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0891 대동금남정맥2 말목재~천호산~용화산~미륵산~석불사거리 2015.11.10.화요일 맑음

산야0 2023. 1. 20. 07:21

대동금남정맥2 말목재~천호산~용화산~미륵산~석불사거리

2015.11.10.화요일 맑음

참석인원 ; 적막이랑 둘이서

 

청주 7:20 -조치원역 7:50 ~8:35 -논산역 09:40~09:43 -택시 18000 -말목재(해발 약230m) 10:00 ~10:03 -해발 약300(0.38km) 10:14 -해발 약450(1.12km) 10:31 -급경사 내리막 -옥녀봉(삼각점, 1.47km, 해발 411m) 10:40 -가시 잡목길(좌측으로 축사 보임) -63번 송전탑(범허리재, 좌측 하산로 양호, 2.06km, 340m) 10:50 -삼거리(좌측으로, 우측은 매화산,정토산방향, 2.25km, 360m) 10:53 -함박봉(2.76km, 403m) -좌측 하산로 삼거리(좌측산소, 능선아래 농로길 보임, 3.32km, 325m) 11:13 -소룡고개(아스팔트도로, 3.82km, 305m) 11:22 -능선으로 의자 다 썩었음 -성태봉(사각정자, 삼각점, 4.39km, 해발371m) 11:36 -안부사거리(4.93km, 310m) 11:44 -안부사거리(5.11km, 290m) 11:46 -고내곡재(세멘포장임도고개, 성황당,우 양촌 고내리, 좌 운산리 금평마을, 5.67km, 250m) 11:57 - 270(5.84km) 12:01 -좌측 하산로(운산리 중리마을, 6.05km, 275m) 12:04 -좌측 하산로 12:09 -해발 약360(6.97km) 12:21 -해발 약355(7.22km) 12:25 -잡목넝쿨길 -안부고개(좌측으로 임도보임, 7.69km, 305m) 12:32 -해발 약323(고사목, 7.92km) 12:39 -누항재(비포장임도고개, 고개아래 여산 -화산간 천호터널, 8.28km, 280m) 12:47 ~13:11(점심식사) -채석장위 안부(8.47km, 280m) 13:15 -오르막에 꾸찌뽕나무 다수 -가족묘지(9.10km, 380m) 13:29 -좌측 하산로(이정표, 9.20km, 375m) 13:32 -천호산 정상(삼각점, 헬기장, 9.75km, 해발 501m) 13:49 -쉼터지나고 -좌측 천주교묘지 방향 하산로(이정표, 쉼터, 10.04km, 450m) 13:55 -헬기장(10.5km, 470m) 14:00 -한문으로 자와 비슷한 글이 새겨진 표지석봉(10.66km, 480m) 14:03 -30초후 좌측 천호경로당 방면 하산로 -420(11.0km) 14:09 -갈매봉(11.3km, 385m) 14:15 -산불감시초소봉(갈매봉, 11.75km, 380m) 14:26 -문드러미재(좌 비봉면 천호마을, 우 여산 호산리, 12.16km, 260m) 14:37 -송신탑 -폐산불초소(12.33km, 280m) 14:40 -삼거리(우측으로, 12.62km, 250m) 14:44 -호남고속도로위 생태통로(13.3km, 해발 약130m) 14:55 -삼거리봉(좌측으로, 13.58km, 170m) 15:09 -좌측으로 민가, 우측으로 벌통 보임 -양동고개(아스팔트도로, 14.52km, 95m) 15:20 -공동묘지(14.7km, 110m) 15:28 ~15:34 -임도고개(15.0km, 115m) 15:37 -능선에서 임도따라(좌측으로 조망 좋음) -삼거리(우측으로, 15.64km, 190m) 15:51 -쉼터봉(15.8km, 190m) (쉼터봉에서 우측으로 가야하는데 좋은길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서 용화리마을에서 위쪽 능선으로 올라섬) 15:54 -삼거리(우측으로, 행선길 훈련원 표지판) - 좀 더 아래에서 우회길 따라 -용화리 마을 - 용화리 위 36번 송전탑(여기 까지 알바구간 좀 돌아서 온길)(16.92km, 140m) 16:14 -쑥고개 생태통로(17.26km, 105m) 16:20 -이정표 삼거리(좌측으로, 17.7km, 155m) 16:28 -이정표 사거리(18.14km, 155m) 16:37 -1분후 안부사거리 -급경사 오르막에 꾸찌뽕나무 다수 -용화산 정상(19.25km, 342m) 16:57 ~17:02 -전망대(20.2km, 321m) 17:11 -이정표 삼거리(좌측으로, 직진은 용리산, 20.29km, 298m) 17:18 -삼거리(우측으로, 21.5km, 215m) 17:35 -다듬재(21.88km, 155m) 17:40 -삼거리 이정표(우측으로, 22.3km, 215m) 17:51 -성 끝지점(22.4km, 220m) 17:55 -바위봉 삼거리(좌측으로, 우측 송전탑, 23.06km, 405m) 18:12~18:22 -미륵산 정상(23.38km, 해발 429.6m) 18:30 ~18:33 -테크길 삼거리(직진, 우측 장항교 방향, 24.4km, 145m) 18:58 -테크길 끝 삼거리에서 간재선생 묘소길 방향으로 직진 19:02 -이정표 삼거리(간재선생묘소 방향으로 우측, 25.02km, 140m) 19:07 -안부사거리 이정표(직진, 25.12km, 140m) 19:11 -잘 가꾼 산소지대 내려서고 -임도(간재선생길 다시 만남, 25.34km, 75m) 19:27 -1분후 삼거리 이정표(좌측으로) -논 끝에서 민가옆 커다란 버드나무로 - 세멘트길 -민가 -민가 -옥수도예 사거리(25.98km, 60m) 19:28 -인삼밭 지나고 -산소위 임도(26.12km, 60m) 19:30 -임도길 따라 -인삼밭지나고 -감나무밭으로 지나면 -삼기주유소(26.65km, 40m) 19:38 -도로따라 우측으로 -석불사거리(27.06km, 40m) 19:44 ~20:19 -버스 1300원씩 -함열 도착 20:34 -저녁식사 -함열역 21:20 ~21:39 -열차 6700 -조치원역 22:58 ~23:05 -청주 도착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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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산

높이 : 501m

위치 : 전북 익산시 여산면

충남에서 전북으로 넘어가는 첫 길목인 여산휴게소 동쪽에 솟아 있는 산이 천호산이다. 이 산의 정상에는 축성연대가 미상인 옛 성터가 남아 있어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성태봉이라 부른다.

이 산의 서북쪽 기슭에 하나밖에 없는 석회동굴인 천호동굴이 발견된 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산으로 서남쪽 기슭에 백운사, 문수사, 천일사 등의 고찰이 있고 정상일대에 봄에는 철쭉이 볼 만하다.

산행은 금마에서 7.8k 지점인 여산 미쳐 못가서 신리마을 천호주유소에서 동족으로 시멘트도로를 따라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 굴다리를 지나 외사 새마을회관 앞이 산행 기점이다.

정상에서는 학동마을로 하산하거나 동능을 타고 비봉면 산수동 마을이나 정상에서 남능을 타고 남쪽 고개 문드러미재에서 천호성지가 있는 천호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

 

산행코스

신리마을- 천호주유소- 시멘트포장도로- 여산휴게소 굴다리- 외사마을 새마을회관- 백련암- 백운사- 천일사- 뒷능선- 정상(헬기장) 남능- 중봉- 내리막길- 학동마을- 내동- 여산 남초교- 천호주유소[5시간]

 

천호성지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산905-1

천호성지는, 1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교우촌 천호 공소의 천호산 기슭에 있다. 천호공소는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하느님을 부르며 사는 신앙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있고, 천호산 역시 이름 그대로 순교자의 피를 담은 병의 구실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1866(고종 3, 병인박해) 12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이명서 베드로, 성 손선지 베드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 요셉과 1866 8 28일 청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순교자가 묻혀 계시며, 이 분들과 함께 순교한 수많은 분들이 천호산에 종적을 알리지 않은 채 묻혀 계시다.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간적인 모든 것, 곧 육신이며 이름이며 살아온 일생의 내력 그 어느 것 하나도 남김없이 하느님께 송두리째 바친 것이다.

(천호성지 홈페이지에서 옮김)

 

백운사 보현전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90호인 백운사는 신라 경순왕 2(928) 백양선사가 창건했다. 본래는 범당사 정혜사라 했으나 그 후 백운사로 개칭했다. 경내에는 보현전 칠선각 요사가 있다. 천호산에는 문수사, 백련암과 대한불교 화엄종 천일사가 있어 각기 문수, 관음, 보현보살을 모시는 도량이 었다.

(전라북도 관광안내소에서 옮김)

 

익산 천호동굴

천연기념물 제177. 주굴(主窟) 250m, 총연장 600m. 일명 바람굴이라고 한다. 이것은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밖으로 뿜어나오고 겨울에는 훈훈한 바람이 불어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좁고 험한 굴 입구를 들어서면 동굴바닥 한 구석에 맑은 동굴류(洞窟流)가 흐르고 천장에는 수많은 박쥐가 서식한다. 동굴 내부에는 종유석과 석순이 있고, 석회화단구(石灰華段丘)와 석주(石柱) 등 동굴생성물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수정궁으로 불리는 광장은 높이 약 30m, 너비 약 15m이고, 중앙정면에는 높이 20m가 넘는 디스크형 대석순이 솟아 있는데 그 지름이 5m에 이른다. 우기(雨期)에는 동굴 속에 유수량이 많아 동굴폭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동굴내에는 박쥐를 비롯하여 곱둥이·딱정벌레·톡토기 등 많은 동굴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동굴부근 일대는 마한 때부터의 도읍지로, 백제 때에는 미륵사(彌勒寺)가 건립되고, 후고구려가 생겼던 역사적 유래가 깊은 곳이다. 산정에는 산성과 용추사(龍湫寺문주사(文珠寺) 등이 있으며,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호남지방유일의 석회암 동굴

익산 천호동굴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자리 잡은 천호동굴은 천연기념물 제177호로 지정돼 있다. 1965년 발견된 이 동굴은 호남지방 유일의 석회암 동굴이다.  250004억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굴 안의 냉기가 대류(對流)해 춘분 후에는 바람이 구멍에서 나오고, 추분 후에는 바람이 구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4계절 모두 은은한 뇌성이 울리는 듯하다.

굴 내부에는 다양한 종유석과 석순 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천호동굴의 백미는 수정궁이라는 동굴 내 광장이다. 거대한 석주과 석순, 지하천수(地下泉水) 등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천호동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천호동굴은 발견된 지 5년만에 폐쇄됐다. 정부는 동굴 탐방객들이 늘면서 무분별하게 종유석과 석순이 잘려나가는 등 자연석을 무단반출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동굴 보호를 위해 1970 331일 긴급 폐쇄조치했다. 이 조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천호동굴은 2011년 문화재청에 의해 10필지 5117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호남 유일의 석회암 동굴

천호동굴은 1965년 황성호 목사가 동굴 내부의 신비를 알아보기 위해 굴의 입구를 파괴하고 들어가 굴 내부를 답사하면서 그 비경이 세상에 알려졌다. 동굴의 총 연장 길이는 약 904m. 동굴 입구에서 100m 거리인 지굴과의 분기점에서 다시 150m를 들어간 곳에 있는 수정궁(水晶宮)이라 불리는 광장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높이 12m의 석주가 무리를 이룬다. 바닥에는 직경 5m에 달하는 석순들이 떠오르는 구름처럼 깔려 있다

이 동굴에 대한 기록은 일찍이 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산현에서 서쪽으로 흘러오는 내가 있는데, 호산 기슭으로 새어 들어가 땅속으로 흘러 호산 서쪽으로 나와 내를 이루었다. 물이 나오는 구멍은 한길 남짓으로 속칭 용추라 전하며 가물면 비오기를 빈다라고 했다. 이미 수 백년 전에 이 동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다.

 

천호동굴 위치

천호동굴은 전북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에 있다. 금마면 사무소에서 1번 국도를 따라 여산면 사무소 방향으로 약 8km 정도 가면 우측으로 외사, 호월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 약 2.5km 정도 이동하면 익산석회석공업사(현재 휴업상태)가 있으며, 이곳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약 150m 지점에 천호동굴이 위치하고 있다.

여산면은 선사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돼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여산은 농경시대에 유용한 숫돌이 많이 나는 산으로 불리었다. 마한시대에는 여래비래국으로, 백제시대에는 지량초현으로, 통일 신라부터는 여량현 여산현으로 이어져 왔으며 조선조 고종 33년부터 여산군이 여산면으로 불려졌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과 경계를 이루고 남으로는 왕궁면, 서로는 금마, 낭산면, 서북으로는 망성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우기 하천수로 생성된 석회동굴

석회동굴의 형태를 지배하는 지질구조는 층리, 단층, 절리, 습곡 등이다. 동굴이 생성되는 초기단계에서는 주로 지하수면 근처에서 석회암이 용해되어 동굴이 생성된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절리, 층리, 단층 등과 연결되어 지하수의 흐름이 증가하게 한다. 석회동굴의 형태는 동굴류의 수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굴류가 외부 지표의 하천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경우에는 단일동로(單一洞路)의 석회동굴이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지표에서 침투하는 빗물이 동굴류를 발달시키는 경우에는 지굴이 많이 발달한다. 돌리네로 스며드는 빗물은 최상류의 지굴을 만들며, 이러한 지굴들은 하류로 내려감에 따라 서로 결합하여 넓은 통로를 만든다.

천호동굴 주굴은 폭이 좁고, 꼬불꼬불한 경향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평평하다. 지역의 엽리와 절리 방향으로 발달한 것은 우기에 유입된 하천수에 의해 주굴이 형성되었음을 시사한다. 구불구불하며 많은 지굴을 갖는 형태를 보이는 것은 주굴이 형성된 후 건기에 동굴 주변의 엽리나 절리와 같은 약선대를 따라 지하수가 주굴로 흘러 들어 오면서 지굴이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정궁과 같은 동굴의 폭이 넓어지는 곳에는 상부가 타원형이며 하부가 수직인 구조와 낙석이 발견된다. 이는 상부로부터의 지하수 유입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천호동굴의 백미 수정궁

입구로부터 수정궁까지의 좌우 벽면과 천장에는 무수한 동굴생성물들이 분포돼 있다. 10m 전방에는 동굴수가 외부로 유출되는 통로가 존재하며통로의 천장에는 유석들이 보인다. 지하수 유출 지점에서 13m 전방의 우측 벽면에는 남동방향으로 지굴이 뚫려 있다. 이 지굴은 20m에 이른다. 처음 8m 정도의 지굴 천장에는 종유관이 발달해 있다. 이곳부터 벽면과 천장에는 유석과 동굴산호, 종유관, 톱니형 베이컨시트 그리고 휴석이 자리잡는다. 바닥에는 동굴진주를 찾아 볼 수 있다.

지굴과 주굴이 만나기를 되풀이하다 낙석과 낙반으로 이뤄진 통로를 통과하면 수정궁이라는 동방이 존재한다. 천호동굴에서 가장 다양한 동굴생성물과 가장 큰 석주와 유석이 발달하는 곳이다. 좌측 바닥면은 유석으로 이뤄져 있으며 유석의 윗 부분에 성장하고 있는 석주와 유석이 돋보인다. 우측의 북동방향으로 발달하는 작은 통로에는 휴석소와 휴석소 내부에 발달하는 동굴팝콘동굴산호, 석순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후 높이 0.4m,  1.4m 정도의 동굴수가 흐르는 6m의 협소한 수로를 따라 주굴의 통로가 연결된다.

 

뒤늦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

천호동굴은 발견된 지 반세기가 됐지만 일반 국민들은 동굴 내부를 관람할 수 없다. 천호동굴 입구에는 출입금지 안내문이 을씨년스럽게 붙어 있을 뿐이다. 동굴이 발견되자 마자 무분별하게 동굴출입이 이뤄지면서 희귀한 종유석과 석순 등이 마구 채취돼 사라졌다. 정부는 동굴보호를 위해 쇠문을 달고 입구를 폐쇄했다. 동굴이 발견된 지 5년만이었다. 지금도 그 상흔은 그대로 남아서 원상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1년 방치되다시피 한 천호동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동굴주변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희귀 석회암 동굴로서 협곡과 같은 통로 등 미세한 지형이 발달해 있고, 가리비 조개 모양의 침식구조와 동굴 한 가운데 수정궁 광장의 거대한 백색 석주 등이 보존가치가 큰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간 동굴 주변의 오염된 지표수와 축산폐수로 인한 위협 가능성에 마음을 졸여온 문화재 관계자들은 한 숨을 돌리게 됐다. 문화재청은 익산시와 협조해 동굴 정화사업 및 보호구역 매입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글 박용근 | 경향신문 기자경향신문 전국부 기자로 전북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전북지역에서 초··고 대학을 나온 뒤 89년 신문기자로 첫발을 내디뎌 20년째 전북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2004년 부안 방폐장 사건을 객관적 시각에서 집중 보도해 녹색언론인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yk21@kyunghyang.com

제공경향신문

 

미륵산 430m

고대유적 품고 있는 익산시 명산

철도산행 취재를 떠나기 3일 전 서울에 폭설과 한파가 몰아쳤다. 기습적으로 눈 폭탄을 맞은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인도에서도 러셀을 하며 길을 뚫어야 하여야 한다. 요 며칠간 서울은 그야말로 마감기간 기자의 어지러운 책상과 같았다.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을 하며 플랫폼으로 내려가는데 마침 광주행 KTX가 매끈하게 돌진해 들어오며 잡다한 상념을 ''하고 걷어차 버린다. 열차에 오르니 한국철도산악구조대 김윤수 대장과 이효기, 오병건 부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어이, 윤 기자. 잘 지냈어? 눈 많이 와서 고생했지? 걱정 하지마! 오늘은 따듯한 남쪽 나라로 갈 거니까."

눈 때문에 고생한 것은 자신이었을 텐데도 오히려 밝은 표정이니 나도 그 기운에 전염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 덮인 시골풍경이 차창 밖을 가득 채운다. 객실 바깥 설경이 도시의 그것과는 달리 시원스럽다. 철도여행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체했던 속이 풀리듯 몸이 가뿐해진다.

서울을 출발한 지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아 익산역에 도착한다. 들머리인 다듬재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일행이 5명인지라 기사와 흥정을 해야 했다. 결국 2만원에 오케이! 짐짝처럼 몸을 구겨 넣고 들머리 다듬재로 이동한다.

전북 익산의 미륵산은 430미터의 낮은 산이다. 봉우리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봉 이라고도 불린다. 익산평야를 내려다보며 당당한 자태로 솟았다. 익산 시내에서 가까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으며 유명한 미륵사지가 있어 익산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이다. 또한 용화산, 천호산과 이어지며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실질적인 금남정맥'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아이고, 익산도 눈 많이 온겨!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내린 적 없었당께요!"

택시기사가 과장이 섞인 듯한 말투로 엄살을 떤다. 서울처럼 많이 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웬만큼 쌓인 것을 보니 여기도 폭설의 영향을 받았나 보다. 다듬재로 향하면서 공수부대의 훈련장 옆을 지난다. 검은베레의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금세 뛰쳐나올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눈 덮인 금마저수지는 너무 평화스럽고 예쁘다.

익산역을 출발한지 20분 만에 다듬재에 도착한다. 특별히 볼 것 없는 야트막한 고개다. 미륵산 등산로 정비계획을 알리는 표지판 옆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왼쪽은 군부대 훈련장인 듯 철조망이 쳐져 있다. 눈은 벌써 많이 녹아 바닥에만 얇게 깔려 있다. 더러는 녹다가 다시 얼어 미끄럽기도 하다. 눈꽃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눈이 많이 쌓인 것도 아닌 싱거운 길을 20분정도 오르니 미륵산성이 나온다.

고조선의 왕 기준이 성을 쌓았다 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불린다는데 복원한 지 얼마 안 된 듯, 산성을 이루는 돌들이 하얗게 반짝인다.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미륵산 정상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제봉이다. 갈림길에서는 성벽의 두툼한 선이 미륵산 정상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행은 오른쪽 우제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성 위로 오르면 건너편 용화산과 산북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상큼한 겨울공기가 와락 안겨든다.

"에이, 이거 뭐야! 서울에 눈 많이 와서 단단히 준비하고 왔는데 날씨까지 따뜻하잖아!"

"그러게요. 겨울 철도산행 하면서 이렇게 포근하기는 처음이네요"

"아이고, 덥다 더워!

서울보다 남쪽이라 그런지 확실히 날이 따듯하다. 일행은 각자 한 마디씩 던지며 두꺼운 옷을 한 꺼풀 벗어버린다. 10분쯤 더 올라 무덤이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쉰다. 위로 우제봉과 미륵산 정상이 보인다. 뒤쪽으로 낭산리 채석장과 용화산 너머 천호산까지 잘 보인다.

우제봉에 오르니 11 30. 들머리에서 50분쯤 걸렸다.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주릉은 오른쪽 통신탑을 거쳐 심곡사 방향으로 이어진다. 남서쪽을 바라보니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가 경상도 부분만 가린 채 모습을 드러낸다.

미륵산을 소개하던 택시기사의 말대로 '잠깐 올라가기에는 운동이 되는 산'이다. 산행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숨이 차다. 취재진은 우제봉에서의 조망이 부족했던 모양인지 바로 옆에 솟아있는 미륵산 정상을 향해 쉬지도 않고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길이 여기저기로 갈리지만 곧 다시 만난다. 10분 오르니 미륵산 정상이다. 넓은 평지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서남북 막힌 곳이 없어 넓은 정상 이쪽저쪽을 오가며 주변 조망하기에 바쁘다. 서쪽으로 익산시의 너른 평야가 펼쳐져 있다. 평야 위로 덮인 엷은 안개 속에서 함라산 줄기가 솟아올라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동남 방향에서는 뚜렷한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정상에서 지휘를 하며 한반도 모양 만들기 공사를 한 것처럼 지도와 꼭 닮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동네가 이렇게 평화로우니 먹을 것이 풍족한 거야. 그러다 보면 인심도 좋아지는 거지."

김 대장을 시작으로 일행들은 각 지역별 음식얘기부터 풍습, 지형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충북 괴산이 고향인 김윤수 대장, 경남 합천의 이효기 부대장, 경기도 용인 출신의 오병건 부대장. 셋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이기도 하지만 출신지역이 달라서인지 이야기는 쌓이고 쌓여 산이라도 이룰 것 같다. 낭산면, 금마면, 심기면에 걸쳐 쌓이고 쌓인 미륵산 처럼...

하산하는 길이 미끄럽다. 벌러덩 넘어질 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조심조심 5분쯤 가니 전망대다. 멀리 익산시까지 내려다보인다. 중간에 사자사도 들른다. 절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그냥 내려가려는 사람들을 붙잡아 자연스럽게 사자사로 안내한다. 절 이름이 호랑이를 닮은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와 연관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무관. 미륵사 창건의 계기가 된 곳이라고 하니 괜히 혼자서 얼굴 붉어진다.

"미륵사지로 가려면 어느 쪽이 더 빠릅니까?"

"약수터 방향으로 가나 과학고 방향으로 가나 비슷한디요. 오늘 길이 미끄러우니 계단 많은 과학고 방향으로 내려가쇼잉~."

내려가는 능선 오른쪽으로 미륵사지와 동탑, 보수 중인 서탑이 보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옛 절지답게 그 터가 축구장만 하다. 미륵사지의 창건 설화와 연관된 '서동요'를 빠뜨릴 수 없다. 미모의 공주를 아내로 삼기 위해 지었던 노래. 그 이야기가 비록 서탑의 출토 유물로 진실성에 금이 갔지만 어여쁜 여인에게 프러포즈 하는 방법이 참으로 기발하지 않은가?

"윤 기자, 노래는 잘해? 그 거라도 잘 해야 장가를 잘 가지!"

길이 미끄러워 엉금엉금 30분쯤 내려가니 널찍한 임도다. 그 길을 따라 10분 더 가면 연수원과 미륵사지로 가는 갈림길이다. 곧바로 직진해 미륵사지유물 전시관 방향으로 내려간다.

 

*산행길잡이

다듬재-(20)-미륵산성-(30)-우제봉-(10)-미륵산 정상-(20)-사자암-(30)-삼거리-(10)-미륵사지 유물전시관

다듬재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미륵산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금마면쪽에서 고개 정상을 오르면 왼쪽으로 초입이 보인다. 미륵산 등산로 정비계획을 알리는 표지판 왼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완만한 등산로 왼쪽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20분 정도 올라가면 미륵산성이다.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미륵산 정상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제봉 방향이다. 성벽 위로 올라가 걸으면 조망이 제법 좋다. 미륵산성에서 우제봉까지는 30분 거리. 우제봉에서 다듬재 방향으로 등지고 왼쪽으로 미륵산 정상이 보인다. 오른쪽 통신사 송신탑을 거쳐 심곡사로 이어진다. 여기서 미륵산 정상까지는 10. 가는 도중 길이 여러 갈래로 갈리지만 어느 쪽으로 가든지 정상과 만난다. 하산하는 길도 여러 코스가 있지만 대부분 전북과학고나 냉정약수터 방향으로 하산한다.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으로 가려면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지만 눈이 내려 미끄럽다면 나무계단이 많은 과학고 쪽이 좋다. 정상에서 50분 정도 내려가면 과학고와 미륵사지 방향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오른쪽 미륵사지를 따라 하산한다. 미륵산 산행은 2~3시간 걸린다.

*교통

용산에서 출발, 익산역까지 가는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자주(05:20~23:10) 있으며 KTX 2시간 걸린다.

동서울종합터미널(ARS 1688-5979)에서 익산까지는 군산행 직행버스가 매시(07:30~18:30) 있다. 요금 12,400. 3시간 걸린다.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는 익산까지 1시간(06:30~20:30) 간격으로 출발한다. 요금 11,000.

익산역 앞에서 다듬재까지는 60-2번을 타고 금마터미널 지나 산북리 가기 전 고개에서 내리면 된다. 요금 1,200. 30분 걸린다.

익산역에서 다듬재까지 택시요금은 20,000원 안팎이다. 20분 걸린다.

승용차로는 호남고속국도 익산나들목으로 나와 720번 지방도를 따라 금마방향으로 간다. 금마저수지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첫 고갯마루가 다듬재다.

 

*잘 데와 먹을 데

금마면 동고도리에 여관과 모텔이 많다. 미륵사지 앞에도 모텔이 있다. 드라마모텔(063-831-1313), 미륵파크(831-2260), 미륵여관(836-6772), 마한여관(836-7272).

미륵사지 유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앞에 순두부로 유명한 식당이 모여 있다. 마순두부찌개로 유명한 미륵산순두부(835-7400), 내고향순두부(836-7660)는 양배추 겉절이와 두부 한 모가 3,000원이다. 익산시내에는 막걸리집이 많다. 막걸리 3병에 18,000. 안주가 무료인데 매운탕부터 석화구이, 빙어튀김 등이 풍성하다.

 

*볼거리

미륵사지와 유물전시관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하다. 현재 이곳에는 석탑의 동탑과 당간지주가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데, 국보 제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서탑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던 뒤쪽면의 보수를 위해 해체, 복원작업 중이다.

현재 미륵사지에는 탑을 완전 해체 후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해체 복원작업은 2014년까지 계속된다. 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매주 월요일과 11일은 휴관한다. 063-290-6799. http://www.mireuksaji.org 미륵사지유물전시관.

 

보석박물관 왕궁보석 테마관광지 안에 위치하며 2002 5월 개관했다. 세계적 수준의 보석박물관으로서 진귀한 보석과 원석 1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우리나라 왕조별 복제유물,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보석의 정의와 역사, 관련된 과학 이론과 산업 등 각 주제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별관에는 화석전시관이 있어 공룡모형과 화석 등을 볼 수 있다. 관람시간 10:00~18:00, 관람료 일반 3,000, 어린이 1,000. 매주 월요일과 11일은 휴관일이다. 063-859-4641. http://www.jewelmuseum.go.kr 익산보석박물관.

 

용화산(341m)

익산 시민의 가족 같은 산

백제의 무왕이 된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간직한 미륵산. 그곳에 서면 서동을 바라보는 선화처럼 미륵산을 바라보는 용화산을 만날 수 있다.

아리랑고개(다듬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미륵산과 용화산은 원래 하나의 산으로 용화산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미륵사가 창건된 이후 미륵산과 용화산으로 나뉘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미륵산을 용화산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비록 낮은 산이지만 이곳 익산에서는 사람들의 휴식을 도와줄 첫번째 산이기도 하다.

산행은 대부분 서동공원에서 시작한다. 아리랑고개를 들머리로 잡기도 하지만 그곳은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어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서동공원 꼭대기에는 2008년 개장한 마한관이 있는데, 건물 오른쪽에 있는 나무계단을 올라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아이들 손을 잡고 삼삼오오 소풍을 나온 가족산행팀이 많이 보인다.

붉은 황톳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곧바로 공동묘지가 나온다. 볕 잘 드는 양지에 자리한 공동묘지는 공포영화의 풍경처럼 을씨년스럽지 않다. 밝은 등산복 차림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르는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는 공동묘지를 호러영화 배경이 아닌 명랑만화 분위기로 바꿔놓는다.

평탄하던 산길은 잠시 폭이 좁아지다가 야트막한 솔숲으로 이어진다. 몇 해 전엔 보지 못했던 빨간색 구조푯말이 길옆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큰 산에서만 사고가 나란 법은 없으니, 이런 세심한 배려가 나쁘지 않다.

221봉에 올라선다. 발밑에 놓인 삼각점이 아니었다면 봉우리인지 몰랐을 평범한 능선상의 작은 언덕, 볼만한 풍경하나 없으니 서둘러 지나치고 산행 시작 40분만에 동서로 전망이 트인 헬기장으로 올라선다. 왼쪽으로 미륵산과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금마저수지, 오른쪽으로는 용화제와 왕궁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헬기장을 지나면 오른쪽 능선에서 오르는 산길과 합쳐진다. 대동금남정맥을 만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대간과 정간, 정맥의 개념은 조선시대 신경준이 지은 <산경표>란 지리서에 나온 내용이다. 산자분수령을 기초이론으로 삼은 이 지리서에서 금강 남쪽으로 따라 흐르는 금남정맥 산줄기는 금강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부여의 부소산에서 멈추고 만다. 하지만 <대동여지도>의 금남정맥(대동금남정맥)은 용화산과 미륵산을 거쳐 금강하구둑까지 산과 물이 함께 뻗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작은 함께하지만 끝이 다른 두 개의 정맥 중 어느 것이 올바른 길인지는 직접 걸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울타리가 쳐진 봉분 하나를 지나면 철조망과 푯말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변에 있는 군부대 사격장에서 세운 것으로 혹시 모를 오발탄의 위험 때문에 돌아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왼쪽 능선 아래가 사격장이니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 능선 아래로 우회한다.

미륵산성을 비롯해 정비가 진행 중인 미륵산과 달리 용화산은 정상석 하나 변변히 없다. 하지만 조망은 미륵산에 견줘 전혀 뒤지지 않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리랑고개 너머 우뚝 솟은 미륵산과 보디가드처럼 든든하게 미륵산 허리를 감싼 미륵산성이다. 미륵산성은 고조선시대 기준왕이 내려와 쌓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고려 태조가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석꾼과 만석꾼이 즐비했다는 익산의 풍요로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인데, 한편으론 일제 수탈의 전초기지가 되어야 했던 슬픈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내려서면 2m 남짓의 돌탑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으로는 아리랑고개, 정면으로는 용리산과 선인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다. 용리산 갈림길은 돌탑에서 내려서면 금세 나타난다. 표식은 없지만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선인봉, 오른쪽은 용리산 방향이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구간과 달리 이곳을 찾는 산꾼들은 거의 없다. 나무에 매달린 독도법 교육재료와 각종 푯말, 흔적들로 쉽게 들어서기 꺼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능선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산길에 낙엽만이 선인봉까지 따라온다. 내산마을과 석교마을로 내려서는 사거리를 지나 한 차례 얕은 오름짓을 하고나면 선인봉이다. 북쪽으로 조망이 뚫려 용화산에서 보던 넓은 평야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선인봉에서 내산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고 쌓인 낙엽은 미끄럽다. 안전에 유의하며 임도가 있는 곳까지 내려온다. 준비운동을 끝내고 본 게임을 치루기도 전에 마무리 운동을 하는 느낌처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집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싣는다.

 

*산행길잡이

서동공원-(20)-221-(25)-헬기장-(15)-용화산-(40)-선인봉-(35)-외산마을

익산 지도를 구할 수 있다면 한번 보라. 돌산(81m), 남당산(50m), 매봉산(32.5m), 우두머리산(19m)  100m도 되지 않는 수많은 산이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342m의 용화산은 익산시민들에게 더욱 소중하다.

이정표가 없지만 산굴이 단순해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능선상에서 식수를 구할 수 없지만 코스 자체가 짧다보니 특별히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해빙기에 땅이 녹으며 진흙탕이 되는 구간이 있으니 미끄러짐에 조심해야 한다.

서동공원에서 선인봉을 거쳐 날머리까지 약 7km의 산길은 특별히 어려운 코스가 없다. 다만 용화산에서 다듬재 갈림길을 지나 선인봉, 용리산 갈림길은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륵산이 가파른 능선, 각종 돌, 바위가 존재한다면 용화산은 완만한 능선과 부드러운 흙길이 특징이다.

용화산 단독 산행이라면 서동공원 원점회귀나 서동공원~아리랑고개 코스가 주요 등산코스며, 조금 길게 코스를 잡고 싶다면 용화산~아리랑고개~미륵사~미륵사지로 내려오는 코스나 선인봉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적당하다.

 

*교통

KTX가 지나는 익산은 교통의 요충지다.

용산에서 출발하는 KTX와 새마을호, 무궁화호까지 하루 50(05:20~23:10) 이상 운행한다. 센트럴시티터미널 호남선에서 출발하는 익산행 고속버스는 20~30분 간격(05:30~22:30)으로 있고 남부터미널에서는 18(06:30~20:30, 8500), 동서울터미널에서는 12(07:30~18:30) 다닌다.

 

*잘 데와 먹을 데

금마면 동고도리에 여관과 모텔 등이 있고, 미륵사지 앞에도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드라마모텔(063-831-1313), 미륵파크(831-2260).

미륵사지 근처에 있는 미륵산순두부집(835-7400)이 소박하지만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익산시내에서는 북부시장 근처에 위치한 북부생선(843-1181)도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에 얼큰한 생선탕이 일품이다.

 

*볼거리

미륵사지와 유물박물관 미륵산 아래 위치한 미륵사지와 유물박물관은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미륵사지는 백제시대의 절터로 백제 무왕 때 지어져 조선 중기 경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석탑과 당간지주가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데, 국보 제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석탑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 최대의 석조건축물이다. 현재는 탑 복원공사 중이다. 해체 후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어 탑의 건축과정을 알 수 있다. 미륵사지 한쪽에는 백제, 마한 시대 등의 유물들이 전시된 유물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익산보석박물관 왕궁보석테마관광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금관 등 유물들과 보석의 원료가 되는 대형 원석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각종 진기한 보석들을 볼 수 있다. 옆 건물엔 공룡모형과 각종 화석 등이 전시되어 있어 휴일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이 찾는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관람시간은 10:00~18:00, 성인 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063-859-4641.

 

익산 미륵사

금마면 용화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미륵사터는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무왕 2)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한층 유명하지만 부서진 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몇몇 유구(遺構)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발굴작업을 마치고 잘 정리를 해놓은 광활한 절터를 걸으면서 옛 절간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것 자체가 현재와 과거, 개인과 역사가 만나는 일이 될 수 있다. 일제에 의해 시멘트가 쳐발라졌던 그 유명한 미륵사 탑(서탑, 국보 제11)은 지금 해체 복원 중이라 거대한 천막에 가려져 있으며, 수년 전 복원된 동탑은 아직 세월의 때를 묻히지 못해 제법 생뚱스런 모습으로 절터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미륵사 박물관까지 둘러본 뒤, 그래도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절터를 내려다보고 있는 뾰족산 용화산에 한 번 올라 볼 일이다. 높이가 4백 미터를 겨우 넘으니 오르는 일도 어렵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의 세상이 다한 뒤, 이 세상을 새롭게 제도하는 부처가 미륵이다. 질병도 고통도 없는 그 영화로운 미륵 세상의 이름이 곧 용화세계이다. 수천 년 세월 동안 우리네 민초들이 미륵을 받들면서 미륵 오시는 때를 기다린 것도 모두 현재의 고단과 간난 때문이었다. 용화산 아래 대가람 미륵사가 앉았고, 머지 않은 모악산 품에 미륵 전당 금산사가 안긴 것만 봐도 이곳 익산 김제는 미륵신앙의 홈그라운드가 되는 영험스런 땅이다. 산 정상 우제봉 언저리에는 미륵산성이 있으며 그밖에 등잔암, 투구바위 등 볼거리가 있으며, 안질에 특히 좋다는 약수터며 사자암, 심곡사 같은 작은 절들도 있다. 미륵사 터를 출발하여 약수터를 지나 정상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된다.

 

전북 익산에 있었던 미륵사는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그 후에 괴이한 전설이 생겨서 나돌았습니다.

미륵사가 한창일 때는 스님들이 1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륵사 스님들은 하나같이 여색을 밝혀서 절 앞을 지나가는 여자들을 그냥 두는 법이 없었습니다.한번은 가까운 마을의 어떤 사람이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는데, 볼일이 있어서 자주 그 절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스님들이 딸을 고이 보내줄 것 같지 않아 고심하고 있던 차에 한 풍수가 나타나서 비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비법인즉-미륵사 주지는 천년 묵은 쥐인데, 고양이를 절 입구에 몰래 묻으면 절이 망한 다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풍수가 시킨대로 했더니 주지가 죽고 절이 망했습니다.

그때 고양이를 묻었다는 (괭이)무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 숭유배불시대에 불교를 탄압하고 부녀자들이 절에 못 드나들게 하기 위해 유림(儒林)들이 지어낸 전형적인 왜곡 전설이지요.

 

서동과 선화 공주의 사랑 이야기

백제 익산 땅에서 살던 서동(薯童, 마 캐는 소년)은 당대 최고의 미인인 선화 공주의 사랑을 얻는 게 소원이었다. 그는 경주로 가서 저잣거리 아이들을 얼러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도록 했고, 신이 난 아이들이 밤낮으로 거리를 휩쓸며 불러대는 통에 일약 신라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러자 선화 공주나 아버지 진평왕은 대단히 난처해졌다. 가사가 서동과 선화 공주가 연인임을 암시하고 있어서 존엄한 왕실의 체면을 구겼기 때문이다. 진평왕은 할 수 없이 선화 공주를 궁중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잣거리에서 불리던 노래와 그로 인해 불거진 헛소문 때문에 애지중지 키운 딸을 내치는 부모가 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게다. 아마도 진평왕은 소문이 커지자 소문의 진원지인 서동을 궁중으로 은밀히 불러서 한번 만나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젊은 친구가 보통이 아니어서 그의 두둑한 배짱과 범상치 않은 성격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 다음 진평왕은 선화 공주를 궁중에서 내보내 귀양 보낸다. 그렇게 내치면 둘이 저절로 만나 결혼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진평왕의 계획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서동은 귀양길을 호송해 주겠다면서 자연스레 선화 공주를 찾아갔고, 그 길로 고향인 익산으로 함께 내려가 소원대로 선화 공주와의 결혼에 성공했다

 

무왕과 선화 공주의 발원으로 세워진 미륵사

삼국유사에는 서동의 드라마틱한 청년 시절 이야기 외에 후일담도 실려 있다. 서동은 이처럼 탁월한 지략과 두뇌를 바탕으로 왕위에까지 올랐고, 불심이 돈독한 두 사람은 종종 함께 익산의 용화산 정상에 있는 사자사를 찾곤 했다. 서기 600년의 어느 날, 무왕과 선화 공주가 여느 때처럼 사자사로 향하는 도중 용화산 입구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솟아 나오는 이적이 일어났다. 감동한 선화 공주는 무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울 것을 부탁하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미륵사다. 일연 스님은 이 미륵사의 규모를 금당과 탑, 그리고 회랑을 각각 세 곳에다 지었다(殿塔廊 各三所創之)”라고 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왕과 선화 공주의 발원으로 세워진 미륵사는 미륵 신앙의 성지로서 고려시대까지 이 땅의 대표적 도량으로 법등을 이어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선시대 중기 무렵쯤에는 탑이나 당간지주 같은 석조물만 남은 채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황무지처럼 버려졌다. 탑도 앞서 말한 것처럼 본래는 9층탑 세 개가 있었으나 언제인가 동탑과 중앙탑은 뿌리까지 없어져 버렸고 드넓은 절터에는 서탑만 외롭게 서 있는데 그나마 조선시대에 꼭대기가 무너져 버려 지금은 6층만 남아 있다. 17세기의 선비 강후진이 쓴 기행문 와유록 나이 지긋한 촌로가 미륵사 탑에 올라가 비스듬히 누운 채 곰방대를 뻐끔뻐끔 물고 있더라는 얘기가 있다. 목가적 풍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역사의 무상함을 전해주는 스산한 겨울 풍경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천 년의 영화는 간곳없고 절터만 남았어도, 미륵사는 동양 최대의 석탑이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 자리한 곳으로 미술사와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는 꼭 가보아야 할 성지처럼 인식된다. 게다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발굴을 통해 방대하고 다양한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우리 불교문화사를 한층 풍성하게 해준 황금 어장이자 보물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1, 미륵사지 서탑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사리장엄이 나왔다. 유물들의 면모가 금제 사리호, 은제 사리합 등 하나같이 국보급인 데다가, 무왕 때 봉안된 것이 틀림없어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건만 씁쓸한 뒷말들이 나와 개운치만은 않았다. 논란의 발단은 사리장엄 중 하나인 금판 앞뒤로 새겨진 글씨 중 특히 다음과 같은 부분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我百濟王后 佐平沙?積德女 種善因於曠劫 受勝報於今生 撫育萬民 棟梁三寶 故能謹捨淨財 造立伽藍 以己亥年正月卄九日 奉迎舍利

이 글의 핵심은 한마디로 639년 왕후인 백제 사택 씨의 딸이 사리를 봉안했다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600년에 선화 공주의 발원으로 미륵사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달라 보인다. 이 때문에 삼국유사의 기록을 심각하게 부정하는 주장이 나오고, 심지어는 고대 국경을 뛰어넘은 숭고한 연가인 백제 왕자 서동과 신라 공주 선화의 사랑 이야기는 하루아침에 허구가 되어 버렸다. 기존의 무왕 관련 서동요 전설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삼국유사를 아끼고 일연 스님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불교문화의 금맥인 삼국유사하지만 금판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삼국유사의 기록이 부정될 이유는 없다. 미륵사 창건 연도가 600년에서 639년으로 바뀐 것은, 미륵사처럼 대규모 사찰이 불과 몇 년 만에 완성될 리가 없으니 일연 스님이 말한 600년이란 착공 연도이고 금판에 나온 639년은 그 완공 연도로 볼 수 있다. 미륵사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부여 왕흥사만 해도 35년 만에 완성되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또 왕후가 백제 사택 씨의 딸로 적혀 있다고 해서 선화 공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 미륵사가 완공된 것은 처음 선화 공주가 발원했던 때보다 무려 39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선화 공주가 스무 살에 무왕과 혼인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때는 이미 환갑을 바로 앞둔, 당시로서는 고령의 나이였다. 그런즉 금판에 그녀의 이름이 빠져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또 당시 적대 관계였던 백제와 신라가 왕실 간 혼인을 할 수 있을 상황이 아니라며 일연 스님의 기록 자체를 허무맹랑한 짓으로 돌리려는 말도 그 자체가 맹랑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493년에 백제의 동성왕과 신라 이찬(伊飡) 비지(比智)의 딸이 결혼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무령왕의 부인 역시 신라 지증왕의 딸일 가능성이 있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는 만큼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옛 사람들은 애독서를 수택본(手澤本)이라고 불렀다. 좋아하는 책을 한복의 풍성한 소맷자락 안에 넣어 두고서 어디서든 틈나면 꺼내 읽느라 겉표지가 반들반들해졌다는 뜻이다. 나 역시 거의 30년 전부터 삼국유사를 읽고 있으므로 나의 수택본은 삼국유사인 셈이다. 지금도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올려지곤 하니, 나로선 이 책이 우리 불교문화의 금맥처럼 느껴진다. 우리 학계에서는 불교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무조건 역사가 아닌 설화로 보려는 악습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설화는 설화일 뿐이라며 삼국유사 이야기를 부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일연 스님이 이건 설화처럼 써야지!’ 하고 무왕과 선화 공주 이야기를 삼국유사에 허구로 썼겠는가. 당시까지 전해지던 사실을 애써 모아 후세에 전해준 것이건만 오늘의 우리는 그 노고를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흠잡으려고만 드니, 무왕과 선화 공주는 물론이고 일연 스님은 또 얼마나 섭섭해 할까.

 

익산 심곡사

심곡사는 사찰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시대에 무염대사(無染大師)가 수도할 장소를 찾던 중 미륵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절을 세움으로써 심곡사(深谷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심곡사가 위치한 미륵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 서동(薯童)왕자인 무왕(武王)이 백제의 부흥을 꿈꾸며 세웠던 미륵사가 자리잡은 곳이기도 하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와 함께 미륵산을 찾아가는 도중에 미륵삼존(彌勒三尊)을 알현하고 창건하였는데, 심곡사가 창건될 당시에도 상당한 규모의 거찰로 사격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륵산 일대가 미륵신앙의 도량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미륵사는 폐사되어 창건 당시의 석탑인 미륵사지석탑과 통일신라 때 세운 당간지주와 초석만 남아있지만, 창건 당시 소규모의 가람으로 출발한 심곡사는 그 법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 하다.

 

관람포인트

1. 심곡사는 최근에 미륵대불을 봉안함으로 미륵도량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2. 단출한 사찰이지만 칠층석탑과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 명부전 소조지장보살좌상 및 권속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옛 도량의 면모를 말해주는 듯하다.위치

심곡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176번지 미륵산 기슭의 장암마을 위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063-855-2001)

 

찾아오는 길

자가용편호남고속도로 익산IC에서 빠져나와 720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익산으로 접어들면 약 5km 지점에 금마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우회전하면(1km 정도) 금마읍이다. 금마읍을 지나 722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미륵사지 방향으로 가다보면 종평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다시 우회전하여 낭산방향으로 약 5km 가면 장암마을이 나온다. 심곡사는 장암마을 안쪽 미륵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을에서 절까지의 거리는 대략 1km 남짓이다.

 

대중교통편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함열역익산역 또는 익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나 버스편을 이용하면 된다. 함열역 부근에서는 거리가 다소 가까운 편이므로 택시를 타는 것도 좋으며, 익산역 또는 익산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할 경우에는 터미널에서 낭산장암마을행(30, 60-2) 버스을 타야 하며 배차간격은 2시간에 한 대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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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7:20

대동금남정맥 2차 산행으로 저번에 산행이 끝이 난 논산 가야곡면 삼전리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석천마을을 잇는 고개인 말목재를 가기 위해선 논산으로 가야한다. 논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을 찾다보니 직행버스는 곧장 논산으로 가는 편은 없고 대전을 경유해서 가야 한다. 대전에서 7 20분차를 타야 하는데 청주에서는 가능한데 천안에서 시간이 안 되기 때문에 부득불 열차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 열차도 고속열차가 개통을 하며 이른 시간대의 차가 많이 감차가 되어 천안에서 7 44분 조치원에서 8 04분 출발하여 논산역에 9 11분 도착하는 편이 가장 빠르다. 오늘 이 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7 20분 출발을 한다.

 

말목재(해발 약230m) 10:00 ~10:03

청주에서 승용차로 조치원역으로 향하는데 적막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열차가 30분이 늦는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열차까지 늦는다. 조금이라도 빨리 산행을 시작하여야 하는데 더 늦게 생겼다. 조치원역에 도착을 하니 7 50분이다. 상행열차는 조금씩 늦는데 하행 열차가 많이 늦는다. 지루하게 기다려 30분이 늦어 오는 열차를 타고 논산으로 향한다. 고속열차로 손님이 옮겨 갔는지 차내는 썰렁할 정도로 한가하다. 신탄진 서대전 계룡을 정차한 후 조치원역에서 1시간 5분 후 논산역에 열차가 정차를 한다. 논산역에 내려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논산역 구름다리가 구조가 이상해서 북쪽에서는 계단으로 오르는 곳이 없어 한참을 내려가서 남쪽 편에서 계단으로 올라야 한다. 매우 불편한 구조이다. 논산역 앞으로 나오니 택시는 많이 서 있다. 금시 택시를 잡아타고 말목재로 향하니 논산역에서 18분이 소요되어 말목재에 도착한다. 택시비 18000원이 나온다.

 

옥녀봉(삼각점, 1.47km, 해발 411m) 10:40

말목재에서 잠시 산행준비를 마친 후 10 03분 산행을 시작한다. 축사 옆을 지나 석천교회 앞에 닿은 후 교회 앞에서 우측으로 작은 채마밭으로 조금 들어가면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선 후 산 능선을 따라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 10여분 후 해발 약300봉에 닿는다. 작은 돌무더기가 있다. 이쯤에 올라서면 산 아래로 석천마을 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계곡사이로 축사들이 여러 채 보이고 저번구간에 넘어온 까치산이 바로 앞쪽으로 보인다. 300봉에서 살며시 내려선 후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점점 고도를 높이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간간이 가시넝쿨이 잡아 당기기도하고 잡목사이를 빠져나가며 높다란 봉에 올라서니 해발 약 450봉으로 첫 번째 봉인 옥녀봉보다 40m 정도가 더 높은 봉이다. 이봉 나뭇가지에 옥녀봉이 아니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봉에서 잠시 가파르게 내려서고 다시 5~6분을 더 오르면 오늘의 첫 번째 봉인 옥녀봉 정상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삼각점 안내문이 있으며 정상석은 없으며 아스테지판으로 만든 정상표지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조망은 좋지 않다.

 

소룡고개(아스팔트도로, 3.82km, 305m) 11:22

옥녀봉에서 내려서기 시작하며 가시 잡목길이 시작된다. 능선 좌측 산 아래로 마을이 가끔씩 보인다. 멀리 함박산 아래로 길다랗게 능선을 따라 가꾸어 놓은 산소들이 보인다. 옥녀봉에서 10분을 잡목과 풀섶을 헤치고 가면 63번 송전탑이 있는 범허리재라고 하는 고개에 닿는다. 이 고개에서 좌측으로 운산리 상호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좋다. 우측 삼전리 방향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고개를 지나고 오르는 능선으로 박격포 피탄지라고 해서 철조망이 쳐져 있고 접근금지 알림판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육군부사관학교 사격장이 이 산 아래 있는지 지금도 따콩따콩 총소리가 요란하다. 송전탑에서 약 3분을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 길은 가야곡면 매화산 정토산 방향이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10분 정도를 더 가서 함박봉이 나온다. 긴 의자가 하나 있고 여러 개의 표지기 들이 붙어 있으나 삼각점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봉 또한 조망은 좋지 않다. 함박봉에서 능선을 따라가면 10분이 좀 더 지나 좌측으로 하산로가 나온다. 곧 능선 아래로 산소가 있고 그 아래쪽으로 가까이 농로길이 보이며 마을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 10여분을 더 가면 가느다란 줄이 매여져 있는 가파른 길을 내려가 넝쿨로 얼켜진 굴을 빠져나가면 도로옆 철조망이 쳐져 있는 곳으로 좌측으로 빠져나가 세멘트벽을 내려서면 소룡고개로 아스팔트포장도로다. 이 고개는 논산 연무읍에서 완주군 화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화산면에서는 대아저수지가 있는 고산이 가깝다.

 

고내곡재(세멘포장고개, 성황당, 우 양촌 고내리, 좌 운산리 금평마을, 5.67km, 250m) 11:57

소룡고개에서 오르는 능선 길은 매우 좋다. 널찍하니 능선길이 정비가 되어 있으며 간간히 의자를 만들어 놓았으나 나무는 다 썩어 없어지고 받침대 철주만 남아 있다. 길도 가파르지 않고 서서히 올라서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올라 설수 있다. 소룡고개에서 15분을 조금 못가 사각으로 된 정자가 나온다. 이 정자도 많이 썩어 있다. 사용하긴 다시 보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어렵다. 정자가 있는 곳은 예전에 성터였는지 아직도 돌담이 남아 있다. 성터로 오르면 삼각점이 있고 안내문이 있는 널찍한 봉으로 옆 나무기둥에 성태봉이란 표지판이 있다. 정상 아래로 비문이 있는 묵묘를 지나 내려서기 시작하면 좌측으로 벌목을 하여 조망이 좋아 진다. 잠시 내려서면 능선 좌측으로 운산리 상호마을이 보이고 능선 아래로는 둥그런 지붕이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저기 보이는 도로를 따라 나가면 5차원학습법으로 유명한 원동연박사가 세웠다는 사립학교인 세인고등학교가 있다. 곧 안부사거리가 나오면 조금 전 보이던 둥그런 지붕이 있는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안부 사거리를 지나 2분 후 다시 안부 사거리를 지나고 다시 10분 정도를 더 가면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지나 좌측으로 따스한 지점에 자리 잡은 산소를 옆으로 지나면 곧 가느다란 줄이 매여져 있는 곳으로 내려서서 세멘포장 임도고개인 고내곡재에 닿는다. 고내곡재에서는 우측으로 고내리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고내저수지가 있으며 좀 더 나가면 논산고속도로 분기점이 있는 곳이다. 좌측으로는 운산리 금평마을을 지나 세인고등학교가 가깝다. 고개 한쪽으로는 커다란 신갈나무에 울긋불긋한 끈이 매여 있고 꽃을 매달아 놓은 성황당이 있다.

 

누항재(비포장임도고개, 고개아래 여산-화산간 천호터널, 8.28km, 280m) 12:47 ~13:11(점심식사)

고내곡재에서 성황당 옆으로 잠시 가파르게 오르면 이후 등산로는 완만하게 이어진다.  4분을 오르면 해발 약270봉으로 이봉에서 등산로는 우측으로 방향이 꺽어져서 간다. 3분후 좌측으로 샐목이라고 하는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고 다시 5분을 더 가면 좌측으로 누항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고 나서부터 산길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갑자기 오르막길이 나오니 힘이 배는 더 드는 것 같다. 헉헉 숨소리 높여가며 12분 정도를 올라가니 지도에 표시된 350봉에 닿는데 트랭글은 이보다는 10m는 더 높게 나온다.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이보다 조금 낮은 해발 약355봉을 지나 잡목 넝쿨 길을 헤집고 진행하면 오래도록 다니지 않은 안부고개에 닿는다. 좌측으로 임도가 가까이 보이는 곳이다. 이 고개를 지나 오르면 여기는 더욱 길이 나쁘다. 찔레넝쿨이 걸리고 잡목이 걸리고 이리저리 헤치고 나가기가 쉽지를 않다. 이렇게 가다보면 고사목 한그루가 서있는 해발 약 323봉을 지나 약 8분후 비포장 임도고개인 누항재에 닿는다. 누항재 아래로는 여산에서 화산면 경천면 고산으로 가는 천호터널이 지나고 우측으로 멀지 않은 곳에 여산휴게소가 있다. 누항재에서 송전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 점심식사를 한 후 진행한다.

 

천호산 정상(삼각점, 헬기장, 9.75km, 해발 501m) 13:49

누항재에서 송전탑으로 올라서면 국가지점번호 다마 6594-8415번이 적혀 있는 50번 송전탑을 지나고 잠시 앉아서 점심식사를 한 후 출발하면 잠시 후 채석장으로 보이는 바위절벽이 있는 계곡위 안부고개로 내려선다. 이 고개 우측편 어딘가에 천연기념물 제177호인 천호동굴이 있다는데 이미 아름다운 석순은 굴이 열리면서 무분별하게 잘려나가면서 부득이 굴을 폐쇄조치하면서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으며 2011면 뒤늦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설정됐다고 한다. 안부를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가시잡목 길로 금시 찌를 것 같은 날카로운 가시가 돋힌 꾸찌뽕나무들이 즐비하니 있다. 이곳을 지나고 나면 커다란 풀섭 길로 한동안 헤치고 올라야 한다. 15분 정도를 나쁜 길을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가족묘로 보이는 여러기의 산소가 있고 산소아래까지 임도가 난 것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고 3분을 더 가면 나무기둥위에 써놓은 작은 이정표가 나온다. 성채골, 미사굴, 천호산등이 표시되어 있으며 좌측으로 여기서 내려간 길이 있다. 이곳을 지나며 부터는 길이 좋아 진다. 작은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3분 정도를 오르면 우측 여산 쪽으로 고속도로 휴게소가 보이고, 산 아래로 오래된 사찰인 문수사, 백운사, 백련암등 사찰이 내려다보인다. 이후 5분 정도를 더 오르면 천호산성 안내문이 있고 좀 더 오르면 삼각점과 안내문이 있고 널찍한 헬기장으로 된 천호산 정상이다. 정상 헬기장에는 억새풀이 꽉 자라나 있어 헬기장인지 풀밭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한쪽에 천호산 정상 500m라 적은 정상목이 서있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우측으로 한다. 좌측은 천주교 묘지방향이다.

 

문드러미재(좌 비봉면 천호마을, 우 여산 호산리, 12.16km, 260m) 14:37

천호산에서 내려서는 등산로는 매우 좋다. 쉼터를 지나고 좀 더 가면 이정표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천주교묘지방향으로 하산로가 있다. 이곳 이정표에 천호산 정상 279m가 적혀 있다. 이곳을 지나며 등산로는 거의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잠시 오르면 헬기장으로 해발 약470m. 헬기장에서 내려서고 다시 오르면 한자로 자와 비슷한 글이 새겨진 표지석이 있는 봉이다. 이봉을 지나서 약 30초를 못가 좌측으로 천호경로당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고 5~6분을 더 가면 해발 약 420봉으로 이곳으로 가면서 좌측으로 비봉면 내월리 방향으로 마을들이 간간히 보이며 길게 이어지는 골짜기 농토에는 비닐 하우스들이 많이 보인다. 420봉을 지나고 6~7분을 가면 해발 약385m인 갈매봉이 나오지만 트랭글은 울리지 않는다. 산경표에는 이봉을 갈매봉이라 하는데 실제는 저기 앞에 보이는 봉이 갈매봉인듯하다.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게 되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으로 이봉에서 트랭글이 갈매봉이라고 울어댄다. 감시초소 한쪽에 갈매봉이라 적은 표지판이 떨어져 있다. 실제의 갈매봉과 차이가 있는 곳으로 표지판에는 고도가 30m정도 낮게 표시된듯하다. 이봉에서 내려서면 앞쪽으로 나지막한 봉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멀리 용화산 아래 왕궁저수지가 보이고 산 아래 여산에서 문드러미재를 거쳐 비봉면 내월리로 가는 도로가 지나는 것이 보인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에서 약 11분을 내려서니 문드러미재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임도길이 천호산 아래로 이어지고 문드러미재 표지석에는 천호성지 4km, 나바위성지 22.5km가 적혀 있다.

 

양동고개(아스팔트도로, 14.52km, 95m) 15:20

문드러미재에서 길 건너 능선으로 오르면 송신탑이 있고 조금 더 오르면 폐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이후 조금 더 가면 앞이 훤히 트이는 산소가 나온다. 앞쪽으로는 고속도로가 지나는 것이 간간이 보인다. 잠시 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한동안 나지막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10분을 가면 능선아래 호남고속도로 생태통로가 나온다. 생태로 북쪽으로 여산휴게소 2km가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생태통로를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한동안 가파르게 올라 해발 약 170봉에 닿는다. 이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좌측으로 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 많은 벌통이 보이는 곳을 지나면 갈매봉에서 내려오며 멀리 보이던 왕궁저수지가 가까이 보이는 곳에 닿는다. 이후 조금을 더 가면 아스팔트포장도로가 나온다. 이도로는 여산에서 금마로 넘어가기 전 연명교차로에서 왕궁저수지 쪽으로 넘어는 가는 도로로 양동고개다. 이 고개 남쪽 왕궁저수지 쪽으로 넘어가면 익산 톨게이트가 부근에 있고, 북쪽으로는 여산이 가깝다.

 

쑥고개 생태통로(17.26km, 105m) 16:20

양동고개에서 왕궁저수지 방향으로 표지기 몇 개가 있는 곳으로 오르면 잡목사이를 비집고 능선에 닿는다. 능선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잠시 지나기가 어렵다. 산 우측으로 쭉 뻗은 삼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커다란 집이 있으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잠시 철조망지대를 벗어나면 조성된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기독교인공동묘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도 들고 물도 마신 후 출발하면 4~5분후 임도고개에 닿는다. 임도고개를 지나 아카시아 나무 듬성듬성 나 있는 골짜기를 따다 올라가면 능선부근에서 임도가 나온다. 여기서 능선으로 올라서서 가도 되고 임도를 따라가도 된다. 우리는 임도를 따라 간다. 임도를 따라가며 좌측으로 조망이 매우 좋다. 천호산에서 부터 지나온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산 아래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마을들이 보인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시골의 풍경을 여기서 본다. 이후 임도끝 부근에서 능선으로 올라서서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고 다시 3분을 더 가면 나무를 잘라 길게 의자를 만들어 놓은 쉼터봉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무심코 좋은 길을 따라 내려서니 행선길 훈련원이라 적은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다가 산경표를 보니 에고 마니 벗어 낫다. 이 길을 따라가면 원불교 훈련원이 있고 영모공원이 있으며 시대산을 거쳐 왕궁저수지로 가는 길이라 좋았던 것을 몰랐다. 여기서 적막님은 다시 돌아 올라서 원 길을 찾아 가고 난 그냥 이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가는 우회길이 좋길래 이 길을 따라 가니 몇 분후 용화리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닿는다. 이곳에서 능선으로 올라 간 길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길은 없다. 다시 용화리 마을로 내려가니 마을 가장 위부근 집이 있는 곳 골목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대나무숲 옆으로 올라가니 위로는 송전선이 지나고 내려다보면 용화리 마을과 끝없이 이어지는 송전선이 보인다. 잠시 올라서서 36번 송전탑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서 원 능선 길을 따라 나지막한 봉을 넘어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적막님이 앞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곧 내려서니 커다란 도로가 지나는 것이 보이며 좌측으로 생태통로가 보인다. 생태통로를 지나 파밭을 지나면 용화리에서 올라온 쑥고개 구 길이 나온다. 샛노랑 은행잎이 바닥을 덮어 물감을 드린 것 같다.

 

용화산 정상(19.25km, 342m) 16:57 ~17:02

쑥고개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10분을 못가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 이정표에 능선 반대편 넘어로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3.1km, 대나무숲길 1.9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대나무숲길 방향으로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가면 쉼터를 지나 한동안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10여분 후 이정표가 있는 능선사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좌측으로 대나무숲길 1.2km가 적혀 있다. 우측은 원수제 방향이다. 여기서 1분후 안부사거리를 지나고 이제부터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가파르게 오르는 길에 몇 개의 꾸찌뽕 나무가 보이고 빨간 열매가 떨어진 것이 몇 개 보인다. 이곳으로 지나오며 느타리버섯 몇 개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따지 않았다는 적막님 다시 가서 따오라고 하니 가지 않는다. 이제 점점 가파르게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은 헬기장을 지나 금마저수지 서동공원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로 돌아서 올라가면 용화산 정상으로 여기 지도에는 전망대로 표시된 곳이다. 여기서 직진으로 오르면 곧 헬기장에서 올라온 길과 합쳐져 곧 용화산 정상 전망대가 있는 봉에 닿는다. 이봉 아래 321봉을 용화산이라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으나 실제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전망대이다. 실제 용화산 정상은 이곳이다. 지도에 높이가 상당히 잘못 표시되어 있다. 용화산 정상의 높이는 342m가 맞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물도 마시고 간식도 잠시 들면서 구름사이로 들어가는 해를 맞이하고는 하산을 하기 시작한다.

 

다듬재(21.88km, 155m) 17:40

용화산에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아주 편안한길이다. 능선 좌측 편으로는 사격장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어 접근을 막았다. 10여분을 가면 지도에 표시된 용화산으로 아무런 표시도 없는 작은 돌들 몇 개가 있는 전망대다. 여기서 바라보는 미륵산의 모습이 이제는 시커먼 큰 덩치로 보인다.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와 주변을 금시 구분하기 어렵다. 여기서 바위지대를 내려서면 잠시 후 쌓다만 돌탑이 있고 다 쌓은 돌탑 1기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좀 더 가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정면으로 곧장 가면 용리산으로 예전에 미륵산을 거쳐 용리산을 다녀서 용화산을 거쳐 금마로 내려간 적이 있어 여기는 눈에 익다. 여기 이정표에 용화산 정상 1km, 아리랑고개 1.6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내려서기 시작하면 길은 좋다. 여기서도 능선 좌측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어 접근을 막았다. 이길을 따라 약 20분을 가면 정찰감시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삼거리 길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5분을 더 가서 아스팔트 도로인 다듬재가 나온다. 일명 아리랑고개라고 하는 곳으로 우측으로는 심곡사가 있는 낭산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금마로 가는 길이다.

 

미륵산 정상(23.38km, 해발 429.6m) 18:30 ~18:33

다듬재에서 미륵산으로 향한다. 이정표에 미륵산성 0.5km, 미륵사지 4.5km가 적혀 있다. 이후 오르게 되면 10분을 좀 더 올라 삼거리에 닿는다. 예전에 미륵산에서 좌측 계곡 쪽으로 내려섰다가 이곳으로 나왔었다. 여기 이정표에 미륵산성 0.1km, 장암마을 3.3km가 적혀 있으며 미륵사지 4.9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우측 등산로 방향으로 오르면 4분후 미륵산성 가장 아래쪽 끝 지점이 닿는다. 산성옆길을 따라 오르면 몇 분후 산성위로 올라서서 능선을 따라 오르게 된다. 점점 올라 바위슬랩지대를 오르고 로프가 매여져 있는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서면 지도에 우제봉 405m가 적혀 있는 봉으로 우측으로 가면 송신탑을 지나 심곡사로 내려서는 길이고, 미륵산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서 가면 된다. 우리는 이봉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도 들고 후레쉬를 준비하고 핸드폰 배터리로 바꾸고 야간 산행모드로 전환을 하여 미륵산으로 향한다. 미륵산으로 향하는 길은 길이 좋아서 산소를 지나고 잠시 더 오르면 10분을 못가서 미륵산 정상에 닿는다. 미륵산 정상은 발굴작업이 시행되고 있는지 줄을 친 흔적이 있으며 삼각점은 스텐레스판으로 잘 만들어 놓았으며, 삼각점 안내문도 잘 세워져 있다. 정상은 돌탑으로 되어 있으며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정상석은 없으며 스텐판으로 세워져 있으나 글씨가 지워져 있는 것을 볼펜으로 다시 적어 놓았다. 이정표 가운데 해발 430.2m가 적혀 있으며 심곡사 0.6km, 아리랑고개 1.5km, 기양제 2.410km, 약수터 0.990km가 적혀 있다.

옥수도예 사거리(25.98km, 60m) 19:28

미륵산 정상에서 정면으로 넘어서서 내려서면 가파르게 내려서게 된다. 내려서는 길 옆으로 모노레일이 만들어져 있어 물건을 미륵산으로 싫어 오르고 있다. 오늘 밤중인데도 내려서는 중 윙윙소리가 나서 살피며 내려서는데 모타가 달린 수레가 물건을 잔뜩 싣고 오르는 장면이 목격이 되며 몇몇 분들은 걸어서 오르고 있다.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나지막한 곳에서 테크 길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장항교 방향으로 가는 길이 있고 석불사거리는 테크 길을 따라 가면 된다. 몇 분을 가면 테크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는 널찍한 길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은 미륵사지 2.1km, 우측은 장항동마을, 정면으로 간재선생묘소 1.7km가 적혀 있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능선으로는 길이 매우 좋다. 5분을 따라가면 좋은 길은 기양저수지 방향으로 가고 정맥 길은 우측으로 간다. 여기 이정표에 간재선생묘지 1.2km, 좌측으로 기양저수지가 적혀 있다. 여기서 솔잎이 노랗게 떨어진 우측으로 길을 따라가면 4분후 안부 사거리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여기서 간재선생 묘소는 우측으로 빠지고 능선을 따라가면 잘 가꾼 산소지대를 내려서서 곧 임도 길에 닿는다. 여기 임도 길에 표지기 몇 개가 붙어 있으며 둘레길 간재선생길이란 표지목이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곧 이정표가 나온다. 미륵사지3.4km, 간재선생묘소, 죽청마을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능선으로 길게 생긴 논이 보이고 건너편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논 끝 지점에서 내려서서 풀밭을 지나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커다란 느티나무로 보이던 곳에 닿는다. 이나무는 느티나무가 아니라 커다란 버드나무다. 버드나무 옆으로 집이 한 채 있고 집앞쪽으로 나가니 세멘트길이 이어진다. 가면서 민가를 지나고 다시 민가를 지나면 옥수도예 간판이 있는 아스팔트 사거리에 닿는다.

 

석불사거리(27.06km, 40m) 19:44 ~20:19

옥수도예 사거리에서 건너편 도로를 따라가면 인삼밭을 지나고 2분후 산소 위 임도에 닿는다. 여기서 임도 길을 따라가면 인삼밭을 지나고 불빛이 요란하게 보이는 곳에서 감나무밭으로 빠져나가면 삼기주유소에 닿는다. 삼기 주유소에서는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가면 석불사거리로 가면서 익산으로 가는 60번 버스와 마주치고 석불사거리에 닿으니 잠시 후 함열로 가는 버스가 지나고, 잠시 후 황등 쪽에서 온 39번 버스를 물어보니 강경으로 간다고 한다. 조금 전 보았던 황등 쪽으로 가는 버스가 익산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셋방향의 버스를 눈 크게 뜨고 보내고는 가만히 생각하니 강경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탈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강경역에서는 용산으로 가는 새마을호가 정차를 한다고 하는데 몰랐다. 이렇게 하여 함열에서 용산으로 가는 막차를 타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에 가게방 유리문에 적힌 하멸방향 8 24분차를 기다려 보고 안 오면 택시를 부르자하고 기다리니 8 19분 버스가 오고 있다. 이 버스를 타고 함열로 향하니 공단지역 길을 좌측 우측 어지럽게 가더니 함열 까지는 14분이 걸려 도착을 한다.

 

함열에 도착을 하여 함열역을 확인하니 버스에서 내려서 5분 거리 안에 있다. 역을 확인하고는 다시 나와 큰길가 골목 안으로 보이는 왕궁뼈다귀 집에서 김치찌개를 시켜서 먹자니 시원하고 맛이 꽤 좋다. 배불리 먹고 적막님이 준비한 저녁밥 퀴노아영양밥을 덤으로 더 먹고 나니 배가 넘 부르다. 모처럼 맛있는 김치찌개 잘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함열역에 도착하여 표를 끊으니 조치원까지 6700원이다.

화장실 간 적막님이 시간이 되어 안 오기에 내도 화장실에 가보니 깔끔쟁이 적막님 신발청소에 열중이다. 에구 나도 잠시 신발정리하고 좀 있자니 열차시간이 되어 열차를 타고 1시간 20분후 조치원역에 도착하여 집에 돌아오니 하루를 넘기지 않은 23 30분이다.

 

오늘도 산행 즐겁게 잘했다. 날씨가 청명하지는 않았으나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함께한 적막님 수고 많았습니다.

다음 산행 할 수 있는 날 알려주세용~~

 

산행시간 : 9시간 42분 소요

산행거리 : 27.06km

 

조치원역 ~논산역 열차비 : 5600

논산역 ~말목재 택시비 : 18000

석불사거리 ~함열 버스비 : 1300원씩

함열 저녁식사 : 12000

함열역 ~조치원역 열차비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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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금남정맥2 말목재~천호산~용화산~미륵산~석불사거리

 

갈 때

조치원역 ~논산역 : 08:04 ~ 09:11, 08:26 ~09:30, 08:48~09:52, 09:05~10:13(5400)

*406번 가야곡 논산역 9:15, 204 9:24, 201 9 36 (논산역 ~연무시외버스정류장)

*연무시외버스정류장 ~말목재 : 11.68KM 041-742-7982

 

말목재(석천교회, 석천정류장) ~연무대 : 11.79m 택시 15000(연무대콜택시 041-741,742-7982)

말목재(석천교회, 석천정류장) ~논산역 : 16.5km 408번 버스, 401번 버스(가야곡 환승)

= ~논산시외버스터미널 : 16.75km

408번버스노선도 : 논산역우체국화지시장오거리시외버스터미널관촉4거리기민중(보건 소옆)관촉사성평리두월리가야곡왕암리삼전리

종점 : 6:40, 11:30, 13:20, 14:50, 20:35 40분소요

기점 : 7:10(보건소), 10:50(보건소), 14:20, 15:50, 17:30, 19:20, 21:05

(논산콜택시 041-741-3800, 736-4400, 733-1005, 734-3500)

1 10(논산역 - 석천정류장 : 1시간3) 06:10 06:40 08:00 09:40 11:20 13:20 14:50 16:30 18:10 20:35

 

 

청주~논산 : 08:45, 15:30 2시간소요 9600원 청주 ~대전 : 6:20 50 3800

동대전~연무대 : 07:20, 08:30, 09:30, 10:40, 11:30 1시간 소요 3500

 

올 때

쑥고개(용화경로당) ~익산역 : 17.21KM

쑥고개 ~익산역 : 용화리 정류장 222-1 익산역 까지 1시간 소요, 쑥고개~용화경로당 약 750m

익산역 ~다듬재 : 12.84KM(60-2, 함열쪽으로 가도 됨, 구룡정류장~835M~베데스다기도원~853~산북리)

함열~금마~익산역 :9:41, 16:07, 19:48

(다듬재~종평삼거리 약3KM, 금마공용버스터미널 4.64KM)

(익산~금마:좌석222-1, 555, 65,61,41) 금마택시 063-836-9403,3455,9433,7888

함열역~조치원역 ; 18:59 ~20:21, 21:39 ~22:58 함열택시 063-861-0014,1550,2323,3434

익산역~조치원역 : 17:06~18:39, 17:22~18:52, 18:46 ~20:21(7800), 20:28 ~21:57( 11600), 21:27~22:58

익산역~오송역:18:30(천안아산),18:50(=),19:19,19:37,20:00(=),21:14,22:40~23:06~23:12,23:23(=), 천안아산 22:15

석불사거리~익산역 ; 39.60,39-1(1시간), 석불사거리~함열역(8.24KM) : 60,48.60-1(30)

 

거리표

말목재~1.5~옥녀봉~2.5k~소릉고개~2.1k~고내곡재~3.1k~누황재(740 지방도) ~1.4k~천호산~2.5k~741 지방도~2k~호남고속도 굴다리~2k~쑥고개~2k~1번국도~2k용화산~2.5k~다듬재~1.7k~미륵산~3k~옥수도예~1.6k~석불사거리

 

금남(금강)기맥 제2구간 말목재-옥녀봉-소룡고개-고내곡재-작은독고개-천호산-쑥고개

말목재(210)-1.5km-옥녀봉전위봉431m-옥녀봉(411.7m)-1.2km--함박봉(402m) -1km--소룡고개(310)-1.8km- 성태봉371.3m-고내곡재(250)-2.5km(작은고개,태백이산)-작은독고개(290)-1.5km-천호산(500m)-3.5km(헬기장,갈매봉350m,산불감시초소)-문드러미재)-호남고속도로(130)-2.8km양동고개(90))- 쑥고개,1번국도(90)(0.5km-용화리) (용화리 정류장 222-1번 익산역 까지 1시간 소요, 쑥고개~용화경로당 약 750m) -2.7km삼각점,휴식터,상양마을갈림길)-용화산(342m)-2.7km돌탑,(다듬재,아리랑고개,미륵산성,헬기장)-미륵산(430m)-3km -삼기가든-석불사거리

거리/소요 시간 : 도상거리 27.5km, 9시간 4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