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

792 백두23구간 은티마을~지름티재~희양산~이만봉~곰틀봉~백화산~황악산~조봉~이화령 2014.8.23.토요일 맑음

산야0 2023. 1. 13. 08:57

백두23구간 은티마을~지름티재~희양산~이만봉~곰틀봉~백화산~황악산~조봉~이화령

지름티재640m, 희양산999m, 이만봉990m, 곰틀봉968m, 백화산1063.9m, 황악산912.8m, 조봉673m, 이화령 548m

 

2014.8.23.토요일 맑음

참석인원 ; 백두산악회 백두대간팀

 

산행코스 : 은티마을200m -지름티재640m -희양산갈림길 -배너미평전920m-이만봉 -사다 리재820m -뇌정산갈림길(981봉) -평전치 -백화산 -황악산-분지리갈림길(862 봉) -794봉 -조봉 -이화령

산행거리 : 20km

산행시간 : 9시간

 

구간별거리

은티마을-2.8km- 지름치재 - 1.38km - 희양산 - 2.28km - 배너미평전 - 2.26km – 이만봉 - 1.1km - 사다리재 - 2.4km - 평전치 - 1.45km - 백화산 - 1.8km – 황학산 - 3.9km – 조봉 - 1.53km - 이화령 20.9km

구간별 소요시간

은티마을-40분 -지름티재 - 1시간 - 희양산 - 20분 - 성터갈림길 - 30분 - 배너미평전 - 1시간30분 – 사다리재 – 1.5시간 - 백화산 - 1시간 - 황학산 – 1.5시간 – 이화령

 

*은티마을 -2.8km-지름티재 -0.73-희양산갈림길 -1.7-배너미평전 -2.2-이만봉-1.1-사다 리재 -1.6-뇌정산갈림길 -0.85-평전치 -1.4-백화산 -1.9-황악산 -2.3-794봉(억새밭) -1.6-조봉 -1.5-이화령 총산행거리 : 19.68km

 

청주 6:05 -괴강휴게소 6:43 ~6:55 -은티마을 주차장 7:17 ~7:27 -임도삼거리(백두대간 희양산 표지석, 안내도, 1.47km) 7:44 -정자 삼거리(2.06km) 7:53 -지름티재(2.81km) 8:08 -바위전망대(2.96km) 8:14 - 봉암사 목책 끝지점(3.27km) 8:25 -로프지대 하단 8:30 -희양산 삼거리(3.54km) 8:40 -희양산 정상(3.95km, 999m) 8:52 ~9:00 -다시 희양산 삼거리(4.36km) 9:09 -성터삼거리 9:16 -871봉 -약910봉(5.17km) 9:29 - 계곡삼거리 이정표(5.97km) 9:43 -배너미평전 시루봉 삼거리(920m, 6.55km) 9:54 -963봉 삼거리(7.13km) 10:07 -도막 삼거리(7.33km) 10:11 -작은바위턱 로프 10:20 -전망대(용바위) 10:22 -잡석 로프지대 10:24 -마당바위 -이만봉 (8.19km, 990m) 10:30 ~10:35 -암릉 -곰틀봉(8.67km, 968m) 10:49 -사다리재(9.24km, 820m) 11:01 -886봉 11:22 -뇌정산 삼거리(10.8km, 977m) 11:34 ~12:03 -982봉 12:05 -약954봉(11.1km) 12:10 -평전치(11.4km, 약907m) 11:19 -암봉 로프지대(11.8km, 약 900m) 12:24 - 1001봉(12.4km) 12:39 ~12:46 -만덕사 갈림길(12.5km, 약990m) 12:48 - 1012봉 좌측으로 우회 -백화산 정상(12.9km, 1063.9m) 13:00 ~13:06 -마원리 하산로(13.0km) 13:09 - 로프암릉지대 13:16 -헬기장(13.6km, 약961m) 03:24 -두번째 마원리 하산로(13.8km, 약950봉) 13:26 -904봉(14.2km) 13:32 -황악산 정상(14.7km, 915.1m) 13:42 -우측 낙엽송지대 -흰드메하산로(15.1km, 약830m) 13:48 -862봉(15.3km) 13:53 ~13:58 -좌측으로 푸른 초원지대 -공터(우꺽임, 16.3km,약765m) 14:11 -웅덩이, 풀밭길, 낙엽송숲 -헬기장(갈미봉 삼거리, 16.7km, 약785m) 14:20 -헬기장(17.2km, 약765m) 14:23 -조봉(17.3km, 약790m) 14:31 - 약755봉(작은바위들 있는 봉, 17.6km) 14:35 -가파른 내리막 -함몰지대(우측사면으로도 길이 보임, 18.3km, 약670m) -봉 -내리막 가지 많은 큰소나무 14:52 -안부(좌측으로 낙엽송 조림지있는 평탄지, 19.1km, 약640m) 14:53 -헬기장(19.2km, 약660m) 14:56 -681봉 우측으로 우회 -이화령(20.0km, 540m) 15:12 ~17:45 -괴강휴게소 18:07 ~18:14 - 청주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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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하여 이유릿재라 하였다. 그 후에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됐다. 이화령의 높이는 548m이고, 소백산맥의 조령산(鳥嶺山, 1,017m)과 갈미봉(葛味峰, 783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동쪽사면은 조령천(鳥嶺川)의 곡구(谷口)인 진안리에서 서쪽으로 분기하는 하곡과 통하고, 서쪽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達川)으로 흐르는 연풍천(延豊川)의 하곡으로 이어진다.

도로도 위에 언급된 계곡을 따라 개통되었으나, 동편의 진안리에서 이화령 고개까지는 갈미봉의 산록을 따라 올라가고, 서편은 행촌리까지 ‘잣밭등’의 남쪽을 따라 내려간다. 고개 아래 연풍은 영하취락(嶺下聚落)이다. 옛날의 국도는 새재[鳥嶺]로 통하였으나, 새재는 몹시 높고 산로(山路)가 험하므로 신국도 3호선은 이화령을 통하게 되어 연풍은 이화령에 교통로가 열린 뒤에 발달한 신흥취락이다.

 

연풍에서 하곡을 따라 올라가 원풍리를 거쳐 분수령에 이르면 동쪽은 새재마루의 조령 제3관문이고, 서쪽은 소조령(小鳥嶺)이다. 소조령을 넘으면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水安堡)에 이른다. 이와 같이 이화령은 충청북도의 충주권과 경상북도 북부의 점촌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화령의 개통으로 북쪽의 조령은 제1·2·3 관문과 주변의 성곽 등을 사적 제147호로 지정하고 크게 보수, 축조하여 도립공원으로 정비하였다.

 

조령의 통과는 중초리에서 통제되고 관광객이나 등산로 외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이화령은 국도 제3호가 통과하여 주변지역에서 산출되는 특용작물의 수송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리하여 옛 조령에 이어 이화령은 새로운 교통요충지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국도 3호선은 도로가 구불구불하여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투자사업으로는 처음으로 3번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이화령 터널이 뚫렸다. 그 뒤 이화령 터널 옆으로 고속도로의 상하행선 터널이 추가로 관통됨으로써 모두 3개의 터널이 있게 됐고, 옛 이화령 포장도로까지 합쳐 10개의 차로의 도로들이 나란히 있는 실정이다. 이화령 터널을 건설할 당시 예상한 이용률보다 훨씬 적어서 문제가 되었고, 2007년 건설교통부가 ‘이화령 터널’을 인수하여 2007년 8월 1일 터널 통행료가 폐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화령 [梨花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괴산 은티마을 남근석

여근곡에 안긴 마을 남근석 세워 음양조화

 

은티 마을은 멀고도 멀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나에게는 그렇게 멀어만 보이던 그 마을에 많은 사람들을 위한 주차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 은티 마을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에 있는 것으로 관련 책자에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분지리를 찾아가 안말과 가장 깊숙이 있는 흰두뫼까지 들어가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다.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괴산으로 방향을 돌려 내려오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영감님을 만났다. 찾아온 이유와 함께 남근석이 있는 마을을 물었더니 주저 없이 주진리(周榛里)라고 알려 주었다.

낯선 이방인에게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도 찾기 어려웠다. 사람을 만나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해서 겨우 은티 마을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 마을은 희양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하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등산을 하지 않는 이에게 마을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미로게임이나 다름없었다.

 

산골 마을이지만 오래 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괴산지명지’를 찾아보니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아마 병자호란 때 김해 김씨들이 이곳으로 피란을 오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깊은 산속 무릉도원으로서 이 마을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진리는 조선시대에 연풍군 현내면에 속했던 마을이다. 1914년 여러 마을을 합쳐 주진리라고 하였으나, 8·15 광복이 되면서 행정구역을 세분화하여 3개 마을로 나누었다. 그 중에서도 은티리는 희양산 자락에 위치한 가장 산골 마을이었다.

 

조선시대 특산물로 송이버섯과 석이버섯, 잣, 꿀 등이라는 점에서 농사가 별로 없는 산골임이 분명하다. 현재도 주로 콩과 고추 등의 밭작물과 사과 같은 과일이 주 작물이다.

 

은티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커다란 화강암 판석에 마을의 유래를 적은 것이 보인다. 이런 마을에 무슨 남근석이 필요할까 매우 궁금하던 차에 이 내용을 보니 쉽게 이해가 되었다.

 

사실 은티 마을은 여느 산골 마을처럼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래서 그 형세가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은 여근곡(女根谷)이다.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근곡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나타난다. 신라 선덕여왕은 세 가지의 일을 미리 알아냈는데, 그 중 하나가 여근곡에 숨어 있던 백제 병사를 찾아낸 일이다. 즉 겨울인데도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울었다고 한다. 이것을 들은 여왕이 군사를 여근곡에 보냈다. 그곳에는 경주를 습격하기 위해 백제 병사들이 숨어 있다가 전멸됐다. 게다가 이들의 후미에 있던 병사까지 몰살됐다고 한다.

 

개구리가 우는 것은 남자가 성냄을 뜻하는 것이요, 옥문은 여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근곡에 병사가 숨어 있음을 알아내고 이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선덕여왕은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로 들어가면 필경 죽는다(男根入於女根則必死矣)’라고 하는 설명으로 대신했다. 매우 탁월한 표현법이 아닐 수 없다. (경주 건천 오봉산 여근곡에 있는 전설임)

 

이 마을도 역시 여근곡이기 때문에 이를 맞춰줄 어떤 장치가 필요했던 듯하다. 즉 마을이 번창하고 아들을 많이 낳기 위해서는 남근석을 세워야 한다는 논리가 가미되었다. 여근과 남근을 합체시킴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인식 때문이다. 물론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한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반대로 여근곡만 있을 경우 마을이 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여자들의 바람기를 잠재울 수 있는 풍수 비보(裨補)의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다. 즉 남근석을 마을 입구, 즉 여성기의 입구에 세움으로써 그 바람기를 막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남근석보다는 탑이라는 장치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마을이 배의 형국일 경우가 그러하다. 과거에 배라는 것은 돛이 달렸기 때문에 바람을 이용해서 항해한다. 그렇기에 바람이 불면 마을이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돌탑을 세웠던 것이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도마리 탑동의 경우가 좋은 예이다. 하지만 은티 마을은 남근석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시했는데, 이것은 마을의 형국이 여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 남근석은 하나의 선돌을 세운 것이 아니다. 약 120㎝짜리 남근석을 가운데 세우고 그 옆으로 조그만 돌들을 세워서 아기자기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지난 마을 제의 때 쳐놓은 금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주위에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세워져 있는데 300∼400년 정도 된 것이라고 한다.

 

이 남근석에 대한 제의가 매년 섣달 20일에 행해지며, 이를 ‘동구제(洞口祭)’라고 부른다. 아마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붙인 명칭인 듯하다. 음식을 장만하는 주판집과 지관, 축관 등 4명을 선출해서 제사를 올린다. 대개 농사가 잘되고 동네가 화목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재 거주하는 28가구의 대주(大主·바깥주인)를 위한 소지를 올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문제는 이 마을의 남근석은 기자신앙의 대상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마을을 수호하는 신앙체로 자리잡았는데, 이것은 남근석이 자식 점지라는 기자신앙의 한 모습으로만 정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남근석을 모시는 신앙의 중심은 바로 마을의 평안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것임을 은티 마을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글 : 김종대 (문학박사·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발췌 :세계일보

 

봉암사

가은에서 서북쪽으로 길을 잡아 가다보면 멀리 흰 봉우리가 불쑥 솟아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희양산이다. 그처럼 흰 바위봉우리를 이고 있는 희양산은 옛부터 ‘절이 들어서지 않으면 도적이 들끓을 자리’로 지목되어 왔다.그 희양산 중턱에 봉암사가 들어앉아 있다. 절집 뒤로 희양산 허리에 구름이 걸려 짙은 녹빛과 어우러져 있는데 이 산자락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에 두 발을 디디고 있는 속리산국립공원에 잇대어 있다.

                                  

이렇게 높은 산 중턱에 제법 너른 터를 닦아 자리한 봉암사는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이 열린 절이다. 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헌 지증대사(道憲 智證大師, 824~882)가 창건했다. 봉암사에 있는 지증국사 비문에 따르면 도헌은 경주사람 김찬양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불도에 뜻을 두고 부석사에서 출가하였다. 열일곱에 구족계를 받고 정진에 힘썼고, 스물에 이미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임금의 간곡한 권유에도 수도인 경주로 나아가지 않고 수행정진에 힘썼다. 그러던 중에 심충이란 사람이 희양산에 있는 땅을 내면서 선원을 세우기를 청하니 와 보고 “이 땅을 얻었다는 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승려들이 살지 않는다면 도적굴이 될 것이다” 하면서 봉암사를 세웠다. 이렇게 하여 신라 하대의 새로운 사상인 선종의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문이 개창되었던 것이다.그러나 후삼국이 대립하게 되면서 이곳 문경은 견훤과 왕건의 격전장이 되었다. 그 와중에 봉암사는 전란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고 극락전만 남게 되었다. 정진대사 부도비의 비문에 따르면 대사가 희양산에 다다라보니 그때의 형상은 “부처를 모시던 뜰과 승려들이 살던 방은 반 이상이 황폐해 있었”고, “우뚝 솟은 것은 이무기의 머리를 지고 있는 거북이 받침 위에 놓인 새김돌로 덕 있는 선사의 행적을 새긴 것이고, 높이 서 있는 것은 금칠한 불상으로 신령한 빛을 비추고 서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었던 것을 정진대사가 주석하게 되어 크게 다시 일으켰다. 그러나 그후 임진왜란 때 큰불이 나서 극락전을 빼고 모두 불탔고, 그뒤에도 1907년에 대웅전에 불이 나는 등 여러 번 화재가 나 지금 남은 당우들에서는 옛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1992년에 중창한 대웅보전과 금색전·조사전·극락전 등의 당우와 몇 채의 요사채만 해도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조화를 갖추고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속되고 있는 불사는 아늑하고 조용했던 절집의 모습을 자꾸 변질시키고 있어서 안타깝다. 특히 최근에 얹은 새 기와들은 너무 깔끔해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집을 지은 뒤 약 150년에서 200년쯤 지나서 재목이나 기와를 가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20년마다 기와를 갈지 않으면 부서져 나갈 만큼 근기가 없다고 한다. 이런 기와를 보노라면 개발을 내세우며 무엇이든 ‘빨리 빨리’ 해치웠던 성급한 산업화 시대의 후유증을 보는 듯하다.근래에 지은 이런 못난 건물들 사이에서도 유서 깊은 유물·유적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봉암사의 역사가 만만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금색전 앞쪽에 서 있는 잘생긴 삼층석탑은 창건 당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보이며, 대웅보전 앞마당에 양쪽으로 늘어선 상당한 크기의 노주석도 그 속에 깃든 시간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대웅보전 서편에는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의 부도인 지증대사 적조탑과 그 탑비가 보호각 안에 모셔져 있으며, 절의 동쪽 산기슭에는 고려 초에 절을 크게 중창한 정진대사의 부도와 비가 남아 있다. 또 봉암사 경내를 벗어나 백운대로 가는 계곡 옆의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도 봉암사의 유서 깊음을 보여주는 데 한몫 하고 있다.

                                  

봉암사는 우리나라 절집 가운데 가장 찾아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러나 지리적인 원인보다는 초파일이 아니면 일반인에게 문을 열지 않는 폐쇄성이 더 큰 원인이다. 수도도량을 보존하려는 충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아쉬운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교통, 숙식 등 여행에 필요한 기초 정보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 있다. 문경새재 제1관문에서 다시 진안리 검문소 앞으로 나와 문경 시내(점촌)로 이어지는 3번 국도를 따라 7.3㎞ 가면 조령천을 건너는 소야교 바로 앞에서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난 901번 지방도로를 따라 9.1㎞ 가면 가은읍 가은파출소 앞에 닿게 되고 길 오른쪽에 괴산으로 가는 922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가은파출소 앞에서 922번 지방도로를 따라 6.3㎞ 가면 삼리교가 나오고 삼리교 바로 앞 오른쪽에는 원북리로 가는 마을길이 나 있다. 마을길을 따라 3㎞ 가면 봉암사 입구에 닿는다. 봉암사 입구에는 대형버스도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있다. 절 앞에 음식점은 두어 곳 있으나 잠잘 곳은 없다. 문경 시내(점촌)에서 봉암사 입구까지는 300번 시내버스가 하루 3회 다닌다.문경(점촌)에서 가은까지는 300번 시내버스가 30분 간격으로 다닌다. 봉암사는 1982년부터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돼 참배하러 오는 봉암사 신도 이외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사월 초파일 하루에 한하여 일반인에게 경내를 공개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암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북부, 초판 1997, 15쇄 2010, 돌베개)

 

♣ 희양산(998m)

희양산(998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 줄기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산이다.

백화산을 일으켰던 소백산 줄기가 서쪽으로 휘어지면서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그 산들 중 하나가 희양산으로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다.

희양산은 산 중턱에서 정상쪽으로 암벽을 두르고 솟은 모습이 특이하며 옛날 사람들은 장엄한 암벽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 했다.

지증대사가 희양산의 지세를 보고 '산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요즘은 아쉽게도 봉암사에서 수도에 방해가 된다며 출입을 금하고 있다.

산행은 봉암사를 거치지 않는 등산로를 택해야 한다. 은티마을을 들머리로 정상에 오를 수 있고, 홍문정을 들머리로 골짜기를 따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은티마을 - 지름티재 - 정상 - 홍문정 코스가 3~4시간 정도 걸린다.

 

희양산 남쪽 자락에 천년 고찰 봉암사가 있다. 봉암사는 마지막으로 남은 청정 수행 도량으로 1년에 딱 하루만 일반인들의 방문을 허락한다. 그날이 바로 사월 초파일이다.

희양산은 문경의 산이지만 그러나 봉암사에서 정진 수도를 위해 등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기에 등산을 하고자 하면 괴산군 연풍면에서 접근하도록 한다.

산을 바라보는 모습이야 경북쪽에서 보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봉이 장엄하기까지 하지만 등산의 아기자기한 감동과 즐거움은 괴산의 은티마을에서 오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은티마을 유래비가 서있는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노송과 전나무가 줄을 지어 서있어 찾는이들을 반겨준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빚어논 바위들이 기기묘묘하고 바위끝에서 내려다 보는 봉암사의 까만 기와지붕이 감회를 불러 이르키고 20리 봉암사 계곡이 소나무숲에 쌓여 진풍경을 연출한다. 백두 대간을 달려오는 백호산과 이만봉이 가까이에 서 있고 원북리 계곡이 깊게 느껴진다.

 

♣ 이만봉(989m)

이만봉(989m)은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서 충북과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길에 솟아 있다. 원북리 홍문정 성골을 중간에 두고 희양산과 시루봉,이만봉이 정삼각형을 이루고, 백두대간이 백화산을 지나면서 남쪽으로 뇌정산을 맺어 놓았으며 이만봉과 시루봉을 지나 희양산으로 이어진다.

이만봉이란 산 이름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과 또 옛날 이만호라는 이름을 가진 형제가 이 산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이름이라는 얘기가 전한다.

 

♣ 백화산(1,064m)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며 괴산군 안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조령산을 달려온 백두대간이 다시 동남쪽으로 크게 휘돌아 백화산(1,064m)을 듬직하게 두고 희양산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완만한 능선으로 된 백화산은 잡모과 억새밭이 많고 곳곳에 암릉지대가 있는 산이다.

 

백화산은 봉황새다. 성인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다는 봉황의 수컷이다. 그 발치에 봉생(鳳笙), 왼쪽에 봉황이 울었다는 봉명산(鳳鳴山 691m), 오른쪽에 천년고찰 봉암사(鳳岩寺)를 두고 뒤쪽의 이우릿재(梨花嶺)와 시루봉(914.5m)으로 날개를 펼친 거대한 새다.

북으로 성채처럼 흘립(屹立)한 주흘산, 돌기둥 뚜렷한 부봉, 조령산의 빛나는 바위면 뒤로 월악산(1093m)이 환상의 성처럼 떠오를 것이다. 남으로 눈을 돌리면 희양산의 눈부신 암벽 저편에 속리산(1057.7m)톱낙능선이 무쇠처럼 검다.

운달산 너머 소백산(1439.5m)이 아련하다.이렇게 많은 명산이 한 자리에서 보이는 데는 이땅이 달리 없다.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서기(瑞氣)어린 부분이 까닭이다.

4단으로 된 정상남벽에는 근동사람들이 명당자리로 꼽은 기도터가 있다. 깎은 듯한 절벽, 보면 볼수록 하늘이 다가오는 듯한 벼랑 아래 눈비 가릴만한 감실(龕室)이 마련되었다. 십여미터 떨어진 곳에는 샘이 솟는다.

 

♣ 황학산(912.8m)

황학산(912.8m)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고 북으로는 조령산과 남으로는 백화산을 두고있다. 따라서 산행 코스를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

백두대간의 중추를 이루는 황학산은 제3번 국도인 이화령 남쪽 6km 거리에 솟아있고 바로 옆에 덩치 큰 백화산(1,064m)이 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이 때문에 호젓한 산길과 산마루에 펼쳐진 큰 억새밭과 참나무 숲길은 어느 산과도 비교해 보아도 뛰어나다.

 

산행에 임해보면 밑에서 보기에는 밋밋한 산세가 무척 수월해 보이지만 경사가 예상외로 급하고 또 정상에서 백화산으로 잇는 능선은 수많은 암봉과 가득한 수림으로 덮여 있어 고산다운 면모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억새가 좋은 곳은 정상 바로 밑 수만평 정도의 억새밭이다. 특별한 길이 없는 정상부의 억새밭은 이리저리 발길 닿는대로 갈 수 있고 백두대간 따라 펼쳐지는 억새밭을 감상할 수 있다.

황학산은 문경읍 마원리에서 갈 수 있으나 이화령(3번 국도)에서 바로 밑 각서리에서 시작함이 제일 쉽다. 각서리 농산물 판매점 앞을 지나 잘 닦인 농로를 따라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황학산이 보이고 백화산도 보인다. 억세밭 계곡에 식수가 있으나 찾기가 어렵고 산행시작 전에 물을 준비해야 한다. 황학산에 황계산으로 능선 길을 찾을 시는 정확한 독도법이 필요하다.

황계산(562.7m) 은 백두대간인 황학산에서 854m 고지를 지나 북쪽으로 내려가면 황계산 정상을 지나게 된다. 문경읍 각서리의 풍덕동계곡에서 홍계산을 바로 올라도 되고 진안리에서 정상을 보고 오르는 길도 있으나 모두 황학산으로 연결되어 백화산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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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6:05

이번 산행으로 백두대간 산행도 중반을 넘어서게 된다. 우리지역의 괴산 연풍의 은티마을에서 부터 시작하여 경북 가은과 경계지역에 있는 지름티재를 시작으로 희양산 이만봉 곰틀봉 백화산을 거쳐 황악산 조봉을 끝으로 이화령까지 20키로에 이르는 산행으로 8~10시간이 소요되는 산행코스다. 며칠째 계속 되던 비가 그치고 어제 오늘 모처럼 맑은 날씨를 보이고 있다. 산행하기는 참으로 좋은 날씨가 되겠다. 오늘도 일행과 함께 출발장소인 내덕동에 도착하여 참석인원이 모두 승차하고 6시 05분 청주를 출발한다.

 

은티마을 주차장 7:17 ~7:27

청주를 출발한 버스는 증평을 지나고 괴산에 접어들어 몇 회 째를 가까운 거리로 인하여 휴게소를 들르지 않다가 오늘은 괴강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거리가 조금씩 멀어진다는 애기가 되겠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10여분을 더 달려 연풍으로 빠져나가 오늘 산행 출발지인 은티마을 주차장엔 휴게소에서 22분이 소요되어 7시 17분 도착을 한다.

 

지름티재(2.81km) 8:08 -바위전망대(2.96km) 8:14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산행준비 후 간단한 기념사진을 촬영 후 7시 27분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 입구의 찌그러진 주전자와 산악회 표지기들이 걸려 있는 주막집을 지나 마을 앞 삼거리에서 좌측편 임도를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저번 구왕봉에서 하산 할 때는 시퍼렇던 사과가 이제는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먹음직스럽다. 이른 아침부터 일손이 바쁜 농부들은 모처럼 맞은 휴일에 때맞추어 가족을 데리고 농장으로 달려오고 우리는 그 곁을 지나 산으로 향하는데 조금은 미안한 감도 있다. 잠시 후 백두대간 희양산 표지석이 있고, 등산안내도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 편으로 오르면 10여분 후 좌측 개울을 건너 성터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 정자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 이정표에 성터 1.2km, 지름티재 1.0km, 은티마을 0.8km가 적힌 이정표가 서있다. 은티마을은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주차장부터는 이곳까지 약 2km가 나온다. 산행은 지름티재를 향하여 이어진다. 조금씩 오름길이 시작되다가 지름티재로 오르는 마지막 지점은 상당히 가파르다. 이곳까지 주차장에서 41분이 소요되었다. 지름티재에서 봉암사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목책을 쳐놓아 넘지 말도록 하였다. 목책 너머에는 작은 초소도 있어 봉암사는 철벽 방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인 것은 희양산 길은 터놓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희양산으로 오르려다. 많은 실갱이가 벌어지곤 하였다. 막는 사람과 오르려는 사람들의 싸움에서 일단은 봉암사 측에서 손을 든 것인가!! 아니면 양보를 한 것인가!! 어쨌든 잘 된 일이다.

 

희양산 정상(3.95km, 999m) 8:52 ~9:00

지름티재에서 좌측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10여분 후 구왕봉과 마주 하는 바위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구왕봉의 모습도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있고 바위틈새 자란 소나무들이 많아 여기서 볼 때 아주 멋지게 보인다. 오늘 날씨가 출발 할 때는 안개가 자욱하니 시야가 흐렸지만 이제는 안개는 벗어지고 연무가 짙게 껴서 희뿌연하니 조망은 그리 좋지 못하다. 바위전망대에서 돌아서면 짧막한 로프가 있는 바위 턱을 올라 산행이 이어진다. 2~3분을 더 가면 머리위로 커다란 사각형의 바위가 보이고 바위 아래 가까이 가면 바위군락 속으로 등산로가 들어간다. 어느 틈새로 빠져나가야 할까 둘러보니 좌측 바위틈새가 비었다. 이곳으로 빠져나가 위로 오르면 커다란 사각형 바위 앞에 멋지게 서있는 한그루의 노송을 볼 수가 있다. 이제 물기가 줄줄 흐르는 바위들을 밟고 위로 오르면 6~7분후 목책이 끝나는 지점에 닿는다. 절대로 봉암사로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표시다. 목책이 끝나고 6~7분을 더 오르면 이제는 희양산 코스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절벽지대 앞에 닿는다. 예전에는 줄을 매면 절 측에서 끊어 놓고, 다시 매고 하기를 반복했으나 이제는 여러 가닥의 줄이 매여져 있으니 예전보다는 한결 수월히 오를 수 있겠다. 첫 번째 오르는 곳에는 신갈나무기둥에 세 가닥의 줄이 매여져 있어 어느 하나만 잡고 오르면 된다. 이후 두 번째도 신갈나무에 세 가닥의 줄이 매여져 있다. 이곳을 오르면 우측으로는 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바위벽이 떡 버티고 서있고, 오르는 곳은 길게 뿌리 하나가 바위 겉으로 뻗어 내린 곳으로 이소나무 기둥에 한 가닥 로프가 매여져 있다. 이곳을 올라 잠시 뒤돌아보니 고사목 하나가 멋스럽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여기서 오르는 곳도 세 가닥의 줄이 매여져 있어 오르는 대는 어럽지 않다. 이제 앞쪽으로는 길게 뻗은 바위벽 옆으로 좁은 통로로 매여져 있는 한 가닥 로프를 따라 오르면 마지막 능선으로 오르는 바위절벽지대에 걸려 있는 두줄기 밧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지금까지 보다는 난이도가 높아 잠시 팔에 힘이 들어간다. 마지막 로프지대를 오르면 구왕봉 1.5km, 시루봉 3.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와 너덜너덜 누더기가 된 안내도가 반긴다. 이곳 한 모퉁에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희양산 정상을 다녀오기로 한다. 처음 오르는 곳을 지나면 이후로는 암릉 길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이다. 암릉에 가끔씩 자란 소나무도 명품이요! 여기서 바라보는 구왕봉도 명품이다. 암릉을 따라 사진도 찍으며 12분을 진행하니 희양산 정상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유명한 희양산 정상에 정상석은 너무 초라하다. 반이 갈라진 자연석에 쓰여진 ‘희양산 998m’ 누군가 글씨가 지워 질 새라 널찍한 바위로 위를 덮어 놓았다. 정상에서 바위 아래턱으로 내려서면 앞쪽으로는 이만봉 곰틀봉이 마주하여 우리가 앞으로 이어갈 능선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오늘 날씨가 연무가 짙게 끼여 조망을 좋지는 않다.

 

배너미평전 시루봉 삼거리(920m, 6.55km) 9:54

희양산 정상에서 잠시 기다려 선두팀 십 여명이 단체로 사진도 찍고 개인사진도 찍고는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올 때는 사진을 찍어서 인지 10분이 더 걸렸지만 내려갈 적엔 10분이 안 걸린다. 희양산에서 삼거리 까지는 약 450m 왕복 20분이면 족하다. 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음료를 드시는 분 희양산으로 오르고자 하시는 분 주위가 산만하다. 배낭을 짊어지고 복잡한 삼거리를 벗어나 시루봉 쪽으로 향한다. 조금씩 내려서는 길을 따라 가면 성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은티마을에서 올라와 정자가 있는 곳에서 올라온 길이 있다. 여기 삼거리 이정표에 은티마을 3.2km, 희양산 1.0km, 시루봉 2.2km가 적혀있다. 잠시 성터 길을 따라 가면 다시 오르기 시작하여 해발 약 871봉을 넘고 다시 평탄한길을 따라가다. 앞쪽에 보이는 높은 봉에 오르면 해발 약910봉으로 이봉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시루봉이 앞쪽으로 보인다. 910봉에서 내려서니 앞쪽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팀원으로 생각이 든다. 910봉에서 15분후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울가 옆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이정표에는 희양산 40분, 시루봉 20분, 은티마을 50분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잠시 한눈을 팔아 계곡을 건너 은티마을 쪽으로 약 200m 정도 진행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니 삼거리에서 휴식 중이던 일행들은 시루봉을 향하여 떠나고 없다. 만돌이 대장과 함께 이들을 뒤 쫒아 가니 배너미평전 시루봉 삼거리에서 만난다. 여기 이정표에는 이만봉 60분이 적혀 있다.

 

이만봉 (8.19km, 990m) 10:30 ~10:35

배너미평전 시루봉 삼거리에서 우측 방향으로 가면 이만봉이다. 이 길을 따라 3분을 더 가면 삼거리에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 길은 시루봉길, 우측 길은 이만봉 길이다. 이정표의 방향이 조금 삐딱하여 공연한 분이 오해를 사기도 했다. 두 번째 시루봉 삼거리에서 10여분을 서서히 올라서면 963봉 삼거리로 이곳에서 우측은 봉암사 쪽으로 좌측은 이만봉으로 향한다. 이만봉을 향하여 진행을 하면 1분후 119구조 이만봉 8지점을 통과하여 3분후 도막으로 하산을 하는 지점의 이정표가 나온다. 시루봉 1.7km, 이만봉 0.8km, 도막 2.3km가 적혀있다. 이곳을 지나 작은 바위턱 로프를 잡고 내려오면 지도에 용바위라 표시가 된 바위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분지리의 마을과 계속이 조망이 되지만 흐릿하니 잘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를 지나 내려서는 곳도 잡석으로 된 바위지대로 로프가 매여져 있다. 이곳을 지나며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12분을 헉헉대며 올라서니 까망색 대리석으로 된 이만봉 정상석이 있다. 정상석 받침대에는 시루봉 2.1km, 백화산 4.7km가 적혀 있다. 이만봉에서 잠시 휴식 후 출발을 한다.

 

곰틀봉(8.67km, 968m) 10:49

이만봉에서 곰틀봉은 가까운 거리에 있다. 거리가 약 500m로 15분이면 닿는다. 이곳으로 가는 길은 이만봉에서 가파르게 내려선 후 평탄한 능선으로 암릉 길이 많으며 역시 곰틀봉으로 오르는 길도 만만치는 않다. 5분여 이상을 숨소리 높여 오르면 우측 벼랑 끝으로 고사목 하나가 버티고 있다. 이곳이 곰틀봉으로 고사목 기둥에 ‘곰틀봉’이라 새겨 놓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조망도 좋은 곳이다.

 

뇌정산 삼거리(10.8km, 977m) 11:34 ~12:03

곰틀봉에서 내려서면 사다리재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는 분지안말 1.9km, 시루봉 1.2km, 백화산 4.8km로 이만봉의 이정표 거리와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다리재를 지나며 오름길이 시작된다. 십 여분 후 해발 약886봉을 지나고 다시 한번 더 길게 올라서면 뇌정산 삼거리로 해발 약 977m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 등산로는 뇌정산으로 가는 길로 상당히 험한 곳이 많다. 여기 이정표에는 뇌정산 2.6km, 백화산 2.1km, 이화령 9.1km, 이만봉 2.1km, 희양산 6.5km가 적혀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출발한다.

 

백화산 정상(12.9km, 1063.9m) 13:00 ~13:06

뇌정산 삼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출발하면 금시 982봉에 오르고 이어지는 능선은 거의 평탄하여 걷기에 매우 좋다. 해발 약 954봉을 넘고 다시 더 가면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에서 급하게 내려서며 분지리 2.2km, 백화산 1.2km, 이화령 8.2km가 적혀 있는 평전치에 닿는다. 이제 백화산까지는 50분이 소요된다고 적혀 있다. 평전치에서 오르는 길은 능선의 우측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5분후 암봉으로 로프가 매여져 있다. 로프를 잡고 안부로 내려선 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숨 가쁘게 오르기 시작하여 15분이 지나니 해발 1001봉에 닿는다. 이봉에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출발한다. 안부로 내려서면 만덕사 갈림길로 만덕사 1.2km, 백화산 0.4km, 이화령 7.4km가 적혀 있다. 앞에 보이는 바위봉은 좌측으로 우회를 하여 지나고 마지막 백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바위길이 많아 쉽지는 않다. 온힘을 쏟아 백화산에 오르니 햇살이 너무 따갑다. 잠시 오늘의 최고봉인 백화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는 그늘로 들어가 잠시 머문 후 출발을 한다. 백화산에는 삼각점이 있고, 오래된 자그마한 자연석으로 된 정상석이 있다.

 

 

황악산 정상(14.7km, 915.1m) 13:42

백화산 정상에서 헬기장을 지나 조금 내려오면 우측으로 하산로가 있다. 이 길은 문경 마원리로 하산을 할 수도 있고, 능곡산을 거쳐 하내리로 하산을 할 수도 있다. 마원리 하산로 삼거리를 지나 3분을 내려서면 쓰러질듯 누워버린 신갈나무가 있다. 몸통이 반쯤은 상처를 입은 나무로 끈질긴 생명력의 표본이라 하겠다. 다시 3분후 칼날 같은 암릉에 닿는다.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야 하는데 첫 번째는 우측의 바위 틈새로 보이는 로프를 잡고 4~5m 아래로 내려서야 한다. 두 번째는 몇 발짝 앞으로 더 가면 우측으로 바위를 잡고 내려서기 좋은 곳이 있다. 이렇게 두 군데의 내려서는 곳을 이용하여 암릉을 우회하여 다시 오르는 곳도 만만치가 않다. 로프를 잡고 힘껏 올라서야 한다. 능선에 닿은 후 조금 더 올라서면 바위 끝으로 조망이 좋은 곳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지나온 백화산이 바로 앞쪽으로 높이 솟아 있다. 이제 신갈나무 우거진 숲길을 따라 가면 풀이 수북히 자란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 주변으로는 마타리, 등골나물, 자주꽃방망이, 참취꽃등 야생화가 지천이고 시원스레 능선을 가르는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두 번째 마원리 하산로가 나온다. 여기이정표 기둥에 흰드메 삼거리라 되어 있는데 흰드메 와는 상관이 없을듯하다. 흰드메는 분지말에서 황악산으로 오를 때 널찍한 평전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쪽으로 하산로도 없고 왜 흰드메 삼거리인지 모르겠다. 옛날 지도를 보면 황악산 아래쪽 분지말에서 올라오는 곳을 흰드메 삼거리라 했다. 여기 이정표에 황악산 0.7km, 이화령 5.9km가 적혀 있다. 마원리 하산로를 지나며 부터는 등산로가 고속도로를 방불케 한다. 신갈나무가 양쪽으로 펼쳐진 거의 평탄하고 널찍한 등산로다. 평탄한 등산로에서 잠시 해발 약 904봉에 올라섰다가 다시 평탄한 등산로를 이어가면 가지가 유난히 사방으로 많이 자란 신갈나무가 특이하여 눈에 띄고, 좀 더 가다 다시 한번 더 올려치면 작은 정상석이 있는 황악산이다. 황악산에서 식사도중 추월당했던 우리 총무님과 합류 한다. 황악산에서는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가면 황계산을 거쳐 문경 각서리로 하산을 할 수도 있다. 황악산에서 잠시 사진도 찍고 휴식 후 이화령으로 향한다.

 

조봉(17.3km, 약790m) 14:31

황악산에서 등산로는 좌측으로 방향이 틀어지며 가파르게 내려서게 된다. 우측으로 낙엽송지대가 보인다. 황악산에서 내려서면 분지골로 내려서는 곳에 이정표가 있다. 백화산 80분, 분지안말 50분, 흰드메, 이화령이 표시되어 있다. 이곳이 예전 지도에는 흰드메 삼거리로 표시된 부분이다. 이곳을 지나며 부터 등산로는 살짝 오르막이다. 5분여 오르니 해발 약862봉으로 총무님이 무겁다고 걱정하던 포도를 잠시 나누어 먹고 다시 출발이다. 살짝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좋다. 좌측 신갈나무 숲 사이로는 푸른 초원지대가 펼쳐지며 산길은 지그재그로 내려서 널찍한 공터에서 우측으로 방향이 틀어져 간다. 풀숲 길로 조그마한 멧돼지 샘터를 지나고 우거진 낙엽송 숲을 지나면 마타리꽃이 많이 피어 있는 헬기장이 나온다. 대간길 우측으로 갈미봉으로 가는 길이 있으나 길은 풀이 많아 잘 보이지 않는다. 낙엽송 숲을 지나고 우측으로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이는 곳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세멘포장이 된 두 번째 헬기장이 나온다. 두 번째 헬기장을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오늘의 마지막 산인 조봉에 닿는다. 조봉에도 조그마한 정상석이 있다. 이곳에서도 잠시 휴식 후 출발을 한다.

 

이화령(20.0km, 548m) 15:12 ~17:45

조봉에서 4분여 가면 해발 약755봉으로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봉이다. 여기서 가파르게 내려서면 안부에 움푹 들어간 함몰지대가 있고 함몰지대 우측으로 길이 보인다. 대간 길은 좌측 능선을 따라 오른다. 잠시 헉헉대며 올라 봉을 넘어서면 내려서는 지점에 가지가 많은 큰 소나무가 보이고 안부로 내려서면 널찍한 분지로 등산로 좌측으로는 낙엽송조림지로 간벌을 하여 시원하니 좋다. 여기서 3분후 헬기장이 나오고 등산로는 앞쪽에 높이 솟은 681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지나도록 되어 있다. 이봉에는 군사 시설이 있기 때문에 우회하여 지나는 것이 좋다. 우회 길을 지나 능선아래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가면 마지막 부분에서는 세멘트 계단길이 나온다. 계단길 끝은 이화령을 넘어 문경으로 향하는 도로변으로 이곳에 닿은 후 생태통로 아래 전망대에 선다. 여기에는 층층이 만들어진 전망대로 여기서 내려다보면 문경일대가 보인다. “문경새재는 귀사랑고개”라 적은 시가 있고, 조령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생태통로 옆으로 이화정이란 멋스런 정자도 있다. 이곳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는 생태통로를 빠져 나가면 이화령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 첫머리에 백두대간 이화령 해발 548m가 적힌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옆쪽으로 “백두대간 이화령을 잇다”라고 적힌 표석이 있다. 생태통로를 만들며 세운 표석들이다. 현재시각 15시 12분 산행시간 7시간 45분으로 산행을 종료한다.

이제 배낭을 버스에 놓고 주변을 둘러 본다. “솟아오르는 백두대간이여 하나 되는 국토의 혈맥이여”라 적힌 규모가 상당히 큰 표석이 있다. 이것도 생태통로를 만들며 세워진 것이다. 이쪽에도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면 괴산 연풍일대가 조망된다. 달갑지 않은 작은 표지석이 있는데 ‘새재 자전거길’ 000이라 적혀 있다.

 

이렇게 휴게소 주변을 둘러 본 후 준비해온 물 한병과 미리 도착한 만돌이 대장이 떠다준 물 한 병으로 등목도 하고 발도 닦고 머리도 감고 하니 시원하니 좋다.

선발팀 모두가 이렇게 간단히 세족을 한 후 커다란 표지석 앞에서 사진도 찍고 즐기는 사이 우리님들이 차례로 도착하여 휴게소 한쪽에 자리를 잡고 항상 수고 하시는 운영진에서 준비한 오삼불고기로 맛있게 뒷풀이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오늘도 함께한 대원님들 반가웠고 같이한 산행 즐거웠습니다.

더러는 버섯도 따고, 못 따신 분들도 대간길 힘찬 기를 받아 다음 산행까지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산행시간 : 7시간 45분 소요

산행거리 : 20.0km