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0851 지리 화대종주 2015.05.22.~23. 금~토 구름 많음

산야0 2023. 1. 17. 18:10

지리 화대종주

2015.05.22.~23. ~토 구름 많음

참석인원 : 뽀빠이, 맨발의 청춘, 장군아빠, 장뜰, 산야

 

청주 집 출발 20:30 -가경중학교앞 20:50 ~21:00 -청원톨게이트 21:35 -여산휴게소 2220 ~22:33 -구례화엄사 톨게이트 23:29 - 구례식당 23:38 ~00:17 -화엄사 앞(해발 약230m) 00:25 ~00:35 -다리1.2(1.51km, 390m) 00:56 -좌측 연기암 삼거리(1.74km, 490m) 01:00 -1분후 임도 건너고 -참샘(2.2km, 503m) 01:09 -노고단 고개 4.1km 전 이정표(2.81km, 576m) 01:20 -국수등(3.44km, 697m) 01:33 -노고단고개 3.0km전 이정표(3.82km, 789m) 01:44 -집선대(4.41km, 904m) 01:58 -바위 앞 이정표(5.11km, 1187m) 02:23 -무넹기(임도, 5.22km, 1247m) 02:29 ~02:35 -노고단 산장(5.85km, 1344m) 02:47 ~02:55 -노고단 고개(6.8km, 1432m) 03:04 -헬기장(7.87km, 1416m) 03:27 -천왕봉 23.5km 전 이정표(8.08km, 1385m) 03:31 -돼지령(8.34km, 1380m) 03:35 -피아골 삼거리(8.91km, 1338m) 03:42 -임걸령(9.35km, 1324m) 03:50 -오르막 -계단 -계단 -노루목(10.6km, 1472m) 04:14 -삼도봉(11.3km, 1499m) 04:28 ~04:33 - 240m계단 -화개재(12.0km, 1331m) 04:47 -토끼봉(13.3km, 1534m) 05:17 -안부(14.1km, 1413m) 05:34 -너덜 오르고 -계단앞 이정표(15.0km, 1500m) 05:53 -능선고개(15.1km, 1544m) 05:57 -명선봉(15.8km, 1586.3m) 06:11 ~06:15 -연하천 대피소(16.1km, 1521m) 06:20 ~06:48 -삼각고지 음정하산로 삼거리(16.8km, 1463m) 06:58 -삼각고지(17.0km, 1492m) 07:03 -형제봉(17.9km, 1452m) 07:23 -너럭바위(18.5km, 1363m) 07:36 -벽소령대피소(19.2km, 1332m) 07:53 -공터(20.4km, 1372m) 08:08 -1478(21.0km) 08:23 -덕평봉(21.4km, 1522m) 08:31 -선비샘(21.7km, 1459m) 08:36 -세석대피소2.7km 전 이정표(22.3km, 1496m) 08:53 -(22.6km, 1563m) 09:01 -칠선봉(23.1km, 1556m) 09:13 -바위를 3~4번 넘고 -영신봉(24.5km, 1642m) 09:49 -헬기장(24.8km, 1594m) 09:55 -세석대피소(25.0km, 1578m) 09:59 ~10:10 -촛대봉 삼거리(25.6km, 1695m) 10:24 -장터목 1.3km전 이정표(26.8km, 1672m) 10:54 -연하봉(24.4km, 1730m) 11:17 -일출봉 삼거리(27.6km, 1730m) 11:20 -장터목대피소(28.1km, 1665m) 11:32 -제석봉(28.7km, 1808m) 11:52 -천왕봉 정상(29.6km, 1915.4m) 12:33~13:00 -중봉(30.4km, 1875m) 13:25 -안부 공터(31.0km, 1670m) 13:44 -써리봉(31.3km, 1686km) 13:58 -치밭목대피소 1.0km 전 이정표(31.9km, 1601m) 14:16 -치밭목 대피소(32.6km, 1435m) 14:30 -다리(33.5km, 1222m) 14:47 - 계단 앞 이정표(33.6km, 1205m) 14:49 -다리(33.7km, 1174km) 14:53 -새재 삼거리(24.2km, 1087km) 15:18 -능선(35.6km, 980m) 15:31 -장당봉앞 이정표(35.7km, 983m) -유평 도로 교량(오면서 잠시 트렝글 멈춰서 약500m 누락, 38.4km, 427m) 16:12 -대원사( 39.9km, 351m) 16:27 -주차장 전 500m(대리기사와 만나 차량인수, 41.2km,  300m) 16:45 -다시 유평도로 교량(식사후 출발) 17:01 ~20:14 -함양휴게소 21:10 ~21:20 -청원톨게이트 23:20 -청주 가경동 23:50 -도보 -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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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높이 1,915.4m. 국립공원 제1.

지리산의 산세는 유순하나 산역(山域)의 둘레가 800여 리에 달한다.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35°27에 위치한 거대한 이 산은 총면적이 440.4이며, 전라북도에 107.7, 전라남도에 87.9, 경상남도에 244.7 분포한다.

주능선 방향은 서남서동북동으로,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 1,915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칠선봉(七仙峰,1,576m)·덕평봉(德坪峰,1,522m)·명선봉(明善峰,1,586m)·토끼봉(1,534m)·반야봉(般若峰,1,732m)·노고단(老姑壇,1,507m)등이, 동쪽으로는 중봉(1,875m)·하봉(1,781m)·싸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또 주능선과 거의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가지능선은 7001,300m의 고도를 나타내며, 종석대(鐘石臺, 1,356m)에서 북으로 고리봉(1,248m)·만복대(萬福臺, 1,433m) 등의 연봉이 나타난다.

이 산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섬진강 지류들의 강력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고 산지 정상부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험준한 산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들 계곡이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의 주변에는 동쪽에 산청, 남쪽에 하동·광양, 서쪽에 구례, 북쪽에 남원·함양 등의 도시와 계곡에 마을이 발달하고 있어 원상(圓狀)을 이룬다.

지리산에는 이칭(異稱)과 별칭(別稱)이 많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리산을 그 음대로 지리산(地理山)이라 쓴 기록도 많다. 원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말의 음사(音寫)일 뿐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두래는 ()의 분음(分音)으로서 두리’·‘두류 등으로 변음하여 頭流’·‘豆流’·‘頭留’·‘斗星’·‘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이 많다. 이 중 두류(頭流)는 백두산의 맥세(脈勢)가 흘러내려서 이루어진 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지리산(地理山두류산(頭流山) 등이 지리산의 이칭이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삼신산은 중국 전설의 발해만(渤海彎)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州山)으로, 이곳에 신선(神仙)과 불사약(不死藥)과 황금(黃金백은(白銀)으로 만든 궁궐이 있다는 사기 史記의 기록이 있는데 지리산은 이 중 방장산에 대비가 된다. 그 밖에 봉래가 금강산, 영주가 한라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 신산(四大神山)이라 하고, 그에 구월산을 합하여 5대 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나 지리산을 신산(神山)으로 꼽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서산대사휴정(休靜)은 지리산을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壯而不秀)고 표현하였다.  팔역지 八域志의 저자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산수론(山水論)에서 지리산을 조선의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에 해당되며 12종산(宗山)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호남읍지, 신경준(申景濬) 산수고 山水考, 대동지지 大東地志 등에도 모두 지이산(智異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류산·방장산·지리산(地理山남악 등의 이칭이 소개되어 있고, 두류의 류()자는 백두산의 맥이 잠시 정류(停留)하였다 하여 류()로 씀이 옳다는 제안도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두류산(頭留山)이라는 이칭이 하나 더 추가된다.

 

자연환경

산 일대는 선캄브리아기 중기에 넓은 바다였으며, 여기에 뻘·모래·석회분 등이 퇴적 및 침전되어 셰일·사암·석회암 등의 퇴적암류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다. 선캄브리아기 중기에서 말기에 이르기까지 세 번 이상의 지각변동과 변성작용이 일어났으며, 이 결과로 이들 퇴적 지층들은 편마암 또는 편암으로 변성되었다.

또한, 선캄브리아기 말기에는 산청·운봉·하동 일대에 어느 정도 규모가 큰 화성활동이 일어나 염기성화성암류(鹽基性火成岩類)가 관입하였다.

고생대 초기부터 중기에 이르기까지 이 일대는 다시 바다로 뒤덮여 투박한 퇴적 지층이 쌓였다. 고생대 말기에는 이 일대가 점점 넓은 호수로 변하기 시작하였고, 식물의 잔해인 석탄층이 셰일·사암 등의 퇴적 지층과 함께 두껍게 쌓이기도 하였다.

이들 고생대 지층은 그 뒤 침식작용과 삭박작용을 받아 대부분 소멸되어 버렸고 호남탄전 지대인 화순탄광(和順炭鑛) 일대에 소규모로 남아 있다. 중생대 초기와 중기에 걸쳐 우리 나라에서는 격렬한 지각운동·화성활동·변성작용이 일어났는데 이를 대보조산운동(大寶造山運動)이라 부르며 이 지역도 예외 없이 이 운동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이 운동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의 대부분 지역이 솟아올라 육지로 되었고 지리산 일대도 이때 높은 산지로 변하였다. 대보조산운동 이후 현재까지 약 1 5000만년 동안 계속하여 침식·풍화·융기작용을 받아 젊은 고생대 지층들은 다 씻겨 없어졌고 나이 많은 선캄브리아기 암층들이 노출되어 있다.

지리산을 형성하는 암석은 대부분이 변성암류로서 편마암과 편암이 나타나며 이 중 편마암이 거의 전부 덮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편암은 소규모 렌즈상으로 편마암 중에 포위되어 나타나는데 흑운모편암·석영편암·클로리토이드편암 등으로 분류된다.

그 밖에 변성화성암류가 산청·하동·운봉 일대에 남북 방향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고, 화성암류도 형제봉(1,115m)과 산청 일부에 소규모로 분포되어 있다.

또는 쥐라기의 습곡운동이 있은 뒤 간헐적인 융기작용과 이에 따른 침식 및 삭박에 의하여 고도가 서로 다른 평탄면이 나타난다.

대체로 1,0001,100m 고도에서 평정봉(平頂峰)으로 나타나는 고위침식면은 백악기말에 지형면이 형성된 뒤 제3기 중신세(中新世) 이래의 신기구조운동(新期構造運動)으로 현재의 고도에 분포하며, 중신세 후기 이래의 신기삭박면은 산간분지와 고원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세석평전(細石平田)은 고기삭박면으로 제4기 빙기의 한랭기후에서 주빙하지형형성작용을 받아 비대칭 산릉을 이루며, 유상구조토(瘤狀構造土)가 발달하였다.

이 밖에도 600m 고도에는 중위평탄면이 각 사면을 따라 분포하며, 200m 내외의 저위평탄면은 선상지와 복합된 형태를 띤다.

산의 북부와 동부의 하천은 낙동강의 지류로서 덕천강(德川江주천(朱川남천(藍川) 등이며, 남부와 서부의 하천은 섬진강의 지류로서 화개천(花開川서시천(西施川) 등이다. 이 산지는 대부분이 산악지역으로 농경지는 1.3에 불과하며 임목 축적량은 12.2/(1978년 현재)이다.

일반적으로 산 일대는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로 분리시키는 중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고도에서 오는 산악성 기후가 뚜렷이 나타난다. 남동쪽 지역에는 빈번한 저기압의 통과와 여름철의 고온다습한 남동계절풍이 남동 사면에 부딪쳐 상승됨으로써 발생하는 지형성 강우로 인하여 많은 비가 내린다.

겨울에 산지의 북서쪽은 한랭건조한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은 데 반하여, 남동쪽은 산지에 의하여 계절풍이 저지되므로 추위에서 보호되고 남해를 흐르는 동한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비교적 온화하다.

이 지역의 연강수량은 1,2001,600이며, 68월에 5060가 내리고 122월에는 10도 못 되어 여름철에 강우가 집중한다.

연평균기온은 1214로서 삼림대로 보아 온대남부형에 속한다. 온량지수(溫量指數) 105115로서 난온대(暖溫帶)에 속하며, 1월 평균기온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는 한랭지수는 -14.5-7.8이다. 세석은 평지보다 67가 낮아 한랭하며, 600700m 고지에서는 첫서리가 10 1일경에 내리는데 다른 지역보다 13일 내외가 빠른 편이다.

또한 1,500m 고도의 만복대에서는 6월초까지 얼음을 볼 수가 있다. 산지의 영향으로 운천일수(雲天日數) 130일을 기록하고 있어 연중 흐린 날씨가 많은 편이고, 산곡풍(山谷風) 등 국지풍이 탁월하며 안개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형이 복잡하고 산정에 걸치는 낮은 구름과 계곡에 자주 끼는 짙은 안개 때문에 일조시간(日照時間)도 짧은 편이다.

한여름 기온의 차는 1520를 나타내는데 표고가 높아짐에 따라 기온이 낮아져서 7월 중순 산록에서는 3637인 데 비하여 산정에서는 1920를 나타낸다.

식생은 137 536 1,369종이며, 이 중 희귀 및 멸종 위기 식물은 32 56종으로 섬말나리·새우난초·약난초·천마·사철란·구름송이풀·솜다리·삼백초·모데미풀·백부자·세뿔투구꽃·지리바꽃·금강제비꽃 등이 있다. 또한, 한국 특산 식물 407종류 중 46종류가 있고 지리산특산식물은 19종류이다.

지리산 특산식물은 갓대·왕개서나무·지리개별꽃·지리바꽃·얼룩함박꽃나무·지리말발도리·히어리·지리터리풀·늦싸리·지리산싸리·지리강활·물들메나무·긴잎물들메나무·긴잎쇠물푸레·정향나무·지리오리방풀·둥근오리방풀·어리병풍·지리고들빼기가 있다.

야생동물은 포유류 16 46, 조류 111, 어류 30, 양서류 2 5 11, 파충류 2 5 16, 곤충 23 271 2,697종으로 되어 있다.

동물 중 희귀 및 멸종 위기 동물로는 포유류가 붉은박쥐·하늘다람쥐·여우··대륙목도리담비·수달··늑대·표범·호랑이·사향노루 등 11, 조류가 고니·말똥가리·붉은배새매·새매·조롱이·황조롱이·재두루미·검은등뻐꾸기·소쩍새·올빼미·큰소쩍새·청호반새·아물쇠딱따구리·큰오색딱따구리·뿔종다리·돼지빠귀 등 16, 어류가 꼬치동자개 1종 등이다.

또한 파충류는 자라·구렁이·능구렁이·대륙유혈목이·무자치·실뱀·까치살모사·살모사 8, 양서류는 도룡뇽·꼬리치레도룡농·물두꺼비·북방산개구리·아므르산개구리 6, 곤충류는 붉은점모시나무·상제나비·바둑돌부전나비·대왕팔랑나비·유리창나비·비단벌레·반날개하늘소·알락수염산꽃하늘소·범하늘소·알락수염하늘소·우산하늘소·큰풍뎅이·장수풍뎅이·사슴풍뎅이·톱사습벌레 15종이 있다.

 

역사와 문화유적

구석기·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하면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던 인간은 무늬없는 토기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산악지대에 거주하였던 것 같지는 않고 대체로 주변의 낮은 구릉에서 원시적인 농경을 행하면서 수렵과 어로 활동도 병행하였을 것이다.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 등지에서는 앞에 짧은 돌출부가 달린 진주식(晉州式) 장방형 석곽고분이 분포하고 있어 가야 지방으로부터의 영향을 말해 주고 있다. 산청에는 원삼국 시대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는 지리산은 산신신앙의 대상으로 부각이 된다. 신라 때에는 삼산오악신(三山五嶽神)을 제사하였다.

삼산은 봉래·방장·영주로 이 중 방장이 지리산에 비견된다. 오악은 동의 토함산, 남의 지리산, 서의 계룡산, 북의 태백산, 중의 부악(父嶽)으로, 나라에서 제사하며 국가와 백성의 행복을 빌었다. 고려시대에도 계속 지리산을 남악으로 삼아 중사(中祀)에 올렸다고 하는데 이때 많은 사찰과 산신당이 세워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지리산은 삼각산(三角山송악산(松嶽山비백산(鼻白山)과 함께 사악신(四嶽神)으로 정하여져 나라의 제사를 받았다고 한다.

김종직(金宗直) 유두류록 遊頭流錄에는 대표적인 산신 신앙의 예가 수록되어 있다. 그가 마흔 살 되던 해 가을 종도(宗道)와 선공(鮮空)이라는 두 승려의 안내를 받아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에 올라 제일 먼저 성모묘(聖母廟)에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가 당시 목격한 이 성모묘의 모습은 당집의 너비가 3칸이고 양쪽 벽에 중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으며, 성모상은 석상(石像)으로 분대(粉黛)로 얼굴과 머리, , 눈썹이 칠하여져 있었다.

머리 부분에 칼로 벤듯한 금이 가 있어 그 연고를 물으니 태조가 등극 전에 이 근처 인월(引月)에서 왜구를 칠 때 크게 패한 왜병이 이 성모의 신조(神助)로 태조가 승첩을 거두었다 하여 보복의 뜻으로 두쪽을 내었던 것을 뒤에 모아 맞춘 것이라 하였다.

성모묘의 동쪽, 바위가 오목하게 꺼진 부분에 돌을 쌓고 그곳에 조그만 불상을 하나 세워 놓았는데 국사(國師)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민족의 성산(聖山)으로서의 지리산의 위치는 연면히 이어져 내려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영남과 호남의 양 지방에 걸쳐서 그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위치적 특성과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험하지는 않다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역사상 특이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우선 백제의 망국민 일부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섬진강 유로를 따라 연안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가 그 도피처로서 지리산을 취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특히,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는 병화(兵火)와 흉년이 없는 피란·보신의 땅을 찾는 정감록신앙(鄭鑑錄信仰)이 지리산을 찾게 된다.

정감록 감결(鑑訣) 삼한산림비기 三韓山林祕記·도선비결 道詵祕訣·남사고비결 南師古祕訣·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 南格庵山水十勝保吉之地·이토정가장결 李土亭家藏訣·서계이선생가장결 西溪李先生家藏訣 등 도참서류(圖讖書類)에는 대부분 피란·보신의 장소로 열 군데(이름하여 十勝地라고 한다.)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운봉두류산(雲峰頭流山), 즉 지리산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정감록 관념은 한말에 이르러 농민운동에 실패한 동학교인들이 유민이 되어 흘러 들어오고, 이들 일부가 신흥종교를 개창하였다.

오늘날 계곡 도처에 흩어져 있는 사찰과 산신당 이외에 이러한 민족종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산간 마을이 일부 흩어져 있는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갱정유도(更正儒道) 신자들로 구성된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도인촌일 것이다.

그들은 묵계리를 전설상의 청학동(靑鶴洞)이라 일컬으며 댕기머리와 상투와 바지 저고리로 우리의 전통 문화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청학동은 선조 때의 문인 조여적(趙汝籍) 청학집 靑鶴集에 신선에 대한 기록에서 나온 말로, 우리 민족의 이상적인 길지로 구전되어 오던 곳이다.

이런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에서는 좌익·우익의 격전으로 뼈아픈 상처를 남기게 된다. 1948 10월의 여순반란사건에서 패퇴한 좌익 세력의 일부가 지리산으로 입산하였으며, 1950 6·25 때에도 북한군의 패잔병 일부가 노고단과 반야봉 일대를 거점으로 하여 양민 학살, 촌락 방화, 산림 남벌 등의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우리 나라 31본산(本山)의 하나이며 10대 사찰 가운데 첫째인 화엄사(華嚴寺)를 비롯한 10여 개의 사찰과 국보·보물·천연기념물 등의 많은 문화재가 있어 곳곳마다 유적지이다.

주능선을 기준으로 그 남쪽 면을 겉지리(表智異 또는 外智異)라 하고 북 사면을 속지리(裏智異 또는 內智異)라 하는데, 민간신앙과 관계된 유적은 주로 속지리 쪽에, 그리고 불교 신앙 유적은 겉지리 쪽에 분포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는 신라 때인 544(진흥왕 5) 연기(緣起)가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것을 인조 때 벽암(碧巖)이 재건하였다. 일설에는 화엄종(華嚴宗)을 우리 나라에 처음 들여온 의상(義湘)이 전교하던 곳이라고도 한다.

경내에는 우리 나라 3대 목조건물 중의 으뜸인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 국보 제67)을 비롯하여 화엄사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화엄사동오층석탑(보물 제132화엄사서오층석탑(보물 제133화엄사원통전앞사자탑(보물 제300화엄사대웅전(보물 제299) 등이 있다.

또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제38호인 수령 300여 년의 올벚나무彼岸櫻가 있는데 인조가 병자호란 이후 무기 재료로 쓰기 위하여 심게 한 것이라 한다.

연곡사(鷰谷寺) 역시 연기에 의하여 화엄사와 같은 해에 창건된 사찰로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피아골 남쪽에 위치하여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소실되었고, 지금은 일부만이 중건되어 남아 있다.

경내에는 고려 초의 석조 예술을 대표하는 연곡사동부도(국보 제53연곡사북부도(국보 제54연곡사서부도(보물 제154연곡사동부도비(보물 제153연곡사현각선사탑비(鷰谷寺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2연곡사삼층석탑(보물 제151) 등이 있다.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차일봉(遮日峰) 남쪽에 있는 사찰로, 829(흥덕왕 4) 덕운(德雲)이 창건하였다.

천은사는 본래 감로사(甘露寺) 또는 천언사(天彦寺)라 불리던 것을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1678(숙종 4)에 다시 세우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지방문화재 두 점이 있으며 작설차(雀舌茶)의 산지로 이름이 높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雙磎寺) 723(성덕왕 22)에 삼법이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다가 정강왕 때 쌍계사라 이름 지어 하사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최치원(崔致遠)의 친필 비문으로 된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국보 제47쌍계사부도(보물 제380) 등이 있다. 쌍계사 북쪽 8, 화개면 범왕리에는 103(파사왕 24) 가야국의 김수로왕이 일곱 왕자를 위하여 지었다는 칠불암(七佛庵)이 있다.

이 절에는 신라 효공왕 때 운공(雲空)이 만든 아자방(亞字房)이 유명하다. ()자형의 온돌방으로 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방 전체가 데워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천왕봉 동쪽 기슭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는 548년 연기가 창건한 대원사(大源寺)가 있다. 현재의 것은 1948년에 소실된 것을 1963년에 재건한 것이다.

법계사(法界寺) 544년 연기가 창건한 가람으로 천왕봉 남쪽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다. 경내에는 자연석을 기단으로 이용하여 만든 법계사3층석탑(보물 제473)이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지리산 서북쪽 기슭 만수천(萬壽川) 강변에는 828(흥덕왕 3) 증각(證覺)이 창건하였다는 실상사(實相寺)가 있다.

경내에는 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實相寺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3실상사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 제34실상사석등(보물 제35실상사부도(보물 제36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 등의 문화재가 있고, 인근 산내면 대정리백장암(百丈庵) 삼층석탑은 국보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실상사에는 풍수사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의 내원사(內院寺), 산청군 신동면 율현리에 보물 제374호인 대웅전이 있는 율곡사(栗谷寺),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정취암(淨趣庵), 산청군 마천면에 보물 제474호인 삼층석탑이 있는 벽송사(碧松寺) 등이 있다.

율곡사 대웅전은 가구수법(架構手法)이 특이하여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조립한 것으로 일명 몽침절이라고도 불린다. 몽침이란 베고 자는 목침의 다른 이름인데, 목공(木工)이 목침을 쌓아 절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문화 행사로 지리산약수제(智異山藥水祭)가 있는데 곡우절(穀雨節)을 전후하여 열린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행하여지던 제천행사의 하나로 지리산신사(智異山神祠)라 하였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남악사(南嶽祠)라 하였다.

현재의 약수제라는 명칭은 곡우 무렵에 거자목(距杍木)에 상처를 내서 나오는 물이 만병통치에 유효하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 약수제는 일제 침략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중단되었다가 1962년부터 노고단을 중심으로 다시 열리면서 지역 주민의 공동체의식의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문학·예술 속에 나타난 모습

우리 나라의 기본 골격이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계가 중추가 된다는 인식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지리산을 백두산이 흘러내린 산이라 하여 두류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 나라 전래의 지리 사상인 풍수지리설에서도 받아들인 바이거니와, 실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의 없이 전수되어온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기초적인 관념인 것이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밝힌 이가 신경준이다. 신경준은 그의 산수고에서 산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산맥세의 흐름을 상세하게 파악한 바 있는데, 뒤에 이것을 기초로 산경표 山經表가 만들어졌다.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맥세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지리산은 민족의 진원지며 영산으로 추앙받는 백두산의 한반도 남부를 대변하는 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풍수사상에서는 민족적인 주체의식을 상징하는 의미를 띠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실상사의 풍수전설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백두산의 기맥(氣脈)이 이곳을 지나 일본으로 연결되는데 그 지기(地氣)를 끊어 놓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 바로 실상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경내 약사전에 봉안된 4,000근짜리 무쇠로 제작된 약사여래철불은 높이 2.5m로 좌대 없이 땅바닥에 그대로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과 일본 후지산(富士山)을 일직선상으로 바라보도록 좌정되어 있는데, 맨 바닥에 철불을 모신 이유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지기를 막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보광전 범종에 그려진 일본 지도 역시 매일 종을 때릴 때 얻어맞는 위치에 일본이 그려져 있어 위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리산 도처에서 들을 수 있는 설화들인데, 남원시 주천면 노치산 갈재의 숯막이야기는 고종이 그곳에 숯 수천 가마를 쌓고 불을 놓아 일본으로 가는 지맥을 막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혹은 동학운동 때 또는 의병항쟁 때 왜군을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의 한맺힌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리산에는 지리천왕(智異天王)과 여신(女神)숭배의 설화들이 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보면 그는 천왕봉에 발을 딛고 맨 먼저 그 천왕봉에 있는 성모묘에 제를 올리는데, 당집에 들어가 주과(酒果)를 차려놓고 성모상 앞에서 비는 일이 그것이었다.

이 성모상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로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이라는 설이 그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불교에서 마야부인상을 숭배하는 전통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 설은 후세의 윤색이 아닌가 싶다.

둘째로 고려왕계를 성스러운 혈통으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고려 왕실에서 도선선사(道詵禪師)로 하여금 이 성모상을 만들게 하였다는 설이다.

성모에 대하여 이승휴(李承休) 제왕운기 帝王韻紀에서는, 지금 지리천왕은 곧 고려태조의 비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고 고려 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이야기(三國遺事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음.)를 듣고 이를 그들 임금의 핏줄로 삼고자 이를 만들어 받든다고 하였다.

셋째로 도선이 지리산에 선암(仙巖운암(雲巖) 등 삼암사(三巖寺)를 세우면서 이 절을 세우면 삼한을 통일할 수 있다는 성모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뒤 고려를 세워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계시를 내린 성모상을 세워 받들었다는 설이다. 넷째로 중국의 여신인 마고(麻姑)가 동쪽으로 와 정착한 것으로 믿고, 그 여신 숭배가 이 성모상을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전설에 지리산의 산정에 사는 여신의 이름이 마고 또는 마야고(麻耶姑)로 불린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래서 마고성모라는 복합어를 쓰기도 한다. 마고전설은 지리산의 능선을 형상화하고 있는 면도 있다. 마고는 반야(般若)를 사랑하였다. 어느날 반야는 돌아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났으나 오지를 않는다. 마고는 기다림의 초조로 나무를 할퀸다.

이것이 지리산 주능선 부근의 고사목(枯死木)이다. 그 올로 베를 짜던 자리가 세석평전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천왕봉의 돌무덤 위에 앉아서 서쪽 하늘을 보면 낭군봉인 반야봉이 마치 달려올 듯한 산세로 눈에 담긴다.

산 주변에서 익히 들을 수 있는 설화·전설들 외에도 음악에 있어서 민요가 주변 산촌에서 불려지고 있을 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리산을 주대상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아리랑의 경우, 남원아리랑·하동아리랑 등이 있으나 지리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지리산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을 보면 고려사 악지나 증보문헌비고에 작자나 연대는 알려지지 않은 지리산가 智異山歌라는 백제 때의 가요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지리산에 대한 최초의 문학·예술 작품이 아니었겠는가 여겨진다.

구례의 한 여인이 지리산 밑에 살았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부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임금이 그 여자를 데려가고자 하나 죽기를 한하고 듣지 않으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본격적인 지리산 기록은 역시 기행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조선 시대의 기행문으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佔畢齋集 2), 이륙(李陸) 유지리산록 遊智異山錄(東文選 21), 남효온(南孝溫) 지리산일과 智異山日課(秋江文集 6), 김일손(金馹孫) 속두류록 續頭流錄(濯纓集 5), 조식(曺植) 유두류록(南冥文集 4), 양대박(梁大樸) 두류산기행 頭流山紀行(淸溪集 坤), 박장원(朴長遠) 유두류산기 遊頭流山記(久堂集 15), 정협(鄭悏) 유두류록 遊頭流錄(東文選 21), 송병선(宋秉璿) 두류산기 頭流山記(淵齋文集 21) 등이 있다.

이 중 김일손의 지리산 기행문 내용에서 몇 가지 표현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일행은 종자(從者)를 제외하고 정여창(鄭汝昌임정숙(林貞淑) 등 세 사람이며, 날짜는 4 14일이다.

단성(丹城) 서쪽으로 15리를 지나 또 비탈을 타고 서너마장을 가니 골짜기 입구 바위에 廣濟巖門(광제암문)’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획이 고고(高古)하여 세상에서 최치원(崔致遠)의 수적이라고 전한다.……나무를 휘어 농기구를 만들고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 마을이 있어 감탄하니, 따라온 중이 일러주기를, 이런 외진 땅에 사는 것은 이정(里正)의 박해가 없고 과중한 부역의 고통을 받지 않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 하였다.……길은 없고 다만 천길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마치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 듯하고, 오가는 나무꾼이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아 길을 표시하여 두었는데 나무그늘이 하늘을 가리어 햇볕이 들지 않았다.

시내가 그치고 대숲을 헤쳐 나오니 이윽고 땅은 모두 돌인데, 칡덩굴을 더위잡고 굴면서 숨가쁘게 10여 리를 걸어서 한 높은 고개에 오르니, 철쭉꽃이 활짝 피어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우람한 봉우리 세존암(世尊巖)을 만나 마침 사다리가 있어 올라가 바라보니 천왕봉이 10리 정도 되어 보였다.

여기서 5리쯤 가서 법계사(法界寺)에 닿으니 중은 한 사람밖에 없고, 산꽃이 곱게 펴 저문 봄철을 수놓았다. ……저물녘에 봉우리의 절정에 오르니 바위 위에 한 칸의 판옥(板屋) 한 채가 겨우 서 있었다. 그 안에 여자의 석상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이란다. 지전(紙錢)이 어지러이 들보 위에 걸리었고, ‘김종직·유호인(兪好仁조위가 성화 임진(成化壬辰, 1472)에 함께 오르다고 쓰여 있었다. 예전에 구경 온 사람들의 성명을 훑어보니 당세의 호걸들이 많았다.”

위의 일부 인용한 글로써 당시 지리산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섬세하다. 또 알려진 한시로는 김부의(金富儀) 등지리산 登智異山, 김돈중(金敦中) 지리산차계부운 智異山次季父韻, 이색(李穡) 두류산, 이첨(李詹) 두류산, 양성지(梁誠之) 지리산, 최익현(崔益鉉) 등두류산 登頭流山·천왕봉 天王峯, 유방선(柳方善) 청학동 靑鶴洞 등이 있다.

현대작품으로는 이병주(李炳注) 지리산, 문순태(文淳太) 달궁 피아골, 서정인(徐廷仁) 철쭉제 등의 소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가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좌우 대립에 따른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이 현대사에서 차지하였던 첨예한 이념 대립의 공간적 현장성의 반영인 것으로 보여진다.

또 산을 둘러싸고 있는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의 작가들로부터도 시·소설·수필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이 서정성을 짙게 풍기는 것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직접 몸으로 그 뼈저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쓰라린 상처를 덮어두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혹은 묵중하고 푸근한 지리산의 웅자가 그 섬세한 정기로 모든 인간의 아픔을 감싸안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원과 이용

이 지역에는 고령토·규석···니켈·수연 등의 광물이 산출된다. 고령토는 산청·하동 일대에 넓게 분포하며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석인 변성 아노르소사이트가 오랜 세월을 두고 풍화작용을 받아 생성되어 매우 품위가 높다.

요업의 원료 광물로 귀하게 쓰일 수 있는 양질의 고령토는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 위주로 없애기보다는 주요 전략 지원 광물로 비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과 그 밖의 여러 지역에서는 반도체 원료로 쓰이는 질 좋은 규석광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편마암류를 관입한 석영맥에서 산출되고 있다. 이 밖에도 니켈과 수연광이 운봉읍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경제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은 남한의 총 삼림 축적량의 19를 차지하는 방대한 임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전나무·잣나무·가문비나무·주목 등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수종은 기존 임목을 보호함과 아울러 파괴된 식생을 완전 식생으로 복구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사방조림용 임목도 지리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잔디··오리나무 종류를 사용함으로써 생태계를 자연 상태에 가깝도록 유지하는 것이 임산자원을 확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지리산은 산형이 다기다양(多奇多樣)하고 고준광대(高峻廣大)하면서 중후인자(重厚仁慈)하여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한 웅대한 산악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은 천왕봉·반야봉·노고단 등의 3대 주봉과 함께 해발 1,500m 이상의 큰 봉만도 십지(十指)를 보유하고 있고, 피아골·뱀사골·화엄사계곡 등 10 이상의 계곡이 10여 개나 된다. 또한 불일폭포(佛日瀑布구룡폭포(九龍瀑布칠선폭포·가내소폭포 등이 명소를 이룬다. 북동쪽으로는 남강(南江), 남서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강과 산의 조화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은 세석평전을 덮고 있는 철쭉나무 군락, 피아골의 원시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노고목(老古木)과 전설처럼 신비한 고사목(枯死木), 그리고 사향노루·산양 등 동물의 안락한 서식지로서의 가치와 함께 의미 깊은 관광자원들이 많은 곳이다.

거기에 웅대한 사찰들과 유서 깊은 암자들, 국보와 보물·사적·천연기념물들이 지리산의 정취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세석평전에는 매년 5월에 철쭉제가 열리고, 매년 4월에는 자작나무에서 받은 수액으로 약수제를 지낸다.

지리산10경으로 노고운해(老姑雲海피아골단풍·반야낙조(般若落照섬진청류(蟾津淸流벽소명월(碧沼明月불일폭포·세석철쭉·연하선경(烟霞仙景천왕일출(天王日出칠선계곡을 꼽는다.

웅대하고 수려한 산세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으며 다양한 등산길이 정비되어 있다. 등산로로는 화엄사에서 노고단·임걸령·반야봉·뱀사골산장·연하천·벽소령·덕평봉·세석평전·장터목·천왕봉·법계사중산리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코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하동바위·장터목·천왕봉에 이르는 길, 신흥에서 대성동·세석·천왕봉에 이르는 길, 중산리에서 법계사·천왕봉에 이르는 길 등이 있다.

인근 도시에서 버스편으로 당일에 가볼 수 있는 관광지도 있다. 남원에서 16 떨어진 호경에서는 구룡폭포를 볼 수 있고, 32 떨어진 산내에서는 실상사를 볼 수 있다. 이곳에서 4를 더 들어간 경상남도 마천에서는 백무동계곡과 칠선계곡을 구경할 수 있으며 다시 산내에서 8를 더 들어간 반선에는 유명한 뱀사골계곡이 나온다.

화엄사는 구례에서 6인데,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10밖에 안 되기 때문에 쉽게 노고단에 오를 수 있다. 구례에서 연곡을 지나 연곡천을 끼고 8를 더 오르면 내동에 이르고, 여기서부터 피아골계곡이 시작된다. 진주에서 35 떨어진 중산에서 천왕봉까지는 12밖에 되지 않아 이 길이 지리산 주봉을 오르는 최단 거리이다.

교통편은 경부선·호남선·전라선이 연결되어 남원·구례·진주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어 편리하다. 화엄사의 표고버섯탕과 구례의 은어회가 별미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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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출발 20:30

5월 들어 3일 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이틀을 잡아서 낙남정맥을 하자고 하던 뽀빠이님이 며칠 전 부터 화대종주 애기를 하더니 이번에 가자고 한다. 낙남정맥을 3명이서 하다가 한명이 일이 있어 못 가게 됨으로 해서 궂이 갈수도 없고 하여 내도 같이 가기로 한다. 대원사길 오래전에 다녀보긴 했지만 요즘은 통 그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대원사 길은 한번 가보면 굳이 2번은 가고 싶지 않은 코스지만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대원사까지 종주를 하는 것도 요즘 유행이므로 한번 해보기로 한다. 이제 국립공원도 시간제를 택해서 밤새워 걷는 왠만한 종주 산행은 하기 어렵겠다. 아주 막기 보다는 마니아들을 위해서 예약제나 신고제를 실시하는 방법도 좋을듯한데 우리의 현실은 행정 관료들의 무사안일주의와 보수주의 성격으로 인하여 새로운 방법은 찾지 안하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입장시간이 예전보다는 2시간이 당겨져 3시에 입장을 한다. 이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청주에서 승용차로 9시 출발하기로 하여 만나기로 한 가경중학교로 가기 위하여 집에서 20 30분 출발을 하다.

 

화엄사 앞(해발 약230m) 00:25 ~00:35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4명이서 출발을 하여 도중에 한명이 더 승차하여 청원톨게이트로 21 35분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 경유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여산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여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는 다시 달리면 오수를 지나고 개동지맥의 풍악산중턱을 지나고 남원을 지나 얼마 전 오늘 가는 4명이서 산행을 했다는 견두지맥의 견두산과 천마산사이의 길 다란 터널을 지나 견두지맥 사면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여산에서 대략 1시간 후 지리산의 관문인 구례 화엄사톨게이트를 빠져 나간다. 톨게이트를 나가 우회전하여 반듯하게 가면 몇 분 후 구례에 닿는다. 초입의 해장국집에서 밤참으로 네명은 해장국, 한분은 재첩국을 시켜 드는 사이 뽀빠이님이 자주 이용하는 구례의 기사님에게 전화를 하여 나오도록 하여 식사가 끝나고 우리를 화엄사까지 태워다 주고는 기사님은 내일 우리의 종착지인 대원사로 차를 가지고 오기로 하고 우리는 산행을 준비하여 0 35분 드디어 화대종주의 첫 걸음을 띈다. 모두 무사히 완주를 기원한다.

 

참샘(2.2km, 503m) 01:09

화엄사 문 앞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우측 다리를 건너 노고단고개까지 7km, 천왕봉까지 32.5km의 거리를 걸어야 한다.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11.7km를 더하면 오늘 총 산행거리는 44.2km가 나온다. 여기에 노고단 정상을 다녀오고, 반야봉까지 올라갔다 오면 46.3km가 되는 것이지만 우리는 노고단정상과 반야봉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리를 건너면 곧 화엄사계곡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이 문을 통과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좌측의 차일봉 능선과 우측의 형제봉능선 사이로 흐르고 있는 화엄사계곡은 무넹기 까지 5.5km로 약 2시간 거리다. 오늘 구름이 끼여서 인지 달도 없고, 반짝이는 별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속을 비추고 있는 것은 오직 헤드랜턴뿐이다. 다행히 오르는 길은 널찍하고 정비도 잘되어 있어 한밤에 오르는 대도 큰 무리는 없다. 고요한 산길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면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후로는 계곡의 좌측을 따라 무넹기까지 오른다. 다리를 건너 5분 정도를 더 가면 좌측으로 연기암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화엄사에서 이곳까지 2km, 노고단 고개까지는 5km가 남은 지점이다. 연기암 입구에서 약 1분을 더 오르면 임도가 나온다. 좌측으로 가면 연기암이다. 임도를 넘어서서 오르면 길은 지금보다는 많이 좁아지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화엄사계곡의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면 가끔씩 밤잠을 못자고 구슬피 울어대는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발걸음에 놀란 새가 푸드득 날개 짓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시원한 물이 나오는 지리산의 첫 번째 생명수인 참샘이다. 뽀빠이님 먼저 언제나 그렇듯 한바가지를 퍼서 나부터 챙겨 먹인다. 난 뽀빠이님의 이런 점에 이끌려 같이 산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항상 먼저 챙겨주는 뽀빠이 동상 고맙네 ~~~

 

무넹기(임도, 5.22km, 1247m) 02:29 ~02:35

참샘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오르기 시작한다. 10여분 후 노고단 고개 4.1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고 오르니 우리보다 먼저 오른 분들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 묻은 신발로 바위를 밟아 물기가 채 스며들지도 않았으니 많이 앞서지는 못했을 것 같다. 서서히 가팔라지는 길이 시작되며 이정표가 나온다. 화엄사와 노고단 고개까지의 딱 중간지점인 3.5km거리다. 이제 등산로는 바윗길로 점점 더 험해지기 시작하며 앞쪽에서 내려다보는 불빛이 보인다. 잠시 국공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금시 올라간 우리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싶어 오르니 남녀 젊은 분들 둘이서 쉬고 있다. 이들을 지나 오르니 10여분을 좀 더 올라 노고단 고개 3km전 이정표를 지나고 15분 정도를 더 오르면 집선대라고 하는 곳에 닿는다. 이쯤에서 화대종주를 한다고 하는 남녀 한쌍을 다시 지난다. 이곳은 노고단 고개가 2.5km 남은 지점으로 너덜지대가 시작되는 곳으로 등산로는 점점 더 바윗길로 험해진다. 철주를 설치하여 로프를 설치한 너덜지대로 얼마를 오르면 우측으로 졸졸졸 시원한 물소리가 가까이 들리며 곧 작은 개울정도의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이곳을 지나 오르면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으며 앞쪽으로 화엄사 5.5km, 노고단 고개 1.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 좁은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오르면 곧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임도에 닿는다. 이곳이 무넹기로 노고단 쪽에서 심원 쪽으로 흐르는 물을 화엄사계곡 쪽으로 넘긴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이곳 이정표에 화엄사 5.5km, 노고단고개 1.1km가 적혀 있으며 해발 1277m가 적혀 있다. 화엄사에서 약 1000m를 올라온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노고단으로 향한다.

 

노고단 산장(5.85km, 1344m) 02:47 ~02:55

무넹기에서 노고단 산장까지는 얼마 안 된다. 또한 임도 구간이기 때문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산장까지 간다. 무넹기를 출발하면 금시 임도길 구비 진 곳을 가로 질러 올라온 계단길이 보인다. 이후 임도를 따라가면 커브지점을 지나 노고단 쪽에서 흐르는 물이 있는 곳에 닿으면 임도에서 산장 쪽으로 가로질러 올라가는 산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약 5분이면 노고단 산장에 닿는다. 산장에 도착하니 2 47분이다. 산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입장시간인 3시에 주능선 길로 들어서려고 분주하게 산행준비를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취사장에서 끊이는 분들, 잠시 쉬면서 입장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도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과일도 들며 기다리니 한 두사람씩 노고단 고개로 오르기 시작한다. 산장에서 노고단 고개로 올라가는 곳에 문을 만들어 잠가 놓았다가 시간이 되면 열어 놓으니 예전처럼 성삼재를 통과 했다고 해서 맘대로 산행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우리도 2 55분 이 문으로 입장을 한다. 노고단 입장시간은 노고단 고개에 있는 두 번째 문을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임걸령(9.35km, 1324m) 03:50

노고단 산장을 출발하여 고개로 올라 3 05분에 노고단 고개의 문을 통과 한다. 이른 시간임에도 초소 안에 직원이 들어 앉아 있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 25.5km의 거리로 왕복을 하면 51km로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할 거리보다 약10km는 더된다. 이제 고개를 넘어서 들어가니 길옆으로 철쭉꽃이 만발해 있다. 여기는 지금이 철쭉 시즌인 것이다. 철쭉은 생각지도 않고 왔는데 시기가 잘 맞았다. 노고단 사면으로 지나는 길을 따라가면 왕시리봉으로 빠지는 샛길이 있는 곳에서 다시 주능선 길에 닿는다. 이곳을 지나며 부터 길 양쪽으로는 철쭉꽃이 만발해 있어 불빛으로 그 수수하고 은은함이 느껴진다. 헬기장을 지나고 고개에서 약30분이 좀 더 지나 고개에서 2km지점을 통과한다. 여기서 5분을 더 가면 돼지령이다. 돼지령에서 조금 가면 우측 피아골 쪽으로 조망을 할 수 있는 지점을 지나 5분을 가면 우측으로 피아골로 내려가는 삼거리다. 여기 이정표에 피아골 대피소 2km, 직전마을 6km가 적혀 있으며 천왕봉까지는 22.7km가 남았다. 삼거리를 지나면 거의 평탄한 길을 따라 약 10분후 임걸령에 닿는다. 임걸령에는 좌측으로 시원한 샘터가 있다. 아직은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니 그냥 통과 한다.

 

삼도봉(11.3km, 1499m) 04:28 ~04:33

노고단 고개에서부터 지금까지는 평탄한길로 산보하듯 좋은 길을 걸었지만 임걸령을 지나며 부터는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고 계단을 오르게 된다. 두 번째 계단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바위들이 보인다. 이곳이 노루목으로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목인 것이다. 우리는 이곳은 통과하기로 하였으니 반야봉은 생략하고 지름길로 간다. 노루목 지름길부터는 길이 바위 길로 좋지를 않으니 이렇게 암흙 길에서는 조심스러운 길이다. 10여분을 가면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다시 합류를 하고 여기부터는 평탄한길을 따라가면 좌측으로 샛길이 하나 있는데 이 길은 묘향대로 가는 길인지 확실치는 않치만 항상 궁금한 곳이다. 이 부근에 산소가 1기 있다. 이제 평탄한길을 조금 따라가면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잠시 후 삼도봉에 도착을 하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를 않아 주변으로 조망은 볼 수가 없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불무장등 능선이 시작하여 불무장등, 통곡봉, 황장산을 거쳐 화개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지나온 길 쪽을 바라보니 헤드랜턴불이 연달아서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명선봉(15.8km, 1586.3m) 06:11 ~06:15

삼도봉을 뒤로 하고 화개재로 향해 간다. 삼도봉에서 내려서는 가파른 바위지대를 지나면 119구조목 지북 1-12번 목이 나온다. 화개재 0.5km, 삼도봉 0.3km지점이다. 이곳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화개재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시작된다. 길이가 240m, 폭이 1.5m로 설치된 계단으로 551계단이라고 한다. 이 계단을 다 내려가서 조금 더 가면 화개재다. 널찍하게 테크를 설치하였으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9.2km의 뱀사골 계곡이 이어진다. 이제 오르기 시작하면 토끼봉으로 25분 정도를 오르면 양쪽으로 철쭉나무 지대로 등산로 양쪽으로 연분홍 철쭉터널이 이어지다가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을 지나서 좀 더 오르면 작은 바위가 있는 곳이 토끼봉 정상이다. 이곳에서 다시 내려서는 지점에서 붉게 물든 하늘과 마주하게 된다. 좀 더 내려가며 조망이 좋은 지점에서 잠시 멈춰 서서 태양이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구름틈새로 반쯤 나오다가 이내 구름이 덥고는 더 이상은 태양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황금색과 붉은 핏빛으로 물든 하늘은 볼만했다. 이제 토끼봉에서 내려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바윗길과 긴 너덜지대를 오르면 연하천대피소 1.0km가 적힌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부터 명선봉으로 오르는 계단이 시작되어 철주가 박힌 길까지 오르면 명선봉 앞 등산안내도와 연하천대피소 0.4KM전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잠시 샛길을 따라 우측으로 들어가면 몇 분 안가서 삼각점과 송신탑이 서있는 명선봉 정상에 닿는다. 명선봉 너머로는 철쭉이 만발해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어찌나 좋은지 뒤돌아서기 아쉽다. 천왕봉까지의 아름다운 능선과 토끼봉에서 뻗어나간 팔백능선과 긴 계곡이 이어지는 곳은 범왕리방향이다. 팔백능선 끝으로 마을이 보인다.

 

삼각고지(17.0km, 1492m) 07:03

이제 돌아서서 다시 가면 곧 연하천으로 가는 테크 길을 따라 아름다운 숲길을 내려가면 곧 연하천 대피소에 닿는다. 대피소에는 몇 명이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으며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일단 시원한 물을 한바가지 퍼서 마시고는 식사를 시작한다. 미리 준비한 햇반이 얼린 물병과 맞다 있어 얼음 같이 차지만 그래도 시장한 끝이라 그런지 맛은 좋다. 반쯤 먹고서는 연하천의 시원한 물을 받아서 말아 먹으니 잘 넘어간다. 식사가 끝나니 뽀빠이 대장님이 다른 일행보다 먼저 도착하여 삼각 김밥으로 아침을 먹고는 우리 일행이 금시 올거라고 해서 기다리자니 추위가 엄습해 와서 더 이상은 있기 어려워 먼저 천천히 간다고 하고는 출발을 한다. 연하천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평탄한 고즈넉한 숲길로 매우 운치 있는 길이다. 10분을 가면 좌측으로 음정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이곳 이정표에 음정 7.5km, 벽소령 2.9km가 적혀 있다. 이지점은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의 거의 반 지점으로 이곳에서 음정방향으로 가면 칠암자 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이곳에서 칠암자 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 여기에는 삼각고지 지킴터를 만들어 놨으니 단속을 하겠다는 애기가 된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삼각고지 정상으로 지리 1-24번 구조목이 있다. 구조목에는 해발 1492m가 적혀 있다.

 

벽소령대피소(19.2km, 1332m) 07:53

삼각고지부터 이어지는 길은 거의 바윗길로 험하다.  5분을 가면 계단을 내려서서 커다란 바위가 양쪽으로 버티고 있는 가운데를 지나서 내려선다. 다시 5분을 더 가면 의신방향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지나고, 다시 바위지대를 통과하여 오르면 트랭글이 형제봉이라고 울어댄다. 이곳에는 지리 1-26 119구조목이 있는 곳으로 해발 1452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산하가 너무 아름답고 좋다. 형제봉 정상에서 약 5분을 내려가면 앞쪽으로 뾰족한 바위봉 2개가 나란히 서 있으니 이 바위가 형제바위인가? 바위 옆에 난 작은 소나무도 이쁘고, 두봉 사이로 올라간 흔적도 보인다. 여기서 커다란 바위 틈새로 바위 길을 내려가면 바위아래에 형제봉이라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벽소령 대피소가 1.2km 남은 지점이다. 지나는 길에 핀 병꽃도 이쁘고, 철쭉도 있어 심심하지 않은 길이다. 좋은 경치 구경하며 형제봉 이정표에서 10분 정도를 가면 지리 1-27 119구조목이 있고 이 앞쪽으로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산하가 이토록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며 진행을 하면 5분이 지나서 벽소령 0.7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앞쪽으로 로프가 매여져 있는 바위지대를 올라서고 커다란 바위 옆을 지나서 좁다란 바위 문을 넘어서면 길 가운데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피해가라고 버티고 있다. 이놈을 옆으로 돌아서 앞쪽에 매여 있는 로프를 잡고 바위지대를 다시한번 올라섰다가 주목나무가 있는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이후 4~5분이면 벽소령 대피소에 닿는다. 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출발을 하려 준비하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입산통제시간으로 연하천 방향은 14, 세석방향은 15시를 기준으로 통과를 하지 못하면 하산을 하여야 한다. 대피소 예약자는 2시간 연장이며 이 시간에 통과를 하지 못하면 하산을 하여야 한다. 음정은 6.7km, 의신은 6.8km로 어느 방향이나 비슷한 거리다.

 

칠선봉(23.1km, 1556m) 09:13

벽소령대피소 부터는 길이 거의 평탄한길이 이어진다. 좌측으로는 낙석지대, 우측으로는 급경사 지대이지만 등산로는 매우 좋은 편이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약 15분을 가면 구벽소령으로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고 다시 15분을 가면 1478봉으로 지리 01-33지점으로 굵직한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의자가 있는 쉼터다. 이곳부터 이어지는 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게 되면 덕평봉 아래를 통과 하여 5분을 더 가면 선비샘에 닿는다. 선비샘에는 미리 와서 쉬고 있는 몇 분이 있다가 뒤에 오는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출발을 한다. 선비샘의 시원한 물 한바가지를 퍼마시고 다시 출발을 하면 등산로는 거의 바윗길로 한 동안을 올라서 가면 대략 15분후 벽소령과 세석의 중간지점을 통과하여 6~7분을 더 가면 세석대피소 2.7km 전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조금을 가면 나무계단이 나온다. 조망도가 있는 널찍한 봉이 나온다. 트랭글은 여기를 칠선봉이라 알려준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앞쪽으로 천왕봉이 가까이 보이고 뒤로 중봉 하봉이 연속적으로 보이며 좌측으로는 백무동, 우측으로는 대성리로 이어지는 계곡과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산하가 멋지다. 이곳은 해발 1564m로 지리 01-37번 목이 있는 지점으로 조망도에는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을 찾아 보세요라 적혀 있다. 이곳을 지나면 12분을 더 가서 벽소령 대피소 4.4km, 세석대피소 1.9km, 해발 1558m 칠선봉이라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주변으로는 촛대처럼 솟아 있는 바위들이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는 봉으로 군데군데 철쭉이 피어 있어 매우 환상적인 경치를 자아내는 곳이다.

 

세석대피소(25.0km, 1578m) 09:59 ~10:10

칠선봉에서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고 다시 세석으로 향한다. 여기부터 이어지는 등산로는 거의 대부분 바윗길로 매우 험한 길의 연속으로 칠선봉에서 10분 정도를 가면 첫 번째 바위에 로프가 매어 있는 곳으로 올라야 한다. 6~7분을 더 가서 지리 01-39지점에 오르면 커다란 바위 아래로 내려다보는 모습이 장관이다. 잠시 후 세석대피소 1.4km가 남은 지점을 지나면 긴 계단이 시작된다. 한발한발 올라가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려 대피공간으로 들어서니 산 아래로 백무동의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이후 커다란 바위 밑을 통과하여 커다란 너럭바위 끝으로 철주를 설치하여 튼튼한 와이어로 안전지대를 만들어 놓은 커다란 바위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측의 거림 방향으로 보이는 경치가 매우 좋으며 지나온 길이 멀리까지 조망이 되며 천왕봉이 이제는 한결 가까워 졌다. 바로 앞쪽에 기묘하게 서있는 바위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곳으로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 바위를 옆으로 넘고 또 넘으면 이제는 낙남정맥의 분기봉인 영신봉에 닿는다. 영신봉 일대는 온통 철쭉 밭으로 이곳에서 세석대피소 위쪽의 촛대봉 사면으로는 온통 울긋불긋한 철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뜻하지 않은 철쭉 산행에 감사 한다. 영신봉에서 내려가면 세석대피소가 가까운 지점에 헬기장이 있고 철쭉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우측으로 세석대피소가 있으며 잠시 후 백무동과 거림으로 길이 갈리는 지점의 이정표에 닿는다. 백무동은 6.5km, 거림은 6km로 어느 곳이나 가까운 곳은 없다. 물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어 세석대피소까지는 내려가지 않고 그냥 통과를 한다.

 

장터목대피소(28.1km, 1665m) 11:32

세석대피소를 지나 조금 올라가다가 철쭉이 고운지점에서 10여 분간 휴식을 한다. 꽃도 사진으로 담아보고 거림으로 이어지는 긴 계곡도 사진으로 담고 여유를 부린 후 다시 오르려니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것이 오르기가 어렵다. 또한 구름 속에서 햇살이 나와서 인지 땀은 줄줄 흐르고 기력은 빠지고 거의 기다시피 오른다. 에고 지금까지는 잘 왔는대 천왕봉까지 가려면 클랏구나 싶다. 너무 오래 쉰 것이 잘못인 것 같다. 얼마를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습지에 꾸며 놓은 테크 길로 들어가서 작고 앙증맞은 노랑꽃 하얀꽃을 카메라에 담고는 다시 나와 촛대봉으로 오르려니 매우 지친다. 촛대봉 앞 고개에 서니 세석대피소가 내려다보이고 천왕봉이 아주 가까이 다가온다. 오래전 거림에서 도장골을 경유하여 장군봉을 거쳐 청학연못에 들르고 저기 보이는 촛대봉 정상을 넘어 이곳으로 온 적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지금은 단속도 심하고 시간제니 하여 제약이 많아서 어렵지만 그때는 그런 걱정은 안하던 때다. 이제 장터목은 2.7km, 천왕봉은 4.4km가 남았다. 촛대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철 계단을 따라 오른 후 다시 내려오는 길에 주목나무가 있고, 안부에서 다시 오르면 조망이 좋은 바위봉인 삼신봉을 지나 또 다시 철 계단을 오르면 1678봉으로 장터목 대피소가 1.3km 남은 지점이다. 여기서 4~5분을 더 가면 장터목으로 가는 연신봉으로 오르는 널찍한 길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바위봉이 나온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가 간다. 뒷사람이 오면 자리를 빼주고 다시 올라와 쉬었다가고를 반복하는 곳이다. 바위봉에서 좌측으로는 한신계곡, 우측으로는 중산리다. 이곳에서 물도 마시고 초코렛도 몇 개를 섭취하여 체력을 보충한 후 장터목으로 향한다. 바위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오는 길이 쉬면서 볼 때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대 막상 오르려니 힘이 든다. 대략 15분이 걸려 올라서니 주변으로 온통 바위들이 널려 있는 연하봉이다. 여기서 3분 정도를 더 가면 우측으로 뾰족뾰족 솟아 있는 봉이 일출봉이다. 여기 삼거리에 장터목 0.4km, 천왕봉 2.1km가 적혀 있다. 지리산 중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일출봉도 오래전 내대교에서 청래골로 들어와 오른 적이 있다. 여기서 보는 것과 직접 오르며 보는 경치는 많은 차이가 있다. 매우 좋은 곳이다. 일출봉 삼거리에서 10여분을 내려서면 천왕봉전 마지막 대피소인 장터목 대피소다.

 

천왕봉 정상(29.6km, 1915.4m) 12:33~13:00

장터목 대피소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가 물을 보충하고는 올라와 제석봉으로 향한다. 오르는 길이 계단 길로 언제나 쉽지 않은 길이다. 급경사 지대를 올라서고 이제는 좀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면 장터목 대피소에서 20분이 걸려서 제석봉아래 이정표에 닿는다. 천왕봉이 1.1km 남은 지점이다. 제석봉에서 바윗길을 따라 내려서고 안부에서 다시 올라서 봉을 하나 넘어야 천왕봉전 마지막 안부에 닿는다. 지리 1-51지점으로 천왕봉 0.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시원한 물을 마시며 한숨을 돌리고는 다시 오르면 통천문을 통과하여 돌부리 길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서 천왕봉에 닿는다. 장터목 산장에서 약 1시간이 걸려서 올라왔다. 매우 힘들게 올라왔다. 정상에 오르니 오늘따라 많은 학생들이 올라와 정상을 점령했고 중산리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정상석 앞에 있으니 누구한테 사진 찍어 달라 소리도 할 수 없고 그냥 사람들 다리 틈으로 천왕봉 글씨만 나오게 찍고는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식사를 하였다. 정상일대는 아직도 진달래가 만발해 있어 지리산이 높기는 높다는 생각을 가졌다. 진달래나무 옆으로 작고 앙증맞은 하얀꽃이 이쁘고 사랑스럽다.

 

중봉(30.4km, 1875m) 13:25

천왕봉에서 식사를 하고는 중봉으로 향한다. 이정표에 중산리 5.4km, 대원사 11.7km가 적혀 있다.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중봉을 향하여 길을 재촉한다. 몇 분간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천왕봉 0.2km, 유평 10.0km가 적혀 있는 지리 7-21번 지점을 지나 좀 더 내려가면 철 계단이 나온다. 철 계단을 내려서고 안부를 지나 이제는 오르기 시작하는 길이다. 천왕봉에서 볼 때는 한참을 땀을 빼야 겠다 싶었는대 여기는 안부에서 중봉까지 10분이 안 걸린다. 중봉에도 진달래가 곱게 피어 있다. 중봉에서는 다행히 대원사 쪽에서 올라온 분이 있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써리봉(31.3km, 1686km) 13:58

중봉에서 내려오면 4~5분 후 하봉과 치밭목으로 갈리는 지점에 닿는다. 지리 7-20지점으로 천왕봉 0.7km, 유평 9.5km가 적혀 있다. 출입통제 안내문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기 시작하면 등산로는 매우 가파르게 내려선다. 7~8분후 주목나무 옆을 지나고 5분을 더 가면 계단이 나오기 시작한다. 작은 봉을 여러번 넘어가며 계단은 계속 나온다. 철 계단을 오르고, 짧막한 계단을 내려서 안부를 지나며 다시 짧막한 철계단을 오르기도 하며 진행을 하면 조금은 길 다란 철 계단을 지나서 안부 공터에 닿는다. 이곳에서 안부사이로 천왕봉이 바로 앞쪽으로 보인다. 안부에서 조금을 가면 지리 7-18번 지점이다. 천왕봉 1.7km, 유평 8.5km 해발 1695m가 적혀 있다. 여기서 5분을 가면 바위가 둘려쳐져 있는 공터지대로 앞쪽으로는 바위봉으로 오르는 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앞쪽으로 거의 같은 높이의 바위봉이 보이며 그 앞쪽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계단을 내려서고 다시 계단을 올라서 바위봉으로 오르면 천왕봉 2.2km, 치밭목대피소 1.8km, 대원사 9.5km가 적힌 해발 1602m의 써리봉에 닿는다. 이곳도 조망은 매우 좋다. 중봉에서 이곳까지의 등산로가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구간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황금능선으로 내원사 쪽으로 하산을 할 수 있다.

 

치밭목 대피소(32.6km, 1435m) 14:30

써리봉에서 바윗길을 따라 내려서고 계단을 지나 바위능선을 따라 가면 20여분 후 지리 7-16지점으로 천왕봉 2.7km, 유평 7.5km으로 해발 1623m가 적혀 있다. 잠시 후 천왕봉 3.0km, 치밭목대피소 1.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등산로는 좌측으로 방향이 틀어져서 내려간다. 여기부터는 등산로가 매우 좋아지며 자작나무가 있는 지점을 지나서 좋아진 등산로를 따라서 10분을 더 가면 치밭목 대피소에 닿는다. 치밭목 대피소에서 좌측 편으로 빠지면 조개골로 비등구간이라 갈수 없으며 우측으로 계곡을 따라 유평으로 가야 한다. 천왕봉이 4km, 대원사가 7.8km가 남은 곳이다.

 

새재 삼거리(24.2km, 1087km) 15:18

치밭목 대피소에서 우측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계단 끝으로 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부터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잔돌이 깔려 있는 길로 매우 발 딛기가 나쁜 곳으로 지루하게 내려가야 한다. 20여분을 내려가면 계곡의 다리를 한번 건너고 조릿대사이로 난 테크 길을 따라 3분을 가면 치밭목 1.1km, 대원사 6.8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오며 등산로는 여기서 우측으로 방향이 꺽어져서 2분 정도를 가면 무제치기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다시 10분을 가면 새재 3.0km, 유평리 4.4km, 대원사 5.9km가 적혀 있는 새재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 길을 따라 유평으로 향한다.

 

유평 도로 교량(오면서 잠시 트렝글 멈춰서 약500m 누락, 38.4km, 427m) 16:12

새재삼거리에서 좌측 능선의 사면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간다.  30분후 좌측 능선 길에 닿는다. 능선 길을 따라 2~3분을 가면 대원사 4.1km, 유평 2.6km가 적혀 있는 장당봉앞 능선고개에 닿는다. 이곳에서 등산로는 반대편으로 넘어가 계속 내리막길로 치닫는다. 10분후 유평 2.0km, 대원사 3.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다리를 건너고 10분을 가면 아치형으로 생긴 다리가 나온다. 내려가며 트랭글이 멈춰서 다시 켜고를 반복하지만 쉽게 다시 원상회복이 안 되다가 대략 500m를 내려가서는 연결이 된다. 이후 내려가면 유평 1.0km가 적힌 7-03번 지점으로 해발 581m가 적혀 있다. 이제 길은 매우 좋아져 7~8분을 가면 찔레꽃이 만발한 지점에 입장가능시간이 적혀 있는 곳에서 조금을 더 가면 유평으로 가로 질러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몇 분후 유평마을길이 나오며 다리 옆으로 이정표가 있다. 천왕봉 10.2km, 새재마을 3.7km, 대원사 1.5km, 주차장 3.5km가 적혀 있다.

 

주차장 전 300m(대리기사와 만나 차량인수, 41.2km,  500m) 16:45

이제 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한다. 조금 내려가서 식당이 있는 마을을 지나며 혹시 어제 우리가 타고 온 차가 혹시나 있지 않을까 유심히 보며 갖지만 번호도 모르지 차종도 알수가 없어서 대충 보고는 빠르게 걸어서 내려가니 15분후 대원사 입구에 닿는다. 대원사를 지나고 일주문을 지나 대원교를 지나서 주차장 약 500m 전까지 내려가니 막 지나치는 차가 우리가 타고 온 차 마크와 닮아서 기사를 쳐다보니 역시 맡다. 이래서 여기서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키를 받아들고 기사님은 주차장으로 가면서 좋아하고 난 차를 몰고 대원사를 지나 유평마을의 산길이 끝나는 지점의 이정표가 있는 다리에 차를 주차하고는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기다리다가 잠시 깜박 조는 틈에 뽀빠이님 한테 여러 차례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하고는 아차 싶어 전화를 하니 대원사라고 한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차를 몰고 가는 중 만나 태우고는 유평마을 갑을 식당에 와서 기다리니 19시경 마지막 팀이 도착하여 이들은 배낭을 놓고 대원사로 향하고 뽀빠이님은 음료수 난 맥주한잔을 마시다가 뽀빠이님이 차를 몰고 대원사로 가서 델구 와서는 산행을 마무리 짓고는 닭백숙을 시켜서 저녁으로 든든히 먹고는 집으로 돌아오니 0시를 넘긴 0 13분이다.

 

오늘 산행 함께한 뽀빠이님을 비롯한 맨발의 청춘님, 장군아빠님 장뜰님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천왕봉 왕복종주 까지는 함께할 의향이 있으니 델구 가주시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산행시간 : 16시간 10분 소요( 대원사 15시간 52분 소요)

산행거리 ;  41.2km(대원사 약 39.9km)

 

화엄사 ~대원사 대리비 ; 10만원

식비 포함

경비 ; 일인당 5만냥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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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대종주

화대종주란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코재로 올라 주능선을 지나 중봉에서 경남 산청 대원사까지 46.3km의 코스를 말한다.

 

화대종주 ; 총거리 46.3km

화엄사 - 7 -노고단 - 3.2 -임걸령 -1.3 -노루목 -1.8 -화개재 -1.2 -토끼봉 - 3- 연하천 -2.1 -형제봉 -1.5 -벽소령 -2.4 -선비샘 -3.9 -세석 -3.4 -장터목 -1.7 -천왕봉 -0.9 -중봉 -3.1 -치밭목 -1.8 -새재삼거리 -4.4 -유평리 -1.6 -대원사 -2 -대원사매표소

 

갈 때 교통편

1511열차 조치원역 19:41 -구례구역 22:31

1513열차 조치원역 21:21 -구례구역 00:09 좌석 15400원 입석 13100

구례구역에서 봉고차

 

산행시간 : 01:00 ~19시까지 예상

 

올 때 교통편

진주 ~대원사 ; 6:30, 7:30, 8:35, 9:30, 17:30, 18:50, 20:30(1:15소요 5900)

대원사 ~진주 : 16:40, 17:50, 18:40, 19:30 (원지 35, 진주 1시간 소요, 43.04km)

*덕산택시 055-972-6662 덕산개인택시 055-972-6363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930-2

진주 ~서울 직행 : 30분 간격 21:00막차 심야버스 22:30, 24:00(서울 20300, 22300)

*죽암정차 확인 필요( 죽암휴게소 ~종합운동장 : 21.2km)

진주 ~ 대전 : 19:30, 21:00(우등) (2시간 20분소요, 일발 11400, 우등 15900)

진주 ~ 청주 : 19:00 (3시간 소요, 12800)

*죽암휴게소 상 ; 현도못미쳐 우록교 부근 SK광림주유소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오면 고 속도로 지나 사거리에서 다시 우측 방향으로 들어가면 휴게소로 진입

 

484열차 진주 20:00 -대전 22:25 좌석 33300원 입석 31600

1014열차 대전 22:41 -조치원 23:05 좌석 2600원 입석 2200

178열차 대전 22:44 -오송 22:58 좌석 8400원 입석 8000

1226열차 대전 01:06 -조치원 01:30 좌석 2600원 입석 2200

1274열차 진주 06:40 -조치원 11:13 좌석 22500

진주 21:18-순천22:39(4900) ~23:45 -조치원 02:49(17200)

(진주시외버스터미널 ~진주역 : 6.6km)

 

화대종주란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코재로 올라 주능선을 지나 중봉에서 경남 산청 대원사까지 46.3km의 코스를 말한다.

 

화대종주 ; 총거리 46.3km

화엄사 - 7 -노고단 - 3.2 -임걸령 -1.3 -노루목 -1.8 -화개재 -1.2 -토끼봉 - 3- 연하천 -2.1 -형제봉 -1.5 -벽소령 -2.4 -선비샘 -3.9 -세석 -3.4 -장터목 -1.7 -천왕봉 -0.9 -중봉 -3.1 -치밭목 -1.8 -새재삼거리 -4.4 -유평리 -1.6 -대원사 -2 -대원사매표소

 

지리산을 크게 놓고 보면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기준으로 좌측으로는 성삼재 -만복대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북쪽으로 연하천 -삼정산 -군자리로 이어진 [북부능선], 남쪽으로 세석 -삼신봉 -쌍계사로 이어진 [남부능선], 동쪽으로는 천왕봉에서 중봉 -하봉 -왕등재 -웅석봉 -수양산으로 이어지는 [동부능선]이 지리산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많은 코스가 있지만 엄선된 99개 코스가 많이 알려져 있으며, 특히 지리산 3대 장거리 코스로는

1) 화대종주 : 화엄사-주능선 -대원사 46.3km

2) 주능선 왕복종주 ; 성삼재  천왕봉 57km

3) 지리태극종주 : 동부능선 -주능선 -서북능선 90.5km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