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6 삼일공원~우암산~상당산~것대산~낙가산 2015.12.11.금요일 비온후 갬
일공원~우암산~상당산~것대산~낙가산~양궁장
우암산353m, 상당산491.5m, 것대산484m, 낙가산483m
2015.12.11.금요일 비온후 갬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집 11:40 -상당공원 11:58 -삼일공원(0.90km, 약93m) 12.08~12:12 -송신탑(1.80km, 약276m) 12:32 -우암산 정상(2.3km, 353m) 12:46~12:49 -생태통로(3.3km, 약195m) 13:04 -망산(5.1km, 348m) 13:36 -산성도착(5.9km, 약394m) 13:48 -서문(6.3km, 약438m) 13:57 -상당산(7.25km, 491.5m) 14:16~14:19 -성내 상당집 점심식사(8.0km,약370m) 14:30 ~15:25 -남암문(8.9km, 약425m) 15:40 -출렁다리(9.7km, 약385m) 15:52 - 봉화대(10.9km, 약460m) 16:12 -것대산(11.1km, 484m) 16:16~16:19 -낙가산(12.2km, 483m) 16:37 ~16:40 -보살사 갈림길(13.3km, 약310m) 16:54 -김수녕 양궁장(14.0km, 약180m) 17:06 -17:10 -시내버스 동부종점(15.13km, 약110m) 17:22 ~17:30 -502번 승차 -복대동 집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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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산 353m
* 청주의 진산, 우암산 *
높이 353m이다. 청주시의 진산으로 장암산·대모산·무암산·와우산·당이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와우산이라는 별칭처럼 산세가 소가 누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청주시 명암동·내덕동·우암동·수동·대성동·문화동·용암동에 걸쳐 있다.
우암산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온 한남금북정맥 산줄기에 속한다. 청주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 줄기가 선도산-것대산-상당산-구녀산인데 그 중 상당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353.2m의 산이 바로 우암산이다. 우암산은 예로부터 와우산(臥牛山), 대모산(大母山), 모암산(母岩山), 장암산(壯岩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오는 청주의 진산이다. 침엽수림과 낙엽수림이 섞인 숲이 우거지고, 약수터와 순환도로·등산로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산기슭에는 표충사(表忠寺)·용화사(龍華寺) 등의 사찰이 많고, 정상 부근에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와우산성(臥牛山城)이 있다. 와우산성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1.587km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내성 2km, 외성 1,800km로 총 3.8km에 이른다. 지금은 성 주변으로 민가와 농경지가 늘어나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 우암산 장군의 혈에 대하여 *
선조 때 토정 이지함이 청주 서쪽의 부모산에 올라 우암산의 지세를 살피다가 황소기질 같은 강인한 기운이 솟는 명당혈을 발견했다. 우암산이 전체적으로 소가 앉은 형상이라면 그 혈은 배부분에 해당된다.
토정은 제자 박춘무와 함께 그 곳을 확인한 뒤 '이 곳은 장군에게 적합한 곳이니 범하지 말라'는 푯말을 세우고 떠났다.
그 뒤 진천의 조풍수란 사람이 이곳에 이르러 푯말을 뽑아 버리고 조상의 묘를 이전하려하자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황소 우는 소리가 나고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더니 가묘는 검은 바위로 변했고, 조풍수의 눈도 멀어 버렸다.
(백과사전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옮김)
▶우암산 (牛岩山) 일명 와우산(臥牛山)은 예부터 청주의 진산이었으며 와우산이라는 별칭처럼 소가 누운 형상으로 그 지맥이 탑동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해발 339m의 정상을 중심으로 남과 북3좌의 연봉과 중앙초등학교 동쪽의 당산을 포함하는 큰 산이다. 산자락에 많은 약수터와 운동시설 등이 있고 정상에서 조망되는 청주시 전체의 모습이 아름다우며 드라이브 코스로 적당한 우암산 순회도로를 갖고 있다.
옛부터 불적의 보고로써 불교가 가장 번성했을 당시에는 80여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는 약 20여개의 사찰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산자락에 많은 약수터와 운동시설 등이 있고 정상에서 조망되는 청주시 전체의 모습이 아름다우며 드라이브 코스로 적당한 우암산 순회도로를 갖고 있는 등 시민의 등산지 및 기타 여가활동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산의 초입에 자리잡은 3.1공원에는 3.1 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이 지방 출신인 손병희, 신석구, 권병덕, 권동진, 신홍식, 정춘수 등 6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1996년 2월 8일 2.8 독립선언 77돌에 맞춰 충북 사회민주단체 연대회의 측은 민족정기를 세우기 위한 목적의 일환으로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친일 활동을 한 정춘수의 동상을 철거하는데 성공하여 현재는 5인의 동상만이 모셔져 있다.
우암산 북쪽 산자락에는 국립청주박물관이, 동쪽에는 명암저수지가, 서쪽에는 청주대학교가, 남쪽에는 광덕사와 백운사가 자리잡고 있다
▷'토정비결'을 지은 토정 이지함선생이 보은으로 가는 길에 이 산에서 흡사 황소 기질 같은 산세를 발견한 후 단숨에 달려가 혈장을 찾아내고는 그 곳에다 '차혈장군적합지포범인물야금묘'(이 묘자리는 장수에게 적합한 자리이니 보통 사람은 건드리지 마라는 의미) 라는 푯말을 세웠는데,
하루는 상산에 사는 조풍수란 사람이 산을 타다가 이 혈자리를 발견하고는 명당 중의 명당 자리를 얻은 것이 너무도 기뻐 푯말을 뽑아버리고 급한대로 그 곳에 가묘를 썼고, 그리하여 흡족해하며 산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리면서 안개가 시야를 가리며 황소 울음소리가 들려오길래 뒤를 돌아보니 싯누런 황금 불을 켠 우두 장군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방금 전에 자신이 쓴 가묘 속으로 가라앉고 있어 놀란 조풍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곳으로 가보니 가묘는 검게 불에 타 돌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상당산
[명칭유래]
상당산(上黨山)[419m]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자연환경]
상당산(上黨山)[419m] 서쪽과 남쪽은 급사면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무심천(無心川)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반면 동쪽은 완만한 지형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의 물은 미원천을 거쳐 남한강에 합수된다. 산성 안에 있는 성내방죽은 바로 상당산(上黨山)[419m] 동쪽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물이 저수된 것이다.
[위치와 교통]
상당구 명암로를 따라 산성고개를 넘어 가는 방법과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에서 찾아가는 방법이 있다. 등산로는 우암산(牛岩山)[338m]과 명암약수터에서 올라가는 방법, 청주어린이 회관에서 올라가는 방법 등이 있으며, 청주 도심에서 7.5㎞ 동쪽에 위치한다.
[현황]
상당산(上黨山)[419m]은 해발 491m로 청주의 동쪽 고봉으로, 전적지로 유서 깊은 청주 상당산성이 있다.
산성은 둘레가 4.2㎞, 면적이 991.735537m²나 되는 자연의 굴곡을 그대로 이용하여 성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것대산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청원군 낭성면에 걸쳐 있는 산.
[명칭유래]
‘것대산(484.0m)’은 옛 문헌에 ‘거차대산(居次大山)’ 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 등으로 차자되어 나온다. 즉,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되어 불린 것이다. ‘거질대산’은 ‘거질대(居叱大)’의 ‘질(叱)’이 차자표기에서 ‘ㅅ’의 표기인 줄을 모르고 음으로 읽은 지명이다.
[형성]
것대봉수는 조선시대의 전국적인 봉수망 가운데 하나로 경상남도 남해의 금산봉수(錦山烽燧)에서 출발하여 서울의 남산에 이르는 중간 경유지이다. 남쪽으로는 문의(文義) 소이산(所伊山)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所乙山) 봉수에 연결된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에는 거차대(居次大) 봉수라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지에는 거질대산(巨叱大山) 봉수라 표기되어 있다.
[위치와 교통]
상당구 용정동에 위치하는 선도산(仙到山)[547.2m] 자락의 산으로 청원군 낭성면 지산리 사이에 있는 높은 산봉우리이다.
[현황]
것대산(484.0m)에는 조선시대에 봉수가 있었던 곳으로 주변에서 높은 산봉우리로 알려져 있다. 이 봉수지는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둘레에는 방호벽(防護壁)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봉돈(烽墩)시설은 현재 개인 묘 1기가 봉수대지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어 확인할 수 없다. 식생은 주로 소나무를 비롯하여 참나무, 단풍나무가 있어서 가을이면 산이 아름답다. 또한, 지형은 그리 험하지 않아 등산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산이기도 하다.
낙가산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과 용암동에 걸쳐 있는 산.
[명칭유래]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 되었다.
[형성]
이곳은 청주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류가 아니고 변성퇴적암류의 기반암을 갖는 지역으로, 이 지역은 양 암석의 경계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연환경]
정상은 고도가 475m이며 남서쪽으로 400m의 봉우리가 이어진다. 상당산성의 상당산(上黨山)[419m]에서 상봉재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길게 뻗어내리는 일명 상당산맥의 한 줄기에 속하는 봉우리이다. 보살사에서 낙가산에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나 용정동이나 용암동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그러나 정상부근은 비교적 평평하게 이어져서 평정봉을 연상하게 한다. 청주시의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여름에 남서풍과 겨울의 북서풍이 부딪치는 곳이라 바람이 비교적 세다. 산의 중턱에는 오랜 침식에 의하여 차별침식을 받았다는 흔적이 산재되어 있다.
[위치와 교통]
상당구 용정동에서 용암동 쪽으로 뻗은 남서 방향의 보살사 뒷산이다. 상당구 금천동, 영운동, 방서동에서 용암동을 거쳐 낙가동마을을 지나 보살사에 도달한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에서 옮김)
▶상당산성
산성의 이름이 ‘상당’이 된 것은 백제시대 이곳의 지명이 상당현이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시대에도 고구려, 신라와 맞닿은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여서 흙으로 성을 쌓아 국경을 지켰기 때문.
이후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조정이 수도방비를 위한 중간방어선으로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을 청주로 옮겨오면서 돌을 쌓아 만든 석성이 되었다.
4.2km를 돌로 쌓는 대대적인 성곽공사는 조선 영조 때 이루어졌다. 1728년, 청주읍성을 점령하고 한양으로 진격해 올라가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것. 영남과 호남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목인 청주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대두된 것이다.
이후 일본에 의해 관군이 해체되는 1907년까지 상당산성은 꾸준히 개보수 되며 현재까지 그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 성곽 개보수는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루어졌다.
허물어진 성벽을 다시 쌓아올리고 없어진 동,남문루와 동문을 만들어 산성의 모습을 정비한 것. 1992년엔 군사령부인 동장대가 지어졌다.
동,서,남문과 두 개의 암문, 3개의 치성과 수문을 가진 상당산성은 골짜기를 안에 두고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성을 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이다. 성 안에는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머물며 생활할 수 있는 식수원이 마련되어있다.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시대 성안에 구룡사, 남악사 등 사찰이 있었던 것도 특이하다. 그것은 성곽을 지키는데 필요한 군사의 수를 헤아려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십리에 달하는 성곽을 지키기 위해 5,880명의 군사가 필요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평상시에도 성을 지키기 위해 그 많은 군사를 주둔시킬 수는 없었던 것.
당시 성에 주둔한 관군은 1천명 남짓. 나머지 공백을 메운 것이 승병이었다. 때문에 그들이 머물 사찰이 필요했던 것. 임진왜란을 거치며 조선의 배불숭유정책에도 변화가 왔음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공남문 입구 왼쪽에 서있는 구룡사사적비는 성안 사찰터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으로 성 안에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산성의 정문이자 남문인 공남문을 들어서면 안쪽으로 쌓여진 또 하나의 성벽을 만난다. 성문 바깥으로 옹성을 쌓아 성문을 방어했던 다른 성곽과 달리, 가파른 지형을 가진 이곳은 성 안쪽으로 성벽을 쌓아 내옹성을 만든 것.
적군이 성 안으로 들어올 경우 바로 들어갈 수 없도록 성벽 뒤에 군사들이 숨어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성문방어벽이다.
공남문에서 두 개의 길이 시작된다. 성곽 위를 걸어가는 성곽길과 성곽 아래 숲속으로 이어지는 숲속등산로이다. 두 개의 길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이어지는 것이 특징. 산성과 어우러진 하늘과 산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다면 성곽 길을 이용해보자.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어렵지 않게 성을 돌아볼 수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곽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은 공남문과 남암문 사이에 있는 치성이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들을 공격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어 전망대로서도 손색이 없는 것. 두 번째 치성에는 난간이 없어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는 위험하니 조심해야한다.
치성에서 성벽을 관찰하다보면 벽 위쪽에 눈썹처럼 튀어나온 한 줄의 돌을 발견할 수 있다. 눈썹돌 또는 미석이라 부르는 이 돌은 빗물이 성벽을 타고 흐르지 않고 바로 떨어지게 하는 처마역할을 한다고. 성벽이 오래 견딜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산성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은 서문인 미호문이다. 문루에 올라 시원한 바람과 함께 청주시가지와 함께 펼쳐진 너른 들녘을 바라보자. 그 뒤로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이 펼쳐진다.
서문에서 동문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올라가지 않고 산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저수지를 끼고 자리한 한옥마을에 닿는다. 지금의 저수지 위치는 옛날과 다르다.
1943년 홍수가 나 수문이 무너진 것. 복원하면서 둑의 위치가 바뀌고 크기도 더 커졌다고. 저수지를 따라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산 위로 길이 이어져 공남문에 닿는다.
공남문에서 시작해 미호문과 진동문을 지나 동장대로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한 바퀴 걷는 데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성곽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숲속 길은 중간중간 마련되어있는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며 걸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관찰하며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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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11:30
요즘 날씨가 참 좋지 않다. 비가 오려면 많이나오던지 꼭 옷 젖기 좋을 만큼만 온다. 어제까지 비가 온 후 오늘은 아침부터 맑겠다는 일기예보에 맞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행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비는 그쳤는데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점차 날이 좋아지겠지 싶어 시외버스터머널로 향하니 터머널에 거의 도착할 무렵 천안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적막님한테 전화가 온다. 잠시 후면 도착할 시간인지라 청주에서 7시 45분 보은 상주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하고 좀 있자니 척막님이 도착을 한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보은 쪽으로 향하니 청주를 벗어나기도 전에 버스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치기 시작한다. 점차 굵어지는 빗방울은 미원을 지나고 우리의 목적지 창리에 도착을 할 무렵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 끝에 어짜피 비가 그친다고 해고 물기가 있어 등산화, 옷이 다 젖을 것이니 다음에 가기로 하고 다시 버스표를 구입하여 집으로 향한다. 1시간여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커피한잔씩을 마시고 있자니 친구에게 넣은 문자 답신이 온다. 상당산성을 갈려고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거기 갈것이니 삼일공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황급히 집을 나선다.
삼일공원(0.90km, 약93m) 12.08~12:12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상당공원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삼일공원으로 향한다. 가면서 만나기로 한 푸른소나무님한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는다. 용화사를 지나고 삼일공원에 도착을 하니 공원 안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동상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보수공사를 한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가장우측의 한분은 친일활동을 한 것으로 판단이 되어 시민단체들이 동상을 끌어내려 없애고 횃불을 세워 대체를 했다. 다시 친구한테 전화를 하니 아래쪽에서 걸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이제 셋이서 우암산 상당산을 향해 삼일공원을 출발한다.
우암산 정상(2.3km, 353m) 12:46~12:49
삼일공원을 출발하여 계단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면 10여분 후 성공회성당 쪽에서 시작하여 올라온 능선 길과 만난다. 여기 이정표에 우암산 정상 1.2km, 성공회성당 0.8km, 삼일공원 0.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좀 더 가면 운동기구가 설치된 평탄한 능선에 닿는다. 이곳에는 운동기구와 샘터가 있다. 이곳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잠시 올라 청주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이 좋은 송신탑이 있는 곳에 닿는다. KBS, MBC송신탑이 나란히 있으며 여기서 조금 내려서면 수동 쪽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온 세멘포장임도 길과 만난다. 여기 안부에서 우측으로 샘터로 가는 길이 있고, 능선을 따라 오르면 우암산 정상 쪽으로 가는 길이다. 오르는 길에 작은 암릉지대가 있고 높다란 봉에 오르면 청주대학이나 보현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하산로가 있다. 이봉은 우암산 정상과 마주하는 봉으로 높이도 거의 비슷하다. 이봉에서 살며시 내려서면 상당산으로 가는 길이 있고 운동기구가 많이 설치된 곳이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우암산 정상석이 있는 봉이다. 정상에서는 청주향교 1.8km, 상당산성 4.5km, 우암산 생태터널 1.1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산성도착(5.9km, 약394m) 13:48
우암산 정상에서 운동기구가 있는 삼거리로 다시 돌아와 우측으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서기 시작한다. 15분을 내려서면 우암산 생태통로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우측 어린이회관옆 주차장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고 이어지는 능선 길은 서서히 오르는 길로 등산로는 매우좋다. 아주 가파르게 오르지도 않고 산보하기 좋을 정도로 오른다. 이 길에는 소나무가 많아 운치도 있다. 좌측에서 올라오는 길을 지나고 능선 길을 보호하느라 우측으로 우회 길을 만들어 놓은 봉을 지나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망산이라고 트랭글이 한번 운다. 이 길이야 일 년이면 몇 번씩 걷는 길이지만 망산이란 것은 처음 들어 본다. 이곳을 지나고 좌측 상리 쪽으로 하산하는 길을 지나고 우측 약수터에서 올라온 길을 지나 샘터에 닿은 후 잠시 가파르게 오르게 되면 상당산성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 성터위에 닿는다. 이곳에 올라서면 산 성 아래로 청주시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상당산(7.25km, 491.5m) 14:16~14:19
성터로 올라와 좌측으로 성길을 따라 간다. 조금씩 오르는 길로 여기를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청주시내의 왠만한 지역은 다 보인다. 멀리 내가 살고 있는 쪽으로 높다란 지엘시티 아파트가 보이고 옥산쪽과 오창과학단지등 두루두루 조망이 매우 좋다. 봄이면 연산홍이 붉게 물들고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피서겸 찾아들고 가을이면 울긋불긋 붉게 물든 단풍이 좋고, 겨울이면 함박눈을 맞으며 설경을 구경하기 딱 좋은 곳으로 청주시민들의 휴식처가 바로 여기 상당산성인 것이다. 산성안쪽으로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을 정비하고 많치 않은 농토를 매입하여 공원화시킨다면 작은호수와 어우러져 좋은 청주시민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성길을 따라 걷노라면 성문이 하나 나온다. 성문을 나가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난 아직까지 이 길은 가보지 않았다. 여기 성문이 서문으로 미호문이라도 한다. 성문 밖에는 시원한 샘터도 있다. 이곳을 지나며 다시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성터 안쪽으로 길이 있으나 주변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조망을 보기에는 성곽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서문을 지나 20분을 오르면 상당산성에서 가장 놓은 곳에 위치한 상당산 정상이다. 발굴작업이 다 끝나지 않아 다소 너저분하지만 삼각점과 길쭉한 막대형의 정상석은 있다. 조망은 없다.
성내 상당집 점심식사(8.0km,약370m) 14:30 ~15:25
상당산에서 성터를 따라 하산을 하면 조금 내려와 동문이 나온다. 이문을 통하여 한남금북길을 진행하여야 한다. 예전에는 상당산 바로 아래지점에 성터가 허물어져 돌을 밟고 올라서고 내려서고를 했으나 복원을 마치고서는 성을 내려서고 올라설 수가 없어서 이곳을 통하여 다녀야 한다. 동암문을 지나서 내려서는 길에는 앞쪽으로 것대산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청주시내에서 가장 높았던 선도산이 우뚝 솟아 있다. 현재는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을 하며 1위자리를 좌구산에 내주었다. 이제 6~7분을 성을 따라 내려서면 동문이 나온다. 동문은 진동문이라도 하며 사극을 촬영하는 장소로도 자주 쓰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성터를 한 바퀴 돌아오려면 상당산성의 지휘본부격인 동장대를 지나 성내로 진입하여야 하지만 오늘 점심식사 시간이 늦어진 관계로 여기서 성으로 들어가 버스정류장 앞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파전, 두부지짐, 묵밥을 시키고 있자니 묵밥이 가장 먼저 나온다. 잠시 후 두부지짐이 나오고 그냥 먹기 뭐해서 막걸리 반대를 시켜서 소나무님과 함께 한잔씩 나누어 먹는 사이 파전도 나와 이들을 다 먹어 치우고 나니 배가 부르다. 식사가 끝나고 친구는 오후에 일이 있어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우리는 것대산으로 향한다.
것대산(11.1km, 484m) 16:16~16:19
식사 후 저수지변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한다. 저수지 둑 공사로 인하여 뒤쪽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 저수지 둑을 돌아서 다시 계단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금시 식사를 마쳐서인지 숨이 가프다. 5분여 오르면 성터에서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남문이다. 고도가 낮은 곳에 자리 잡은 곳으로 정문 역활을 하는 곳이다. 망루에 올라서면 앞쪽으로 널찍하니 조성된 잔디밭이다. 따스 할때는 이곳 잔디밭에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을 보곤한다. 남문을 지나면 다시금 성터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게 된다. 숨이 막힌다.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5분여 오르면 청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남암문에 닿는다. 여기서 성을 빠져나가 것대산으로 향한다. 아주 서서히 내려서는 능선 길도 매우 좋다. 10분을 좀 더 지나면 청주시내에서 상당산성을 오가던 구길 위에 설치한 출렁다리가 나온다. 지금은 옛길을 복원한다고 차량진입을 막고 있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다시 오르는 길이다. 능선 좌측으로 길게 조성된 산소지대를 지날 때면 것대산이 곧바로 올려다 보인다. 것대산 봉화대로 오르는 임도길이 좌측 능선 아래로 가깝게 지나며 능선옆 산소지대를 다시한번 더 지나면 상봉재에 닿기 전 우측 어린이 회관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삼거리 지점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는 어린이 회관 2.7km, 낙가산 2.5km, 상당산성 1.1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조금 내려서면 상봉재로 좌측으로 임도가 가까이 있고 우측으로는 어린이회관 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 고개다. 상봉재 이정표에는 낙가산 2.4km, 상당산성 1.1km, 것대마을 1.5km가 적혀 있다. 여기 안내문에 상봉재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상봉재는 미원이나 낭성에서 소몰이꾼이나 장을 보러 청주로 오가던 이들의 옛길 고개로 것대고개 또는 상봉고개라 하며, 상당구 산성동 것대에서 것대산을 끼고 명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아래는 중봉으로 명암지위에 해당되며, 그 위가 상봉에 해당된다.
상봉재를 지나면 것대골이 나오고 산성고개와 만나 낭성면 현암리와 연결이 된다. 상봉 지명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의 산이라는 뜻으로 전국의 곳곳에 산이나 고개에 흔히 쓰인다. 명암동에는 ‘상봉’아래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중봉’이 있다. 또한 금강과 한강의 물줄기를 가르는 한남금북정맥이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상봉재에는 모자상봉이 얽힌 애틋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청주 영기로 적을 두고 있던 김해월은 영장 남정년의 주선으로 비장 흥림의 애첩이 되었다. 그 당시 청주 병영 군관으로 있던 흥림은 팔십노모를 모시고 있었으나 슬하에 혈육이 없어 손을 보기 위해 해월이를 첩으로 맞아들여 남문 밖에서 살림을 하고 있던 중 마침내 잉태를 하여 해월이가 해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조4년(1728년) 이인좌 등이 모반하여 청주성을 기습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흥림이 장검을 꺼내들고 나가려 하자 후일을 모도하라고 만류하였으나 흥림은 팔십노모와 유복자를 부탁하고 나가 전사한다. 해월은 다음날 남편 흥림의 시체를 거두어 우암산 기슭에 묻고 장례를 치뤘다. 해월의 아이가자라 세 살이 되던 해, ‘동자가 열 살을 못 넘기고 수액에 의해 요절 하리라’는 시주스님의 말을 전해 들었다. 당황한 해월이 시주스님에게 해결방법을 종용하자 스님은 ‘저 아이를 보국사 주지스님 해원에게 위탁하여 열흘에 한번씩 성황당 고개에서 기다렸다가 만나야 하며 절대 성황당을 한 발짝이라도 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 금기를 일러 주었다. 아이가 7세 되던 해 해월은 ‘절대 성황당 고개를 넘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잠시 잊고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성황당 고개를 넘고 말았다. 아이 역시 해월의 모습이 보이자 쉴새 없이 달리다가 그만 연못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 결국 해월이 남편의 유지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자결하고 말았다는 모자상봉의 애틋한 전설이 있다.”
상봉재를 뒤로 하고 오르기 시작하면 몇 분후 봉화대에 닿는다. 봉화대는 복원한 것으로 5기의 작은 봉화가 설치되어 있다. 봉화대를 지나면 곧 것대산 활공장으로 가기 위한 임도가 이곳까지 연결이 된다. 여기서 잠시 능선을 따라 오르면 것대산 정상이다. 활공장으로 팔각정이 있고 예전에 없던 정상석이 있어 살펴보니 올 9월에 청주시내 모 산악회에서 세웠다. 이곳에서는 한남금북정맥길과 낙가산이 갈린다. 것대산 정상에서도 청주시내의 전경을 막힘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낙가산(12.2km, 483m) 16:37 ~16:40
것대산에서 다시 돌아서 어린이 회관으로 가려다가 이왕 여기 까지 온 거 낙가산을 거쳐 양궁장으로 가기로 한다. 것대산에서 부터 낙가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조금 전 길만은 못해도 좋다. 거의 평탄하게 이어지는 능선 길을 따라가면 좌측으로 현양원이라는 시설이 나온다. 예전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같았는데 상당히 시설물들이 많이 들어 서있다. 현양원 쪽으로 내려가는 몇 개의 길을 지나면 낙가산으로 오르기 전 우측으로 돌아가는 우회길이 있고 잠시 가파르게 올라서면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송신탑이 있는 낙가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산소가 1기 있고 정상석이 있으며 뉘엿뉘엿 지는 햇살을 받아 은은한 빛이 청주시내의 모든 곳을 비추니 이 광경이 너무 좋다. 오늘 계획대로 금적지맥을 가진 못하였지만 모처럼 상당산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며 좋은 해맞이를 하고 있다. 낙가산에서는 양궁장 쪽으로 하산을 한다. 이정표에 상당산성 3.9km, 것대산 1.4km, 하산할 방향으로 원봉공원(용암동 성당) 5.5km가 적혀 있다.
시내버스 동부종점(15.13km, 약110m) 17:22
낙가산에서 원봉공원까지는 1시간 반은 소요되겠다. 하산시간이 좀 늦어질 것 같다. 우리는 양궁장쪽으로 하산을 하기로 한다. 계속 내려서는 길로 가파른 길도 상당수 있으며 잠시 조망 좋은 봉을 올라섰다 내려서기도 한다. 15분을 내려서면 좌측으로 보살사로 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 10여분을 더 가면 앞쪽으로 양궁장이 보이고 목재계단을 따라 내려서게 된다. 계단 끝에는 양궁장 까지 올라온 널찍한 도로가 있으며 보살사 쪽으로 넘어가는 좁은 도로도 있다. 양궁장앞 낮은 산에는 용정산림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다. 양궁장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서서 큰 도로를 건너고 앞쪽에 보이는 힐링센터와 용성중학교 사이 도로를 따라가다가 좌측으로 중학교 담을 돌아가면 시내버스 동부종점이 나온다.
오늘 금적지맥을 가려던 것을 우천으로 되돌아와 청주 우암산과 상당산, 것대산, 낙가산으로 돌아오니 대략 15km로 산행시간 5시간 반가량이 걸렸다.
모처럼 날씨가 활짝 개여 해넘이도 보고 즐거운 산행을 하였다.
멀리 천안에서 온 적막님 산행 즐거웠는지요!!
함께여서 좋았습니다.
감사~~~
산행시간 : 5시간 24분 소요
산행거리 : 15.1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