭바위’ 앞의 큰바위(삼신바위)가 쩍 갈라지면서 똑 같은 형상을 지닌 부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때 호랑이도 마당에 엎드려 죽었는데 그 자리에서 바위가 솟아났다. 사람들은 미륵불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호랑이의 정성이 바위가 되었다며 ‘범바위’라 불렀다.
그리고 불사를 마친 스님은 산 속 토굴로 들어가 살았는데, 어느 날 금빛 구름을 타고 천축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렇게 적혀 있다.
미륵불을 뒤로 하고 이제 부터는 본격으로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점점 올라 바위 슬랩지대에 닿으면 멀리 백월산이 보이고 홍등산과의 사이에 구릉지대가 보인다. 점점 올라가면 사각으로 지은 정자가 나온다. 지도에는 대피소라 적혀 있다. 이곳을 지나고 바위지대를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하면 돌탑이 있고 좀 더 가면 내포신도시가 내려다보이는 투석봉에 닿는다. 투석봉 이정표에는 용봉초등학교 1.12km, 최고봉 0.23km가 적혀 있다. 앞쪽으로 최영장군 활터가 있는 정자부근의 바위봉들이 보이며 조망이 좋다.
투석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용봉산 너머 저 멀리 일월산(백월산)이 있고, 그 사이에 소향이란 미모의 아가씨가 있었는데(현재 마을 이름도 소향리이다) 소향을 두고 용봉산 장군과 일월산 장군이 서로 사모하여 소향을 쟁취하기 위하여 돌을 던지면서 싸움이 붙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용봉산 장군이 먼저 지쳐 결국 싸움은 일월산 장군이 이겨 소향은 일월산 장군과 연을 맺었으며, 현재 소향리와 일월산은 같은 행정구역이다. 두 장군이 투석을 하며 싸운 것을 빗대어 투석봉이 생겼으며, 일월산 장군이 던진 돌들이 용봉산에 수북하게 쌓여 기암괴석이 되었다고 한다.
최영장군 활터(1.91km, 약330m) 10:35
투석봉에서 능선을 따라 가면 8분후 작은 바위로 된 암릉을 지나고 바위병풍을 두른듯 한 수석 전시장 같은 악귀봉이 정면으로 보인다. 이후 커다란 선돌을 지나고 나면 최고봉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온다. 투석봉 0.22km, 노적봉 0.23km가 적혀 있다. 이정표 앞쪽으로는 여러 개의 바위들로 이루어진 용봉산의 최고봉인 정상이다. 바위봉 위에 커다란 자연석으로 된 정상석이 서 있다. 용봉산에서 잠시 기다려 뒤에 오는 팀들과 합류하여 사진도 찍고는 다시 출발하여 조금 진행하면 최영장군활터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거리가 0.2km로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활터로 가는 길에는 여러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바위봉이 몇 개 있으며 산 아래로 내포신도시가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최영장군 활터가 있는 바위에는 미사일처럼 뾰족한 바위가 좌측으로 있고 이봉은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바위로 정자가 있으나 출입을 막고 있다. 여기 이정표에 정상 0.3km, 휴양림관리사무소 0.6km가 적혀 있다.
“최영장군 활터에는 최영장군이 소년시절 애마와 내기를 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최영장군이 쏜 화살과 애마 중 누가 더 빠른지 시합을 해 말이 빨리 가면 큰 상을 내리고, 질 경우 말의 목을 치겠다고 했다. 애마는 자신 있게 끄떡였고, 최영 장군은 홍성읍 은행정 방향으로 화살을 쏘고 말을 내달렸다. 그러나 최영장군이 목적지에 도착을 하니 그곳에는 화살이 없었고, 최영장군은 내기에 진 사랑하는 애마의 목을 치고 나니 곧 화살이 피융하며 지나갔다고 한다. 이에 최영장군은 자신의 경거망동을 후회하며 애마를 그 자리에 묻어 주었는데 이것이 지금도 전해지는 금마총이라 한다.”
악귀봉(2.75km, 369m) 11:00 ~11:23(중식)
최영장군활터에서 다시 삼거리로 돌아가며 미사일처럼 생긴 바위, 우측에 보이는 바위봉에 앉아 있는 까마귀, 악귀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악귀봉에 모인 사람 등을 바라보며 삼거리로 돌아와 살며시 내려서고 좀 더 가면 암릉지대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평탄한 지역으로 내려선 후 잠시 완만한 능선을 지나면 다시 바위봉으로 오르게 된다. 여기 바위봉에 거의 다 오르면 겨울임도 불구하고 아이스케키 장사가 있다. 여기 이 바위봉이 노적봉으로 간혹 높다란 바위봉에 오른 분들도 있으나 곧 내려서게 되면 나무테크길옆 커다란 바위 옆으로 자란 작은 소나무가 한그루 눈에 띈다. 오랜세월(100년은 되었다고 함) 이 바위와 함께 살아온 작은 소나무는 수령이 꽤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위를 돌아가는 테크 길을 따라 가면 아래쪽으로 높다랗게 솟아 있는 행운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는 계단이 폭이 좁아 올라오는 사람을 기다려 끊긴 후 다시 내려서고를 반복하여하는 곳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곳이다. 잠시 기다려 행운의 바위로 내려서고 안부를 지나 다시 바위봉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노루목 500m, 야영장 1.1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 잠시 후 악귀봉이라 적혀 있는 이정표에 닿는다. 악귀봉 이정표에는 노적봉 0.23km, 임간휴게소 0.8km가 적혀 있으며 좌측으로 모래고개로 가는 방향 쪽으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먼저 올라온 우리 일행과 만나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우리는 잠시 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한다. 전망대에 도착을 하니 여기서 보는 용봉산의 모습이 아름답다. 좌측으로 홍등산에서 덕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덕숭산 뒤편으로 안테나 여러개 있는 봉이 가야산으로 이곳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전망대 바로 앞에 있는 악귀봉 바위능선 끝으로는 머리를 하늘로 향한 두꺼비 한마리가 매달려 있고, 자라모습을 한 바위, 두 손을 모아 하늘에 비는 형상의 바위등 각가지 형태의 바위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모습들을 잠시 구경하고 다시 일행들이 있는 악귀봉 큰 바위 아래에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한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병풍바위(3.76km, 약275m) 11:50
악귀봉에서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면 첫머리에 물개바위가 나온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바위로 조금은 물개를 닮았다고 할까? 물개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이 바위를 지나서 내려서면 길이가 짧막한 구름다리가 나온다. 구름다리를 건너 다음 바위봉에는 삽살개바위라고 하는 한쪽 면이 뾰족하게 하늘로 솟은 바위인데 어떻게 봐야 삽살개로 보일까 한동안 바라보았지만 해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각가지 모양을 하고 있는 용봉산의 바위들은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이 바위봉도 커다란 바위들의 집합체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간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 여기서 내려서면 정자가 나온다. 정자를 지나고 좁다란 바위 틈새로 난 철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또 하나의 정자가 있고, 4분여 내려서면 현 위치 임간휴게소라고 하는 안부고개에 닿는다. 좌측으로 윗가루실 1.1km, 악귀봉 500m가 적혀 있으며 우측으로 마애석불 0.2km, 용봉사 0.4km, 정면으로 용바위가 이정표에 적혀 있다. 이 고개를 절고개라 하며 여기에는 평상이 있어 잠시 쉬어 갈수 있다. 이 고개에서 다시 올라서기 시작하면 앞쪽으로 높다란 바위가 가까이보이는 바로 아래지점에서 우측으로 병풍바위로 가는 샛길이 있다. 앞쪽의 용바위를 오르기 바로 전이다. 샛길을 따라 가면 용바위에서 병풍바위로 가는 길과 만난다. 여기 이정표에 병풍바위 220m, 전망대 200m, 내포신도시 850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가면 커다란 바위들을 지나고 우뚝 솟은 커다란 바위들을 지나 곧 병풍바위에 닿는다. 병풍바위에는 의자바위, 뚝 튀어나온 꼭지 같은 바위등 바위들로 이루어진 곳으로 이 바위아래쪽으로 용봉사가 있으며 용봉사를 두고 병풍을 친 듯한 바위가 펼쳐지고 있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용봉사는 고려시대에 1000여 명의 승려들이 거주했을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백제 고찰 용봉사의 원래 위치는 서쪽으로 조금 더 높은 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 터가 명당이라 하여 풍양 조씨 일가가 묘를 쓰겠다고 절을 폐사해 버렸고 지금 건물은 1906년 새로 지은 것이다. 하지만 조선 숙종 16년인 1690년 그려진 보물 1262호 '영산회괘불탱화'를 소장하고 있다. 이 탱화는 초파일날 하루 일반에게 공개가 된다. 절 뒤편에는 보물 355호로 지정된 마애석불이 있어 용봉산과 함께 꼭 둘러볼 곳이다.
아랫가루실고개(5.24km, 약180m) 12:27
병풍바위에서 돌아오며 몇 개의 바위봉에 올라 사진을 찍고는 돌아오면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나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용바위가 좌측으로 있다. 커다란 바위로 아래쪽에서 보았을 때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과 닮은 듯 하나 위쪽에서 보면 그냥 커다란 바위다. 여기 이정표에 병풍바위 0.3km, 가루실고개 1.26km가 적혀 있다. 용바위에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 이정표에 덕산온천지구 3.5km, 돌탑 3.2km, 석조보살입상 3.2km, 가루실고개 1.2km가 적혀 있다. 여기 전망대에서는 수암산 쪽으로 조망이 트여 있으며 조금 전 다녀온 병풍바위가 가까이 보이고 산 아래로는 내포 신도시가 손금을 보듯이 속속들이 보인다. 산 아래 커다란 건물은 도청 건물이며 교육청 경찰청등 공공건물이 모여 있고 우측으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아직은 미완의 도시로 오랜 기간이 지나야 도시다운 모습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10분후 이정표가 나온다. 팔각정 0.3km, 가루실고개 0.6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다시 12분후 용봉산 3.5km, 수암산 1.0km, 우측으로 신리, 좌측으로 덕산면 둔리가 적혀 있다. 이곳이 아랫가루실고개로 수암산 오르는 곳으로 장승이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고 현 위치가 표시된 등산안내도가 있다.
수암산(6.04km, 약275m) 12:48~13:00
아랫가루실고개의 장승을 통과하여 널찍한 길을 따라 오르면 나무계단길이 나온다. 길이가 조금 길다. 이 계단을 오르면 우측으로 쉼터가 나온다. 몇몇 아짐내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이 방향으로 들어서며 부터는 등산객수가 확 줄어들어 한가하니 좋다. 앞쪽으로 높다란 바위봉이 보인다. 저 높다란 바위봉이 이곳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수암산 정상으로 생각이 들지만 용봉산에 설치된 현 위치가 표시된 지도에는 저 봉을 지나서 한참을 가야 한다. 고도도 상당히 틀리게 적혀 있다. 능선을 따라가면 좌측 옆으로 높다란 바위가 하나 보인다. 이름하여 쌍바위다. 커다란 바위 위에 두 개의 공기돌 처럼 생긴 바위가 올려져있다. 수암산 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쌍바위로 가는 길이 있다. 잠시 쌍바위에 들렀다 나온다. 쌍바위는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는 오면서 보던 모습이 더 좋다. 능선을 따라 수암산 방향으로 향하면 팔각정 정자가 있고 여기서 5분여를 더 가면 커다란 바위봉이다. 트랭글은 이곳을 수암산이라 알려준다. 수암산이든 아니든 간에 이곳에서는 이곳이 가장 높은 곳임엔 틀림없다. 바위봉에 올라서면 조망이 매우 좋다. 용봉산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백월산 홍등산 덕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가야산의 송신탑, 덕산읍의 모습등 주변의 모든 것들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는 전망대로 바위봉 위쪽의 모습도 각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조금 위험하긴 해도 올라가볼만 하다.
수암산 정상석(7.64km, 약265m) 13:34
실제 이쪽에서 가장 높은 봉인 바위봉에서 내려서면 평탄한길을 지나 네이버 지도나 산경표에 표시된 수암산 정상인 260봉이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이곳을 지나고 쉼터를 지나고 해골바위를 지나면 팔각정이 나온다. 이후 4~5분을 가면 5형제바위가 나온다. 이정표에서 조금 우측으로 올라야 한다. 오형제바위에 오르면 높이가 똑 같은 바위 5개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기이하다. 여기에는 전설이 있다.
“시대는 알 수 없지만 옛날부터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오형제가 행복하게 살고 있던 집에 아버지가 조정에서 바른 말을 하다가 역적으로 누명을 씌워 그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죽게 되고, 그 원수를 갚겠다고 어머니는 한양으로 떠난 후 살길이 막막한 오형제가 10년 후를 기약하며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장남은 자기 집이 내려다보이는 수암산에 초막을 짓고 어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중 아버지를 역적으로 누명 씌워 죽인 원수의 첩이 되어 어머니가 돌아왔다. 장남은 흩어진지 8년 만에 형제들에게 연락을 하여, 오형제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죽이고, 관헌의 눈을 피해 장남의 초막으로 피했으나 이미 관헌들이 포박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 오형제는 동시에 스스로 자결을 하였으며, 관헌들이 발길을 돌리는 순간 억수 같은 비를 만나 엎드려 있다가 주위가 조용해져 고개를 들어보니 초막과 오형제의 주검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그곳에 오형제를 닮은 다섯 개의 바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원한을 갚아 드리고 죽은 다섯 아들의 넋이 바위가 되었다하여, 사람들은 오형제바위라 불렀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오형제가 바위가 되는 순간 구렁이로 변해, 바위가 보이는 강 뚝 아래에서 천하게 살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다고 한다.” 이런 애틋한 전설이 안내도에 적혀 있다.
오형제 바위를 지나 5분을 더 가면 현재 풍차를 세우고 있는 쉼터봉에 닿는다. 여기 안내도에서는 이곳을 수암산 정상으로 표기 하였다. 이곳을 지나면 4분후 수암산 정상석이 있는 정자가 있는 봉에 닿는다. 이곳에 놓여 있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고도가 280m로 실제고도와는 현저히 틀리게 적혀 있는 정상석이다. 삽교읍 행정협의회에서 세운 것으로 보아 삽교 쪽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봉인 이곳을 택해 세운 것 같다.
세심천(9.07km, 약30m) 14:00 ~14:57
이제 목적지인 세심천으로 하산을 하면 끝이다. 정상석이 있는 정자가 있는 봉에서 조금 가면 법륜사 0.40km, 수암산 정상 0.1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하산으로 하면 법륜사다. 여기서 2분을 더 가면 등산로 양쪽으로 2기의 돌탑이 서있다. 돌탑을 지나고 3분후 덕산온천과 세심천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현 위치 표시가 된 등산안내도가 있으며 거리가 적혀 있지 않은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세심천은 우측방향으로 내려선다. 의자가 여러 개 설치된 쉼터를 지나면 가파르게 내려서는 곳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내려서고 세심천과 삽교석조보살입상이 갈리는 곳에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는 어느 길로 가던 세심천으로 하산을 하게 된다. 잠시 삽교 석조보살입상을 둘러 보기위해 능선을 따라 직진을 하니 등산로는 우측으로 빙 돌아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내려온 길과 거의 만나는 지점에 삽교석조보살입상이 서있다. 고려시대의 유물로 2개의 돌을 조립하여 만든 큰 불상으로 목이 부러진 것을 세멘트로 접착을 하여 삽교에서 이곳으로 옮겨 세운것이라 한다. 이곳에서 다시 본 등산로로 나와 조금 내려서면 세심천 온천앞 주차장이다.
오늘 산행은 천천히 구경하며 여유 있게 하였다. 모처럼 뫼벗 산우님들과 함께 한 산행 즐거 웠고, 산행이 끝나고 청주로 돌아와 년말 총회겸 진행한 뒤풀이 오리백숙도 맛있었다.
함께한 뫼벗 산우님들 내년에도 많이 참석하시어 발전하는 뫼벗산악회가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산행시간 : 4시간 34분 소요
산행거리 : 9.0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